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 2007, 최광민 (Kwangmin Choi). 2007-03-07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 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예수 vs. 예수 #2: 예수는 언제부터 신이었을까?
(부제: 아리우스가 "정말" 믿었던 것)
요약
아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이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다뤄졌던 AD 325년의 니케아 회의를 중심하여 AD 1세기부터 니케아 회의까지의 기독교 교부들의 입장과, 니케아 회의 이후의 아리우스파 및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을 원전을 통해 살펴보고, 소설 {다빈치 코드}류의 팩션들과 도올의 저작 등을 통해 유포된 니케아 회의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에 대해 논한다.
순서
© 2007, 최광민 (Kwangmin Choi). 2007-03-07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 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예수 vs. 예수 #2: 예수는 언제부터 신이었을까?
(부제: 아리우스가 "정말" 믿었던 것)
요약
아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이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다뤄졌던 AD 325년의 니케아 회의를 중심하여 AD 1세기부터 니케아 회의까지의 기독교 교부들의 입장과, 니케아 회의 이후의 아리우스파 및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을 원전을 통해 살펴보고, 소설 {다빈치 코드}류의 팩션들과 도올의 저작 등을 통해 유포된 니케아 회의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에 대해 논한다.
순서
- 도입
- 속설, 속설들
- {(신약)성서}의 진술
- 나자(조)렌파, 에비온파
- 에큐메니컬 신조들
- 니케아 신조 (AD 325년)
- 콘스탄티노플 신조 (AD 381년)
- 아타나시우스 신조 (AD 500년 경)
- 칼케돈 신조 (AD 451년)
- 니케아 회의 (AD 325년) 이전 200년 간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진술
- 안티오키아 주교/감독 이그나티오스 (AD 35-108)
-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포스 (AD 69-155)
- (로마 주교) 클레멘스 (?- AD 101)
- {바르나바}서 (AD 70-130)
- 비티니아 총독 플리니우스 (AD 111-113년 경)
- 미상 (혹, Mathetes), (AD 130?)
- 아테네의 아리스티데스 (? - AD 133/134)
- 사마리아의 유스티노스 (AD 100-165)
- 아브라함이 만난 세 사람과 두 야훼
- 앗시리아인 타티아노스 (AD 170)
-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 (AD 177)
- 사르디스 주교 멜리톤 (AD 177)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AD 150-215)
- 안티오키아 주교 테오필로스 (? - AD 183/185)
- 루그두눔(리옹) 주교 이레네우스 (? - AD 202)
- 로마 사제 히폴리투스 (? - AD 235)
-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 (AD 160-225)
- {디다스칼리아} AD 230년 경
-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AD 184/185 - 253/254)
- 로마 사제 노바티아누스 (AD 200-258)
- 카르타고 주교 키프리아누스 (AD 200-258)
- {팔레스티나-카이사리아 신조} (AD 250? - )
- 니케아 회의 직전 안티오키아 회의 (AD 325)
- 아리우스파와 준-아리우스파의 신조들
- 아리우스 본인의 주장
- 제 1- 10차 범-아리우스파 계열 신조들
- 안키라 주교 마르켈루스
- 울필라스의 신조
- 맺음말
이 글들과 함께 읽길 권한다
-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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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한 그리스도 (= 크리스토스 판토크라토르 Χριστὸς Παντοκράτωρ)
Constantinople, about mid-6th century
Monastery of St. Catherine on Mt. Sinai, Egypt
Constantinople, about mid-6th century
Monastery of St. Catherine on Mt. Sinai, Egypt
§ 도입
기독교의 전통적 성직의 직제명은 그리스어로 ἐπίσκοπος (= 에피스코포스, bishop / 주교 / 감독), πρεσβύτερος 프레스뷔테로스, priest = presbyter / elder / 사제 / 장로~목사), διάκονος (= 디아코노스, deacon / 부제 (보제) / (안수)집사)이다. 로마카톨릭+정교회+성공회에 대응하는 성직의 한국어 표기로는 주교/사제/부제를, 그 외의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경우는 감독/장로(~목사)/집사를 사용한다.
사실 한국어 '주교-사제-부제'란 용어는 AD 1-2세기의 맥락에서의 성직의 본래적 의미를 정확히 반영하기에 곤란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어 원래 의미에서, '주교'란 '감독자 ἐπίσκοπος', '사제'란 '장로 πρεσβύτερος', '부제'란 '보조자 διάκονος' 를 뜻하기 때문에, 원어 뜻을 충실히 반영한 프로테스탄트 측의 용어가 AD 1-2세기 상황에서의 직제를 이해하는데 더 적절하다. 아울러 '주교'란 용어가 '사제/장로'들의 감독자이자 상급자로서 배타적으로 널리 굳어진 때는 AD 2세기 초/중반 이후부터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론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기독교를 다루는 이 글에서는 관례 상 "주교", "사제", "부제"로 통일한다. 인명에 있어서는 라틴명과 그리스어명 가운데 가급적 해당 인물들의 주요 활동 지역의 언어에 따른 이름을 따르되, 라틴명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들에 대해서는 라틴어식 표기를 따르겠다.
아울러, AD 325년 니케아 회의의 결의사항을 교리로 받아들이는 그룹 - 즉, 현재 정교회, 로마카톨릭 (및 프로테스탄트 제파) 뿐 아니라 꼽트교회 (및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등 단성론파 제파) 및 양성론파인 동방의 네스토리우스파 (앗시리아 / 동방)교회 등의 뿌리가 되는 그룹은 "원-카톨릭" 혹은 "동일본질파"로 통일한다. 여기서 "카톨릭"이란 "보편"이란 뜻의 그리스어 "카톨리코스 καθολικός"에서 유래한 용어로, AD 110년 경 예수의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시리아 안티오키아 주교 이그나티오스가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처음 사용한 "카톨리케 에클레시아 η καθολική εκκλησία = 보편교회"가 알려져 있는 그 첫 용례이다.
예수의 제자 요한의 제자였던 안티오키아 주교/감독 이그나티오스 ( AD 35-98 혹은 50 117)가 AD 110년 경 (혹은 이전)에 트랄리아 사람들에게 적어보낸 편지의 내용을 통해, 기독교가 시작된 후 약 70년이 경과한 AD 100년 경 무렵의 '보편교리'가 무엇인지 대략 정리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보편교리'란 AD 2세기 말의 리그두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나 혹은 AD 450년 갈리아 레렝의 수도사 빈켄티우스의 훌륭한 정의처럼 "어디서나, 언제나, 누구나 믿는 교리들 Quod ubique quod sempre quod ab omnibus creditum est"을 뜻한다. 물론 니케아 및 칼케돈 신조에 기초한 정교회, 로마카톨릭교회, 프로테스탄트 제 교단들 뿐 아니라, 니케아 신조는 수용하나 칼케돈 신조는 거부하는 단성파 꼽트교회나 양성파 칼데아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들도 자신들이 진짜 '카톨릭 (=보편) 교회'라 주장할 것이니, 현실적 적용은 그리 단순치 않다. 이 글에서 다룰 아리우스파 역시 자신들을 '보편적 (=카톨릭)이고, 사도적인 교회'로 불렀다.
바울이 에페소스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이 '하나'란 개념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가 잘 드러나 있다.
왜 '다양한 교리'가 아닌 '보편교회'와 '보편교리'가 기독교의 정통성에 있어서 중요한지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은, '온갖 현란하고 다양한 교리들'을 자랑하던 그노시스 제파를 향한 시리아 혹은 소아시아 출신의 AD 2세기 중/후반의 교부이자 예수의 제자 요한 폴리카포스를 친견했던 루그두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 (?-AD 202)의 강렬한 비판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레네우스가 그의 저작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제 1권 10장 1절에 요약한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인용해 보자.
니케아 회의의 결의사항인 '성부-성자 동일본질'을 반박한 모든 유형의 그룹은 통칭 "범-아리우스파"로, "동일본질"이 아닌 "유사본질" 혹은 "유사존재"로 우회한 그룹들은 "준-아리우스파" (="유사본질파"+"유사파")로, 아리우스의 원래 가르침에 충실했던 그룹은 "원조-아리우스파" 및 "이질본질파"로 통일한다.
'삼위일체' 교리 자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 속설, 속설들
철학자 김용옥씨는 (이하, 도올)은 최근 2007년 3월 4일 은혜공동체 교회의 초청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한 것으로 한겨레신문은 보도했다.
물론 도올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며, 일반인이 얕은 지식을 가지고 그에게 맞서는 것은 그의 말처럼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닐지도.
'박학'보다는 '정확'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으니까.
도올은 종종 디테일에서 실수를 하곤 한다. 가령, 그는 노무현 정부 초창기 탄핵정국을 두고 문화일보에 기고하려다가 거부당한 글 {도올고성#6 -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 속에서 에라스무스가 도끼로 참수형 당했다고 쓴 적도 있다. 그러나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에 발을 걸쳐두었던 에라스무스는 자기 침대에서 (편하게) 임종했으며, 도올의 글에서처럼 "도끼"에 목이 날아간 사람은 에라스무스가 아니라 그의 지인인 토마스 모어였다.
인용한다.
참고로 조금만 더 따져본다면, 헨리 8세의 두번째 처인 "천일의 앤" 볼레인은 "도끼"가 아니라 (앤 볼레인이 자랐던 프랑스식 관례에 따라) "사형용 장검"로 참수되었다.도끼로 처형된 것은 그의 다섯번째 처인 캐서린 하워드다. 조선 말 동학의 창건자들인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 역시 도끼가 아닌 (망나니의) 칼 (月刀)로 참수되었다.
기고가 거부된 도올의 이 칼럼은 대신 인터넷 매체를 통해 퍼져나갔는데, 이 '도끼날에 목이 달아난 에라스무스' 이야기에 딴지를 거는 사람이 신기하게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디테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글의 본 취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으며, 사실 도올의 에라스무스 이야기는 디테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경우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디테일은 본체를 규정하기도 하고 본체를 붕괴시키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리우스 논쟁에 있어서 위의 디테일은 사실상 본체를 이해하는데 아주 핵심적인 요소이며, 따라서 틀려서는 안된다.
도올이 최근에 펴낸 {기독교 성서의 이해}라는 책에서는 (역시 한겨레신문의 보도) 이렇게 주장한 모양이다.
이 다소 '식상한' 이야기는 그다지 디테일에 충실하지 않은 대중적인 저작 속에 즐겨 반복되는 이야기다. 가령 {다빈치 코드}의 한 단락 (영문판 p.233) 을 보자. 소설 속에서 티빙은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논점은 붉은 색으로 강조했다. (번역: 최광민)
정말?
예수의 수난/부활을 기점으로 기독교가 시작된 AD 33년 경 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AD 325년의 니케아 회의까지의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는 (1) 그저 "위대한 한 인간"으로만 여겨졌을까? 예수는 니케아 회의에서야 (2) 비로소 신의 지위를 "인정"받았을까? 니케아에 모인 주교들은 (3) "박빙"의 (4) "투표"를 했을까? 니케아 회의의 결의문에 반대한 측은 예수를 (5) "그저 인간"으로 믿었기 때문에 반대한 것일까?
{다빈치 코드}의 이 한 문단은 위에 열거한 5가지 항목 모든 부분에서 사료 및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 특별히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상식' 혹은 더 나아가 '사실'로 알고, 또 아리우스 본인의 가르침이나, 그의 추종자들의 가르침이나, 혹은 니케아 회의의 배경과 결론에 대해 전혀 엉뚱한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왜? 이런 저런 책들은 읽어보았을지 몰라도 원전을 그 문맥과 비교해가며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상식'이 늘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도올의 이런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굳이 도올처럼 대만국립대학과 하바드 대학에서 "동양철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할 필요는 없으며, 아울러 목사/신부들처럼 신학교에서 신학학위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저 역사에 약간의 흥미를 가지고, 당시의 정황을 담은 AD 4세기와 5세기의 1차사료(원전) 너댓 권 속에 묘사된 길지 않은 몇 장을 읽어보면 된다. 사실 아리우스 본인의 짧은 편지 하나를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반박은 충분하다.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면,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고 말한 적이 전혀 없으며, 예수가 '신의 아들'이자 또한 '신'이란 위상 수립이 니케아 회의에서 비로소 처음 제기되거나 확립된 것도 아니다. 만약 도올이나 댄 브라운이 아리우스 앞에서 저런 소리를 했다면 오히려 아리우스는 왜 자신을 '에비온파 이단자'로 모느냐면서 불같이 성을 냈을 것이다. 아울러 니케아 회의에 초대된 주교 중에 에비온파는 하나도 없었다. 초청이 되지 않았으니 니케아에서 투표를 했을 리도 없다. 에비온파는 국지적 그룹으로서 그 영향력은 아리우스파에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작았다.
흔히 아리우스의 신관과 현대 여호와의 증인의 신관이 같다고들 오해하는데, 사실 이 둘은 상당히 다르다. 물론 여호와의 증인의 신학은 아리우스의 그리스도론처럼 성자를 성부의 "첫 창조물"이자 일종의 최고의 천사로 보기는 하지만, 아리우스와 준-아리우스파의 신학에서 성자의 탄생 (혹은 창조)는 이 세상의 창조 전에 일어난 일이며, 따라서 '이 세상의 창조'와 같은 등급의 '창조'에 속하지 않는다. 만약, 여기서의 '창조'를 이 세상의 창조에 국한한다면, 심지어 아리우스파의 주장에서도 성자는 (천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 중 하나에 속하지 않는다. 아리우스파 역시 성부는 성자를 통해서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령을 성부의 비의지적 활동력의 의인화된 표현으로 간주하는 여호와의 증인과는 달리, 아리우스파는 성령을 성부 및 성자와 독립된 실재적인 존재와 위격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의 신관 및 그리스도관은 다만 피상적으로만 아리우스파의 신학과 유사할 뿐이며, 아리우스파와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에서도 이단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럼 기독교 교리의 가장 근간이 되는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 {(신약)성서}의 진술
학술적으로 엄정하지 않는 저작물들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속설들 가운데, 종종 '삼위일체'에 대한 담론이 기독교 역사에서 AD 3세기 이후나 되어야 서서히 등장했다는 주장들을 보게 되는데, 사실 현존하는 문헌과 자료를 기초로 판단하게 될 때 그렇게 보긴 힘들다.
AD 2세기 이후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까지 언급하지 않고 그저 AD 1세기 말에 이미 완결된 히브리 성서 (={구약성서})와 AD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반까지 보편교회에서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후에 완결된 총 27권 가운데) 대략 20 여권의 {신약성서} 문서들만 고려하더라도, 초기 기독교는 이미 (후대의 정밀한 정의까지는 아니지만) 성부-성자-성령이란 세 존재를 (천사를 포함한) 피조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성부는 유대교에서 유일신으로 부르는 그 존재임에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성자 (=예수)와 성령은 또 누구/무엇이며, 이 둘과 성부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성자와 성령의 관계는 또 무엇인가? 이 질문은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되는 아주 초창기부터 반드시 답해야 하는 결정적인 질문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세 존재에 대한 사유는 기독교 역사 아주 초기에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것은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바이다.
성부-성자-성령의 관계, 즉 후대에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란 용어로 고정될 개념을 '증명'하기 위해 기독교가 인용해 온 {구약성서}의 구절들은 일단 배제하고, 그저 AD 2세기 중반 무렵까지 '보편교회'가 정경으로 명시하고 있던 {신약성서} 문서군들에서 추출할 수 있는 성부-성자-성령의 관계들에 관한 단서들만 무작위로 한번 나열해 보자.
기독교 교부들은 {성서}에서 추출된 이런 단서들에 우선적으로 근거해 자신들의 신관을 정립했다. 그래서 여러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철학적 사유가 그리스 철학의 용어와 개념에서 많은 것을 빌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신관 그 자체는 {성서}에 등장하는 단서들에 뿌리를 두어야 했고, 이에 기초하지 않은 사유들은 (보편교회) 교부들에 의해 이단으로 배척되게 된다. 즉, 기독교 신학과 사유의 근거가 "성서의 구절"에서 비롯해야 하고 또 그것에 의해 입증되어야 하며, 또 그것을 넘어서서는 않된다는 관점은 '보편교회'의 기본 이념이었다. 이 허용치를 넘어서게 될 때의 위험성은 AD 1세기 말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그노시스 계열 이단들이나 AD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신학자 오리게네스 본인이 스스로 보여주었다.
흡사 훗날의 프로테스탄트들의 성서관인 "솔라 스크립투라 / SOLA SCRIPTURA / 오직 성서로" 처럼 들리는 이 관점을 AD 2/3세기의 로마 사제 히폴리투스는 소아시아에서 양태론을 주창했던 스미르나 사제 노에투스의 그리스도론을 반박하면서 {노에투스 반박}에서 성부-성자-삼위의 구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노에투스 식의 양태론은 엄격한 일신론의 형식을 취하며, 유일한 신 (성부)가 자신이 인간 예수 안에 성자로서 머물고 활동했으며 다만 그 양태를 달리했다는 설명이다.
몇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신약성서} 속의 문서군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바울의 편지들이다.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믿어온 것처럼 바울이 이들 편지들의 진짜 저자라면 이들 편지는 그가 처형당한 AD 67년 이전에 작성되었어야 한다. 이것은 예수의 처형으로부터 한 세대 안에 이들 문서가 작성되고 열람되었다는 뜻이다. 이 문서들이 바울의 진품이 아니라 "바울계 기독교"의 내부문서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조차 이 문서군의 저술시점을 늦춰잡아도 AD 80년 경 까지로 잡는다.
소아시아 지역의 콜로사이인들에게 보낸 {골로새서}는 AD 50년대, 저자가 확정되지 않은 (아마도 유대인들의 대상으로 하는) {히브리서}의 경우는 보다 논쟁적이긴 하지만, (로마 주교 클레멘스의 저작이라보고) 늦춰 잡아도 역시 AD 100년 이전에 작성/회람되었다고 본다.
그럼 기독교가 시작되고 한 세대 혹은 1.5 세대 안에 회람된 문서들에서 예수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AD 52-62년 사이 필리피 (=빌립보)의 기독교인들에게 보낸 친서로 공히 인정되는 바울의 편지에서는 인간으로 오기 전과 부활 이후의 예수 (=성자)는 이렇게 묘사된다.
이 편지 속에 묘사된 예수는 "그저 인간"인가?
이들 문서에 따르면 인간 예수가 되기 전의 성자는 성부의 형체/본체/형상으로 성부와 더불어 "세상의 창조자"였을 뿐 아니라, 세상이 바로 "그를 위해" 창조되었다. 여기 어디로부터 "예수는 한 명의 인간이었을 뿐"이란 주장이 유도될 수 있을까? 뒤에 설명하겠지만, 아리우스파 주교들 역시 예수를 "세상의 창조자"이자 심지어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장면에 등장하는) 또 다른 "야훼"로 믿었다.
한편, {요한복음서} 1장 18절은 사본에 따라 인간이 되기 전의 예수/성자/로고스를 "μονογενὴς θεὸς / 모노게네스 테오스 / 독생하신 (~유일한) 신", 혹은 "ὁ μονογενὴς υἱός / 호 모노게네스 휘오스 / 독생하신 아들)로 적혀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대 사본들은 '신 / θεὸς'과 '아들/성자 / υἱός'을 표기하는 경우 성서에 등장하는 거룩한 이름/명사 (=nomina sacra)의 표기관례에 따라 θεὸς/신은 ΘΣ, υἱός'/성자/아들은 ΥΣ로 표기하는데, 이럴 경우 단 한 글자만 차이가 나기 때문에 후대의 필사자들이 필사오류를 범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대체로 어려운 독법이 원전에 있는 경우 쉽게 읽히도록 렌더링했을 것이란 가정을 취하는 사본학자들은 해당 본문에서 θεὸς로 읽는 독법이 더 어렵기 때문에 이 독법이 더 원전을 반영한다고 여기며, 사본적인 증거도 부분적으로 이를 지지한다. 모노게네스 테오스"가 일반적으로 더 오래된 (알렉산드리아 계열) 사본에 등장한다 이럴 경우 독법은 아래와 같이 된다.
이 복음서 속에 묘사된 로고스/성자가 육화한 예수는 "그저 인간"인가? 그럼 같은 저자가 진술하고 있는 그 첫 세 절을 읽어보자.
그리스어 원문을 문자적으로 (영어식 관사를 사용해) 직역하면 아래와 같이 번역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로고스'인 성자/예수는 성부와 구별되는 존재이다. 그런 로고스와 또한 '신'이라면 무슨 의미일까? 혹자 (가령, 여호와의 증인)는 여기서 '성자'인 '그 로고스'는 '한 신, a god'이지 '그 신, the God' - 즉, 유대교의 유일자로서의 신 - 이 아니라고 풀이할 것이다. 즉, 예수는 '로고스'이고 '한 신' 혹은 '신적 존재'이지만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유일신 야훼는 아니란 것이다.
물론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70인역}의 대부분 용례에서 신 (θεὸς)이 야훼에게 적용될 때 정관사가 붙은 ὁ θεὸς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약성서}의 그리스어에서 신 (θεὸς) 앞에 정관사가 붙었다고 해서 (즉, ὁ θεὸς) 이 "신"이 자동적으로 유대교의 유일신 야훼을 말하거나, 혹은 기독교의 성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이 코린트인들에게 보낸 두번째 서한의 한 구절에서는 앞에서는"사탄"이 ὁ θεὸς로 등장하고, 성부인 신이 역시 뒤에서 ὁ θεὸς의 소유격 형태 τοῦ θεοῦ 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 한 문장 안에 ὁ θεὸς는 사탄을 말하기도 하고, 성부를 말하기도 한다. 아울러 관사없는 θεὸς가 '성부'나 (유대교/기독교의) "신"을 뜻하는 경우도 많이 발견된다. 그래서 사용된 용례와 문맥이 중요하다. {요한의 복음서} 1:1절에 등장하는 ὁ θεὸς나 θεὸς 모두 문맥상 사탄이나 천사일 가능성은 제외된다.
읽어보자.
한편, 메시아의 출현에 관한 가장 많은 예언이 집결된 구약성서 {이사야} 9:6절은 기독교도들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메시아 예수의 예언으로 간주해 온 구절이다. 이 구절에서 이 메시아는 히브리어 사본들에서는 (다양한 독법이 가능한) Pele-joez-el-gibbor-Abi-ad-sar-shalom로 불리는데, 이 중 하나인 "엘-기보르 אֵ֣ל גִּבּ֔וֹר"는 "능력있는/강한 신"으로 주로 읽힌다.
우선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과 이를 현대 영어로 번역한 번역본을 읽어본다.
혹은 히브리어 성서의 아람어 평역 가운데 예언서들을 포함하는 요나단 벤 우찌엘의 {이사야 탈굼}을 살펴보자 (http://cal1.cn.huc.edu/). 랍비 전통 (미쉬나)에 따르면, (바울이 사사했던 랍비 가말리엘의 조부인) 랍비 힐렐을 사사한 랍비 요나단은 AD 10년 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망했다. 그렇다면 이 "한 아이"를 미래에 도래할 "메시아"로 보는 해석은 기독교가 시작되기 최소한 한 세대 전 (최소한 힐렐 계통의) 유대교 바리사이 (바리새)파에 의해 수용된 해석이란 뜻이 된다.
이번에는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어 번역인 서력 기원 전의 {LXX, 70인역}과, AD 2-4세기에 유통되던 아퀼라 등에 의한 새로운 그리스어 번역들에서 인용한다. 이 구절의 그리스어 버전은 AD 4세기 무렵까지 다양한 독법과 변화형이 있었던 듯 하다. AD 4세기의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의 설명에 따라 '엘-기보르'를 전후한 그리스어 번역본의 차이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그럼 유세비우스의 진술을 직접 읽어보자.
다음으로는 AD 4/5세기에 활동한 히에로니무스가 그리스어 번역을 중역하지 않고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한 라틴어 {불가타}와 다양한 영어 (및 한국어) 번역으로 내용을 읽어보자.
아마도 예수의 "신성"에 대한 {신약성서}의 가장 흥미로운 자료는 {요한의 계시록}에 등장하는 일련의 표현인 "알파와 오메가" 혹은 "처음이자 끝"일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이 표현은 성부 및 성자(=예수)에게만 적용된다.
"알파와 오메가" 혹은 "처음이자 나중"....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표현이 아닌가? 이 표현들은 구약성서 {이사야}에서 야훼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장면과 동일하다. 그리스어 {70인역 LXX}에서는 "끝/마지막"에 해당하는 단어가 조금씩 다르게 선택되었지만, 히브리어 원전에서는 모두 같은 단어 (אחרן אחרין)로 통일되어 있다.
기독교 초기 교부들 (가령, 히폴리투스)은 이 기록을 예수의 신성에 대한 증거로 사용했다. 이들 구절에서 예수는 무려 "전능자 ὁ παντοκράτωρ"이기 때문이다. (히폴리투스의 이해와 달리, 평이하게 읽는다면 이 구절의 "전능자"는 성부로 보는게 더 타당할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사본의 차이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가령, 비잔틴 다수사본에서 해당구절은 "Ἐγώ εἰμι τὸ Α καὶ τὸ Ω ἀρχὴ καὶ τέλος, λέγει ὁ κύριος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ὁ παντοκράτωρ"이며 여기서 화자는 예수/그리스도로도 이해될 수 있는 "주님 ὁ κύριος"이다. 반면, 현대 사본학의 편집사본인 {네슬레-알란드} 27판 (NA27)에서는 "Ἐγώ εἰμι τὸ ἄλφα καὶ τὸ ὦ, λέγει κύριος ὁ θεός,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ὁ παντοκράτωρ", 즉 화자가 대체로 성부를 뜻하는 "주 하느님 κύριος ὁ θεός"으로 되어 있기 때문. 아무튼 히폴리투스가 사용한 그리스어 사본에서는 비잔틴 다수사본에서 처럼 화자가 "주님"이며, 따라서 히폴리투스는 이 화자를 '예수'로 이해했다.
이들 문서를 신앙의 기조로 받아들인 AD 1세기 중/후반~2세기의 기독교도들이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믿었다고 보긴 힘들지 않을까?
§ 나자(조)렌파, 에비온파
AD 2세기 중반의 유스티노스는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에서 AD 1세기 중반부터 존재해 온 유대교적 기독교도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의 구원문제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유대인 랍비 트리폰 (Τρύφων)에게 피력한다.
그러나 여기 등장하는 "모세율법을 따르면서도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 유대인 (+이방인) 기독교도들을 뒤에 언급할 나조렌파나 에비온파로 볼 수는 없다. 여기서 유스티노스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할 때의 의미는 '보편교회'가 믿던 것과 동일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의 창조자로서의 성자의 선재성, 성령에 의한 신의 아들 (성자) 예수의 처녀수태, 육체적 탄생, 수난,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을 포함한다.
이 글에서는 원래의 "유대교적 기독교"에서 분파해 나온 최소한 두 개의 그룹에 대해서만 설명하겠다. 그 이유는 유대교적 기독교 (이단)종파로 분류되는 나조렌파 (Nazoraean / ἡ τῶν Ναζωραίων αἵρεσι)나 거기서 다시 분파된 에비온파가 "예수를 그저 위대한 인간이자 스승으로 여겼다"고 말하는 대중적인 저작들을 종종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주장들은 원래 기독교는 (1) 예수를 예언자이자 신의 종으로 믿었지만, (2) 후대로 가면서 이교의 영향으로 예수를 점차 신격화하기 시작했다는 두가지 가정 하에, 이들 나자렌이나 에비온파가 보다 원초적인 기독교였다고 주장하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른 바 정통파와 시대적으로 나란히 존재했던 그룹이지, 이들로부터 정통파가 나온 것이 아니다.
역사적 자료에 근거해서 이들의 역사를 재구성해 보자.
교부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통칭 "나조렌파/나자렌파" 혹은 "에비온파"로 불리는 이들 그룹은 종종 그 구분이 모호해서, AD 2-5세기 동안 시대와 장소에 따라 한 이름 아래 여러 분파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유대아-사마리아 지역의 유대인 기독교 공동체에서 분파된 것으로 보이는 나조렌파는 할례나 안식일 규정같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독교도였고 마리아가 성령을 통해 예수를 잉태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최소한 몇몇 그룹은) 예수가 탄생하기 전에 "신의 로고스"로 선재했다고는 믿지 않았던 듯 싶다.
AD 4세기 교부 에피파니우스의 설명에 따르면, 나자렌파의 1세대는 사도들에 의해 개종한 유대인들 가운데 특별히 AD 70년 경의 예루살렘 멸망 전 예루살렘 북부인 펠라와 페레아로 이주한 그룹들의 후예들로, 나중에 베레아와 바샨티스에 정착하게 된 국지적 그룹이었다.
시리아 혹은 소아시아 출신으로 AD 2세기 중/후반기에 활동한 루그두눔 (=현,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는 아래와 같이 에비온파를 정의한다.
따라서 이들 에비온파의 신관은 (1) 물질은 저급한 것이며 (2) 물질세상의 창조자는 신 자신이 아니라 열등한 아르콘의 하나였다고 본 통상적인 그노시스들의 교리와는 차이가 있다.
AD 235년 경에 순교한 라틴교부 히폴리투스는 아래와 같이 에비온파를 설명한다.
AD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반까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활동한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On the Flesh of Christ.}에서 그리스도를 "천사"로 보는 견해를 정죄하면서, 특별히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이었으나 그 안에 천사가 임재한 것으로 본 에비온의 견해를 강하게 비난한다.
여기 등장한 에비온의 주장은 히브리 성서의 예언서 {즈카리아 / 스가랴} 1장 9절에서 왔다.
이 구절을 그리스어 {70인역 LXX}에서 1:1로 직역하면 예언자 즈카리아에게 말하는 천사 (히브리어 '말라크 מלאך', 그리스어 '앙겔로스')는 그 "안 (ἐν, in)에서 말하는 것처럼 번역될 수도 있다. 그러나 ἐν은 문맥에 따라 ~안에서 뿐 아니라 ~근처에서, ~곁에서로도 번역될 수 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설령 에비온의 독법이 맞다고 해도) 예언자들과 예수는 그 화법 자체가 다르다며 에비온을 반박한다. 즉, (통상적인 영적존재인) 천사들과 예언자 그리고 그리스도 모두 '신의 말을 전하기 위해 보내진 자'란 점에서는 모두 말라크 = 앙겔로스 , 즉 "천사"라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천사들과 예언자들은 '신의 말을 받아서 전달하는 단순한 전달자'이지만, 예수는 '그 자신의 권위로서 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그 본인이 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성부의 말을 전한다'는 점에서는 '천사'로 불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자신이 신이기에 자신의 권위로 말한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성자의 낮아짐'이란 점에서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 되어야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권위에 있어서는 여전히 신이었음을 설명한다. 아울러 그는 구약성서 예언서들의 화자로 등장하는 "주님", 즉 히브리어 "야훼"이자 그리스어 완곡용례로 "퀴리오스 (주님)"을 예수에게 직접 적용시켰다.
한편, AD 4세기 초반의 카리사이아 주교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에 에비온파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는 교리체계가 다소 다른 두 부류의 "에비온파"에 대해 언급한다.
팔레스티나 출신의 AD 4세기 중후반 교부 에피파니우스는 그의 역작 {파나리온}에서 이들 나조렌파가 모든 면에서 유대인과 같고 다만 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다는 점에서만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 나조렌파가 히브리 성서에 아울러 신약성서도 수용하는데, 다만 그들이 가진 히브리/아람어 {마태 복음서}이 예수의 족보 부분을 포함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진술한다. 그가 이 자료를 확보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나조렌과 에비온파의 지도급 인사를 개인적으로 알았던 에피파니우스는 (최소한 당시의) 나조렌파와 에비온파를 분명히 구분해서 진술했다.
예수의 제자 요한이 생존했던 시절에 사마리아 출신 에비온이란 인물에 의해 나자렌파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지는 에비온파는 여러가지면에서 나자렌파보다 이탈적이다. 에피파니우스의 자세한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1) 요셉을 예수의 생물학적 생부로 보았고 (즉, 요셉과 마리아의 정상적 육체관계로 인해 출생한 것으로 보았고) 결과적으로 이 예수는 인간-예수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2) 예수가 30살 무렵에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을때 천상에서 신의 첫 창조물이자 모든 천사들을 지배하는 "그리스도"가 요셉/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예수" 위에 강림하여 이제 이 "인간-예수"가 '그리스도-예수'가 된 것으로 이해했다.
에비온파는 나자렌파처럼 모세율법을 준수하기는 했지만, {구약성서} 전체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사야, 다니엘 등의 예언자들 및 일부 족장과 다윗/솔로몬 등을 무시했으며, {신약성서}에서는 자신들 버전의 {마태/히브리 복음서}를 사용하고 바울의 서신들을 배척했다 에비온파는 바울이 유대인 벤야민 부족이 아니라 부모 모두 그리스인이며, 유대교로 개종하고 대제사장의 사위가 되려했으나 청혼이 거절당하지 앙심을 품고 기독교도로 변절한 자라고 가르쳤다.) 에비온파는 나자렌파에 비해 상당히 그노시스적인 교리를 구비하고 있었다.
에피파니우스의 기록을 읽어보자.
에피파니우스와 거의 동시대인으로 팔레스티나에서 활동했던 히에로니무스는 히포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역시 에비온파에 대해 언급한다. 에비온파와 나조렌파에 대한 히에로니무스의 구분은 여기서 에피파니우스의 현격한 구분과는 다소 다르다.
히에로니무스는 {이사야서 주석}에서 나자렌파를 비판하면서 그들의 {히브리 복음서}를 인용한다. 읽어보자.
따라서 소위 "유대교적 기독교도"인 나자렌파와 에비온파 가운데 그나마 예수를 "인간"으로 본 에비온파라 해도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한 30세 무렵부터 십자가형이 있던 기간 동안의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케린토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에비온파에 따르면 이때의 예수는 "천상의 그리스도"가 "인간-예수"와 합체한 "그리스도-예수"였기 때문이다. 또한 "나조렌파가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여겼다"란 진술도 사실은 틀린 것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성령에 의한 예수의 잉태를 믿었기 때문이다.
AD 4세기의 예루살렘 주교 키릴로스 (AD 313-386)가 반박목적으로 인용한 위경 {히브리 복음서}에는 성모 마리아가 사실은 "천사장 미카엘"이었고, 예수가 천상에서 내려올 때 그 미카엘/마리아에게 임신되어 7달 만에 출생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카엘은 천사이기에, 최소한 이 위경문서 속의 마리아는 (신적 기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천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가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설명이 곧 예수의 "선재성"이나 "신성"에 대한 "증명"은 아닐 것이다. 가령, 예수를 한 인간으로만 여길 뿐 신성을 부여하지 않는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 속의 이사/예수 역시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암/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이슬람교는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아무튼 기독교 역사에서 일찌감치 이단으로 배제된 이들 나자렌~에비온파는 이후 AD 4세기의 삼위일체 논쟁과는 전혀 상관없게 된다. 왜? 이들은 정통파 뿐 아니라 이미 아리우스파의 입장에서도 치명적인 이단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논증에 앞서, 우선 역사적 기독교가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어떻게 믿었는지에 대해 먼저 분명히 정리해 두어야 한다. 이 믿음들은 일련의 신조로 작성되었으며, 현대의 '정통파' 기독교에서도 공히 근본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에큐메니컬 신조들
앞에서 설명한 바대로, 니케아 회의보다 두세기 앞서 이미 이단으로 정죄된 나조렌파와 에비온파는 당연히 니케아 회의에 초대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는 인간인가? 신인가? 혹은 신이된 인간인가?' 라는 사안은 니케아 회의에서 논의된 사안조차 아니었다.
