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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키 노리코, {기대지 않고} + {내가 제일 예뻤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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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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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류)시인 이바라키 노리코는 73세 때 이
시를 썼다.
倚(よ)りかからず
--- 茨木のり子
もはや
できあいの思想には倚りかかりたくない
もはや
できあいの宗教には倚りかかりたくない
もはや
できあいの学問には倚りかかりたくない
もはや
いかなる権威にも倚りかかりたくはない
ながく生きて
心底学んだのはそれぐらい
じぶんの耳目じぶんの二本足のみで立っていて
なに不都合のことやある
倚りかかるとすれば
それは椅子の背もたれだけ
기대지
않고
-- 이바라키 노리코
더이상
기성사상에 기대기 싫다
더
이상
기성종교에 기대기 싫다
더 이상
기성학문에 기대기
싫다
이제
그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기 싫다
오랫동안 살면서
진정 배운 건 그 정도
내 두 다리로 서
있은들
무엇이 불편하단 말인가.
기댄다면 그건
의자 등받이일 뿐
중년의 이바라키 노리코는, 15세 때 태평양전쟁 개전과 19살 때 일본 패망의
경험을 기억하며 자신의10대와 20대를 이렇게 추억했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내가 제일 예뻤을 때
--- 茨木のり子
--- 이바라키 노리코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街々はがらがらと崩れていって
とんでもないところから
青空なんかが見えたりし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온 동네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면
엉뚱한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まわりの人達が沢山死んだ
工場で 海で 名もない島で
わたしはおしゃれのきっかけを落としてしま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변 사람들이 엄청 죽어 나갔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 없는 섬에서
나는 멋 부릴 동기를 잃어 버렸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誰もやさしい贈り物を捧げてはくれなかった
男たちは挙手の礼しか知らなくて
きれいな眼差だけを残し皆(みな)発ってい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다정하게 선물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수경례
밖에 모르는 남자들은
고운 눈빛만 남기고 모두 떠나갔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頭はからっぽで
わたしの心はかたくなで
手足ばかりが栗色に光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었고
내 마음은 딱딱해서
손발만
구리빛으로 번쩍였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国は戦争で負けた
そんな馬鹿なことってあるものか
ブラウスの腕をまくり卑屈な町をのし歩い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졌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누볐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ラジオからはジャズが溢れた
禁煙を破ったときのようにくらくらしながら
わたしは異国の甘い音楽をむさぼ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쳐 흘렀다
금연을
했을 때처럼 어지러워하며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에 탐닉했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はとてもふしあわせ
わたしはとてもとんちんかん
わたしはめっぽうさびしか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하고
나는 아주 혼란스러웠고
나는
너무나 외로웠다
だから決めた できれば長生きすることに
年とってから凄く美しい絵を描いた
フランスのルオー爺さんのように ね
그래서
결정했다. 가능한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몹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이바라키 노리코가 2006년에 7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87세까지 살았던 조르주 루오 보단 오래 살진 못한 셈. 그래도 좋은 시를
남기고 떠났으니 뜻한 바는 이룬 셈이다.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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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茨木のり子
もはや
できあいの思想には倚りかかりたくない
もはや
できあいの宗教には倚りかかりたくない
もはや
できあいの学問には倚りかかりたくない
もはや
いかなる権威にも倚りかかりたくはない
心底学んだのはそれぐらい
じぶんの耳目じぶんの二本足のみで立っていて
なに不都合のことやある
それは椅子の背もたれだけ
기대지 않고
-- 이바라키 노리코
더이상
기성사상에 기대기 싫다
더 이상
기성종교에 기대기 싫다
더 이상
기성학문에 기대기 싫다
이제
그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기 싫다
더이상
기성사상에 기대기 싫다
더 이상
기성종교에 기대기 싫다
더 이상
기성학문에 기대기 싫다
이제
그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기 싫다
오랫동안 살면서
진정 배운 건 그 정도
내 두 다리로 서 있은들
무엇이 불편하단 말인가.
진정 배운 건 그 정도
내 두 다리로 서 있은들
무엇이 불편하단 말인가.
