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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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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예수 vs. 붓다 #9: 테라퓨타이 (Θεραπευταί)와 엣세네 (Εσσήνοι)는 불교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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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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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vs 붓다 #9: 테라퓨타이 (Θεραπευταί)와 엣세네 (אִסִּיִים / Εσσήνοι/Εσσαίοι) 불교도였을까?

순서
  1. 테라바다 थेरवाद theravāda 불교
  2. 동부 헬레니즘 지역에서의 불교
  3. 테라퓨타이 (Θεραπευταί)와 엣세네 (Εσσήνοι)는 불교도였을까?

    # 테라바다 थेरवाद theravāda

    '테라바다'란 용어는 팔리어의 '장로/상좌'를 뜻하는 '테라'와, 역시 팔리어의 '가르침'을 뜻하는 '바다'가 합쳐진 용어로, '장로/상좌들의 가르침' 즉, '상좌부 불교'를 말한다. 대승불교에서는 흔히 '소승'불교라 폄칭된다.

    이 '테라바다 불교'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으로 뚫린 헬레니즘 사회의 실크로드를 따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까지 퍼졌으며,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유대인 철학자 필론의 저작에도 바로 이 '테라바다 불교 수도공동체'가 등장한다는 "놀라운(!!)" 주장들을 종종 접한다. 즉, BC/AD 1세기를 전후한 유대교 수도주의 경건파 운동들인 테라튜타이나 엣네네파 및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사실은 '불교' 공동체였거나, 혹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변형 유대교 공동체"란 주장이다. 특별히 필론의 저장에 등장하는 '테라퓨타이'가 사실은 '테라바다 불교' 혹은 '상좌부 불교'였다는 것인데......이런 주장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억지일까?

    그리스어 '테라퓨타이'의 음가에서 팔리어 '테라바다'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마치 고대 이집트어 "히-크-프타 (프타의 혼이 머무는 집 / 멤피스)"에서 변형된 그리스어 Αἴγυπτος (=에깁토스)에서 유래한 영어 'Egypt 이집트'가 한국어 '이 집의 터'에서 왔다고 주장하거나, 그리스의 천공과 번개의 신 'Ζεύς 제우스'가 사마천의 {사기} 등에 등장하는 고대 중국의 전쟁신 '蚩尤 치우'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에스파니아어로 '눈 덮힌'이란 뜻을 가진 미국 서부의 'Nevada 네바다'주가 한국어 '네 바다 四海'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어떤 "민족주의자"들의 사고구조와 같다는 점을 지적해 주고 싶다.


    한재규, {만화 환단고기}




    # 동부 헬레니즘 지역에서의 불교

    BC 323년 옥수스 강을 넘어 동으로 진격하던 마케도니아왕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이 그의 사망과 함께 서북인도에서 종료된 후,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긴 원정에 참가했던 그리스인들은 정복한 현지에 잔류해 현재 서북인도 및 파키스탄 일부-아프가니스탄-이란 동부 지역 일대에 지배층이 그리스계로 구성된 헬레네즘 국가(들)을 세웠다.

    그 중에서 가장 융성했던 헬레니즘 국가는 박트리아 (Βακτριανή, 한자어로 大夏 대하)였다. 인도인들은 이 국가를 팔카 (बाह्लीक Pāhlka)라 불렀다. 이 지역은 사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이전에 이미 그리스 문명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던 지역이었는데, 알렉산드로스의 등장 이전 이 지역을 장악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1세나 크세르세스가 그리스를 침공하고 주변 지역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저항했던 이오니아계 그리스인들을 모아 추방시킨 지역이 바로 이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박트리아 지역에는 여러 "알렉산드리아"란 도시가 있었는데, 그래서 이 지역의 역사를 말할때 접하게 되는 여러 알렉산드리아들은 이집트의 그 도시가 아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알렉산드리아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수도인 카불 지역에 있었다. 인도에서는 이들 박트리아인들을 '(그리스) 이오니아인'이란 뜻으로 팔리어 "요나", 혹은 산스크리트어 "야바나"라고 불렀다.

    마케도니아 제국이 삼분 된 후 시리아 지역 동부를 지배했던 셀류코스 1세에 의해 창건된 셀류키드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이들 지역은, 셀류키드 제국이 이집트에 창건된 역시 그리스계 왕국인 프톨레마이오스 왕국과의 군사경쟁에 이어 지중해의 새로운 열강으로 합류한 로마와의 전쟁에서 국력을 급격히 쇠진하게 된 후 BC 3세기 중반부터 서부의 파르티아와 함께 독립지역이 된다. 그러니까 BC 1-2세기 지중해 동부에서 서북인도까지의 세계는 시리아/유대아 지역 우측으로 차례로 이란계 파르티아, 이란/그리스/소그드계 박트리아, 그리고 서북인도에 잇닿게 된다.

    소수의 그리스계 지배층으로 구성된 박트리아 왕국은 그 문화적 기조는 그리스계지만 차츰 지역에 동화되어 테라바다 (=소승) 불교가 그리스 전통종교와 함께 지배층의 종교로 자리잡아 간다. 아울러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후 테라바다 (=소승)불교에 귀의한 (전륜왕) 아소카왕의 마우리아 제국과 활발한 교류를 가졌다. 아소카왕의 칙령에 따르면 아소카는 600 요자나 (약 6천 km) 인근의 국가에 포교승들을 보냈는데, 칙령에 등장하는 이들 국가의 많은 왕들이 그리스어 이름을 가지고 있다. 600 요자나는 대략의 환산으로 그리스 본토까지의 거리에 해당하는데, 이 수는 과장이란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 본토이 얼마나 마우리아 제국과 교류했는지는 분명치 않더라도, 최소한 박트리아 지역의 그리스계 국가들이 마우리아 제국과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무렵 많은 본토의 그리스인들도 여러 이유로 (원정, 탐험, 사업, 종교적 구도) 동방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인도의 사상을 접하고 이를 그리스 철학에 도입한 사실이 그리스 문헌에 전하고 있다. 스트라보에 따르면 메가스테네스와 데이마코스가 마우리아 제국의 창건자인 찬드라굽다와 그 아들인 빈두사라의 궁정에 보내진 그리스의 사절들이었다. 물론 그리스 문화가 인도에 영향을 주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가령, 불교의 창시자인 싯달타 고타마의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전승들이 있는데 상좌부에서는 BC 563-483 혹은 대승불교에서는 BC 480-400년 무렵을 제시해 왔다. 물론 이보다 더 다양한 생몰연대가 역사적으로 제시되어 왔다. 이렇게 본다면 시대적으로는 붓다보다 조금 앞서는 그리스 우화작가인 아이소포스 (이솝, Αἴσωπος, c. 620–564 BCE)의 우화들과 고타마 붓다의 입멸 후 등장한 다양한 {자타카} 사이의 유사성에 그리스-인도의 문화교류에 대한 한 사례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증거부족으로 상호영향이 있었는지와 그 방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AD 1세기 말부터 이 지역을 장악한 인도 쿠샨 제국은 테라바다 불교보다는 마하야나 불교 (=대승불교)을 지원해 점차 서북인도는 대승불교의 중심지로 자리잡는다. 이것이 오늘날 파키스탄과 인도 접경 지역을 포함하는 간다라 지역이다.

    따라서 BC 1세기에서 AD 1세기 사이에 헬레니즘 사회는 인도의 종교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인도 종교의 수행자들을 '나체철학자 / γυμνοσοφισταί / 김노소피스타이'로 불렀는데, AD 1세기 말 그리스의 아폴론 신관이자 전기작가였던 플루타르코스는 서북인도로의 침공을 앞두고 있던 알렉산드로스가 인더스 강에서 만났던 10명의 나체철학자들에 대해 언급한다.

    He (Alexander) captured ten of the Gymnosophists who had done most to get Sabbas to revolt, and had made the most trouble for the Macedonians. These philosophers were reputed to be clever and concise in answering questions, and Alexander therefore put difficult questions to them, declaring that he would put to death him who first made an incorrect answer, and then the rest, in an order determined in like manner; and he commanded one of them, the oldest, to be the judge in the contest.

    The first one, accordingly, being asked which, in his opinion, were more numerous, the living or the dead, said that the living were, since the dead no longer existed. The second, being asked whether the earth or the sea produced larger animals, said the earth did, since the sea was but a part of the earth. The third, being asked what animal was the most cunning, said: "That which up to this time man has not discovered." The fourth, when asked why he had induced Sabbas to revolt, replied: "Because I wished him either to live nobly or to die nobly." The fifth, being asked which, in his opinion, was older, day or night, replied: "Day, by one day"; and he added, upon the king expressing amazement, that hard questions must have hard answers. Passing on, then, to the sixth, Alexander asked how a man could be most loved; "If," said the philosopher, "he is most powerful, and yet does not inspire fear." Of the three remaining, he who was asked how one might become a god instead of man, replied: "By doing something which a man cannot do"; the one who was asked which was the stronger, life or death, answered: "Life, since it supports so many ills." And the last, asked how long it were well for a man to live, answered: "Until he does not regard death as better than life." 

    So, then, turning to the judge, Alexander bade him give his opinion. The judge declared that they had answered one worse than another. "Well, then," said Alexander, "thou shalt die first for giving such a verdict." "That cannot be, O King," said the judge, "unless thou falsely saidst that thou wouldst put to death first him who answered worst." These philosophers, then, he dismissed with gifts... —Plutarch, Life of Alexander, "The parallel lives", 64-65. with an English Translation by. Bernadotte Perri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19

    알렉산드로스가 10명의 나체철학자들을 사로잡았는데, 이들이 사바스가 반란을 일으킨 배후였으며 또 이 반란이 마케도니아인들에게 가장 골치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이 철학자들은 영리했으며, 질문에 대한 답은 간결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들에게 어려운 질문들을 던지면서 누구든 제일 먼저 틀린 답을 하는 자를 죽이겠다고 말했고, 나머지에 대해서도 그리하겠다고 했다. 그런 후 알렉산드로스는 그 가운데 가장 연장자를 골라 심판으로 정했다. 

