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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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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예수 vs 붓다 #11: 예수의 호칭 "왕들의 왕"은 고타마 붓다의 호칭을 표절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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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草人 최광민 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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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예수 vs 붓다 #11: 예수의 호칭 "왕들의 왕 King of Kings"은 고타마 붓다의 호칭을 표절한 것일까? 

순서

  1. 상관관계 vs 인과관계
  2. AD 1세기: {신약성서}, 왕들의 왕, 주님들의 주님
  3. BC 5/6세기: 고타마 붓다, 왕들의 왕, 전륜왕
  4. BC 5/6세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왕들의 왕
  5. BC 12-7세기: {신명기}와 {시편}: 신들의 신, 주님들의 주님
  6. BC 12-8세기: 앗시리아/바빌로니아: 왕들의 왕, 주님들의 주님
    1. BC 15-14세기: {리그베다} 바루나: 왕들의 왕
    2. 맺음말

    정교회 이콘 (1600년 경)
    Иисус Христос Царь Царей и Великий Архиерей
    예수 그리스도, 왕 (짜르) 중의 왕 (짜르)이자 대사제


    # 방명록 방문자 질문

    sookyung122.202.***.1602024-10-08 00:29안녕하세요. 제가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지 얼마안되었는데, 최근에 도서관에서 민희식씨가 집필한 성서의 뿌리와 성서에서 삭제된 성모마리아의 숨겨진 이야기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훑어보는데 제가 믿기시작한 것과 달라 충격을 받아 제대로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질문  #4. 왕중왕 칭호를 신약에서 모방을 하여 예수를 가리킨다고 하는데,모방도 제2창조라 언급하며 부끄러워할필요없다면서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는 합니다.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 답변: 최광민 

    민희식씨의 저작 가운데 기독교와 관련된 책들이 사용한 두가지 기본 전제들은 (1) 예수는 18-30세 사이에 서북인도로 와서 (대승)불교를 배웠고 (2) 따라서 {신약성서}는 대승경전 {법화경}을 비롯한 여러 불경들과 불교전설들의 표절이란 점들 입니다. 두 가지 전제에 오류가 있으면 모두 무너지는 구조랄까요. 

    (1) 예수가 청년시절 서북인도에서 (대승)불교와 {법화경}등 불경을 공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2)  {성서}가 {불경}에서 표절되었다는 민희식의 주장에 대해서는 아래 글들을 정독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문의하신 질문 #4에 대한 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 상관관계 vs 인과관계 

    정규학문의 엄정한 교차검증법을 잘 훈련받지 못한 재야의 (비)전문가들은 (1) "post hoc ergo propter hoc"와 (2) "cum hoc ergo propter hoc" 란 두 종류의 논리오류를 종종 저지른다. 여기서  (1) 'post hoc ergo propter hoc'은 '시간적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오류이고, (2) "cum hoc ergo propter hoc"란 "연관관계를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오류를 뜻한다.

    가령, A와 B란 두 문건이 있는데, A란 문건 (혹은 현재 확보된 고고학적/고문헌적 자료)의 출현이 B란 문건 (혹은, 현재 확보던 고고학적/고문헌적 자료) 보다 앞서는 경우, A를 B의 "원전" 혹은 "원형"으로 쉽게 단정짓는 식으로, 심한 경우에는, B가 A를 '표절했다'는 주장으로까지 도약한다. 

    이런 논증방식을 취하게 되면, A와 B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데만 집중하다가 A와 B사이의 차이점은 쉽게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B가 A에서 차용/표절된 것이라면 당연히 B는 A와 같거나 아주 흡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A와 B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꼭 두 문서 간의 직접적인 차용이나 표절을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문건이 공통전승에서 분지되었을 수도 있고, 혹은 두개의 문화권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한 모티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절/차용으로 바로 도약하기 전에 필요한 교차검증은 두 문건의 작성/전승시기에 대한 연대기적 비교, 두 문건이 기원한 두 문명권의 역사적 상호관계 등의 분석에 먼저 제대로 마쳐야 한다.  

    그런데 민희식씨의 저술방식은 대개 이런 교차검증을 가볍게 여기고 유사성에 지나치게 몰입해 바로 차용/표절이란 결론으로 도약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럼 먼저 "왕중왕" 혹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란 호칭들이 각 문명권에서 사용된 방식부터 예수와 기독교가 등장한 AD 1세기부터 시간의 역순으로 추적해 보겠다.








    # AD 1세기: {신약성서}, 왕들의 왕, 주님들의 주님
     
    기독교의 네번째 복음서인 {요한 복음서}에 보면 "유대인의 왕"이란 죄목으로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기소된 예수는 로마총독 필라투스 (빌라도) 의 법정에서 스스로 자신이 "왕"이라고 밝혔다.

    읽어보자.

    빌라도가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내서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오?" 

