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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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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에큐메니칼 써핑 #6: 연합그리스도교단 (UCC) 방문: 여성성직과 여성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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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3-06-20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에큐메니칼 써핑 #6: 연합그리스도교단 (UCC) 방문 (© 최광민)

순서
  1. 방문 교회/교단
  2. 예전
  3. 설교에 대한 단상: 해방신학



First United Church, Bloomington, IN (UCC 교단)


§ 방문 교단/교회

  • 방문일 2003-06-20
  • 교단 : United Church of Christ
  • 교회: First United Church of Christ in Bloomington
  • 두개 사안에 대한 이 교회의 입장
    • 이라크전에 찬성하는가?: 대체로 반대
    • 동성애자를 교회에 받아들일 것인가?
      •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경우: 찬성
      • 동성애 육체관계까지 하는 (practice) 경우: 찬성
      • 동성간 결혼: 찬성 및 현재 시행

이 교회는 미국 침례교단의 분파 American Baptist Churches USA (이하, ABCUSA)와 가장 리버럴한 교단 가운데 하나인 United Church of Christ (이하, UCC) 소속의 2개 교회가 통합한 지역교회다.

ABCUSA는 그 뿌리는 북침례교단 (Northen Baptist Convention)에 두고 있다. 원래 17세기에 영국에서 미국 북동부로 이식된 침례교단은 느슨하고 개교회 독립적인 정치체제를 취하고 있었는데, 1814년 선교를 목적으로 지역교회들 간의 협력을 강화하기위해 Triennial Convention 체제를 취하게 된다. 1845년 남부 주 대부분의 침례교회들이 이 1814년 체제에 반발, 이탈해서 남침례교단 (Southern Baptist Convention)을 만든다. 주된 이유는 이 1814년 체제는 노예를 소유한 자를 성직자/선교사로 임명/파송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또한 남침례교단에 속한 남부 침례교도들은 개별교회 독립주의를 취하는 전통적인 침례교단의 신조보다는 보다 중앙집권적이고 통제적인 조직을 원했다. 한편 1814년 체제에 직접적인 기원 두는 것이 바로 ABCUSA다. 흔히 Northern Baptist Convention (북침례교단)이라고 한다.

United Church of Christ (연합그리스도교회, 이하 UCC)는 1957년 시작된 신생교단이다. 19세기 캠벨주의를 따르는 Church of Christ (이 분류 아래 여러 분파가 있다)와는 다른 교단이다. 독일계 칼뱅주의 개혁교회인 복음개혁교회 (Evangelical and Reformed Church)와 회중교회 (Congregational Christion Churches)가 1957년에 연합해 만들어진 교단으로 소위 '사회복음'운동에 앞장 서는 등 인권문제나 정치문제에 관심이 많은, 미국에서 가장 리버럴한 교단 가운데 하나다. 그런 이유로 동성애 문제에 가장 적극적인 교단이기도 하다.


§ 예전

  • 침례교회 전통의, 형식이 고도로 배제된 간결한 예배의식
  • 단상에 포도주병과 빵을 배치시키고, 좌우측에 비잔틴풍의 배너를 배치한 것 이외의 장식 배제
  • 성가대는 후방 2층에 배치, 파이프 오르간 사용

인상깊던 성가 (We have heard your voice)

We have heard your voice
Like a song in the night ;
Like the wind in the shadows ;
Like the birds after rain ;

Like a calling bell ;
Or the rush of a city ;
And we gather here
to listen for your voice again




§ 설교에 대한 단상: 해방

이 교회의 주임목사가 휴가 중이라 Center for University Ministry (http://www.indiana.edu/~ministry/) 의 담임목사인 Rebecca Jimenez가 설교를 위해 초청되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설교 때 입었던 복식으로 간주해 볼때, 레베카 목사는 감리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레베카 목사가 여자라는 것과 이것이 초청설교라는 것을 간주해 볼때, 아마도 이 목사가 설교에 교회 내의 여성의 지위 대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설교를 할 것이라 예상되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레베카 목사가 설교 중에 가장 즐겨 사용한 단어는 "해방신학 (liberation theology)"였다. 레베카 목사는 엘살바도르의 살바도르에서 자신이 직접 목도한 여성억압을 해방신학의 용어로 설명하려고 했고, 방법적으론 한국의 '한恨'이란 개념을 사용했다. ( '한, 恨'은 세계여성해방신학계에서 정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기이도 하다.