왜? 예수는 아리우스파에게 있어서도 이미 진실한 "신" (θεὸν ἐκ θεοῦ, God of God)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냥 신이 아니라, 태초에 성부와 함께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였다. 예수가 세상의 '창조자'이며 또한 '신'이란 교리는 이 니케아 회의가 개최되기 전 이미 200여 년 전부터 이미 교부들에 의해 확립되어 있었고, 이들 교부들의 가르침은 반-아리우스파 뿐 아니라 이미 친-아리우스파 혹은 범-아리우스파 주교들 사이에서 공히 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물론 니케아 회의가 소집된 이유이기도 한 사제 아리우스도 예수를 신으로 믿었다. 따라서 예수가 '신의 아들'이며, 성부와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인 '신'이란 것은 니케아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미 "정설"이었다.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가 어떻게 그저 '인간일 뿐'일 수 있겠는가?
니케아 회의에 모인 양 파의 주교들과 사제들이 이미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예수의 지위는, 최대치로는 성부와 "동일본질"이거나 (=삼위일체파), 혹은 최소치로는 성부보다 열등한 본질을 가진 '두번째 등급의 신' (=아리우스파)이라는 것었다. 이것이 니케아 회의에 참가한 다양한 그룹이 가진 신학적 스펙트럼이다. 성부와 성자(로고스) 간의 Homoousios (동일본질)을 지지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Athanasius)파와 삼위일체 개념을 거부하고 heteroousion (이질본질)을 주장하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리우스(Arius)를 지지하는 두 파가 갈려 논쟁을 벌이다 삼위일체 (정확히는 성부-성자의 동일본질)를 정통교리로 결론을 내리게 된 회의, 이것이 바로 니케아 회의다.
따라서 니케아 회의의 핵심논쟁은 "예수/성자가 신이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는 그 본질에 있어 서로 어떤 관계인가?"에 초점 맞춰진 것이다. 혹은 "성자/예수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 신인가?" 아니면 '성부와는 다른 (낮은) 본질을 가진 조금 다른 신인가?"가 니케아 회의의 주제가 된 논쟁점이다.
아리우스 논쟁과 네스토리우스 논쟁 등을 거치며 확립된 "카톨릭 (보편)" 교회의 대표적인 신조들을 우선 읽어보자. 이 신조들은 현대 로마카톨릭 교회, 정교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의 공식신조들이다.
AD 325년 니케아 회의의 결의를 담은 {니케아 신조}다.
아래는 {니케아 신조}에서 보완된 AD 381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전문이다. 니케아 회의의 주제가 성부-성자의 관계에 집중되었기에 성령에 대한 언급은 한 줄로만 요약되었다, 이 신조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성령에 관한 설명을 삽입했다.
아래는 AD 500년 경의 {아타나시우스 신조}다.
AD 5세기에는 삼위일체를 인정한 이후 발생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논쟁이 발생한다.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경우 {니케아 신조}에 따라 성자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한 위 (ὑπόστᾰσις 휘포스타시스 [그리스어], persona 페르소나 [라틴어])로서 동시에 다른 위와 일체이므로, 예수를 또한 그 본질상 신이다. 즉, 성부와 같은 신적 본질을 가진다는 뜻이다.
예수가 '신'이라면, 논리적인 귀결에 따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 혹은 보다 정확히 "신 (Θεός)을 τόκος (낳은 자)"를 뜻하는 테오토코스 (Θεοτόκος, ܝܳܠܕܰܬ ܐܰܠܳܗܳܐ = 욜다트 알로호, Mater Dei)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은 AD 3세기 이집트 출신의 신학자 오리게네스가 이미 사용한 바 있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만 해석한다면 그 표현 자체는 신학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이 표현의 강조점은 '마리아'가 아니라 '신'으로서 또한 '인간'으로 태어난 '예수의 본성'이다. 종종 일부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테오토코스'란 용어의 신학적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 "어머니"에 강조점을 둔 나머지, 로마카톨릭이나 정교회가 마리아를 '여신' (=신모)로 만들었다며 분개하는데, 사실은 (칼케돈 신조에 따르는) 프로테스탄트의 전통적 신조들 역시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마리아에게 '테오토코스'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 표현 자체는 마리아를 '여신'으로 만들거나 혹은 그렇게 간주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이자 열정적인 삼위일체론자였던 네스토리우스는 이 표현이 정확하지 않거나 혹은 용례상 적절하지 않다고 여겼다. '테오토코스'는 그 당시 서방에서는 많이 쓰이던 용어였는지는 몰라도, 그의 출신지이기도 한 시리아 안키오키아를 포함한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는 낯선 용어이기도 했다. 그래서 "테오토코스" 즉 "신의 어머니 / 신을 낳은 자" 대신, "그리스도의 어머니 / 그리스도(Χριστός)를 낳은 자 (τόκος )"라는 뜻으로 "크리스토토코스, Χριστοτόκος"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일대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에는 인성과 신성이 있으되 둘은 분명히 구분되며, 그러기에 마리아는 예수의 '인성'을 낳은 역할만을 한 것이며, 예수의 '신성'까지 낳은 것은 아니라고 해설했다. 그러므로 예수는 '신'이지만, 그렇다고 마리아가 "신을 낳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두개의 본성 (nature, physis)을 뚜렷히 구분하였으므로 "양성론자 (Diphysites)" 라고 불렸다.
이에 맞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키릴로스가 로마 주교 켈레스티누스(Celestine)의 지원 하에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를 파문하게 되고, 이로 인해 주로 시리아~메소포타미아에 지지층을 가졌던 네스토리우스의 추종자들은 동진하여 페르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와 나중에는 중국까지 포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국 당나라 현종때 포교된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 경교이다.
한편 네스토리우스를 파문한 알렉산드리아 측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지만, 이들 역시 곧 또 다른 논쟁에 휘말린다. 반-네스토리우스 파였지만 그렇다고 알렉산드리아 측을 좋아하지도 않았던 측에서 알렉산드리아 측을 이단혐의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즉,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공존하되, 마치 바다에 떨어뜨린 식초 한 방울처럼, 신성 속에 그리스도의 인성이 "녹아"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고 믿는다며 알렉산드리아 측을 기소한 것이다. 이들은 파문되어 일반적으로 단성론자(Monophysites)라는 이름으로 흔히 불리게 되는데, 이집트의 꼽트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야곱파) 정교회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당시 칼케돈 측에서 알렉산드리아 측을 이런 류의 "단성파 (Monophysitism)", 즉 콘스탄니노플의 대수도원장이던 유티케스의 주장처럼 예수의 신성과 본성이 연합하여 또 다른 새롭게 융합된 단 하나의 본성 (신성)을 취하게 되었다고 믿는다고 기소한 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들 동방의 단성파는 이 주장을 역시 이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들은 "합성론 (Miaphysitism)"을 자신들의 입장으로 표방한다. 즉, 예수는 한 위 속에 신성과 인성을 분명히 가지되, 두 본성이 구분되지 않게 단단히 결합하여 한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새 본성은 구분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혼합되지도 않고, 또한 서로 영향을 주어 변질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합성론의 주장이다. 알렉산드리아 측의 이 입장은 칼케돈 신조와 꽤 유사하지만, 그렇다고 정확히 같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칼케돈 회의 전까지의 유티케스의 주장과 그를 옹호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디오도로스, 그리고 그들의 지지한 수도사들이 가졌던 개념은 정의 그대로의 "단성론"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종합하자면, 시리아 안티오키아 교회의 신학을 반영하는 네스토리우스파는 예수 안에 있는 신성-인성 사이의 "철저한 구분"을 강조한 것이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신학을 반영하는 단성파는 둘 사이의 "철저한 연합"을 강조한 것이며, 칼케돈 신조는 그 중간의 입장인 것이다.
이들은 모두 니케아 신조에 바탕한 삼위일체론자들이며, 또한 예수에게 신성과 인성이 모두 있다고 믿는다. 즉, 성부-성자-성령의 세 위 (=페르소나)를 "셋으로 분명히 구분되지만 본질에 있어 동일한 한 신"으로 믿는다. 다만 인간이 된 예수의 속성에 대한 이해에서 다를 뿐이다. 그리스어의 ousia는 존재, persona는 위(位), hypostasis는 본체(本體), physis는 본성으로 이해하면 적절할 것이다.
아래는 테오토코스 논쟁을 종지부 찍으며 네스토리우스의 양성론과 단성파 모두의 파문을 결의한 AD 451년의 {칼케돈 신조}다. 로마카톨릭, 정교회, 및 프로테스탄트 제 교단들은 {니케아 신조}와 {칼케돈 신조}를 모두 받아들인다. 칼케돈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우스 계열 양성파 (=네스토리우스파)와 단성파(=이집트 꼽트교회 등)은 {니케아 신조}는 수용하지만 {칼케돈 신조}는 수용하지 않는다.
이 신조에서는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 보다 정확히는 "신을 낳은 자"를 뜻하는 "테오토코스"로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은 네스토리우스의 파문에는 동의하더라도 이 부분을 종종 "예수/그리스도의 어머니" 고쳐 읽음으로써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의 일부에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 역시 네스토리우스파의 양성교리를 이단으로 정죄한다.
AD 1054년, 필리오케 논쟁을 포함한 신학적/정치적 문제를 계기로 쌍방파문과 함께 분리된 로마카톨릭과 정교회 뿐 아니라, AD 16세기 이후 출범한 프로테스탄트 교단들도 삼위일체와 관련된 이 일련의 "카톨릭/보편" 신조들을 역사적 교회의 "정통적" 신조로 수용한다.
"삼위일체"는 확실히 난해한 교리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종종 "신비"로 불린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지는 않다. 특별히 "무엇이 삼위일체인가?란 직접적인 질문보다, "무엇이 원-카톨릭 교회에서 정의한 삼위일체가 아닌가"에 우회적으로 초점을 맞추면 그 신학적 의미를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보다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은 (부정을 통한) 이 접근법이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기도 하다.
§ 니케아 회의 (AD 325년) 이전 200년 간의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진술
과연 예수가 "신"이며 "신의 아들"이라는 위상수립이 과연 속설들이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바대로 AD 4세기 초반에 가서야 이뤄진 것인지, 니케아 회의 이전의 주요 교부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해 보자.
가령, 예수의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안티오키아 주교 이그나티오스 (ca. 35 /50 - 98/117)는 AD 110년 경에 이미 ({신약성서}에 따라) 예수를 "세상의 창조자"이며 "신"으로 부르며, 이렇게 믿지 않는 자들을 이단으로 비난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사도 요한의 제자인 이그나티오스가 말하는 "기독교도"들은 적어도 아래와 같이 믿는 사람들이다.
이 안에는 이미 (정교한 정의를 내릴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삼위일체에 관한 기본적인 교리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같은 편지의 다음 장에서 이그나티오스는 예수를 "신"으로 호칭한다. 이 말은 레토릭이 아니다. 이그나티오스는 이미 제 6장에서 예수/성자를 창조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거의 동시대 인물이자 역시 예수의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스미르나 주교 폴리카포스 (AD 69 - AD155)는 또 어떤가? 그가 필립피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 그 역시 예수를 "주님이자 신"으로 호칭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폴리카포스와 이그나티오스는 서로 교신을 주고 받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교부들이다.
라틴어 사본을 통해 내용을 살펴보자.
AD 99년 혹 101년에 사망한 로마 주교 클레멘스에 의해 씌여졌다고 여겨졌지만, 현재는 AD 140-160년 사이에 씌여진 것으로 간주되는 {코린트에 보내는 편지, Κλήμεντος πρὸς Κορινθίους β´} (통상, 클레멘스의 두번째 편지)는 이렇게 진술한다.
AD 70년에서 130년 사이에 씌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바르나바 Barnabas서}는 성자인 예수가 성부와 함께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이며, 바로 그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에 의해 고초를 겪었음을 강조한다.
AD 111-113년 사이에 소아시아 폰투스와 비티니아 총독이었던 소-플리니우스는 그 지역에서 황제숭배를 거부해 체포된 기독교도들을 취조한 후, 처벌에 관련된 공식 프로토콜에 대한 자문받기 위해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 속에서 그는 기독교도들이 예수를 신으로 받들고 있음을 증언한다.
AD 130-150년 경의 작품으로 감정된 무명 (혹은 Mathetes / 제자)의 저자가 디오게네스란 인물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는, 그리스도가 태초로부터 성부와 함께 있었고, 또 성부로부터 보내졌다고 가르친다.
철학자이다가 기독교로 개종했던 아네테의 아리스티데스는 AD 140년 경 하드리아누스 황제 앞으로 쓴 한 변론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시리아어 사본에서 번역된 내용을 옮긴다.
AD 150년 경, 팔레스티나 출신으로 로마에서 활동한 기독교 철학자이자 변론가였던 팔레스티나 출신의 유스티노스는 그의 첫번째 {변증, Apology}에서 이렇게 말한다. (Translated by Marcus Dods and George Reith. From Ante-Nicene Fathers, Vol. 1. Edited by Alexander Roberts, James Donaldson, and A. Cleveland Coxe. (Buffalo, NY: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85.)
사실 AD 2세기 초기 교부들에게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장면에 등장하는 "두 야훼'에 대한 논증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초기 기독교의 표준해석이었다.
일단 해당 내용이 등장하는 전후 문맥을 {창세기}의 원문을 통해 읽어보자.
{창세기} 19장 24절의 장면은 아래와 같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방식에 따라 평이하게 직역하면, "(지상에 있던) 야훼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하늘에 계신 야훼로부터 내리셨다"가 된다.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 원문과 BC 2세기에 히브리어에서 번역되었고 또 초기 기독교의 표준경전이었던 그리스어 번역 LXX (70인역) 원문을 살핀 후, 다양한 영어번역을 통해 살펴보자.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은 각각 지상과 천상에 있던 두 주님/야훼를 확실히 구분했고, 전자의 주님/야훼를 (즉, 아브라함을 천사들과 만났던 야훼를) 성자로, 후자의 주님/야훼를 성부로 이해했다. 주요 교부 몇 명의 진술들을 발췌해 보겠다.
우선, 유스티노스의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 제 56장을 전문 번역하겠다. 인용되는 성서 구절은 유스티노스의 글에 사용된 {70인역 LXX}를 따르겠다.
AD 2세기 초반, 폴리카포스와 함께 예수의 제자 요한의 제자였던 시리아 안티오키아 주교 이그나티오스가 쓴 것으로 여겨진 (그러나 현재는 저자 미상으로 간주하는) 안티오키아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AD 2세기 말의 교부이자 예수의 제자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카포스를 청문했던 리그두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AD 2세기 말과 3세기 초의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프락세아스 반박}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이 글은 이단자 프락세아스를 반박하는 것으로, 테르툴리아누스가 풀이하는 "경세적" 삼위일체의 개념이 드러나는 글이다.
AD 3세기 전반부에 북 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키프리아누스는 {유대인 반박}에서 구약/신약성서에서 '심판자'는 바로 성자, 즉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며, 이것은 역시 {창세기}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주체는 성부의 위임을 받아 지상에 온 성자였다고 풀이한다.
AD 3세기 전반부에 활동한 로마 사제이자 신학자인 노바티아누스는 {삼위일체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AD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의결된 '성부-성자 동일본질' 교리를 수용하긴 하지만, 회의 전까지만 해도 루키아노스 계열의 양자론에 다소 기울어 있던 (그래서 같은 루키아노스 문하의 아리우스에게 우호적이던)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니케아 회의 직전 무렵에 저술한 그의 유명한 {교회사}에도 역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입장은 성부-성자의 동일본질을 지지한 니케아파, 혹은 정통파 혹은 (분리 이전의) 카톨릭파의 공식입장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 이번에는 범-아리우스파들의 입장을 한번 살펴보자.
AD 351년 시르미움에서 아리우스파 주교들이 발표한 신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당시, 땅에 있던 "야훼"인 성자가 하늘에 있던 "야훼"인 성부로부터 불비를 내린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유스티노스 뿐 아니라 니케아 회의 이전의 다른 정통파 교부들의 해석과 일치한다.
현대어 번역본들은 첫번째와 두번째 야훼를 구분하는 전통적 독법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령, 현대 한국어 번역들은 아래와 같다. {개역개정}과 {공동번역}/{새번역}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감지해 보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초기 교부들은 {창세기} 19장의 "두" 야훼를 "한" 야훼로 해석하는 독법에 대해 여러차례 파문한 바 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두 야훼"로 읽는 독법은 삼위일체파 (=정통파) 뿐 아니라 심지어 AD 325년 니케아 회의 후에도 막강한 세력을 과시한 범-아리우스파의 입장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즉, AD 4세기의 아리우스 논쟁을 보면, 삼위일체파 (더 정확히는 "(삼위)동일본질"파) 뿐 아니라 범-아리우스파 역시 이 전자의 '야훼'를 인간이 되기 전의 예수라고 여기고 있었다.
기독교 교부들의 해석과 다른 현대의 해석 경향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시기에 스위스 개혁교회를 이끌던 장 칼뱅의 영향이 큰데,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그는 이 고대 교부들의 해석에 대해 판단보류를 선언한다.
칼뱅의 {창세기} 주석을 직접 읽어보자.
칼뱅도 진술하고 있다시피,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인간이 되기 전의 예수/성자가 "또 다른 야훼"라고 믿었다. 비록 칼뱅이 {창세기}의 그 구절을 "두 야훼/주님", 즉 "성부와 성자"에 대한 진술로 이해한 고대 교부들의 해석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뱅은 그의 {기독교 강요,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에서 "여호와/야훼"란 호칭을 성부 뿐 아니라 성자와 성령에게도 적용시켜서 이해했다. 즉, "여호와/야훼"란 호칭은 삼위일체 전체에 적용되는 호칭이라고 본 것이다.
읽어보자.
사실 이 견해는 16세기 칼뱅의 견해가 아니라 고대 교부들의 거의 모두 동의했던 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 교부들의 관점에서 볼 때 천사를 포함한 이 피조세계가 존재하기 이전에 성부와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한 성자를 "위대한 인간" 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들의 견해로 그리스도는 신이며 또한 "여호와/야훼"라 불릴 수 있다.
각설하고,
이와 같이 성자의 선재성에 대한 설명은 '동일본질파'이든 '아리우스파'이든 상관없이 동일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양파 간 갈등의 핵심은 성자의 '선재성'이 아니라 '성부 및 성자 간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AD 170년 경, 유스티노스의 제자였던 (앗)시리아인 타티아노스는 그의 저작 {그리스인들에게 고함 Address to the Greeks}에서 예수를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신"으로 부른다.
AD 160-170년 경, 사르디스 주교 멜리톤은 아래와 같이 진술한다. 그는 태생으로는 유대인이었다.
또한 {유월절에 대하여}란 설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당시 소아시아의 관례에 따라 유월절인 니산월 14일을 부활절 축일로 지켰다.) 예수는 세상을 창조한 자이자, 곧 신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신을 죽인" 것이다.
AD 177년 경, 플라톤 철학자이다가 기독교로 개종했던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는 그의 {기독교도들을 위한 청원}에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논한다. 읽어보자.
AD 2세기 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스(=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인 성자 예수를 성부와 본질상 동등하며, 인간의 형체를 입은 신이자, 신인 로고스/말씀이자, 신의 형상을 가진 신으로 가르친다.
AD 180년대까지 활동했던 안티오키아 주교 테오필로스는 '삼위일체'란 말의 어원이 될 트리아스 τριας를 성부-성자-성령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첫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카포스를 청문했던 루그두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는 AD 2세기 말에 이렇게 적었다.
이레네우스가 그의 저작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제 1권 10장 1절에 요약한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인용해 보자. 이 교리들은 당시까지의 모든 '보편교회 (=카톨리케 에클레시아)'가 근본교리로 공히 믿고있던 교리들이다.
그 "보편교리"를 읽어보도록 하자. 이레네우스의 기록이다.
AD 200년 경, 이레네우스의 제자로 전해지는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Refutations of All Heresies}에서 이렇게 적는다.
아울러 소아시아에서 양태론을 주창했던 스미르나 사제 노에투스의 그리스도론을 반박하면서 {노에투스 반박}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히폴리투스에 따르면 이 양태론은 노에투스에게서 비롯되어 그의 추종자에 의해 로마에 도입된 후 히폴리투스 시대의 로마 주교였던 제피리누스 (199 - 217년 사이에 로마 주교)와 칼리스투스 (217 - 222년 사이에 로마 주교)가 이를 옹호하다 히폴리투스의 반박으로 마지못해 이를 철회한 것으로 되어 있다. 노에투스 발 이 양태론에 대한 설명은 거의 동시대인인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설명과 유사해서, 테르툴리아누스의 프락세아스를 노에투스와 동일인 혹은 추종자로 보기도 한다.
AD 3세기로 넘어와, 북 아프리카 라틴교회의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성부=성자=성령이 실체적으로도 완전히 동일하며 따라서 십자가에서 수난 당한 것은 또한 성부이기도 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간 양태론자 프락세아스를 비판하면서, 신의 본질상 단일성을 방어하는 동시에 성부/성자/성령의 구분을 강조한다. 이로써 그는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하고 (= 존재론적 (=ontological) 삼위일체) 역할에 있어서는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분리되는 경세적 (economic / οἰκονομία)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최초의 라틴교부로 여겨진다.
더 읽어보도록 하자.
AD 1세기 문건으로 간주되는 교회법령 {디다케}의 연장선 상에 있는 {디다스칼리아}는 AD 230년 이렇게 말한다.
성자를 성부에 종속시키는 경향을 보이는 신학의 태두라고도 볼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오리게네스 역시 "성자"를 "신"으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AD 225년 경의 기록이다.
박해 중 배교했던 자들에 대한 사면권을 두고 로마 주교와 대립하여 로마 교회와 분리노선을 걸었던 로마 교회 사제 노바티아누스도 AD 235년 경 같은 견해를 피력한다. 그는 인간으로 성육신한 성자 (예수)는 인간이 될때 스스로를 '비워 (케노시스)' '신으로서의 권능' 일부를 자발적이고 한시적으로 포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신이었다는 것이다.
북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있던 주교 가운데 하나인 키프리아누스 역시 AD 250년 경 이렇게 말한다.
다음은 늦어도 AD 3세기 중반부터는 팔레스티나-시리아 지역에서 입문/세례자의 신앙고백으로 사용되었던 {팔레스티나-카이사리아 신조}이다. 이 신조는 AD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아리우스파와 반-아리우스파 사이의 중재안으로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이 신조에서도 인간 예수로 오기 전의 성자는 참된 신이며 "이 세상의 창조자"이다.
니케아 회의가 열리기 몇 달 전인 AD 325년 1월, 로마제국의 제 3대 도시인 시리아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사망하자 안티오키아 주교의 치리권 아래 있던 팔레스티나, 아라비아, 시리아, 페니키아, 킬리기아, 카파도키아 등지의 주교들이 차기 주교선출을 위해 도시를 방문한다. 이때 아리우스의 가르침이 도시를 휩쓸고 있는 것을 목도한 그들은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방문 중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특사 코르도바 주교 호시우스의 주재 하에 거의 만장일치로 (53:3) 아리우스의 교리를 정죄하고 잠정적으로 그를 파문했다. 세 명의 주교는 이때 반대표를 던졌는데, 이 세 명 중의 한 명이 바로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였고, 이 회의는 그를 아리우스 동조자로 비난했다.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와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 그리고 아리우스 모두 루키아노스의 신학을 계승한 동문수학 지간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부단한 수양과 노력으로 완전하게 된 인간 예수 위에 (성부-성자-성령으로 분리되지 않는) 한 신의 로고스가 작용해 그 인간 예수가 신의 의지가 일치했다고 주장하는 형식의 '양자론'의 선구로 여겨지는 3세기의 (이단) 사모사타 출신의 안티오키아 (파문)주교 파울로스가 바로 이 루키아노스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루키아노스가 어디까지 파울로스의 주장에 공조했는지에 대해서는 과거로부터 논란의 많았다. 다만 그가 AD 312년 박해 때 순교했기 때문에 이런 이단의혹에도 불구하고 정통파 교회에서는 루키아노스가 보편교회와 화해했다고 여기고 성인으로 추대했다. (핍박이 잦던 시기에는 신학적인 문제보다는 순교 여부가 성인시성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었다.)
이 회의의 의결사항은 회의의 정황을 둘러싼 정황설명과 함께 의결내용을 신조의 형태로 정리해 각 주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내졌다. 그리스어 원본은 소실되었으나, 시리아어 사본은 남아있다. (Cod. Par. Syr. 62; Vatican Cod. Syr. 148; Mingana Syr. 8) E. Schwartz, “Zur Geschichte des Athanasius.” Nachrichten von der Königlichen Gesellschaft der Wissenschaften zu Göttingen, Philologisch-Historische Klasse (Gottingen: Luder Horstmann, Jahre 1905) pp. 271-79 에 그리스어와 시리아어로 소개된 내용의 영문번역을 (http://www.fourthcentury.com/index.php/urkunde-18)을 다시 한국어로 중역하겠다.
이 회의의 좌장이었던 코르도바 주교 호시우스가 니코메디아로 복귀한 후 콘스탄티누스는 아리우스 논쟁에 개입을 결정한다. AD 325년 봄, 그는 로마 제국 뿐 아니라 제국의 영내 밖의 가급적 많은 주교들을 황제의 여름 휴양지가 있는 니케아로 초청하고 그들의 여행경비를 대신 지불한다. 대다수 주교들은 사제들이나 혹은 부제들과 동반했기 때문에, 니케아 회의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고 또 신학적으로나 전통적으로 가장 고르게 주교들이 참석한 회의란 점에서 제 1차 에큐메니컬 회의라 불린다. 총 300여 명의 주교들이 이 회의에 참석했는데 다수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그리스 지역에서 왔고, 이집트, 팔레스티나, 시리아, 소아시아, 코카서스, 일리리아, 인도, 페르시아 등지에서도 왔다. 갈리아, 아프리카, 히스파나나에서는 각각 한 명의 주교가 왔다. 연로한 로마주교는 대신 두 사제를 대표로 보냈다. 이 역사적 회의는 니케아의 여름황궁에서 율리우스력 AD 325년 5월 20일에 개최되었다.
설명했다시피 "성자/예수는 성부의 본질을 가진 신이며, 성부는 그를 통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명제는 이미 최소한 200여 년간 그노시스를 배제한 정통파 교회가 수용하고 있던 교리였고, 따라서 아리우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니케아에 모일 모든 주교들"은 예수/성자를 "신"이라고 부르는데 이미 아무런 교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다만 예수가 "어떤" 신이며 성부와 비교했을 때 그의 "속성"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보다 정교히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니케아 회의의 결과는 박빙의 승부로 끝나지 않았다. 초반에는 약 20여 명의 주교들이 (특별히 아리우스의 추종자에 대한 파문규정에 대해) 완강히 거부했지만, 결과적으론 단 두 명의 주교만이 최종적으로 아리우스의 주장을 지지했다. 게다가 이 두 주교들은 아리우스의 출신지인 북 아프리카 리비아의 주교들이었다. 아울러 이 과정은 투표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완성된 {니케아 신조}에 각자 서명하는 형식이었다.
니케아 회의의 진행과정과 여파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할 것.
§ 아리우스파와 준-아리우스파의 신조들
§§ 아리우스 본인의 주장
역사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볼때, 그럼 아리우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도대체 무얼 다르게 믿고 있었던 것일까? 아리우스에게 예수(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의 인간일 '뿐'도 아니었다. 인간 예수가 되기 전의 성자는 성부와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였던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예수는 단지 인간일 뿐이다"라는 진술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아리우스파에게 있어 "성자"는 "성부"를 "신"이라고 부를 때와 같은 의미로서의 그 "신"은 아니지만, 이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성부가 의도해서 태어난 특별한 존재이자 입양된 아들이기 때문에 "명목상" "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즉, 성자는 신과 피조세계 사이에 위치한 존재이며, 이것이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정말로 믿고 있던 것이다. 성자는 따라서 이 피조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성자는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영적 존재인 천사도 아니다. 왜냐하면 천사 역시 피조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자가 성부의 뜻에 따라 피조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왔다는 점에서, 즉, 성부에 의해 "보내졌다"는 점에서 '앙겔로스 (= 사절 , 사자)'라고도 불릴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의 '앙겔로스'는 일반적 의미의 천사로서의 그 '앙겔로스'가 아니다.
예수가 "명목상 신"이라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는 아타나시우스의 글에서 인용한다.
아리우스의 주장이다.
아하! 역시 아리우스는 '예수는 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일까? 이 진술 속에 등장하는 "참 신" 혹은 더 정확히는 "본질적 신"의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니케아 회의가 열리기 전인 AD 319년, 아리우스가 자신의 후원자인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발췌한다.
만약 도올이 AD 4세기로 돌아가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며 아리우스와 그를 지지하는 주교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면, AD 325년 니케아 회의 당시의,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아리우스 추종자들은, AD 351년 시르미움에서 열린 준-아리우스파의 회합에서 결의한 신조의 제 9항에 분명히 진술된 내용에 따라 도올에게 이런 엄중한 선고를 내릴 것이다. 아리우스파에게 있어서도, 성자는 성부와 더불어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분명할 수는 없다.
도대체 '니케아 회의 전만 해도 '단지 인간에 불과했던 '예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압력이 작용한 니케아 회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신이 되었다' 혹은 짧게는 '아리우스는 예수를 인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라는 대중의 잘못된 상식의 뿌리는 무엇이고, 또 어떤 경로로 확산된 것일까? 아무튼 학식높은 도올 (그는 한때 신학생이기도 했다)이 이런 실수를 범할 진데, {다빈치코드} 같은 대중적인 저작물이 유포한 잘못된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반인들이 어떠할지는 짐작할 수 있다.
{다빈치 코드} 같은 대중적인 저작들은 던져두고, 원전으로 돌아가 본다. 물론 이제부터 언급하는 사료들이 반-아리우스파에 속하는 사람들의 저작 속에 인용되었기 때문에 그 진실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만약 그렇게 주장하려면 사실 아리우스에 대한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아리우스를 반대한 사람들이 아리우스의 주장을 뒤틀어서 인용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리우스 측의 주장은 그 자체로서 아주 명료하기 때문이며, 또한 아리우스파는 니케아 회의 이후에도 한동안 그 세력이 막강하였기에 그들의 주장을 잘못인용 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아리우스 논쟁을 다룬 1차자료에는 다음의 문헌들이 남아 있으며, 아래에서 해당하는 내용들을 발췌하겠다. 이 모든 1차사료들은 현재 인터넷으로 모두 검색 가능하다. 이 자료들은 아리우스 논쟁을 다루는 원전이라 불릴 수 있는 1차사료 전부에 해당한다.
신학용어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리우스파의 주장과 원-카톨릭 (로마카톨릭+정교회+꼽트+네스토리우스파로 분리되기 이전)의 주장 사이에 차이점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리우스파와 카톨릭을 구분짓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전술했다시피 '태어남'이라는 용어의 해석에 달린 것이다. 그것을 제외하면, 범범-아리우스파 (유사본질파, 유사파, 이질본질파) 에 의해서 이단으로 지목된 주장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원-카톨릭, 혹은 동일본질파의 입장에서도 이미 이단으로 지목된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자. 특별히 성부-성자-성령을 동일한 존재가 (마치, 얼음-물-증기처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양태론"은 "사벨리우스 주의"로 불리며 엄중하게 정죄되었다.
우선, 니케아 회의가 열리기 6년 전인 AD 319년 경, 아리우스 본인이 자신의 후원자인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AD 5세기의 시리아 퀴로스 주교이자 역사가 테오도레토스의 {교회사}에 인용된 아리우스의 주장이다.
아리우스의 이 편지는 아리우스가 가르치고 있는 인간 예수로 태어나기 전의 성자/그리스도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 잘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편지에서 설명했다시피, 아리우스에게도 이미 예수는 '신'이었다. 그것도 '완전한 신 (=perfect God)'이었다. 그러나 성자는 (성부라는) '기원이 있는' 반면, 성부는 '기원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성자는 성부와 본질까지 공유하지는 않으며, 서로 다른 급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니케아에서 벌어진 신학적 논쟁은, 성부로부터 '태어난 (begotten)'이란 신약성서 속의 문장의 해석을 두고 양측 간에 벌어진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리우스는 이 '태어난'(begotten)이란 말을 두고, 이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성자가 성부에 의해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made)된 것을 의미한다고 간주했다. 즉, 이 세상이 피조되기 전에 신에 의해 직접 만들어져 신으로 "입양된" 아주 특별한 피조물인 것이다. 따라서 "성자"는 "성부"와 확연히 구분되는 동시에, 그 본질에 있어 이 세상과도 구분된다. 성자는 이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성부와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한 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리우스파와 격론을 벌인 아타나시우스의 {De Synodis}에 인용된 아리우스의 {탈리아/Thalia}를 인용한다. 그는 여기서 아타나시우스 버전의 (성부/성자/성령이 본질에서 동등한) '삼위일체 (Trinity / Tri-Unity)'가 아닌, 성부가 그 본질에 있어 성자보다 비교될 수 없는 우위에 있는 '삼조일체 (Triad)'를 주장한다. 필요한 부분은 강조하겠다.
아리우스의 주장이다.
또한 파문당한 사제였던 아리우스가 당시 자신의 상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주교 (Pope) 알렉산드로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참고로, 이집트 꼽트교회는 서방교회와 분리되기 이전부터 자신들의 주교를 '교회의 아버지'란 뜻으로 "파파스" (그리스어 πάππας, 영어 Pope)로 호칭해 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라틴 교회인 로마카톨릭 교회의 지도자인 로마 주교 =교황)의 호칭인 라틴어 Papa가 라틴교회인 로마 교회의 지도자인 로마 주교에게 배타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AD 11세기 동서교회의 대분열 이후의 일이다. 꼽트교회는 지금도 자신들의 총주교에게 이 호칭을 부여한다. 여기서는 '교부'로 해석하겠다.
