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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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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바울 vs. 바울 #01: 바울서신의 저자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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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20-07-08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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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바울 vs. 바울 #01: 바울서신의 저자 논쟁


파울로스 (바울), 에페소스 동굴 프레스코화


포럼 질문(Mrkrong)에 대한 답변



[질문] #1 Mrkrong

성서비평학 쪽에서, 특히 바울과 관련하여 상당히 논쟁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 디모데전후서 등이 위작이라는 의견, 심지어는 바울과 사도행전의 사울은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등의 주장까지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위 내용은 아시는진 모르겠지만 유튜브 진목tv를 보다 알게된 내용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광민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덧붙이자면 바울 서신이 바울이 작성했다는 것을 뒷받침해 줄 수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해서 서신서가 바울이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궁급합니다.

[답변] 최광민

"진목TV"란 채널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만, 제가 신학을 전공하지는 않았더라도 (과학 전공이며, 사실 "집사 조차" 아닙니다) 그동안 유대교와 기독교 정경의 형성과정에 대한 사본학적 연구에 대해 가끔 전공서적도 들여다 보면서 취미 삼아 개인적으로 공부 해왔기에 저 개인의 사견을 짦게 정리 정도는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예전에 쓴 글을 중심으로 정리만 해드리겠습니다.

사실 바울서신 13권, 혹은 {히브리서}를 포함해 14권의 저자에 대한 문제는 AD 170년대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라토리 단편}에 일단 한번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래 글에서 "무라토리"란 단어를 검색해 보시면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읽으시면 아시겠지만, 여기엔 {히브리서}를 제외한 13권의 서신이 바울의 작품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고대로부터 저자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AD 3세기의 오리게네스와 4세기의 유세비우스는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바울이 {히브리서}를 썼을 가능성과 그 이유에 대해서 나름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아래 글에서 "히브리서"를 검색하시면 오리게네스/유세비우스의 견해가 나와있습니다.


고대와 중세기에 이 바울서신 13권의 저자를 모두 바울로 보는데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이 서신들 모두 저자를 "사도 바울"로 밝히고 있고, 어떤 경우는 바울이 자신의 서명을 확인하라고까지 명시하기 때문입니다.



16세기 이후, {히브리서}를 제외한 바울서신 13권의 일부 (에페소스(에베소), 티모테오(디모데)1/2, 티투스(디도), 테살로니카(데살로니가)1, 콜로사이(골로새))는 바울의 작품이 아니라 (1) 바울의 작품으로 착각되었거나 혹은 (2) 바울의 이름을 사칭한 위작이란 주장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현대 주류학설에서는 나머지 7 서신의 경우 바울 본인의 작품으로 대체로 여깁니다.

현대 학자들은 (가령, 바트 어만) "이들 문서에 '바울의 진품'이라고 명시된 점이야 말로 이들 문서가 위작임을 숨기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식으로 의혹을 제시합니다. 즉, "도둑 제 발 저린다"는 것이죠. 하지만 바트 어만이 즐겨하는 이 주장은 사실 좀 공정하지 않은데, 그는 (혹은 유사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동시에 "{복음서} 원문에는 저자가 특정되어 있지 않으니 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이 네 {복음서}의 저자일리가 없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말해, {복음서}들에는 저자가 특정되어 "있지 않아서" 전통적 저자들을 인정할 수 없고, 또 바울서신들에는 바울이 저자로 "특정되어 있으니" 저자가 의심스럽다/는 서로 상반된 논리를 펴고 있는게 저로선 좀 공정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식이면, '이래도 위서 / 저래도 위서'가 되어 버리는 식이니까요. 사실 하고자 한다면, "{히브리서}를 제외한 '바울서신' 13권 전부 위서"란 주장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현대 학자들이 바울서신 6권이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대체로 (1) 그 문체/어휘가 7권의 "진품" 바울서신들과 다르고, (2) 또 바울이 네로 치하에서 처형당했다면, 그의 서신들은 기독교 출범 후 한 세대 안에 작성되었어야 하는데, 원시기독교라 보기엔 꽤 발전된 것으로 보이는 교리나 시대적 정황을 이들 서신이 담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독교 출범 후 한 세대 안에 이미 핵심교리가 정교화되고 있었다고 보지 않을 확실한 물리적 증거는 없습니다. 모두 가정에 근거한 추론들입니다.



앞서 말한 "문체와 어휘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대사회에서 "저자"란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좀 필요합니다.