    첫번째 사람에게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중에 어느 쪽의 숫자가 많은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산 사람의 수가 더 많은데, 죽은 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두번째 사람에게는 땅과 바다 가운데 어느 쪽의 동물이 더 큰 가에 대해 물었다. 그는 '땅'이라고 답하며 이는 바다도 땅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세번째 사람에게는 가장 교활한 짐승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그는 인간이 아직까지는 그 짐승을 찾지 못했노라고 답했다. 네번째 사람에게는 왜 나체수행자들이 사바스 (Sabbas)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했는지에 대해 물었는데, 그는 '그것은 그가 고귀하게 살거나, 혹은 고귀하게 죽길 바랬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다섯번째 사람에게는 '날이 더 오래되었는지, 혹은 밤이 더 오래되었는지'를 답해 보라고 물었고, 그는 '낮이 하루 더 깁니다'라고 답하고는 왕이 이 답에 놀라자 덧붙여서 '어려운 질문에는 어려운 답이 있기 마련입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알렉산드로스는 여섯번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가장 사랑받는 자'인지를 물었고, 그 철학자는 '권능을 가지고 두려움을 모르는 자입니다'라고 답했다. 남은 세 명 가운데 한 명에게는 어떻게 하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겠는지에 대해 물었는데,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면 신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그 다음 사람에게는 '생명과 죽음 가운데 무엇이 더 강한가'에 대해 물었는데, 그는 '많은 질병을 지탱하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이 죽음보다 강하다'고 답헸다. 마지막 사람에게 인간의 수명은 얼마인가를 물었는데, 그는 '죽음이 삶보다 더 나은 것으로 여기게 되기 전까지 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제 알렉산드로스는 심판에게 몸을 돌려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말했고, 심판은 나체수행자들이 한 명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쁜 답을 했다고 선언했다. 이에 알렉산드로스는, "그럼 이런 결론을 내린 그대가 바로 죽을 사람이로군"이라고 말했다. 심판은, "오, 왕이여,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왕께서 이전에 가장 가장 틀린 답을 한 자가 먼저 죽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 틀린 말이 아니라면 말입니다."라고 답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철학자들에게 선물을 내린 후 풀어주었다. --- 플루타르코스, {알렉산드로스의 일생} 64-65 / 번역: 최광민



    한편 고대 철학자들의 전기를 정리해 남긴 AD 3세기의 디오게네스 레르티오스 Διογένης Λαέρτιος / Diogenes Laertius (ix. 61 and 63)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에 참가해서 인도를 방문했던 엘리스 출신의 철학자 퓌론 (Πύρρων/ Pyrrho, c. 360-270 BC.)이 서북 인도에서 만난 나체 철학자들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철학과 생활방식을 본 뜬 회의주의 철학 학파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정확히 이들 나체철학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철학을 수련한 것인지, 어떤 생활방식을 가진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불분명하다.

    읽어보자.


    Diogenes Laertius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II: 6 10, https://archive.org/details/L184DiogenesLaertiusLivesOfEminentPhilosophersII610

    [61] Pyrrho of Elis was the son of Pleistarchus, as Diocles relates. According to Apollodorus in his Chronology, he was first a painter ; then he studied under Stilpo's son Bryson1: thus Alexander in his Successions of Philosophers. Afterwards he joined Anaxarchus, whom he accompanied on his travels everywhere so that he even forgathered with the Indian Gymnosophists and with the Magi. This led him to adopt a most noble philosophy, to quote Ascanius of Abdera, taking the form of agnosticism and suspension of judgement. He denied that anything was honourable or dishonourable, just or unjust.2 And so, universally, he held that there is nothing really existent, but custom and convention govern human action ; for no single thing is in itself any more this than that. [62] He led a life consistent with this doctrine, going out of his way for nothing, taking no precaution, but facing all risks as they came, whether carts, precipices, dogs or what not, and, generally, leaving nothing to the arbitrament of the senses ; but he was kept out of harm's way by his friends who, as Antigonus of Carystus tells us, used to follow close after him. But Aenesidemus says that it was only his philosophy that was based upon suspension of judgement, and that he did not lack foresight in his everyday acts. He lived to be nearly ninety. ---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Diogenes Laertius. R.D. Hick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 Book9, Chapter11, 61-62

    [61]디오클레스에 따르면, 엘리스의 퓌론은 프레이스타르코스의 아들이었다. 아폴로도로스의 {연대기}에 따르지만, 그는 처음에는 화공이었는데, 후에 스틸포스의 아들인 브뤼손 밑에서 공부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책 {철학자 계보}에서 또 그렇게 전한다. 이후 그는 아낙사르코스 학파에 합류하여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나 따라갔는데, 심지어 멀리 인도의 나체철학자들과 (페르시아의) 마기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퓌론은 가장 고귀한 철학을 수용하게 되었는데, 압데라의 아스카니오스를 인용하자면, 그의 철학은 불가지론과 판단보류를 취하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대상이 고상하다거나 저급하다라거나, 혹은 정의롭다다거나 불의하다거나라는 판단을 거부했다. 일반적으로 말해, 그는 실재하는 것은 없으며, 인간의 행동은 문화와 합의된 원칙에 따라 지배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그 자체 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62] 그는 이 원리에 따라 살았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살았고, 미래에 대한 어떤 염려도 하지 않아 오는 위험은 그대로 맞이했으며.....[중략]....하지만 에네시데모스에 따른다면, 그의 철학은 다만 판단보류에 기초했을 뿐이며 그가 일상생활 속에서조차 아무런 예측도 하지 않고 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거의 90세까지 살았다.  --- 디오게네스 레르티오스, {저명한 철학자들의 삶} / 번역: 최광민

    퓌론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이 진술대로라면 인도의 나체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퓌론의 철학이 정확히 인도의 어떤 종교/철학에서 온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베다/브라만교~우파니샤드계 종교에서 이탈한 여러 종교들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하여 비슷한 관점들을 많이 공유했고, 그로부터 수 백년이 흐른 퓌론의 시대까지는 이 종교들 간에도 상호 간 교리취합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퓌론의 철학이 근거하는 불가지론과 판단중지론은 불교의 창시자 싯달타 고타마가 외도로 규정한 산자야 벨라티풋타의 주요 가르침이기도 했다. 불교 측에 따르면 산자야의 두 제자였던 사리풋타 (=사리불)과 목갈라나 (=목건련)이 다른 250 명의 제자들과 싯달타 고타마에게 귀의하자 산자야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한편, 불가지론과 회의론에 아울러 선악의 판단기준이란 그저 인간이 정한 임의로운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서는 역시 육사외도의 하나인 푸라나 카파라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또 한편, 공과 연기설처럼 여겨지는 부분에서는 불교와 유사하다. 그래서 퓌론은 아마도 특정 종파가 아닌 '나체철학자'들의 여러 교리를 취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스의 지리학자였던 스트라보는 메가스테네스의 기록을 옮긴 그의 지리서에서 이 나체철학자들을 인도의 종교수행자들로 설명하는 동시에 인도철학자들을 (서북인도를 방문했던 메가스테네스의 진술에 따라) 브라크마나스 (Βραχμᾶνας)과 가라마나스(Γαρμᾶνας) 둘로 나눈다. 이것은 각각 베다/브라만교의 승려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브라마나 (ब्राह्मणम्)와 비-베다계 종교들 수행자에 대한 통칭인 산스크리트어 스라마나 (श्रमण) 및 팔리어 사마나 (समण) 해당한다. 한역으로는 사문(沙門)이다.

    스라마나에는 싯달타 고타마의 불교, (불교에서 외도로 간주하는) 니간타 나타풋타의 자이나교, 마칼리 고탈라의 아지비카교 등의 출가자들이 포함된다. 참고로 알렉산드로스가 인도원정에 실패 후 퇴각하여 사망한 BC 323년 이듬 해에  마우리야 왕조를 창건한 찬드라굽타 마우리야와 그 아들 빈두사라와 그 손자인 아소카는 자이나교, 아지비카교, 그리고 불교에 각각 귀의했다.

    메가스테네스에 따르면 이 스라마나도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그 하나는 "휠로비오이 ὑλοβίοί" (= 숲에 은거하여 수행하는 (아란야) 삼림수행자 (아란야카), 산스크리트어 Vanaprasthd 의 번역)와 사람들과 섞여사는 '야트리코이 ἰατρικοί 치료자' 들이 그것이다. 동일한 그룹의 수행자들을 AD 2세기 말의 알렉산드리아 교부 클레멘스는 {스트로마타}에서 조금 다르게 진술했는데, '사르마나'를 '사르마나이'로, 산림수행자를 뜻한 스트라보의 '휠로비오이'를 '알로비오이'로 표기했다.

    스트라보의 {지리} 제 15권 1장 60절을 읽어보자.


    Strabo Geography VII: 15 16 , https://archive.org/details/L241StraboGeographyVII1516