니케아 회의에서 결정된 용어인 '동일본질'이란 뜻의 '호모우시오스 ὁμοούσιος'란 그리스어 단어를 구성하는그리스어 '우시아 οὐσία'와 정의가 꽤 모호한 '휘포스타시스 ὑπόστασις' 의 정확한 의미를 두고 니케아 회의 및 그 이후의 논쟁들이 있다. 특별히 '우시아'나 '휘포스타시스'를 라틴어로 번역하게 될 때, 이 두 언어 사이에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본질/본체 (Substantia)로 해야 하는지 위격 (persona)로 해야 하는지 분명치 않았다가, 점차 '우시아'의 'Substantia 실체/본체/본질'로, '휘포스타시스 위격'의 대응어로는 'persona 개별 위격'가 굳어졌다. 그러나 '휘포스타시스'는 정확히 '프로소논' 혹은 '페르소나'와 동의어가 아니다. '얼굴' 혹은 '가면'이란 뜻의 '프로소폰' 혹은 '페르소나'는 각각의 '휘포스타시스'가 밖으로 드러낸 '형태' 혹은 '형상'이다. 이 용례를 염두에 두고 아래의 진술을 이해해 보자.
그러나 아리우스와 반대입장에 선 사람들은 같은 문장을 '성부로부터 났으나, 만들어지지 않은 (begotten, but not made)' 의 뜻으로 이해했다. 이 경우, 성부와 성자는 창조자의 피조물의 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그것은 성자가 성부와 같은 본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또한 성자가 성부로부터 낳아지기는 하지만, 아리우스의 이해처럼 "성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 있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우선 (1) 성자는 성부와 같은 본질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가 완전히 새롭게 피조된 새 '본질'에서 오지않은 한 '태어남'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또 (2) 시간은 태초에 창조된 피조세계의 속성이므로 "태초 이전"을 상정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 주교였던 알렉산드로스가 콘스탄티노플 주교 알렉산드로스에게 보낸 편지는 이 점을 잘 설명한다.
고대인의 사유, 특별히 플라톤의 철학에서 "만든다"는 행위는 질료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성부가 성자를 '낳은' 것이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면, 그 행위에는 질료가 역시 필요하다. 그런데 성부가 성자를 낳은 시점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창조되기 이전의 시점, 혹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창조에 사용된 질료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리우스파는 성자의 기원을 '무'에서 창조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정통파가 되는 '동일본질'파의 입장에서 성자는 '성부로부터 태어났'으나 만들어지지는 않은 것이기에 성자를 무로부터 피조된 존재로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양측의 주장은 훈련되지 않은 눈으로 언뜻 보기에는 그저 단순한 문구의 차이 같지만, 사실은 엄청한 신학적 차이를 담고 있는 것이다.
논쟁이 가열되자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는 중재에 나서서, 자신의 교구인 카이사리아 일대에서 세례받는 신자들의 신앙고백을 위해 적어도 AD 3세기 말 부터는 널리 사용되어지고 있던 {카이사리아 신조}를 니케아 회의의 공식적인 신조로 채택할 것을 제안한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금방 알겠지만, 이 신조는 아리우스를 정죄하는 것으로 결의한 {니케아 신조}와 거의 차이가 없다.
{카이사리아 신조}를 읽어보자.
카이사리아의 주교 유세비우스가 이 신조를 제안했을때, 이미 아리우스파는 이 신조를 그대로 수용하는데 이의가 없었다. 그럼 이 신조 도대체 어디에 "예수는 그저 인간"이라는 언급이 있을까? 전혀 없다. 이미 이 신조에서조차 예수는 "진정한 신(=God of God/the very God)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아-팔레스타인 신조}를 역시 수용하던 (아타나시우스로 대표되는) 반-아리우스 진영에서는, 일단 이 신조에 동의하면서도 이 신조의 몇 구절을 보다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하는 구절은 아래와 같다. 이 구절 자체는 신약성서에서 그대로 인용된 것이지만, 반-아리우스 진영에서는 보다 더 정밀한 정의를 요구했던 듯 싶다.
이들의 요구가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를 포함한 주교들의 오랜 검토 끝에 관철되었을 때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는 결정과정에 있어 황제가 강제력을 발휘했다는 어떤 암시도 하지 않는다), 비로소 {니케아 신조}의 기초가 잡힌다. 이 수정된 초안에서 강조된 부분은 아래와 같다.
한편, 니케아 회의가 끝난 후인 AD 327년에 아리우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역시 5세기의 역사가였던 소조메노스의 기록이다. 아리우스가 끝까지 '성부로부터 났으나 창조되지는 않은 '이라는 {니케아 신조}의 공식에서 '창조되지는 않은'이란 조항을 끝까지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자(예수)가 '만물의 창조자'란 점은 아리우스의 주장에서 흔들림없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 편지에서 아리우스는 성자인 예수에 대해 '진실한 신'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읽어보자.
예수는 "그저 인간"이라고 아리우스가 믿었던가?
§§ 범-아리우스 계열 신조들
이것도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성부와 성자의 본질문제에 있어 아리우스와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졌으나 대체로 아리우스에게 동정적이던 준-아리우스파 (semi-arian) 주교들이 AD 341년부터 361년 사이 {니케아 신조}에 반발해 연달아 발표한 11개의 신조를 참고해 보자.범
AD 335년에 튀로스와 예루살렘에서 열린 주교회의에서는 그동안 파문조치되어 교회로부터 성찬을 받을 수 없었던 아리우스와 그의 동조자들이 다시 교회와 성만찬을 공유할 수 있도록 결의했다. 이때 이 회의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바로 아리우스의 동문지간인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와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였다. 이 결의에 대해 전임자 알렉산드로스에 이어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된 (아리우스의 숙적) 아타나시우스가 콘스탄티누스에게 불평하자, 황제는 튀로스 회의에 참가했던 주교들에게 해당 문제를 자신 앞에서 재토론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몇몇 주교는 고향으로 도망쳤지만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 등 몇몇은 직접 황제를 만나 소명했다. 원래부터 아타나시우스를 못마땅해하던 황제는 오히려 다음 해에 아타나시우스를 트리에르로 귀양보냈고, 이어 니케아 회의의 결의사항인 "동일본질"를 지지하는 안키라 주교 마르켈루스에 대한 강등과 추방이 이어졌다. 마침내 AD 336년, 콘스탄티누스는 아리우스를 다시 사제로 복권시키는 조치를 취하지만, 아리우스는 복권을 알리는 공식의식이 있던 전날 밤 돌연히 사망했다. 사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마도 암살이었을 가능성을 대체로 높게 고려한다.
콘스탄티누스가 AD 337년 5월 22일 니코메디아에서 사망할 무렵, 그는 과거 아리우스의 후원자였었고 니케아 회의 결과 일보 후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리우스의 주장에 상당히 동조했던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추도사는 (니케아 회의 전에는 아리우스에게 기울었으나) 니케아 회의에서 "동일본질"에 동의했던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작성했고, 이듬 해인 AD 338년에는 (니케아 회의 이전과 이후에 계속해서 '동일본질 교리'에 대해 여러 수준으로 동의하지 않았던)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주교가 되었다. 이 "두 유세비우스"가 종교권력의 핵심이 된 의미는 즉, 제국의 심장부가 범-아리우스계, 특별히 준-아리우스파로 장악되었다는 뜻이다.
콘스탄티누스 사후 로마제국은 그의 세 아들들에 의해 나뉘어졌고, 콘스탄티우스는 동방을, 콘스탄티누스 2세는 브리타니아와 갈리아를, 콘스탄스는 이탈리아와 일리리쿰을 차지했다. 즉위 후 콘스탄티우스는 추방당했던 아타나시우스를 다시 알렉산드리아로 복귀시켰지만, AD 338년 두 유세비우스의 영향권 아래 있던 안티오키아에서 열린 주교회의는 다시 아타나시우스를 강등시킨 후 알렉산드리아에서 두번째로 추방시켰고, 대신 카파도키아에서 온 그레고리우스를 알렉산드리아 주교로 임명했다.
AD 340년 콘스탄티누스 2세가 죽고, 니케아 신조 (즉, 성부와 성자의 (+성령의) 동일본질)를 지지하는 콘스탄스가 서방의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당시 로마 주교인 율리우스 1세는 추방된 마르켈루스와 아타나시우스를 로마로 받아주기 된다. 한편, 동방의 아우구스투스인 콘스탄티우스는 니케아 신조를 거부하는 준-아리우스파를 지지하게 된다.
성부와 성자를 동일본질 (homoousios)로 설명한 니케아 회의의 결정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런 일이었기 때문에,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된 (전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를 중심축으로 한 그룹들은 '동일본질'이란 핵심용어 혹은 그 뉘앙스를 바꾸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니케아 신조에 대응한다.
그 첫번째 그룹은 니코메디아 (이제 콘스탄티노플) 주교 유세비우스 측의 입장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은 성부와 성자의 유사본질 (homoiousios)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정죄된 아리우스의 교리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즉, (1) 성자는 무에서 창조되었다라거나 (2) 성자의 본질은 성부와 완전히 다르다라는 내용은 니케아 회의에서처럼 거부되었고, 대신 성부와 성자와 성부 삼위일체의 각 위격을 인정하며 또한 그 셋이 영원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이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준-아리우스파 (Semi-Arian)들이다. 다만 성부-성자의 "본질"이 있어 "동일"하다기보다는 "유사"하다고 설명하였으며, 성부-성자-성령의 위엄적 지위를 성부 > 성자 > 성령의 순으로 대체로 간주했다.
두번째 그룹 역시 아리우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고 우회적으로 니케아 신조를 공격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의 경우 "성자는 성부와 유사 (homoios)하다"는 표현을 통해 "본질"에 대한 논쟁을 우회했다. 즉, '본질'이란 용어를 삭제해 버린 것이다. 이 그룹 역시 준-아리우스파로 분류되지만, 첫번째 그룹의 준-아리우스파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세번째 그룹은 AD 4세기 중반에 부활한 원조-아리우스파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준-아리우스파와는 달리 "성자와 성부는 모든 면에서 같지 않다/다르다 (anomoios)"라는 아리우스의 원래 교리를 부활시켰다.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에서 다시 아리우스의 원조교리로 되돌아가려는 시도었는데, 큰 지류는 Aetius 및 Eunomius 계열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과 변증법을 무기로 삼았고, 그동안 친-아리우스계를 주도해 오던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인 homoiousios, 즉 "성부와 성자의 유사본질" 입장과 결별해 원래의 아리우스의 입장으로 돌아갔다. 즉, 정통파 교회가 주장하는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 (homoiousios)" 과 완전한 대척점인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 차이 (anomoios)를 고수하게 된다. 이들은 주창자의 이름을 따서 Aetians, Eunomians로 불리거나 혹은 그들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Anomoeans로 불린다. 이들은 AD 361년 안티오키아에서 가진 11번째 친-아리우스계 회합에서 주도권을 잡고 "성자는 모든 면에서 성부와 다르며, 그 본질에 있어서도 역시 다르다 / the Son is in all things unlike (kata panta anomoios) the Father, as well in will as in substance"라는 선언을 한다. 물론 이들 역시 예수를 "오직 인간"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다. 아리우스와 마찬가지도 그들에게도 성자는 성부보다는 아래지만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과는 비할 나위없이 높은 "신적" 존재인 (성부와 함께) 만물의 창조자였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의 아들인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자신의 종교자문이었던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의 영향에 따라 첫번째와 두번째의 준-아리우스파들을 번갈아 지원했지만, 이 세번째의 정통 아리우스파는 핍박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후 그의 자식들끼리 벌어진 분쟁으로 결국 모두가 죽은 후, 어부지리로 AD 361년 황제가 되는 "이교도 황제" 율리아누스는, 기독교를 내부분란을 이용해 약화시킬 목적으로 동일본질파 (= 원-카톨릭), 아리우스파 (원조 이질본질파), 준-아리우스파 (유사본질파 및 유사파)를 포함한 모든 분파를 허용시켰으며, 그를 이은 발렌스 황제는 준-아리우스파였던 콘스탄티누스의 정책에 따라 "유사본질"을 가르치는 주교들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동일본질파를 탄압했다. (율리아누스의 노골적인 기독교 약화정책은 결과적으로는 동일본질파와 온건한 형태의 유사본질파의 연대를 가져오게 된다.)
우선적으로는 준-아리우스주의자들의 AD 344년 안티오키아 회합과 351년 시르미움 회합에서 결정된 6번째 신조 내용을 주의깊게 읽어보자. 아리우스파의 관점에서 이단인 입장을 조목별로 열거하고 있다. 유사본질을 주장한 준-아리우스파의 교리는 상당부분 동일본질파와 일치하기 때문에 주의깊게 읽어야 한다.
그럼 범-아리우스 계열이 그들의 주교회의를 통해 발표한 일련의 신조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필요한 부분은 번역하겠다.
우선, AD 341년의 상황을 보자. 이 해에 안티오키아에서는 범-아리우스 그룹에 의해 두번의 회의가 열렸다. 처음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착공되었던 교회건물의 봉헌에 맞춰 97명의 주교들이 모여 열린 것이었는데, (니케아 회의를 강력하게 지지하던) 서방에서는 주교들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여기 모인 주교들은 거의 모두 반-아리우스 진영의 선봉장이던 아타나시우스에게 적대적인 인물들이었는데, 이 회합은 범-아리우스 진영이 자신들의 공식적인 신조들을 문서화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회의에서 세 종류의 신조가 차례로 작성되었다. 또한 이 해 두번째 열린 회합에서는 4번째 신조가 범-아리우스 진영에서 발표된다. 물론 모든 동방의 주교들이 아리우스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주교인 우리들이 어떻게 사제를 따를 수 있단 말인가?"라며 시니컬하게 반응했다. 아리우스는 니케아 회의 전에 사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해 겨울에는 범-아리우스 진영의 좌장 격인 콘스탄티노플 (전임지,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사망했다.
아타나시우스의 서신에 인용된 내용들이다. 중요한 구절은 붉게 강조처리 했다.
이들 범-아리우스파는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믿었는가?
두번째 준-아리우스계 공회의의 결의문을 읽어보자. 이 결의문은 성부, 성자, 성령을 독립적 위격으로 고백하면서, 이 셋이 각각의 독특한 (~성부의 본질과 유사한) 본질과 지위와 영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는 세가지 본질을 가지고 있으되 하나로서 일치된다고 진술한다.
아리우스파는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믿었는가?
다음은 세번째 준-아리우스계 회의가 발표한 의결문이다.
아리우스파는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여겼던가?
네번째 준-아리우스계열 주교회의의 의결문이다. 여기서 준-아리우스파는 (1) 성자는 무로부터 창조되었다거나, (2) 성부로부터가 아닌 다른 본질을 가졌다거나 (3) 성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 있었다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다.
AD 342년 혹은 이듬해에 '동일본질'파를 지지해 온 서방의 아우구스투스 콘스탄스가 교회의 일치를 재조정하기 위해 사르디카에서 주교회의를 소집한다. 이 회의는 난장판이 되었는데, 서방의 주교들과 동방의 주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서로 비난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서방의 주교들은 아리우스파를 격렬히 비난했고, 대체로 범-아리우스 진영인 동방의 주교들은 필리포폴리스로 물러간 후 거기서 반-아리우스 진영의 선봉장인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안키라 주교 마르켈루스, 그리고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한 로마 주교 율리우스 1세 등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는 범-아리우스 진영의 네번째 신조와 함께 마르켈루스를 파문조치하는 내용을 담았다.
동일본질파의 입장에서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타나시우스와 함께 아리우스파를 강력하게 비난했던 안키라 주교 마르켈루스는, 훗날 이 논쟁의 진행과정에서 또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 니케아 회의 몇 년 후, 그는 아리우스파인 아스테리우스를 반박하는 글을 통해, 원래 신은 일자로서 하나의 존재였으며, 아직 성자로 태어나지 않은 로고스는 그 일자인 신에 내재되어 있었으나, 세상의 창조 때 로고스가 신으로부터 나와 성자로 나타나 세상의 창조자로 등장하게 되면서 성부-성자로서 (여전히 하나의 신이지만) 이중적 존재로 드러났고, 또 성령이 성부로부터 나와 성자로부터 임무를 받음으로써 그때부터 비로소 성부-성자-성령의 존재방식을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로고스/성자는 후에 그리스도가 되었는데, 성자와 성령은 종국에는 다시 성부에게로 돌아가 다시 신은 하나의 일자로 돌아가게 될 것이란 주장을 펼치게 된다. 마르켈루스의 이 주장은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타나시우스나 등의 동일본질파에 의해서도 '변형 사벨라리아누스 주의' 및 AD 260년 대에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사모사타의 파울로스이 주창한 '양자설'이단의 변형으로 여겨져 배척되었다.
그는 이 주장으로 인해 AD 336년에는 준-아리우스파의 좌장이었던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주도한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이단으로 탄핵되어 주교직을 박탈당했고, 이 회의는 준-아리우스파 사제였던 안키라의 바실레이오스를 새 주교로 임명했다. 사실 이 바실레이오스의 인생도 파란만장하다. AD 336년에 안키라 주교가 된 바실레이오스는 AD 343년에 개최된 사르디카 주교회의에서 주교직을 박탈 당했다가, 다시 AD 350년에는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다시 안키라 주교로 복권되었다. 그후 라오디케이아의 게오르기오스와 함께 준-아리우스파의 좌장으로 활동하면서 AD 359년 준-아리우스파를 지원해 온 콘스탄티우스 2세가 소집한 셀류키아 회의에서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 다음 해인 AD 360년 원조 아리우스파인 카이사리아 주교 아카키오스의 탄핵을 받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일리리아로 추방되었다. 이때 동일본질파인 예루살렘 주교 키릴로스 등도 함께 탄핵되었다. 이후 바실레이오스는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에서 니케아 신조를 지지하는 동일본질파로 기울었는데, AD 361년 콘스탄티우스 2세가 죽고 어부지리로 황제가 된 '배교자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율리아누스 황제에게 맞서다가 체포되어 고문받고 처형되었다.
니케아 회의 당시에도 제기되었다시피, '우시아'나 '휘포스타시스' 같은 그리스 철학용어로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는데 반감을 가진 주교들이 많았다. 이들은 최종적으로는 신학적인 결론에 따라 '동일본질"이란 용어를 규정한 {니케아 신조}에 서명하긴 했지만, 대체로 이 용어의 실제적인 사용에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던 듯 하다. 마르켈루스 역시 '우시아'나 '휘포스타시스' 같은 용어사용에는 대체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 또 성서에 표현된 단어와 숙어 이외의 용어로 성부, 성자, 성령을 표현하는 것도 피했다. 이 입장에 따르면,"태어나기 전의 성자"는 (성서에 명시된 용례에 따라) 그저 "로고스"라 불러야 하며, 성자는 로고스가 신으로부터 탄생한 후에 적용되어야 적절한 용어가 된다. 또한 '로고스'가 '성자'로서 출생하기 전에 홀로 존재하던 모나드(일자)로서의 신은 '성부'라 부르면 안되고 (아직 '아버지'가 아니므로), 그저 신으로 불러야 옳게 되는 셈이다.
전해지는 단편들 가운데 (저자가 정말 마르켈루스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거룩한 교회에 관하여}를 발췌해 읽어보자. 읽기에 앞서, 우선 '삼위일체'에 대한, 특별히 '삼위', '세 휘포스타시스'에 관한한 마르켈루스의 입장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잠깐, 그럼 마르켈루스는 '삼위일체'의 개념이 초창기 그노시스 이단자인 발렌티누스가 헤르메스와 플라톤으로부터 가져온 개념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렇게 속단하기엔 좀 이르다. 문맥을 고려하여 읽어보면 알겠지만, 마르켈루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일본질파가 설명하는 식의 '삼위'가 아닌) 아리우스파가 설명하는 식"으로서의 '삼위'가 바로 플라톤 및 헬레니즘 철학에서 유래했단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본질을 지지한 마르켈루스가 이 글을 "아리우스파에 대한 반박"으로 저술했다는 것이 그의 신론을 이해하는 첫 단서다. 따라서 여기서의 '세 위격 (hypostasis ~ persona)'이란 즉, 아리우스파 계열이 정의하던 그 '위격'이란 점을 우선 기억하자. 그들은 '동일본질파'와 달리 성부-성자-성령의 '완전히 다르거나, 유사하지만 다른' '세 위'에 대해 가르쳤다. 각각의 위가 서로 다르기에 아리우스는 사실상 (성자와 성령이 성부에게 종속되긴 하지만) 삼신론과 유사한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것은 즉, 성자와 성령은 성부의 본질과 동일하지 않은 열등한 존재란 뜻이며, 따라서 아리우스파가 말하는 "세 휘포스타시스", 즉 "세 위"는 사실은 완전히 독립적인 세 존재, 즉 "등급이 다른 세 신"이란 뜻이다. 물론 아리우스파라도 "명시적으로" "세 신"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동일본질파에게 있어서는, 성부-성자-성령이 한 본질/본체/실체 (우시아)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 "세 위"를 "세 신"이라 부를 수 없다. 즉, 성부-성자-성령은 "한 신"으로서의 "한 우시아 / 본질" 안에 "세 휘포스타시스 / 위"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켈루스가 '아리우스파 아스테리우스의 주장'으로 소개한 이 아리우스의 신관, 즉 독립된 세 실체와 독립한 세 위 (즉, 세 우시아와 세 하이포스타시스)는 사실상의 '삼신론'이다. ' 따라서 마르켈루스는 바로 이런 아리우스파의 교리가 (신비주의 비교문서의 전설적 저자로 불려졌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토스와 플라톤 ({고르기아스})에서 유래한 것이라 강변하는 것이다. 아울러 발렌티누스가 썼다는 {세 본성에 관하여}는 소실된 작품이며, 발렌티누스가 그런 책을 썼다는 다른 기록은 없다. (그런데 사실 아리우스 본인은 "성부로부터 성자가 발출되었다"는 발렌티누스의 주장에 반대한다고 적었다.)
AD 344년에 안티오키아에서 발표된 다섯번째 신조는 범-아리우스 진영이 사르디카에서 발표한 성명서에다 서방 주교들의 신학을 추가로 비판하는 8개 조항을 담았다. 아래의 다섯번째 신조에서는 (준-)아리우스파들의 입장에서 이단인 주장들을 항목별로 정리해 놓고 있다. 먼저 파문대상이 나열되고, 이어서 자세한 입장이 설명된다. 이 설명들의 대부분은 동일본질파 혹은 원-카톨릭의 신학과 동일하다.
(번역: 최광민)
AD 345년은 반-아리우스 진영에게 다소 힘이 실리는 해가 된다. 우선 서방의 주교들은 밀라노에서 모여 범-아리우스 진영의 다섯번째 신조를 읽고 전의를 다지는데, 마침 아타나시우스를 밀어내고 알렉산드리아 주교를 맡고있던 카파도키아의 그레고리우스가 죽고 아타나시우스가 이듬 해인 AD 346년 알렉산드리아 주교로 복귀하게 된다.
그런데 AD 350년 반-아리우스 진영에 힘을 실어주던 서방 아우구스투스 콘스탄스가 반란군인 마그네티우스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듬해인 AD 351년에는 안키라 주교 바실레이오스의 주도 하에 AD 341년 신조를 증보한 통산 6번째 준-아리우스계 신조가 발표된다.
여기 등장하는 이단들은 물론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에서의 이단들이다. 역시 아리우스의 몇몇 교리를 정죄한다. 비록 이 선언이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을 정리한 것이지만, 여전히 상당히 많은 부분은 원-카톨릭 교회 (로마카톨릭, 정교회, 단성파 꼽트교회, 양성파 네스토리우스교회 분리 전),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신조와 동일하다.따라서 성자 (아울러 성령)의 본질과 성부의 본질 간의 차이를 이들이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이 신조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번역: 최광민)
AD 353년 마그네티우스의 반란을 진압한 콘스탄티우스가 전 제국의 단독 아우구스투스/황제로 집권한다. 콘스탄티우스는 범-아리우스 진영을 계속 지지해 왔다. 힘이 실린 범-아리우스 진영은 이 해 가을 아를르에서 열린 주교회의를 통해 아타나시우스를 정죄하고, 이어 열린 AD 355년의 밀라노 회의에서도 재차 정죄한다. 그 결과 AD 356년 2월 8일,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타나시우스는 주교직에서 해임되어 3번째 추방을 당하게 된다. 대신 게오르기오스가 알렉산드리아 주교로 임명된다. 이 게오르기오스는 성자는 모든 면에서 성부과 "같지 않다 / anomoios",란 입장을 천명하여 아리우스의 원래 주장을 복원한 아에티우스의 영향을 받았다. 이듬해인 AD 357년에는 역시 아에티우스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유독시우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되었다.
다음은 AD 357년 시르미움에서는 통산 세번째로 개최된 준-아리우스파에 의해 가결된 일곱번째 범-아리우스 진영의 신조다. 특별히 참석한 서방의 주교들이 범-아리우스 진영과 절충하고자 한 시도가 두드러지며, 그 결과 이 신조에서는 동일본질 (homoousios)와 유사본질 (homoiousios) 두 용어 모두 비성서적으로 간주되어 둘 다 삭제되었고, 성자가 성부에 종속되어 있다는 종속설을 재확인했다.
AD 358년에는 안키라 주교 바실레이오스의 주재 하에 성명서가 발표되는데, 이 성명서는 다시 "유사본질 / homoiousios"란 단어를 사용해서 성부-성자의 관계를 정의하고자 했고, 그런 이유로 그와 같은 노선에 있는 주교들은 준-아리우스파로 불린다.
AD 359년, 시르미움에서 통산 네번째, 전체로는 8번째 범-아리우스파 신조가 작성된다. 이 회의는 까다로운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기 보다는, 양 측의 입장을 최대한 조화시키는데 목표를 두었다.
같은 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들인 콘스탄티우스는 니케아 회의가 촉발시킨 논쟁을 종결하고자 통일된 신조를 만들기 위해 두 주교회의를 소집시킨다. 하나는 아리미눔 (리미니)의 주교회의로 400여 명의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방에서 열렸다. 두번째 회합인 셀류키아 회의는 160명의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동방에서 열렸다.
이 회합에서 작성된 통산 9번째 범-아리우스계, 특별히 준-아리우스계 신조는 성자를 성부와 "유사한 존재"로 정의하여 "본질"에 대한 논쟁을 피하면서 "동일본질"을 선언한 니케아 신조를 우회했고, 동시에 성부-성자간 완전한 "이질본질"을 주장하며 부활한 원조-아리우스파 (Anomoeans)를 동시에 비난했다. 이 신조는 성부와 성자가 어떻게 유사한가는 설명하지 않았다.
AD 360년, 아리미눔과 셀레우키아에서 발표된 신조를 검토하기 위해 1월에 주교회의가 다시 열려 통산 10번째 범-아리우스계 신조가 발표된다. 아래의 10번째 신조 역시 준-아리우스파의 관점인 '성부와 성자 간의 유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동일"본질"이든, 유사"본질"이든, 이질"본질"이든, "본질"이란 용어 자체가 성서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폐기하고, 그저 성부는 성자와 "유사"하다고만 말하자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들의 입장에 따르자면, 성자의 본질이 성부와 "같다"고도 말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그 본질이 어디선가는 왔어야 하기 때문에 성자의 기원을 오직 성부 만이 아는 신비로 간주하게 된다.
같은 해, 준-아리우스파를 지원해 오던 콘스탄티우스가 패전하고, 갈리아 주둔 군단은 콘스탄티우스를 버리고 사촌인 율리아누스를 아우구스투스로 옹립한다. 기독교를 버리고 다시 이교로 돌아간 철학자 율리아누스는, 기독교를 밀어내고 전통종교를 부흥시킬 목표로 동일본질파, 유사본질파, 이질본질파를 비롯해 모든 기독교 분파를 허용함으로써 기독교를 내부분쟁으로 약화시키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준-아리우스파 진영을 이끌었던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사제로 임명된 후 성서를 고트어로 번역하는 등 명실상부한 고트족의 사도였던 (준-)아리우스파 주교 울필라스의 신조를 보자. 울필라스의 제자이자 양자인 두로스토룸의 옥센티누스가 전하는 그의 신조에서 성자(=예수)는 신이며, (성령이 성자에게 종속되어 있듯)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되어 있다. 울필라스가 생애 마지막까지 이런 형태의 (준-)아리우스주의를 고수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재 전해지는 울필라스의 신조는 AD 5세기 아리우스파 신학자인 막시미누스가 필사한 옥센티우스의 편지다.) 이 신조 자체는 원-카톨릭 교회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이단이다.
자, 그럼 아리우스의 본인의 설명, 혹은 그의 추종자들이 남긴 신조들 도대체 어디에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는 주장이 암시라도 되어 있다는 말일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최종적으로는 아리우스주의자이자 앞서 인용한 편지의 수신자였던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임종 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콘스탄티누스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회의가 마친지 5년을 넘긴 시점인 AD 330년 경에 들어서면서 범-아리우스파의 좌장 격이었던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를 콘스탄티노플로 불러 이단판정을 받았던 아리우스를 사면하려고 하고 있었고 실제로 사면령을 내렸다. 유세비우스를 자문으로 두었던 그와 파우스타 사이의 아들인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아예 준-아리우스파 신도였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가 한 AD 380년 무렵의 설교는 로마제국을 니케아 신조에 따른 동일본질파 (즉, 원-카톨릭)으로 강제로 국교화하게되는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절까지 제국의 수도에서 아리우스파가 얼마나 막강한 세력을 과시했는지를 전해주는 대표적인 일화로 꼽힌다. 그는 제국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심지어 저자거리의 상인들조차 성자가 무에서 만들어졌고 (ex nihilo) 따라서 성자는 성부보다 열등하다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일상적으로 말하고들 있다며 비꼬면서 말한다.
삼위일체에서의 성령의 지위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에 대해 닛사 주교 그레고리오스는 성령에 대한 설교 31.5에서 동일본질설을 정리한 니케아 회의에 따른 정통파의 입장에서 이단으로 간주되는 설명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성령은 신이다"란 표현 자체는 성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포함하는 삼위일체의 최종적 정의를 놓고 니케아 회의 이후 거의 2세대 동안 혼란스러웠던 상황에 대해 닛사 주교 그레고리오스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들 카파도키아 3총사가 활동하던 AD300년대 중/후반 시절은, 성부와 성자를 완전히 분리시키고, 또 성령을 성부와 성자의 조수 정도로 격하시키던 경향을 가진 원조 아리우스파의 세가 한풀 꺾이던 중이자, 성부-성자-성령의 신적지위를 인정하되 셋 간의 위계적/위엄적 지위를 그 순서대로 간주하던 준-아리우스파가 보다 동일본질파 쪽으로 동화되던 시기였다.
그레고리오스의 친구이기도 했던 카이사리아 주교 바실레이오스는 AD 375년 경 이들을 겨냥하여 삼위의 동등을 분명히 강조한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한 {성령에 대하여}를 발표한다. 당시 그는 공공예배에서 영광송 (Doxology)을 부르면서 "성부께 영광을, (영광을 / 필자 주) 성자와 함께 (with), 또 성령과 함께 (with)"란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원래의 전통적인 표현은 "성부께 영광을, 성자를 통해 (through), 성령 안에서 (in)"였다.
이 전통적 용어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바실레이오스는 그 당시 준-아리우스파 주교 마케도니오스의 교리를 주장하던 한 일파인 (폄칭) 프뉴마토마코이 (=성령의 대적자)들이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고, 성령을 성자의 피조물이자 성부/성자의 사환으로 간주하던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들은 그리스 철학,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 따라 삼위의 세 존재를 확실히 구별하면서, 이를 "문법적"으로도 정당화 했는데, 가령, "~로부터 from"은 성부에게, "~를 통해 through"는 성자에게, "~안에"는 성령에게 적용되는데, 이는 이 단어들이 각 존재의 속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즉, 성부는 "기원", 성자는 "활동", 성령은 성자의 활동이 이뤄지는 "시간과 장소"에 대응된다고 본 것이다. 이 셋의 속성이 다르므로, 단어 또한 달리 써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의 핵심이었다.
바실레이오스는 이들의 수사학적이고 철학적 설명이 이교적이며, 또한 "성령과 함께"와 "성령 안에서"는 교회의 전통과 성서에서 모두 존재하며, 다만 전자는 "삼위 간"의 관계를, 후자는 "성령과 인간" 간의 관계란 문맥에서 모두 가능하다고 변호했다.
바실레이오스의 {성령에 대하여}에서 인용한다.
신약성서의 기록과 초기교부들의 모든 기록에 따르면, 성부에 대한 지식은 피조세계에 감추어져 있고, 성부를 알고 성부를 피조세계에 알리는 것은 성자이며, 또한 그를 통해서만 성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바울이 코린트의 기독교도들에게 보낸 첫번째 편지에 따르면 바울은 (마치 한 인간 개인의 영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듯) 성령 역시 성부의 경륜까지 살피고 그 생각을 헤아린다고 적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을 받은 기독교도들은 또한 그리스도의 마음 (νοῦν χριστοῦ) 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성부의 뜻을 이제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피조된 세계를 초월하는 존재를 이해하려면 성자와 성령 또한 피조된 세계를 초월한 존재들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는 무엇이겠는가?
이들 카파도키아 교부 3인이 정교히 정의한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이 보강된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AD 381년의 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서 AD 325 년 니케아 공회의의 신조를 증보해 발표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 강력히 반영되어 이후 기독교의 정통신조로 고정되었다.
§ 맺음말
로마카톨릭계 평화방송이 3월 14일에 박홍 신부와 가졌다는 인터뷰에 보면 이런 말도 나온다.
이것을 두고 '바보들의 합창'이라고나 해야할까? 잘못 '인용'된 주장을 의심없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인 후에, 또 그걸 바탕으로 도올, 한기총, 박홍, 댓글장이들이 인터넷에서 서로 설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라니. 그냥 원전 한 번 읽어보면 '단 한 문장'으로 가라앉을 문제를 두고 왜들 저러시는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도올이 "예수는 그저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그 아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을 우회적으로 지지한 준-아리우스파 주교들의 AD 351년 신조를 옮긴다.
결론을 다시 정리하자면, 성부-성자-성령의 '본질이 동일하다 ὁμοούσιος / homoousios '라고 한 동일본질파나,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다르다 ετερούσιος / heteroousios" 혹은 "본질이 유사하지 않다 ἄνὅμοιος / anomoios"고 주장한 아리우스 및 원조 아리우스파나,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유사하다 ὁμοιούσιος / homoiousios"고 주장한 준-아리우스파나, 혹은 성부와 성자가 그저 "유사하다 ὅμοιος / homoios"고 말한 절충파 준-아리우스파 모두, 단 한번도 예수를 "그저 인간"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예수/성자의 기원과 "본질"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들 범-아리우스파들에게조차 이미 예수/성자는 "성부와 함께" 태초 "이전"에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였기 때문이며, 바로 그 성자 '본인'이 인간 예수로 성육신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창조주로서의 이 성자 본인이 인간 예수로 성육신한 것이 아니라, 인간 예수의 인간적 정신이 유지된 상태에서 성자가 다만 인간 예수 위에 로고스와 정신으로만 강림한 것으로 믿는다면, 그것은 동일본질파 뿐 아니라 범-아리우스파 역시 이단으로 간주했던 AD 3세기 중반의 안티오키아 (파문)주교 사모사타의 파울로스가 주장한 잘 알려진 이단설이 된다. 이 경우라야 예수는 (비록 신적 로고스와 연합했다하더라도) 온전한 인간의 몸과 정신을 가진 '그저 인간일 뿐'이 되는 것이다.
