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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5: 포럼 질문에 대한 답변 (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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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신화/종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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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19-11-13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로마카톨릭 (+ 정교회) vs. 프로테스탄트 #05: 포럼 (xo8gh8, qorcks200) 질문들에 대한 답변
목차
로마카톨릭교회의 수장권 주장에 대해
- 초기교회에서의 로마주교/감독의 지위는?
- 베드로는 로마주교로서 순교했는가?
- 서유럽 로마카톨릭 교황이 오늘날 같은 수장권을 주장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 "너는 베드로다"
- 바울의 로마방문 이전에 로마교회가 있었고 장로/감독이 있었다는 사실은 교황수위권을 주장하는 로마카톨릭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을까?
로마카톨릭교회의 연옥/대사 교리에 대해
- 연옥교리의 기원은?
- 고해성사의 기원?
- 오리엔트 정교회와 앗시리아 교회의 고해성사는?
- 고해성사는 사도들이 직접 제정한 성사인가?
- 대죄와 소죄의 구분에 대한 로마카톨릭, 정교회, 오리엔탈정교회, 앗시리아동방교회의 견해는?
-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 (~면죄부)에 관해
- 중세시대부터 종교개혁 시기까지 로마카톨릭은 대사 (~면죄부)의 남용과 악용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 십자군에게 교황이 대사를 내린 것은 사실인가?
- 교황 레오10세와 바티칸은 대사와 관련된 오용/남용을 의도 혹은 묵인했을까?
- 완전사면 (full remission of sins)의 정의는?
- 완전사면 (=전대사 (全大赦))란?
- '대사 (인둘겐스)'를 '면죄부'라고 표현하는 것은 프로테스탄트 측의 악의적 왜곡인가?
- 대죄는 완전사면의 대상에 속하는가?
- 요한 테쩰과 같은 방식의 대사 오남용 사례가 중세에 있었나?
- 로마카톨릭 교회의 대사, 잠벌, 성인통공의 의미는?
- 공심판과 사심판에 대한 견해
- 윌리엄 틴들과 영혼수면설?
- 틴들의 영혼수면설은 현재 기독교의 일발적 사후관과 꽤 다른 것이 아닌가?
- 초기교회는 세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보았는가?
로마카톨릭, 정교회, 프로테스탄트의 성체 이해에 대해
- 정교회의 성체 이해
-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 실체변화 설명
- 루터, 쯔빙글리, 칼뱅의 이해
종교개혁과 성인공경에 대해
- 성인들에 대한 기도와 공경의 기원은?
- 마리아/성인 공경은 이교에서 유래한 것인가?
- 루터, 쯔빙글리, 칼뱅은 마리아의 무염시태, 평생동정녀, 몽소승천 같은 로마카톨릭 교리를 지지했을까?
- 마르틴 루터는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믿었을까?
- 루터가 모친에게 '카톨릭에 남아있으라'고 말했다는 속설은 사실인가?
-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성물수집과 루터의 입장?
종교개혁 측의 "오직 성서 (솔라 스크립투라)"와 "오직 믿음 (솔라 피데)"에 대해
-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서번역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내용은 사실인가?
- 외경문서를 정경에서 제외한 마르틴 루터의 결정은 잘못인가?
- 칭의교리에 관한 정교회, 오리엔탈정교회, 앗시리아동방교회의 견해는?
- 1-2세기 기독교도들의 칭의관은 무엇이었을까?
- 서유럽 중세시대 일반 민중들의 모국어 문자 문해율은?
- 로마카톨릭교회는 일반인의 성서독서를 금지했는가?
- 민중들의 문해율이 낮았다면, 왜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은 라틴어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하려고 한 것인가?
- 툴루즈 주교회의의 포고령 이외에 일반인의 성서독서를 금하는 로마카톨릭 측의 포고령이 있는가?
- 루터 이전의 독일어 번역이 있었다면, 왜 루터의 비텐베르트 성서의 파급력은 그렇게 컸던 것인가?
- 1-3세기 기독교도들은 성서를 어떻게 보유했으며, 그들의 예배형식은 어떤 것이었나?
- 중세 로마카톨릭 교회에서는 라틴어 미사 후 모국어로 그 내용을 설명해 주었나?
- 전통주의카톨릭 신자의 글에 대한 논평
- 정교회의 성서해석권은 어떤 것인가? 교회는 언제부터 성서해석을 독점했는가?
- 로마카톨릭의 성서독서
- 성서무오, 축자영감, 유기적 영감설?
- 원죄는 연좌죄인가?
기타 역사
- 올리버 크롬웰이 아일랜드에서 벌인 학살은 정당화 될 수 있을까?
- '로마카톨릭 5천만명 학살역사'란 속설의 근거자료는 무엇인가?
- 장 칼뱅은 신정정치로 세르베투스와 시민 수십명을 처형시켰을까?
- 조르다노 브루노는 '과학과 이성의 순교자'일까?
- 중세는 과연 '암흑'시대였을까?
- 프랑스 대혁명 지도부의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입장
- 교황 비오12세와 나찌의 관계는?
- 교황 비오 13세와 뭇솔리니의 관계는?
- 크롬웰은 아일랜드에서 개신교도도 학살했을까? 크롬웰의 사생활은?
- 북아메리아 청교도 공동체는 성적으로 문란했을까?
- 존 밀턴과 삼위일체?
- 미국 국부들의 종교적 신앙은?
-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에 대한 교황과 로마카톨릭 주교들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나?
{95개조}를 게시하는 마르틴 루터
포럼 링크: http://forum-scientiarum.16390.x6.nabble.com/-td4982084.html#a4982098
평소 가톨릭과 관련하여 궁금했던 점이 많았는데 문항을 나눠서 질문을 하겠으니 혹시 괜찮으시다면 답변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질문 순서는 주제에 맞춰 읽기 쉽게 추후에 재조정했습니다 (최광민)
#로마카톨릭교회의 수장권 주장에 대해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 로마 감독의 지위는 어떠했나요? 초기 기독교 시대에 고린도 교회가 분열하였을 때 당시 로마 감독이였던 클레멘트는 자신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니 고린도 교회는 자신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는 서신을 썼다고 했는데,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로마 감독은 다른 감독들보다도 우위에 있었나요?
[답변]
로마카톨릭이 주장하는 교황수장권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초기교회의 로마 주교가 아무 힘도 없었다"는 식의 주장을 과도하게 펼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 역사적인 로마 주교의 지위가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AD 1세기 말부터 로마 주교/감독의 지위는 좀 특별한 면이 있었습니다.
일단 로마는 정치/경제적으로 제국의 수도라는 우월적 지위를 (로마,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순) 가지고 있었고,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통해 매우 초기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며, 로마 일대는 1세기 중반부터 로마 중앙정부의 크고 작은 박해에 여러차례 노출되어 있어 (가령, 네로 시절) 초기부터 순교자를 배출하였고, 또 베드로와 바울이란 두 대표적 사도가 모두 로마에 가서 신자들을 보살피고 또 순교하기까지 했다고 여러 지역교회들의 다수 주교들이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주교들이 로마주교직에 대해서 매우 명예로운 자리라며 찬사를 보낸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대교회의 직제상 타 지역 주교는 다른 주교의 치리권에 개인적으로 개입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고대의 로마 주교가 중세의 교황과 같은 형식으로 타 지역 주교의 치리 문제에 "상관"의 자격으로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AD 4세기 이후에도 "공회의"가 소집되면 로마 주교는 본인 혹은 특사를 공회의에 파송해서 로마교회의 견해를 다른 지역교회의 주교들 앞에서 표명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동서방 교회가 공히 "공회의"로 수용하는 주요 전체공회의에서 로마 주교는 이들 공회의를 주관하지도, 그 진행을 장악하지도 못했습니다. 확실히 다른 지역 보편교회들에 대한 로마교회의 "수장권"을 말하기는 불리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콘스탄티노플 총주교 네스토리우스의 소위 '양성론' 논쟁을 다룬 제 1차 에페소스 공회의에 이어, 단성론 논쟁인 유티케스 논쟁 중에 예수의 신-인성 결합문제에 대해 로마 주교 레오1세가 에페소스 제2차회의 ("강도회의") 직전에 콘스탄티노플 주교 플라비아노스를 지지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 편지는 당시 에페소스 제2차회의에서는 묵살되었습니다. 이 편지에 담긴 그의 견해가 나중에 칼케돈 공회의에서 공식채택 되면서 교리문제에 관한 로마 주교의 위상이 그 이전과 비교해 크게 올라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레오1세는 단성파가 주도한 에페소스 공회의에서 단성론/합성론자인 콘스탄티노플 대수도원장 유티케스를 옹호한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디오스코로스를 꾸짖으면서, 알렉산드리아 제 1대 주교인 마르코스 (마가)가 로마 주교 베드로의 비서였으니, 알렉산드리아 주교는 로마 주교의 말을 들으라는 식으로 디오스코로스를 비판합니다. 물론 에페소스 제2차회의를 장악한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디오스코로스와 친-알렉산드리아 단성파 주교들은 레오1세의 이 편지를 완전히 묵살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설령 로마교회의 "초대주교"였다고 해도, 이것으로부터 다른 교회와 주교들에 대한 로마교회의 수장권이 자동적으로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티오키아 교회의 "초대주교" 역시 베드로이며, 안티오키아 교회의 주교직은 베드로 > 에보디오스 > 이그나티오스로 이어졌다고 고대교회들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 최광민
[질문] 베드로는 실제로 로마로 가서 거기서 감독직을 맡고 사역을 하다가 순교를 했나요?
[답변]
AD 2-3세기 교부들의 기록이나 (그 유명한 "쿼 바디스?" 가 등장하는) 위경 {베드로행전}을 보면, 베드로가 어떤 식으로든 (실제 방문을 포함해) 로마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은 확실하고, 또 베드로가 로마에 가서 사역하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클레멘스가 남긴 기록의 경우,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정황상 로마라고 추정은 가능합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감독/주교직"이란 표현은 좀 문제가 있는데, 베드로는 공식적으로는 "사도"이고, 전승에 따르면 그가 "리누스"를 감독으로 세운 것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주교/감독의 정의란 "사도의 바른 가르침과 권위를 직접 전승"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베드로 본인이 후대의 의미로서 "주교/감독"이라고 말하긴 정의상 약간 곤란하죠. 그리고 1세기 말까진 아직 사제/장로나 주교/감독이란 용어가 같은 직제 안에서 혼용되던 시대로 학계는 추정합니다. 앞서 말한대로, 주교/감독직의 강화는 그노시스 이단의 발흥하는 1세기 후반 이후 다양한 이단에 대처하기 위한 교회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여겨지니까요.
/ 최광민
[질문] 로마 감독이 서유럽 기독교 세계의 수장으로서 현재의 교황과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답변]
단계적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일단 칼케돈 공회에서 다룬 예수의 신/인성 논쟁에서 로마주교 레오1세의 견해를 바탕으로 공식신조인 {칼케돈 신조}가 작성되면서 로마교회의 신학적 입지가 강화됩니다. 하지만 칼케톤 공회의이후 교회, 특별히 시리아와 이집트 지역은 단성/합성파가 주류를 이뤘고, 이 지역이 이슬람에 병합되는 7세기 까지도 칼케돈파는 이 지역을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서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라틴/로마교회가 동로마 비잔틴 황제 및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에게 맞설 만한 실질적인 정치력이 생긴 것은, AD 5세기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후 비잔틴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힘을 잃고 난 6세기 이후부터 시작하여, 동로마 지역이 단성/양성/칼케돈파 분쟁과 및 이슬람 등장과 함께 도래한 성화상 논쟁으로 정치적/종교적 혼란에 빠진 7-8세기를 거쳐, 아리우스파인 다른 게르만족과 달리 니케아신조를 따르는 로마교회에 귀의하고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을 장악하게 되는 프랑크 왕국의 통치자 카롤루스 마그누스 (샤를마뉴)가 동로마에 정치/군사적으로 거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동시에 로마 주교가 샤를마뉴에게 서로마황제의 지위를 대관한 이후인 8-9세기 이후에 완전히 자리잡았다고 보면 대략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후대의 일이죠.
이후 10-11세기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가 선교지 관할권 충돌문제 및 성령이 누구로부터 오는가를 두고 벌어진 필리오케 논쟁 이후, 로마주교가 서유럽 전체의 관할권 뿐 아니라 동방에 대해서도 단독 "수장권"을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 최광민
[질문] 사도 바울이 로마 제국 전역에 선교를 떠나기 이전부터 로마 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들에 의해 이미 교회가 개척되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로마에 사도 바울이 가기 이미 이전부터 상당 수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바울과 더 나아가 베드로가 로마에 가기 이전부터 로마에는 장로와 감독이 있었을테니 교황수위권을 주장하는 가톨릭 측에 대한 강력한 반박 사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답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된 사례만 봐도 로마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의 로마서를 읽어보면 이미 AD 40년대에는 그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걸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보통 바울이 AD 50년 대 후반에 로마에 갔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사도권 계승"이겠죠? 그 전에 있던 장로/감독을 사도가 직접 임명하거나 인준하지 않았다면 "계승"의 의미가 없으니까요. 로마교회에서 (1) 베드로 -- (2) 리누스 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 최광민
[질문] 동방 정교회에서는 가톨릭에서 베드로의 수위권의 근거로 사용하는 마태복음 16장 18-19절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또 4세기 경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이 반석 위에"라는 절에서 반석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면 로마 교회에서 "반석"의 의미가 베드로를 뜻하며 교황수위권의 근거로서 사용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답변]
우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르네상스 작곡가인 팔레스트리나의 모테트 {Tu es Petrus 너는 베드로다}를 들어보시고요 (킹스칼리지 합창단의 녹음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녹음입니다)
{마태(오)의 복음서} 16장 18-19절에 나오는 예수의 말을 가사로 합니다.
18 κἀγὼ δέ σοι λέγω ὅτι σὺ εἶ πέτρος, καὶ ἐπὶ ταύτῃ τῇ πέτρᾳ οἰκοδομήσω μου τὴν ἐκκλησίαν, καὶ πύλαι ᾅδου οὐ κατισχύσουσιν αὐτῆς. 19 δώσω σοι τὰς κλεῖδας τῆς βασιλείας τῶν οὐρανῶν, καὶ ὃ ἐὰν δήσῃς ἐπὶ τῆς γῆς ἔσται δεδεμένον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καὶ ὃ ἐὰν λύσῃς ἐπὶ τῆς γῆς ἔσται λελυμένον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 그리스어
18 Et ego dico tibi, quia tu es Petrus, et super hanc petram ædificabo Ecclesiam meam, et portæ inferi non prævalebunt adversus eam. 19 Et tibi dabo claves regni cælorum. Et quodcumque ligaveris super terram, erit ligatum et in cælis: et quodcumque solveris super terram, erit solutum et in cælis. --- 라틴어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한국어 새번역
해당 복음서 구절을 앞뒤 문맥에 맞춰 평이하게 읽으면, 이 말은 예수가 케파(아람어)/베드로(그리스어)에게 하고 있는 말이고, 문맥상 예수가 말하는 '반석'은 베드로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너는 "베드로 πέτρος" 다, 내가 이 "반석 πέτρᾳ"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가 아마도 대화에 사용했을 아람어로 하면 이렇게 됩니다.
너는 "케파"다. 내가 이 "케파"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복음서에서 예수는 한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 혹은 다른 단어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하는 재치있는 언어유희 (pun)를 가끔씩 사용하는데 사실 이 구절도 그런 한 예로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가령, 앞의 '케파'는 베드로지만, 뒤의 '케파'는 바로 앞에 등장하는 그의 '믿음'의 믿음의 '반석/케파'로 이해한다는 것이죠. 저는 두 케파 모두 베드로를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앞뒤 '케파'는 '베드로 개인'과 '반석'이란 뜻이 이중적으로 중의적으로 조합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구절을 다른 모든 교회에 대한 "로마주교의 수장권"을 주장하는 로마카톨릭 식으로 읽게 되는 경우, 즉, "1대 로마 주교인 베드로를 계승하는 교회가 (혹은 교회"만") 그리스도의 교회이다"라는 식으로 읽게 되는 경우, 로마 주교의 치리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란 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통해 세운 '참 교회'인 '로마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정교회의 경우는 저 구절을 그냥 액면가로 읽습니다. 다만, 정교회의 입장은 오직 "로마 주교"만이 베드로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모든 주교가 그를 (정확히는 그와 사도적 권위를 나눠갖는 모든 사도들) 계승한 것으로 봅니다. (사실 안티오키아 교회의 1대 주교도 베드로입니다) 따라서 로마 주교는 모든 합법적 주교 가운데 하나인 형제일 뿐이지, 로마 주교가 다른 지역의 주교들보다 수위에 있다는 근거를 저 구절에서 이끌어낼 수 없다고 여깁니다. "주교"라는 지위의 고대적 의미가 "(이단에 대해) 정통교리의 계승자"란 점에서 본다면, 베드로와 사도들의 권위는 "특정지역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바로 "교리수호자"로서의 주교들을 통해 이어진다고 풀이하는 것이죠.
가령, AD 5세기 무렵의 동/서방의 기독교 교부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3세기 중반, (서방)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주교 키프리아누스는 각 교회는 "각 주교"에 의해 세워졌고, 각각은 바로 이 개별 주교들에 의해 치리된다고 적습니다.
"Our Lord, whose precepts and admonitions we ought to observe, describing the honour of a bishop and the order of His Church, speaks in the Gospel, and says to Peter: "I say unto you, That you are Peter, and upon this rock will I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And I will give unto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and whatsoever you shall bind on earth sha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soever you shall loose on earth shall be loosed in heaven." Thence, through the changes of times and successions, the ordering of bishops and the plan of the Church flow onwards; so that the Church is founded upon the bishops, and every act of the Church is controlled by these same rulers." ---St. Cyprian, Epistle XXVI to the Lapsed
라틴어 {불가타}의 번역자이기도 한 4-5세기 히에로니무스는 "모든 주교들"이 "천국의 열쇠들"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교들"은 "로마"의 주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But you say, the Church was founded upon Peter: although elsewhere the same is attributed to all the Apostles, and they all receive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 St. Jerome, Against Jovinanius:
4세기 (동방) 소아시아 닛사 주교 그레고리오스는 해당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통해 천국의 열쇠들을 모든 "주교들"에게 줬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물론 이 "주교들"은 "로마"의 주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It is through Peter that Christ gave to bishops the keys of their heavenly prerogative. -- Gregory of Nyssa (Opp. tom iii)
5세기 초반, (서방) 이탈리아 브레스키아 주교 가우덴티우스는, 해당 구절에 대해 언급하면서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를 "베드로의 계승자"라고 합니다. 물론 "밀라노" 주교는 "로마" 주교가 전혀 아닙니다.
I beseech our common father Ambrose, that, after the scanty dew of my discourse, he may pour abundantly into your hearts the mysteries of the divine writings. Let him speak from that Holy Spirit with which he is filled, and ‘from his belly sha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and, as a successor of Peter, he shall be the mouth of all the surrounding priests. For when the Lord Jesus asked of the apostles, ‘Whom do you say that I am?’ Peter alone replies, with the mouth of all believers,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What reward did that confession at once receive? Blessedness indeed, and the most glorious power of the heavenly kingdom --- St. Gaudentius Tract. 16, De Ordin. Ipsius. Cited by J. Waterworth S.J., A Commentary (London: Thomas Richardson, 1871), pp. 105-107).
6세기 (서방) 스페인의 세비야 주교인 이시도루스는 위의 구절을 언급하면서, "묶고 푸는 권한"은 그리스도를 통해 베드로에게 우선 주어졌고, 다른 사도들도 사도의 교제 가운데 동일한 권한을 부여받아 베드로와 동등한 자격으로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즉, 각 지역의 주교좌는 모두 동등한 그리스도의 교회란 뜻입니다. 6세기면 이미 동/서방 교회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던 때인데도 여전히 동일한 관점이 고수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Thus the Lord says to him: 'You are Peter and upon this rock I sha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and I sha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So Peter first received the power of binding and loosing, and he first led people to faith by the power of his preaching. Still, the other apostles have been made equal with Peter in a fellowship of honor and power. They also, having been sent out into all the world, preached the Gospel. Having descended from these apostles, the bishops have succeeded them, and through all the world they have been established in the seats of the apostles. --- St. Isidore of Seville, {De Ecclesiasticus}
아무래도 저 구절이 "로마주교의 독점적 수위권"을 뜻하려면 타교회의 지위하향이 필요하므로, 서방의 로마카톨릭교회가 배타적 수장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 때는 프랑크왕국의 정치적 지원 하에 서방이 동방에 대해 종교/정치적인 독립권을 대외적으로 표방하게 되는 9세기 이후라 봐야겠죠. 물론 동방은 이슬람의 침략과 십자군 전쟁으로 을의 위치에 처할 때 서방에 약간 고개를 숙이긴 하지만, 그 전이나 이후나 대체로 서방 측의 주장을 무시합니다.
/ 최광민
# 로마카톨리교회의 연옥/대사 교리에 대해
[질문] 연옥 교리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요?
[답변]
누가, 특별히 어떤 시점에 만들었다기 보다는, 연옥의 개념에 대한 생각은 사후 신자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는 방향일 듯 합니다.
기독교 신학에는 사후에 구천을 헤매는 망자의 혼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단 "구원받은" 신자가 죽어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사멸하거나 잠들지 않고 있다면, 그 영혼이 지옥에 갈리는 없으니 두가지 선택지만 남습니다. (1) 낙원(~천국)에 막바로 들어가거나, 혹은 (2) 솔직히 죽자마자 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거룩하게 살았다고 주장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으므로, 일반인들은 낙원에 최종적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종의 정화와 준비를 거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후자의 생각에서 발전된 개념이 연옥에 대한 개념입니다.
아래 제 글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림보의 개념처럼 아마 연옥도 위와 같은 사유에서 점차 발전해 나간 개념으로 보이며, 서방교회에서는 11세기의 리옹 제2차회의에서 처음으로 구체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사후의 정화장소에 대한 연옥개념과 이에 아울러 연옥에 있는 이들을 위한 산 자들의 기도나 기타 헌물 등의 공덕의 혜택을 연옥에 있는 자가 받을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후자의 개념이 결국 연옥에 있는 자들을 위한 대사의 근거가 되는 것이죠. 로마교회의 이런 연옥은 일종의 "징벌"개념입니다.
이런 징벌적 연옥개념은 로마카톨릭교회에서 발전시킨 개념이며, 정교회는 공식적으로 연옥이란 개념과 용어를 부정하고, 설정 그런 정화의 상태가 있다고 해도 그걸 징벌개념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교회의 입장은 (프로테스탄트처럼), 인간의 모든 윤리적 상태는 죽는 시점에서 종결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연옥에서 잠벌을 제거할 어떤 개인적인 심판이란게 있을 수도 없고, 또한 세상에 있는 사람이 대사 (인둘겐스)를 통해 (존재하지도 않는) 연옥의 영혼에게 뭔가 해줄 수도 없습니다.
연옥을 외경에서 유추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교회는 바로 그 외경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을 "영감받은 정경"으로 인정하는 교단이란걸 기억하는게 좋습니다. 그들의 성서해석과 초기 7-8차 세계공회의에 연옥개념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정교회는 연옥을 로마교회의 발명으로 간주합니다. 4-5세기에 분리된 기타 고대교단의 입장도 마찬가집니다.
/ 최광민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도 고해성사가 있었나요? 만약 고해성사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없었다면 고해성사는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에 생겨난 것인가요?
[답변]
기본적으로 고해/고백성사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는 회중 앞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죄를 회개하고 사제에게 "고백"한 후 사제에게서 적절한 권징절차 후 "사면"을 선언받는 두 단계로 구성됩니다. 즉, 고백과 사면/권징이 그 기본구성입니다.
두 단계 모두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고,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시행되는 현재의 형태는 아니겠지만 간음과 같이 세례받은 신도의 중죄, 배교했다 돌아온 자들에 대한 권징에 대한 AD 2-3세기 교부들의 저작들이나 이후 지역 주교회의의 공식적인 치리내용을 본다면 참회-사면/권징은 초기교회에서 자리잡았다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경우, 루터교단과 성공회는 원래 공적/사적 고백/사면을 성사로까지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 전통을 유지합니다. 루터교단은 최근에는 예배에서 공적고백과 사면만 시행합니다.
(루터나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강력한 권징을 옹호했습니다만, 대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너무 강해진 현대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은 아주 큰 교리적 문제에 대해서만 성찬교류금지나 출교/파문 정도의 조치를 취할 뿐, 나머지에 대해서는 다소 '각자도생'의 입장을 취한다고나 할까요? 아울러 오늘날 루터교단, 성공회 등을 제외하면 죄와 벌을 나누어 보는 시각이 많이 희석되어 있고, 심지어 많은 복음주의적, 은사주의적 프로테스탄트들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란 "개인적 확신"만으로 지은 죄에 대한 죄값 (벌)마저 동시에 말소되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신이 한 개인의 죄를 용서할 때 그가 치를 죄값마저 탕감하지 못하리라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는 여분의 잠벌에 대한 처리를 교회가 대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개인적 확신'을 누가 보증하는가가 진짜 문제겠죠. 그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와 죄값을 사면 받았다는 확신을 보증하는 것은 성직자일까요, 개인적 체험일까요, 양심일까요, 그도 아니면 어떤 계시일까요. 영화 {밀양}이 이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최광민
[질문] 오리엔탈 정교회나 네스토리우스파의 후신인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나요? 특히 보편 교회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에티오피아 정교회나 인도에 사도 도마가 세웠다는 기독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는지가 알고 싶습니다. 또 오리엔탈 정교회와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다는데 이에 대한 자료를 혹시 제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단성파 제교단 (이집트 꼽트, 시리아 야곱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에티오피아 등등) 및 양성파 (네스토리우스파/동방교회-구파/신파) 모두 공적/사적 고백/사면형식의 고해성사를 성사로 지킵니다. 인도의 경우 역사적으로 네스토리우스파와 단성파인 시리아 야곱파, 그리고 이후 들어온 로마카톨릭의 영향을 받은 몇 분파로 나뉘어 있으나, 이를 성사로 간주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성사의 경우, 로마카톨릭은 7이란 수에 맞춰서 7성사제를 운용하지만, 정교회나 기다 단성파, 양성파 교단은 꼭 7에 맞추진 않고 교회의 이름으로 성사적이라고 간주되는 의식을 폭넓게 성사로 간주합니다. 고해성사는 공통입니다.
윗 질문에 대한 제 답은 해당 교단의 웹페이지에 찾아보시면 잘 나와있습니다. 영어싸이트를 링크하겠습니다.
이집트 꼽트교회
http://www.copticchurch.net/topics/thecopticchurch/sacraments/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 고해성사가 있었다는 고해성사는 사도 시대부터 있었으며 고해성사는 사도들이 직접 제정한 성사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요?
[답변]
성서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교회의 문서군에 속하는 AD 70-120년 경의 디다케 (12사도들의 가르침)이나 2세기 초/중반 교부인 유스티노스에 따르면, 참회를 교회에서 - 특별히 성찬을 받기 전에 하고 집례자는 사면선언을 합니다 (루터교단이나 성공회는 현재도 그렇게 합니다). 1세기 말의 디다케나 2-3세기의 사도헌장을 그 제목이나 내용이 암시하듯 당시 교회에 전수된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본다면 교회 내의 공적 참회절차에 대한 역사적 기원이 오래되었다고 봐야겠죠.
이 참회형식은 공개적/개인적 두가지 형태가 모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오늘날의 로마카톨릭교회의 그것과 형식면에서 같을 이유는 없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로마카톨릭교회나 기타 교단의 경우도 소죄의 경우는 꼭 사제 앞에서 고해성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기 교회의 가장 큰 대죄인 간음과 우상숭배/배교의 경우, 참회자에 대해서 교회는 그 속죄로서 성찬금지 등을 심지어 죽을 직전까지도 부과합니다. 따라서 보다 고대적 정의에서 본다면, 고해성사란 평이하게 말한다면 교회의 공식권징과 사면절차인 것이죠. 물론 이 사면을 "신에게 위임받아 사제의 직권"으로 면죄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의 용서를 사제가 선언"하는 것인지의 해석에는 차이가 있겠습니다. 프로테스탄트 (루터교단, 성공회 등등)은 대체로 후자로 이해합니다.
/ 최광민
[질문] 가톨릭에서 대죄와 소죄를 구분하는 교리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요? 또 동방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대죄와 소죄를 교리적으로 구분하나요?
[답변]
특정한 시기를 딱 꼬집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교회의 권징 대상이 되는 죄의 대소 문제에 대한 생각은 아주 초기부터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령, 코린토스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나테마 마라나타'에 처한다'고 적으며 죽을 때까지 파문을 명시합니다. 예수의 재림까지 교회가 징계대상자에 대해서 손을 뗀다는 뜻입니다.
특히, 세례교인의 간음은 (및 중혼)은 이미 1세기 말부터 (참회를 하더라도 거의) 성찬금지 등 준-파문에 상응하는 중죄로 간주되었습니다. (해석의 문제는 있지만) 이미 {신약성서}에서도 "성령훼방죄"는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간주되고 있고, 따라서 간음이나 우상숭배, 배교 등은 어떤 교단을 막론하고 모든 고대교단에서 파문 혹은 준-파문에 준하는 당연히 대죄에 속했습니다. 이런 죄들은 아예 성서에 예수 혹은 사도들의 말로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그 외의 대/소죄의 구체적 리스트는 시대와 지역 주교의 치리권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교회의 권징에 따른 실무적인 사안이니까요.
/ 최광민
[질문] 종교개혁의 계기가 되었던 면죄부라는 것을 가톨릭에서는 대사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래 이 대사는 대죄를 지은 후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받은 뒤 남은 잠벌을 현세에서 보속하는 것이지만 그 중 하나가 헌금을 하는 것이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이 대사를 헌금을 하는 즉시 죽은 가족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거짓 선전을 했던 것이고 교황청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로마카톨릭 측의 상기 설명은 일면 맞고 일면 틀립니다.
루터의 {95개조} 전문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루터의 논점은 로마카톨릭 측의 상기주장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와 상관없이, 로마카톨릭의 "대사"의 교리를 지탱하는 (1) 중세 카톨릭적 "연옥"의 실재와 (2) 사후에 교회가 죽은 자들에게 대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을 중심축으로 합니다.
루터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약 연옥이 없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교회가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게 "대사"든 "면죄부"든 현세의 교회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위의 "대사"란 용어의 세심한 정의를 들어 로마카톨릭 측이 취하는 방어전략은 논점을 일탈한 것입니다. 만약 대사/면죄부의 효력이 발생하는 연옥 자체가 없다면 다른 추가적인 논증은 무의미한 것이니까요. 따라서 대사/면죄부에 대한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논쟁은 반드시 연옥의 실재여부 부터 논증되어야 합니다. 이걸 건너뛰고 "대사의 올바른 정의"와 "프로테스탄트 측의 오해"부터 논하는 건 논점일탈이란 뜻입니다.
왜 루터가, 이름없이 순교한 이들을 기리는 로마카톨릭교회의 만성절 (11월 1일)과 죽은 자, 특별히 연옥에 있는 자들이 천국으로 빨리 옮겨지길 기원하는 만령절 (11월 2일) 직전인 10월 31일에 이 문제의 95개조를 제출했는지의 의도는 그래서 명확합니다. (정확한 날짜는 논란이 약간 있지만 11월 1-2주 안에 게시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가 겨눈 칼 끝은 "대사의 올바른 사용/정의" 같은게 아니라, 연옥의 실재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한 교회의 관여가능성 여부니까요.
루터의 95개조에서 첫 13개 논점을 인용합니다.
- Dominus et magister noster Iesus Christus dicendo ,Penitentiam agite etc.' omnem vitam fidelium penitentiam esse voluit.
- 우리들은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실때, 이는 신자들이 전 생애에 걸쳐 참회해야 함을 의미한다.
- Quod verbum de penitentia sacramentali (id est confessionis et stisfactionis, que sacerdotum ministerio celebratur) non potest intelligi.
- 이 말씀은 고해성사, 즉 사제들이 집행하여 시행되는 죄의 자복과 사면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 Non tamen solam intendit interiorem, immo interior nulla est, nisi foris operetur varias carnis mortificationes.
-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그와 같은 심적 회개가 육체의 여러 가지 정욕을 외적으로 죽이지 못한다면 그런 회개는 무가치하다.
- Manet itaque pena, donec manet odium sui (id est penitentia vera intus), scilicet usque ad introitum regni celorum.
- 따라서 참된 심적 참회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 Papa non vult nec potest ullas penas remittere preter eas, quas arbitrio vel suo vel canonum imposuit.
- 교황은 그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한 형벌 이외에는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권한도 없고, 의지도 없다.
- Papa non potest remittere ullam culpam nisi declarando et approbando remissam a deo Aut certe remittendo casus reservatos sibi, quibus contemptis culpa prorsus remaneret.
- 교황은 신께서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혹은 시인하는 이 외에는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만을 사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만일 교황의 사면권이 무시당한다면, 죄책은 확실히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Nulli prorsus remittit deus culpam, quin simul eum subiiciat humiliatum in omnibus sácerdoti suo vicario.
- 신께서 누구의 죄든지 사면하시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모든 일에서 겸손하게 만들고 복종하게 하여서, 신을 대리하는 사제의 지도를 받게 하신다
- Canones penitentiales solum viventibus sunt impositi, nihilque morituris eosdem debet imponi.
- 죄를 사면하는 교회법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죽은 자에게 어떤 부담이라도 부과되어서는 안된다.
- Inde bene nobis facit spiritussanctus in papa excipiendo in suis decretis semper articulum motris et necessitatis.
- 그러므로 교황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궁의 조항을 항상 예외적으로 만드시는 바, 그의 작정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서 자비를 행하신다.
- Indocte et male faciunt sacerdotes ii, qui morituris penitentias canonicias in purgatorium reservant.
- 사제가 사망한 자에게 있어서 연옥에서의 교회법 상 회개를 내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 Zizania illa de mutanda pena Canonica in penam purgatorii videntur certe dormientibus episcopis seminata.
- 교회법 상의 벌들을 연옥의 형벌로 변경시키려는 이런 가라지는, 확실히 감독들이 잠을 자는 동안에 (=직무유기중에) 심어진 것이라고 보인다. (마 13:25)
- Olim pene canonice non post, sed ante absolutionem imponebantur tanquam tentamenta vere contritionis.
- 예전에는 진정한 참회에 대한 시험으로, 교회법 상 징벌이 사면 후가 아니라 사면 전에 부과되었다.
- Morituri per mortem omnia solvunt et legibus canonum morituri iam sunt, habentes irue earum relaxationem.
- 죽는 사람은 그 죽음으로서 모든 이 세상에서 받을 벌을 다 받았으며 교회 법령의 벌칙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해방된다.
/ 최광민
[질문] 중세 시대 부터 마르틴 루터의 시기까지 교황청은 이런 대사의 남용과 악용을 자금 충당을 위해 방관했나요? 아니면 나름대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나요?
[답변]
종교개혁 발생 후인 1500년대 중반에 개최된 로마카톨릭교회의 자체개혁안이자 반-종교개혁 공회인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대사 (大赦, 인둘겐스 indulgens)의 남용에 대해서 문제가 지적되긴했지만, 대사 및 순례, 성인유해공경 같이 종교개혁자들의 전방위 공격을 받은 건들은 신학적으로 옳은 것으로 강력히 재인준 받았습니다. 즉, 오남용의 문제는 있지만 교리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죠. 연옥에 있는 영혼을 다룬다는 점에서 대사과 유사한 궤적이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로마카톨릭의 "위령미사" 혹은 "연도"에 대해 한번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 최광민
[질문] 비슷한 질문을 계속 물고 늘어져서 죄송하긴 합니다만, 저는 마르틴 루터 당시 요한 테젤 등의 가톨릭 수사들이 "성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해서 헌금을 내는 자들은 지금까지 지을 죄와 앞으로 지을 죄도 사해지며, 또 연옥에 있는 자기 조상들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헌금이나 성물을 강매했던 것이 교황 레오 10세와 로마 교황청이 의도했던 것이거나, 적어도 독일에서 벌어지는 실태를 알면서도 묵인했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답변]
아마도 둘 다일 것입니다. 대사에 대한 로마카톨릭 교리가 당시 절정이었으니까 오남용의 사례를 보고 받았더라도, 그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진 않았겠죠. 한 세대 후 로마카톨릭 측의 반-종교개혁 공회의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대사가 재인준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 시기 이전에도 요한 테젤이 주장한 거와 같이 대사를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죄가 전부 사해지고 가족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식의 대사의 본래 뜻을 왜곡되고 과정된 형태로 선전해 헌금과 성물을 강매한 사례가 중세 시대에 있었나요?
[답변]
13세기 라테란 공회의 문건에 따르면, 그 당시의 행태로서 대사가 남발되어 대사의 효력기간을 40일로 한정하기도 하는데, 이후 이 효력기간이 수 백년, 수 천년에 이르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모든 죄"를 사해주는 경우도 보고되어 교황이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바티칸이 조장했던 방조했던 몰랐던, 지역에서 오남용 사례는 꽤 많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최광민
[질문] 십자군 전쟁 당시 교황청이 십자군에 참전해서 전사한 자들은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고 선전을 했다는 이야기를 접한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사실입니다. 다만 1차 십자군 때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완전사면을 약속했다고 보통 말해지지만, 이건 공식적인 사면령이라고 보긴 약간 힘듭니다. 공식적인 교황의 완전사면 교서는 중동에 파견된 십자군이 아니라 11세기 스페인 지역의 수복운동과 그 이후 교황이 낸 교서인 {Bula de la santa Cruzada}가 우선입니다. 기본적으로 로마카톨릭 신자는 성인이 아닌 한 디폴트로 보통 연옥에 간다는게 자연스런 결론입니다. 이 경우, 완전사면은 교회가 행사할 수 있는 최고의 조치가 되겠죠. 원칙상으론 못할 것도 없습니다.
/ 최광민
[질문] 십자군과 관련된 질문에서 완전사면이라는 용어의 영어 명칭을 알고 싶습니다. 혹시 "plenary indulgence"라고 칭해지는 그것이 맞나요?
[답변]
로마카톨릭 용어로는 전대사 (全大赦, indulgentia plenaria), 영어로는 plenary indulgence 혹은 보통 평이한 영어로는 "full remission of sins"라고 하는데, 아마도 로마 산 조반니 (=성 요한)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 새겨진 아래 음각이 그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줄 것 같습니다. 판테온을 비롯해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Indulgentia plenaria
(모든 사안에 대한) 완전사면
perpetua quotidiana toties quoties
영구적이고 매번(일)
pro vivis et defunctis
산 자나 죽은 자를 위한 / 번역: 최광민
더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원죄는 연좌제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다면 "연좌제"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는 후손들에게 아담의 죄를 묻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가 인간의 생식을 통해 후손으로 전이되는 식으로 설명하긴 했지만, 전체 맥락에서 볼때 그가 의도하는 바는 "타락한 아담의 상태"가 후손에게 전이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죄"는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조건/상태에 대한 선언"이라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전 연좌제와는 결이 다르다고 봅니다.
[질문] 이건 그냥 질문해보는 것 입니다만, Indulgence를 대사가 아닌 면죄부 혹은 면벌부라고 번역하는 것은 개신교 측의 악의적인 선전이라는 가톨릭 측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면죄부 혹은 면벌부라는 용어가 프로파간다는 아니라도 적어도 본래의 의미와 어긋나는 오역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물론 당사자 측이 사용하는 용어를 써주는게 좋겠지만, '대사'는 공식용어, '면벌부'는 비공식용어로 여겨도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요 (면"죄"부는 정의상 "대사"와 의미가 좀 다릅니다).
가령, 로마카톨릭이나 정교회의 "성화상 공경"과 보통 프로테스탄트 측이 이를 비난하는 "성화상 숭배"를 두고, 공경은 '둘리아'고 숭배는 '라트리아'니까 둘은 다르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사례에서는 두 경계를 넘는 경우도 있고 바로 그런 사례가 주요 비판대상이니까 좀 미묘하긴 하겠죠. '공경'에 대해선 제가 짧은 글을 쓴 게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2/3.html
핵심쟁점은 로마카톨릭의 경우 죄와 벌을 확실하게 나누고 고해성사 등을 통한 속죄 후 남는 벌 (잠벌)에 대해 '대사'가 적용된다고 풀이하는데,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측이 애용해 온 '면죄(부)'란 마치 '벌'이 아닌 '죄 자체를 사면해 주는 것'이란 느낌을 주고, 따라서 그렇게 오해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 최광민
[질문] 완전사면의 경우 잠벌이 전부 탕감된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교리적으로 대죄를 지은 상태라 할지라도 이것이 탕감되어 구원받아 천국에 올라가게 되는 것인가요?
[답변]
중세 말의 속죄/사면 개념은 다분히 "정량적"입니다. 소죄든 대죄든 연옥에 있는 사람은 "영벌"은 탕감되었으나 다양한 수준과 양의 남은 죄에 따라 그 "징벌/정화"의 기간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대사는 이걸 역시 정량적으로 해소하게 되는 것이고요. 대사는 '죄'가 아니라 '벌'에 대한 개념입니다.
/ 최광민
[질문] 제가 가톨릭 교리에 무지해서 그런 것입니다만 완전사면이라는 것은 연옥에서의 보속을 하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올라감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답변]
잠벌이 다 탕감되는 것입니다. 중세 서방신학에서는 교회가 예수와 성인들의 공덕을 저장해 놓은 일종의 은혜의 보물창고의 열쇠를 쥐고 있으며, 교회가 신자들을 사면할 때 바로 이 여분의 공덕을 사용한다는 은혜의 "양적"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 최광민
[질문] 잉글랜드의 종교개혁가인 윌리엄 틴들은 영혼불멸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간은 죽으면 낙원과 음부에 가는 것이 아닌 최후의 대심판 날까지 잠들어 있다는 견해를 가졌다는 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이 생각은 초기교회 때부터 있던 생각 중 하나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견해는 2세기 유스티노스의 제자였던 타티아노스가 그리스인들에게 한 논전에서, 진리를 모르고 죽은 자의 영혼은 몸이 죽으면 몸과 함께 죽어 흩어졌다가 심판의 날에 다시 몸과 함께 합체해 부활하고, 그 영혼이 신을 알았다면 그 영혼이 죽지 않고 이렇게 영혼이 흩어져있는 동안이라도 영혼이 사라져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봤습니다.
윌리엄 틴들이 종교개혁의 핵심쟁점에 반대한 당대의 석학 토마스 모어의 견해를 반박하며 출판한 논고를 읽어보면,
https://books.google.com/books?id=EMcOAAAAIAAJ&pg=PA2&dq=#v=onepage&q&f=false
틴들은 여기서 "영혼불멸"에 대해 반박하고 있는게 아니라, 만약 영혼이 (로마카톨릭교회의 말대로 죽은 후) 이미 천국, 지옥, 연옥으로 가서 "영혼"으로서 살고 있다면, 육체의 부활을 말하는 그리스도와 바울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교도 철학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영혼이 (그 자체로서) 영원히 산다고 제안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영적 가르침과 이교도 철학자의 육적 가르침을 섞고 있다...."라고 적었네요. 그러니까 이건 "영혼불멸" 이야기와 상관있는게 아니라, 영혼만으로 천국/지옥/연옥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생각에 대한 반박이라고 보셔야 할 듯 합니다. 즉, 틴들은 루터 처럼 사후 영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부활 때까지 잠들었다가 육체와 함께 부활한다는 말을 함으로써 연옥 개념을 부정하려고 의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영혼(의 존재)불멸"과 "영혼의 잠"은 꽤 결이 다른 주제입니다.
/ 최광민
[질문] 윌리엄 틴들이 연옥교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최후의 심판날까지 영혼들은 잠에 들어있다는 견해를 표출했다는 것인데 사실 이 주장도 오늘날 개신교의 교리에서 나오는 인간이 죽으면 사심판을 통해 낙원과 음부로 가서 최후의 심판날까지 거기 머무른다는 사후관과는 꽤 다른 것 아닌가요?
[답변]
"영혼수면"에 대한 해석은 아주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1-5세기에 "성인"으로 간주된 몇몇 주요 교부들, 특별히 동방의 교부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후의 영혼이 "의식"을 가지고 있고, 또 사후 낙원 (파라다이스)과 음부 (하데스) (및 연옥)으로 가서 의식을 가진 채로 심판과 부활을 기다린다는 설명이 주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 때까지 죽은 자의 영혼이 실제로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다는 개념을 가진 고대교부는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완전한 구원과 미래의 형벌의 기다리며 지복의 상태 혹은 공포의 상태에서 종말을 부활을 기다린다고 대체로 봤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영혼수면에 대한 틴들의 생각과 루터의 생각은 거의 같습니다. 다만 이 "의식"의 상태가 어느 수준인지 (즉, 완전한 잠인지, 의식은 있으나 낮은 의식상태인 것인지), 그리고 일부 신자 (가령, 계시록의 순교자들과 장로 등)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 신과 함께 있는 것인지 등은 논쟁적입니다.
