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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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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문창극 vs. 이사벨라 L. 비숍: "게으른 조선민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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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2014-06-15

제목

[© 최광민] 문창극 vs. 이사벨라 L. 비숍: "게으른 조선민족" ?

순서
  1. 문창극 총리후보의 어떤 해명 
  2. 비숍의 진술 1: 게으른 조선인들?
  3. 비숍의 진술 2: 연해주에서의 조선인들
  4. 정리


#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어떤 해명

총리후보자 문창극씨는 2011년 6월 온누리교회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강연제목 : 기회의 나라를 만들어 주십시오 ]

[전략]

1890년 영국의 비솝 여사가 쓴 “조선나라와 그 이웃나라들”에서 발췌 :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찌나 더러운지 일본 사람들이 거주하는 부산의 동래를 가보니 동래 현은 그렇게 깨끗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사는 지역은 이렇게 깨끗하지만 조선 사람들이 사는 부산진은 왜 이럴까. 서울도 마찬가지다. 냄새가 나고 다닐 수도 없을 정도였다. 영월에 가서 잠을 청했는데 빈대나 이 때문에 잠을 못잘 뿐더러 잠자리를 동네 수많은 사람들이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지켜볼 정도였다. 여행을 하다가 양평에 까지 당도해서 양평군의 사정을 알아보았는데 그 조그만 동네에 이방이 800명이나 있었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 사람들을 다 누가 먹여살릴까. 백성들이 먹여살린다. 이방들은 사람들의 집에 뭐가 얼마나 몇 개씩 있는지 다 알고 있다. 어떤 백성이 열심히 일해서 무언가 남아서 가재도구를 새로 마련하면, 이방이 그 백성을 불러서 무조건 곤장을 친다. 네 죄는 네가 알지 어서 네 죄를 고하라라고 말이다. 조선 사람들은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왜? 일을 해도 남는건 다 빼앗겨 버리니 말이다. 그런데 연해주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가서 목도해보니 깜짝 놀랐다.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조선인과 달리 연해주의 조선인들은 러시아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살고 훨씬 더 깨끗하게 살고 있었다. 나라가 잘못되어서 이런 것이다. 백성이 뭘 얻기만 하면 곤장을 쳐서 빼앗아버리는 나라에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중략]

그러면... 왜 우리나라를 보호해주셨으면 일본한테서 합방을 당하지 않게 하시지 왜 하나님은 이 나라를 일본에게 당하게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다. 속으로 말이다. 하지만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조 오백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해서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그 고난 속에서 삼십육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의 사십년 생활을 하고서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듯이 삼십육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에게 독립을 허용하신 것이다.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다.

[중략]

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들어왔지만 오백년간 내려왔던 조선의 못된 관습, 게으름 이런 거는 일제시대에도 여전했다.

[중략]

양반들이 얼마나 게으르고... 그때 양반들은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일하면 양반들은 수치라고 생각했다. 양반들은 긴 담뱃대에다가 담배 피고, 앉아서 독경, 독경이 아니고 강독 같을 것을 했다. 조선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 거였다. 그러한 게으른 것을 깨자고 한 것이 그 때 들어온 기독교였다.

[중략]

당시 윤보선은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윤보선 집은 안국동에 백칸짜리 집이 있던 부자집이었다. 한국의 부모에게 연락하면서 윤보선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한다. “학비를 보내시오. 내가 문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소.” 윤보선이 부모에게 요청한 생활비는 800파운드. 아마 쌀이 백가마니 이상 들었을 것이다. 윤치호는 이를 두고 통탄한다. 그런 비싼 돈을 주고 영국 에딘버러에 가서 그런 공부를 한다고 말이다. 윤치호는 우리나라에 당장 필요한 건 나라를 부강시키고 국권을 회복시키기 위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윤치호는 이를 꾸짖는 편지를 썼다. 조선 유학생들은 일하기 싫어한다. 그리고 앉아서 순 말로만 하는 것을 좋아한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있었다고 말이다.

[중략]

그러니까 우리나라 이조 말기의 우리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 먹는 게 아주 그냥 몸에 박혀 있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이런 나라였다.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들이 와서 변화를 주신 것이다. ...

[후략]

2104년 6월 12일, 문 후보자 측은 이 발언은 윤치호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이는 후보자가 직접 발언한 내용이 아니라 과거 윤치호의 발언을 인용한 것...

2014년 6얼 15일, 총리후보자 문창극씨는 이 소위 '민족비하' 발언의 출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직접 해명한다.