    [59] ῎αλλην δὲ διαίρεσιν ποιεῖται * περὶ τῶν φιλοσόφων, δύο γένη φάσκων, ὧν τοὺς μὲν Βραχμᾶνας καλεῖ τοὺς δὲ Γαρμᾶνας. τοὺς μὲν οὖν Βραχμᾶνας εὐδοκιμεῖν μᾶλλον: μᾶλλον γὰρ καὶ ὁμολογεῖν ἐν τοῖς δόγμασιν: ἤδη δ᾽ εὐθὺς καὶ κυομένους ἔχειν ἐπιμελητὰς λογίους ἄνδρας, οὓς προσιόντας λόγῳ μὲν ἐπᾴδειν δοκεῖν καὶ τὴν μητέρα καὶ τὸν κυόμενον εἰς εὐτεκνίαν, τὸ δ᾽ ἀληθὲς σωφρονικάς τινας παραινέσεις καὶ ὑποθήκας διδόναι: τὰς δ᾽ ἥδιστα ἀκροωμένας μάλιστα εὐτέκνους εἶναι νομίζεσθαι. μετὰ δὲ τὴν γένεσιν ἄλλους καὶ ἄλλους διαδέχεσθαι τὴν ἐπιμέλειαν, ἀεὶ τῆς μείζονος ἡλικίας χαριεστέρων τυγχανούσης διδασκάλων. διατρίβειν δὲ τοὺς φιλοσόφους ἐν ἄλσει πρὸ τῆς πόλεως ὑπὸ περιβόλῳ συμμέτρῳ, λιτῶς ζῶντας ἐν στιβάσι καὶ δοραῖς, ἀπεχομένους ἐμψύχων καὶ ἀφροδισίων, ἀκροωμένους λόγων σπουδαίων, μεταδιδόντας καὶ τοῖς ἐθέλουσι: τὸν δ᾽ ἀκροώμενον οὔτε λαλῆσαι θέμις οὔτε χρέμψασθαι ἀλλ᾽ οὐδὲ πτύσαι, ἢ ἐκβάλλεσθαι τῆς συνουσίας τὴν ἡμέραν ἐκείνην ὡς ἀκολασταίνοντα. ἔτη δ᾽ ἑπτὰ καὶ τριάκοντα οὕτως ζήσαντα ἀναχωρεῖν εἰς τὴν ἑαυτοῦ κτῆσιν ἕκαστον καὶ ζῆν ἀδεῶς καὶ ἀνειμένως μᾶλλον, σινδονοφοροῦντα καὶ χρυσοφοροῦντα μετρίως ἐν τοῖς ὠσὶ καὶ ταῖς χερσί, προσφερόμενον σάρκας τῶν μὴ πρὸς τὴν χρείαν συνεργῶν ζῴων, δριμέων καὶ ἀρτυτῶν ἀπεχόμενον: γαμεῖν δ᾽ ὅτι πλείστας εἰς πολυτεκνίαν: ἐκ πολλῶν γὰρ καὶ τὰ σπουδαῖα πλείω γίνεσθαι ἄν, ἀδουλοῦσί τε τὴν ἐκ τέκνων ὑπηρεσίαν ἐγγυτάτω οὖσαν πλείω δεῖν παρασκευάζεσθαι. ταῖς δὲ γυναιξὶ ταῖς γαμεταῖς μὴ συμφιλοσοφεῖν τοὺς Βραχμᾶνας, εἰ μὲν μοχθηραὶ γένοιντο, [p. 993] ἵνα μή τι τῶν οὐ θεμιτῶν ἐκφέροιεν εἰς τοὺς βεβήλους εἰ δὲ σπουδαῖαι, μὴ καταλείποιεν αὐτούς. οὐδένα γὰρ ἡδονῆς καὶ πόνου καταφρονοῦντα, ὡς δ᾽ αὕτως ζωῆς καὶ θανάτου, ἐθέλειν ὑφ᾽ ἑτέρῳ εἶναι: τοιοῦτον δ᾽ εἶναι τὸν σπουδαῖον καὶ τὴν σπουδαίαν. πλείστους δ᾽ αὐτοῖς εἶναι λόγους περὶ τοῦ θανάτου: νομίζειν γὰρ δὴ τὸν μὲν ἐνθάδε βίον ὡς ἂν ἀκμὴν κυομένων εἶναι, τὸν δὲ θάνατον γένεσιν εἰς τὸν ὄντως βίον καὶ τὸν εὐδαίμονα τοῖς φιλοσοφήσασι: διὸ τῇ ἀσκήσει πλείστῃ χρῆσθαι πρὸς τὸ ἑτοιμοθάνατον: ἀγαθὸν δὲ ἢ κακὸν μηδὲν εἶναι τῶν συμβαινόντων ἀνθρώποις: οὐ γὰρ ἂν τοῖς αὐτοῖς τοὺς μὲν ἄχθεσθαι τοὺς δὲ χαίρειν ἐνυπνιώδεις ὑπολήψεις ἔχοντας, καὶ τοὺς αὐτοὺς τοῖς αὐτοῖς τοτὲ μὲν ἄχθεσθαι τοτὲ δ᾽ αὖ χαίρειν μεταβαλλομένους. τὰ δὲ περὶ φύσιν τὰ μὲν εὐήθειαν ἐμφαίνειν φησίν: ἐν ἔργοις γὰρ αὐτοὺς κρείττους ἢ λόγοις εἶναι, διὰ μύθων τὰ πολλὰ πιστουμένους: περὶ πολλῶν δὲ τοῖς Ἕλλησιν ὁμοδοξεῖν: ὅτι γὰρ γενητὸς ὁ κόσμος καὶ φθαρτὸς λέγειν κἀκείνους, καὶ ὅτι σφαιροειδὴς ὅ τε διοικῶν αὐτὸν καὶ ποιῶν θεὸς δι᾽ ὅλου διαπεφοίτηκεν αὐτοῦ: ἀρχαὶ δὲ τῶν μὲν συμπάντων ἕτεραι, τῆς δὲ κοσμοποιίας τὸ ὕδωρ: πρὸς δὲ τοῖς τέτταρσι στοιχείοις πέμπτη τις ἐστὶ φύσις, ἐξ ἧς ὁ οὐρανὸς καὶ τὰ ἄστρα: γῆ δ᾽ ἐν μέσῳ ἵδρυται τοῦ παντός: καὶ περὶ σπέρματος δὲ καὶ ψυχῆς ὅμοια λέγεται καὶ ἄλλα πλείω: παραπλέκουσι δὲ καὶ μύθους, ὥσπερ καὶ Πλάτων περί τε ἀφθαρσίας ψυχῆς καὶ τῶν καθ᾽ ᾄδου κρίσεων καὶ ἄλλα τοιαῦτα. περὶ μὲν τῶν Βραχμάνων ταῦτα λέγει.

    [59] Megasthenes divides the philosophers again into two kinds, the Brachmanes1 and the Garmanes.2 The Brachmanes are held in greater repute, for they agree more exactly in their opinions. Even from the time of their conception in the womb they are under the care and guardianship of learned men, who go to the mother, and seem to perform some incantation for the happiness and welfare of the mother and the unborn child, but in reality they suggest prudent advice, and the mothers who listen to them most willingly are thought to be the most fortunate in their offspring. After the birth of the children, there is a succession of persons who have the care of them, and as they advance in years, masters more able and accomplished succeed. The philosophers live in a grove in front of the city within a moderate-sized enclosure. Their diet is frugal, and they lie upon straw pallets and on skins. They abstain from animal food, and from sexual intercourse with women; their time is occupied in grave discourse, and they communicate with those who are inclined to listen to them; but the hearer is not permitted to speak or cough, or even to spit on the ground; otherwise, he is expelled that very day from their society, on the ground of having no control over himself. After living thirty-seven years in this manner, each individual retires to his own possessions, and lives with less restraint, wearing robes of fine linen, and rings of gold, but without profuseness, upon the hands and in the ears. They eat the flesh of animals, of those particularly which do not assist man in his labour, and abstain from hot and seasoned food. They have as many wives as they please with a view to numerous offspring, for from many wives greater advantages are derived. As they have no slaves, they require more the services, which are at hand, of their children. The Brachmanes do not communicate their philosophy to their wives, for fear they should divulge to the profane, if they became depraved, anything which ought to be concealed or lest they should abandon their husbands in case they became good (philosophers) themselves. For no one who despises alike pleasure and pain, life and death, is willing to be subject to the authority of another; and such is the character of a virtuous man and a virtuous woman.

    메가스테네스는 이들 철학자들 다시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브라마나스'이고, 다른 하나는 '가르마나스'이다.브라마나스들이 더 큰 명망을 얻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견해가 보다 정확히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태되기도 전에 이미 학식이 있는 자의 관리와 지도를 받는데, 그들은 어머니에게로 가서 아기와 산모의 행복과 안녕을 기리는 기원을 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들은 신중한 조언을 해주며...... 이들 철학자들은 마을 앞에 있는 숲에서 적당한 크기의 거처에서 산다.그들의 음식은 검소하며, 돗자리를 깔고 맨 살로 그 위에 눕는다. 그들은 고기를 먹지 않으며, 여자와의 성교를 피한다. ...../ 번역: 최광민

    They discourse much on death, for it is their opinion that the present life is the state of one conceived in the womb, and that death to philosophers is birth to a real and a happy life. They therefore discipline themselves much to prepare for death, and maintain that nothing which happens to man is bad or good, for otherwise the same things would not be the occasion of sorrow to some and of joy to others, opinions being merely dreams, nor that the same persons could be affected with sorrow and joy by the same things, on different occasions. With regard to opinions on physical phenomena, they display, says Megasthenes, great simplicity, their actions being better than their reasoning, for their belief is chiefly founded on fables. On many subjects their sentiments are the same as those of the Greeks. According to the Brachmanes, the world was created, and is liable to corruption; it is of a spheroïdal figure; the god who made and governs it pervades the whole of it; the principles of all things are different, but the principle of the world's formation was water; in addition to the four elements there is a fifth nature, of which the heavens and the stars are composed; the earth is situated in the centre of the universe. Many other peculiar things they say of the principle of generation and of the soul. They invent fables also, after the manner of Plato, on the immortality of the soul, and on the punishments in Hades, and other things of this kind. This is the account which Megasthenes gives of the Brachmanes.

    [60] τοὺς δὲ Γαρμᾶνας τοὺς μὲν ἐντιμοτάτους ὑλοβίους φησὶν ὀνομάζεσθαι, ζῶντας ἐν ταῖς ὕλαις ἀπὸ φύλλων καὶ καρπῶν ἀγρίων, * ἐσθῆτος φλοιῶν δενδρείων, ἀφροδισίων χωρὶς καὶ οἴνου: τοῖς δὲ βασιλεῦσι συνεῖναι, δι᾽ ἀγγέλων πυνθανομένοις περὶ τῶν αἰτίων καὶ δι᾽ ἐκείνων θεραπεύουσι καὶ λιτανεύουσι τὸ θεῖον. μετὰ δὲ τοὺς ὑλοβίους δευτερεύειν κατὰ τιμὴν τοὺς ἰατρικοὺς καὶ ὡς περὶ τὸν ἄνθρωπον φιλοσόφους, λιτοὺς μὲν μὴ ἀγραύλους δέ, ὀρύζῃ καὶ ἀλφίτοις τρεφομένους, ἃ παρέχειν αὐτοῖς πάντα τὸν αἰτηθέντα καὶ ὑποδεξάμενον ξενίᾳ: δύνασθαι δὲ καὶ πολυγόνους ποιεῖν καὶ ἀρρενογόνους καὶ θηλυγόνους διὰ φαρμακευτικῆς: τὴν δὲ ἰατρείαν διὰ σιτίων τὸ πλέον, οὐ διὰ φαρμάκων ἐπιτελεῖσθαι: τῶν φαρμάκων δὲ μάλιστα εὐδοκιμεῖν τὰ ἐπίχριστα καὶ τὰ καταπλάσματα, τἆλλα δὲ κακουργίας πολὺ μετέχειν. ἀσκεῖν δὲ καὶ τούτους κἀκείνους καρτερίαν τήν τε ἐν πόνοις καὶ τὴν ἐν ταῖς ἐπιμοναῖς, ὥστ᾽ ἐφ᾽ ἑνὸς σχήματος ἀκίνητον διατελέσαι τὴν ἡμέραν ὅλην. ἄλλους δ᾽ εἶναι τοὺς μὲν μαντικοὺς καὶ ἐπῳδοὺς καὶ τῶν περὶ τοὺς κατοιχομένους λόγων καὶ νομίμων ἐμπείρους, ἐπαιτοῦντας1 κατὰ κώμας καὶ πόλεις, τοὺς δὲ χαριεστέρους μὲν τούτων καὶ ἀστειοτέρους, οὐδ᾽ αὐτοὺς δὲ ἀπεχομένους τῶν καθ᾽ ᾄδην θρυλουμένων ὅσα δοκεῖ πρὸς εὐσέβειαν καὶ ὁσιότητα: συμφιλοσοφεῖν δ᾽ ἐνίοις καὶ γυναῖκας ἀπεχομένας καὶ αὐτὰς ἀφροδισίων. ----Strabo. ed. A. Meineke, Geographica. Leipzig: Teubner. 1877.

    [60] Of the Garmanes, the most honourable, he says, are the Hylobii, who live in the forests, and subsist on leaves and wild fruits: they are clothed with garments made of the bark of trees,1 and abstain from commerce with women and from wine. The kings hold communication with them by messengers, concerning the causes of things, and through them worship and supplicate the Divinity. Second in honour to the Hylobii, are the physicians, for they apply philosophy to the study of the nature of man. They are of frugal habits, but do not live in the fields, and subsist upon rice and meal, which every one gives when asked, and receive them hospitably. They are able to cause persons to have a numerous offspring, and to have either male or female children, by means of charms. They cure diseases by diet, rather than by medicinal remedies. Among the latter, the most in repute are unguents and cataplasms. All others they suppose partake greatly of a noxious nature. Both this and the other class of persons practise fortitude, as well in supporting active toil as in enduring suffering, so that they will continue a whole day in the same posture, without motion. There are enchanters and diviners, versed in the rites and customs relative to the dead, who go about villages and towns begging. There are others who are more civilized and better informed than these, who inculcate the vulgar opinions concerning Hades, which, according to their ideas, tend to piety and sanctity. Women study philosophy with some of them, but abstain from sexual intercourse. The Geography of Strabo. Literally translated, with notes, in three volumes. London. George Bell & Sons. 1903.