    빌라도가 말하였다.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오?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겨주었소.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빌라도가 예수께 "진리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 한국어 공동번역, {요한의 복음서} 18장

    기독교가 시작된 직후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바울이 동역자 티모테오 (디모데)에게 보낸 첫번째 서신에서는 기독교의 성부를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란 호칭으로 부른다. 이 문서는 AD 50-65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6:13 παραγγέλλω σοι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τοῦ ζωοποιοῦντος τὰ πάντα καὶ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τοῦ μαρτυρήσαντος ἐπὶ Ποντίου Πιλάτου τὴν καλὴν ὁμολογίαν 6:14 τηρῆσαί σε τὴν ἐντολὴν ἄσπιλον ἀνεπίληπτον μέχρι τῆς ἐπιφανείας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6:15 ἣν καιροῖς ἰδίοις δείξει ὁ μακάριος καὶ μόνος δυνάστης ὁ βασιλεὺς τῶν βασιλευόντων καὶ κύριος τῶν κυριευόντων 6:16 ὁ μόνος ἔχων ἀθανασίαν φῶς οἰκῶν ἀπρόσιτον ὃν εἶδεν οὐδεὶς ἀνθρώπων οὐδὲ ἰδεῖν δύναται· ᾧ τιμὴ καὶ κράτος αἰώνιον ἀμήν   --- 그리스어 Textus Receptus

    praecipio tibi coram Deo qui vivificat omnia et Christo Iesu qui testimonium reddidit sub Pontio Pilato bonam confessionem ut serves mandatum sine macula inreprehensibile usque in adventum Domini nostri Iesu Christi quem suis temporibus ostendet beatus et solus potens rex regum et Dominus dominantium qui solus habet inmortalitatem lucem habitans inaccessibilem quem vidit nullus hominum sed nec videre potest cui honor et imperium sempiternum amen -- 라틴어 Vulgata

    I give thee charge in the sight of God, who quickeneth all things, and before Christ Jesus, who before Pontius Pilate witnessed a good confession; That thou keep this commandment without spot, unrebukeable, until the appearing of our Lord Jesus Christ: Which in his times he shall shew, who is the blessed and only Potentate,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Who only hath immortality, dwelling in the light which no man can approach unto; whom no man hath seen, nor can see: to whom be honour and power everlasting. Amen.  --- 영어 NET

    나는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에게 훌륭하게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대에게 명령합니다. 그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그 계명을 지켜서,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는 사람이 되십시오. 정한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주님의 나타나심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으실 분이시요, 오직 한 분이신 통치자이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죽지 않으시고,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속에 계시고, 사람으로서는 본 일도 없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존귀와 영원한 주권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 한국어 새번역, {디모데전서} 6장 13-16절

    문맥상 여기 등장하는 "만왕의 왕 ὁ βασιλεὺς τῶν βασιλευόντων" "만주의 주 κύριος τῶν κυριευόντων"가 지칭하는 존재는 "신/성부"다. 제 15절에 등장하는 (1) 유일하게 찬양받고 (2) 유일한 통치자이며 (3)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며 (4) 불멸이자 인간에게 불가해한 이 속성들은 성부에게 귀속된다. {신약성서}에서 예수/성자는 인간에게 불가해한 신/성부를 인간에게 알려줄 수 있는 존재는 예수/성자 뿐이다. {복음서}에서의 예수의 설명에 따르면 성자는 성부에게서 왔고 또 성자는 성부의 안에 성부는 성자 안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과 티모테오가 공동저자/발신자로 적시되어 당시 그리스 마케도니아 필리피의 기독교들에게 보내진 서신 ({빌립보서})을 읽어보면, 바울과 티모테오가 성부의 호칭으로 사용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성자인 예수에게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즉,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예수의 자발적 순종의 결과 성부는 만물을 성자에게도 복종시켰다는 내용이다. 전통적으로 여겨진 이 서신의 작성시점은  AD 50-52년이다. 

    읽어보자.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 한국어 새번역, {빌립보서 2:5-12}

    AD 2세기에 초/중/말에 활동한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유스티노스, 무라토리 정경목록 작성자, (예수의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카포스의 제자였던) 리그두눔 주교 이레네우스, 사르디스 주교 멜리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저자 "요한"를 예수의 사도 요한으로 간주했던 {요한계시록} 역시 예수에게 "만주의 주 κύριος κυρίων, 만왕의 왕 βασιλεὺς βασιλέων"을 적용시킨다. 여기서 이 호칭은 보다 종말론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짐승과 연맹한 세상의 왕들"을 신/성부와 예수/성자에게 반역하다 멸망당하는 자들로 묘사되기 때문. 전통적으로 여겨진 이 문서의 작성시점은 AD 95년 경이다. 

    그 맥락을 한번 읽어보자.