아울러 최후의 심판 후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은 "둘째 사망"에서 어떻게 되는지, 다시 말해서 영원히 멸절되는 것인지, 영혼의 상태에서 영원한 형별을 받는 것인지를 두고도 논란이 있습니다. 멸절론을 주장한 고대교부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 최광민
[질문] 가톨릭 대사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대사의 효력은 미래의 모든 잠벌까지도 미치는 건가요. 그리고 꼭 죽은 연옥영혼을 위해서만 아님 살아있는 신자들을 위해서 받는건지요. 그리고 가톨릭의 죽은자를 위한 기도나 성인통공교리와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이와 관련된 연옥에 대해서는 그 프로토 타입 컨셉은 아우구스티노 교부에 기원 한다는데 이게 사실인지요. 정교회의 델로니아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질문자 qorcks200)
[답변]
죄와 벌을 엄격하게 분리해서 보는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에서는, 저지른 죄가 속죄 (고해성사) 로 사면된 후 남는 벌에 대한 보속은 죄질에 따라 일시적이거나 혹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보속 (영벌)은 결국 지옥행을 말하지만, 일시적인 보속 (잠벌) 의 경우는 유한하고 현세에서 일단 치르고 부족하면 연옥에서까지 이어집니다. 현세에서의 보속이 응보적인 동시에 교정적/예방적 성격을 가진다면, 연옥에서는 오직 본인의 문제만 다루는 응보적인 성격만 가지게 됩니다.
로마카톨릭의 이런 이해에서 신자들이 거의 대부분 디폴트로 연옥으로 간다고 해석내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본인이 잊고서 죽기 전 고해성사하지 못한 '죄'가 있을 수도 있고 (따라서 적절한 보속이 이뤄지지 못했고), 또는 해당 죄와 사제/주교가 부과한 보속의 형식과 내용이 등치되지 않아 충분한 보속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전대사(全大赦)는 연옥에서 받을 잠벌 전부, 한대사(限大赦)는 그 일부를 면제받습니다.
이 개념은 말씀하신 대로 사도신경에도 나오는 '성인의 통공 (communio sanctorum)'의 개념과 함께 갑니다.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사도신경에서는 이 용어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란 정체불명의 용어로 번역해 놓아서 이 의미를 평신도들에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성인'은 꼭 "성자/성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구원받은 신자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죽었거나 살아있는 모든 자가 다 포함됩니다. '성인'이란 통상적 용어가 다소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성도'란 용어를 쓰겠습니다.
이 '성인/성도의 통공/교통'이란 개념은 , 즉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 간의 영적연합을 의미했습니다. 현세에서만 보면 이 '연합'은 기독교 신자들 상호 간의 긴밀한 사귐, 교제, 구제, 기도, 보살핌 등을 뜻합니다.
바로 이 신자 상호 간의 "도움"이란 개념이 확장된 것이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한 대사'입니다. 로마카톨릭교회는 아직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지 못한 영혼들을 생존자들이 "돕기" 위해 보속을 대행할 대사를 결정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죽은 영혼들을 산 사람이 도울 방법은 '대사'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니까요.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Incarnationis Mysterium}가 이를 잘 설명합니다.
"....This doctrine on indulgences therefore “teaches firstly how sad and bitter it is to have abandoned the Lord God (cf. Jer 2:19). When they gain indulgences, the faithful understand that by their own strength they would not be able to make good the evil which by sinning they have done to themselves and to the entire community, and therefore they are stirred to saving deeds of humility”.(18) Furthermore, the truth about the communion of saints which unites believers to Christ and to one another, reveals how much each of us can help others — living or dead — to become ever more intimately united with the Father in heaven...."
http://www.vatican.va/jubilee_2000/docs/documents/hf_jp-ii_doc_30111998_bolla-jubilee_en.html
즉, 로마카톨릭교회의 '성인의 통공'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교회의 매개를 통해) 서로 이런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반면, 프로테스탄트에서의 동일한 '성도의 교제/교통'을 말하긴 하지만 산 자와 죽은 자가 이런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거나/못한다고 이해합니다. 즉, 죽음 이후 현세의 교회는 죽은 자의 영혼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개인은 스스로의 모든 속죄와 보속을 죽음의 시점에 완료했고 더이상 누가 그들을 위해 더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고 이해합니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에서는 (루터교단, 성공회, 감리회 처럼) 죽은 자를 위해 신의 "자비"를 기도할 수는 있더라도, 대사와 같은 형식으로 그의 영혼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고 봅니다. 또한 산 성도가 죽은 성도에게 기도할 이유도 없고, 또 죽은 성도가 살아있는 성도에게 직접 무엇을 해준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죽은 성도의 영혼은 심판 때까지 '자고 있다'고 믿은 루터 등의 관점에서 보면 더더욱 말이 안되는 것이겠죠.
물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과 설교들에서 보면, 그는 사후 (1) 일시적으로 받는 벌과 지옥에서 받을 영원한 벌 (2) 일시적인 정화의 불과 영원한 징벌을 대비시키고 있으며, 또 (3)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언급하며, 또 이들 죽은 이들의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합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설명을 "정경 구약성서"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고 (직접 그렇게 적었습니다) , 대신 외경 {마카베오서}에서 내용을 가져오거나 당대의 라틴교회 관례에 기반해서 말합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카베오서}를 "구약성서"들과 확실히 구분짓고 있습니다.
연옥을 부정한 마르틴 루터가 아우구스티누스회 소속 수도사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고 할까요.
- The man who perhaps has not cultivated the land and has allowed it to be overrun with brambles has in this life the curse of his land on all his works, and after this life he will have either purgatorial fire or eternal punishment.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Genesis, 2:20 [388/389])
- Cleanse me in this life, and make me such, that I may after that stand in no need of the cleansing fire, for those "who are to be saved, yet so as by fire." (1 Corinthians 3:15) ... For all that, though we should be saved by fire, yet will that fire be more grievous than anything that man can suffer in this life whatsoever. (Exposition on Psalm 38, 2 [date unknown; 396~420)
- Of those who suffer temporary punishments after death, all are not doomed to those everlasting pains which are to follow that judgment. (The City of God 21:13 [413-427])
- The souls of the pious dead are not separated from the Church, which even now is the kingdom of Christ; otherwise there would be no remembrance made of them at the altar of God in the partaking of the body of Christ. (The City of God 20:9 [413-427])
- The prayer either of the Church herself or of pious individuals is heard on behalf of certain of the dead; but it is heard for those who, having been regenerated in Christ, did not for the rest of their life in the body do such wickedness that they might be judged unworthy of such mercy, nor who yet lived so well that it might be supposed they have no need of such mercy. (The City of God 21:24 [413-427])
- In the books of the Maccabees we read of sacrifice offered for the dead. Howbeit even if it were no where at all read in the Old Scriptures, not small is the authority, which in this usage is clear, of the whole Church, namely, that in the prayers of the priest which are offered to the Lord God at His altar, the Commendation of the dead has also its place. (On the Care of the Dead, 3 [420-422])
- Church custom has it that at the place where the names of the martyrs are recited at God's altar, we don't pray for them, while we do pray for the other departed brothers and sisters who are remembered there. It is insulting, I mean, to pray for martyrs, to whose prayers we ought rather to commend ourselves. (Sermon 159:1 [417])
- There is no doubt that the dead are helped by the prayers of holy Church, by the saving sacrifice, and by alms dispensed for their souls; these things are done that they may be more mercifully dealt with by the Lord than their sins deserve. The whole Church observes the custom handed down by our fathers: that those who died within the fellowship of Christ’s body and blood should be prayed for when they are commemorated in their own place at the holy sacrifice, and that we should be reminded that this sacrifice is offered for them as well. (Sermon 172:2 [date unknown; 393~430])
정교회는 AD 8세기 이전의 세계공회의에서 연옥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이를 교리화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죽은 자가 막바로 천국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은 (성모 마리아 같은 특별한 성인들을 제외하면) 일단 저승/하데스의 영역으로 가서 거기서 부활까지 대기한다고 이해합니다. 이 대기상태는 그야말로 대기장소일 뿐, 로마카톨릭에서 이해하는 식의 '잠벌을 해소하는 보속'의 상태 혹은 장소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죽은 자가 몸을 떠나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신에게 가는 여정에서 악마들의 영역인 하늘의 소위 "텔로니아 투 애로스 τελώνια τοῦ ἀέρος" (직역: 공중의 세관) 에서 조우하는 악마들이 죽은 자의 죄성과 죄책감 등을 약점 삼아 유혹/공격해서 가능하다면 그를 지옥으로 끌러내리려 하며, 죽은 자는 이를 극복해 가며 결국 천국에 이른다는 정교회의 설명은 정교회의 공식교리가 아니라 몇몇 정교회 성인 (가령, 크리소스토모스) 의 불분명한 언급, 성인전 등에 등장하는 설화적인 설명입니다. 정교도들은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주류) 측도 있고, 이를 영혼의 정화 및 신화에 대한 메타포로 보는 측도 있고, 오히려 이를 그노시스적이고 이교적으로 여기는 측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티벳사자의 서}에 나오는 모티프와도 유사합니다. 아무튼 이 설명은 "잠벌의 보속"이 이뤄진다는 로마카톨릭의 연옥과는 꽤 다르며, '최후의 유혹'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공히 적용되는 공심판(최후의 심판) 사심판 (죽은후 즉시 심판)은 교파별로 어떻게 규정하나요. 가톨릭 에서는 둘다 천국 연옥 지옥 등이 등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자들도 많은 질문을 하지요 심판을 두번 받는것인가? 하구요 아마 주후 재림지연으로 섕긴 문제깉은데 연옥이나 중간지대도 아마 이런 문제에 영향을 조금은 받은거 아닐까 생각합니다(징벌의 형평성과는 별개로) 가톨릭 측에서는 현대에 들어서는 주의 무시간성을 들어 사후와 종말간의 시적차이가 없고 단지 신자개인적 차원이냐 인류냐의 차이만 있다는 설명을 하긴 합니다 즉 개인의 종말이 이루어진후 그것은 곧 최후의 종말과 연결되 있다 이런식이지요 아직 정식화된 교리는 없는걸로 앎니다 가톨릭은 공의회 차원의 무오류 내지는 그 비슷한 교리정식화를 시도하다 그만둔걸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 qorcks200)
[답변]
연옥개념의 도래는 재림의 지연과는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됩니다. 라틴교회에서 연옥개념이 교리화되기 한참 전인 기원 초기 600년 간, 동/서방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사후의 상태는 "아브라함의 품"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사후의 영혼은 저승이지만 낙원이랄 수 있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지복의 상태에서 부활을 기다린다는 해설이죠 (물론 아직 완전한 천국이 그들에게 도래하진 않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의 영혼은 역시 저승이지만 격리된 하데스에서 미래의 징벌을 바라보며 공포의 상태를 보냅니다. (역시 아직 실제로 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AD 2세기 말 로마 사제 히폴리투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 NOW as to Hades, wherein the souls of the of the good things they see, and rejoice in the righteous and unrighteous are detained, it is necessary to speak of it. Hades is a place in the world not regularly finished; a subterraneous region, wherein the light of this world does not shine; from which circumstance, that in this region the light does not shine, it cannot be but there must be in it perpetual darkness. This region is allotted as a place of custody for souls, in which angels are appointed as guardians to them, who distribute to them temporary punishments, agreeable to every one's behavior and manners.
......[전략].... 이 장소 (하데스)는 영혼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관리하기 위해 천사들이 배정되어 있으며 그들은 영혼들을 각자의 행위와 삶에 따라 일시적인 징벌을 부과한다. / 번역: 최광민
2. In this region there is a certain place set apart, as a lake of unquenchable fire, whereinto we suppose no one hath hitherto been cast; but it is prepared for a day afore-determined by God, in which one righteous sentence shall deservedly be passed upon all men; when the unjust, and those that have been disobedient to God, and have given honor to such idols as have been the vain operations of the hands of men, as to God himself, shall be adjudged to this everlasting punishment, as having been the causes of defilement; while the just shall obtain an incorruptible and never-fading kingdom. These are now indeed confined in Hades, but not in the same place wherein the unjust are confined. 3. For there is one descent into this region, at whose gate we believe there stands an archangel with an host; which gate when those pass through that are conducted down by the angels appointed over souls, they do not go the same way; but the just are guided to the right hand, and are led with hymns, sung by the angels appointed over that place, unto a region of light, in which the just have dwelt from the beginning of the world; not constrained by necessity, but ever enjoying the prospect of the good things they see, and rejoice in the expectation of those new enjoyments which will be peculiar to every one of them, and esteeming those things beyond what we have here; with whom there is no place of toil, no burning heat, no piercing cold, nor are any briers there; but the countenance of the fathers and of the just, which they see always, smiles upon them, while they wait for that rest and eternal new life in heaven, which is to succeed this region. This place we call The Bosom of Abraham.
이 곳에는 꺼지지 않는 불의 연못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도 불연못에 던져지지는 않았다고 우리는 여긴다. 그러나 이 연못은 신의 정의로운 심판이 온 인류에게 내려질 때까지 미리 준비되어 있는 장소다. 부정한 자와 신에게 불복한 자들, 그리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헛된 우상을 마치 신 본인인 양 숭배했던 자들은 타락을 세상에 불러들였기에 이 영원한 징벌 가운데 던져질 것이다. 반면에 정의롭게 살았던 자는 썩지않고 영원히 시들지 않는 왕국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정의로운 이들이 현재 하데스/저승에 현재 격리되어 있긴 하지만, 부정한 자들과 같이 격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중략]... (의인을 위한) 이 장소를 우리는 "아브라함의 품"이라 부른다. / 번역: 최광민
4. But as to the unjust, they are dragged by force to the left hand by the angels allotted for punishment, no longer going with a good will, but as prisoners driven by violence; to whom are sent the angels appointed over them to reproach them and threaten them with their terrible looks, and to thrust them still downwards. Now those angels that are set over these souls, drag them into the neighborhood of hell itself; who, when they are hard by it, continually hear the noise of it, and do not stand clear of the hot vapor itself; but when they have a near view of this spectacle, as of a terrible and exceeding great prospect of fire, they are struck with a fearful expectation of a future judgment, and in effect punished thereby: and not only so, but where they see the place [or choir] of the fathers and of the just, even hereby are they punished; for a chaos deep and large is fixed between them; insomuch that a just man that hath compassion upon them cannot be admitted, nor can one that is unjust, if he were bold enough to attempt it, pass over it.
불의한 자들은.......[중략]....천사들에게 이끌려 지옥의 변두리로 끌려간다....[중략]....거기 서서 끊임없는 지옥의 소음과 뜨거운 연기 가운데서....[중략]... 그들은 미래에 있을 두려운 심판을 떨며 기다리는데 이렇게 사실상 그들은 징벌을 받고 있다...../ 번역: 최광민
5. This is the discourse concerning Hades, wherein the souls of all men are confined until a proper season, which God hath determined, when he will make a resurrection of all men from the dead, not procuring a transmigration of souls from one body to another, but raising again those very bodies, which you Greeks, seeing to be dissolved, do not believe [their resurrection]. But learn not to disbelieve it; for while you believe that the soul is created, and yet is made immortal by God, according to the doctrine of Plato, and this in time, be not incredulous; but believe that God is able, when he hath raised to life that body which was made as a compound of the same elements, to make it immortal; for it must never be said of God, that he is able to do some things, and unable to do others. We have therefore believed that the body will be raised again; for although it be dissolved, it is not perished; for the earth receives its remains, and preserves them; and while they are like seed, and are mixed among the more fruitful soil, they flourish, and what is sown is indeed sown bare grain, but at the mighty sound of God the Creator, it will sprout up, and be raised in a clothed and glorious condition, though not before it has been dissolved, and mixed [with the earth]. So that we have not rashly believed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for although it be dissolved for a time on account of the original transgression, it exists still, and is cast into the earth as into a potter's furnace, in order to be formed again, not in order to rise again such as it was before, but in a state of purity, and so as never to be destroyed any more. And to every body shall its own soul be restored. And when it hath clothed itself with that body, it will not be subject to misery, but, being itself pure, it will continue with its pure body, and rejoice with it, with which it having walked righteously now in this world, and never having had it as a snare, it will receive it again with great gladness. But as for the unjust, they will receive their bodies not changed, not freed from diseases or distempers, nor made glorious, but with the same diseases wherein they died; and such as they were in their unbelief, the same shall they be when they shall be faithfully judged. --- Hippolytus of Rome, {Discourse To The Greeks Concerning Hades}, tr. William Whiston
이것이 하데스/저승에 대한 설명이다. 거기서 모든 영혼은 신이 정한 때까지 기다리며 격리되어 있다. 신이 모든 사람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킬 때, 그는 영혼을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전이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바로 그 몸을 부활시킬 것이다. 당신들 그리스인들은 몸이 죽어 해체되어 버린다고 보고 부활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배워서 믿도록 하라. 당신들은 플라톤의 교리에 따라 영혼이 창조되었으되 신에 의해 불멸하게 만들어졌다고 믿는데 이것이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신의 능력을 믿도록 하자. 신이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육체를 다시 부활시킬 때 그는 그 육체를 불멸하는 몸으로 만드실 수 있다. 신이 어떤 것은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자.육체가 비록 해체되긴 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육체가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다 ...[중략]... 모든 부활한 육체에는 그 자신의 영혼이 다시 회복될 것이다.....[후략] --- 히폴리투스, {그리스인들에 대한 논고: 하데스에 관하여} ./ 번역: 윌리엄 휘스턴 /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심판의 경우, 프로테스탄트 최초의 정체성이 바로 '연옥'과 그와 연계된 '사후의 대사'를 부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의 경우 기술적으로 죽음과 부활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위에도 썼다시피, 한 개인의 모든 평가는 그의 죽음과 동시에 종결됩니다. 그 이후는 신과 그 개인 간의 문제입니다. 교회나 다른 제 3자가 그를 해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신의 자비"를 구하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는 '교회가 비축한 여분의 공덕'을 사용해 '정량적'으로 무언가를 그를 위해 해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측이 이 입장을 취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히브리서}에 보면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한국어 새번역)" 란 설명에서 개인의 죽음 후에 설명된 '심판"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반되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년왕국"의 정확한 성격과 시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문자적으로만 보면) "천년왕국" 직전에 의인들이 죽음에서 부활하는 "첫째 부활"이 있고 이들은 즉 "둘째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이 부활은 구원받은 자들에게만 적용됩니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둘째 부활"과 "백보좌 심판"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마태 복음서}에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이란 구절이 있는데, 그 "백보좌 심판", 즉 최후의 심판은 "정죄"이며 구원받은 자들은 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 코린토스의 교회에 보낸 두번째 편지에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라고 적는데,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도들이고 따라서 따라서 프로테스탄트 입장으로는 이 '심판대'는 최후의 심판 시의 '백보좌 심판대'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는 그의 삶과 행위에 대해 평가와 질책과 심판은 받을지언정 '정죄'를 받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그것은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 이라고 적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구원받은 영혼과 천사는 신의 영원도, 육체에 속박된 현세의 시간도 아닌, 제 3의 시간인 '에붐' 속에 삽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sense-of-ending.html
/ 최광민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나요?
[답변]
"초기"란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잡아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예수의 세례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고, 그 의미가 바울의 서신에 명시되어 있고, AD 70-120년 경의 문건인 {디다케}가 세례를 명시하고 있고, 세례자에 대해서만 성찬이 집례되었다는 AD 1세기 말에서 2세기 중반의 문서 {디다케} 그리고 AD 2세기 초/중반의 유스티노스의 기록만 보더라도, 세례는 성도 (Saints)가 되는 명시된 표징이므로 굳이 "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라고 교회가 가르쳤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울러 세례를 통해 그 전의 죄가 단번에 면죄된다고 생각해서 (그 이후에 짓는 대죄로 구원을 잃은 것에 대한 걱정으로) 세례를 가급적 뒤로 미루는 AD 2-4 세기의 전통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 같고요.
또한 세례를 받지 못하고 갑자기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세례준비자" 신분의 신자가 세례란 외적징표를 받지않았다고 해서 꼭 구원을 받지 못했다라고 단정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세례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 최광민
#종교개혁과 성인공경에 대해
[질문]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나 각종 성인들에 대한 기도와 공경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요?
[답변]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 보다는, 대체로 2-4세기 초반의 로마의 박해, 4-5세기 아리우스-네스토리우스 논쟁 무렵에서 박해받던 측에 있던 신자들 사이에서 "가시적으로 의지할" 무언가에 대한 갈망에서 점차 자리잡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 최광민
[질문]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나 성인 공경이 이방 종교의 지모신 사상이나 다신교 사상과의 혼합을 통해 만들어진 관습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는 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변]
그 기원이라기 보다는, 의식과 상징 면에서 그런 요소가 흡수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과도한" 성인공경 건은 어제도 말씀드린 것처럼 추상적인 신 개념보다는 보다 가시적으로 의지할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자신들의 신의 구현이라고 믿은 "황금송아지"나 중남미 시골에서 급기야 성인이 되어버린 혁명가 체 게바라 사례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체 게바라의 사례는 "성인공경"이 민간신앙 차원에서는 어떻게 발전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인류학적 사례라 생각됩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blog-post_2679.html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같은 종교개혁가들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평생동정녀, 몽소승천과 같은 교리들을 받아들였나요?
[답변]
후대의 프로테스탄트들이 마리아를 좀 과도하게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츠빙글리, 루터, 칼뱅 순으로 마리아에 대한 그들의 존경은 대단했습니다. 이 가운데 츠빙글리는 거의 로마카톨릭 수준이었고요. 역사적으로 보면 평생동정녀 -- 마리아무염시태 -- 몽소승천 순으로 교회사에 등장하는데, 평생동정녀설은 츠빙글리와 루터는 강력하게 믿었고, 칼뱅은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19-20세기에 비로소 로마카톨릭이 교황무오권을 발동해 부동의 교리로 인준한 무염시태나 몽소승천에 대한 로마카톨릭식 개념을 쯔빙글리, 루터, 칼뱅 모두 거부하긴 하지만, 이 가운데 마리아에게 가장 극진했던 쯔빙글리의 경우 마리아에게 "무흠하다" 혹은 "조금도 흠이 없다"란 식의 표현을 적기도 했습니다. 물론 (논란이 있지만) 이것이 마리아 본인의 "잉태시점"부터 원죄가 없었다는 식의 이해는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 최광민
[질문] 예전 질문에 대한 Kwangmin님의 답변 중 마르틴 루터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최근 제가 찾아본 가톨릭 출판사의 사와다 아키오가 쓴 루터와 마리아라는 책에서 마르틴 루터가 1527년 주님 탄생 예고 첨례 복음에서 마리아가 원죄로 부터 구원된 욕정이나 죄없이 잉태된 여자라는 개념을 분명히 받아들이고 있음을 피력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데 혹시 이에 대응되는 루터가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교리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력한 자료가 있다면 보여주시는 게 가능하신가요?
[답변]
말씀드렸다시피 루터는 특별히 마리아에 대해서는 매우 각별했습니다. 이를 들어 로마카톨릭 측은 루터의 '마리아 사랑'을 최대로 강조하는 방법으로 프로테스탄트를 공격하기도 하고, 혹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단서'를 찾기도 합니다. 사실, 프로테스탄트가 복종과 헌신의 모범을 보인 마리아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어느 수준까지 "공경"이 허용되는가? 겠죠.
루터는 1517년에 종교개혁을 개시했고 1546년에 죽었으므로, 그가 "종교개혁가"로 활동한 시기는 이 30년 입니다. 그의 활동기를 전/중/후기로 나누어 본다면, 어떤 주제들에 대한 루터의 생각이 시간에 따라 수정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유대인과 농민들에 대해 온정적이던 전반기에 반해 후반기에 루터는 가차없이 비판을 던지게 되죠.
위에 언급하신 1527년 자료는 로마카톨릭 변증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자료인데, 이들이 제시하는 논증의 결정적 문제점 (혹은 트릭?)은 해당 사건과 루터 본인의 시간대를 함께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에도 여러 형태의 준-종교개혁적인 움직임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증세 로마카톨릭의 전통과 대립한 것은 마르틴 루터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작업을 기초부터 시작한 루터의 단계적인 입장변화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전통에 대한 루터와 루터교단의 생각을 잘 반영하는 표어가 "목욕물과 아기를 같이 버리지 말라"입니다. 로마카톨릭의 "전통"에 대한 루터의 생각은 종교개혁의 뇌관이 되었던 "면죄부/대사증" 같은 경우 종교개혁 초기에 아주 칼날같이 배척했지만, 성인공경이나 성인에 대한 기도 등을 폐지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루터는 중반기 부터 본격적으로 로마카톨릭의 전통들과 결별해 나갑니다.
우선 말씀하신 1527년 자료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자료는 1527년에 출판된 책에 실린 설교내용 (Sermon on the Gospel for the Feast of the Conception of the B.V.M., Weimar edition 17/2, 288p,, http://www.archive.org/stream/werkekritischege17luthuoft#page/280/mode/2up)이고, 설교문 본문이 아니라 성모마리아 "본인"의 "원죄없는 잉태" (무염시태)에 대한 한 "주석"에 등장합니다. 해당 주석이 달린 설교는 출판일보다 약 9-1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종교개혁 초기 1-2년에 해당합니다.
"It is a sweet and pious belief that the infusion of Mary’s soul was effected without original sin; so that in the very infusion of her soul she was also purified from original sin and adorned with God’s gifts, receiving a pure soul infused by God; thus from the first moment she began to live she was free from all sin" - Martin Luther's Sermon "On the Day of the Conception of the Mother of God," 1527 / Weimar edition 17/2, 288./ Hartmann Grisar's book, Luther Vol. IV (St Louis: B. Herder, 1913)
'마리아의 영혼이 불어넣어질 때 그 영혼이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따라서 그 영혼이 주입되는 시점에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정화되었으며, 하느님께서 불어넣으신 순수한 영혼을 받아 그의 선물들로 단장되었기에, 그녀가 생명을 가진 순간 부터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왔다'는 믿음은 아름답고 신심어린 믿음이다. / 번역: 최광민
그런데 1529년 판본 이후 후속판들에서는 해당 주석을 삭제했습니다. 여전히 루터가 살아있을 때였고 그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의 사후 루터의 저작을 편집해 발표할 때 편집자들은 해당 주석조차 루터가 쓴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루터가 1517년 설교문에 저런 주석을 남겼더라도, 루터는 최소한 1529년부터는 무염시태에 대한 생각을 버렸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그의 활동 초기의 흔적인 것이죠. 참고로 말하자면, 마리아가 "원죄없이 탄생"하였다 하더라도, 도대체 어떤 시점부터 그리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 있었습니다. 가령, AD 13세기의 스콜라 철학/신학자들 중에서도,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리아 본인의 잉태시점에는 원죄를 가진 존재였으나 어머니의 태중에서 원죄가 정화된 것으로 보았고, 반대로 영국의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는 잉태시점부터 원죄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두 이해가 가져오는 결론은 사뭇 다르게 되는데, 전자의 경우, 마리아는 신의 특별한 은혜로 성별된 사람이란 뉘앙스가 강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새로운 피조물' 같은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생각은 종교개혁 5년 차인 15보22년에 루터가 낸 소기도서에도 등장합니다. 이 기도문에서는 "무염시태"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마리아에게 전적으로 죄가 없다고 묘사됩니다. 사실 이 문맥은 엘리사벳이 잉태한 마리아를 만났을 때의 시점입니다. 따라서 텍스트만 본다면 루터는 여기서 마리아 "본인의 잉태 시점부터 죄가 없었다 (=무염시태)"고 꼭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In the first place She is full of grace, proclaimed to be entirely without sin—something exceedingly great. For God’s grace fills her with everything good and makes her devoid of all evil. - Martin Luther's Little Prayer Book, 1522 (LW 43:39).
루터는 중반기 이후 지속적으로 로마카톨릭적 전통들을 배제하는 동시에 마리아에 대한 언급을 줄여나갑니다. 아마도 1530년을 전후로 루터는 "원죄없이 마리아가 잉태/탄생했다"는 로마카톨릭의 "마리아 무염시태"에 대한 생각을 최종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루터의 1532년 설교를 보겠습니다. 이제 마리아의 (원죄로부터의) 정화는 잉테 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탄생 "이전 어느 시점"에 성령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명시됩니다. 강조점이 마리아에서 예수로 완전히 옮겨진 것입니다.
Thus we are conceived and born. For all of mankind is conceived and born in accord with creation’s decree, as recorded (Gen. 1:28):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He, indeed, was a genuinely true, natural human being, but not conceived or born in sin as all other descendants of Adam.
그렇게 우리는 (죄성을 가진 채 / 최광민) 잉태되고 태어난다. 모든 인류는 기록된 대로 "자손을 낳고 번성하라. 땅을 채워라"란 창조의 원리에 따라 그렇게 잉태되고 태어난다. 그리스도는 죄성을 가진채 잉태되거나 태어나는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진실로 그는 진실로 참되고 자연적인 인간이셨으나, 아담의 다른 자손괃는 달리 죄 가운데 잉태되거나 태어나지 않으셨다.
That is why his mother had to be a virgin whom no man had touched, so that he would not be born under the curse, but rather conceived and born without sin, so that the devil had no right or power over him. Only the Holy Spirit was present to bring about the conception in her virgin body.
이것이 그의 어머니가 어떤 남자도 손대지 않은 처녀였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는 저주 속에서가 아니라 죄성이 없는 상태로 잉태되고 태어났기에 악마는 그에게 어떤 권리를 주장하거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오직 성령만이 그녀의 처녀의 몸에 있었기 때문이다.
Mother Mary, like us, was born in sin of sinful parents, but the Holy Spirit covered her, sanctified and purified her so that this child was born of flesh and blood, but not with sinful flesh and blood. The Holy Spirit permitted the Virgin Mary to remain a true, natural human being of flesh and blood, just as we. However, he warded off sin from her flesh and blood so that she became the mother of a pure child, not poisoned by sin as we are. Thus what the angel spake came true: “He shall be great, and shall be called the Son of the Highest.” For in that moment when she conceived, she was a holy mother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her fruit is a holy pure fruit, at once God and truly man, in one person [Martin Luther, Sermons of Martin Luther, Vol. 3, ed. John Nicholas Lenker. ( Grand Rapids: Baker Books, 1996), 291]
우리처럼 성모 마리아도 죄 많은 부모의 죄 가운데 탄생했다. 그러나 성령이 그녀를 덮어 성별하고 정화하여 이 아기 (=예수)가 죄성있는 살과 피를 갖지 않고 탄생할 수 있었다. 성령은 처녀 마리아가 우리처럼 진정 자연스런 살과 피를 가진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성령은 그녀의 살과 피에서 죄성을 막아내어, 그녀는 우리처럼 죄성에 물든 것이 아닌 순수한 아기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예수)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며 지극히 높은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란 천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가 잉태하였을 때, 그녀는 거룩한 성령에 충만한 거룩한 어머니였고, 그녀의 열매는 거룩하고 순결한 열매로서 신성과 참 인성이 한 사람 안에 동시에 거하신 것이다. --- 마르틴 루터, 설교 1532 / 번역: 최광민
1540년 그리스도의 신/인성 논쟁에 등장한 마리아의 무염시태 논쟁에 대해 루터는 이렇게 논점을 정리합니다. 원죄없이 탄생한 인간은 예수 밖에 없습니다.
Argument: Every man is corrupted by original sin and has concupiscence. Christ had neither concupiscence nor original sin. Therefore he is not a man.
[주장]: 모든 사람은 원죄로 타락했고 육욕을 가진다. 그리스도는 육욕이 없고 원죄도 없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아니다.
Response: I make a distinction with regard to the major premise. Every man is corrupted by original sin, with the exception of Christ. Every man who is not a divine Person [personaliter Deus], as is Christ, has concupiscence, but the man Christ has none, because he is a divine Person, and in conception the flesh and blood of Mary were entirely purged, so that nothing of sin remained. Therefore Isaiah says rightly, "There was no guile found in his mouth"; otherwise, every seed except for Mary's was corrupted.
[답변] 모든 사람은 원죄에 의해 타락했다. 단 그리스도는 예외다. 그리스도와 달리 신성이 없는 인간은 육욕을 가진다. 그러나 신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육욕이 없다. (그리스도가 수태될 때 / 필자 주), 마리아의 살과 피는 완전히 정화되어 죄의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이사야가 "그의 입에 거짓이 없도다"라고 한 말은 옳았다. 마리아의 아들을 제외한 모든 자녀는 따라서 타락한 상태이다.
---- On the Immaculate Conception of Mary, {Disputation On the Divinity and Humanity of Christ} / 번역: 최광민
죽기 2년 전인 1544년, 루터는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와 우리의 유일한 차이는 "그리스도만 유일하게 죄가 없이 태어났다"는 점이며, 이를 위해 신이 성령을 마리아의 영혼과 몸에 충만하게 부어넣어 죄를 정화한 상태에서 예수를 잉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을 루터의 최종견해로 봐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In the papacy they used to tell a story: The devil once came to church to mass, and when in the confession of the Christian faith, which they called the Patrem, they sang the words: " Et homo factum est"— the Son of God was made man—and the people did not kneel down but stood, he struck one on the mouth, rebuked him and said: You ruffian, are you not ashamed that you stand here like a stock, and do not fall down for joy? If the Son of God had become our brother, like yours, we would not know what to do for joy.
I do not think that this is true ; for the devil is too decided in his enmity to us and the Lord Jesus ; but this is true, that he who conceived this story had the right spirit, and well understood how great an honor was conferred upon us in that the Son of God became man; not like Eve nor Adam, who was made of the earth; but He is still more nearly related to us, since He was born of the flesh and blood of the Virgin Mary, like other men, except that the virgin was alone, and being sanctified by the Holy Spirit, conceived this blessed fruit without sin and by the Holy Spirit. In other respects He is like unto us, and a natural Son of a woman.
Adam and Eve were not born, but created. God made Adam out of the dust of the earth, and the woman of his rib. How much nearer is Christ to us than Eve to her husband Adam, since He is truly our flesh and blood. Such honor we should highly esteem and well take to heart, that the Son of God became flesh, and that there is no difference at all between His and our flesh, only that His flesh is without sin. For He was so conceived of the Holy Ghost, and God poured out so richly His Holy Spirit into the soul and body of the Virgin Mary that without any sin she conceived and bore our Lord Jesus. Aside from this, in all other respects, He was like other men; He ate, drank, was hungry, thirsty, cold like other men. Such and similar natural infirmities, which have descended upon us by reason of sin, He, who was without sin, bore and had like unto us, as St. Paul says: " He was made in the likeness of men, and found in fashion as a man." --- Martin Luther, {Martin Luther's House Postils}
아담과 하와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창조되었다. 신은 아담을 흙에서 만들었고, 하와를 그의 갈비뼈에서 만들었다. 하와와 그 남편의 유사도와 비교한다면, 그리스도와 우리는 얼마나 더 가까운가! 그리스도는 진실로 우리의 살과 피를 가지셨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의 아들이 인간의 육체를 취하셨다는 점과, 또 그 분의 육체에는 한 점의 죄도 없었다는 점만 빼면 그 분과 우리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을 큰 영광으로 여기고 이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렇게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신은 그의 성령을 동정녀 마리아의 영혼과 몸에 그렇게 충만히 불어넣으셔서, 그녀가 우리 주 예수를 죄 없는 상태에서 잉태하고 낳게 하셨다. 이 점을 제외한다면,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과 같다....... --- 마르틴 루터 / 번역: 최광민
정리하자면,
로마카톨릭의 공식견해로는, "마리아 본인이 잉태될 때" 원죄가 없었으며 이후에도 본죄를 짓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나중에 예수를 죄없는 상태에서 잉태합니다.
1530년 이후 루터의 입장에선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할 때 (혹은 이전 어느 시점에)" 성령에 의해 완전히 정화되어 그 결과 죄로 오염되지 않는 아기를 낳습니다. 따라서 루터의 이해는 이제 로마카톨릭의 이해와 현격한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초점이 "마리아 본인의 잉태"에서 "예수의 잉태"로 완전히 옮겨진 것이며, 따라서 마리아 본인의 무염시태를 기념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죠.
원죄없이 태어난 아이는 예수 1인이어야만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가 자기 자신의 어머니인 마르가레테에게 루터교로 개종하지 말고 가톨릭 신앙을 그대로 가지라고 당부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루터의 어머니인 마르가레테와 관련된 속설에 따르자면, 저 말을 "루터가 어머니 임종에서 했다"는 것인데요, 저도 출처를 예전에 찾아봤는데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루터의 모친은 1531년에 죽었는데, 제가 들은 버전에서는, "임종 때 어머니까 자신이 아직도 로마카톨릭이란 걸 아들에게 사과/변명하려 하자,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바른 일을 하셨고 미안해 하지도 말라고 답했다"였습니다.
뭐 사실이라도 설명이 가능한 것이, 비록 루터가 로마교회와 척을 졌지만, 사실 루터는 자신이 "참 카톨릭" 편에 서있다고 늘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카톨릭"이란 그가 생각한 "중세 내내 부패했던 로마카톨릭교회"란 뜻이 아니라, 보다 적절한 명칭인 "보편교회"를 뜻합니다. 그의 95개조에도 그가 대사와 연옥교리를 비판하지만, 교회와 교황이 올바른 교리를 수호하는 한 "카톨릭 교회" 자체에 반발하는 것인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도 적습니다 ("53. 면죄부의 설교가 선포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저주하여 교회 안에서 아주 잠잠하여 지도록 만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대적자들이다") 물론 이후 루터는 이런 낙관을 버리긴 합니다만.
비슷한 속설로는 루터 본인이 임종시 "나는 아직 (로마)카톨릭이야"라고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적어도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친구인 유스투스 요나스가 "자네는 그리스도와 자네가 가르친 가르침을 붙들고 죽길 원하는가?"라고 묻자 "그럼"이라고 답한 후 산상수훈의 말에서 따온 "우리는 모두 거지/가난한 자야. 그건 사실이지"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루터 본인은 자신이 진정한 "보편"("카톨릭")교회에 속해 있다고 믿었던 것은 의심할 나위 없습니다.
/ 최광민
[질문]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마르틴 루터를 지지하고 보호하기는 했으나 철저히 정치적인 이해타산 때문에 그러했을 뿐이며 정작 그는 평생 로마 가톨릭 신자로 남았으며 실제로 연옥에서의 보속 기간을 줄여주는 성유물들을 계속 간직하였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마르틴 루터의 신학에 실제로는 얼마만큼 공감하고 있었나요?
[답변]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 또한 루터의 종교개혁 시간대와 비교해 가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루터와 멜랑히톤이 가르치던 비텐베르크 대학의 창설자로서, 이 신생대학이 다른 모든 독일의 유명대학을 제끼고 종교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는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터와의 개인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터가 {95개조}를 제출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517년이지만, 그가 종교개혁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보름스 회의를 통해 루터가 파문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수배령을 내린 1521년입니다. 이때 루터의 보호자를 자처한 프리드리히 3세는 1525년 사망할 때까지 4년 간 루터를 보호했습니다.
지난번에 루터와 마리아 무염시태 교리에 대해 언급했다시피, 이 시기는 종교개혁자로서의 루터 경력 초반기에 해당하고, 루터의 어머니가 로마카톨릭 신자로서 죽은 1531년 무렵까지도 루터는 아직 많은 로마카톨릭 전통과 교리를 철저하게 내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62세를 살면서 성유물을 평생 수집했던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평생 로마카톨릭으로 살았지만, 임종 시에 루터 측으로부터 성찬을 받았고 따라서 적어도 사망 무렵에는 복음주의 (= 루터파)로 개종한 것으로 보통 여깁니다. 프리드리히 3세가 정말 충실한 로마카톨릭 신자로 죽었다면, (임종 시 무의식 상태가 아닌 한) 바티칸이 이미 이단으로 정죄한 루터 측으로부터 이런 성례를 받았을 리가 없죠.
독일 지역에서의 (대사증에 대응하는) 성물거래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발발한 1510년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의 성물수집이 그가 보름스 회의 후 루터를 보호하기 시작한 1521년에서 임종한 1525년 4년 간 집중된 것이 아니라면, 그의 성물수집 전력을 루터 측에서 큰 문제로 여겼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최광민
#로마카톨릭, 정교회, 프로테스탄트의 성체 이해에 대해
[질문] 제가 성체파트를 보다가 하는 질문입니다. 정교회는 영적임재보다는 실채변환에 가까운거 아니었나요 교리문답을 봐도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다만 서방신학같은 사변적 설명을 거부하는걸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 qorcks200)
[답변]
http://kwangmin.blogspot.com/2015/12/vs-1_11.html
제 글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정교회는 원래 이 문제에 대해 다소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왔으며 라틴교회와 같은 식의 정교한 교리화를 대체로 피해왔다. 따라서 로마카톨릭교회의 '실체변화 transsubstantiatio'와 유사한 식의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6세기부터인데, 정교회 측에서 그에 대응하는 여러가지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중 가장 가까운 것은 라틴어 'transsubstantiatio'의 직역에 가까운 메타우스오시스 (μετουσίωσις)일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 용어로 본질을 말하는 우시아 (οὐσία)와 라틴어에서의 수브스탄티아 (subtantia)가 정확히 같은 의미에 대응되는지에 대한 큰 혼란은 삼위일체론의 정립되어 가던 AD 4세기에도 있었다.
사실 정교회에서는 8-9세기 성상파괴논쟁시 성상파괴론자들이 오직 성체만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이콘"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성화상옹호론자들은 성체는 '이콘'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주장했다. 얼핏보면 마치 로마카톨릭의 '실체변화'를 말하는 것 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성화상옹호론자 중 가장 영향력 컷던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가를 논하면서, 마치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 마리아를 통해 몸을 입은 것과 같이,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 역시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풀이하면서, 그렇게 이해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즉, 성자가 예수로 성육신 할때 그의 신성이 인간의 피와 살과 연합했듯, 성찬에서도 예수는 성령을 통해 사람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와 연합함으로써 빵/포도주가 예수의 참 몸/피가 되는 것이라 이해한 것이다.
"It is truly that Body, united with Godhead, which had its origin from the Holy Virgin; not as though that Body which ascended came down from heaven, but because the bread and wine themselves are changed into the Body and Blood of God. But if thou seekest after the manner how this is, let it suffice thee to be told that it is by the Holy Ghost; in like manner as, by the same Holy Ghost, the Lord formed flesh to himself, and in himself, from the Mother of God; nor know I aught more than this, that the Word of God is true, powerful, and almighty, but its manner of operation unsearchable.” --- (J. Damasc. Theol. lib. iv. cap. 13, § 7.) --- 다마스쿠스의 요한
후대 종교개혁가인 칼뱅도 어떻게 보면 이 견해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듯 보인다. 화체설과 공재설에서 그리스도의 실제 몸은 직접적으로 빵과 포도주의 실체를 바꾸거나 혹은 빵과 포도주와 함께 임재한다. 그러나 칼뱅의 이해에 따르면 신자들과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직접적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이 세상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효력적으로 임재한다.
Even though it seems unbelievable that Christ’s flesh, separated from us by such a great distance, penetrates to us, so that it becomes our food, let us remember how far the secret power of the Holy Spirit towers above all our senses . . . What, then, our mind does not comprehend, let faith conceive: that the Spirit truly unites things separated in space. . . . [T]he Lord bestows this benefit upon us through his Spirit, so that we may be made one in body, spirit, and soul with him. The bond of this connection is therefore the Spirit of Christ, with whom we are joined in unity, and is like the channel through which all that Christ himself is and has is conveyed to us. --- 장 칼뱅
/ 최광민
[질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변환 설명에서 질료/형상변화 없는 우유적 실재로 알고있습니다그런데 우유에 관해 설명하신 부분은 오히려 형상에 관한 설명 같습니다 우유는 사건과(우연/필연) 관련된걸로 알고있습니다.
[답변]
http://kwangmin.blogspot.com/2015/12/vs-1_11.html
이 글의 내용을 질문내용에 맞춰 조금 보강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상을 조성을 양, 질, 관계, 시간, 공간 등등의 9가지 우유(accident)와 하나의 실체(substance)로 나누었는데, '우유'는 외적인 모습/속성의 전달체로서 실체에 덧붙이거나 변화시키거나 실체로부터 분리해내더라도 실체에는 변화를 일으키지 않은 어떤 것 혹은 속성을 말한다. 따라서 사물의 비본질적인 속성이다. 반면 '실체' 그 본질/존재/속성 정도에 해당하는 중세철학 용어이다. 하나의 실체는 질료와 형상으로 이뤄지는데, 이때 '형상'이란 '외적으로 감지되는 형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퀴나스는 예수가 "이것은 나의 몸이고 나의 피다"라고 선언했던 빵과 포도주는 그 외형(우유)는 변화가 없는 대신, 빵의 본질적 실체는 "예수의 실체적인 살과 피"로 변하여야 한다고 이해한다. 즉, 실체 (substance)가 변화하므로, 이것을 성체의 실체변화/화체설 (trans-substantiation) 이라고 부른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성체의 축성 후 빵에 일어나는 변화, 즉 우유는 그대로이나 빵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그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해당단락을 읽어보자.
http://www.newadvent.org/summa/4075.htm#article5
우선 아퀴나스는 성체의 축성 후 빵의 우유가 그대로 남아 있음에 대해 먼저 이렇게 주장하며, 이에 대한 반박을 하나씩 논한다.
