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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6: 연옥 및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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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19-11-13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6: 연옥 및 대사

목차

로마카톨릭교회의 연옥/대사 교리에 대해
  1. 연옥교리의 기원은?
  2. 고해성사의 기원?
  3. 오리엔트 정교회와 앗시리아 교회의 고해성사는?
  4. 고해성사는 사도들이 직접 제정한 성사인가?
  5. 대죄와 소죄의 구분에 대한 로마카톨릭, 정교회, 오리엔탈정교회, 앗시리아동방교회의 견해는?
  6.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 (~면죄부)에 관해
  7. 중세시대부터 종교개혁 시기까지 로마카톨릭은 대사 (~면죄부)의 남용과 악용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8. 십자군에게 교황이 대사를 내린 것은 사실인가?
  9. 교황 레오10세와 바티칸은 대사와 관련된 오용/남용을 의도 혹은 묵인했을까?
  10. 완전사면 (전대사 (全大赦), full remission of sins)의 정의는?
  11. '대사 (인둘겐스)'를 '면죄부'라고 표현하는 것은 프로테스탄트 측의 악의적 왜곡인가?
  12. 대죄는 완전사면의 대상에 속하는가?
  13. 요한 테쩰과 같은 방식의 대사 오남용 사례가 중세에 있었나?
  14. 로마카톨릭 교회의 대사, 잠벌, 성인통공의 의미는?
  15. 공심판과 사심판에 대한 견해
  16. 윌리엄 틴들과 영혼수면설?
  17. 틴들의 영혼수면설은 현재 기독교의 일발적 사후관과 꽤 다른 것이 아닌가?
  18. 초기교회는 세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보았는가?

 연옥에서 정화되는 영혼들, 독일 15세기 목판화-- Wikimedia Commons 


Universitätsbibliothek Heidelberg, Cod. Pal. germ. 144 "Elsässische Legenda Aurea" — Straßburg - "Werkstatt von 1418", 1419


#로마카톨리교회의 연옥/대사 교리에 대해


[질문] 연옥 교리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요?

[답변]

연옥의 개념은 누가, 특별히, 어떤 시점에 만들었다기 보다는,  사후 신자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는 방향일 듯 합니다.

기독교 신학에는 '사후에 구천을 헤매는 망자의 혼'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단 "구원받은" 신자가 죽어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사멸하지 않는다면, 그 영혼이 지옥에 갈리는 없으니 두가지 선택지만 남습니다. (1) 낙원(~천국)에 막바로 들어가거나, 혹은 (2) 솔직히 죽자마자 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거룩하게 살았다고 주장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으므로, 낙원에 최종적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종의 정화와 준비를 거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후자의 생각에서 발전된 개념이 연옥입니다.

아래 제 글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림보의 개념처럼 아마 연옥도 위와 같은 사유에서 점차 발전해 나간 개념으로 보이며, 서방교회에서는 11세기의 리옹 제2차회의에서 처음으로 구체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사후의 정화장소에 대한 연옥개념과 이에 아울러 연옥에 있는 이들을 위한 산 자들의 기도나 기타 헌물 등의 공덕의 혜택을 연옥에 있는 자가 받을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후자의 개념이 결국 연옥에 있는 자들을 위한 대사의 근거가 되는 것이죠. 로마교회의 이런 연옥은 일종의 "징벌"개념입니다.

이런 징벌적 연옥개념은 로마카톨릭교회에서 발전시킨 개념이며, 정교회는 공식적으로 연옥이란 개념과 용어를 부정하고, 설정 그런 정화의 상태가 있다고 해도 그걸 징벌개념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교회의 입장은 (프로테스탄트처럼), 인간의 모든 윤리적 상태는 죽는 시점에서 종결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연옥에서 잠벌을 제거할 어떤 개인적인 심판이란게 있을 수도 없고, 또한 세상에 있는 사람이 대사 (인둘겐스)를 통해 (존재하지도 않는) 연옥의 영혼에게 뭔가 해줄 수도 없습니다.

로마카톨릭에서는 연옥을 외경에서 유추하지만, 연옥을 공식교리로 인정하지 않는 정교회는 바로 그 외경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을 "영감받은 정경"으로 인정하는 교단이란걸 기억하는게 좋습니다. 그들의 성서해석과 초기 7-8차 세계공회의에 연옥개념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정교회는 연옥을 로마교회의 발명으로 간주합니다. 4-5세기에 분리된 기타 고대교단의 입장도 마찬가집니다.

/ 최광민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도 고해성사가 있었나요? 만약 고해성사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없었다면 고해성사는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에 생겨난 것인가요?

[답변]

기본적으로 고해/고백성사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는 회중 앞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죄를 회개하고 사제에게 "고백"한 후 사제에게서 적절한 권징절차 후 "사면"을 선언받는 두 단계로 구성됩니다. 즉, 고백과 사면/권징이 그 기본구성입니다.

두 단계 모두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고,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시행되는 현재의 형태는 아니겠지만 간음과 같이 세례받은 신도의 중죄, 배교했다 돌아온 자들에 대한 권징에 대한 AD 2-3세기 교부들의 저작들이나 이후 지역 주교회의의 공식적인 치리내용을 본다면 참회-사면/권징은 초기교회에서 자리잡았다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경우, 루터교단과 성공회는 원래 공적/사적 고백/사면을 성사로까지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 전통을 유지합니다. 루터교단은 최근에는 예배에서 공적고백과 사면만 시행합니다.

