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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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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히브리어 필사본들에 따른 {호세아} 6:1-3절의 화자는 누구일까?

작성

© 草人 최광민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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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히브리어 필사본들에 따른 {호세아} 6:1-3절의 화자는 누구일까?

순서
  1. 질문 (구사)
  2. 성서 장/절 구분의 역사
  3. {호세아} 5/6장 구분 문제
  4. {호세아} 6:3/4절의 "세투마" 여부에 따른 히브리어 필사본 간 뉘앙스 차이
  5. {호세아} 속 화자 (야훼, 호세아, 백성)들의 화법
    1. 정리


    원글: https://kwangmin.blogspot.com/2026/01/61-3.html





    # 질문 (구사)

    *** [최광민] 이 글에서 다룰 내용은 붉은 색으로 하이라이트 함.


    성서를 비판적으로 세심하게 분석하고 읽어 본 사람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대부분 뼈대를 만든 자칭 사도 바울이 얼마나 궤변론자(詭辯論者)인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4절에서 "성경(구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언급했을 때, 학자들은 바울이 염두에 둔 가장 유력한 '성경' 구절로 호세아 6장 2절을 꼽는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세아6:2)...배경의 이해 없이 보면 바울의 주장처럼 예수의 삼 일만의 부활을 예언한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호세아 선지자(BC 8세기)가 활동하던 당시,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위협 속에 있었고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영적으로 타락해 있었다고 호세아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호세아 본문의 '우리'는 메시아 한 사람(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받아 상처 입은 이스라엘 공동체(북이스라엘/에브라임)를 지적하는 글이다.

    여기서 "살리시며", "일으키시리니"는 죽은 시체가 무덤에서 나오는 생물학적 부활이 아니다. 이는 전쟁이나 재난으로 인해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인 국가적 위기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히브리 문학(구약)에서 "이틀 후"와 "셋째 날"이라는 표현은 숫자 2와 3을 나열하여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혹은 "속히"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시적 관용구다. 즉, 하나님이 징계하시더라도 우리가 회개하면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낸 글이다.


    바울은 이글을 삼일만에 예수 부활을 구약이 예언한 것으로 원래 문맥과는 전혀 다르게 인용하는 해석으로 자신의 신학을 만들어 낸다.

    상당수 구약학자들은 호세아 6:1-3의 고백이 호세아 선지자의 진심 어린 권면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상적이고 가벼운 회개를 풍자하는 말이라고 본다.

    근거는 바로 이어지는 6장 4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한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자! 그러면 금방 낫게 해주시겠지(이틀 뒤, 삼일 째)"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값싼 회개'를 거부하신다는 문맥이다. 즉, 원래 본문은 "하나님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백성들의 안일한 태도"를 보여주는 구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해석이다.

    바울은 해당 구절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다음 문장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아도 하나님이 속히(3일쯤에)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다소 안일할 수도 있는) 기대를 말했지만, 바울은 이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예수를 문자 그대로 3일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써, 참된 회복을 시작하셨다"는 구속사적 성취로 재해석했다. 그럴싸한 문장만 찾으면 족했던 것이다.  [... 후략 ...] 

    이병태 교수는 "상당수 구약학자들은 호세아 6:1-3의 고백이 호세아 선지자의 진심 어린 권면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상적이고 가벼운 회개를 풍자하는 말이라고 본다."고 썼지만, 이 문제는 원래 장/절 구별이 없던 히브리어 원문이 형성된 후 훨씬 후대에 생겨난 유대교 필경사 그룹들의 다양한 "전통"에 따라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해석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은 반쪽 주장이다. 

    왜 그런지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 성서 장/절 구분의 역사

    히브리 {구약성서}나 그리스어 {신약성서}는 원래 띄어쓰기가 전혀 없었고, 장/절 또한 한참 후대에 가서야 고안된 것이다. "장 chapter"은 기독교의 발명품이고, "절 verse"은 유대교/기독교의 공동발명품이다. 

