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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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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예수 vs. 예수 #12: 과연 예수는 결혼, 재혼, 심지어 삼혼했을까? -- 막달라 마리아, 리디아, 마리온(?)

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1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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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예수 vs. 예수 #12: 과연 예수는 결혼, 재혼, 심지어 삼혼했을까? -- 막달라 마리아, 리디아, 마리온(?) 

순서
  1. 코미디 3종세트
  2. 예수는 결혼했었음에 틀림없다?
    1. 율법적 의무? 
    2. 랍비의 자격?
    3. 초기 기독교도들의 은폐?
    1. 예수의 첫번째 아내 막달라 마리아?
      1. 그노시스 복음서들 ?
      2. 바바라 티어링이 최초로 해독(!) 예수의 일대기?
      3. 바바라 티어링이 해독(!)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과 이혼?
    2. 예수의 두번째 아내 리디아?
      1. 예수의 세번째 아내 마르얀?
      2. 도대체 재혼했다는 것일까? 삼혼했다는 것일까?
        1. 두번째 처 리디아의 초상화?
        2. 세번째 처 마리온/마르얀의 초상화? 
      3. 맺음말

        막달라 마리아의 정교회 이콘 --- Wikimedia Commons


        § 코미디 3종세트

        2010년 연말과 2011년 초, 민희식씨의 {성서의 뿌리}란 책에 등장하는 "아크나톤 18계명"이 고고학 자료가 아니라, 1970년 대 미국의 한 UFO 컬트가 플레이아데스 성단에서 발진한 우주선 피닉스호의 사령관인 하톤으로부터 받았다는 {피닉스 저널}이란 일련의 문건에서 온 것임 설명하다가, 민희식씨의 책들을 출판해 온 블루리본 출판사 측(?)이 이글루스에 압력을 넣어 해당 포스트를 게재중지 당한 일이 있었다.


        이후, 해당 출판사 측이 내 포스팅에서 민희식씨 책을 인용한 내용에 대해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걸겠다고 소동을 벌이던 무렵, 몇 차례 내 블로그를 방문했던 민희식씨의 옹호자가 목영일씨란 분이 썼다는 한 책을 근거자료로 들이 밀면서 민희식씨를 옹호해왔다.

        뉴욕대학교에서 공학박사 (Ph.D) 학위를 받고 아주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교수로 동 대학 대학원장을 역임하셨다는 목영일씨가 출판했다는 역사소설 {예수의 마지막 오디세이}란 책이었다.

        책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추천사, 머리말, 감사의 말씀

        제Ⅰ부 임종의 자리에서
        • 1장 임종을 맞이한 한 노인의 회상
        • 2장 12살의 유월절
        • 3장 소년 예수, 인도 유학길에 오르다
        • 4장 예수는 헤미스 복음서에서 말한다
        제Ⅱ부 예수의 탄생과 결혼
        • 5장 여덟 자녀를 낳은 영원한 처녀
        • 6장 서출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산 예수
        • 7장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세 번째 결혼
        • 8장 야고보, 예수에 가려진 다윗의 적통자
        제Ⅲ부 스승 세례요한을 발판으로
        • 9장 이종육촌형 세례요한의 문하에 들어가다
        • 10장 제자에서 경쟁자로 나서다
        • 11장 예수, 스승 요한을 딛고 서다
        • 12장 12사도 협의회는 잠정적 임시내각이었다
        제Ⅳ부 예수의 처형과 소생
        • 13장 이해 받지 못한 사랑의 전교자 예수
        • 14장 종교범으로 잡혀 정치범으로 처형된 예수
        • 15장 예수는 부활한 것이 아니라 소생한 것이다
        • 16장 예수의 복음서 구술 작업
        제Ⅴ부 예수, 또 다시 동방으로 가다
        • 17장 바울,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를 만나다
        • 18장 예수가 동방으로 간 이유
        • 19장 실크로드를 따라서
        • 20장 유즈 아사프로 다시 태어난 예수
        제Ⅵ부 카슈미르에서
        • 21장 예수, 탁실라에서 도마와 재회하다
        • 22장 카슈미르의 목자 예수
        • 23장 예수의 세 번째 결혼과 후손
        • 24장 예수, 인도 스리나가르에 묻히다

        목영일씨의 이 소설을 굳이 평가한다면, (1)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출판된 니콜라스 노토비치의 위작 복음서 {예수 그리스도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 (소위 {이사전}) La Vie inconnue de Jesus-Christ},  (2) 1990년대 발표되었으나 학계에서 혹평받은 호주의 비주류 여성신학자/종교학자인 바바라 티어링의 일련의 책들 (가령, {Jesus the Man}), 그리고 (3)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않고 소생해 인도-파키스탄 접경인 카쉬미르에 가서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고 주장하는 그 지역에서 발흥한 이슬람 이단 아마디야 이슬람의 교조이자 자칭 재림 예수이자 재림 마흐디인 미즈라 굴람 아흐마드의 책에 근거한 여러 유사주장을 종합한 미국 여성 작가이자 예수-막달라 사이의 59대 자손이라고 주장한 수잔 올슨의 {카쉬미르에서의 예수: 빈 무덤 Jesus in Kashmir: The Lost Tomb}   등의 책에서 자료를 가져오거나, 더 심각하게는 세 자료 중에 상충되는 부분을 과감히 삭제하고 원하는 부분만 취합한 글이라 여기면 크게 틀리지 않다.

        내 판단에 목영일씨의 책이 사용한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제Ⅰ부 임종의 자리에서
        • 니콜라스 노토비치의 {예수 그리스도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
        제Ⅱ부 예수의 탄생과 결혼
        • 바바라 티어링, 특별히 {Jesus the Man}
        제Ⅲ부 스승 세례요한을 발판으로
        • 바바라 티어링, 특별히 {Jesus the Man}
        제Ⅳ부 예수의 처형과 소생
        • 바바라 티어링, 특별히 {Jesus the Man}
        제Ⅴ부 예수, 또 다시 동방으로 가다
        • 미즈라 굴람 아흐마디
        • 피다 하스나인 및 수잔 올슨 등
        제Ⅵ부 카슈미르에서
        • 미즈라 굴람 아흐마디
        • 피다 하스나인 및 특별히, 수잔 올슨 등

        우선, 니콜라스 노토비치와 미즈라 굴람 아흐마드에 대해서는 나의 다른 개별적인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바바라 티어링과 수잔 올슨에 대해서는 아래서 다루겠다.


        아마도 목영일씨의 이 책의 애독자이거나 심지어는 "추천사"를 쓴 사람들 가운데서, 위에 내가 언급한 크게 세 종류의 자료의 원전을 모두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위에 언급된 모든 자료를 이미 원전으로 읽어봤던 나로서는 목영일씨의 이 책의 추천사와 목차를 읽자마자 (목영일씨에겐 죄송하지만) 너털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이 책은 학계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 세가지 허위 및 과장된 자료를, 
        • 그나마도 비일관적으로 뒤섞어 재창조한,

        그야말로  "빅-조크"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왜 목영일씨의 "소설"이 왜 "학술자료에 기초한 소설"이 아니라 "소설에 기초한 소설"이라고 평가하는지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이런 나의 가혹한 평가가 과연 부당한 것인지 스스로 읽고 판단해 보기 바란다.

        과연, 예수가 유대아에서 결혼을 했거나,
        혹은 소아시아에서 재혼을 했거나,
        혹은 심지어 인도에서 삼혼을 했었겠는지를.




        § 예수는 결혼했었음에 틀림없다?

        "예수는 결혼을 했었음에 틀림없다"라는 주장의 근거는 대체로 유대인의 종교-문화적 관례를 바탕으로 "느슨하게" 유추된 추론이다.

        정리하자면 가령 이런 식이다.


        # 율법적 의무?

        유대교 율법의 기본이 되는 {모세 5경}, 즉 {토라}의 첫 권에 해당하는 {창세기} 1:28절은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한국어 새번역}"를 남자와 여자를 만든 후 신/엘로힘이 내린 명령으로 기록한다. 따라서 결혼은 일종의 "의무"인 셈이며, 물론 유대인의 문화가 확실히 거의 의무수준으로 결혼을 강제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토라}는 이교도와의 전쟁, 성막/성막에서의 봉사기간, 제사장의 직무기간 중의 성관계를 금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결혼을 금하거나 제사장의 독신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일정기간 혹은 평생동안 독신을 신 앞에 서원할 수 있다는 근거도 된다.

        흔히 긴 머리를 한 예수의 성화를 본 일이 있을텐데, 이는 유대교 율법에 따라 신에게 일정기간 혹 평생 서원하고 성별된 나지르인 (나실인)의 이미지를 예수에게 투사시킨 것이다. 나지르인으로 성별되면 포도주 (및 포도로 만들어진 음식), 이발, 시체와의 접촉이 금지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나지르인의 성관계는 {토라}에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다. 아울러 예수는 포도주를 음료로 마셨기 때문에 나지르인으로 간주되기도 힘들다. 따라서 나지르인의 개념을 사용해서 예수의 독신을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서는 예수 무렵의 유대교는 최소한 4개의 분파 (요세푸스 설명)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 간에는 다양한 수준의 이견들이 있었다는 점을 우선 알아야 한다. 이 분파들은 각각 바리새, 사두개, 젤롯 (열심당), 그리고 엣세네다.

        이 가운데 BC 2세기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중해 권의 유대교 수도공동체인 테라퓨타이와 그와 유사한 그룹인 유대아 광야와 촌락의 엣세네파는 모두 독신을 고수했고, 이들의 삶을 전해 남기고 있는 AD 1세기 초반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과 1세기 중/후반의 바리새파 유대교 제사장 출신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바리새파가 결혼에 대해 매우 중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독신수도생활을 극찬할 뿐 아무런 부정적인 언질도 하지 않는다. 참고로, 요세푸스는 바리새파 가문에 속해 있으면서도 청소년 시절 바리새파, 사두개파, 그리고 엣세네파의 스승에게서 지도받았다.

        유대아의 촌락과 광야에서 살았던 엣세네파에 관한 필론의 기록을 읽어보자.

        (11.1) But our lawgiver trained an innumerable body of his pupils to partake in those things, who are called Essenes, being, as I imagine, honoured with this appellation because of their exceeding holiness. And they dwell in many cities of Judaea, and in many villages, and in great and populous communities. (11.2) And this sect of them is not an hereditary of family connexion; for family ties are not spoken of with reference to acts voluntarily performed; but it is adopted because of their admiration for virtue and love of gentleness and humanity.  

        그러나 우리에게 율법은 준 이 (= 모세)는 그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자들의 이것들을 따르도록 훈련시켰는데, 그들은 엣세네라 불리며 내 생각에는 그들의 성스런 삶을 칭송하고자 그리 불리게 된 듯 하다. 그들은 유대아의 많은 지역과 촌락과 크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 살고 있다.  이 종파는 혈연으로 묶여있지 많다. 가족관계는 가입하는데 영향이 없으며, 온유함과 인간성의 미덕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입양된다.

        (11.3) At all events, there are no children among the Essenes, no, nor any youths or persons only just entering upon manhood; since the dispositions of all such persons are unstable and liable to change, from the imperfections incident to their age, but they are all full-grown men, and even already declining towards old age, such as are no longer carried away by the impetuosity of their bodily passions, and are not under the influence of the appetites, but such as enjoy a genuine freedom, the only true and real liberty.

        에세네파 가운데는 아이나 청소년이 없고, 오직 성인만 입회할 수 있다. 미성년들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중략]

        (11.11) And those who live together and eat at the same table are day after day contented with the same things, being lovers of frugality and moderation, and averse to all sumptuousness and extravagance as a disease of both mind and body. 

        ...함께 살고 한 식탁에서 매일 함께 먹는 이들은 동일한 것에 늘 만족하여 검소와 적당함을 사랑하며 모든 탐닉과 과장을 정신과 몸의 질병으로 간주하여 멀리한다.  
        [중략]

        (11.14) Again, perceiving with more than ordinary acuteness and accuracy, what is alone or at least above all other things calculated to dissolve such associations, they repudiate marriage; and at the same time they practise continence in an eminent degree; for no one of the Essenes ever marries a wife, because woman is a selfish creature and one addicted to jealousy in an immoderate degree, and terribly calculated to agitate and overturn the natural inclinations of a man, and to mislead him by her continual tricks; (11.15) for as she is always studying deceitful speeches and all other kinds of hypocrisy, like an actress on the stage, when she is alluring the eyes and ears of her husband, she proceeds to cajole his predominant mind after the servants have been deceived. (11.16) And again, if there are children she becomes full of pride and all kinds of license in her speech, and all the obscure sayings which she previously meditated in irony in a disguised manner she now begins to utter with audacious confidence; and becoming utterly shameless she proceeds to acts of violence, and does numbers of actions of which every one is hostile to such associations; (11.17) for the man who is bound under the influence of the charms of a woman, or of children, by the necessary ties of nature, being overwhelmed by the impulses of affection, is no longer the same person towards others, but is entirely changed, having, without being aware of it, become a slave instead of a free man. (11.18) This now is the enviable system of life of these Essenes, so that not only private individuals but even mighty kings, admiring the men, venerate their sect, and increase their dignity and majesty in a still higher degree by their approbation and by the honours which they confer on them. --- APOLOGY FOR THE JEWS (Excerp from Eusebius, P.E. 8.5.11 ff.)

        ..... 그들은 결혼을 거부한다......엣세네파는 누구도 아내를 둔 적이 없는데, 이는 여자란 이기적인 존재로서 질투에 지나치게 끌리는데다......무대의 배우들 처럼 온갖 위선적인 거짓말을 고안해 내고.....그래서 여자나 자식이란 마법에 사로잡히게 되는 남자는  그 본성 상 어쩔 수 없이 사랑의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고, 따라서 이타적인 존재가 아닌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 이 사실을 깨닫지 않는 한 완전히 변하여 자유인이 아닌 노예가 되어 버린다........  ---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유대인을 위한 변호} / 번역: 최광민

        엣세네파의 독신수도생활이 AD 1세기 유대인 지식층으로 부터 찬사를 받았다면, 예수가 독신이었다하여 유대인들이 그를 벽안시 했을 것으로 볼 이유는 없다.

        아울러 종교적 독신은 "예언자적 인물" 성서에 등장하는 몇몇에게서 발견된다. 가령, {예레미아} 16장에서 야훼는 제사장으로서 예언자이던 예레미아에게 (여기서라는 단서가 붙긴하지만) 아내를 얻지도 자식을 갖지도 말 것을 지시한다. 세례자 요한 역시 독신이었다. 요세푸스의 {자서전} 2.11 에 등장하는 유대광야의 은자이자 3년간 그가 사사했던 (아마도 엣세네파의) 바누스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기서의 핵심은 예수 당시 유대교는 적어도 3-4분파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했었다는 점이다. 현대 유대교의 주류이자 바리새파의 후계인 랍비-유대교의 관점 하나로 AD 1세기 유대아의 종교적 지형을 해석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 랍비의 자격?

