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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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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기독교의 삼위일체론과 플로티노스의 존재유출론은 유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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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2017-04-18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모든 글과 번역문 들에 대해 (1) 복제-배포, (2)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 (3) 화면캡처를 금하며, (4) 인용 시 글의 URL 주소 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 최광민] 기독교의 삼위일체론과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는 유사할까? 

순서
  1. 기독교의 성부-성자-성령 vs 플로티노스의 일자-정신-세계혼은 유사할까?
  2. 삼위일체론은 유대교에서 유래했을까?
  3. 그리스 철학을 배제한 기독교 신학은 가능한 것일까?
  4.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기독교 신학에 준 나쁜 영향은 무엇일까?


Raphael, The School of Athens, 1509–1511, fresco at the Raphael Rooms, Apostolic Palace, Vatican City

# 방문자 포럼 질문에 대한 답변 (질문자: sejeong-na)




# 예전에 여기서 예수와 멤라에 대한 글을 읽은 후 오래간만에 다른 책에서 플로티노스에 관한 부분을 읽다가 삼위일체에 관련된 만할 부분을 보게되었습니다. 바로 일자와 일자의 유출로서 나오는 정신, 영혼에 관한 부분 에 대한 부분인데요 정말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흡사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의문이 생겼습니다.

[답변] 최광민

우선은 에띠엔 질송의 {중세철학사}의 첫 3장을 읽어보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12/3.html

제 생각엔, 우선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와 원조 플라톤주의, 그리고 신-플라톤주의로 대체되는 중기-플라톤주의를 구별하시는 작업부터 하셔야 합니다. 

보통 신-플라톤주의는 AD 3세기 중반에 플로티노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여깁니다만, 알렉산드리아에서 플로티노스의 스승이었던 암모니아스 사카스는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 교부들이나 혹은 반-기독교 철학자였던 포르피리우스 등에 의해 본인이 기독교도 혹은 그의 부모가 기독교도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모니우스 사카스 본인 혹은 그의 부모가 "정통" 기독교도였는지, 혹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성하던 다양한 그노시스파 이단에 속한 기독교도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노시스도 한 발은 기독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암모니우스 사카스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플로티누스도 "기독교/그노시스로 채색된 버전"의 중기-플라톤 철학에 기초해서 그의 신-플라톤주의를 개창했다고 보실 수 있습니다. 혹자는 암모니우스 사카스 본인이 신-플라톤주의의 실질적 창시자라고 보기도 합니다.

기독교 이단인 그노시스 역시 중기-플라톤 철학 중 보다 신비적 성향이 강조된 철학이 기독교 교리와 합체된 것이라고 보셔도 대체로 무방합니다. 즉, 만약 삼위일체적 개념이 3세기 이전에 이미 출현한 것이라면, 이를 두고 기독교가 "플로티노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설명이 됩니다. 중기-플라톤주의나 그노시스의 영향을 말할 수는 있겠죠.

아래 글에 대략 적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7.html

"일자의 유출"이란 개념은 사실 원래의 플라톤철학 (아카데미아)이라기 보단, 중기-플라톤주의 철학자들이 플라톤의 {티마에오스}에 나오는 몇가지 단서를 피타고라스 철학 등과 교류하면서 확대한 것입니다. 이들의 작업에 등장하는 모나드-디아드의 관계는 기독교의 성부-성자/로고스의 관계와 좀 다릅니다. 중기-플라톤주의의 견해로 본다면, 모나드는 존재를 넘어서 있는 존재이고 디아드는 존재의 시작점, 혹은 현상계를 시작점의 지위를 가집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성자/로고스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견해를 따르더라도 (성부와 "본질"적으로 하나인 한) 존재를 넘어서 있습니다. 단, 성자/로고스가 창조의 개시자의 지위를 갖기는 하죠.

아울러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말하는 '아니마 문디 (피지케 코스무)" 혹은 "세계혼"의 기독교의 "성령"과는 꽤 다른 개념입니다. 세계혼은 누스(=정신)과 물질세계를 연결하는 동시에, 생물과 무생물 안까지 관통해 있습다. 기독교에서 성령을 이렇게 봤던가요?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혼의 개념을 중세기독교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두고 서기 12-13세기에 중세신학계에서는 큰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모나드-디아드-아니마문디 를 기독교의 성부-성자-성령과 "삼위일체" 형식으로 나란히 놓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유대교 본래의 것인가? 본래의 것이 아닌가? 본래의 것이 맞다면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답변] 최광민


제가 쓴 아래 세 글을 읽고 직접 평가해 보시길 권합니다.