    유대교 정경과 기독교 정경이 확립된 지 여러 세기가 지난 후인 AD 5-10세기,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티나 티베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히브리 정경을 필사/주석/전승한 유대교의 맛소라 (=전승자) 학파는, 오늘날 "절"이라 불리는 단위로 구절들을 나누고 이를 "페수킴 pesukim"이라 불렀다. 각 절의 끝에는 "소프 파수크 Sof Pasuq"라 불리는 표시 (:)를 달았지만, 이들 맛소라 학파가 각 절에 숫자까지 붙이지는 않았다. 아울러 이 경우는 유대교 정경 - 기독교 {구약성서} - 에만 해당하고 기독교의 {신약성서}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본격적인 장별 구별이라하기는 불충분하지만, 유대교 맛소라 학파는 그들이 전승받아 필사한 히브리/구약사본인 내용의 흐름에 따라 "세투마 Setuma (닫힘, 멈춤)" 와 "페투차 petuchah (열림)"란 표시를 넣어 대략적인 문단을 구분했다. 하지만 역시 이런 문단들에 숫자를 붙이지는 않았다. "페투차"는 내용의 큰 차이로 새롭게 줄이 시작되는 지점이고, "세투마"는 내용상 맥락이 (살짝) 멈추는 지점에 공란을 삽입하지만, 문장을 줄 바꿈 없이 이어진다. 

    기독교 초기교부들의 경우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성서의 단락을 구분했는데, 가령 AD 5세기에 히브리어 본문에서 직접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를 작업한 히에로니무스 같은 경우는 라틴어로 "카피툴룸 capitulum"이라 불리는 단위로 성서의 문맥을 구별했는데, 이건 "장"이라기 보다는 요약/요점 같은 의미로서 맥락을 구분해 본 것일 뿐, 오늘날 처럼 본문 자체를 일련번호로 나눈 것은 아니다.

    현재 사용되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본문의 장별 구분은 기독교 측의 발명이다. AD 1205년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인 스티븐 랭턴 (Stephen Langton)이 성서 구절의 학술적 인용과 교회예전에 쉽게 사용하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으로, 종교개혁 이전의 영국은 로마카톨릭 국가였기 때문에 이 작업은 로마카톨릭의 표준성서였던 라틴어 {불가타} 역본에 바탕해 이뤄졌다. 이 {불가타}의 구약은 AD 5세기 팔레스티나에서 활동했던 수도사이자 교회박사인 히에로니무스가 기존의 그리스어 {70인역}이 아닌 히브리어 사본에서 직접 라틴어로 번역했다. 랭턴의 장별 구분은 맛소라 학파의 세투마/페투차 방식과 달라서, 랭턴 식 장의 구분과 맛소라 학파의 구분은 대개 일치하지 않는다. 

    각 절에 숫자를 붙이는 시스템은 1550년대에 프랑스 출판업자 로베르 에스티엥 (= 스테파누스)의 작업이었는데, 1551년에는 그리스어 {신약성서}에 1555년에는 라틴어 {불가타} 구/신약성서 각 절에 숫자를 도입했다.

    즉, 현재 유대교 혹은 기독교의 정경의 "표준/정본"으로 대체로 인정되는 유대교의 {맛소라}나 기독교의 그리스어 {구/신약}에 사용된 장/절의 구분은 필사자/주석가/학자/출판업자들의 필요에 의해 후대에 "임의로" 도입된 것임을 기억해야 하고, 따라서 성서 내용의 흐름이 반드시 현재의 장/절에 따라 나뉜다고 보아선 안된다. 

    아울러 현대 유대교/프로테스탄트/로마카톨릭이 히브리 정경의 "표준정본"으로 간주하는 {맛소라} 계열에 사용된 세투마/페투차 같은 필경기호 역시 "맛소라 학파의 해석과 전승"에 따른 "끊어읽기"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히브리 성서의 사본에 {맛소라} 계열의 사본군만 있는게 아니라, 맛소라 학파와는 다른 전승을 따르는 사본군 (가령, {예멘 사본})의 필경사들은 그들 방식의 필경기호를 사용해 {맛소라} 계열의 해석과는 다른 방식으로 끊어 읽었다. 심지어 {맛소라} 계열의 사본들 간에도 전승계보에 따라 독법이 달라진다. 

    {호세아} 6:1-4절이 바로 이 예 가운데 하나다. 


    # {호세아} 5/6장 구분 문제

    {호세아} 6:1-3의 화자에 대해 앞서 이병태 교수는 "상당수 구약학자들의 해석"이라며 이렇게 비판했다.

    상당수 구약학자들은 호세아 6:1-3의 고백이 호세아 선지자의 진심 어린 권면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상적이고 가벼운 회개를 풍자하는 말이라고 본다.

