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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주교 vs. 미트라(스) + 다곤 + 키벨레 : 패션과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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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2-07-24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주교 vs. 미트라(스)  + 다곤 + 키벨레 : 패션과 음모

순서
  1. '미트라', 혹은 주교관
  2. '미트라' 모자는 '미트라(스)' 신의 이름에서 유래했을까? 
    1. 어원
    2. 프리기움, 프리기아 모자
    3. 자유의 모자
  3. '미트라' 모자는 앗시리아의 다곤, 혹은 바빌로니아의 오안네스의 머리에서 유래했을까
  4. '미트라'는 키벨레의 관에서 유래했을까?
  5. 맺음말

# 어떤 주장

인터넷에서 아래와 같은 주장을 접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로마카톨릭교회의 교황이 쓰는 모자는 '미트라'라 불리며, 이것은 고대 이방종교 사제들의 모양을 베낀 것이며, 특별히 미트라스교의 신 미트라스의 이름을 딴 것이며...따라서 로마카톨릭교회는 여러 이방종교를 혼합한 혼합종교이다 ....."

흥미롭게도, 반-카톨릭 정서가 강한 근본주의 프로테스탄트들 뿐 아니라, 그들의 정반대에 서 있는 {다빈치 코드}나 {예수는 신화다}류의 비전문적이고 대중적인 '비교종교/신화' 자료에 경도된 안티-기독교 진영에서 함께 사용하는 이런 주장은, 내 경우엔 중1 때 (반-카톨릭 성향이 매우 강한) "제 7일 안식일 교도" 친구가 읽어보라고 건네 준 안식교의 자료를 통해 처음 접했다.

결론을 우선 말한다면 사실 이 주장은 하나의 "빅-조크"로서, 기독교 관련 음모론 가운데서도 가장 유쾌하고 엉뚱한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패션'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패션과 음모를 착각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 미트라, 혹은 주교관

'미트라'는 성직자 체계로서 주교/감독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독교 교단들의 주교들이 쓰는 모자를 말한다. AD 11세기 쌍방파문으로 분리된 정교회와 로마카톨릭교회 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교단 가운데 주교/감독제를 유지하는 루터교단이나 성공회 등의 주교들도 예전에서 미트라를 사용한다. 아울러 AD 5세기 칼게돈 공회의 이후 보편교회와 분리된 동방의 교단들, 가령 단성파인 이집트 꼽트교회나 양성파/네스토리우스파인 앗시리아 교회도 역시 주교들의 모자로 미트라를 사용한다.

주교들의 모자로 언제부터 미트라가 배타적으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고, 또 미트라의 형태도 역사적으로 계속 변해왔다.

유대교 대제사장 (코헨 가돌)의 머리에 쓰는 모자인 '미츠네페트'도 종종 '미트라'나 '터번'으로 번역되는데, 대제사장의 이 모자는 약간 펑퍼짐하고 위가 납작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로마 전통종교의 신관들인 플라멘들은 그들의 종교예식 가운데 특별한 모자/관을 사용하지는 않고 토가를 입은 후 머리에는 가죽으로 만든 아펙스를 쓰거나 스카프/베일을 덮어 썼다.


로마 공화정의 플라멘의 모습 (Wikimedia Commons)

로마 제정 시절의 플라멘의 모습

초기 기독교 시절에 기독교 성직자들인 주교/감독, 사제/장로, 부제/집사 등이 특별한 의상을 입거나 모자나 관을 썼다는 기록이나 모자이크 혹은 프레스코화는 없다. 또 초기 기독교 성직자들은 토가 대신 알부스(albus)라는 흰색 옷을 입었다,  천으로 만든 로마의 평상복인 튜닉의 한 형태로 소매가 길고 발목까지 닿게 디자인된 옷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Emperor Constantine and the Council of Nicaea. The burning of Arian books is illustrated below. Drawing on vellum. From MS CLXV, Biblioteca Capitolare, Vercelli, a compendium of canon law produced in northern Italy ca. 825

AD 825년 북 이탈리아 라베나에서 제작된 교회법 책자에 등장하는 AD 325년의 니케아 공회의 장면을 보자. 회의에 참석한 주교들의 복식 (우측 상단)에서도 특별한 모자를 쓰고 있지 않고 대머리거나 혹은 (7-8세기 부터 유행한) 가운데 머리를 민 상태로  묘사된 것으로 보아, AD 9세기에도 미트라의 사용은 보편적이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혹은 회의는 정규예배가 아니기 때문에 예복을 갖춰입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미트라는 서방 측에서는 AD 12-13세기에 그 착용이 주교들 사이에 널리 퍼졌고, 교회의 성직자 복식규정에도 포함되었다.