아울러, 기독교 교부들의 입장은 삼위일체 혹은 '신의 존재방식'에 관한 '신비'는 '감춰져있다가 (예수에 의해) 드러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꼭 히브리 성서나 유대교에 그 개념이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죠 (물론 AD 2세기 이후의 기독교 교부들은 그 암시들이 히브리 성서에도 명시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독교 본래의 것이 맞다면, "유대교에선 감춰진 것이 후대에 드러난 것"으로 보는게 기독교 입장에선 제일 적절하겠죠

최광민




# 기독교의 신학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등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만일 이 둘의 철학을 제외하고 기독교의 신학은 존재가 가능한 것인가?

[답변] 최광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북아프리카의 대표적 라틴교부였던 테르툴리아누스는 삼위일체를 본격적으로 정의하기 시작한 대표적인 서방 측 교부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저작들 속에서 기독교를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철학 등으로 채색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완강히 거부합니다. 즉, 적어도 테르툴리아누스가 보기에 삼위일체 혹은 기독교 신학은 이 두 철학 없이도 지탱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기독교 전기의 플라톤 철학의 영향이나, 혹은 중세 기독교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에 대해 말하면서 정확히 어떤 영향인지에 대해서는 뭉뚱그려서 말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은 (정확히는 아랍철학자들에 의해 신-플라톤주의로 채색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보다 후대의 일이니 열외로 하고 플라톤 철학 (중기, 그노시스, 신플라톤주의)만 본다면, 기독교 교부들이 플라톤 철학을 높게 평가하고 종종 철학적 개념을 거기서 빌려온 이유는 플라톤 철학이 일종의 단일신론을 지지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모나드), 또 존재유출론에서 로고스 혹은 누스 (정신) 역할이 성서에 묘사된 태초의 성자/로고스의 역할과 비슷하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로고스론이 기독교 초기 교부들이 플라톤주의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주요 이유입니다. 중기-플라톤철학자로 분류되는 (그러나 독창적인) 유대인 철학자 필론의 로고스론도 기독교의 그것과 접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부들은 플라톤주의의 영원창조설이라든지 환생설 같은 것은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 위 두 철학이 기독교에게 준 안 좋은 영향이 있다면 무엇일까?

[답변] 최광민

기독교 교부들이 마냥 플라톤 철학에 대해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그들은 중기-혹은 신-플라톤주의의 우주관을 거부했습니다. 기독교의 세계관은 단선적, 즉 창조에서 종말을 향해 갑니다. 플라톤주의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형상으로서의)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를 상정합니다. 그래서 중세에 아랍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서유럽에 유입될 때 이런 세계관이 기독교 세계관과 충돌했습니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교회에 수용된 것은 좀 아이러니 하죠). 아울러 당시에 아니마 문디/세계혼 개념과 성령의 개념이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요샌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진보 쪽에서 이 "세계혼" 개념을 "피조세계와 함께 고통받는 성령"의 개념과 뒤섞으려 하기도 하더군요.

이 글에 짭게 정리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질송의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질송이 토미즘 철학자이기 때문에,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blog-post_3448.html

제가 보기에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기독교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교리를 해설하기 위한 보조도구로 사용된 철학적 사유와 개념이, 신학적 사유 그 자체가 되어 변질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히 이데아 개념에서 영/육을 분리하고, 물질계아 영계를 분리해서 사유하는 것이 범람하게 된 점을 우선으로 꼽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령, 수학문제를 풀 때 공식을 암기하고 있으면 문제를 풀이하는 전개과정에서 일일히 모든 개념을 증명하면서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교부들이 이들 철학을 도입한 이유 역시 "이미 잘 정의된" 여러 철학적 개념을 일일히 재정의/증명할 필요없이 그냥 도입해서 기독교 신학을 전개하면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로고스, 단자 (모나드), 정신 (누스) 같은 개념들이 그런 것이겠죠. 문제는 같은 단어가 다른 철학에서 조금씩 상이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잘 통제하지 않고 "철학적 사유"를 계속 전개하게 되면 나중에는 전혀 엉뚱한 결론들이 도출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울러 신-플라톤주의적 사유 가운데 "신성의 분유", 즉 피조물 가운데 신성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은 중세신비주의에서 유행했고, 오늘날 뉴에이지적 사유에 직접 도입되어 있습니다.