(루터나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강력한 권징을 옹호했습니다만, 대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너무 강해진 현대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은 아주 큰 교리적 문제에 대해서만 성찬교류금지나 출교/파문 정도의 조치를 취할 뿐, 나머지에 대해서는 다소 '각자도생'의 입장을 취한다고나 할까요? 아울러 오늘날 루터교단, 성공회 등을 제외하면 죄와 벌을 나누어 보는 시각이 많이 희석되어 있고, 심지어 많은 복음주의적, 은사주의적 프로테스탄트들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란 "개인적 확신"만으로 지은 죄에 대한 죄값 (벌)마저 동시에 말소되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신이 한 개인의 죄를 용서할 때 그가 치를 죄값마저 탕감하지 못하리라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는 여분의 잠벌에 대한 처리를 교회가 대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개인적 확신'을 누가 보증하는가가 진짜 문제겠죠. 그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와 죄값을 사면 받았다는 확신을 보증하는 것은 성직자일까요, 개인적 체험일까요, 양심일까요, 그도 아니면 어떤 계시일까요. 영화 {밀양}이 이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최광민




[질문] 오리엔탈 정교회나 네스토리우스파의 후신인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나요?  특히 보편 교회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에티오피아 정교회나 인도에 사도 도마가 세웠다는 기독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는지가 알고 싶습니다. 또 오리엔탈 정교회와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고해성사가 있다는데 이에 대한 자료를 혹시 제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단성파 제교단 (이집트 꼽트, 시리아 야곱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에티오피아 등등) 및 양성파 (네스토리우스파/동방교회-구파/신파) 모두 공적/사적 고백/사면형식의 고해성사를 성사로 지킵니다. 인도의 경우 역사적으로 네스토리우스파와 단성파인 시리아 야곱파, 그리고 이후 들어온 로마카톨릭의 영향을 받은 몇 분파로 나뉘어 있으나, 이를 성사로 간주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성사의 경우, 로마카톨릭은 7이란 수에 맞춰서 7성사제를 운용하지만, 정교회나 기다 단성파, 양성파 교단은 꼭 7에 맞추진 않고 교회의 이름으로 성사적이라고 간주되는 의식을 폭넓게 성사로 간주합니다. 고해성사는 공통입니다.

윗 질문에 대한 제 답은 해당 교단의 웹페이지에 찾아보시면 잘 나와있습니다. 영어싸이트를 링크하겠습니다.

이집트 꼽트교회
http://www.copticchurch.net/topics/thecopticchurch/sacraments/

앗시리아/칼데아/동방/네스토리우스 교회 - 구파/신파 동일합니다.
https://maryosipparish.org/AboutUs.aspx


/ 최광민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 고해성사가 있었다는 고해성사는 사도 시대부터 있었으며 고해성사는 사도들이 직접 제정한 성사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요?

[답변]

성서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교회의 문서군에 속하는 AD 70-120년 경의 디다케 (12사도들의 가르침)이나 2세기 초/중반 교부인 유스티노스에 따르면, 참회를 교회에서 - 특별히 성찬을 받기 전에 하고 집례자는 사면선언을 합니다 (루터교단이나 성공회는 현재도 그렇게 합니다). 1세기 말의 디다케나 2-3세기의 사도헌장을 그 제목이나 내용이 암시하듯 당시 교회에 전수된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본다면 교회 내의 공적 참회절차에 대한 역사적 기원이 오래되었다고 봐야겠죠.

이 참회형식은 공개적/개인적 두가지 형태가 모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오늘날의 로마카톨릭교회의 그것과 형식면에서 같을 이유는 없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로마카톨릭교회나 기타 교단의 경우도 소죄의 경우는 꼭 사제 앞에서 고해성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기 교회의 가장 큰 대죄인 간음과 우상숭배/배교의 경우, 참회자에 대해서 교회는 그 속죄로서 성찬금지 등을 심지어 죽을 직전까지도 부과합니다. 따라서 보다 고대적 정의에서 본다면, 고해성사란 평이하게 말한다면 교회의 공식권징과 사면절차인 것이죠. 물론 이 사면을 "신에게 위임받아 사제의 직권"으로 면죄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의 용서를 사제가 선언"하는 것인지의 해석에는 차이가 있겠습니다. 프로테스탄트 (루터교단, 성공회 등등)은 대체로 후자로 이해합니다.

/ 최광민




[질문] 가톨릭에서 대죄와 소죄를 구분하는 교리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요? 또 동방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에도 대죄와 소죄를 교리적으로 구분하나요?

[답변]

특정한 시기를 딱 꼬집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교회의 권징 대상이 되는 죄의 대소 문제에 대한 생각은 아주 초기부터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령, 코린토스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나테마 마라나타'에 처한다'고 적으며 죽을 때까지 파문을 명시합니다. 예수의 재림까지 교회가 징계대상자에 대해서 손을 뗀다는 뜻입니다.

특히, 세례교인의 간음은 (및 중혼)은 이미 1세기 말부터 (참회를 하더라도 거의) 성찬금지 등 준-파문에 상응하는 중죄로 간주되었습니다. (해석의 문제는 있지만) 이미 {신약성서}에서도 "성령훼방죄"는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간주되고 있고, 따라서 간음이나 우상숭배, 배교 등은 어떤 교단을 막론하고 모든 고대교단에서 파문 혹은 준-파문에 준하는 당연히 대죄에 속했습니다. 이런 죄들은 아예 성서에 예수 혹은 사도들의 말로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그 외의 대/소죄의 구체적 리스트는 시대와 지역 주교의 치리권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교회의 권징에 따른 실무적인 사안이니까요.

/ 최광민




[질문] 종교개혁의 계기가 되었던 면죄부라는 것을 가톨릭에서는 대사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래 이 대사는 대죄를 지은 후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받은 뒤 남은 잠벌을 현세에서 보속하는 것이지만 그 중 하나가 헌금을 하는 것이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이 대사를 헌금을 하는 즉시 죽은 가족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거짓 선전을 했던 것이고 교황청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로마카톨릭 측의 상기 설명은 일면 맞고 일면 틀립니다.

루터의 {95개조} 전문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루터의 논점은 로마카톨릭 측의 상기주장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와 상관없이, 로마카톨릭의 "대사"의 교리를 지탱하는 (1) 중세 카톨릭적 "연옥"의 실재와 (2) 사후에 교회가 죽은 자들에게 대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을 중심축으로 합니다.