    대접 일곱 개를 가진 그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와서, 나에게 "이리로 오너라. 큰 바다 물 위에 앉은 큰 창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 주겠다. 세상의 왕들이 그 여자와 더불어 음행을 하였고, 땅에 사는 사람들이 그 여자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성령으로 나를 휩싸서, 빈 들로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한 여자가 빨간 짐승을 타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였고, 머리 일곱과 뿔 열 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자주색과 빨간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는 금잔을 들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가증한 것들과 자기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마에는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큰 바빌론'이라는 비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보고 크게 놀라니, 그 때에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왜 놀라느냐? 나는 이 여자의 비밀과, 이 여자를 태우고 다니는 머리 일곱과 뿔 열이 달린 그 짐승의 비밀을, 너에게 말하여 주겠다.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으며, 장차 아비소스에서 올라와서, 나중에는 멸망하여 버릴 자다. 그리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창세 때로부터 생명책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것은, 그 짐승이 전에는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다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혜를 가진 마음이 필요하다. 머리 일곱은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산이요, 또한
    일곱 왕이다. 그 가운데서 다섯은 이미 망하고, 하나는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이 나타날지라도, 잠깐밖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또 전에 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은 여덟 번째인데, 그것은 그 일곱 가운데 속한 것으로서, 마침내 멸망하여 버릴 자다. 네가 본 열 뿔은 열 왕이다. 그들은 아직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였지만, 그 짐승과 함께 한동안 왕권을 차지할 것이다.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그들의 능력과 권세를 그 짐승에게 내줄 것이다.

    17:14 οὗτοι μετὰ τοῦ ἀρνίου πολεμήσουσιν καὶ τὸ ἀρνίον νικήσει αὐτούς ὅτι
    κύριος κυρίων ἐστὶν καὶ βασιλεὺς βασιλέων καὶ οἱ μετ᾽ αὐτοῦ κλητοὶ καὶ ἐκλεκτοὶ καὶ πιστοί  --- 그리스어 Textus Receptus

    hii cum agno pugnabunt et agnus vincet illos quoniam Dominus dominorum est et rex regum et qui cum illo sunt vocati et electi et fideles -- 라틴어 Vulgata

    They will make war with the Lamb, but the Lamb will conquer them, because he is Lord of lords and King of kings, and those accompanying the Lamb are the called, chosen, and faithful." -- 영어 NET

    그들이 어린 양에게 싸움을 걸 터인데, 어린 양이 그들을 이길 것이다. 그것은, 어린 양이 만주의 주만왕의 왕이기 때문이며,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신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본 물 곧 그 창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다. 그리고 네가 본 그 열 뿔과 그 짐승은, 그 창녀를 미워해서 비참하게 만들고, 벌거벗은 꼴로 만들 것이다. 그들은 그 창녀의 살을 삼키고, 그 여자를 불에 태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이루실 때까지, 당신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셔서, 그들이 한 마음이 되어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셨기 때문이다. 네가 본 그 여자는, 세상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가진 큰 도시를 가리킨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계시록} 17장

    이것이 기독교 {신약성서}에 사용된 "왕중왕"의 문맥이다.


    혹시 예수나 초기 기독교도들은 이 용어나 개념을 {불경}에서 배껴와 표절했을까?  민희식의 주장처럼 예수가 청년기 12년을 서북인도에서 대승불교와 {불경}들을 연구했다면, 어쩌면 그럴지도?

    그럼 한번 타임머신을 타고 예수의 출현보다 약 5세기 전, 그것도 (서북인도가 아닌) 동북인도에서 주로 활동한 불교의 교조 고타마 싯달타 (이하, 고타마 붓다)를 만나보자.







    # BC 5/6세기: 고타마 붓다, 왕들의 왕, 전륜왕

    고타마 싯달타, 즉 고타마 붓다의 생몰연도는 불분명한 점이 있어서, 주류 학계의 추정과 불교 측의 추정이 다르고, 불교 측의 추정도 북방/대승불교와 남방/상좌부 불교의 설명이 다르다. 남방 상좌부 불교에서는 BC 624-544년, 대승불교에서는 BC 1026-949년 으로 여긴다. 주류 학계의 설명도 약간 달라서 BC 560-460 설과 BC 480-380년 설이 있다. 이 글에서는 현대에 주류에서 수용되는 BC 560-460을 고타마 붓다의 생몰연대로 간주하겠다.

    상좌부 불교에서 전승된 팔리어 {니카야} (대승불교의 {아함경}에 해당)에서 고타마 붓다와 '왕중왕'이란 표현이 연결되는 일화를 인용해 보겠다. 참고로 인도 북동부 마가다 지역 출신인 고타마 붓다의 모어는 민중언어 프라크리트어 계열의 '마가다어'였고, 또 팔리어를 마가다어어로 부르는 상좌부측 자료가 있고, 고타마 붓다 역시 설법할 때 지식인층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평민들의 언어로 가르쳤기 때문에, 상좌부 측에서는 대승불교 경전에 사용된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상좌부 불교가 전승한 팔리어 경전들이 고타마 붓다의 원래 가르침과 표현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중아함경}에 해당하는 상좌부불교의 {마지마 니카야 MAJJHIMA NIKâYA}의  92번째 내용은 브라만 셀라와 고타마 붓다의 대화를 담은 {셀라수타 Selasutta}다. 