# 플로티노스는 일자에게서 처음으로 유출된 정신에서 다시 영혼이 유출된다 봤죠. 제가 읽은 책은 이를 필리오케 논쟁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시나요?[플로티노스의 영향을 받은 초기 기독교에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처럼 성부에게서만 성령이 나온다고 주장했는데, 6세기경 서방교회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 성자에게도 나온다는 이른바 필리오케설을 주장함으로써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큰 논란이 벌어졌다] -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김용규

[답변] 최광민


중기-플라톤주의자나 특별히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모나드(일자) > 누스(정신) > 아니마 문디 (세계혼) 순서로 발출됩니다. 그리고 세계혼은 누스와 연결된 동시에 만물에도 퍼져있습니다. 

김용규씨는 그 책에서,  "플로티노스의 영향을 받은 초기 기독교에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처럼 성부에게서만 성령이 나온다고 주장했는데...."라고 썼다 했는데, 제가 보기엔 본인의 진술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위에 인용한 김용규씨 글에서처럼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플로티노스의 영향 아래 있었고 따라서 성령을 세계혼과 유사하게 인식했다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그 성령이 일자에 해당할 성부가 아닌 누스에 해당할 성자에게서 직접 발출된다고 설명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그렇게 진술하지 않습니다. 사실 성자와 성령이 "성부로부터" 온다는 표현은 이미 {요한 복음서}에 진술되어 있습니다. 

우선, 성부로부터 성자가 옴 (~발출 ἐξέρχομαι 엑세르코마이)에 대한 예수 본인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εἶπεν οὖν αὐτοῖς ὁ Ἰησοῦς εἰ ὁ θεὸς πατὴρ ὑμῶν ἦν ἠγαπᾶτε ἂν ἐμέ ἐγὼ γὰρ ἐκ τοῦ θεοῦ ἐξῆλθον καὶ ἥκω οὐδὲ γὰρ ἀπ᾽ ἐμαυτοῦ ἐλήλυθα ἀλλ᾽ ἐκεῖνός με ἀπέστειλεν --- Greek {GNT}

42 Dixit ergo eis Jesus: Si Deus pater vester esset, diligeretis utique et me; ego enim ex Deo processi, et veni: neque enim a meipso veni, sed ille me misit.  --- Latin {Vulgata}

Jesus said unto them, If God were your Father, ye would love me: for I proceeded forth and came from God; neither came I of myself, but he sent me. --- KJV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나님이 너희의 아버지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에게서 와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복음} 8:42

다음은 제자들을 떠나 성부에게로 간 후, "성부로부터" "자신(=예수)이"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말하는 예수의 말 입니다.

ὅταν δὲ ἔλθῃ ὁ παράκλητος ὃν ἐγὼ πέμψω ὑμῖν παρὰ τοῦ πατρός τὸ πνεῦμα τῆς ἀληθείας ὃ παρὰ τοῦ πατρὸς ἐκπορεύεται ἐκεῖνος μαρτυρήσει περὶ ἐμοῦ

26 Cum autem venerit Paraclitus, quem ego mittam vobis a Patre, Spiritum veritatis, qui a Patre procedit, ille testimonium perhibebit de me; 

But when the Comforter is come, whom I will send unto you from the Father, even the Spirit of truth, which proceedeth from the Father, he shall testify of me: (KJV)John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 한국어 개역개정, {요한복음} 15:26



서방교회가 "또한 아들에게서"란 구절을 추가해 필리오케 논쟁이 발생하기 이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원문은 "성자는 성부로부터 낳아지고,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오신다"고 표현합니다.

καὶ εἰς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τὸ Κύριον καὶ Ζωοποιόν, τὸ ἐκ τοῦ Πατρὸς ἐκπορευόμενον, 

.....[우리는 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자 성부로부터 오시는/발출되는 성령을 [믿는다]....

