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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실크로드와 영화 {바란 Ba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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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2004-02-16

제목

[© 최광민] 실크로드와 영화 {바란 Baran}

순서
  1. 중앙아시아
  2. 바란
  3. 결어

작성 : 최광민 2/16/2004
제목 : [영화] 바란(Baran)




# 중앙 아시아

형과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소년중앙}을 애독했는데, 내가 7살 무렵이던 해이던가 그 잡지는 동그란 금속판 위에 그려진 세계지도를 별책부록으로 끼워 판 적이 있었다. 그 세계지도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나는 그 전만해도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가) 지구가 아닌 '화성'에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었다. 서울과 그 변두리를 한번도 제대로 벗어나본 적 없던 미취학 아동인 나에게 있어서는 한국이란 지구를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큰 나라였으니, 미국이 같은 행성에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놀라왔을까. (사실 더 놀라왔던 것은, '미국'보다도 '화성'이 내게 더 친숙했다는 점이다.)

조금 나이가 먹자 나는 지구 위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미스 유니버스나 미스 월드에 나오는 미녀들의 나라 (가령, 베네주엘라) 에 대해서도 대단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교과서나 책, 혹은 TV, 혹은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통해 듣게 되는 이 나라의 이름들은 내가 가진 세계지도의 극히 일부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것도 대부분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고나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사는 유라시아의 동쪽 끝과 같은 대륙의 서쪽 끝 사이에 있는 넓은 땅은 그저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진 막연한 장소에 불과했다. 그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누가 사는지, 어느 누구도 답해주지 않던 땅 - 중앙 아시아는 나에게 미지의 공간이었다.

나에게 처음으로 대답해 준 것은 일본 NHK가 제작한 다큐멘타리 {실크로드}였다. 

나는 처음으로 중국의 서쪽 신장성을 넘어서도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과 사는 모습을 이 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보았다. 그때는 아직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벽이 중국에서 동독까지의 영역을 숨기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실크로드}의 제작진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밟아가던 행로는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곳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한 촌부들처럼 보였다. 제작진이 출발할 때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몽골로이드의 얼굴이더니 서쪽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갸름해지고, 쌍커플이 생기고, 코는 높아지더니 중앙아시아 어딘가를 지나서부터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어갔다.

{성서}와 {실크로드}의 영향으로 나는 고등학교때 세계사를 학력고사 입시과목으로 '선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리와 사회를 사회과 입시과목으로 지정해둔 우리 학교에서 나만 세계사를 공부했으니, 선택이 아니라 혼자서 자율학습하였다고 보는 편이 옳다. 세계사 책 속에서 내가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중앙 아시아의 왕국들의 이름을 만날 수 있었다. 코라즘 왕국, 칭기스칸의 자손들인 칸들이 세운 수많은 한국들, 티무르 제국, 페르시아, 박트리아... 그때는 여전히 80년 대 말이었고,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는 쇠락했지만 여전히 기세가 등등한 시절이었다. 우리는 중앙 아시아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중앙 아시아는 역사책 속에, 실크로드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마침내 80년대 말에서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은 순식간에 붕괴했고, 예전에는 그저 붉은 공백으로 채워져있던 중앙아시아의 각처에서 수많은 "-스탄"들이 독립해 나왔다. 이 지역은 그때서야 처음으로 실재하는 지리적 공간으로 나에게 인식되었다.



# 바란

영화 {바란}은 {천국의 아이들, The Children of Heaven}, {천국의 색, Color of Paradise}등을 감독한 이란 감독 마지드 마지디의 2001년도 영화로 캐나다 몬트리올 영화제 Best Film 수상작이다.

감독 : http://www.cinemajidi.com/
영화 : http://www.yazda11.com/majidi/baran.html

{Color of Paradise}와 {Children of Heaven}으로 유명한 이란의 감독 Majid Majidi의 2001년 작품으로, 소련의 전쟁, 수니파 탈레반 정권 하에 이란으로 도피한 150만 시아파 무슬림들의 삶을 근간으로 하여, 17세 쿠르드계 이란인 소년 라티프와 아프간(시아파 하자라) 소녀 바란과의 잔잔한 사랑을 다룬 영화. "바란"은 "비"란 뜻의 이란어. 화 마지막 장면의 여운은 왠지 모르게 한국적인데, TV문학관의 추억이 떠오르는 영화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10여년 간, 그리고 그 이후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자인 탈레반 정권 하에서 약 150만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이란으로 유입되게 되는데, 이영화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페르시아계라고 여겨지는 이란은 실제로는 다민족 국가에 가까운데, 이것은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볼때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유엔통계를 찾아보니 Persian 51%, Azeri 24%, Gilaki and Mazandarani 8%, Kurd 7%, Arab 3%, Lur 2%, Baloch 2%, Turkmen 2%, other 1%로 되어있다. 이 영화는 이란에 거주하는 비-페르시아계 주민(아제리)인 Lateef와 아프가니스탄 난민인 Baran/Lamat의 이야기다.