    을 사용했다. 팔리어 독음, 영어/중국어 번역 순서로 인용한 후, 영어/한국어 중역은 내가 했다.

    그럼 한번 내용을 읽어보자.

    [브라만 셀라]

    Rājā arahasi bhavituṁ,
    cakkavattī rathesabho;
    Cāturanto vijitāvī,
    jambusaṇḍassa issaro. 

    Khattiyā bhogirājāno,
    anuyantā bhavantu te; 
    Rājābhirājā manujindo,
    rajjaṁ kārehi gotama”.

    You’re fit to be a king,
    a wheel-turning monarch, chief of charioteers,
    victorious in the four quarters,
    lord of the Black Plum Tree Land.

    Aristocrats, nobles, and kings
    ought follow your rule.
    Gotama, may you reign 
    as king of kings, lord of men!”

    你值得成為國王,
    轉輪者車乘之主,
    四方天下的征服者,
    閻浮森林的主宰者。

    諸多剎帝利國王,
    令他們跟隨你,
    王中之王人們的王
    喬達摩!請你作身為國王的事。」 -- 中部 92經 婆羅門品 謝勒經

    당신은 전차부대를 이끄는
    전륜왕 (cakkavattī 轉輪王)으로 
    사방 군주들의 주군으로서
    잠부디파 땅의 정복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존귀하고 부유한 군주들이 거느리고
    왕들의 왕 (Rājābhirājā), 만인의 왕 (manujindo)로서
    고타마여, 통치하십시오

    [고타마 붓다의 답변]

    “Rājāhamasmi selāti,
    dhammarājā anuttaro;
    Dhammena cakkaṁ vattemi,
    cakkaṁ appaṭivattiyaṁ”.

    “I am a king, Sela,
    the supreme king of the teaching.
    By the teaching I roll forth the wheel which cannot be rolled back

    謝勒!我是王,
    無上的法王
    我使法輪轉起,
    不能被反轉之輪

    셀라여, 나는 왕이다.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법왕 (法王)이다.
    나는 법으로 바퀴를 굴리니
    거꾸로 돌릴 수 없는 바퀴다.

    정리하자면, 고타마 붓다를 찾아온 브라만 셀라가 고마타 붓다를 "왕 (라자)", "전륜왕 (차카바티)", "왕중왕 (라잡히라자)", "만인의 왕 (마누진도)"등으로 높이며 현실군주로서 지배하라고 청하자, 고타마 붓다는 셀라의 말을 물리치며 자신이 진정 '왕 (라자)'이긴 하지만 다르마 (법)을 가르치는 최고의 "법왕 (담마라자)"이라고 답변하는 장면이다. 








    각설하고,

    고타마 붓다 혹은 그의 제자들은 셀라가 바친 호칭 가운데 "왕중왕"이란 표현보다는 "전륜왕"을 더 선호했던 듯 싶다.  "차카바티 cakka-vatti" 가 전차바퀴/전륜(cakka)-왕(vatti)을 말한다. 다른 장에서는 "라자 차카바티 raja chkkavatti"의 형태로 등장하기도 한다.  단, 붓다는 '전차바퀴를 굴리는' 전륜왕이 아니라, '법 (다르마)'를 굴리는 법륜왕이다.

    이 장면을 대승불교의 {장아함경}에 해당하는 상좌부불교의 {디가-니카야 Dīghanikāya}의 16번째인{마하바가 Mahāvagga}의{마하파리니바나-수타 (대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을 한번 읽어보자. 고타마 붓다의 열반과 그 전후사정을 기록하고 있다.


    아난은 스승 고타마 붓다의 열반 시 장례를 어떻게 치뤄야 할지를 놓고 고타마 붓다와 대화 나눈다. 이때  붓다는 자신의 장례는 전륜왕의 장례와 같이 치르라고 아난다에게 지시한다.

    읽어보자.

    “Kathaṁ pana, bhante,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n”ti?

    “Yathā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ṁ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n”ti.

    “Kathaṁ pana, bhante,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ī”ti?

    “Rañño, ānanda,
    cakkavattissa sarīraṁ ahatena vatthena veṭhenti, ahatena vatthena veṭhetvā vihatena kappāsena veṭhenti, vihatena kappāsena veṭhetvā ahatena vatthena veṭhenti. Etenupāyena pañcahi yugasatehi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ṁ veṭhetvā āyasāya teladoṇiyā pakkhipitvā aññissā āyasāya doṇiyā paṭikujjitvā sabbagandhānaṁ citakaṁ karitv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ṁ jhāpenti. Cātumahāpathe rañño cakkavattissa thūpaṁ karonti. Evaṁ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Yathā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ṁ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ṁ. Cātumahāpathe tathāgatassa thūpo kātabbo. Tattha ye mālaṁ vā gandhaṁ vā cuṇṇakaṁ vā āropessanti vā abhivādessanti vā cittaṁ vā pasādessanti tesaṁ taṁ bhavissati dīgharattaṁ hitāya sukhāya.


