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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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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전문가 시스템의 붕괴와 폭주하는 크리슈나의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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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8-06-01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전문가 시스템의 붕괴와 폭주하는 크리슈나의 수레

순서
  1. 모더니티
  2. 전문가 시스템
  3. 조정자

* 광우병 쇠고기 논란을 보며.


1. 모더니티

앤서니 기든스 (Anthony Giddens)의 {The Consequences of Modernity}란 책이 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부터 기든스의 다른 책 몇 권을 읽어 보았지만, 수업시간에 연신 "쩨군들!"을 입에서 놓지 않던 사회학자 박영신 교수가 대학 2학년 교양과목 (사회학의 이해) 수업에서 제시했던 이 책만큼 내게 큰 인상을 심어준 책은 없다. 10권이 넘는 수업 독서 리스트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이 번역하지 않은 책 가운데 하나여서 우리가 다소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감수자'가 박영신 교수라는 점은 몇 페이지만 넘기다보면 알 수 있다.

각설하고,

이 책의 우리말 번역은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이윤희, 이현희, 민음사 1991). 처음에는 인문학 좀 한다는 사람들, 문화예술계 인사들, 운동권이 몰락한 틈에서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던 다양한 수준의 '문화평론가'들이 당시에 유행처럼 저마다 앞다투어 토해내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 대한 책이 아닐까 싶어 호기심 가지고 읽어나가기 시작했지만, 문화사조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전혀 상관없고 그나마 '포스트모더니티' 그 자체와도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원제는 {The Consequences of Modernity}. 일단 이 책은 모더니티/근대성과 근대성의 결과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다룬다. 이 '포스트모더니티'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든스는 우선 '모더니티'가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정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티'를 설명하고자 한 듯 하다. 당시 유럽을 장악한 '포스트모던' 담론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기든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포스트모던/탈근대성'의 시대가 아니라 '후기근대성'의 시대라고 단호히 규정한다.

그 당시 거의 모든 식자들이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당연한 듯이 주장하면서 다소 간의 '쿨'하고 "씨크 chic"한 세기말적 우울증에 빠져있던데 비해 아주 참신한 지적이었다.

기든스가 정의하는 '모더니티'는 이렇다: 전-근대사회에서 개인의 시간과 공간은 그의 경험치에 의해 제한되어 있었다. 이에 비해 커뮤니케이션이 혁명적으로 변모한 근대사회에서는 이런 시공의 속박이 사라진다. 이를 '시공귀속탈피'라 정의하자. 이제 개인과 사회는 가상공간과 가상시간 속으로 들어선다. 정보와 지식의 영역에서 이 '근대성'은 분명히 관찰된다. 전-근대사회에서 지식은 소수의 현자와 원로들에게 독점되어 있었고, '원로'의 지식은 그의 경험에 근거하므로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근대사회는 더이상 현자들과 원로들이 인생을 통해 축적한 '경험'에 의존하지 않으며,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 원로들과 현자들의 지위를 대치한다. 사실상 이 근대사회의 유지/통합을 위해서는 이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전적신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마치 전-근대사회가 원로들의 권위에 전적으로 복종했던 것과 유사하다.




2. 전문가 시스템

전문가 시스템은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전문가 개인들의 총합이라고 볼 수 없다. 모더니티는 전문가들의 실제총합보다 큰 추상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전적신뢰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신뢰는 다분히 확률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전문가 시스템이 100% 옳게 작동할 것이라고는 확언할 수 없다. 사실 이 문제는 모더니티에 바탕을 둔 근대사회에 대한 결정적인 위협으로 작용한다.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는 결국 '믿음'과 '사실'을 바라보는 철학적 문제로 귀결된다. 많은 경우, 확립된 전문가 시스템이 고의로 사회에 위해를 끼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 이유는 그다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 나쁜 의도가 없다하여 전문가 시스템이 제시하는 해법에 오류가 없다고 단언할 근거도 사실은 없다. 전문가 시스템은 우리의 믿음과는 별개로 고유의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불확실성은 근대사회를 위협하는 요소로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는 '전문가 시스템'을 믿어야 할까? 아마도.

그러나 '믿음'의 영역에서 '사실'의 영역으로 들어설 때, 대중이 이 시스템을 '전폭적'으로 신뢰해야 할 근거는 사실 없다.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 대체로 '실용'의 영역이다. 대중들은 사회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전문적 지식을 전문가 시스템에 위탁하고서 그 시스템을 믿고자 할 따름이다. 근대사회가 보다 더 전문화해 감에 따라 '전문가 시스템'은 날이 갈 수록 대중과 격리되며, 어느 순간부터는 대중이 전문가 시스템이 다루는 전문지식을 이해해서 그 시스템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신뢰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전문가 시스템을 구성하는 전문가들은 전-근대사회 속의현자와는 달리 특정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 녹아있는 추상적 존재들이다. 내놓으라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사실 들여다보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격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분야에서는 그냥 대중일 뿐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근대사회가 내재된 불안에 의해 붕괴하지 않는 것은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나름대로 근거있는, 혹은 근거없는 전적신뢰 때문일 뿐이다. 엔진공학과 유체역학의 전문가가 전혀 아닌 일반대중들이 비행기 여행에 그다지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전문성에 대한 '신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어느 정도는 대중들이 해당분야를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지가 주는 막연한 신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근대사회를 지탱하는 전문가 시스템은 어느 선까지 신뢰할 만한가?

