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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Theologia Germanica / 독일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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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4-08-17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Theologia Germanica / 독일신학


2004-08-17

https://archive.org/details/theologiagermani00fran

통상 {독일신학}이라고 불리는 이 소책자를 알게 된 것은, 막스 밀러의 유일한 소설인 {독일인의 사랑}을 처음 읽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막스 밀러의 이 소설의 한 장에서 소설의 화자인 "나"와 마리아는 {독일신학}에 나오는 구절들을 바탕으로 신의 섭리와 인간의 의지에 대한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눈다. 워낙 {독일인의 사랑}을 좋아했던 터라, 이 책에 인용된 {독일신학}이란 책도 같이 읽어보고 싶었지만, 주변에 이 책을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읽을 기회가 없었다. 실제로 {독일신학}을 읽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 였다.

{독일인의 사랑} 4장에 인용되는 {독일신학} 28장

CHAPTER XXVIII

How, after a Union with the Divine Will, the inward Man standeth immoveable, the while the outward Man is moved hither and thither.

Now, when this union truly cometh to pass and becometh established, the inward man standeth henceforward immoveable in this union; and God suffereth the outward man to be moved hither and thither, from this to that, of such things as are necessary and right. So that the outward man saith in sincerity "I have no will to be or not to be, to live or die, to know or not to know, to do or to leave undone and the like; but I am ready for all that is to be, or ought to be, and obedient thereunto, whether I have to do or to suffer." And thus the outward man hath no Wherefore or purpose, but only to do his part to further the Eternal Will. For it is perceived of a truth, that the inward man shall stand immoveable, and that it is needful for the outward man to be moved. And if the inward man have any Wherefore in the actions of the outward man, he saith only that such things must be and ought to be, as are ordained by the Eternal Will. And where God Himself dwelleth in the man, it is thus; as we plainly see in Christ. Moreover, where there is this union, which is the offspring of a Divine light and dwelleth in its beams, there is no spiritual pride or irreverent spirit, but boundless humility, and a lowly broken heart; also an honest blameless walk, justice, peace, content, and all that is of virtue must needs be there. Where they are not, there is no right union, as we have said. For just as neither this thing nor that can bring about or further this union, so there is nothing which hath power to frustrate or hinder it, save the man himself with his self-will, that doeth him this great wrong. Of this be well assured.

독일신학 28장

진실로 이런 神과 이런 합일이 이뤄진다면, 내적인간은 그 합일 속에서 동요하지 않을 것이고, 신은 오직 외적인 인간을 이리저리로 움직일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이며 또한 그리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외적인간은 확신에 차 이렇게 말하게 된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는 것과 죽는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행동하는 것가 행동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과 같은 모든 것은 내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필연적인 일을 하거나 혹은 견디어 낼 따름이고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외적인간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 아니라, 오직 영원한 의지를 향한 자신의 몫만을 수행할 뿐이다. 내적인간이 아닌 외적인간이 움직이도록 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적인간이 외적인간의 행동 속에서 어떤 의도를 가진다면, 그것 역시 영원한 의지에 복종하는 필연에 따르는 것이다. 신 자신이 인간 안에 있을때 역시 그러하다.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에게서 본다.

이런 합일이 신의 빛 속에서 이루어질때, 거기엔 어떤 영적인 교만도, 허황된 의지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한없는 겸손과 철저하게 낮추어진 마음, 흠잡을 수 없는 정직과 정의, 평화, 만족, 그리고 덕성이라 불릴 모든 것이 있게된다. 이런 덕성들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합일이 아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합일을 돕거나 이끌어낼 수 없듯, 어떤 것도 이 합일을 방해하고 교란시킬 수 없다. 이런 과오를 일으키는 것은 오직 인간의 자유의지 뿐이다. 이 사실을 깊이 숙지해야 한다.

- 편집 : 마르틴 루터 /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지금 옮겨놓고 생각해 보니 약간 아이러니하다. 이 28장은 지극히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스러운데, 사실 마르틴 루터가 소속되어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는 15세기 부터 오캄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고 있었다. 그런데 {장미의 이름}에도 잠깐 언급된 14세기 아비뇽의 교황 요한 22세는 이단 혐의로 윌리엄 오캄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나란히 아비뇽으로 소환했고, 이때 오캄은 에크하르트의 이론을 듣고는 "그건 이단이라기 보단 미친 사람의 소리"라고 일갈했다는 것 아닌가.



각설하고,

이 논문집은 1516년 종교개혁의 시발이 된 '95개조사건' 1년 전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출간되었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의 저작은 아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책의 원저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서는 여전히 작자 미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루터 이전부터 있었던 공동생활 형제단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기록한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이들 형제단의 일원 중 하나였다) 혹은 빈데샤임 운동과 같은 저지대 독일의 평신도 조직의 지원과 영향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이들에게 영향을 준 요한네스 타울러의 저작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참고로 요한네스 타울러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제자였다. 하지만 여전히 원저자는 미상으로 남아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독일신학}은 전형적인 신학서적은 아니다. 신과 성서가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윤리와 생활규범에 대한 명상록에 가깝다. 물론 이 책에는 다소 신-플라톤주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신에 대한 사유도 등장한다. 문장은 간결하며, 지나치게 현란한 수사적 기교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 문서는 원래 독일어로 씌여졌다. 이 책이 대상으로 하는 독자는 신학자가 아니라 독일어를 해독할 수 있는 일반인들이었던 것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음으로써 독일인이라는 민족적 자부심을 표현해 놓았다.

"...I thank God, that I have heard and found my God in the German tongue, as neither I nor they have yet found Him in the Latin, Greek, or Hebrew tongue. God grant that this book may be spread abroad, then we shall find that the German theologians are without doubt the best theologians."

"...나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씌여진 이 책 속에서 나의 神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을 감사하며 이 책이 널리 읽혀지길 바란다. 독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독일 신학자들이야말로 의심할 나위없는 최고의 신학자들이라는 것을."  ---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여담이지만, 프랑스 출신인 종교개혁자 장 칼뱅이 개혁을 진행하던 스위스 제네바에 합류했다가 반-삼위일체 신학으로 칼뱅과 대립각을 세웠던 에스파니아 출신 미카엘 세르베투스가 제네바 시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1553년 화형된 후 이를 비판하게 된 역시 프랑스 출신 종교개혁자인 세바스티앙 카스텔리오는 이 책을 1557년과 1558년 각각 라틴어와 프랑스어로 번역해 출판했다. 

그래서였는지 루터의 저작들을 존중해 왔던 장 칼뱅은 루터가 찬사해 마지 않던 이 {독일신학}을 거부하면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종교개혁자 회동에 보낸 서신에서 이 책의 사상을 "사탄의 기만"이자 교회를 위협하는 "독"이 숨어있다고 비판했다.

각설하고,

이 책의 초판이 발행된 지 1년 후인 1516년 10월 31일 만성절(할로윈) 전날,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개시한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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