    [29. Ānanda’s Questions]

    “But sir, how to proceed when it comes to the Realized One’s corpse?”

    “Proceed in the same way as they do for the corpse of a wheel-turning monarch.”

    “But how do they proceed with a
    wheel-turning monarch’s corpse?”

    “They wrap a
    wheel-turning monarch’s corpse with unworn cloth, then with uncarded cotton, then again with unworn cloth. In this way they wrap the corpse with five hundred double-layers. Then they place it in an iron case filled with oil and close it up with another case. Then, having built a funeral pyre out of all kinds of aromatics, they cremate the corpse. They build a monument for the wheel-turning monarch at the crossroads. That’s how they proceed with a wheel-turning monarch’s corpse. Proceed in the same way with the Realized One’s corpse. A monument for the Realized One is to be built at the crossroads. When someone there lifts up garlands or fragrance or powder, or bows, or inspires confidence in their heart, that will be for their lasting welfare and happiness.


    [阿難問題的談說]

    「大德!對如來的遺體,應該如何行動?」

    「阿難!對如來的遺體應該如對
    轉輪王遺體那樣行動。」

    「大德!對
    轉輪王的遺體,應該如何行動?」

    「阿難!
    轉輪王的遺體以新的衣服包捲,以新的衣服包捲後,以毛已被梳立的棉布包捲,以毛已被梳立的棉布包捲後,以新的衣服包捲,……以這方式成對包捲轉輪王的遺體五百次後,放進鐵油槽,然後以另一個鐵槽覆蓋,[以]所有芳香木作火葬用柴堆,然後火化轉輪王的遺體,在十字路口建轉輪王的塔,阿難!對轉輪王的遺體,應該這樣行動,阿難!對如來的遺體應該如對轉輪王遺體那樣行動,阿難!應該在十字路口建如來的塔,在那裡,凡給與花環或香料或香粉,或問訊,或使心變得淨信者,則對他們將有長久的利益與安樂。


    [아난] 여래 (타타가타)의 시신은 어떻게 다뤄야 합니까?

    [붓다] 사람들이 전륜왕의 시신에 하듯 하면 된다.

    [아난] 사람들은 전륜왕의 시신을 어떻게 다룹니까?

    [붓다] 사람들은 "전륜왕의 시신을 새 천으로 싸고, 거친 목면으로 감은 후, 다시 새 천으로 감싼다. 이런 식으로 시신을 500겹의 천으로 감는다. 그런 후 금속상자에 기름을 채우고 다른 상자로 덥고나서 온갖 향나무를 모아 화장용 장작을 쌓고 시신을 화장한다.전륜왕을 추모하여 사거리 마다 탑을 세운다. 이것이 전륜왕의 시신을 다루는 법이다. 이처럼 여래의 시신도 다루도록 하라.  ... [후략]

    혹시 예수나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불경}의 셀라-붓다 대화를 표절해서 빌라도-예수 대화를 지어낸 것일까? 혹시 그들은 "전륜왕" 같은 붓다의 호칭들에서 '왕의왕' 같은 예수의 호칭을 표절한 것이 아닐까... 라는 식의 발상이 민희식 류의 주장일테다. 

    정말?

    그럼 이번에는 고타마 붓다 출생 무렵에 동쪽으로는 소아시아와 이집트, 서쪽으로는 서북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했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BC 5/6세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왕들의 왕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을 창건한 키루스 2세 (= 고레스, BC 600-530) 왕위에 오른 것은 BC 559년으로 즉위 직후부터 주변의 메디아, 리디아, 서북인도 경계, 중앙아시아, 신바빌로니아 등을 연속으로 정복하면서 정복국가들의 군주를 자신의 칭호에 더하면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 군주들의 정식 호칭인 "흐샤야시야 흐사야시야남 Xšāyaθiya xšāyaθiyānām" 즉, "왕중왕"의 근거를 마련한다. 본시 "왕중왕"이란 정복군주로서 다수의 하위군주를 거느리는 '황제'급 군주에게 적용되는 용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 군주의 이 호칭을 그리스어로 "바실레우스 톤 바실레온 βασιλεὺς τῶν βασιλέων"로 직역했다. 역시 '왕중왕'이다.

    가령, 키루스 2세의 인각에서는 그의 군주직을 이렇게 장황하게 묘사한다. 수많은 "~의 왕"에 주목하자. 그야말로 정복당한 온갖 왕들의 왕, 즉 "왕중왕"이다.

    I am Cyrus, king of the world, great king, legitimate king, king of Babylon, king of Sumer and Akkad, king of the four rims (of the earth), son of Cambyses...

    나는 키루스, 세상의 왕이자, 대왕이자, 자격을 갖춘 왕이며, 바빌로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온 세상 사방의 왕, 캄비세스의 아들이다 ...  번역/ 최광민

    다리우스 1세의 경우를 보자.