    근거는 바로 이어지는 6장 4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한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자! 그러면 금방 낫게 해주시겠지(이틀 뒤, 삼일 째)"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값싼 회개'를 거부하신다는 문맥이다. 즉, 원래 본문은 "하나님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백성들의 안일한 태도"를 보여주는 구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해석이다.  
     --- 이병태

    그런데 여기 함정이 있다. 

    이 소위 "상당수 구약학자들의 해석"이란 것은 중세 유대교와 르네상스/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측에서 "표준 히브리어 정본"으로 간주하고 있는 {알레포/레닌그라드} 계열 {맛소라} 사본에 사용된 필경사들의 필사기호에 따라 읽을 때 "나올 수 있는" 해석이다. 

    왜 그런지 {호세아}  5-6장 전체의 맥락을 살펴보자.

    소예언서 {호세아}는 (랭턴의 방식에선) 총 14장 197절로 구성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히브리어든 그리스어든 성서의 고대 원문엔 장/절이 아예 없었다는 걸 기억하자.

    랭턴의 방식에 따르게 되면 현재 {호세아} 5장과 6장은 두개의 주제로 나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맛소라 학자들의 독법에 따르게 되면, 5장의 후반부인 5:8-15는 사실 6장 1절에 바로 이어진다. 실제로 내용을 읽어봐도, 6장의 초입은 독립된 이야기가 아니라 5장 끝에서 바로 이어진다고 보는게 훨씬 자연스럽다.

    그럼 여기서 랭턴의 방식으로 장/절이 구분된 {호세아} 5-6장 전문을 인용하고, 이 본문 안에 히브리어 {알레포 사본}, {레닌그라드 사본}, {카이로 사본}, {예멘 사본}들이 각각 어떤 필사기호을 사용하는지 설명하겠다.  

    이 가운데  AD 895년으로 소급되는 {카이로}와 AD 930-1008년으로 소급되는 {알레포/레닌그라드}는 모두 {맛소라} 계열 사본이고, {카이로}는 모세 벤 아세르가 {알레포/레닌그라드}는 그의 아들 아론 벤 아세르가 편집한 것이다. {카이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예언서} 필사본이고, {알레포/레닌그라드}는 유대교와 현대 기독교의 "표준사본"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우선 맛소라 계열의 필사본이 유대교 및 르네상스/종교개혁 후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의 표준 히브리 본문 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오늘날 스페인 지역인 12세기 이슬람 치하 코르도바 출신의 유대인 의사/철학자/신학자인 마이모니네스 (모세 벤 마이몬)가, 훗날 이집트 카이로 정착해 저술활동을 하면서 사용한 히브리어 필사본이 팔레스티나 갈릴리 인근 티베리아스에서 활동한 맛소라 학파 벤 아세르 부자가 9/10세기에 편집한 맛소라 계열 필사본이었다. 당시 유대교/이슬람교 철/신학을 아우른 마이모니데스의 학문적 성취가 대단했고 유대교와 기독교 양쪽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이후 맛소라 계통 사본이 유대교에서 더욱 "정본"으로 간주되었다. 마이모니데스는 맛소라 이외의 다른 계통 필사본들을 "이본" 혹은 "비정통"으로 간주했다. 

    바빌로니아 디아스포라의 전통을 담은 {예멘 사본}은 맛소라와는 다른 계통의 사본이다. 이 필사본에 등장하는 모음기호가 맛소라 학파가 사용한 티베리아스 방식보다 앞선 바빌로니아 유대인의 방식이란 점에 착안해 , 혹자는 이 계통이 {맛소라} 계통보다 보다 고대 원문을 잘 반영한다고 여긴다. 

    한국어 {새번역}으로 {호세아} 5/6장을 읽어보자. 각 히브리어 사본들에서 필사기호인 세투마/페투차의 위치는 붉은색으로 강조한다.

