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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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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인디애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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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3-12-17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인디애나 아리랑

순서
  1. 아리랑
  2. 헐버트의 아리랑
  3. 나운규의 아리랑
  4. 김산의 아리랑
  5. 인디애나 아리랑

# 아리랑

겨울이 다가오는 어느 날,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히브리어"를 공부하러 몇달 전 "미국"에 유학 온 "무슬림" 룸메이트 모하메드와 나는 구운 오징어를 안주 삼아 맥주 몇 병을 함께 얼큰히 걸칠 기회가 있었다.

(원래 무슬림은 술 마시면 안되지만) 술기운이 흥건히 오르자 모하메드는 급한 김에 머리에 흰 수건을 말아쓰고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전통음악에 맞춰 아랍 춤사위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 답례로 S.E.S.나 핑클 같은 한국의 대중가요를 들려주었지만, 이 아랍 사내는 너무나 미국노래 같은 이 노래들 대신 한국의 전통음악을 들려줄 것을 요구했다.

잠시 생각하다가 비틀비틀거리며 창고로 가서, 아직 풀지 않은 이사짐 속에서 작년에 한국 갔을 때 친구 경호가 선물로 준 슬기둥 CD 를 찾아 장사익의 {아리랑}을 틀어주었다.


아리랑

- 장사익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며는,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줘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 ... 아리랑...

한국인에게 아리랑 말고 
다른 노래가 어디 있을까.



# 헐버트의 아리랑

훗날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했고, 조선인 보다 조선의 독립을 더 갈망했고, 고국인 미국보다 조선에서 묻히길 원한 미국인'으로 기억될 선교사 H.B.헐버트는, 1896년{Korea Repository Korean Vocal Music}를 통해 서구에 조선의 풍습을 전하면서 {아리랑, A-Ra-Rung}이란 조선의 민요 하나를 채보해 소개했는데, 그 노래는 아마 "해주 아리랑"이었던 듯 싶다.

그는 자신의 글에 이렇게 적었다.

Arirang is the name of a folk song sung by Korean people since olden times. There are many variations of the song, although the lyrics of their refrains have the words “arirang” or “arari” in common. The song was sung for many different purposes such as to reduce feelings of boredom during work, confess one’s true feelings to one’s beloved, pray to the divine being for a happy and peaceful life, and to entertain people gathered together for a celebration. One element that has helped Arirang remain in the hearts of Korean people for so many years is its form, which is designed to allow any singer to easily add their own words to express their feelings. To the average Korean this one song holds the same place in music that rice does in his food—all else is mere appendage. You hear it everywhere and at all times.

'아리랑'은 예로부터 조선인들이 불러온 민요다. 후렴부의 "아리랑" 혹은 "아라리"란 단어가 공통적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이 노래에는 많은 변형이 있다. 이 노래에는 여러 용도가 있는데, 가령 일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거나, 혹은 사랑하는 이에게 진심을 전하거나,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바라며 신령에게 기도하거나, 혹은 잔치에서 사람들 사이에 흥을 돋구기 위해 불려진다. 아리랑이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조선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노래 부르는 사람 누구나 쉽게 자신의 가사를 넣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고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일반 백성들에게 이 노래는 음식에서 쌀이 차지하는 지위를 가진다. 다른 모든 것은 반찬일 뿐이다. 당신은 이 노래를 어디서나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 번역: 최광민





# 나운규의 아리랑

현대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아리랑은 {서울아리랑}, 혹은 {본조아리랑}. 이 노래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사용되었다.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되었을때의 기억을 이경손은 1964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단성사가 터질듯했다. 개봉 날이라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만원이었다. 바로 우리나라 흑백무성영화 시대의 획기적인 이 작품은 서울 장안을 설레게 했다. {아리랑}이야 말로 최초의 舊劇調를 脫皮한 첫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또 한 가지 長點은 관객의 심정을 만족할 만큼 捕捉한 점이다. 마치 어느 義烈團圓이 서울 한 구석에 爆彈을 던진 듯한 설레임을 느끼게 했다. 그것도 비밀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느끼게 했다.” 주:{신동아}·1964·12

1937년 1월, 잡지 {三千里}와의 인터뷰에서 영화감독 나운규는 영화의 주제가 {아리랑}에 대해서 직접 이렇게 말한다.

문 : "...이 노래는 누가 지었어요? 한동안은 그것이 벌써 10년은 되었지만 그때 서울이든 시골이든 어데서든지 어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즐겨 부르던 ‘아리랑’의 이 주제가를 누가 지었어요?"