많은 종교영화를 보면, {복음서} 저자들이나 바울, 혹은 요한이 직접 펜에 잉크를 찍어 파피루스나 양피지 위에 일필휘지로 신약성서의 문서들을 적어내려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이런 대중적 이해는 아마도 사실과는 조금 달랐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작문"에 익숙했던 고대인들은 아주 적습니다. 사실 읽는 것보다 쓰는 일이 훨씬 어려운 일이죠. 물론 직접 저술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저자가 내용을 불러주면 (종종 교육받은 노예였던) 전문적인 대필자/비서가 받아 적은 후 완성된 내용을 양자가 확인하여 완성본을 만들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문맹이거나 작문에 익숙치 않은 저자들도 자신의 생각을 유려한 글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비서가 미리 글을 쓰고 저자가 "교정 및 승인"하여 글이 완성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필자/비서의 문체나 어휘선택이 글 안에 녹아들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 저자가 전하는 내용이 문체 때문에 (크게) 희석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럴 경우 이 문서의 "저자"는 누구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도 바울서신 (혹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각권에서 보여지는 문체의 미묘한 차이도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는 대체로 이 견해를 따릅니다.

아닌게 아니라, 어떤 서신 (가령, {갈라티아서}) 마지막에서 바울은 "직접 큰 글씨로 적어보낸다"고 언급하는데, 이것은 바울이 편지를 직접 작성했다는 뜻일 수도 있고, 또는 위에서와 같이 대필자와 작성한 후 "서명"을 하여 내용을 승인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사실 바울의 진품으로 인정되는 {로마서}의 맨 마지막 장에는 이 {로마서}의 대필자인 "테르티오스" 란 사람의 이름이 아예 명시되어 있습니다. 

인용합니다.

ἀσπάζομαι ὑμᾶς ἐγὼ τέρτιος ὁ γράψας τὴν ἐπιστολὴν ἐν κυρίῳ.

Saluto vos ego Tertius, qui scripsi epistolam, in Domino.

이 편지 (={로마서})를 (받아)쓰는 나 테르티오스도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문안 드립니다

--- 최광민




[질문] #2 Mrkrong

해당 유튜브에서는 7권을 제외하고는 바울이 쓴 것으로 보지 않는게 정설이라고 말씀하시던데, 꼭 그게 주류 의견은 아니라는 말씀이신거죠? 그분도 그 증거로 문체 등을 드시던데, 예를 들면 디모데전후서의 경우에는 당시 바울의 건강상태를 유추해본다면 충분히 대필의 가능성도 다분 해보이네요. 그러고보니 일전에 로마에 갔을때 바울이 가택연금 되었던 장소라고 전승이 내려오는 건물에서, 바울이 하는 말을 누군가가 듣고 받아쓰는 장면의 삽화를 본 기억이 나네요.

[답변] 최광민

최근 정의연 사태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씨가 발표한 일련의 "입장문"의 경우를 보시면 문체와 어휘를 볼 때 누가 봐도 본인이 직접 쓴 것으로 보긴 힘든데, 이용수씨께선 언론에 이 문건 가운데 (1) 한 건은 자신을 보좌한 몇몇 사람이 초안을 작성한 후 같이 검토했고, (2) 다른 한 건은 자신의 의견을 수양딸이 받아쓰고 원고를 함께 검토했다고 해명하셨죠?

이를 두고, 혹자는 "이용수 본인이 직접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것 아니면 이용수의 글로 볼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는데, 본인은 자기가 구술했고 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았으니 자신의 글이라고 하셨습니다. 언론을 통해 발표된 이 글들의 '저자'는 과연 누구로 봐야할까요?

아울러 회심 후 순교까지 바울의 활동기는 30년 정도고, 13권 서신들의 작성연대도 바울이 직접 관여했을 경우 AD 50에서 65년 사이의 15년 안에 흩어져 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이고, 그 시간대 안에 바울이 여러 대필자의 조력을 받았을 수도 있고, 또 바울 자신의 사고-문체-어휘가 변천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현대 학자들이 바울의 저작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6권의 작성시점은 보통 바울의 생애 말기인 AD 60년대에 배치됩니다.

이 문제는 바울의 "친필"을 담은 편지"원본"이 발견되지 않는 한 "증명"되기 어려운 성격이 탐구고, 사실은 모두 가정에 근거한 추론입니다. 추론으론 증명하지 못합니다.

19세기 중반까지 '트로이는 전설'이란게 학계의 '정설' 이었습니다만, 하인리히 슐레이만의 발굴 후 '트로이는 역사적 실재'가 '정설'로 뒤바뀝니다. '물리적 증거'가 이를 '증명'했으니까요. 문제는 '바울서신'의 저자논쟁에서는 물리적 증거라는게 존재하지 않아 사실은 뭐가 '참'인지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이죠. 자연과학 분야와 사뭇 달리, 인문학 분야에서 '학계의 정설'이란 것은 '증명 후 최종적으로 고정된' 어떤 것을 말한다기 보다는 '현재 시점에서의 주류설'로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 최광민





[질문] #3 Mrkrong

바울이 말하는 예수와 복음서의 예수는 다른 인물이라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저는 아무리 서신서를 읽어봐도 그런 점을 느낄 수 없던데 말이죠. 뭐 어떻게든 예수와 기독교의 역사성을 공격하려는 의도인건지 잘모르겠네요.