    (메가스테네스에 따르면) 가르마나스 Γαρμᾶνας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이들은 휠로비오이 ὑλοβίους 라 불리는데, 이들은 숲 속에 살며 채소와 야생과일을 먹고 살며 나무껍질로 몸을 가린다. 여자와 술을 멀리한다. 왕들은 그들을 통해 종교의식이나 신을 섬기는 일에 관련된 일들에 대해 전령을 보내 자문을 구한다. 휠로비오이 ὑλοβίους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 이들은 야트리코이 ἰατρικοὺς  (=치유자) 라 불리는 이들인데, 이들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해 철학을 적용한다. 그들은 검소한 삶을 살지만 들에서 살지는 않고, 보시로서 받은 쌀과 음식을 먹는다. 이들은 부적을 써서 사람들이 많은 자식을 가지게 하거나 혹은 아들/딸을 골라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다. 이들은 의술이 아니라 식이요법으로 질병을 치유한다....[중략].... 이들은 고통을 참는 정신수행을 연마하기 때문에, 하루 온종일 미동도 하지 않고 같은 자세로 있을 수 있다....[후략]  --- 스트라보, {지리} / 번역: 최광민



    예수와 거의 동시대인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은 나체수행자들을 두 번 언급한다.

    And among the Indians there is the class of the gymnosophists, who, in addition to natural philosophy, take great pains in the study of moral science likewise, and thus make their whole existence a sort of lesson in virtue.—Philo Judaeus, Every Good Man is Free, 74

    인도인들 가운데는 '나체철학자'란 계급이 존재하는데, 그들은 자연철학 뿐 아니라 윤리학을 힘써 연마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 번역: 최광민

    Calanus was an Indian by birth, one of the gymnosophists; he, being looked upon as the man who was possessed of the greatest fortitude of all his contemporaries, and that too, not only by his own countrymen, but also by foreigners, which is the rarest of all things, was greatly admired by some kings of hostile countries, because he had combined virtuous actions with praiseworthy language. —Philo Judaeus, {Every Good Man is Free}, 92-93.

    칼라노스는 태생으로는 인도인으로 나체철학자의 한 명이었다. 그는 그의 동시대인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정신을 소유한 자로 간주되었고, 그의 본국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심지어 보기 드물게도 적대국의 왕들에게조차 존경받는 인물이었는데, 이것은 그가 훌륭한 언변과 함께 덕성을 갖춘 행실을 겸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 번역: 최광민

    칼라노스에 대해서는 다음 단락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겠다.



    AD 2세기 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스는 다시 이들 '김노소피스타이 / 나체철학자'와 '사마나이오이'를 구별한다. 이 경우, '나체철학자'는 '인도 철학자 Ἰνδῶν τε οἱ γυμνοσοφισταί'이지만, '사마나이오이'는 '박트리아의 철학자 Σαμαναῖοι Βάκτρων'들이다. 당시 박트리아의 유력 종교가 불교였으므로, 이 경우 '사마나이오이'는 거의 확실히 배타적으로 불교 승려를 뜻한 것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The writings of Clement of Alexandria by Clement, of Alexandria, Saint, ca. 150-ca. 215, https://archive.org/details/writingsofclemen01clem

    1.15.71.3 Φιλοσοφία τοίνυν πολυωφελές τι χρῆμα πάλαι μὲν ἤκμασε παρὰ βαρβάροις κατὰ τὰ ἔθνη διαλάμψασα, ὕστερον δὲ καὶ εἰς Ἕλληνας 1.15.71.4 κατῆλθεν. προέστησαν δ' αὐτῆς Αἰγυπτίων τε οἱ προφῆται καὶ Ἀσσυρίων οἱ Χαλδαῖοι καὶ Γαλατῶν οἱ ∆ρυΐδαι καὶ Σαμαναῖοι Βάκτρων καὶ Κελτῶν οἱ φιλοσοφήσαντες καὶ Περσῶν οἱ Μάγοι (οἳ μαγείᾳ καὶ τοῦ σωτῆρος προεμήνυσαν τὴν γένεσιν, ἀστέρος αὐτοῖς καθηγουμένου εἰς τὴν Ἰουδαίαν ἀφικνούμενοι γῆν) Ἰνδῶν τε οἱ γυμνοσοφισταί, 1.15.71.5 ἄλλοι γε φιλόσοφοι βάρβαροι. 

    Philosophy, then, with all its blessed advantages to man, flourished long ages ago among the barbarians, diffusing its light among the gentiles, and eventually penetrated into Greece. Its hierophants were the prophets among the Egyptians, the Chaldeans among the Assyrians, the Druids among the Galatians, the Sramanas of the Bactrians, and the philosophers of the Celts, the Magi among the Persians who announced beforehand the birth of the Saviour, being led by a star till they arrived in the land of Judaea, and among the Indians the Gymnosophists, and other philosophers of barbarous nations.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a 1.15.71 (ed. Colon. 1688 p. 305, A, B).

    철학은 인간에게 복된 유용함을 가지고 있으며, 오래 전에 이방인들 (바르바로이, 비-그리스계) 사이에 유행하여 그 빛을 이방인들에게 비췄고, 마침내 그리스에도 유입되었다. 이집트의 프로페타이, 앗시리아의 칼데이오,, 갈라티아의 드루다이, 박트리아의 사마나이오이, 켈트족의 철학자들,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예견하고 별을 따라 유대아 땅에 이른  페르시아의 마기들, 인도의 나체철학자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철학자들이 있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스트로마타} 1.15.71 / 번역: 최광민



    또한 그는 '부타 (=붓다) Βούττα'의 계율을 지키는 인도의 나체철학자들에 대해서 언급한다. 여기서 그는 '브라크마나이'와 '사르마나이'를 구분하는데, 이 후자를 박트리아의 '사마나이오이'와 다르게 표기한 것으로 보아, 둘을 달리 보았던 것 같다.

    διττὸν δὲ τούτων τὸ γένος, οἳ μὲν Σαρμᾶναι αὐτῶν, οἳ δὲ Βραχμᾶναι καλούμενοι. καὶ τῶν Σαρμανῶν οἱ ὑλόβιοι προσαγορευόμενοι οὔτε πόλεις οἰκοῦσιν οὔτε στέγας ἔχουσιν, δένδρων δὲ ἀμφιέννυνται φλοιοῖς καὶ ἀκρόδρυα σιτοῦνται καὶ ὕδωρ ταῖς χερσὶ πίνουσιν, οὐ γάμον, οὐ παιδοποιίαν 1.15.71.6 ἴσασιν, ὥσπερ οἱ νῦν Ἐγκρατηταὶ καλούμενοι. εἰσὶ δὲ τῶν Ἰνδῶν οἱ τοῖς Βούττα πειθόμενοι παραγγέλμασιν. ὃν δι' ὑπερβολὴν σεμνότητος 1.15.72.1 ὡς θεὸν τετιμήκασι. Σκύθης δὲ καὶ Ἀνάχαρσις ἦν, καὶ πολλῶν παρ'

    "And of these there are two classes, some of them called Sarmanæ and others Brahmins. And those of the Sarmanæ who are called "Hylobii" neither inhabit cities, nor have roofs over them, but are clothed in the bark of trees, feed on nuts, and drink water in their hands. Like those called Encratites in the present day, they know not marriage nor begetting of children. Some, too, of the Indians obey the precepts of Buddha (Βούττα) whom, on account of his extraordinary sanctity, they have raised to divine honours." --- Stromata (Bk I, Ch XV):

    이 사람들 가운데는 두 계급이 있는데, 하나는 사르마나이라 불리고, 다른 하나는 브라크마나이라 불린다. 사르마나이 중에는 휠로비로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잇는데, 이들은 도시에 살지 않으며 지붕 아래 (=집)살지도 않는다. 그 몸은 나무껍질로 가리고, 견과를 따 먹으며,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신다. 요새 존재하는 엔크라테이타이 (금욕주의자)들처럼, 그들은 결혼하지 않으며 자식도 갖지 않는다. 어떤 인도인들은 '부타'의 계율을 따르며, 부타의 특별한 성스러움을 기려 그를 신의 경지에 높였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스트로마타} 1권 15장 /번역: 최광민



    플루타르코스가 쓴 {알렉산드로스 전기}에서는 알렉산드로스가 인도에서 목격한 인도인 칼라노스의 분신자살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65 1 These philosophers, then, he dismissed with gifts; but to those who were in the highest repute and lived quietly by themselves he sent Onesicritus, asking them to pay him a visit. 2 Now, Onesicritus was a philosopher of the school of Diogenes the Cynic. And he tells us that Calanus very harshly and insolently bade him strip off his tunic and listen naked to what he had to say, otherwise he would not converse with him, not even if he came from Zeus; 3 but he says that Dandamis was gentler, and that after hearing fully about Socrates, Pythagoras, and Diogenes, he remarked that the men appeared to him to have been of good natural parts but to have passed their lives in too much awe of the laws. 4 Others, however, say that the only words uttered by Dandamis were these "Why did Alexander make such a long journey hither?" 5 Calanus, nevertheless, was persuaded by Taxiles to pay a visit to Alexander. His real name was Sphines, but because he greeted those whom he met with "Cale," the Indian word of salutation, the Greeks called him Calanus. 6 It was Calanus, as we are told, who laid before Alexander the famous illustration of government. It was this. He threw down upon the ground a dry and shrivelled hide, and set his foot upon the outer edge of it; the hide was pressed down in one place, but rose up in others. 7 He went all round the hide and showed that this was the result wherever he pressed the edge down, and then at last he stood in the middle of it, and lo! it was all held down firm and still. p4118 The similitude was designed to show that Alexander ought to put most constraint upon the middle of his empire and not wander far away from it.

