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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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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사해사본}의 정의의 스승과 메시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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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2020-12-12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 최광민] {사해사본}의 정의의 스승과 메시아(들)

순서
  1. {사해사본} 문서군에 대한 오해
  2. "이 사본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이 유태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의 고문서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
  3. "이 종교의 창시자는 '이스라엘의 구세주', '정의의 교사', '이사야의 고뇌에 찬 종', '하나님의 아들'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
  4.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 ?
  5. 정의의 교사/스승 ?
  6. 이스라엘의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
  7. 정리


게시판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 최광민



사해사본, {위키미디아 커먼스}




# [질문] Basil

제가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1998년 쓰인 한 과학동아 기사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우연히 이 기사를 찾았는데요.

". . . 이 사본(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이 유태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의 고문서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 이 종교의 창시자는 '이스라엘의 구세주', '정의의 교사', '이사야의 고뇌에 찬 종', '하나님의 아들'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 그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괴로운 죽음을 맞을 운명에 처했다.
  • 그는 고문을 받았으며 흉악한 제사장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힌다.
  • 그러나 그는 다시 부활해 세계를 구원하고 최후의 심판을 기다린다.
  • 그는 인내와 인간성과 형제애, 자선과 빈곤을 가르치며 새로운 계율과 정의와 세례, 그리고 성찬(聖餐)을 만든다.

이 사람이 누구냐고 퀴즈에 낸다면 거의 모두 '예수'라고 답할 것이다
. 그러나 '사해사본'에 적혀 있는 이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록돼 있지 않다.

오직 '구세주'라고만 표기돼 있으며, 천국을 만들기 위해 최후 심판의 날까지 고민하는 사람을 구원해주는 인물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 사람을 예수라고 단정한다면 간단한 일이지만 문제는 이 구세주가 예수보다 1백50년 전에 살았다고 추정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크리스찬이 믿는 예수는 오직 단 한사람의 인물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가르침은 이미 그 이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설교된 것을 예수가 되풀이한 것이 아닐까." [과학동아 1998년 8월호]

위 기사의 전문은 https://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199808N036 링크에서 PDF 다운로드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더 찾아보니 이 기사를 근거로 기독교를 비방하는 여러 반기독교 글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http://antichrist.or.kr/bbs/board.php?bo_table=free_talk&wr_id=154831

위 링크가 그 중 하나입니다. 위 링크 글의 내용을 살펴보시고 그 사실 여부, 그리고 과학동아 기사의 근거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 합니다.




# [답변] 최광민

# {사해사본} 문서군에 대한 전체적 오해

이런 류의 글들을 참 많이 보는데, 대개 실제 {사해문서} 문건들의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파편적인 내용들을 짜깁기해서 씌여진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조금 품팔이하면 {사해사본} 문서들들 어렵지 않게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위에 인용하신 글을 먼저 재인용 한 후, 논점을 하나씩 정리하겠습니다.

