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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글래디에이터}: 팩션에서의 상상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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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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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 팩션에서의 상상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Bust of Commodus as Hercules, hence the lion skin, the club and the apple of the Hesperides. Part of a statuary group representing Commodus' apotheosis. Luni marble, Roman artwork, 191-192 CE. (출처: Wikimedia Commons)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어디까지 역사적 사실인가? 예술과 영화가 과거를 재해석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새롭게 뒤바꾸는 것은 과연 어느 선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로마의 역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망요인을 타살도 자연사도 아닌 병사로 기록하는 반면, 이 영화에선 단정적으로 코모두스에 의한 타살로 처리했다. 또한 같은 역사에 따르면 코모두스는 서기 180년부터 12년간이나 황제였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코모두스의 조카는 코모두스가 황제가 된 180년에도 꼬마였는데 죽을 때도 역시 꼬마이다. {양철북} 증후군이라도 걸린 것일까?

코모두스의 죽음과 관련해, 로마의 역사는 원로원의 사주를 받은 나르시수스 (막시무스가 아니라)란 레슬러가 코모두스를 목욕탕에서 목졸라 죽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후반부는 역사물 치고는 너무나 정도를 벗어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인데, 코모두스와 막시무스의 한판 대결장면은 극중 코모두스의 말처럼 아주 극적이기는 한데 역사물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다.



그럼 원로원은 왜 코모두스를 암살했을까? 5현제는 장차 로마인들이 장차 Pax Romana라 부를 제국주의 정복을 통해 로마를 최대 치세로 이끌었고 제국은 늘 준 전시상태였다. 근데 코모두스때에 오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코모두스의 슬로건은 관용이었고, 그의 프로그램에는 빈민에 대한 감세, 빵과 써커스 등등이 있었다. 코모두스는 아버지가 병사하자마자 게르만족과 화친을 맺고 더 이상 제국의 경계를 확장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진정한 팍스 로마나를 실현한다.

코모두스는 5현제들과는 달리 특별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때 빈번했던 기독교도 탄압을 중단시키고 로마 시민권을 제국 내 전 신민에게 확대하는 정책의 기조를 확립했다. 또 코모두스는 이런 저런 이유로 군대와 대중들에게 절대적 인기를 누렸는데, 결과적으로 유일한 정적은 원로원으로 결국 이 마찰이 코모두스 정권의 종말을 가져왔다. 문제는 코모두스가 원로원에 대해서는 [폭군]이었다는 점이고, 그에 대한 암살 음모가 밝혀진 이래 원로원에 대한 그의 견제는 아주 심각해 졌다. 코모두스는 일반인에 대한 폭군이라기 보다 원로원에 대한 폭군이었다. 일반 평민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폭군이라기 보단 자신을 헤라클레스라고 착각하고 있는 과대망상의 (그러나 평민들의 삶에서는 그다지 해롭지는 않은) 싸이코였다. 대 정복전쟁이 오래 간 만에 종결되자, 코모두스는 전쟁터가 아니라 콜롯세움에서 그의 무대를 발견한다. 코모두스가 암살되자 원로원은 코모두스에 대해 담나티오 메모리애 (damnatio memoriae)를 선언해 복수했다. 즉 모든 공식기록에서 그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을 뜻한다.

영화와는 달리, 사실 코모두스는 황제/카이사르가 되는데 하자가 없었다. 비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친아들일 뿐 아니라 경력에서도 후계자 수업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코모두스가 5살때 그에게 카이사르 (Caesar)를 주었고, 아들이 17세가 될 때는 이미 코모두스와 공동의 아우구스투스 (Augustus)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자신은 그 전의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의 양자였고 오랬동안 하드리아누스와 공동의 아우구스투스였다. 그러니 아우렐리우스가 코모두스에게 준비시킨 위의 집권수순은 하드리아누스가 아우렐리우스에게 정권을 이양하기 위한 수순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피는 안섞였지만 아무튼 성씨만을 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시 하드리아누스의 아들인 셈이다. 그러니 코모두스가 황제가 되는 건 이미 5현제 전통에서 이미 수긍이 가는 상황이란 점임을 영화는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도도한 막시무스는 17살의 코모두스에게도 카에사르. 혹 씨저라는 호칭 뿐 아니라 아우구스투스로서의 경의를 표해야 한다. 이미 코모두스는 직속상관은 아니더라도 군단장보다는 서열상으론 상급자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브레이브 하트}와 비교해 보자. 최소한 {브레이브 하트}에서는 역사적 사실대로 월레스가 참수형 당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걱정했던 것은, 월레스의 목에 도끼가 떨어지는 순간 헐리우드적 극적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가령, 참수형을 지켜보는 군중들이 반란을 일으켜 월레스를 구출하고 스코틀랜드를 해방시킨다...등등. 그러나 감독은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적어도 {브레이브 하트}는 장 자크 아노의 {장미의 이름}이 저지른 실수를 범하진 않았다. {장미의 이름}에서 헐리우드의 공식에 따라 앗소와 정사를 벌인 빈민 처녀를 그냥 원작 그대로 화형되게 내버려두는 대신 대신 빈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구해낼 뿐 아니라 악당 베르나르 드 귀가 탄 마차를 벼랑 밑으로 밀어버리는 것처럼 윤색해 버린 식의 그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장미의 이름}은 원작소설 자체가 허구이니, 그것이 영화로 바뀌면서 다른 허구가 추가된다 한들 (허구의 허구가 어짜피 진실은 아니니까)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물인 경우라면 좀 심각하다. 코모두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그가 개인적으로 과대망상형 싸이코였다는데 근거하고 있다. 그가 모두 700여명의 검투사와 대결을 벌였던 사실에 바탕해, 검투사인 막시무스와의 대결을 창작한 것도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거기서 그쳤어야 하지 않을까? 왜 역사에 최소한 근거해서 막시무스를 코모두스와 싸운 그 700여명의 검투사 중의 한 명으로 만들지 않고, 지나치게도 역사를 뒤바꾸면서까지 최후의 검투사로 그렸어야 했을까?