        "예수는 결혼했었음이 틀림없다"란 주장의 두번째 논거는 예수의 '호칭'과 관련있다.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는 "랍비 ῥαββί" 로 불린다. 유대교 '랍비'란 용어는 보통 "서기관과 바리새파"에게 적용된다. 예수 당시에 사두개파 서기관들도 존재했지만, 예수 당시 서기관들은 바리새파가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예수에게 붙여진 "랍비"란 호칭 때문에 "예수는 원래 바리새파 랍비였다"라는 주장도 일각에서는 제기되었고, 따라서 "만약 예수가 본시 바리새파 랍비였다면, 예수는 바리새파의 결혼관에 따라 반드시 결혼했어야 한다"는 것이 이런 주장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 또한 후대의 랍비-유대교를  AD 1세기에 직접 적용시키는 우가 될 수 있다. '랍비'는 {히브리 성서}에 등장하는 계급 혹은 지위가 아니다. 원칙적으로 이 용어의 기원이 되는 "랍"은 본시 바빌로니아의 현자들에게 붙여진 경칭이었다. 바빌로니아 출신의 유대교 율법사들과 학자들이 유대아로 이주한 이후, 이 용어는 유대교 제사장이 아니면서 율법을 탐구하고 가르치는 이들에 대한 경칭으로도 사용되게 된다.

        AD 1세기 중/후반에 완결된 기독교의 공인된  네 {복음서}들에서는 예수 및 몇몇인은 '랍비'로 호칭된다.  세례자 요한도 그 측근에게서 "랍비"로 호칭된다. 하지만 예수와 세례자 요한이 바리새파였을까?

        전형적인 바리새파였던 바울의 스승이기도 한 가말리엘의 조부인 '힐렐'은 사실 랍비-유대교 문헌에서 '랍비' 혹은 그보다 상위개념인 '랍반'으로 결코 불린 적이 없다. 그는 산헤드린의 수장인 '나시'가 되면서 "자켄", 즉 "장로"란 호칭으로 불렸다. 유대교 문건에서 처음으로 '랍비'란 용어가 명시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AD 200년 경에 편찬된 {미쉬나} 속에서다. 이 {미쉬나}는 예수와 거의 동시대 혹은 한세대 후의 인물인 랍반 (= "우리의 랍비") 가말리엘, 랍반 시메온, 랍반 요하난 벤 자카이 등을 "랍반"으로 처음 언급하고 있다. "랍반"보다 급이 낮은 "랍비"를 본다면, 제사장들의 대표격인 랍비 하니나가 "랍비"란 호칭이 적용된 기록상 첫 인물로, 랍반 요하난 벤 자카이 이후의 인물이다. 즉, '랍비'란 용어가 바리새파 유대교에서 정착된 것은 AD 2세기의 일로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수가 활동하던 시절로 부터 한 세대 전부터 북방의 갈릴리는 젤롯 (열심당)의 발호 이후로 본토 유대아보다 더 근본주의적이고 윤리적인 성향을 보이는 일련의 종교지도자들이 강력한 영향을 미친 곳이다. 따라서 이곳의 '랍비'란 용례가 본토 유대아의 용례가 다소 간의 차이가 있었을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역사학자들은 본토 랍비들과 이 갈릴리 랍비들의 가르침을 대비시키는 연구들을 많이 진행해 오고 있다.

        그래서 예수가 활동한 AD 1세기 초반을 전후한 유대교에서의 "랍비"는, 후대에 바리새파 유대교가 그 용어를 (제사장이 아닌) 평신자 종교지도자에게 배타적으로 적용하게 되는 것과 달리, 보다 일반적인 (종교적) "선생", "교사" 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리새파를 계승한 랍비-유대교의 핵심인 {탈무드}에 등장하는 랍비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독신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AD 2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정확히는 '랍비'라기 보다는 '탈무딤'이지만) 시메온 벤 아짜이로서, {탈무드}의 일화에 따르면 그는 율법을 공부하고자 랍비 아키바의 딸과 정혼했으면서도 독신으로 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독신주의에 반대하던 인물이었기에, 한번은 엘레자르 벤 아짜리아가 그의 비일관성을 비난했다. 그때 벤 아짜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내 영혼은 {토라}에 대한 사랑에 빠져있네. 애 낳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할걸세 (Yev. 63b)"




        # 초기 기독교도들의 은폐?

        이 부류의 주장들은 "예수의 결혼 사실이 후대 기독교의 반-유대적, 영-육 대립론 입장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교부들이 예수를 독신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가정을 기본얼게로 가진다.

        그러나 AD 2-3세기 초기 교부들의 글을 직접 읽어보면, 교부들은 (바울의 모델에 따라) 신에게 자발적으로 헌신하기 위한 독신 (성직자, 처녀) 신자들을 칭송하는 동시에, 기독교는 결코 결혼을 금하지 않으며 독신이 기독교 성직의 필수조건이 아니란 점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결혼을 금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사도 베드로가 아내와 장모를 데리고 선교를 다닌 것이라든지, 혹은 예루살렘의 1대 감독/주교로 간주되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기혼자였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전혀 거리낌 없이 언급한다. 성직자의 (특별히 주교/감독)의 독신이 많이 자리잡은 AD 4세기 초반의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의 한 장에서 기혼자로서 초기 주교/감독이었던 이들의 리스트를 조금의 부정적인 뉘앙스업이 제시하기도 한다. 아울러 예수가 "독신"이었음을 처음으로 명시한 교부는 AD 2세기 초/중반의 팔레스티나 출신의 기독교 철학자 유스티노스 였다.

        대략 이 세가지 설명을 통해 "유대인이고 랍비인 예수는 반드시 결혼했었음에 틀림없다"는 주장의 맹점이 무엇인지 설명되었으리라 본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 예수의 첫번째 아내 막달라 마리아?

        # 그노시스 복음서

        원글: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1.html

        1945년 이집트의 나일강 상류 나그 함마디에서 파피루스에 씌여진 초기 기독교의 다양한 이단 분파들인 그노시스 (영지주의) 계열의 문서들이 대량 출토됨에 따라, 그동안 기독교 초기 교부들의 저작에 단편적으로 인용되어 온 이들의 가르침에 대한 연구가 비로소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이 사본들은 당시 이집트의 민중어였던 꼽트어로 거의 기록되어 있으며, 언어학적 증거를 고려해 볼때 이들 사본들은 원래는 그리스어로 씌여졌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주 다양한 그노시스 그룹들의 온상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당시에 헬레니즘 문화를 재생산/보급하던 전초기지와 같았고, 그곳의 학문 및 일상용어는 그리스어였기 때문이다.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된 이들 꼽트어 사본들은 알렉산드리아에 기반을 둔 바실리데스 혹 발렌티누스파의 계열에서 작성했을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된 모든 코덱스의 영문번역은 아래 싸이트에서 모두 열람할 수 있다. http://www.gnosis.org/naghamm/

        최근 들어서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스승과 제자 이상의 관계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런 가설들은 주로 AD 2-3세기에 작성된 그노시스 계열 몇몇 위경 복음서 속 암시 (가령, 필립복음서, 원초복음서, 도마복음서)와, 공인된 신약성서 복음서에 등장하는 몇몇 불명확한 문장으로부터 도출 된 것이다.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든 첫 기적을 보여준 카나의 결혼식이 바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식이었다라든지, 막달라 마리아가 복음서에서 부활한 예수를 들어 '랍오니 ‘'라고 부를 때의 그 아람어 단어가 종종 '남편'에게도 적용되었던 단어였다든지, 복음서 내용 중 최후의 만찬장에 예수 곁에 앉았던 "사랑하는 제자"가 요한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였을 것이라든지 하는 해석이 바로 그런 것이다. 게다가 이런 해석은 (마치 {다빈치코드} 속의 티빙의 단언처럼) 예수를 “페미니스트”로 해석함으로써 페미니즘에 호의적이고 친-그노시스적 (주로 여성) 신학자나 작가들의 지지를 받는다. 예수와 마리아의 결혼 이야기의 배후에 깔린 소위 “페미니즘” 신학은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의 아내로 “설정”함으로써 결국 여성의 지위를 격상시키려는 성정치적 편향의 이념을 담고 있다.

        최근들어서 막달라 마리아가 교회 역사에서 오랫동안 무시된 것이 남성 위주의 교회 내 여성 억압에세 기인했다는 주장들이 강력하게 등장하고는 있지만, 나는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서기 6세기 말의 한 설교에서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마리아를 단 한 명으로 보는 해석을 내었고, 그 결과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 귀신들렸던 마리아, 그리고 간음했던 여인 등을 모두 한 사람 ‘막달라 마리아’로 보는 해석이 20세기까지 로마 카톨릭의 공식적 해석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1969년 로마교황청이 이 해석을 번복/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간음한 창부로 해석하려는 전통은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다.

        하지만 최근 {뉴스위크}등에 게재되어 인기를 끈 이론, 즉 "남성위주"의 교회가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서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에서 '창녀'로 깍아내렸다는 현대적 주장이 무색할 정도로, 원래는 '막달라 마리아'를 지혜의 투사인 '소피아'의 지상에서의 화신으로 간주했던 일부 그노시스들이야 말로, 소피아의 입을 빌어 소피아에게 "성녀이자 창녀"라는 이중성을 부여한 선구자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일부 그노시스들에게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의 몸을 빈 소피아의 현신으로 투사되기도 했던 것이다. 가령, 현존하는 그노시스 문헌 단편 가운데 {천둥 : 완전한 정신}이라 이름된 문서는 지혜를 상징하는 (여성형) “소피아”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문서 역시 1945년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되었다. 그노시스들에게 소피아의 이중성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이해하는데는 이 문서보다 더 분명한 것이 없다. 아래는 Geoge W. McRae가 꼽트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The Thunder : Perfect Mind (발췌) (1987, 1990),
        George W. McRae 번역 http://www.gnosis.org/naghamm/thunder.html

        …(전략)

        For I am the first and the last.
        I am the honored one and the scorned one.
        I am the whore and the holy one.
        나는 창녀이자, 또한 성녀이다.
        I am the wife and the virgin.
        I am the mother and the daughter.
        I am the members of my mother.
        I am the barren one and many are her sons.
        I am she whose wedding is great, and I have not taken a husband.
        I am the midwife and she who does not bear.
        I am the solace of my labor pains.
        I am the bride and the bridegroom, and it is my husband who begot me.
        I am the mother of my father and the sister of my husband and he is my offspring.
        I am the slave of him who prepared me.
        I am the ruler of my offspring.
        But he is the one who begot me before the time on a birthday.
        And he is my offspring in (due) time, and my power is from him.
        I am the staff of his power in his youth, and he is the rod of my old age.
        And whatever he wills happens to me.
        I am the silence that is incomprehensible and the idea whose remembrance is frequent.
        I am the voice whose sound is manifold and the word whose appearance is multiple.
        I am the utterance of my name.
        …. (후략)

        “나는 창녀이며 또한 성녀이다”라는 소피아의 진술은 이 문서에 등장하는 “여성적” 화자인 소피아/지혜의 속성을 아주 극명하게 짚고 있다. 또한 “나는 불임이지만, 또한 나는 자식이 많다” 라는 진술은 이 문서와 장차 언급할 {필립복음서}의 내용과의 연결고리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후 설명하도록 하겠다. 여신이 없는 기독교에 처음으로 여성화된 신격을 결합시키기 시작한 것은 그노시스였는데, 이들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궁극적 지혜”의 여성화된 신격인 소피아를 투사했고, 소피아에게 상호배타적 두 속성, 즉 성녀와 창녀 두가지 속성을 부여한 것도 사실은 이들 그노시스들이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기독교 이단인) 그노시그 문헌과 중세전설에서 때로는 성녀로, 때로는 창녀로, 때로는 소피아의 화신으로 끊임없이 재등장할 것이다. (소설 속의 여주인공의 이름인 '소피'라는 이름 자체가 그노시스에 대한 레퍼런스, 즉 '소피아'를 상기시킬 의도로 선택된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노시스가 정통 기독교보다 더 근본적인 기독교였다는 논리를 펴는 경향을 보인다. 즉, 보다 비교적이고 여성적 기독교가 본래적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노시스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문서 가운데 하나인 {도마복음서}에 따르면, 그들의 설명과는 약간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이번에는 {도마 복음서}를 살펴보자.




        # {도마 복음서}

        http://www.gospelthomas.com/gospelthomas114.html

        소설 속에서 티빙은 예수가 “페미니스트”였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럼 과연 그노시스 복음서 속에서 예수가 어떤 의미의 페미니스트였는지 살펴보자.

        우선 이집트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된 꼽트어 {도마 복음서}의 마지막 장을 한번 읽어보자. 빠르면 서기 1세기 말 혹은 2세기 중반 경에 작성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는 {도마 복음서}는 원래 그리스어로 씌여지고 나중에 꼽트어로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서는 초기 기독교의 구전전승의 연구에 아주 중요한 위치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어에서 한국어로의 중역은 내가 했다.

        위경 {도마 복음서} 제 114절 : 나그함마디 출토 꼽트어 사본

        Michael W. Grondin 번역
        • http://www.gospelthomas.com/gospelthomas114.html
        • http://www.geocities.com/Athens/9068/gtbypage_112702.pdf



        ...Simon Peter said to them: “Let Mary go forth from among us, for women are not worthy of the life. “ Jesus said: “Behold, I shall lead her, that I may make her male, in order that she also may become a living spirit like you males. For every woman who makes herself male shall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시몬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에게) 말했다.“여자는 영생을 누릴 자격이 없으니, (막달라 마리아를) 우리 가운데서 내보내자.”그러자 예수가 말했다.“보아라, 그녀 또한 너희 남자들처럼 살아있는 영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막달라) 마리아를 이끌어 그를 남성으로 만들것이다. 자신을 남성으로 만드는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 번역: 최광민

        페미니즘 신학자들에게는 유감이지만, 그노시스 문헌 가운데 이들에게 가장 찬사받는 {도마복음서}의 가장 마지막 문단은 막달라 마리아를 ‘남성’으로 변화시켜 구원시킬 것이라는 너무도 ‘남성중심적인’ 예수의 선언으로 끝나고 있다는 점을 이들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마 복음서}가 페미니즘적 기독교를 가르치고 있다는 친-그노시스적 작가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위의 주장을 하는 그룹들은 의도적으로 {도마 복음서}의 이 마지막 문단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심지어 {도마 복음서}라고 한들 (현대적 의미의) 페미니즘이 끼어들어갈 구석은 별로 없다.




        # {마리아 복음서}: 예수의 수제자?

        http://www.gnosis.org/library/marygosp.htm

        역시 나그함마디에서 출토되었고 아마도 AD 2세기 초-말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위경 {마리아 복음서}는 확실히 막달라 마리아를 다른 남성 사도들보다 위에 두고 있는 듯 보인다. 부분적 내용만 전하는 이 문서는 예수가 승천한 다음 남성사도들과 마리아가 스승의 가르침을 나누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다. 이 문서 속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에게서 전수받은 가르침을 다른 사도들에게 전하는데, 이때 안드레와 베드로가 막달라 마리아의 신빙성을 의심하자 막달라 마리아는 울며 자신을 변호하고, 레위(마태)는 마리아를 두둔한다. 이야기는 모든 사도가 레위의 말에 수긍하고 복음을 전파하기로 결의한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여기서 레위의 진술은 아마도 위의 {도마복음서}의 예수의 진술과 연관되는 듯 하다. 즉, {마리아복음서} 속에서 레위는 베드로로부터 막달라 마리아를 두둔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But if the Savior made her worthy, who are you indeed to reject her? Surely the Savior knows her very well. That is why He loved her more than us. Rather let us be ashamed and put on the perfect Man, and separate as He commanded us and preach the gospel, not laying down any other rule or other law beyond what the Savior said…”

        만약 주님이 그녀를 자격있는 존재로 만드신거라면 그녀를 거부하는 (베드로)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 주님은 그녀를 분명 잘 아실거네. 그게 주님이 그녀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신 이유겠지. 오히려 우리는 이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 이제 완전한 사람을 덧입어, 주님이 명령하신 것처럼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이 정하지 않은 어떤 규칙이냐 율법도 강제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번역: 최광민)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남성 사도들과의 이런 긴장관계는 다른 나그함마디 출토 그노시스 문헌들 {이집트 복음서}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gospelegyptians.html {피스티스 소피아}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pistis.html 에도 등장한다. 그럼 도대체 왜 이들 그노시스 복음서들에서는 다른 사도들이 막달라 마리아를 질투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그 답은 {필립포스 복음서} 속에 이미 들어있는 듯하다.