I answer that, It is evident to sense that all the accidents of the bread and wine remain after the consecration. And this is reasonably done by Divine providence. First of all, because it is not customary, but horrible, for men to eat human flesh, and to drink blood. And therefore Christ's flesh and blood are set before us to be partaken of under the species of those things which are the more commonly used by men, namely, bread and wine. Secondly, lest this sacrament might be derided by unbelievers, if we were to eat our Lord under His own species. Thirdly, that while we receive our Lord's body and blood invisibly, this may redound to the merit of faith.
실체의 변화에 대해서, 아퀴나스는 만약 빵의 실체적 형상이 남아있다면 빵의 질료 이외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없는 셈이기에 빵의 실체적 형상은 반드시 변해야 하며, 따라서 빵의 실체적 형상은 남아있지 않게된다고 설명한다.
I answer that, Some have contended that after the consecration not only do the accidents of the bread remain, but also its substantial form. But this cannot be. First of all, because if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were to remain, nothing of the bread would be changed into the body of Christ, excepting the matter; and so it would follow that it would be changed, not into the whole body of Christ, but into its matter, which is repugnant to the form of the sacrament, wherein it is said: "This is My body."
Secondly, because if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were to remain, it would remain either in matter, or separated from matter. The first cannot be, for if it were to remain in the matter of the bread, then the whole substance of the bread would remain, which is against what was said above (Article 2). Nor could it remain in any other matter, because the proper form exists only in its proper matter. But if it were to remain separate from matter, it would then be an actually intelligible form, and also an intelligence; for all forms separated from matter are such.
Thirdly, it would be unbefitting this sacrament: because the accidents of the bread remain in this sacrament, in order that the body of Christ may be seen under them, and not under its proper species, as stated above (Article 5). And therefore it must be said that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does not remain.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반동한 로마카톨릭 측의 개혁작업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정식채택된 설명은, 형상과 질료로 구성된 실체에서 변화가 일어나되 우유는 변화되지 않는 채 남으며, 따라서 이 적극적 행위에 의하여 하나의 현실적인 존재가 소멸됨이 없이 다른 현실적인 존재로 전체 실체가 변화한다고 풀이한다..."
/ 최광민
#종교개혁의 "오직 성서 (솔라 스크립투라)" 및 "오직 믿음 (솔라 피데)"에 대해
[질문] 중세 시대에 일반 민중들의 자기나라 모국어 문자에 대한 문해율이 어느정도였는지가 궁금합니다.
[답변]
정확한 자료가 있을지나 모르겠지만 극히 낮지 않을까요? 서로마제국 황제로 대관한 프랑크족 카롤루스/샤를마뉴 자체가 이미 문맹이었는데요.
비교적 문명화된 시기 로마시대 도시 인구 중에서 최대 2%만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을 (바트 어만이던가?) 책에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알파벳을 더듬거리고 읽는 수준으로만 본다면 그보다는 더 높았을거라 봅니다. (보통 읽기가 쓰기보다 훨씬 쉽습니다).
/ 최광민
[질문] 중세 가톨릭교회는 일반 민중의 성서구독을 금지했나요? 어느 가톨릭 신자의 말에 따르면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내놓기 이전에 이미 1466년에 스트라스부르의 요한 멘델에 의해 독일어 성경이 번역되었고, 존 위클리프 이전에도 8세기에 애드헬름과 구틀락, 에그버트가 영어 번역 성경을 내놓았고 1150년에 오름이 쉽게 풀이한 번역 성경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는 성경 번역을 금지하지도 않았으며, 애당초 당시는 인쇄술이 없었기에 성경을 모두에게 공급할수도 없었고 문맹률도 굉장히 높았기에 사제가 읽어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일반인의 성서독서를 금하"는 로마카톨릭교회의 포교령은 대표적인 것으로는 1231년 툴루즈 회의와 1234년 타라고나 회의의 포고령에서 보듯 실제로 있습니다만, 그 의도는 각 시대상황에 대한 여러가지 문맥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교회가 "교리해석을 독점"하기 위한 조치인 경우로 보시면 대략 정확합니다. 즉, 허가받지 않은 일반신자는 읽고 듣고 묵상할 수는 있어도 직접 그 교리적 뜻을 해석하면 안되는 것이죠.
당시 일반인들에게 설교 등을 통해 노출되는 성서 텍스트는 사실 묵상집 수준의 아주 극히 적은 분량 뿐이었습니다. 사실 중세 때는, 특별히 흑사병 유행 이후엔 사제들도 문맹률이 높아서 미사경문 정도를 ("미사를 부른다"란 표현처럼) 라틴어로 외워서 끝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성서를 일반인들이 읽어 발생하는 "이단발호"의 문제가 도저히 감당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중세 말 이원론적인 통칭 카타리파 이단 등이 일반신자들의 성서독서/연구를 장려합니다).
사실 일반신자들에게 성서의 텍스트가 공개된 후인 종교개혁 이후 "성서 텍스트에 바탕한 이단"들이 급증한 것을 보면, 중세 로마카톨릭의 입장이 아주 수긍못할 것도 없겠죠.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이 "공개 후 교육"이라면 로마카톨릭의 입장은 "봉쇄 및 사전예방"이었다고나 할까요.
/ 최광민
[질문] 중세 당시의 일반 민중들의 문해율이 그렇게 낮았다면 왜 존 위클리프나 피터 발도같은 사람들은 라틴어 성경을 자기나라 모국어로 번역하려 한 건가요? 어차피 라틴어로 쓰든 모국어로 쓰든 일반 민중들이 못 읽는 것은 매한가지 일텐데 말입니다.
[답변]
바울이 {로마서} 10장에 적은 구절을 기억하시나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현대인들은 "읽"는데 익숙하다보니, 고대-중세인들이 주요 지식습득 방식이 "듣"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잊습니다. 중세대학의 수업도 주로 강독을 듣는 것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라틴어를 모르면 성서를 사제가 아무리 라틴어 성서를 읽어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국어로 번역되면, 설령 개인적으로 "읽"지 못해도 공공장소에서 강독될 때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설교에 등장하는 해석이 아니라, 설령 번역되었더라도 "원문"을 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지식인이 아닌 일반 민중에겐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사실 대중설교가 유행한 중세 말 로마카톨릭 사제나 수도사들도 가급적 무학의 민중들에게 자국어로 된 설교 가운데 성서의 구절을 많이 넣으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듣더라도) 직접 성서원문을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 최광민
[질문] Kwangmin님의 답변 중에서 성서 구독을 금지하는 포교령이 있었다고 말하셨는데, 그 포교령이 혹시 툴루즈 주교 회의에서 정해진 성서구독 금지조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툴루즈 주교 회의에서의 성서 구독 금지령은 십자군이 카타리파의 성서를 판별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내려진 조치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인가요? 또 이 툴루즈 주교 회의 말고도 가톨릭이 성서 구독을 금지하는 포교령이 또 내려진 적이 있었나요?
[답변]
성서읽기에 대한 논점은, 사제가 아닌 이들이 성서텍스트를 "읽었는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그걸 읽고 개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가가 포인트입니다. 가끔 이 주제와 로마카톨릭 측의 변론을 보면, 약간 논점을 이탈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중세에도 일반인들이 (라틴어든 다른 언어든) 성서를 읽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아예 읽는 것도 금지한 조치는 반-카톨릭 이단을 차단하기 위해 "해석"은 물론이고 아예 "읽지조차 못하게 한" 일종의 "이중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던 거죠.
/ 최광민
[질문] 위에서 언급했던 스트라우스의 요한 멘델과 같은 자들이 번역했던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라틴어 외의 독일어 성서가 이미 있었다면 왜 유독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비텐베르크 성서의 파급력은 신성 로마 제국 전역에 퍼질 정도로 파급력이 컸던 것인가요?
[답변]
집과 교회와 대학과 공공장소에서 대중이 읽고, 또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읽혀졌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의 예전 등에서 라틴어 불가타 성서를 대체했기 때문인 것이죠. 중세 중반부터 종교개혁 전까지 서방에서 이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제외하고 또 로마서의 3장 28절의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는 구절에서 믿음의 자리 앞에 "오직"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추가하거나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는 구절에서 "말"과 "능력"의 자리를 서로 뒤바꾸는 등 이 밖에도 1400여 개의 부정확하고 고의적으로 왜곡된 부분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이신칭의 교리를 강력하게 지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고대로부터 저자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문건들인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계시록은 정경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고 루터의 독일어 성경 마지막에 재배치되었습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동방에서는 꽤 늦게 정경으로 인준되었습니다).
번역오류에 대해선, 루터의 독일어 "번역"을 영감받은 "정경"이라고 여기는 프로테스탄트는 없다는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의 독일어 번역본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은 그리스어 {70인역}, 라틴어 {불가타}, 혹은 영어 {킹 제임스 번역}을 "영감받은 정경"으로 생각하는 각각 정교도, (일부) 로마카톨릭, 그리고 KJV-only주의자들의 그것과 다릅니다.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 히브리어 성서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여 마카베오서 등의 외경은 정경 66권과 동등한 가치가 없다고 제외했지만, 후에 이스라엘에서 이 외경의 히브리어 사해문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외경들을 제외한 마르틴 루터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뜻하는 것인가요?
[답변]
사해문서에는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과 비슷한 사본도 있지만, 맛소라 사본이 아닌 (외경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과 같은 원전 텍스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유사한 텍스트도 발견되고, 또 "외경"문서 뿐 아니라 "위경"문서도 발견됩니다. 그러니까 사해문서에서 일부 외경이 발견된 사례로 해당 문서의 외/위경의 정경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리한 비약입니다. 그럼 위경들도 정경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가 생기니까요.
사실 외경의 정경성 문제는 루터가 아니라 서기 1세기까지 소급되는 문제로, 유대인으로서는 그리스어 70인역을 잘 알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이나 예루살렘 출신 제사장/역사가 요세푸스가 외경에 대해 침묵하거나 정경성을 부인하고 있고, 기독교 교부로서는 2세기의 오리게네스나 테르툴리아누스가 정경 외 문서 (외경)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라틴어 불가타를 번역하면서 외경이 배제된 히브리 정경을 선호했던 히에로니무스는 외경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외경문서들을 따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놓았습니다. 원래 외경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에서 라틴어로 번역을 하려다가, 이후 생각을 바꿔서 히브리어 (+아람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게 된 것이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불가타} 번역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문에 없는 그리스어 외경을 따로 묶은 것입니다.
언제부터 그리스어 70인역에 이들 외경문서가 합본된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 중입니다.
/ 최광민
[질문] 성서무오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축자영감설이나 유기적 영감설 같은 것들에 대한 견해도 궁금합니다.
[답변]
현재까지 전해지는 길고 짧은 수만 개의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시리아어 및 기타 언어의 사본 가운데 무엇이 원본인지, 혹은 어떤 사본이 원본을 가장 잘 반영하는지 분명히 알 수 없는 한,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성서 텍스트는 이들 사본들 간의 불일치를 나름대로 교정한 "편집사본"입니다. 따라서 사본전승 과정으로만 본다면 이들 사본들 간에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게 아니라 확실히 많은 필사오류와 교정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본전승에서의 오류가 교리에 영향을 준 경우는 미미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본전승상의 오류는 인정하나, 원본의 교리상 통일성은 믿는다" 정도가 제 입장입니다. 다만 성서 텍스트가 오랜 세월을 거쳐 수집된 문서이기 때문에, 단어/문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는 그 원래 의미를 찾기위해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축자영감설이나 유기적 영감설에 대해선, 오직 하나의 "설"로 성서의 모든 책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예언서는 야훼의 지시를 "받아 적었"다고 되어 있는 반면, 3번째 복음서는 저자 (루가/누가)가 예수의 배경에 대해 (그 이전의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고 집필했다고 적었으니까요.
/ 최광민
[질문] 동방 정교회에서는 평신도의 성경 해석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나요? 동방 정교회도 성경 해석 권한은 교회 지도자들만이 가지나요? 또 1~3세기 시대의 기독교인들도 교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도 성경을 자유로이 해석할 수 있었나요?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 해석의 권한을 독점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답변]
정교회는 주교의 권한이 매우 강하며, 교리와 관련된 주제는 각 정교회 별로 총주교 관할 하에 주교회의를 통해 정합니다. 정교회 입장에서 로마카톨릭교회는 각 지역의 독립정교회 총주교 각각과 동등한 형제 "로마"주교가 관할하는 로마교회일 뿐입니다. "교리와 관련된 성서해석"의 최종권위 역시 주교회의가 가집니다.
성서해석을 "교회가 독점"했다는 표현은 좀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원래 보편교회는 1세기 말부터 3세기까지 보편교회가 배제한 다양한 이단들과 정통성을 놓고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누가/ 왜 정통성을 보유했는가"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야 했습니다. 가령, 신성의 파편을 가지고 깨달은 자가 구원에 이르는 "지식/그노시스" 갖는다는 기본개념을 가진 다양한 바실리데스파, 발렌티누스파, 마니교 등의 영지주의 이단들, 기독교에서 구약성서와 유대교적인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자 한 마르시온파,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를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믿던 은사주의자들인 몬타누스파 등은 자신들의 교리를 직간접으로 "성서"에서 끌어왔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7.html
결과적으로 보편교회가 이들의 "이단적 성서해석"과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보편교회가 사도와 주교/감독들을 통해 단절되지 않게 동일한 교리를 이어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AD 2세기 중/후반의 상황에서 이레네우스가 "보편교회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한번 읽어보시고요.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2.html
"성서를 읽는다" 혹은 "묵상하는 것" 혹은 성서구절의 일반적 "해석"을 교회가 금지한 것이 아닙니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어보시면, 그는 세례도 받기 전인 세례입문자 신분인데도 이미 복음서나 서신서를 읽으면서 기독교를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게다가 교회사를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나중에 성인으로 시성된 교부들끼리도 성서구절을 두고 서로 해석이 달라 티격태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보편교회가 주교들의 합의된 직권으로 성서해석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핵심교리와 관련된 논쟁"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입니다.
"교리해석에 대한" 어떤 준거점은 사실 프로테스탄트 제 교단들도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최광민
[질문] 옛 토론방에서 질문해온 로마 가톨릭과 성경 독서의 연장선상 격의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일반 평신도의 성경 독서와 그리고 그 해석에 대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과 주장을 각각 정리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사실 이 문제를 그렇게 딱 둘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일반적인 대전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누구"나 성경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구절"에 합치한다는 것입니다. 퀘이커들은 더 나아가서 인간 개개의 영혼을 비추는 "신의 빛"을 따라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신의 뜻을 직접 이해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로마카톨릭의 입장은 신을 지상에서 대리하는 교회가 교회의 교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전수하기 위해 (종종 "무오한") 해석/감독권을 쥔다는 입장입니다. 사실 로마카톨릭에서도 누군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가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 정말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지 누가 보증하는가? 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공통의 텍스트를 믿는다고 하면서 서로 간에 해석을 달리한다면, 이들은 그 "텍스트"를 믿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텍스트에 대한 특정한 "해석법" 혹은 "독법"을 믿는 것일까요? 성서라는 공통의 텍스트를 두고 현실 속에선 교파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의 잣대를 들고 동일 텍스트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성서를 신앙의 최종권위로 인정하는 프로테스탄트들 역시, 같은 성서를 보면서도 다른 해석을 내립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해석의 지침들이 등장하게 되나요? 로마카톨릭 교회라면 교황청의 표준해석안이 절대적 표준일 것이고, 정교회라면 주교들의 공회의를 포함한 교회의 전통이 강력한 권위로 작용할 것입니다. 적어도 해석의 지침에 있어서는 프로테스탄트들 역시 로마카톨릭보다는 비중이 덜하다 하더라도 다소 간의 교회전통에 따르고 있는데, 가령, 루터교회라면 마르틴 루터, 칼뱅주의 개혁교회라면 장 칼뱅, 감리교회라면 존 웨슬리 등이 될 것입니다. 해석자 개인에 따라 이런 표준적인 지침에서 약간씩 달리 해석할 수는 있더라도, 결국은 어떤 해석의 틀에 준거점을 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듯 권위(적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툴, 혹은 교단신학은 "전통"이란 옷을 입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솔라 스크립투라 / 오직 성경" 원리는 "성서로 성서를 해석한다 Scriptura sui interpr"는 해석원리를 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해석원리가 꼭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 구절의 해석을 위해 다른 구절을 도입할 때 각각 구절에 대한 복수의 해석이 가능하다면 전체 해석의 복잡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으니까요.
가령, 신의 "예정"을 암시하는 성경의 구절들을 읽은 "칼뱅주의" 교단의 신자가 "웨슬리"식으로 해석하면, "칼뱅주의" 측에서는 그 신자가 (1)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 "아니란" 식, 혹은 (2) 성서에 모순된다고 이해하겠죠?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이를 프로테스탄트 측의 딜레마라고 해야할까요? 모든 해석을 인정하자니 성령이 여럿이 되고, 하나만 고수하자니 분파주의가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로마카톨릭의 입장과 현실적인 적용 면에선 큰 차이가 없게 됩니다. 비록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무오"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각 교단의 어떤 핵심적 신조들은 "무오"란 말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사실상은 손댈 수 없습니다.
/ 최광민
[질문] 그러면 가톨릭은 사실상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반 평신도는 성경을 독서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해석할 권한은 전혀 없으며 철저히 사제의 해석에 의존해야한다고 가르치는 건가요? 그러면 가톨릭에서 성서 독서라는 행위 자체는 애당초 의미가 없는 행동 아닌가요?
[답변]
그래서 사실 20세기 중반까지 로마카톨릭에서는 평신도들에게 성서독서가 별로 권장되지 않았고 신자들도 굳이 찾아서 읽지 않았습니다. 로마카톨릭에서 평신도 성서독서가 권장되는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이며, 따라서 꽤 최근의 현상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프로테스탄트는 그 시작부터 신자의 성서독서와 연구/묵상이 신자의 핵심적인 삶이었지만, 로마카톨릭에게 있어서 성서독서는 신자에게 권장될 수있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울러 로마카톨릭에서는 성서독서 자체가 아니라 "교리적 부분"에 대한 평신도의 해석이 제한되는 것입니다.
/최광민
[질문] 동방정교회나 오리엔탈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 각각 종파들의 구원에 이르는 칭의관은 어떤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원죄"나 "칭의"나 "대속"에 대한 고민은 길게 보면 북아프리카 히포 주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관에서 전개된 특별히 라틴교회 신학의 특징에 해당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비록 로마카톨릭-정교회 공히 교회박사 중 하나이지만, 그는 동방에서는 그다지 인기있는 교부가 아니었고, 따라서 정교회나 이미 5세기에 분리된 기타 동방의 단성파/양성파 교단은 원죄나 칭의 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로마카톨릭교회나 프로테스탄트처럼 그 주제에 천착하지도 않습니다. "대속"에 대한 교리가 중세 이후 서방에서만 두드러지게 등장한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정교회의 견해는 이것보다는, 신자가 어떻게 악에서 승리한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와 신에게 가까와 질 수 있는가 ("신화 theosis")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신화"란 "인간이 신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신의 성품과 의지에 일치되어 간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 최광민
[질문] 1~2세기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마르틴 루터가 말했던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얻는다는 동일한 칭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답변]
위에 간략히 답변했고, 예전에 방문자 한 분과 그와 관련하여 아래 게시판에서 이야기 나눈 바 있습니다.
http://forum-scientiarum.16390.x6.nabble.com/-td4982016.html
/ 최광민
[질문] 1~3세기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어떻게 보유했었나요? 각 교회의 장로들이 소유했었나요? 또 그들의 예배방식은 어떠한 형태였나요?
[답변]
성서는 보통 성물로 간주되어 교회에서 사제/장로가 보관했고, 유스티노스의 대화편에 나오는 유대인 랍비 트리폰의 진술을 보면 기독교도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사본으로 제작되어 유통되기도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박해 시, 교회가 보관 중인 성서를 당국에 넘겨준 사제들은 분향하지 않았더라도 그 자체로 배교로 간주되었습니다.
성찬 (유카리스티아 εὐχαριστία)과 예배 형식에 관한 아주 오래된 기록은 {디다케 Διδαχὴ Κυρίου διὰ τῶν δώδεκα ἀποστόλων τοῖς ἔθνεσιν}나 유스티노스의 {변증}에 등장하는 대로, 일요일에 기립 찬양 (시편)-독서 (구약 예언서 /신약 복음서 및 서신서) - 속죄기도/사면 - (교제의 키스) -성찬 의 순서를 따른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선, {디다케}에서 인용합니다. 연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보통 AD 1세기 말부터 2세기 중반까지의 문서로 간주됩니다.
1. Κατὰ κυριακὴν δὲ κυρίου συναχθέντες κλάσατε ἄρτον καὶ εὐχαριστήσατε, προεξομολογησάμενοι τὰ παραπτώματα ὑμῶν, ὅπως καθαρὰ ἡ θυσία ὑμῶν ᾐ. 2. πᾶς δὲ ἔχων τὴν ἀμφιβολίαν μετὰ τοῦ ἑταίρου αὐτοῦ μὴ συνελθέτω ὑμῖν, ἕως οὗ διαλλαγῶσιν, ἵνα μὴ κοινωθῇ ἡ θυσία ὑμῶν. 3. αὕτη γάρ ἐστιν ἡ ῥηθεῖσα ὑπὸ κυρίου· Ἐν παντὶ τόπὼ καὶ χρόνῳ προσφέρειν μοι θυσίαν καθαράν. ὅτι βασιλεὺς μέγας εἰμί, λέγει κύριος, καὶ τὸ ὄνομά μου θαυμαστὸν ἐν τοῖς ἔθνεσι.
But every Lord's day gather yourselves together, and break bread, and give thanksgiving after having confessed your transgressions, that your sacrifice may be pure. But let no one that is at variance with his fellow come together with you, until they be reconciled, that your sacrifice may not be profaned. For this is that which was spoken by the Lord: In every place and time offer to me a pure sacrifice; for I am a great King, says the Lord, and my name is wonderful among the nations
매주 주일에 함께 모여, 빵을 쪼개고, 죄를 고백한 후 감사를 드려 너희 제물을 깨끗해지게 하라. 결코 누구도 서로 화해하지 않고 형제와 한 자리에 있게 해서는 않된다. 너희의 제물은 더렵혀지기 때문이다. "어느 때나 장소에서든 순결한 제물을 바쳐라. 주 (야훼)가 말한다. 나는 위대한 왕이다. 열방이 내 이름을 놀라와 한다 " 고 주님은 말씀하신 바 있다. / 번역: 최광민
다음은 AD 2세기 중반 유스티노스의 {첫번째 변증}에서 인용합니다. 우선, 성찬에 대한 초기 교회의 가르침을 담은 제 66장의 내용입니다.
66.1 Καὶ ἡ τροφὴ αὕτη καλεῖται παρ' ἡμῖν εὐχαριστία, ἧς οὐδενὶ ἄλλῳ μετασχεῖν ἐξόν ἐστιν ἢ τῷ πιστεύοντι ἀληθῆ εἶναι τὰ δεδιδαγμένα ὑφ' ἡμῶν, καὶ λουσαμένῳ τὸ ὑπὲρ ἀφέσεως ἁμαρτιῶν καὶ εἰς ἀναγέννησιν λουτρόν, καὶ οὕτως βιοῦντι ὡς ὁ Χριστὸς παρέδωκεν. 66.2 οὐ γὰρ ὡς κοινὸν ἄρτον οὐδὲ κοινὸν πόμα ταῦτα λαμβάνομεν· ἀλλ' ὃν τρόπον διὰ λόγου θεοῦ σαρκοποιηθεὶς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ὁ σωτὴρ ἡμῶν καὶ σάρκα καὶ αἷμα ὑπὲρ σωτηρίας ἡμῶν ἔσχεν, οὕτως καὶ τὴν δι' εὐχῆς λόγου τοῦ παρ' αὐτοῦ εὐχαριστηθεῖσαν τροφήν, ἐξ ἧς αἷμα καὶ σάρκες κατὰ μεταβολὴν τρέφονται ἡμῶν, ἐκείνου τοῦ σαρκοποιηθέντος Ἰησοῦ καὶ σάρκα καὶ αἷμα ἐδιδάχθημεν εἶναι. 66.3 οἱ γὰρ ἀπόστολοι ἐν τοῖς γενομένοις ὑπ' αὐτῶν ἀπομνημονεύμασιν, ἃ καλεῖται εὐαγγέλια, οὕτως παρέδωκαν ἐντετάλθαι αὐτοῖς· τὸν Ἰησοῦν λαβόντα ἄρτον εὐχαριστήσαντα εἰπεῖν· Τοῦτο ποιεῖτε εἰς τὴν ἀνάμνησίν μου, τοῦτ' ἐστι τὸ σῶμά μου· καὶ τὸ ποτήριον ὁμοίως λαβόντα καὶ εὐχαριστήσαντα εἰπεῖν· Τοῦτό ἐστι τὸ αἷμά μου· καὶ μόνοις αὐτοῖς μεταδοῦναι. 66.4 ὅπερ καὶ ἐν τοῖς τοῦ Μίθρα μυστηρίοις παρέδωκαν γίνεσθαι μιμησάμενοι οἱ πονηροὶ δαίμονες· ὅτι γὰρ ἄρτος καὶ ποτήριον ὕδατος τίθεται ἐν ταῖς τοῦ μυουμένου τελεταῖς μετ' ἐπιλόγων τινῶν, ἢ ἐπίστασθε ἢ μαθεῖν δύνασθε
CHAPTER LXVI -- OF THE EUCHARIST: And this food is called among us Eukaristia [the Eucharist], of which no one is allowed to partake but the man who believes that the things which we teach are true, and who has been washed with the washing that is for the remission of sins, and unto regeneration, and who is so living as Christ has enjoined. For not as common bread and common drink do we receive these; but in like manner as Jesus Christ our Saviour, having been made flesh by the Word of God, had both flesh and blood for our salvation, so likewise have we been taught that the food which is blessed by the prayer of His word, and from which our blood and flesh by transmutation are nourished, is the flesh and blood of that Jesus who was made flesh. For the apostles, in the memoirs composed by them, which are called Gospels, have thus delivered unto us what was enjoined upon them; that Jesus took bread,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said, "This do ye in remembrance of Me, this is My body;" and that, after the same manner, having taken the cup and given thanks, He said, "This is My blood;" and gave it to them alone. Which the wicked devils have imitated in the mysteries of Mithras, commanding the same thing to be done. For, that bread and a cup of water are placed with certain incantations in the mystic rites of one who is being initiated, you either know or can learn. ---- (tr. Roberts-Donaldson)
제 66장: 우리들은 이 음식을 "유카리스티아 εὐχαριστία"라 부른다. 아무나 이 음식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우리가 가르친 바를 사실로 믿고, 죄의 사면과 거듭남을 위해 세례를 받았으며,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로 사는 사람만이 참예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음식을 받을 때 보통 빵이나 음료를 받을 때 처럼 하지 않으며, 마치 신의 말씀에 의해 인간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살과 피를 갖게 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 것처럼 한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도에 의해 축복되고, 또 이를 통해 우리의 피와 살이 변화되어 양육되는 이 음식이 인간이 되신 예수의 살과 피라고 가르침 받아왔다.사도들로 말하자면, 그들의 회상록들인 {복음서}라 불리는 책들 (...οἱ γὰρ ἀπόστολοι ἐν τοῖς γενομένοις ὑπ' αὐτῶν ἀπομνημονεύμασιν, ἃ καλεῖται εὐαγγέλια....)이 사도들이 받은 명령을 전해주고 있다. 예수께서 빵을 취한 후 기도를 올리시고 말씀하시길,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고 하셨고, 같은 방식으로 (포도주) 컵을 취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후, "이것은 나의 피다"라고 하신 후 잔을 그들에게 주셨다. 악마는 이것을 흉내내어 미트라스 밀교에서 같은 일을 하게 하였다. 즉, 어떤 주문을 읊으면서 빵과 물잔이 이 밀교의 입문식 때 놓여지는데, 당신들이 이미 이것을 알고 있거나, 혹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번역: 최광민
이어서 유스티노스는 성찬이 포함된 일요일 공예배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Ἡμεῖς δὲ μετὰ ταῦτα λοιπὸν ἀεὶ τούτων ἀλλήλους ἀναμιμνήσκομεν· καὶ οἱ ἔχοντες τοῖς λειπομένοις πᾶσιν ἐπικουροῦμεν, καὶ σύνεσμεν ἀλλήλοις ἀεί. 67.2 ἐπὶ πᾶσί τε οἷς προσφερόμεθα εὐλογοῦμεν τὸν ποιητὴν τῶν πάντων διὰ τοῦ υἱοῦ αὐτοῦ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καὶ διὰ πνεύματος τοῦ ἁγίου.
And we afterwards continually remind each other of these things. And the wealthy among us help the needy; and we always keep together; and for all things wherewith we are supplied, we bless the Maker of all through His Son Jesus Christ, and through the Holy Ghost.
이어서 우리는 이런 것들로 서로를 격려한다. 우리 가운데 부유한 이들은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며, 우리는 늘 하나가 되어 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는 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또 성령을 통해 만물의 창조자를 기린다. -- 번역: 최광민
καὶ τῇ τοῦ ἡλίου λεγομένῃ ἡμέρᾳ πάντων κατὰ πόλεις ἢ ἀγροὺς μενόντων ἐπὶ τὸ αὐτὸ συνέλευσις γίνεται, καὶ τὰ ἀπομνημονεύματα τῶν ἀποστόλων ἢ τὰ συγγράμματα τῶν προφητῶν ἀναγινώσκεται, μέχρις ἐγχωρεῖ. εἶτα παυσαμένου τοῦ ἀναγινώσκοντος ὁ προεστὼς διὰ λόγου τὴν νουθεσίαν καὶ πρόκλησιν τῆς τῶν καλῶν τούτων μιμήσεως ποιεῖται.
And on the day called Sunday, all who live in cities or in the country gather together to one place, and the memoirs of the apostles or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are read, as long as time permits; then, when the reader has ceased, the president verbally instructs, and exhorts to the imitation of these good things.
우리가 일요일이라 부르는 날, 도시나 촌락에 사는 모두가 한 곳에 모여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사도들의 회상 (=복음서)와 선지자들의 책들이 낭독되는 걸 듣는다. 낭독이 마치면 집례자 (=사제/장로)는 설교/강론을 통해 이 모든 선한 것들을 닮아가도록 우리에게 권고한다. -- 번역: 최광민
ἔπειτα ἀνιστάμεθα κοινῇ πάντες καὶ εὐχὰς πέμπομεν· καί, ὡς προέφημεν, παυσαμένων ἡμῶν τῆς εὐχῆς ἄρτος προσφέρεται καὶ οἶνος καὶ ὕδωρ, καὶ ὁ προεστὼς εὐχὰς ὁμοίως καὶ εὐχαριστίας, ὅση δύναμις αὐτῷ, ἀναπέμπει, καὶ ὁ λαὸς ἐπευφημεῖ λέγων τὸ Ἀμήν, καὶ ἡ διάδοσις καὶ ἡ μετάληψις ἀπὸ τῶν εὐχαριστηθέντων ἑκάστῳ γίνεται, καὶ τοῖς οὐ παροῦσι διὰ τῶν διακόνων πέμπεται.
Then we all rise together and pray, and, as we before said, when our prayer is ended, bread and wine and water are brought, and the president in like manner offers prayers and thanksgivings, according to his ability, and the people assent, saying Amen; and there is a distribution to each, and a participation of that over which thanks have been given, and to those who are absent a portion is sent by the deacons.
이어서 우리는 모두 일어서 기도하는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기도가 끝나면 빵과 포도주와 물이 차려지고, 집례자는 같은 방식으로 능력껏 기도와 감사를 올리고 회중들은 '아멘'이라 답하며 동의를 표현한다. (이 음식은) 각자에게 분배되고 이를 받는 이들은 감사를 올리며 받으며, 집사 (=부제)들이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 보내준다. -- 번역: 최광민
οἱ εὐποροῦντες δὲ καὶ βουλόμενοι κατὰ προαίρεσιν ἕκαστος τὴν ἑαυτοῦ ὃ βούλεται δίδωσι, καὶ τὸ συλλεγόμενον παρὰ τῷ προεστῶτι ἀποτίθεται, καὶ αὐτὸς ἐπικουρεῖ ὀρφανοῖς τε καὶ χήραις, καὶ τοῖς διὰ νόσον ἢ δι' ἄλλην αἰτίαν λειπομένοις, καὶ τοῖς ἐν δεσμοῖς οὖσι, καὶ τοῖς παρεπιδήμοις οὖσι ξένοις, καὶ ἁπλῶς πᾶσι τοῖς ἐν χρείᾳ οὖσι κηδεμὼν γίνεται.
And they who are well to do, and willing, give what each thinks fit; and what is collected is deposited with the president, who succours the orphans and widows and those who, through sickness or any other cause, are in want, and those who are in bonds and the strangers sojourning among us, and in a word takes care of all who are in need.
이들은 이 일에 적합한 자질을 가졌고 또 자원한 자들로, 각자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사람들에게 분배한다. 남은 음식은 집례자가 모아 보관하여 고아들과 과부들, 질병 및 기타 다른 사정을 가진 사람들, 혹은 구금 중이거나 우리를 방문한 손님들, 다시 말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한다. -- 번역: 최광민
τὴν δὲ τοῦ ἡλίου ἡμέραν κοινῇ πάντες τὴν συνέλευσιν ποιούμεθα, ἐπειδὴ πρώτη ἐστὶν ἡμέρα, ἐν ᾗ ὁ θεὸς τὸ σκότος καὶ τὴν ὕλην τρέψας κόσμον ἐποίησε, καὶ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ὁ ἡμέτερος σωτὴρ τῇ αὐτῇ ἡμέρᾳ ἐκ νεκρῶν ἀνέστη· τῇ γὰρ πρὸ τῆς κρονικῆς ἐσταύρωσαν αὐτόν, καὶ τῇ μετὰ τὴν κρονικήν, ἥτις ἐστὶν ἡλίου ἡμέρα, φανεὶς τοῖς ἀποστόλοις αὐτοῦ καὶ μαθηταῖς ἐδίδαξε ταῦτα, ἅπερ εἰς ἐπίσκεψιν καὶ ὑμῖν ἀνεδώκαμεν.
But Sunday is the day on which we all hold our common assembly, because it is the first day on which God, having wrought a change in the darkness and matter, made the world; and Jesus Christ our Saviour on the same day rose from the dead. For He was crucified on the day before that of Saturn (Saturday); and on the day after that of Saturn, which is the day of the Sun, having appeared to His apostles and disciples, He taught them these things, which we have submitted to you also for your consideration.
일요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집회를 갖는 날인데, 이는 이 날이 신께서 흑암과 물질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신 첫날이며, 또 우리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같은 날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토요일 전날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토요일 다음날인 일요일에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또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전하는 이것들을 또한 그들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번역: 최광민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자신들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지 않고 로마 가톨릭에 남아있는 신도들의 구원 가능성 여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나요?
중기 이후 루터와 그 무렵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이 종말론적 시각에서 로마교회와 교황으로 대표되는 성직자단을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바벨론의 음녀"로 여겼으므로, 대개의 신자들은 그 바벨론과 음녀에 의해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참 교황"이 아닌 "바벨론의 음녀"를 맹종하지 않는 한, 참된 믿음을 가진 한, 그들을 구출대상이자 구원받을 가능성 있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95개조에서 루터가 "참 교황"을 언급한 점을 기억하시면 될 것입니다.)
물론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의 알을) 낳고, 루터가 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종교개혁의 분위기를 조성했던 에라스무스지만, 자유의지 문제를 두고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 측으로 넘어오지 않고 로마카톨릭에 남은 채로 1536년에 죽었을 때, 루터는 그의 유명한 독설화법으로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유명한 에라스무스가 (임종을 지킬) 사제도 기도도 없이 바젤에서 죽었다. 지옥갈 준비 끝!"
/최광민
[질문] 중세 당시에 라틴어 성서로 미사가 이루어졌다면 당시 사제가 라틴어 성서 구절을 읽은 뒤 신도들에게 이 구절이 어떠한 내용인지 모국어로 설명해주었나요?
[답변]
예수의 시절의 유대교에서도 시나고그 예배에서 우선 히브리어로 성서를 낭독한 후, 히브리어를 모르는 일반인을 위해 메투르게만이 아람어로 그 내용을 번역하고 뜻을 풀어주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4.html
동서방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전통적인 기독교 예배의 형식에는 예언서(구약)/시편/복음서-서신서의 내용을 발췌해서 낭독하는 순서가 들어있습니다. 중세의 라틴전례에서는 이 부분을 공식적으로는 모두 라틴어로 했습니다. (물론 모국어로 풀이해주는 사제들도 있기는 했겠죠).
게다가 사실 고대 말부터 초기 중세로 이어지는 시기부터, 라틴교회의 설교는 대체로 교회의 주요 축일에만 주교가 도맡아 했습니다. 이후 중세 말기에는 모국어로 대중을 대상으로 한 순회설교하는 수도사들이 엄청나게 대중의 인기를 끌었고, 일부 순회설교사들의 인기는 아이돌 급이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의 전체원문을 접하는 것과 설교내용에 맞춰 발췌된 내용과 그 해설을 접하는 것은 사뭇 다른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 최광민
[질문] 사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인정을 하지 않는 전통 가톨릭교도가 쓴 글들을 예전에 접해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저의 개신교 신앙에 대해 한 동안 혼란을 겪었고, 사실 Kwangmin님에게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해왔던 것도 이 혼란을 조금이라도 수습하기 위한 저의 동기에서 나온 것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외람된 부탁입니다만 그 가톨릭 교도가 쓴 글을 몇 개 읽어보시고 소감을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https://blog.naver.com/jmjfp/220782616294
https://blog.naver.com/jmjfp/220771895955
https://blog.naver.com/jmjfp/221319265765
https://blog.naver.com/jmjfp/221299184422
[답변]
2004년 멜 깁슨 감독의 {The Passion of Christ} 영화가 나왔을 때, 위에 언급하신 카톨릭전통주의자 -- 특별히 "성 비오 10세회"의 입장에 대해 개인적으로 꽤 자세히 연구했던 적이 있습니다. 멜 깁슨이 바로 이 카톨릭전통주의자이고, 그 영화가 그런 관점에서 채색되어 있거든요.
http://kwangmin.blogspot.com/2011/08/blog-post_5636.html
그럼 같이 읽어보고 비평하도록 하겠습니다. / 최광민
[1]
"어느 기독교(개신교)신자와의 대화 (2016년 8월7일 일요일)" 에 대해선....https://blog.naver.com/jmjfp/220782616294
위에 글 쓰신 분이 천주교 신학교를 다니셨던 듯 한데 (사제? 수도자?), 글을 짦고 쉽게 쓰시려다 그러셨겠지만 약간 사실관계를 틀어서 말씀하시네요.
(인용) "....사실 불가타역만이 완전한 성서입니다. 이 당시에는 그리스어 성경과,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셨던 언어이며 마태복음의 원어인 아람어 성경 등이 다수 존재했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현재는 이러한 성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신교 학자들이 원전에서 번역했다는 것은 허위 주장입니다. 그들의 사본은 원전이 아닙니다. 필사되고 또 필사되어 완전하지 못한 사본입니다. 성서는 필사될수록 필사가의 의견이 어휘 선택에 반영되고, 실수 등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현재는 이러한 성경이 존재하지 않다"니요.
이 주장은 성서사본학의 기본만 알아도 배척되는 주장입니다. 우선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70인역과 그리스어 신약성서의 사본은 정교회를 통해 전수되어 온 것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라틴어 불가타를 만든 히에로니무스는 원래 (당시에 오리게네스 등에 의해 수집 정리된 다양한) 그리스어 70인역 판본들과 구 라틴어 번역을 바탕으로 중역을 시도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가 입수한 히브리어 사본과 일부 외경의 아람어 및 그리스어 버전, 구-라틴어 버전을 바탕으로 구약성서를 새로 번역 혹은 보완합니다. 즉, 불가타에 사용된 사본들은 (물론 현재 남아있진 않습니다) 그가 선정한 일종의 "비평/편집사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원본을 가장 잘 반영한 사본인가를 두고 말한다면, 솔직히 정답이 없습니다.
많은 초기 교부들도 히브리어 사본과 70인역, 그리고 다른 번역본과 사본 간의 차이가 발견된 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런 사본들을 대조해 놓은 것이 바로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 란 문건입니다. 히에로니무스도 사본 전승 간의 불일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번역에 선택한 히브리어 본문이 과연 "오류없는 원전"이라고 할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물론 그가 당시에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본"을 선택했다는 것을 특별히 의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당시 많은 교부들 (가령, 북아프리카 히포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전승인 그리스어 구약성서 70인역을 버리는 점, 구-라틴어 번역이 있는데 히브리어 사본에 기반한 새 라틴어 번역을 만든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거나 단어선택을 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보통 히브리어 원문으로 가장 잘 보존된 것으로 간주하는 맛소라 사본과 불가타 원문은 여러 군데 차이가 있고, 맛소라와 70인역 간에 꽤 차이가 있듯 역시 불가타와 70인역 간에도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아람어/시리아어 성서는 AD 5세기에 시리아 교회에서 이미 번역되어 지금도 사용하는 {페쉬타}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이미 학술적으로 검증된 사안들입니다. / 최광민
[2]
"마틴 루터의 비화" https://blog.naver.com/jmjfp/220771895955 란 글에 대해선.....
루터가 결혼을, 그것도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하는 것을 두고 사실 그의 측근 중에도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사제독신제도가 비성서적이란 것을 보란 듯이 비판하기 위해 감행했습니다.
루터는 이 결혼을 후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특유한 화법으로 유쾌하게 답합니다: "(이 결혼으로) 아버지는 기뻐하고, 교황은 화내며, 천사는 웃고, 악마는 울것이다."
또 유쾌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Ich würde meine Käthe nicht gegen Frankreich oder Venedig eintauschen. Zum ersten deshalb, weil Gott sie mir geschenkt hat und mich ihr geben hat. Zweitens erfahre ich oft, dass andere Frauen größere Mängel haben, als meine Käthe sie hat. Obwohl sie auch schon etliche hat, hat sie dagegen doch auch zahlreiche große Qualitäten.
나는 케테 (=카타리나)를 프랑스나 베네치아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께서 그녀를 내게 주셨고 또 나를 그녀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나는 때때로 다른 여자들이 케테보다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비록 그녀가 이미 몇몇 문제를 이미 가지곤 있지만, 역시 많은 미덕도 가지고 있다. / 번역: 최광민
루터 본인이 크게 후회한 건은 필립의 중혼을 허가한 건이었습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루터는 어짜피 필립이 결국 그럴 거라서 자기가 총대를 맨 것처럼 변명하긴 했지만, 두고 두고 그의 아킬레스 건이 되었습니다.
"오직"의 삽입과 관련한 "성서개작" 건에 대해서는 블로그 저자께서 좀 과도한 주장을 하신다고 생각됩니다. "일점일획"이란 표현은 그렇게 적용/해석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경화 역사과정을 본다면, 단어 한두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현행 신구약성서에 포함된 ~20여권의 채택여부를 두고 초기교회 내에 논란이 있었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가톨릭 교회가 단 한 건이라도 오류를 허용한 사례가 있다면 이는 참 교회가 아니며, 가톨릭 교회가 참 교회가 아니라면 1500년 간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되므로 “너는 베드로라. 나 이 반석 위에 내 성교회를 세울 것이매, 지옥문이 쳐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이 거짓일 수는 없으므로, 가톨릭 교회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라고도 하시는데, 이 주장은 "가톨릭"교회가 "로마카톨릭교회"가 "무오"하다는 가정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겠죠?
우선, "카톨릭"이란 단어는 "로마카톨릭"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가령, 정교회는 1-7차 세계공회의에 기반한 자신들이야 말로 "카톨릭(보편)"이자 "정통"이라고 주장합니다. 정교회가 스스로를 일컫는 공식명칭인 "Ορθόδοξη (정통) Καθολική (보편/카톨릭) Εκκλησία (교회)"는 바로 이점을 명시합니다.
4세기에 분리된 단성파 꼽트교회 교황/총주교는 자신들 단성파가 정통신조를 보유한 카톨릭이라고 여깁니다. 아리우스 논쟁 때 아리우스파는 자신들이 "카톨릭교회"라고 주장했습니다. 시리아 안티오키아 정교회 및 단성파 교단의 제 1대 주교는 바로 사도 베드로 입니다. 만약, 로마교회가 자신을 "유일한 카톨릭"이라고 부르는 근거가 자신들의 권위가 "1대주교"인 사도 베드로에게서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안티오키아 교회 역시 동일한 주장을 펼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원조들입니다).