종종 비잔틴 동로마 제국 시절의 중앙관리들이 사용하던 모자인 카미라우키온 (camelaucum, καμιλαύκιον)이 후대에 미트라와 티아라로 발전되었다고 보기도 하는데, 이 카미라우키온은 보통 챙이 없는 중절모 모양에 위가 더 납작한 형태였다.

아래는 정교회와 꼽트교회의 통상적인 미트라.


러시아 정교회의 미트라 (Wikimedia commons)


이집트 꼽트교회 '교황'의 미트라 (Wikimedia Commons)

동방의 주교들이 사용하는 모자/관은 로마카톨릭 교회에서는 교황의 '티아라'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로마카톨릭 교황의 티아라는 1963년 바오로 6세가 사용한 이후론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서방교회의 미트라는 AD 11세기 이후 계속 변해서 중세 중반 부터는 아래가 붙은 두 개의 판으로 구성된 빳빳한  접이식 모자의 형태가 되었다. 



AD 11세기 이후 미트라 형태의 변화, {The Catholic Encyclopedia} 1911

이 접이식 주교 모자는 중세를 지나면서 점점 더 커지고 높아지는데, 이런 패션은 중세 후반 귀족여성들이 경쟁적으로 높이를 높혀가며 쓰던 원뿔형 모자인 헤닌 (hennin)의 추세와 궤적을 같이 한다. 지위와 높이가 비례하기도 했는데 전성기의 헤닌은 80cm의 높이를 자랑했다. 

Wkimedia Commons

서구 패션에서 모자의 '높이'에 대한 집착은 18-19세기에 등장한 신사용 모자인 '탑 햇 top hat'에서도 드러난다. 아래는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의 탑 햇. 


Wikimedia Commons

현행 로마카톨릭 교회의 미트라에는 세가지 형식이 있는데, 기본적인 형태인 '심플렉스'는 장식없는 흰 색 린넨이나 비단으로 제작된다. 주교 가운데 추기경이나 교황은 다마스크 문양이 들어간 것을 사용할 수 있다. 다른 두 종류인 auriphrygiata나 pretiosa는 보다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다. 참고로 "로마카톨릭 교회"의 교황은 엄밀히는 주교들 가운데 하나로서 "로마 주교"의 지위를 배타적으로 가진다.
아래는 제 2차 바티칸 공회의에 참석한 로마카톨릭 주교들이 착용한 미트라다. 대부분 미트라 심플렉스를 착용하고 있다.


제 2차 바티칸 공회의에 참석한 주교들 (Wikimedia Commons)

주교/감독제를 유지하는 루터교단이나 성공회 등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미트라는, 종교개혁이 이미 위가 뾰족한 접이형 미트라가 보편화된 이후인 16세기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로마카톨릭교회의 미트라와 원칙적으로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

자, 그럼 첫번째 음모론으로 들어가 보자.




# '미트라' 모자는 '미트라(스)' 신의 이름에서 유래했을까?

물론 사실이 아니다.

'미트라' (μίτρα)는 BC 10세기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는 '허리띠'로, BC 6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해 바빌로니아인과 페르시아인들이 긴 머리를 위에 눌러쓰는 머리띠/터번 (~모자)으로 등장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보자.

1.195. τὰ μὲν δὴ πλοῖα αὐτοῖσι ἐστὶ τοιαῦτα: ἐσθῆτι δὲ τοιῇδε χρέωνται, κιθῶνι ποδηνεκέι λινέῳ, καὶ ἐπὶ τοῦτον ἄλλον εἰρίνεον κιθῶνα ἐπενδύνει καὶ χλανίδιον λευκὸν περιβαλλόμενος, ὑποδήματα ἔχων ἐπιχώρια, παραπλήσια τῇσι Βοιωτίῃσι ἐμβάσι. κομῶντες δὲ τὰς κεφαλὰς μίτρῃσι ἀναδέονται, μεμυρισμένοι πᾶν τὸ σῶμα. [2] σφρηγῖδα δὲ ἕκαστος ἔχει καὶ σκῆπτρον χειροποίητον: ἐπ᾽ ἑκάστῳ δὲ σκήπτρῳ ἔπεστι πεποιημένον ἢ μῆλον ἢ ῥόδον ἢ κρίνον ἢ αἰετὸς ἢ ἄλλο τι: ἄνευ γὰρ ἐπισήμου οὔ σφι νόμος ἐστὶ ἔχειν σκῆπτρον. 