루터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약 연옥이 없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교회가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게 "대사"든 "면죄부"든 현세의 교회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위의 "대사"란 용어의 세심한 정의를 들어 로마카톨릭 측이 취하는 방어전략은 논점을 일탈한 것입니다. 루터의 입장처럼, 대사/면죄부의 효력이 발생하는 연옥 자체가 없다면 다른 추가적인 논증은 무의미한 것이니까요. 따라서 대사/면죄부에 대한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논쟁은 반드시 연옥의 실재여부 부터 논증되어야 합니다. 이걸 건너뛰고 "대사의 올바른 정의"와 "프로테스탄트 측의 오해"부터 논하는 건 논점일탈이란 뜻입니다.

왜 루터가, 이름없이 순교한 이들을 기리는 로마카톨릭교회의 만성절 (11월 1일)과 죽은 자, 특별히 연옥에 있는 자들이 천국으로 빨리 옮겨지길 기원하는 만령절 (11월 2일) 직전인 10월 31일에 이 문제의 95개조를 제출했는지의 의도는 그래서 명확합니다. (정확한 날짜는 논란이 약간 있지만 11월 1-2주 안에 게시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가 겨눈 칼 끝은 "대사의 올바른 사용/정의" 같은게 아니라, 연옥의 실재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한 교회의 관여가능성 여부니까요.

루터의 95개조에서 첫 13개 논점을 인용합니다.

  1. Dominus et magister noster Iesus Christus dicendo ,Penitentiam agite etc.' omnem vitam fidelium penitentiam esse voluit.
    • 우리들은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실때, 이는 신자들이 전 생애에 걸쳐 참회해야 함을  의미한다.
  2. Quod verbum de penitentia sacramentali (id est confessionis et stisfactionis, que sacerdotum ministerio celebratur) non potest intelligi.
    • 이 말씀은 고해성사, 즉 사제들이 집행하여 시행되는 죄의 자복과 사면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3. Non tamen solam intendit interiorem, immo interior nulla est, nisi foris operetur varias carnis mortificationes.
    •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그와 같은 심적 회개가 육체의 여러 가지 정욕을 외적으로 죽이지 못한다면 그런 회개는 무가치하다.
  4. Manet itaque pena, donec manet odium sui (id est penitentia vera intus), scilicet usque ad introitum regni celorum.
    • 따라서 참된 심적 참회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5. Papa non vult nec potest ullas penas remittere preter eas, quas arbitrio vel suo vel canonum imposuit.
    • 교황은 그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한 형벌 이외에는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권한도 없고, 의지도 없다.
  6. Papa non potest remittere ullam culpam nisi declarando et approbando remissam a deo Aut certe remittendo casus reservatos sibi, quibus contemptis culpa prorsus remaneret.
    • 교황은 신께서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혹은 시인하는 이 외에는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만을 사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만일 교황의 사면권이 무시당한다면, 죄책은 확실히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7. Nulli prorsus remittit deus culpam, quin simul eum subiiciat humiliatum in omnibus sácerdoti suo vicario.
    • 신께서 누구의 죄든지 사면하시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모든 일에서 겸손하게 만들고 복종하게 하여서, 신을 대리하는 사제의 지도를 받게 하신다
  8. Canones penitentiales solum viventibus sunt impositi, nihilque morituris eosdem debet imponi.
    • 죄를 사면하는 교회법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죽은 자에게 어떤 부담이라도 부과되어서는 안된다.
  9. Inde bene nobis facit spiritussanctus in papa excipiendo in suis decretis semper articulum motris et necessitatis.
    • 그러므로 교황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궁의 조항을 항상 예외적으로 만드시는 바, 그의 작정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서 자비를 행하신다.
  10. Indocte et male faciunt sacerdotes ii, qui morituris penitentias canonicias in purgatorium reservant.
    • 사제가 사망한 자에게 있어서 연옥에서의 교회법 상 회개를 내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11. Zizania illa de mutanda pena Canonica in penam purgatorii videntur certe dormientibus episcopis seminata.
    • 교회법 상의 벌들을 연옥의 형벌로 변경시키려는 이런 가라지는, 확실히 감독들이 잠을 자는 동안에 (=직무유기중에) 심어진 것이라고 보인다. (마 13:25)
  12. Olim pene canonice non post, sed ante absolutionem imponebantur tanquam tentamenta vere contritionis.
    • 예전에는 진정한 참회에 대한 시험으로, 교회법 상 징벌이 사면 후가 아니라 사면 전에 부과되었다.
  13. Morituri per mortem omnia solvunt et legibus canonum morituri iam sunt, habentes irue earum relaxationem.
    • 죽는 사람은 그 죽음으로서 모든 이 세상에서 받을 벌을 다 받았으며 교회 법령의 벌칙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해방된다.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 시기 이전에도 요한 테젤이 주장한 거와 같이 대사를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죄가 전부 사해지고 가족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식의 대사의 본래 뜻을 왜곡되고 과정된 형태로 선전해 헌금과 성물을 강매한 사례가 중세 시대에 있었나요? 중세 시대 부터 마르틴 루터의 시기까지 교황청은 이런 대사의 남용과 악용을 자금 충당을 위해 방관했나요? 아니면 나름대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나요? 저는 마르틴 루터 당시 요한 테젤 등의 가톨릭 수사들이 "성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해서 헌금을 내는 자들은 지금까지 지을 죄와 앞으로 지을 죄도 사해지며, 또 연옥에 있는 자기 조상들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헌금이나 성물을 강매했던 것이 교황 레오 10세와 로마 교황청이 의도했던 것이거나, 적어도 독일에서 벌어지는 실태를 알면서도 묵인했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답변]