    제 5장 (= 랭턴)

    [화자: 야훼] 1 "너희 제사장들아, 이 말을 들어라! 너희 이스라엘 백성아, 똑똑히 들어라! 너희 왕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너희가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너희는 미스바에 놓은 덫이고, 다볼 산 위에 펼쳐 놓은 그물이다. 2 반역자들이 살상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모두 징벌하겠다. 3 나는 에브라임을 잘 안다. 내 앞에서는 이스라엘이 숨지 못한다. 에브라임이 몸을 팔고 있고, 이스라엘이 몸을 더럽히고 있다." 4 그들의 온갖 행실이 그러하니, 하나님께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음란한 생각이 그들 속에 가득 차서, 주님을 알지 못한다. 5 이스라엘의 교만이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증언한다.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은 저의 죄에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질 것이다. 6 양 떼와 소 떼를 몰고 주님을 찾아 나선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으니, 그들이 주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7 그들이 주님께 정조를 지키지 않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들이 지키는 새달 절기가 밭과 함께 그들을 삼킬 것이다.

    ** 5:7 뒤에 유대교 필사표식 삽입 **
    • {알레포}: 세투마 
    • {레닌그라드}: 세투마
    • {카이로}: 세투마
    • {예멘 (Tijan)}: 세투마

    [화자: 야훼] 8 "기브아에서 전쟁을 알리는 나팔을 불어라! 라마에서도 비상 나팔을 불어라! 벳아웬에서도 전쟁이 터졌다고 경보를 알려라! 베냐민아, 적군이 네 뒤를 쫓는다. 9 에브라임이 벌을 받는 날에는, 온 나라가 황무지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게 이미 확정된 일을 내가 선포한다. 10 유다의 통치자들은 경계선을 범하는 자들이니, 내가 그들 위에 나의 분노를 물처럼 쏟아 부을 것이다. 11 에브라임이 도움을 구하러 허무한 것을 뒤쫓아갔으니, 에브라임이 심판을 받아, 억압을 당하고 짓밟혔다. 12 그러므로 나는 에브라임에게는 좀으로 유다 가문에게는 썩이는 것으로 칠 것이다. 13 에브라임이 자기의 중병을 깨닫고 앗시리아로 가고, 유다는 제 몸에 난 상처를 보고 그 나라의 대왕에게 특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 대왕이 너희의 중병을 고치지 못하고, 그가 너희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다. 14 내가 사자처럼 에브라임에게 달려들고, 젊은 사자처럼 유다 가문에 달려들어 그들을 물어다가 갈기갈기 찢을 것이니, 아무도 내 입에서 그들을 빼내어 건져 주지 못할 것이다. 15 나는 이제 내 곳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지은 죄를 다 뉘우치고,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겠다. 환난을 당할 때에는, 그들이 애타게 나를 찾아 나설 것이다."

    제 6장 (= 랭턴)

    [화자: 호세아?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 1 이제 주님께로 돌아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2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님 앞에서 살 것이다. 3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


    ** 6:3 뒤에 유대교 필사기호 삽입 **
    • {사해사본}:  없음
    • {알레포/레닌그라드}: 없음
    • {카이로}: 세투마
    • {예멘 (Tijan)}: 세투마

    [화자: 야훼] 4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 5 그래서 내가 예언자들을 보내어 너희를 산산조각 나게 하였으며, 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로 너희를 죽였고, 나의 심판이 너희 위에서 번개처럼 빛났다. 6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7 그런데 이 백성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나를 배반하였다. 8 길르앗은 폭력배들의 성읍이다. 발자국마다 핏자국이 뚜렷하다. 9 강도 떼가 숨어서 사람을 기다리듯, 제사장 무리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 숨었다가 사람들을 살해하니, 차마 못할 죄를 지었다. 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소름 끼치는 일들을 보았다. 거기에서 에브라임이 몸을 팔고, 이스라엘이 몸을 더럽힌다. 11 유다야, 너를 심판할 시기도 정하여 놓았다. 내가 내 백성의 운명을 바꾸어 주고자 할 때마다,

    ** 6:11 뒤에 유대교 필사표식 삽입 위치 **
    • {알레포/레닌그라드}: 페투차
    • {카이로}: 페투차
    • {예멘 사본 (Tijan)}: 페투차

    파란색은 "야훼"의 말이고, 붉은색은 히브리어 사본들의 필사표시 위치와 종류, 그리고 노란색의 화자가 누군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것은 (1) (진심이든 건성이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일 수도 있고, (2) 예언자 호세아의 "촉구"일 수도 있다. 