Such then are their boats. For clothing, they wear a linen tunic, reaching to the feet; over this the Babylonian puts on another tunic, of wool, and wraps himself in a white mantle; he wears the shoes of his country, which are like Boeotian sandals. Their hair is worn long, and covered by caps; the whole body is perfumed. [2] Every man has a seal and a carved staff, and on every staff is some image, such as that of an apple or a rose or a lily or an eagle: no one carries a staff without an image.   --- Herodotus, with an English translation by A. D. Godle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0.

7.90. οὗτοι μὲν οὕτω ἐστάλατο, Κύπριοι δὲ παρείχοντο νέας πεντήκοντα καὶ ἑκατόν, ἐσκευασμένοι ὧδε: τὰς μὲν κεφαλὰς εἱλίχατο μίτρῃσι οἱ βασιλέες αὐτῶν, οἱ δὲ ἄλλοι εἶχον κιθῶνας, τὰ δὲ ἄλλα κατά περ Ἕλληνες. τούτων δὲ τοσάδε ἔθνεα εἰσί, οἳ μὲν ἀπὸ Σαλαμῖνος καὶ Ἀθηνέων, οἳ δὲ ἀπ᾽ Ἀρκαδίης, οἳ δὲ ἀπὸ Κύθνου, οἳ δὲ ἀπὸ Φοινίκης, οἳ δὲ ἀπὸ Αἰθιοπίης, ὡς αὐτοὶ Κύπριοι λέγουσι. 

Such was their armor. The Cyprians furnished a hundred and fifty ships; for their equipment, their princes wore turbans wrapped around their heads, and the people wore tunics, but in all else they were like the Greeks. These are their tribes:1 some are from Salamis and Athens, some from Arcadia, some from Cythnus, some from Phoenice, and some from Ethiopia, as the Cyprians themselves say. --- Herodotus, with an English translation by A. D. Godle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0.

물론 같은 책에서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에 대응되는 앗시리아의 밀리타, 아라비아의 알리아트, 그리고 (같은 표기의) 페르시아의 "여신" '미트라 Μίτρα'를 언급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여신' 미트라와 머리 띠/모자/터번 '미트라'가 같은 것이라고 볼 사람은 없다. (흥미롭게도 헤로도토스는 미트라가 '여신'이라고 진술하지만, 아마도 착각일 것으로 여겨진다.)

131.

Πέρσας δὲ οἶδα νόμοισι τοιοῖσιδε χρεωμένους, ἀγάλματα μὲν καὶ νηοὺς καὶ βωμοὺς οὐκ ἐν νόμῳ ποιευμένους ἱδρύεσθαι, ἀλλὰ καὶ τοῖσι ποιεῦσι μωρίην ἐπιφέρουσι, ὡς μὲν ἐμοὶ δοκέειν, ὅτι οὐκ ἀνθρωποφυέας ἐνόμισαν τοὺς θεοὺς κατά περ οἱ Ἕλληνες εἶναι: [2] οἳ δὲ νομίζουσι Διὶ μὲν ἐπὶ τὰ ὑψηλότατα τῶν ὀρέων ἀναβαίνοντες θυσίας ἔρδειν, τὸν κύκλον πάντα τοῦ οὐρανοῦ Δία καλέοντες: θύουσι δὲ ἡλίῳ τε καὶ σελήνῃ καὶ γῇ καὶ πυρὶ καὶ ὕδατι καὶ ἀνέμοισι. [3] τούτοισι μὲν δὴ θύουσι μούνοισι ἀρχῆθεν, ἐπιμεμαθήκασι δὲ καὶ τῇ Οὐρανίῃ θύειν, παρά τε Ἀσσυρίων μαθόντες καὶ Ἀραβίων. καλέουσι δὲ Ἀσσύριοι τὴν Ἀφροδίτην Μύλιττα, Ἀράβιοι δὲ Ἀλιλάτ, Πέρσαι δὲ Μίτραν.