아프가니스탄과 그 수도 카불이란 이름은 80년대 초반부터 TV에서 내내 들을 수 있었다. 주로 소련군에 맞서는 레지스탕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소련군이 철수한 다음에는 아프가니스탄 일대에 소련군이 묻어둔 지뢰피해에 대한 기사들, 그리고 90년대 중반부터는 권력투쟁에서 급부상한 수니파 근본주의자 탈레반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http://geography.about.com/library/cia/blc3afghanistan.htm
http://countrystudies.us/afghanistan/index.htm

얼마전 이란의 Jafar Panahi 의 1995년도 영화 {The White Balloon}을 보다가 이름도 없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아프간 소년의 얼굴을 보다가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아리안에 속하는 이란인과는 물론 다르게 생겼겠지만, 이 아프간 소년의 얼굴은 몽골로이드의 눈매와 골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란내 거주하는 비-페르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영화인 이란영화 {바란}을 보았는데, 이 영화에 등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보고 느낀 놀라움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얼굴과 아래의 아프가니스탄 피난민들의 얼굴을 보자.

아프간인 솔탄 :
http://www.yazda11.com/majidi/baran/baran_photos/baran003A_F.jpg
http://www.yazda11.com/majidi/baran/baran_photos/baran124B_F.JPG

아프간인 바란
http://www.yazda11.com/majidi/baran/baran_photos/baran007A_F.jpg
http://www.yazda11.com/majidi/baran/baran_photos/baran102B_F.JPG

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얼굴은 내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던 그 아프간인들과도 매우 다른 얼굴들이었다. 쌍커플이 있는 것만 뺀다면, 한국사람들과 별로 달라보이지도 않는다. 영화는 이들을 다만 아프간사람이라고만 부를 뿐 더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한번 조사해 보기로 했다. 내가 가진 단서는 아래와 같다.

  • - 이들의 얼굴은 몽골로이드의 분명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 - 아프간인 솔탄은 맹세할때 "이맘 레자"의 이름으로 했다.
  • - 내가 알기로 이맘 레자란 이슬람 시아파의 한 부류인 '12이맘파'가 따르는 12명의 이맘 가운데 8번째 이맘인 모하메드 알-리다(Mohammed Al-Rida)를 말한다.
  • - 아프가니스탄 동쪽 경계에서 타지크스탄을 넘으면 중국 북서부와 만난다.

여러 자료를 근거로 이들이 하자라(hazara)라고 불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소수 인종그룹이란 결론을 내렸다.

http://www.hazara.net/hazara/hazara.html#history

하자라는 몽골의 중앙아시아 정복과정에 남게된 몽골인들의 후예다. 1227년 칭기스칸은 중앙 아시아 원정을 마친 후 몽골로 돌아갔고, 1229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서진 기지화했다. 1256년 칭키스칸의 손자 훌라구는 바그다드에 도읍한 압바스 칼리프조에 대한 침공을 개시해 일한국(Ilkhans)를 세우고 현재 이라크와 이란에 해당하는 전 지역을 1세기간 통치했다. (이 지역의 몽골인들은 일한국 시절에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하자라라는 말은 "수천"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몽골어 밍, 밍간이라는 말에 상응한다고 한다. 이 말은 몽골제국 초기 역사에서 그들의 군대편성 단위를 뜻한다.

또한 하자라는 칭기스칸이 자기 아들 차카타이에게 할당한 땅인 차카타이한국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차카타이한국은 13세기에 수차례에 걸쳐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현재 파키스탄에 해당하는 인더스강 유역으로 침공해 들어갔다. 이 지역은 나중에 일한국으로 병합되었다. 일한국이 서기 1337년에 멸망한 다음, 이들 몽골인들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후퇴했다.

그러다 서기 1380년, 차카타이 부족에 속하면서 칭기스칸의 적손임을 주장하던 티무르가 다시 이란 지역을 침공해 다시 1세기 가량 이란과 인도 북부 지역을 통괄하는 제국을 세웠다. 이를 티무르 제국이라고 부른다.

현재의 하자라는 몽골어 대신 페르시아어의 방언인 다리어를 쓰고,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이들의 종교는 이슬람 시아파 가운데서도 12이맘파에 속한다. (시아파의 다른 큰 지류는 이스마엘파다.) 이런 이유로, 그리고 인종적 특징으로 인해 이들은 수니파(특히 탈레반)가 주류인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박해를 받았다. 그래서 많은 하자라들은 같은 시아파 국가인 이란으로 망명했다.


# 결어

이 영화가 비록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수상했다고는 해도, 나는 서구인들이 이 영화의 잔잔한 사랑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예전에 미국인 룸메이트에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괴로와하다가 {아메리칸 파이}를 보러 나가 버렸다. 론 {아메리칸 파이}도 사랑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 영화의 사랑과 이 영화의 사랑은 발음만 같지 속성은 전혀 다르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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