    A great god is Ahuramazda, who created this earth, who created yonder firmament, who created man, who created welfare for man, who made Darius king, one king of many, one lord of many.—I am Darius, great king (xšāyat'iya vazaṛka), king of kings (xšāyat'iya xšāyat'iyānām), king of countries (xšāyat'iya dahyūnām vispazanānām), king of this earth (xšāyat'iya ahyāyā būmiyā vazaṛkāyā dūraiy apiy), son of Ilystaspes, the Achaemenian.

    이 땅을 창조하시고 저 멀리 하늘을 지으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보살피시며, 다리우스를 만들어 그를 많은 왕들 가운데 왕과 군주로 세우신 아후라마즈다는 위대하시다. 나는 다리우스다. 나는 대왕이자, 왕중왕이자, 많은 나라들의 왕이자, 이 땅의 왕이자, 아케메네스 가문 일리스타스페스의 아들이다.  / 번역: 최광민

    여기 다리우스 1세의 호칭으로 등장하는 "왕중왕 King of Kings"이 앞서 말한 "흐샤야시야 흐사야시야남 Xšāyaθiya xšāyaθiyānām" 이다. 이 용어는 이하 모든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군주들에게 적용되었다.

    초기 아케메네스 왕조의 군주의 정식왕통은 키루스 2 (재위 BC 550-530) - 캄비세스 2세 (재위 BC 530-522) - 다리우스 1세 (재위 BC 550-486)로 이어지는데, 이 다리우스 1세가 페르시아 제국의 '왕중왕'으로 지배하던 시절은 고타마 붓다의 생몰시기 (BC 560-460)와 거의 겹친다. 

    베히스툰 인각에 따르면 아케메네스 왕조의 창건자인 키루스 2세는 BC 535년에 서북인도를 침공해 간다라와 사타기디아 일대를 제국의 영토로 편입했고, 다리우스 1세 무렵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서북인도 행정수도는 나중에 대승불교의 중심지가 되는 간다라 탁실라에 있었다.

    BC 327-325년에 있었던 알렉산드로스의 인도원정 때 수행했던 아리스토불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가 탁실라로 진군했을 때 그 도시에서는 죽은 자들을 조로아스터교 식으로 풍장했다고 기록한 점으로 보아, 당시 탁실라는 페르시아 문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듯 하다. 이 탁실라에서 페르시아는 대학을 운영했다.

    당시 페르시아 "왕중왕"인 다리우스 1세는 고타마 붓다와 거의 동시대인으로, 붓다와 절친했던 코살라 국왕 파세나디 (Pasenadi), 파세나디의 군대사령관 만둘라 (Bandula), 붓다의 제자인 안굴리말라 (Angulimala), 붓다의 주치의였던 지바카 (Jivaka) 가 바로 이 탁실라에서 교육 받았다.

    그런데 고타마 붓다 당시 인도 아대륙엔 중소국들이 난립했지만, 페르시아 제국에 준할 정도로 주변국가를 정복하고 "왕중왕"을 자처할 만한 제국 혹은 군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도 아대륙에서 "왕중왕"이란 호칭을 쓸 만한 제국이 출현한 때는, 마케도니아의 정복군주 알렉산드로스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여세를 밀어 서북인도 원정을 시도할 때 이를 막아내고 등장한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BC 350–295)의 마우리아 왕국 세번째 군주로서 인도 거의 전체를 정복한 "전륜성왕" 아쇼카 대왕 (BC  268 – c. 232) 때의 일로, 이것은 고타마 붓다 입멸 후 거의 200년 후의 일이다.

    그럼 이번엔 {불경}에 등장하는 "왕중왕"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군주들의 호칭에서 "표절"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 BC 12-7세기: {신명기}와 {시편}: 신들의 신, 주님들의 주님

    그런데 민희식과 공저자들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왕의 왕'이란 유형의 표현은 예수가 등장하기 훨씬 전의 유대교 경전에도 등장한다. 따라서 "붓다에서 예수"로 바로 표절의혹을 제기할 이유는 사실 없는 것이다. 

    설명에 앞서, 우선 한가지 전제를 설명하겠다. 

    돌이나 단단히 굳은 점토판에 새겨진 인각 같은 고고학적 유물이 아니라 장기보관이 어려운 기록매체인 양피지, 종이 등지에 기록된 문서들은 초판이 정확히 언제 기록된 것인지, 필사를 통한 전승과정에서 내용의 가감은 없었는지를 확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종교문서들의 역사적 재구성이 매우 어려운 편인데, 그래서 각 종교들이 내부적으로 주장하는 각 문서들의 작성연대와 후대 학자들이 추정하는 작성연대가 꽤 다른 편이다. 