As to the customs of the Persians, I know them to be these. It is not their custom to make and set up statues and temples and altars, but those who do such things they think foolish, because, I suppose, they have never believed the gods to be like men, as the Greeks do; [2] but they call the whole circuit of heaven Zeus, and to him they sacrifice on the highest peaks of the mountains; they sacrifice also to the sun and moon and earth and fire and water and winds. [3] From the beginning, these are the only gods to whom they have ever sacrificed; they learned later to sacrifice to the “heavenly”1 Aphrodite from the Assyrians and Arabians. She is called by the Assyrians Mylitta, by the Arabians Alilat, by the Persians Mitra.

헤로도토스의 Μίτρα는 그 이후에는 Μίθρα, Μίθρας로 표기되는데 후자의 '미트라스'의 형태가 AD 1세기를 전후에 등장해서 로마 일대에 널리 퍼진 비의종교 미트라스교의 신 미트라스도 이 형태로 표기된다. (그러나 현재 학자들은 이 버전의 미트라스와 인도-페르시아계 미트라 및 조로아스터교의 미트라와의 연관성을 낮게 본다.)

크세노폰이 적은 형태로의 '미트라'를 그의 {Cyropaedia}를 통해 살펴보자.

Xen. Cyropaedia. 7.5.53

[53] καὶ νῦν δὴ νενικήκαμέν τε τὴν μεγάλην μάχην καὶ Σάρδεις καὶ Κροῖσον ὑποχείριον ἔχομεν καὶ Βαβυλῶνα ᾑρήκαμεν καὶ πάντας κατεστράμμεθα, καὶ μὰ τὸν Μίθρην ἐγώ τοι ἐχθές, εἰ μὴ πολλοῖς διεπύκτευσα, οὐκ ἂν ἐδυνάμην σοι προσελθεῖν. ἐπεί γε μέντοι ἐδεξιώσω με καὶ παρὰ σοὶ ἐκέλευσας μένειν, ἤδη περίβλεπτος ἦν, ὅτι μετὰ σοῦ ἄσιτος καὶ ἄποτος διημέρευον.

“And now we have won the great battle and have Sardis and Croesus in subjection; we have taken Babylon and subjugated everything; and yet yesterday, by Mithras, if I had not fought my way through the crowd with my fists, I vow I could not have got near you. However, when you took me by the hand and bade me stay by you, I was the object of all envious eyes, for having spent a whole day with you—without a thing to eat or drink.--- Xenophon. Xenophon in Seven Volumes, 5 and 6. Walter Miller.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MA; William Heinemann, Ltd., London. 1914.

"모자 미트라 Μίτρα"가 과연 미트라스교의 "신 미트라(스) Μίθρην"에서 유래되었을까? 철자가 다른 것은 그럼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음모론자나 안티-기독교 측 주장에서처럼, "미트라스교를 베낀 고대 기독교도들이 주교들의 의전용 모자를 미트라스의 이름에 따라 부른 것"일까? 혹은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의 사람들도 '미트라'를 기려서 자신들의 머리띠나 모자나 터번에 그 신의 이름을 붙인 것일까?

뭔가 심오한 음모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그저 생뚱맞은 상상일 뿐이다.



만약 정말로 "기독교가 미트라스교를 표절 혹은 흡수했다"치더라도, 우리는 (1) 미트라스교 최고사제들인 '파테르'들이 도대체 무슨 복장을 하고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할 뿐 더러, (2) 설령 그들이 특별한 모자 같은 것을 썼다고 하더라도 그 모자가 기독교의 '미트라'와는 꽤 달랐을 것이라고 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

그들의 신 미트라스는 확실히 어떤 특별한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미트라스가 쓰고 있는 특징적인 모자를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자는 라틴어로 프리기움 frigium 이라 불리던 '프리기아 모자'로, 소아시아와 북-시리아 및 그 동방에서 주로 여행자들이 많이 쓰던 것이었으며, 그리스와 로마 지역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고대의 조각이나 도상에서 누군가 프리기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면, 그는 로마의 동방, 특별히 소아시아나 시리아 출신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리아나 소아시아, 혹은 그 동방에서 유래한 것으로 간주된 신들이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선, (앗)시리아-소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숭배된 아티스의 모자를 보자.