그리고 로마교회가 오류를 허용한 사례는 단 한건이 아니라 여럿 있습니다. 이런 주장의 트릭은 상당히 동어반복적인데, "참 교회"를 "오류를 가질 수 없는 존재"로 우선 정의해 버린 후, 따라서 오류를 보인 교회는 "원래부터" "참교회가 아니었다"라고 선언해 버리는 식이죠. 이와 동일한 논리구조를 따르는 것이 로마카톨릭교회의 "교황무오론"입니다. 가령, 로마교회 주교들 중에 아리우스파 옹호자 등 이단도 있었다는 것을 교회사를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로마 주교 (교황) 호노리우스 1세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인성이라는 두 위격을 갖고 있지만 오직 하나의 단일한 의지는 갖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의 모든 행위는 한 단 하나의 신적의지에 따른다는 '단일의지론'을 옹호했고, 비잔틴 황제 헤라클리오스는 이에 동조해 638년 칙령을 발표했지만, 그의 사후 40년 정도 후에 열린 AD 680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서 파문당했습니다. 이런 경우, 해당 인물들이 (1) 오해를 받았다고 변론하거나, 혹은 (2) "참 주교"가 아니라 "참칭한 것"이란 식으로 "무오" 문제를 피해가는 것이죠.
역사를 진영의 입장에서 보지말고 가급적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3]
루터의 명제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다” 가 오류인 이유
https://blog.naver.com/jmjfp/221319265765
오직성경설이 예수님의 가르침인가요?
https://blog.naver.com/jmjfp/221299184422
위 두 글은 논점은 "성서확립이 교회보다 나중인데 어떻게 "오직 성경"이란 명제가 성립하는가?" 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이 문제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측의 입장을 약간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 논점에 대한 로마카톨릭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단성파 및 양성파 교단)의 입장은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서 정경목록은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신약성서 목록의 최종확립만 본다면 이건 확실히 단계적이었으니까요. 오리게네스를 포함해 고대의 교부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없던 목록을 보편교회의 공회의가 갑자기 인준한 것은 아닙니다. 지역교회들 간에 "보편"적으로 인준되던 책들을 최종리스트로 "봉인"한 것이니까요. 그나마도 주체는 보편교회의 공회의지 로마카톨릭의 "교황"이 나서서 한 것도 아닙니다.
아래 글에서 유스티노스와 {무라토리} 단편의 내용도 참고해 보세요. 위의 유스티노스 직후, 히폴리투스가 활동하던 무렵 로마교회가 수용하던 신약성서 문건들이 {무라토리} 단편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무라토리 목록 전문 :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3.html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은,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이 교회를 이루었고, 이 가르침을 교회가 전수했으며, 이 가르침의 "핵심"은 성서에 진실되게 반영되어 있고, 바로 이 가르침이 성서의 최종리스트가 공회의에서 "봉인"되기 전에도 교회의 표준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성서보다 우위의 권위로) 성서를 확립했다"가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설립된 교회와 그 가르침이 기록된 성서는 유기적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며, 또 성서를 신앙의 최종권위로 삼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서의 텍스트에 근거하지 않는 교리는 수용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초기교부들의 글에 나오는 "거룩한 전통/전승"은 많은 경우 오늘날의 의미라기 보다는,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의미인 경우가 많습니다. 2세기 말, 로마 사제이자 "성인"인 히폴리투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그는 성서를 신앙의 표준으로 강조합니다.
"....9. 형제들이여, 오직 한 신만 계신다. 우리는 이 지식을 성서로 부터 얻었고, 다른 어디서 얻지 않았다. 세상의 지식에 통달하고자 하는 이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통달하는 것 이 외에 그 지식을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건을 훈련하길 원하는 우리 모두 역시 신의 계시 이외의 것에서 이것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이다. 성서가 선언하는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도록 하자. 성서가 가르치는 무엇이나 배우도록 하자. 성부께서 원하시는 믿음대로 믿도록 하자. 성부께서 성자를 영광스럽게 하시길 원하셨다면 우리도 성자께 영광을 돌리자. 성부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성령을 받아들이자. 우리 자신의 의지로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가 아니라,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것들을 오용하지 말고 성부께서 성서로서 그것들을 가르치고자 하셨다면 그것을 인정하도록 하자...." ---- 히폴리투스, {노에투스 반박} / 번역: 최광민
사실 "교회의 전통"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측의 견해는 두가지 지류가 있습니다. 가령, 루터교단이나 성공회 등은 "성서가 금지하지 않으면, 허용한다"는 입장을 대체로 취합니다. 칼뱅의 전통을 잇는 개혁주의에서는 원래 "성서가 허용하지 않으면, 금지한다"는 미니멀리스트의 입장을 취합니다. 그런데 로마카톨릭이나 정교회 측에서 말하는 (성서 밖의) "거룩한 전통"을 긴 시간축에서 보면 서로 상충하는 "전통"들이 많이 발견되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의 "전통"은 사실 경합에서 "살아남은" 전통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그럼 또 "신이 교회의 일을 주관하신다면, 올바른 교리와 전통 만이 살아남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도 주장하겠죠? 그런데 그 순간 순환논법이 되어버립니다.
AD 2세기 초/중반 소아시아를 거쳐 로마에서 활동한 유스티노스의 진술에 따르면, 고대교회의 일요일 예배는 찬양 (시편)과 구약성서와 복음서 (및 서신서)의 본문을 회중들에게 "길게" 읽어주어 강독하고, 이후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즉, 회중들이 설령 문맹이었다 하더라도, "해설되지 않은 원문"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략) 우리는 만물의 창조자이신 분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기린다. 일요일이라 불리는 날, 도시나 시골에 사는 모두가 한 곳에 모여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사도들의 회상록들이나 예언자/선지자들의 글들을 오래 읽으며, 독서를 마친 후에 집례자가 가르침을 말로 전하여 이 모든 좋은 일들을 닮도록 우리에게 권고한다...." --- 유스티노스, {첫번째 변증}, 번역: 최광민
/ 최광민
#기타 역사
[질문]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당시 위그노들이 대량 살육을 당하고 있을 당시 프랑스 대사에게 이 소식을 접한 교황이 특별 미사 집전 및 찬송을 부르게 하고 환영 메달까지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톨릭 측에서는 당시 프랑스 대사는 학살에 대한 진상을 이야기 하지 않고 왕의 목숨을 위협한 반역자들을 제거했다고만 이야기 하였고 이 사건의 진상을 몰랐던 교황이 저런 행동을 취했던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던데 사실인가요? 또 학살 당시에 위그노들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도록 해준 가톨릭 주교좌들도 있었다고 하던데 이 또한 사실인가요?
[답변]
바르톨로메오 대학살은 종교적인 세팅에서 벌어진 정치적 학살극이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는 바로 프로테스탄트인 나바르 왕국의 앙리 3세와 로마카톨릭인 프랑스의 공주 (까뜨린 드 메디시스와 선왕 앙리 2세의 딸) 사이에 벌어진 결혼식입니다. 당시 프랑스 국왕 샤를 9세의 어머니로서 오랫동안 섭정하던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까뜨린 드 메디시스, 즉 카트리나 데 메디치였습니다. 당시 메디치가는 몇몇 교황을 배출하기도 하는 등 교황청과 아주 밀접했고요 (카뜨리나의 삼촌도 교황입니다).
프랑스인들은 그 당시 이미 피렌체 출신의 외국인이자 "평민"인 카트리나 데 메디치가 프랑스 왕비라는걸 공공연히 불쾌하게 여겼었는데, 이때 상당한 군사력을 가진 프랑스 남부의 나바르 왕국의 프로테스탄트 국왕 앙리 3세가 부마로 오는 걸 좋아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나바르의 앙리3세가 로마카톨릭으로 명목상 개종한다는 조건으로 프랑스의 앙리4세가 되니 꼭 틀린 우려도 아니었죠
사실 이 결혼 자체가 양측의 종교세력을 무마시키기 위한 정치적 계략이었던 것이고요. 학살의 배후가 위그노 및 나바르 세력을 일시에 제거하기 위해 카뜨린이 함정을 판 것인지, 프랑스 당시 국왕 앙리3세인지, 카톨릭파의 영수인 앙리 드 귀인지, 아님 그냥 프랑스인들의 우발적 충돌인지, 분명치 않은 점이 있긴 합니다. 아무튼 프랑스 일대에서 카톨릭-위그노 간의 종교전쟁이 고작 2년 전에 막 끝난 때란걸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게다가 이 결혼은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치러집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행동에 대해선...글쎄요 그가 바티칸에 그리게 한 기념화를 보면 (앙리3세가 지시한 위그노/프로테스탄트 지도자 가스파르 드 콜리니 제독의 살해 맟 이어지는 학살 묘사) 그가 이 학살을 일종의 성전으로 인식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이런 그림이 바티칸에 왜 필요했을까요.
Giorgio vasari, {seconda storia della notte di san bartolomeo}
일부 로마카톨릭 신자들이 위그노들의 피신을 도왔던 건은, 인도주의적인 조치일 수도 있고, 또한 물론 교황이 지위상 절대수장이긴 하더라도 이탈리아 밖 지역에서는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유럽 곳곳에는 프로테스탄트에 동조하던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이 엄연히 존재했고, 일부는 루터파 등의 주교가 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1309년부터 1377년 간 7명의 교황이 로마가 아닌 프랑스 아비뇽에서 머물던 소위 '아비뇽 유수' 기간 내내, 로마카톨릭 교황은 프랑스 국왕의 통제권 아래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로마 귀환 직후 친-로마파 추기경들과 친-프랑스파 추기경들의 대결로 로마와 프랑스 아비뇽에 각각 한 명씩의 교황이, 이어서 피사회의에서 옹립된 제 3의 교황이 옹립되어 동시에 3명의 교황이 난립한 소위 '대분열'이 1418년 콘스탄츠 공회의에서 종식된 이후에도, 로마교황의 영향력은 프랑스 땅에서 이전의 위세를 영영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 최광민
[질문] 영국의 호국경이었던 올리버 크롬웰은 아일랜드의 정복 과정에서의 대량 학살로 굉장히 비판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이 사건도 1641년에 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이 개신교도들을 먼저 학살하기 시작했고 찰스 1세가 이를 묵인하다가 나중에 크롬웰이 정권을 잡은 뒤 이를 진압한 것에 불과하다고 몇몇 개신교인들이 주장을 하던데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솔직히 크롬웰과 당시 찰스를 죽이고 기세등등했던 칼뱅파 의회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카톨릭 이단'을 처단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의회에 대한 '반역자'이기도 하니까요. 아실지 모르나, 아일랜드는 프로테스탄트였던 엘리자베스 1세 때 잉글랜드에 병합되는데, 이후 칼뱅파의 급진적 개혁을 의회가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일랜드의 로마카톨릭 토호들은 상당한 위협을 느끼던 중이었고 1641년에 잉글랜드에 대항에 폭동을 일으킵니다 (당연히 프로테스탄트를 여럿 죽였겠죠?) 그리고 아일랜드의 카톨릭 연맹은 잉글랜드 왕당파와 손을 잡고 찰스 1세를 아일랜드 국왕으로도 옹립하고 양면공격으로 잉글랜드에 왕정을 복권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 정황인 것이죠.
/ 최광민
[질문] 종종 반가톨릭 선전물에서 가톨릭 교회가 종교재판 등으로 5000만명을 학살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합니다. 알베르토 리베라나 잭칙 같은 미국의 개신교 강경파들도 이를 주장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이 수치의 신빙성은 둘째 치고 이 수치가 처음 주장된 원소스가 궁금한데 혹시 알아 봐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이 원자료는 예전에 읽어봤습니다. 19세기 중반의 책인 John Dowling의 {The History of Romanism}이 출전입니다. 이 책은 다시 18세기 영국 성공회 사제인 존 스캇의 {The History of the church of Christ} 에서 자료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다시 18세기 존 밀너 목사의 책을 증보한 것입니다. 밀너는 다시 16세기 영국에서 출판되어 대히트를 기록한 폭스의 {순교자 전 Foxe's Book of Martyrs}에 자료를 기초한 듯 합니다. 요새도 안식교 쪽에서 애용하는 폭스의 이 책은 다소 주의하면서 읽으셔야 하는데, 우선 자료가 좀 과장이 있습니다 (사실은 가해자 및 피해자의 진술 모두 허영에 의한 과장, 피해의식에 의한 과장이 있는데, 이 둘을 합치면 과장이 훨씬 커지게 마련입니다). 밀너의 책도 훑어봤는데 밀너도 폭스의 자료의 신빙성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도울링의 집계도 그런 과장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30년전쟁 같은 준-세계대전 급 종교전쟁에서 대량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누가 로마카톨릭이고 누가 프로테스탄트인지 정확히 알긴 힘듭니다. 특히 16-19세기, 아울러 안식교 자료 같은데 보면 반-카톨릭이란 이유로 카톨릭에 의해 박해 받은 사람들은 모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왈도파 같은 경우는 그렇겠지만, 완전히 박멸당한 보고밀이나 카타리 같이 명백히 그노시스/마니교적 이단인 경우까지 집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들이 이단이었다고 해서 공권력을 동원해 죽이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숫자에 있어서는 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광민
[질문]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 스위스 제네바에 있던 시절에 신정 정치로 자신의 반대파인 미카엘 세르베투스를 비롯해서 제네바 주민 수십명을 처형시켰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일부 사실, 일부 과장입니다. 우선 기술적으로 칼뱅은 제네바 시민이 아니라서 공직을 가질 수 없었고 따라서 "직접 신정정치를 휘두르며 학살을 했다"는 식의 대중적인 이미지는 과장입니다. 사실 세르베투스 사건 때 자유당이 장악한 시의회는 칼뱅의 적대파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민권이 없어 공직에 나갈 수 없다해도 종교적 영향력으로 간접적인 배후가 되기는 충분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형벌방식에 대해서는.....16세기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형벌이었다고 보셔도 무방하며, 특별히 칼뱅의 예정론에 기반한다면 그 형벌들이 가혹하고 엄격하게 집행된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쓴 글을 한번 읽어보시고요.
/ 최광민
http://kwangmin.blogspot.com/2011/12/blog-post_6655.html
[질문]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가 처형당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의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주장이나 무한우주론같은 주장들을 들면서 그가 가톨릭에 의해 희생된 과학의 순교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러나 실제로는 과학적 이유와는 별개로 그는 토트와 같은 이집트 신화에 푹 빠져있었는데 이러한 것들 때문에 태양이 곧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주장을 내세웠을 뿐이며 그 밖에 헤르메티즘을 신봉하고 있었기에 그의 이단적 사상을 경계시한 가톨릭이 처형시켰고 즉 그는 과학을 위해 순교했다는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입장도 있던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변]
브루노 이야기 역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처음 읽었습니다.
중세 말부터 르네상스, 그리고 심지어 19세기 서유럽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헤르메스 트리메기투스의 비전을 발견했다느니, 전수했다느니 하는 신비주의가 유행했습니다. 일종의 신-플라톤주의와 영지주의, 그리고 연금술철학이 혼합된 사상입니다.
사실 브루노는 당시 기준으로는 사형당할 만 합니다.
그의 기소내용에는 (1) 로마카톨릭교회의 교리적 권위무시 (2) 삼위일체 및 성육신 부정, (3) 마리아의 동정녀 부정, (4) 성체변화 부정, (5) 기타 다중우주론, 영원우주론, 환생설 등등이 있는데, 얼핏 보기에도 무죄가 입증되거나 견해를 철회하지 않는 한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물론 그의 재판에서 주로 그의 특별한 다중우주론과 영원설 등등이 주요화제가 되긴 합니다만, 이와 관련된 주요쟁점은 그의 우주론이 당시 교회가 (영원우주론을 빼고) 수용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관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이 또한 역시 로마카톨릭 교회 당국의 권위를 손상시킨 죄에 속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주는 중심이 없고 무한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교회 당국은 이 경우 다중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유도될 수 있다고 보기도 했죠.
아울러 당시엔 연금술이나 점성술을 한다고 다 처형당하진 않았습니다. 가령, 신심깊은 루터파 신자였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생계를 위해 연금술과 점성술 지식을 활용했습니다.
아무튼 브루노는 자신의 우주관과 생명관을 과학적 관찰의 결과로 얻었다기 보다는, 신-플라톤주의적 철학적 사유로 그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그는 "천체는 영혼을 가진 생물이다"라고 믿었고, 인간, 악마, 천체를 세상을 구성하는 세가지 지적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브루노를 "과학의 순교자"라고 하긴 좀 그렇죠. 사실 따지고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도 당시엔 "과학"입니다. 따라서 굳이 말하자면, 브루노는 '자유사상의 순교자'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중세 시대는 암흑 시대였나요? 최근 사학계에서는 유럽의 중세 시대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중세 시대가에도 기술적, 사회적 진보가 있었고 특히 교회가 고대 학문의 저장고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기독교로 인해 중세 암흑이 도래했다는 기존의 학설이 깨지고 있다더군요. 하지만 반대로 소위 중세의 재조명의 사례들을 보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나 일부 중앙집권에 성공한 국가들과 같이 극히 예외적인 사례들로만 국한하여 이것들을 일반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연금술 탄압의 사례처럼 기독교가 유럽의 기술과 과학 발전에 일종의 규제를 가했고 그로인해 발전이 더뎌지는 일이 있었다는 점에서 중세는 암흑시대가 맞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변]
고대 말인 6세기에서 중세 중반인 12세기 서유럽 역사를 살펴보면, 서유럽 로마문명 붕괴는 게르만족 대이동이 시작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프랑크족을 뺀 로마제국 영내 모든 게르만족은 아리우스파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카톨릭으로 개종한 프랑크족이 프랑크왕국을 확장한 후 서유럽 거의 전역이 일시적으로 안정되어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불릴만한 소규모 문예부흥이 잠깐 있었다가, 9세기 이후 프랑크 왕국이 분열/몰락한 후 노르만/바이킹의 약탈과 정복활동이 최고점에 이른 10-11세기엔 다시 문명이 거의 붕괴되었습니다. 당시 약탈로 붕괴된 유럽에 고대문명을 재이식한 것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수도원에 보존된 자료를 들고 본토로 온 수도사들이었습니다.
20세기 중세문화사학자인 후이징가의 연구 등에 따르면, 11-13세기는 기술과 생산, 문화 면에서 많은 도약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잉여생산물 거래/축적, 화폐경제 확산, 평화지속, 고딕양식, 아르스노바 예술양식, 신학/철학이론 발전, 봉건제 안착 등이 정착된 12세기를 후이징가는 "기적의 세기"라 불렀습니다. 이 시기는 르네상스 전의 르네상스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전 기간 동안 서유럽의 단독종교 역시 기독교이지 않나요?
중세의 퇴보를 기독교의 억압으로 설명한 에드워드 기본 류의 논리 중에 가장 취약한 약점은, (1) 심지어 15세기 초반까지도 동방의 비잔틴 제국은 당시 서방문화의 최대강국으로 건재해 있었다는 점, (2) 그 기간 서유럽에서 일어난 몇몇 문예부흥을 무시한다는 점 등입니다.
/ 최광민
[질문]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내의 개신교 교파들은 혁명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나요? 또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들은 프랑스 내의 개신교 종파들을 어떻게 대우했나요?
[답변]
바르톨로메오 학살에서 살아난 위그노/프로테스탄트인 나바르의 앙리가 로마카톨릭으로 (명목상) 개종하는 조건으로 프랑스의 앙리4세로 즉위하면서 1598년 발표한 낭트 칙령은 그로부터 100년 후인 1685년 루이 14세가 퐁텐블로 칙령을 선포하면서 폐지되어 프랑스 내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가 억압되었습니다. 이로서 상공업자들이 주가 된 수백만의 프로테스탄트가 프랑스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탄압이 공식적으로 중단된 것은 다시 100년 후인 1787년 베르사이유 칙령과 이어 2년 후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 발표된 인권선언의 결과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때 여러 프로테스탄트 인사들이 혁명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지만, "위그노/프로테스탄트"를 대표하는 그룹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로베스피에르 공포정치 약 2년 간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예배가 중단되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다시 종교의 자유를 회복합니다. 그런 점으로 볼때, 딱히 프로테스탄트에게 종교적으로 우호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프랑스 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가 개신교 종파들의 예배를 금지시켰다고 하셨는데 혹시 관련사료가 있을까요?
[답변]
토마스 카알라일이 쓴 {프랑스 혁명사}에 당시 혁명지도부의 종교정책에 대한 시니컬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시고요.
지난번에 나찌의 "기독교 말살정책"에 대해 제가 나찌의 "긍정적 기독교 Positives Christentum"를 설명하면서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기존 기독교를 대체하기 위해 혁명파들이 고안한 일종의 국가종교인 "이성의 종교 Culte de la Raison"나 "최고존재의 종교 Culte de l'Être suprême"에 대해 말씀드렸죠?
일단 프랑스 대혁명 전야의 프랑스 종교지형을 보면, 루이14세 이후 대혁명까지 100년 간 칼뱅주의 프로테스탄트 (위그노)가 완전히 쪼그라든 상태였기 때문에, 혁명당국이 특별히 프로테스탄트를 겨냥해서 종교정책을 펴고 말고 할 게 없었습니다. 따라서 혁명지휘부가 직접 겨냥한 것은 로마카톨릭입니다. 하지만 1792년부터 로베스피에르가 실각 후 처형된 1794년 까지의 프랑스 혁명공화국의 단독 공식종교는 "이성의 종교" 및 이어진 "최고존재의 종교였습니다. 따라서 혁명정부의 종교정책은 주요기조는 반-카톨릭이지만 사실상 반-기독교입니다.
혁명 후, 무신론으로 무장한 일부 혁명지도부에서 1792년 "이성의 종교"를 공표하면서 대중들에 의해 수백 명의 로마카톨릭 주교/사제/수도사/수녀를 대상으로 한 처형과 투옥이 일어났습니다. "9월 학살"이라고 부릅니다. 이어 1793년에는 반-교회법이 제정되어 교회 건물과 재산의 몰수가 진행되었습니다. 나아가 아예 "주님의 날 / 주일"을 뜻하는 라틴어 "dies Dominucus"d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dimanche"의 사용이 금지되었고, 또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6세기에 도입한 그레고리우스 역법이 폐지되고 프랑스 혁명력으로 대체되면서 교회의 모든 성일들이 폐지되었으며, 또 기독교 교회력의 기본이 되는 1주7일제가 폐지되고 1주10일제로 강제전환되었습니다 (2년 후 혁명력의 비효율성 때문에 그레고리우스력이 복원됩니다.)
혁명당국에 접수된 프랑스 각처의 교회들은 "이성의 신전"으로 개조되어 거기서 그리스/로마종교 풍의 "이성의 축제"란 의식을 벌였습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도 이때 신전으로 개조되었습니다. 가령, 제대 등이 해체되고 거기에 "철학에게 헌정"된 제단이 차려지고, 이성과 철학의 여신들이 등장하여 제전을 치르는데 사실 매우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조롱하는 행위였습니다.
자코뱅파가 실권을 장악한 후, 반-카톨릭이지만 무신론자는 혐오했던 이신론자 로베스피에르는 "이성의 종교"가 너무 과도하게 무신론적이고 반-종교적 프로파겐다를 펼치는데 쐐기를 박고, 보다 이신론적이고 기독교 색채를 입힌 대안으로 "최고존재의 종교"를 창설합니다. 그는 볼테르가 했던 "만약 신이 없다면, 하나 발명하는게 필요하다"란 말을 매우 좋아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통합의 매개로서 종교의 역할을 중시 여긴거죠. 이 대안종교는 로베스피에르의 처형과 함께 실질적으로 1794년에 종언을 고했고 나중에 나폴레옹이 이를 금지시켰습니다. 교회의 공식예배가 허용된 것은 1795년이지만, 이것도 매주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으며, 교회타종 이라든지 십자가를 외부에 거는 행위 등은 여전히 금지되었습니다. 이어 혁명군이 1799년 로마를 점령해 교황 피우스 6세를 투옥하고 로마에 신-로마공화국을 선포하는 등 나폴레옹이 권좌에 오를 때까지 프랑스 공화국과 로마카톨릭 간에는 강렬한 긴장이 있었습니다.
/ 최광민
[질문] 교황 비오 12세는 나치와의 협력과 저항 중 어느 쪽에 가까웠나요? 당시 비오 12세는 나치의 유대인 탄압 등과 같은 일에 강력한 비판하지 않았으며 특히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의 만행을 묵인하고, 또 전후에 남아메리카로 나치 전범들을 도주시키는 일에 관여했다는 점에서 나치의 적극적인 콜라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있던 반면, 또 다른 측에서는 교황에 오르기 전부터 나치를 비판하는 회칙을 발표하거나 이탈리아 내의 수십만의 유대인들을 수도원 등으로 도피시키는 등 나치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데 어느쪽이 진실인가요?
[답변]
이건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코멘트 해드리가 힘듭니다. 다만, 바티칸의 정체성이 종교적이면서도 수 세기 간 매우 "정치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신다면, 교황의 지위에서의 그의 결정 역시 일부 종교적, 일부 정치적 선택이란 점을 생각해 볼 수는 있겠죠. 그렇게 정치적인 조직에서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한가지 관점만 고수할 거라고 생각하는게 오히려 말도 안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최광민
[질문] 무솔리니의 사위 치아노의 일기에서 히틀러가 교황 비오 12세를 납치하려고 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심지어는 교황을 아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총살시키고 바티칸 시국을 불태우려고 했다는 주장도 있더군요.
[답변]
역시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코멘트 해드리가 힘듭니다.
/ 최광민
[질문] 크롬웰이 아일랜드를 정복할 당시 같은 개신교인들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나요? 또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지만 크롬웰이 여자관계가 굉장히 지저분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아일랜드의 일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 청교도/퓨리탄 계파 중 국교 개념을 거부하며 크롬웰 등이 주도한 독립파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다른 교파의 프로테스탄트" 정도가 아니라 같은 "퓨리탄 "이라도 자신들과 종교적,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10/blog-post_31.html
크롬웰의 사생활 건은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
/ 최광민
[질문] 북아메리카의 청교도 공동체는 성행위와 심지어 간통에 대해 굉장히 관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메이플라워호의 청교도들이 정착한 뒤 보스턴은 창녀들로 번창했고 1770년대의 북잉글랜드의 결혼한 여성의 절반이 결혼 전에 이미 임신한 상태였고 메사추세츠의 콩코드라는 마을은 태어난 아기의 3분의 1이 사생아일 정도로 청교도들은 흔히 알려진 금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문란했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칼뱅이 보다 조직적으로 "신정통치"하던 제네바는 천국이 되었을까요?
물론 제대로 된 청교도라면 윤리적으로 매우 엄격해야 합니다. "율법"을 중시하는 청교도의 교리 상 그래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초기 미국 이주민들이 모두 "윤리적으로 엄격한 청교도"였다는 주장의 근거는 뭘까요?
많이들 착각하시는데, 심지어 소위 첫 "필그림"인 메이플라워호에 승선한 모두가 "(분리파)청교도"였던 것 조차 아닙니다. 그 배에는 분리파 청교도 ("필그림")도 있었지만 종교적 이유가 아닌 경제적 이유로 승선한 선원/이주민도 있었고, 정착한 후에도 종교적인 문제로 (가령, 크리스마스 축일문제) 양측 간 갈등이 있었습니다. 청교도의 본격 이주가 시작된 후에도 역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여러가지 목적으로 배에 올랐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10/blog-post_31.html
이런 일화들은, (사실여부를 떠나)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똑같다"는 진리만 역설할 뿐입니다.
/ 최광민
[질문]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했나요?
[답변]
명시적으로 그랬던 적은 없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밀턴의 {실락원}과 {복락원}을 처음 읽었습니다. 당시 저는 밀턴이 올리버 크롬웰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기도 한 강고한 청교도였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로마 신화의 모티프가 상당히 녹아들어가 있는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 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왠지 청교도라면 {실락원} 바로 전에 읽었던 존 번연의 {천로역정} 같이 성서구절로 가득차 있는 책을 쓰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삼위일체와 관련된 논쟁에서는 늘 '어떤 형식의 삼위일체론'인가를 먼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실 칼뱅도 "삼위일체"란 용어가 그 개념을 담기에는 좀 불완전한 용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밀턴의 {실/복락원}을 읽다보면 성부와 성자/그리스도의 관계가 약간 아리우스파 적인 종속관계로 묘사된다는 느낌도 조금 받습니다. 발표 당시에도 다소 간 신학적 논란이 있었지만 대체로 19세기 초반까지는 {실/복락원}이 영국국교회의 신학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다는 평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초반에 밀턴의 작품이라고 여겨질 만한 미완성 라틴어 논고인 {De Doctrina Christiana, 기독교의 교리에 대하여}가 발견되었는데,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 논고에서 설명된 삼위일체에서의 "성자/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 논고를 바탕으로 그의 {실/복락원}을 재해석하는 시도들이 많이 있어왔습니다.
삼위일체 논쟁 초반기의 핵심논쟁은 "성자의 (영원한) 선재성"입니다. 아리우스는 "성자의 탄생"을 창조보다는 앞서나 성부의 존재보다 "시간적 후순위"로 이해함으로써 성자를 성부에 질적으로, 또 존재적으로 종속시킵니다. 하지만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이어지는 정통신조들 "성부가 성자를 낳음"이란 개념은 "영원 (속에서의) 탄생"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아리우스를 비판하면서 아리우스의 상관이던 알렉산드리아 주교 알렉산드로스는 콘스탄티노플 주교인 (역시) 알렉산드로스에게 이 점을 강조합니다. 즉, 창조자로서의 성자를 피조된 세계에 속성에 해당하는 시공간의 축에 놓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For the expression, "was not," ought either to be reckoned in time, or in some place of an age. But if it be true that "all things were made by Him," it is established that both every age and time and all space, and that "when" in which the "was not" is found, was made by Him. And is it not absurd that He who fashioned the times and the ages and the seasons, in which that "was not" is mixed up, to say of Him, that He at some time was not? " Colossians 1:16-17 --- {To Alexander, Bishop of the City of Constantinople}
....;존재하지 않았다'란 표현은 시간 혹은 공간 속에서 인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물이 그 (=성자/예수)에 의해 창조되었다"라고 할 때, 이것은 즉, 모든 시대와 시공간, 그리고 '존재하지 않음'을 상정할 '때' 역시 그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던 시간과 시대와 때를 만드신 그 분에게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까요..... / 번역: 최광민
그런데 밀턴의 작품을 추정되는 저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에서 묘사되는 성자는 어떤 맥락에서는 '영원'하다고 - 즉, 영원으로부터 탄생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어떤 단락에서는 어떤 시간 상에서 탄생한 것처럼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밀턴이 '성자의 영원한 (=영원으로부터의) 탄생'이란 정통적 삼위일체론에서 이탈한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일단 이 부분이 부정되어야 아리우스적인 '본질적/존재론적 종속설'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니까요.
/ 최광민
[질문]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의 배경과 그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건 한가할 때 자료를 좀 들춰봐야 할 것 같아서 코멘트 드리기 힘듭니다.
[질문]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 및 에이브러햄 링컨의 신앙관은 어떠했나요? 또 미국이 개신교 이념에 건국된 국가라는 미국 보수우익들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한 계몽주의자들의 이신론에 강력한 영향을 받은 미국 국부들의 종교적 입장과 그 헌법정신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개신교적 프리메이슨" 적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렸다고 말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프리메이슨'을 '악마숭배단체'로 보느냐 아니면 '박애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면서 "그럴싸한/유아적인 오컬트적 의식/의례와 포장한 속물적 리버럴들의 써클단체'로 보느냐는 각자 선택하기 나름이겠죠.
(공개적인 무신론자들도 몇몇 있지만) 미국 국부들이 언급하는 "God"은 꼭 "기독교의 신"과 동일하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대체로 말하면 그들 다수는 "기독교적 이신론" 혹은 "이신론적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전자는 사고의 색채가 기독교적일 뿐이라는 것이지 꼭 그들이 기독교도란 뜻은 아닙니다. 후자의 경우는, 이들이 정말 기독교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보수우익이 생각하는 식의 그런 "근본주의 기독교도"들하곤 매우 다른 사람들인 것은 확실합니다.
링컨의 개인적 신앙관은 자세히 연구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만, 기본적으로 침례교의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 19세기 대유행이었던 부흥집회 등에 꽤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고 관련된 몇몇 일화들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유사상가에 가까운 면모도 보인다는 주장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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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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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로마카톨릭 (+ 정교회) vs. 프로테스탄트 #05: 포럼 (xo8gh8, qorcks200) 질문들에 대한 답변
목차
로마카톨릭교회의 수장권 주장에 대해
- 초기교회에서의 로마주교/감독의 지위는?
- 베드로는 로마주교로서 순교했는가?
- 서유럽 로마카톨릭 교황이 오늘날 같은 수장권을 주장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 "너는 베드로다"
- 바울의 로마방문 이전에 로마교회가 있었고 장로/감독이 있었다는 사실은 교황수위권을 주장하는 로마카톨릭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을까?
로마카톨릭교회의 연옥/대사 교리에 대해
- 연옥교리의 기원은?
- 고해성사의 기원?
- 오리엔트 정교회와 앗시리아 교회의 고해성사는?
- 고해성사는 사도들이 직접 제정한 성사인가?
- 대죄와 소죄의 구분에 대한 로마카톨릭, 정교회, 오리엔탈정교회, 앗시리아동방교회의 견해는?
-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 (~면죄부)에 관해
- 중세시대부터 종교개혁 시기까지 로마카톨릭은 대사 (~면죄부)의 남용과 악용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 십자군에게 교황이 대사를 내린 것은 사실인가?
- 교황 레오10세와 바티칸은 대사와 관련된 오용/남용을 의도 혹은 묵인했을까?
- 완전사면 (full remission of sins)의 정의는?
- 완전사면 (=전대사 (全大赦))란?
- '대사 (인둘겐스)'를 '면죄부'라고 표현하는 것은 프로테스탄트 측의 악의적 왜곡인가?
- 대죄는 완전사면의 대상에 속하는가?
- 요한 테쩰과 같은 방식의 대사 오남용 사례가 중세에 있었나?
- 로마카톨릭 교회의 대사, 잠벌, 성인통공의 의미는?
- 공심판과 사심판에 대한 견해
- 윌리엄 틴들과 영혼수면설?
- 틴들의 영혼수면설은 현재 기독교의 일발적 사후관과 꽤 다른 것이 아닌가?
- 초기교회는 세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보았는가?
로마카톨릭, 정교회, 프로테스탄트의 성체 이해에 대해
- 정교회의 성체 이해
-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 실체변화 설명
- 루터, 쯔빙글리, 칼뱅의 이해
종교개혁과 성인공경에 대해
- 성인들에 대한 기도와 공경의 기원은?
- 마리아/성인 공경은 이교에서 유래한 것인가?
- 루터, 쯔빙글리, 칼뱅은 마리아의 무염시태, 평생동정녀, 몽소승천 같은 로마카톨릭 교리를 지지했을까?
- 마르틴 루터는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믿었을까?
- 루터가 모친에게 '카톨릭에 남아있으라'고 말했다는 속설은 사실인가?
-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성물수집과 루터의 입장?
종교개혁 측의 "오직 성서 (솔라 스크립투라)"와 "오직 믿음 (솔라 피데)"에 대해
-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서번역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내용은 사실인가?
- 외경문서를 정경에서 제외한 마르틴 루터의 결정은 잘못인가?
- 칭의교리에 관한 정교회, 오리엔탈정교회, 앗시리아동방교회의 견해는?
- 1-2세기 기독교도들의 칭의관은 무엇이었을까?
- 서유럽 중세시대 일반 민중들의 모국어 문자 문해율은?
- 로마카톨릭교회는 일반인의 성서독서를 금지했는가?
- 민중들의 문해율이 낮았다면, 왜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은 라틴어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하려고 한 것인가?
- 툴루즈 주교회의의 포고령 이외에 일반인의 성서독서를 금하는 로마카톨릭 측의 포고령이 있는가?
- 루터 이전의 독일어 번역이 있었다면, 왜 루터의 비텐베르트 성서의 파급력은 그렇게 컸던 것인가?
- 1-3세기 기독교도들은 성서를 어떻게 보유했으며, 그들의 예배형식은 어떤 것이었나?
- 중세 로마카톨릭 교회에서는 라틴어 미사 후 모국어로 그 내용을 설명해 주었나?
- 전통주의카톨릭 신자의 글에 대한 논평
- 정교회의 성서해석권은 어떤 것인가? 교회는 언제부터 성서해석을 독점했는가?
- 로마카톨릭의 성서독서
- 성서무오, 축자영감, 유기적 영감설?
- 원죄는 연좌죄인가?
기타 역사
- 올리버 크롬웰이 아일랜드에서 벌인 학살은 정당화 될 수 있을까?
- '로마카톨릭 5천만명 학살역사'란 속설의 근거자료는 무엇인가?
- 장 칼뱅은 신정정치로 세르베투스와 시민 수십명을 처형시켰을까?
- 조르다노 브루노는 '과학과 이성의 순교자'일까?
- 중세는 과연 '암흑'시대였을까?
- 프랑스 대혁명 지도부의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입장
- 교황 비오12세와 나찌의 관계는?
- 교황 비오 13세와 뭇솔리니의 관계는?
- 크롬웰은 아일랜드에서 개신교도도 학살했을까? 크롬웰의 사생활은?
- 북아메리아 청교도 공동체는 성적으로 문란했을까?
- 존 밀턴과 삼위일체?
- 미국 국부들의 종교적 신앙은?
-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에 대한 교황과 로마카톨릭 주교들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나?
평소 가톨릭과 관련하여 궁금했던 점이 많았는데 문항을 나눠서 질문을 하겠으니 혹시 괜찮으시다면 답변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질문 순서는 주제에 맞춰 읽기 쉽게 추후에 재조정했습니다 (최광민)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 로마 감독의 지위는 어떠했나요? 초기 기독교 시대에 고린도 교회가 분열하였을 때 당시 로마 감독이였던 클레멘트는 자신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니 고린도 교회는 자신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는 서신을 썼다고 했는데,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로마 감독은 다른 감독들보다도 우위에 있었나요?
로마카톨릭이 주장하는 교황수장권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초기교회의 로마 주교가 아무 힘도 없었다"는 식의 주장을 과도하게 펼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 역사적인 로마 주교의 지위가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AD 1세기 말부터 로마 주교/감독의 지위는 좀 특별한 면이 있었습니다.
일단 로마는 정치/경제적으로 제국의 수도라는 우월적 지위를 (로마,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순) 가지고 있었고,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통해 매우 초기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며, 로마 일대는 1세기 중반부터 로마 중앙정부의 크고 작은 박해에 여러차례 노출되어 있어 (가령, 네로 시절) 초기부터 순교자를 배출하였고, 또 베드로와 바울이란 두 대표적 사도가 모두 로마에 가서 신자들을 보살피고 또 순교하기까지 했다고 여러 지역교회들의 다수 주교들이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주교들이 로마주교직에 대해서 매우 명예로운 자리라며 찬사를 보낸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대교회의 직제상 타 지역 주교는 다른 주교의 치리권에 개인적으로 개입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고대의 로마 주교가 중세의 교황과 같은 형식으로 타 지역 주교의 치리 문제에 "상관"의 자격으로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AD 4세기 이후에도 "공회의"가 소집되면 로마 주교는 본인 혹은 특사를 공회의에 파송해서 로마교회의 견해를 다른 지역교회의 주교들 앞에서 표명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동서방 교회가 공히 "공회의"로 수용하는 주요 전체공회의에서 로마 주교는 이들 공회의를 주관하지도, 그 진행을 장악하지도 못했습니다. 확실히 다른 지역 보편교회들에 대한 로마교회의 "수장권"을 말하기는 불리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콘스탄티노플 총주교 네스토리우스의 소위 '양성론' 논쟁을 다룬 제 1차 에페소스 공회의에 이어, 단성론 논쟁인 유티케스 논쟁 중에 예수의 신-인성 결합문제에 대해 로마 주교 레오1세가 에페소스 제2차회의 ("강도회의") 직전에 콘스탄티노플 주교 플라비아노스를 지지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 편지는 당시 에페소스 제2차회의에서는 묵살되었습니다. 이 편지에 담긴 그의 견해가 나중에 칼케돈 공회의에서 공식채택 되면서 교리문제에 관한 로마 주교의 위상이 그 이전과 비교해 크게 올라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레오1세는 단성파가 주도한 에페소스 공회의에서 단성론/합성론자인 콘스탄티노플 대수도원장 유티케스를 옹호한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디오스코로스를 꾸짖으면서, 알렉산드리아 제 1대 주교인 마르코스 (마가)가 로마 주교 베드로의 비서였으니, 알렉산드리아 주교는 로마 주교의 말을 들으라는 식으로 디오스코로스를 비판합니다. 물론 에페소스 제2차회의를 장악한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디오스코로스와 친-알렉산드리아 단성파 주교들은 레오1세의 이 편지를 완전히 묵살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설령 로마교회의 "초대주교"였다고 해도, 이것으로부터 다른 교회와 주교들에 대한 로마교회의 수장권이 자동적으로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티오키아 교회의 "초대주교" 역시 베드로이며, 안티오키아 교회의 주교직은 베드로 > 에보디오스 > 이그나티오스로 이어졌다고 고대교회들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 최광민
[질문] 베드로는 실제로 로마로 가서 거기서 감독직을 맡고 사역을 하다가 순교를 했나요?
[답변]
AD 2-3세기 교부들의 기록이나 (그 유명한 "쿼 바디스?" 가 등장하는) 위경 {베드로행전}을 보면, 베드로가 어떤 식으로든 (실제 방문을 포함해) 로마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은 확실하고, 또 베드로가 로마에 가서 사역하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클레멘스가 남긴 기록의 경우,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정황상 로마라고 추정은 가능합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감독/주교직"이란 표현은 좀 문제가 있는데, 베드로는 공식적으로는 "사도"이고, 전승에 따르면 그가 "리누스"를 감독으로 세운 것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주교/감독의 정의란 "사도의 바른 가르침과 권위를 직접 전승"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베드로 본인이 후대의 의미로서 "주교/감독"이라고 말하긴 정의상 약간 곤란하죠. 그리고 1세기 말까진 아직 사제/장로나 주교/감독이란 용어가 같은 직제 안에서 혼용되던 시대로 학계는 추정합니다. 앞서 말한대로, 주교/감독직의 강화는 그노시스 이단의 발흥하는 1세기 후반 이후 다양한 이단에 대처하기 위한 교회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여겨지니까요.
/ 최광민
[질문] 로마 감독이 서유럽 기독교 세계의 수장으로서 현재의 교황과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답변]
단계적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일단 칼케돈 공회에서 다룬 예수의 신/인성 논쟁에서 로마주교 레오1세의 견해를 바탕으로 공식신조인 {칼케돈 신조}가 작성되면서 로마교회의 신학적 입지가 강화됩니다. 하지만 칼케톤 공회의이후 교회, 특별히 시리아와 이집트 지역은 단성/합성파가 주류를 이뤘고, 이 지역이 이슬람에 병합되는 7세기 까지도 칼케돈파는 이 지역을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서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라틴/로마교회가 동로마 비잔틴 황제 및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에게 맞설 만한 실질적인 정치력이 생긴 것은, AD 5세기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후 비잔틴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힘을 잃고 난 6세기 이후부터 시작하여, 동로마 지역이 단성/양성/칼케돈파 분쟁과 및 이슬람 등장과 함께 도래한 성화상 논쟁으로 정치적/종교적 혼란에 빠진 7-8세기를 거쳐, 아리우스파인 다른 게르만족과 달리 니케아신조를 따르는 로마교회에 귀의하고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을 장악하게 되는 프랑크 왕국의 통치자 카롤루스 마그누스 (샤를마뉴)가 동로마에 정치/군사적으로 거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동시에 로마 주교가 샤를마뉴에게 서로마황제의 지위를 대관한 이후인 8-9세기 이후에 완전히 자리잡았다고 보면 대략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후대의 일이죠.
이후 10-11세기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가 선교지 관할권 충돌문제 및 성령이 누구로부터 오는가를 두고 벌어진 필리오케 논쟁 이후, 로마주교가 서유럽 전체의 관할권 뿐 아니라 동방에 대해서도 단독 "수장권"을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 최광민
[질문] 사도 바울이 로마 제국 전역에 선교를 떠나기 이전부터 로마 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들에 의해 이미 교회가 개척되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로마에 사도 바울이 가기 이미 이전부터 상당 수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바울과 더 나아가 베드로가 로마에 가기 이전부터 로마에는 장로와 감독이 있었을테니 교황수위권을 주장하는 가톨릭 측에 대한 강력한 반박 사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답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된 사례만 봐도 로마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의 로마서를 읽어보면 이미 AD 40년대에는 그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걸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보통 바울이 AD 50년 대 후반에 로마에 갔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사도권 계승"이겠죠? 그 전에 있던 장로/감독을 사도가 직접 임명하거나 인준하지 않았다면 "계승"의 의미가 없으니까요. 로마교회에서 (1) 베드로 -- (2) 리누스 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 최광민
[질문] 동방 정교회에서는 가톨릭에서 베드로의 수위권의 근거로 사용하는 마태복음 16장 18-19절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또 4세기 경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이 반석 위에"라는 절에서 반석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면 로마 교회에서 "반석"의 의미가 베드로를 뜻하며 교황수위권의 근거로서 사용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답변]
우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르네상스 작곡가인 팔레스트리나의 모테트 {Tu es Petrus 너는 베드로다}를 들어보시고요 (킹스칼리지 합창단의 녹음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녹음입니다)
{마태(오)의 복음서} 16장 18-19절에 나오는 예수의 말을 가사로 합니다.