아래는 {니케아 신조}에서 보완된 AD 381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전문입니다.

Πιστεύομεν εἰς ἕνα Θεὸν Πατέρα παντοκράτορα ποιητὴν οὐρανοῦ καὶ γῆς ὁρατῶν τε πάντων καὶ ἀοράτων καὶ εἰς ἕνα Κύριον Ἰησοῦν Χριστὸν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τὸν Μονογενῆ, τὸν ἐκ τοῦ Πατρὸς γεννηθέντα πρὸ πάντων τῶν αἰώνων, Φῶς ἐκ Φωτός, Θεὸν ἀληθινὸν ἐκ Θεοῦ ἀληθινοῦ, γεννηθέντα οὐ ποιηθέντα, ὁμοούσιον τῷ Πατρί, δι' οὗ τὰ πάντα ἐγένετο·τὸν δι' ἡμᾶς τοὺς ἀνθρώπουςκαὶ διὰ τὴν ἡμετέραν σωτηρίαν κατελθόντα ἐκ τῶν οὐρανῶν, καὶ σαρκωθέντα ἐκ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καὶ Μαρίας τῆς παρθένου, καὶ ἐνανθρωπήσαντα, σταυρωθέντα τε ὑπὲρ ἡμῶν ἐπὶ Ποντίου Πιλάτου, καὶ παθόντα, καὶ ταφέντα, καὶ ἀναστάντα τῇ τρίτῃ ἡμέρᾳ κατὰ τὰς γραφὰς, καὶ ἀνελθόντα εἰς τοὺς οὐρανοὺς, καὶ καθεζόμενον ἐν δεξιᾷ τοῦ Πατρὸς, καὶ πάλιν ἐρχόμενον μετὰ δόξης κρῖναι ζῶντας καὶ νεκρούς, οὗ τῆς βασιλείας οὐκ ἔσται τέλος· καὶ εἰς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τὸ Κύριον καὶ Ζωοποιόν, τὸ ἐκ τοῦ Πατρὸς ἐκπορευόμενον, τὸ σὺν Πατρὶ καὶ Υἱῷ συμπροσκυνούμενον καὶ συνδοξαζόμενον, τὸ λαλῆσαν διὰ τῶν προφητῶν·εἰς μίαν ἁγίαν καθολικὴν καὶ ἀποστολικὴν ἐκκλησίαν ὁμολογοῦμεν ἓν βάπτισμα εἰς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προσδοκῶμεν ἀνάστασιν νεκρῶν, καὶ ζωὴν τοῦ μέλλοντος αἰῶνος. ἀμήν.

Credimus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factorem coeli et terrae, visibilium omnium et invisibilium,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cum,de Patre natum ante omnia saecula;Deum verum de Deo vero; natum, non factum; ejusdemque substantiae qua Pater est; per quem omnia facta sunt;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nostram salutem descendi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in Maria virgine homo factus, crucifixus pro nobis sub Pontio Pilato, sepultus, resurrexit tertia die, ascendit ad coelos, sedet ad dexteram Patris;inde venturus est cum gloria judicare vivos ac mortuos, cujus regni non erit finis. Et in Spiritum sanctum, ominum ac vivificatorema Patre procedentem, qui cum Patre et Filio adoratur et glorificatur, qui locutus est per Prophetas;in unam catholicam atque apostolicam Ecclesiam. Confitemur unum baptismum in remissionem peccatorum; speramus resurrectionem mortuorum, vitam futuri saeculi. Amen.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the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of all that is, seen and unseen. And [we believe]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begotten Son of God,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of one being with the Father.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For us, humans, and for our salvation, he came down from heaven, was incarnate of the Holy Spirit and the virgin Mary, and became fully human. For our sake he was crucified under Pontius Pilate. He suffered death and was buried. He rose again on the third day in accordance with the Scriptures.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will come again in glor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his kingdom will have no end. And [we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Lord, the giver of life,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who in unity with the Father and the Son is worshiped and glorified, who has spoken through the prophets. [We believe] in one holy universal and apostolic Church. We acknowledge one baptism for the forgiveness of sins. We look for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ife of the world to come. Amen.