아티스의 프리기아 모자 ( Wikimedia Commons)

다음은 아티스의 숭배지역과 겹치는 소아시아 킬리키아로부터 로마로 유입된 미트라스의 모자다.


미트라스의 프리기아 모자 (Wikimedia Commons)

또한 같은 이유로 동방박사가 동방 (~페르시아)에서 왔기에, 그 동방을 페르시아라고 생각했던 로마의 기독교도들은 동방박사들도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아래는 AD 526년 경에 제작된 이탈리아 라벤나의 모자이크화이다. 여기서 '프리기아 모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출신 '지역'이다.


Basilica of Sant'Apollinare Nuovo in Ravenna, Italy: The Three Wise Men" (named Balthasar, Melchior, and Gaspar). Detail from: "Mary and Child, surrounded by angels", mosaic of a Ravennate italian-byzantine workshop, completed within 526 AD by the so-called "Master of Sant'Apollinare" (source: Wikimedia Commons)

각설하고, 이 프리기아 모자는 모직으로 만들어졌고, 고깔처럼 생긴 위가 아래로 살짝 쳐져있다. 이 모양이 프리기아 모자를 쓰는 방식이다.

앞서 말한 바대로, 고대 기독교도들이 행여라도 미트라스를 모방하고 싶어서 주교의 모자를 '미트라스'의 이름을 따서 '미트라'로 불렀다면, 그 모자는 당연히 바로 이 '프리기아 모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트라스교의 주교급인 파테르(?)의 복식을 묘사한 흔치 않은 고대 유물로는 서기 3세기 중반 로마-파르티아 접경의 로마 점령지인 시리아 동부의 두라-유로포스 (Dura-Europos)에서 발굴된 미트라 예배당 (미트라애움)의 제단 좌우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가 있다. 이들이 쓰고 있는 프리기아풍 고깔모자에 주목해 보자.


도상 #43-44, 출처: Wikimedia Commons




## 자유의 모자

사실 이 '프리기아 모자'에 대해서는 또 다른 착각이 하나 있다.

고대의 패션 가운데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주로 여행자들이 사용하는 원뿔형 펠트모자가 있었는데, 그리스어로 '모직/펠트'란 뜻의 피로스 (πῖλος)라 불렀고, 라틴어로는 필레우스/필레움 (pilleus/pilleum)으로 불렀다.


그리스의 모직/펠트모자, 피로스 (Wikimedia Commons)

아티스나 미트라스가 '프리기아 모자'를 쓰는 것으로 묘사된다면, 쌍동이 신인 디오스코리 형제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바로 이 원뿔형 피로스를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한편, 고대 로마에서는 노예가 해방되어 자유를 얻을 때, '빈딕타'라 불리는 막대기로 그의 머리를 두드리고 또 그의 머리를 면도한 후 피로스/필레우스를 씌워주었는데, 이 때문에 고대 로마에서는 빈딕타와 필레우스가 자유/해방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아래의 동전은 율리우스 카이사를 암살하여 "독재자로부터 로마 공화정과 로마시민의 자유를 지켜낸" 부르투스가 암살을 기념하여 발행한 동전이다. 가운데 로마의 필레우스가 새겨져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을 기념해 브루투스가 발행한 동전

이 피로스/필레우스가 '시민의 자유'를 상징했기 때문에,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때 혁명군들은 저 피로스/필레우스를 쓴답시고 붉게 물들인 빨간모자 ("bonnets rouges ")를 만들어 썼고, 그 결과 프랑스 대혁명과 프랑스를 여성화한'마리안느'도 그 빨간모자를 쓰고 있다.


Bust of Marianne, displayed in the corridors of the Luxembourg Palace, seat of the French Senate. (anonymous artist)

각종 음모론에 따르자면, "자유롭고 이상적인 공산주의" 국가를 만화로 묘사한 스머프들도 그 모자를 쓰고 있다.

Wikimedia Commons

그런데 아뿔싸!