가령, AD 5세기 무렵의 동/서방의 기독교 교부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3세기 중반, (서방)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주교 키프리아누스는 각 교회는 "각 주교"에 의해 세워졌고, 각각은 바로 이 개별 주교들에 의해 치리된다고 적습니다.
라틴어 {불가타}의 번역자이기도 한 4-5세기 히에로니무스는 "모든 주교들"이 "천국의 열쇠들"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교들"은 "로마"의 주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4세기 (동방) 소아시아 닛사 주교 그레고리오스는 해당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통해 천국의 열쇠들을 모든 "주교들"에게 줬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물론 이 "주교들"은 "로마"의 주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6세기 (서방) 스페인의 세비야 주교인 이시도루스는 위의 구절을 언급하면서, "묶고 푸는 권한"은 그리스도를 통해 베드로에게 우선 주어졌고, 다른 사도들도 사도의 교제 가운데 동일한 권한을 부여받아 베드로와 동등한 자격으로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즉, 각 지역의 주교좌는 모두 동등한 그리스도의 교회란 뜻입니다. 6세기면 이미 동/서방 교회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던 때인데도 여전히 동일한 관점이 고수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 최광민
서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라틴/로마교회가 동로마 비잔틴 황제 및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에게 맞설 만한 실질적인 정치력이 생긴 것은, AD 5세기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후 비잔틴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힘을 잃고 난 6세기 이후부터 시작하여, 동로마 지역이 단성/양성/칼케돈파 분쟁과 및 이슬람 등장과 함께 도래한 성화상 논쟁으로 정치적/종교적 혼란에 빠진 7-8세기를 거쳐, 아리우스파인 다른 게르만족과 달리 니케아신조를 따르는 로마교회에 귀의하고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을 장악하게 되는 프랑크 왕국의 통치자 카롤루스 마그누스 (샤를마뉴)가 동로마에 정치/군사적으로 거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동시에 로마 주교가 샤를마뉴에게 서로마황제의 지위를 대관한 이후인 8-9세기 이후에 완전히 자리잡았다고 보면 대략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후대의 일이죠.
이후 10-11세기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가 선교지 관할권 충돌문제 및 성령이 누구로부터 오는가를 두고 벌어진 필리오케 논쟁 이후, 로마주교가 서유럽 전체의 관할권 뿐 아니라 동방에 대해서도 단독 "수장권"을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 최광민
[질문] 사도 바울이 로마 제국 전역에 선교를 떠나기 이전부터 로마 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들에 의해 이미 교회가 개척되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로마에 사도 바울이 가기 이미 이전부터 상당 수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바울과 더 나아가 베드로가 로마에 가기 이전부터 로마에는 장로와 감독이 있었을테니 교황수위권을 주장하는 가톨릭 측에 대한 강력한 반박 사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답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된 사례만 봐도 로마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의 로마서를 읽어보면 이미 AD 40년대에는 그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걸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보통 바울이 AD 50년 대 후반에 로마에 갔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사도권 계승"이겠죠? 그 전에 있던 장로/감독을 사도가 직접 임명하거나 인준하지 않았다면 "계승"의 의미가 없으니까요. 로마교회에서 (1) 베드로 -- (2) 리누스 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 최광민
[질문] 동방 정교회에서는 가톨릭에서 베드로의 수위권의 근거로 사용하는 마태복음 16장 18-19절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또 4세기 경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이 반석 위에"라는 절에서 반석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면 로마 교회에서 "반석"의 의미가 베드로를 뜻하며 교황수위권의 근거로서 사용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답변]
우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르네상스 작곡가인 팔레스트리나의 모테트 {Tu es Petrus 너는 베드로다}를 들어보시고요 (킹스칼리지 합창단의 녹음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녹음입니다)
18 κἀγὼ δέ σοι λέγω ὅτι σὺ εἶ πέτρος, καὶ ἐπὶ ταύτῃ τῇ πέτρᾳ οἰκοδομήσω μου τὴν ἐκκλησίαν, καὶ πύλαι ᾅδου οὐ κατισχύσουσιν αὐτῆς. 19 δώσω σοι τὰς κλεῖδας τῆς βασιλείας τῶν οὐρανῶν, καὶ ὃ ἐὰν δήσῃς ἐπὶ τῆς γῆς ἔσται δεδεμένον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καὶ ὃ ἐὰν λύσῃς ἐπὶ τῆς γῆς ἔσται λελυμένον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 그리스어
18 Et ego dico tibi, quia tu es Petrus, et super hanc petram ædificabo Ecclesiam meam, et portæ inferi non prævalebunt adversus eam. 19 Et tibi dabo claves regni cælorum. Et quodcumque ligaveris super terram, erit ligatum et in cælis: et quodcumque solveris super terram, erit solutum et in cælis. --- 라틴어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한국어 새번역
해당 복음서 구절을 앞뒤 문맥에 맞춰 평이하게 읽으면, 이 말은 예수가 케파(아람어)/베드로(그리스어)에게 하고 있는 말이고, 문맥상 예수가 말하는 '반석'은 베드로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아마도 대화에 사용했을 아람어로 하면 이렇게 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한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 혹은 다른 단어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하는 재치있는 언어유희 (pun)를 가끔씩 사용하는데 사실 이 구절도 그런 한 예로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가령, 앞의 '케파'는 베드로지만, 뒤의 '케파'는 바로 앞에 등장하는 그의 '믿음'의 믿음의 '반석/케파'로 이해한다는 것이죠. 저는 두 케파 모두 베드로를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앞뒤 '케파'는 '베드로 개인'과 '반석'이란 뜻이 이중적으로 중의적으로 조합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베드로 πέτρος" 다, 내가 이 "반석 πέτρᾳ"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가 아마도 대화에 사용했을 아람어로 하면 이렇게 됩니다.
너는 "케파"다. 내가 이 "케파"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복음서에서 예수는 한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 혹은 다른 단어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하는 재치있는 언어유희 (pun)를 가끔씩 사용하는데 사실 이 구절도 그런 한 예로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가령, 앞의 '케파'는 베드로지만, 뒤의 '케파'는 바로 앞에 등장하는 그의 '믿음'의 믿음의 '반석/케파'로 이해한다는 것이죠. 저는 두 케파 모두 베드로를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앞뒤 '케파'는 '베드로 개인'과 '반석'이란 뜻이 이중적으로 중의적으로 조합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구절을 다른 모든 교회에 대한 "로마주교의 수장권"을 주장하는 로마카톨릭 식으로 읽게 되는 경우, 즉, "1대 로마 주교인 베드로를 계승하는 교회가 (혹은 교회"만") 그리스도의 교회이다"라는 식으로 읽게 되는 경우, 로마 주교의 치리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란 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통해 세운 '참 교회'인 '로마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정교회의 경우는 저 구절을 그냥 액면가로 읽습니다. 다만, 정교회의 입장은 오직 "로마 주교"만이 베드로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모든 주교가 그를 (정확히는 그와 사도적 권위를 나눠갖는 모든 사도들) 계승한 것으로 봅니다. (사실 안티오키아 교회의 1대 주교도 베드로입니다) 따라서 로마 주교는 모든 합법적 주교 가운데 하나인 형제일 뿐이지, 로마 주교가 다른 지역의 주교들보다 수위에 있다는 근거를 저 구절에서 이끌어낼 수 없다고 여깁니다. "주교"라는 지위의 고대적 의미가 "(이단에 대해) 정통교리의 계승자"란 점에서 본다면, 베드로와 사도들의 권위는 "특정지역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바로 "교리수호자"로서의 주교들을 통해 이어진다고 풀이하는 것이죠.
3세기 중반, (서방)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주교 키프리아누스는 각 교회는 "각 주교"에 의해 세워졌고, 각각은 바로 이 개별 주교들에 의해 치리된다고 적습니다.
"Our Lord, whose precepts and admonitions we ought to observe, describing the honour of a bishop and the order of His Church, speaks in the Gospel, and says to Peter: "I say unto you, That you are Peter, and upon this rock will I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And I will give unto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and whatsoever you shall bind on earth sha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soever you shall loose on earth shall be loosed in heaven." Thence, through the changes of times and successions, the ordering of bishops and the plan of the Church flow onwards; so that the Church is founded upon the bishops, and every act of the Church is controlled by these same rulers." ---St. Cyprian, Epistle XXVI to the Lapsed
But you say, the Church was founded upon Peter: although elsewhere the same is attributed to all the Apostles, and they all receive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 St. Jerome, Against Jovinanius:
It is through Peter that Christ gave to bishops the keys of their heavenly prerogative. -- Gregory of Nyssa (Opp. tom iii)
5세기 초반, (서방) 이탈리아 브레스키아 주교 가우덴티우스는, 해당 구절에 대해 언급하면서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를 "베드로의 계승자"라고 합니다. 물론 "밀라노" 주교는 "로마" 주교가 전혀 아닙니다.
I beseech our common father Ambrose, that, after the scanty dew of my discourse, he may pour abundantly into your hearts the mysteries of the divine writings. Let him speak from that Holy Spirit with which he is filled, and ‘from his belly sha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and, as a successor of Peter, he shall be the mouth of all the surrounding priests. For when the Lord Jesus asked of the apostles, ‘Whom do you say that I am?’ Peter alone replies, with the mouth of all believers,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What reward did that confession at once receive? Blessedness indeed, and the most glorious power of the heavenly kingdom --- St. Gaudentius Tract. 16, De Ordin. Ipsius. Cited by J. Waterworth S.J., A Commentary (London: Thomas Richardson, 1871), pp. 105-107).
6세기 (서방) 스페인의 세비야 주교인 이시도루스는 위의 구절을 언급하면서, "묶고 푸는 권한"은 그리스도를 통해 베드로에게 우선 주어졌고, 다른 사도들도 사도의 교제 가운데 동일한 권한을 부여받아 베드로와 동등한 자격으로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즉, 각 지역의 주교좌는 모두 동등한 그리스도의 교회란 뜻입니다. 6세기면 이미 동/서방 교회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던 때인데도 여전히 동일한 관점이 고수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Thus the Lord says to him: 'You are Peter and upon this rock I sha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and I sha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So Peter first received the power of binding and loosing, and he first led people to faith by the power of his preaching. Still, the other apostles have been made equal with Peter in a fellowship of honor and power. They also, having been sent out into all the world, preached the Gospel. Having descended from these apostles, the bishops have succeeded them, and through all the world they have been established in the seats of the apostles. --- St. Isidore of Seville, {De Ecclesiasticus}
아무래도 저 구절이 "로마주교의 독점적 수위권"을 뜻하려면 타교회의 지위하향이 필요하므로, 서방의 로마카톨릭교회가 배타적 수장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 때는 프랑크왕국의 정치적 지원 하에 서방이 동방에 대해 종교/정치적인 독립권을 대외적으로 표방하게 되는 9세기 이후라 봐야겠죠. 물론 동방은 이슬람의 침략과 십자군 전쟁으로 을의 위치에 처할 때 서방에 약간 고개를 숙이긴 하지만, 그 전이나 이후나 대체로 서방 측의 주장을 무시합니다.
# 로마카톨리교회의 연옥/대사 교리에 대해
[질문] 연옥 교리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요?
[답변]
누가, 특별히 어떤 시점에 만들었다기 보다는, 연옥의 개념에 대한 생각은 사후 신자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는 방향일 듯 합니다.
기독교 신학에는 사후에 구천을 헤매는 망자의 혼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단 "구원받은" 신자가 죽어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사멸하거나 잠들지 않고 있다면, 그 영혼이 지옥에 갈리는 없으니 두가지 선택지만 남습니다. (1) 낙원(~천국)에 막바로 들어가거나, 혹은 (2) 솔직히 죽자마자 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거룩하게 살았다고 주장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으므로, 일반인들은 낙원에 최종적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종의 정화와 준비를 거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후자의 생각에서 발전된 개념이 연옥에 대한 개념입니다.
아래 제 글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답변]
누가, 특별히 어떤 시점에 만들었다기 보다는, 연옥의 개념에 대한 생각은 사후 신자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는 방향일 듯 합니다.
기독교 신학에는 사후에 구천을 헤매는 망자의 혼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단 "구원받은" 신자가 죽어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사멸하거나 잠들지 않고 있다면, 그 영혼이 지옥에 갈리는 없으니 두가지 선택지만 남습니다. (1) 낙원(~천국)에 막바로 들어가거나, 혹은 (2) 솔직히 죽자마자 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거룩하게 살았다고 주장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으므로, 일반인들은 낙원에 최종적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종의 정화와 준비를 거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후자의 생각에서 발전된 개념이 연옥에 대한 개념입니다.
아래 제 글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림보의 개념처럼 아마 연옥도 위와 같은 사유에서 점차 발전해 나간 개념으로 보이며, 서방교회에서는 11세기의 리옹 제2차회의에서 처음으로 구체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사후의 정화장소에 대한 연옥개념과 이에 아울러 연옥에 있는 이들을 위한 산 자들의 기도나 기타 헌물 등의 공덕의 혜택을 연옥에 있는 자가 받을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후자의 개념이 결국 연옥에 있는 자들을 위한 대사의 근거가 되는 것이죠. 로마교회의 이런 연옥은 일종의 "징벌"개념입니다.
이런 징벌적 연옥개념은 로마카톨릭교회에서 발전시킨 개념이며, 정교회는 공식적으로 연옥이란 개념과 용어를 부정하고, 설정 그런 정화의 상태가 있다고 해도 그걸 징벌개념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교회의 입장은 (프로테스탄트처럼), 인간의 모든 윤리적 상태는 죽는 시점에서 종결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연옥에서 잠벌을 제거할 어떤 개인적인 심판이란게 있을 수도 없고, 또한 세상에 있는 사람이 대사 (인둘겐스)를 통해 (존재하지도 않는) 연옥의 영혼에게 뭔가 해줄 수도 없습니다.
연옥을 외경에서 유추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교회는 바로 그 외경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을 "영감받은 정경"으로 인정하는 교단이란걸 기억하는게 좋습니다. 그들의 성서해석과 초기 7-8차 세계공회의에 연옥개념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정교회는 연옥을 로마교회의 발명으로 간주합니다. 4-5세기에 분리된 기타 고대교단의 입장도 마찬가집니다.
/ 최광민
/ 최광민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도 고해성사가 있었나요? 만약 고해성사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없었다면 고해성사는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에 생겨난 것인가요?
[답변]
기본적으로 고해/고백성사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는 회중 앞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죄를 회개하고 사제에게 "고백"한 후 사제에게서 적절한 권징절차 후 "사면"을 선언받는 두 단계로 구성됩니다. 즉, 고백과 사면/권징이 그 기본구성입니다.
두 단계 모두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고,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시행되는 현재의 형태는 아니겠지만 간음과 같이 세례받은 신도의 중죄, 배교했다 돌아온 자들에 대한 권징에 대한 AD 2-3세기 교부들의 저작들이나 이후 지역 주교회의의 공식적인 치리내용을 본다면 참회-사면/권징은 초기교회에서 자리잡았다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경우, 루터교단과 성공회는 원래 공적/사적 고백/사면을 성사로까지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 전통을 유지합니다. 루터교단은 최근에는 예배에서 공적고백과 사면만 시행합니다.
(루터나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강력한 권징을 옹호했습니다만, 대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너무 강해진 현대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은 아주 큰 교리적 문제에 대해서만 성찬교류금지나 출교/파문 정도의 조치를 취할 뿐, 나머지에 대해서는 다소 '각자도생'의 입장을 취한다고나 할까요? 아울러 오늘날 루터교단, 성공회 등을 제외하면 죄와 벌을 나누어 보는 시각이 많이 희석되어 있고, 심지어 많은 복음주의적, 은사주의적 프로테스탄트들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란 "개인적 확신"만으로 지은 죄에 대한 죄값 (벌)마저 동시에 말소되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신이 한 개인의 죄를 용서할 때 그가 치를 죄값마저 탕감하지 못하리라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는 여분의 잠벌에 대한 처리를 교회가 대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개인적 확신'을 누가 보증하는가가 진짜 문제겠죠. 그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와 죄값을 사면 받았다는 확신을 보증하는 것은 성직자일까요, 개인적 체험일까요, 양심일까요, 그도 아니면 어떤 계시일까요. 영화 {밀양}이 이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최광민
[질문] 오리엔탈 정교회나 네스토리우스파의 후신인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나요? 특히 보편 교회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에티오피아 정교회나 인도에 사도 도마가 세웠다는 기독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는지가 알고 싶습니다. 또 오리엔탈 정교회와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다는데 이에 대한 자료를 혹시 제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단성파 제교단 (이집트 꼽트, 시리아 야곱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에티오피아 등등) 및 양성파 (네스토리우스파/동방교회-구파/신파) 모두 공적/사적 고백/사면형식의 고해성사를 성사로 지킵니다. 인도의 경우 역사적으로 네스토리우스파와 단성파인 시리아 야곱파, 그리고 이후 들어온 로마카톨릭의 영향을 받은 몇 분파로 나뉘어 있으나, 이를 성사로 간주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성사의 경우, 로마카톨릭은 7이란 수에 맞춰서 7성사제를 운용하지만, 정교회나 기다 단성파, 양성파 교단은 꼭 7에 맞추진 않고 교회의 이름으로 성사적이라고 간주되는 의식을 폭넓게 성사로 간주합니다. 고해성사는 공통입니다.
윗 질문에 대한 제 답은 해당 교단의 웹페이지에 찾아보시면 잘 나와있습니다. 영어싸이트를 링크하겠습니다.
이집트 꼽트교회
http://www.copticchurch.net/topics/thecopticchurch/sacraments/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 고해성사가 있었다는 고해성사는 사도 시대부터 있었으며 고해성사는 사도들이 직접 제정한 성사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요?
성서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교회의 문서군에 속하는 AD 70-120년 경의 디다케 (12사도들의 가르침)이나 2세기 초/중반 교부인 유스티노스에 따르면, 참회를 교회에서 - 특별히 성찬을 받기 전에 하고 집례자는 사면선언을 합니다 (루터교단이나 성공회는 현재도 그렇게 합니다). 1세기 말의 디다케나 2-3세기의 사도헌장을 그 제목이나 내용이 암시하듯 당시 교회에 전수된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본다면 교회 내의 공적 참회절차에 대한 역사적 기원이 오래되었다고 봐야겠죠.
이 참회형식은 공개적/개인적 두가지 형태가 모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오늘날의 로마카톨릭교회의 그것과 형식면에서 같을 이유는 없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로마카톨릭교회나 기타 교단의 경우도 소죄의 경우는 꼭 사제 앞에서 고해성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기 교회의 가장 큰 대죄인 간음과 우상숭배/배교의 경우, 참회자에 대해서 교회는 그 속죄로서 성찬금지 등을 심지어 죽을 직전까지도 부과합니다. 따라서 보다 고대적 정의에서 본다면, 고해성사란 평이하게 말한다면 교회의 공식권징과 사면절차인 것이죠. 물론 이 사면을 "신에게 위임받아 사제의 직권"으로 면죄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의 용서를 사제가 선언"하는 것인지의 해석에는 차이가 있겠습니다. 프로테스탄트 (루터교단, 성공회 등등)은 대체로 후자로 이해합니다.
/ 최광민
[질문] 가톨릭에서 대죄와 소죄를 구분하는 교리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요? 또 동방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대죄와 소죄를 교리적으로 구분하나요?
[답변]
특정한 시기를 딱 꼬집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교회의 권징 대상이 되는 죄의 대소 문제에 대한 생각은 아주 초기부터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령, 코린토스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나테마 마라나타'에 처한다'고 적으며 죽을 때까지 파문을 명시합니다. 예수의 재림까지 교회가 징계대상자에 대해서 손을 뗀다는 뜻입니다.
특히, 세례교인의 간음은 (및 중혼)은 이미 1세기 말부터 (참회를 하더라도 거의) 성찬금지 등 준-파문에 상응하는 중죄로 간주되었습니다. (해석의 문제는 있지만) 이미 {신약성서}에서도 "성령훼방죄"는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간주되고 있고, 따라서 간음이나 우상숭배, 배교 등은 어떤 교단을 막론하고 모든 고대교단에서 파문 혹은 준-파문에 준하는 당연히 대죄에 속했습니다. 이런 죄들은 아예 성서에 예수 혹은 사도들의 말로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그 외의 대/소죄의 구체적 리스트는 시대와 지역 주교의 치리권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교회의 권징에 따른 실무적인 사안이니까요.
/ 최광민
두 단계 모두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고,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시행되는 현재의 형태는 아니겠지만 간음과 같이 세례받은 신도의 중죄, 배교했다 돌아온 자들에 대한 권징에 대한 AD 2-3세기 교부들의 저작들이나 이후 지역 주교회의의 공식적인 치리내용을 본다면 참회-사면/권징은 초기교회에서 자리잡았다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경우, 루터교단과 성공회는 원래 공적/사적 고백/사면을 성사로까지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 전통을 유지합니다. 루터교단은 최근에는 예배에서 공적고백과 사면만 시행합니다.
(루터나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강력한 권징을 옹호했습니다만, 대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너무 강해진 현대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은 아주 큰 교리적 문제에 대해서만 성찬교류금지나 출교/파문 정도의 조치를 취할 뿐, 나머지에 대해서는 다소 '각자도생'의 입장을 취한다고나 할까요? 아울러 오늘날 루터교단, 성공회 등을 제외하면 죄와 벌을 나누어 보는 시각이 많이 희석되어 있고, 심지어 많은 복음주의적, 은사주의적 프로테스탄트들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란 "개인적 확신"만으로 지은 죄에 대한 죄값 (벌)마저 동시에 말소되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신이 한 개인의 죄를 용서할 때 그가 치를 죄값마저 탕감하지 못하리라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는 여분의 잠벌에 대한 처리를 교회가 대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개인적 확신'을 누가 보증하는가가 진짜 문제겠죠. 그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와 죄값을 사면 받았다는 확신을 보증하는 것은 성직자일까요, 개인적 체험일까요, 양심일까요, 그도 아니면 어떤 계시일까요. 영화 {밀양}이 이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최광민
[질문] 오리엔탈 정교회나 네스토리우스파의 후신인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나요? 특히 보편 교회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에티오피아 정교회나 인도에 사도 도마가 세웠다는 기독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는지가 알고 싶습니다. 또 오리엔탈 정교회와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다는데 이에 대한 자료를 혹시 제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단성파 제교단 (이집트 꼽트, 시리아 야곱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에티오피아 등등) 및 양성파 (네스토리우스파/동방교회-구파/신파) 모두 공적/사적 고백/사면형식의 고해성사를 성사로 지킵니다. 인도의 경우 역사적으로 네스토리우스파와 단성파인 시리아 야곱파, 그리고 이후 들어온 로마카톨릭의 영향을 받은 몇 분파로 나뉘어 있으나, 이를 성사로 간주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성사의 경우, 로마카톨릭은 7이란 수에 맞춰서 7성사제를 운용하지만, 정교회나 기다 단성파, 양성파 교단은 꼭 7에 맞추진 않고 교회의 이름으로 성사적이라고 간주되는 의식을 폭넓게 성사로 간주합니다. 고해성사는 공통입니다.
윗 질문에 대한 제 답은 해당 교단의 웹페이지에 찾아보시면 잘 나와있습니다. 영어싸이트를 링크하겠습니다.
이집트 꼽트교회
http://www.copticchurch.net/topics/thecopticchurch/sacraments/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 고해성사가 있었다는 고해성사는 사도 시대부터 있었으며 고해성사는 사도들이 직접 제정한 성사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요?
[답변]
이 참회형식은 공개적/개인적 두가지 형태가 모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오늘날의 로마카톨릭교회의 그것과 형식면에서 같을 이유는 없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로마카톨릭교회나 기타 교단의 경우도 소죄의 경우는 꼭 사제 앞에서 고해성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기 교회의 가장 큰 대죄인 간음과 우상숭배/배교의 경우, 참회자에 대해서 교회는 그 속죄로서 성찬금지 등을 심지어 죽을 직전까지도 부과합니다. 따라서 보다 고대적 정의에서 본다면, 고해성사란 평이하게 말한다면 교회의 공식권징과 사면절차인 것이죠. 물론 이 사면을 "신에게 위임받아 사제의 직권"으로 면죄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의 용서를 사제가 선언"하는 것인지의 해석에는 차이가 있겠습니다. 프로테스탄트 (루터교단, 성공회 등등)은 대체로 후자로 이해합니다.
/ 최광민
[질문] 가톨릭에서 대죄와 소죄를 구분하는 교리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요? 또 동방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대죄와 소죄를 교리적으로 구분하나요?
[답변]
특정한 시기를 딱 꼬집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교회의 권징 대상이 되는 죄의 대소 문제에 대한 생각은 아주 초기부터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령, 코린토스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나테마 마라나타'에 처한다'고 적으며 죽을 때까지 파문을 명시합니다. 예수의 재림까지 교회가 징계대상자에 대해서 손을 뗀다는 뜻입니다.
특히, 세례교인의 간음은 (및 중혼)은 이미 1세기 말부터 (참회를 하더라도 거의) 성찬금지 등 준-파문에 상응하는 중죄로 간주되었습니다. (해석의 문제는 있지만) 이미 {신약성서}에서도 "성령훼방죄"는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간주되고 있고, 따라서 간음이나 우상숭배, 배교 등은 어떤 교단을 막론하고 모든 고대교단에서 파문 혹은 준-파문에 준하는 당연히 대죄에 속했습니다. 이런 죄들은 아예 성서에 예수 혹은 사도들의 말로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그 외의 대/소죄의 구체적 리스트는 시대와 지역 주교의 치리권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교회의 권징에 따른 실무적인 사안이니까요.
/ 최광민
[질문] 종교개혁의 계기가 되었던 면죄부라는 것을 가톨릭에서는 대사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래 이 대사는 대죄를 지은 후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받은 뒤 남은 잠벌을 현세에서 보속하는 것이지만 그 중 하나가 헌금을 하는 것이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이 대사를 헌금을 하는 즉시 죽은 가족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거짓 선전을 했던 것이고 교황청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로마카톨릭 측의 상기 설명은 일면 맞고 일면 틀립니다.
루터의 {95개조} 전문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루터의 논점은 로마카톨릭 측의 상기주장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와 상관없이, 로마카톨릭의 "대사"의 교리를 지탱하는 (1) 중세 카톨릭적 "연옥"의 실재와 (2) 사후에 교회가 죽은 자들에게 대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을 중심축으로 합니다.
루터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약 연옥이 없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교회가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게 "대사"든 "면죄부"든 현세의 교회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위의 "대사"란 용어의 세심한 정의를 들어 로마카톨릭 측이 취하는 방어전략은 논점을 일탈한 것입니다. 만약 대사/면죄부의 효력이 발생하는 연옥 자체가 없다면 다른 추가적인 논증은 무의미한 것이니까요. 따라서 대사/면죄부에 대한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논쟁은 반드시 연옥의 실재여부 부터 논증되어야 합니다. 이걸 건너뛰고 "대사의 올바른 정의"와 "프로테스탄트 측의 오해"부터 논하는 건 논점일탈이란 뜻입니다.
왜 루터가, 이름없이 순교한 이들을 기리는 로마카톨릭교회의 만성절 (11월 1일)과 죽은 자, 특별히 연옥에 있는 자들이 천국으로 빨리 옮겨지길 기원하는 만령절 (11월 2일) 직전인 10월 31일에 이 문제의 95개조를 제출했는지의 의도는 그래서 명확합니다. (정확한 날짜는 논란이 약간 있지만 11월 1-2주 안에 게시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가 겨눈 칼 끝은 "대사의 올바른 사용/정의" 같은게 아니라, 연옥의 실재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한 교회의 관여가능성 여부니까요.
루터의 95개조에서 첫 13개 논점을 인용합니다.
- Dominus et magister noster Iesus Christus dicendo ,Penitentiam agite etc.' omnem vitam fidelium penitentiam esse voluit.
- 우리들은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실때, 이는 신자들이 전 생애에 걸쳐 참회해야 함을 의미한다.
- Quod verbum de penitentia sacramentali (id est confessionis et stisfactionis, que sacerdotum ministerio celebratur) non potest intelligi.
- 이 말씀은 고해성사, 즉 사제들이 집행하여 시행되는 죄의 자복과 사면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 Non tamen solam intendit interiorem, immo interior nulla est, nisi foris operetur varias carnis mortificationes.
-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그와 같은 심적 회개가 육체의 여러 가지 정욕을 외적으로 죽이지 못한다면 그런 회개는 무가치하다.
- Manet itaque pena, donec manet odium sui (id est penitentia vera intus), scilicet usque ad introitum regni celorum.
- 따라서 참된 심적 참회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 Papa non vult nec potest ullas penas remittere preter eas, quas arbitrio vel suo vel canonum imposuit.
- 교황은 그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한 형벌 이외에는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권한도 없고, 의지도 없다.
- Papa non potest remittere ullam culpam nisi declarando et approbando remissam a deo Aut certe remittendo casus reservatos sibi, quibus contemptis culpa prorsus remaneret.
- 교황은 신께서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혹은 시인하는 이 외에는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만을 사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만일 교황의 사면권이 무시당한다면, 죄책은 확실히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Nulli prorsus remittit deus culpam, quin simul eum subiiciat humiliatum in omnibus sácerdoti suo vicario.
- 신께서 누구의 죄든지 사면하시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모든 일에서 겸손하게 만들고 복종하게 하여서, 신을 대리하는 사제의 지도를 받게 하신다
- Canones penitentiales solum viventibus sunt impositi, nihilque morituris eosdem debet imponi.
- 죄를 사면하는 교회법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죽은 자에게 어떤 부담이라도 부과되어서는 안된다.
- Inde bene nobis facit spiritussanctus in papa excipiendo in suis decretis semper articulum motris et necessitatis.
- 그러므로 교황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궁의 조항을 항상 예외적으로 만드시는 바, 그의 작정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서 자비를 행하신다.
- Indocte et male faciunt sacerdotes ii, qui morituris penitentias canonicias in purgatorium reservant.
- 사제가 사망한 자에게 있어서 연옥에서의 교회법 상 회개를 내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 Zizania illa de mutanda pena Canonica in penam purgatorii videntur certe dormientibus episcopis seminata.
- 교회법 상의 벌들을 연옥의 형벌로 변경시키려는 이런 가라지는, 확실히 감독들이 잠을 자는 동안에 (=직무유기중에) 심어진 것이라고 보인다. (마 13:25)
- Olim pene canonice non post, sed ante absolutionem imponebantur tanquam tentamenta vere contritionis.
- 예전에는 진정한 참회에 대한 시험으로, 교회법 상 징벌이 사면 후가 아니라 사면 전에 부과되었다.
- Morituri per mortem omnia solvunt et legibus canonum morituri iam sunt, habentes irue earum relaxationem.
- 죽는 사람은 그 죽음으로서 모든 이 세상에서 받을 벌을 다 받았으며 교회 법령의 벌칙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해방된다.
/ 최광민
[질문] 중세 시대 부터 마르틴 루터의 시기까지 교황청은 이런 대사의 남용과 악용을 자금 충당을 위해 방관했나요? 아니면 나름대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나요?
[답변]
종교개혁 발생 후인 1500년대 중반에 개최된 로마카톨릭교회의 자체개혁안이자 반-종교개혁 공회인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대사 (大赦, 인둘겐스 indulgens)의 남용에 대해서 문제가 지적되긴했지만, 대사 및 순례, 성인유해공경 같이 종교개혁자들의 전방위 공격을 받은 건들은 신학적으로 옳은 것으로 강력히 재인준 받았습니다. 즉, 오남용의 문제는 있지만 교리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죠. 연옥에 있는 영혼을 다룬다는 점에서 대사과 유사한 궤적이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로마카톨릭의 "위령미사" 혹은 "연도"에 대해 한번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 최광민
[질문] 비슷한 질문을 계속 물고 늘어져서 죄송하긴 합니다만, 저는 마르틴 루터 당시 요한 테젤 등의 가톨릭 수사들이 "성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해서 헌금을 내는 자들은 지금까지 지을 죄와 앞으로 지을 죄도 사해지며, 또 연옥에 있는 자기 조상들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헌금이나 성물을 강매했던 것이 교황 레오 10세와 로마 교황청이 의도했던 것이거나, 적어도 독일에서 벌어지는 실태를 알면서도 묵인했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답변]
아마도 둘 다일 것입니다. 대사에 대한 로마카톨릭 교리가 당시 절정이었으니까 오남용의 사례를 보고 받았더라도, 그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진 않았겠죠. 한 세대 후 로마카톨릭 측의 반-종교개혁 공회의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대사가 재인준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 시기 이전에도 요한 테젤이 주장한 거와 같이 대사를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죄가 전부 사해지고 가족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식의 대사의 본래 뜻을 왜곡되고 과정된 형태로 선전해 헌금과 성물을 강매한 사례가 중세 시대에 있었나요?
[답변]
13세기 라테란 공회의 문건에 따르면, 그 당시의 행태로서 대사가 남발되어 대사의 효력기간을 40일로 한정하기도 하는데, 이후 이 효력기간이 수 백년, 수 천년에 이르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모든 죄"를 사해주는 경우도 보고되어 교황이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바티칸이 조장했던 방조했던 몰랐던, 지역에서 오남용 사례는 꽤 많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최광민
[질문] 십자군 전쟁 당시 교황청이 십자군에 참전해서 전사한 자들은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고 선전을 했다는 이야기를 접한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사실입니다. 다만 1차 십자군 때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완전사면을 약속했다고 보통 말해지지만, 이건 공식적인 사면령이라고 보긴 약간 힘듭니다. 공식적인 교황의 완전사면 교서는 중동에 파견된 십자군이 아니라 11세기 스페인 지역의 수복운동과 그 이후 교황이 낸 교서인 {Bula de la santa Cruzada}가 우선입니다. 기본적으로 로마카톨릭 신자는 성인이 아닌 한 디폴트로 보통 연옥에 간다는게 자연스런 결론입니다. 이 경우, 완전사면은 교회가 행사할 수 있는 최고의 조치가 되겠죠. 원칙상으론 못할 것도 없습니다.
/ 최광민
[질문] 십자군과 관련된 질문에서 완전사면이라는 용어의 영어 명칭을 알고 싶습니다. 혹시 "plenary indulgence"라고 칭해지는 그것이 맞나요?
[답변]
로마카톨릭 용어로는 전대사 (全大赦, indulgentia plenaria), 영어로는 plenary indulgence 혹은 보통 평이한 영어로는 "full remission of sins"라고 하는데, 아마도 로마 산 조반니 (=성 요한)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 새겨진 아래 음각이 그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줄 것 같습니다. 판테온을 비롯해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답변]
로마카톨릭 용어로는 전대사 (全大赦, indulgentia plenaria), 영어로는 plenary indulgence 혹은 보통 평이한 영어로는 "full remission of sins"라고 하는데, 아마도 로마 산 조반니 (=성 요한)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 새겨진 아래 음각이 그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줄 것 같습니다. 판테온을 비롯해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Indulgentia plenaria
(모든 사안에 대한) 완전사면
perpetua quotidiana toties quoties
영구적이고 매번(일)
pro vivis et defunctis
산 자나 죽은 자를 위한 / 번역: 최광민
더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원죄는 연좌제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다면 "연좌제"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는 후손들에게 아담의 죄를 묻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가 인간의 생식을 통해 후손으로 전이되는 식으로 설명하긴 했지만, 전체 맥락에서 볼때 그가 의도하는 바는 "타락한 아담의 상태"가 후손에게 전이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죄"는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조건/상태에 대한 선언"이라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전 연좌제와는 결이 다르다고 봅니다.
[질문] 이건 그냥 질문해보는 것 입니다만, Indulgence를 대사가 아닌 면죄부 혹은 면벌부라고 번역하는 것은 개신교 측의 악의적인 선전이라는 가톨릭 측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면죄부 혹은 면벌부라는 용어가 프로파간다는 아니라도 적어도 본래의 의미와 어긋나는 오역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답변]
물론 당사자 측이 사용하는 용어를 써주는게 좋겠지만, '대사'는 공식용어, '면벌부'는 비공식용어로 여겨도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요 (면"죄"부는 정의상 "대사"와 의미가 좀 다릅니다).
가령, 로마카톨릭이나 정교회의 "성화상 공경"과 보통 프로테스탄트 측이 이를 비난하는 "성화상 숭배"를 두고, 공경은 '둘리아'고 숭배는 '라트리아'니까 둘은 다르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사례에서는 두 경계를 넘는 경우도 있고 바로 그런 사례가 주요 비판대상이니까 좀 미묘하긴 하겠죠. '공경'에 대해선 제가 짧은 글을 쓴 게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2/3.html
핵심쟁점은 로마카톨릭의 경우 죄와 벌을 확실하게 나누고 고해성사 등을 통한 속죄 후 남는 벌 (잠벌)에 대해 '대사'가 적용된다고 풀이하는데,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측이 애용해 온 '면죄(부)'란 마치 '벌'이 아닌 '죄 자체를 사면해 주는 것'이란 느낌을 주고, 따라서 그렇게 오해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 최광민
[질문] 완전사면의 경우 잠벌이 전부 탕감된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교리적으로 대죄를 지은 상태라 할지라도 이것이 탕감되어 구원받아 천국에 올라가게 되는 것인가요?
[답변]
중세 말의 속죄/사면 개념은 다분히 "정량적"입니다. 소죄든 대죄든 연옥에 있는 사람은 "영벌"은 탕감되었으나 다양한 수준과 양의 남은 죄에 따라 그 "징벌/정화"의 기간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대사는 이걸 역시 정량적으로 해소하게 되는 것이고요. 대사는 '죄'가 아니라 '벌'에 대한 개념입니다.
/ 최광민
[질문] 제가 가톨릭 교리에 무지해서 그런 것입니다만 완전사면이라는 것은 연옥에서의 보속을 하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올라감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답변]
잠벌이 다 탕감되는 것입니다. 중세 서방신학에서는 교회가 예수와 성인들의 공덕을 저장해 놓은 일종의 은혜의 보물창고의 열쇠를 쥐고 있으며, 교회가 신자들을 사면할 때 바로 이 여분의 공덕을 사용한다는 은혜의 "양적"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 최광민
[답변]
중세 말의 속죄/사면 개념은 다분히 "정량적"입니다. 소죄든 대죄든 연옥에 있는 사람은 "영벌"은 탕감되었으나 다양한 수준과 양의 남은 죄에 따라 그 "징벌/정화"의 기간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대사는 이걸 역시 정량적으로 해소하게 되는 것이고요. 대사는 '죄'가 아니라 '벌'에 대한 개념입니다.
/ 최광민
[질문] 제가 가톨릭 교리에 무지해서 그런 것입니다만 완전사면이라는 것은 연옥에서의 보속을 하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올라감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답변]
잠벌이 다 탕감되는 것입니다. 중세 서방신학에서는 교회가 예수와 성인들의 공덕을 저장해 놓은 일종의 은혜의 보물창고의 열쇠를 쥐고 있으며, 교회가 신자들을 사면할 때 바로 이 여분의 공덕을 사용한다는 은혜의 "양적"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 최광민
[질문] 잉글랜드의 종교개혁가인 윌리엄 틴들은 영혼불멸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간은 죽으면 낙원과 음부에 가는 것이 아닌 최후의 대심판 날까지 잠들어 있다는 견해를 가졌다는 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이 생각은 초기교회 때부터 있던 생각 중 하나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견해는 2세기 유스티노스의 제자였던 타티아노스가 그리스인들에게 한 논전에서, 진리를 모르고 죽은 자의 영혼은 몸이 죽으면 몸과 함께 죽어 흩어졌다가 심판의 날에 다시 몸과 함께 합체해 부활하고, 그 영혼이 신을 알았다면 그 영혼이 죽지 않고 이렇게 영혼이 흩어져있는 동안이라도 영혼이 사라져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봤습니다.
윌리엄 틴들이 종교개혁의 핵심쟁점에 반대한 당대의 석학 토마스 모어의 견해를 반박하며 출판한 논고를 읽어보면,
https://books.google.com/books?id=EMcOAAAAIAAJ&pg=PA2&dq=#v=onepage&q&f=false
틴들은 여기서 "영혼불멸"에 대해 반박하고 있는게 아니라, 만약 영혼이 (로마카톨릭교회의 말대로 죽은 후) 이미 천국, 지옥, 연옥으로 가서 "영혼"으로서 살고 있다면, 육체의 부활을 말하는 그리스도와 바울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교도 철학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영혼이 (그 자체로서) 영원히 산다고 제안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영적 가르침과 이교도 철학자의 육적 가르침을 섞고 있다...."라고 적었네요. 그러니까 이건 "영혼불멸" 이야기와 상관있는게 아니라, 영혼만으로 천국/지옥/연옥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생각에 대한 반박이라고 보셔야 할 듯 합니다. 즉, 틴들은 루터 처럼 사후 영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부활 때까지 잠들었다가 육체와 함께 부활한다는 말을 함으로써 연옥 개념을 부정하려고 의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영혼(의 존재)불멸"과 "영혼의 잠"은 꽤 결이 다른 주제입니다.
/ 최광민
[질문] 윌리엄 틴들이 연옥교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최후의 심판날까지 영혼들은 잠에 들어있다는 견해를 표출했다는 것인데 사실 이 주장도 오늘날 개신교의 교리에서 나오는 인간이 죽으면 사심판을 통해 낙원과 음부로 가서 최후의 심판날까지 거기 머무른다는 사후관과는 꽤 다른 것 아닌가요?
"영혼수면"에 대한 해석은 아주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1-5세기에 "성인"으로 간주된 몇몇 주요 교부들, 특별히 동방의 교부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후의 영혼이 "의식"을 가지고 있고, 또 사후 낙원 (파라다이스)과 음부 (하데스) (및 연옥)으로 가서 의식을 가진 채로 심판과 부활을 기다린다는 설명이 주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 때까지 죽은 자의 영혼이 실제로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다는 개념을 가진 고대교부는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완전한 구원과 미래의 형벌의 기다리며 지복의 상태 혹은 공포의 상태에서 종말을 부활을 기다린다고 대체로 봤습니다.
[답변]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영혼수면에 대한 틴들의 생각과 루터의 생각은 거의 같습니다. 다만 이 "의식"의 상태가 어느 수준인지 (즉, 완전한 잠인지, 의식은 있으나 낮은 의식상태인 것인지), 그리고 일부 신자 (가령, 계시록의 순교자들과 장로 등)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 신과 함께 있는 것인지 등은 논쟁적입니다.
영혼수면에 대한 틴들의 생각과 루터의 생각은 거의 같습니다. 다만 이 "의식"의 상태가 어느 수준인지 (즉, 완전한 잠인지, 의식은 있으나 낮은 의식상태인 것인지), 그리고 일부 신자 (가령, 계시록의 순교자들과 장로 등)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 신과 함께 있는 것인지 등은 논쟁적입니다.
아울러 최후의 심판 후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은 "둘째 사망"에서 어떻게 되는지, 다시 말해서 영원히 멸절되는 것인지, 영혼의 상태에서 영원한 형별을 받는 것인지를 두고도 논란이 있습니다. 멸절론을 주장한 고대교부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 최광민
[질문] 가톨릭 대사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대사의 효력은 미래의 모든 잠벌까지도 미치는 건가요. 그리고 꼭 죽은 연옥영혼을 위해서만 아님 살아있는 신자들을 위해서 받는건지요. 그리고 가톨릭의 죽은자를 위한 기도나 성인통공교리와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이와 관련된 연옥에 대해서는 그 프로토 타입 컨셉은 아우구스티노 교부에 기원 한다는데 이게 사실인지요. 정교회의 델로니아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질문자 qorcks200)
[답변]
죄와 벌을 엄격하게 분리해서 보는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에서는, 저지른 죄가 속죄 (고해성사) 로 사면된 후 남는 벌에 대한 보속은 죄질에 따라 일시적이거나 혹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보속 (영벌)은 결국 지옥행을 말하지만, 일시적인 보속 (잠벌) 의 경우는 유한하고 현세에서 일단 치르고 부족하면 연옥에서까지 이어집니다. 현세에서의 보속이 응보적인 동시에 교정적/예방적 성격을 가진다면, 연옥에서는 오직 본인의 문제만 다루는 응보적인 성격만 가지게 됩니다.