한국어로 분명하게 "한"이라고 발음하고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달았는데, 막상 한국사람이 내가 듣기에는 '한'의 의미와 해석이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았다. 한국의 여성신학자들이 이 용어를 국제신학계에 소개할때 이런 식으로 소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레베카 목사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 교회 내 여성에 대한 억압은 기독교가 가르치는 '해방'의 본 의미가 왜곡된 것이다.
  • 교회 내 여성의 지위(주로 성직)에 대한 차별은 지중해 일대 남성중심주의의 산물이다.
  • 교회 내 여성에게 성직안수를 거부하는 보수주의자들의 근거로 사용되는 바울의 두개 편지 {코린트인에게 보내는 편지 I}, {디모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I}의 논조는 1세기 '지중해 세계의 가부장적 분위기'라는 사회적 문맥과 '해방'의 관점에서 현대에 재해석 되어야 한다.

레베가 목사가 언급한 바울의 두 편지 내용은 아래와 같다.

32 καὶ πνεύματα προφητῶν προφήταις ὑποτάσσεται· 33 οὐ γάρ ἐστιν ἀκαταστασίας ὁ θεὸς ἀλλὰ εἰρήνης. ὡς ἐν πάσαις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τῶν ἁγίων, 34 αἱ γυναῖκες ἐν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σιγάτωσαν, οὐ γὰρ ἐπιτρέπεται αὐταῖς λαλεῖν· ἀλλὰ ὑποτασσέσθωσαν, καθὼς καὶ ὁ νόμος λέγει. 35 εἰ δέ τι μαθεῖν θέλουσιν, ἐν οἴκῳ τοὺς ἰδίους ἄνδρας ἐπερωτάτωσαν, αἰσχρὸν γάρ ἐστιν γυναικὶ λαλεῖν ἐν ἐκκλησίᾳ. 36 ἢ ἀφ᾽ ὑμῶν ὁ λόγος τοῦ θεοῦ ἐξῆλθεν, ἢ εἰς ὑμᾶς μόνους κατήντησεν; 37 εἴ τις δοκεῖ προφήτης εἶναι ἢ πνευματικός, ἐπιγινωσκέτω ἃ γράφω ὑμῖν ὅτι κυρίου ἐστὶν ἐντολή·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은 자기 심령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질서가 아니고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가 하고 있는 대로  여자들은 교회 집회에서 말할 권리가 없으니 말을 하지 마십시오. 율법에도 있듯이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남편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십시오. 여자가 교회 집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수치가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나왔다는 말입니까? 또는 여러분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자기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다고 생각하거나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이 말이 주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한국어 공동번역, {고린도/코린트 I} Cr 14:34-35

9 ὡσαύτως [καὶ] γυναῖκας ἐν καταστολῇ κοσμίῳ μετὰ αἰδοῦς καὶ σωφροσύνης κοσμεῖν ἑαυτάς, μὴ ἐν πλέγμασιν καὶ χρυσίῳ ἢ μαργαρίταις ἢ ἱματισμῶ πολυτελεῖ, 10 ἀλλ᾽ ὃ πρέπει γυναιξὶν ἐπαγγελλομέναις θεοσέβειαν, δι᾽ ἔργων ἀγαθῶν. 11 γυνὴ ἐν ἡσυχίᾳ μανθανέτω ἐν πάσῃ ὑποταγῇ· 12 διδάσκειν δὲ γυναικὶ οὐκ ἐπιτρέπω, οὐδὲ αὐθεντεῖν ἀνδρός, ἀλλ᾽ εἶναι ἐν ἡσυχίᾳ. 13 ἀδὰμ γὰρ πρῶτος ἐπλάσθη, εἶτα εὕα· 14 καὶ ἀδὰμ οὐκ ἠπατήθη, ἡ δὲ γυνὴ ἐξαπατηθεῖσα ἐν παραβάσει γέγονεν. 15 σωθήσεται δὲ διὰ τῆς τεκνογονίας, ἐὰν μείνωσιν ἐν πίστει καὶ ἀγάπῃ καὶ ἁγιασμῶ μετὰ σωφροσύνης.