13세기 라테란 공회의 문건에 따르면, 그 당시의 행태로서 대사가 남발되어 대사의 효력기간을 40일로 한정하기도 하는데, 이후 이 효력기간이 수 백년, 수 천년에 이르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모든 죄"를 사해주는 경우도 보고되어 교황이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바티칸이 조장했던 방조했던 몰랐던, 지역에서 오남용 사례는 꽤 많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둘 다일 것입니다. 대사에 대한 로마카톨릭 교리가 당시 절정이었으니까 오남용의 사례를 보고 받았더라도, 그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진 않았겠죠. 한 세대 후 로마카톨릭 측의 반-종교개혁 공회의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대사가 재인준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발생 후인 1500년대 중반에 개최된 로마카톨릭교회의 자체개혁안이자 반-종교개혁 공회인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대사 (大赦, 인둘겐스 indulgens)의 남용에 대해서 문제가 지적되긴했지만, 대사 및 순례, 성인유해공경 같이 종교개혁자들의 전방위 공격을 받은 건들은 신학적으로 옳은 것으로 강력히 재인준 받았습니다. 즉, 오남용의 문제는 있지만 교리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죠. 연옥에 있는 영혼을 다룬다는 점에서 대사과 유사한 궤적이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로마카톨릭의 "위령미사" 혹은 "연도"에 대해 한번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 최광민


[질문] 십자군 전쟁 당시 교황청이 십자군에 참전해서 전사한 자들은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고 선전을 했다는 이야기를 접한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사실입니다. 다만 1차 십자군 때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완전사면을 약속했다고 보통 말해지지만, 이건 공식적인 사면령이라고 보긴 약간 힘듭니다. 공식적인 교황의 "완전사면" 교서는 중동에 파견된 십자군이 아니라 11세기 스페인 지역의 수복운동과 그 이후 교황이 낸 교서인 {Bula de la santa Cruzada}가 우선입니다. 기본적으로 로마카톨릭 신자는 성인이 아닌 한 디폴트로 보통 연옥에 간다는게 자연스런 결론입니다. 이 경우, 완전사면은 교회가 행사할 수 있는 최고의 조치가 되겠죠. 원칙상으론 못할 것도 없습니다.

/ 최광민




[질문] 십자군과 관련된 질문에서 완전사면이라는 용어의 영어 명칭을 알고 싶습니다. 혹시 "plenary indulgence"라고 칭해지는 그것이 맞나요?  대사의 효력은 미래의 모든 잠벌까지도 미치는 건가요

[답변] 

로마카톨릭 용어로는 전대사 (全大赦, indulgentia plenaria), 영어로는 plenary indulgence 혹은 보통 평이한 영어로는 "full remission of sins"라고 하는데, 아마도 로마 산 조반니 (=성 요한)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 새겨진 아래 음각이 그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줄 것 같습니다. 판테온을 비롯해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Indulgentia plenaria
(모든 사안에 대한) 완전사면
perpetua quotidiana toties quoties
영구적이고 매번(일)
pro vivis et defunctis
산 자나 죽은 자를 위한  
/ 번역: 최광민

더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원죄는 연좌제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다면 "연좌제"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는 후손들에게 아담의 죄를 묻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가 인간의 생식을 통해 후손으로 전이되는 식으로 설명하긴 했지만, 전체 맥락에서 볼때 그가 의도하는 바는 "타락한 아담의 상태"가 후손에게 전이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죄"는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조건/상태에 대한 선언"이라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전 연좌제와는 결이 다르다고 봅니다.




[질문] 이건 그냥 질문해보는 것 입니다만, Indulgence를 대사가 아닌 면죄부 혹은 면벌부라고 번역하는 것은 개신교 측의 악의적인 선전이라는 가톨릭 측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면죄부 혹은 면벌부라는 용어가 프로파간다는 아니라도 적어도 본래의 의미와 어긋나는 오역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답변]

물론 당사자 측이 사용하는 용어를 써주는게 좋겠지만, '대사'는 공식용어, '면벌부'는 비공식용어로 여겨도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요 (면"죄"부는 정의상 "대사"와 의미가 좀 다릅니다).

가령, 로마카톨릭이나 정교회의 "성화상 공경"과 보통 프로테스탄트 측이 이를 비난하는 "성화상 숭배"를 두고, 공경은 '둘리아'고 숭배는 '라트리아'니까 둘은 다르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사례에서는 두 경계를 넘는 경우도 있고 바로 그런 사례가 주요 비판대상이니까 좀 미묘하긴 하겠죠. '공경'에 대해선 제가 짧은 글을 쓴 게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2/3.html

핵심쟁점은 로마카톨릭의 경우 죄와 벌을 확실하게 나누고 고해성사 등을 통한 속죄 후 남는 벌 (잠벌)에 대해 '대사'가 적용된다고 풀이하는데,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측이 애용해 온 '면죄(부)'란 마치 '벌'이 아닌 '죄 자체를 사면해 주는 것'이란 느낌을 주고, 따라서 그렇게 오해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 최광민




[질문] 완전사면의 경우 잠벌이 전부 탕감된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교리적으로 대죄를 지은 상태라 할지라도 이것이 탕감되어 구원받아 천국에 올라가게 되는 것인가요? 제가 가톨릭 교리에 무지해서 그런 것입니다만 완전사면이라는 것은 연옥에서의 보속을 하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올라감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답변]

"대죄"든 "소죄"는 죄는 신에게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라틴교회의 대사교리는 그 죄에 대응하는 '벌'에 대한 관점에 바탕을 둡니다. 즉, 죄는 용서받았더라도 응분히 치러야 할 '벌'은 사후에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 '잠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연옥'과 '대사'란 바로 이 '잠벌'을 사후에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라틴교회의 고민에서 나온 교리입니다. 중세 서방신학에서는 교회가 예수와 성인들의 공덕을 저장해 놓은 일종의 은혜의 보물창고의 열쇠를 쥐고 있으며, 교회가 신자들을 사면할 때 바로 이 여분의 공덕을 꺼내어 사용한다는 은혜의 "양적"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따라서 중세 말의 속죄/사면 개념은 다분히 "정량적"입니다. 소죄든 대죄든 구원을 받았으나 잠벌 때문에 연옥에 있는 사람의 경우, 그의 "영벌"은 탕감되었으나 다양한 수준과 양의 남은 벌, 잠벌의 정도와 양에 따라 그 "징벌/정화"의 기간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대사는 이걸 역시 정량적으로 해소하게 되는 것이고요.  대사는 '죄'가 아니라 '벌'에 대한 개념입니다.