        그럼 이번에는 {필립포스 복음서}로 들어가보자.




        # {필립포스 복음서}: 주님의 짝?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gospelphilip.html

        AD 180-250년 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위경 {필립포스 복음서}는, 소설 {다빈치 코드} 속의 티빙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배우자였다는 근거를 증명하는 좋은 출발점"이라고 단언하고 있는 문서이다. 그럼 꼽트어에서 번역된 이 문서의 두가지 영어번역을 살펴보자. 이 문서 역시 원전은 그리스어로 작성되었을 것으로 알려져있다.

        1963년 독일 베를린에서 출판된 Walter Till의 {Das Evangelium nach Philippos / 필립포스 복음서}에 따라 꼽트어와 영어의 대역을 함께 실었다.  (source: http://www.metalog.org/files/till.html)

        우선 제 36절을 읽어보자.



        36. There were three who always walked with the Lord: Mary, his mother, and her sister, and Magdalene, the one who was called his companion. His sister and his mother and his companion were each a Mary (Wesley W. Isenberg 번역)

        36. There were three Mariams who walked with the Lord at all times: his mother and {his} sister and (the) Magdalene°— this one who is called his mate. Thus his (true) Mother and Sister and Mate¹ is (also called) ‘Mariam’ (Peterson Brown 번역)

        …늘 주님과 함께 한 세 명의 마리아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 그의 누이, 그리고 '주님의 짝'이라 불리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이 세 사람이 모두 마리아였다… --- 번역: 최광민

        ‘주님의 짝’? 그 다음 진술은 더 흥미롭게 들린다.



        Wesley W. Isenberg 번역

        59. …And the companion of the {...} Mary Magdalene. {...} loved her more than all the disciples, and used to kiss her often on her mouth. The rest of the disciples {...}. They said to him "Why do you love her more than all of us?"

        Peterson Brown 번역

        59. … And the Mate of the {Christ} is Mariam the Magdalene. The {Lord loved} Mariam more than {all the (other)} Disciples, {and he} kissed her often on her {mouth.} The other {women} saw his loving Mariam, they say to him: Why do thou love {her} more than all of us? The Savior° replied,he says to them: Why do I not love you as (I do) her?

        … 막달라 마리아는 {…}의 짝이었다. {…}는 다른 제자들보다 그녀를 사랑하셨고, 종종 그녀 {…}에 입을 맞추시곤 했다. 제자들은 예수에게 말했다. “왜 그녀를 우리 모두보다 더 사랑하십니까?”…   --- 번역: 최광민

        소설 {다빈치 코드} 속에서 티빙은 이 속에서 (1)입맞춤 과 (2) 짝이라는 두 단어를 지적한다.

        그럼 이 두 단어의 {필립포스 복음서} 상의 용례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 “입맞춤”에 대한 문헌적 이해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키스를 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노시스들의 이 기록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가 일반적인 스승-제자의 관계가 아닌 아주 특별한 관계, 즉 연인관계였다는 암시일까?

        그런데 {필립포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여기서 말하는 “입맞춤”은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 간의 입맞춤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위에 인용된 제 59절에서의 “입맞춤”이 무슨 의미인지는 이보다 조금 앞선 문장을 살펴보면 된다.

        그럼 이제 제 35절을 읽어보자. (이후 직역에 보다 가까운 Peterson Brown의 번역을 전용하겠다.)



        35. {Grace comes} forth to (the human) from the mouth, the place the Logos came forth; he was to be nourished from the mouth to become perfect. The perfect are conceived thru a kiss and they are born. Therefore we also shall kiss one another— to receive conception from within our mutual grace.

        … {은혜는} 입으로부터 사람에게 오며, 입은 로고스(말씀)가 나오는 곳이다. 사람은 완전케 되기 위해 입으로부터 영양을 받는다. 완전한 자들은 입맞춤을 통해 잉태되고 또 태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입맞춤을 해야한다. 우리가 서로 은혜 안에서 잉태되기 위하여….

        여기서 입맞춤은 ‘구애’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수단이다. 이것이 물리적 입맞춤을 수반한 어떤 영성적 행위의 메타포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 의미는 분명 종교적 상징을 가지고 있다.

        아래의 인용구는 그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필립포스 복음서} 속의 ‘입맞춤’이라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Peterson Brown 번역

        40. Yet wisdom is barren {without} Son(s)— hence {she} is called {the Mother}. They kiss in salt, the place where they shall {be as they had been}— they themselves being found by the Holy Spirit, {... who} multiplies her Sons

        Wesley W. Isenberg 번역

        40 But Sophia is barren, without child. For this reason, she is called "a trace of salt". Wherever they will {...} in their own way, the Holy Spirit {...}, and her children are many.

        소피아(지혜)는 불임이며 자식이 없다. 그들은 소금 속에서 입맞춤하는데 이는 그들이 있어왔고, 또 있게될 곳이다. 그들은 성령에 의해 발견되 지혜의 자녀가 된다./ 번역: 최광민

        일단 이 40절은 위에 언급한 또 다른 그노시스 문서 {천둥:완전한 정신}과 직접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의미는 꽤 불투명하다. “소금에게 (혹은 소금 안에서) 입을 맞추는 행위”는 아마도 ‘진리로 귀의한다’는 의미인 듯 하다. 여기서 우리는 {필립포스 복음서} 속의 입맞춤은 연인 간의 입맞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금은 맥락을 잘 알 수 없는, 이 그노시스 교단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던 어떤 종교적 상징행위를 말하는 듯하다.

        사실상 이 ‘입맞춤’은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던 관습, 즉 신약성서 속에서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하던 ‘형제/자매 간의 거룩한 입맞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의미가 단순한 ‘인사’ 정도로 희석되었지만,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이 ‘거룩한 입맞춤’은 단순한 인사 이상의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가진 신비적 상징 행위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심지어 기독교도들 조차도 종종 잊는다.

        AD 112년, 기독교를 탄압했던 로마황제 트라야누스의 친구이자 정치가, 문필가였던 少 플리니우스는 경제난을 겪고 있던 비시니아(Bythynia) 의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그 지역의 기독교도들을 취조하게 되었다. 처음에 자기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도들을 사형에 처하던 플리니우스는 점차 흥미가 생겨서 기독교도들이 기소된 내용들을 조사해보게 되었고, 기독교도들을 어떻게 다루는 방법에 대해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조언한 편지 기록이 현대에 남아있다.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text/pliny.html

        당시 기독교도들은 세가지 항목의 기소를 받고 있었다. 그것은 각각 (1) 무신론 (2) 식인행위 (3) 근친상간이다 처음 기소내용은 기독교도들이 유일신을 섬기는데서 생긴 오해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는 것은 그래서 로마인들에게는 무신론과 같았다.). 두번째 기소항목인 식인행위는 성찬식 중 “이것은 내 몸과 피”라는 예수의 말에 대한 오해였다. 그리고 마지막 근친상간은 바로 이 형제/자매 간의 ‘입맞춤’ 행위에 대한 오해였다.



        가령, 라틴 변증가인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펠릭스는 그의 {옥타비우스}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AD121 - AD180) 의 교사였던 프론토 (Fronto)가 현란한 화술로 로마인들에게 퍼트린 "~카더라" 혹은 "~아님 말고" 식의 주장을 아래와 같이 옮긴다.

        CHAP. IX.-- "And now, as wickeder things advance more fruitfully, and abandoned manners creep on day by day, those abominable shrines of an impious assembly are maturing themselves throughout the whole world. Assuredly this confederacy ought to be rooted out and execrated. They know one another by secret marks and insignia, and they love one another almost before they know one another. Everywhere also there is mingled among them a certain religion of lust, and they call one another promiscuously brothers and sisters, that even a not unusual debauchery may by the intervention of that sacred name become incestuous: it is thus that their vain and senseless superstition glories in crimes. Nor, concerning these things, would intelligent report speak of things so great and various, and requiring to be prefaced by an apology, unless truth were at the bottom of it. I hear that they adore the head of an ass, that basest of creatures, consecrated by I know not what silly persuasion,--a worthy and appropriate religion for such manners. Some say that they worship the virilia of their pontiff and priest, and adore the nature, as it were, of their common parent. I know not whether these things are false; certainly suspicion is applicable to secret and nocturnal rites; and he who explains their ceremonies by reference to a man punished by extreme suffering for his wickedness, and to the deadly wood of the cross, appropriates fitting altars for reprobate and wicked men, that they may worship what they deserve.

        [전략]....어떤 사람들은 그들(=기독교도)이 그들 최고사제와 사제들의 성기를 숭배하고, 자연을 자신들의 부모처럼 숭배한다고도 한다. 나는 이런 말들이 거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들의 비밀스런 심야의 의식은 의심할 만하다.

        Now the story about the initiation of young novices is as much to be detested as it is well known. An infant covered over with meal, that it may deceive the unwary, is placed before him who is to be stained with their rites: this infant is slain by the young pupil, who has been urged on as if to harmless blows on the surface of the meal, with dark and secret wounds. Thirstily--O horror!--they lick up its blood; eagerly they divide its limbs. By this victim they are pledged together; with this consciousness of wickedness they are covenanted to mutual silence. Such sacred rites as these are more foul than any sacrileges. And of their banqueting it is well known all men speak of it everywhere; even the speech of our Cirtensian testifies to it. On a solemn day they assemble at the feast, with all their children, sisters, mothers, people of every sex and of every age. There, after much feasting, when the fellowship has grown warm, and the fervour of incestuous lust has grown hot with drunkenness, a dog that has been tied to the chandelier is provoked, by throwing a small piece of offal beyond the length of a line by which he is bound, to rush and spring; and thus the conscious light being overturned and extinguished in the shameless darkness, the connections of abominable lust involve them in the uncertainty of fate. Although not all in fact, yet in consciousness all are alike incestuous, since by the desire of all of them everything is sought for which can happen in the act of each individual. --- Marcus Minucius Felix, {Octavius} IX (tr. Roberts-Donaldson)

        새신자의 입문의식에 관한 이야기는 잘 알려진 바대로 혐오스럽다. 밀가루를 몸에 바른 아기를 알아채지 못하게 입문의식에 참가하는 사람 앞에 놓아둔다. 입문자는 그것을 내리치란 명령을 받는다. 발라진 밀가루 때문에 큰 문제가 없게 느껴진다. 이렇게 아기를 살해하고나면, 그들은 아기의 피를 핥고 아기의 팔다리를 찢는다..[중략].. (그들의) 거룩한 날 (=일요일)에 그들(=기독교도)들은 아이들, 여자들, 어머니들, 즉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함께 모여 잔치를 벌인다. 잔치가 끝나고나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음란한 욕정이 술기운 가운데 고조되기 시작하면, 그들은 횃불기둥에 묶어둔 개의 목줄이 닿는 거리 너머로 음식을 던지고, 개가 이것을 쫓아 나가면서 불이 꺼지면 부끄러운줄 모르는 어둠 속에서 그들은 아무하고나 성행위를 벌인다.....[후략] / 번역: 최광민

        CHAP. XXXI.--"And of the incestuous banqueting, the plotting of demons has falsely devised an enormous fable against us, to stain the glory of our modesty, by the loathing excited by an outrageous infamy, that before inquiring into the truth it might turn men away from us by the terror of an abominable charge. It was thus your own Fronto acted in this respect: he did not produce testimony, as one who alleged a charge, but he scattered reproaches as a rhetorician. For these things have rather originated from your own nations. Among the Persians, a promiscuous association between sons and mothers is allowed. Marriages with sisters are legitimate among the Egyptians and in Athens. Your records and your tragedies, which you both read and hear with pleasure, glory in incests: thus also you worship incestuous gods, who have intercourse with mothers, with daughters, with sisters. With reason, therefore, is incest frequently detected among you, and is continually permitted. Miserable men, you may even, without knowing it, rush into what is unlawful: since you scatter your lusts promiscuously, since you everywhere beget children, since you frequently expose even those who are born at home to the mercy of others, it is inevitable that you must come back to your own children, and stray to your own offspring. Thus you continue the story of incest, even although you have no consciousness of your crime. But we maintain our modesty not in appearance, but in our heart we gladly abide by the bond of a single marriage; in the desire of procreating, we know either one wife, or none at all. We practise sharing in banquets, which are not only modest, but also sober: for we do not indulge in entertainments nor prolong our feasts with wine; but we temper our joyousness with gravity, with chaste discourse, and with body even more chaste (divers of us unviolated) enjoy rather than make a boast of a perpetual virginity of a body. So far, in fact, are they from indulging in incestuous desire, that with some even the (idea of modest intercourse of the sexes causes a blush. Neither do we at once stand on the level of the lowest of the people, if we refuse your honours and purple robes; and we are not fastidious, if we all have a discernment of one good, but are assembled together with the same quietness with which we live as individuals; and we are not garrulous in corners, although you either blush or are afraid to hear us in public. And that day by day the number of us is increased, is not a ground for a charge of error, but is a testimony which claims praise; for, in a fair mode of life, our actual number both continues and abides undiminished, and strangers increase it. Thus, in short, we do not distinguish our people by some small bodily mark, as you suppose, but easily enough by the sign of innocency and modesty. Thus we love one another, to your regret, with a mutual love, because we do not know how to hate. Thus we call one another, to your envy, brethren: as being men born of one God and Parent, and companions in faith, and as fellow-heirs in hope. You, however, do not recognise one another, and you are cruel in your mutual hatreds; nor do you acknowledge one another as brethren, unless indeed for the purpose of fratricide.--- Marcus Minucius Felix, {Octavius} XXXI (tr. Roberts-Donaldson)

        [전략]..이것들이 바로 당신 (=로마인)들의 프론토가 말한 것들이다. 그는 우리에 대한 모함을직접 지어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수사학자'로서 이 모함들을 널리 퍼트렸다....[중략]... 당신들 로마인들은 근친상간이 죄라는 의식없이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겉모습 뿐 아니라 그 마음에서 절제를 지키며 한 사람과의 결혼 만을 기쁘게 지킨다. 자식을 갖기 위해 우리는 한 아내 만을 필요로하거나, 혹은 아예 결혼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만찬에서 나눔의 의식을 가지며, 이 만찬은 절제된 것일 뿐 아니라 검소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유희에 탐닉하지도 않고, 성만찬 중에 술에 취하지도 않는다....[중략]....당신들에겐 유감이겠지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 우리는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형제라 부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아버지인 신에게 태어났고, 믿음에 있어서는 동반자들이며, 또한 소망을 함께 상속받을 자들이기 때문이다. / 번역: 최광민 