    이게 왜 중요한지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 {호세아} 6:3/4절의 "세투마" 여부에 따른 히브리어 필사본 간 뉘앙스 차이

    이병태 교수가 6장 4절이 3절에 "바로 이어진다"라고 지적한 것은 옳다. 단 이것은 {맛소라} 사본군 중에서 현재 "표준"으로 간주되는 {알레포/레닌그라드} 사본나 {사해사본} 경우에 그렇단 말로 정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보다 앞선 시대의 역시 {맛소라} 계열 사본인 {카이로} 사본과 이와 독립적인 계보를 가지는 {예멘} 사본을 필사한 필경사들은 3절 과 4절 사이에  "멈춤" 기호인 "세투마"를 삽입했기 때문이다.  그게 어떤 사본이든지 간에, 필사기호는 후대의 필경사들이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삽입한 것이지 원문엔 그런게 존재하지도 않는다.  

    3/4절 사이의 "세투마" 유무에 따라, 본문은 조금 혹은 꽤 다르게 읽히고 해석된다. 

    3/4절 사이에 "세투마"가 없는 {알레포/레닌그라드}에 따르게 되면, 이 문단의 흐름은 이렇게 된다.

    • (1) 이스라엘이 환란을 당할 때 그제서야 자신을 애타게 찾을 것이란  5:8-15의 야훼의 말 
    • (2) 6:1-3에서 "백성들의 회개"
    • (3) "멈춤"기호 없이 바로 야훼의 책망

    따라서 이를 6:1-3절에 대한 "야훼의 즉각적인 반박"이라 읽을 수 있다. 즉, 6:1-3이 "회개"이긴 한데 5:15에서 야훼가 요구한 철저함이 없는 불충분한 회개이기에 야훼가 이를 바로 기각한 것이 된다. 이 경우 6:1-3의 화자는 "백성"이다. 혹은 "백성들의 말"을 야훼가 패러디한 것이라도 볼 수 있겠다. 아무튼 이 경우엔 6:4절 이후의 책망은 6:1-3절과 연결된다.

    3/4절 사이에 "세투마"가 삽입된 맛소라 계열 {카이로}나 독립적인 {예멘} 사본을 따르게 되면,  독법과 뉘앙스가 꽤 달라진다. 이 경우 흐름은 이렇게 된다.

    • (1) 이스라엘이 환란을 당할 때 그제서야 자신을 애타게 찾을 것이란  5:8-15의 야훼의 말 
    • (2) 6:1-3에서 야훼의 책망에 따른 "백성들의 회개" 혹은 "예언자 호세아의 회개 촉구" 
    • (3) "세투마 / 멈춤"
    • (4) 야훼의 또 다른 책망

    "세투마"가 3절 바로 후에 위치하기 때문에, 6:1-3은 5:8-15에 이어지는 결미가 되고, 6:4절 이후는 이와 별도로 이어지는 야훼의 책망이 된다. 이 경우 6:1-3의 화자와 해석은 두가지가 가능하다.

    • 6:1-3의 화자를 "이스라엘 백성"으로 볼 경우, 
      • 백성들의 회개는 진심이다.
      • 그럼에도 6:4절 이후에서 야훼는 그들의 무른 마음을 책망한다.
      • 혹은 6:4절 이후는 6:1-3과는 별개인 새로운 책망이다. 
    • 6:1-3의 화자를 "예언자 호세아"로 볼 경우, 
      • 호세아는 5:15절의 야훼에 말에 이어,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한다. 
        • 이 경우 6:4 이후의 책망은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이거나
        • 혹은 6:1-3과는 별개인 책망이다.

    이 모든 가능성을 고려할 때, 그럼 6:1-3의 화자는 누구인가? 나는 "호세아"라고 생각하며, 다수의 고대 기독교 교부들도 그렇게 이해했다.  

    다시 이병태 교수의 글을 인용한다.

    상당수 구약학자들은 호세아 6:1-3의 고백이 호세아 선지자의 진심 어린 권면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상적이고 가벼운 회개를 풍자하는 말이라고 본다.