그리고 여자들은 정숙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합니다. 머리를 지나치게 꾸미거나 금이나 진주로 치장을 하거나 비싼 옷을 입지 말고 오직 착한 행실로써 단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공경한다는 여자에게 어울립니다. 여자는 조용히 복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먼저 아담이 창조되었고 하와는 그 다음에 창조된 것입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하와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순결로써 단정한 생활을 계속하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 한국어 공동번역, {디모데/디모테오 I} Ti 2:14-15

나는 레베카 목사의 논점에 일부 동의하고 일부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여성의 성직수행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제한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어쨌거나 고대 (정통파) 기독교가 여자에게 성직을 허용한 경우는 없다. 또한 이 역할의 요구사항은 성직의 개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여자는 교회 안에서 잠잠할 것"을 지시한 바울의 문맥은 전체 문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굳이 레베카 목사처럼 '해방신학'이라는 거창한 구도를 적용시켜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레베카 목사의 설교는 예배의 설교로서 적절하지 못했을 뿐더러 설득력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학 세미나였다면 훌륭했을 것이다.



여성에게(도) 성직을 부여해야 한다고 (혹은 부여"할 수" 있다고) 믿는 (대체로 리버럴)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신학자들은 이 명시적인 진술을 회피하기 위해 여러가지 해석을 시도해왔다.

정리해 보자.

  • 대체해석 #1: 
    • 교회의 "비공식" 모임에서의 침묵을 권고하는 내용이란 해석. 대체로 기각.
  • 대체해석 #2: 
    • 해당 구절은 문체상 바울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필사자가 의도적 혹은 실수로 바울의 본문이 아닌 내용을 삽입했다는 해석 
  • 대체해석 #3:
    • 해당 문단은 바울의 가르침이 아니라 36절에서 바울이 비난하고있는 코린트의 바울 반대파들이 제기한 주장을 옮긴 것이라는 주장. 대체로 기각
  • 대체해석 #4: 말 = 방언설
    • 여기에 언급된 '말'은 무질서한 '방언'이라는 해석. 그러나 '방언'은 늘 그리스어 glossolalia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대체로 기각. 
  • 대체해석 #5: 말하다 = 예언을 평가하다. 
    • '예언'을 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평가/감정/분별하는 일은 금하는 것을 말한다는 주장. 고대교회에 예언과 예언의 감정이란 두 종류의 구분이 있었는지의 증거가 없어서 대체로 기각.

나의 이해는 다음과 같다.




§§ γυνή 와 ἀνήρ

바울의 편지에서 바울이 교회 내에서 잠잠하라고 지시한 그 '여성'은 문맥상 '일반적인 여성'을 통칭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요지는 '여자'는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입을 다물되,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문의하라는 것이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여자란 곧 남편을 가진 '아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신약성서의 언어인 코이네 그리스어에서 '성인여자'와 '아내'는 구별되지 않고 과부나 미혼 여성에게도 적용된다. γυνή 라는 동일한 단어로 표기되며 문맥에 따라 달리 읽히기 때문이다.

또한 코이네 그리스어는 '성인남자'와 '남편' 역시 구별하지 않고 모두 ἀνήρ로 표기한다. 따라서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권고사항에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문맥 역시, "여자는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아내는 공적자리에서 가정의 대표하는 남편의 권위를 찬탈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따라서 여기서의 γυνή 역시 '아내'를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성서의 난해구절 중의 하나인, "믿음과 사랑과 경건으로 살때 'γυνή'는 아이를 낳음으로 구원에 이를 것이다"는 마지막 구절이 설명될 수 없다. 고대의 기독교 윤리관 아래서 미혼여성이나 과부가 (이 역시 γυνή) 아이를 낳아 기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울은 다른 편지 속에서 명령이 아닌 권고의 어투로 미혼남녀의 독신을 권고하고 있다. 이렇듯 γυνή를 일반 여성으로 설명해서는 두 인용의 아귀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가정 내의 질서에서 남편의 권위가 아내 위에 있다는, 그래서 교회에서도 그 질서에 맞춰서 행동하라는 가르침이지, 여성 일반의 공개적 발언을 금한다는 뜻이 아니다. 코린트인과 디모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전체의 기본 문맥은 사실 바로 이런 교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권위에 대한 복종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않된다.