        ‘입맞춤’은  초기 기독교 내에서 무척 비중있게 다뤄지던 종교적 행위였다. 초기 기독교 안에서 모든 참석자는 성찬을 받기 전에 성의 다름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입맞춤’의 의식을 가졌는데, 그럼 왜 로마인들은 이 ‘입맞춤’ 행위로부터 ‘근친상간’을 떠올렸을까? 그것이 이 ‘입맞춤’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럼 우선 초기 기독교 교부들과 변증가들이 이 ‘거룩한 입맞춤’에 대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When we have ceased from prayer, we salute one another with a kiss. There is then brought to the President, bread and a cup of wine… - Justin Martyr (100 - 165 AD)

        ….기도를 마친 후, 우리는 서로 키스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집전자에게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간다. – 그리스 변증가 유스티노스 (서기 100-165) / 번역: 최광민

        …therefore the kiss, or rather the salutation, should be given with the utmost care, since if there be mixed with it the least defilement of thought, it excludes us from eternal life …Athenagoras (2nd Century AD)

        …그래서 입맞춤, 혹은 인사는 매우 주의깊게 행해져야 한다. 부패한 생각이 끼어든다면, (그 입맞춤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서 탈락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변증가 아테나고라스 (서기 133-190) / 번역: 최광민

        …What prayer is complete from which the holy kiss is divorced?...Tertullian (160 - 230 AD)

        …어떤 기도가 거룩한 입맞춤없이 완성될 수 있는가? … 라틴 변증가 테르툴리아누스 (서기 160?-230?) / 번역: 최광민

        Then the Deacon cries aloud, "Receive ye one another; and let us kiss one another." Think not that this kiss is of the same character with those given in public by common friends. It is not such: but this kiss blends souls one with another, and courts entire forgiveness for them. The kiss therefore is the sign that our souls are mingled together, and banish all remembrance of wrongs… - St Cyril of Jerusalem (315 -386 AD)

        그리고 집사는 크게 외친다. “서로 받아들이고, 입맞춤하자.” 이 입맞춤이 일반적인 친구들 사이에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는 생각지 말자. 이 입맞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입맞움은 서로와 서로의 영혼을 섞는 것이며, 전적인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입맞춤은 우리의 영혼이 함께 어우러져있으며 모든 잘못된 기억을 잊는다는 증표이다… - 예루살렘의 주교 키릴 (서기 315 – 386) / 번역: 최광민

        무엇보다도 AD 2세기의 교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 - 220 AD)는 그의 저술 {Paedogogas} 3장 17절 속에서 이 ‘거룩한 입맞춤’의 잘못된 사용을 이렇게 경고한다.

        ...And if we are called to the kingdom of God, let us walk worthy of the kingdom, loving God and our neighbour. But love is not proved by a kiss, but by kindly feeling. But there are those, that do nothing but make the churches resound with a kiss, not having love itself within. For this very thing, the shameless use of a kiss, which ought to be mystic, occasions foul suspicions and evil reports. The apostle calls the kiss holy. When the kingdom is worthily tested, we dispense the affection of the soul by a chaste and closed mouth, by which chiefly gentle manners are expressed. But there is another unholy kiss, full of poison, counterfeiting sanctity. Do you not know that spiders, merely by touching the mouth, afflict men with pain? And often kisses inject the poison of licentiousness. It is then very manifest to us, that a kiss is not love. For the love meant is the love of God. "And this is the love of God," says John, "that we keep His commandments;" not that we stroke each other on the mouth. "And His commandments are not grievous." But salutations of beloved ones in the ways, full as they are of foolish boldness, are characteristic of those who wish to be conspicuous to those without, and have not the least particle of grace.

        ...그러나 사랑은 입맞춤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온화한 마음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그 안에 사랑이 들어있지도 않으면서 입맞추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신비스러워야할 입맞춤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부끄러운줄 모르는 입맞춤으로 인해 종종 공공연한 의혹과 비행이 보고된다.  --- 번역: 최광민 

        클레멘스는 이 ‘교회 안의 입맞춤’은 거룩하고 신비스런 상징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사용에 각별한 주의를 달고 있다. 한편 아테나고라스는 만약 그 ‘입맞춤’에 음란한 마음이 끼어드는 경우를 들어서 경고까지 하고 있다. 그 경고는 매우 엄중하다. 신자는 영생을 잃을 수도 있다!



        현대에 와서 이 ‘거룩한 입맞춤’은 일요일 마다 교회에서 하는 ‘안부인사’ 정도로 그 상징적 의미가 희석되어 포옹이나 악수로 대체되거나 혹은 사라졌지만, 초기 기독교에서의 이 ‘입맞춤’은 성사적 효력을 가지는 상징적 행위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Stephen Benko의 {Pagan Rome and the Early Christians (Indiana University Press, 1986)}은 이 “거룩한 입맞춤”에 대해서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위의 클레멘트의 글에서도 나오지만, 초기 기독교도들의 ‘거룩한 키스’는 뺨이 아닌 다른 이의 입에 하는 (mouth-to-mouth) 키스였다. 그런데 이 키스는 신약성서 {요한복음} 20장에 나타나는 (부활한) 예수의 행동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럼 이제 그리스어 원문에서 이 입맞춤이 어떤 맥락 하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자.



        21 εἶπεν οὗν αὐτοῖς [ὁ ἰησοῦς] πάλιν, εἰρήνη ὑμῖν· καθὼς ἀπέσταλκέν με ὁ πατήρ, κἀγὼ πέμπω ὑμᾶς. 22 καὶ τοῦτο εἰπὼν ἐνεφύσησεν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λάβετε πνεῦμα ἅγιον·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표준새번역 {요한복음} 20장 21-22절

        그런데 이 “숨을 내쉬었다”라는 말에 해당하는 단어 ενεφυσησεν는 그리스어에서 두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바람을 내분다 (blow)’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을 ~에 불어넣는다 (breathe upon)’란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기원전에 번역된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70인역}에서 단 한번 {창세기}에서 사용되었고 그 의미는 두번째 뜻이다. 즉, 이 행동은 {창세기}에서 신이 아담을 창조하고 그에게 영을 불어넣는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되고 있다.

        직역 {창세기} 2장 7절 : 야훼 엘로힘이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니, 사람이 살아있는 영이 되었다.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



        그리스어 {70인역}


        7 καὶ ἔπλασεν ὁ θεὸς τὸν ἄνθρωπον χοῦν ἀπὸ τῆς γῆς καὶ ἐνεφύσησεν εἰς τὸ πρόσωπον αὐτοῦ πνοὴν ζωῆς καὶ ἐγένετο ὁ ἄνθρωπος εἰς ψυχὴν ζῶσαν

        위의 히브리어 성서에서 사용된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콧구멍”을 의미하지만 구약성서 여러부분에서 제유적 표현으로 문맥에 따라 “얼굴”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관점은 그리스어 {셉튜아긴트}에도 반영되고 있다. 즉, 이 그리스어 번역에서 신은 아담의 콧구멍이 아닌 얼굴 위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고 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입과 입으로 전하는 ‘거룩한 입맞춤’과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성령을 주고받는 상징적 행위로서의 ‘거룩한 입맞춤’의 상징은 또한 그노시스 계열의 그룹에서도 계승되었다고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그노시스들이 그 행위에 보다 더 많은 비교적 상징을 추가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필립포스 복음서} 상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막달라 마리아를 시기한 이유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연인관계여서가 아니라, 자신들과는 막달라 마리아 만큼 종종 ‘입맞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입맞춤’이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것은 아마 ‘특별한 가르침의 전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많은 그노시스 문헌들에서는 예수의 다른 사도들이 막달라 마리가를 시기한 이유를 예수가 사도들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떤 특별한 비전을 전수했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럼 다음으로는 {필립포스 복음서}에 등장하는 “충격적인” 단어, “주님의 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 주님의 짝?

        소설 속의 티빙은 (예수의 일상어였을) 아람어로 ‘짝’에 해당하는 말이 “부부”라는 의미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필립포스 복음서}는 원래 그리스어로 씌여지고나서 이집트 꼽트어로 번역된 것으로 언어학자들은 보고있다. 그러므로 ‘짝’에 해당하는 꼽트어 (c726b)의 그리스 대응어는 ‘코이노노스’ 이다. 이 단어는 물론 배우자를 의미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배우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친밀한 우정과 친교를 나누는 동료를 의미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만으로는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를 부부나 연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 단어 "코이노노스 / κοινωνὸς (단수)" 혹 "코이노노이 / κοινωνοὶ (복수)"는 {신약성서} 속에도 몇번 등장한다. 이 단어는 보통 사도들의 "동역자"를 뜻할 때 사용되었다. {루가/누가복음서} 5장 10절에서 그 한 사례를 살펴보자. 인용하겠다.



        ὁμοίως δὲ καὶ ἰάκωβον καὶ ἰωάννην υἱοὺς ζεβεδαίου, οἳ ἦσαν κοινωνοὶ τῶ σίμωνι. καὶ εἶπεν πρὸς τὸν σίμωνα ὁ ἰησοῦς, μὴ φοβοῦ· ἀπὸ τοῦ νῦν ἀνθρώπους ἔσῃ ζωγρῶν.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 한국어 공동번역

        물론 예수의 사도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시몬 베드로와 "부부관계"가 아니었음은 당연하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이는 동역자, 동업자, 의기투합한 자 등을 뜻한다.

        {필립포스 복음서} 속에서 이 ‘짝짓다’라는 단어 역시 유사한 용례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영어로 번역된 unite와 mate는 모두 위와 같은 용례에 상응한다.  제 120절을 읽어보자.

        120. The human unites with the human, the horse unites with the horse, the donkey unites with the donkey. The species unite with their like-species. Thus in this manner the Spirit unites with the Spirit, the Logos mates with the Logos, and the Light mates {with the Light}. If thou become human then {mankind will} love thee, if thou become {spiritual} then the Spirit will mate with thee, if thou become meaningful then the Logos will unite with thee, if thou become enlightened then the Light will mate with thee, if thou transcend then the Transcendental will repose upon thee. But if thou become like a horse or a donkey or a calf or a dog or a sheep or any other animal outside and inferior, then neither mankind nor the Spirit nor the Logos nor the Light nor those above nor those within will be able to love thee. They will be unable to repose in thy heart and they will not be thy heritage.

        사람은 사람과, 말은 말과, 나귀는 나귀와 짝을 맺는다. 한 종은 같은 종끼리만 짝을 맺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영도 영과 짝을 맺고, 로고스는 로고스와 짝을 맺고, 빛은 빛과 짝을 맺는다. 만약 네가 사람이 된다면 사람은 너를 사랑할 것이다. 네가 영이 된다면, 영은 너와 짝을 맺을 것이다. 네가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면 로고스는 너와 쨕을 맺을 것이다. 네가 깨닫는다면 빛은 너와 짝을 맺을 것이다… --- 번역: 최광민

        말할 필요없이 여기서 ‘로고스’는 ‘예수’다. 그래서 이 제 120절의 의미 속에서 ‘코이노노스’는 반드시 배우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필립포스 복음서} 속의 그 ‘짝’에 대한 ‘사랑’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것은 성적결합으로서의 ‘코이노노스’가 아니라 영적연합 혹 합일로서의 혹은 동역자와 동지로서의 ‘코이노노스’다.

        이와 거의 동일한 문맥은 바울이 코린트 교회에 보낸 첫번째 편지에 이미 등장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합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한 몸 (σῶμα, 소마)가 되고, 또 한 영(πνεῦμα, 프뉴마)가 된다.

        15 οὐκ οἴδατε ὅτι τὰ σώματα ὑμῶν μέλη χριστοῦ ἐστιν; ἄρας οὗν τὰ μέλη τοῦ χριστοῦ ποιήσω πόρνης μέλη; μὴ γένοιτο.16 [ἢ] οὐκ οἴδατε ὅτι ὁ κολλώμενος τῇ πόρνῃ ἓν σῶμά ἐστιν; ἔσονται γάρ, φησίν, οἱ δύο εἰς σάρκα μίαν.17 ὁ δὲ κολλώμενος τῶ κυρίῳ ἓν πνεῦμά ἐστιν.

        [15]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7]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 한국어 새번역, {고린도 전서} 6:17

        그렇다면 {필립포스 복음서} 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예수의 ‘짝’은 바로 ‘영적 의미를 지닌 존재’를 말한다. 따라서 나는 {필립포스 복음서}, {마리아 복음서}, {도마 복음서}가 막달라 마리아에 관해 실제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위경 {필립포스 복음서} : 
          • 로고스에게 의미있는 존재…the Logos mates with the Logos… if thou become meaningful then the Logos will unite with thee…
        • 위경 {마리아 복음서} : 
          • 가치있는 존재….But if the Savior made her worthy…
        • 위경 {도마 복음서}: 
          • 남성 …that I may make her male, in order that she also may become a living spirit like you males…

        그노시스 복음서에 등장하는 이 세가지 진술은 사실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필립포스 복음서}를 비롯한 그노시스 계열의 복음서들에 등장하는 ‘짝’이라는 말은 다만 막달라 마리아가 다른 사도들보다 예수에게 더 ‘완전한/의미있는/가치있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뜻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럴 경우, ‘짝’과 ‘입맞춤’이란 두 단어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연인이었다는 결론을 엮어낼 수가 있을까? 물론 없다. 그래서 그노시스 계열의 복음서에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떤 “종교적” 편애를 보였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근거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배우자 혹 연인이었다고는 말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막달라 마리아가 실제로 예수의 배우자였다면, 그리고 초기 교회의 주요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다면, 그리고 그노시스 계열의 그룹들이 실제로 정통적 기독교였다면, 왜 많은 그노시스 복음서들은 그 사실에 대해 보다 명백하게 적시하지 않고 사실상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두고 고대 카톨릭 교회의 탄압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는 궁색하다. 왜냐하면 이들 그노시스 계열의 복음서는 이미 AD 2세기부터 등장하고 있었고, 로마제국 영내에서 공인된 서기 313년 이전의 기독교는 국가권력을 동원해 그노시스들을 억압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에는 바바리 티어링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 바바라 티어링이 최초로 해독(!)한 예수의 일대기 ?

        호주 시드니 대학교의 여성신학자/성서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바바라 티어링은 복음서와 기독교의 기원에 대해 전례가 없이 "독창적인" 혹은 "엉뚱한" 주장을 펼쳐서 주류학계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센세이셔널한 주제를 선호하는 대중미디어의 속성 때문에, 대중적인 인지도가 학계의 인지도보다 높은 인물이다.

        바바라 티어링은 1972년 {The ideal of asceticism in the Dead Sea scrolls 사해사본 속 금욕주의의 이상}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바바라 티어링은 1990년대에 몇가지 "문제작"을 연달아 발표하는데, 1992년 {Jesus & The Riddle of The Dead Sea Scrolls: Unlocking The Secrets of His Life Story 예수와 사해사본의 비밀: 비밀스런 예수의 삶의 수수께끼를 풀다}, 1995년의 {Jesus of the Apocalypse: The Life of Jesus After the Crucifixion 계시록의 예수: 십자가형 이후의 예수의 삶}, 1998년의 {The Book That Jesus Wrote - John’s Gospel 예수가 쓴 책: 요한 복음서}가 그것들이다. 이 중에서 {Jesus & The Riddle of The Dead Sea Scrolls: Unlocking The Secrets of His Life Story}는 2006년에 {Jesus the Man: New Interpretation from the Dead Sea Scrolls}에 페이퍼백으로 재출간되었다.