    .....칼라노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실라 사람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알렉산드로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의 본명은 '스피네스'지만, 그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인도의 인사말로 '칼레'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그를 '칼라노스'라 부르게 된 것이다.....    --- 플루타르코스, {알렉산드로스 전기} / 번역: 최광민

    69...... In Persia, too, Calanus, who had suffered for a little while from intestinal disorder, asked that a funeral pyre might be prepared for him.110 7 To this he came on horseback, and after offering prayers, sprinkling himself, and casting some of his hair upon the pyre, he ascended it, greeting the Macedonians who were present, and exhorting them to make that p419day one of pleasure and revelry with the king, whom, he declared, he should soon see in Babylon. 8 After thus speaking, he lay down and covered his head, nor did he move as the fire approached him, but continued to lie in the same posture as at first, and so sacrificed himself acceptably, as the wise men of his country had done from of old. 9 The same thing was done many years afterwards by another Indian who was in the following of Caesar,111 at Athens; and the "Indian's Tomb" is shown there to this day.   --- Plutarch {The Parallel Lives} published in Vol. VII of the Loeb Classical Library edition, 1919

    ...페르시아에서 칼라노스는 복통을 잠시 앓았다. 그는 장례용 장작더미를 준비해 줄 것을 요청했고, 말 위에 올라 타 기도를 바친 후, 몸에 기름을 뿌리고, 머리카락을 장작더미 위에 흩어 던진 후, 장작더미  위에 올라섰다. 그는 거기 모인 마케도니아인들에게 인사하고 ......[중략].....연설을 마친 후, 그는 누워 머리를 가렸고 불이 타들어가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렇게 그는 모국의 현자들이 늙으면 하는 것처럼 기꺼이 스스로 분신했다. 훗날 똑같은 일이 또 다른 인도인에 의해 일어났는데, 그는 아테네에서 카이사르를 수행하던 인물이었다. 그 인도인의 무덤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 플루타르코스, {알렉산드로스 전기}  / 번역: 최광민

    여기 등장하는 '아테네에서 분신한' 또 다른 '인도인'은 자르마노케가스란 인물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은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하기 1년 전인 AD 13년에, 그리스 철학자인 다마스쿠스의 니콜라오스가 안티오키아에서 만난 한 남 인도인 사절에 대한 기록이다. 이 사절은 남인도 판디야 제국에서 그리스어로 보낸 친서를 가지고 당시 사모스섬에 있던 아우구스투스를 만나러 왔는데, 이때 그를 한 현자와 동행했다고 한다. 이 현자는 이후 아테네에 가서 몸에 기름을 바르고 스스로 분신하여 불사에 이르고자 했다고 전한다. 플루타르코스의 시대에도 남아있던 그의 묘석에는 "ΖΑΡΜΑΝΟΧΗΓΑΣ ΙΝΔΟΣ ΑΠΟ ΒΑΡΓΟΣΗΣ ", 즉, 바르고사 출신의 인도인 자르마노케가스 Ζαρμανοχηγὰς"라 적혀있다고 한다. 이 기록은 여러 고대 역사가들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AD 24년에 사망한 스트라보의 {지리} 14권 1장 4절에는 이렇게 등장한다.

    "From one place in India, and from one king, namely, Pandion, or, according to others, Porus, presents and embassies were sent to Augustus Caesar. With the ambassadors came the Indian Gymnosophist, who committed himself to the flames at Athens, like Calanus, who exhibited the same spectacle in the presence of Alexander."  --- Strabo, {Geographia} xv,i,4

    인도의 어딘가의 왕인 판디온, 혹은 다른 자료에 따르면 포루스가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에게 사절을 보냈다. 사절과 함께 인도의 나체철학자도 같이 왔는데, 그는 아테네에서 스스로 분신했다. 이것은 알렉산드로스 앞에서 칼라노스가 보여준 것과 같은 것이었다 --- 스트라보, {지리} 14권 1장 4절 / 번역: 최광민

    [73] φησὶ γὰρ οὗτος ἐν Ἀντιοχείᾳ τῇ ἐπὶ Δάφνῃ παρατυχεῖν τοῖς Ἰνδῶν πρέσβεσιν ἀφιγμένοις παρὰ Καίσαρα τὸν Σεβαστόν: οὓς ἐκ μὲν τῆς ἐπιστολῆς πλείους δηλοῦσθαι, σωθῆναι δὲ τρεῖς μόνους, οὓς ἰδεῖν φησι, τοὺς δ᾽ ἄλλους ὑπὸ μήκους τῶν ὁδῶν διαφθαρῆναι τὸ πλέον: τὴν δ᾽ ἐπιστολὴν ἑλληνίζειν ἐν διφθέρᾳ γεγραμμένην, δηλοῦσαν ὅτι Πῶρος εἴη ὁ γράψας, ἑξακοσίων δὲ ἄρχων βασιλέων ὅμως περὶ πολλοῦ ποιοῖτο φίλος εἶναι Καίσαρι, καὶ ἕτοιμος εἴη δίοδόν τε παρέχειν ὅπῃ βούλεται καὶ συμπράττειν ὅσα καλῶς ἔχει. ταῦτα μὲν ἔφη λέγειν τὴν ἐπιστολήν, τὰ δὲ κομισθέντα δῶρα προσενεγκεῖν ὀκτὼ οἰκέτας γυμνούς, ἐν περιζώμασι καταπεπασμένους ἀρώμασιν: εἶναι δὲ τὰ δῶρα τόν τε ἑρμᾶν, ἀπὸ τῶν ὤμων ἀφῃρημένον ἐκ νηπίου τοὺς βραχίονας, ὃν καὶ ἡμεῖς εἴδομεν, καὶ ἐχίδνας μεγάλας καὶ ὄφιν πηχῶν δέκα καὶ χελώνην ποταμίαν τρίπηχυν πέρδικά τε μείζω γυπός. συνῆν δέ, ὥς [p. 1003] φησι, καὶ ὁ Ἀθήνησι κατακαύσας ἑαυτόν: ποιεῖν δὲ τοῦτο τοὺς μὲν ἐπὶ κακοπραγίᾳ ζητοῦντας ἀπαλλαγὴν τῶν παρόντων, τοὺς δ᾽ ἐπ᾽ εὐπραγίᾳ, καθάπερ τοῦτον: ἅπαντα γὰρ κατὰ γνώμην πράξαντα μέχρι νῦν ἀπιέναι δεῖν, μή τι τῶν ἀβουλήτων χρονίζοντι συμπέσοι: καὶ δὴ καὶ γελῶντα ἁλέσθαι γυμνὸν λίπ᾽ ἀληλιμμένον ἐν περιζώματι ἐπὶ τὴν πυράν: ἐπιγεγράφθαι δὲ τῷ τάφῳΖαρμανοχηγὰς Ἰνδὸς ἀπὸ Βαργόσης κατὰ τὰ πάτρια Ἰνδῶν ἔθη ἑαυτὸν ἀπαθανατίσας κεῖται.

    [73] "To these accounts may be added that of Nicolaus Damascenus. This writer states that at Antioch, near Daphne, he met with ambassadors from the Indians, who were sent to Augustus Caesar. It appeared from the letter that several persons were mentioned in it, but three only survived, whom he says he saw. The rest had died chiefly in consequence of the length of the journey. The letter was written in Greek upon a skin; the import of it was, that Porus was the writer, that although he was sovereign of six hundred kings, yet that he highly esteemed the friendship of Cæsar; that he was willing to allow him a passage through his country, in whatever part he pleased, and to assist him in any undertaking that was just. Eight naked servants, with girdles round their waists, and fragrant with perfumes, presented the gifts which were brought. The presents were a Hermes (i. e. a man) born without arms, whom I have seen, large snakes, a serpent ten cubits in length, a river tortoise of three cubits in length, and a partridge larger than a vulture. They were accompanied by the person, it is said, who burnt himself to death at Athens. This is the practice with persons in distress, who seek escape from existing calamities, and with others in prosperous circumstances, as was the case with this man. For as everything hitherto had succeeded with him, he thought it necessary to depart, lest some unexpected calamity should happen to him by continuing to live; with a smile, therefore, naked, anointed, and with the girdle round his waist, he leaped upon the pyre. On his tomb was this inscription: ZARMANOCHEGAS, AN INDIAN, A NATIVE OF BARGOSA, HAVING IMMORTALIZED HIMSELF ACCORDING TO THE CUSTOM OF HIS COUNTRY, HERE LIES." --- Strabo  (at xv, i, 73)

    이 기록에 다마스쿠스의 니콜라오스의 기록을 덧붙여 보자. 그는 다프네 근방의 안티오키아에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에게 보내진 인도인 사절들을 만났다고 한다. 편지에는 몇 명이 언급되어 있었는데, 그가 본 세 명만 살아남았고 나머지 인물들은 주로 오랜 여행 동안 죽었다고 한다. 편지는 양피지에 그리스어로 적혀있었다. 편지에 따르면 이것은 포로스는 600 왕국을 복속시켰지만 카이사르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는 카이사르가 자신의 왕국 어디든 와도 좋으며, 옳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나 도와주겠다고 적었다. 허리에 거들을 두른 여덟 명의 벌거벗은 종들과 향과 선물들을 바쳤다. 이 선물들은 팔 없이 태어난 남자, 큰 뱀들과, 10 큐빗 길이의 뱀과, 3 큐빗 크기의 민물거북, 독수리보다 큰 메추라기였다. 이 사절은 나중에 아테네에서 스스로 분신한 인물과 동행했다. 분신은 재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이 취하는 행동이기도 하지만, 혹은 이 사람처럼 성공적인 인생에서 마친 경우에 그리하기도 한다. 그에게 맡겨진 일을 모두 마친 후, 그는 이제 세상을 떠나야할 필요가 있다고 새각했고, 계속 살게되면 어떤 피할 수 없는 재난이 닥치게 되리라 여겼다. 그래서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옷을 벗고 기름을 몸에 바른 후 허리에띠만 두르고, 불 붙인 나무장작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무덤에는 이런 명문이 남아있다:  자르마노케가스 여기 잠들다- 인도인, 바르고사 출생, 본국의 관습에 따라 스스로 불사에 이르다.--- 스트라보, {지리} 15권 1장 73절 / 번역: 최광민

    캇시우스 디오와 플르타르코스와 스트라보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 두 '나체철학자'들은 불교도들인가? 그런데 마치 '등신불'의 소신공양처럼 보이는 이 장면들은 사실은 '소신공양'이 아니다. 이들은 그저 자진하여 몸을 떠나는 방법으로 분신을 택했던 것이다.

    득도 후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자진하여 죽는 것은 초기 불교 및 그와 공존했던 종교에서도 종종 있던 일이었다. 일례로 (테라바다/소승) 불교를 지원했던 아소카 왕의 조부이자 마우리야 제국의 창건자인 찬드라굽타 마우리야는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준 후 자이나교로 귀의하여 구도하다 자진하여 굶어 죽었다. 자이나교에서는 이를 구도의 완성으로 간주한다.




    # 테라퓨타이 (Θεραπευταί)와 엣세네 (Εσσήνοι)는 불교도였을까?

    자, 그럼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역사기록을 통해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을 통해 지중해 권의 서방인들이 서북인도와 접촉/교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교류는 새로 뚫린 교역로를 타고 이뤄진 물자의 교역이었지만, 군사, 상업, 학문, 종교적 구도를 이유로 적지 않은 그리스인들과 인도인들이 서로 왕래했을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이 교역로에서 가장 중요한 종착역이 되는 시리아 북부 안티오키아와 (셀류키드 왕국)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에 인도인들이 방문했을 것도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인도의 철학과 종교를 서방에 소개했을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 정황으로부터 출발해 (많은 속설들이 주장하듯) '기독교는 불교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결론으로 한번에 도약하는 것은 가능할까?