우리는 한 분이신 신, 전능하신 성부,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만물을 창조한 분을 믿는다. 또한 한 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신의 독생자, 세상 이전에 성부로부터 나신 자, 빛으로부터의 빛, 참 신으로부터의 참 신이시며 (Deum verum de Deo vero), (성부가) 낳으시되 피조되지 않으셨고,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셨다 (ὁμοούσιον τῷ Πατρί / ejusdemque substantiae qua Pater est). 그는 만물이 생겨나게 하셨고, 우리 인간을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와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육체를 입어 사람이 되셨고,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받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성서대로 3일 만에 부활/승천하여 성부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령을 믿으니, 성령은 주님이며 생명을 주시는 자로, 성부로부터 나오시며 (ἐκπορευόμενον /procedentem), 곧 성부 및 성자와 함께 경배받으시며, 함께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해 오신 분이다우리는 거룩하고 보편적인 (카톨릭) 사도적인 하나의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죄의 용서을 위한 한 세례를 고백한다.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다가올 세상에서의 삶을 기다린다. 아멘. --- 번역: 최광민



사실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성부 > 성자 > 성령의 발출이란 도식을 설명한 AD 2세기 카르타고 교부 테르툴리아누스가 어찌보면 위와 같은 플라톤 혹은 플로티노스의 도식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는 동시에 "성령은 진실로 성부와 성자로부터 온다"고도 진술합니다. 이런 이해가 라틴교회의 "필리오케" 전통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4] For what man knows the things which be in God, but the Spirit which is in Him? 1 Corinthians 2:11 But the Word was formed by the Spirit, and (if I may so express myself) the Spirit is the body of the Word. The Word, therefore, is both always in the Father, as He says, I am in the Father; John 14:11 and is always with God, according to what is written, And the Word was with God; John 1:1 and never separate from the Father, or other than the Father, since I and the Father are one. John 10:30

신 안에 계신 그의 영 이외에 누가 신의 생각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말씀/로고스는 굳이 말한다면 성령에 의해 형상을 갖추며, 또 성령은 로고스의 몸이다. 그래서 성자/로고스가 "나는 아버지 안에 있다"라고 말하듯, 로고스는 성부 안에 언제나 있는 동시에, 또한 성부와 함께 계신다. 이것은 "로고스/말씀은 신과 함께 계셨다"라고 기록된 바와 같다. 그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말씀/로고스는 결코 성부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며, 성부가 아닌 것으로부터도 분리되지 않는다 / 번역: 최광민

[5] haec erit προβολή veritatis, custos unitatis, qua prolatum dicimus filium a patre sed non separatum. protulit enim deus sermonem, quemadmodum etiam paracletus docet, sicut radix fruticem et fons fluvium et sol radium : nam et istae species προβολαί, sunt earum substantiarum ex quibus prodeunt. nec dubitaverim filium licere et radicis fruticem et fontis fluvium et solis radium, quia omnis origo parens est et omne quod ex origine profertur progenies est,

This will be the prolation, taught by the truth, the guardian of the Unity, wherein we declare that the Son is a prolation from the Father, without being separated from Him. For God sent forth the Word, as the Paraclete also declares, just as the root puts forth the tree, and the fountain the river, and the sun the ray. For these are προβολαί, or emanations, of the substances from which they proceed. I should not hesitate, indeed, to call the tree the son or offspring of the root, and the river of the fountain, and the ray of the sun; because every original source is a parent, and everything which issues from the origin is an offspring.

이것이 진리가 가르치는 발출 
προβολή이며, 신의 단일성이 보존되는 방식이며, 그러기에 우리는 성자가 성부로부터 분리됨 없이 발출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신이 로고스를 발출하는 것은 파라클레토스 (성령)이 선언하듯이 뿌리가 나무를, 샘이 강물을, 태양이 햇빛을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그 원천으로부터 대상이 발출 προβολαί혹은 유출된다는 것이다. 진실로 나는 나무와 강물과 햇빛이 각각 뿌리와 샘물과 태양의 아들 혹은 자식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말할 것이다. 모든 것의 원천은 그 아버지이며, 그 원천으로부터 나온 것은 그 자식이기 때문이다/ 번역: 최광민

multo magis sermo dei qui etiam proprie nomen filii accepit: nec frutex tamen a radice nec fluvius a fonte nec radius a sole discernitur, sicut nec a deo sermo. [6] igitur secundum horum exemplorum formam profiteor me duos licere deum et sermonem eius, patrem et filium ipsius: nam et radix et frutex duae res sunt sed coniunctae, et fons et flumen duae species sunt sed indivisae, et sol et radius duce formae sunt sed cohaerentes.