    가령, 유대교 경전의 제 1부를 구성하는 첫 5권인 소위 {모세오경}들의 경우, 전통적으로 이 문서군을 기록했다고 여겨져 온 모세의 추정연대에 맞춰, 이 문서들이 BC 13세기 부터  "현재 성서에 포함된 형태 그대로" 전승되어 왔다고 여기는 학자들은 오늘날 거의 없다. 그래서 (1)  BC 13세기 무렵에 내용의 핵심코어가 등장했다고 보더라도, 전승이 편집되어 책의 형태로 기록된 것은 제1성전기 시절 야훼 유일신 신앙을 강화한 유다왕국의 국왕 히즈키야 (BC 716-687)나 마나세 (BC 687-643) 혹은 요시야 (BC 64-609) 시절로 보는 보수적 견해와 (2) 유대왕국이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한 후 지배층들이 바빌로니아 지역으로 끌려간 70여년 기간 동안 바비로니아에서 전승이 편집/기록되었다는 견해, (3)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해방령으로 고국에 돌아온 유대인들과 특별히 제 2성전기유대교의 재건을 이끈 핵심인물인 제사장 에스라 (BC 504-421) 시대로 낮춰잡는 견해로 대략 삼분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


    이 글에서 인용할 두 문서의 경우 역시 최초작성연대의 정확한 재구성을 어렵지만, 학자들은 해당 내용들이 대체로 내용상 핵심코어에 해당하기 때문에 초기 전승에 해당하고 대체로 보는 편이다.  이 글에서는 적어도 BC 7세기 무렵에는 경전화된 문서의 코어를 구성했다고 가정하겠다. 

    우선, {모세오경}의 5권째인 {신명기} 10장 17절이다.

    כִּי יְהוָה אֱלֹהֵיכֶם הוּא אֱלֹהֵי הָאֱלֹהִים וַאֲדֹנֵי הָאֲדֹנִים הָאֵל הַגָּדֹל הַגִּבֹּר וְהַנּוֹרָא אֲשֶׁר לֹא־יִשָּׂא פָנִים וְלֹא יִקַּח שֹׁחַד׃

    ὁ γὰρ κύριος ὁ θεὸς ὑμῶν οὗτος θεὸς τῶν θεῶν καὶ κύριος τῶν κυρίων ὁ θεὸς ὁ μέγας καὶ ἰσχυρὸς καὶ ὁ φοβερός ὅστις οὐ θαυμάζει πρόσωπον οὐδ᾽ οὐ μὴ λάβῃ δῶρον

    For the LORD your God is God of gods, and Lord of lords, a great God, a mighty, and a terrible, which regardeth not persons, nor taketh reward: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들 (엘로힘) 가운데 신 (엘로힘)이시며 주들 (아도님) 가운데 주 (아돈)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 한국어 개역개정, {신명기} 10.17

    비슷한 구절은 {시편}136편에도 등장한다. 이 시편이 다윗의 작품이라면 BC 10세기가 작성시기지만, 그렇지 않다면 BC 9-7세기 정도를 그 작성연대로 보통 추정한다. 

    הוֹדוּ לַיהוָה כִּי־ טוֹב כִּי לְעוֹלָם חַסְדּוֹ׃
    הוֹדוּ לֵאלֹהֵי הָאֱלֹהִים כִּי לְעוֹלָם חַסְדּוֹ׃
    הוֹדוּ לַאֲדֹנֵי הָאֲדֹנִים כִּי לְעֹלָם חַסְדּוֹ׃

    αλληλουια ἐξομολογεῖσθε τῷ κυρίῳ ὅτι χρηστός ὅτι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τὸ ἔλεος αὐτοῦ
    ἐξομολογεῖσθε τῷ
    θεῷ τῶν θεῶν ὅτι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τὸ ἔλεος αὐτοῦ
    ἐξομολογεῖσθε τῷ κ
    υρίῳ τῶν κυρίων ὅτι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τὸ ἔλεος αὐτοῦ

    O give thanks unto the LORD; for he is good: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
    O give thanks unto
    the God of gods: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
    O give thanks to
    the Lord of lords: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

    할렐루야, 어지신 분, 야훼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모든 신들(엘로힘)의 신 (엘로힘)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모든 주인들(아도님)의 주님 (아돈)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여기서 유대교의 신 야훼는 (1) 신들 가운데 신이며 (2) 주인들 가운데 주인이다. 혹시 왜 "왕중의 왕"이란 표현은 없는지 질문할 수 있겠는데 (히브리어에서 '왕'은 '멜렉'), 사실 여기 "주님들 가운데 주님"이라 불리는 표현에 "주님/주인"의 뜻으로 사용단 히브리어 단어는 '아돈'(단수)과 '아도님'(복수)다. 이 단어의 용례는 폭이 넓어서 '주인님'이란 뜻부터 '왕'과 '신'까지 의미할 수 있다.