답 : "내가 지었소이다. 나는 국경 회령(會寧)이 내 고향인 것 만치 내가 어린 소학생 때에 청진(淸津)서 회령까지 철도가 놓이기 시작했는데 그때 남쪽에서 오는 노동자들이 철로 길을 닦으면서 “아리랑, 아리랑”하고 구슬픈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것이 어쩐지 가슴에 충동을 주어서 길 가다가도 그 노래 소리가 들리면 거름을 멈추고 한참 들었어요. 그리고는 애련하고 아름답게 넘어가는 그 멜로디를 혼자 웨어 보았답니다. 그러다가 서울 올라와서 나는 이 ‘아리랑’ 노래를 찾았지요. 그때는 민요로는 겨우 강원도아리랑이 간혹 들릴 뿐으로 도무지 찾아들을 길이 없더군요. 기생들도 별로 아는 이 없고 명창들도 즐겨 부르지 않고, 그래서 내가 예전에 듣던 그 멜로디를 생각하여 내어서 가사를 짓고 곡보는 단성사 음악대에 부탁하여 만들었지요."




# 김산의 아리랑

1920년대 중국에서 항일전선을 이끌다 33세로 요절한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구술을 바탕으로, 당시 중국혁명 과정을 취재하던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즈 (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우) 는 1937년 {아리랑 : 어떤 조선혁명가의 삶, Song of Ariran : A Life Story of A Korean Rebel}를 출판했다. 혁명가이던 김산이 님 웨일즈에게 지긋이 불러 주었던 아리랑도 바로 이 {서울아리랑}이었다.



모하메드는 이 노래들을 흥미롭게 듣고 있다가 그 중에서도 {아리랑}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이 노래의 가사를 내게 물어보았다. 나는 비록 술기운에 풀린 혀지만 김산이 100여년 전에 한 푸른 눈의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즈에게 그러했을 것처럼, 아리랑이라는 노래가 한국인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 호기심 많은 회회(回回)아비에게 정성껏 설명해 주었다.

나는 '아리랑'의 어원과 노래의 기원에 대한 김산의 진술에는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김산의 설명이 세부적으로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님 웨일즈에게 읊어주던 아리랑을 부를 때의 그의 뜨거운 심장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모하메드도 그처럼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님 웨일즈가 전하는 김산의 진술을 들어보자.

p.6

...그(김산)는 나(님 웨일즈)에게 조선의 민요 [아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In Korea we have a folksong, a beautiful ancient song which was created out of the living heart of a suffering people. It is sad, as all deep-felt beauty is sad. It is tragic, as Korea has for so long been tragic. Because it is beautiful and tragic it has been the favorite song of all Koreans for three hundred years.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 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지요. 심금을 울려 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슬픔을 담고 있듯이, 이 노래도 슬픈 노래입니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 또한 비극적이랍니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300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지요."

Near Seoul is a hill called the Hill of Ariran. During the oppressive Li Dynasty there was a giant solitary pine at the top of this hill, and this was the official place of execution for several hundred years. Tens of thousands of prisoners were hanged until dead on a gnarled branch of that ancient tree, their bodies suspended over a cliff at the side. Some were bandits. Some were common criminals. Some were dissident scholars. Some were political and family enemies of the emperor. Many were poor farmers who had raised their hands against oppression. Many were rebel youths who had struggled against tyranny and injustice.

"서울 근처에 아리랑 고개라는 고개가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압정 동안, 이 언덕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우뚝 솟아 있었고, 이 소나무?수 백년 동안이나 사형대로 사용되었습니다. 수만 명의 죄수가 이 노송의 옹이진 가지에서 목이 매여 죽었습니다. 그리고 시체는 옆에 있는 벼랑으로 던져졌지요. 그 중에는 산적도 있었고 반역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압제에 대항해 봉기한 빈농이거나 학정과 부정에 대항해 싸운 청년 반역자들이었습니다.

The story is that one of those young men composed a song during his imprisonment, and as he trudged slowly up the Hill of Ariran, he sang this song. The people learned it, and after that whenever a man was condemned to die he sang this in farewell to his joys or sorrows. Every Korean prison echoes with these haunting notes, and no one dares deny a man's death-right to sing it at the end.

이 젊은이 중의 한 명이 옥중에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서는 무거운 발걸을 끌고 천천히 아리랑고개를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 노래가 민중들에게 알려지자, 그 뒤부터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죽기 전 마지막 인사로 이 노래를 불렀고, 조선의 감옥에는 이 노래가 메아리 쳤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최후의 권리마져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The "Song of Ariran" has come to symbolize the tragedy of Korea. Its meaning is symbolic of constantly climbing over obstacles only to find death at the end. It is a song of death and not of life. But death is not defeat. Out of many deaths, victory may be born.

그래서 아리랑은 이 나라 비극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끊임없이 극복하려하나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그래서 이 노래는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래는 아닙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닙니다. 수많은 죽음을 딛고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There are those of us who would write another verse for this ancient "Song of Ariran." That last verse is not yet written. We are many dead, and many more have "crossed the Yalu River" into exile. But our return will not be long in the future."