Much more is (this true of) the Word of God, who has actually received as His own peculiar designation the name of Son. But still the tree is not severed from the root, nor the river from the fountain, nor the ray from the sun; nor, indeed, is the Word separated from God. Following, therefore, the form of these analogies, I confess that I call God and His Word— the Father and His Son— two. For the root and the tree are distinctly two things, but correlatively joined; the fountain and the river are also two forms, but indivisible; so likewise the sun and the ray are two forms, but coherent ones.

그는 '아들'이라는 그의 특별한 지위를 성부로부터 받는 신의 로고스 (=성자)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나무나 강물이나 햇빛은 각각 뿌리나 샘물이나 태양으로부터 끊어지지 않는다. [6] 그러기에 이 비유를 통해 나는 신과 그의 로고스, 즉 성부와 성자를 '두 존재'로 고백한다. 뿌리와 나무가 명백히 다른 두 대상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듯, 샘물과 강은 서로 다른 모습을 가졌으나 나뉠 수 없는 것처럼, 태양과 햇빛이 서로 다르지만 서로 연결된 하나인 것과 같다
 / 번역: 최광민

[7] omne quod prodit ex aliquo secundum sit eius necesse est de quo prodit, nec ideo tamen est separatum. secundus autem ubi est, duo sunt, et tertius ubi est, tres sunt. tertius enim est spiritus a deo et filio, sicut tertius a radice fructus ex frutice et tertius a fonte rivus ex flamine et tertius a sole apex ex radionihil tamen a matrice alienatur a qua proprietates suas ducit. ita trinitas per consertos et connexos gradus a patre decurrens et monarchiae nihil obstrepit et oeconomiae statum protegit.

Everything which proceeds from something else must needs be second to that from which it proceeds, without being on that account separated. Where, however, there is a second, there must be two; and where there is a third, there must be three. Now the Spirit indeed is third from God and the Son; just as the fruit of the tree is third from the root, or as the stream out of the river is third from the fountain, or as the apex of the ray is third from the sun. Nothing, however, is alien from that original source whence it derives its own properties. In like manner the Trinity, flowing down from the Father through intertwined and connected steps, does not at all disturb the Monarchy, while it at the same time guards the state of the Economy (οἰκονομία oeconomiae)

한 원천에서 나오는 것은 그 원천에 대해서는 분리되지 않는 제 2의 존재이다. 그런데 두번째란 것은 둘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세번째가 있다는 것은, 즉 셋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성령은 진실로 신과 성자로부터 왔다
. 나무에 열리는 과일이 뿌리로부터, 혹은 빛의 끝단이 태양으로 부터는 세번째로 나온 것이 된다. 한 원천에서 나온 것들은 한 속성에서 온 것이므로 서로 다르지 않다. 이런 식으로 삼위일체 역시 성부로부터 흘러나와 서로 얽힌 관계를 맺으나 결코 신의 단일성을 해치지 않는 동시에, 단일성 안의 경세를 지키는 것이다 / 번역: 최광민 --- Against Praxeas, Chapter 8. Though the Son or Word of God Emanates from the Father, He is Not, Like the Emanations of Valentinus, Separable from the Father. Nor is the Holy Ghost Separable from Either. Illustrations from Nature   / 번역: 최광민



원래 고대의 표준공식에 따르자면 (성서 구절에 따라), 성자는 "성부로부터 낳아지고 (혹은 나오고)", 성령은 "성부에게 나와" "성자에 의해 / 성자를 통해 보내진다"입니다.  사실은 이게 테르툴리아누스가 말하고자 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공식은 플로티노스의 공식과 사실은 꽤 다릅니다. 필리오케란 용어에 대한 서방의 이해 역시 나름 성서 구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요?  그런데 그는 사실 기독교에 대한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맹비난한 인물입니다. 게다가 그가 활동한 시점은 플로티노스가 자신의 철학, 즉 신-플라톤주의를 완성하기도 훨씬 전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입장을  그의 {이단자들/Heretics} 7장에서 인용합니다.