    우선, AD 1세기 초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유대인 철학자 필론 (BC 25 - AD 50)에 대해서 먼저 정리해 보자. 그는 철학자로서 뿐 아니라, AD 40년 경에는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 공동체와 유대인 공동체 간의 분쟁과정에서 당시 로마 황제 칼리귤라를 만나 유대인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필론은 종교적으로는 유대교도였지만 철학적으로는 스토아 철학의 입장을 취하여 두 사상을 융합하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대체로 유대교를 그리스 철학보다 우위에 두었다. 그는 본국의 바리사이파가 취했던 문자주의적 토라 해석법 대신 알레고리적인 해석법을 취했으며, 이런 입장은 후대에 알렉산드리아에 뿌리를 둔 기독교 교부들에게 크고 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수 및 그의 제자들과 거의 동시대인으로, 그의 '로고스 철학'이 한 세대 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기독교의 '로고스-그리스도론'에게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참고: 예수 | 신 vs. 인간 #4: 로고스, 다바르, 멤라

    필론은 유대교적 수도공동체 둘을 언급하는데, '엣사이오이 Essaioi,'와 '테라튜타이 Therapeutae'가 그들이다. 특별히 '테라퓨타이'의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그의 저작인 {묵상의 삶에 관하여 On the Contemplative Life}에 등장한다.



    그가 언급한 '테라퓨타이'는 상좌부 불교의 '테라바다' 불교를 뜻하는 것일까? '테라퓨테스 (남)' 혹은 '테라푸트리데스 (여)'에 관한 필론의 진술 속에서 과연 상좌부 불교인 '테라바다'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한번 직접 읽어보기로 하자.

    해당 전문에서 발췌한 후, 필요한 부분은 한국어로 번역하겠다.


    {The Works of Philo Judaeus: The contemporary of Josephus, translated from the Greek}, https://archive.org/details/worksofphilojuda04phil
    번역: Charles Duke Yonge, London, H. G. Bohn, 1854-1890.

    {About the contemplative life} 번역: Conybeare, F. C. (Frederick Cornwallis), 1856-1924, https://archive.org/details/aboutcontemplati00philuoft

    {ON THE CONTEMPLATIVE LIFE OR SUPPLIANTS}

    .....(2) but the deliberate intention of the philosopher is at once displayed from the appellation given to them; for with strict regard to etymology, they are called therapeutae and therapeutrides, either because they process an art of medicine more excellent than that in general use in cities (for that only heals bodies, but the other heals souls which are under the mastery of terrible and almost incurable diseases, which pleasures and appetites, fears and griefs, and covetousness, and follies, and injustice, and all the rest of the innumerable multitude of other passions and vices, have inflicted upon them), or else because they have been instructed by nature and the sacred laws to serve the living God, who is superior to the good, and more simple than the one, and more ancient than the unit;

    [전략]... 어원을 엄격하게 따져볼 때, 그들은 '테라퓨타이' 혹은 '테라퓨트리데스'라 불리는데, 어원 ('치료')을 엄격하게 따진다면 (1) 그들이 도시인들보다 일반적으로 월등한 의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거나 (도시의 의술이란 그저 육체만을 고칠 분이지만, 다른 이들은 끔찍하고 종종 고칠 수 없는 쾌락, 식탐, 공포, 절망, 음란, 우둔, 불의, 를 비롯한 수많은 다른 욕망들과 악에 사로잡힌 영혼의 병에 사로잡힌 영혼도 고칠 수 있다) 또는 (2) 지고의 선보다 우월하며, 일자보다 단순하며, 단자보다 더 오래된 살아계신 신을 섬기기 위한 본성과 거룩한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지도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 번역: 최광민

    [중략]

    (13) Then, because of their anxious desire for an immortal and blessed existence, thinking that their mortal life has already come to an end, they leave their possessions to their sons or daughters, or perhaps to other relations, giving them up their inheritance with willing cheerfulness; and those who know no relations give their property to their companions or friends, for it followed of necessity that those who have acquired the wealth which sees, as if ready prepared for them, should be willing to surrender that wealth which is blind to those who themselves also are still blind in their minds.

    [전략]....불멸과 복된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진 그들은, 육신의 삶은 이미 끝난 것으로 여기고 모든 소유를 자녀들에게 남기거나 다른 친척들에게 넘겨준 후,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유산을 포기한다. 친척이 없는 이는 자신의 재산을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넘기는데.....[후략]  / 번역: 최광민

    (14) The Greeks celebrate Anaxagoras and Democritus, because they, being smitten with a desire for philosophy, allowed all their estates to be devoured by cattle. I myself admire the men who thus showed themselves superior to the attractions of money; but how much better were those who have not permitted cattle to devour their possessions, but have supplied the necessities of mankind, of their own relations and friends, and have made them rich though they were poor before? For surely that was inconsiderate conduct (that I may avoid saying that any action of men whom Greece has agreed to admire was a piece of insanity); but this is the act of sober men, and one which has been carefully elaborated by exceeding prudence.

    그리스인들은 아낙사고라스와 데모크리토스를 존경하는데, 철학에 대한 열정을 가진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 필자 주) 가축들이 그들의 땅을 다 먹어치우도록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돈에 대한 욕망을 뛰어넘은 정신을 보여준 그들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소 더러 재산을 다 먹어치우게 한 그들보다는, 사람들과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필요한 재산을 제공하여, 자신들이 빈궁해짐을 통해 다른 이들을 부유하게 한 이들 (=테라퓨타이)은 얼마나 더 훌륭한가? ....[후략]/ 번역: 최광민

    [중략]

    (20) but they take up their abode outside of walls, or gardens, or solitary lands, seeking for a desert place, not because of any ill-natured misanthropy to which they have learnt to devote themselves, but because of the associations with people of wholly dissimilar dispositions to which they would otherwise be compelled, and which they know to be unprofitable and mischievous.

    그러나 테라퓨타이들은 성벽과 정원과 한적한 땅을 벗어나 황폐한 사막에서 살 곳을 찾는다. 이는 그들이 삐뚤어진 인간혐오에 매진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만 그들이 억지로 감당해야 하는 삶의 방식과  또 그들에겐 무익하고 악하다고 생각되는 것들과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번역: 최광민

    III. (21) Now this class of persons may be met with in many places, for it was fitting that both Greece and the country of the barbarians should partake of whatever is perfectly good; and there is the greatest number of such men in Egypt, in every one of the districts, or nomi as they are called, and especially around Alexandria; (22) and from all quarters those who are the best of these therapeutae proceed on their pilgrimage to some most suitable place as if it were their country, which is beyond the Mareotic lake, lying in a somewhat level plain a little raised above the rest, being suitable for their purpose by reason of its safety and also of the fine temperature of the air. (23) For the houses built in the fields and the villages which surround it on all sides give it safety; and the admirable temperature of the air proceeds from the continual breezes which come from the lake which falls into the sea, and also from the sea itself in the neighbourhood, the breezes from the sea being light, and those which proceed from the lake which falls into the sea being heavy, the mixture of which produces a most healthy atmosphere. (24) But the houses of these men thus congregated together are very plain, just giving shelter in respect of the two things most important to be provided against, the heat of the sun, and the cold from the open air; and they did not live near to one another as men do in cities, for immediate neighbourhood to others would be a troublesome and unpleasant thing to men who have conceived an admiration for, and have determined to devote themselves to, solitude; and, on the other hand, they did not live very far from one another on account of the fellowship which they desire to cultivate, and because of the desirableness of being able to assist one another if they should be attacked by robbers.

    이 사람들은 여러 장소에서 모여 사는데, 어느 곳이나 완벽한 선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집트에 가장 많이 있으며, 모든 지역과 지방에서 발견되지만 특별히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많다. 모든 곳에서 온 훌륭한 테라퓨타이들은 그들 지역에서 가장 적절한 곳으로 순례를 하는데, 즉 마레오트 호수 너머에 있는 곳의 평지 가운데의 약간 높은 지대로서, 안전하고 적당한 기온을 가진 지역이다. 그 지역을 둘러싼 평지와 촌락은 안전을 제공한다. 바다로 연결되는 호수와 바다로부터 미풍이 계속 불어오는데,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미풍은 상쾌하고 (건조하고), 바다와 연력된 호수로부터 불어오는 미풍은 무거운데 (습한데), 이 두 바람이 섞여서 매우 건강한 대기조건을 만들어 낸다. 함께 모임을 갖는 집은 매우 평범하며 단 두가지, 즉 낮의 해와 밖의 추위 만을 피할 수 있는 장소일 뿐이다. 그들은 도시인들처럼 밀집해 살지 않으며, 이것은 너무 밀집해 사는 방식은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많으며, 또 높은 이상을 품은 사람들에겐 불쾌한 것이며, 또 그들 스스로가 적막 가운에 살기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제를 장려하기 위해 또 너무 떨어져 살지도 않는다. 강도들에게 공격을 받는다든지 하면 서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 번역: 최광민

    (25) And in every house there is a sacred shrine which is called the holy place, and the monastery in which they retire by themselves and perform all the mysteries of a holy life, bringing in nothing, neither meat, nor drink, nor anything else which is indispensable towards supplying the necessities of the body, but studying in that place the laws and the sacred oracles of God enunciated by the holy prophets, and hymns, and psalms, and all kinds of other things by reason of which knowledge and piety are increased and brought to perfection. (26) Therefore they always retain an imperishable recollection of God, so that not even in their dreams is any other object ever presented to their eyes except the beauty of the divine virtues and of the divine powers. Therefore many persons speak in their sleep, divulging and publishing the celebrated doctrines of the sacred philosophy.

    모든 집마다 성소라 불리는 거룩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그들이 생활에서 떠나 머무르며 거룩한 삶의 신비를 수련하러 수도원으로 갈때 그들은 아무런 소유도 지니지 않으며, 육식을 하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으며, 다만 육신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정도만을 소유하며, 율법 (토라)과 거룩한 예언자들을 통해 알려주신 신의 성스런 계시와 (예언서들), 찬양과, 시편과, 또한 지식과 믿음을 키워 완전에 이르도록 도움을 주기위해 이성으로 씌여진 모든 종류의 문서를 연구한다. 그래서 신에 대한 그들의 묵상은 그치는 법이 없으며, 심지어 자는 가운데도 오직 신성한 덕들과 능력에 대해서만 눈에 어른거린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은 자는 중에도 말을 하며 신성한 철학의 가르침을 칭송한다.  / 번역: 최광민

    (27) And they are accustomed to pray twice every day, at morning and at evening; when the sun is rising entreating God that the happiness of the coming day may be real happiness, so that their minds may be filled with heavenly light, and when the sun is setting they pray that their soul, being entirely lightened and relieved of the burden of the outward senses, and of the appropriate object of these outward senses, may be able to trace out truth existing in its own consistory and council chamber.