"....'조선 민족이 게으르다'는 말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 1894년 영국 왕립지리학회 회원인 비숍 여사의 기행문 '조선과 그 이웃나라'에 나온다...당시 조선의 위정자들과 양반들의 행태와 처신을 지적한 것이고 백성 수탈에만 열을 올렸던 당시 위정자들 때문에 나라를 잃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

검토해 보자.




# 비숍의 진술 1: 게으른 조선인들?

영국국교회 (=성공회) 사제/목사의 딸로 (의료)선교사를 꿈꾸던 여행가 이사벨라 L. 비숍은, 1894년 구한 말 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하고 3년 간 조선과 중국 일대를 여행했다. 이 와중에서 동학란과 청일전쟁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이 여행을 기행문 형식으로 발표한 {조선과 이웃나라들}은 1897년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그럼 한번 이사벨라 L. 비숍의 {조선과 이웃나라들, Korea & Her Neighbours}의 해당부분을 찾아서 확인해 보자.


https://archive.org/details/koreaandherneig06birdgoog/page/n8/mode/2up

이 책 전체에서 "lazy"란 단어는 몇 번 등장하는데, 문창극씨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두번째 사례인 듯 하다. 85-86페이지에서 해당부분을 인용한다.

....The villages from about 50 li up the Han from Seoul may all be described as " farming villages." Lawer down they export large quantities of firewood and charcoal for the daily needs of a capital which has left itseK without a stick available for fuel in its immediate neighbourhood. No special industries exist. The peasants make their rude wooden ploughs and spades shod with iron, and two villages within 40 li of Seoul supply them with their ang-pahs and culinary utensils of the same coarse ware, which stand fire and serve instead of iron pots. Such iron utensils as are used are imported from Seoul along with salt, and foreign piece goods for dress clothes, and are paid for with rice, grain, and tobacco...[증략]...

...The population of the Han valley is not poor, if by poverty is to be understood scarcity of the necessaries of life. The people have enough for themselves and for all and sundry who, according to Korean custom, may claim their hospitality. Probably they are all in debt; it is very rare indeed to find a Korean who has not this mill stone round his neck, and they are destitute of money or possessions other than those they absolutely require. They appear lazy. I then thought them so, but they live under a regime under which they have no security for the gains of labour, and for a man to be reported to be 'making money' or attaining even the luxury of a brass dinner service, would be simply to lay himself open to the rapacious attentions of the nearest mandarin and his myrmidons, or to a demand for a loan from an adjacent yang-han. Nevertheless, the homesteads of the Han valley have a look of substantial comfort....


만약 생필품 부족을 가지고 빈곤을 가늠한다면, 한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다. 사람들은 충분히 자족적이며, 조선의 관습을 따른다면 그들 각자는 남을 대접할 정도는 된다. 아마 그들 모두는 채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빚을 짊어지고 있지 않는 조선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 이외엔 돈이나 물자의 부족을 겪고 있다. 그들은 무기력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노동의 댓가가 보장되지 않는 그런 정권 하에 살고 있고, 돈 좀 벌었거나, 심지어 놋쇠식기 같은 사치품을 산다해도, 결국은 탐욕스런 주변 관헌들이나 그 졸자들의 수탈대상이 되거나, 혹은  근방 양반들에게 빚독촉만 받게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 유역의 살림은 충분히 안락하다..... / 번역: 최광민

이사벨라 L. 비숍이 여기 어디에서 "조선민족"이 게으르다라고 말하고 있을까?

이 내용은 제 6장 [THE HAN AND ITS NEIGHBOURHOOD / 한강과 인근 지역]에 등장하는 기술로서, 당시 서울 (즉, 사대문 안)에서 한강을 타고 50리 정도 안에 있는 농촌 지역에 대한 묘사다. 따라서 굳이 말하자면 이 진술은 '조선 민족'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는, 이 '한강 유역권 농민'들에 대한 비숍의 인상이다. 비숍의 평가에 따르면, 이 지역은 생필품의 공급이란 측면에서만 본다면 가난하지 않았으며 꽤 자족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백성들 누구나가 그랬던 것 처럼, 이들 역시 (양반들로부터) 빚을 떠안고 살고 있을 것으로 비숍은 추정한다.