마리안느와 스머프가 쓴 모자는 피로스/필레우스가 아니다. 어떤 이유인지 혼란이 발생해서 원뿔 모양의 피로스/필레우스가 되어야 할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의 모자'가 그만 '프리기아 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혹시 '프랑스 대혁명'은 아티스나 미트라스의 숨은 신자들이 기독교 기반의 구-체제 (앙시엥 레짐) 전복을 꾀하여 일으킨 것일까? 왠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프랑스 대혁명은 기본적으로 반-종교적이었기 때문이고, 혁명정부는 많은 교회를 폐쇄하고 종교활동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아, 그럼 도대체 왜 "은밀한 미트라스교"인 로마카톨릭은 왜 프랑스 혁명세력에 의해 탄압당한 것인가? (모자도 같은 걸 쓰고 있으니) 같은 편이어야 말이 될 텐데 말이다.

여전히 '미트라' 모자가 미트라스교에서 왔다고 생각되는가?




# '미트라' 모자는 앗시리아의 다곤, 혹은 바빌로니아의 오안네스의 머리에서 유래했을까?

위에서 언급한 음모론이 '사이비 언어학'에서 온 것이라면, 이번에 설명할 음모론은 '사이비 도상학'에 온 것이다.

이 주장은 1858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목사이자 신학자였떤 알렉산더 히슬롭 (Alexander Hislop)이 쓴 책 {The Two Babylons: Papal Worship Proved to be the Worship of Nimrod and His Wife., 두 바빌론: 님로드(니므롯)과 그의 처 숭배인 것으로 입증된 교황숭배}를 통해 퍼져나간 주장으로, 아주 강력한 반-로마카톨릭적인 입장을 취한 책이니 만큼, 역시 반-로마카톨릭적인 프로테스탄트 그룹들에서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즐겨 사용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런데 히슬롭의 이 책은 이미 오래 전에 과도한 비약과 추론에 입각한 확신 등의 문제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신빙성을 상실했다. 일단은 히슬롭의 주장을 읽어보자.


Alexander Hislop, {The Two Babylons }, https://archive.org/details/bub_gb_GooEAAAAQAAJ

....So much for Peter's chair and Peter's keys. Now Janus, whose key the Pope usurped with that of his wife or mother Cybele, was also Dagon. Janus, the two-headed god, "who had lived in two worlds," was the Babylonian divinity as an incarnation of Noah. Dagon, the fish-god, represented that deity as a manifestation of the same patriarch who had lived so long in the waters of the deluge. As the Pope bears the key of Janus, so he wears the mitre of Dagon. The excavations of Nineveh have put this beyond all possibility of doubt. The Papal mitre is entirely different from the mitre of Aaron and the Jewish high priests. That mitre was a turban. The two-horned mitre, which the Pope wears, when he sits on the high altar at Rome and receives the adoration of the Cardinals, is the very mitre worn by Dagon, the fish-god of the Philistines and Babylonians. There were two ways in which Dagon was anciently represented. The one was when he was depicted as half-man half-fish; the upper part being entirely human, the under part ending in the tail of a fish. The other was, when, to use the words of Layard, "the head of the fish formed a mitre above that of the man, while its scaly, fan-like tail fell as a cloak behind, leaving the human limbs and feet exposed." Of Dagon in this form Layard gives a representation in his last work, which is here represented to the reader (Fig. 48); and no one who examines his mitre, and compares it with the Pope's as given in Elliot's Horoe, can doubt for a moment that from that, and no other source, has the pontifical mitre been derived. The gaping jaws of the fish surmounting the head of the man at Nineveh are the unmistakable counterpart of the horns of the Pope's mitre at Rome. Thus was it in the East, at least five hundred years before the Christian era. The same seems to have been the case also in Egypt; for Wilkinson, speaking of a fish of the species of Siluris, says "that one of the Genii of the Egyptian Pantheon appears under a human form, with the head of this fish." In the West, at a later period, we have evidence that the Pagans had detached the fish-head mitre from the body of the fish, and used that mitre alone to adorn the head of the great Mediatorial god; for on several Maltese Pagan coins that god, with the well-known attributes of Osiris, is represented with nothing of the fish save the mitre on his head (Fig. 49); very nearly in the same form as the mitre of the Pope, or of a Papal bishop at this day. Even in China, the same practice of wearing the fish-head mitre had evidently once prevailed; for the very counterpart of the Papal mitre, as worn by the Chinese Emperor, has subsisted to modern times. "Is it known," asks a well-read author of the present day, in a private communication to me, "that the Emperor of China, in all ages, even to the present year, as high priest of the nation, once a year prays for and blesses the whole nation, having his priestly robes on and his mitre on his head, the same, the very same, as that worn by the Roman Pontiff for near 1200 years? Such is the fact." In proof of this statement the accompanying figure of the Imperial mitre (Fig. 50) is produced - which is the very fascimile of the Popish Episcopal Mitre, in a front view. The reader must bear in mind, that even in Japan, still farther distant from Babel than China itself, one of the divinities is represented with the same symbol of might as prevailed in Assyria--even the bull's horns, and is called "The ox-headed Prince of Heaven." If the symbol of Nimrod, as Kronos, "The Horned one," is thus found in Japan, it cannot be surprising that the symbol of Dagon should be found in China.... --- Alexander Hislop, {The Two Babylons }, Chapter VI, Section I, [The Sovereign Pontiff]