    가령, 부족연맹체인 고대 이스라엘이 '왕'이란 제도를 받아들인지 얼마 안된 시점의 역사를 기록한 {사무엘}이나 {역대기}에 보면, 왕을 부를 때 "아도니 함멜렉 אדני המּלך "이란 표현을 쓴다. 이것은 아돈(주님)+멜렉(왕)이 합성된 형태로 "나의 주님이신 왕"이란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대교의 핵심경전인{신명기}나 {시편}에 이미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란 표현이 이미 등장하는 셈이고, 이들 경전을 역시 경전으로 받았던 초기 기독교도들이 이런 표현을 {신명기}나 {시편}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크게 무리한 설명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걸 다 뛰어넘고 뜬금없이 저 멀리 {불경}에서 가져왔다고 주장한다면?

    마치 이런 식으로?


    한번 더 올라가 볼까?









    # BC 12-8세기: 앗시리아/바빌로니아: 왕들의 왕, 주님들의 주님

    기본적으로 아카드계 정복국가들의 인기있던 호칭 방식은 정복지를 넣어 "[피정복지]의 왕"이란 형식을 갖춰 줄줄이 나열하는 식이다.

    고고학 유물 기록에서 "왕중왕"이란 표현을 처음 발견된 것은 중-앗시리아 제국의 국왕 투굴티-닌우르타 1세 (BC 1233-1196)가 자처한 " šar šarrāni 샤르 샤르라니" 즉, 왕들의 왕"이다. 여기서 "왕"은 도시국가급의 군주를 말한다. 하지만 이 칭호는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 군주호칭으로 그렇게 흔하진 않다. "왕들의 지배자 (나식 사르라니)" 혹은 "주인들의 주인 (벨 벨리)" 같은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왕중왕'을 국왕의 정식호칭으로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BC 6세기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한번 더 올라가 볼까?



    # BC 15-13세기: {리그베다} 바루나: 왕들의 왕

    북부 인도로 인도-아리아계가 침투하면서 발생한 베다교의 기반이 형성된 것은  BC 1500-1000년기로 보통 잡는다 (물론 힌두민족주의자 인도인들은 수 천년 더 위로 올리려고 하지만).  

    후대 힌두교의 모체랄 수 있는 베다교의 경전인 {리그베다}의 출현시기 역시 정확하게 특정하기 어려운데, 적어도 그 핵심코어에 해당하는 내용과 모티프는 BC 1400년 경에는 등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그 무렵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서쪽으론 시리아와 소아시아 일대를 지배한 인도-아리안계 국가인 미타니의 유물 가운데 북부 시리아에서 발견된 문건에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주신들인 태양신격 (아디티야)의 바루나, 미트라, 인드라 등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후대 힌두교의 주신들인 브라흐만, 비쉬누, 시바는 {리그베다}에서는 꽤 미미한 존재들이다).

    그럼 이번에는{리그베다} 가운데 바루나에게 바쳐진 호칭을 한번 찾아보자. (https://www.wisdomlib.org/hinduism/book/rig-veda-english-translation/d/doc834870.html)


    राजा॑ रा॒ष्ट्रानां॒ पेशो॑ न॒दीना॒मनु॑त्तमस्मै क्ष॒त्रं वि॒श्वायु॑ ॥

    rājā rāṣṭrānām peśo nadīnām anuttam asmai kṣatraṃ viśvāyu ||

    He is
    the king of kings; the beauty of the rivers his all-pervading strength is irresistible.

    그는 왕중왕이며 강들의 아름다움이며, 모든 것에 이르는 그의 힘은 피할 수 없도다.  -- {리그베다 Rig Veda} 7.34.11

    여기 사용된 "라자 라스트라남 rājā rāṣṭrānām"이 "왕중왕"에 해당한다. {리그베다} 전체에서 이 단어의 용례를 검색해 봤는데, 이 용어가 사용된 경우는 바루나의 경우, 그것도 딱 저 한 줄이 유일했다.

    물론 {리그베다}의 "코어"가 BC 1400년 무렵에 형성되었다고 해서, 현재 전승된 {리그베다}의 저 문구가 그때 만들어졌다는 것은 증명할 방법이 없다.








    # 맺음말

    예수는 붓다를 표절했을까?
     
    붓다는 다리우스를 표절했을까?

    {신명기}나 {시편}은 페르시아 칭호를 표절했을까? 아니면 {불경}을 표절했을까?

    {불경}이 {신명기}/{시편}을 표절했을까?

    .....

    예수, 붓다, 다리우스 1세와 모든 페르시아 국왕, 모세, 다윗, 투굴티-닌우르타 1세는 죄다 {리그베다}의 바루나를 표절한 걸까?

    아니면,

    "신들의 신", "왕들의 왕", "주인들의 주인" 같은 표현들은 탁 트인 지형 때문에 유난히 (도시)국가들 간의 정복/피정복 전쟁이 잦았던 메소포타미아와 그 주변지역인 중동/오리엔트 지역 특성 상 정복자가 피정복지의 지배자가 되는 일이 잦았던 데서 발전한 호칭 형식이라고 봐야할까?

    동일 문명권에서 사용된 관용적 표현을 사용했다고 이를 "표절"이라고 굳이 불러야 할까?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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