  • 이 사본(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이 유태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의 고문서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 [반박] 이론의 여지가 있거나 많음
  • 이 종교의 창시자는 '이스라엘의 구세주', '정의의 교사', '이사야의 고뇌에 찬 종'', '하나님의 아들'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 [반박] '정의의 교사'를 이 분파의 창설자로 볼 여지는 매우 높지만 이 '정의의 교사/스승'이 메시아인 것은 아니며, 적어도 이 인물에게 위에 언급된 다른 '메시아적 호칭'이 명시적으로 붙여지지 않음
  • 그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괴로운 죽음을 맞을 운명에 처했다.
    • [반박] 이 개념은 이미 히브리성서 {예언서}들, 특별히 {이사야}에 등장. 정의의 스승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지' 않음
  • 그는 고문을 받았으며 흉악한 제사장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힌다.
    • [반박] 역시 이미 히브리성서 {예언서}들에 등장. '정의의 스승'이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진술은 없음
  • 그러나 그는 다시 부활해 세계를 구원하고 최후의 심판을 기다린다.
    • [반박] 역시 이미 히브리성서 {예언서}들에 등장. '정의의 스승'이 '다시 부활해 세계를 구원한다'는 진술은 없음
  • 그는 인내와 인간성과 형제애, 자선과 빈곤을 가르치며 새로운 계율과 정의와 세례, 그리고 성찬(聖餐)을 만든다.
    • [반박] '쿰란' 종파의 '규율'에서 소위 '메시아 만찬'은 메시아의 도래 때 그와 함께 벌어질 축제와 향연을 모방하는 상징적 의례. 이 '메시아와의 만찬'이란 개념은 예수를 식사에 초대했던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도 가짐. 가령, 그들은 예수에게 "...“하나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라고 말함. 그런데 신이 베푸는 이 성대한 만찬 개념 역시 {이사야} 25장에 이미 등장.
    • 기독교에서의 성찬은 이집트에서의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의 맥락에서 메시아의 고난을 기억하라는 모티프가 핵심
  • 이 사람이 누구냐고 퀴즈에 낸다면 거의 모두 '예수'라고 답할 것이다. 
    • [반박] {사해사본}의 내용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대중의 경우.
  • 그러나 '사해사본'에 적혀 있는 이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록돼 있지 않다. 오직 '구세주'라고만 표기돼 있으며, 
    • [반박] 실제인이라면 왜 실명을 쓰지 않았을까? {예언서}의 인물이기 때문에 이름을 적시할 수 없던 것이 아닐까?
  • 천국을 만들기 위해 최후 심판의 날까지 고민하는 사람을 구원해주는 인물이라고 기록돼 있다.
    • [반박] 이 모티프 역시 이미 히브리성서 {예언서}들에 등장.




# "이 사본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이 유태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의 고문서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

'이론의 여지가 없"는게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우선, 윗글을 작성한 사람은 {사해문서} 문서군의 여러 이종문서에서 발견되는 파편적인 문구들을 "짜깁기 해서" 하나의 서사를 만들었는데, 윗글 대로라면 마치 쿰란의 {사해문서}를 작성한 종파에서 자신들의 '창시자'를 저런 식으로 일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사해사본} 문서군이란 대부분 작성그룹과 작성시점이 여전히 불분명한 파편적 문서(조각)들의 "컬렉션"이란 점을 염두하셔야 합니다. "{사해사본}은 BC 150년 경, '엣세네' 종파가 작성했다" 란 한줄요약은 그냥 편의적인 통상적 문구라고 여기시면 정확합니다. 무엇보다 {사해문서}를 '엣세네'가 썼다는 {사해문서} 자체의 언급이 아직 발견된 바 없습니다. 

{사해사본}이 발견된 20세기 중반 이후 현재까지 학계의 견해를 종합하면 "{사해사본} 문서군은 BC 150년 경부터 AD 70년 전후 어느 시점에, 하나 혹은 여러 종파/그룹에 의해 작성/편집되었다" 입니다.

엣세네에 대해서는 예전에 썼던 글을 한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 종교의 창시자는 '이스라엘의 구세주', '정의의 교사', '이사야의 고뇌에 찬 종', '하나님의 아들'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

이 네 용어는 {사해사본} 문서군 중에서도 각각 다른 문서군들에서 추출된 것이며, 특별히 '정의의 교사/스승'과 나머지 메시아 호칭은 같은 문맥에 "동일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 ?

우선, {사해사본} 문서군 전체에서 전문이 가장 잘 보존된 문서 가운데 하나인 {이사야서}는 그 문서 자체가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굉장히 많은 예언이 등장합니다. 히브리 성서의 예언서들에 근거해 메시아의 도래를 신앙하던 유대교 종파 혹은 기독교라면 {이사야} 등에 등장하는 묘사로 자신들의 메시아를 설명하는게 무슨 이상한 일은 아닐겁니다. 사실 당연한 것입니다. 

사실 히브리성서의 메시아는 (1) {즈카리아 / 스가랴}나 {이사야}에 나오는 대로의 온유한 평화의 왕으로서의 속성이 있는 반면, 동시에 (2) 심판의 군주로서의 속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랍비 유대교에서는 전자를 (1) 메시아 벤 요셉 (요셉의 아들, 메시아), 후자를 (2) 메시아 벤 다윗 (다윗의 아들, 메시아이란 식으로 두명의 다른 메시아가 도래할 것이란 결론을 도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랍비들이 말하는 '메시아 벤 요셉'은 적들과 전투를 벌이다 '죽습니다', 이후 "다윗의 아들 메시아"가 도래해서 정복과 심판을 수행합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이 두 메시아는 예수란 1인으로 각각 초림과 재림의 역할을 말한다고 풀이하겠죠. 굳이 이 '정의의 스승'을 메시아로 본다면 전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합니다. 아무튼 랍비들이 말하는 첫번째 메시아가 "요셉의 아들, 메시아"란 점은 참 흥미롭습니다.