        Barbara Thiering, {Jesus the Man: New Interpretations from the Dead Sea Scrolls}

        이 책들 속에서 티어링은 {신약성서}와 {사해사본} 연구에 기호학과 해석학을 접목시켜서, 자신 만의 독특한 해석을 시도한다. 티어링은 {사해사본} 에서 {히브리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론으로 사용된 온 "페셔 Pesher" 기법을 {신약성서}의 해석에 적용한다. {사해사본}에서의 '페셔'는 경전을 두 준위의 층을 가진, 즉 표면적인 뜻과 감춰진 뜻을 가진 것으로 보고 해석한다.

        가령, 티어링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기적담은 문자적으로 발생한 기적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설도 아니며, 예수 본인과 그의 핵심 추종자들이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신중하게 코드화 혹은 신화화하여 입문자들에게 제공한, 일종의 2중구조를 가진 서사라는 것이다.

        자신이 "2천년 만에 재발견했다는" 이 {신약성서} 속 단서 ("페셔")들과 {사해사본} 및 나그 함마디에서 발견된 그노시스들의 여러 문건들, 그리고 AD 1세기의 역사를 접목해서, 티어링은 신약성서 속의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들, 그리고 {요한계시록}를 예수를 둘러싼 종교적이고 정치적 사건들이 정교하게 암호화된 문서들로 보고, 이를 아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목영일씨의 {예수의 마지막 오디세이}란 책의 제 2-4부의 주요 테마는 티어링의 주장을 예수의 말년 이야기만 바꾼 채 그대로 옮긴 것이다.

        티어링이 {신약성서}의 암호를 풀어 재구성했다는 내용을 (주로 {Jesius the Man} dptj) 아주 짦게 간추리면, 예수의 일대기는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독자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티어링의 "독창적" 주장들에 대해서는 "티어링에 따르면"이란 강조어를 매 문장 앞에 두겠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는 BC 7년 3월 1일에 출생했고, 그가 12살이던 때는 AD 6년이 된다. 그래서 유대인으로서의 예수가 성인식인 바르 미츠바 의식을 가진 것은 AD 6년이 된다. 티어링에 따르자면, 복음서에 기술된 예수의 '탄생'은 그의 생물학적 "탄생"을 말하는게 아니라, 예수의 종교적 탄생, 즉 그의 성인식인 바르 미츠바를 뜻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므로, '마구간'은 그가 태어난 장소가 아니라, 그가 성인식을 가진 쿰란공동체의 한 건물이란 식이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는 엣세네파에 속한 요셉과 마리아를 육체적인 부모로 하여 BC 7년 3월에 태어났다. 요셉은 다윗왕가의 왕통을 잇는 인물이었고, 마리아는 쿰란공동체의 제사장 계보를 잇기 때문에, 예수는 왕-제사장의 지위를 주장할 수 있다. 다만 당시의 주류파인 바리새파에 따르면 정혼 중에 임신된 자식은 '혼외자/서자'로 취급받기 때문에, 예수는 다윗의 왕통을 이을 계승순위에서밀려나게 된다. (이 경우 그의 동생인 야고보가 계승서열 1위가 된다.) 티어링은 복음서에 등장한 예수의 "처녀탄생" 이야기는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관계 중에 탄생"한 것을 암호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에 헬레니즘에 몇 세기 가량 노출된 유대아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던 사두개파의 입장에선 그가 요셉의 자식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아울러 티어링에 따르면, 엣세네파는 유대교의 다른 분파들 보다 훨씬 긴 거의 3년에 이르는 정혼기간을 두었고, 그 처가 임신 석달이 되면 그때 두번째의 결혼의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예수가 요셉의 적자로 인정받아서 다윗의 정당한 왕손으로 인정받는 것은 메시아의 지위를 선언한 예수와 예수의 추종자들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는 성인식을 통해 엣세네 내부에서 다윗왕가의 후손인 요셉의 적자로 인정된다.

        AD 6년은 유대아 역사에서 중요한 해인데, 바로 그해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가 센서스를 실시하면서 그에 반발하는 갈릴리의 유대인들이 젤롯 (열심당)을 조직하여 저항에 나섰기 때문이다. 율법의 전통에 따른 종교적 이유로 센서스를 거부한 젤롯과 바리사이파의 공동저항이 실패한 후 갈릴리인들은 크게 탄압당하고 그 여파로 반-로마 성향의 바리새파 출신의 대제사장이 물러나게 된다. 대신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사두개파 출신의 안나누스가 대제사장이 되고 유대인 지도부는 친-로마적 입장을 견지하게 된다. 안나누스의 다섯 아들 모두는 친-로마적인 인물로 이후 모두 대제사장이 된다.

        티어링에 따르면, 안나누스가 집권 한 후,예수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등극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자각한다. 당시 사두개파는 정혼 중의 임신한 자녀에게도 적자의 지위를 인정했기 때문에, 예수는 한때 사두개파에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며 이미 헬레니즘에 노출된 사두개파의 입장을 받아들어 친-이방인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사두가이파는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에게도 할례 등의 엄격한 유대인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티어링에 따르면, AD 17년 23세의 예수는 엣세네파 쿰란의 성인공동체에 입문할 나이가 된다. {루가 복음서} 2:41-51에 등장하는 "12살에 성전에 간 예수" 일화 속의 그 12살은, 티어링에 따르면 그의 생물학적인 나이라 아니라 "(안나누스 집권인 AD 6년으로부터 = 제 1년) 12년"을 뜻한다는 것.

        이 해에 안나누스의 아들인 엘레아잘이 로마에 의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매우 개방적인 인물로 이방인과 여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보장해 주었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가 {루가복음서} 2:49에서 언급한 "아버지"는 신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적 아버지인 대제사장 엘레아잘의 개방적 견해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유대아에 총독/사령관으로 부임한 것은 AD 26년이다. 이 해는 갈릴리 반란이 있었던 AD 6년으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였다. 바로 이 해에 세례자 요한이 등장한다. 티어링은 사해사본의 "정의의 스승"이란 이 세례자 요한을 뜻한다고 본다. 티어링은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인 자카리아 (=사가랴)를 자독계 대제사장이었다고 여긴다.

        사료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직은 BC 167년 마카비 왕조가 들어설 때까지 다윗과 솔로몬을 보좌했고 솔로몬 제 1성전의 초대 대제사장이었던 자독 (=사독)의 후손이 대대로 맡았다. 자독가문은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서 돌아와 건립한 제 2성전에서도 시메온 2세와 그의 두 아들인 오니아스 3세와 여호수아 (그리스명 이아손)까지 이어졌다. 이아손은 헬레니즘을 유대아 종교사회에 도입하여다가 급격한 저항을 받고, 결국 마카비 일가가 주도한 혁명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때 자독 일가 (오니아스 4세, 혹은 3세, 혹은 2세)는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 왕조의 헬리오폴리스 지역에 있는 레온토폴리스로 가서, 파라오의 지원을 받아 마카비 가문에게 빼앗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항할 성전을 그곳에 세웠다고 한다. 아마도 이 자독 일가가 기원이 모호한 쿰란의 엣세네 공동체를 세웠을 가능성도 있다.

        티어링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자 자독계 대제사장이었던 자카리아는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유대아에서 벌인 학살극 중에 살해되었고, 이 사건을 통해 요한은 반-로마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는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 군사적인 대결보다는, 엣세네파의 오랜 예언전통에서 가르치는 대로 신의 개입을 유발해 로마를 분쇄해 보고자 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자독계 대제사장과 진정한 다윗의 후손이 메시아로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정화하게 되길 꿈꿨다는 것이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는 AD 29년 3월 8일에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았다.

        티어링에 따르면, 복음서의 비유들은 대개 예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애둘러 표현한 것이다. 가령,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반-로마 무력저항에서 실패한 튜다의 실제 사건을 비유로 기록한 것이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강도들"에게 맹렬히 비난받았지만 한 사두가이파의 지원을 받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라고 풀이한다. 티어링은 이 사두가이파의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 무렵의 사두개파 대제사장인 요나단 안나누스라고 풀이한다.

        앞서 말한 "강도들"에 대해서 티어링은 또 매우 엉뚱한 해석을 내리는데, 세례자 요한에게 반기를 든 이 "도둑들"이란 예수의 십자가 양쪽에 달렸던 두 사람과 동일한 인물로 즉, (초기 기독교에서 이단적 마술사이자 그노시스의 원조로 간주한) 시몬 마누스와 (복음서에서 예수를 배반한 사도로 등장하는) 유다 이스카리옷 (=가룟 유다)이란 것이다. 티어링에 따르면, 유다 이스카리옷은 갈릴리 젤롯의 무력저항을 초기에 이끈 유다의 후임으로 젤롯의 중책을 맡은 인물이었으며, 세례자 요한의 정치적 입장이 미온적이라 여겨 그를 맹렬히 비난했다는 것. 티어링에 따르면, 유다 이스카리옷과 그의 상급자인 시몬 마구스는 예수의 12사도의 하나로 복음서에 등장하는 젤롯 (열심당원) 시몬이자, 예수가 베다니에서 방문했던 나병환자 시몬과 동일인이라고 주장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시몬 마구스를 모든 그노시스 이단의 기원과 수괴로 비난했다.

        티어링에 따르면, 친-로마파는 유다 이스카리옷과 시몬 마구스를'강도들'로 불렀는데, 이들이 군자금 및 조직활동자금을 쿰란공동체에서 계속 끌어다 썼기 때문이라는 것. 아울러 티어링은 이들이 쿰란의 엣세네 지휘부 혹은 사해사본에서는 "정의의 스승 (티어링 주장으론 세례자 요한)"에 대적한 "에프라임과 마나세 부족"으로 표현된 그룹의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AD 20년대로 접어들면서 유대아의 정치적 지형은 헤롯대왕의 손자인 아그리파 1세에 의해 더욱 복잡해 졌다. (헤롯대왕은 말년에 자신의 아들이자 이 아그리파 1세의 아버지를 죽인 바 있다.)

        헤롯 가문의 다른 왕자들 처럼 이 아그리파 1세도 로마에서 교육받았으며, 특별히 로마의 남쪽 성곽 부근에 헤롯이 지어둔 집에서 거주했다. 티어링은 이 집이 그리스어로 된 {구약성서} 위경인 {제 4 바룩} 등장하는 "아그리파의 포도원"이라고 주장한다. 아그리파 1세는 로마 귀족들과의 관계를 맺었는데, 이런 노력은 마침내 성과를 거두어, AD 14년 티베리우스 황제가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를 이어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된 무렵에 그는 황실 내 인맥을 통해 티베리우스의 아들 드루수스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AD 6년 본국이 로마의 직할령이 된 후 본국의 통치권을 다시 헤롯 왕가가 회복하기 위해서는 로마의 허가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그의 저택 ("포도원")에서 로마 귀족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등 로마 원로원의 호의를 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연회와 로비에 과도한 비용을 지출한 끝에 그는 로마에서 파산을 경험하게 된다.

        본국에 돌아온 아그리파 1세는 이두메아 (에돔)에 있는 헤롯 가문의 영지에 머물다가 자살을 시도한다. 아내인 키프로스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된 후, 키프로스는 자신의 자매인 헤롯 안티파스와 결혼한 헤로디아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이 건설해서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헌정한 갈릴리의 수도 티베리아스를 아그리파 1세가 다스리게 해주었다. 티어링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던 아그리파 1세는 마침 당시에 혜성처럼 나타나 민중들의 인기를 끌던 세례자 요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세례자 요한이 속한 수도자들을 자기 궁에 불러 쿰란이 보유한 재산은 그것이 본래 헤롯의 소유였으므로 자신의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그 돈은 이미 헤롯 안티파스가 통제하고 있었고, 아그리파는 왕이 아닌 한 그 주장을 다시 펼 수 없었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와 사촌지간으로 예수가 정혼 중에 임신된 내막을 알고 있던 세례자 요한은, 예수를 요셉과 마리아의 적통으로 간주하지 않는 바리새파의 입장에 따라 예수가 아닌 그의 동생인 야고보가 다윗왕가의 적통을 주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티어링에 따르면, 그 때문에 빌라도와 아그리파 사이의 긴장을 높아질 무렵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 맞서기 위해 시몬 마구스가 필요해졌다. 티어링에 따르면, 강경한 윤리주의자인 세례자 요한은 반-로마 무력봉기에 반대하는 사두개파 대제사장인 요나단 안나스와 동맹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이방인과 여성에 대한 안나스의 개방적 입장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티어링은 {루가 복음서} 7장 19절에서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제자를 예수에게 보내서 예수가 메시아인지 혹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물은 일화는, 사실은 세례자 요한인 예수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를 메시아로서의 정통성을 가진 인물로 간주한 사건을 암시한다고 본다. 티어링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예수는 세례자 요한을 추종하는 그룹의 지지를 얻어낼 수 없었지만, 대신 시몬 마구스를 그의 동지로 포섭한다.하지만 예수는 시몬 마구스의 무력봉기론에 동의하지는 안았고 다만 그의 지적능력이 필요했다.

        아그리파 1세가 권좌를 노린다는 아내인 헤로디아스의 지적에 따라 헤롯 안티파스는 이제 아그리파 1세와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다. 안티파스 역시 로마의 티베르 섬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티베리우스 황제는 아그리파보다는 안티파스에게 보다 호의적이었다. 티어링에 따르면, 유대인의 적대적인 두 분파가 안티파스와 아그리파를 각각 지지하게 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때 시몬 마구스는 안티파스의 편에 서면서 아그리파에게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는데,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의 생부인 요셉은 헤롯대왕이 바리새파를 핍박한 일을 계기로 반-헤롯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예수는 요셉의 반-헤롯적인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요셉의 민족주의적 성향엔 반기를 들었다. 예수의 이런 정치적 입장에 아울러 그가 주전파 시몬 마구스의 친구였기 때문에 예수는 아그리파의 궁(=포도원)에 가게 된다. 티어링은 이 시몬 마구스가 "정의의 스승"인 세례자 요한에 반대하는 그룹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쿰람의 요한 추종자들은 예수를 "사악한 제사장", "거짓의 사람" 혹은 "서자" 등으로 쿰람에서 불렀다고 주장한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는 서른 즈음에 그 만의 새로운 정치/종교적 입장을 표방하고 있었다. 즉, 예수가 향후 레위 부족원이 아닌 사람도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혁명적인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즉, 예수는 사제계급이 아닌 자도 출생으로서가 아니라 자질에 따라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과 쿰란의 분노를 산 것은 바로 출생에 따른 이 특권적 지위를 예수가 부정했기 때문이라는 것.