    근거는 바로 이어지는 6장 4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한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자! 그러면 금방 낫게 해주시겠지(이틀 뒤, 삼일 째)"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값싼 회개'를 거부하신다는 문맥이다. 즉, 원래 본문은 "하나님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백성들의 안일한 태도"를 보여주는 구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해석이다.  
     --- 이병태

    그는 여기서 6:1-3의 화자가 "호세아"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상당수 구약학자들"처럼) 이해하고 이 글을 썼다.  물론 (1) 3/4절에 '세투마'가 없는 사본에 바탕해, (2) 1-3절의 화자를 백성으로 보고 (3) 이들의 "회개"에 등장하는 "가을비/봄비"와 (4) 4절의 야훼의 말에 등장하는 "아침안개/이슬"을 서로 대비되는 것이라 보면, 이병태 교수나 (맛소라 {알레포/레닌그라드} 필사본에 따라) "상당수 구약학자들"이 말하는 식으로 6:1-3을 "가볍고 불충분한 회개"라고 풀이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6:1-3이 "호세아"가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를 촉구"한 것이라고 보아도 이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경우 3절의 "가을비/봄비"는 5:15절에서 야훼가 요구한 회개를 이행했을 때의 완전한 축복에 대해 호세아가 말한 것이고, 4절의 "아침안개/이슬"은 이스라엘의 현 상태를 야훼가 책망한게 되기 때문이다. 


    # {호세아} 속 화자 (야훼, 호세아, 백성)들의 화법

    6:1-3절의 화자가 누구인지 파악하려면, {호세아} 전체 등장하는 야훼, 호세아, 백성들의 말과 화법을 모두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유대교 정경 소예언서들의 기본구조는, (1) 야훼가 "나"란 화자로서 말하거나 (2) 예언자가 본인이 화자로서 전하거나, 혹은 (3) 야훼와 예언자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고, 가끔씩 "백성"이 (인용의 형식를 취해) 화자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각 장별로 등장하는 화자는 이렇게 된다. 여기서 확실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로 등장하는 구절은 파란색으로, 확실히 "예언자 호세아의 촉구"로 등장하는 구절은 붉은색으로 강조하겠다.

    • 1장: 야훼 (=나)
    • 2장: 야훼
    • 3장: 야훼, 호세아
    • 4장: 야훼, 호세아
    • 5장: 야훼
    • 6장: 호세아?/백성? (6:1-3), 야훼 (4-11)
      • [화자: 호세아?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 1 이제 주님께로 돌아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2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님 앞에서 살 것이다3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
    • 7장: 야훼
    • 8장: 야훼
    • 9장: 호세아, 야훼 (10-12), 호세아 (13-14), 야훼 (15-17)
      • [백성] 7: "이 예언자는 어리석은 자요, 영감을 받은 이 자는 미친 자다"
    • 10장: 호세아 (1-2), 백성 (3), 호세아 (4-8), 야훼 (9-15)
      • [백성] 3: "우리가 주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다가, 임금도 못 모시게 되었지만, 이제 임금이 있은들 무엇에다가 쓰랴?"
    • 11장: 야훼
    • 12장: 야훼 (1-2), 호세아 (3-8), 백성 (9), 야훼 (10-12), 호세아 (13-15)
      • [백성] 9 '아, 내가 정말 부자가 되었구나. 이제는 한 밑천 톡톡히 잡았다. 모두 내가 피땀을 흘려서 모은 재산이니, 누가 나더러 부정으로 재산을 모았다고 말하겠는가?'
    • 13장: 야훼
    • 14장: 야훼 (1-9), 호세아 (10)
      • [호세아] 3 모두 야훼께 돌아와 이렇게 빌어라. "비록 못된 짓은 하였지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이 입술로 하느님을 찬양하겠습니다. 4 아시리아가 어찌 우리를 구하겠습니까? 우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아니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것 보고 우리 하느님이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하느님 외에 누가 고아 같은 우리에게 어버이의 정을 베풀겠습니까?"

    일단 {호세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로 명백히 등장하는 (파란색) 구절들을 읽어보면, 회개에 하겠다는 사람들의 말투가 아니다. 이런 맥락을 볼 때 6:1-3이 백성들이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라면 전체 흐름 상 무척 뜬금없이 들릴 수 있다.

    반면, 6:1-3절을 앞서 5:15의 야훼의 말에 이어 호세아가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로 읽으면 오히려 자연스러울 뿐더러, 14:2절에서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호세아의 다른 말과도 분위기가 유사하다. 

    사실 6:1-3에서 가장 눈에 띄는 표현은 3절의 "우리가 (야훼/주님을) 알자. 애써 야훼/주님을 알자." 란 구절이다. 

