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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영화, {미스트 The Mist} 와 뷔리당의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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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草人 최광민 20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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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영화, {미스트 The Mist} 와 뷔리당의 당나귀



{The Mist} 2007 -- Wikimedia Commons


흔히 이 영화의 구도를 이성-신앙의 대립으로 파악하는 듯 하지만, 이 영화가 내게 준 첫 인상은 14세기의 유명론자 뷔리당에게 돌려지는 '당나귀 역설'이었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 De Caelo}'의 '개' 모티프에서 따온 듯한 '뷔리당의 당나귀' 역설은', 동일한' 두 항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이성적'으로 허용된 일인가와 관련된 역설이다.
 
뷔리당은 '이성'과 '의지'의 문제에 있어, 물론 이성에 따라 선택 가능한 더 나은 상황을 선택하는 것이 옳겠지만, 모든 가능한 결과를 숙고할 때까지 이성적 판단의 집행을 보류시키는 의지의 기능에 주목한다. 물론 뷔리당의 당나귀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와 스티븐 킹의 드레이튼이 처한 상황은 같지 않다. 전자의 동물들은 정확히 같은동량과 동질의 먹이라는 꽤 좋은 조건 하의 이성적 판단에서 고통당하다 아사하는 반면, 드레이튼의 상황은 대등한 조건 하의 선택은 아니다.

영화의 구도가 (다소 이성적으로 보이는) 드레이튼과 (매우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카모디를 주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전자의 다소 간의 냉정함과 후자의 과도한 광기가 선명한 대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드레이튼을 '이성'의 화신, 카모디를 '신앙'의 화신으로 볼 수는 없다. 드레이튼은 그냥 카모디의 '광신'을 믿지 않을 따름이며, 그가 수퍼마켓을 떠나기 직전부터 한 행동에는 그다지 '이성적' 근거는 없다. 그의 이성적 판단은 "광신자 무리와는 같이 있을 수 없다"와 "아들을 이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두가지 판단에 국한된다. 이 '이성적 판단' 어디에도 "따라서 수퍼마켓을 나가야 한다"는 판단의 근거는 없다.

수퍼마켓에 머무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카모디 부인이나, 밖에 나가면 뭔가 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드레이튼이나, 처음부터 안개 속에 아무 것도 없다며 사람들 몰고 밖을 나선 노튼이나 사실은 어떤 '믿음'에 근거해서 행동한 것이다. 행위는 이성에서 직접 유도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경우 의지와 '믿음'이 행위를 촉발한다. '의지'없는, 혹은 의지에서 촉발된 행동없는 '이성'은 죽은 것과 같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말한다.

...It may be objected, if man does not act from free will, what will happen if the incentives to action are equally balanced, as in the caseof Buridan's ass? [In reply,] I am quite ready to admit, that a man placed in the equilibrium described (namely, as perceiving nothing buthunger and thirst, a certain food and a certain drink, each equallydistant from him) would die of hunger and thirst. If I am asked, whether such an one should not rather be considered an ass than a man; I answer, that I do not know, neither do I know how a man should be considered, who hangs himself, or how we should consider children, fools, madmen,..."

드레이튼이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간 이유는, 그 밖에 괴물이 없어서도 아니고, 더 안전해서도 아니고, 다만 수퍼마켓 안에 더 있을 수 없었을 뿐이다. 즉, 즉각적인 위험을 피해서 미확인된 (그러나 상당히 예측가능한) 불확실성을 택했을 뿐이다. 즉, '비이성'을 피해 '이성'을 택한 것이라기 보다는, '수퍼마켓 안에서 사람들 손에 피살될 확실성'을 피해 '안개 속에서 괴물에게 죽을 지도 모를 불확실성'을 택했을 뿐이다. 사실 이 문장에서 사용된 확실성-불확실성은 같은 개념의 상대적 양을 뜻할 뿐이므로, 사실은 두 경우 다 어느 정도 불확실하기도 하고 두 경우 다 어느 정도 확실하기도 하다. 확실도의 양은 사실은 인간은 알기 힘들다. 우리는 시간을 초월해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고, 주어진 현재의 상황과 시간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직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영화의 경우처럼 선례가 없는 사태라면 이전의 관찰된 경험에서 유도한 확률을 들이댈 수 조차 없다.

내가 '지금'처한 상황조차 분명히 파악하지도 못하면서도, 인간은 현재를 보다 더 '확실'로, 미래를 보다 더 '불확실'로 인지하며, 그 불확실해 보이는 미래 속에 희망을 투사한다.

우리가 왜 그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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