        티어링에 따르면, 보다 충격적 사건은 AD 32년 대속죄일 (욤 키푸르)에 예수 본인이 대제사장의 예복을 갖춰 입고 자신이 마치 대제사장이 된 양 대속죄일 의식을 직접 집례한 것이다. 티어링은 예수가 산에서 변모한 사건 (가령, {마르코/마가 복음서} 9장 2-8)은 바로 예수가 스스로를 대제사장으로 선포한 사건을 암시한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예수에 적대적인 쿰란의 분파들은 예수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5년 후 기록된 쿰람의 {하박국} 주석의 한 구절이 (1QpHab 11:6-8) 이를 암시한다고 티어링은 주장한다.

        티어링에 따르면, 대제사장을 자처 한 예수가 바리새파가 아닌 사두개파의 교리에서 교리를 끌어온 후 로마의 협력자이자 이방인의 친구로 기꺼이 자리매김한 사건은 유다 이스카리옷을 매우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했는데, 그가 안티파스를 지원하는 마나세 그룹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가 반-아그리파 그룹과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예수 역시 반-로마 무력봉기를 수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예수는 사두개파 대제사장인 요나단 안나스와도 문제가 있었다. 안나스는 레위부족 출신의 제사장이란 자신의 특권적 지위에 대한 자긍심이 너무 강했고, 자질있는 자는 누구나 대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예수의 주장은 그에겐 위협이 되었다. 안나스와 예수가 정치적 입장에서는 완전히 동의했다더라도, 제사장직을 두고 벌어진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은 매우 심각했다.

        티어링에 따르면, 이 모든 상황은 결국 예수가 이끄는 분파에 대한 탄압을 불러왔으며, 엣네네 내부의 친-로마적 화친파와 반-로마적 주전파와의 내부갈등, 주전파인 두 사도와 예수 간의 갈등 등이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예수는 반란혐의로 주동자인 시몬 마구스, 유다 이스카리옷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다. 시몬 마구스는 이 분파의 지도자로, 유다 이스카리옷은 제 2인자로, 예수는 제 3인자로 체포되어 필라투스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는 고작 제 3인자로 처벌되었으며, 그 죄목도 앞의 두 사람은 반역죄이지만 예수의 경우는 종범이었을 뿐이다. (티어링은, 바라바가 원래 반역자 #3으로 기소되었으나 예수로 대체된 것이라 해석했다.) 아울러 티어링은 십자가에 달린 3인의 위치는 동쪽/유가 이스카리옷, 중간/시몬 마구스, 서쪽/예수로, 예수가 사실상 3인자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티어링에 따르면, 시몬 마구스, 유다 이스카리옷, 예수는 AD 33년 3월 20일에 체포되어, 당일 날 처형 당한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신 포도주와 함께 뱀독을 복용하고 가사상태에 빠져 죽은 것으로 오인된다. 무릎뼈를 부러뜨린 후 무덤에 버려진 시몬 마구스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그의 약물지식을 활용해 예수를 해독시켜 살려낸다. 이후 시몬 마구스는 예수와 결별하기 까지 11년 간 예수와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 예수는 이후 한동안 쿰란에 은거했다. 티어링에 따르면, 십자가형이 있은 유월절에서 50일 후인 오순절에 이 엣세네와 근연관계인 테라퓨타이의 정규회합이 있었고, 그 회합의 공식 아젠다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유대교로의 개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융합시키기 위해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것. 이 이방인들이 다른 언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사도행전에 사도와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는 진술은, 바로 이 회합의 아젠다가 구현된 것을 뜻하나도 해석한다. 그래서 티어링에 따르면, 이 아젠다는 예수의 부활 따위와는 원래부터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이 '부활'을 모티프로 해서 자신이 주축이 되는 종교개혁을 이끌기로 한다. 즉, 이방인을 새로운 종교운동에 참여시키되 그들에게 유대교 율법을 강요하지 않는 노선을 따르기로 했다는 것.회합에서 예수는 이들의 아젠다에 일부 동의하지만, 다른 이들은 예수에 계획에 동조하지 않는다. 이후 예수의 노선을 따라간 그룹은 친-이방인적이고 친-로마적인 그룹으로 독립해 나와 '기독교도'라 불리게 된다. 바로 이 오순절 회동이 예수의 독립적 노선이 최초로 구체화 된 회동이기 때문에, 기독교도들은 오순절을 기독교의 출발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 티어링의 주장이다.

        AD 37년 티베리우스 황제가 죽은 후 칼리귤라 황제와의 친분을 이용해 권력을 회복한 아그리파 1세는, AD 44년 3월 경기장에 찬란한 은빛 의복을 입고 나타나 군중들로부터 '신'이라 찬사받은 사건 5일 후 복통 (아마도 독살?)으로 사망했다. 티어링은 이 암살을 시몬 마구스가 이끈 그룹이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아그리파 1세가 죽고 그와 동맹했던 여러 분파가 이합집산하게 되는데, 반-왕, 반-로마파는 그 근거지를 시리아 다마스쿠스로 옮긴다. 이 그룹이 다마스쿠스의 쿰란 지부를 만들었고, {사해사본}의 {다마스쿠스 문서}은 이들이 부락에서 활동하는 엣세네파를 조직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문건이란 것.

        티어링에 따르면, 당시 십자가에서의 부상 이후 회복하면서 은거 중이던 예수는, 자신의 사두개적 친-로마주의, 평화주의, 개방주의를 안티오키아에서 부르짖게 된다. AD 44년 1월 1일, 예수의 노선에 공조한 유대인 및 이방인 추종자들이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유대교 전통고수란 입장과 전면적 개혁이란 두 갈랫길에서 갈등이 이어졌다. 티어링에 따르면, 이때 부락 엣세네 그룹 출신의 시몬 베드로는 유대교 전통 안에 남아있고자 하면서도, 예수의 이방인에 대한 관점에도 동의했다고 본다.

        티어링에 따르면, 이제 예수의 엣세네 분파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아그리파 1세는 16살짜리 어린 아들을 남겼는데, 그가 아버지를 승계해서 아그리파 2세가 되었다. 그는 유약한 인물이었는데, 티어링에 따르면 당시 아그리파 궁정에는 사울이라 불리던 청년이 어린 아그리파의 교사로 일했다. 그가 나중의 바울이었다. 티어링은 이 아그리파 2세가 바울이 쓴 두 편의 서신서의 수신인인 티모테오스 (=디모데)라고 주장한다. 사울은 평민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예수를 위험분자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그리파의 적들을 감시하게 위해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에수 추종자들의 회합에 스파이로 가게된 사울은, 거기서 예수 본인을 만나고 도리어 예수에 의해 전행을 체험하게 된다. 이후, 바울을 아그리파 2세를 설득시켜 이 젊은 왕을 기독교도로 전향시켰다. 베드로와 바울 모두 아그리파 2세의 궁정에 머물렀고, 예수 역시 아그리파의 궁정에 체합류했다. 예수는 이 무렵 이미 시몬 마구스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이후 아리그파 2세가 로마를 방문할 때 그들도 아그리파를 수행해서 로마로 갔다. 초기 기독교도들은 아그리파의 궁정을 기반으로해서 에페소스와 로마로 퍼져나갔다. AD 61년 본국의 혼란이 심해지자, 예수, 바울, 베드로는 로마에 새로운 본부를 창설했다. 3년 후 네로가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도들에게 뒤짚어 씌울 때 바울과 베드로는 체포되어 사형되지만, 예수는 카타콤에 은거하면서 로마에 남아 있었다. 예수는 베드로와 바울의 후계자들로부터 지원을 계속해서 받았고, (티어링이 해석한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예수는 AD 70년 76세의 나이로 에페소스에서 열린 회합에 참석했고, 70-73년 무렵에 로마에서 사망한 후 그의 메시아로서의 지위는 그의 아들인 예수 유스투스가 승계했다는 것이다.  ---- 정리: 최광민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바바라 티어링의 이론은 BC 7년에서 AD 70년 무렵까지를 배경으로 한 한편의 거대한 대하 드라마다.

        사실 티어링의 주장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예수가 십자가형의 후유증에서 회복기를 가질 무렵, 그가 이방인인 요한 마르코 (요한 마가)와 필리포스 (빌립)의 도움을 받아 AD 37년에 {요한 복음서}를 직접 탈고 하였다는 주장이다. 또 베드로 및 마르코, 마태오 및 (대제사장) 요나단 안나스가 각각 {마르코/마가 복음서}와 {마태 복음서}를 썼고, 이어서 예수 본인이 다시 루카스 (루사/누가)와 함께 {루가/누가 복음서}를 집필하였다는 주장. 

        {복음서}가 후대에 편집된 저자 미상의 문서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입에 거품을 물 주장이 아닌가 !!

        티어링의 이런 해석이 아주 "독창적"이라는데는 어느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해석은 본인 스스로 말했다시피 "2천 년 만에 처음으로 재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주장들의 타당성에 대해서, 주류 {사해사본} 전문가들과 성서학자들은 티어링의 이런 해석을 근거를 거의 댈 수 없는 일종의 판타지 소설로 간주했다.

        가령, 옥스포드 대학의 사해사본 권위자 Geza Vermes는 {더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의 북 리뷰에서 티어링을 혹평했는데, 이에 대해 티어링이 반박하는 편지를 기고하자, 다시 이렇게 선을 그었다.(http://www.nybooks.com/articles/1994/12/01/the-pesher-technique)

        Professor Barbara Thiering's reinterpretation of the New Testament, in which the married, divorced, and remarried Jesus, father of four, becomes the "Wicked Priest" of the Dead Sea Scrolls, has made no impact on learned opinion. Scroll scholars and New Testament experts alike have found the basis of the new theory, Thiering's use of the so-called "pesher technique", without substance." ---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December 1st, 1994

        예수가 결혼했고, 이혼했고, 재혼했고, 네 아이의 아버지이며, {사해사본}에 등장하는 "사악한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는 바바라 티어링 교수의 {신약성서} 해석은 학계의 견해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사해사본} 학자들과 {신약성서} 전문가들 모두, 이 새 이론의 기초이자 티어링이 사용했다는 이른 바 "페셔 기법"이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 {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1994년 12월 1일 /  번역: 최광민




        # 바바라 티어링이 해독(!)한 예수와 막달라 마리리아의 결혼과 이혼

        자 그럼, 바바라 티어링이 윤색한 (혹은 "해독한") 예수의 "첫번째 아내"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자.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는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가 정혼기간 중에 자신을 임신했기 때문에 자신이 혼외자로 간주되어 메시아를 주장할 지위가 위협받은 뼈 아픈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왕조'를 잇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예수는 이때 결혼법에 있어 보다 엄격한 규정을 가진 엣세네의 관례를 따랐다. 즉, 엣세네는 3년 간의 긴 예비결혼 (정혼) 기간을 두고나서, 아내가 임신한지 석달이 되면 그때가서 두번째 결혼식을 올리고 완전한 부부가 되었다는 것.

        티어링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첫 아내였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티어링은 이 막달라 마리아를 {루가/누가의 복음서} 8:2절에 "일곱 귀신"에 사로잡혔다가 치유된 여인으로 설명한다. 티어링의 이 주장은 물론 문자적인 것은 아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이 나갔다는 {복음서}의 진술이 정말로 의미하는 바는, 그녀가 예수와 결혼하기 전에 그녀를 관리하던 갈릴리 출신의 젤롯 (열심당원)인 유다 이스카리옷 (가룟 유다)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의미하는 '암호'라고 풀이한다.

        티어링이 상상하는 유다 이스카리옷은 복음서에 기술된 수준을 훨씬 벗어나는 매우 막강한 인물로 기술된다. 티어링의 유다는 갈릴리의 반-로마적 무장집단인 젤롯을 이끈 유다를 이어 젤롯을 통솔한 중심인물이었고, 이 유다 이스카리옷이 중책을 맡은 레위인으로서 레위부족원으로서 처녀로 종신하며 성전에서 일한 성처녀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았다고 보았다. 아울러 이 유다 이스카리옷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젤롯의 이데올로기를 교육시켜 반-로마적 투쟁의 투사가 되도록 키웠다는 것이다. 여기서 티어링은 복음서의 "일곱 귀신"이란 7명의 마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 #7"이란 뜻으로서 이것이 가룟 유다의 별명이었다고 풀이한다., 당시 젤롯들이 '귀신들 demons'이란 별칭으로 불렸다는 것. 그래서 복음서가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이 떠났다"라고 말한 부분의 진짜 의미는 "막달라 마리아가 '귀신 7'이라 불리던 유다 이스카리옷의 통제/영향을 벗어났다"는 뜻이란 것.  즉, 즉, 친-로마적이던 예수가 반-로마적 젤롯이던 막달라 마리아의 정치적 성향을 바꾸어 전향시켰고, 결국 유다 이스카리옷이 통제하고 있던 젤롯 성처녀의 지위를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란 것이 티어링의 주장.

        티어링에 따르면, 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아내가 되었다. 티어링은 라자로/나사로와 마르타의 동생인 베다니의 마리아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었던 여인을 모두 한 인물 막달라 마리아로 간주하는데, 특별히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었고 그 향기가 온 집에 가득했다"는 진술을 솔로몬의 {아가} 1:12장의 등장하는 결혼장면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고, 이는 즉, 예수와 마리아의 결혼식, 혹은 성적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라 풀이한다. 아울러 {아가}를 다윗 왕조의 결혼의식을 묘사한 의전시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 장면의 "정확한' 풀이는 다윗 왕가의 후손인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다윗 왕조의 결혼의식을 재현한 것이라 풀이하는 것이다. 티어링은 예수-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은 엣세네의 규율을 따라 2단계로 구성된 것이며, 그 1단계는 일종의 예비결혼으로 (누가 7장 36-50), 그 다음은 예수의 십자가형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가 임신 3개월로 판정된 후 비로소 엣세네의 규율에 따라 두번째의 완전한 결합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티어링에 따르면,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AD 30년 6월 6일에 약혼했고, 9월 23일에 1단계 결혼을 한다.

        티어링에 따르면, {사도행전}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가 아주 정확하게 암호화 되어있는 문서다. 티어링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공식결혼이 AD 33년 3월 20일에 있었고, 마리아가 이때 임신 3개월이었기 때문에, 그해 9월 1일에 낳은 자식은 딸이었다고 해석한다. 아울러  티어링은 {사도행전} 17:34에 등장하는 다마리스 (~ 타마르)는 이 시점에 18살이 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의 큰 딸이라고 주장한다. '타마르'가 다윗  왕의 딸 이름이었다는 점을 들어, 이 이름 자체가 이 소녀가 다윗의 왕통을 잇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 티어링에 따르면, 나중에 이 딸은 AD 54년 3월 27일에 바울과 결혼한다. 즉, 바울은 예수의 사위가 되고, AD 54년 9월 1일, 바울과 다마리스 사이에 딸이 태어나 예수는 60세에 할아버지가 된다.

        엣세네 규율에 따르면,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나면 부부는 다음 성관계까지 3년을 기다려야 한다. 티어링은  {사도행전} 6:7과 12:24절에 등장하는 "신의 말씀"이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뜻으로 해독한다. 그리고 "예수 왕가"를 잇은 이 아들은 AD 36년 9월에 임신되어 AD 37년 6월 1일에 태어났고, 이 내용은 {사도행전} 6:7과 {골로새서} 4:11에 암호화 되어있다고 티어링은 주장한다. 바울은 여기서 "유스토스라고 불리는 예수 Ιησούς χω λεγόμενος Ιουστος)의 안부인사를 전하고 있는데, 티어링은 여기서의 "유스토스/의로운/바른"란 예수의 동생 야고보에게도 붙여진 별명이므로, 이는 즉, 다윗왕통에게 붙여지는 호칭으며 따라서 이 '예수 유스토스'가 예수의 아들임이 분명하다고 결론 내린다. 티어링은 이때 예수의 이 아들은 24세 였다고 보며, 아버지의 이름을 승계했다고 판단한다. 아울러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에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두번째 아들이 AD 43년 6월에 수태되어 AD 44년 4월 10일에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 정리: 최광민

        티어링이 풀이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후일담은 더 재미있다.

