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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聖 에르네스또 데 라 이구에라: "체 게바라"는 어쩌다 성인(聖人)이 되었을까?
라벨:
비교신화/종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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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9-06-23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聖 에르네스또 데 라 이구에라: "체 게바라"는 어쩌다 聖人이 되었나?
순서
- 혁명전사 "체"
- 쿨 가이
- 聖 에르네스또 데 라 이구에라: 성자가 되어버린 전사
1. 혁명전사 "체"
1967년 10월 9일. 혁명이 완수된 쿠바를 떠나 볼리비아로 혁명무대를 옮겨 친미적인 볼리비아 정부에 맞선 반정부 무장게릴라전을 펼치던 자타공인의 풍운아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는 라 이구에라 (La Higuera)라는 볼리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정부군에게 총살당했다.
:
Ernesto Guevara en Santa Clara. Diciembre 1958 (출처: Wikimedia Commons)
역사적 인물로서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파란만장한 삶은 여기에서 끝난다. 그의 시신은 30년 후에나 발굴되어 그가 "해방"시켰던 쿠바에 안장된다.
2. 쿨 가이
체 게바라라는 생전에도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미 신화적인 아이콘이었지만, 그의 사후에는 혁명에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들에게까지 하나의 "혁명" 혹은 "반항"의 상징으로 변모하며 퍼져나갔다 . 특히나 팝아트에서 그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고, 그 결과 길거리 하급문화에까지 그의 아이콘은 전파되었다. 후자의 경우라면, "체"는 "혁명"이라기보다는 그저 "쿨"의 상징으로 정도로만 여겨지는 듯 하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상징으로서의 체 게바라가 서구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을 세자면 끝도 없으므로, 여기서는 1999년 영국에서 있었던 한가지 에피소드만 인용하겠다.
영국국교회의 광고를 책임지는 Churches' Advertising Network (CAN)은 1999년의 부활절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게 하자는 취지로 광고 포스터를 하나 기획하는데, 그 포스터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체 게바라의 얼굴을 한 예수의 초상화를 포스터로 제작한 것이다. 당연히 보수적인 신자들이 예수를 모독한 행위라며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에 대해 CAN의 디자인을 옹호한 영국국교회 (성공회)의 Stephen Sykes 주교는 이렇게 발언한다. 그는 영국국교회의 교리위원회 의장이기도 했다.
"The intention of the advertisement is tocause remark, and it has been successful...If anyone is going to know what is blasphemous it will be our bishop and if he thought the poster was blasphemous he would have sacked us yesterday. We want people to realise that Jesus is not a meek, mild wimp in a white nightie, but a real, passionate and caring person."
"Jesus was a revolutionary figure and more revolutionary than anyone in the 20th century. While an analogy is implicitly drawn between the revolution of a political leader and that of Jesus,it is not said or implied that Jesus was a political revolutionary or would have endorsed the actions of Che Guevara."
예수의 얼굴에 체 게바라의 얼굴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그저 "상징"일 뿐이란 뜻이렸다. 아무튼 이 논쟁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3. 聖 에르네스또 데 라 이구에라: 성자가 되어버린 전사
체 게바라 사후 30주년을 맞아 서방기자들이 볼리비아의 그 마을을 찾았을때, 기자들은 체 게바라가 그 지역에서 이미 "산 에르네스또 데 이구에라 (San Ernesto de La Higuera, 라 이구에라의 聖 에르네스또)"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종교적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음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의 "비공식" 시성에 어울리게, 그에게 바쳐지는 기도라든지, 그에 관련된 여러 전설들 (가령, 간간히 목격되는 그의 현현 (유령)이라든지, 체 게바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거나 초를 켜서 바쳤더니 잃어버린 가축을 찾았다는 등등)들이 이미 민간에 널리 퍼져있었고, 각 가정들의 벽이나 성인에게 바쳐진 제단에는 체 게바라의 사진이 이미 성모 마리아, 교황, 혹은 다른 로마카톨릭 성인의 그림/사진들과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영국의 {가디언}이 보도한 현지인들과의 인터뷰 내용은 아래와 같다.
- Melanio Moscoso (La Higuera 출신) : "We pray to him, we are so proud he had died here, in La Higuera, fighting for us. We feel him so close",
- Freddy Vallejos (Vallegrande 출신) : "We have a faith,a confidence in Che. When I go to bed and when I wake up, I first pray to God and then I pray to Che - and then, everything is all right. Che's presence here is a positive force. I feel it in my skin, I have faith that always, at all times, he has an eye on us."
처형 후 그의 시신이 세계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그의 시신이 뉘여져있던 Vallegrande의 한 세탁소에는 이런 음각이 새겨져 있다.
"기억되는 한 그 사람은 죽지 않는다 None dies as long as he is remembered."
이렇게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인 "체"는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통해 "영생"에 이르렀고, 더구나 자신의 종교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聖人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아마 성인으로 거듭난 "산 에르네스또 데 라 이구에라"는, 자신에게 기도하는 신자들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거나, 병을 고쳐주거나, 혹은 길 잃은 소나 양을 찾아주는 일에 매진하느라, 전생에 목숨바쳐 주력했던 중남미의 혁명은 더이상 돌볼 겨를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이념에 따라. 아래의 두 이미지를 오버랩해서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살된 체 게바라 (출처: Wikimedia Commons)
Pietà de Villeneuve-lès-Avignon, E. Quarton (1460) (출처: Wikimedia Commons)
뭐 이런 코미디가 있나.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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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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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 에르네스또 데 라 이구에라: "체 게바라"는 어쩌다 聖人이 되었나?
순서
- 혁명전사 "체"
- 쿨 가이
- 聖 에르네스또 데 라 이구에라: 성자가 되어버린 전사
Ernesto Guevara en Santa Clara. Diciembre 1958 (출처: Wikimedia Commons)
출처: Wikimedia Commons
출처: Wikimedia Commons
"Jesus was a revolutionary figure and more revolutionary than anyone in the 20th century. While an analogy is implicitly drawn between the revolution of a political leader and that of Jesus,it is not said or implied that Jesus was a political revolutionary or would have endorsed the actions of Che Guevara."
- Melanio Moscoso (La Higuera 출신) : "We pray to him, we are so proud he had died here, in La Higuera, fighting for us. We feel him so close",
- Freddy Vallejos (Vallegrande 출신) : "We have a faith,a confidence in Che. When I go to bed and when I wake up, I first pray to God and then I pray to Che - and then, everything is all right. Che's presence here is a positive force. I feel it in my skin, I have faith that always, at all times, he has an eye on us."
사살된 체 게바라 (출처: Wikimedia Commons)
Pietà de Villeneuve-lès-Avignon, E. Quarton (1460) (출처: Wikimedia Commons)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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