For philosophy is the material of the world’s wisdom, the rash interpreter of the nature and dispensation of God. Indeed heresies are themselves instigated by philosophy… What indeed has Athens to do with Jerusalem? What has the Academy to do with the Church? What have heretics to do with Christians? Our instruction comes from the porch of Solomon, who had himself taught that the Lord should be sought in simplicity of heart. Away with all attempts to produce a Stoic, Platonic, and dialectic Christianity! We want no curious disputation after possessing Christ Jesus, no inquisition after receiving the gospel! When we believe, we desire no further belief. For this is our first article of faith, that there is nothing which we ought to believe besides.

...철학은 세상지식이며 신의 속성과 섭리를 대략 해석할 따름이다. 진실로 모든 이단은 철학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아테네 철학자들이 예루살렘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가 교회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단자들이 도대체 기독교도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의 가르침은 솔로몬 (성전)의 문간에서 온 것으로, 솔로몬은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스토아적이고, 플라톤적이고,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변증론적 기독교를 추구하지 말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가진 후로 더 이상 호기심 찬 논쟁을 하지 않게 되었고, 복음을 받은 후로 탐구를 더이상 원치 않는다. 믿을 때 우리는 더 이상의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첫번째 신조이며, 이것 이외에 우리가 더 믿어야 할 것은 없다.... ---- 테르툴리아누스, {이단자들} 7장 / 번역: 최광민

 전 필리오케가 플로티노스의 주장과 관계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최광민




# 그렇다면 제 성령 이해가 아주 이상한 생각은 아니군요. 꼭 세계속에서 공감하시는 하나님을 주장한다고 해서, 범신론이라고 볼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기성 교인들은 성령의 내주를 이야기 하지요. 오순절 사건이나, 구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요한 계시록 3장 20절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고린도전서 3장 16절 같은기타 구절을 근거로 해서요. 그렇게 되면 물론 그 사람 자신이 성령이 되는 것은 아니나, 성령은 내주된 사람과 같이 느끼는 것 아닙니까? 또 내주된 사람에게 거하는 성령 자체가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신의 3인칭적 시점(ex: 그들의 고통을 보았다 뭐 등)에서 말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답변] 최광민


플라톤/플로티노스 식의 세계혼 개념은, 플로티노스식으론 "만유에 신성이 내재해 있다", 혹은 보다 플라톤 식으론 "우주 전체는 개개의 생명을 품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란 개념입니다. 

이 관점에서 성령을 이해하게 되면 신 혹은 성령이 피조물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신 혹은 성령 그 자신이 피조물의 고통을 당한다는 식으로 풀이됩니다. 사실상 이런 범신론 혹은 범유재신론의 입장에선 피조물과 신/성령이 분리되지 않으니까, 피조물의 고통은 곧 그 상위체인 신의 고통이란 셈이죠. 많은 소위 환경신학이나 일부 (여성)해방신학에서 이런 식으로 풀이하는 시도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에서 피조물의 고통에 대해 신이 말할 때, 신은 "내 백성"의 고통을 "보았"고 혹은 "들었다"는 제 3자적 시점을 취합니다. 이것은 제 3자 관점에서의 공감이지, 범신론/범재신론적 공감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결국 "신 자신의 (고통)경험"인지 혹은 "신의 공감과 자비"인지가 아마 포인트겠죠. 

제가 보기엔 전자는 범신론 방향으로 너무 간 느낌이 있고, 후자 만으로 이해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하며, 굳이 무리한 사변을 확장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게 제 판단입니다. 

세계혼에 대한 개념은 기본적으로 이 세계혼이 인간 이외의 생물 및 무생물계에도 뻗어있다는 생각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플라톤철학자들과 일부 기독교 교부들은 천체도 일종의 영체로 생각했습니다). {로마서}에 등장하는 성령의 묘사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를 볼 때, 성령은 성령을 받은 사람 안에 (그 사람과 혼합되지 않고 별개로) 내재합니다. 그럼 기독교의 성령은 플라톤의 세계혼 처럼 인간 이외의 다른 피조물에도 "내재"하는가? 이것이 아마도 제 비판의 핵심이 되겠죠?

신학자 혹은 종교철학자들은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논문 쓰기야 좋겠죠).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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