다만, 범-아리우스파가 이해하기론 예수/성자는 천사와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과는 "전혀" 다르고, 성부와는 "매우 흡사한" 정체가 모호한 "그 어떤" 존재였던 것이다. 예수/성자의 "본질"이 성부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고 가정할 경우, 그들은 예수/성자의 본질을 설명할 방법이 도무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소위 '아리우스 논쟁'의 핵심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기독교의 전통적 성직의 직제명은 그리스어로 ἐπίσκοπος (= 에피스코포스, bishop / 주교 / 감독), πρεσβύτερος 프레스뷔테로스, priest = presbyter / elder / 사제 / 장로~목사), διάκονος (= 디아코노스, deacon / 부제 (보제) / (안수)집사)이다. 로마카톨릭+정교회+성공회에 대응하는 성직의 한국어 표기로는 주교/사제/부제를, 그 외의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경우는 감독/장로(~목사)/집사를 사용한다.
사실 한국어 '주교-사제-부제'란 용어는 AD 1-2세기의 맥락에서의 성직의 본래적 의미를 정확히 반영하기에 곤란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어 원래 의미에서, '주교'란 '감독자 ἐπίσκοπος', '사제'란 '장로 πρεσβύτερος', '부제'란 '보조자 διάκονος' 를 뜻하기 때문에, 원어 뜻을 충실히 반영한 프로테스탄트 측의 용어가 AD 1-2세기 상황에서의 직제를 이해하는데 더 적절하다. 아울러 '주교'란 용어가 '사제/장로'들의 감독자이자 상급자로서 배타적으로 널리 굳어진 때는 AD 2세기 초/중반 이후부터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론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기독교를 다루는 이 글에서는 관례 상 "주교", "사제", "부제"로 통일한다. 인명에 있어서는 라틴명과 그리스어명 가운데 가급적 해당 인물들의 주요 활동 지역의 언어에 따른 이름을 따르되, 라틴명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들에 대해서는 라틴어식 표기를 따르겠다.
아울러, AD 325년 니케아 회의의 결의사항을 교리로 받아들이는 그룹 - 즉, 현재 정교회, 로마카톨릭 (및 프로테스탄트 제파) 뿐 아니라 꼽트교회 (및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등 단성론파 제파) 및 양성론파인 동방의 네스토리우스파 (앗시리아 / 동방)교회 등의 뿌리가 되는 그룹은 "원-카톨릭" 혹은 "동일본질파"로 통일한다. 여기서 "카톨릭"이란 "보편"이란 뜻의 그리스어 "카톨리코스 καθολικός"에서 유래한 용어로, AD 110년 경 예수의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시리아 안티오키아 주교 이그나티오스가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처음 사용한 "카톨리케 에클레시아 η καθολική εκκλησία = 보편교회"가 알려져 있는 그 첫 용례이다.
예수의 제자 요한의 제자였던 안티오키아 주교/감독 이그나티오스 ( AD 35-98 혹은 50 117)가 AD 110년 경 (혹은 이전)에 트랄리아 사람들에게 적어보낸 편지의 내용을 통해, 기독교가 시작된 후 약 70년이 경과한 AD 100년 경 무렵의 '보편교리'가 무엇인지 대략 정리해 볼 수 있다.
"For they speak of Christ, not that they may preach Christ, but that they may reject Christ; and they speak of the law, not that they may establish the law, but that they may proclaim things contrary to it. For they alienate Christ from the Father, and the law from Christ. They also calumniate His being born of the Virgin; they are ashamed of His cross; they deny His passion; and they do not believe His resurrection. They introduce God as a Being unknown; they suppose Christ to be unbegotten; and as to the Spirit, they do not admit that He exists. Some of them say that the Son is a mere man, and that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are but the same person, and that the creation is the work of God, not by Christ, but by some other strange power." --- Ignatius, {Epistle to the Trallians}, Ch. VI
그들(=이단자들)은 비록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만,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그들은 율법에 대해 말하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율법에 반하는 것들을 선포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성부와 상관없는 존재로 만들고, 율법을 그리스도로 부터 분리시킨다. 그리스도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점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끄럽게 여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부정하며 그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신을 미지의 존재로 만들었고, 그리스도가 (성부로부터) 낳아진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령에 관해 그들은 성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더러는 성자가 그저 인간일 뿐이며, 성부, 성자, 성령이 [양태론적으로, 즉 실체적으로도 / 필자 주] (셋이 아닌) 한 존재라고 말하거나, 성부가 그리스도(=성자)가 아닌 어떤 다른 기이한 능력을 통해 세상을 창조한 것이라고 말한다. --- 안티오키아 주교 이그나티오스, {트랄리아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제 6장 / 번역: 최광민
여기서 '보편교리'란 AD 2세기 말의 리그두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나 혹은 AD 450년 갈리아 레렝의 수도사 빈켄티우스의 훌륭한 정의처럼 "어디서나, 언제나, 누구나 믿는 교리들 Quod ubique quod sempre quod ab omnibus creditum est"을 뜻한다. 물론 니케아 및 칼케돈 신조에 기초한 정교회, 로마카톨릭교회, 프로테스탄트 제 교단들 뿐 아니라, 니케아 신조는 수용하나 칼케돈 신조는 거부하는 단성파 꼽트교회나 양성파 칼데아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들도 자신들이 진짜 '카톨릭 (=보편) 교회'라 주장할 것이니, 현실적 적용은 그리 단순치 않다. 이 글에서 다룰 아리우스파 역시 자신들을 '보편적 (=카톨릭)이고, 사도적인 교회'로 불렀다.
바울이 에페소스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이 '하나'란 개념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가 잘 드러나 있다.
ἓν σῶμα καὶ ἓν πνεῦμα, καθὼς καὶ ἐκλήθητε ἐν μιᾷ ἐλπίδι τῆς κλήσεως ὑμῶν· εἷς κύριος, μία πίστις, ἓν βάπτισμα· εἷς θεὸς καὶ πατὴρ πάντων, ὁ ἐπὶ πάντων καὶ διὰ πάντων καὶ ἐν πᾶσιν. --- Greek, {GNT}
Unum corpus, et unus Spiritus, sicut vocati estis in una spe vocationis vestræ. Unus Dominus, una fides, unum baptisma. Unus Deus et Pater omnium, qui est super omnes, et per omnia, et in omnibus nobis. -- Latin, {Vulgata}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 --- 한국어 공동번역,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4:3-6
왜 '다양한 교리'가 아닌 '보편교회'와 '보편교리'가 기독교의 정통성에 있어서 중요한지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은, '온갖 현란하고 다양한 교리들'을 자랑하던 그노시스 제파를 향한 시리아 혹은 소아시아 출신의 AD 2세기 중/후반의 교부이자 예수의 제자 요한 폴리카포스를 친견했던 루그두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 (?-AD 202)의 강렬한 비판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레네우스가 그의 저작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제 1권 10장 1절에 요약한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인용해 보자.
https://www.archive.org/stream/irenaeus00irenuoft
1. The Church, though dispersed through our the whole world, even to the ends of the earth, has received from the apostles and their disciples this faith:
(현재) 교회는 세상 끝까지 널리 퍼져나가 있지만, (예수의) 사도들과 그의 제자들로부터 다음의 신조를 이어받았다:
[She believes]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the sea, and all things that are in them; and in one Christ Jesus, the Son of God, who became incarnate for our salvation; and in the Holy Spirit, who proclaimed through the prophets the dispensations(6) of God, and the advents, and the birth from a virgin, and the passion, and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and the ascension into heaven in the flesh of the beloved Christ Jesus, our Lord, and His [future] manifestation from heaven in the glory of the Father "to gather all things in one,"(7) and to raise up anew all flesh of the whole human race, in order that to Christ Jesus, our Lord, and God, and Saviour, and King,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invisible Father, "every knee should bow, of things in heaven,, and things in earth, and things under the earth, and that every tongue should confess"(8) to Him, and that He should execute just judgment towards all; that He may send "spiritual wickednesses,"(9) and the angels who transgressed and became apostates, together with the ungodly, and unrighteous, and wicked, and profane among men, into everlasting fire; but may, in the exercise of His grace, confer immortality on the righteous, and holy, and those who have kept His commandments, and have persevered in His love, some from the beginning [of their Christian course], and others from [the date of] their repentance, and may surround them with everlasting glory.
교회는 한 분의 신, 즉 전능한 성부이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을 믿는다. 또한 교회는 한 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 그는 신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체를 입으신 분이다. 교회는 또한 한 성령을 믿으며 성령이 신(=성부)의 섭리와, 사랑하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도래와, 성자가 처녀에게서 태어나심과, 그의 수난과, 죽음에서의 부활과, 육체로서 승천하심과, 장차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고 모든 인류를 새로운 육체 가운데 부활시키기 위해 성부의 영광 가운데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것을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하셨음을 믿는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성부의 뜻에 따라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무릎 꿇고 그를 경배하며, 모든 자들이 그 입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 주님이자 신이며, 구원자이자 왕으로 고백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가 모두를 공정하게 심판할 것과, 악마들과 죄로 타락한 천사들과 거룩하지 않고 불의하며 사악하고 속된 인간들을 모두 함께 영원한 불 가운데 던지실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의 은혜 가운데 살며 정의롭고 거룩하며 신의 계명을 지키고 그의 사랑 안에서 인내한 자에게는 영생을 주실 것과, 또한 처음부터 믿었거나 혹은 참회한 후부터 믿은 신자들을 영원한 영광으로 감싸실 것을 교회는 믿는다.
2. As I have already observed, the Church, having received this preaching and this faith, although scattered throughout the whole world, yet, as if occupying but one house, carefully preserves it. She also believes these points [of doctrine] just as if she had but one soul, and one and the same heart, and she proclaims them, and teaches them, and hands them down, with perfect harmony, as if she possessed only one mouth. For, although the languages of the world are dissimilar, yet the import of the tradition is one and the same. For the Churches which have been planted in Germany do not believe or hand down anything different, nor do those in Spain, nor those in Gaul, nor those in the East, nor those in Egypt, nor those in Libya, nor those which have been established in the central regions(1) of the world. But as the sun, that creature of God, is one and the same throughout the whole world, so also the preaching of the truth shineth everywhere, and enlightens all men that are willing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Nor will any one of the rulers in the Churches, however highly gifted he may be in point of eloquence, teach doctrines different from these (for no one is greater than the Master); nor, on the other hand, will he who is deficient in power of expression inflict injury on the tradition. For the faith being ever one and the same, neither does one who is able at great length to discourse regarding it, make any addition to it, nor does one, who can say but little diminish it.
내가 이미 목도한 바와 같이, 교회는 비록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지만 이 가르침과 이 믿음을 받아 마치 한 집에서처럼 이를 주의깊게 보존해 왔다. 또한 교회는 이 신조들을 마치 하나의 영혼을 가진 양, 마치 하나의 동일한 심장을 가진 양 보존하고 있으며, 이 신조들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또 마치 단 하나의 입을 가진 것처럼 완벽한 조화 가운데 후대에 전수한다. 세상의 언어가 모두 다르지만 교회의 전승은 하나이며 동일하다. 게르마니아에 설립된 교회에서 믿는 것은 히스파니아나 갈리아나 동방이나 이집트나 리비아나 혹은 세상 한 가운데 설립된 교회들이 믿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신의 피조물인 한 태양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것처럼, 전파된 진리는 세상을 비추고 있으며 진리를 알기 원하는 사람들을 깨닫게 하고 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지식이 탁월한 자들도 이와 다른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주님보다 더 클 순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교회의 전승을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믿음은 늘 하나요 동일한 것으로, 그것을 두고 길고 장황하게 논쟁하거나, 거기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조금이라도 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레네우스,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 번역: 최광민
니케아 회의의 결의사항인 '성부-성자 동일본질'을 반박한 모든 유형의 그룹은 통칭 "범-아리우스파"로, "동일본질"이 아닌 "유사본질" 혹은 "유사존재"로 우회한 그룹들은 "준-아리우스파" (="유사본질파"+"유사파")로, 아리우스의 원래 가르침에 충실했던 그룹은 "원조-아리우스파" 및 "이질본질파"로 통일한다.
니케아 회의에 참석한 318명의 주교들과 콘스탄티누스 황제 , 양피지 사본 MS CLXV, Biblioteca Capitolare, Vercelli, 825년 경. (출처: Wikimedia Commons)
'삼위일체' 교리 자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 속설, 속설들
철학자 김용옥씨는 (이하, 도올)은 최근 2007년 3월 4일 은혜공동체 교회의 초청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한 것으로 한겨레신문은 보도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면 나를 까더라도 예의는 지켜야지. 그런데 인신 공격을 한다. 네가 공부를 하면 얼마나 했겠느냐. 감히 내게 그런다. 대한민국에서 지식을 가지고 나에게 덤비겠다니..." --- 한겨레신문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194280.html
물론 도올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며, 일반인이 얕은 지식을 가지고 그에게 맞서는 것은 그의 말처럼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닐지도.
'박학'보다는 '정확'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으니까.
도올은 종종 디테일에서 실수를 하곤 한다. 가령, 그는 노무현 정부 초창기 탄핵정국을 두고 문화일보에 기고하려다가 거부당한 글 {도올고성#6 -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 속에서 에라스무스가 도끼로 참수형 당했다고 쓴 적도 있다. 그러나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에 발을 걸쳐두었던 에라스무스는 자기 침대에서 (편하게) 임종했으며, 도올의 글에서처럼 "도끼"에 목이 날아간 사람은 에라스무스가 아니라 그의 지인인 토마스 모어였다.
인용한다.
".....천일의 앤. 에라스무스의 모가지에도, 최수운․해월의 모가지에도 망나니의 도끼는 어김없이 내려쳐졌다....". --- 김용옥, {도올고성#6 -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
참고로 조금만 더 따져본다면, 헨리 8세의 두번째 처인 "천일의 앤" 볼레인은 "도끼"가 아니라 (앤 볼레인이 자랐던 프랑스식 관례에 따라) "사형용 장검"로 참수되었다.도끼로 처형된 것은 그의 다섯번째 처인 캐서린 하워드다. 조선 말 동학의 창건자들인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 역시 도끼가 아닌 (망나니의) 칼 (月刀)로 참수되었다.
기고가 거부된 도올의 이 칼럼은 대신 인터넷 매체를 통해 퍼져나갔는데, 이 '도끼날에 목이 달아난 에라스무스' 이야기에 딴지를 거는 사람이 신기하게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디테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글의 본 취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으며, 사실 도올의 에라스무스 이야기는 디테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경우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디테일은 본체를 규정하기도 하고 본체를 붕괴시키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리우스 논쟁에 있어서 위의 디테일은 사실상 본체를 이해하는데 아주 핵심적인 요소이며, 따라서 틀려서는 안된다.
도올이 최근에 펴낸 {기독교 성서의 이해}라는 책에서는 (역시 한겨레신문의 보도) 이렇게 주장한 모양이다.
...그(=도올, 필자 주)는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더와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며 논쟁했던 아리우스는 오늘날엔 흉악한 이단자로 취급되고 있다”며 “그러나 당시 아리우스의 주장은 초기 기독교도들의 리버럴한 사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대변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직접 중재에 나설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 기사 발췌
이 다소 '식상한' 이야기는 그다지 디테일에 충실하지 않은 대중적인 저작 속에 즐겨 반복되는 이야기다. 가령 {다빈치 코드}의 한 단락 (영문판 p.233) 을 보자. 소설 속에서 티빙은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논점은 붉은 색으로 강조했다. (번역: 최광민)
"During this fusion of religions, Constantine needed to strengthen the new Christian tradition, and held a famous ecumenical gathering known as the Council of Nicaea…At this gathering," Teabing said, "many aspects of Christianity were debated and voted upon—the date of Easter, the role of bishops, the administration of sacraments, and, of course, the divinity of Jesus.
종교융합과정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새로운 기독교 전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따라서 니케아 회의라 불리는 유명한 에큐메니컬 회합을 소집했지" 티빙은 말했다. "기독교의 많은 부분들이 토론되었고 투표되었지 - 부활절 날짜산정이라든지, 주교들의 역할이라든지, 성사의 집례에 대한 것이라든지, 물론 예수의 신성을 포함해서 말야."
"I don't follow. His divinity?
잠깐, 예수의 신성이라니요?"
“My dear,” Teabing declared, "Until that moment in history,” he says, “Jesus was viewed by His followers as a mortal prophet … a great and powerful man, but a man nonetheless.
티빙이 말했다. "보자고, 그때까지의 역사에서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그저 한 사람의 인간 예언자일 뿐이었지… 위대하고 능력있던 사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었네."
Neveu is shocked. “Not the Son of God?” she asks.
"신의 아들이 아니고요?" Neveu는 충격을 받고 물었다.
Teabing explains: “Jesus’ establishment as ‘the Son of God’ was officially proposed and voted on by the Council of Nicaea.”
티빙은 설명했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위상수립은 니케아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제안되고 투표에 붙여진 거야."
“Hold on. You’re saying Jesus’ divinity was the result of a vote?”
"잠깐만, 예수의 신성이 투표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말인가요?"
“A relatively close vote at that,” Teabing tells the stunned cryptologist.
"꽤 박빙의 투표였지" 티빙은 충격에 빠진 암호학자에게 말했다.
--- 댄 브라운, {다빈치 코드} / 번역: 최광민
정말?
예수의 수난/부활을 기점으로 기독교가 시작된 AD 33년 경 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AD 325년의 니케아 회의까지의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는 (1) 그저 "위대한 한 인간"으로만 여겨졌을까? 예수는 니케아 회의에서야 (2) 비로소 신의 지위를 "인정"받았을까? 니케아에 모인 주교들은 (3) "박빙"의 (4) "투표"를 했을까? 니케아 회의의 결의문에 반대한 측은 예수를 (5) "그저 인간"으로 믿었기 때문에 반대한 것일까?
{다빈치 코드}의 이 한 문단은 위에 열거한 5가지 항목 모든 부분에서 사료 및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 특별히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상식' 혹은 더 나아가 '사실'로 알고, 또 아리우스 본인의 가르침이나, 그의 추종자들의 가르침이나, 혹은 니케아 회의의 배경과 결론에 대해 전혀 엉뚱한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왜? 이런 저런 책들은 읽어보았을지 몰라도 원전을 그 문맥과 비교해가며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상식'이 늘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도올의 이런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굳이 도올처럼 대만국립대학과 하바드 대학에서 "동양철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할 필요는 없으며, 아울러 목사/신부들처럼 신학교에서 신학학위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저 역사에 약간의 흥미를 가지고, 당시의 정황을 담은 AD 4세기와 5세기의 1차사료(원전) 너댓 권 속에 묘사된 길지 않은 몇 장을 읽어보면 된다. 사실 아리우스 본인의 짧은 편지 하나를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반박은 충분하다.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면,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고 말한 적이 전혀 없으며, 예수가 '신의 아들'이자 또한 '신'이란 위상 수립이 니케아 회의에서 비로소 처음 제기되거나 확립된 것도 아니다. 만약 도올이나 댄 브라운이 아리우스 앞에서 저런 소리를 했다면 오히려 아리우스는 왜 자신을 '에비온파 이단자'로 모느냐면서 불같이 성을 냈을 것이다. 아울러 니케아 회의에 초대된 주교 중에 에비온파는 하나도 없었다. 초청이 되지 않았으니 니케아에서 투표를 했을 리도 없다. 에비온파는 국지적 그룹으로서 그 영향력은 아리우스파에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작았다.
흔히 아리우스의 신관과 현대 여호와의 증인의 신관이 같다고들 오해하는데, 사실 이 둘은 상당히 다르다. 물론 여호와의 증인의 신학은 아리우스의 그리스도론처럼 성자를 성부의 "첫 창조물"이자 일종의 최고의 천사로 보기는 하지만, 아리우스와 준-아리우스파의 신학에서 성자의 탄생 (혹은 창조)는 이 세상의 창조 전에 일어난 일이며, 따라서 '이 세상의 창조'와 같은 등급의 '창조'에 속하지 않는다. 만약, 여기서의 '창조'를 이 세상의 창조에 국한한다면, 심지어 아리우스파의 주장에서도 성자는 (천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 중 하나에 속하지 않는다. 아리우스파 역시 성부는 성자를 통해서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령을 성부의 비의지적 활동력의 의인화된 표현으로 간주하는 여호와의 증인과는 달리, 아리우스파는 성령을 성부 및 성자와 독립된 실재적인 존재와 위격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의 신관 및 그리스도관은 다만 피상적으로만 아리우스파의 신학과 유사할 뿐이며, 아리우스파와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에서도 이단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럼 기독교 교리의 가장 근간이 되는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 {(신약)성서}의 진술
학술적으로 엄정하지 않는 저작물들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속설들 가운데, 종종 '삼위일체'에 대한 담론이 기독교 역사에서 AD 3세기 이후나 되어야 서서히 등장했다는 주장들을 보게 되는데, 사실 현존하는 문헌과 자료를 기초로 판단하게 될 때 그렇게 보긴 힘들다.
AD 2세기 이후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까지 언급하지 않고 그저 AD 1세기 말에 이미 완결된 히브리 성서 (={구약성서})와 AD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반까지 보편교회에서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후에 완결된 총 27권 가운데) 대략 20 여권의 {신약성서} 문서들만 고려하더라도, 초기 기독교는 이미 (후대의 정밀한 정의까지는 아니지만) 성부-성자-성령이란 세 존재를 (천사를 포함한) 피조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성부는 유대교에서 유일신으로 부르는 그 존재임에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성자 (=예수)와 성령은 또 누구/무엇이며, 이 둘과 성부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성자와 성령의 관계는 또 무엇인가? 이 질문은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되는 아주 초창기부터 반드시 답해야 하는 결정적인 질문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세 존재에 대한 사유는 기독교 역사 아주 초기에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것은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바이다.
성부-성자-성령의 관계, 즉 후대에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란 용어로 고정될 개념을 '증명'하기 위해 기독교가 인용해 온 {구약성서}의 구절들은 일단 배제하고, 그저 AD 2세기 중반 무렵까지 '보편교회'가 정경으로 명시하고 있던 {신약성서} 문서군들에서 추출할 수 있는 성부-성자-성령의 관계들에 관한 단서들만 무작위로 한번 나열해 보자.
- 단수로서의 '신'. 즉, 신은 '한 분'이다.
- 단수로서의 '아버지 (=성부)'는 성자 및 성령과 구별되는 한 존재이다.
- 단수로서의 '아들 (=성자)'는 성부 및 성령과 구별되는 한 존재이다.
- 단수인 '성령'은 성부 및 성자와 구별되는 한 존재이다.
- 성부는 불가해하다. 피조물은 그를 이해할 수 없다.
- 성부의 목소리를 듣거나 그의 모습 (에이도스, εἶδος)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성자 만이 성부를 알고, 사람들에게 그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
- (개인 속의 영 만이 그 개인의 생각을 알 수 있듯), 성령 (=신의 영)만이 성부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다.
- 성자를 본 자는, 또한 성부를 본 것이다.
- 성령은 성자를 증거한다.
- 많은 {신약성서} 문서 속에서 '신'은 문맥상 대체로 '성부'를 뜻한다.
- 성자도 가끔 '신'으로 진술된다.
- 성자는 신의 '로고스', 즉 '말씀이다'.
- 성자는 성부의 '본체' (휘포스타시스, ὑπόστᾰσις)가 '각인된 형상' (카락텔, χαρακτήρ)이다.
- 성자는 성부의 형상/모습/본체/실체 (모르페, μορφῇ)이다.
- 성령은 '성자/예수'와는 독자적인 존재이다.
- 성령은 동시에 종종 '신의 영'이다.
- 성령은 또 '성부의 영'이다.
- 성령은 또 '성자의 영'이기도 하다.
- 성령은 성자와 "동종이지만 다른 (=알로스 ἄλλος)" 파라클레토스/보혜사/위로자다.
- 성부는 성자를 '낳았다'.
- 성령은 성부'로부터 온다'
- 성자/예수는 성부에게로부터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한다.
- 유대교/기독교의 관점에서 "경배"는 '참 신'에게만 바쳐질 수 있다.
- 성부는 '유일한 신'으로 경배받는다.
- 성자는 경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
- 성자는 성부처럼 '경배'받는다.
- '신'은 창조자이다.
- 성부는 창조자이다.
- 성자는 만물을 창조하고, 피조세계를 보존한다
- (성령도 창조에 참여한다.)
- 성자/예수와 성부는 '하나'다.
- 성자/예수는 성부 안에, 성부는 성자 안에 있다.
- 성부는 성자/예수보다 '크다'.
- (예수에 따르면), 성부는 성자/예수의 '아버지/아바/파테르'이자 인간들의 '아버지/아바/파테르'이다.
- 예수는 성부의 "독생한 아들"이고, 신자는 성자를 통해 성부의 "양자"가 된다.
- (예수에 따르면), 성부는 성자/예수의 '신/엘로힘/알라하/테오스'이자 인간들의 '신/엘로힘/알라하/테오스'이다.
- 히브리 (=구약)성서에서 '엘로힘'은 반드시 '신'을 뜻하지는 않고, 문맥에 따라 신, 왕, 재판관, 메시아가 될 수 있다. 즉, '야훼'는 물론 '엘로힘'이지만, '엘로힘'이 늘 '야훼'는 아니다. 가령, 엘리야는 {열왕기상} 18:21에서 "야훼 (יְהוָ֤ה / κύριος / Dominus )가 엘로힘 (הָֽאֱלֹהִים֙ / ὁ θεός / Deus)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엘로힘이)라면 그를 따르라"며 이스라엘인들에게 선택을 촉구한다. 따라서 "야훼 엘로힘"은 "야훼라 불리는 엘로힘" 혹은 "우리의 엘로힘은 야훼다"라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 기타등등
기독교 교부들은 {성서}에서 추출된 이런 단서들에 우선적으로 근거해 자신들의 신관을 정립했다. 그래서 여러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철학적 사유가 그리스 철학의 용어와 개념에서 많은 것을 빌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신관 그 자체는 {성서}에 등장하는 단서들에 뿌리를 두어야 했고, 이에 기초하지 않은 사유들은 (보편교회) 교부들에 의해 이단으로 배척되게 된다. 즉, 기독교 신학과 사유의 근거가 "성서의 구절"에서 비롯해야 하고 또 그것에 의해 입증되어야 하며, 또 그것을 넘어서서는 않된다는 관점은 '보편교회'의 기본 이념이었다. 이 허용치를 넘어서게 될 때의 위험성은 AD 1세기 말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그노시스 계열 이단들이나 AD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신학자 오리게네스 본인이 스스로 보여주었다.
흡사 훗날의 프로테스탄트들의 성서관인 "솔라 스크립투라 / SOLA SCRIPTURA / 오직 성서로" 처럼 들리는 이 관점을 AD 2/3세기의 로마 사제 히폴리투스는 소아시아에서 양태론을 주창했던 스미르나 사제 노에투스의 그리스도론을 반박하면서 {노에투스 반박}에서 성부-성자-삼위의 구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노에투스 식의 양태론은 엄격한 일신론의 형식을 취하며, 유일한 신 (성부)가 자신이 인간 예수 안에 성자로서 머물고 활동했으며 다만 그 양태를 달리했다는 설명이다.
8. Many other passages, or rather all of them, attest the truth. A man, therefore, even though he will it not, is compelled to acknowledge God the Father Almighty, and Christ Jesus the Son of God, who, being God, became man, to whom also the Father made all things subject, Himself excepted, and the Holy Spirit; and that these, therefore, are three. But if he desires to learn how it is shown still that there is one God, let him know that His power is one. As far as regards the power, therefore, God is one. But as far as regards the economy there is a threefold manifestation, as shall be proved afterwards when we give account of the true doctrine. In these things, however, which are thus set forth by us, we are at one. For there is one God in whom we must believe, but unoriginated, impassible, immortal, doing all things as He wills, in the way He wills, and when He wills. What, then, will this Noetus, who knows nothing of the truth, dare to say to these things? And now, as Noetus has been confuted, let us turn to the exhibition of the truth itself, that we may establish the truth, against which all these mighty heresies have arisen without being able to state anything to the purpose.
8. 성서의 다른 구절들, 사실은 모든 구절들이 진리를 입증한다. 그래서 어느 누구나 전능한 성부와, 신으로서 인간이 되셨고 성부께서 성부 자신을 제외하면 모든 만물을 복종시키신 성자인 그리스도 예수와, 또한 성령이란 이 세 존재를 싫더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셋이 계시는 것이다. 이 세 분이 어떻게 한 신으로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 그가 알고싶어 한다면, 신의 능력은 하나라는 점을 그에게 주지시키자. 능력에 관한 한, 그래서 신은 한 분이다. 그러나 경세에 관한 한 그는 우리의 참된 교리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세 존재로 드러내신다 ....[후략]
9. There is, brethren, one God, the knowledge of whom we gain from the Holy Scriptures, and from no other source. For just as a man, if he wishes to be skilled in the wisdom of this world, will find himself unable to get at it in any other way than by mastering the dogmas of philosophers, so all of us who wish to practise piety will be unable to learn its practice from any other quarter than the oracles of God. Whatever things, then, the Holy Scriptures declare, at these let us took; and whatsoever things they teach, these let us learn; and as the Father wills our belief to be, let us believe; and as He wills the Son to be glorified, let us glorify Him; and as He wills the Holy Spirit to be bestowed, let us receive Him. Not according to our own will, nor according to our own mind, nor yet as using violently those things which are given by God, but even as He has chosen to teach them by the Holy Scriptures, so let us discern them.
9. 형제들이여, 오직 한 신만 계신다. 우리는 이 지식을 성서로 부터 얻었고, 다른 어디서 얻지 않았다. 세상의 지식에 통달하고자 하는 이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통달하는 것 이 외에 그 지식을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건을 훈련하길 원하는 우리 모두 역시 신의 계시 이외의 것에서 이것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이다. 성서가 선언하는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도록 하자. 성서가 가르치는 무엇이나 배우도록 하자. 성부께서 원하시는 믿음대로 믿도록 하자. 성부께서 성자를 영광스럽게 하시길 원하셨다면 우리도 성자께 영광을 돌리자. 성부께서 성령을 우리게게 주셨다면 성령을 받아들이자. 우리 자신의 의지로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가 아니라,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것들을 오용하지 말고 성부께서 성서로서 그것들을 가르치고자 하셨다면 그것을 인정하도록 하자... ---- 히폴리투스, {노에투스 반박} / 번역: 최광민
몇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신약성서} 속의 문서군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바울의 편지들이다.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믿어온 것처럼 바울이 이들 편지들의 진짜 저자라면 이들 편지는 그가 처형당한 AD 67년 이전에 작성되었어야 한다. 이것은 예수의 처형으로부터 한 세대 안에 이들 문서가 작성되고 열람되었다는 뜻이다. 이 문서들이 바울의 진품이 아니라 "바울계 기독교"의 내부문서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조차 이 문서군의 저술시점을 늦춰잡아도 AD 80년 경 까지로 잡는다.
소아시아 지역의 콜로사이인들에게 보낸 {골로새서}는 AD 50년대, 저자가 확정되지 않은 (아마도 유대인들의 대상으로 하는) {히브리서}의 경우는 보다 논쟁적이긴 하지만, (로마 주교 클레멘스의 저작이라보고) 늦춰 잡아도 역시 AD 100년 이전에 작성/회람되었다고 본다.
그럼 기독교가 시작되고 한 세대 혹은 1.5 세대 안에 회람된 문서들에서 예수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15 ὅς ἐστιν 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 τοῦ ἀοράτου, πρωτότοκος πάσης κτίσεως, 16 ὅτι ἐν αὐτῶ ἐκτίσθη τὰ πάντα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καὶ ἐπὶ τῆς γῆς, τὰ ὁρατὰ καὶ τὰ ἀόρατα, εἴτε θρόνοι εἴτε κυριότητες εἴτε ἀρχαὶ εἴτε ἐξουσίαι· τὰ πάντα δι᾽ αὐτοῦ καὶ εἰς αὐτὸν ἔκτισται, 17 καὶ αὐτός ἐστιν πρὸ πάντων καὶ τὰ πάντα ἐν αὐτῶ συνέστηκεν.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존속합니다…” -- 한국어 표준새번역. {골로새서} 1장 15-17
2 ἐπ᾽ ἐσχάτου τῶν ἡμερῶν τούτων ἐλάλησεν ἡμῖν ἐν υἱῶ, ὃν ἔθηκεν κληρονόμον πάντων, δι᾽ οὖ καὶ ἐποίησεν τοὺς αἰῶνας· 3 ὃς ὢν ἀπαύγασμα τῆς δόξης καὶ χαρακτὴρ τῆς ὑποστάσεως αὐτοῦ, φέρων τε τὰ πάντα τῶ ῥήματι τῆς δυνάμεως αὐτοῦ, καθαρισμὸν τῶν ἁμαρτιῶν ποιησάμενος ἐκάθισεν ἐν δεξιᾷ τῆς μεγαλωσύνης ἐν ὑψηλοῖς,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하나님의 본바탕의 본보기이시요,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 한국어 표준새번역, {히브리서} 1장 2-3절
AD 52-62년 사이 필리피 (=빌립보)의 기독교인들에게 보낸 친서로 공히 인정되는 바울의 편지에서는 인간으로 오기 전과 부활 이후의 예수 (=성자)는 이렇게 묘사된다.
5 τοῦτο φρονεῖτε ἐν ὑμῖν ὃ καὶ ἐν χριστῶ ἰησοῦ, 6 ὃς ἐν μορφῇ θεοῦ ὑπάρχων οὐχ ἁρπαγμὸν ἡγήσατο τὸ εἶναι ἴσα θεῶ, 7 ἀλλὰ ἑαυτὸν ἐκένωσεν μορφὴν δούλου λαβών, ἐν ὁμοιώματι ἀνθρώπων γενόμενος· καὶ σχήματι εὑρεθεὶς ὡς ἄνθρωπος 8 ἐταπείνωσεν ἑαυτὸν γενόμενος ὑπήκοος μέχρι θανάτου, θανάτου δὲ σταυροῦ. 9 διὸ καὶ ὁ θεὸς αὐτὸν ὑπερύψωσεν καὶ ἐχαρίσατο αὐτῶ τὸ ὄνομα τὸ ὑπὲρ πᾶν ὄνομα, 10 ἵνα ἐν τῶ ὀνόματι ἰησοῦ πᾶν γόνυ κάμψῃ ἐπουρανίων καὶ ἐπιγείων καὶ καταχθονίων, 11 καὶ πᾶσα γλῶσσα ἐξομολογήσηται ὅτι κύριος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εἰς δόξαν θεοῦ πατρός. --- 그리스어, {빌립보서} 2:5-11
5 Hoc enim sentite in vobis, quod et in Christo Jesu: 6 qui cum in forma Dei esset, non rapinam arbitratus est esse se æqualem Deo: 7 sed semetipsum exinanivit, formam servi accipiens, in similitudinem hominum factus, et habitu inventus ut homo. 8 Humiliavit semetipsum factus obediens usque ad mortem, mortem autem crucis. 9 Propter quod et Deus exaltavit illum, et donavit illi nomen, quod est super omne nomen: 10 ut in nomine Jesu omne genu flectatur cælestium, terrestrium et infernorum, 11 et omnis lingua confiteatur, quia Dominus Jesus Christus in gloria est Dei Patris. --- 라틴어 불가타 {빌립보서} 2:5-11
2:5 You should have the same attitude toward one another that Christ Jesus had, 2:6 who though he existed in the form of God did not regard equality with God as something to be grasped, 2:7 but emptied himself by taking on the form of a slave, by looking like other men, and by sharing in human nature. 2:8 He humbled himself, by becoming obedient to the point of death – even death on a cross! 2:9 As a result God exalted him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2:10 so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will bow –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 2:11 and every tongue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 영어 NET, {빌립보서} 2:5-11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그는 하나님의 모습 (μορφῇ, 형체, 실체)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 한국어 새번역, {빌립보서} 2:5-11
이 편지 속에 묘사된 예수는 "그저 인간"인가?