로마카톨릭의 이런 이해에서 신자들이 거의 대부분 디폴트로 연옥으로 간다고 해석내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본인이 잊고서 죽기 전 고해성사하지 못한 '죄'가 있을 수도 있고 (따라서 적절한 보속이 이뤄지지 못했고), 또는 해당 죄와 사제/주교가 부과한 보속의 형식과 내용이 등치되지 않아 충분한 보속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전대사(全大赦)는 연옥에서 받을 잠벌 전부, 한대사(限大赦)는 그 일부를 면제받습니다.
이 개념은 말씀하신 대로 사도신경에도 나오는 '성인의 통공 (communio sanctorum)'의 개념과 함께 갑니다.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사도신경에서는 이 용어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란 정체불명의 용어로 번역해 놓아서 이 의미를 평신도들에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성인'은 꼭 "성자/성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구원받은 신자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죽었거나 살아있는 모든 자가 다 포함됩니다. '성인'이란 통상적 용어가 다소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성도'란 용어를 쓰겠습니다.
여기서 '성인'은 꼭 "성자/성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구원받은 신자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죽었거나 살아있는 모든 자가 다 포함됩니다. '성인'이란 통상적 용어가 다소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성도'란 용어를 쓰겠습니다.
이 '성인/성도의 통공/교통'이란 개념은 , 즉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 간의 영적연합을 의미했습니다. 현세에서만 보면 이 '연합'은 기독교 신자들 상호 간의 긴밀한 사귐, 교제, 구제, 기도, 보살핌 등을 뜻합니다.
바로 이 신자 상호 간의 "도움"이란 개념이 확장된 것이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한 대사'입니다. 로마카톨릭교회는 아직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지 못한 영혼들을 생존자들이 "돕기" 위해 보속을 대행할 대사를 결정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죽은 영혼들을 산 사람이 도울 방법은 '대사'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니까요.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Incarnationis Mysterium}가 이를 잘 설명합니다.
"....This doctrine on indulgences therefore “teaches firstly how sad and bitter it is to have abandoned the Lord God (cf. Jer 2:19). When they gain indulgences, the faithful understand that by their own strength they would not be able to make good the evil which by sinning they have done to themselves and to the entire community, and therefore they are stirred to saving deeds of humility”.(18) Furthermore, the truth about the communion of saints which unites believers to Christ and to one another, reveals how much each of us can help others — living or dead — to become ever more intimately united with the Father in heaven...."
http://www.vatican.va/jubilee_2000/docs/documents/hf_jp-ii_doc_30111998_bolla-jubilee_en.html
즉, 로마카톨릭교회의 '성인의 통공'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교회의 매개를 통해) 서로 이런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반면, 프로테스탄트에서의 동일한 '성도의 교제/교통'을 말하긴 하지만 산 자와 죽은 자가 이런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거나/못한다고 이해합니다. 즉, 죽음 이후 현세의 교회는 죽은 자의 영혼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개인은 스스로의 모든 속죄와 보속을 죽음의 시점에 완료했고 더이상 누가 그들을 위해 더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고 이해합니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에서는 (루터교단, 성공회, 감리회 처럼) 죽은 자를 위해 신의 "자비"를 기도할 수는 있더라도, 대사와 같은 형식으로 그의 영혼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고 봅니다. 또한 산 성도가 죽은 성도에게 기도할 이유도 없고, 또 죽은 성도가 살아있는 성도에게 직접 무엇을 해준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죽은 성도의 영혼은 심판 때까지 '자고 있다'고 믿은 루터 등의 관점에서 보면 더더욱 말이 안되는 것이겠죠.
물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과 설교들에서 보면, 그는 사후 (1) 일시적으로 받는 벌과 지옥에서 받을 영원한 벌 (2) 일시적인 정화의 불과 영원한 징벌을 대비시키고 있으며, 또 (3)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언급하며, 또 이들 죽은 이들의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합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설명을 "정경 구약성서"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고 (직접 그렇게 적었습니다) , 대신 외경 {마카베오서}에서 내용을 가져오거나 당대의 라틴교회 관례에 기반해서 말합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카베오서}를 "구약성서"들과 확실히 구분짓고 있습니다.
연옥을 부정한 마르틴 루터가 아우구스티누스회 소속 수도사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고 할까요.
이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설명을 "정경 구약성서"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고 (직접 그렇게 적었습니다) , 대신 외경 {마카베오서}에서 내용을 가져오거나 당대의 라틴교회 관례에 기반해서 말합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카베오서}를 "구약성서"들과 확실히 구분짓고 있습니다.
연옥을 부정한 마르틴 루터가 아우구스티누스회 소속 수도사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고 할까요.
- The man who perhaps has not cultivated the land and has allowed it to be overrun with brambles has in this life the curse of his land on all his works, and after this life he will have either purgatorial fire or eternal punishment.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Genesis, 2:20 [388/389])
- Cleanse me in this life, and make me such, that I may after that stand in no need of the cleansing fire, for those "who are to be saved, yet so as by fire." (1 Corinthians 3:15) ... For all that, though we should be saved by fire, yet will that fire be more grievous than anything that man can suffer in this life whatsoever. (Exposition on Psalm 38, 2 [date unknown; 396~420)
- Of those who suffer temporary punishments after death, all are not doomed to those everlasting pains which are to follow that judgment. (The City of God 21:13 [413-427])
- The souls of the pious dead are not separated from the Church, which even now is the kingdom of Christ; otherwise there would be no remembrance made of them at the altar of God in the partaking of the body of Christ. (The City of God 20:9 [413-427])
- The prayer either of the Church herself or of pious individuals is heard on behalf of certain of the dead; but it is heard for those who, having been regenerated in Christ, did not for the rest of their life in the body do such wickedness that they might be judged unworthy of such mercy, nor who yet lived so well that it might be supposed they have no need of such mercy. (The City of God 21:24 [413-427])
- In the books of the Maccabees we read of sacrifice offered for the dead. Howbeit even if it were no where at all read in the Old Scriptures, not small is the authority, which in this usage is clear, of the whole Church, namely, that in the prayers of the priest which are offered to the Lord God at His altar, the Commendation of the dead has also its place. (On the Care of the Dead, 3 [420-422])
- Church custom has it that at the place where the names of the martyrs are recited at God's altar, we don't pray for them, while we do pray for the other departed brothers and sisters who are remembered there. It is insulting, I mean, to pray for martyrs, to whose prayers we ought rather to commend ourselves. (Sermon 159:1 [417])
- There is no doubt that the dead are helped by the prayers of holy Church, by the saving sacrifice, and by alms dispensed for their souls; these things are done that they may be more mercifully dealt with by the Lord than their sins deserve. The whole Church observes the custom handed down by our fathers: that those who died within the fellowship of Christ’s body and blood should be prayed for when they are commemorated in their own place at the holy sacrifice, and that we should be reminded that this sacrifice is offered for them as well. (Sermon 172:2 [date unknown; 393~430])
정교회는 AD 8세기 이전의 세계공회의에서 연옥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이를 교리화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죽은 자가 막바로 천국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은 (성모 마리아 같은 특별한 성인들을 제외하면) 일단 저승/하데스의 영역으로 가서 거기서 부활까지 대기한다고 이해합니다. 이 대기상태는 그야말로 대기장소일 뿐, 로마카톨릭에서 이해하는 식의 '잠벌을 해소하는 보속'의 상태 혹은 장소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죽은 자가 몸을 떠나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신에게 가는 여정에서 악마들의 영역인 하늘의 소위 "텔로니아 투 애로스 τελώνια τοῦ ἀέρος" (직역: 공중의 세관) 에서 조우하는 악마들이 죽은 자의 죄성과 죄책감 등을 약점 삼아 유혹/공격해서 가능하다면 그를 지옥으로 끌러내리려 하며, 죽은 자는 이를 극복해 가며 결국 천국에 이른다는 정교회의 설명은 정교회의 공식교리가 아니라 몇몇 정교회 성인 (가령, 크리소스토모스) 의 불분명한 언급, 성인전 등에 등장하는 설화적인 설명입니다. 정교도들은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주류) 측도 있고, 이를 영혼의 정화 및 신화에 대한 메타포로 보는 측도 있고, 오히려 이를 그노시스적이고 이교적으로 여기는 측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티벳사자의 서}에 나오는 모티프와도 유사합니다. 아무튼 이 설명은 "잠벌의 보속"이 이뤄진다는 로마카톨릭의 연옥과는 꽤 다르며, '최후의 유혹'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죽은 자가 몸을 떠나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신에게 가는 여정에서 악마들의 영역인 하늘의 소위 "텔로니아 투 애로스 τελώνια τοῦ ἀέρος" (직역: 공중의 세관) 에서 조우하는 악마들이 죽은 자의 죄성과 죄책감 등을 약점 삼아 유혹/공격해서 가능하다면 그를 지옥으로 끌러내리려 하며, 죽은 자는 이를 극복해 가며 결국 천국에 이른다는 정교회의 설명은 정교회의 공식교리가 아니라 몇몇 정교회 성인 (가령, 크리소스토모스) 의 불분명한 언급, 성인전 등에 등장하는 설화적인 설명입니다. 정교도들은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주류) 측도 있고, 이를 영혼의 정화 및 신화에 대한 메타포로 보는 측도 있고, 오히려 이를 그노시스적이고 이교적으로 여기는 측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티벳사자의 서}에 나오는 모티프와도 유사합니다. 아무튼 이 설명은 "잠벌의 보속"이 이뤄진다는 로마카톨릭의 연옥과는 꽤 다르며, '최후의 유혹'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공히 적용되는 공심판(최후의 심판) 사심판 (죽은후 즉시 심판)은 교파별로 어떻게 규정하나요. 가톨릭 에서는 둘다 천국 연옥 지옥 등이 등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자들도 많은 질문을 하지요 심판을 두번 받는것인가? 하구요 아마 주후 재림지연으로 섕긴 문제깉은데 연옥이나 중간지대도 아마 이런 문제에 영향을 조금은 받은거 아닐까 생각합니다(징벌의 형평성과는 별개로) 가톨릭 측에서는 현대에 들어서는 주의 무시간성을 들어 사후와 종말간의 시적차이가 없고 단지 신자개인적 차원이냐 인류냐의 차이만 있다는 설명을 하긴 합니다 즉 개인의 종말이 이루어진후 그것은 곧 최후의 종말과 연결되 있다 이런식이지요 아직 정식화된 교리는 없는걸로 앎니다 가톨릭은 공의회 차원의 무오류 내지는 그 비슷한 교리정식화를 시도하다 그만둔걸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 qorcks200)
[답변]
연옥개념의 도래는 재림의 지연과는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됩니다. 라틴교회에서 연옥개념이 교리화되기 한참 전인 기원 초기 600년 간, 동/서방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사후의 상태는 "아브라함의 품"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사후의 영혼은 저승이지만 낙원이랄 수 있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지복의 상태에서 부활을 기다린다는 해설이죠 (물론 아직 완전한 천국이 그들에게 도래하진 않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의 영혼은 역시 저승이지만 격리된 하데스에서 미래의 징벌을 바라보며 공포의 상태를 보냅니다. (역시 아직 실제로 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AD 2세기 말 로마 사제 히폴리투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 NOW as to Hades, wherein the souls of the of the good things they see, and rejoice in the righteous and unrighteous are detained, it is necessary to speak of it. Hades is a place in the world not regularly finished; a subterraneous region, wherein the light of this world does not shine; from which circumstance, that in this region the light does not shine, it cannot be but there must be in it perpetual darkness. This region is allotted as a place of custody for souls, in which angels are appointed as guardians to them, who distribute to them temporary punishments, agreeable to every one's behavior and manners.
......[전략].... 이 장소 (하데스)는 영혼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관리하기 위해 천사들이 배정되어 있으며 그들은 영혼들을 각자의 행위와 삶에 따라 일시적인 징벌을 부과한다. / 번역: 최광민
2. In this region there is a certain place set apart, as a lake of unquenchable fire, whereinto we suppose no one hath hitherto been cast; but it is prepared for a day afore-determined by God, in which one righteous sentence shall deservedly be passed upon all men; when the unjust, and those that have been disobedient to God, and have given honor to such idols as have been the vain operations of the hands of men, as to God himself, shall be adjudged to this everlasting punishment, as having been the causes of defilement; while the just shall obtain an incorruptible and never-fading kingdom. These are now indeed confined in Hades, but not in the same place wherein the unjust are confined. 3. For there is one descent into this region, at whose gate we believe there stands an archangel with an host; which gate when those pass through that are conducted down by the angels appointed over souls, they do not go the same way; but the just are guided to the right hand, and are led with hymns, sung by the angels appointed over that place, unto a region of light, in which the just have dwelt from the beginning of the world; not constrained by necessity, but ever enjoying the prospect of the good things they see, and rejoice in the expectation of those new enjoyments which will be peculiar to every one of them, and esteeming those things beyond what we have here; with whom there is no place of toil, no burning heat, no piercing cold, nor are any briers there; but the countenance of the fathers and of the just, which they see always, smiles upon them, while they wait for that rest and eternal new life in heaven, which is to succeed this region. This place we call The Bosom of Abraham.
이 곳에는 꺼지지 않는 불의 연못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도 불연못에 던져지지는 않았다고 우리는 여긴다. 그러나 이 연못은 신의 정의로운 심판이 온 인류에게 내려질 때까지 미리 준비되어 있는 장소다. 부정한 자와 신에게 불복한 자들, 그리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헛된 우상을 마치 신 본인인 양 숭배했던 자들은 타락을 세상에 불러들였기에 이 영원한 징벌 가운데 던져질 것이다. 반면에 정의롭게 살았던 자는 썩지않고 영원히 시들지 않는 왕국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정의로운 이들이 현재 하데스/저승에 현재 격리되어 있긴 하지만, 부정한 자들과 같이 격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중략]... (의인을 위한) 이 장소를 우리는 "아브라함의 품"이라 부른다. / 번역: 최광민
4. But as to the unjust, they are dragged by force to the left hand by the angels allotted for punishment, no longer going with a good will, but as prisoners driven by violence; to whom are sent the angels appointed over them to reproach them and threaten them with their terrible looks, and to thrust them still downwards. Now those angels that are set over these souls, drag them into the neighborhood of hell itself; who, when they are hard by it, continually hear the noise of it, and do not stand clear of the hot vapor itself; but when they have a near view of this spectacle, as of a terrible and exceeding great prospect of fire, they are struck with a fearful expectation of a future judgment, and in effect punished thereby: and not only so, but where they see the place [or choir] of the fathers and of the just, even hereby are they punished; for a chaos deep and large is fixed between them; insomuch that a just man that hath compassion upon them cannot be admitted, nor can one that is unjust, if he were bold enough to attempt it, pass over it.
불의한 자들은.......[중략]....천사들에게 이끌려 지옥의 변두리로 끌려간다....[중략]....거기 서서 끊임없는 지옥의 소음과 뜨거운 연기 가운데서....[중략]... 그들은 미래에 있을 두려운 심판을 떨며 기다리는데 이렇게 사실상 그들은 징벌을 받고 있다...../ 번역: 최광민
5. This is the discourse concerning Hades, wherein the souls of all men are confined until a proper season, which God hath determined, when he will make a resurrection of all men from the dead, not procuring a transmigration of souls from one body to another, but raising again those very bodies, which you Greeks, seeing to be dissolved, do not believe [their resurrection]. But learn not to disbelieve it; for while you believe that the soul is created, and yet is made immortal by God, according to the doctrine of Plato, and this in time, be not incredulous; but believe that God is able, when he hath raised to life that body which was made as a compound of the same elements, to make it immortal; for it must never be said of God, that he is able to do some things, and unable to do others. We have therefore believed that the body will be raised again; for although it be dissolved, it is not perished; for the earth receives its remains, and preserves them; and while they are like seed, and are mixed among the more fruitful soil, they flourish, and what is sown is indeed sown bare grain, but at the mighty sound of God the Creator, it will sprout up, and be raised in a clothed and glorious condition, though not before it has been dissolved, and mixed [with the earth]. So that we have not rashly believed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for although it be dissolved for a time on account of the original transgression, it exists still, and is cast into the earth as into a potter's furnace, in order to be formed again, not in order to rise again such as it was before, but in a state of purity, and so as never to be destroyed any more. And to every body shall its own soul be restored. And when it hath clothed itself with that body, it will not be subject to misery, but, being itself pure, it will continue with its pure body, and rejoice with it, with which it having walked righteously now in this world, and never having had it as a snare, it will receive it again with great gladness. But as for the unjust, they will receive their bodies not changed, not freed from diseases or distempers, nor made glorious, but with the same diseases wherein they died; and such as they were in their unbelief, the same shall they be when they shall be faithfully judged. --- Hippolytus of Rome, {Discourse To The Greeks Concerning Hades}, tr. William Whiston
이것이 하데스/저승에 대한 설명이다. 거기서 모든 영혼은 신이 정한 때까지 기다리며 격리되어 있다. 신이 모든 사람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킬 때, 그는 영혼을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전이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바로 그 몸을 부활시킬 것이다. 당신들 그리스인들은 몸이 죽어 해체되어 버린다고 보고 부활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배워서 믿도록 하라. 당신들은 플라톤의 교리에 따라 영혼이 창조되었으되 신에 의해 불멸하게 만들어졌다고 믿는데 이것이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신의 능력을 믿도록 하자. 신이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육체를 다시 부활시킬 때 그는 그 육체를 불멸하는 몸으로 만드실 수 있다. 신이 어떤 것은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자.육체가 비록 해체되긴 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육체가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다 ...[중략]... 모든 부활한 육체에는 그 자신의 영혼이 다시 회복될 것이다.....[후략] --- 히폴리투스, {그리스인들에 대한 논고: 하데스에 관하여} ./ 번역: 윌리엄 휘스턴 /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프로테스탄트 측이 이 입장을 취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히브리서}에 보면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한국어 새번역)" 란 설명에서 개인의 죽음 후에 설명된 '심판"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반되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년왕국"의 정확한 성격과 시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문자적으로만 보면) "천년왕국" 직전에 의인들이 죽음에서 부활하는 "첫째 부활"이 있고 이들은 즉 "둘째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이 부활은 구원받은 자들에게만 적용됩니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둘째 부활"과 "백보좌 심판"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마태 복음서}에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이란 구절이 있는데, 그 "백보좌 심판", 즉 최후의 심판은 "정죄"이며 구원받은 자들은 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 코린토스의 교회에 보낸 두번째 편지에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라고 적는데,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도들이고 따라서 따라서 프로테스탄트 입장으로는 이 '심판대'는 최후의 심판 시의 '백보좌 심판대'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는 그의 삶과 행위에 대해 평가와 질책과 심판은 받을지언정 '정죄'를 받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그것은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 이라고 적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구원받은 영혼과 천사는 신의 영원도, 육체에 속박된 현세의 시간도 아닌, 제 3의 시간인 '에붐' 속에 삽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sense-of-ending.html
/ 최광민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sense-of-ending.html
/ 최광민
[답변]
"초기"란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잡아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예수의 세례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고, 그 의미가 바울의 서신에 명시되어 있고, AD 70-120년 경의 문건인 {디다케}가 세례를 명시하고 있고, 세례자에 대해서만 성찬이 집례되었다는 AD 1세기 말에서 2세기 중반의 문서 {디다케} 그리고 AD 2세기 초/중반의 유스티노스의 기록만 보더라도, 세례는 성도 (Saints)가 되는 명시된 표징이므로 굳이 "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라고 교회가 가르쳤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울러 세례를 통해 그 전의 죄가 단번에 면죄된다고 생각해서 (그 이후에 짓는 대죄로 구원을 잃은 것에 대한 걱정으로) 세례를 가급적 뒤로 미루는 AD 2-4 세기의 전통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 같고요.
또한 세례를 받지 못하고 갑자기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세례준비자" 신분의 신자가 세례란 외적징표를 받지않았다고 해서 꼭 구원을 받지 못했다라고 단정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세례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 최광민
#종교개혁과 성인공경에 대해
[질문]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나 각종 성인들에 대한 기도와 공경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요?
[답변]
/ 최광민
[질문]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나 성인 공경이 이방 종교의 지모신 사상이나 다신교 사상과의 혼합을 통해 만들어진 관습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는 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변]
그 기원이라기 보다는, 의식과 상징 면에서 그런 요소가 흡수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과도한" 성인공경 건은 어제도 말씀드린 것처럼 추상적인 신 개념보다는 보다 가시적으로 의지할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자신들의 신의 구현이라고 믿은 "황금송아지"나 중남미 시골에서 급기야 성인이 되어버린 혁명가 체 게바라 사례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체 게바라의 사례는 "성인공경"이 민간신앙 차원에서는 어떻게 발전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인류학적 사례라 생각됩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blog-post_2679.html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같은 종교개혁가들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평생동정녀, 몽소승천과 같은 교리들을 받아들였나요?
[답변]
후대의 프로테스탄트들이 마리아를 좀 과도하게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츠빙글리, 루터, 칼뱅 순으로 마리아에 대한 그들의 존경은 대단했습니다. 이 가운데 츠빙글리는 거의 로마카톨릭 수준이었고요. 역사적으로 보면 평생동정녀 -- 마리아무염시태 -- 몽소승천 순으로 교회사에 등장하는데, 평생동정녀설은 츠빙글리와 루터는 강력하게 믿었고, 칼뱅은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19-20세기에 비로소 로마카톨릭이 교황무오권을 발동해 부동의 교리로 인준한 무염시태나 몽소승천에 대한 로마카톨릭식 개념을 쯔빙글리, 루터, 칼뱅 모두 거부하긴 하지만, 이 가운데 마리아에게 가장 극진했던 쯔빙글리의 경우 마리아에게 "무흠하다" 혹은 "조금도 흠이 없다"란 식의 표현을 적기도 했습니다. 물론 (논란이 있지만) 이것이 마리아 본인의 "잉태시점"부터 원죄가 없었다는 식의 이해는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 최광민
[질문] 예전 질문에 대한 Kwangmin님의 답변 중 마르틴 루터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최근 제가 찾아본 가톨릭 출판사의 사와다 아키오가 쓴 루터와 마리아라는 책에서 마르틴 루터가 1527년 주님 탄생 예고 첨례 복음에서 마리아가 원죄로 부터 구원된 욕정이나 죄없이 잉태된 여자라는 개념을 분명히 받아들이고 있음을 피력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데 혹시 이에 대응되는 루터가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교리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력한 자료가 있다면 보여주시는 게 가능하신가요?
[답변]
말씀드렸다시피 루터는 특별히 마리아에 대해서는 매우 각별했습니다. 이를 들어 로마카톨릭 측은 루터의 '마리아 사랑'을 최대로 강조하는 방법으로 프로테스탄트를 공격하기도 하고, 혹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단서'를 찾기도 합니다. 사실, 프로테스탄트가 복종과 헌신의 모범을 보인 마리아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어느 수준까지 "공경"이 허용되는가? 겠죠.
루터는 1517년에 종교개혁을 개시했고 1546년에 죽었으므로, 그가 "종교개혁가"로 활동한 시기는 이 30년 입니다. 그의 활동기를 전/중/후기로 나누어 본다면, 어떤 주제들에 대한 루터의 생각이 시간에 따라 수정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유대인과 농민들에 대해 온정적이던 전반기에 반해 후반기에 루터는 가차없이 비판을 던지게 되죠.
위에 언급하신 1527년 자료는 로마카톨릭 변증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자료인데, 이들이 제시하는 논증의 결정적 문제점 (혹은 트릭?)은 해당 사건과 루터 본인의 시간대를 함께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에도 여러 형태의 준-종교개혁적인 움직임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증세 로마카톨릭의 전통과 대립한 것은 마르틴 루터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작업을 기초부터 시작한 루터의 단계적인 입장변화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위에 언급하신 1527년 자료는 로마카톨릭 변증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자료인데, 이들이 제시하는 논증의 결정적 문제점 (혹은 트릭?)은 해당 사건과 루터 본인의 시간대를 함께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에도 여러 형태의 준-종교개혁적인 움직임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증세 로마카톨릭의 전통과 대립한 것은 마르틴 루터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작업을 기초부터 시작한 루터의 단계적인 입장변화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전통에 대한 루터와 루터교단의 생각을 잘 반영하는 표어가 "목욕물과 아기를 같이 버리지 말라"입니다. 로마카톨릭의 "전통"에 대한 루터의 생각은 종교개혁의 뇌관이 되었던 "면죄부/대사증" 같은 경우 종교개혁 초기에 아주 칼날같이 배척했지만, 성인공경이나 성인에 대한 기도 등을 폐지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루터는 중반기 부터 본격적으로 로마카톨릭의 전통들과 결별해 나갑니다.
우선 말씀하신 1527년 자료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자료는 1527년에 출판된 책에 실린 설교내용 (Sermon on the Gospel for the Feast of the Conception of the B.V.M., Weimar edition 17/2, 288p,, http://www.archive.org/stream/werkekritischege17luthuoft#page/280/mode/2up)이고, 설교문 본문이 아니라 성모마리아 "본인"의 "원죄없는 잉태" (무염시태)에 대한 한 "주석"에 등장합니다. 해당 주석이 달린 설교는 출판일보다 약 9-1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종교개혁 초기 1-2년에 해당합니다.
"It is a sweet and pious belief that the infusion of Mary’s soul was effected without original sin; so that in the very infusion of her soul she was also purified from original sin and adorned with God’s gifts, receiving a pure soul infused by God; thus from the first moment she began to live she was free from all sin" - Martin Luther's Sermon "On the Day of the Conception of the Mother of God," 1527 / Weimar edition 17/2, 288./ Hartmann Grisar's book, Luther Vol. IV (St Louis: B. Herder, 1913)'마리아의 영혼이 불어넣어질 때 그 영혼이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따라서 그 영혼이 주입되는 시점에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정화되었으며, 하느님께서 불어넣으신 순수한 영혼을 받아 그의 선물들로 단장되었기에, 그녀가 생명을 가진 순간 부터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왔다'는 믿음은 아름답고 신심어린 믿음이다. / 번역: 최광민
그런데 1529년 판본 이후 후속판들에서는 해당 주석을 삭제했습니다. 여전히 루터가 살아있을 때였고 그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의 사후 루터의 저작을 편집해 발표할 때 편집자들은 해당 주석조차 루터가 쓴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루터가 1517년 설교문에 저런 주석을 남겼더라도, 루터는 최소한 1529년부터는 무염시태에 대한 생각을 버렸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그의 활동 초기의 흔적인 것이죠. 참고로 말하자면, 마리아가 "원죄없이 탄생"하였다 하더라도, 도대체 어떤 시점부터 그리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 있었습니다. 가령, AD 13세기의 스콜라 철학/신학자들 중에서도,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리아 본인의 잉태시점에는 원죄를 가진 존재였으나 어머니의 태중에서 원죄가 정화된 것으로 보았고, 반대로 영국의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는 잉태시점부터 원죄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두 이해가 가져오는 결론은 사뭇 다르게 되는데, 전자의 경우, 마리아는 신의 특별한 은혜로 성별된 사람이란 뉘앙스가 강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새로운 피조물' 같은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생각은 종교개혁 5년 차인 15보22년에 루터가 낸 소기도서에도 등장합니다. 이 기도문에서는 "무염시태"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마리아에게 전적으로 죄가 없다고 묘사됩니다. 사실 이 문맥은 엘리사벳이 잉태한 마리아를 만났을 때의 시점입니다. 따라서 텍스트만 본다면 루터는 여기서 마리아 "본인의 잉태 시점부터 죄가 없었다 (=무염시태)"고 꼭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In the first place She is full of grace, proclaimed to be entirely without sin—something exceedingly great. For God’s grace fills her with everything good and makes her devoid of all evil. - Martin Luther's Little Prayer Book, 1522 (LW 43:39).
루터는 중반기 이후 지속적으로 로마카톨릭적 전통들을 배제하는 동시에 마리아에 대한 언급을 줄여나갑니다. 아마도 1530년을 전후로 루터는 "원죄없이 마리아가 잉태/탄생했다"는 로마카톨릭의 "마리아 무염시태"에 대한 생각을 최종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루터의 1532년 설교를 보겠습니다. 이제 마리아의 (원죄로부터의) 정화는 잉테 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탄생 "이전 어느 시점"에 성령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명시됩니다. 강조점이 마리아에서 예수로 완전히 옮겨진 것입니다.
Thus we are conceived and born. For all of mankind is conceived and born in accord with creation’s decree, as recorded (Gen. 1:28):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He, indeed, was a genuinely true, natural human being, but not conceived or born in sin as all other descendants of Adam.그렇게 우리는 (죄성을 가진 채 / 최광민) 잉태되고 태어난다. 모든 인류는 기록된 대로 "자손을 낳고 번성하라. 땅을 채워라"란 창조의 원리에 따라 그렇게 잉태되고 태어난다. 그리스도는 죄성을 가진채 잉태되거나 태어나는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진실로 그는 진실로 참되고 자연적인 인간이셨으나, 아담의 다른 자손괃는 달리 죄 가운데 잉태되거나 태어나지 않으셨다.That is why his mother had to be a virgin whom no man had touched, so that he would not be born under the curse, but rather conceived and born without sin, so that the devil had no right or power over him. Only the Holy Spirit was present to bring about the conception in her virgin body.이것이 그의 어머니가 어떤 남자도 손대지 않은 처녀였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는 저주 속에서가 아니라 죄성이 없는 상태로 잉태되고 태어났기에 악마는 그에게 어떤 권리를 주장하거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오직 성령만이 그녀의 처녀의 몸에 있었기 때문이다.Mother Mary, like us, was born in sin of sinful parents, but the Holy Spirit covered her, sanctified and purified her so that this child was born of flesh and blood, but not with sinful flesh and blood. The Holy Spirit permitted the Virgin Mary to remain a true, natural human being of flesh and blood, just as we. However, he warded off sin from her flesh and blood so that she became the mother of a pure child, not poisoned by sin as we are. Thus what the angel spake came true: “He shall be great, and shall be called the Son of the Highest.” For in that moment when she conceived, she was a holy mother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her fruit is a holy pure fruit, at once God and truly man, in one person [Martin Luther, Sermons of Martin Luther, Vol. 3, ed. John Nicholas Lenker. ( Grand Rapids: Baker Books, 1996), 291]우리처럼 성모 마리아도 죄 많은 부모의 죄 가운데 탄생했다. 그러나 성령이 그녀를 덮어 성별하고 정화하여 이 아기 (=예수)가 죄성있는 살과 피를 갖지 않고 탄생할 수 있었다. 성령은 처녀 마리아가 우리처럼 진정 자연스런 살과 피를 가진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성령은 그녀의 살과 피에서 죄성을 막아내어, 그녀는 우리처럼 죄성에 물든 것이 아닌 순수한 아기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예수)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며 지극히 높은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란 천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가 잉태하였을 때, 그녀는 거룩한 성령에 충만한 거룩한 어머니였고, 그녀의 열매는 거룩하고 순결한 열매로서 신성과 참 인성이 한 사람 안에 동시에 거하신 것이다. --- 마르틴 루터, 설교 1532 / 번역: 최광민
Argument: Every man is corrupted by original sin and has concupiscence. Christ had neither concupiscence nor original sin. Therefore he is not a man.
[주장]: 모든 사람은 원죄로 타락했고 육욕을 가진다. 그리스도는 육욕이 없고 원죄도 없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아니다.
Response: I make a distinction with regard to the major premise. Every man is corrupted by original sin, with the exception of Christ. Every man who is not a divine Person [personaliter Deus], as is Christ, has concupiscence, but the man Christ has none, because he is a divine Person, and in conception the flesh and blood of Mary were entirely purged, so that nothing of sin remained. Therefore Isaiah says rightly, "There was no guile found in his mouth"; otherwise, every seed except for Mary's was corrupted.
[답변] 모든 사람은 원죄에 의해 타락했다. 단 그리스도는 예외다. 그리스도와 달리 신성이 없는 인간은 육욕을 가진다. 그러나 신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육욕이 없다. (그리스도가 수태될 때 / 필자 주), 마리아의 살과 피는 완전히 정화되어 죄의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이사야가 "그의 입에 거짓이 없도다"라고 한 말은 옳았다. 마리아의 아들을 제외한 모든 자녀는 따라서 타락한 상태이다.
---- On the Immaculate Conception of Mary, {Disputation On the Divinity and Humanity of Christ} / 번역: 최광민
죽기 2년 전인 1544년, 루터는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와 우리의 유일한 차이는 "그리스도만 유일하게 죄가 없이 태어났다"는 점이며, 이를 위해 신이 성령을 마리아의 영혼과 몸에 충만하게 부어넣어 죄를 정화한 상태에서 예수를 잉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을 루터의 최종견해로 봐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In the papacy they used to tell a story: The devil once came to church to mass, and when in the confession of the Christian faith, which they called the Patrem, they sang the words: " Et homo factum est"— the Son of God was made man—and the people did not kneel down but stood, he struck one on the mouth, rebuked him and said: You ruffian, are you not ashamed that you stand here like a stock, and do not fall down for joy? If the Son of God had become our brother, like yours, we would not know what to do for joy.
I do not think that this is true ; for the devil is too decided in his enmity to us and the Lord Jesus ; but this is true, that he who conceived this story had the right spirit, and well understood how great an honor was conferred upon us in that the Son of God became man; not like Eve nor Adam, who was made of the earth; but He is still more nearly related to us, since He was born of the flesh and blood of the Virgin Mary, like other men, except that the virgin was alone, and being sanctified by the Holy Spirit, conceived this blessed fruit without sin and by the Holy Spirit. In other respects He is like unto us, and a natural Son of a woman.
Adam and Eve were not born, but created. God made Adam out of the dust of the earth, and the woman of his rib. How much nearer is Christ to us than Eve to her husband Adam, since He is truly our flesh and blood. Such honor we should highly esteem and well take to heart, that the Son of God became flesh, and that there is no difference at all between His and our flesh, only that His flesh is without sin. For He was so conceived of the Holy Ghost, and God poured out so richly His Holy Spirit into the soul and body of the Virgin Mary that without any sin she conceived and bore our Lord Jesus. Aside from this, in all other respects, He was like other men; He ate, drank, was hungry, thirsty, cold like other men. Such and similar natural infirmities, which have descended upon us by reason of sin, He, who was without sin, bore and had like unto us, as St. Paul says: " He was made in the likeness of men, and found in fashion as a man." --- Martin Luther, {Martin Luther's House Postils}
아담과 하와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창조되었다. 신은 아담을 흙에서 만들었고, 하와를 그의 갈비뼈에서 만들었다. 하와와 그 남편의 유사도와 비교한다면, 그리스도와 우리는 얼마나 더 가까운가! 그리스도는 진실로 우리의 살과 피를 가지셨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의 아들이 인간의 육체를 취하셨다는 점과, 또 그 분의 육체에는 한 점의 죄도 없었다는 점만 빼면 그 분과 우리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을 큰 영광으로 여기고 이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렇게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신은 그의 성령을 동정녀 마리아의 영혼과 몸에 그렇게 충만히 불어넣으셔서, 그녀가 우리 주 예수를 죄 없는 상태에서 잉태하고 낳게 하셨다. 이 점을 제외한다면,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과 같다....... --- 마르틴 루터 / 번역: 최광민
정리하자면,
로마카톨릭의 공식견해로는, "마리아 본인이 잉태될 때" 원죄가 없었으며 이후에도 본죄를 짓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나중에 예수를 죄없는 상태에서 잉태합니다.
1530년 이후 루터의 입장에선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할 때 (혹은 이전 어느 시점에)" 성령에 의해 완전히 정화되어 그 결과 죄로 오염되지 않는 아기를 낳습니다. 따라서 루터의 이해는 이제 로마카톨릭의 이해와 현격한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초점이 "마리아 본인의 잉태"에서 "예수의 잉태"로 완전히 옮겨진 것이며, 따라서 마리아 본인의 무염시태를 기념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죠.
원죄없이 태어난 아이는 예수 1인이어야만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가 자기 자신의 어머니인 마르가레테에게 루터교로 개종하지 말고 가톨릭 신앙을 그대로 가지라고 당부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루터의 어머니인 마르가레테와 관련된 속설에 따르자면, 저 말을 "루터가 어머니 임종에서 했다"는 것인데요, 저도 출처를 예전에 찾아봤는데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루터의 모친은 1531년에 죽었는데, 제가 들은 버전에서는, "임종 때 어머니까 자신이 아직도 로마카톨릭이란 걸 아들에게 사과/변명하려 하자,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바른 일을 하셨고 미안해 하지도 말라고 답했다"였습니다.
뭐 사실이라도 설명이 가능한 것이, 비록 루터가 로마교회와 척을 졌지만, 사실 루터는 자신이 "참 카톨릭" 편에 서있다고 늘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카톨릭"이란 그가 생각한 "중세 내내 부패했던 로마카톨릭교회"란 뜻이 아니라, 보다 적절한 명칭인 "보편교회"를 뜻합니다. 그의 95개조에도 그가 대사와 연옥교리를 비판하지만, 교회와 교황이 올바른 교리를 수호하는 한 "카톨릭 교회" 자체에 반발하는 것인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도 적습니다 ("53. 면죄부의 설교가 선포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저주하여 교회 안에서 아주 잠잠하여 지도록 만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대적자들이다") 물론 이후 루터는 이런 낙관을 버리긴 합니다만.
비슷한 속설로는 루터 본인이 임종시 "나는 아직 (로마)카톨릭이야"라고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적어도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친구인 유스투스 요나스가 "자네는 그리스도와 자네가 가르친 가르침을 붙들고 죽길 원하는가?"라고 묻자 "그럼"이라고 답한 후 산상수훈의 말에서 따온 "우리는 모두 거지/가난한 자야. 그건 사실이지"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루터 본인은 자신이 진정한 "보편"("카톨릭")교회에 속해 있다고 믿었던 것은 의심할 나위 없습니다.
/ 최광민
[질문]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마르틴 루터를 지지하고 보호하기는 했으나 철저히 정치적인 이해타산 때문에 그러했을 뿐이며 정작 그는 평생 로마 가톨릭 신자로 남았으며 실제로 연옥에서의 보속 기간을 줄여주는 성유물들을 계속 간직하였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마르틴 루터의 신학에 실제로는 얼마만큼 공감하고 있었나요?
[답변]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 또한 루터의 종교개혁 시간대와 비교해 가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루터와 멜랑히톤이 가르치던 비텐베르크 대학의 창설자로서, 이 신생대학이 다른 모든 독일의 유명대학을 제끼고 종교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는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터와의 개인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터가 {95개조}를 제출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517년이지만, 그가 종교개혁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보름스 회의를 통해 루터가 파문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수배령을 내린 1521년입니다. 이때 루터의 보호자를 자처한 프리드리히 3세는 1525년 사망할 때까지 4년 간 루터를 보호했습니다.
지난번에 루터와 마리아 무염시태 교리에 대해 언급했다시피, 이 시기는 종교개혁자로서의 루터 경력 초반기에 해당하고, 루터의 어머니가 로마카톨릭 신자로서 죽은 1531년 무렵까지도 루터는 아직 많은 로마카톨릭 전통과 교리를 철저하게 내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62세를 살면서 성유물을 평생 수집했던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평생 로마카톨릭으로 살았지만, 임종 시에 루터 측으로부터 성찬을 받았고 따라서 적어도 사망 무렵에는 복음주의 (= 루터파)로 개종한 것으로 보통 여깁니다. 프리드리히 3세가 정말 충실한 로마카톨릭 신자로 죽었다면, (임종 시 무의식 상태가 아닌 한) 바티칸이 이미 이단으로 정죄한 루터 측으로부터 이런 성례를 받았을 리가 없죠.
독일 지역에서의 (대사증에 대응하는) 성물거래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발발한 1510년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의 성물수집이 그가 보름스 회의 후 루터를 보호하기 시작한 1521년에서 임종한 1525년 4년 간 집중된 것이 아니라면, 그의 성물수집 전력을 루터 측에서 큰 문제로 여겼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최광민
#로마카톨릭, 정교회, 프로테스탄트의 성체 이해에 대해
[질문] 제가 성체파트를 보다가 하는 질문입니다. 정교회는 영적임재보다는 실채변환에 가까운거 아니었나요 교리문답을 봐도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다만 서방신학같은 사변적 설명을 거부하는걸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 qorcks200)
http://kwangmin.blogspot.com/2015/12/vs-1_11.html
제 글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정교회는 원래 이 문제에 대해 다소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왔으며 라틴교회와 같은 식의 정교한 교리화를 대체로 피해왔다. 따라서 로마카톨릭교회의 '실체변화 transsubstantiatio'와 유사한 식의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6세기부터인데, 정교회 측에서 그에 대응하는 여러가지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중 가장 가까운 것은 라틴어 'transsubstantiatio'의 직역에 가까운 메타우스오시스 (μετουσίωσις)일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 용어로 본질을 말하는 우시아 (οὐσία)와 라틴어에서의 수브스탄티아 (subtantia)가 정확히 같은 의미에 대응되는지에 대한 큰 혼란은 삼위일체론의 정립되어 가던 AD 4세기에도 있었다.
사실 정교회에서는 8-9세기 성상파괴논쟁시 성상파괴론자들이 오직 성체만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이콘"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성화상옹호론자들은 성체는 '이콘'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주장했다. 얼핏보면 마치 로마카톨릭의 '실체변화'를 말하는 것 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성화상옹호론자 중 가장 영향력 컷던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가를 논하면서, 마치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 마리아를 통해 몸을 입은 것과 같이,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 역시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풀이하면서, 그렇게 이해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즉, 성자가 예수로 성육신 할때 그의 신성이 인간의 피와 살과 연합했듯, 성찬에서도 예수는 성령을 통해 사람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와 연합함으로써 빵/포도주가 예수의 참 몸/피가 되는 것이라 이해한 것이다.
"It is truly that Body, united with Godhead, which had its origin from the Holy Virgin; not as though that Body which ascended came down from heaven, but because the bread and wine themselves are changed into the Body and Blood of God. But if thou seekest after the manner how this is, let it suffice thee to be told that it is by the Holy Ghost; in like manner as, by the same Holy Ghost, the Lord formed flesh to himself, and in himself, from the Mother of God; nor know I aught more than this, that the Word of God is true, powerful, and almighty, but its manner of operation unsearchable.” --- (J. Damasc. Theol. lib. iv. cap. 13, § 7.) --- 다마스쿠스의 요한
후대 종교개혁가인 칼뱅도 어떻게 보면 이 견해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듯 보인다. 화체설과 공재설에서 그리스도의 실제 몸은 직접적으로 빵과 포도주의 실체를 바꾸거나 혹은 빵과 포도주와 함께 임재한다. 그러나 칼뱅의 이해에 따르면 신자들과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직접적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이 세상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효력적으로 임재한다.
Even though it seems unbelievable that Christ’s flesh, separated from us by such a great distance, penetrates to us, so that it becomes our food, let us remember how far the secret power of the Holy Spirit towers above all our senses . . . What, then, our mind does not comprehend, let faith conceive: that the Spirit truly unites things separated in space. . . . [T]he Lord bestows this benefit upon us through his Spirit, so that we may be made one in body, spirit, and soul with him. The bond of this connection is therefore the Spirit of Christ, with whom we are joined in unity, and is like the channel through which all that Christ himself is and has is conveyed to us. --- 장 칼뱅
/ 최광민
[질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변환 설명에서 질료/형상변화 없는 우유적 실재로 알고있습니다그런데 우유에 관해 설명하신 부분은 오히려 형상에 관한 설명 같습니다 우유는 사건과(우연/필연) 관련된걸로 알고있습니다.
[답변]
http://kwangmin.blogspot.com/2015/12/vs-1_11.html
이 글의 내용을 질문내용에 맞춰 조금 보강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상을 조성을 양, 질, 관계, 시간, 공간 등등의 9가지 우유(accident)와 하나의 실체(substance)로 나누었는데, '우유'는 외적인 모습/속성의 전달체로서 실체에 덧붙이거나 변화시키거나 실체로부터 분리해내더라도 실체에는 변화를 일으키지 않은 어떤 것 혹은 속성을 말한다. 따라서 사물의 비본질적인 속성이다. 반면 '실체' 그 본질/존재/속성 정도에 해당하는 중세철학 용어이다. 하나의 실체는 질료와 형상으로 이뤄지는데, 이때 '형상'이란 '외적으로 감지되는 형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퀴나스는 예수가 "이것은 나의 몸이고 나의 피다"라고 선언했던 빵과 포도주는 그 외형(우유)는 변화가 없는 대신, 빵의 본질적 실체는 "예수의 실체적인 살과 피"로 변하여야 한다고 이해한다. 즉, 실체 (substance)가 변화하므로, 이것을 성체의 실체변화/화체설 (trans-substantiation) 이라고 부른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성체의 축성 후 빵에 일어나는 변화, 즉 우유는 그대로이나 빵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그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해당단락을 읽어보자.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성체의 축성 후 빵에 일어나는 변화, 즉 우유는 그대로이나 빵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그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해당단락을 읽어보자.
http://www.newadvent.org/summa/4075.htm#article5
우선 아퀴나스는 성체의 축성 후 빵의 우유가 그대로 남아 있음에 대해 먼저 이렇게 주장하며, 이에 대한 반박을 하나씩 논한다.