/ 최광민




[질문] 대사는 꼭 죽은 연옥영혼을 위해서만 아님 살아있는 신자들을 위해서 받는건지요. 그리고 가톨릭의 죽은자를 위한 기도나 성인통공교리와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이와 관련된 연옥에 대해서는 그 프로토 타입 컨셉은 아우구스티노 교부에 기원 한다는데 이게 사실인지요. 정교회의 델로니아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질문자 qorcks200)

[답변]

죄와 벌을 엄격하게 분리해서 보는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에서는, 저지른 죄가 속죄 (고해성사) 로 사면된 후 남는 벌에 대한 보속은 죄질에 따라 일시적이거나 혹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보속 (영벌)은 결국 지옥행을 말하지만, 일시적인 보속 (잠벌) 의 경우는 유한하고  현세에서 일단 치르고 부족하면 연옥에서까지 이어집니다. 현세에서의 보속이 응보적인 동시에 교정적/예방적 성격을 가진다면, 연옥에서는 오직 본인의 문제만 다루는 응보적인 성격만 가지게 됩니다.

로마카톨릭의 이런 이해에서 신자들이 거의 대부분 디폴트로 연옥으로 간다고 해석내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본인이 잊고서 죽기 전 고해성사하지 못한 '죄'가 있을 수도 있고 (따라서 적절한 보속이 이뤄지지 못했고), 또는 해당 죄와 사제/주교가 부과한 보속의 형식과 내용이 등치되지 않아 충분한 보속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전대사(全大赦)는 연옥에서 받을 잠벌 전부, 한대사(限大赦)는 그 일부를 면제받습니다. 

이 개념은 말씀하신 대로 사도신경에도 나오는 '성인의 통공 (communio sanctorum)'의 개념과 함께 갑니다.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사도신경에서는 이 용어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란 정체불명의 용어로 번역해 놓아서 이 의미를 평신도들에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성인'은 꼭 "성자/성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구원받은 신자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죽었거나 살아있는 모든 자가 다 포함됩니다. '성인'이란 통상적 용어가 다소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성도'란 용어를 쓰겠습니다.

이 '성인/성도의 통공/교통'이란 개념은 , 즉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 간의 영적연합을 의미했습니다. 현세에서만 보면 이 '연합'은 기독교 신자들 상호 간의 긴밀한 사귐, 교제, 구제, 기도, 보살핌 등을 뜻합니다. 

바로 이 신자 상호 간의 "도움"이란 개념이 확장된 것이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한 대사'입니다. 로마카톨릭교회는 아직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지 못한 영혼들을 생존자들이 "돕기" 위해 보속을 대행할 대사를 결정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죽은 영혼들을 산 사람이 도울 방법은 '대사'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니까요.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Incarnationis Mysterium}가 이를 잘 설명합니다.

"....This doctrine on indulgences therefore “teaches firstly how sad and bitter it is to have abandoned the Lord God (cf. Jer 2:19). When they gain indulgences, the faithful understand that by their own strength they would not be able to make good the evil which by sinning they have done to themselves and to the entire community, and therefore they are stirred to saving deeds of humility”.(18) Furthermore, the truth about the communion of saints which unites believers to Christ and to one another, reveals how much each of us can help others — living or dead — to become ever more intimately united with the Father in heaven...."

....[중략] 더 나아가 신자들과 그리스도, 그리고 신자들 상호 간을 연합하는 성도들의 통공/교제의 진리는 살아있는 자이든 죽은 자이든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도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더욱 긴밀히 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 요한 바오로 2세  / 번역: 최광민 

http://www.vatican.va/jubilee_2000/docs/documents/hf_jp-ii_doc_30111998_bolla-jubilee_en.html

즉, 로마카톨릭교회의 '성인의 통공'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교회의 매개를 통해) 서로 이런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반면, 프로테스탄트에서의 동일한 '성도의 교제/교통'을 말하긴 하지만 산 자와 죽은 자가 이런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거나/못한다고 이해합니다. 즉, 죽음 이후 현세의 교회는 죽은 자의 영혼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개인은 스스로의 모든 속죄와 보속을 죽음의 시점에 완료했고 더이상 누가 그들을 위해 더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고 이해합니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에서는 (루터교단, 성공회, 감리회 처럼) 죽은 자를 위해 신의 "자비"를 기도할 수는 있더라도, 대사와 같은 형식으로 그의 영혼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고 봅니다. 또한 산 성도가 죽은 성도에게 기도할 이유도 없고, 또 죽은 성도가 살아있는 성도에게 직접 무엇을 해준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죽은 성도의 영혼은 심판 때까지 '자고 있다'고 믿은 루터 등의 관점에서 보면 더더욱 말이 안되는 것이겠죠.  

물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과 설교들에서 보면, 그는 사후 (1) 일시적으로 받는 벌과 지옥에서 받을 영원한 벌 (2) 일시적인 정화의 불과 영원한 징벌을 대비시키고 있으며, 또 (3)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언급하며, 또 이들 죽은 이들의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합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설명을 "정경 구약성서"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고 (직접 그렇게 적었습니다) , 대신 외경 {마카베오서}에서 내용을 가져오거나 당대의 라틴교회 관례에 기반해서 말합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카베오서}를 "구약성서"들과 확실히 구분짓고 있습니다.

연옥을 부정한 마르틴 루터가 아우구스티누스회 소속 수도사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고 할까요.