이들 문서에 따르면 인간 예수가 되기 전의 성자는 성부의 형체/본체/형상으로 성부와 더불어 "세상의 창조자"였을 뿐 아니라, 세상이 바로 "그를 위해" 창조되었다. 여기 어디로부터 "예수는 한 명의 인간이었을 뿐"이란 주장이 유도될 수 있을까? 뒤에 설명하겠지만, 아리우스파 주교들 역시 예수를 "세상의 창조자"이자 심지어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장면에 등장하는) 또 다른 "야훼"로 믿었다.
한편, {요한복음서} 1장 18절은 사본에 따라 인간이 되기 전의 예수/성자/로고스를 "μονογενὴς θεὸς / 모노게네스 테오스 / 독생하신 (~유일한) 신", 혹은 "ὁ μονογενὴς υἱός / 호 모노게네스 휘오스 / 독생하신 아들)로 적혀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대 사본들은 '신 / θεὸς'과 '아들/성자 / υἱός'을 표기하는 경우 성서에 등장하는 거룩한 이름/명사 (=nomina sacra)의 표기관례에 따라 θεὸς/신은 ΘΣ, υἱός'/성자/아들은 ΥΣ로 표기하는데, 이럴 경우 단 한 글자만 차이가 나기 때문에 후대의 필사자들이 필사오류를 범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대체로 어려운 독법이 원전에 있는 경우 쉽게 읽히도록 렌더링했을 것이란 가정을 취하는 사본학자들은 해당 본문에서 θεὸς로 읽는 독법이 더 어렵기 때문에 이 독법이 더 원전을 반영한다고 여기며, 사본적인 증거도 부분적으로 이를 지지한다. 모노게네스 테오스"가 일반적으로 더 오래된 (알렉산드리아 계열) 사본에 등장한다 이럴 경우 독법은 아래와 같이 된다.
18 θεὸν οὐδεὶς ἑώρακεν πώποτε· μονογενὴς θεὸς (혹은 ὁ μονογενὴς υἱός) ὁ ὢν εἰς τὸν κόλπον τοῦ πατρὸς ἐκεῖνος ἐξηγήσατο. --- 그리스어 GNT
1:18 No one has ever seen God. The only one, himself God (그 자신이 신인 독생자), who is in closest fellowship with the Father, has made God known. -- 영어 NET, {John}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한국어 개역개정, {요한복음}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복음} 1:18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 한국어 공동번역, {요한의 복음서}
이 복음서 속에 묘사된 로고스/성자가 육화한 예수는 "그저 인간"인가? 그럼 같은 저자가 진술하고 있는 그 첫 세 절을 읽어보자.
그리스어
1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2 οὖτος ἦν ἐν ἀρχῇ πρὸς τὸν θεόν. 3 πάντα δι᾽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καὶ χωρὶς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οὐδὲ ἕν. ὃ γέγονεν
시리아어 {페쉬타}
라틴어 {불가타} in principio erat Verbum et Verbum erat apud Deum et Deus erat Verbum hoc erat in principio apud Deum omnia per ipsum facta sunt et sine ipso factum est nihil quod factum est …
한국어 {표준새번역}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 (호 로고스)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스어 원문을 문자적으로 (영어식 관사를 사용해) 직역하면 아래와 같이 번역될 수도 있을 것이다.
1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태초에 "그 로고스" (ὁ λόγος, 호 로고스)가 있었다. 그 로고스는 "그 신" (= τὸν θεόν 톤 테온)과 함께 있었다. 그 로고스 (ὁ λόγος)는 (관사없이) 신 (=θεὸς 테오스)이었다
여기서 '로고스'인 성자/예수는 성부와 구별되는 존재이다. 그런 로고스와 또한 '신'이라면 무슨 의미일까? 혹자 (가령, 여호와의 증인)는 여기서 '성자'인 '그 로고스'는 '한 신, a god'이지 '그 신, the God' - 즉, 유대교의 유일자로서의 신 - 이 아니라고 풀이할 것이다. 즉, 예수는 '로고스'이고 '한 신' 혹은 '신적 존재'이지만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유일신 야훼는 아니란 것이다.
물론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70인역}의 대부분 용례에서 신 (θεὸς)이 야훼에게 적용될 때 정관사가 붙은 ὁ θεὸς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약성서}의 그리스어에서 신 (θεὸς) 앞에 정관사가 붙었다고 해서 (즉, ὁ θεὸς) 이 "신"이 자동적으로 유대교의 유일신 야훼을 말하거나, 혹은 기독교의 성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이 코린트인들에게 보낸 두번째 서한의 한 구절에서는 앞에서는"사탄"이 ὁ θεὸς로 등장하고, 성부인 신이 역시 뒤에서 ὁ θεὸς의 소유격 형태 τοῦ θεοῦ 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 한 문장 안에 ὁ θεὸς는 사탄을 말하기도 하고, 성부를 말하기도 한다. 아울러 관사없는 θεὸς가 '성부'나 (유대교/기독교의) "신"을 뜻하는 경우도 많이 발견된다. 그래서 사용된 용례와 문맥이 중요하다. {요한의 복음서} 1:1절에 등장하는 ὁ θεὸς나 θεὸς 모두 문맥상 사탄이나 천사일 가능성은 제외된다.
읽어보자.
4 ἐν οἷς ὁ θεὸς τοῦ αἰῶνος τούτου ἐτύφλωσεν τὰ νοήματα τῶν ἀπίστων εἰς τὸ μὴ αὐγάσαι τὸν φωτισμὸν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τῆς δόξης τοῦ χριστοῦ, ὅς ἐστιν 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
4 in quibus Deus hujus sæculi excæcavit mentes infidelium, ut non fulgeat illis illuminatio Evangelii gloriæ Christi, qui est imago Dei.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 (=사탄)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τοῦ θεοῦ) 형상이니라 -- 한국어 개역개정, {고린도 후서} 4:4
한편, 메시아의 출현에 관한 가장 많은 예언이 집결된 구약성서 {이사야} 9:6절은 기독교도들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메시아 예수의 예언으로 간주해 온 구절이다. 이 구절에서 이 메시아는 히브리어 사본들에서는 (다양한 독법이 가능한) Pele-joez-el-gibbor-Abi-ad-sar-shalom로 불리는데, 이 중 하나인 "엘-기보르 אֵ֣ל גִּבּ֔וֹר"는 "능력있는/강한 신"으로 주로 읽힌다.
우선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과 이를 현대 영어로 번역한 번역본을 읽어본다.
5 כִּי־יֶ֣לֶד יֻלַּד־לָ֗נוּ בֵּ֚ן נִתַּן־לָ֔נוּ וַתְּהִ֥י הַמִּשְׂרָ֖ה עַל־שִׁכְמ֑וֹ וַיִּקְרָ֨א שְׁמ֜וֹ פֶּ֠לֶא יוֹעֵץ֙ אֵ֣ל גִּבּ֔וֹר אֲבִיעַ֖ד שַׂר־שָׁלֽוֹם׃ --- 히브리어 {맛소라} 시본
5 For a child is born unto us, a son is given unto us; and the government is upon his shoulder; and his name is called Pele-joez-el-gibbor-Abi-ad-sar-shalom; -- JPS 1917
우리 가운에 한 엘레드(아기)가 태어났고, 한 벤(아기)가 주어졌다.미스자(권세)가 그 어깨에 주어졌고, 그의 이름은 펠레 (경이)-요에즈 (조언자),-엘 기보르 (능력의 신)-아비 아드 (영원의 소유자/아버지)-사르 샬롬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이다 --- {JPS} / 번역: 최광민
혹은 히브리어 성서의 아람어 평역 가운데 예언서들을 포함하는 요나단 벤 우찌엘의 {이사야 탈굼}을 살펴보자 (http://cal1.cn.huc.edu/). 랍비 전통 (미쉬나)에 따르면, (바울이 사사했던 랍비 가말리엘의 조부인) 랍비 힐렐을 사사한 랍비 요나단은 AD 10년 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망했다. 그렇다면 이 "한 아이"를 미래에 도래할 "메시아"로 보는 해석은 기독교가 시작되기 최소한 한 세대 전 (최소한 힐렐 계통의) 유대교 바리사이 (바리새)파에 의해 수용된 해석이란 뜻이 된다.
אְמַר נְבִיָא לְבֵית דָוִיד אְרֵי רָבֵי״רביא#3#״ אִתיְלֵיד לַנָא בַר אִתיְהֵיב לַנָא וְקַבֵיל אוֹרָיתָא עְלוֹהִי לְמִיטְרַה וְאִתקְרִי שְמֵיה מִן קְֹדָם מַפלִי״מַפלִיא#3#״ עֵיצָא אְלָהָא גִיבָרָא קַייָם עָלְמַיָא מְשִיחָא דִשלָמָא יִסגֵי עְלַנָא בְיוֹמוֹהִי׃
6 The prophet said to the house of David, For unto us a Child is born, unto us a Son is given, and He has taken the law up Himself to keep it. His name is called from eternity, Wonderful, The Mighty God, who liveth to eternity, The Messiah, whose peace shall be great upon us in His days. --- C. W. H. Pauli, {The Chaldee Paraphrase of the Prophet Isaiah}
예언자 (=이사야)는 다윗의 가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운데 한 아기가 태어나고, 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 (=아기)는 스스로 율법을 지킬 것이다. 그의 이름은 영원 전부터 경이, 영원히( עָלְמַיָא) 사시는 (קַייָם) 강한 (גִיבָרָא) 신 (אְלָהָא), 그의 날에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하실 메시아(מְשִיחָא)라 불린다.... / 최광민 / 영어에서 중역
이번에는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어 번역인 서력 기원 전의 {LXX, 70인역}과, AD 2-4세기에 유통되던 아퀼라 등에 의한 새로운 그리스어 번역들에서 인용한다. 이 구절의 그리스어 버전은 AD 4세기 무렵까지 다양한 독법과 변화형이 있었던 듯 하다. AD 4세기의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의 설명에 따라 '엘-기보르'를 전후한 그리스어 번역본의 차이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LXX 다수(공인)사본
- μεγάλης βουλῆς ἄγγελος 뒤에 이어지는 "엘-기보르" 부분이 없음 --
- LXX 소수사본
- θεὸς ἰσχυρός = 강한 신
- 아퀼라 (Aquila) 번역
- ἰσχυρός, δυνατός = 강한 자, 권능자
- AD 4 세기 무렵 유대인들에게 유통되던 아퀼라 번역
- ἰσχυρός, δυνατός = 강한 자, 권능자
- 심마코스 (Symmachus) 번역
- ἰσχυρός, δυνατός = 강한 자, 권능자
- 테오도티노스 (Theodotion) 번역
- ἰσχυρός, δυνάστης = 강한 자, 권능자
그럼 유세비우스의 진술을 직접 읽어보자.
5 ὅτι παιδίον ἐγεννήθη ἡμῖν, υἱὸς καὶ ἐδόθη ἡμῖν, οὗ ἡ ἀρχὴ ἐγενήθη ἐπὶ τοῦ ὤμου αὐτοῦ, καὶ καλεῖται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Μεγάλης βουλῆς ἄγγελος· ἐγὼ γὰρ ἄξω εἰρήνην ἐπὶ τοὺς ἄρχοντας, εἰρήνην καὶ ὑγίειαν αὐτῷ.. -- 그리스어 {LXX} / 다수공인본
“...and as some of the copies have, "Wonderful Counsellor, Mighty God, Potentate, Prince of Peace, Father of the World to Come."...” -- Eusebius of Caesarea: Demonstratio Evangelica. Tr. W.J. Ferrar (1920) -- Book 7 CHAPTER 1 (b)
“...καὶ ὥς τινα τῶν ἀντιγράφων ἔχει, «θαυμαστὸς σύμβουλος, θεὸς ἰσχυρός, ἐξουσιαστής, ἄρχων εἰρήνης, πατὴρ τοῦ μέλλοντος αἰῶνος»,...” AD 2-3세기 {LXX} 소수사본
“...Et vocatur nomen ejus magni consilii angelus admirabilis consiliarius Deus fortis potentiam habens principes pacis pater futuri saeculi...” -- 라틴어
“...In the Hebrew, as Aquila says: "For unto us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and a measure was upon his shoulders. And his name was called Wonderful Counsellor, Mighty, Powerful, Father, even Prince of Peace, and of his peace there is no end."-- Eusebius of Caesarea: Demonstratio Evangelica. Tr. W.J. Ferrar (1920) -- Book 7 CHAPTER 1 (b)
7.1.136 κατὰ δὲ τὸ Ἑβραϊκόν, ὡς ὁ μὲν Ἀκύλας φησίν· «ὅτι παιδίον ἐγεννήθη ἡμῖν, υἱὸς ἐδόθη ἡμῖν, καὶ ἐγένετο μέτρον ἐπ' ὤμου αὐτοῦ. καὶ ἐκάλεσεν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θαυμαστὸς σύμβουλος, ἰσχυρός, δυνατός, πατὴρ ἔτι, ἄρχων εἰρήνης, καὶ τῆς εἰρήνης αὐτοῦ οὐκ ἔστιν πέρας»,-- AD 2-3세기 히브리어 그리스 번역
“...But who can this be who, in Aquila's version and those even now current among the Hebrews, is "begotten among men, and become a child, Wonderful and Strong, Counsellor, Powerful, and Father, yea even Prince of peace, Whose peace, he says, will never end?" -- Eusebius of Caesarea: Demonstratio Evangelica. Tr. W.J. Ferrar (1920) -- Book 7 CHAPTER 1 (b)
7.1.139 τίς δ' ἂν οὖν γένοιτο κατὰ μὲν τὸν Ἀκύλαν καὶ τὰς εἰσέτι νῦν φερομένας παρ' Ἑβραίοις μαρτυρίας ἐν ἀνθρώποις γεννώμενος, καὶ «παιδίον» γινόμενος, «θαυμαστὸς σύμβουλος» καὶ «ἰσχυρός», «δυνατός», καὶ «πατὴρ ἔτι», καὶ «ἄρχων εἰρήνης», ἧς εἰρήνης οὔποτέ φησιν ἔσεσθαι τέλος, --- AD 3-4세기 유통 중인 아퀼라 번역
“...And as Symmachus: "For a youth is given to us, a son is given us; and his instructions shall be upon his shoulders, and his name shall be called Miraculous, Counselling, Strong, Powerful, Eternal Father, Prince of Peace, and of his (b) peace there is no end." -- Eusebius of Caesarea: Demonstratio Evangelica. Tr. W.J. Ferrar (1920) -- Book 7 CHAPTER 1 (b)
7.1.137 ὡς δὲ ὁ Σύμμαχος· «νεανίας γὰρ ἐδόθη ἡμῖν, υἱὸς ἐδόθη ἡμῖν. καὶ ἔσται ἡ παιδεία αὐτοῦ ἐπὶ τοῦ ὤμου αὐτοῦ, καὶ κληθήσεται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παραδοξασμός, βουλευτικός, ἰσχυρός, δυνατός, πατὴρ αἰῶνος, ἄρχων εἰρήνης, καὶ τῆς εἰρήνης αὐτοῦ οὐκ ἔστιν πέρας». AD 2세기 말 심마코스 버전 {LXX}
“...or in that of Symmachus, "Miraculous, Counselling, Strong, Powerful, Eternal Father, Prince of peace, and that endless and infinite"...” -- Eusebius of Caesarea: Demonstratio Evangelica. Tr. W.J. Ferrar (1920) -- Book 7 CHAPTER 1 (b)
“...κατὰ δὲ τὸν Σύμμαχον «παραδοξασμός, βουλευτικός, ἰσχυρός, δυνατός, πατὴρ αἰῶνος, ἄρχων εἰρήνης», καὶ ταύτης ἀπείρου καὶ ἀτελευτήτου,...” -- 심마코스 이본
“...or in Theodotion's "Counselling wonderfully, Strong, Powerful, Father, Prince of peace, for increasing instruction, of Whose peace there is no end."...” -- Eusebius of Caesarea: Demonstratio Evangelica. Tr. W.J. Ferrar (1920) -- Book 7 CHAPTER 1 (b)
“...καὶ κατὰ Θεοδοτίωνα «θαυμαστῶς βουλεύων, ἰσχυρός, δυνάστης, πατήρ, ἄρχων εἰρήνης, τῷ πληθύνειν τὴν παιδείαν, οὗ τῆς εἰρήνης οὐκ ἔστιν πέρας»; --- AD 150년 경 Theodoption 번역
For a child is born to us, and a son is given to us, whose government is upon his shoulder: and his name is called the Messenger of great counsel: [e] for I will bring peace upon the princes, and health to him. --- LXX 영어번역 1851 tr. Sir Lancelot C.L. Brenton
다음으로는 AD 4/5세기에 활동한 히에로니무스가 그리스어 번역을 중역하지 않고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한 라틴어 {불가타}와 다양한 영어 (및 한국어) 번역으로 내용을 읽어보자.
Parvulus enim natus est nobis,et filius datus est nobis,et factus est principatus super humerum ejus:et vocabitur nomen ejus, Admirabilis, Consiliarius, Deus, Fortis, Pater futuri sæculi, Princeps pacis. --- 라틴어 {불가타}
For unto us a child is born, unto us a son is given: and the government shall be upon his shoulder: and 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lor, The mighty God, The everlasting Father, The Prince of Peace. --- KJV
6 For a Child hath been born to us, A Son hath been given to us, And the princely power is on his shoulder, And He doth call his name Wonderful, Counsellor, Mighty God, Father of Eternity, Prince of Peace.--- YLT
9:6 For a child has been born to us, a son has been given to us. He shoulders responsibility and is called: Extraordinary Strategist,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 NET
6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 한국어 {새번역}
아마도 예수의 "신성"에 대한 {신약성서}의 가장 흥미로운 자료는 {요한의 계시록}에 등장하는 일련의 표현인 "알파와 오메가" 혹은 "처음이자 끝"일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이 표현은 성부 및 성자(=예수)에게만 적용된다.
1:7 ἰδοὺ ἔρχεται μετὰ τῶν νεφελῶν, καὶ ὄψεται αὐτὸν πᾶς ὀφθαλμὸς καὶ οἵτινες αὐτὸν ἐξεκέντησαν, καὶ κόψονται ἐπ᾽ αὐτὸν πᾶσαι αἱ φυλαὶ τῆς γῆς. ναί, ἀμήν 1:8 ἐγώ εἰμι τὸ ἄλφα καὶ τὸ ὦ, (ἀρχὴ καὶ τέλος 혹 ἡ ἀρχὴ καὶ τὸ τέλος), λέγει κύριος (ὁ θεός),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ὁ παντοκράτωρ.
그(=예수)는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를 찌른 자들도 그를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민족들이 그 분으로 인해 가슴을 칠 것이다. 반드시 그리되리라. 아멘. 지금 계시고, 이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전능자 (= ὁ παντοκράτωρ) 주님 (κύριος 혹은 주 하느님 κύριος ὁ θεός)이 말씀하셨다: 나는 알파이자 오메가, (+ 시작이자 끝 / 긴 독법)이다. --- {요한 계시록} 1:7-8
17 καὶ ὅτε εἶδον αὐτόν, ἔπεσα πρὸς τοὺς πόδας αὐτοῦ ὡς νεκρός· καὶ ἔθηκεν τὴν δεξιὰν αὐτοῦ ἐπ᾽ ἐμὲ λέγων, μὴ φοβοῦ· ἐγώ εἰμι ὁ πρῶτος καὶ ὁ ἔσχατος, 18 καὶ ὁ ζῶν, καὶ ἐγενόμην νεκρὸς καὶ ἰδοὺ ζῶν εἰμι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 καὶ ἔχω τὰς κλεῖς τοῦ θανάτου καὶ τοῦ ᾅδου.
그 (=예수)를 뵐 때에, 내가 그의 발 앞에 엎어져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니, 그가 내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살아 있는 자다. 나는 한 번은 죽었으나, 보아라,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있어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 계시록} 1:17-18
8 καὶ τῶ ἀγγέλῳ τῆς ἐν σμύρνῃ ἐκκλησίας γράψον· τάδε λέγει ὁ πρῶτος καὶ ὁ ἔσχατος, ὃς ἐγένετο νεκρὸς καὶ ἔζησεν·
또 스미르나 교회의 천사 (사자 / 전령)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어라: "처음이며 마지막이며 죽었었지만 살아 계신 분 (=예수)이 말씀하신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 계시록} 2:8
5 καὶ εἶπεν ὁ καθήμενος ἐπὶ τῶ θρόνῳ, ἰδοὺ καινὰ ποιῶ πάντα. καὶ λέγει, γράψον, ὅτι οὖτοι οἱ λόγοι πιστοὶ καὶ ἀληθινοί εἰσιν. 6 καὶ εἶπέν μοι, γέγοναν. ἐγώ [εἰμι] τὸ ἄλφα καὶ τὸ ὦ, ἡ ἀρχὴ καὶ τὸ τέλος. ἐγὼ τῶ διψῶντι δώσω ἐκ τῆς πηγῆς τοῦ ὕδατος τῆς ζωῆς δωρεάν. 7 ὁ νικῶν κληρονομήσει ταῦτα, καὶ ἔσομαι αὐτῶ θεὸς καὶ αὐτὸς ἔσται μοι υἱός.8 τοῖς δὲ δειλοῖς καὶ ἀπίστοις καὶ ἐβδελυγμένοις καὶ φονεῦσιν καὶ πόρνοις καὶ φαρμάκοις καὶ εἰδωλολάτραις καὶ πᾶσιν τοῖς ψευδέσιν τὸ μέρος αὐτῶν ἐν τῇ λίμνῃ τῇ καιομένῃ πυρὶ καὶ θείῳ, ὅ ἐστιν ὁ θάνατος ὁ δεύτερος.
그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 (=성부 / 필자 주)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여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또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받을 것이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비겁한 자들과 신실하지 못한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쟁이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바다뿐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 계시록} 21:6
22:12 ἰδοὺ ἔρχομαι ταχύ, καὶ ὁ μισθός μου μετ᾽ ἐμοῦ, ἀποδοῦναι ἑκάστῳ ὡς τὸ ἔργον ἐστὶν αὐτοῦ. 22:13 ἐγὼ τὸ ἄλφα καὶ τὸ ὦ, ὁ πρῶτος καὶ ὁ ἔσχατος, ἡ ἀρχὴ καὶ τὸ τέλος. ..[중략]...22:16 ἐγὼ ἰησοῦς ἔπεμψα τὸν ἄγγελόν μου μαρτυρῆσαι ὑμῖν ταῦτα ἐπὶ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ἐγώ εἰμι ἡ ῥίζα καὶ τὸ γένος δαυίδ, ὁ ἀστὴρ ὁ λαμπρὸς ὁ πρωϊνός.
"보아라, 내 (=예수)가 곧 가겠다. 나는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려고 상을 가지고 간다. 나는 알파 ἄλφα 며 오메가 ὦ, 곧 처음 ὁ πρῶτος이며 마지막 ὁ ἔσχατος이요, 시작 ἀρχὴ이며 끝 τέλος이다. 생명 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차지하려고, 그리고 성문으로 해서 도성에 들어가려고, 자기 겉옷을 깨끗이 빠는 사람은 복이 있다. 개들과 마술쟁이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을 사랑하고 행하는 자는 다 바깥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나 예수는 나의 천사를 너희에게 보내어, 교회들에 주는 이 모든 증언을 전하게 하였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그의 자손이요, 빛나는 샛별이다." --- 한국어 공동번역, {요한 계시록} 22:12-16
"알파와 오메가" 혹은 "처음이자 나중"....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표현이 아닌가? 이 표현들은 구약성서 {이사야}에서 야훼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장면과 동일하다. 그리스어 {70인역 LXX}에서는 "끝/마지막"에 해당하는 단어가 조금씩 다르게 선택되었지만, 히브리어 원전에서는 모두 같은 단어 (אחרן אחרין)로 통일되어 있다.
41:4 τίς ἐνήργησεν καὶ ἐποίησεν ταῦτα ἐκάλεσεν αὐτὴν ὁ καλῶν αὐτὴν ἀπὸ γενεῶν ἀρχῆς ἐγὼ θεὸς πρῶτος καὶ εἰς τὰ ἐπερχόμενα ἐγώ εἰμι -- 이사야 41:4
...나는 야훼(히브리어 יהוה 그리스어 θεὸς), 처음 (히브리어 ראשׁן ראשׁון 그리스어 πρῶτος)이자 나중 (히브리어 אחרן אחרין 그리스어 ἐπερχόμενα) 이다...
44:6 οὕτως λέγει ὁ θεὸς ὁ βασιλεὺς τοῦ Ισραηλ ὁ ῥυσάμενος αὐτὸν θεὸς σαβαωθ ἐγὼ πρῶτος καὶ ἐγὼ μετὰ ταῦτα πλὴν ἐμοῦ οὐκ ἔστιν θεός --- 이사야 44:6
...만군 (צבאה צבא)의 야훼 (יהוה) (=그리스어 θεὸς σαβαωθ)가 말한다: 나는 처음 (히브리어 ראשׁן ראשׁון 그리스어 πρῶτος)이자 끝 (히브리어 אחרן אחרין 그리스어 μετὰ ταῦτα)이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
48:12 ἄκουέ μου Ιακωβ καὶ Ισραηλ ὃν ἐγὼ καλῶ ἐγώ εἰμι πρῶτος καὶ ἐγώ εἰμι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나는 시작 (히브리어 ראשׁן ראשׁון 그리스어 πρῶτος)이고 종말 (히브리어 אחרן אחרין 그리스어 εἰς τὸν αἰῶνα)이다....
기독교 초기 교부들 (가령, 히폴리투스)은 이 기록을 예수의 신성에 대한 증거로 사용했다. 이들 구절에서 예수는 무려 "전능자 ὁ παντοκράτωρ"이기 때문이다. (히폴리투스의 이해와 달리, 평이하게 읽는다면 이 구절의 "전능자"는 성부로 보는게 더 타당할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사본의 차이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가령, 비잔틴 다수사본에서 해당구절은 "Ἐγώ εἰμι τὸ Α καὶ τὸ Ω ἀρχὴ καὶ τέλος, λέγει ὁ κύριος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ὁ παντοκράτωρ"이며 여기서 화자는 예수/그리스도로도 이해될 수 있는 "주님 ὁ κύριος"이다. 반면, 현대 사본학의 편집사본인 {네슬레-알란드} 27판 (NA27)에서는 "Ἐγώ εἰμι τὸ ἄλφα καὶ τὸ ὦ, λέγει κύριος ὁ θεός,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ὁ παντοκράτωρ", 즉 화자가 대체로 성부를 뜻하는 "주 하느님 κύριος ὁ θεός"으로 되어 있기 때문. 아무튼 히폴리투스가 사용한 그리스어 사본에서는 비잔틴 다수사본에서 처럼 화자가 "주님"이며, 따라서 히폴리투스는 이 화자를 '예수'로 이해했다.
Having been made man, He is still God for ever. For to this effect, John also had sai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the Almighty.' And he has appropriately called Christ the 'Almighty' (5:225)
인간이 된 후에도 그리스도는 여전히 영원히 신이시다. 이것에 대해 요한(계시록)은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 --- 곧 전능자"라고 말한다. 요한은 적절히도 그리스도를 '전능자'로 불렀다. --- 히폴리투스,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5.225 / 번역: 최광민
이들 문서를 신앙의 기조로 받아들인 AD 1세기 중/후반~2세기의 기독교도들이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믿었다고 보긴 힘들지 않을까?
§ 나자(조)렌파, 에비온파
AD 2세기 중반의 유스티노스는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에서 AD 1세기 중반부터 존재해 온 유대교적 기독교도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의 구원문제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유대인 랍비 트리폰 (Τρύφων)에게 피력한다.
Trypho: But if some one, knowing that this is so, after he recognises that this man is Christ, and has believed in and obeys Him, wishes, however, to observe these [institutions], will he be saved?
[트리폰] 만약 이런 것을 아는 누군가가, 그가 그리스도인 것을 인정하고 믿고 섬기면서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는 구원을 받겠습니까?
Justin: In my opinion, Trypho, such an one will be saved, if he does not strive in every way to persuade other men—I mean those Gentiles who have been circumcised from error by Christ, to observe the same things as himself, telling them that they will not be saved unless they do so. This you did yourself at the commencement of the discourse, when you declared that I would not be saved unless I observe these institutions.
[유스티노스] 트리폰님, 제 생각엔 그런 사람도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에게 할례받고 오류를 벗어난 이방인들에게, 자기처럼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온갖 방법으로 강요하면서 자기처럼 모세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않는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대화 초반부에, 당신이 제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제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선언하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Trypho: Why then have you said, 'In my opinion, such an one will be saved,' unless there are some who affirm that such will not be saved?
[트리폰] 왜 '내 생각엔 그런 사람도 구원받을 것이다'라고 말하신 건가요? 그런 사람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말이죠.
[Justin] But if, Trypho, some of your race, who say they believe in this Christ, compel those Gentiles who believe in this Christ to live in all respects according to the law given by Moses, or choose not to associate so intimately with them, I in like manner do not approve of them. But I believe that even those, who have been persuaded by them to observe the legal dispensation along with their confession of God in Christ, shall probably be saved.
[유스티노스] 트리폰님, 당신의 동포 가운데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역시 동일한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더러 모세의 율법을 완벽히 따라야 한다고 강제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않는) 기독교도들과 교제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까와) 동일한 생각으로 나는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 사람들에게 설득 당하여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율법을 따르는 이들은 아마도 구원받으리라고 믿습니다. / 번역: 최광민
And I hold, further, that such as have confessed and known this man to be Christ, yet who have gone back from some cause to the legal dispensation, and have denied that this man is Christ, and have repented not before death, shall by no means be saved. Further, I hold that those of the seed of Abraham who live according to the law, and do not believe in this Christ before death, shall likewise not be saved, and especially those who have anathematized and do anathematize this very Christ in the synagogues, and everything by which they might obtain salvation and escape the vengeance of fire.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알았지만, 이 믿음에서 배교하여 율법을 지키면서 또한 그리스도를 부정하고도 죽기 전에 회개하지 않는 이는 절대 구원받지 못하리라고 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들 가운데 율법에 따라 살지만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도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봅니다. 특별히 진정한 (유대인) 기독교들을 그들의 시나고그 (유대교 회당)에서 파문해 왔고 또 현재도 파문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거나 복수의 불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봅니다--- 유스티노스, {트리폰과의 대화} #47 / 번역: 최광민
그러나 여기 등장하는 "모세율법을 따르면서도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 유대인 (+이방인) 기독교도들을 뒤에 언급할 나조렌파나 에비온파로 볼 수는 없다. 여기서 유스티노스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할 때의 의미는 '보편교회'가 믿던 것과 동일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의 창조자로서의 성자의 선재성, 성령에 의한 신의 아들 (성자) 예수의 처녀수태, 육체적 탄생, 수난,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을 포함한다.
이 글에서는 원래의 "유대교적 기독교"에서 분파해 나온 최소한 두 개의 그룹에 대해서만 설명하겠다. 그 이유는 유대교적 기독교 (이단)종파로 분류되는 나조렌파 (Nazoraean / ἡ τῶν Ναζωραίων αἵρεσι)나 거기서 다시 분파된 에비온파가 "예수를 그저 위대한 인간이자 스승으로 여겼다"고 말하는 대중적인 저작들을 종종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주장들은 원래 기독교는 (1) 예수를 예언자이자 신의 종으로 믿었지만, (2) 후대로 가면서 이교의 영향으로 예수를 점차 신격화하기 시작했다는 두가지 가정 하에, 이들 나자렌이나 에비온파가 보다 원초적인 기독교였다고 주장하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른 바 정통파와 시대적으로 나란히 존재했던 그룹이지, 이들로부터 정통파가 나온 것이 아니다.
역사적 자료에 근거해서 이들의 역사를 재구성해 보자.
교부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통칭 "나조렌파/나자렌파" 혹은 "에비온파"로 불리는 이들 그룹은 종종 그 구분이 모호해서, AD 2-5세기 동안 시대와 장소에 따라 한 이름 아래 여러 분파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유대아-사마리아 지역의 유대인 기독교 공동체에서 분파된 것으로 보이는 나조렌파는 할례나 안식일 규정같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독교도였고 마리아가 성령을 통해 예수를 잉태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최소한 몇몇 그룹은) 예수가 탄생하기 전에 "신의 로고스"로 선재했다고는 믿지 않았던 듯 싶다.
AD 4세기 교부 에피파니우스의 설명에 따르면, 나자렌파의 1세대는 사도들에 의해 개종한 유대인들 가운데 특별히 AD 70년 경의 예루살렘 멸망 전 예루살렘 북부인 펠라와 페레아로 이주한 그룹들의 후예들로, 나중에 베레아와 바샨티스에 정착하게 된 국지적 그룹이었다.
시리아 혹은 소아시아 출신으로 AD 2세기 중/후반기에 활동한 루그두눔 (=현,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는 아래와 같이 에비온파를 정의한다.