# 정의의 스승?

이 소위 '정의의 스승'이란 {사해사본} 컬렉션을 구성하는 문건 중 {다마스쿠스 문서}에 주로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 {다마스쿠스 문서}는 20세기 중반에 이스라엘 사해의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1897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다만 {사해문서} 발견 후 연구자들이 이 {다마스쿠스 문서}를 발견된 {사해문서}군, 특별히 쿰란동굴 #4에서 나온 문서들 몇 종과 "연결지은 것"입니다. 

사족이지만, 이 {다마스쿠스 문서}에 대해선 아래 글에서 예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문건은 문건을 작성한 종파의 기원 (아마도 '엣세네')를 소개하면서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드 (=느부갓네살)로 부터 390년 후 신이 정의의 스승을 세웠다고 나와있습니다.

이 '정의의 스승'이 누구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사해문서}의 공동체 규범을 다루는 문건을 보면 엣세네파는 자신들의 '스승/교사'를 제1성전의 첫번째 대제사장인 "자독/사독"의 부계계보를 잇는 '코헨' 즉 '제사장/사제'과 동일시하고 있었습니다. (타락한) 제 2성전 제사장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위의 '정의의 스승'도 그런 인물 중의 대표적인 인물로 일단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마스쿠스 문서} 에 따라, 이 종파는 '자독파'라 보통 불리는데, 그들의 '정의의 스승'이 핍박을 받자 그 추종자들이 시리아 다마스쿠스로 피신했다가 후대에 유대아로 돌아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공교롭게도 위에 말한 '자독/사독'의 히브리어 뜻이 바로 '정의로운'입니다.

이 인물의 정체성에 대한 몇가지 가설들이 있는데, (1) 외경 {마카베오 1서}에 BC 159-152년 사이에 축출된 것으로 등장하는 무명의 대제사장으로 보는 설 (2) 마카베오 혁명 후에 세워진 신정일치 하스모니안 왕국의 제 2대 왕/대제사장인 알렉산드로스 얀네오스 시절 종교적으로 예수살렘의 성전그룹과 대립한 분파를 이끌다 처형당한 인물로 보는 Michael O Wise의 설 등이 있습니다. 

이 '자독/사독'파의 기원은 그렇다면 '사두개'파입니다. '정의의 스승'도 그럼 사두개파가 되는 셈이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사두개파는 원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정의의 스승'이 언급된 '다마스쿠스 문서}나 여기 대응되는 다른 쿰란동굴 #4, #6 문서군에도 역시 '부활'이란 용어나 연관된 개념이 '정의의 스승'과 연관되어 등장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라고 보기도 합니다. '부활'이 언급된 문건은 쿰란동굴 #1에서 발견된 찬미가와 동굴 #4에서 출토된 4Q521 문건 등 입니다만 이 동굴에서 나온 문서들은 '정의의 스승'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올 메시아가 죽은 자들을 소생시킬 것이란 예언입니다. 아울러 이들 문서는 아마도 자독파가 남긴 문건이 아니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사해문서}는 복수의 메시아에 대한 내용을 다층적으로 담고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가령, 쿰람동굴 #4에서 출토된 문건 가운데 Q175란 문건에는 메시아적 인물로 (1) 모세와 같은 선지자/메시아, (2) 다윗 같은 메시아, (3)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아 3인이 언급됩니다. {사해사본} 문서군의 작성시점과 작성그룹을 BC 100년 무렵의 소위 '엣세네'로 단일화하지 않고 본다면, 쿰란동굴들에서 출토된 문건들 간의 상이성이 보다 더 잘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해당 {사해사본} 문서가 유대교 엣세네파가 아니라 예수 이후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문서라고 보는 Robert Eisenman 같은 연구자는 기독교의 역사에 실재한 "예수"는 사실은 "예수의 형제 야고보"이며, 따라서 여기의 '정의의 스승'은 '예수의 형제 야고보', 그를 죽인 '사악한 사제'는 '대제사장 안나', 그리고 '거짓의 전파자'는 '바울'을 뜻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즉, 쿰란의 해당문서를 남긴 그룹은 유대교도가 아니라 "유대계 기독교도"란 주장이었죠. 혹은 AD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함락 이후 도피해 은거한 유대교도들 혹은 기독교도들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설명도 여전히 설득력있는 설명 가운데 하나란 점을 기억해 두시는게 좋습니다.