    테라퓨타이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두번 기도한다. 해가 떠오를 때, 그들은 그 날 누릴 복이 진실한 복이길,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천상의 빛으로 가득하길 신께 간절히 기도한다. 해가 질 때는 그들의 영혼이 온전히 밝은 빛으로 비춤을 받기를, 또 감각적이고 그 감각들만족시키는 모든 외부대상들로부터 벗어나 모임과 회당에서 그들의 영혼이 진리를 탐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 번역: 최광민

    (28) And the interval between morning and evening is by them devoted wholly to meditation on and to practice of virtue, for they take up the sacred scriptures and philosophise concerning them, investigating the allegories of their national philosophy, since they look upon their literal expressions as symbols of some secret meaning of nature, intended to be conveyed in those figurative expressions. (29) They have also writings of ancient men, who having been the founders of one sect or another have left behind them many memorials of the allegorical system of writing and explanation, whom they take as a kind of model, and imitate the general fashion of their sect; so that they do not occupy themselves solely in contemplation, but they likewise compose psalms and hymns to God in every kind of metre and melody imaginable, which they of necessity arrange in more dignified rhythm

    아침과 저녁 사이에 그들은 묵상과 덕을 실천하는데 전념한다. 그들은 거룩한 성서와 성서에 대한 철학들 (=가르침)을 가져다가, 그들 민족의 철학 (= 종교/ 유대교)이 가르치는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연구하는데, 그들은 성서의 문자적 표현들을 자연의 깊은 비밀스런 의미를 담은 상징으로 보고, 비유적인 표현을 전달하록 의도된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이 종단 혹은 다른 종단을 창시한 옛사들이 그들에게 남겨준 다양한 알레고리적인 글쓰기와 표현방식에 관한 문서들을 부유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일종의 표준으로 삼아 그들 종단의 일반적인 규범으로 따른다. 따라서 그들은 순전히 (주어진 문서들을) 숙고할 뿐 만 아니라, 또한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다양한 운율과 곡조와 장엄한 박자에 반드시 맟춰 신께 바치는 시편과 찬양을 쓰기도 한다.  / 번역: 최광민

    (30) Therefore, during six days, each of these individuals, retiring into solitude by himself, philosophises by himself in one of the places called monasteries, never going outside the threshold of the outer court, and indeed never even looking out. But on the seventh day they all come together as if to meet in a sacred assembly, and they sit down in order according to their ages with all becoming gravity, keeping their hands inside their garments, having their right hand between their chest and their dress, and the left hand down by their side, close to their flank;

    그래서 6일 동안, 이 사람들은 각자 홀로 수도원이라 불리는 장소로 가서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고 철학을 수련한다. 그러나 제 7일 (=안식일)에는 함께 거룩한 모임을 갖고, 나이 순으로 함께 엄숙하게 않아 두 손을 의복 안에 넣는데, 오른손은 그의 가슴과 옷 사이에, 왼손은 옆구리에 놓는다.  / 번역: 최광민

    [중략]

    (32) And this common holy place to which they all come together on the seventh day is a twofold circuit, being separated partly into the apartment of the men, and partly into a chamber for the women, for women also, in accordance with the usual fashion there, form a part of the audience, having the same feelings of admiration as the men, and having adopted the same sect with equal deliberation and decision;

    제 7일에 이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데, 남자를 위한 장소와 여자를 위한 방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여자들은 그곳의 일상적인 관례에 따라 청중의 한 부분이 되며, 남자와 같이 존중을 받으며 남자와 같이 신중한 결정에 따라 입회하게 된다. / 번역: 최광민

    [중략]

    (36) And they, looking upon the seventh day as one of perfect holiness and a most complete festival, have thought it worthy of a most especial honour, and on it, after taking due care of their soul, they tend their bodies also, giving them, just as they do to their cattle, a complete rest from their continual labours; (37) and they eat nothing of a costly character, but plain bread and a seasoning of salt, which the more luxurious of them to further season with hyssop; and their drink is water from the spring; for they oppose those feelings which nature has made mistresses of the human race, namely, hunger and thirst, giving them nothing to flatter or humour them, but only such useful things as it is not possible to exist without. On this account they eat only so far as not to be hungry, and they drink just enough to escape from thirst, avoiding all satiety, as an enemy of and a plotter against both soul and body. 

    이들은 제 7일 (=안식일)을 가장 거룩하고 가장 큰 축제를 지낸다. 그들은 이 날을 가장 특별히 기려해 한다고 여기며 그들의 영혼을 보살피기 위해 그들이 가축들에게 하듯 매일의 노동에서 벗어나 완전히 안식한다. 그들은 값비싼 것은 먹지 않으며, 그저 평범한 빵을 소금으로 간하여 먹는다. 히솝의 ㅇ나는 계절이 오기까지는 이것이 그들의 가장 호사스런 음식이다. 그들은 샘에서 나오는 물만 마시는데, 그들은 인간의 불행을 조장하는 허기와 갈증을 ...........그러기에 그들은 그저 허기를 면할 정도만 먹고, 갈증을 해소할 정도만 마살 뿐, 절대 배부르게 먹지 않는데, 이것은 영혼과 몸의 적이자 음모로 여기기 때문이다. / 번역: 최광민

    [중략]

    VIII. (64) But since the entertainments of the greatest celebrity are full of such trifling and folly, bearing conviction in themselves, if any one should think fit not to regard vague opinion and the character which has been commonly handed down concerning them as feasts which have gone off with the most eminent success, I will oppose to them the entertainments of those persons who have devoted their whole life and themselves to the knowledge and contemplation of the affairs of nature in accordance with the most sacred admonitions and precepts of the prophet Moses. (65) In the first place, these men assemble at the end of seven weeks, venerating not only the simple week of seven days, but also its multiplied power, for they know it to be pure and always virgin; and it is a prelude and a kind of forefeast of the greatest feast, which is assigned to the number fifty, the most holy and natural of numbers, being compounded of the power of the right-angled triangle, which is the principle of the origination and condition of the whole. (66) Therefore when they come together clothed in white garments, and joyful with the most exceeding gravity, when some one of the ephemereutae (for that is the appellation which they are accustomed to give to those who are employed in such ministrations), before they sit down to meat standing in order in a row, and raising their eyes and their hands to heaven, the one because they have learnt to fix their attention on what is worthy looking at, and the other because they are free from the reproach of all impure gain, being never polluted under any pretence whatever by any description of criminality which can arise from any means taken to procure advantage, they pray to God that the entertainment may be acceptable, and welcome, and pleasing;  

    (67) and after having offered up these prayers the elders sit down to meat, still observing the order in which they were previously arranged, for they do not look on those as elders who are advanced in years and very ancient, but in some cases they esteem those as very young men, if they have attached themselves to this sect only lately, but those whom they call elders are those who from their earliest infancy have grown up and arrived at maturity in the speculative portion of philosophy, which is the most beautiful and most divine part of it. (68) And the women also share in this feast, the greater part of whom, though old, are virgins in respect of their purity (not indeed through necessity, as some of the priestesses among the Greeks are, who have been compelled to preserve their chastity more than they would have done of their own accord), but out of an admiration for and love of wisdom, with which they are desirous to pass their lives, on account of which they are indifferent to the pleasures of the body, desiring not a mortal but an immortal offspring, which the soul that is attached to God is alone able to produce by itself and from itself, the Father having sown in it rays of light appreciable only by the intellect, by means of which it will be able to perceive the doctrines of wisdom.

    [중략]

    (78) And these explanations of the sacred scriptures are delivered by mystic expressions in allegories, for the whole of the law appears to these men to resemble a living animal, and its express commandments seem to be the body, and the invisible meaning concealed under and lying beneath the plain words resembles the soul, in which the rational soul begins most excellently to contemplate what belongs to itself, as in a mirror, beholding in these very words the exceeding beauty of the sentiments, and unfolding and explaining the symbols, and bringing the secret meaning naked to the light to all who are able by the light of a slight intimation to perceive what is unseen by what is visible. 

    (79) When, therefore, the president appears to have spoken at sufficient length, and to have carried out his intentions adequately, so that his explanation has gone on felicitously and fluently through his own acuteness, and the hearing of the others has been profitable, applause arises from them all as of men rejoicing together at what they have seen and heard; 

    (80) and then some one rising up sings a hymn which has been made in honour of God, either such as he has composed himself, or some ancient one of some old poet, for they have left behind them many poems and songs in trimetre iambics, and in psalms of thanksgiving and in hymns, and songs at the time of libation, and at the altar, and in regular order, and in choruses, admirably measured out in various and well diversified strophes. And after him then others also arise in their ranks, in becoming order, while every one else listens in decent silence, except when it is proper for them to take up the burden of the song, and to join in at the end; for then they all, both men and women, join in the hymn. 

    (81) And when each individual has finished his psalm, then the young men bring in the table which was mentioned a little while ago, on which was placed that most holy food, the leavened bread, with a seasoning of salt, with which hyssop is mingled, out of reverence for the sacred table, which lies thus in the holy outer temple; for on this table are placed loaves and salt without seasoning, and the bread is unleavened, and the salt unmixed with anything else, (82) for it was becoming that the simplest and purest things should be allotted to the most excellent portion of the priests, as a reward for their ministrations, and that the others should admire similar things, but should abstain from the loaves, in order that those who are the more excellent person may have the precedence.

    각자가 시편을 마친 후에, 젊은이들이 조금 전에 언급했던 상을 가져와 가장 성스런 음식을 놓는데, 이것은 소금으로 간을 하고 히솝 (우슬초?)을 섞어 누룩을 넣어 만든 빵이다. 이것들은 성스런 식탁에 대한......성소 외부에 차려진다. 이 식탁에는 간을 하지 않은 빵과 소금 만이 차려지고, 빵에는 누룩을 넣지 않으며, 소금도 다른 것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이다. 이 가장 단순하고 정결한 음식은 사제들을 위한 최고의 몫이며, 그들의 사역에 대한 댓가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빵을 먹지 않는데, 이는 자신들보다 상급자가 먼저 빵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 번역: 최광민


    XI. (83) And after the feast they celebrate the sacred festival during the whole night; and this nocturnal festival is celebrated in the following manner: they all stand up together, and in the middle of the entertainment two choruses are formed at first, the one of men and the other of women, and for each chorus there is a leader and chief selected, who is the most honourable and most excellent of the band. (84) Then they sing hymns which have been composed in honour of God in many metres and tunes, at one time all singing together, and at another moving their hands and dancing in corresponding harmony, and uttering in an inspired manner songs of thanksgiving, and at another time regular odes, and performing all necessary strophes and antistrophes. 