실체의 변화에 대해서, 아퀴나스는 만약 빵의 실체적 형상이 남아있다면 빵의 질료 이외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없는 셈이기에 빵의 실체적 형상은 반드시 변해야 하며, 따라서 빵의 실체적 형상은 남아있지 않게된다고 설명한다.
우선 아퀴나스는 성체의 축성 후 빵의 우유가 그대로 남아 있음에 대해 먼저 이렇게 주장하며, 이에 대한 반박을 하나씩 논한다.
I answer that, It is evident to sense that all the accidents of the bread and wine remain after the consecration. And this is reasonably done by Divine providence. First of all, because it is not customary, but horrible, for men to eat human flesh, and to drink blood. And therefore Christ's flesh and blood are set before us to be partaken of under the species of those things which are the more commonly used by men, namely, bread and wine. Secondly, lest this sacrament might be derided by unbelievers, if we were to eat our Lord under His own species. Thirdly, that while we receive our Lord's body and blood invisibly, this may redound to the merit of faith.
실체의 변화에 대해서, 아퀴나스는 만약 빵의 실체적 형상이 남아있다면 빵의 질료 이외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없는 셈이기에 빵의 실체적 형상은 반드시 변해야 하며, 따라서 빵의 실체적 형상은 남아있지 않게된다고 설명한다.
I answer that, Some have contended that after the consecration not only do the accidents of the bread remain, but also its substantial form. But this cannot be. First of all, because if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were to remain, nothing of the bread would be changed into the body of Christ, excepting the matter; and so it would follow that it would be changed, not into the whole body of Christ, but into its matter, which is repugnant to the form of the sacrament, wherein it is said: "This is My body."
Secondly, because if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were to remain, it would remain either in matter, or separated from matter. The first cannot be, for if it were to remain in the matter of the bread, then the whole substance of the bread would remain, which is against what was said above (Article 2). Nor could it remain in any other matter, because the proper form exists only in its proper matter. But if it were to remain separate from matter, it would then be an actually intelligible form, and also an intelligence; for all forms separated from matter are such.
Thirdly, it would be unbefitting this sacrament: because the accidents of the bread remain in this sacrament, in order that the body of Christ may be seen under them, and not under its proper species, as stated above (Article 5). And therefore it must be said that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does not remain.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반동한 로마카톨릭 측의 개혁작업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정식채택된 설명은, 형상과 질료로 구성된 실체에서 변화가 일어나되 우유는 변화되지 않는 채 남으며, 따라서 이 적극적 행위에 의하여 하나의 현실적인 존재가 소멸됨이 없이 다른 현실적인 존재로 전체 실체가 변화한다고 풀이한다..."
/ 최광민
#종교개혁의 "오직 성서 (솔라 스크립투라)" 및 "오직 믿음 (솔라 피데)"에 대해
[질문] 중세 시대에 일반 민중들의 자기나라 모국어 문자에 대한 문해율이 어느정도였는지가 궁금합니다.
[답변]
정확한 자료가 있을지나 모르겠지만 극히 낮지 않을까요? 서로마제국 황제로 대관한 프랑크족 카롤루스/샤를마뉴 자체가 이미 문맹이었는데요.
[답변]
정확한 자료가 있을지나 모르겠지만 극히 낮지 않을까요? 서로마제국 황제로 대관한 프랑크족 카롤루스/샤를마뉴 자체가 이미 문맹이었는데요.
비교적 문명화된 시기 로마시대 도시 인구 중에서 최대 2%만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을 (바트 어만이던가?) 책에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알파벳을 더듬거리고 읽는 수준으로만 본다면 그보다는 더 높았을거라 봅니다. (보통 읽기가 쓰기보다 훨씬 쉽습니다).
/ 최광민
[질문] 중세 당시의 일반 민중들의 문해율이 그렇게 낮았다면 왜 존 위클리프나 피터 발도같은 사람들은 라틴어 성경을 자기나라 모국어로 번역하려 한 건가요? 어차피 라틴어로 쓰든 모국어로 쓰든 일반 민중들이 못 읽는 것은 매한가지 일텐데 말입니다.
[답변]
바울이 {로마서} 10장에 적은 구절을 기억하시나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현대인들은 "읽"는데 익숙하다보니, 고대-중세인들이 주요 지식습득 방식이 "듣"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잊습니다. 중세대학의 수업도 주로 강독을 듣는 것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라틴어를 모르면 성서를 사제가 아무리 라틴어 성서를 읽어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국어로 번역되면, 설령 개인적으로 "읽"지 못해도 공공장소에서 강독될 때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설교에 등장하는 해석이 아니라, 설령 번역되었더라도 "원문"을 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지식인이 아닌 일반 민중에겐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사실 대중설교가 유행한 중세 말 로마카톨릭 사제나 수도사들도 가급적 무학의 민중들에게 자국어로 된 설교 가운데 성서의 구절을 많이 넣으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듣더라도) 직접 성서원문을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 최광민
/ 최광민
[질문] 중세 가톨릭교회는 일반 민중의 성서구독을 금지했나요? 어느 가톨릭 신자의 말에 따르면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내놓기 이전에 이미 1466년에 스트라스부르의 요한 멘델에 의해 독일어 성경이 번역되었고, 존 위클리프 이전에도 8세기에 애드헬름과 구틀락, 에그버트가 영어 번역 성경을 내놓았고 1150년에 오름이 쉽게 풀이한 번역 성경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는 성경 번역을 금지하지도 않았으며, 애당초 당시는 인쇄술이 없었기에 성경을 모두에게 공급할수도 없었고 문맹률도 굉장히 높았기에 사제가 읽어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일반인의 성서독서를 금하"는 로마카톨릭교회의 포교령은 대표적인 것으로는 1231년 툴루즈 회의와 1234년 타라고나 회의의 포고령에서 보듯 실제로 있습니다만, 그 의도는 각 시대상황에 대한 여러가지 문맥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교회가 "교리해석을 독점"하기 위한 조치인 경우로 보시면 대략 정확합니다. 즉, 허가받지 않은 일반신자는 읽고 듣고 묵상할 수는 있어도 직접 그 교리적 뜻을 해석하면 안되는 것이죠.
당시 일반인들에게 설교 등을 통해 노출되는 성서 텍스트는 사실 묵상집 수준의 아주 극히 적은 분량 뿐이었습니다. 사실 중세 때는, 특별히 흑사병 유행 이후엔 사제들도 문맹률이 높아서 미사경문 정도를 ("미사를 부른다"란 표현처럼) 라틴어로 외워서 끝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성서를 일반인들이 읽어 발생하는 "이단발호"의 문제가 도저히 감당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중세 말 이원론적인 통칭 카타리파 이단 등이 일반신자들의 성서독서/연구를 장려합니다).
사실 일반신자들에게 성서의 텍스트가 공개된 후인 종교개혁 이후 "성서 텍스트에 바탕한 이단"들이 급증한 것을 보면, 중세 로마카톨릭의 입장이 아주 수긍못할 것도 없겠죠.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이 "공개 후 교육"이라면 로마카톨릭의 입장은 "봉쇄 및 사전예방"이었다고나 할까요.
/ 최광민
[답변]
"일반인의 성서독서를 금하"는 로마카톨릭교회의 포교령은 대표적인 것으로는 1231년 툴루즈 회의와 1234년 타라고나 회의의 포고령에서 보듯 실제로 있습니다만, 그 의도는 각 시대상황에 대한 여러가지 문맥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교회가 "교리해석을 독점"하기 위한 조치인 경우로 보시면 대략 정확합니다. 즉, 허가받지 않은 일반신자는 읽고 듣고 묵상할 수는 있어도 직접 그 교리적 뜻을 해석하면 안되는 것이죠.
당시 일반인들에게 설교 등을 통해 노출되는 성서 텍스트는 사실 묵상집 수준의 아주 극히 적은 분량 뿐이었습니다. 사실 중세 때는, 특별히 흑사병 유행 이후엔 사제들도 문맹률이 높아서 미사경문 정도를 ("미사를 부른다"란 표현처럼) 라틴어로 외워서 끝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성서를 일반인들이 읽어 발생하는 "이단발호"의 문제가 도저히 감당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중세 말 이원론적인 통칭 카타리파 이단 등이 일반신자들의 성서독서/연구를 장려합니다).
사실 일반신자들에게 성서의 텍스트가 공개된 후인 종교개혁 이후 "성서 텍스트에 바탕한 이단"들이 급증한 것을 보면, 중세 로마카톨릭의 입장이 아주 수긍못할 것도 없겠죠.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이 "공개 후 교육"이라면 로마카톨릭의 입장은 "봉쇄 및 사전예방"이었다고나 할까요.
/ 최광민
[질문] 중세 당시의 일반 민중들의 문해율이 그렇게 낮았다면 왜 존 위클리프나 피터 발도같은 사람들은 라틴어 성경을 자기나라 모국어로 번역하려 한 건가요? 어차피 라틴어로 쓰든 모국어로 쓰든 일반 민중들이 못 읽는 것은 매한가지 일텐데 말입니다.
[답변]
바울이 {로마서} 10장에 적은 구절을 기억하시나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현대인들은 "읽"는데 익숙하다보니, 고대-중세인들이 주요 지식습득 방식이 "듣"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잊습니다. 중세대학의 수업도 주로 강독을 듣는 것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라틴어를 모르면 성서를 사제가 아무리 라틴어 성서를 읽어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국어로 번역되면, 설령 개인적으로 "읽"지 못해도 공공장소에서 강독될 때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설교에 등장하는 해석이 아니라, 설령 번역되었더라도 "원문"을 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지식인이 아닌 일반 민중에겐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사실 대중설교가 유행한 중세 말 로마카톨릭 사제나 수도사들도 가급적 무학의 민중들에게 자국어로 된 설교 가운데 성서의 구절을 많이 넣으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듣더라도) 직접 성서원문을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 최광민
[질문] Kwangmin님의 답변 중에서 성서 구독을 금지하는 포교령이 있었다고 말하셨는데, 그 포교령이 혹시 툴루즈 주교 회의에서 정해진 성서구독 금지조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툴루즈 주교 회의에서의 성서 구독 금지령은 십자군이 카타리파의 성서를 판별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내려진 조치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인가요? 또 이 툴루즈 주교 회의 말고도 가톨릭이 성서 구독을 금지하는 포교령이 또 내려진 적이 있었나요?
[답변]
성서읽기에 대한 논점은, 사제가 아닌 이들이 성서텍스트를 "읽었는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그걸 읽고 개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가가 포인트입니다. 가끔 이 주제와 로마카톨릭 측의 변론을 보면, 약간 논점을 이탈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중세에도 일반인들이 (라틴어든 다른 언어든) 성서를 읽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아예 읽는 것도 금지한 조치는 반-카톨릭 이단을 차단하기 위해 "해석"은 물론이고 아예 "읽지조차 못하게 한" 일종의 "이중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던 거죠.
/ 최광민
[질문] 위에서 언급했던 스트라우스의 요한 멘델과 같은 자들이 번역했던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라틴어 외의 독일어 성서가 이미 있었다면 왜 유독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비텐베르크 성서의 파급력은 신성 로마 제국 전역에 퍼질 정도로 파급력이 컸던 것인가요?
[답변]
집과 교회와 대학과 공공장소에서 대중이 읽고, 또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읽혀졌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의 예전 등에서 라틴어 불가타 성서를 대체했기 때문인 것이죠. 중세 중반부터 종교개혁 전까지 서방에서 이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제외하고 또 로마서의 3장 28절의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는 구절에서 믿음의 자리 앞에 "오직"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추가하거나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는 구절에서 "말"과 "능력"의 자리를 서로 뒤바꾸는 등 이 밖에도 1400여 개의 부정확하고 고의적으로 왜곡된 부분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이신칭의 교리를 강력하게 지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고대로부터 저자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문건들인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계시록은 정경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고 루터의 독일어 성경 마지막에 재배치되었습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동방에서는 꽤 늦게 정경으로 인준되었습니다).
번역오류에 대해선, 루터의 독일어 "번역"을 영감받은 "정경"이라고 여기는 프로테스탄트는 없다는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의 독일어 번역본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은 그리스어 {70인역}, 라틴어 {불가타}, 혹은 영어 {킹 제임스 번역}을 "영감받은 정경"으로 생각하는 각각 정교도, (일부) 로마카톨릭, 그리고 KJV-only주의자들의 그것과 다릅니다.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 히브리어 성서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여 마카베오서 등의 외경은 정경 66권과 동등한 가치가 없다고 제외했지만, 후에 이스라엘에서 이 외경의 히브리어 사해문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외경들을 제외한 마르틴 루터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뜻하는 것인가요?
[답변]
사해문서에는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과 비슷한 사본도 있지만, 맛소라 사본이 아닌 (외경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과 같은 원전 텍스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유사한 텍스트도 발견되고, 또 "외경"문서 뿐 아니라 "위경"문서도 발견됩니다. 그러니까 사해문서에서 일부 외경이 발견된 사례로 해당 문서의 외/위경의 정경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리한 비약입니다. 그럼 위경들도 정경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가 생기니까요.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 히브리어 성서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여 마카베오서 등의 외경은 정경 66권과 동등한 가치가 없다고 제외했지만, 후에 이스라엘에서 이 외경의 히브리어 사해문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외경들을 제외한 마르틴 루터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뜻하는 것인가요?
[답변]
사해문서에는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과 비슷한 사본도 있지만, 맛소라 사본이 아닌 (외경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과 같은 원전 텍스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유사한 텍스트도 발견되고, 또 "외경"문서 뿐 아니라 "위경"문서도 발견됩니다. 그러니까 사해문서에서 일부 외경이 발견된 사례로 해당 문서의 외/위경의 정경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리한 비약입니다. 그럼 위경들도 정경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가 생기니까요.
사실 외경의 정경성 문제는 루터가 아니라 서기 1세기까지 소급되는 문제로, 유대인으로서는 그리스어 70인역을 잘 알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이나 예루살렘 출신 제사장/역사가 요세푸스가 외경에 대해 침묵하거나 정경성을 부인하고 있고, 기독교 교부로서는 2세기의 오리게네스나 테르툴리아누스가 정경 외 문서 (외경)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라틴어 불가타를 번역하면서 외경이 배제된 히브리 정경을 선호했던 히에로니무스는 외경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외경문서들을 따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놓았습니다. 원래 외경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에서 라틴어로 번역을 하려다가, 이후 생각을 바꿔서 히브리어 (+아람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게 된 것이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불가타} 번역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문에 없는 그리스어 외경을 따로 묶은 것입니다.
언제부터 그리스어 70인역에 이들 외경문서가 합본된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 중입니다.
/ 최광민
[질문] 성서무오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축자영감설이나 유기적 영감설 같은 것들에 대한 견해도 궁금합니다.
[답변]
현재까지 전해지는 길고 짧은 수만 개의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시리아어 및 기타 언어의 사본 가운데 무엇이 원본인지, 혹은 어떤 사본이 원본을 가장 잘 반영하는지 분명히 알 수 없는 한,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성서 텍스트는 이들 사본들 간의 불일치를 나름대로 교정한 "편집사본"입니다. 따라서 사본전승 과정으로만 본다면 이들 사본들 간에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게 아니라 확실히 많은 필사오류와 교정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본전승에서의 오류가 교리에 영향을 준 경우는 미미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본전승상의 오류는 인정하나, 원본의 교리상 통일성은 믿는다" 정도가 제 입장입니다. 다만 성서 텍스트가 오랜 세월을 거쳐 수집된 문서이기 때문에, 단어/문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는 그 원래 의미를 찾기위해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축자영감설이나 유기적 영감설에 대해선, 오직 하나의 "설"로 성서의 모든 책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예언서는 야훼의 지시를 "받아 적었"다고 되어 있는 반면, 3번째 복음서는 저자 (루가/누가)가 예수의 배경에 대해 (그 이전의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고 집필했다고 적었으니까요.
/ 최광민
[답변]
사실 이 문제를 그렇게 딱 둘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일반적인 대전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누구"나 성경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구절"에 합치한다는 것입니다. 퀘이커들은 더 나아가서 인간 개개의 영혼을 비추는 "신의 빛"을 따라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신의 뜻을 직접 이해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질문] 그러면 가톨릭은 사실상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반 평신도는 성경을 독서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해석할 권한은 전혀 없으며 철저히 사제의 해석에 의존해야한다고 가르치는 건가요? 그러면 가톨릭에서 성서 독서라는 행위 자체는 애당초 의미가 없는 행동 아닌가요?
[답변]
그래서 사실 20세기 중반까지 로마카톨릭에서는 평신도들에게 성서독서가 별로 권장되지 않았고 신자들도 굳이 찾아서 읽지 않았습니다. 로마카톨릭에서 평신도 성서독서가 권장되는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이며, 따라서 꽤 최근의 현상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프로테스탄트는 그 시작부터 신자의 성서독서와 연구/묵상이 신자의 핵심적인 삶이었지만, 로마카톨릭에게 있어서 성서독서는 신자에게 권장될 수있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울러 로마카톨릭에서는 성서독서 자체가 아니라 "교리적 부분"에 대한 평신도의 해석이 제한되는 것입니다.
/최광민
언제부터 그리스어 70인역에 이들 외경문서가 합본된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 중입니다.
/ 최광민
[질문] 성서무오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축자영감설이나 유기적 영감설 같은 것들에 대한 견해도 궁금합니다.
[답변]
현재까지 전해지는 길고 짧은 수만 개의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시리아어 및 기타 언어의 사본 가운데 무엇이 원본인지, 혹은 어떤 사본이 원본을 가장 잘 반영하는지 분명히 알 수 없는 한,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성서 텍스트는 이들 사본들 간의 불일치를 나름대로 교정한 "편집사본"입니다. 따라서 사본전승 과정으로만 본다면 이들 사본들 간에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게 아니라 확실히 많은 필사오류와 교정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본전승에서의 오류가 교리에 영향을 준 경우는 미미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본전승상의 오류는 인정하나, 원본의 교리상 통일성은 믿는다" 정도가 제 입장입니다. 다만 성서 텍스트가 오랜 세월을 거쳐 수집된 문서이기 때문에, 단어/문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는 그 원래 의미를 찾기위해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축자영감설이나 유기적 영감설에 대해선, 오직 하나의 "설"로 성서의 모든 책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예언서는 야훼의 지시를 "받아 적었"다고 되어 있는 반면, 3번째 복음서는 저자 (루가/누가)가 예수의 배경에 대해 (그 이전의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고 집필했다고 적었으니까요.
/ 최광민
[질문] 동방 정교회에서는 평신도의 성경 해석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나요? 동방 정교회도 성경 해석 권한은 교회 지도자들만이 가지나요? 또 1~3세기 시대의 기독교인들도 교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도 성경을 자유로이 해석할 수 있었나요?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 해석의 권한을 독점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답변]
정교회는 주교의 권한이 매우 강하며, 교리와 관련된 주제는 각 정교회 별로 총주교 관할 하에 주교회의를 통해 정합니다. 정교회 입장에서 로마카톨릭교회는 각 지역의 독립정교회 총주교 각각과 동등한 형제 "로마"주교가 관할하는 로마교회일 뿐입니다. "교리와 관련된 성서해석"의 최종권위 역시 주교회의가 가집니다.
성서해석을 "교회가 독점"했다는 표현은 좀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원래 보편교회는 1세기 말부터 3세기까지 보편교회가 배제한 다양한 이단들과 정통성을 놓고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누가/ 왜 정통성을 보유했는가"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야 했습니다. 가령, 신성의 파편을 가지고 깨달은 자가 구원에 이르는 "지식/그노시스" 갖는다는 기본개념을 가진 다양한 바실리데스파, 발렌티누스파, 마니교 등의 영지주의 이단들, 기독교에서 구약성서와 유대교적인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자 한 마르시온파,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를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믿던 은사주의자들인 몬타누스파 등은 자신들의 교리를 직간접으로 "성서"에서 끌어왔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7.html
결과적으로 보편교회가 이들의 "이단적 성서해석"과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보편교회가 사도와 주교/감독들을 통해 단절되지 않게 동일한 교리를 이어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AD 2세기 중/후반의 상황에서 이레네우스가 "보편교회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한번 읽어보시고요.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2.html
"성서를 읽는다" 혹은 "묵상하는 것" 혹은 성서구절의 일반적 "해석"을 교회가 금지한 것이 아닙니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어보시면, 그는 세례도 받기 전인 세례입문자 신분인데도 이미 복음서나 서신서를 읽으면서 기독교를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게다가 교회사를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나중에 성인으로 시성된 교부들끼리도 성서구절을 두고 서로 해석이 달라 티격태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보편교회가 주교들의 합의된 직권으로 성서해석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핵심교리와 관련된 논쟁"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입니다.
"교리해석에 대한" 어떤 준거점은 사실 프로테스탄트 제 교단들도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답변]
정교회는 주교의 권한이 매우 강하며, 교리와 관련된 주제는 각 정교회 별로 총주교 관할 하에 주교회의를 통해 정합니다. 정교회 입장에서 로마카톨릭교회는 각 지역의 독립정교회 총주교 각각과 동등한 형제 "로마"주교가 관할하는 로마교회일 뿐입니다. "교리와 관련된 성서해석"의 최종권위 역시 주교회의가 가집니다.
성서해석을 "교회가 독점"했다는 표현은 좀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원래 보편교회는 1세기 말부터 3세기까지 보편교회가 배제한 다양한 이단들과 정통성을 놓고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누가/ 왜 정통성을 보유했는가"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야 했습니다. 가령, 신성의 파편을 가지고 깨달은 자가 구원에 이르는 "지식/그노시스" 갖는다는 기본개념을 가진 다양한 바실리데스파, 발렌티누스파, 마니교 등의 영지주의 이단들, 기독교에서 구약성서와 유대교적인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자 한 마르시온파,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를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믿던 은사주의자들인 몬타누스파 등은 자신들의 교리를 직간접으로 "성서"에서 끌어왔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7.html
결과적으로 보편교회가 이들의 "이단적 성서해석"과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보편교회가 사도와 주교/감독들을 통해 단절되지 않게 동일한 교리를 이어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AD 2세기 중/후반의 상황에서 이레네우스가 "보편교회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한번 읽어보시고요.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2.html
"성서를 읽는다" 혹은 "묵상하는 것" 혹은 성서구절의 일반적 "해석"을 교회가 금지한 것이 아닙니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어보시면, 그는 세례도 받기 전인 세례입문자 신분인데도 이미 복음서나 서신서를 읽으면서 기독교를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게다가 교회사를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나중에 성인으로 시성된 교부들끼리도 성서구절을 두고 서로 해석이 달라 티격태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보편교회가 주교들의 합의된 직권으로 성서해석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핵심교리와 관련된 논쟁"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입니다.
"교리해석에 대한" 어떤 준거점은 사실 프로테스탄트 제 교단들도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최광민
[질문] 옛 토론방에서 질문해온 로마 가톨릭과 성경 독서의 연장선상 격의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일반 평신도의 성경 독서와 그리고 그 해석에 대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과 주장을 각각 정리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질문] 옛 토론방에서 질문해온 로마 가톨릭과 성경 독서의 연장선상 격의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일반 평신도의 성경 독서와 그리고 그 해석에 대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과 주장을 각각 정리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사실 이 문제를 그렇게 딱 둘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일반적인 대전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누구"나 성경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구절"에 합치한다는 것입니다. 퀘이커들은 더 나아가서 인간 개개의 영혼을 비추는 "신의 빛"을 따라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신의 뜻을 직접 이해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로마카톨릭의 입장은 신을 지상에서 대리하는 교회가 교회의 교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전수하기 위해 (종종 "무오한") 해석/감독권을 쥔다는 입장입니다. 사실 로마카톨릭에서도 누군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가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 정말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지 누가 보증하는가? 입니다.
문제는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 정말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지 누가 보증하는가? 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공통의 텍스트를 믿는다고 하면서 서로 간에 해석을 달리한다면, 이들은 그 "텍스트"를 믿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텍스트에 대한 특정한 "해석법" 혹은 "독법"을 믿는 것일까요? 성서라는 공통의 텍스트를 두고 현실 속에선 교파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의 잣대를 들고 동일 텍스트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성서를 신앙의 최종권위로 인정하는 프로테스탄트들 역시, 같은 성서를 보면서도 다른 해석을 내립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해석의 지침들이 등장하게 되나요? 로마카톨릭 교회라면 교황청의 표준해석안이 절대적 표준일 것이고, 정교회라면 주교들의 공회의를 포함한 교회의 전통이 강력한 권위로 작용할 것입니다. 적어도 해석의 지침에 있어서는 프로테스탄트들 역시 로마카톨릭보다는 비중이 덜하다 하더라도 다소 간의 교회전통에 따르고 있는데, 가령, 루터교회라면 마르틴 루터, 칼뱅주의 개혁교회라면 장 칼뱅, 감리교회라면 존 웨슬리 등이 될 것입니다. 해석자 개인에 따라 이런 표준적인 지침에서 약간씩 달리 해석할 수는 있더라도, 결국은 어떤 해석의 틀에 준거점을 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듯 권위(적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툴, 혹은 교단신학은 "전통"이란 옷을 입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솔라 스크립투라 / 오직 성경" 원리는 "성서로 성서를 해석한다 Scriptura sui interpr"는 해석원리를 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해석원리가 꼭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 구절의 해석을 위해 다른 구절을 도입할 때 각각 구절에 대한 복수의 해석이 가능하다면 전체 해석의 복잡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으니까요.
가령, 신의 "예정"을 암시하는 성경의 구절들을 읽은 "칼뱅주의" 교단의 신자가 "웨슬리"식으로 해석하면, "칼뱅주의" 측에서는 그 신자가 (1)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 "아니란" 식, 혹은 (2) 성서에 모순된다고 이해하겠죠?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이를 프로테스탄트 측의 딜레마라고 해야할까요? 모든 해석을 인정하자니 성령이 여럿이 되고, 하나만 고수하자니 분파주의가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로마카톨릭의 입장과 현실적인 적용 면에선 큰 차이가 없게 됩니다. 비록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무오"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각 교단의 어떤 핵심적 신조들은 "무오"란 말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사실상은 손댈 수 없습니다.
/ 최광민
그런데 어디서 그런 해석의 지침들이 등장하게 되나요? 로마카톨릭 교회라면 교황청의 표준해석안이 절대적 표준일 것이고, 정교회라면 주교들의 공회의를 포함한 교회의 전통이 강력한 권위로 작용할 것입니다. 적어도 해석의 지침에 있어서는 프로테스탄트들 역시 로마카톨릭보다는 비중이 덜하다 하더라도 다소 간의 교회전통에 따르고 있는데, 가령, 루터교회라면 마르틴 루터, 칼뱅주의 개혁교회라면 장 칼뱅, 감리교회라면 존 웨슬리 등이 될 것입니다. 해석자 개인에 따라 이런 표준적인 지침에서 약간씩 달리 해석할 수는 있더라도, 결국은 어떤 해석의 틀에 준거점을 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듯 권위(적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툴, 혹은 교단신학은 "전통"이란 옷을 입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솔라 스크립투라 / 오직 성경" 원리는 "성서로 성서를 해석한다 Scriptura sui interpr"는 해석원리를 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해석원리가 꼭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 구절의 해석을 위해 다른 구절을 도입할 때 각각 구절에 대한 복수의 해석이 가능하다면 전체 해석의 복잡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으니까요.
가령, 신의 "예정"을 암시하는 성경의 구절들을 읽은 "칼뱅주의" 교단의 신자가 "웨슬리"식으로 해석하면, "칼뱅주의" 측에서는 그 신자가 (1)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 "아니란" 식, 혹은 (2) 성서에 모순된다고 이해하겠죠?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이를 프로테스탄트 측의 딜레마라고 해야할까요? 모든 해석을 인정하자니 성령이 여럿이 되고, 하나만 고수하자니 분파주의가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로마카톨릭의 입장과 현실적인 적용 면에선 큰 차이가 없게 됩니다. 비록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무오"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각 교단의 어떤 핵심적 신조들은 "무오"란 말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사실상은 손댈 수 없습니다.
/ 최광민
[질문] 그러면 가톨릭은 사실상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반 평신도는 성경을 독서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해석할 권한은 전혀 없으며 철저히 사제의 해석에 의존해야한다고 가르치는 건가요? 그러면 가톨릭에서 성서 독서라는 행위 자체는 애당초 의미가 없는 행동 아닌가요?
[답변]
그래서 사실 20세기 중반까지 로마카톨릭에서는 평신도들에게 성서독서가 별로 권장되지 않았고 신자들도 굳이 찾아서 읽지 않았습니다. 로마카톨릭에서 평신도 성서독서가 권장되는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이며, 따라서 꽤 최근의 현상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프로테스탄트는 그 시작부터 신자의 성서독서와 연구/묵상이 신자의 핵심적인 삶이었지만, 로마카톨릭에게 있어서 성서독서는 신자에게 권장될 수있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울러 로마카톨릭에서는 성서독서 자체가 아니라 "교리적 부분"에 대한 평신도의 해석이 제한되는 것입니다.
/최광민
[질문] 동방정교회나 오리엔탈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 각각 종파들의 구원에 이르는 칭의관은 어떤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원죄"나 "칭의"나 "대속"에 대한 고민은 길게 보면 북아프리카 히포 주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관에서 전개된 특별히 라틴교회 신학의 특징에 해당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비록 로마카톨릭-정교회 공히 교회박사 중 하나이지만, 그는 동방에서는 그다지 인기있는 교부가 아니었고, 따라서 정교회나 이미 5세기에 분리된 기타 동방의 단성파/양성파 교단은 원죄나 칭의 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로마카톨릭교회나 프로테스탄트처럼 그 주제에 천착하지도 않습니다. "대속"에 대한 교리가 중세 이후 서방에서만 두드러지게 등장한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정교회의 견해는 이것보다는, 신자가 어떻게 악에서 승리한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와 신에게 가까와 질 수 있는가 ("신화 theosis")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신화"란 "인간이 신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신의 성품과 의지에 일치되어 간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 최광민
[질문] 1~2세기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마르틴 루터가 말했던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얻는다는 동일한 칭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답변]
위에 간략히 답변했고, 예전에 방문자 한 분과 그와 관련하여 아래 게시판에서 이야기 나눈 바 있습니다.
http://forum-scientiarum.16390.x6.nabble.com/-td4982016.html
/ 최광민
[질문] 1~3세기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어떻게 보유했었나요? 각 교회의 장로들이 소유했었나요? 또 그들의 예배방식은 어떠한 형태였나요?
[답변]
성서는 보통 성물로 간주되어 교회에서 사제/장로가 보관했고, 유스티노스의 대화편에 나오는 유대인 랍비 트리폰의 진술을 보면 기독교도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사본으로 제작되어 유통되기도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박해 시, 교회가 보관 중인 성서를 당국에 넘겨준 사제들은 분향하지 않았더라도 그 자체로 배교로 간주되었습니다.
성찬 (유카리스티아 εὐχαριστία)과 예배 형식에 관한 아주 오래된 기록은 {디다케 Διδαχὴ Κυρίου διὰ τῶν δώδεκα ἀποστόλων τοῖς ἔθνεσιν}나 유스티노스의 {변증}에 등장하는 대로, 일요일에 기립 찬양 (시편)-독서 (구약 예언서 /신약 복음서 및 서신서) - 속죄기도/사면 - (교제의 키스) -성찬 의 순서를 따른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선, {디다케}에서 인용합니다. 연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보통 AD 1세기 말부터 2세기 중반까지의 문서로 간주됩니다.
1. Κατὰ κυριακὴν δὲ κυρίου συναχθέντες κλάσατε ἄρτον καὶ εὐχαριστήσατε, προεξομολογησάμενοι τὰ παραπτώματα ὑμῶν, ὅπως καθαρὰ ἡ θυσία ὑμῶν ᾐ. 2. πᾶς δὲ ἔχων τὴν ἀμφιβολίαν μετὰ τοῦ ἑταίρου αὐτοῦ μὴ συνελθέτω ὑμῖν, ἕως οὗ διαλλαγῶσιν, ἵνα μὴ κοινωθῇ ἡ θυσία ὑμῶν. 3. αὕτη γάρ ἐστιν ἡ ῥηθεῖσα ὑπὸ κυρίου· Ἐν παντὶ τόπὼ καὶ χρόνῳ προσφέρειν μοι θυσίαν καθαράν. ὅτι βασιλεὺς μέγας εἰμί, λέγει κύριος, καὶ τὸ ὄνομά μου θαυμαστὸν ἐν τοῖς ἔθνεσι.But every Lord's day gather yourselves together, and break bread, and give thanksgiving after having confessed your transgressions, that your sacrifice may be pure. But let no one that is at variance with his fellow come together with you, until they be reconciled, that your sacrifice may not be profaned. For this is that which was spoken by the Lord: In every place and time offer to me a pure sacrifice; for I am a great King, says the Lord, and my name is wonderful among the nations매주 주일에 함께 모여, 빵을 쪼개고, 죄를 고백한 후 감사를 드려 너희 제물을 깨끗해지게 하라. 결코 누구도 서로 화해하지 않고 형제와 한 자리에 있게 해서는 않된다. 너희의 제물은 더렵혀지기 때문이다. "어느 때나 장소에서든 순결한 제물을 바쳐라. 주 (야훼)가 말한다. 나는 위대한 왕이다. 열방이 내 이름을 놀라와 한다 " 고 주님은 말씀하신 바 있다. / 번역: 최광민
다음은 AD 2세기 중반 유스티노스의 {첫번째 변증}에서 인용합니다. 우선, 성찬에 대한 초기 교회의 가르침을 담은 제 66장의 내용입니다.
66.1 Καὶ ἡ τροφὴ αὕτη καλεῖται παρ' ἡμῖν εὐχαριστία, ἧς οὐδενὶ ἄλλῳ μετασχεῖν ἐξόν ἐστιν ἢ τῷ πιστεύοντι ἀληθῆ εἶναι τὰ δεδιδαγμένα ὑφ' ἡμῶν, καὶ λουσαμένῳ τὸ ὑπὲρ ἀφέσεως ἁμαρτιῶν καὶ εἰς ἀναγέννησιν λουτρόν, καὶ οὕτως βιοῦντι ὡς ὁ Χριστὸς παρέδωκεν. 66.2 οὐ γὰρ ὡς κοινὸν ἄρτον οὐδὲ κοινὸν πόμα ταῦτα λαμβάνομεν· ἀλλ' ὃν τρόπον διὰ λόγου θεοῦ σαρκοποιηθεὶς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ὁ σωτὴρ ἡμῶν καὶ σάρκα καὶ αἷμα ὑπὲρ σωτηρίας ἡμῶν ἔσχεν, οὕτως καὶ τὴν δι' εὐχῆς λόγου τοῦ παρ' αὐτοῦ εὐχαριστηθεῖσαν τροφήν, ἐξ ἧς αἷμα καὶ σάρκες κατὰ μεταβολὴν τρέφονται ἡμῶν, ἐκείνου τοῦ σαρκοποιηθέντος Ἰησοῦ καὶ σάρκα καὶ αἷμα ἐδιδάχθημεν εἶναι. 66.3 οἱ γὰρ ἀπόστολοι ἐν τοῖς γενομένοις ὑπ' αὐτῶν ἀπομνημονεύμασιν, ἃ καλεῖται εὐαγγέλια, οὕτως παρέδωκαν ἐντετάλθαι αὐτοῖς· τὸν Ἰησοῦν λαβόντα ἄρτον εὐχαριστήσαντα εἰπεῖν· Τοῦτο ποιεῖτε εἰς τὴν ἀνάμνησίν μου, τοῦτ' ἐστι τὸ σῶμά μου· καὶ τὸ ποτήριον ὁμοίως λαβόντα καὶ εὐχαριστήσαντα εἰπεῖν· Τοῦτό ἐστι τὸ αἷμά μου· καὶ μόνοις αὐτοῖς μεταδοῦναι. 66.4 ὅπερ καὶ ἐν τοῖς τοῦ Μίθρα μυστηρίοις παρέδωκαν γίνεσθαι μιμησάμενοι οἱ πονηροὶ δαίμονες· ὅτι γὰρ ἄρτος καὶ ποτήριον ὕδατος τίθεται ἐν ταῖς τοῦ μυουμένου τελεταῖς μετ' ἐπιλόγων τινῶν, ἢ ἐπίστασθε ἢ μαθεῖν δύνασθε
CHAPTER LXVI -- OF THE EUCHARIST: And this food is called among us Eukaristia [the Eucharist], of which no one is allowed to partake but the man who believes that the things which we teach are true, and who has been washed with the washing that is for the remission of sins, and unto regeneration, and who is so living as Christ has enjoined. For not as common bread and common drink do we receive these; but in like manner as Jesus Christ our Saviour, having been made flesh by the Word of God, had both flesh and blood for our salvation, so likewise have we been taught that the food which is blessed by the prayer of His word, and from which our blood and flesh by transmutation are nourished, is the flesh and blood of that Jesus who was made flesh. For the apostles, in the memoirs composed by them, which are called Gospels, have thus delivered unto us what was enjoined upon them; that Jesus took bread,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said, "This do ye in remembrance of Me, this is My body;" and that, after the same manner, having taken the cup and given thanks, He said, "This is My blood;" and gave it to them alone. Which the wicked devils have imitated in the mysteries of Mithras, commanding the same thing to be done. For, that bread and a cup of water are placed with certain incantations in the mystic rites of one who is being initiated, you either know or can learn. ---- (tr. Roberts-Donaldson)
제 66장: 우리들은 이 음식을 "유카리스티아 εὐχαριστία"라 부른다. 아무나 이 음식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우리가 가르친 바를 사실로 믿고, 죄의 사면과 거듭남을 위해 세례를 받았으며,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로 사는 사람만이 참예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음식을 받을 때 보통 빵이나 음료를 받을 때 처럼 하지 않으며, 마치 신의 말씀에 의해 인간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살과 피를 갖게 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 것처럼 한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도에 의해 축복되고, 또 이를 통해 우리의 피와 살이 변화되어 양육되는 이 음식이 인간이 되신 예수의 살과 피라고 가르침 받아왔다.사도들로 말하자면, 그들의 회상록들인 {복음서}라 불리는 책들 (...οἱ γὰρ ἀπόστολοι ἐν τοῖς γενομένοις ὑπ' αὐτῶν ἀπομνημονεύμασιν, ἃ καλεῖται εὐαγγέλια....)이 사도들이 받은 명령을 전해주고 있다. 예수께서 빵을 취한 후 기도를 올리시고 말씀하시길,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고 하셨고, 같은 방식으로 (포도주) 컵을 취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후, "이것은 나의 피다"라고 하신 후 잔을 그들에게 주셨다. 악마는 이것을 흉내내어 미트라스 밀교에서 같은 일을 하게 하였다. 즉, 어떤 주문을 읊으면서 빵과 물잔이 이 밀교의 입문식 때 놓여지는데, 당신들이 이미 이것을 알고 있거나, 혹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번역: 최광민
이어서 유스티노스는 성찬이 포함된 일요일 공예배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Ἡμεῖς δὲ μετὰ ταῦτα λοιπὸν ἀεὶ τούτων ἀλλήλους ἀναμιμνήσκομεν· καὶ οἱ ἔχοντες τοῖς λειπομένοις πᾶσιν ἐπικουροῦμεν, καὶ σύνεσμεν ἀλλήλοις ἀεί. 67.2 ἐπὶ πᾶσί τε οἷς προσφερόμεθα εὐλογοῦμεν τὸν ποιητὴν τῶν πάντων διὰ τοῦ υἱοῦ αὐτοῦ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καὶ διὰ πνεύματος τοῦ ἁγίου.And we afterwards continually remind each other of these things. And the wealthy among us help the needy; and we always keep together; and for all things wherewith we are supplied, we bless the Maker of all through His Son Jesus Christ, and through the Holy Ghost.이어서 우리는 이런 것들로 서로를 격려한다. 우리 가운데 부유한 이들은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며, 우리는 늘 하나가 되어 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는 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또 성령을 통해 만물의 창조자를 기린다. -- 번역: 최광민καὶ τῇ τοῦ ἡλίου λεγομένῃ ἡμέρᾳ πάντων κατὰ πόλεις ἢ ἀγροὺς μενόντων ἐπὶ τὸ αὐτὸ συνέλευσις γίνεται, καὶ τὰ ἀπομνημονεύματα τῶν ἀποστόλων ἢ τὰ συγγράμματα τῶν προφητῶν ἀναγινώσκεται, μέχρις ἐγχωρεῖ. εἶτα παυσαμένου τοῦ ἀναγινώσκοντος ὁ προεστὼς διὰ λόγου τὴν νουθεσίαν καὶ πρόκλησιν τῆς τῶν καλῶν τούτων μιμήσεως ποιεῖται.And on the day called Sunday, all who live in cities or in the country gather together to one place, and the memoirs of the apostles or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are read, as long as time permits; then, when the reader has ceased, the president verbally instructs, and exhorts to the imitation of these good things.우리가 일요일이라 부르는 날, 도시나 촌락에 사는 모두가 한 곳에 모여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사도들의 회상 (=복음서)와 선지자들의 책들이 낭독되는 걸 듣는다. 낭독이 마치면 집례자 (=사제/장로)는 설교/강론을 통해 이 모든 선한 것들을 닮아가도록 우리에게 권고한다. -- 번역: 최광민ἔπειτα ἀνιστάμεθα κοινῇ πάντες καὶ εὐχὰς πέμπομεν· καί, ὡς προέφημεν, παυσαμένων ἡμῶν τῆς εὐχῆς ἄρτος προσφέρεται καὶ οἶνος καὶ ὕδωρ, καὶ ὁ προεστὼς εὐχὰς ὁμοίως καὶ εὐχαριστίας, ὅση δύναμις αὐτῷ, ἀναπέμπει, καὶ ὁ λαὸς ἐπευφημεῖ λέγων τὸ Ἀμήν, καὶ ἡ διάδοσις καὶ ἡ μετάληψις ἀπὸ τῶν εὐχαριστηθέντων ἑκάστῳ γίνεται, καὶ τοῖς οὐ παροῦσι διὰ τῶν διακόνων πέμπεται.Then we all rise together and pray, and, as we before said, when our prayer is ended, bread and wine and water are brought, and the president in like manner offers prayers and thanksgivings, according to his ability, and the people assent, saying Amen; and there is a distribution to each, and a participation of that over which thanks have been given, and to those who are absent a portion is sent by the deacons.이어서 우리는 모두 일어서 기도하는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기도가 끝나면 빵과 포도주와 물이 차려지고, 집례자는 같은 방식으로 능력껏 기도와 감사를 올리고 회중들은 '아멘'이라 답하며 동의를 표현한다. (이 음식은) 각자에게 분배되고 이를 받는 이들은 감사를 올리며 받으며, 집사 (=부제)들이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 보내준다. -- 번역: 최광민οἱ εὐποροῦντες δὲ καὶ βουλόμενοι κατὰ προαίρεσιν ἕκαστος τὴν ἑαυτοῦ ὃ βούλεται δίδωσι, καὶ τὸ συλλεγόμενον παρὰ τῷ προεστῶτι ἀποτίθεται, καὶ αὐτὸς ἐπικουρεῖ ὀρφανοῖς τε καὶ χήραις, καὶ τοῖς διὰ νόσον ἢ δι' ἄλλην αἰτίαν λειπομένοις, καὶ τοῖς ἐν δεσμοῖς οὖσι, καὶ τοῖς παρεπιδήμοις οὖσι ξένοις, καὶ ἁπλῶς πᾶσι τοῖς ἐν χρείᾳ οὖσι κηδεμὼν γίνεται.And they who are well to do, and willing, give what each thinks fit; and what is collected is deposited with the president, who succours the orphans and widows and those who, through sickness or any other cause, are in want, and those who are in bonds and the strangers sojourning among us, and in a word takes care of all who are in need.이들은 이 일에 적합한 자질을 가졌고 또 자원한 자들로, 각자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사람들에게 분배한다. 남은 음식은 집례자가 모아 보관하여 고아들과 과부들, 질병 및 기타 다른 사정을 가진 사람들, 혹은 구금 중이거나 우리를 방문한 손님들, 다시 말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한다. -- 번역: 최광민τὴν δὲ τοῦ ἡλίου ἡμέραν κοινῇ πάντες τὴν συνέλευσιν ποιούμεθα, ἐπειδὴ πρώτη ἐστὶν ἡμέρα, ἐν ᾗ ὁ θεὸς τὸ σκότος καὶ τὴν ὕλην τρέψας κόσμον ἐποίησε, καὶ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ὁ ἡμέτερος σωτὴρ τῇ αὐτῇ ἡμέρᾳ ἐκ νεκρῶν ἀνέστη· τῇ γὰρ πρὸ τῆς κρονικῆς ἐσταύρωσαν αὐτόν, καὶ τῇ μετὰ τὴν κρονικήν, ἥτις ἐστὶν ἡλίου ἡμέρα, φανεὶς τοῖς ἀποστόλοις αὐτοῦ καὶ μαθηταῖς ἐδίδαξε ταῦτα, ἅπερ εἰς ἐπίσκεψιν καὶ ὑμῖν ἀνεδώκαμεν.But Sunday is the day on which we all hold our common assembly, because it is the first day on which God, having wrought a change in the darkness and matter, made the world; and Jesus Christ our Saviour on the same day rose from the dead. For He was crucified on the day before that of Saturn (Saturday); and on the day after that of Saturn, which is the day of the Sun, having appeared to His apostles and disciples, He taught them these things, which we have submitted to you also for your consideration.일요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집회를 갖는 날인데, 이는 이 날이 신께서 흑암과 물질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신 첫날이며, 또 우리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같은 날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토요일 전날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토요일 다음날인 일요일에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또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전하는 이것들을 또한 그들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번역: 최광민
/ 최광민
[질문] 중세 당시에 라틴어 성서로 미사가 이루어졌다면 당시 사제가 라틴어 성서 구절을 읽은 뒤 신도들에게 이 구절이 어떠한 내용인지 모국어로 설명해주었나요?