이 오래된 아리랑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려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구절은 아직까지는 씌여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압록강을 건너 떠돌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돌아갈 것입니다. 머지않아 꼭 돌아갈 것입니다."

When the Japanese took Korea in 1910, the fifth verse was added to the original song. Today we have a whole book of nearly a hundred different versions. We even have a popular "Love Song of Ariran." The "Song of Ariran" has been sung all over the plains of Manchuria, both by Korean volunteers and Chinese. In Japan also it is popular. There are three versions of the "Song of Ariran" on phonograph records. The word "Ariran" is such a favorite that inns and cafes even use it as their name. Li Kuang-ssu has written a play on the subject.

일본이 1910년 조선을 빼앗았을 때, 아리랑 원곡에 제 5절이 붙여졌습니다. 현재 우리는 거의 100가지 다른 아리랑을 가지고 있어요. 그 중에는 그 유명한 아리랑 사랑가도 있죠. 아리랑은 만주벌판에서 조선인과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불립니다. 일본에서도 불려지고 있죠. 음반으로는 세가지가 있죠. '아리랑'이란 단어는 너무 유명해서, 여관이나 카페의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광수는 아리랑에 대한 희곡을 쓰기도 했죠.

Many of these versions are banned in Korea. The Japanese are almost as afraid of "dangerous songs" as of "dangerous thoughts." In 1921 a Communist intellectual wrote a "dangerous" version as he was about to die, and someone else wrote another secret revolutionary version called "Moving the Hills of Ariran." Middle-school students have been given six months in prison for singing these. I knew one who received this in Seoul in 1925.

여러 아리랑들은 조선에서 금지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를 '불경한 사상'을 담은 '위험한 노래'로 간주하고 두려워 합니다. 1921년 조선의 한 공산주의자 지식인이 '위험한' 버전의 가사를 죽기 전에 붙였고, 또 다른 이가 '아리랑 고개를 넘어'란 혁명가를 썼어요. 그 노래를 불렀다고 중학생들이 6개월 간 감옥에 들어가지고 했습니다. 저는 1925년에 이 노래를 받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There are twelve hills of Ariran," the song says. When I first read Dante I was surprised to find that he used the same number-twelve heavens and twelve hells-and that his theme was also, "Abandon all hope ye who enter here. " I suppose it is a universal number for misfortune like the mystical number seven.

"아리랑에는 12 고개가 있습니다." 내가 처음 단테를 읽었을 때, 나는 그가 동일한 12 하늘과 12 지옥에 대해 쓴 것을 보고 놀랐어요. 단테의 주제 역시 "여기 들어오는 자는 일체의 희망을 버려라"였죠. 나는 신비적인 7처럼 12는 불운을 상징하는 보편적 수라고 생각합니다.

Korea has crossed painfully over more than twelve hills of Ariran, however. Our little peninsula has always been a stepping stone from Japan to China and back again, and from Siberia to the south. She was for hundreds of years the center of culture in the north, and every barbarian invasion passed over on its way to China, devastating Korea's fair cities and fields of civilization. Yet, in spite of conquest, she retained her identity under temporary suzerainty and never submitted but waited the opportunity to rise again. Against the frail wall of our "twenty million countrymen" fifty to seventy million Japanese have been pressing since the nineteenth century on their inexorable drive to Manchuria and China. We could not hold them back, and the iron-nailed boot is pressing hard on Korea today, but when Japan loses her stride the sunny green grass will grow again where darkness has been.

I have seen Korea climb several hills of Ariran already in my short life, only to find death at the summit. I was born at the time she was being trampled by foreign armies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나는 조선이 여러 아리랑 고개를 넘는 것을 내 짧은 삶에서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정상에서 죽음을 보았죠. 나는 조선이 러일전쟁 동안 외세에 짓밟힐 때 태어났습니다.


p.161

"I like Koreans very much," he remarked confidentially, "though I have never been in Korea. In fact, my present wife is one. You may write a poem for me in your own language, and she will translate it. She will like to keep it."

"나는 조선에 가 본적은 없지만 조선인을 좋아합니다. 지금 아내도 조선인이죠. 당신 말로 시를 써준다면, 제 아내가 글 번역해 줄 것입니다. 아내를 그걸 잘 간수할 겁니다."

I said I had no poetry and that I did not feel like composing any at the moment.

나는 내가 쓴 시는 없고 현재로선 별로 쓸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I have never heard the Internationale," he confided a little nervously. "Will you sing a little of it for me? It must be a very beautiful song."

"난 아직 '인터내셔널가'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 노래를 좀 불러줄 수 있을까요? 분명 아름다운 노래일텐데요"라고 그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I haven't any voice for singing the Internationale today," I replied. "It is a song of victory not of defeat. But I will write it for you in Korean, and your wife can translate it."

