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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리프킨의 {엔트로피} 와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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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草人 최광민 200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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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리프킨의 {엔트로피} 와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원글: https://kwangmin.blogspot.com/2012/03/blog-post_02.html


미국의 문명비평가 제레미 리프킨 (Jeremy Rifkin)의 문명비평서. 1980년.



이 책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읽었는데, 읽게 된 계기가 꽤 재밌다. 

당시 고2 화학공부를 따라가기 버겨워하던 나는 "엔탈피"가 나오던 단원부터는 참고서를 사서 따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과 후 서점에 갔다. 그때 눈에 들어왔던 책이 이 책이었고, 정작 찾아보려던 "엔탈피"나 화학공부는 저만치 버려두고 이 "엔트로피" 책에만 푹 빠져지냈다. 

이 책 속의 "열역학적 종말론"에 대한 관점은 처음 읽었던 때의 충격만큼이나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아서, 몇 년 후 대학에 들어가서 운동권에 몸 담은 선배나 친구들이 공산주의/사회주의의 진보성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도 나는 줄곳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한번은 운동권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사회과학 세미나에 이 책을 추천했다가 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도. 물론 이 책은 일단 공산주의 비판을 하기에 앞서 자본주의부터 맹렬히 공격하니 나를 '쁘티 부르주아 반동분자'로 몰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열역학적으로?) "가열찬" 진보라는 개념에 예나 지금이나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이니, 리프킨의 이 책이 내게 남긴 흔적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은 현대문명의 고-엔트로피 비효율성을 저-엔트로피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평이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에너지 파동을 겪은 1970년대 이래로 '로마클럽'이 꾸준히 제시한 '성장의 한계'라는 개념과 독일계 영국 경제이론가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 (E.F. Schumacher)의 명저 {작은 것이 아름답다 / Small is Beautiful}의 기본개념이 되는 '중간기술론'을 '엔트로피', 즉 '열역학적 종말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무척 참신한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원제 {Entropy: A New World View}는 바로 이 점을 암시한다.

아래는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열역학적 종말' 혹은 '고-엔트로피성 문명의 필연적 붕괴'라는 관점은, 리프킨의 이 책에 대한 기존의 과학기술계의 (특별히 미국) 즉각적이고 맹렬한 비판을 불어일으켰다. 그 이유는 리프킨이 물리학 개념인 '열역학 제 2법칙'의 '엔트로피'에 기초해서, 모든 문명 더 나아가 모든 시스템은 엔트로피의 축적을 피할 수 없으며 붕괴한다는 역사적 필연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즉, 그의 주장은 "필연적인 종말"에 맞서 붕괴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찾자는 말로 요약된다. 현대 문명사회에 대한 리프킨의 비판은 자본주의 뿐 아니라 공산주의의 비효율적 고-엔트로피 경제시스템에 대해서도 맹렬하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그 경제개념의 핵심에는 '사실상 모든 자원는 무한하다'는 잠재적 인식을 깔고 있기 때문. 

많은 비판자들은 그가 과학적 개념을 오용하여 과학기술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과 대중적 공황을 야기시켰다고 꼬집기도 한다. 

가령, 리프킨은 "닫힌 계(시스템)"에서의 엔트로피 증가란 열역학 제 2법칙을 조직과 문명을 비롯한 거의 전 "시스템"에 적용시켜 문명비판을 진행하는데, 사실은 그 용어 사용 조차 엄밀하지 않다. 가령, 물리학에서 말하는 (1) 열린 계는 물질과 에너지가 내/외부로 자유롭게 교환되는 시스템, (2) 닫힌 계는 물질을 뺀 에너지만 외부와 교환되는 시스템, (3) 고립 계는 더 나아가 물질과 에너지 둘 다 갇힌 계이다. 사람들이 많이들 착각하는데, 물리학적 정의에 따르면 열린 계와 닫힌 계 모두 엔트로피는 교환된다. 왜? 닫힌 계라 하더라도 완벽히 단열 차폐된 것이 아니라면 (물질은 고립되지만) 열/에너지는 외부와 교환되기 때문이다. 열이 이동하면 엔트로피도 이동한다.

과연 이렇게 물리학이 정의한 '계/시스템'의 개념을, 사회학과 경제학에 비유로서가 아닌 실체로 직접 적용하는게 옳을까? 혹시 비유였다면, 물리학 계가 아닌 다른 시스템에서는 물질과 열과 에너지와 엔트로피에 대응하는 개념들이 뭔지 먼저 정의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다시 읽어보면, 리프킨의 논리는 도약이 심하고 예측도 (꽤) 많이 빗나간 것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메시지 한가지는 근본적으로는 옳다. 

(열역학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모든 시스템이 그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결국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가정"을 사실이라고 "전제"할 때, 그 가정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그 필연적 운명 앞에서 겸손해지는 반면, 가차없는 진보의 신봉자들은 때때로 근거없는 희망과 오만함에 의지한다는 사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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