"Those who are called Ebionites agree that the world was made by God; but their opinions with respect to the Lord are similar to those of Cerinthus and Carpocrates. They use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only, and repudiate the Apostle Paul, maintaining that he was an apostate from the law. As to the prophetical writings, they endeavour to expound them in a somewhat singular manner. They practice circumcision, persist in the observance of those customs which are enjoined by the law, and are so Judaic in their style of life, that they even adore Jerusalem as if it were the house of God." (1.26) --- Adversus Haereses (Against the Heresies)
에비온파라 불리는 이들은 이 세상이 (데미우르고스 등 하급 아르콘이 아닌 / 필자 주)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은 믿는다. 그러나 주님/예수에 관한 그들의 견해는 케린토스나 카르포크라테스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들은 {마태복음서}만 사용하며, 사도 바울을 율법의 배교자라 부르며 비난한다.....[후략] ---- 루그두눔 주교 이레네우스, {이단을 반박하며} 1:26 / 번역: 최광민
"The Ebionites, [. . . . . ] assert that He [Jesus] was begotten by Joseph; thus destroying, as far as in them lies, such a marvellous dispensation of God, and setting aside the testimony of the prophets which proceeded from God.” (3.21.1.) --- Adversus Haereses (Against the Heresies)
...에비온파는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라 주장함으로써, 신의 놀라운 경세를 파괴함과 동시에 신으로부터 온 예언자들의 증언을 무시한다.... --- 루그두눔 주교 이레네우스, {이단들을 반박하며} / 번역: 최광민
"He will judge also the Ebionites; for how can they be saved unless it was God who wrought out their salvation upon earth? Or how shall man pass into God, unless God has first passed into man? And how shall he (man) escape from the generation subject to death, if not by means of a new generation, given in a wonderful and unexpected manner (but as a sign of salvation) by God — [I mean] that regeneration which flows from the virgin through faith? Or how shall they receive adoption from God if they remain in this [kind of] generation, which is naturally possessed by man in this world? And how could He (Christ) have been greater than Solomon, or greater than Jonah, or have been the Lord of David, who was of the same substance as they were? How, too, could He have subdued him who was stronger than men, who had not only overcome man, but also retained him under his power, and conquered him who had conquered, while he set free mankind who had been conquered, unless He had been greater than man who had thus been vanquished? But who else is superior to, and more eminent than, that man who was formed after the likeness of God, except the Son of God, after whose image man was created? And for this reason He did in these last days exhibit the similitude; [for] the Son of God was made man, assuming the ancient production [of His hands] into His own nature, as I have shown in the immediately preceding book." (4.33.4.) --- Adversus Haereses (Against the Heresies)
"He shall also judge those who describe Christ as [having become man] only in [human] opinion. For how can they imagine that they do themselves carry on a real discussion, when their Master was a mere imaginary being? Or how can they receive anything steadfast from Him, if He was a merely imagined being, and not a verity? And how can these men really be partaken of salvation, if He in whom they profess to believe, manifested Himself as a merely imaginary being? Everything, therefore, connected with these men is unreal, and nothing [possessed of the character of] truth; and, in these circumstances, it may be made a question whether (since, perchance, they themselves in like manner are not men, but mere dumb animals) they do not present, in most cases, simply a shadow of humanity." (4.33.5.) --- Adversus Haereses (Against the Heresies)
따라서 이들 에비온파의 신관은 (1) 물질은 저급한 것이며 (2) 물질세상의 창조자는 신 자신이 아니라 열등한 아르콘의 하나였다고 본 통상적인 그노시스들의 교리와는 차이가 있다.
AD 235년 경에 순교한 라틴교부 히폴리투스는 아래와 같이 에비온파를 설명한다.
"The Ebionaeans, however, acknowledge that the world was made by Him Who is in reality God, but they propound legends concerning the Christ similarly with Cerinthus and Carpocrates. They live conformably to the customs of the Jews, alleging that they are justified. according to the law, and saying that Jesus was justified by fulfilling the law. And therefore it was, (according to the Ebionaeans,) that (the Saviour) was named (the) Christ of God and Jesus, since not one of the rest (of mankind) had observed completely the law. For if even any other had fulfilled the commandments (contained) in the law, he would have been that Christ. And the (Ebionaeans allege) that they themselves also, when in like manner they fulfil (the law), are able to become Christs; for they assert that our Lord Himself was a man in a like sense with all (the rest of the human family)." (7.22) -- Hippolytus, {Against All Heresies}
...에비온파는 세상이 (데미우르고스나 기타 아르콘이 아닌 / 필자 주)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비로소 성령이 임해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 필자 주) 케린토스나 (예수는 원래 그냥 인간일 뿐이나 순수한 영을 통해 물질의 속박을 벗어났다는 그노시스적인 교리를 주장한 / 필자 주) 카르포크라테스의 주장과 유사한 전설들을 주장한다....그들은 또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킴으로써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들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우리 주님 본인이 모든 점에서 인간과 똑같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 히폴리투스,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 번역: 최광민
"But the Ebionaeans assert that the world is made by the true God, and they speak of Christ in a similar manner with Cerinthus. They live, however, in all respects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alleging that they are thus justified." (10.18) --- Hippolytus, {Against All Heresies}
AD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반까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활동한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On the Flesh of Christ.}에서 그리스도를 "천사"로 보는 견해를 정죄하면서, 특별히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이었으나 그 안에 천사가 임재한 것으로 본 에비온의 견해를 강하게 비난한다.
[1] But Christ, they say, bare (the nature of) an angel. For what reason? The same which induced Him to become man? Christ, then, was actuated by the motive which led Him to take human nature. Man's salvation was the motive, the restoration of that which had perished. Man had perished; his recovery had become necessary. No such cause, however, existed for Christ's taking on Him the nature of angels. [2] For although there is assigned to angels also perdition in "the fire prepared for the devil and his angels," yet a restoration is never promised to them. No charge about the salvation of angels did Christ ever receive from the Father; and that which the Father neither promised nor commanded, Christ could not have undertaken. For what object, therefore, did He bear the angelic nature, if it were not (that He might have it) as a powerful helper wherewithal to execute the salvation of man? [3] The Son of God, in sooth, was not competent alone to deliver man, whom a solitary and single serpent had overthrown! There is, then, no longer but one God, but one Saviour, if there be two to contrive salvation, and one of them in need of the other. But was it His object indeed to deliver man by an angel? Why, then, come down to do that which He was about to expedite with an angel's help? If by an angel's aid, why come Himself also? If He meant to do all by Himself, why have an angel too? He has been, it is true, called "the Angel of great counsel," that is, a messenger, by a term expressive of official function, not of nature. For He had to announce to the world the mighty purpose of the Father, even that which ordained the restoration of man. But He is not on this account to be regarded as an angel, as a Gabriel or a Michael.
그러나 그들(=이단자들)은 말하길 그리스도께서 천사의 본성을 취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왜? ...[중략]....그리스도께서 (그리스어 {이사야} 9:6절에서 / 필자 주) 위대한 성회가 보낸 천사/사자 (앙겔로스)"라고 불린 것은 사실이다. 즉, '여기서 '천사/사자/사절' 이란 그 공식적 임무를 표현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본성이 천사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성부의 뜻을 온 세상에 선포하셔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 역할을 함에 있어) 가브리엘이나 혹은 미카엘 같은 천사로 여길 수는 없다. / 번역: 최광민
[4] For the Lord of the Vineyard sends even His Son to the labourers require fruit, as well as His servants. Yet the Son will not therefore be counted as one of the servants because He undertook the office of a servant. I may, then, more easily say, if such an expression is to be hazarded, that the Son is actually an angel, that is, a messenger, from the Father, than that there is an angel in the Son. Forasmuch, however, as it has been declared concerning the Son Himself, Thou hast made Him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how will it appear that He put on the nature of angels if He was made lower than the angels, having become man, with flesh and soul as the Son of man? As "the Spirit of God." however, and "the Power of the Highest," can He be regarded as lower than the angels,----He who is verily God, and the Son of God? [5] Well, but as bearing human nature, He is so far made inferior to the angels; but as bearing angelic nature, He to the same degree loses that inferiority. This opinion will be very suitable for Ebion, who holds Jesus to be a mere man, and nothing more than a descendant of David, and not also the Son of God; although He is, to be sure, in one respect more glorious than the prophets, inasmuch as he declares that there was an angel in Him, just as there was in Zechariah.
...."하느님의 영"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권능"으로서, 어떻게 진실로 신이자 또한 신의 아들이신 그가 ({시편}의 기록에서처럼 / 필자 주) 천사들보다 낮아질 수 있을까?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취함으로써 그는 과연 천사들보다 많이 열등하게 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 필자 주) 천사의 본성을 취하게 되면 그저 천사 정도의 수준 밖에는 낮아지지 않는 것이다. 후자의 견해는 진실로 에비온에게나 어울릴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인간일 뿐이었으며 다만 다윗의 후손일 뿐 신의 아들은 아니라는 견해를 가졌다. 설령 그리스도깨서 진실로 다른 예언자들보다 더 영광스러운 점이 있다면, {즈카리아 / 스가랴 1:9 / 필자 주}의 구절에서처럼 그리스도 안에는 천사가 있었다고 에비온은 주장했다. / 번역: 최광민
[6] Only it was never said by Christ, "And the angel, which spake within me, said unto me." Neither, indeed, was ever used by Christ that familiar phrase of all the prophets, "Thus saith the Lord." For He was Himself the Lord, who openly spake by His own authority, prefacing His words with the formula,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What need is there of further argument? Hear what Isaiah says in emphatic words, "It was no angel, nor deputy, but the Lord Himself who saved them."
하지만 "내 안에서 (=곁에서) 내게 말한 천사가 내게 말했다"란 구절에서의 화자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아울러 이런 화법은 모든 예언서에 자주 등장하는 "주 (=야훼)가 말하였다"라는 식의 표현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분 자신이 신이기에 그는 드러내놓고 자신의 권위로 그의 방식에 따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말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더 무슨 논쟁이 필요하단 말인가? 예언자 이사야가 강조하면서 말한 말을 들어보라: "천사도, 대리자도 아닌, 바로 주님 (=야훼) 자신이 그들을 구원하셨다." / 번역: 최광민
---Tertulian, {On the flesh of Christ}, Chapter XIV. ----Christ Took Not on Him an Angelic Nature, But the Human. It Was Men, Not Angels, Whom He Came to Save.
여기 등장한 에비온의 주장은 히브리 성서의 예언서 {즈카리아 / 스가랴} 1장 9절에서 왔다.
9 וָאֹמַ֖ר מָה־אֵ֣לֶּה אֲדֹנִ֑י וַיֹּ֣אמֶר אֵלַ֗י הַמַּלְאָךְ֙ הַדֹּבֵ֣ר בִּ֔י אֲנִ֥י אַרְאֶ֖ךָּ מָה־הֵ֥מָּה אֵֽלֶּה׃ ---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 {즈카리아} 1:9
9 Then said I, O adoni, what are these? And the malach that spoke with me said unto me, I will show thee what these are. -- Orthodox Jewish Bible
9 καὶ εἶπα τί οὗτοι κύριε καὶ εἶπεν πρός με ὁ ἄγγελος ὁ λαλῶν ἐν ἐμοί ἐγὼ δείξω σοι τί ἐστιν ταῦτα --- 그리스어 {LXX 70인역}
9 Et dixi: Quid sunt isti, domine mi? Et dixit ad me angelus qui loquebatur in me: Ego ostendam tibi quid sint hæc. --- 라틴어 {불가타}
9 그래서 내가 물었다. "천사님, 이 말(=horse)들은 무엇입니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였다. "이 말들이 무엇을 하는지, 내가 너에게 보여 주겠다." --- 한국어 {새번역}
이 구절을 그리스어 {70인역 LXX}에서 1:1로 직역하면 예언자 즈카리아에게 말하는 천사 (히브리어 '말라크 מלאך', 그리스어 '앙겔로스')는 그 "안 (ἐν, in)에서 말하는 것처럼 번역될 수도 있다. 그러나 ἐν은 문맥에 따라 ~안에서 뿐 아니라 ~근처에서, ~곁에서로도 번역될 수 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설령 에비온의 독법이 맞다고 해도) 예언자들과 예수는 그 화법 자체가 다르다며 에비온을 반박한다. 즉, (통상적인 영적존재인) 천사들과 예언자 그리고 그리스도 모두 '신의 말을 전하기 위해 보내진 자'란 점에서는 모두 말라크 = 앙겔로스 , 즉 "천사"라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천사들과 예언자들은 '신의 말을 받아서 전달하는 단순한 전달자'이지만, 예수는 '그 자신의 권위로서 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그 본인이 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성부의 말을 전한다'는 점에서는 '천사'로 불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자신이 신이기에 자신의 권위로 말한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성자의 낮아짐'이란 점에서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 되어야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권위에 있어서는 여전히 신이었음을 설명한다. 아울러 그는 구약성서 예언서들의 화자로 등장하는 "주님", 즉 히브리어 "야훼"이자 그리스어 완곡용례로 "퀴리오스 (주님)"을 예수에게 직접 적용시켰다.
한편, AD 4세기 초반의 카리사이아 주교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에 에비온파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는 교리체계가 다소 다른 두 부류의 "에비온파"에 대해 언급한다.
"The evil demon, however, being unable to tear certain others from their allegiance to the Christ of God, yet found them susceptible in a different direction, and so brought them over to his own purposes. The ancients quite properly called these men Ebionites, because they held poor and mean opinions concerning Christ. For they considered him a plain and common man, who was justified only because of his superior virtue, and who was the fruit of the intercourse of a man with Mary. In their opinion the observance of the ceremonial law was altogether necessary, on the ground that they could not be saved by faith in Christ alone and by a corresponding life. There were others, however, besides them, that were of the same name, but avoided the strange and absurd beliefs of the former, and did not deny that the Lord was born of a virgin and of the Holy Spirit. But nevertheless, inasmuch as they also refused to acknowledge that he pre-existed, being God, Word, and Wisdom, they turned aside into the impiety of the former, especially when they, like them, endeavoured to observe strictly the bodily worship of the law. These men, moreover, thought that it was necessary to reject all the epistles of the apostle, whom they called an apostate from the law; and they used only the so-called Gospel according to the Hebrews and made small account of the rest. The Sabbath and the rest of the discipline of the Jews they observed just like them, but at the same time, like us, they celebrated the Lord’s days as a memorial of the resurrection of the Saviour. Wherefore, in consequence of such a course they received the name of Ebionites, which signified the poverty of their understanding. For this is the name by which a poor man is called among the Hebrews." (3.27)
....에비온파는 예수를 평범한 인간이었으나 그의 탁월한 덕목을 통해 의인이 되었다고 말하며 마리아와 요셉의 성관계를 통해 태어났다고 믿는다..[중략]...그러나 역시 '에비온파'라고 불리는 또 다른 그룹들은 앞에 언급한 그룹의 이상하고 불합리한 주장을 거부하며, 주님이 성령에 의해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신과 로고스와 지혜로서 선재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 {교회사} / 번역: 최광민
"As to these translators it should be stated that Symmachus was an Ebionite. But the heresy of the Ebionites, as it is called, asserts that Christ was the son of Joseph and Mary, considering him a mere man, and insists strongly on keeping the law in a Jewish manner, as we have seen already in this history. Commentaries of Symmachus are still extant in which he appears to support this heresy by attacking the Gospel of Matthew. Origen states that he obtained these and other commentaries of Symmachus on the Scriptures from a certain Juliana, who, he says, received the books by inheritance from Symmachus himself." (6.17)
팔레스티나 출신의 AD 4세기 중후반 교부 에피파니우스는 그의 역작 {파나리온}에서 이들 나조렌파가 모든 면에서 유대인과 같고 다만 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다는 점에서만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 나조렌파가 히브리 성서에 아울러 신약성서도 수용하는데, 다만 그들이 가진 히브리/아람어 {마태 복음서}이 예수의 족보 부분을 포함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진술한다. 그가 이 자료를 확보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나조렌과 에비온파의 지도급 인사를 개인적으로 알았던 에피파니우스는 (최소한 당시의) 나조렌파와 에비온파를 분명히 구분해서 진술했다.
예수의 제자 요한이 생존했던 시절에 사마리아 출신 에비온이란 인물에 의해 나자렌파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지는 에비온파는 여러가지면에서 나자렌파보다 이탈적이다. 에피파니우스의 자세한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1) 요셉을 예수의 생물학적 생부로 보았고 (즉, 요셉과 마리아의 정상적 육체관계로 인해 출생한 것으로 보았고) 결과적으로 이 예수는 인간-예수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2) 예수가 30살 무렵에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을때 천상에서 신의 첫 창조물이자 모든 천사들을 지배하는 "그리스도"가 요셉/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예수" 위에 강림하여 이제 이 "인간-예수"가 '그리스도-예수'가 된 것으로 이해했다.
에비온파는 나자렌파처럼 모세율법을 준수하기는 했지만, {구약성서} 전체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사야, 다니엘 등의 예언자들 및 일부 족장과 다윗/솔로몬 등을 무시했으며, {신약성서}에서는 자신들 버전의 {마태/히브리 복음서}를 사용하고 바울의 서신들을 배척했다 에비온파는 바울이 유대인 벤야민 부족이 아니라 부모 모두 그리스인이며, 유대교로 개종하고 대제사장의 사위가 되려했으나 청혼이 거절당하지 앙심을 품고 기독교도로 변절한 자라고 가르쳤다.) 에비온파는 나자렌파에 비해 상당히 그노시스적인 교리를 구비하고 있었다.
에피파니우스의 기록을 읽어보자.
The Panarion of Epiphanius of Salamis, Book I (Sects 1-46) (Nag Hammadi and Manichaean Studies)
...[전략]... 나조렌파는 유대인 및 기독교도들과 다만 다음의 사항에 대해서만 다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점에서 유대교도들과 다르다. 그러나 할례나 안식일 등과 같은 모세율법을 따르다는 점에서는 기독교도와 다르다. 그리스도에 대해 그들이 케린토스나 메린토스의 이단에 의해 잘못 이끌려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이라고 여기는지, 혹은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 마리아에게서 난 것으로 인정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중략].. (다른 이단들과 달리) 이 파 (=나조렌)에 속한 사람들을 즉각적으로 반박하거나 알아내기 쉬운데, 이들은 유대인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들을 적대시한다. 이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감은 그저 마음 속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새벽과 정오와 일몰 때 그들의 회당에서 기도하면서 하루에 세번씩 "신이여, 나조렌들을 저주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유대인들이 이들에게 가혹한 이유는 나조렌들이 유대인의 전통에서 기원했으면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설파하기 때문으로, 이것은 여전히 예수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의 전통에 상반되기 때문이다. 나조렌파는 히브리어/아람어로 된 {마태 복음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원래 히브리 문자로 씌여졌던 이 복음서를 여전히 보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조렌파의 이 복음서가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의 족보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후략].... --- 살라미스 주교 에피파니우스, {파나리온} 2권 29장 / 번역: 최광민
...[전략]...에비온은 우선 그리스도가 (마리아와) 요셉과의 성관계를 통해 잉태되었다고 주장했다. 내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에비온은 바로 한가지만 빼고는 다른 유사한 이단들과 일치했으며 유대교의 안식일, 할례, 등과 같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의 관례를 따랐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보다는 사마리아인 쪽은 관례를 더 따랐다. 에비온은.....[중략]...에비온은 그리스도가 요셉의 자식이라고 선언했으며....그들 가운데 일부는 아담이 그리스도라고도 주장한다...[중략]..또 일부는 그리스도가 만물이 창조되기 전 천상에서 유래하여 아담에게로 들어갔고, 아담의 신체를 입고 족장들에게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그들은 {마태 복음서} 만을 인정한다. 그들은 이 복음서를 {히브리 복음서}로 부르는데..... --- 살라미스 주교 에피파니우스, {파나리온} 2권 30장 / 발췌번역: 최광민
에피파니우스와 거의 동시대인으로 팔레스티나에서 활동했던 히에로니무스는 히포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역시 에비온파에 대해 언급한다. 에비온파와 나조렌파에 대한 히에로니무스의 구분은 여기서 에피파니우스의 현격한 구분과는 다소 다르다.
13. The matter in debate, therefore, or I should rather say your opinion regarding it, is summed up in this: that since the preaching of the gospel of Christ, the believing Jews do well in observing the precepts of the law, i.e. in offering sacrifices as Paul did, in circumcising their children, as Paul did in the case of Timothy, and keeping the Jewish Sabbath, as all the Jews have been accustomed to do. If this be true, we fall into the heresy of Cerinthus and Ebion, who, though believing in Christ, were anathematized by the fathers for this one error, that they mixed up the ceremonies of the law with the gospel of Christ, and professed their faith in that which was new, without letting go what was old. Why do I speak of the Ebionites, who make pretensions to the name of Christian? In our own day there exists a sect among the Jews throughout all the synagogues of the East, which is called the sect of the Minei, and is even now condemned by the Pharisees. The adherents to this sect are known commonly as Nazarenes; they believe in Christ the Son of God, born of the Virgin Mary; and they say that He who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and rose again, is the same as the one in whom we believe. But while they desire to be both Jews and Christians, they are neither the one nor the other. I therefore beseech you, who think that you are called upon to heal my slight wound, which is no more, so to speak, than a prick or scratch from a needle, to devote your skill in the healing art to this grievous wound, which has been opened by a spear driven home with the impetus of a javelin. For there is surely no proportion between the culpability of him who exhibits the various opinions held by the fathers in a commentary on Scripture, and the guilt of him who reintroduces within the Church a most pestilential heresy. If, however, there is for us no alternative but to receive the Jews into the Church, along with the usages prescribed by their law; if, in short, it shall be declared lawful for them to continue in the Churches of Christ what they have been accustomed to practice in the synagogues of Satan, I will tell you my opinion of the matter: they will not become Christians, but they will make us Jews. --- Jerome, ad Augustinum Letter #75
...[전략]...오늘날 동방에 있는 유대인들의 시나고그에는 유대인들이 "미님" (= 이단 / 히브리어)"라 부르는 이단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유대교 바리새파들에 의해 여전히 이단으로 정죄된다. 이들은 보통 "나자렌파"로 불리며, 신의 아들인 그리스도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믿고, 또한 폰티우스 필라투스에 의해 수난을 당한 후 하늘로 승천했다고 믿는다. 이것은 우리 (=정통파 기독교도) 역시 믿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대인인 동시에 기독교도로 행세하는데, 사실 둘 중 어느것도 아니다....[후략] --- 히에로니무스, AD 404년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보내는 편지} #89 / 번역: 최광민
히에로니무스는 {이사야서 주석}에서 나자렌파를 비판하면서 그들의 {히브리 복음서}를 인용한다. 읽어보자.
.....According to the Gospel written in the Hebrew speech, which the Nazaraeans read, the whole fount of the Holy Spirit shall descend upon him. . . Further in the Gospel which we have just mentioned we find the following written:
And it came to pass when the Lord was come up out of the water, the whole fount of the Holy Spirit descended upon him and rested on him and said to him: My son, in all the prophets was I waiting for thee that thou shouldest come and I might rest in thee. For thou art my rest; thou art my first-begotten Son that reignest for ever. --- Jerome, Commentary on Isaiah 4 [on Isaiah 11:2]
[[히에로니무스]] 히브리인들의 말로 기록된 나자렌파의 복음서에 따르면 성령의 충만한 샘이 그리스도 위에 강림했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이렇게 적혀있다:
"....주님이 [세례/침례를 받은 후 / 필자 주] 물에서 나오실때, 충만한 성령의 샘이 주님 위에 강림하여 위에 머물면서 주님께 말했다: 내 아들아, 나는 예언자들 안에 머물며 네가 도래해 네 안에 머물게 될 날을 기다려왔다. 너는 나의 안식이며, 나의 영원히 다스릴 나의 첫 아들이다...." --- {히브리 복음서} / 히에로니무스의 인용, {이사야서 4장 주석} / 번역: 최광민
따라서 소위 "유대교적 기독교도"인 나자렌파와 에비온파 가운데 그나마 예수를 "인간"으로 본 에비온파라 해도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한 30세 무렵부터 십자가형이 있던 기간 동안의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케린토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에비온파에 따르면 이때의 예수는 "천상의 그리스도"가 "인간-예수"와 합체한 "그리스도-예수"였기 때문이다. 또한 "나조렌파가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여겼다"란 진술도 사실은 틀린 것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성령에 의한 예수의 잉태를 믿었기 때문이다.
AD 4세기의 예루살렘 주교 키릴로스 (AD 313-386)가 반박목적으로 인용한 위경 {히브리 복음서}에는 성모 마리아가 사실은 "천사장 미카엘"이었고, 예수가 천상에서 내려올 때 그 미카엘/마리아에게 임신되어 7달 만에 출생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카엘은 천사이기에, 최소한 이 위경문서 속의 마리아는 (신적 기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천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It is written in the Gospel of Hebrews: "When Christ wished to come upon the earth to men, the good Father summoned a mighty power in heaven, which was called Michael, and entrusted Christ to the care thereof. And the power came into the world and it was called Mary, and Christ was in her womb seven months.".. --- Cyril of Jerusalem, Discourse on Mary Theotokos 12a
...{히브리 복음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세상에 오실 때, 선한 아버지는 미카엘이라 불리는 천상의 권능자를 불러 그리스도를 맡겼다. 그 권능자는 세상에 와서 마리아라 불리었고, 그리스도는 그녀의 자궁 안에 7개월 간 있었다." --- 예루살렘 주교 키릴로스의 인용, {신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하여} 12a
그러나 "예수가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설명이 곧 예수의 "선재성"이나 "신성"에 대한 "증명"은 아닐 것이다. 가령, 예수를 한 인간으로만 여길 뿐 신성을 부여하지 않는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 속의 이사/예수 역시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암/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이슬람교는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아무튼 기독교 역사에서 일찌감치 이단으로 배제된 이들 나자렌~에비온파는 이후 AD 4세기의 삼위일체 논쟁과는 전혀 상관없게 된다. 왜? 이들은 정통파 뿐 아니라 이미 아리우스파의 입장에서도 치명적인 이단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논증에 앞서, 우선 역사적 기독교가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어떻게 믿었는지에 대해 먼저 분명히 정리해 두어야 한다. 이 믿음들은 일련의 신조로 작성되었으며, 현대의 '정통파' 기독교에서도 공히 근본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에큐메니컬 신조들
앞에서 설명한 바대로, 니케아 회의보다 두세기 앞서 이미 이단으로 정죄된 나조렌파와 에비온파는 당연히 니케아 회의에 초대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는 인간인가? 신인가? 혹은 신이된 인간인가?' 라는 사안은 니케아 회의에서 논의된 사안조차 아니었다.
왜? 예수는 아리우스파에게 있어서도 이미 진실한 "신" (θεὸν ἐκ θεοῦ, God of God)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냥 신이 아니라, 태초에 성부와 함께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였다. 예수가 세상의 '창조자'이며 또한 '신'이란 교리는 이 니케아 회의가 개최되기 전 이미 200여 년 전부터 이미 교부들에 의해 확립되어 있었고, 이들 교부들의 가르침은 반-아리우스파 뿐 아니라 이미 친-아리우스파 혹은 범-아리우스파 주교들 사이에서 공히 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물론 니케아 회의가 소집된 이유이기도 한 사제 아리우스도 예수를 신으로 믿었다. 따라서 예수가 '신의 아들'이며, 성부와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인 '신'이란 것은 니케아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미 "정설"이었다.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가 어떻게 그저 '인간일 뿐'일 수 있겠는가?
니케아 회의에 모인 양 파의 주교들과 사제들이 이미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예수의 지위는, 최대치로는 성부와 "동일본질"이거나 (=삼위일체파), 혹은 최소치로는 성부보다 열등한 본질을 가진 '두번째 등급의 신' (=아리우스파)이라는 것었다. 이것이 니케아 회의에 참가한 다양한 그룹이 가진 신학적 스펙트럼이다. 성부와 성자(로고스) 간의 Homoousios (동일본질)을 지지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Athanasius)파와 삼위일체 개념을 거부하고 heteroousion (이질본질)을 주장하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리우스(Arius)를 지지하는 두 파가 갈려 논쟁을 벌이다 삼위일체 (정확히는 성부-성자의 동일본질)를 정통교리로 결론을 내리게 된 회의, 이것이 바로 니케아 회의다.
따라서 니케아 회의의 핵심논쟁은 "예수/성자가 신이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는 그 본질에 있어 서로 어떤 관계인가?"에 초점 맞춰진 것이다. 혹은 "성자/예수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 신인가?" 아니면 '성부와는 다른 (낮은) 본질을 가진 조금 다른 신인가?"가 니케아 회의의 주제가 된 논쟁점이다.
아리우스 논쟁과 네스토리우스 논쟁 등을 거치며 확립된 "카톨릭 (보편)" 교회의 대표적인 신조들을 우선 읽어보자. 이 신조들은 현대 로마카톨릭 교회, 정교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의 공식신조들이다.
AD 325년 니케아 회의의 결의를 담은 {니케아 신조}다.
Πιστεύομεν εἰς ἕνα θεὸν Πατέρα παντοκράτορα, πάντων ὁρατῶν τε και ἀοράτων ποιητήν. Πιστεύομεν εἰς ἕνα κύριον Ἰησοῦν Χριστόν,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γεννηθέντα ἐκ τοῦ Πατρὸς μονογενῆ, τοὐτέστιν ἐκ τῆς οὐσίας τοῦ Πατρός, θεὸν ἐκ θεοῦ ἀληθινοῦ, γεννηθέντα, οὐ ποιηθέντα, ὁμοούσιον τῷ Πατρί δι' οὗ τὰ πάντα ἐγένετο, τά τε ἐν τῷ οὐρανῷ καὶ τὰ ἐπὶ τῆς γῆς τὸν δι' ἡμᾶς τοὺς ἀνθρώπους καὶ διὰ τὴν ἡμετέραν σωτηρίαν κατελθόντα καὶ σαρκωθέντα καὶ ἐνανθρωπήσαντα, παθόντα, καὶ ἀναστάντα τῇ τρίτῃ ἡμέρᾳ, καὶ ἀνελθόντα εἰς τοὺς οὐρανούς, καὶ ἐρχόμενον κρῖναι ζῶντας καὶ νεκρούς. αὶ εἰς τὸ Ἅγιον Πνεῦμα Τοὺς δὲ λέγοντας, ὅτι ἦν ποτε ὅτε οὐκ ἦν, καὶ πρὶν γεννηθῆναι οὐκ ἦν, καὶ ὅτι ἐξ οὐκ ὄντων ἐγένετο, ἢ ἐξ ἑτέρας ὑποστάσεως ἢ οὐσίας φάσκοντας εἶναι, [ἢ κτιστόν,] τρεπτὸν ἢ ἀλλοιωτὸν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τούτους] ἀναθεματίζει ἡ καθολικὴ [καὶ ἀποστολικὴ] ἐκκλησία.
Credimus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omnium visibilium et invisibilium factorem. Et in unum Dominum nostrum Jesum Christum filium Dei, natum ex Patre unigenitum, hoc est, de substantia Patris, Deum ex Deo, lumen ex lumine, Deum verum de Deo vero, natum non factum, unius substantiae cum Patre, quod graece dicunt homousion, per quem omnia facta sunt quae in coelo et in terra, qui propter nostram salutem descendit, incarnatus est, et homo factus est, et passus est, et resurrexit tertia die, et adscendit in coelos, venturus judicare vivos et mortuos. Et in Spiritum sanctum. Eos autem, qui dicunt, Erat quando non erat, et ante quam nasceretur non erat, et quod de non exstantibus factus est, vel ex alia substantia aut essentia, dicentes convertibilem et demutabilem Deum: hos anathematizat catholica Ecclesia.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Son of God, begotten of the Father [the only-begotten; that is, of the essence of the Father, God of God,] Light of Light, very God of very God, begotten, not made, being of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both in heaven and on earth]; Who for us men, and for our salvation, came down and was incarnate and was made man; He suffered, and the third day he rose again, ascended into heaven;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And in the Holy Spirit. But those who say that: "There was a time when He was not;" and "He was not before He was made;" and "He was made out of nothing," or "He is of another substance" or "essence," or "The Son of God is created," or "changeable," or "alterable" - they are condemned by the Holy Orthodox and Universal Apostolic Church.
우리는 한 분의 신, 성부, 전능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만드신 이를 믿는다. 또 한 분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성부로부터 특유하게 나셨고, 성부의 본질 (즉, ousia)로부터 낳아진 '신에게서 오신 신'이시요 '빛에서 오신 빛'이시며, '참된 신에게서 오신 참된 신'으로서, 낳아지셨으나 피조되지는 아니하였고, 성부와 동일한 본질 (homousios)이시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를 통하여 만들어졌다. 그는 우리 인간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강림하여 육체를 입고 사람이 되셨다. 고난을 받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셨고,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령을 믿는다. 그러나 보편적 (카톨릭)이며 사도적인 교회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자들을 정죄한다: 즉, 성자가 계시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말하는 자들, 그가 (세상의 창조 이전에 성부로부터 / 필자 주) 태어나시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자들, 그가 무로부터 생겨나셨다고 말하는 자들, 신의 아들이 어떤 다른 물질이나 본질로부터 유래했다거나 창조되었다거나 변할 수 있다거나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 번역: 최광민
아래는 {니케아 신조}에서 보완된 AD 381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전문이다. 니케아 회의의 주제가 성부-성자의 관계에 집중되었기에 성령에 대한 언급은 한 줄로만 요약되었다, 이 신조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성령에 관한 설명을 삽입했다.
Πιστεύομεν εἰς ἕνα Θεὸν Πατέρα παντοκράτορα ποιητὴν οὐρανοῦ καὶ γῆς ὁρατῶν τε πάντων καὶ ἀοράτων· καὶ εἰς ἕνα Κύριον Ἰησοῦν Χριστὸν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τὸν Μονογενῆ, τὸν ἐκ τοῦ Πατρὸς γεννηθέντα πρὸ πάντων τῶν αἰώνων, Φῶς ἐκ Φωτός, Θεὸν ἀληθινὸν ἐκ Θεοῦ ἀληθινοῦ, γεννηθέντα οὐ ποιηθέντα, ὁμοούσιον τῷ Πατρί, δι' οὗ τὰ πάντα ἐγένετο· τὸν δι' ἡμᾶς τοὺς ἀνθρώπους καὶ διὰ τὴν ἡμετέραν σωτηρίαν κατελθόντα ἐκ τῶν οὐρανῶν, καὶ σαρκωθέντα ἐκ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καὶ Μαρίας τῆς παρθένου, καὶ ἐνανθρωπήσαντα, σταυρωθέντα τε ὑπὲρ ἡμῶν ἐπὶ Ποντίου Πιλάτου, καὶ παθόντα, καὶ ταφέντα, καὶ ἀναστάντα τῇ τρίτῃ ἡμέρᾳ κατὰ τὰς γραφὰς, καὶ ἀνελθόντα εἰς τοὺς οὐρανοὺς, καὶ καθεζόμενον ἐν δεξιᾷ τοῦ Πατρὸς, καὶ πάλιν ἐρχόμενον μετὰ δόξης κρῖναι ζῶντας καὶ νεκρούς, οὗ τῆς βασιλείας οὐκ ἔσται τέλος· καὶ εἰς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τὸ Κύριον καὶ Ζωοποιόν, τὸ ἐκ τοῦ Πατρὸς ἐκπορευόμενον, τὸ σὺν Πατρὶ καὶ Υἱῷ συμπροσκυνούμενον καὶ συνδοξαζόμενον, τὸ λαλῆσαν διὰ τῶν προφητῶν· εἰς μίαν ἁγίαν καθολικὴν καὶ ἀποστολικὴν ἐκκλησίαν· ὁμολογοῦμεν ἓν βάπτισμα εἰς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προσδοκῶμεν ἀνάστασιν νεκρῶν, καὶ ζωὴν τοῦ μέλλοντος αἰῶνος. ἀμήν.