        티어링에 따르면, 원래 유다 이스카리옷의 교육을 받은 반-로마 혁명가였던 막달라 마리아를 친-로마적 성향으로 전향시킨 것은 예수 본인이었다. 그런데  AD  30년대 말 로마황제 칼리귤라의 반-유대적 정책이 반-로마 정서를 다시 지폈고, 이에 따라 막달라 마리아는 친구인 헬레나 및 (헬레나의 아내/애인) 시몬 마구스와 함께 다시 젤롯에 합류하였다고 주장한다. 티어링의 주장에 따르자면, 예수와의 세번째 자식이 태어난 AD 44년에 메시아주의 그룹인 예수를 따르는 유대계 기독교도와 시몬 마구스를 따르는 젤롯 사이의 결정적 분열이었다는 것이다. 이 분열 전에 이미 젤롯으로 복귀했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진정한 종교적 이상에서 이탈했다며 판단하고 시몬 마구스를 지지하고 예수와 결별, 즉 이혼했다.  ---- 정리: 최광민

        호주 페미니스트 운동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했던 바바라 티어링의 막달라 마리아는, 이처럼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위해 세 명의 자식을 두고도 남편에게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한 여성전사였던 것이다.




        § 예수의 두번째 아내 리디아?

        티어링에 따르면 AD 50년, 예수와 그의 분파는 젤롯 및 전통적 유대교와의 파워게임에서 밀려나 유럽으로 이주한다. 예수는 북부 그리스의 마케도니아의 필립피에서 그의 정치/종교적 입장에 동조하는 지역의 유력인사 리디아 (Lydia)와 재혼했다고 주장한다.

        '리디아'가 예수의 두번째 아내라고 주장하는 티어링의 근거는 {사도행전}이다.  '리디아'가 등장하는 유일한 구절인 {사도행전} 16장에서 발췌한다. {사도행전}의 화자는 바울의 선교여행을 수행했던 루가/누가다 (물론 티어링은 {사도행전}과 {루카 복음서}가 같은 저자이므로, {사도행전}의 저자도 예수 본인이라 주장할 것이다)

        9 καὶ ὅραμα διὰ [τῆς] νυκτὸς τῶ παύλῳ ὤφθη, ἀνὴρ μακεδών τις ἦν ἑστὼς καὶ παρακαλῶν αὐτὸν καὶ λέγων, διαβὰς εἰς μακεδονίαν βοήθησον ἡμῖν. 10 ὡς δὲ τὸ ὅραμα εἶδεν, εὐθέως ἐζητήσαμεν ἐξελθεῖν εἰς μακεδονίαν, συμβιβάζοντες ὅτι προσκέκληται ἡμᾶς ὁ θεὸς εὐαγγελίσασθαι αὐτούς. 11 ἀναχθέντες δὲ ἀπὸ τρῳάδος εὐθυδρομήσαμεν εἰς σαμοθρᾴκην, τῇ δὲ ἐπιούσῃ εἰς νέαν πόλιν, 12 κἀκεῖθεν εἰς φιλίππους, ἥτις ἐστὶν πρώτη[ς] μερίδος τῆς μακεδονίας πόλις, κολωνία. ἦμεν δὲ ἐν ταύτῃ τῇ πόλει διατρίβοντες ἡμέρας τινάς. 13 τῇ τε ἡμέρᾳ τῶν σαββάτων ἐξήλθομεν ἔξω τῆς πύλης παρὰ ποταμὸν οὖ ἐνομίζομεν προσευχὴν εἶναι, καὶ καθίσαντες ἐλαλοῦμεν ταῖς συνελθούσαις γυναιξίν. 14 καί τις γυνὴ ὀνόματι λυδία, πορφυρόπωλις πόλεως θυατείρων σεβομένη τὸν θεόν, ἤκουεν, ἧς ὁ κύριος διήνοιξεν τὴν καρδίαν προσέχειν τοῖς λαλουμένοις ὑπὸ τοῦ παύλου. 15 ὡς δὲ ἐβαπτίσθη καὶ ὁ οἶκος αὐτῆς, παρεκάλεσεν λέγουσα, εἰ κεκρίκατέ με πιστὴν τῶ κυρίῳ εἶναι, εἰσελθόντες εἰς τὸν οἶκόν μου μένετε· καὶ παρεβιάσατο ἡμᾶς.

        ...어느 날 밤 바울로는 거기에서 신비로운 영상을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던 것이다. 바울로가 그 영상을 보고 난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필립비로 갔다. 그 곳은 마케도니아의 첫 지방의 도시로서 로마의 식민지였다. 우리는 며칠 동안 이 도시에 머물러 있었다. 안식일이 되어 우리는 성문 밖으로 나가 유다인의 기도처가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강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리디아라는 여자 τις γυνὴ ὀνόματι λυδία가 있었는데 그는 티아디라 출신으로 자색 옷감 πορφυρόπωλις 장수였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다. 주께서는 그 여자의 마음을 열어 ὁ κύριος διήνοιξεν τὴν καρδίαν 바울로의 말을 귀담아듣게 하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정말 저를 주님의 충실한 신도로 여기신다면 제 집에 오셔서 머물러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면서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 한국어 공동번역, {사도행전} 16:9-15

        예수의 "재혼"에 관한 정말 놀라운 증거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이 문단에 대한 티어링의 해석은 이렇다. 바울과 루가/누가 ("우리")가 필립피를 방문할 때, 소아시아 티아티라 출신의 리디아란 여인을 만난다. 티어링이 해독한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티아티라에는 (예수가 훗날 정죄하는) "이세벨"란 여자가 창설한 (헬레니즘식) 여성 종교단체가 있었고 리디아는 그 단체의 여자감독/주교였다는 것. 그 리디아가 이제 바울이 전한 예수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가 이끄는 교단으로 전향했다는 것.

        아무튼 티어링은 여기서 "주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열어"란 구절은 에수와 리디아가 사랑에 빠졌다란 뜻이며, 이때 리디아가 "처녀"였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티어링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와 리디아는 예수가 56세이던 AD 50년 3월 17일 결혼하고, 그 다음해 3월 16일에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사도행전}의 이 본문에 나오는 저 리디아가 그런 인물이었을 것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당시 로마제국에서 드물지 않았던 사업으로 성공한 (중년)여인들 중 하나로 보이는가?

        티어링에 따르면, 이혼남 예수가 리디아와 재혼하는 문제는 예수에 적대적인 동방의 엣세네 분파들의 강렬한 비난을 받았는데,  그들이 따르고 있는 지침인 {다마스쿠스 문서}에서는 "첫번째 아내가 살아있는데 두번째 처를 취하여 간음을 저지른" 이단적 인물의 추종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티어링은 이 문건은 바로 재혼한 예수를 비난하는 것이었다고 풀이한다. (이 문건은 일부다처를 한 다윗을 변호하면서, 다윗은 율법의 봉인된 율법 책의 내용을 읽어보지 않아 그것이 문제인 줄 몰랐다고 주장한다.(12 CD 4:19--5:6)

        티어링은 바울이 비신자인 배우자와의 '이혼'을 '허용'하게 된 사연은 바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버리고 (즉, 배교하고) 젤롯으로 되돌아갔기에, 예수의 이혼을 정당화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한다. 예수를 배반한 막달라 마리아는 배교자이기 때문 하지만, 바울은 이혼까지는 허용했지만 "재혼"까지 허용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 이것이 바바라 티어링이 {사해사본}, {신약성서}, {나그 함마디 문서}, {요세푸스} 등의 자료를 취합해, 소위 "페셔" 기법으로 암호화 된 심층정보를 2천 년만에 풀었다는 내용이다. 티어링은 이 리디아에 대해서는 막달라 마리아와는 달리 자세한 설명을 하지 낳는다. 리디아에 대한 "페셔"단서가 별로 없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티어링의 그 예수는 유대아에서 서진해서 "로마"로 간 후 거기서 약 76세의 나이로 죽는다. 티어링의 예수는 소시적에 인도에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또 십자가에서 소생한 후 정반대 방향인 서북인도 카쉬미르 지방으로 가서 생애를 마친 것 같지도 않다. 심지어 이 예수가 리디아와 "사별"한 후 카쉬미르로 가서 거기서 삼혼했다는 어떤 주장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 예수의 "삼혼" 이야기는 또 어디서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

        지금부터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의 59대 후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어떤 미국 여성작가이자 평화운동가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보자.




        § 예수의 세번째 아내 마르얀?

        수잔 마리 올슨 (Suzanne Marie Olsson)은 {Jesus in Kashmir: the Lost Tomb} 등의 책을 통해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소생한 후 카쉬미르로 가서 그 지역 유대인 공동체의 "왕"이 된 후, 천수를 다하고 여생을 마쳤다는, 19세기 말 인도 발 이슬람 이단인 아마디야 이슬람의 교조 미즈라 굴람 아흐마드 주장을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인도 발 복음서나 아마디야 이슬람의 주장에 대해서는 다른 독립된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올슨은 유사역사가 로렌스 가드너의 1996년도 책인 {Bloodline of the Holy Grail}에 등장하는 "예수 가문의 가계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2002년엔 프랑스의 메로빙거 왕조와 조상이 닿아 있는 자신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의 59대 후손이란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올슨(과 몇몇 유사한 작가)들의 작업은 서북 인도 카쉬미르 지방에 있다는 예수의 무덤 ("로즈 발")이 소재한 스리나가르 출신으로, 카쉬미르 문서자료원 (the Kashmir State Archives)의 감독이자 고고학자였던피다 하스나인 (Fida Hassnain) 의 주장을 기본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스나인은 아마디야 이슬람의 교조 미즈라 굴람 아흐마드의 주장을 서방에 전파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수피 무슬람이기도 하다. 그의 책 가운데, {A Search for the Historical Jesus}와 {The Fifth Gospels: New Evidence from the Tibetan, Sanskrit, Arabic, Persian and Urdu Sources About the Historical Life of Jesus Christ After the Crucifixion}, 그리고 올슨과 공저한 { Roza Bal: The Tomb of Jesus}가 이런 류의 주장을 담은 책들 가운데 비교적 많이 인용되는 책들이다.


        Fida Hassnain & Suzanne Olsson, {Roza Bal: The Tomb of Jesus}

        Suzanne Olsson, {Jesus in Kashmir}

        이 세 권의 책과 올슨의 다른 책 {Jesus in Kashmir: The Lost Tomb} 을 정리해서 이 주장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대략 이 주장들은 미즈라 굴람 아흐마드가 20세기 초반에 펼친 주장들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목영일씨의 책이 수잔 올슨의 책에 기초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래서 설명하겠다.

        올슨의 책 {Jesus in Kashimir: The Lost Tomb}에는 티어링의 소위 "페셔"기법에 대한 올슨의 비판이 등장한다. 왜 올슨이 티어링의 이론에 비판적인지는 잠시 후 설명하겠다.

        Theiring's work is based on some very controversial assumptions about the meanings of certain stories and words that appear in the Bible, the Dead Sea Scrolls, and other documents. The primary problem with this is that the meanings and interpretations are apparent only to her. In interpreting these secret meanings, Theiring and others have come up with the following assumptions - there never was a virgin birth, or a crucifixion, or a resurrection. She believes that these are deliberately manufactured myths that never happened. She also believ es that the Gospel authors, the apostles, knew this, and yet every one went along with the fraud. These views are not accepted by most religious scholars.  -- Suzanne Olsson, {Jesus in Kashimir: The Lost Tomb}

        티어링의 작업은 성서, 사해사본, 및 다른 문서들에 등장하는 서사나 단어의 뜻에 관한 매우 매우 논란많은  가정들에 기초하고 있다. 이 기법의 기본적인 문제는, 그 의미와 해석들이 오직 티어링에게만 그렇다는 점이다. 숨겨진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 티어링과 다른 연구자들은  처녀수태나 십자가형, 부활 같은 것은 없다고 가정한다. 티어링은 이런 것들은 실제로는 없었던 것으로 신중하게 가공된 신화라고 믿는다. 티어링은 복음서의 저자들과 사도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다고 믿으며, 모든 연루자들이 사기극에 참여했다고 믿는다. 이 관점은 거의 모든 종교학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수잔 올슨, {카쉬미르에서의 예수: 사라진 무덤} 제 8장, / 번역: 최광민



        각설하고,

        하스나인은 그의 책 {A Search for the Historical Jesus} 및 올슨과 공저한 {Roza Bal: The Lost Tomb}에서 여러가지 전설을 짜깁기해서 어떻게든 카쉬미르 지역에서 예수를 복원해내려고 한다.

        우선 하스나인은 서북인도 카쉬미르의 지역 역사책 속에 등장하는 프라바라세나 (Pravarasena)의 아내 마르얀 (Marjan)이란 여인을 예수의 아내로 특정한다. 토라만 (Toraman)과 히라냐 (Hiranya)란 두 아들의 어머니로, 이들과 함께 공동통치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미지의 인물 '프라바라세나'가 예수가 될 것이다.

        예수와 동일인이라고 주장하는 프라바라세나는 그럼 누구일까?

        하스나인이 정리한 AD 1세기의 카쉬미르 역사는 AD 1148년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Kings of Kasmira, 카쉬미르의 왕들의 계보}이란 후대 고문서에서 왔다. 이것은 카쉬미르의 역사를 담은 가장 오래된 문건이다.

        하스나인에 따르면, 초기 기독교 전통과 몇몇 그노시스 문헌에서 인도로 선교를 가서 거기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예수의 사도 도마가 인도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시점의 서북인도 탁실라의 왕 곤도파르네스는 자신의 딸을 메가바하나 (meghavahana) 왕과 결혼시켰다. 둘은 삼촌-조카 지간이자 또 장인-사위지간이다. 하스나인은 메가바하나의 아버지인 산디마티 (Sandhimati)를 엣세네파 유대인으로 보며, 메가바나나를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전처 사이에서 낳은 예수의 배다른 형 "야고보"라고 주장한다. 즉, 산디마티가 요셉이다. 메가바하나는 여왕 '마리'와 공동통치한다. 하스나인은 이 '마리'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여긴다.

        하스나인의 정리한 카쉬미르 기록에는 "그는 메가바나의 이름에 따라 마을을 건설했고, 브라만과 사람들이 살게 했으며, 메가마타 (Meghamatha)라 이름지은 수도원을 세웠다"라고 되어 있다. 기록에는 메가바하나 왕이 34년 다스리고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하스나인은 그가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고 훨씬 늙은 모습으로 재등장해 파라바세나 1세로 위장했다고 "가정"한다. 이 파라바라세나 1세는 메가하나나의 아들 (혹은 형제)로 소개된 한 일화가 있고 힌두교의 신 시바가 그에게 도시를 다스리게 했다고 한다.

