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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영화 {솔라리스}와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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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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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草人 최광민 2008-03-30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 최광민] 영화 {솔라리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1972년작 동명영화를 스티븐 소더버그가 2002년 리메이크한 이 SF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지니는 살인적 "지루함"을 어떻게 극복하고 흥행에 성공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사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은 내게는 "정말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인데, 그의 {희생}을 끝까지 보려고 서너번 시도하다가 결국 모든 시도마다 10분 안에 잠들어 버렸던 아픈 추억도 가지고 있다.
폴란드의 SF작가 스타니슬라브 렘의 소설에 바탕한 이 영화는 그 지루함 만큼이나 그 깊이를 두고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주로 타르코프스키의 해석을 선호하는) 매니아들은 이 영화로부터 수많은 철학적 담론을 읽어내는 반면, 그 반대자들은 렘의 소설이 SF소설로서는 너무 통속적이며 느슨한 플롯을 가졌음에도 지나치게 과대포장되었다고 비판한다.
이야기는 솔라리스 별을 돌고 있는 우주정거장 프로메테우스를 배경으로 한다. 솔라리스는 단순한 비물질적 행성이 아니다. 어쩌면 {Forbidden Planet}에서 처럼 솔라리스인의 어떤 보호장치인지는 모르나, 이 행성권에 들어서면, 솔라리스는 인간들이 과거에 입었던 심리적 트라우마들과 그 방어기제를 물질화해낸다. 이를 프로메테우스 승선자들은 '방문객'이라 부른다. 이 모티브는 내게는 최고의 공포 SF로 기억되는 {Event Horizon}과 유사하다.
주인공인 우주심리학자 크리스 캘빈에게 찾아온 방문객은 10년 전에 자살한 사랑하던 아내였다. 그러나 그 방문객이 캘빈의 물질화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랑하던 아내라고 할 수는 없다. 심지어 방문객은 캘빈의 기억 탓에 다시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신이 캘빈의 아내가 아니라 그의 기억의 일부임을 알고는 심리적 공황에 빠지기까지 한다.
캘빈에겐 두가지 선택이 있다. 솔라리스를 떠나 지구로 탈출할 수도 있고, 솔라리스가 제공하는 가상의 현실 속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유폐시킬 수도 있다. 물론 '현실'과 '가상'은 여기서 구별되기 힘들다. 솔라리스에서는 가상 자체가 실제와 같은 수준의 '실재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솔라리스가 제공하는 현실성은 {매트릭스} 속의 가상현실과는 다른 물질적 현실이다.
캘빈은 솔라리스로 간다. 솔라리스가 죽은 아내를 되돌려 주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솔라리스의 방문객이 죽은 아내가 아니란 것 정도는 안다. 솔라리스에서는 아내를 사랑했던 순간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럼 이 영화는 일본영화 {완다푸루 라이프}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의 동기는 분명치는 않지만, 캘빈의 선택이 틀렸다고는 꼭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꿈꾸는 영생이란, 그저 지리하게 지속되는 크로노스의 영원이 아니라, 영원이 순간 속에 혹은 순간이 영원 속에 지속되는 그러한 형태의 영생일테니까.
{신학대전}, 토마스 아퀴나스
제10문 : 신의 영원성
http://www.ccel.org/a/aquinas/summa/FP.html
[1].영원성이란 동시적이고 완전하며 시작도 마침도 없는 생명의 소유를 지칭한다. 시간(tempus)이란 '먼저'와 '나중'에 따른 운동의 척도이다.
[2]. 불변하고 항상적인 신에게는 변화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먼저'와 '나중'으로 구별될 구별점을 그의존재 속에 설정할 수 없다. 따라서 신에겐 시간이 없고 영원하다.
[3]. 그리고 이 영원성은 신의 존재 자체에 속하는 것이므로신의 고유한 본질이다. 다른 모든 존재자들은 고유한 권리로서가 아니라 오직 신의 영원성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4].영원은 시간과 다르다. 왜냐하면 영원성은 모든 것이 동시에 함께 있음인데. 이것이 시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5].'시간'은 '먼저'와 '나중'을 함축한다. '에붐(aevum)'은 시작은 가지나 끝이 없다. 시대도 '먼저'와 '나중'을 지니긴 하지만. 새로워짐도 낡아짐도 가지지 않는다. 영원은 어떠한 '먼저'도 '나중'도 지니고 있지 않고, 결코 어떤 모양으로도그것들과 무관하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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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草人 최광민 200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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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영화 {솔라리스}
사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은 내게는 "정말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인데, 그의 {희생}을 끝까지 보려고 서너번 시도하다가 결국 모든 시도마다 10분 안에 잠들어 버렸던 아픈 추억도 가지고 있다.
폴란드의 SF작가 스타니슬라브 렘의 소설에 바탕한 이 영화는 그 지루함 만큼이나 그 깊이를 두고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주로 타르코프스키의 해석을 선호하는) 매니아들은 이 영화로부터 수많은 철학적 담론을 읽어내는 반면, 그 반대자들은 렘의 소설이 SF소설로서는 너무 통속적이며 느슨한 플롯을 가졌음에도 지나치게 과대포장되었다고 비판한다.
이야기는 솔라리스 별을 돌고 있는 우주정거장 프로메테우스를 배경으로 한다. 솔라리스는 단순한 비물질적 행성이 아니다. 어쩌면 {Forbidden Planet}에서 처럼 솔라리스인의 어떤 보호장치인지는 모르나, 이 행성권에 들어서면, 솔라리스는 인간들이 과거에 입었던 심리적 트라우마들과 그 방어기제를 물질화해낸다. 이를 프로메테우스 승선자들은 '방문객'이라 부른다. 이 모티브는 내게는 최고의 공포 SF로 기억되는 {Event Horizon}과 유사하다.