"오늘은 인터내셔널가를 부를 목소리가 아닌데요. 그 노래는 승리의 노래이지 패배의 노래가 아닙니다. 내가 조선말로 적어주면 당신 처가 번역할 수 있을 겁니다."

I did this, and he folded it neatly and thanked me.

내가 써서 주자 그는 잘 접은 후 고맙다고 말했다.

"There is only one song I can sing on a day like this,"

"오늘 같은 날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하나 뿐입니다."

I remarked. "What is that?"

"무슨 노래인가요?"

"It is an old, old Korean song of death and defeat-the 'Song of Ariran.' "

"그건 아주 오래된 죽음과 좌절에 대한 조선의 노래인 '아리랑'입니다."

I told him the meaning of the song and sang it in a low voice as I looked out over the bare brown fields and thought of the Canton Commune and Hailofeng. He became very emotional and said it was the most beautiful music he had ever heard.

그는 매우 감상적이 되어 그 노래가 그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말했다.

"Your wife knows that song," I said. "Every Korean has known it for many generations. If you ever hear her singing it to herself you must buy her a new dress and be kind to her."

"당신 처도 그 노래를 알겠군요." 나는 말했다. "모든 조선인들은 여러 세대 동안 그 노래를 알고 있어요. 제 처가 혼자서 그 노래를 부르는 걸 듣는다면, 아마 당신은 제 처에게 옷이라도 사주고 감사해야 할 겁니다."

"I'll never forget it," he promised warmly and called for some beer which we drank together.

"잊지 않겠습니다". 그는 약속하고 맥주를 주문하여 함께 마셨다.

Song of Ariran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There are tweleve hills of Ariran
And now I m clossing the last hill.

many stars in the deep sky
Many crimes in the life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Ariran is he mountain of sorrow
And the path to Ariran has no returning.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Oh, twenty million countrymen. Where are you now?
Alive are only three thounds of mountains and rivers.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Now I am an exile crossing the Yalu River
And the mountains and rivers of three thounsand
li are also lost.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 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 간다.

청천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 가면 다시는 못오는 고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 강산만 살아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이오.
삼천리 강산만 잃었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운명의 선고를 기다리며
나 이제 생사 갈림길에 섰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로 넘어가련다.

아리랑 고개에 간이역 하나 짓고
집행인 기차를 기다려하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련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
그대 열두 구비에 멈추지 마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열세 구비를 넘으련다.]]




# 인디애나 아리랑

노래를 주의깊게 듣고 있던 모하메드는 한국인들이 이 노래에 맞추어 어떤 춤을 추는지를 물어왔다. 

나는 술김에 벌떡 일어나 일단 두 손을 옆으로 들어 학의 자세를 취하기는 했지만, 이어지는 전통 춤사위를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사서 {삼국지위지동이전}은 동이족의 특성을 "음주와 가무에 능하다"고 했지만, 오늘날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는 음주에는 여전히 능할 지언정 우리의 춤과 노래는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나의 조상들이 부르던 노래와 춤사위 대신, 우리는 서쪽 땅끝, 혹은 바다 건너 동쪽에 사는 色目人들의 춤을 추고, 그들의 노래를 부를 뿐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두 팔을 덩실덩실 흔들면서 내 조상들이 추었을 법한 춤사위를 재현해 내고자 노력했고, 얼큰히 취해 소파에 비스듬이 누워 물담배를 빨며 내 춤사위를 바라보던 모하메드도 벌떡 일어나 나의 춤사위를 흉내냈다 .

서로의 고향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미리견 米利堅 인단야 印丹野 개화촌 開花村/Bloomington의 아파트 거실을 비추는 20촉 보라색 조명 속에서, 아시아 동쪽 끝에서 온 동이 東夷족 사내와, 아시아 서쪽 끝에서 온 알-하르비족 회회(回回)아비는 이렇게 함께 어설픈 춤사위를 놀리며 혀 꼬인 발음으로 아리랑을 흥얼거린다.

그때 창 밖에는 겨울 들어 첫 함박눈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고, 그 눈은 28년 인생에서 모하메드가 처음보는 눈이었다. 

모하메드는 술에 취해 울며 중얼거렸다. 고향의 모래언덕이 보고 싶다고. 

"Man, I wanna see f***'n sand dunes..."

동이족 사내도 따라 운다.

모하메드와 거실의 카펫 위를 빙글빙글 돌다 벌렁 자빠져서 생각해 본다.

내가 넘어갈 고개는 어디쯤 있을까?
그 고개를 넘으면 어디가 나올까?
누군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모하메드는 나에게 '아리랑'의 의미를 물었지만, 
이 말의 뜻을 아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 뜻은 몰라도

아리랑을 들을 때면
나는 늘

눈물이 난다.


草人


P. S. 3개월의 짧은 치기어린 일탈 후 모함메드는 다시 경건한 무슬림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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