  • The man who perhaps has not cultivated the land and has allowed it to be overrun with brambles has in this life the curse of his land on all his works, and after this life he will have either purgatorial fire or eternal punishment.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Genesis, 2:20 [388/389])
  • Cleanse me in this life, and make me such, that I may after that stand in no need of the cleansing fire, for those "who are to be saved, yet so as by fire." (1 Corinthians 3:15) ... For all that, though we should be saved by fire, yet will that fire be more grievous than anything that man can suffer in this life whatsoever. (Exposition on Psalm 38, 2 [date unknown; 396~420)
  • Of those who suffer temporary punishments after death, all are not doomed to those everlasting pains which are to follow that judgment. (The City of God 21:13 [413-427])
  • The souls of the pious dead are not separated from the Church, which even now is the kingdom of Christ; otherwise there would be no remembrance made of them at the altar of God in the partaking of the body of Christ. (The City of God 20:9 [413-427])
  • The prayer either of the Church herself or of pious individuals is heard on behalf of certain of the dead; but it is heard for those who, having been regenerated in Christ, did not for the rest of their life in the body do such wickedness that they might be judged unworthy of such mercy, nor who yet lived so well that it might be supposed they have no need of such mercy. (The City of God 21:24 [413-427])
  • In the books of the Maccabees we read of sacrifice offered for the dead. Howbeit even if it were no where at all read in the Old Scriptures, not small is the authority, which in this usage is clear, of the whole Church, namely, that in the prayers of the priest which are offered to the Lord God at His altar, the Commendation of the dead has also its place. (On the Care of the Dead, 3 [420-422])
  • Church custom has it that at the place where the names of the martyrs are recited at God's altar, we don't pray for them, while we do pray for the other departed brothers and sisters who are remembered there. It is insulting, I mean, to pray for martyrs, to whose prayers we ought rather to commend ourselves. (Sermon 159:1 [417])
  • There is no doubt that the dead are helped by the prayers of holy Church, by the saving sacrifice, and by alms dispensed for their souls; these things are done that they may be more mercifully dealt with by the Lord than their sins deserve. The whole Church observes the custom handed down by our fathers: that those who died within the fellowship of Christ’s body and blood should be prayed for when they are commemorated in their own place at the holy sacrifice, and that we should be reminded that this sacrifice is offered for them as well. (Sermon 172:2 [date unknown; 393~430])

정교회는 AD 8세기 이전의 세계공회의에서 연옥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이를 교리화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죽은 자가 막바로 천국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은 (성모 마리아 같은 특별한 성인들을 제외하면) 일단 저승/하데스의 영역으로 가서 거기서 부활까지 대기한다고 이해합니다.  이 대기상태는 그야말로 대기장소일 뿐, 로마카톨릭에서 이해하는 식의  '잠벌을 해소하는 보속'의 상태 혹은 장소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죽은 자가 몸을 떠나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신에게 가는 여정에서 악마들의 영역인 하늘의 소위 "텔로니아  투 애로스 τελώνια τοῦ ἀέρος" (직역: 공중의 세관) 에서 조우하는 악마들이 죽은 자의 죄성과 죄책감 등을 약점 삼아 유혹/공격해서 가능하다면 그를 지옥으로 끌러내리려 하며, 죽은 자는 이를 극복해 가며 결국 천국에 이른다는 정교회의 설명은 정교회의 공식교리가 아니라 몇몇 정교회 성인 (가령, 크리소스토모스) 의 불분명한 언급, 성인전 등에 등장하는 설화적인 설명입니다. 정교도들은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주류) 측도 있고, 이를 영혼의 정화 및 신화에 대한 메타포로 보는 측도 있고, 오히려 이를 그노시스적이고 이교적으로 여기는 측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티벳사자의 서}에 나오는 모티프와도 유사합니다. 아무튼 이 설명은 "잠벌의 보속"이 이뤄진다는 로마카톨릭의 연옥과는 꽤 다르며, '최후의 유혹'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공히 적용되는 공심판(최후의 심판) 사심판 (죽은후 즉시 심판)은 교파별로 어떻게 규정하나요. 가톨릭 에서는 둘다 천국 연옥 지옥 등이 등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자들도 많은 질문을 하지요 심판을 두번 받는것인가? 하구요 아마 주후 재림지연으로 섕긴 문제깉은데 연옥이나 중간지대도 아마 이런 문제에 영향을 조금은 받은거 아닐까 생각합니다(징벌의 형평성과는 별개로) 가톨릭 측에서는 현대에 들어서는 주의 무시간성을 들어 사후와 종말간의 시적차이가 없고 단지 신자개인적 차원이냐 인류냐의 차이만 있다는 설명을 하긴 합니다 즉 개인의 종말이 이루어진후 그것은 곧 최후의 종말과 연결되 있다 이런식이지요 아직 정식화된 교리는 없는걸로 앎니다 가톨릭은 공의회 차원의 무오류 내지는 그 비슷한 교리정식화를 시도하다 그만둔걸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 qorcks200)

[답변]

저는 연옥개념의 출현이 예수의 재림지연과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라틴교회에서 연옥개념이 교리화되기 한참 전인 기원 초기 600년 간, 동/서방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사후의 상태는 "아브라함의 품"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사후의 영혼은 저승이지만 낙원이랄 수 있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지복의 상태에서 부활을 기다린다는 해설이죠 (물론 아직 완전한 천국이 그들에게 도래하진 않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의 영혼은 역시 저승이지만 격리된 하데스에서 미래의 징벌을 바라보며 공포의 상태를 보냅니다. (역시 아직 실제로 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AD 2세기 말 로마 사제 히폴리투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 NOW as to Hades, wherein the souls of the of the good things they see, and rejoice in the righteous and unrighteous are detained, it is necessary to speak of it. Hades is a place in the world not regularly finished; a subterraneous region, wherein the light of this world does not shine; from which circumstance, that in this region the light does not shine, it cannot be but there must be in it perpetual darkness. This region is allotted as a place of custody for souls, in which angels are appointed as guardians to them, who distribute to them temporary punishments, agreeable to every one's behavior and manners.

......[전략].... 
이 장소 (하데스)는 영혼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관리하기 위해 천사들이 배정되어 있으며 그들은 영혼들을 각자의 행위와 삶에 따라 일시적인 징벌을 부과한다.  / 번역: 최광민

2. In this region there is a certain place set apart, as a lake of unquenchable fire, whereinto we suppose no one hath hitherto been cast; but it is prepared for a day afore-determined by God, in which one righteous sentence shall deservedly be passed upon all men; when the unjust, and those that have been disobedient to God, and have given honor to such idols as have been the vain operations of the hands of men, as to God himself, shall be adjudged to this everlasting punishment, as having been the causes of defilement; while the just shall obtain an incorruptible and never-fading kingdom. These are now indeed confined in Hades, but not in the same place wherein the unjust are confined. 3. For there is one descent into this region, at whose gate we believe there stands an archangel with an host; which gate when those pass through that are conducted down by the angels appointed over souls, they do not go the same way; but the just are guided to the right hand, and are led with hymns, sung by the angels appointed over that place, unto a region of light, in which the just have dwelt from the beginning of the world; not constrained by necessity, but ever enjoying the prospect of the good things they see, and rejoice in the expectation of those new enjoyments which will be peculiar to every one of them, and esteeming those things beyond what we have here; with whom there is no place of toil, no burning heat, no piercing cold, nor are any briers there; but the countenance of the fathers and of the just, which they see always, smiles upon them, while they wait for that rest and eternal new life in heaven, which is to succeed this region. This place we call The Bosom of Abraham.