§§ 미혼자

물론 이 구절에서 gune가 일반여성이 아닌 아내를 뜻한다고 해서, 이 구절에서 여성의 성직수행의 정당성을 유추하려는 시도 역시 잘못된 것이다. 이 두 문단들은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즉, 여성의 성직을 적극적으로 금하지도, 적극적으로 허용하지도 않고 있다. 굳이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올바르게 해석한다해도, 어쩌면 남편의 권위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미혼여성 혹은 과부 만에 교회 내에서 남자 위에 혹은 동등하게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바울의 서신들은 (여자) 예언자들이 교회 내에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실례로 일곱집사 중의 하나인 빌립/필립의 두 딸은 초기 교회 안에서 여자 예언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두 딸은 미혼이었다.


§§ 해방, 복종

바울은 이미 코린트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여자와 남자는 (혹은 아내와 남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상호적으로 속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독교적 남녀평등은 현대적 의미의 '남녀평등' 혹은 '여성해방' 혹은 '페미니즘'과 다르다. 내가 레베카 목사의 논지에 다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사실 바울은 본질적으로 신 앞에서 남편과 아내는 (혹은 남자와 여자는) 동일하지만 여성의 자발적 복종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그 복종은 노예로서의 복종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의 질서를 이루기 위한 자발적 복종이다.

레베카 목사는 여성해방신학과 페미니즘이라는 관점의 틀을 통해 (아내가 아닌) 여성의 해방을 말했지만, 이 자발적 복종이라는 바울의 큰 문맥은 사실상 언급조차 하지 않고 끊임없이 해방에 대해서만 말했다.

나를 '마초'라고 부를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솔직히 말해 레베카 목사의 관점이 최소한 바울의 편지에 입각한 관점은 아니란 점을 지적할 수 밖에 없다. 자발적 복종이란 말에서 복종이란 단어는 꽤 억압적으로 들릴 수는 있지만, 바울의 다른 편지에서 말하는 복종이란 주종관계의 억압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않다.

가령, 바울이 필립비인에게 보냈던 편지를 상기해 보자.

5 τοῦτο φρονεῖτε ἐν ὑμῖν ὃ καὶ ἐν χριστῶ ἰησοῦ, 6 ὃς ἐν μορφῇ θεοῦ ὑπάρχων οὐχ ἁρπαγμὸν ἡγήσατο τὸ εἶναι ἴσα θεῶ, 7 ἀλλὰ ἑαυτὸν ἐκένωσεν μορφὴν δούλου λαβών, ἐν ὁμοιώματι ἀνθρώπων γενόμενος· καὶ σχήματι εὑρεθεὶς ὡς ἄνθρωπος 8 ἐταπείνωσεν ἑαυτὸν γενόμενος ὑπήκοος μέχρι θανάτου, θανάτου δὲ σταυροῦ. 9 διὸ καὶ ὁ θεὸς αὐτὸν ὑπερύψωσεν καὶ ἐχαρίσατο αὐτῶ τὸ ὄνομα τὸ ὑπὲρ πᾶν ὄνομα, 10 ἵνα ἐν τῶ ὀνόματι ἰησοῦ πᾶν γόνυ κάμψῃ ἐπουρανίων καὶ ἐπιγείων καὶ καταχθονίων, 11 καὶ πᾶσα γλῶσσα ἐξομολογήσηται ὅτι κύριος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εἰς δόξαν θεοῦ πατρός.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한국어 개역개정, {필립보/필립피 2:5}

(아마도 고대의 찬송가였을) 이 문단을 통해 바울이 가르치는 기독교의 복종의 원리는 간명하다. 그리스도는 성부/아버지와 본질(form)이 같았지만, 굳이 아버지와 동등하고자 하지 않고,오히려 (자발적)으로 자신을 비워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 자신을 낮추어 결국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였고, 따라서 성부는 이제는 그리스도를 높여 만물의 주인이라는 (자신의) 칭호를 주었다는 것이다.

바울의 가르침은 해방신학이 강조하는 식의 정치적 해방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기 보다는, 신자 간의 상호존중과 질서를 위한 자발적 복종을 강조하고 있다. 신약성서 속의 해방이란 바로 이 두 개념과 함께 갈때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방 그 자체가 궁극의 목표가 아닌 것이다.




§ 정리

이것이 바울의 편지에 대한 나의 이해이다.
이런 이해는 (전투적) 페미니스트를 격분시킬 것인가?

그러나 나의 이 "편협"한 생각에도 부디 똘레랑스를 베푸시길.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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