드라마 {허준}의 구도를 여기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허준은 물론 역사적 인물이지만, 그의 삶은 거의 90% 정도가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런 인물에 대해서라면 몇가지 알려진 공식적 사료를 제외하면 얼마든지 허구를 도입할 수 있는 자유도가 주어진다. 하지만 코모두스는 허준이 아니다. 우선 코모두스에 대한 기록은 매우 많거니와, 그 무엇보다도 서기 [192년]에 한 [레슬러]에 의해서 [목욕탕]에서 [목졸린] 결과 죽었다. 분명 서기 [180년대]도 아니고, 막시무스란 [검투사]에게 [콜로세움]에서 [칼에 맞아] 죽은 게 아니다. 이건 너무나 무리한 왜곡이고, 정직하게 말하면 역사의 파괴인 것이다. 코모두스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에 대해서 허구를 가미하는 것은 작가의 무한한 자유다. 이미 그것은 역사가 아니기에 왜곡이라 부를 수도 없다. 그러나 코모두스의 죽은 시점, 사인 등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을 뒤바꾼다면 그것은 왜곡이라기 보단 [파괴]다. 이를 돌파할 방법은 단 하나. 코모두스에 대한 기록은 모두 [허구]였다고 할 수 밖에. 물론 이건 더 무리한 시도다.



솔직히 말해서, 코모두스가 막시무스의 등에 단도를 찔렀을때 나는 이 영화가 코모두스에 의해 막시무스가 죽는 구도로 끝나길 바랬다. 아마 그랬으면 비참한 영웅의 최후일망정 더 사실적이고, 설령 막시무스가 여전히 허구라 해도 기존의 역사 진술에 거의 완벽하게 일치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코모두스는 그 대결 이후에도 적어도 10년은 더 황제 노릇을 해야 한다.

내 견해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막시무스는 코모두스와 싸운 총 700여명의 검투사 중의 하나일지언정, (한 200번째 쯤?) 굳이 코모두스를 죽인 것으로 왜곡된 그 최후의 검투사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영웅 막시무스를 개죽음시킬 수 없는 미국인 대중의 감정을 고려한 이런 무리한 왜곡은 영웅의 개죽음보다도 내겐 오히려 더 허망해 보인다.

자유도가 필요했다면, 다른 시대의 역사를 좀더 찾거나 SF나 판타지물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아니면 원로원의 지시로 코모두스를 목졸라 주인 10년 후의 레슬러로 막시무스 (그랬다면 이름은 [나르시수스]가 되겠지)를 등장시켰다면 오히려 기존의 역사와 거의 일치하는 하나의 무리없는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막시무스의 동료 흑인 검투사가 나중의 그 암살자가 되거나. 리들리 스콧은 SF로 성공하다보니 역사와 공상을 혼동한 것 아닐까? 글래디에이터는 휼륭한 영화지만, 다만 이 영화가 역사물이었다는데서 그리고 역사의 [재해석] 수준이 아니라 역사를 [파괴]했다는 점에서 다른 이유를 재처 놓고라도 이 작품에 감점을 주고 싶다.



게다가 코모두스의 광기가 로마 멸망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 그건 너무나 심한 비약이다. 로마의 멸망은 (서로마 476) 그가 죽은 192년에서도 한참 뒤인 거의 300년 뒤의 일이다. 물론 5현제 시대를 끝냈으니 (코모두스는 결코 현제는 아니고 나중에 그런 사람이 나오려면 콘스탄티누스나 테오도시우스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 지적도 가능하겠다만, 그렇게 따진다면 제국의 이상에 젖어 제국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시켜버린 5현제, 특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야 말로 제국 붕괴의 원인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로마에 군대를 진주시킬 수 없음에도 자신의 군단을 이끌고 로마에 입성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야 말로 훗날 군인황제 난립의 원흉이 아닐까?

또 한가지. 극중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제국] 로마를 [공화국] 로마로 환원시킬 결심을 하고 막시무스에게 정권을 이양하려 한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는 물론 다른 로마인들도 자신의 국체가 공화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당시에 없었다. 로마의 모든 공문서는 공화국 로마와 원로원의 이름으로 작성되고 법은 그 이름으로 비준되었다. 황제라 통칭되는 임페라토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오리엔트"식의 의미로서의 황제가 아니다. 임페라토르는 일종의 비상시 총통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고, 물론 형식적이기는 해도 로마는 여전히 공화국이었다. 로마가 공화국이란 이름을 벗고, 오리엔트적인 전제군주제를 공식적으로 표방한 것, 그리고 황제를 가리켜 이제 임페라투스정도가 아니라 도미누스(Dominus), 즉 [주인님] 이라 부르게 되는 것은 마르쿠스와 코모두스가 죽고 난 100년 정도 후의 디오클레티아누스 때의 일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정말로 로마의 공화적 회복을 원했다면 막시무스에게 권한이 강화된 호민관을 되게 하거나 평민회+원로원을 강화하도록 지시했었어야지, 왜 그에게 황제가 되어 달라고 하는 것일까?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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