그러니까 이 인물에 대한 정체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 이스라엘의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

이 개념은 쿰란동굴 #4 에서 발견된 4Q246 란 아람어 문건에 "신의 아들" 및 "지극히 높은 이의 아들" 두가지 형태로 등장합니다. 이 문건은 파편이라서 이 '신의 아들'이 {다마스쿠스 문서}에서 말하는 '정의의 스승'인지 불분명합니다. 일단 {다마스쿠스 문서}가 해당 동굴에서 출토된 것도 아니고요.

문맥상으로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 문건은 {다니엘} 7장을 반영하며 마지막 날에 신의 정의로운 왕국이 세워지고,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왕으로 표현되는 이방인들이 신의 나라에 복종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습니다. 히브리성서 {예언서}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표현들입니다. 

대체로 {사해사본} 문서군들에 등장하는 메시아에 대한 단편적인 표현들을 정리하면, 다윗의 {시편}에 등장하는 표현을 따라, '(신의) 첫아들' (4Q369)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하늘과 땅이 신의 메시아에게 복종한다' (4Q521) 라고도 하고, 병을 치료하고 죽은 이들 부활시키기도 합니다 (4Q521). 쿰란동굴 #1에서 나온 문서에서는 (역시 다윗의 {시편}에 따라) '신이 낳은 메시아' (1QSa) 로 언급되지만, 동시에 제사장들에게 메시아가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1QSa 2:14-20) 묘사되기도 합니다.




# 정리

AD 1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유대교 제사장 출신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유대교 종파로 (1) 사두개 (2) 바리새 (3) 엣세네, 그리고 (4) 젤롯/열심당이 그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원래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서의 기원은 사두개지만 바리새파로 자랐고 엣세네파 스승 밑에서 공부하기도 했던 요세푸스는 엣세네에 대해 칭송할 뿐 조금도 부정적인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시대 기록물인 신약성서에는 사두개, 바리세, 젤롯 세 종파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 사도 중 몇몇은 이중 젤롯이었고, 니고데모 같은 바리새파도 일부 예수를 따랐습니다. 바리새파인 바울은 말할 것도 없고요. 대체로 사두개파는 '부활'문제 등으로 {복음서}나 {사도행전}에서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럼 좋던 나쁘던 사두개, 바리새, 젤롯은 언급되는데 도대체 엣세네는 어디로 갔는가에 대해 의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제일 쉬운 답은 예수를 따르던 주축 (혹은 세례자 요한, 혹은 예수 본인)이 바로 엣세네 (분파)였기 때문에 굳이 '우리들이 엣세네요'라고 명시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겠지만, 단순히 예수의 활동시기와 초기 기독교가 핍박으로 인해 활동지를 유대아 예루살렘에서 시리아 안티오키아로 옮긴 중간기간 동안 엣세네파와 기독교의 교류가 미미했기에 {신약성서} 상에서 '엣세네'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제외하면 '사두개'나 '젤롯' 역시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AD 4세기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는 엣세네와 동시대 조직으로 여러 면에서 겹치는 '테라퓨타이'란 수도공동체를 기독교 공동체로 적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그리고 유대아의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는 엣세네에 있다가 기독교로 옮겨온 이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따라서 조직이라든지 관습 같은 것이 홉수/습합되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엣세네파는 (쿰란동굴이 엣세네파의 아지트였다면) 같이 세상을 등지고 광야에서 수도공동체를 구성한 경우도 있었지만, 요세푸스의 진술에서도 보듯 그보다 훨씬 많은 수 천명에 이르는 엣세네는 촌락과 도시에서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엣세네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자료는 사실 매우 제한적이고 많은 부분이 여전히 추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해사본} 문서군을 통해 유추해 본다면, 엣세네나 초기 기독교나 기존 성전기독교에 비판적이고 종말론적 메시아를 강렬히 기대했던 사람들이 주축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엣세네는 율법에 대한 의례적 집착과 종파적 정결주의가 강한 집단인데 반해, 기독교는 훨씬 보편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엣세네의 배타적 핵심교리가 기독교로 직접 전수되었다고 보긴 곤란합니다. 종말론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유대교 종파별로 다들 가지고 있었고, 다만 각각의 메시아상을 어떻게 구축하고 있었는지에서 세부적인 차이들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AD 70년을 전후해 예루살렘의 함락과 성전 파괴와 함께 유대아 전 지역에 대한 로마의 직할지배가 완성되면서, 유대광야와 촌락에 근거한 엣세네파는 젤롯과 함께 소멸수순을 밟았을 것으로 추측가능하며 (아울러 성전종교 집단인 사두개파도 함께), 그들의 일부가 유대계 기독교도로 흡수/ 재편되었을 가능성은 큽니다. 쿰란 같이 전형적인 '세상을 등진' 형태의 수도공동체로서의 엣세네도 있지만, 촌락 등지에서 소규모 공동생활을 하던 엣세네도 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후자 그룹이 기독교로 이동하기가 더 용이하긴 했겠죠.