Credimus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factorem coeli et terrae, visibilium omnium et invisibilium,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cum,de Patre natum ante omnia saecula; Deum verum de Deo vero;natum, non factum; ejusdemque substantiae qua Pater est; per quem omnia facta sunt; 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nostram salutem descendi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in Maria virgine homo factus, crucifixus pro nobis sub Pontio Pilato, sepultus, resurrexit tertia die, ascendit ad coelos, sedet ad dexteram Patris; inde venturus est cum gloria judicare vivos ac mortuos, cujus regni non erit finis. Et in Spiritum sanctum, ominum ac vivificatorem a Patre procedentem, qui cum Patre et Filio adoratur et glorificatur, qui locutus est per Prophetas; in unam catholicam atque apostolicam Ecclesiam. Confitemur unum baptismum in remissionem peccatorum; speramus resurrectionem mortuorum, vitam futuri saeculi. Amen.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the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of all that is, seen and unseen. And [we believe]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begotten Son of God,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of one being with the Father.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For us, humans, and for our salvation, he came down from heaven, was incarnate of the Holy Spirit and the virgin Mary, and became fully human. For our sake he was crucified under Pontius Pilate. He suffered death and was buried. He rose again on the third day in accordance with the Scriptures.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will come again in glor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his kingdom will have no end. And [we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Lord, the giver of life,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who in unity with the Father and the Son is worshiped and glorified, who has spoken through the prophets. [We believe] in one holy universal and apostolic Church. We acknowledge one baptism for the forgiveness of sins. We look for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ife of the world to come. Amen.
우리는 한 분이신 신, 전능하신 성부,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만물을 창조한 분을 믿는다. 또한 한 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신의 독생자, 세상 이전에 성부로부터 나신 자, 빛으로부터의 빛, 참 신으로부터의 참 신이시며 (Deum verum de Deo vero), (성부가) 낳으시되 피조되지 않으셨고,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셨다 (ὁμοούσιον τῷ Πατρί ejusdemque substantiae qua Pater est). 그는 만물이 생겨나게 하셨고, 우리 인간을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와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육체를 입어 사람이 되셨고,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받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성서대로 3일 만에 부활/승천하여 성부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령을 믿으니, 성령은 주님이며 생명을 주시는 자로, 성부로부터 나오시며 (ἐκπορευόμενον / procedentem), 곧 성부 및 성자와 함께 경배받으시며, 함께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해 오신 분이다. 우리는 거룩하고 보편적인 (카톨릭) 사도적인 하나의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죄의 용서을 위한 한 세례를 고백한다.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다가올 세상에서의 삶을 기다린다. 아멘. --- 번역: 최광민
아래는 AD 500년 경의 {아타나시우스 신조}다.
Quicunque vult salvus esse, ante omnia opus est, ut teneat catholicam fidem: Quam nisi quisque integram inviolatamque servaverit, absque dubio in aeternam peribit. Fides autem catholica haec est: ut unum Deum in Trinitate, et Trinitatem in unitate veneremur. Neque confundentes personas, neque substantiam seperantes. Alia est enim persona Patris alia Filii, alia Spiritus Sancti: Sed Patris, et Fili, et Spiritus Sancti una est divinitas, aequalis gloria, coeterna maiestas. Qualis Pater, talis Filius, talis [et] Spiritus Sanctus. Increatus Pater, increatus Filius, increatus [et] Spiritus Sanctus. Immensus Pater, immensus Filius, immensus [et] Spiritus Sanctus. Aeternus Pater, aeternus Filius, aeternus [et] Spiritus Sanctus. Et tamen non tres aeterni, sed unus aeternus. Sicut non tres increati, nec tres immensi, sed unus increatus, et unus immensus. Similiter omnipotens Pater, omnipotens Filius, omnipotens [et] Spiritus Sanctus. Et tamen non tres omnipotentes, sed unus omnipotens. Ita Deus Pater, Deus Filius, Deus [et] Spiritus Sanctus. Et tamen non tres dii, sed unus est Deus. Ita Dominus Pater, Dominus Filius, Dominus [et] Spiritus Sanctus. Et tamen non tres Domini, sed unus [est] Dominus. Quia, sicut singillatim unamquamque personam Deum ac Dominum confiteri christiana veritate compelimur: Ita tres Deos aut [tres] Dominos dicere catholica religione prohibemur. Pater a nullo est factus: nec creatus, nec genitus. Filius a Patre solo est: non factus, nec creatus, sed genitus. Spiritus Sanctus a Patre et Filio: non factus, nec creatus, nec genitus, sed procedens. Unus ergo Pater, non tres Patres: unus Filius, non tres Filii: unus Spiritus Sanctus, non tres Spiritus Sancti. Et in hac Trinitate nihil prius aut posterius, nihil maius aut minus: Sed totae tres personae coaeternae sibi sunt et coaequales. Ita, ut per omnia, sicut iam supra dictum est, et unitas in Trinitate, et Trinitas in unitate veneranda sit. Qui vult ergo salvus esse, ita de Trinitate sentiat. Sed necessarium est ad aeternam salutem, ut incarnationem quoque Domini nostri Iesu Christi fideliter credat. Est ergo fides recta ut credamus et confiteamur, quia Dominus noster Iesus Christus, Dei Filius, Deus [pariter] et homo est. Deus [est] ex substantia Patris ante saecula genitus: et homo est ex substantia matris in saeculo natus. Perfectus Deus, perfectus homo: ex anima rationali et humana carne subsistens. Aequalis Patri secundum divinitatem: minor Patre secundum humanitatem. Qui licet Deus sit et homo, non duo tamen, sed unus est Christus. Unus autem non conversione divinitatis in carnem, sed assumptione humanitatis in Deum. Unus omnino, non confusione substantiae, sed unitate personae. Nam sicut anima rationalis et caro unus est homo: ita Deus et homo unus est Christus. Qui passus est pro salute nostra: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Ascendit ad [in] ca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Inde venturus [est] judicare vivos et mortuos. Ad cujus adventum omnes homines resurgere habent cum corporibus suis; Et reddituri sunt de factis propriis rationem. Et qui bona egerunt, ibunt in vitam aeternam: qui vero mala, in ignem aeternum. Haec est fides catholica, quam nisi quisque fideliter firmiterque crediderit, salvus esse non poterit.
Whosoever will be saved, before all things it is necessary that he hold the catholic faith; Which faith except every one do keep whole and undefiled, without doubt he shall perish everlastingly. And the catholic faith is this: That we worship one God in Trinity, and Trinity in Unity; Neither confounding the persons nor dividing the substance. For there is one person of the Father, another of the Son, and another of the Holy Spirit.6. But the Godhead of the Father,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is all one, the glory equal, the majesty coeternal. Such as the Father is, such is the Son, and such is the Holy Spirit. The Father uncreated, the Son uncreated, and the Holy Spirit uncreated. The Father incomprehensible, the Son incomprehensible, and the Holy Spirit incomprehensible. The Father eternal, the Son eternal, and the Holy Spirit eternal. And yet they are not three eternals but one eternal. As also there are not three uncreated nor three incomprehensible, but one uncreated and one incomprehensible. So likewise the Father is almighty, the Son almighty, and the Holy Spirit almighty. And yet they are not three almighties, but one almighty. So the Father is God, the Son is God, and the Holy Spirit is God; And yet they are not three Gods, but one God. So likewise the Father is Lord, the Son Lord, and the Holy Spirit Lord; And yet they are not three Lords but one Lord. For like as we are compelled by the Christian verity to acknowledge every Person by himself to be God and Lord; So are we forbidden by the catholic religion to say; There are three Gods or three Lords. The Father is made of none, neither created nor begotten. The Son is of the Father alone; not made nor created, but begotten. The Holy Spirit is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neither made, nor created, nor begotten, but proceeding. So there is one Father, not three Fathers; one Son, not three Sons; one Holy Spirit, not three Holy Spirits. And in this Trinity none is afore or after another; none is greater or less than another. But the whole three persons are coeternal, and coequal. So that in all things, as aforesaid, the Unity in Trinity and the Trinity in Unity is to be worshipped. He therefore that will be saved must thus think of the Trinity. Furthermore it is necessary to everlasting salvation that he also believe rightly the incarn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For the right faith is that we believe and confess that our Lord Jesus Christ, the Son of God, is God and man. God of the substance of the Father, begotten before the worlds; and man of substance of His mother, born in the world. Perfect God and perfect man, of a reasonable soul and human flesh subsisting. Equal to the Father as touching His Godhead, and inferior to the Father as touching His manhood. Who, although He is God and man, yet He is not two, but one Christ. One, not by conversion of the Godhead into flesh, but by taking of that manhood into God. One altogether, not by confusion of substance, but by unity of person. For as the reasonable soul and flesh is one man, so God and man is one Christ; Who suffered for our salvation, descended into hell, rose again the third day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He sits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God,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At whose coming all men shall rise again with their bodies; and shall give account of their own works. And they that have done good shall go into life everlasting and they that have done evil into everlasting fire. This is the catholic faith, which except a man believe faithfully he cannot be saved.
구원을 바라는 자는 무엇보다 먼저 (교회의 / 필자 주) 보편적 신앙 가져야 한다. 이 신앙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지키지 않는 자는 반드시 영원히 멸망받을 것이다. 보편적 신앙이 가르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삼위로서 일체이며 일체 가운데 삼위이신, 유일한 신을 믿는다. 이 삼위 (=휘포스타시스)는 혼합되지 않으며, 그 본질 (=유시아)이 나뉘지도 않는다. 성부의 한 위와 성자의 한 위, 또한 성령의 또 다른 한 위가 각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격은 모두 하나요, 그 영광도 동일하며, 그 위엄도 함께 영원하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존재한다. 성부가 창조되지 않았듯, 성자도 창조되지 않았으며, 또한 성령도 창조되지 않았다. 성부가 온전히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듯, 성자도 온전히 이해될 수 없고, 성령도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성부가 영원하듯, 성자도 영원하며, 또 성령도 영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영원한 세 분의 존재들이 아니며, 영원한 한 존재이다.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피조되지 않은 세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피조되지도 않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단 한 신만이 계신다. 성부가 전능하듯, 성자와 성령도 전능하다. 그러나 전능한 세 신이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전능한 한 신이 있을 뿐이다. 성부가 신이시듯, 성자도, 또 성령도 신이다. 그럼에도 세 신이 아니라, 한 신만이 존재할 뿐이다. 성부가 주님이듯, 성자도, 또 성령도 주님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세 분의 주님이 아니라 한 주님일 뿐이다. 우리는 각각의 삼위가 신이며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독교의 진리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기독교도는 "세 신이 계시며 세 분 주님이 계시다"고 해서는 않된다. 성부는 그 무엇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즉, 창조된 것이 아니며, 태어나지도 않으셨다. 성자는 성부가 낳으셨고,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신 것이 아니며, 성부에 의해 낳아진 것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지만,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었거나 발생된 것이 아니며,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 것이다. 따라서 세 성부가 아닌 한 성부, 세 성자가 아닌 한 성자, 세 성령이 아닌 한 성령만이 있을 뿐이다. 이 삼위에 있어서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한 위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며, 어느 한 위가 다른 위보다 크거나 작지도 않다. 다만 삼위가 함께 영원하며 동등하다. 따라서 전술된 바와 같이, 삼위로서의 일체와, 일체로서의 삼위가 모든 면에서 경배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구원을 바라는 자들은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와 같이 믿어야 한다. 또한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 바르게 믿어야 한다. 바른 믿음이란, 신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신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점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는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신이시며, 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 나신 자요, 동시에 인간으로서는 그 어머니의 본질로부터 이 세상에서 나신 분이시다. 그는 완전한 신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성있는 영과 인간의 육신으로서 존재한다. 신성으로는 성부와 동등하나 그의 인성으로는 성부보다 낮다. 비록 그가 신이며 동시에 인간이시기도 하나, 둘이 아니요 한 그리스도이다. 이처럼 둘이 하나 되는데 있어 그 신성이 육체로 바뀐 것이 아니라, 인성을 신성 안에 받아 신이 되신다. 그의 본질은 혼합된 것이 아니라 품격 (=신성과 인성)이 온전하게 하나로 통일된 존재이다. 한 인간이 영혼과 육체를 가지듯, 그리스도는 신인 동시에 인간이 되신다. 그는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승천하여 전능한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거기에서 오실 것이다. 그가 다시 올 때 모든 사람들이 육체로 부활할 것이며, 그들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받을 것이다.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영생으로, 악을 행한 자는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참 신앙이며, 이를 진심으로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아멘. --- 번역: 최광민
AD 5세기에는 삼위일체를 인정한 이후 발생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논쟁이 발생한다.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경우 {니케아 신조}에 따라 성자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한 위 (ὑπόστᾰσις 휘포스타시스 [그리스어], persona 페르소나 [라틴어])로서 동시에 다른 위와 일체이므로, 예수를 또한 그 본질상 신이다. 즉, 성부와 같은 신적 본질을 가진다는 뜻이다.
예수가 '신'이라면, 논리적인 귀결에 따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 혹은 보다 정확히 "신 (Θεός)을 τόκος (낳은 자)"를 뜻하는 테오토코스 (Θεοτόκος, ܝܳܠܕܰܬ ܐܰܠܳܗܳܐ = 욜다트 알로호, Mater Dei)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은 AD 3세기 이집트 출신의 신학자 오리게네스가 이미 사용한 바 있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만 해석한다면 그 표현 자체는 신학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이 표현의 강조점은 '마리아'가 아니라 '신'으로서 또한 '인간'으로 태어난 '예수의 본성'이다. 종종 일부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테오토코스'란 용어의 신학적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 "어머니"에 강조점을 둔 나머지, 로마카톨릭이나 정교회가 마리아를 '여신' (=신모)로 만들었다며 분개하는데, 사실은 (칼케돈 신조에 따르는) 프로테스탄트의 전통적 신조들 역시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마리아에게 '테오토코스'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 표현 자체는 마리아를 '여신'으로 만들거나 혹은 그렇게 간주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이자 열정적인 삼위일체론자였던 네스토리우스는 이 표현이 정확하지 않거나 혹은 용례상 적절하지 않다고 여겼다. '테오토코스'는 그 당시 서방에서는 많이 쓰이던 용어였는지는 몰라도, 그의 출신지이기도 한 시리아 안키오키아를 포함한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는 낯선 용어이기도 했다. 그래서 "테오토코스" 즉 "신의 어머니 / 신을 낳은 자" 대신, "그리스도의 어머니 / 그리스도(Χριστός)를 낳은 자 (τόκος )"라는 뜻으로 "크리스토토코스, Χριστοτόκος"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일대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에는 인성과 신성이 있으되 둘은 분명히 구분되며, 그러기에 마리아는 예수의 '인성'을 낳은 역할만을 한 것이며, 예수의 '신성'까지 낳은 것은 아니라고 해설했다. 그러므로 예수는 '신'이지만, 그렇다고 마리아가 "신을 낳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두개의 본성 (nature, physis)을 뚜렷히 구분하였으므로 "양성론자 (Diphysites)" 라고 불렸다.
이에 맞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키릴로스가 로마 주교 켈레스티누스(Celestine)의 지원 하에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를 파문하게 되고, 이로 인해 주로 시리아~메소포타미아에 지지층을 가졌던 네스토리우스의 추종자들은 동진하여 페르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와 나중에는 중국까지 포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국 당나라 현종때 포교된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 경교이다.
한편 네스토리우스를 파문한 알렉산드리아 측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지만, 이들 역시 곧 또 다른 논쟁에 휘말린다. 반-네스토리우스 파였지만 그렇다고 알렉산드리아 측을 좋아하지도 않았던 측에서 알렉산드리아 측을 이단혐의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즉,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공존하되, 마치 바다에 떨어뜨린 식초 한 방울처럼, 신성 속에 그리스도의 인성이 "녹아"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고 믿는다며 알렉산드리아 측을 기소한 것이다. 이들은 파문되어 일반적으로 단성론자(Monophysites)라는 이름으로 흔히 불리게 되는데, 이집트의 꼽트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야곱파) 정교회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당시 칼케돈 측에서 알렉산드리아 측을 이런 류의 "단성파 (Monophysitism)", 즉 콘스탄니노플의 대수도원장이던 유티케스의 주장처럼 예수의 신성과 본성이 연합하여 또 다른 새롭게 융합된 단 하나의 본성 (신성)을 취하게 되었다고 믿는다고 기소한 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들 동방의 단성파는 이 주장을 역시 이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들은 "합성론 (Miaphysitism)"을 자신들의 입장으로 표방한다. 즉, 예수는 한 위 속에 신성과 인성을 분명히 가지되, 두 본성이 구분되지 않게 단단히 결합하여 한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새 본성은 구분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혼합되지도 않고, 또한 서로 영향을 주어 변질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합성론의 주장이다. 알렉산드리아 측의 이 입장은 칼케돈 신조와 꽤 유사하지만, 그렇다고 정확히 같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칼케돈 회의 전까지의 유티케스의 주장과 그를 옹호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디오도로스, 그리고 그들의 지지한 수도사들이 가졌던 개념은 정의 그대로의 "단성론"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종합하자면, 시리아 안티오키아 교회의 신학을 반영하는 네스토리우스파는 예수 안에 있는 신성-인성 사이의 "철저한 구분"을 강조한 것이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신학을 반영하는 단성파는 둘 사이의 "철저한 연합"을 강조한 것이며, 칼케돈 신조는 그 중간의 입장인 것이다.
- 네스토리우스파 : 1 persona, 2 hypostases, 2 physes
- 칼케돈 / 카톨릭 (라틴+그리스) : 1 persona, 1 hypostasis, 2 physes
- 단성론자 : 1 persona, 1 hypostasis, 1 physis
이들은 모두 니케아 신조에 바탕한 삼위일체론자들이며, 또한 예수에게 신성과 인성이 모두 있다고 믿는다. 즉, 성부-성자-성령의 세 위 (=페르소나)를 "셋으로 분명히 구분되지만 본질에 있어 동일한 한 신"으로 믿는다. 다만 인간이 된 예수의 속성에 대한 이해에서 다를 뿐이다. 그리스어의 ousia는 존재, persona는 위(位), hypostasis는 본체(本體), physis는 본성으로 이해하면 적절할 것이다.
아래는 테오토코스 논쟁을 종지부 찍으며 네스토리우스의 양성론과 단성파 모두의 파문을 결의한 AD 451년의 {칼케돈 신조}다. 로마카톨릭, 정교회, 및 프로테스탄트 제 교단들은 {니케아 신조}와 {칼케돈 신조}를 모두 받아들인다. 칼케돈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우스 계열 양성파 (=네스토리우스파)와 단성파(=이집트 꼽트교회 등)은 {니케아 신조}는 수용하지만 {칼케돈 신조}는 수용하지 않는다.
이 신조에서는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 보다 정확히는 "신을 낳은 자"를 뜻하는 "테오토코스"로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은 네스토리우스의 파문에는 동의하더라도 이 부분을 종종 "예수/그리스도의 어머니" 고쳐 읽음으로써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의 일부에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 역시 네스토리우스파의 양성교리를 이단으로 정죄한다.
We, then, following the holy Fathers, all with one consent, teach men to confess one and the same Son, our Lord Jesus Christ, the same perfect in Godhead and also perfect in manhood; truly God and truly man, of a reasonable [rational] soul and body; consubstantial [co-essential] with the Father according to the Godhead, and consubstantial with us according to the Manhood; in all things like unto us, without sin; begotten before all ages of the Father according to the Godhead, and in these latter days, for us and for our salvation, born of the Virgin Mary, the Mother of God, according to the Manhood; one and the same Christ, Son, Lord, only begotten, to be acknowledged in two natures, inconfusedly, unchangeably, indivisibly, inseparably; the distinction of natures being by no means taken away by the union, but rather the property of each nature being preserved, and concurring in one Person and one Subsistence, not parted or divided into two persons, but one and the same Son, and only begotten, God the Word, the Lord Jesus Christ; as the prophets from the beginning [have declared] concerning Him, and the Lord Jesus Christ Himself has taught us, and the Creed of the holy Fathers has handed down to us.
거룩한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한 분이시요 동일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모두가 일치하여 가르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이 동일한 분은 신성에 있어서 완전하시며, 인성에 있어서도 완전하시며, 참 신인 동시에 참 인간이시며, 이성 있는 영혼과 육신으로 동시에 계신다. 신성에 있어서 성부와 동일본질이시며,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본질이시니 죄 이외에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다. 신성에 있어서 이 세상이 있기 전에 성부가 낳으셨으며, 이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인성에 있어서는 신을 낳은 자 (theotokos)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한 분이시요 동일하신 그리스도, 아들, 주, 독생자는 두 성품으로 인식되나, (이 둘은) 혼합되지도 변화되지도 분리되지도 분할되지 않으시니 ― 이 연합으로 인하여 양성 (신성+인성)의 차이가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각 성의 특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한 품격 한 개체로서 결합되어 있다.― 그리하여 두 품격으로 분할되거나 분리되거나 하지 않으며, 한 분이시오, 동일하신 아들, 독생하신 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는 옛적에 예언자들이 가르친 바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 대하여 직접 가르치신 바이며, 교부들이 신조로서 우리에게 전하여 내려오는 바와 같다. --- 번역: 최광민
AD 1054년, 필리오케 논쟁을 포함한 신학적/정치적 문제를 계기로 쌍방파문과 함께 분리된 로마카톨릭과 정교회 뿐 아니라, AD 16세기 이후 출범한 프로테스탄트 교단들도 삼위일체와 관련된 이 일련의 "카톨릭/보편" 신조들을 역사적 교회의 "정통적" 신조로 수용한다.
"삼위일체"는 확실히 난해한 교리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종종 "신비"로 불린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지는 않다. 특별히 "무엇이 삼위일체인가?란 직접적인 질문보다, "무엇이 원-카톨릭 교회에서 정의한 삼위일체가 아닌가"에 우회적으로 초점을 맞추면 그 신학적 의미를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보다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은 (부정을 통한) 이 접근법이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기도 하다.
§ 니케아 회의 (AD 325년) 이전 200년 간의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진술
과연 예수가 "신"이며 "신의 아들"이라는 위상수립이 과연 속설들이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바대로 AD 4세기 초반에 가서야 이뤄진 것인지, 니케아 회의 이전의 주요 교부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해 보자.
가령, 예수의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안티오키아 주교 이그나티오스 (ca. 35 /50 - 98/117)는 AD 110년 경에 이미 ({신약성서}에 따라) 예수를 "세상의 창조자"이며 "신"으로 부르며, 이렇게 믿지 않는 자들을 이단으로 비난한다.
"For they speak of Christ, not that they may preach Christ, but that they may reject Christ; and they speak of the law, not that they may establish the law, but that they may proclaim things contrary to it. For they alienate Christ from the Father, and the law from Christ. They also calumniate His being born of the Virgin; they are ashamed of His cross; they deny His passion; and they do not believe His resurrection. They introduce God as a Being unknown; they suppose Christ to be unbegotten; and as to the Spirit, they do not admit that He exists. Some of them say that the Son is a mere man, and that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are but the same person, and that the creation is the work of God, not by Christ, but by some other strange power." (Epistle to the Trallians, Ch. VI).
그들(=이단자들)은 비록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만,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그들은 율법에 대해 말하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율법에 반하는 것들을 선포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성부와 상관없는 존재로 만들고, 율법을 그리스도로 부터 분리시킨다. 그리스도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끄럽게 여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부정하며 그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신을 미지의 존재로 만들며, 그리스도가 (성부로부터) 낳아진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령에 관해 그들은 성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성자가 그저 인간일 뿐이라 말하거나, 성부/성자/성령이 동일한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거나 (즉, 양태론적으로 성부-성자-성령이 한 실체가 형태만 달리한 것이라고 가르치거나 / 필자 주), 창조는 성부가 그리스도(=성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어떤 다른 기이한 능력을 통해 세상을 창조한 것이라고 말한다. --- 안티오키아 주교 이그나티오스, {트랄리아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제 6장 / 번역: 최광민
그렇다면 예수의 사도 요한의 제자인 이그나티오스가 말하는 "기독교도"들은 적어도 아래와 같이 믿는 사람들이다.
- 성부 (아버지)는 성자 (아들)를 낳았다.
- 성부는 성자를 통해 세상을 창조했다.
- 성자는 처녀 마리아를 통해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로 태어났다.
- 따라서 예수는 그저 인간이 아니다.
- 예수의 도래와 가르침은 {구약성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육체적으로 수난받고 십자가에서 수치스럽고 비참하게 처형당했다.
- 그리스도는 (육체적으로) 부활했다.
- 신 (=성부)은 더이상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예수가 그를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 성령은 실재하는 존재이다.
- 성부-성자-성령은 양태론적인 입장처럼 한 실체의 세가지 다른 양태/모습이 아니라 셋으로 구별되는 존재이다. 이것은 후대의 정의인 "삼위"에 대응한다.
이 안에는 이미 (정교한 정의를 내릴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삼위일체에 관한 기본적인 교리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같은 편지의 다음 장에서 이그나티오스는 예수를 "신"으로 호칭한다. 이 말은 레토릭이 아니다. 이그나티오스는 이미 제 6장에서 예수/성자를 창조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1. Φυλάττεσθε οὖν τοὺς τοιούτους. τοῦτο δὲ ἔσται ὑμῖν ϕυσιουμένοις καὶ οὖσιν ἀχωρίστοις θεοῦ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καί τοῦ ἐπισκόπου καὶ τῶν διαταγμάτων τῶν ἀποστόλων. 2. ὁ ἐντὸς θυσιαστηρίου ὢν καθαρός ἐστιν· τοῦτ’ ἔστιν, ὁ χωρὶς ἐπισκόπου καὶ πρεσβυτερίου καὶ διακόνων πράσσων τι, οὗτος καθαρός ἐστιν τῇ συνειδήσει.
Be on your guard, therefore, against such persons. And this will be the case with you if you are not puffed up, and continue in intimate union with Jesus Christ our God, and the bishop, and the enactments of the apostles. He that is within the altar is pure, but he that is without is not pure; that is, he who does anything apart from the bishop, and presbytery, and deacons, such a man is not pure in his conscience. -- TIgnatius, {The Letter to the Trallians} 7장
그런 이들을 경계하시오. 만약 그대들이 겸손하게 우리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 ( θεοῦ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및 주교/감독들과 사도들의 규율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면, 이런 자들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단 안에 있는 자는 순결하나, 떠난 자는 더럽습니다. 즉, 주교(감독)와 사제(장로)와 부제(집사)를 거역해 행동하는 자는 그 양심이 순결하지 않습니다. --- 이그나티오스, {트랄리아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제 7장 / 번역: 최광민
1. Καὶ ἔλαθεν τὸν ἄρχοντα τοῦ αἰῶνος τούτου ἡ παρθενία Μαρίας καὶ ὁ τοκετὸς αὐτῆς, ὁμοίως καὶ ὁ θάνατος τοῦ κυρίου· τρία μυστήρια κραυγῆς, ἅτινα ἐν ἡσυχίᾳ θεοῦ ἐπράχθη. 2. πῶς οὖν ἐφανερώθη τοῖς αἰῶσιν; ἀστὴρ ἐν οὐρανῷ ἔλαμψεν ὑπὲρ πάντας τοὺς ἀστέρας, καὶ τὸ φῶς αὐτοῦ ἀνεκλάλητον ἦν καὶ ξενισμὸν παρεῖχεν ἡ καινότης αὐτοῦ, τὰ δὲ λοιπὰ πάντα ἄστρα ἅμα ἡλίῳ καὶ σελήνῃ χορὸς ἐγένετο τῷ ἀστέρι, αὐτὸς δὲ ἦν ὑπερβάλλων τὸ φῶς αὐτοῦ ὑπὲρ´πάντα· ταραχή τε ἦν, πόθεν ἡ καινότης ἡ ἀνόμοιος αὐτοῖς. 3. ὅθεν ἐλύετο πᾶσα μαγεία καὶ´πᾶς δεσμὸς ἠφανίζετο κακίας· ἄγνοια καθῃρεῖτο, παλαιὰ βασι-λεία διεφθείρετο θεοῦ ἀνθρωπίνως φανερουμένου εἰς καινότητα ἀϊδίου ζωῆς· ἀρχὴν δὲ ἐλάμβανεν τὸ παρὰ θεῷ ἀπηρτισμένον. ἔνθεν τὰ πάντα συνεκινεῖτο διὰ τὸ μελετᾶσθαι θανάτου κατάλυσιν.
Now the virginity of Mary was hidden from the prince of this world, as was also her offspring, and the death of the Lord; three mysteries of renown, which were wrought in silence by God. How, then, was He manifested to the world? A star shone forth in heaven above all the other stars, the light of which was inexpressible, while its novelty struck men with astonishment. And all the rest of the stars, with the sun and moon, formed a chorus to this star, and its light was exceedingly great above them all. And there was agitation felt as to whence this new spectacle came, so unlike to everything else [in the heavens]. 3. Hence every kind of magic was destroyed, and every bond of wickedness disappeared; ignorance was removed, and the old kingdom abolished, God Himself being manifested in human form for the renewal of eternal life. And now that took a beginning which had been prepared by God. Henceforth all things were in a state of tumult, because He meditated the abolition of death. --- {The Epistle to Ephesians} XIX.
...(필자 주: 인간을) 영생으로 거듭나게 하기위해 신 자신이 인간의 형태로 나타나셨 (θεοῦ ἀνθρωπίνως φανερουμένου)습니다.. --- 이그나티오스, {에페소스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XIX. / 번역: 최광민
1. Ἐπεὶ πάσαις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οὐκ ἠδυνηθην γράψαι διὰ τὸ ἐξαίφνης πλεῖν με ἀπο Τρωάδος εἰς Νεάπολιν, ὡς το θέλημα προστάσσει, γράψεις ταῖς ἔμπροσθεν ἐκκλησίαις, ὡς θεοῦ γνώμην κεκτημένος, εἰς τὸ καὶ αὐτοὺς τὸ αὐτὸ ποιῆσαι, (οἱ μὲν δυνάμενοι πεχοὺς πέμψαι, οἱ δὲ ἐπιστολὰς διὰ τῶν ὑπὸ σου πεμπομένων, ἵνα δοξασθῆτε αἰωνίῳ ἔργῳ,)* ὡς ἄξιος ὤν. 2. ἀσπάζομαι πάντας ἐξ ὀνόματος καὶ τὴν τοῦ Ἐπιτρόπου σὺν ὅλῳ τῷ οἴκῳ αὐτῆς καὶ τῶν τέκνων. ἀσπάζομαι Ἄταλον τὸν ἀγαπητόν μου. ἀσπάζομαι τὸν μέλλοντα καταξιοῦσθαι τοῦ εἰς Συρίαν πορεύεσθαι, ἔσται ἡ χάρις μετ’ αὐτοῦ διὰ παντὸς καὶ τοῦ πέμποντος αὐτον Πολυκάρπου. 3. ἐρρῶσθαι ὑμᾶς διὰ παντὸς ἐν θεῷ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ῷ εὔχομαι, ἐν ᾧ διαμείνητε ἐν ἑνότητι θεοῦ καὶ ἐπισκοπῇ. ἀσπάζομαι Ἄλκην, τὸ ποθητόν μοι ὄνομα. ἔρρωσθε ἐν κυρίῳ.
Inasmuch as I have not been able to write to all the Churches, because I must suddenly sail from Troas to Neapolis, as the will [of the emperor] enjoins, [I beg that] you, as being acquainted with the purpose of God, will write to the adjacent Churches, that they also may act in like manner, such as are able to do so sending messengers, and the others transmitting letters through those persons who are sent by you, that you may be glorified by a work which shall be remembered for ever, as indeed you are worthy to be. I salute all by name, and in particular the wife of Epitropus, with all her house and children. I salute Attalus, my beloved. I salute him who shall be deemed worthy to go [from you] into Syria. Grace shall be with him for ever, and with Polycarp that sends him. I pray for your happiness for ever in our God, Jesus Christ, by whom continue in the unity and under the protection of God, I salute Alce, my dearly beloved. Fare well in the Lord. --- 이그나티오스, {The Epistle to Polycarp} 8:3
[전략] 우리의 신 예수 그리스도 (θεῷ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ῷ)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길 기도...[후략]. --- 이그나티오스 {폴리카포스에게 보내는 편지} 8:3 / 번역: 최광민
"“A Son,” they say, has been given to us, on whose shoulder the government is from above; and His name is called the Angel of great counsel, Wonderful, Counsellor, the strong and mighty God.” --- Ignatius, {Epistle to the Antiochians}, 3
그들은 말하길, 한 아들이 우리에게 보내졌고, 그의 어깨에는 위로부터의 권력이 얹어졌는데, 그의 이름은 (신의) 강한 성회로부터 보냄을 받는 자 (앙겔로스), 기이한 자, 조언자, 강하고 능력있는 신으로 불린다. --- 이그나티오스, {안티오키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3
거의 동시대 인물이자 역시 예수의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스미르나 주교 폴리카포스 (AD 69 - AD155)는 또 어떤가? 그가 필립피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 그 역시 예수를 "주님이자 신"으로 호칭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폴리카포스와 이그나티오스는 서로 교신을 주고 받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교부들이다.
라틴어 사본을 통해 내용을 살펴보자.
2. Deus autem et pater domini nostri Iesu Christi, et ipse sempiternus pontifex, dei filius Iesus Christus, aedificet vos in fide et veritate et in omni mansuetudine et sine iracundia et in patientia et in longanimitate et tolerantia et castitate; et det vobis sortem et partem inter sanctos suos et nobis vobiscum et omnibus, qui sunt sub caelo, qui credituri sunt in dominum nostrum et deum Iesum Christum et in ipsius patrem, qui resuscitavit eum a mortuis. --- Polycolycarp's letter to the Philippians
Now may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and the eternal High-priest Himself the [Son of God Jesus Christ, build you up in faith and truth, and in all gentleness and in all avoidance of wrath and in forbearance and long suffering and in patient endurance and in purity; and may He grant unto you a lot and portion among His saints, and to us with you, and to all that are under heaven, who shall believe on our Lord and God Jesus Christ and on His Father that raised him from the dead
신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과 진리, 온유와 분노피함과, 관용과 오랜 시련과, 인내과 순결 안에서 그대들을 세우시기를! 그 분께서 우리 주님이자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 (=dominum nostrum et deum Iesum Christum)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의 아버지를 믿는 그대들과, 우리와 또 모든 하늘 아래 있는 자들에게, 그의 성도들 가운데 많은 것을 얻게 하시길! --- 폴리카포스, {필립피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12:2 / 번역: 최광민
AD 99년 혹 101년에 사망한 로마 주교 클레멘스에 의해 씌여졌다고 여겨졌지만, 현재는 AD 140-160년 사이에 씌여진 것으로 간주되는 {코린트에 보내는 편지, Κλήμεντος πρὸς Κορινθίους β´} (통상, 클레멘스의 두번째 편지)는 이렇게 진술한다.
1. Ἀδελφοί, οὕτως δεῖ ἡμᾶς φρονεῖν περὶ Ἰησοῦ Χριστου, ὡς περὶ θεοῦ, ὡς περὶ κριτοῦ ζώντων καὶ νεκρῶν· καὶ οὐ δεῖ ἡμᾶς μικρὰ φρονεῖν περὶ τῆς σωτηρίας ἡμῶν.