주인공인 우주심리학자 크리스 캘빈에게 찾아온 방문객은 10년 전에 자살한 사랑하던 아내였다. 그러나 그 방문객이 캘빈의 물질화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랑하던 아내라고 할 수는 없다. 심지어 방문객은 캘빈의 기억 탓에 다시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신이 캘빈의 아내가 아니라 그의 기억의 일부임을 알고는 심리적 공황에 빠지기까지 한다.
캘빈에겐 두가지 선택이 있다. 솔라리스를 떠나 지구로 탈출할 수도 있고, 솔라리스가 제공하는 가상의 현실 속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유폐시킬 수도 있다. 물론 '현실'과 '가상'은 여기서 구별되기 힘들다. 솔라리스에서는 가상 자체가 실제와 같은 수준의 '실재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솔라리스가 제공하는 현실성은 {매트릭스} 속의 가상현실과는 다른 물질적 현실이다.
캘빈은 솔라리스로 간다. 솔라리스가 죽은 아내를 되돌려 주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솔라리스의 방문객이 죽은 아내가 아니란 것 정도는 안다. 솔라리스에서는 아내를 사랑했던 순간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럼 이 영화는 일본영화 {완다푸루 라이프}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의 동기는 분명치는 않지만, 캘빈의 선택이 틀렸다고는 꼭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꿈꾸는 영생이란, 그저 지리하게 지속되는 크로노스의 영원이 아니라, 영원이 순간 속에 혹은 순간이 영원 속에 지속되는 그러한 형태의 영생일테니까.
草人
폴란드의 SF작가 스타니슬라브 렘의 소설에 바탕한 이 영화는 그 지루함 만큼이나 그 깊이를 두고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주로 타르코프스키의 해석을 선호하는) 매니아들은 이 영화로부터 수많은 철학적 담론을 읽어내는 반면, 그 반대자들은 렘의 소설이 SF소설로서는 너무 통속적이며 느슨한 플롯을 가졌음에도 지나치게 과대포장되었다고 비판한다.
이야기는 솔라리스 별을 돌고 있는 우주정거장 프로메테우스를 배경으로 한다. 솔라리스는 단순한 비물질적 행성이 아니다. 어쩌면 {Forbidden Planet}에서 처럼 솔라리스인의 어떤 보호장치인지는 모르나, 이 행성권에 들어서면, 솔라리스는 인간들이 과거에 입었던 심리적 트라우마들과 그 방어기제를 물질화해낸다. 이를 프로메테우스 승선자들은 '방문객'이라 부른다. 이 모티브는 내게는 최고의 공포 SF로 기억되는 {Event Horizon}과 유사하다.
주인공인 우주심리학자 크리스 캘빈에게 찾아온 방문객은 10년 전에 자살한 사랑하던 아내였다. 그러나 그 방문객이 캘빈의 물질화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랑하던 아내라고 할 수는 없다. 심지어 방문객은 캘빈의 기억 탓에 다시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신이 캘빈의 아내가 아니라 그의 기억의 일부임을 알고는 심리적 공황에 빠지기까지 한다.
캘빈에겐 두가지 선택이 있다. 솔라리스를 떠나 지구로 탈출할 수도 있고, 솔라리스가 제공하는 가상의 현실 속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유폐시킬 수도 있다. 물론 '현실'과 '가상'은 여기서 구별되기 힘들다. 솔라리스에서는 가상 자체가 실제와 같은 수준의 '실재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솔라리스가 제공하는 현실성은 {매트릭스} 속의 가상현실과는 다른 물질적 현실이다.
캘빈은 솔라리스로 간다. 솔라리스가 죽은 아내를 되돌려 주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솔라리스의 방문객이 죽은 아내가 아니란 것 정도는 안다. 솔라리스에서는 아내를 사랑했던 순간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럼 이 영화는 일본영화 {완다푸루 라이프}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의 동기는 분명치는 않지만, 캘빈의 선택이 틀렸다고는 꼭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꿈꾸는 영생이란, 그저 지리하게 지속되는 크로노스의 영원이 아니라, 영원이 순간 속에 혹은 순간이 영원 속에 지속되는 그러한 형태의 영생일테니까.
{신학대전}, 토마스 아퀴나스
제10문 : 신의 영원성
http://www.ccel.org/a/aquinas/summa/FP.html
[1].영원성이란 동시적이고 완전하며 시작도 마침도 없는 생명의 소유를 지칭한다. 시간(tempus)이란 '먼저'와 '나중'에 따른 운동의 척도이다.
[2]. 불변하고 항상적인 신에게는 변화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먼저'와 '나중'으로 구별될 구별점을 그의존재 속에 설정할 수 없다. 따라서 신에겐 시간이 없고 영원하다.
[3]. 그리고 이 영원성은 신의 존재 자체에 속하는 것이므로신의 고유한 본질이다. 다른 모든 존재자들은 고유한 권리로서가 아니라 오직 신의 영원성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4].영원은 시간과 다르다. 왜냐하면 영원성은 모든 것이 동시에 함께 있음인데. 이것이 시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5].'시간'은 '먼저'와 '나중'을 함축한다. '에붐(aevum)'은 시작은 가지나 끝이 없다. 시대도 '먼저'와 '나중'을 지니긴 하지만. 새로워짐도 낡아짐도 가지지 않는다. 영원은 어떠한 '먼저'도 '나중'도 지니고 있지 않고, 결코 어떤 모양으로도그것들과 무관하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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