    "야훼를 앎 'לָדַעַת אֶת־יְהוָה"예언서 {호세아}에만 등장하는 주제는 아니지만, {호세아}는 이 모티프를  다른 모든 예언서들 가운데 가장 강렬히 그리고 자주 본문 여기저기에 사용한 예언서이다. 여기서 '야훼를 안다'는 말은 신에 대한 신학적 탐구를 하자는 게 아니다. "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 (יָדַע)"가 성관계를 암시하기도 하거니와 이는 야훼-백성 간의 강한 친밀감과 결속을 의미한다. {호세아}의 도입부에 호세아와 바람난 아내 고멜의 이야기를 야훼-백성의 메타포로 이용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해당 구절의 화자를 글 머리에 표기한다.

    [야훼] 2:16 그 날에 너는 나를 '나의 남편'이라고 부르고, 다시는 '나의 주인/바알'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17 그 때에 나는 그의 입에서 바알 신들의 이름을 모두 없애고, 바알 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18 그 날에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고,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벌레와 언약을 맺고, 활과 칼을 꺾어버리며 땅에서 전쟁을 없애어,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하겠다. 19 그 때에 내가 너를 영원히 아내로 맞아들이고, 너에게 정의와 공평으로 대하고, 너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긍휼을 보여 주고, 너를 아내로 삼겠다. 20 내가 너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너와 결혼하겠다. 그러면 너는 나 주/야훼를 바로 알 것이다.

    [야훼] 4:1 이스라엘 자손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변론하신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엘로힘을 아는 지식도 없다. 2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다.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 3 그렇기 때문에 땅은 탄식하고, 주민은 쇠약해질 것이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다."

    [야훼] 4:4 "그러나 서로 다투지 말고, 서로 비난하지도 말아라. 제사장아, 이 일로 네 백성은 너에게 불만이 크다. 5 그래서 낮에는 네가 넘어지고, 밤에는 예언자가 너와 함께 넘어질 것이다. 내가 너의 어머니 이스라엘을 멸하겠다. 6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 네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내가 가르쳐 준 것을 버리니, 나도 너를 버려서 네가 다시는 나의 성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겠다. 네 하나님의 율법을 네가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네 아들딸들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

    [호세아] 5:4 그들의 온갖 행실이 그러하니, (그들의) 하나님께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음란한 생각이 그들 속에 가득 차서, 주님/야훼을 알지 못한다.

    [호세아? 백성?] 6:1 이제 주님께로 돌아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2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님 앞에서 살 것이다. 3 우리가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야훼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

    [야훼] 6:4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 5 그래서 내가 예언자들을 보내어 너희를 산산조각 나게 하였으며, 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로 너희를 죽였고, 나의 심판이 너희 위에서 번개처럼 빛났다. 6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엘로힘을 알기를 더 바란다.

    "야훼/주님을 알자"라는 모티프는 늘 이런 맥락으로 야훼 혹은 호세아의 말 속에 녹아 들어간다. 그럼 6:1-3 은 누구의 말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까?

    확정되진 않았지만 초기 기독교 교부들 중에서도, 이 6:1-3절을 호세아의 "촉구"로 본 사람들이 많았다.

    가령, AD 4세기 말 히브리어에서 직접 라틴어로 성서를 번역했던 히에로니무스 (AD 342-420)는 {호세아 주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In fine superioris capituli dixerat: 'In tribulatione sua mane consurgent ad me.' Nunc Propheta ostendit quid dicere debeant, et quomodo ad Dominum revertantur."

    "앞선 단락 (Capituli) 의 마지막 부분 (= 5장 말미)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고난 속에서 새벽에 나를 간절히 찾으리라.' 이제 (= 6:1-3) 예언자는 그들이 마땅히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주님께 돌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AD 5세기 안티오키아 학파의 신학자이자 퀴로스 주교였던 테오도레토스 (AD 393–457)는 {12 예언서 주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Ὁ προφήτης, τὴν τοῦ Θεοῦ φιλανθρωπίαν ἐπιστάμενος, παρεγγυᾷ τοῖς Ἰουδαίοις τὴν ἐπάνοδον·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아는 그 예언자는 유대인들이 돌이킬 것을 촉구했다.

    히에로니무스나 테오도레토스의 시대인 AD 4/5세기엔, 아직 {맛소라} 필사본도 또 그 안에 사용된 필사기호도 아직 정립조차 되지 않은 때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草人 최광민



    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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