우선, 이들에 대한 비숍의 평가는 단정적으로 "이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게을러 보인다 / They appear lazy", 혹은 더 정확히 "무기력해 보인다"이다. 왜? 바로 뒤 문장에서 비숍은 자신이 그들을 "무기력"하다고 한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진술하는데, 이들 농민들은 개인부채와 백성들에게 불리한 납세제도 등으로 인해 열심히 일해봐야 어짜피 착취만 당할 뿐이기 때문이란 것. 일종의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같은 심리라고나 할까?

그래서 비숍은 "조선민족"이 게으르며 그것이 조선인의 "천성"이란 식으로 말하면서 빈곤의 원인을 개인내부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조선 말 기득권층의 탐욕과 착취란 외부요인이 농민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이 두번째 진술에 대해 문창극씨도 해명에서 나름 언급하긴 했지만, 비숍이 원래 진술한 문맥 속에서의 인과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다른 측면을 강조하다보니 본문의 진의를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 비숍의 진술 2: 연해주의 조선인들

같은 책 제 2권 제 19장에서 비숍이 조선-러시아 국경지역을 여행하면서, 연해주 일대에 정착한 조선인 정착촌에 대해 비숍은 이렇게 적었다.

.....In Korea, I had learned to think of Koreas as the dregs of a race, and to regard their condition as hopeless, but in Primorsk I saw reason for considerably modifying my opinion. It must be bourne in mind that these people, who have raised themselves into a prosperous farming class, and who get an excellent character for industry and good conduct alike from Russian police officials, Russian setters, and military officers, were not exceptionally industrious and thrifty men. They were mostly starving folk who fled from famine, and their prosperity and general demeanour give the hope that their countrymen in Korea, if they ever have an honest administration and protection for their earnings, may slowly develop into men.

.....조선에 머물 때, 나는 조선인들이 정말 비천하다고 생각했고 그 상태 또한 절망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곳 (러시아령) 프리몰스크에서 내 생각을 고칠 충분한 이유를 발견했다. 이곳에서 농부로서 성공했고 러시아인 경찰관리와 정착민, 군관계자들로부터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훌륭한 평을 받고 있는 이들 조선인들이 다른 이들보다 특별히 더 부지런하거나 검약하는 사람들은 아니란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굶주림을 피해 이주한 이들이었고, 그들이 여기서 이룬 성취와 행실을 통해 보건데, 그들 조국에 정직한 관리들이 있고 (착취당하는 대신 / 최광민 주) 그들의 수익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모국의 조선인들도 점차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 / 번역: 최광민

비숍은 이들 기근을 피해  연해주로 이주해, 그곳에서 농부로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조선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히 부지런하거나 검약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연해주에서 남들 만큼, 혹은 그들보다 조금만 더 일해도 조선에서와는 달리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문창극씨 말처럼 구한 말 비참했던 조선의 경제상황이 조선민족의 천성에 박힌 '게으름의 DNA' 의 결과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착취로 모든 것을 빼앗겨 온 백성들의 절망이 백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따끔하게 지적한 것이다. 




# 정리

물론 문창극씨의 발언 전문을 읽어보면 내가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특히 구한 말 황실 (특별히 명성황후) 및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은 적절하다. 십 여전 전부터 문화예술계에 유행처럼 명성황후를 비롯한 구한 말 집권세력을 미화하는 시도들이 있어왔는데, 나는 이를 무척 부적절하다고 보아왔다. 일본이 악하다 하여 황실을 포함한 당대의 무능한 집권세력들 및 향촌에서 백성들을 착취하던 향반들이 정의로웠던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들을 미화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래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나름 적절한 예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창극씨는 결과적으로 강연의 초점을 잘못 맞춰 결론지은 듯 싶다. 앞서 그가 제시하는 예들이 무엇인가?  그의 예에서 윤치호 조차 소위 최상위층들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던가? 이사벨라 L. 비숍의 지적 역시 나라가 백성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던가? 따라서 비판의 날은 양반들의 착취대상인 백성들이 주축인 "조선 민족" 전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나라를 말아먹은 집권층에게 더 날카로왔어야 했다. 왜? 백성을 착취한 바로 이들이 백성들을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만든 장본인들이었고, 또 나라를 망하게 한 제 1차 책임자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창극씨는 국가 시스템의 실패에 대한 이런저런 지적들을 사사로운 개개인의 문제로 풀어낸 셈이다.

그나저나 이전 해명에선 "윤치호의 말을 인용했다"라고 하더니, 왜 이번엔 이사벨라 L.비숍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일까? (본인의 강연내용 대로라면 윤치호의 말이 맞다.) 아무래도 친일 경력자인 윤치호에게 소급시키기엔 부담스러웠던 걸까?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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