상식과 달리, 전문가 집단 혹은 전문가들의 문제해결능력은 기대치 이하이며, 많은 경우에 당면과제를 해결해 낼 수 없다는 연구보고가 있어 왔다. 이유는 전문가들의 소위 '세부전공분야' 것이 전문가 집단과 대중사이에 소통장애를 발생시키며, 전문가 집단 내부에서 의견의 불일치가 발생할 때 정작 전문가들은 그들의 "전문성" 때문에 문제해결능력에 필수적인 통합과 조율작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전문가들이 예리한 대립이 발생할 때 자신들의 '전문분야' 뒤로 숨어버리는 습성을 은연 중에 학습해왔기 때문이기도 한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통찰을 수련해왔다고 자부하는 제 학문분야들이 몇몇 거장을 중심으로하는 제각각 학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한 방증일 듯 싶다.




3. 조정자

일단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되면, 가중되는 불안은 한번 상처입은 신뢰를 다시 한번 더부식시키고, 여기에 피드백을 받아 대중은 공황 속에서 폭주한다.


크리슈나의 수레 (출처: 위키피디아)


누가 폭주하는 크리슈나의 수레를 멈출 수 있을까?
전문가 시스템이 과연 이 폭주를 잠재울 수 있을까?

언뜻 보기에는 그러하지만, 이미 충분히 전문화되어 버린 전문가 시스템은 이미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언어를 이 단계에서 이미 상실했으므로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전문가 시스템을 구성하는 전문가들은 합의된 내부결론을 도출하기는 커녕, 각자가 자부하는 더 세밀한 세부전문분야의 방패 뒤에 숨어 조율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할 공산만 더 크다.

그렇다면 개개의 대중들이 직접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럴 듯해 보이지만 역시 궁극적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우선, 이 해법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몹시도 비효율적이고,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결국은 전문가 시스템이 가지는 내재적 문제로 귀착되어 버린다. 대중이 기대하는 것은 전문가 시스템이 제공하는 현란한 전문용어가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단순하고 직관적인 신뢰이다. 시스템에 대한 이 신뢰는 더러는, 특히 고학력 사회에서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준-전문적인 이해에 바탕을 둘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 탑승객이 여행에 앞서 유체역학 공식을 열심히 공부해 드디어 엔진의 출력과 날개가 지탱하는 양력 사이의 오묘한 물리적 역학관계를 이해했다 치더라도, 그런 지식 자체만으로는 탑승자에게 안심을 주기에 충분치 않다. 탑승객은 비행기를 설계한 엔지니어들과, 정비사들과, 조종사들과, 관제요원들, 혹은 더 나아가 비행기에 들어가는 자재와 전자장비의 설계자들이 그들의 작업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들이 대중을 해할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믿음에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동의할 때 비로소 비행기에 오른다.

전문지식의 나열만으로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믿음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오히려 '어떤' 믿음이 '다른' 믿음을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닐까? 신뢰체계는 연쇄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의 고리가 끊어지면 그와 관련된 하위구조가 모두 붕괴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전문가 시스템이 제시하는 또 다른 전문적 지식은 붕괴를 원천적으로 막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 혼란만 더할 뿐이다.

아마도 이 순간부터 전문가 시스템은 추상적인 얼굴을 벗고 개개의 전문가들로 등장하게 되는 듯 하다. 전문가들은 확률적인 '전문가 시스템' 속이 아니라, 이제 개개의 존재로서 각개전투를 시작한다. 전문가들의 다수결 합의는 이 단계부터 무의미하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불안을 감소시켜주거나 혹은 증폭시켜줄 전문가들의 의견에 편향적으로 수렴될 공산만 커진다. 즉, 전문가 시스템은 여기서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하다. 실제로 문제의 해법은 이 전문가 시스템에 있지 않고, 다른 전문가 시스템에 있다. 이 두번째 전문가 시스템은 일종의 '조정자'이고, 사실 첫번째 전문가 시스템과 대중의 소통을 담당하고 있다. 대체로 문제는 첫번째 전문가 시스템 자체에 있지 않다. 문제는 이 조정자의 역할실패에서 비롯된다. 이 조정자 시스템에 대한 신뢰철회는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철회로 이어진다.

이 순간 대중이란 크리슈나의 수레는 방향을 잃고 폭주한다. 폭주하는 수레 밑에 깔리는 것은 대중 자신이라는 사실에 비극이 있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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