이 곳에는 꺼지지 않는 불의 연못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도 불연못에 던져지지는 않았다고 우리는 여긴다. 그러나 이 연못은 신의 정의로운 심판이 온 인류에게 내려질 때까지 미리 준비되어 있는 장소다. 부정한 자와 신에게 불복한 자들, 그리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헛된 우상을 마치 신 본인인 양 숭배했던 자들은 타락을 세상에 불러들였기에 이 영원한 징벌 가운데 던져질 것이다. 반면에 정의롭게 살았던 자는 썩지않고 영원히 시들지 않는 왕국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정의로운 이들이 현재 하데스/저승에 현재 격리되어 있긴 하지만, 부정한 자들과 같이 격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중략]... (의인을 위한) 이 장소를 우리는 "아브라함의 품"이라 부른다. / 번역: 최광민

4. But as to the unjust, they are dragged by force to the left hand by the angels allotted for punishment, no longer going with a good will, but as prisoners driven by violence; to whom are sent the angels appointed over them to reproach them and threaten them with their terrible looks, and to thrust them still downwards. Now those angels that are set over these souls, drag them into the neighborhood of hell itself; who, when they are hard by it, continually hear the noise of it, and do not stand clear of the hot vapor itself; but when they have a near view of this spectacle, as of a terrible and exceeding great prospect of fire, they are struck with a fearful expectation of a future judgment, and in effect punished thereby: and not only so, but where they see the place [or choir] of the fathers and of the just, even hereby are they punished; for a chaos deep and large is fixed between them; insomuch that a just man that hath compassion upon them cannot be admitted, nor can one that is unjust, if he were bold enough to attempt it, pass over it.

불의한 자들은.......[중략]....천사들에게 이끌려 지옥의 변두리로 끌려간다....[중략]....거기 서서 끊임없는 지옥의 소음과 뜨거운 연기 가운데서....[중략]... 그들은 미래에 있을 두려운 심판을 떨며 기다리는데 이렇게 사실상 그들은 징벌을 받고 있다.....
/ 번역: 최광민

5. This is the discourse concerning Hades, wherein the souls of all men are confined until a proper season, which God hath determined, when he will make a resurrection of all men from the dead, not procuring a transmigration of souls from one body to another, but raising again those very bodies, which you Greeks, seeing to be dissolved, do not believe [their resurrection]. But learn not to disbelieve it; for while you believe that the soul is created, and yet is made immortal by God, according to the doctrine of Plato, and this in time, be not incredulous; but believe that God is able, when he hath raised to life that body which was made as a compound of the same elements, to make it immortal; for it must never be said of God, that he is able to do some things, and unable to do others. We have therefore believed that the body will be raised again; for although it be dissolved, it is not perished; for the earth receives its remains, and preserves them; and while they are like seed, and are mixed among the more fruitful soil, they flourish, and what is sown is indeed sown bare grain, but at the mighty sound of God the Creator, it will sprout up, and be raised in a clothed and glorious condition, though not before it has been dissolved, and mixed [with the earth]. So that we have not rashly believed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for although it be dissolved for a time on account of the original transgression, it exists still, and is cast into the earth as into a potter's furnace, in order to be formed again, not in order to rise again such as it was before, but in a state of purity, and so as never to be destroyed any more. And to every body shall its own soul be restored. And when it hath clothed itself with that body, it will not be subject to misery, but, being itself pure, it will continue with its pure body, and rejoice with it, with which it having walked righteously now in this world, and never having had it as a snare, it will receive it again with great gladness. But as for the unjust, they will receive their bodies not changed, not freed from diseases or distempers, nor made glorious, but with the same diseases wherein they died; and such as they were in their unbelief, the same shall they be when they shall be faithfully judged. 
--- Hippolytus of Rome, {Discourse To The Greeks Concerning Hades}, tr. William Whiston

이것이 하데스/저승에 대한 설명이다. 거기서 모든 영혼은 신이 정한 때까지 기다리며 격리되어 있다. 신이 모든 사람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킬 때, 그는 영혼을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전이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바로 그 몸을 부활시킬 것이다. 당신들 그리스인들은 몸이 죽어 해체되어 버린다고 보고 부활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배워서 믿도록 하라. 당신들은 플라톤의 교리에 따라 영혼이 창조되었으되 신에 의해 불멸하게 만들어졌다고 믿는데 이것이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신의 능력을 믿도록 하자. 신이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육체를 다시 부활시킬 때 그는 그 육체를 불멸하는 몸으로 만드실 수 있다. 신이 어떤 것은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자.육체가 비록 해체되긴 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육체가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다 ...[중략]... 모든 부활한 육체에는 그 자신의 영혼이 다시 회복될 것이다.....[후략]  
--- 히폴리투스, {그리스인들에 대한 논고: 하데스에 관하여} ./ 번역: 윌리엄 휘스턴 /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심판의 경우, 프로테스탄트 최초의 정체성이 바로 '연옥'과 그와 연계된 '사후의 대사'를 부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의 경우 기술적으로 죽음과 부활 사이에는 연옥에 해당하는 단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위에도 썼다시피, 한 개인의 모든 평가는 그의 죽음과 동시에 종결됩니다. 그 이후는 신과 그 개인 간의 문제입니다. 교회나 다른 제 3자가 그를 해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신의 자비"를 구하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로마카톨릭교회의 대사는 '교회가 비축한 여분의 공덕'을 사용해 '정량적'으로 무언가를 그를 위해 해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측이 이 입장을 취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히브리서}에 보면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한국어 새번역)" 란 설명에서 개인의 죽음 후에 설명된 '심판"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반되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년왕국"의 정확한 성격과 시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문자적으로만 보면) "천년왕국" 직전에 의인들이 죽음에서 부활하는 "첫째 부활"이 있고 이들은 즉 "둘째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이 부활은 구원받은 자들에게만 적용됩니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둘째 부활"과 "백보좌 심판"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마태 복음서}에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이란 구절이 있는데, 그 "백보좌 심판", 즉 최후의 심판은 "정죄"이며 구원받은 자들은 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 코린토스의 교회에 보낸 두번째 편지에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라고 적는데,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도들이고 따라서 따라서 프로테스탄트 입장으로는 이 '심판대'는 최후의 심판 시의 '백보좌 심판대'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는 그의 삶과 행위에 대해 평가와 질책과 심판은 받을지언정 '정죄'를 받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그것은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 이라고 적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구원받은 영혼과 천사는 신의 영원도, 육체에 속박된 현세의 시간도 아닌, 제 3의 시간인 '에붐' 속에 삽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sense-of-ending.html