[답변]
예수의 시절의 유대교에서도 시나고그 예배에서 우선 히브리어로 성서를 낭독한 후, 히브리어를 모르는 일반인을 위해 메투르게만이 아람어로 그 내용을 번역하고 뜻을 풀어주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4.html
동서방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전통적인 기독교 예배의 형식에는 예언서(구약)/시편/복음서-서신서의 내용을 발췌해서 낭독하는 순서가 들어있습니다. 중세의 라틴전례에서는 이 부분을 공식적으로는 모두 라틴어로 했습니다. (물론 모국어로 풀이해주는 사제들도 있기는 했겠죠).
게다가 사실 고대 말부터 초기 중세로 이어지는 시기부터, 라틴교회의 설교는 대체로 교회의 주요 축일에만 주교가 도맡아 했습니다. 이후 중세 말기에는 모국어로 대중을 대상으로 한 순회설교하는 수도사들이 엄청나게 대중의 인기를 끌었고, 일부 순회설교사들의 인기는 아이돌 급이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의 전체원문을 접하는 것과 설교내용에 맞춰 발췌된 내용과 그 해설을 접하는 것은 사뭇 다른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 최광민
[질문] 사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인정을 하지 않는 전통 가톨릭교도가 쓴 글들을 예전에 접해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저의 개신교 신앙에 대해 한 동안 혼란을 겪었고, 사실 Kwangmin님에게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해왔던 것도 이 혼란을 조금이라도 수습하기 위한 저의 동기에서 나온 것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외람된 부탁입니다만 그 가톨릭 교도가 쓴 글을 몇 개 읽어보시고 소감을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https://blog.naver.com/jmjfp/220782616294
https://blog.naver.com/jmjfp/220771895955
https://blog.naver.com/jmjfp/221319265765
https://blog.naver.com/jmjfp/221299184422
[질문]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자신들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지 않고 로마 가톨릭에 남아있는 신도들의 구원 가능성 여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나요?
중기 이후 루터와 그 무렵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이 종말론적 시각에서 로마교회와 교황으로 대표되는 성직자단을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바벨론의 음녀"로 여겼으므로, 대개의 신자들은 그 바벨론과 음녀에 의해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참 교황"이 아닌 "바벨론의 음녀"를 맹종하지 않는 한, 참된 믿음을 가진 한, 그들을 구출대상이자 구원받을 가능성 있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95개조에서 루터가 "참 교황"을 언급한 점을 기억하시면 될 것입니다.)
물론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의 알을) 낳고, 루터가 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종교개혁의 분위기를 조성했던 에라스무스지만, 자유의지 문제를 두고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 측으로 넘어오지 않고 로마카톨릭에 남은 채로 1536년에 죽었을 때, 루터는 그의 유명한 독설화법으로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유명한 에라스무스가 (임종을 지킬) 사제도 기도도 없이 바젤에서 죽었다. 지옥갈 준비 끝!"
중기 이후 루터와 그 무렵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이 종말론적 시각에서 로마교회와 교황으로 대표되는 성직자단을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바벨론의 음녀"로 여겼으므로, 대개의 신자들은 그 바벨론과 음녀에 의해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참 교황"이 아닌 "바벨론의 음녀"를 맹종하지 않는 한, 참된 믿음을 가진 한, 그들을 구출대상이자 구원받을 가능성 있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95개조에서 루터가 "참 교황"을 언급한 점을 기억하시면 될 것입니다.)
물론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의 알을) 낳고, 루터가 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종교개혁의 분위기를 조성했던 에라스무스지만, 자유의지 문제를 두고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 측으로 넘어오지 않고 로마카톨릭에 남은 채로 1536년에 죽었을 때, 루터는 그의 유명한 독설화법으로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유명한 에라스무스가 (임종을 지킬) 사제도 기도도 없이 바젤에서 죽었다. 지옥갈 준비 끝!"
/최광민
[질문] 중세 당시에 라틴어 성서로 미사가 이루어졌다면 당시 사제가 라틴어 성서 구절을 읽은 뒤 신도들에게 이 구절이 어떠한 내용인지 모국어로 설명해주었나요?
[답변]
예수의 시절의 유대교에서도 시나고그 예배에서 우선 히브리어로 성서를 낭독한 후, 히브리어를 모르는 일반인을 위해 메투르게만이 아람어로 그 내용을 번역하고 뜻을 풀어주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4.html
동서방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전통적인 기독교 예배의 형식에는 예언서(구약)/시편/복음서-서신서의 내용을 발췌해서 낭독하는 순서가 들어있습니다. 중세의 라틴전례에서는 이 부분을 공식적으로는 모두 라틴어로 했습니다. (물론 모국어로 풀이해주는 사제들도 있기는 했겠죠).
게다가 사실 고대 말부터 초기 중세로 이어지는 시기부터, 라틴교회의 설교는 대체로 교회의 주요 축일에만 주교가 도맡아 했습니다. 이후 중세 말기에는 모국어로 대중을 대상으로 한 순회설교하는 수도사들이 엄청나게 대중의 인기를 끌었고, 일부 순회설교사들의 인기는 아이돌 급이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의 전체원문을 접하는 것과 설교내용에 맞춰 발췌된 내용과 그 해설을 접하는 것은 사뭇 다른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 최광민
[질문] 사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인정을 하지 않는 전통 가톨릭교도가 쓴 글들을 예전에 접해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저의 개신교 신앙에 대해 한 동안 혼란을 겪었고, 사실 Kwangmin님에게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해왔던 것도 이 혼란을 조금이라도 수습하기 위한 저의 동기에서 나온 것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외람된 부탁입니다만 그 가톨릭 교도가 쓴 글을 몇 개 읽어보시고 소감을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https://blog.naver.com/jmjfp/220782616294
https://blog.naver.com/jmjfp/220771895955
https://blog.naver.com/jmjfp/221319265765
https://blog.naver.com/jmjfp/221299184422
[답변]
2004년 멜 깁슨 감독의 {The Passion of Christ} 영화가 나왔을 때, 위에 언급하신 카톨릭전통주의자 -- 특별히 "성 비오 10세회"의 입장에 대해 개인적으로 꽤 자세히 연구했던 적이 있습니다. 멜 깁슨이 바로 이 카톨릭전통주의자이고, 그 영화가 그런 관점에서 채색되어 있거든요.
http://kwangmin.blogspot.com/2011/08/blog-post_5636.html
그럼 같이 읽어보고 비평하도록 하겠습니다. / 최광민
[1]
"어느 기독교(개신교)신자와의 대화 (2016년 8월7일 일요일)" 에 대해선....https://blog.naver.com/jmjfp/220782616294
위에 글 쓰신 분이 천주교 신학교를 다니셨던 듯 한데 (사제? 수도자?), 글을 짦고 쉽게 쓰시려다 그러셨겠지만 약간 사실관계를 틀어서 말씀하시네요.
(인용) "....사실 불가타역만이 완전한 성서입니다. 이 당시에는 그리스어 성경과,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셨던 언어이며 마태복음의 원어인 아람어 성경 등이 다수 존재했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현재는 이러한 성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신교 학자들이 원전에서 번역했다는 것은 허위 주장입니다. 그들의 사본은 원전이 아닙니다. 필사되고 또 필사되어 완전하지 못한 사본입니다. 성서는 필사될수록 필사가의 의견이 어휘 선택에 반영되고, 실수 등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현재는 이러한 성경이 존재하지 않다"니요.
많은 초기 교부들도 히브리어 사본과 70인역, 그리고 다른 번역본과 사본 간의 차이가 발견된 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런 사본들을 대조해 놓은 것이 바로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 란 문건입니다. 히에로니무스도 사본 전승 간의 불일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번역에 선택한 히브리어 본문이 과연 "오류없는 원전"이라고 할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물론 그가 당시에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본"을 선택했다는 것을 특별히 의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당시 많은 교부들 (가령, 북아프리카 히포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전승인 그리스어 구약성서 70인역을 버리는 점, 구-라틴어 번역이 있는데 히브리어 사본에 기반한 새 라틴어 번역을 만든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거나 단어선택을 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보통 히브리어 원문으로 가장 잘 보존된 것으로 간주하는 맛소라 사본과 불가타 원문은 여러 군데 차이가 있고, 맛소라와 70인역 간에 꽤 차이가 있듯 역시 불가타와 70인역 간에도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아람어/시리아어 성서는 AD 5세기에 시리아 교회에서 이미 번역되어 지금도 사용하는 {페쉬타}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이미 학술적으로 검증된 사안들입니다. / 최광민
[2]
"마틴 루터의 비화" https://blog.naver.com/jmjfp/220771895955 란 글에 대해선.....
루터가 결혼을, 그것도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하는 것을 두고 사실 그의 측근 중에도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사제독신제도가 비성서적이란 것을 보란 듯이 비판하기 위해 감행했습니다.
루터는 이 결혼을 후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특유한 화법으로 유쾌하게 답합니다: "(이 결혼으로) 아버지는 기뻐하고, 교황은 화내며, 천사는 웃고, 악마는 울것이다."
또 유쾌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Ich würde meine Käthe nicht gegen Frankreich oder Venedig eintauschen. Zum ersten deshalb, weil Gott sie mir geschenkt hat und mich ihr geben hat. Zweitens erfahre ich oft, dass andere Frauen größere Mängel haben, als meine Käthe sie hat. Obwohl sie auch schon etliche hat, hat sie dagegen doch auch zahlreiche große Qualitäten.
나는 케테 (=카타리나)를 프랑스나 베네치아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께서 그녀를 내게 주셨고 또 나를 그녀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나는 때때로 다른 여자들이 케테보다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비록 그녀가 이미 몇몇 문제를 이미 가지곤 있지만, 역시 많은 미덕도 가지고 있다. / 번역: 최광민
루터 본인이 크게 후회한 건은 필립의 중혼을 허가한 건이었습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루터는 어짜피 필립이 결국 그럴 거라서 자기가 총대를 맨 것처럼 변명하긴 했지만, 두고 두고 그의 아킬레스 건이 되었습니다.
"오직"의 삽입과 관련한 "성서개작" 건에 대해서는 블로그 저자께서 좀 과도한 주장을 하신다고 생각됩니다. "일점일획"이란 표현은 그렇게 적용/해석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경화 역사과정을 본다면, 단어 한두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현행 신구약성서에 포함된 ~20여권의 채택여부를 두고 초기교회 내에 논란이 있었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가톨릭 교회가 단 한 건이라도 오류를 허용한 사례가 있다면 이는 참 교회가 아니며, 가톨릭 교회가 참 교회가 아니라면 1500년 간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되므로 “너는 베드로라. 나 이 반석 위에 내 성교회를 세울 것이매, 지옥문이 쳐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이 거짓일 수는 없으므로, 가톨릭 교회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라고도 하시는데, 이 주장은 "가톨릭"교회가 "로마카톨릭교회"가 "무오"하다는 가정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겠죠?
우선, "카톨릭"이란 단어는 "로마카톨릭"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가령, 정교회는 1-7차 세계공회의에 기반한 자신들이야 말로 "카톨릭(보편)"이자 "정통"이라고 주장합니다. 정교회가 스스로를 일컫는 공식명칭인 "Ορθόδοξη (정통) Καθολική (보편/카톨릭) Εκκλησία (교회)"는 바로 이점을 명시합니다.
그리고 로마교회가 오류를 허용한 사례는 단 한건이 아니라 여럿 있습니다. 이런 주장의 트릭은 상당히 동어반복적인데, "참 교회"를 "오류를 가질 수 없는 존재"로 우선 정의해 버린 후, 따라서 오류를 보인 교회는 "원래부터" "참교회가 아니었다"라고 선언해 버리는 식이죠. 이와 동일한 논리구조를 따르는 것이 로마카톨릭교회의 "교황무오론"입니다. 가령, 로마교회 주교들 중에 아리우스파 옹호자 등 이단도 있었다는 것을 교회사를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로마 주교 (교황) 호노리우스 1세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인성이라는 두 위격을 갖고 있지만 오직 하나의 단일한 의지는 갖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의 모든 행위는 한 단 하나의 신적의지에 따른다는 '단일의지론'을 옹호했고, 비잔틴 황제 헤라클리오스는 이에 동조해 638년 칙령을 발표했지만, 그의 사후 40년 정도 후에 열린 AD 680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서 파문당했습니다. 이런 경우, 해당 인물들이 (1) 오해를 받았다고 변론하거나, 혹은 (2) "참 주교"가 아니라 "참칭한 것"이란 식으로 "무오" 문제를 피해가는 것이죠.
역사를 진영의 입장에서 보지말고 가급적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3]
루터의 명제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다” 가 오류인 이유
https://blog.naver.com/jmjfp/221319265765
오직성경설이 예수님의 가르침인가요?
https://blog.naver.com/jmjfp/221299184422
위 두 글은 논점은 "성서확립이 교회보다 나중인데 어떻게 "오직 성경"이란 명제가 성립하는가?" 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이 문제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측의 입장을 약간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 논점에 대한 로마카톨릭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단성파 및 양성파 교단)의 입장은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서 정경목록은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신약성서 목록의 최종확립만 본다면 이건 확실히 단계적이었으니까요. 오리게네스를 포함해 고대의 교부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없던 목록을 보편교회의 공회의가 갑자기 인준한 것은 아닙니다. 지역교회들 간에 "보편"적으로 인준되던 책들을 최종리스트로 "봉인"한 것이니까요. 그나마도 주체는 보편교회의 공회의지 로마카톨릭의 "교황"이 나서서 한 것도 아닙니다.
아래 글에서 유스티노스와 {무라토리} 단편의 내용도 참고해 보세요. 위의 유스티노스 직후, 히폴리투스가 활동하던 무렵 로마교회가 수용하던 신약성서 문건들이 {무라토리} 단편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무라토리 목록 전문 :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3.html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은,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이 교회를 이루었고, 이 가르침을 교회가 전수했으며, 이 가르침의 "핵심"은 성서에 진실되게 반영되어 있고, 바로 이 가르침이 성서의 최종리스트가 공회의에서 "봉인"되기 전에도 교회의 표준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성서보다 우위의 권위로) 성서를 확립했다"가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설립된 교회와 그 가르침이 기록된 성서는 유기적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며, 또 성서를 신앙의 최종권위로 삼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서의 텍스트에 근거하지 않는 교리는 수용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초기교부들의 글에 나오는 "거룩한 전통/전승"은 많은 경우 오늘날의 의미라기 보다는,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의미인 경우가 많습니다. 2세기 말, 로마 사제이자 "성인"인 히폴리투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그는 성서를 신앙의 표준으로 강조합니다.
"....9. 형제들이여, 오직 한 신만 계신다. 우리는 이 지식을 성서로 부터 얻었고, 다른 어디서 얻지 않았다. 세상의 지식에 통달하고자 하는 이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통달하는 것 이 외에 그 지식을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건을 훈련하길 원하는 우리 모두 역시 신의 계시 이외의 것에서 이것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이다. 성서가 선언하는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도록 하자. 성서가 가르치는 무엇이나 배우도록 하자. 성부께서 원하시는 믿음대로 믿도록 하자. 성부께서 성자를 영광스럽게 하시길 원하셨다면 우리도 성자께 영광을 돌리자. 성부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성령을 받아들이자. 우리 자신의 의지로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가 아니라,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것들을 오용하지 말고 성부께서 성서로서 그것들을 가르치고자 하셨다면 그것을 인정하도록 하자...." ---- 히폴리투스, {노에투스 반박} / 번역: 최광민
사실 "교회의 전통"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측의 견해는 두가지 지류가 있습니다. 가령, 루터교단이나 성공회 등은 "성서가 금지하지 않으면, 허용한다"는 입장을 대체로 취합니다. 칼뱅의 전통을 잇는 개혁주의에서는 원래 "성서가 허용하지 않으면, 금지한다"는 미니멀리스트의 입장을 취합니다. 그런데 로마카톨릭이나 정교회 측에서 말하는 (성서 밖의) "거룩한 전통"을 긴 시간축에서 보면 서로 상충하는 "전통"들이 많이 발견되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의 "전통"은 사실 경합에서 "살아남은" 전통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그럼 또 "신이 교회의 일을 주관하신다면, 올바른 교리와 전통 만이 살아남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도 주장하겠죠? 그런데 그 순간 순환논법이 되어버립니다.
AD 2세기 초/중반 소아시아를 거쳐 로마에서 활동한 유스티노스의 진술에 따르면, 고대교회의 일요일 예배는 찬양 (시편)과 구약성서와 복음서 (및 서신서)의 본문을 회중들에게 "길게" 읽어주어 강독하고, 이후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즉, 회중들이 설령 문맹이었다 하더라도, "해설되지 않은 원문"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략) 우리는 만물의 창조자이신 분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기린다. 일요일이라 불리는 날, 도시나 시골에 사는 모두가 한 곳에 모여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사도들의 회상록들이나 예언자/선지자들의 글들을 오래 읽으며, 독서를 마친 후에 집례자가 가르침을 말로 전하여 이 모든 좋은 일들을 닮도록 우리에게 권고한다...." --- 유스티노스, {첫번째 변증}, 번역: 최광민
/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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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당시 위그노들이 대량 살육을 당하고 있을 당시 프랑스 대사에게 이 소식을 접한 교황이 특별 미사 집전 및 찬송을 부르게 하고 환영 메달까지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톨릭 측에서는 당시 프랑스 대사는 학살에 대한 진상을 이야기 하지 않고 왕의 목숨을 위협한 반역자들을 제거했다고만 이야기 하였고 이 사건의 진상을 몰랐던 교황이 저런 행동을 취했던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던데 사실인가요? 또 학살 당시에 위그노들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도록 해준 가톨릭 주교좌들도 있었다고 하던데 이 또한 사실인가요?
[답변]
바르톨로메오 대학살은 종교적인 세팅에서 벌어진 정치적 학살극이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는 바로 프로테스탄트인 나바르 왕국의 앙리 3세와 로마카톨릭인 프랑스의 공주 (까뜨린 드 메디시스와 선왕 앙리 2세의 딸) 사이에 벌어진 결혼식입니다. 당시 프랑스 국왕 샤를 9세의 어머니로서 오랫동안 섭정하던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까뜨린 드 메디시스, 즉 카트리나 데 메디치였습니다. 당시 메디치가는 몇몇 교황을 배출하기도 하는 등 교황청과 아주 밀접했고요 (카뜨리나의 삼촌도 교황입니다).
프랑스인들은 그 당시 이미 피렌체 출신의 외국인이자 "평민"인 카트리나 데 메디치가 프랑스 왕비라는걸 공공연히 불쾌하게 여겼었는데, 이때 상당한 군사력을 가진 프랑스 남부의 나바르 왕국의 프로테스탄트 국왕 앙리 3세가 부마로 오는 걸 좋아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나바르의 앙리3세가 로마카톨릭으로 명목상 개종한다는 조건으로 프랑스의 앙리4세가 되니 꼭 틀린 우려도 아니었죠
사실 이 결혼 자체가 양측의 종교세력을 무마시키기 위한 정치적 계략이었던 것이고요. 학살의 배후가 위그노 및 나바르 세력을 일시에 제거하기 위해 카뜨린이 함정을 판 것인지, 프랑스 당시 국왕 앙리3세인지, 카톨릭파의 영수인 앙리 드 귀인지, 아님 그냥 프랑스인들의 우발적 충돌인지, 분명치 않은 점이 있긴 합니다. 아무튼 프랑스 일대에서 카톨릭-위그노 간의 종교전쟁이 고작 2년 전에 막 끝난 때란걸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게다가 이 결혼은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치러집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행동에 대해선...글쎄요 그가 바티칸에 그리게 한 기념화를 보면 (앙리3세가 지시한 위그노/프로테스탄트 지도자 가스파르 드 콜리니 제독의 살해 맟 이어지는 학살 묘사) 그가 이 학살을 일종의 성전으로 인식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이런 그림이 바티칸에 왜 필요했을까요.
Giorgio vasari, {seconda storia della notte di san bartolomeo}
일부 로마카톨릭 신자들이 위그노들의 피신을 도왔던 건은, 인도주의적인 조치일 수도 있고, 또한 물론 교황이 지위상 절대수장이긴 하더라도 이탈리아 밖 지역에서는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유럽 곳곳에는 프로테스탄트에 동조하던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이 엄연히 존재했고, 일부는 루터파 등의 주교가 되기도 했습니다.
/ 최광민
[질문] 영국의 호국경이었던 올리버 크롬웰은 아일랜드의 정복 과정에서의 대량 학살로 굉장히 비판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이 사건도 1641년에 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이 개신교도들을 먼저 학살하기 시작했고 찰스 1세가 이를 묵인하다가 나중에 크롬웰이 정권을 잡은 뒤 이를 진압한 것에 불과하다고 몇몇 개신교인들이 주장을 하던데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솔직히 크롬웰과 당시 찰스를 죽이고 기세등등했던 칼뱅파 의회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카톨릭 이단'을 처단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의회에 대한 '반역자'이기도 하니까요. 아실지 모르나, 아일랜드는 프로테스탄트였던 엘리자베스 1세 때 잉글랜드에 병합되는데, 이후 칼뱅파의 급진적 개혁을 의회가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일랜드의 로마카톨릭 토호들은 상당한 위협을 느끼던 중이었고 1641년에 잉글랜드에 대항에 폭동을 일으킵니다 (당연히 프로테스탄트를 여럿 죽였겠죠?) 그리고 아일랜드의 카톨릭 연맹은 잉글랜드 왕당파와 손을 잡고 찰스 1세를 아일랜드 국왕으로도 옹립하고 양면공격으로 잉글랜드에 왕정을 복권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 정황인 것이죠.
/ 최광민
[질문] 종종 반가톨릭 선전물에서 가톨릭 교회가 종교재판 등으로 5000만명을 학살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합니다. 알베르토 리베라나 잭칙 같은 미국의 개신교 강경파들도 이를 주장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이 수치의 신빙성은 둘째 치고 이 수치가 처음 주장된 원소스가 궁금한데 혹시 알아 봐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이 원자료는 예전에 읽어봤습니다. 19세기 중반의 책인 John Dowling의 {The History of Romanism}이 출전입니다. 이 책은 다시 18세기 영국 성공회 사제인 존 스캇의 {The History of the church of Christ} 에서 자료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다시 18세기 존 밀너 목사의 책을 증보한 것입니다. 밀너는 다시 16세기 영국에서 출판되어 대히트를 기록한 폭스의 {순교자 전 Foxe's Book of Martyrs}에 자료를 기초한 듯 합니다. 요새도 안식교 쪽에서 애용하는 폭스의 이 책은 다소 주의하면서 읽으셔야 하는데, 우선 자료가 좀 과장이 있습니다 (사실은 가해자 및 피해자의 진술 모두 허영에 의한 과장, 피해의식에 의한 과장이 있는데, 이 둘을 합치면 과장이 훨씬 커지게 마련입니다). 밀너의 책도 훑어봤는데 밀너도 폭스의 자료의 신빙성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도울링의 집계도 그런 과장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최광민
[질문]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 스위스 제네바에 있던 시절에 신정 정치로 자신의 반대파인 미카엘 세르베투스를 비롯해서 제네바 주민 수십명을 처형시켰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일부 사실, 일부 과장입니다. 우선 기술적으로 칼뱅은 제네바 시민이 아니라서 공직을 가질 수 없었고 따라서 "직접 신정정치를 휘두르며 학살을 했다"는 식의 대중적인 이미지는 과장입니다. 사실 세르베투스 사건 때 자유당이 장악한 시의회는 칼뱅의 적대파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민권이 없어 공직에 나갈 수 없다해도 종교적 영향력으로 간접적인 배후가 되기는 충분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형벌방식에 대해서는.....16세기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형벌이었다고 보셔도 무방하며, 특별히 칼뱅의 예정론에 기반한다면 그 형벌들이 가혹하고 엄격하게 집행된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쓴 글을 한번 읽어보시고요.
/ 최광민
http://kwangmin.blogspot.com/2011/12/blog-post_6655.html
[질문]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가 처형당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의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주장이나 무한우주론같은 주장들을 들면서 그가 가톨릭에 의해 희생된 과학의 순교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러나 실제로는 과학적 이유와는 별개로 그는 토트와 같은 이집트 신화에 푹 빠져있었는데 이러한 것들 때문에 태양이 곧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주장을 내세웠을 뿐이며 그 밖에 헤르메티즘을 신봉하고 있었기에 그의 이단적 사상을 경계시한 가톨릭이 처형시켰고 즉 그는 과학을 위해 순교했다는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입장도 있던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변]
브루노 이야기 역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처음 읽었습니다.
중세 말부터 르네상스, 그리고 심지어 19세기 서유럽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헤르메스 트리메기투스의 비전을 발견했다느니, 전수했다느니 하는 신비주의가 유행했습니다. 일종의 신-플라톤주의와 영지주의, 그리고 연금술철학이 혼합된 사상입니다.
사실 브루노는 당시 기준으로는 사형당할 만 합니다.
그의 기소내용에는 (1) 로마카톨릭교회의 교리적 권위무시 (2) 삼위일체 및 성육신 부정, (3) 마리아의 동정녀 부정, (4) 성체변화 부정, (5) 기타 다중우주론, 영원우주론, 환생설 등등이 있는데, 얼핏 보기에도 무죄가 입증되거나 견해를 철회하지 않는 한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물론 그의 재판에서 주로 그의 특별한 다중우주론과 영원설 등등이 주요화제가 되긴 합니다만, 이와 관련된 주요쟁점은 그의 우주론이 당시 교회가 (영원우주론을 빼고) 수용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관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이 또한 역시 로마카톨릭 교회 당국의 권위를 손상시킨 죄에 속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주는 중심이 없고 무한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교회 당국은 이 경우 다중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유도될 수 있다고 보기도 했죠.
아울러 당시엔 연금술이나 점성술을 한다고 다 처형당하진 않았습니다. 가령, 신심깊은 루터파 신자였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생계를 위해 연금술과 점성술 지식을 활용했습니다.
아무튼 브루노는 자신의 우주관과 생명관을 과학적 관찰의 결과로 얻었다기 보다는, 신-플라톤주의적 철학적 사유로 그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그는 "천체는 영혼을 가진 생물이다"라고 믿었고, 인간, 악마, 천체를 세상을 구성하는 세가지 지적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브루노를 "과학의 순교자"라고 하긴 좀 그렇죠. 사실 따지고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도 당시엔 "과학"입니다. 따라서 굳이 말하자면, 브루노는 '자유사상의 순교자'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중세 시대는 암흑 시대였나요? 최근 사학계에서는 유럽의 중세 시대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중세 시대가에도 기술적, 사회적 진보가 있었고 특히 교회가 고대 학문의 저장고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기독교로 인해 중세 암흑이 도래했다는 기존의 학설이 깨지고 있다더군요. 하지만 반대로 소위 중세의 재조명의 사례들을 보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나 일부 중앙집권에 성공한 국가들과 같이 극히 예외적인 사례들로만 국한하여 이것들을 일반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연금술 탄압의 사례처럼 기독교가 유럽의 기술과 과학 발전에 일종의 규제를 가했고 그로인해 발전이 더뎌지는 일이 있었다는 점에서 중세는 암흑시대가 맞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변]
고대 말인 6세기에서 중세 중반인 12세기 서유럽 역사를 살펴보면, 서유럽 로마문명 붕괴는 게르만족 대이동이 시작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프랑크족을 뺀 로마제국 영내 모든 게르만족은 아리우스파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카톨릭으로 개종한 프랑크족이 프랑크왕국을 확장한 후 서유럽 거의 전역이 일시적으로 안정되어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불릴만한 소규모 문예부흥이 잠깐 있었다가, 9세기 이후 프랑크 왕국이 분열/몰락한 후 노르만/바이킹의 약탈과 정복활동이 최고점에 이른 10-11세기엔 다시 문명이 거의 붕괴되었습니다. 당시 약탈로 붕괴된 유럽에 고대문명을 재이식한 것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수도원에 보존된 자료를 들고 본토로 온 수도사들이었습니다.
20세기 중세문화사학자인 후이징가의 연구 등에 따르면, 11-13세기는 기술과 생산, 문화 면에서 많은 도약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잉여생산물 거래/축적, 화폐경제 확산, 평화지속, 고딕양식, 아르스노바 예술양식, 신학/철학이론 발전, 봉건제 안착 등이 정착된 12세기를 후이징가는 "기적의 세기"라 불렀습니다. 이 시기는 르네상스 전의 르네상스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전 기간 동안 서유럽의 단독종교 역시 기독교이지 않나요?
중세의 퇴보를 기독교의 억압으로 설명한 에드워드 기본 류의 논리 중에 가장 취약한 약점은, (1) 심지어 15세기 초반까지도 동방의 비잔틴 제국은 당시 서방문화의 최대강국으로 건재해 있었다는 점, (2) 그 기간 서유럽에서 일어난 몇몇 문예부흥을 무시한다는 점 등입니다.
/ 최광민
[질문]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내의 개신교 교파들은 혁명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나요? 또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들은 프랑스 내의 개신교 종파들을 어떻게 대우했나요?
[답변]
바르톨로메오 학살에서 살아난 위그노/프로테스탄트인 나바르의 앙리가 로마카톨릭으로 (명목상) 개종하는 조건으로 프랑스의 앙리4세로 즉위하면서 1598년 발표한 낭트 칙령은 그로부터 100년 후인 1685년 루이 14세가 퐁텐블로 칙령을 선포하면서 폐지되어 프랑스 내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가 억압되었습니다. 이로서 상공업자들이 주가 된 수백만의 프로테스탄트가 프랑스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탄압이 공식적으로 중단된 것은 다시 100년 후인 1787년 베르사이유 칙령과 이어 2년 후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 발표된 인권선언의 결과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때 여러 프로테스탄트 인사들이 혁명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지만, "위그노/프로테스탄트"를 대표하는 그룹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로베스피에르 공포정치 약 2년 간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예배가 중단되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다시 종교의 자유를 회복합니다. 그런 점으로 볼때, 딱히 프로테스탄트에게 종교적으로 우호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프랑스 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가 개신교 종파들의 예배를 금지시켰다고 하셨는데 혹시 관련사료가 있을까요?
[답변]
토마스 카알라일이 쓴 {프랑스 혁명사}에 당시 혁명지도부의 종교정책에 대한 시니컬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시고요.
지난번에 나찌의 "기독교 말살정책"에 대해 제가 나찌의 "긍정적 기독교 Positives Christentum"를 설명하면서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기존 기독교를 대체하기 위해 혁명파들이 고안한 일종의 국가종교인 "이성의 종교 Culte de la Raison"나 "최고존재의 종교 Culte de l'Être suprême"에 대해 말씀드렸죠?
일단 프랑스 대혁명 전야의 프랑스 종교지형을 보면, 루이14세 이후 대혁명까지 100년 간 칼뱅주의 프로테스탄트 (위그노)가 완전히 쪼그라든 상태였기 때문에, 혁명당국이 특별히 프로테스탄트를 겨냥해서 종교정책을 펴고 말고 할 게 없었습니다. 따라서 혁명지휘부가 직접 겨냥한 것은 로마카톨릭입니다. 하지만 1792년부터 로베스피에르가 실각 후 처형된 1794년 까지의 프랑스 혁명공화국의 단독 공식종교는 "이성의 종교" 및 이어진 "최고존재의 종교였습니다. 따라서 혁명정부의 종교정책은 주요기조는 반-카톨릭이지만 사실상 반-기독교입니다.
혁명 후, 무신론으로 무장한 일부 혁명지도부에서 1792년 "이성의 종교"를 공표하면서 대중들에 의해 수백 명의 로마카톨릭 주교/사제/수도사/수녀를 대상으로 한 처형과 투옥이 일어났습니다. "9월 학살"이라고 부릅니다. 이어 1793년에는 반-교회법이 제정되어 교회 건물과 재산의 몰수가 진행되었습니다. 나아가 아예 "주님의 날 / 주일"을 뜻하는 라틴어 "dies Dominucus"d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dimanche"의 사용이 금지되었고, 또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6세기에 도입한 그레고리우스 역법이 폐지되고 프랑스 혁명력으로 대체되면서 교회의 모든 성일들이 폐지되었으며, 또 기독교 교회력의 기본이 되는 1주7일제가 폐지되고 1주10일제로 강제전환되었습니다 (2년 후 혁명력의 비효율성 때문에 그레고리우스력이 복원됩니다.)
혁명당국에 접수된 프랑스 각처의 교회들은 "이성의 신전"으로 개조되어 거기서 그리스/로마종교 풍의 "이성의 축제"란 의식을 벌였습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도 이때 신전으로 개조되었습니다. 가령, 제대 등이 해체되고 거기에 "철학에게 헌정"된 제단이 차려지고, 이성과 철학의 여신들이 등장하여 제전을 치르는데 사실 매우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조롱하는 행위였습니다.
자코뱅파가 실권을 장악한 후, 반-카톨릭이지만 무신론자는 혐오했던 이신론자 로베스피에르는 "이성의 종교"가 너무 과도하게 무신론적이고 반-종교적 프로파겐다를 펼치는데 쐐기를 박고, 보다 이신론적이고 기독교 색채를 입힌 대안으로 "최고존재의 종교"를 창설합니다. 그는 볼테르가 했던 "만약 신이 없다면, 하나 발명하는게 필요하다"란 말을 매우 좋아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통합의 매개로서 종교의 역할을 중시 여긴거죠. 이 대안종교는 로베스피에르의 처형과 함께 실질적으로 1794년에 종언을 고했고 나중에 나폴레옹이 이를 금지시켰습니다. 교회의 공식예배가 허용된 것은 1795년이지만, 이것도 매주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으며, 교회타종 이라든지 십자가를 외부에 거는 행위 등은 여전히 금지되었습니다. 이어 혁명군이 1799년 로마를 점령해 교황 피우스 6세를 투옥하고 로마에 신-로마공화국을 선포하는 등 나폴레옹이 권좌에 오를 때까지 프랑스 공화국과 로마카톨릭 간에는 강렬한 긴장이 있었습니다.
/ 최광민
[질문] 교황 비오 12세는 나치와의 협력과 저항 중 어느 쪽에 가까웠나요? 당시 비오 12세는 나치의 유대인 탄압 등과 같은 일에 강력한 비판하지 않았으며 특히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의 만행을 묵인하고, 또 전후에 남아메리카로 나치 전범들을 도주시키는 일에 관여했다는 점에서 나치의 적극적인 콜라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있던 반면, 또 다른 측에서는 교황에 오르기 전부터 나치를 비판하는 회칙을 발표하거나 이탈리아 내의 수십만의 유대인들을 수도원 등으로 도피시키는 등 나치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데 어느쪽이 진실인가요?
[답변]
이건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코멘트 해드리가 힘듭니다. 다만, 바티칸의 정체성이 종교적이면서도 수 세기 간 매우 "정치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신다면, 교황의 지위에서의 그의 결정 역시 일부 종교적, 일부 정치적 선택이란 점을 생각해 볼 수는 있겠죠. 그렇게 정치적인 조직에서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한가지 관점만 고수할 거라고 생각하는게 오히려 말도 안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최광민
[질문] 무솔리니의 사위 치아노의 일기에서 히틀러가 교황 비오 12세를 납치하려고 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심지어는 교황을 아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총살시키고 바티칸 시국을 불태우려고 했다는 주장도 있더군요.
[답변]
역시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코멘트 해드리가 힘듭니다.
/ 최광민
[질문] 크롬웰이 아일랜드를 정복할 당시 같은 개신교인들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나요? 또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지만 크롬웰이 여자관계가 굉장히 지저분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아일랜드의 일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 청교도/퓨리탄 계파 중 국교 개념을 거부하며 크롬웰 등이 주도한 독립파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다른 교파의 프로테스탄트" 정도가 아니라 같은 "퓨리탄 "이라도 자신들과 종교적,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10/blog-post_31.html
크롬웰의 사생활 건은 제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
/ 최광민
[질문] 북아메리카의 청교도 공동체는 성행위와 심지어 간통에 대해 굉장히 관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메이플라워호의 청교도들이 정착한 뒤 보스턴은 창녀들로 번창했고 1770년대의 북잉글랜드의 결혼한 여성의 절반이 결혼 전에 이미 임신한 상태였고 메사추세츠의 콩코드라는 마을은 태어난 아기의 3분의 1이 사생아일 정도로 청교도들은 흔히 알려진 금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문란했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칼뱅이 보다 조직적으로 "신정통치"하던 제네바는 천국이 되었을까요?
물론 제대로 된 청교도라면 윤리적으로 매우 엄격해야 합니다. "율법"을 중시하는 청교도의 교리 상 그래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초기 미국 이주민들이 모두 "윤리적으로 엄격한 청교도"였다는 주장의 근거는 뭘까요?
많이들 착각하시는데, 심지어 소위 첫 "필그림"인 메이플라워호에 승선한 모두가 "(분리파)청교도"였던 것 조차 아닙니다. 그 배에는 분리파 청교도 ("필그림")도 있었지만 종교적 이유가 아닌 경제적 이유로 승선한 선원/이주민도 있었고, 정착한 후에도 종교적인 문제로 (가령, 크리스마스 축일문제) 양측 간 갈등이 있었습니다. 청교도의 본격 이주가 시작된 후에도 역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여러가지 목적으로 배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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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화들은, (사실여부를 떠나)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똑같다"는 진리만 역설할 뿐입니다.
/ 최광민
[질문]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했나요?
[답변]
명시적으로 그랬던 적은 없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밀턴의 {실락원}과 {복락원}을 처음 읽었습니다. 당시 저는 밀턴이 올리버 크롬웰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기도 한 강고한 청교도였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로마 신화의 모티프가 상당히 녹아들어가 있는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 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왠지 청교도라면 {실락원} 바로 전에 읽었던 존 번연의 {천로역정} 같이 성서구절로 가득차 있는 책을 쓰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삼위일체와 관련된 논쟁에서는 늘 '어떤 형식의 삼위일체론'인가를 먼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실 칼뱅도 "삼위일체"란 용어가 그 개념을 담기에는 좀 불완전한 용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밀턴의 {실/복락원}을 읽다보면 성부와 성자/그리스도의 관계가 약간 아리우스파 적인 종속관계로 묘사된다는 느낌도 조금 받습니다. 발표 당시에도 다소 간 신학적 논란이 있었지만 대체로 19세기 초반까지는 {실/복락원}이 영국국교회의 신학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다는 평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초반에 밀턴의 작품이라고 여겨질 만한 미완성 라틴어 논고인 {De Doctrina Christiana, 기독교의 교리에 대하여}가 발견되었는데,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 논고에서 설명된 삼위일체에서의 "성자/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 논고를 바탕으로 그의 {실/복락원}을 재해석하는 시도들이 많이 있어왔습니다.
삼위일체 논쟁 초반기의 핵심논쟁은 "성자의 (영원한) 선재성"입니다. 아리우스는 "성자의 탄생"을 창조보다는 앞서나 성부의 존재보다 "시간적 후순위"로 이해함으로써 성자를 성부에 질적으로, 또 존재적으로 종속시킵니다. 하지만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이어지는 정통신조들 "성부가 성자를 낳음"이란 개념은 "영원 (속에서의) 탄생"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아리우스를 비판하면서 아리우스의 상관이던 알렉산드리아 주교 알렉산드로스는 콘스탄티노플 주교인 (역시) 알렉산드로스에게 이 점을 강조합니다. 즉, 창조자로서의 성자를 피조된 세계에 속성에 해당하는 시공간의 축에 놓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그런데 밀턴의 작품을 추정되는 저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에서 묘사되는 성자는 어떤 맥락에서는 '영원'하다고 - 즉, 영원으로부터 탄생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어떤 단락에서는 어떤 시간 상에서 탄생한 것처럼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밀턴이 '성자의 영원한 (=영원으로부터의) 탄생'이란 정통적 삼위일체론에서 이탈한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일단 이 부분이 부정되어야 아리우스적인 '본질적/존재론적 종속설'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니까요.
그러다가 19세기 초반에 밀턴의 작품이라고 여겨질 만한 미완성 라틴어 논고인 {De Doctrina Christiana, 기독교의 교리에 대하여}가 발견되었는데,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 논고에서 설명된 삼위일체에서의 "성자/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 논고를 바탕으로 그의 {실/복락원}을 재해석하는 시도들이 많이 있어왔습니다.
삼위일체 논쟁 초반기의 핵심논쟁은 "성자의 (영원한) 선재성"입니다. 아리우스는 "성자의 탄생"을 창조보다는 앞서나 성부의 존재보다 "시간적 후순위"로 이해함으로써 성자를 성부에 질적으로, 또 존재적으로 종속시킵니다. 하지만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이어지는 정통신조들 "성부가 성자를 낳음"이란 개념은 "영원 (속에서의) 탄생"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아리우스를 비판하면서 아리우스의 상관이던 알렉산드리아 주교 알렉산드로스는 콘스탄티노플 주교인 (역시) 알렉산드로스에게 이 점을 강조합니다. 즉, 창조자로서의 성자를 피조된 세계에 속성에 해당하는 시공간의 축에 놓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For the expression, "was not," ought either to be reckoned in time, or in some place of an age. But if it be true that "all things were made by Him," it is established that both every age and time and all space, and that "when" in which the "was not" is found, was made by Him. And is it not absurd that He who fashioned the times and the ages and the seasons, in which that "was not" is mixed up, to say of Him, that He at some time was not? " Colossians 1:16-17 --- {To Alexander, Bishop of the City of Constantinople}
....;존재하지 않았다'란 표현은 시간 혹은 공간 속에서 인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물이 그 (=성자/예수)에 의해 창조되었다"라고 할 때, 이것은 즉, 모든 시대와 시공간, 그리고 '존재하지 않음'을 상정할 '때' 역시 그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던 시간과 시대와 때를 만드신 그 분에게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까요..... / 번역: 최광민
그런데 밀턴의 작품을 추정되는 저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에서 묘사되는 성자는 어떤 맥락에서는 '영원'하다고 - 즉, 영원으로부터 탄생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어떤 단락에서는 어떤 시간 상에서 탄생한 것처럼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밀턴이 '성자의 영원한 (=영원으로부터의) 탄생'이란 정통적 삼위일체론에서 이탈한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일단 이 부분이 부정되어야 아리우스적인 '본질적/존재론적 종속설'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니까요.
/ 최광민
[질문]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의 배경과 그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건 한가할 때 자료를 좀 들춰봐야 할 것 같아서 코멘트 드리기 힘듭니다.
[질문]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 및 에이브러햄 링컨의 신앙관은 어떠했나요? 또 미국이 개신교 이념에 건국된 국가라는 미국 보수우익들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한 계몽주의자들의 이신론에 강력한 영향을 받은 미국 국부들의 종교적 입장과 그 헌법정신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개신교적 프리메이슨" 적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렸다고 말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프리메이슨'을 '악마숭배단체'로 보느냐 아니면 '박애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면서 "그럴싸한/유아적인 오컬트적 의식/의례와 포장한 속물적 리버럴들의 써클단체'로 보느냐는 각자 선택하기 나름이겠죠.
[답변]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한 계몽주의자들의 이신론에 강력한 영향을 받은 미국 국부들의 종교적 입장과 그 헌법정신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개신교적 프리메이슨" 적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렸다고 말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프리메이슨'을 '악마숭배단체'로 보느냐 아니면 '박애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면서 "그럴싸한/유아적인 오컬트적 의식/의례와 포장한 속물적 리버럴들의 써클단체'로 보느냐는 각자 선택하기 나름이겠죠.
(공개적인 무신론자들도 몇몇 있지만) 미국 국부들이 언급하는 "God"은 꼭 "기독교의 신"과 동일하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대체로 말하면 그들 다수는 "기독교적 이신론" 혹은 "이신론적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전자는 사고의 색채가 기독교적일 뿐이라는 것이지 꼭 그들이 기독교도란 뜻은 아닙니다. 후자의 경우는, 이들이 정말 기독교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보수우익이 생각하는 식의 그런 "근본주의 기독교도"들하곤 매우 다른 사람들인 것은 확실합니다.
링컨의 개인적 신앙관은 자세히 연구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만, 기본적으로 침례교의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 19세기 대유행이었던 부흥집회 등에 꽤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고 관련된 몇몇 일화들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유사상가에 가까운 면모도 보인다는 주장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 최광민
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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