        하스나인이 묘사하는 파라바라세나 1세는 은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부유한 인도 군주의 전형적인 화려한 복색을 차려입었으며, 모로카 (Moroka) 란 재상을 두고 국정을 수행했다. (올슨은 이 "모로카"를 "마르코/마가"와 중첩시키려고 시도한다.) 그는 서방과 향료무역으로 부를 쌓았다. 이 왕은 AD 59-89 사이에 30년 통치한 후 시바와 함께 승천하여 혜성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즉, 하스나인은 십자가형 이후 소생해서 카쉬미르로 온 예수는 파라바라세나 1세란 이름으로 그 지역의 (엣세네) 유대인 공동체와 지역을 다스린 지역의 군주로 여생을 살았다는 것.



        그럼 예수는 파라바세나 1세라고 치고, 그럼 그의 아내인 "마르얀 (Marjan)"는 또 누군가? 파라바세나의 아내는 "마르얀"라고 불렸는데 이 사람이 곧 "막달라 마리아"란다.

        올슨 (과 하스나인)의 또 다른 "추리"에 따르면, 옛날 옛적에  예루살렘에 야훼의 성전을 건립한 다윗의 아들 솔로몬과 성전을 건축한 히람 아비프는 매 3년 마다 서북인도 카쉬미르를 방문하였단다. 솔로몬과 히람은 라르탄트의 태양신전을 보수하고 재건축했는데, 이 유적은 카쉬미르에서는 타캇트-이-술라이만, 즉 "솔로몬의 옥좌"라고 불렸다(고 한다). 수백 년이 흘러 예수도 그들처럼 마르탄드 근처의 아이쉬-마캄이란 곳에서 몇 해를 살았는데, 그때 카쉬미르 파할감 출신 중 높은 가문의 사제 (나가) 계습 출신인 마르얀이란 처자와 결혼해서 오래오래 살았다(고 올슨은 주장한다). 그리고 올슨은 이 "마르얀"이 또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한다. 올슨에 따르자면 이 마르얀의 아들은 "엘리-킴"이다. 하지만 "마르얀과 그 아들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하스나인/올슨이 주장하는 위의 카쉬미르 솔로몬 성전 층계에 페르시아어로 적혀있(었)다는 문구에는 등장하는 그 기둥을 건립한 인물은 연대가 불분명한 "무르얀의 아들 카자와 루칸"이다. 그럼 또 이 "카자와 루칸"이 "엘리-킴"이란 말인가? (여기서 올슨은 '카자와 루칸'을 '엘리-킴'으로 변형해서 마치 히브리어처럼 들리게 의도적으로 혼동시키고 있다) 근데 왜 ㅇ기록은 또 "후대" 페르시아어일까? 이 내용은 카와자 핫산 말릭이 저술한 카쉬미르 향토지인 {타리크-이-카쉬미르}에 등장한다는데, 이 내용의 진위와 이름과 지명의 정확한 독법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기둥에 새겨져 있었다는 이 문구들는 남아있지 않거나 읽을 수가 없다.

        잠깐, 티어링은 예수가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막달라 마리아(와/에게) 이혼(당)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올슨은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의 조상이어서인지 이런 주장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올슨은 "막달라 마리아가 에수와 이혼했다"는 티어링의 이론이나, 혹은 "임신한 막달라 마리아가 갈리아 (현, 프랑스)로 건너가 '사라' 혹은 '타마르'란 딸을 낳았다는{Bloodline of the Holy Grail}, {Holy Blood - Holy Grail, 성혈과 성배}, {다빈치 코드}류의 주장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왜? 예수가 말년을 보냈다는 인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즉, 하스나인/올슨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이혼한 적도 없고, 필립피에서 리디아와 재혼한 적도 없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혼하고) 프랑스로 간게 아니라, 여자 대제사장과 주교/감독으로서 카쉬미르에 예수와 함께 살았고, 다만 종종 흩어져있는 공동체를 방문하는 차원에서 프랑스를 방문한게 아닐까하는 추측도 내세운다.

        심지어 피다 하스나인은 고대에 토하르인과 소그디니아인들의 거점이었던 인도-중국 접경인 중국 측 타림분지의 고대 실크로드의 도시였던 카쉬가르 (Kashgar)에서 막달라 마리아 (마리, 마르얀)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현지에서 이 무덤은 "Bibi anjeela"로 알려졌다고 하는데, 하스나인은 이 "비비 안질라"의 뜻을  "비비 = 귀부인" + "안질 = 신약성서로 풀어서, 이를 "신약성서의 숙녀"로 풀이하고서는, 임의로 이를 "성서의 숙녀 마리암네/마리아"의 무덤이라고 해석했다. 타당할까? "비비"는 과연 "귀부인" 더 나아가 "마리아"를 뜻하는 것이고, '안질'은 아랍어 '인질/신약성서"를 뜻하는 것일까? 참고로, 우르드어에서 '비비'는 (성적인 의미를 가진) '애인', '첩', '숙녀', '아내', '여왕' 등을 뜻할 수 있고, 아랍어에서는 "어린 아이"란 뜻을 가진다. 뭔가 엇갈리지 않는가? (사실 아들 중앙 아시아 지역은 AD 8세기 이전에는 기독교 이단인 마니교의 주요 거점지였고, 이후에는 이슬람화 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미라들은 남녀 모두 키가 180cm에 근접한 장신들로서 DNA 분석에 따르면 백인종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갑자기 올슨은 막달라 마리아가 아리안계의 신체적 특징 가운데 하나인 붉은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발견되는 인도 마가다 지역 출신의 왕녀가 아니었을까하는 뜬금없는 주장을 펼친다.

        즉, '막달라' 마리아의 그 '막달라'는 고대 인도의 나라/지역명인 '마가다'라는 것!




        § 재혼했다는 것인가? 삼혼했다는 것인가?

        다시 한번 목영일씨의 역사소설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의 목차를 읽어보자.

        추천사, 머리말, 감사의 말씀

        제Ⅰ부 임종의 자리에서
        • 1장 임종을 맞이한 한 노인의 회상
        • 2장 12살의 유월절
        • 3장 소년 예수, 인도 유학길에 오르다
        • 4장 예수는 헤미스 복음서에서 말한다
        제Ⅱ부 예수의 탄생과 결혼
        • 5장 여덟 자녀를 낳은 영원한 처녀
        • 6장 서출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산 예수
        • 7장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세 번째 결혼
        • 8장 야고보, 예수에 가려진 다윗의 적통자
        제Ⅲ부 스승 세례요한을 발판으로
        • 9장 이종육촌형 세례요한의 문하에 들어가다
        • 10장 제자에서 경쟁자로 나서다
        • 11장 예수, 스승 요한을 딛고 서다
        • 12장 12사도 협의회는 잠정적 임시내각이었다
        제Ⅳ부 예수의 처형과 소생
        • 13장 이해 받지 못한 사랑의 전교자 예수
        • 14장 종교범으로 잡혀 정치범으로 처형된 예수
        • 15장 예수는 부활한 것이 아니라 소생한 것이다
        • 16장 예수의 복음서 구술 작업
        제Ⅴ부 예수, 또 다시 동방으로 가다
        • 17장 바울,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를 만나다
        • 18장 예수가 동방으로 간 이유
        • 19장 실크로드를 따라서
        • 20장 유즈 아사프로 다시 태어난 예수
        제Ⅵ부 카슈미르에서
        • 21장 예수, 탁실라에서 도마와 재회하다
        • 22장 카슈미르의 목자 예수
        • 23장 예수의 세 번째 결혼과 후손
        • 24장 예수, 인도 스리나가르에 묻히다

        나는 사실 목영일씨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원 자료를 이미 다 읽었는데, 굳이 그것을 소설화한 책을 다시 읽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한 검증작업은 이 책의 목차와 또 이 책에 열광한 몇몇 독자들이 블로그나 게시판에 올려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역공학 (reverse engineering을 해 본 것이다.이 책에 대한 "추천사"들도 읽어보았는데 (http://www.christiantoday.co.kr/books/view.htm?id=23036). 특별히 정경일, 조남홍, 김인수, 박옥래씨 찬사는 참 어이없기 그지없다.

        각설하고,

        목영일씨가 노토비치, 티어링, 하스나인/올슨의 주장을 그나마도 작위적으로 뒤섞어서 소설을 썼다는 점을 이하기는 어렵지 않다. 정리해 보자.

        • 예수가 청년기에 인도에서 수도했다고 주장한 노토비치의 책은 명백한 위서지만, 그나마도 그 책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기적적으로 소생해서 인도로 갔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 티어링이 2천년 만에 {사해문서}와 {신약성서}의 암호를 풀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에 따르면, 예수는 인도에 가본 적도 없는 친-로마파이자, 첫 부인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혼당하고나서 리디아와 재혼했으며 (리디아의 후일담은 없음), 전처와 후처 사이에서 아들 둘, 딸 둘을 낳은 후 아들과 로마로 이주해서 약 76세 경에 로마에서 사망했다.
        • 하스나인과 올슨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소생해서 서북인도 카쉬미르에 온 후, 카쉬미르 출신의 "마르얀"과 결혼해서 두 아들과 여러 자식을 낳고 그 지역의 군주로 평화롭게 오랫동안 살고 죽는다. 이 '마르얀'이 '막달라 마리아'다. 

        그럼 예수는 과연 결혼했는가? 재혼했는가? 삼혼했는가?

        • 노토비치의 책에 보면, 예수는 성인식을 마치고 집안에서 결혼을 서두르자 홀연히 집을 나가 인도로 가버린다. 유대아로 돌아와서도 결혼했단 내용은 없다. 
        • 티어링의 책에 따르면 예수는 "재혼"남이다. 
        • 하스나인/올슨에 따르면, 예수는 '마르얀'과 결혼했고 (군주이므로) 아마도 첩실들을 더 거느리긴 했을 것이다. 하스나인/올슨은 리디아는 아예 언급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목영일씨의 책은 티어링 이론에서 두 명 (막달라 마리아 + 리디아), 그리고 하스나인/올슨의 '마르얀'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사람으로 가정하여, 총 3명과 결혼한 삼혼남 예수를 만들어낸 듯 싶다.

        민희식씨와 목영일씨의 책들을 극찬하는 블로그 내용들을 보면, 이 두 작가들의 보다 책임감있는 글쓰기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령, 목영일씨의 책을 정리했다는, 다음의 블로그는 (http://blog.naver.com/hjh80bilhelp/140119625588)는 목영일씨의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한다.

        • 예수는 유대인 전통(?)에 따라 세번 결혼했다.
        • 첫부인은 막달라 마리아다. 막달라 마리아와는 이혼했다.
        • 두번째는 리디아다. 리디아와는 사별했다.
        • 세번째는 카쉬미르의 '마리온'이다

        어쩌다 하스나인/올슨의 "마르얀 Marjan (혹은 마르잔)"이 목영일씨 책에선 "마리온"이 된 것인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목영일씨의 마리온 Marjon은 하스나인/올슨의 Marjan 에서 a를 o로 잘못 표기하고, 아울러 j를 i로 잘못 읽어서 탄생한 이름인 듯 싶다.

        아울러 이 블로그는 목영일씨의 책에 나왔다는 예수의 아내 그림들을 둘 제시하고 있다. 이 그림들 때문에 나는 목영일씨가 수잔 올슨의 책을 마지막 두 장의 주요근거로 삼았다고 생각한다.


        # 리디아?

        그 하나는 예수의 두번째 아내라는 "리디아와 딸의 단란한 가정"을 묘사한 것이란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이 벽화는 인도 중서부에 있는 대표적인 불교석굴유적인 아잔타 석굴 벽화 가운데 하나다. 올슨은 {Jesus in Kashmir} 제 10장에서 이 석굴벽화를 언급하면서 이 인물이 "젊은 시절의 예수와 그 가족"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올슨은 같은 책에서 아잔타 석굴에서 발견된 이보다 좀 더 늙어보이는 다른 인물의 벽화를 소개하면서 이 벽화가 "노년기"의 예수와 그 가족에 대한 묘사라고 주장했다. 

        그래? 한번 생각해 보자.

        올슨은 "예수가 리디아와 결혼했다"고 아예 주장하질 않는다. 사실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이혼했다"라고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니 올슨의 주장에 따르면, 저 인물은 리디아가 아니라 마르얀, 즉 막달라 마리아여야 한다. 그런데  "예수가 리디아와 재혼했다"고 생뚱맞게 주장한 티어링의 예수는 아예 평생 인도 근처를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인도 중부에 소재한 불교 유적의 벽화에 그려진 (인물정보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어떤 인물을 뜬금없이 "예수"라고 적시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인물에 대한 전문가의 표준설명은, 이 동굴의 벽화작업을 지원하고 보시한 지역의 유력자에 관한 묘사라는 것이다. 무슨 예수가 등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하스나인/올슨의 예수가 왕노릇했다는 서북 인도 카쉬미르는 아잔타 석굴이 있는 중부인도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니 카쉬미르에서 작은 지역의 군주 노릇하던 예수가 아잔타 석굴 조성을 지원했을 것 같지도 않다. 더 정확히는 아예 예수가 인도에 가서 왕노릇하며 여생을 보냈을 것 같지 않다.




        # 마리온?

        두번째는 "이번에 초상화가 발견되었다는" 예수의 세번째 부인 "마리온"의 초상화로, 이 "초상화를 국내에 들여와 가장 먼저 소개한 책"이 바로 목영일씨의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란 것이다.

        이 그림은 목영일씨의 해당 책 273쪽에 등장하는데,  목영일씨의 책은 이런 설명을 붙이고 있다.


        예수의 부인 마리온:
        마리온은 카슈미르의 왕 아크 Raja Ach의 권유로 얻게 된 부인으로, 막달라 마리아와 리디아에 이은 예수의 세번째 부인이다.  --- 목영일, {예수의 마지막 오디세이} 273쪽

        오!
        맘마!
        미아!

        이 그림을 처음봤을 때 그만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 그림은  목영일씨가 하스나인/올슨의 책 {Roza Bal: The Tomb of Jesus}를 자기 책의 주요 근거로 사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왜냐하면, 이 그림을 소위 "마르얀의 초상화"로 사용한 것은 올슨의 책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올슨은 이 초상화를 이 책의 도판 #56으로 사용하면서, 자기도 그림의 출처를 모르겠다고 책의 미주에 적어 놓았다. (56. Marjan, unable to locate any information about this picture). 즉, 인터넷에서 구한 그림 중 "마르얀" 분위기에 어울리겠다 싶은 그림을 하나 골라 책에 삽입한 것일 뿐이다. (올슨의 책에 그런 도판들이 몇몇 등장한다.)

        게다가 목영일씨의 책은 올슨이 사용한 "Marjan" 이란 철자에서 J를 I로, a를 o로 잘못 읽어 "마리온"이란 이상한 인물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목영일씨는 본인도 어디서 가져온 그림인지 모르겠다고 언급한 올슨의 주석을 놓친 것일까? 하지만 혹시, 정말 누군가가 막달라 마리아 혹은 "마르얀"을 그린 초상화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왜?

        이 그림 속의 여인은,
        프랑스 화가
        William-Adolphe Bouguereau의
        1871년 작품

        {물 긷는 이탈리아 소녀}이기 때문.

        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 - Italian Girl Drawing Water (1871), --- Wikimedia Commons

        맘마!
        미아!


        § 맺음말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최광민




        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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