[답변] 최광민

바울서신에 "땅에서 살았던 예수"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는 점을 들어 바울의 예수는 일종의 '종교적으로 승화된' 형태의 예수이며 12사도의 예수와는 사뭇 다르다는 주장을 '펼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땅에서 친견하지 못했던 바울이, 예수의 공생애를 함께 보냈던 사도들과 기타 제자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시대에 살면서 본인이 굳이 그 시절의 예수에 대해 언급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게다가 바울서신은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성립한 이후 바로 그 종교적 맥락 안에서 포교를 염두하고 쓴 글들이니까요.

시간 상 {복음서}가 바울서신들 보다 뒤에 정리되어 나온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도들의 순교에 따라 그들의 기억을 기록해 둘 필요가 생긴 것이죠. 가령 초기 교부들에 따르면 베드로 순교 후 그의 비서였던 마르코 (마가)가 베드로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 복음서를 썼고, 선후관계를 보정해서 후속 복음서들이 씌여진 것으로 해설합니다. 아래 글 앞쪽을 보세요.


이런 주장이 나온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대교의 신을 거부한 초기 그노시스들이 자신들의 교리가 예수의 '12사도'들이 아닌 '바울'의 은밀한 가르침에서 왔다고 종종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을 물게 되면, 바울은 아직 유대교 전통 안에 있던 예수의 12사도들이 친견했던 그 예수가 아닌, 헬레니즘/영지주의적인 예수를 만들고 그 새로운 예수를 전파했다는 식의 이해로 넘어가게 됩니다.

-- 최광민





[질문] #4 Mrkrong

신학전공이 아니신건 알고 있었지만 집사조차 아니시라니 의외이긴 하네요. 답변주실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성경과 그 역사성에 대한 지식과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답변] 최광민

저는 한국교회에서 통상 '집사'라고 부르는 소위 한국형 '서리집사' 제도에 동의하지 않고, 그나마도 게을러서 교회출석을 자주 빼먹으니 사실 자격미달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실 미국교회에선 '안수집사' 이외의 사람을 '집사'라 부르지도 않고요.) 교회도 교단을 바꿔가며 여러 교회에 참석하는 편을 선호하다보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 "에큐메니칼 써핑"이라고 개인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관련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그냥 취미라고 봐주시면 될 듯 합니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종교(사)에 대한 관심도 그 연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최광민




[질문] #5 Mrkrong

아 과연 그렇군요.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진실을 확인하긴 어렵겠지만, 꼭 눈으로 보고 믿는 것만이 신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또 그렇기에 각자의 믿음이나 신앙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는 없겠가는 생각도 드네요.

[답변] 최광민

그래서 이런 문제는 "성령"과의 "직통라인"으로 매일 대화하신다는 은사주의자나 소위 "신사도"들께서 성령께 물어봐 단번에 해결해주시면 좋으련만, 그 분들은 제가 아무리 부탁을 해도 물어봐 주시질 않네요.

--- 최광민





[질문] #6 Mrkrong

딱히 교회를 정해놓고 다니지는 않으시는군요. 최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한국교회의 서리집사라는 것은 결국 신도의 개념이긴 하네요. 사실 굳이 집사의 성경적 근거를 찾자면 초대 교회의 집사들일텐데 말씀 듣고보니 지금의 집사와는 많이 다른 개념인 것 같습니다. 문득 드는 의문인데 그럼 미국에서는 집사를 어떻게 호칭하나요? Deacon?

[답변] 최광민

영어론 deacon / deaconess이라고 하는데, 보통 "안수집사"를 말하며, 한국식 "서리"집사 란 개념/용어는 없습니다. 한국형 '서리집사'는 일종의 '안수집사 후보생' 같은건데, 이런 후보생들을 '집사'로 호칭하는 것은 이를테면 '박사과정학생'을 '박사'라 부르는 것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한국의 그 임시직제는 사역을 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완장 채워주는, 직함과 감투 좋아하는 한국인 성정에 부합하는 왜곡된 제도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안수집사는 굳이 말하면 로마카톨릭/정교회/성공회의 부제/보제에 대응하는 직제입니다.

참고로 성서에는 "여집사"란 단어는 없습니다. 유일하게 여자 집사로 등장하는 Pheobe 도 원어에선 그냥 "집사"로 표기됩니다. 고대교회에서 남/집사와 여/집사가 직제 상 동등한 위치인지에 대해선 아래 글에 짧게 정리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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