하지만 이들이 기독교도가 되었다면 이후 엣세네와 단절한 부분도 확실히 있을 것입니다. 가령, 요세푸스가 {유대전쟁사}에서 AD 70년 로마와의 전쟁 때 엣세네가 로마군에 고문/처형될 때 보여준 의연함을 칭송하는데서 추측되듯 젤롯과 더불어 배타적이고 강렬한 전투적 종말관을 가졌던 엣세네는 반-로마항쟁에서 함께 저항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예루살렘의 기독교도들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란 예수의 말에 따라 저항에 합류하지 않고 피난에 나섰습니다. 만약 AD 70년 경에 엣세네-기독교 간 모종의 종교적 유대관계가 있었더라도 이 무렵 붕괴되었겠죠. 엣세네가 예루살렘의 종교엘리트 (사두개)와 척을 진 집단이긴 하지만, 엣세네 역시 성전에 대한 집착을 가진 기본적으로 '제사장적 엘리트'의 지휘를 받던 조직입니다. 따라서 사두개파와 마찬가지로 성전파괴와 함께 엣세네도 존립근거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한번 더 정리한다면,

{사해사본} 문서군의 메시아와 기독교의 메시아 사이에 발견되는 이 유사성이 뭔가 특별한가요? 쿰란의 문서군이 BC 150-100년 무렵에 작성되었다고 "단정"짓더라도, 기독교가 정체가 묘연한 '쿰란'의 '엣세네' 종파를 "직접" 계승하거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란 결론을 바로 유도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두 그룹의 메시아 개념이 히브리 성서란 공통의 문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유사성이 발견되는 것일까요? 사실 율법준수와 배타적/종파적 정결주의가 강조된 엣세네와 그보다 훨씬 보편성에 기초한 초기 기독교 간에는 표면적 유사성보다는 차이가 훨씬 더 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당시의 각 분파들이 자신들의 메시아를 세부적으로 어떻게 '정의'하였는가가 아닐까요. 여기에서 결정적 차이가 발생하겠죠.

하지만 동시대 그룹 간의 상호적인 영향이 무슨 결정적 문제라도 될까요? 가령, '랍비' 같은 것은 구약성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다가 바빌로니아/페르시아에서 포로생활 하던 시절에 거기서 생겨난 것이지만, 그 자체를 신약성서에서 문제삼지는 않으니까요. 게다가 동시대에 존재한 그룹들 간에 사고의 유사성이 발견되는 것을 굳이 "표절"이란 식으로 풀이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들 비슷한 생각들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 사이에서 비슷한 패턴이 발견되는 건 오히려 당연한 것이니까요. 

가령, 이 글도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는 설명은 추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증거가 일천하니까요.

판단은 (여전히) 각자의 몫이겠죠?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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