    이 만찬에 이어, 그들은 밤 새워 이어지는 거룩한 축제를 치른다. 철야로 치뤄지는 이 축제는 다음의 방식에 따른다: 회중들은 모두 일어서며, 축제 중에는 두 합창단이 흥을 돋우는데, 남자와 여자로 각각 구성된 합창단이다. 합창단 각각의 지휘자이자 대표가 선임되는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고 가장 훌륭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여러가지 박자와 곡조로 신을 찬양하기 위해 작곡된 찬송을 부르는데, 어떤 경우에는 모두 함께 제창으로 부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곡조에 맞춰 손을 흔들고 춤추며 찬양하기도 한다, .....영감받은 바에 따라 감사의 찬양.....또 어떤 때는 정규적인 찬송을 필요에 따라 1연과 이어지는 2연을 노래하기도 한다.  / 번역: 최광민

    (85) Then, when each chorus of the men and each chorus of the women has feasted separately by itself, like persons in the bacchanalian revels, drinking the pure wine of the love of God, they join together, and the two become one chorus, an imitation of that one which, in old time, was established by the Red Sea, on account of the wondrous works which were displayed there; (86) for, by the commandment of God, the sea became to one party the cause of safety, and to the other that of utter destruction; for it being burst asunder, and dragged back by a violent reflux, and being built up on each side as if there were a solid wall, the space in the midst was widened, and cut into a level and dry road, along which the people passed over to the opposite land, being conducted onwards to higher ground; then, when the sea returned and ran back to its former channel, and was poured out from both sides, on what had just before been dry ground, those of the enemy who pursued were overwhelmed and perished.

    다음으로 남성 및 여성 합창단은 각각 나뉘어 축제를 즐기는데, 신의 사랑을 담은 정결한 포도주를 마시며 바카날리아 축제에서처럼, , 다시 모여 한 합창단을 구성하는데 이것은 예전에 (이집트를 탈출할때, 필자 주) 홍해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 합창단을 구성해서, 그때의 기적을 설명하는, 신의 명령에 따라, 바다는 한 편을 위해서는 안전을, 다른 쪽 (이집트인)에 대해서는 파괴의......   / 번역: 최광민

    (87) When the Israelites saw and experienced this great miracle, which was an event beyond all description, beyond all imagination, and beyond all hope, both men and women together, under the influence of divine inspiration, becoming all one chorus, sang hymns of thanksgiving to God the Saviour, Moses the prophet leading the men, and Miriam the prophetess leading the women. (88) Now the chorus of male and female worshippers being formed, as far as possible on this model, makes a most humorous concert, and a truly musical symphony, the shrill voices of the women mingling with the deep-toned voices of the men. The ideas were beautiful, the expressions beautiful, and the chorus-singers were beautiful; and the end of ideas, and expressions, and chorussingers, was piety;

    이스라엘인들이 이 표현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고 모든 바램을 뛰어넘었던 이 위대한 기적을 보고 경험했을 때, 남녀 누구나 이 신성한 계시 앞에 압도되어 한 목소리로 구원자이신 신께 감사의 찬양을 부르게 되었으며, 이때 예언자 모세는 남자들을, 여예언자였던 미리암은 여자들을 이끌었다. 이제 남녀 예배자들의 합창은 이 방식으로 낼 수 있는 최고의 형태로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와 남성의 낮은 음조가 어우러진 밝고도 진정한 최고의 합주가 된다. 이런 생각도 이름다우며, 그 표현방식도 아름다우며, 또한 합장단 역시 아름답다. 또한 이 아이디어나 그 표현방식이나 합창단이 내는 결과는 신심을 자아낸다.  / 번역: 최광민

    (89) therefore, being intoxicated all night till the morning with this beautiful intoxication, without feeling their heads heavy or closing their eyes for sleep, but being even more awake than when they came to the feast, as to their eyes and their whole bodies, and standing there till morning, when they saw the sun rising they raised their hands to heaven, imploring tranquillity and truth, and acuteness of understanding. And after their prayers they each retired to their own separate abodes, with the intention of again practising the usual philosophy to which they had been wont to devote themselves. (90) This then is what I have to say of those who are called therapeutae, who have devoted themselves to the contemplation of nature, and who have lived in it and in the soul alone, being citizens of heaven and of the world, and very acceptable to the Father and Creator of the universe because of their virtue, which has procured them his love as their most appropriate reward, which far surpasses all the gifts of fortune, and conducts them to the very summit and perfection of happiness.

    이후 이 아름다운 음악에 심취해 밤을 지새운 후에도 머리가 무겁거나 졸림없이 오히려 축제가 시작할 때보다 더 맑게 깨인 눈과 몸으로, 그들은 아침까지 선 채로 있다가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두 손을 하늘로 들어 마음의 평정과 진리와 더 또렷한 깨달음을 얻게되길 (신께) 간구한다. 기도가 마치면,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처소로 돌아가서 평소와 같이 그들이 매진하는 철학을 훈련하고자 한다. 이것들이 바로 내가 본성을 탐구하는데 매진하며, 오직 그 가운데서 영혼에 몰두해 사는 테라퓨타이라 불리는 이들에 대해 하고자 하는 말이다. 이들은 천국의 시민이자 세계의 시민이며, 또 그들이 가장 훌륭한 보상이라고 여기는 신의 사랑을얻게 해주며, 또한 어떤 물질적 선물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며, 그들이 최고이자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덕성으로 인해  아버지이지 우주의 창조자가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ㅡ/ 번역: 최광민



    AD 1세기 초반에 지중해 일대에 퍼져 있고, 특별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가 주요거점지였던 이 수도공동체에 대한 필론의 이 기록 가운데 도대체 어떤 부분이 불교에 상응할까? 이들 가운데 남자인 '테라퓨테스 (남)'는 불교의 비쿠 (=비구 भिक्षु) 이고 여성인 '테라푸트리데스 (여)'는 불교의 '비쿠니 (=비구니 भिक्षुणी) 라도 된다는 말일까? 그리고 이들 공동체는 불교의 상가 (팔리어: सङ्घ / 僧伽 / 승가) 였을까?

    비록 필론이 이 단체의 기원을 정확히 특정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이들이 모세오경과 예언서와 시편 (즉, 유대교 정경군) 및 수비학적이고 알레고리적인 철학을 담은 내부문건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적었다. 아울러 이들은 제 7일 (안식일)에는 모임을 갖고 토론과 축제를 가졌다고 전한다.

    불교도들이 모세오경/율법과 히브리 예언서를 보유했을까? 7일의 일주일 체계를 지켰을까? 역사가들은 아마도 이들이 수도공동체를 지향하던 신비주의적/금욕주의적 유대교 분파이며, 아마도 보다 동부에 분포한 엣세네와 연관이 있다고 여기고들 있다. 이들이 독신에 무소유의 공동체 삶을 하고 채식을 하고 (평상시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들을 특별히 '불교'와 연관지을 필요는 없다. 이미 지중해의 많은 철학/종교 단체들 (가령,피타고라스 학파) 역시 그런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AD 4세기 초반의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에 이들 테라퓨타이를 초기 기독교 수도공동체로 본다.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개연성이 낮다고 여겨진다.

    유대아의 촌락과 광야에서 살았던 엣세네파는 또 어떤가? 필론의 기록을 읽어보자.

    (11.1) But our lawgiver trained an innumerable body of his pupils to partake in those things, who are called Essenes, being, as I imagine, honoured with this appellation because of their exceeding holiness. And they dwell in many cities of Judaea, and in many villages, and in great and populous communities. (11.2) And this sect of them is not an hereditary of family connexion; for family ties are not spoken of with reference to acts voluntarily performed; but it is adopted because of their admiration for virtue and love of gentleness and humanity.  

    그러나 우리에게 율법은 준 이 (= 모세)는 그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자들의 이것들을 따르도록 훈련시켰는데, 그들은 엣세네라 불리며 내 생각에는 그들의 성스런 삶을 칭송하고자 그리 불리게 된 듯 하다. 그들은 유대아의 많은 지역과 촌락과 크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 살고 있다.  이 종파는 혈연으로 묶여있지 많다. 가족관계는 가입하는데 영향이 없으며, 온유함과 인간성의 미덕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입양된다.

    (11.3) At all events, there are no children among the Essenes, no, nor any youths or persons only just entering upon manhood; since the dispositions of all such persons are unstable and liable to change, from the imperfections incident to their age, but they are all full-grown men, and even already declining towards old age, such as are no longer carried away by the impetuosity of their bodily passions, and are not under the influence of the appetites, but such as enjoy a genuine freedom, the only true and real liberty.

    에세네파 가운데는 아이나 청소년이 없고, 오직 성인만 입회할 수 있다. 미성년들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중략]

    (11.11) And those who live together and eat at the same table are day after day contented with the same things, being lovers of frugality and moderation, and averse to all sumptuousness and extravagance as a disease of both mind and body. 

    ...함께 살고 한 식탁에서 매일 함께 먹는 이들은 동일한 것에 늘 만족하여 검소와 적당함을 사랑하며 모든 탐닉과 과장을 정신과 몸의 질병으로 간주하여 멀리한다.  
    [중략]

    (11.14) Again, perceiving with more than ordinary acuteness and accuracy, what is alone or at least above all other things calculated to dissolve such associations, they repudiate marriage; and at the same time they practise continence in an eminent degree; for no one of the Essenes ever marries a wife, because woman is a selfish creature and one addicted to jealousy in an immoderate degree, and terribly calculated to agitate and overturn the natural inclinations of a man, and to mislead him by her continual tricks; (11.15) for as she is always studying deceitful speeches and all other kinds of hypocrisy, like an actress on the stage, when she is alluring the eyes and ears of her husband, she proceeds to cajole his predominant mind after the servants have been deceived. (11.16) And again, if there are children she becomes full of pride and all kinds of license in her speech, and all the obscure sayings which she previously meditated in irony in a disguised manner she now begins to utter with audacious confidence; and becoming utterly shameless she proceeds to acts of violence, and does numbers of actions of which every one is hostile to such associations; (11.17) for the man who is bound under the influence of the charms of a woman, or of children, by the necessary ties of nature, being overwhelmed by the impulses of affection, is no longer the same person towards others, but is entirely changed, having, without being aware of it, become a slave instead of a free man. (11.18) This now is the enviable system of life of these Essenes, so that not only private individuals but even mighty kings, admiring the men, venerate their sect, and increase their dignity and majesty in a still higher degree by their approbation and by the honours which they confer on them. --- APOLOGY FOR THE JEWS (Excerp from Eusebius, P.E. 8.5.11 ff.)

    .....그들은 결혼을 거부한다......엣세네파는 누구도 아내를 둔 적이 없는데, 이는 여자란 이기적인 존재로서 질투에 지나치게 끌리는데다......무대의 배우들 처럼 온갖 위선적인 거짓말을 고안해 내고.....그래서 여자나 자식이란 마법에 사로잡히게 되는 남자는  그 본성 상 어쩔 수 없이 사랑의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고, 따라서 이타적인 존재가 아닌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 이 사실을 깨닫지 않는 한 완전히 변하여 자유인이 아닌 노예가 되어 버린다........  ---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유대인을 위한 변호} / 번역: 최광민

    여기서 '불교도'의 모습이 보이는가? 아니면 어떤 종교에서든 발견되는 수도공동체의 일반적인 생활패턴이 보이는가?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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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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