/ 최광민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나요?

[답변]

"초기"란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잡아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예수의 세례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고, 그 의미가 바울의 서신에 명시되어 있고, AD 70-120년 경의 문건인 {디다케}가 세례를 명시하고 있고, 세례자에 대해서만 성찬이 집례되었다는 AD 2세기 초/중반의 유스티노스의 기록만 보더라도, 세례는 성도 (Saints)가 되는 명시된 표징이므로 굳이 "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라고 교회가 가르쳤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울러 세례를 통해 그 전의 죄가 단번에 면죄된다고 생각해서 (그 이후에 짓는 대죄로 구원을 잃은 것에 대한 걱정으로) 세례를 가급적 뒤로 미루는 AD 2-4 세기의 전통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 같고요.

또한 세례를 받지 못하고 갑자기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세례준비자" 신분의 신자가 세례란 외적징표를 받지않았다고 해서 꼭 구원을 받지 못했다라고 단정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세례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 최광민




[질문] 잉글랜드의 종교개혁가인 윌리엄 틴들은 영혼불멸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간은 죽으면 낙원과 음부에 가는 것이 아닌 최후의 대심판 날까지 잠들어 있다는 견해를 가졌다는 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이 생각은 초기교회 때부터 있던 생각 중 하나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견해는 2세기 유스티노스의 제자였던 타티아노스가 그리스인들에게 한 논전에서, 진리를 모르고 죽은 자의 영혼은 몸이 죽으면 몸과 함께 죽어 흩어졌다가 심판의 날에 다시 몸과 함께 합체해 부활하고, 그 영혼이 신을 알았다면 그 영혼이 죽지 않고 이렇게 영혼이 흩어져있는 동안이라도 영혼이 사라져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봤습니다.

윌리엄 틴들이 종교개혁의 핵심쟁점에 반대한 당대의 석학 토마스 모어의 견해를 반박하며 출판한 논고를 읽어보면,

https://books.google.com/books?id=EMcOAAAAIAAJ&pg=PA2&dq=#v=onepage&q&f=false

틴들은 여기서 "영혼불멸"에 대해 반박하고 있는게 아니라, 만약 영혼이 (로마카톨릭교회의 말대로 죽은 후) 이미 천국, 지옥, 연옥으로 가서 "영혼"으로서 살고 있다면, 육체의 부활을 말하는 그리스도와 바울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교도 철학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영혼이 (그 자체로서) 영원히 산다고 제안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영적 가르침과 이교도 철학자의 육적 가르침을 섞고 있다...."라고 적었네요. 그러니까 이건 "영혼불멸" 이야기와 상관있는게 아니라, 영혼만으로 천국/지옥/연옥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생각에 대한 반박이라고 보셔야 할 듯 합니다. 즉, 틴들은 루터 처럼 사후 영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부활 때까지 잠들었다가 육체와 함께 부활한다는 말을 함으로써 연옥 개념을 부정하려고 의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영혼(의 존재)불멸"과 "영혼의 잠"은 꽤 결이 다른 주제입니다.

/ 최광민




[질문] 윌리엄 틴들이 연옥교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최후의 심판날까지 영혼들은 잠에 들어있다는 견해를 표출했다는 것인데 사실 이 주장도 오늘날 개신교의 교리에서 나오는 인간이 죽으면 사심판을 통해 낙원과 음부로 가서 최후의 심판날까지 거기 머무른다는 사후관과는 꽤 다른 것 아닌가요?

[답변]

"영혼수면"에 대한 해석은 아주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1-5세기에 "성인"으로 간주된 몇몇 주요 교부들, 특별히 동방의 교부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후의 영혼이 "의식"을 가지고 있고, 또 사후 낙원 (파라다이스)과 음부 (하데스) (및 연옥)으로 가서 의식을 가진 채로 심판과 부활을 기다린다는 설명이 주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 때까지 죽은 자의 영혼이 실제로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다는 개념을 가진 고대교부는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완전한 구원과 미래의 형벌의 기다리며 지복의 상태 혹은 공포의 상태에서 종말을 부활을 기다린다고 대체로 봤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영혼수면에 대한 틴들의 생각과 루터의 생각은 거의 같습니다. 다만 이 "의식"의 상태가 어느 수준인지 (즉, 완전한 잠인지, 의식은 있으나 낮은 의식상태인 것인지), 그리고 일부 신자 (가령, 계시록의 순교자들과 장로 등)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 신과 함께 있는 것인지 등은 논쟁적입니다.

아울러 최후의 심판 후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은 "둘째 사망"에서 어떻게 되는지, 다시 말해서 영원히 멸절되는 것인지, 영혼의 상태에서 영원한 형별을 받는 것인지를 두고도 논란이 있습니다. 멸절론을 주장한 고대교부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 최광민

草人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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