[전략]....교황은 야뉴스의 열쇠를 쥐고 있고 다곤의 모자 (미트라)를 쓰고 있다. 니네베에서의 발굴을 통해 이 사실은 의심할 여지를 뛰어넘었다. 교황이 쓰는 미트라는 아론이나 유대교 대제사장이 쓰던 터번 형태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로마의 높은 제단에 앉아 추기경들의 숭배를 받을 때 교황이 쓰는 뾰족한 두개의 뿔이 달린 미트라는 블레셋인들과 바빌론인들의 물고기-신 다곤이 쓰던 바로 그 미트라이다....[후략]  --- 알렉산더 히슬롭, {두 바빌론} / 번역: 최광민

그럼 이제 도상들을 한번 훑어보자. 충격적인가?

구글 이미지 검색

오안네스 (그리스어 Ὡάννης)는 원래 BC 3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거의 동시대인인 바빌로니아의 마르둑/벨 신관 베로소스가 그리스어로 찬술한 {칼데아 역사}에 기록된 반신적 생물체다. 베로소스에 따르면, 이 오안네스는 페르시아만에 살고 있으며 낮시간에 물에서 나와 인간에게 글, 예술, 과학 같은 지식을 가르친 일종의 인어로서,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일종의 문화영웅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 몸 전체는 물고기 같지만, 물고기 머리 아래 또 하나의 머리가 있고, 물고기 꼬리에 붙은 사람의 발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이 묘사는 앗시리아의 신 다곤과 매우 흡사하다.

대영박물관의 앗시리아 학자였던 벗지의 책에 필사된 출판된 도상이다.



앗시리아의 다곤 ~ 바빌로니아 오안네스 ~ llustration from {Illustrerad verldshistoria utgifven av E. Wallis. volume I}: The fish-god Dagon 편



그럼 로마카톨릭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썼던 '미트라'를 보자. 


요한-바오로 2세 (Wikimedia Commons)

아하! 그러니까 주교들이 쓰는 저 '미트라'는 사실은 바빌로니아 혹은 앗시리아의 신인 오안네스나 다곤의 머리 모양, 즉 물고기 머리를 흉내낸 것일까?

이런 주장은 로마카톨릭 교회를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바빌론의 음녀"라고 주장한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견해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앗시리아-바빌론-수메르 고고학 발굴 유물 자료와 짜맞춘 19-20세기 일부 근본주의자들의 과장된 해석에서 왔다.

위가 뽀쪽한 접이식 미트라가 '물고기 머리'를 흉내낸 것이라면, 그래서 서방교회의 미트라가 '다곤'이나 '오안네스'를 흉내낸 것이라면, 그것은 기껏해야 12세기 이후의 일에 해당할 것이다.

음모론자들은  이 "접이식 미트라를 사용하던 주교"들이 혹시 은밀한 다곤 혹은 오안네스의 사제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그저 패션이다.  중세 중기의 채색삽화만 보더라도 동시대에도 다양한 '패션'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빌론의 음녀"인 "로마카톨릭 교회를 공격하려던"  이 부류 근본주의자들의 원래 의도와 달리, 이런 식의 조악한 주장들이 20세기에 들어서는 반-기독교 그룹, 특별히 "기독교는 온갖 종류의 오리엔트와 지중해 종교들이 혼합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측이 덥썩 물어 재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이런 것들 가운데는 심지어는 "다곤/오안네스의 머리장식에 십자가가 있으니, 십자가도 바빌로니아/앗시리아 종교에서 유래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들도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도상들 속에 등장하는 다곤/오안네스의 머리에는 분명히 십자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도상은 거의 확실히 벗지의 책에서 다시 조악하게 복제된 것이다. 벗지의 도상을 한번 보자. 저것이 십자가인가?