기댄다면 그건
의자 등받이일 뿐
중년의 이바라키 노리코는, 15세 때 태평양전쟁 개전과 19살 때 일본 패망의 경험을 기억하며 자신의10대와 20대를 이렇게 추억했다.
의자 등받이일 뿐
중년의 이바라키 노리코는, 15세 때 태평양전쟁 개전과 19살 때 일본 패망의 경험을 기억하며 자신의10대와 20대를 이렇게 추억했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내가 제일 예뻤을 때
--- 茨木のり子
--- 茨木のり子
--- 이바라키 노리코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街々はがらがらと崩れていって
とんでもないところから
青空なんかが見えたりし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온 동네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면
엉뚱한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まわりの人達が沢山死んだ
工場で 海で 名もない島で
わたしはおしゃれのきっかけを落としてしまった
온 동네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면
엉뚱한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まわりの人達が沢山死んだ
工場で 海で 名もない島で
わたしはおしゃれのきっかけを落としてしま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변 사람들이 엄청 죽어 나갔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 없는 섬에서
나는 멋 부릴 동기를 잃어 버렸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誰もやさしい贈り物を捧げてはくれなかった
男たちは挙手の礼しか知らなくて
きれいな眼差だけを残し皆(みな)発っていった
주변 사람들이 엄청 죽어 나갔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 없는 섬에서
나는 멋 부릴 동기를 잃어 버렸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誰もやさしい贈り物を捧げてはくれなかった
男たちは挙手の礼しか知らなくて
きれいな眼差だけを残し皆(みな)発ってい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다정하게 선물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수경례 밖에 모르는 남자들은
고운 눈빛만 남기고 모두 떠나갔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頭はからっぽで
わたしの心はかたくなで
手足ばかりが栗色に光った
다정하게 선물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수경례 밖에 모르는 남자들은
고운 눈빛만 남기고 모두 떠나갔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頭はからっぽで
わたしの心はかたくなで
手足ばかりが栗色に光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었고
내 마음은 딱딱해서
손발만 구리빛으로 번쩍였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国は戦争で負けた
そんな馬鹿なことってあるものか
ブラウスの腕をまくり卑屈な町をのし歩いた
내 머리는 텅 비었고
내 마음은 딱딱해서
손발만 구리빛으로 번쩍였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国は戦争で負けた
そんな馬鹿なことってあるものか
ブラウスの腕をまくり卑屈な町をのし歩い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졌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누볐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ラジオからはジャズが溢れた
禁煙を破ったときのようにくらくらしながら
わたしは異国の甘い音楽をむさぼった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졌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누볐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ラジオからはジャズが溢れた
禁煙を破ったときのようにくらくらしながら
わたしは異国の甘い音楽をむさぼ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쳐 흘렀다
금연을 했을 때처럼 어지러워하며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에 탐닉했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はとてもふしあわせ
わたしはとてもとんちんかん
わたしはめっぽうさびしか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하고
나는 아주 혼란스러웠고
나는 너무나 외로웠다
だから決めた できれば長生きすることに
年とってから凄く美しい絵を描いた
フランスのルオー爺さんのように ね
그래서 결정했다. 가능한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몹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이바라키 노리코가 2006년에 7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87세까지 살았던 조르주 루오 보단 오래 살진 못한 셈. 그래도 좋은 시를 남기고 떠났으니 뜻한 바는 이룬 셈이다.
최광민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쳐 흘렀다
금연을 했을 때처럼 어지러워하며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에 탐닉했다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はとてもふしあわせ
わたしはとてもとんちんかん
わたしはめっぽうさびしかった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하고
나는 아주 혼란스러웠고
나는 너무나 외로웠다
だから決めた できれば長生きすることに
年とってから凄く美しい絵を描いた
フランスのルオー爺さんのように ね
그래서 결정했다. 가능한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몹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이바라키 노리코가 2006년에 7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87세까지 살았던 조르주 루오 보단 오래 살진 못한 셈. 그래도 좋은 시를 남기고 떠났으니 뜻한 바는 이룬 셈이다.
최광민
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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