그리고 원 유물은 앗시리아왕 사르곤 2세 시절의 유적에 새겨진 부조이다.


다곤의 머리에 붙어있다는 '십자가'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원 자료를 본 적은 있는 것일까?


# '미트라' 모자는 소아시아 키벨레 여신의 관에서 유래했을까?

물론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우선 이것과 관련되어 소위 "증거"로 제시되고 있는 도상을 먼저 보자.


Mater Deor[um] Mater Syriae D.S.

이 동판화는 18세기 초반 네덜란드 라이덴의 출판업자인 Pieter van der Aa가 발행한 도판집에서 온 것이다. 이 출판사는 특별히 지도책들이나 외국의 유명도서를 해적판으로 출판했었다. 이 도상만 봐서는 마치 키벨레가 미트라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도상을 근거로 음모론자들은 기독교 주교들의 미트라 모자가 다름 아닌 "대모신" 키벨레의 관에서 온 것이란 주장을 "수 세기" 동안 펼쳐왔다.  사실 아닌게 아니라 '키벨레'는 반-카톨릭적 근본주의 프로테스탄트들의 귀에 적색경보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신들의 어머니이지, 대모신인 키벨레와 19세기 중반에 "하늘의 여왕"이자 "인류의 어머니"로 로마카톨릭 교회가 교황무오론을 발동해 공식선포한 "성모 마리아"가 떠오르지 않는가? 즉, 로마카톨릭은 "성모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하는 종교"임이 주교들의 미트라에서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 주장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해석은 그냥 원래의 도상을 확인해 보면 한번에 박살날 정도로 조악한 것이다.

사실 위 동판화에 등장하는 키벨레의 모습 자체가 틀렸다. 위의 도상은 아래의 유물에 바탕해 재창조된 그림일 뿐이다. 원래의 형태는 아래와 같다.


Cybele, (Wikimedia Commons}

키벨레가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은 이 각도에서 보면 그 형태가 분명하지 않다. 언뜻 보기엔 미트라 모자를 정면에서 올려다 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 이번에는 다른 키벨레 신상을 각도를 틀어서 보도록 하자.


Cybele, (Wikimedia Commons}


Cybele, (Wikimedia Commons}

무엇이 보이는가? 확실히 주교들이 쓰는 미트라는 아닌 듯  싶다. 그럼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Cybele, (Wikimedia Commons}


Cybele, (Wikimedia Commons}

무엇처럼 보이는가? 이것이 '미트라'일까? 물론 아니다. 키벨레가 쓰고 있는 것은 "도시"의 "성곽"이다.

그럼 왜 키벨레는 '도시의 성곽'을 관으로 쓰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을 무슨 음모론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키벨레는 많은 지중해 동부 도시들의 "수호신"이었다. 그래서 발견된 키벨레 신상들이 쓰고 있는 관의 모양은 동시의 성곽 모양에 따라 약간씩 다른 것이다.




# 맺음말

우리는 '아는 만큼' 볼 수 있다. 쇼펜하우어 식으로 말하면 "모든 인간은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여긴다 Every man takes the limits of his own field of vision for the limits of the world". 더 문제는 우리가 종종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점이다. 충분한 준비와 교육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면, 관찰하는 대상은 반드시 왜곡되게 되어있다.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말을 했다.

Cognitum. est in cognoscente secundum modum cognoscentis
인식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상태에 달려있다.

반-카톨릭 노선에 있는 근본주의자들이든, 반-기독교 노선에 있는 무신론자들이든지 간에, 그들이 "사이비 언어학'이나 특별히 '사이비 도상학'에 근거한 조악한 음모론에 쉽게 끌리는 것은 지루한 "텍스트"보다는 자극적 "이미지"가 더 강력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공격대상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건전한 비판에 필요한 합리적 판단력을 해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음모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흥미진진하고 왠지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사실 음모론의 세계보다 훨씬 단순한 곳일 수도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최광민 http://kwangmin.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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