BRETHREN, it is fitting that you should think of Jesus Christ as of God,--as the Judge of the living and the dead. ---Clement of Alexandria, {The 2nd Epistle of Clement} I tr. Roberts-Donaldson
형제들아, 예수 그리스도를 삶과 죽음의 심판자이신 신으로여겨야 할 것이다. -- 로마 주교 클레멘스, {두번째 편지} / 번역: 최광민
AD 70년에서 130년 사이에 씌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바르나바 Barnabas서}는 성자인 예수가 성부와 함께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이며, 바로 그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에 의해 고초를 겪었음을 강조한다.
"For to this end the Lord endured to deliver up His flesh to corruption, that we might be sanctified through the remission of sins, which is effected by His blood of sprinkling. For it is written concerning Him, partly with reference to Israel, and partly to us; and saith thus: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and braised for our iniquities: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 He was brought as a sheep to the slaughter, and as a lamb which is dumb before its shearer." Therefore we ought to be deeply grateful to the Lord, because He has both made known to us things that are past, and hath given us wisdom concerning things present, and hath not left us without understanding in regard to things which are to come. Now, the Scripture saith, "Not unjustly are nets spread out for birds." This means that the man perishes justly, who, having a knowledge of the way of righteousness, rushes off into the way of darkness.
And further, my brethren: if the Lord endured to suffer for our soul, He being Lord of all the world, to whom God said at the foundation of the world, "Let us make man after our image, and after our likeness," understand how it was that He endured to suffer at the hand of men.
....[전략]...더 나아가 나의 형제들아! 주님(=예수/성자)이 우리 영혼을 위해 고통을 참으셨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그 분 (=예수/성자)이, 세상의 기초가 놓일 때 신 (=성부)께서 "우리의 형상과 우리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들자"고 말했던 그 분이, (그의 피조물인 / 필자 주) 인간들에 의해 받은 고통을 참는 것이 어떠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라...[후략] --- 번역: 최광민
The prophets, having obtained grace from Him, prophesied concerning Him. And He (since it behoved Him to appear in flesh), that He might abolish death, and reveal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endured , in order that He might fulfill the promise made unto the fathers, and by preparing a new people for Himself, might show, while He dwelt on earth, that He, when He has raised mankind, will also judge them. Moreover, teaching Israel, and doing so great miracles and signs, He preached to him, and greatly loved him. But when He chose His own apostles who where to preach His Gospel, who were sinners above all sin, that He might show He came "not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Then He manifested Himself to be the Son of God. For if He had not come in the flesh, how could men have been saved by beholding Him? Since looking upon the sun which is to cease to exist, and is the work of His hands, their eyes are not able to bear his rays. The Son of God therefore came in the flesh with this view, that He might bring to a head the sum of their sins who had persecuted His prophets to the death. For this purpose, then, He endured. For God saith, "The stroke of his flesh is from them;" and "when I shall smite the Shepherd, then the sheep of the flock shall be scattered." He himself willed thus to suffer, for it was necessary that He should suffer on the tree. For says he Who prophesies regarding Him, "Spare my soul from the sword, fasten my flesh with nails; for the assemblies of the wicked have risen up against me." And again he says, "Behold, I have given my back to scourges, and my cheeks to strokes, and I have set my countenance as a firm rock" --- Epistle of Barnabas, Chapter 5, The New Covenant, Founded On The Sufferings Of Christ, Tends To Our Salvation, But To The Jews' Destruction).
When, therefore, He has fulfilled the commandment, what saith He? "Who is he that will contend with Me? let him oppose Me: or who is he that will enter into judgment with Me? let him draw near to the servant of the Lord." "Woe unto you, for ye shall all wax old, like a garment, and the moth shall eat you up." And again the prophet says, "Since as a mighty stone He is laid for crushing, behold I cast down for the foundations of Zion a stone, precious, elect, a corner-stone, honorable." Next, what says He? "And he who shall trust" in it shall live for ever." Is our hope, then, upon a stone? Far from it. But inasmuch as He laid his flesh with power; for He says, "And He placed me as a firm rock." And the prophet says again, "The stone which the builders rejected, the same has become the head of the corner." And again he says, "This is the great and wonderful day which the Lord hath made." I write the more simply unto you, that ye may understand. I am the off-scouring of your love. What, then, again says the prophet? "The assembly of the wicked surrounded me; they encompassed me as bees do a honeycomb," and "upon my garment they cast lots." Since, therefore, He was about to be manifested and to suffer in the flesh, His suffering was foreshown. For the prophet speaks against Israel, "Woe to their soul, because they have counselled an evil counsel against themselves, saying, Let us bind the just one, because he is displeasing to us." And Moses also says to them, "Behold these things, saith the Lord God: Enter into the good land which the Lord sware to Abraham, and Isaac, and Jacob, and inherit ye it,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What, then, says Knowledge? Learn: "Trust," she says, "in Him who is to be manifested to you in the flesh ? that is, Jesus." For man is earth in a suffering state, for the formation of Adam was from the face of the earth. What, then, meaneth this: "into the good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Blessed be our Lord, who has placed in us wisdom and understanding of secret things. For the prophet says, "Who shall understand the parable of the Lord, except him who is wise and prudent, and who loves his Lord?" Since, therefore, having renewed us by the remission of our sins, He hath made us after another pattern, that we should possess the soul of children, inasmuch as He has created us anew by His Spirit.
For the Scripture says concerning us, while He speaks to the Son, "Let Us make man after Our image, and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beasts of the earth, and the fowls of heaven, and the fishes of the sea." And the Lord said, on beholding the fair creature man, "Increase,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These things to the Son.
....성서는 인간에 대해 말하길, 성부께서 성자에게 "우리의 형상과 우리의 모습에 따라 우리가 인간을 만들고, 그들이 땅의 짐승들과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을 다스리도록 하자"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또 아름다운 피조물인 인간을 보시고 주님 (=성부)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워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들은 (성부가 / 필자 주) 성자에게 하신 말씀들이시다 / 번역: 최광민
Again, I will show thee how, in respect to us, He has accomplished a second fashioning in these last days. The Lord says, "Behold, I will make the last like the first." In reference to this, then, the prophet proclaimed, "Enter ye into the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and have dominion over it." Behold, therefore, we have been refashioned, as again He says in another prophet, "Behold, saith the Lord, I will take away from these, that is, from those whom the Spirit of the Lord foresaw, their stony hearts, and I will put hearts of flesh within them," because He was to be manifested in flesh, and to sojourn among us. For, my brethren, the habitation of our heart is a holy temple to the Lord. For again saith the Lord, "And wherewith shall I appear before the Lord my God, and be glorified?" He says, "I will confess to thee in the Church in the midst of my brethren; and I will praise thee in the midst of the assembly of the saints." We, then, are they whom He has led into the good land. What, then, mean milk and honey? This, that as the infant is kept alive first by honey, and then by milk, so also we, being quickened and kept alive by the faith of the promise and by the word, shall live ruling over the earth. But He said above, "Let them increase, and rule over the fishes." Who then is able to govern the beasts, or the fishes, or the fowls of heaven? For we ought to perceive that to govern implies authority, so that one should command and rule. If, therefore, this does not exist at present, yet still He has promised it to us. When? When we ourselves also have been made perfect to become heirs of the covenant of the Lord" --- Epistle of Barnabas, Chapter 6, The Sufferings Of Christ, And The New Covenant, Were Announced By The Prophets --- {바르나바서} 6장 / 번역: 최광민
AD 111-113년 사이에 소아시아 폰투스와 비티니아 총독이었던 소-플리니우스는 그 지역에서 황제숭배를 거부해 체포된 기독교도들을 취조한 후, 처벌에 관련된 공식 프로토콜에 대한 자문받기 위해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 속에서 그는 기독교도들이 예수를 신으로 받들고 있음을 증언한다.
Plinius Traiano Imperatori
Pliny the Younger, Letters 10.96-97
Pliny the Younger to the Emperor Trajan
Sollemne est mihi, domine, omnia, de quibus dubito, ad te referre. Quis enim potest melius vel cunctationem meum regere vel ignorantiam instruere? Cognitionibus de Christianis interfui numquam: ideo nescio quid et quatenus aut puniri soleat aut quaeri. Nec mediocriter haesitavi, sitne aliquod discrimen aetatum, an quamlibet teneri nihil a robustioribus differant; detur paenitentiae venia, an ei, qui omnino Christianibus fuit, desisse non prosit; nomen ipsum, si flagitiis careat, an flagitia cohaerentia nomini puniantur.
It is customary for me, sir, to refer to you in all matters wherein I have a doubt. Who truly is better able to rule my hesitancy, or to instruct my ignorance? I was never present at examinations of Christians, therefore I do not know what is customarily punished, nor to what extent, nor how far to take the investigation. I was quite undecided; should there be any consideration given to age; are those who are however delicate no different from the stronger? Should penitence obtain pardon; or, as has been the case particularly with Christians, to desist makes no difference? Should the name itself be punished (even if crimes are absent), or the crimes that go with the name?
Interim in iis, qui ad me tamquam Christiani deferebantur, hunc sum secutus modum. Interrogavi ipsos, an essent Christiani. Confitentes iterum ac tertio interrogavi supplicium minatus: perseverantes duci iussi. Neque enim dubitabam, qualecumque esset quod faterentur, pertinaciam certe et inflexibilem obstinationem debere puniri. Fuerunt alii similis amentiae, quos quia cives Romani erant, adnotavi in urbem remittendos. Mox ipso tractatu, ut fieri solet, diffundente se crimine, plures species inciderunt. Propositus est libellus sine auctore multorum nomina continens.
Meanwhile, this is the method I have followed with those who were brought before me as Christians. I asked them directly if they were Christians. The ones who answered affirmatively I questioned again with a warning, and yet a third time: those who persisted I ordered led [away]. For I have no doubt, whatever else they confessed to, certainly [this] pertinacity and inflexible obstinacy ought to be punished. There were others alike of madness, whom I noted down to be sent to the City, because they were Roman citizens. Soon in consequence of this policy itself, as it was made standard, many kinds of criminal charges occurred and spread themselves abroad. A pamphlet was published anonymously, containing the names of many.
Qui negabant esse se Christianos aut fuisse, cum praeeunte me deos appellarent et imagini tuae, quam propter hoc iusseram cum simulacris numinum adferri, ture ac vino supplicarent, praeterea male dicerent Christo, quorum nihil posse cogi dicuntur, qui sunt re vera Christiani, dimittendos esse putavi. Alii ab indice nominati esse se Christianos dixerunt et mox negaverunt; fuisse quidem, sed desisse, quidem ante triennium, quidam ante plures annos; non nemo etiam ante viginti. Hi quoque omnes et imaginem tuam deorumque simulacra venerati sunt et Christo maledixerunt.
Those who denied that they were or ever had been Christians, when they swore before me, called on the gods and offered incense and wine to your image (which I had ordered brought in for this [purpose], along with images of the gods), and also cursed Christ (which, it is said, it is impossible to force those who are real Christians to do) I thought worthy to be acquitted. Others named by an informer, said they had been Christians, but now denied [it]; certainly they had been, but had lapsed, some three years ago, some more; and more than one [lit. not nobody] over twenty years ago. These all worshiped both your image and the images of the gods and cursed Christ.
현재나 예전에 기독교도였던 적이 없다고 부인했던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제 앞에서 맹세하고 신들을 부르면서 (제가 이 목적으로 신들의 형상들과 함께 준비해 온) 폐하의 형상 앞에 분향하고 포도주를 부어 바치면서 그리스도를 저주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진짜 기독교도라면 절대로 하지 못할 행동입니다.)..... / 번역: 최광민
Adfirmabant autem hanc fuisse summam vel culpae suae vel erroris, quod essent soliti stato die ante lucem convenire carmenque Christo quasi deo dicere secum invicem seque sacramento non in scelus aliquod obstringere, sed ne furta, ne latrocinia, ne adulteria committerent, ne fidem fallerent, ne depositum appellati abnegarent; quibus peractis, morem sibi discedendi fuisse rursusque coeundi ad capiendum cibum, promiscuum tamen et innoxium; quod ipsum facere desisse post edictum meum, quo secundum mandata tua hetaerias esse vetueram.
They stated that the sum of their guilt or error amounted to this, that they used to gather on a stated day before dawn and sing to Christ as if he were a god, and that they took an oath not to involve themselves in villainy, but rather to commit no theft, no fraud, no adultery; not to break faith, nor to deny money placed with them in trust. Once these things were done, it was their custom to part and return later to eat a meal together, innocently, although they stopped this after my edict, in which I, following your mandate, forbade all secret societies.
그들은 (=배교자들) 말하길......기독교도들은 지정된 날 (=일요일) 동이 트기전 새벽에 모여 그리스도가 신이라도 되듯 (quasi deo) 그에게 찬미가를 부른다고 합니다....[후략] / 번역: 최광민
Quo magis necessarium credidi ex duabus ancillis, quae ministrae dicebantur, quid esset veri, et per tormenta quaerere. Nihil aliud inveni quam superstitionem pravam, immodicam.
All the more I believed it necessary to find out what was the truth from two servant maids, which were called deaconesses, by means of torture. Nothing more did I find than a disgusting, fanatical superstition.
Ideo dilata cognitione, ad consulendum te decucurri. Visa est enim mihi res digna consultatione, maxime propter periclitantium numerum. Multi enim omnis aetatis, omnis ordinis, utriusque sexus etiam vocantur in periculum et vocabuntur. Neque civitates tantum, sed vicos etiam atque agros superstitionis istius contagio pervagata est; quae videtur sisti et corrigi posse. Certe satis constat prope iam desolata templa coepisse celebrari, et sacra sollemnia diu intermissa repeti pastumque venire victimarum, cuius adhuc rarissimus emptor inveniebatur. Ex quo facile est opinari, qui turba hominum emendari possit, si sit paenitentiae locus.
Therefore I stopped the examination, and hastened to consult you. For it appears to me a proper matter for counsel, most greatly on account of the number of people endangered. For many of all ages, all classes, and both sexes already are brought into danger, and shall be [in future]. And not only the cities; the contagion of this superstition is spread throughout the villages and the countryside; but it appears to me possible to stop it and put it right. Certainly the temples which were once deserted are beginning to be crowded, and the long interrupted sacred rites are being revived, while food from the sacrifices is selling, for which up to now a buyer was hardly to be found. From which it may easily be supposed, that what disturbs men can be mended, if a place is allowed for repentance.
Trajan to Pliny the Younger
You observed proper procedure, my dear Pliny, in sifting the cases of those who had been denounced to you as Christians. For it is not possible to lay down any general rule to serve as a kind of fixed standard. They are not to be sought out; if they are denounced and proved guilty, they are to be punished, with this reservation, that whoever denies that he is a Christian and really proves it--that is, by worshiping our gods--even though he was under suspicion in the past, shall obtain pardon through repentance. But anonymously posted accusations ought to have no place in any prosecution. For this is both a dangerous kind of precedent and out of keeping with the spirit of our age.
AD 130-150년 경의 작품으로 감정된 무명 (혹은 Mathetes / 제자)의 저자가 디오게네스란 인물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는, 그리스도가 태초로부터 성부와 함께 있었고, 또 성부로부터 보내졌다고 가르친다.
I do not speak of things strange to me, nor do I aim at anything inconsistent with right reason;[3] but having been a disciple of the Apostles, I am become a teacher of the Gentiles. I minister the things delivered to me to those that are disciples worthy of the truth. For who that is rightly taught and begotten by the loving[4] Word, would not seek to learn accurately the things which have been clearly shown by the Word to His disciples, to whom the Word being manifested has revealed them, speaking plainly [to them], not understood indeed by the unbelieving, but conversing with the disciples, who, being esteemed faithful by Him, acquired a knowledge of the mysteries of the Father? For which s reason He sent the Word, that He might be manifested to the world; and He, being despised by the people [of the Jews], was, when preached by the Apostles, believed on by the Gentiles.[6] This is He who was from the beginning, who appeared as if new, and was found old, and yet who is ever born afresh in the hearts of the saints. This is He who, being from everlasting, is today called[7] the Son; through whom the Church is enriched, and grace, widely spread, increases in the saints. furnishing understanding, revealing mysteries, announcing times, rejoicing over the faithful. giving[8] to those that seek, by whom the limits of faith are not broken through, nor the boundaries set by the fathers passed over. Then the fear of the law is chanted, and the grace of the prophets is known, and the faith of the gospels is established, and the tradition of the Apostles is preserved, and the grace of the Church exults; which grace if you grieve not, you shall know those things which the Word teaches, by whom He wills, and when He pleases. For whatever things we are moved to utter by the will of the Word commanding us, we communicate to you with pains, and from a love of the things that have been revealed to us. --- Mathetes, {THE EPISTLE OF MATHETES TO DIOGNETUS} XI
....[전략]...그 (=성부)는 로고스를 보내어 세상에 나타나게 하셨다. 유대인들에게 모욕을 당했던 그는 (=로고스/말씀/성자) 사도들의 전도에 의해 이방인들이 믿게 된 그 분이다. 이 분은 태초로부터 존재했고, 새롭게 등장한 듯하나 사실은 옛부터 존재한 분이며, 또한 성도들의 마음 속에 늘 새롭게 나타나는 분이시다. 영원으로부터 존재한 이 분을 오늘날 '성자'라고 부른다...[후략.... --- 마테테스, {디오게네스에게 보내는 편지} / 번역: 최광민
철학자이다가 기독교로 개종했던 아네테의 아리스티데스는 AD 140년 경 하드리아누스 황제 앞으로 쓴 한 변론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시리아어 사본에서 번역된 내용을 옮긴다.
....The Christians trace the beginning of their religion to Jesus the Messiah. He is called the Son of the Most High God. It is said that God came down from heaven. He assumed flesh and clothed Himself with it from a Hebrew virgin. And the Son of God lived in a daughter of man... --- Aristides of Athens, {Apology} II
...기독교도들은 그 종교의 기원을 메시아 예수에게로 잡는다. 예수는 지극히 높은 신의 아들로 불리는데, 신은 하늘에서 강림하였고 그때 한 히브리 처녀를 통해 육체를 입었다고 이야기 된다. 신의 아들은 사람의 딸의 태중에서 잉태된 것이다.....--- 아테네의 아리스티데스, {변증} 2장 / 번역: 최광민
AD 150년 경, 팔레스티나 출신으로 로마에서 활동한 기독교 철학자이자 변론가였던 팔레스티나 출신의 유스티노스는 그의 첫번째 {변증, Apology}에서 이렇게 말한다. (Translated by Marcus Dods and George Reith. From Ante-Nicene Fathers, Vol. 1. Edited by Alexander Roberts, James Donaldson, and A. Cleveland Coxe. (Buffalo, NY: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85.)
"...Our teacher of these things is Jesus Christ, who also was born for this purpose, and was crucified under Pontius Pilate, procurator of Judaea, in the times of Tiberius Caesar; and that we reasonably worship Him, having learned that He is the Son of the true God Himself, and holding Him in the second place, and the prophetic Spirit in the third, we will prove. For they proclaim our madness to consist in this, that we give to a crucified man a place second to the unchangeable and eternal God, the Creator of all; for they do not discern the mystery that is herein, to which, as we make it plain to you, we pray you to give heed" --- First Apology 13:5-6, Christians Serve God Rationally [A.D. 151]).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해 태어나셨고,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유대아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 치하에 십자가형을 당하신 분이다. 우리는 타당한 이유로 그를 경배하는데, 그가 진정한 신의 아들로 성부에 이어 두번째 지위에 있으며, 예언의 영(=성령)은 세번째 지위에 있다고 배웠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우리더러 미쳤다고 비난하는데, 즉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은 범죄자에게 불변하고 영원하며 창주주인 신 다음 지위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안에 있는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 --- 유스티노스, {첫번째 변증} 13:5-6 / 번역: 최광민
But so much is written for the sake of proving that Jesus the Christ is the Son of God and His Apostle, being of old the Word, and appearing sometimes in the form of fire, and sometimes in the likeness of angels; but now, by the will of God, having become man for the human race, He endured all the sufferings which the devils instigated the senseless Jews to inflict upon Him;
그러나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신의 아들이자 신의 사도이며, 또한 태고적 말씀/로고스였으며, 종종 불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셨고, 혹은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셨음을 입증하는 너무 많은 문구들이 (성서 속에) 있다. 그러나 이제 신의 뜻에 따라 그는 사람이 되었고, 악마가 이를 모른 유대인들을 충동해 그를 핍박함으로 겪은 모든 고통을 견디어 내었다. --- 유스티노스, {첫번째 변증} 63장 발췌 / 번역: 최광민
....And I continued: "It is again written by Moses, my brethren, that He who is called God and appeared to the patriarchs is called both Angel and Lord, in order that from this you may understand Him to be minister to the Father of all things.....--- {Dialogues with Trypho} 58
...나는 더 말을 이었다: "나의 형제여 (=트리폰), 모세의 기록에 따르자면 신으로 불리우고 또 족장들 앞에 나타나셨던 그 분은 또한 천사(=사자)와 주님으로도 불리지요? 이로부터 당신은 그 분이 (=성자/예수) 만물의 아버지의 대리자였던 것으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트리폰과의 대화} 58 / 번역: 최광민
....Therefore these words testify explicitly that He is witnessed to by Him who established these things, as deserving to be worshipped, as God and as Christ. Moreover, that the word of God speaks to those who believe in Him as being one soul, and one synagogue, and one church, as to a daughter; --- {Trypho} 63
"...그래서 이 구절들은 성자/예수가 신과 그리스도로 숭배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 분 (=성부)이 증인이심을 명시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트리폰과의 대화} 63 / 번역: 최광민
.....For Christ is King, and Priest, and God, and Lord, and angel, and man, and captain, and stone, and a Son born, and first made subject to suffering, then returning to heaven, and again coming with glory, and He is preached as having the everlasting kingdom: .--- {Dialogues with Trypho} 34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왕이며, 사제이며, 신이며, 주님이며, (필자 주: 신의) 사자이며, 또한 인간이며...." {트리폰과의 대화} 34
....The Father of the universe has a Son. And He, being the first-begotten Word of God, is even God
... 우주의 아버지에게는 한 아들이 있다. 독생한 (혹은 처음 나신) 신의 말씀인 그는 또한 신이다.... {첫번째 변증} 63. / 번역: 최광민
... David predicted that He would be born from the womb before the sun and moon, according to the Father's will, made Him known, being Christ, as God strong and to be worshipped .--- {Dialogues with Trypho} (76).
.... 다윗은 성자가 성부의 뜻에 따라 인간의 자궁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날 것과, 성부가 그리스도인 성자를 강하고 경배받을 신으로 알리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 {트리폰과의 대화} 76 / 번역: 최광민
사실 AD 2세기 초기 교부들에게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장면에 등장하는 "두 야훼'에 대한 논증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초기 기독교의 표준해석이었다.
일단 해당 내용이 등장하는 전후 문맥을 {창세기}의 원문을 통해 읽어보자.
......야훼께서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문 어귀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웬 사람 셋이 자기를 향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을 보자마자 천막 문에서 뛰어나가 맞으며 땅에 엎드려 청을 드렸다. "손님네들, 괜찮으시다면 소인 곁을 그냥 지나쳐 가지 마십시오. 물을 길어올 터이니 발을 씻으시고 나무 밑에서 좀 쉬십시오. 떡도 가져올 터이니 잡수시고 피곤을 푸신 뒤에 길을 떠나십시오. 모처럼 소인한테 오셨는데, 어찌 그냥 가시겠습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아! 그렇게 하여주시겠소?"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고운 밀가루 서 말을 내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고 이르고 소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살이 연하고 맛있어 보이는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종에게 맡겨 빨리 잡아서 요리하게 하고는 그 송아지 요리에다가 엉긴 젖과 우유를 곁들여서 손님들 앞에 차려놓고, 손님들이 나무 밑에서 먹는 동안 그 곁에 서서 시중을 들었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부인 사라는 어디 계시오?" 하고 묻자, 아브라함은 사라가 천막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 내가 틀림없이 너를 찾아오리라. 그 때 네 아내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등지고 서 있는 천막 문 어귀에서 이 말을 엿듣고 있었다.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 많은 늙은이였고 사라는 달거리가 끊긴 지도 오래였다.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내가 이렇게 늙었고 내 남편도 다 늙었는데, 이제 무슨 낙을 다시 보랴!"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사라가, 다 늙은 몸으로 어떻게 아기를 낳으랴 하며 웃으니, 될 말이냐?이 야훼가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느냐?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에 내가 다시 찾아오리라. 그 때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그러자 사라는 겁이 나서 웃지 않았다고 잡아뗐으나, 야훼께서는 "아니다. 너는 분명히 웃었다." 하시며 꾸짖으셨다.
사람들은 길을 떠나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도 그들을 배웅하느라고 같이 왔다. 야훼께서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셨다. '내가 장차 하려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아브라함은 강대한 민족이 되고 세상 민족들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 복을 빌 것이 아닌가? 나는 그로 하여금 그의 자손과 그의 뒤를 이을 가문에게 옳고 바른 일을 지시하여 이 야훼의 가르침을 지키게 하려고 그를 뽑아 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그대로 이루어주어야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시고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아우성을 나는 차마 들을 수가 없다. 너무나 엄청난 죄를 짓고들 있다. 내려가서 그 하는 짓들이 모두 나에게 들려오는 저 아우성과 정말 같은 것인지 알아보아야 하겠다." 그 사람들은 걸음을 옮겨 소돔 쪽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냥 야훼 앞에 서 있었다.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물었다.....[중략].....
야훼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자리를 뜨셨다. 아브라함도 자기 고장으로 되돌아갔다.
하느님의 천사 둘이 소돔에 다다른 것은 저녁때였다. 롯이 때마침 성문께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맞으며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청하였다. "손님네들, 누추하지만 제 집에 들러 발을 씻으시고 하룻밤 편히 쉬신 다음 아침 일찍이 길을 떠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밖에서 밤을 새우겠다고 하면서 사양하였으나, 롯이 하도 간청하는 바람에 롯을 따라 그의 집에 들어갔다. 롯은 그들에게 누룩 안 든 빵을 구워주며 대접하였다. 그들이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소돔 시민이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온통 몰려와 롯의 집을 둘러싸고 롯에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오늘 밤 네 집에 든 자들이 어디 있느냐? 그자들하고 재미를 좀 보게 끌어내어라." ....[중략]..... 일이 이쯤 되자 그 두 사람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았다.......[중략].....동 틀 무렵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였다. "이 성에 벌이 내릴 때 함께 죽지 않으려거든, 네 아내와 시집가지 않은 두 딸을 데리고 어서 떠나거라." 그래도 롯이 망설이므로 그들은 보다못해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끌어내었다. 야훼께서 롯을 그토록 불쌍히 여기셨던 것이다. 롯의 가족을 데리고 나온 그들은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 이 분지 안에는 아무데도 머물지 마라. 있는 힘을 다 내어 산으로 피해야 한다." 하고 재촉하였다. 그러나 롯은 그들에게 간청하였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저같이 하잘것없는 사람에게 이렇듯 큰 호의를 베풀어 목숨을 건져주시니 고마운 말씀 이루 다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재앙이 당장 눈앞에 있는데 저 산으로 도망치다가는 죽고 말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기 보이는 도시라면 가까워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다.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작은 도시지만 거기에라도 가서 목숨을 건지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그는 청을 들어주겠다고 하며 롯에게 말하였다. "저 도시는 멸하지 않을 터이니 빨리 그 곳으로 달아나거라. 네가 그 곳에 이르기까지 나는 손을 쓸 수가 없다." 그 도시를 소알이라고 한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
롯이 소알 땅을 밟자 해가 솟았다. 야훼께서 손수 하늘에서 유황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퍼부으시어 (원어: 야훼께서, 유황과 불을 하늘의 야훼로부터) 거기에 있는 도시들과 사람과 땅에 돋아난 푸성귀까지 모조리 태워버리셨다. --- 한국어 공동번역, {창세기} 18-19장
{창세기} 19장 24절의 장면은 아래와 같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방식에 따라 평이하게 직역하면, "(지상에 있던) 야훼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하늘에 계신 야훼로부터 내리셨다"가 된다.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 원문과 BC 2세기에 히브리어에서 번역되었고 또 초기 기독교의 표준경전이었던 그리스어 번역 LXX (70인역) 원문을 살핀 후, 다양한 영어번역을 통해 살펴보자.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 원문
표준 그리스어 70인역 LXX 원문
24 וַֽיהוָ֗ה הִמְטִ֧יר עַל־סְדֹ֛ם וְעַל־עֲמֹרָ֖ה גָּפְרִ֣ית וָאֵ֑שׁ מֵאֵ֥ת יְהוָ֖ה מִן־הַשָּׁמָֽיִם׃ ---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
24 καὶ κύριος ἔβρεξεν ἐπὶ Σοδομα καὶ Γομορρα θεῖον καὶ πῦρ παρὰ κυρίου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 그리스어 LXX
24 Igitur Dominus pluit super Sodomam et Gomorrham sulphur et ignem a Domino de cælo: --- 라틴어 {불가타}
24 and Jehovah hath rained upon Sodom and upon Gomorrah brimstone and fire from Jehovah, from the heavens; --- 영어 직역, YLT
24 And Yahweh rains on Sodom and on Gomorrah sulphur and fire from Yahweh, from the heavens. --- 영어 직역 CLV
24 Then the Lord raubed upon Sodom and upon Gomorrah brimstone and fire from the Lord out of heaven - AV (=KJV)
24 Then the LORD caused to rain upon Sodom and upon Gomorrah brimstone and fire from the LORD out of heaven; -- JPS 1917
24 Then Hashem (=하쉠 = 그 이름 = 야훼) rained upon Sodom and upon Amora gofrit and eish from Hashem (하쉡 = 그 이름 = 야훼) out of Shomayim; --- Orthodox Jewish Bible (OJB)
24 Then the Lord rained on Sodom and Gomorrah sulfur and fire from the Lord out of heaven - ESV
24 Then the Lord rained down burning sulfur on Sodom and Gomorrah—from the Lord out of the heaven --- NIV
24 Then the Lord rained down sulfur and fire on Sodom and Gomorrah. It was sent down from the sky by the Lord -- NET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은 각각 지상과 천상에 있던 두 주님/야훼를 확실히 구분했고, 전자의 주님/야훼를 (즉, 아브라함을 천사들과 만났던 야훼를) 성자로, 후자의 주님/야훼를 성부로 이해했다. 주요 교부 몇 명의 진술들을 발췌해 보겠다.
우선, 유스티노스의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 제 56장을 전문 번역하겠다. 인용되는 성서 구절은 유스티노스의 글에 사용된 {70인역 LXX}를 따르겠다.
유스티노스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 제 56장 / 번역: 최광민
"Moses, then, the blessed and faithful servant of God, declares that He who appeared to Abraham under the oak in Mamre is God, sent with the two angels in His company to judge Sodom by Another who remains ever in the supercelestial places, invisible to all men, holding personal intercourse with none, whom we believe to be Maker and Father of all things; for he speaks thus: `God appeared to him under the oak in Mature, as he sat at his tent-door at noontide. And lifting up his eyes, he saw, and behold, three men stood before him; and when he saw them, he ran to meet them from the door of his tent; and he bowed himself toward the ground, and said; '" [Genesis 18:1-2] (and so on; ) "`Abraham gat up early in the morning to the place where he stood before the Lord [Jehovah]: and he looked toward Sodom and Gomorrah, and toward the adjacent country, and beheld, and, lo, a flame went up from the earth, like the smoke of a furnace.'" [Genesis 19:27-28]
[[유스티노스]] 복되고 신실했던 신의 종 모세는 마므레의 참나무 아래에 있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존재가 신이라는 것과, 또 이 신은 그때 천상에 남아있던 또 다른 신에 의해 소돔을 멸망시키기 위해 두 천사와 함께 소돔에 보내진 것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천상의 / 필자 주) 존재 (신)는 인간에겐 보이지 않으며 (감지되지 않으며) 또 아무와도 개인적인 접촉을 하지않는 분, 즉 우리가 창조주이자 만물의 아버지로 믿는 그 분입니다.모세는 '신은 마므레에 있는 참나무 아래에 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그때 아브라함은 정오 무렵에 천막 입구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눈을 들었을 때, 보라 세 명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보고 자신의 천막 입구에서 그들을 마중하러 나가 땅에 절하며 말하길.......'이라고 진술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주님/야훼 앞에 그가 섰던 곳으로 가서 소돔과 고모라 및 인근 지역을 살폈다. 땅에서 불길이 치솟하 마치 화로의 연기를 보는 듯 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 번역: 최광민
And when I had made an end of quoting these words, I asked them if they had understood them. And they said they had understood them, but that the passages adduced brought forward no proof that there is any other God or Lord, or that the Holy Spirit says so, besides the Maker of all things.
내 (=유스티노스)가 이 구절들을 인용하고나서 그들에게 (=유대인 트리폰과 배석자들 / 필자 주) 이 구절들을 이해했는지를 물었을 때, 그들은 물론 이해하긴 하지만 이 구절들이 만물의 창조자 이외에 어떤 다른 신, 혹은 주님이 존재한다거나 혹은 성령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 번역: 최광민
Then I replied, "I shall attempt to persuade you, since you have understood the Scriptures, [of the truth] of what I say, that there is, and that there is said to be, another God and Lord subject to the Maker of all things; who is also called an Angel, because He announces to men whatsoever the Maker of all things-above whom there is no other God-wishes to announce to them." And quoting once more the previous passage, I asked Trypho, "Do you think that God appeared to Abraham under the oak in Mamre, as the Scripture asserts? "
[[유스티노스]] 그럼 한번 납득시켜드려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성서를 이해하고 있고, 제가 성서에 만물의 창조자에게 종속된 또 다른 신과 주님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셨으니까요. 이 존재는그 위로 아무런 다른 신도 없는 만물의 창조자가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신 다는 점에서는 또한 천사 (전령/사자)로도 불립니다. 나 (=유스티노스)는 다시 한번 이전 구절을 트리폰에게 인용해 주었다. [[유스티노스]] 선생은 성서가 말하고 있는 바대로, 신이 마므레의 참나무 아래 있던 아브라함에 나타나셨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 번역: 최광민
He said, "Assuredly."
[[트리폰]] "그렇게 생각합니다. / 번역: 최광민
"Was He one of those three," I said, "whom Abraham saw, and whom the Holy Spirit of prophecy describes as men? "
[[유스티노스]] 그럼 신은 아브라함이 보았고 또 예언의 영 (=성령)이 "사람들"로 묘사한 그 세 명 가운데 하나였을까요? / 번역: 최광민
He said, "No; but God appeared to him, before the vision of the three. Then those three whom the Scripture calls men, were angels; two of them sent to destroy Sodom, and one to announce the joyful tidings to Sarah, that she would bear a son; for which cause he was sent, and having accomplished his errand, went away."
[[트리폰]] 아닙니다. 신은 그 세 명의 환상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서가 "사람들"로 적고 있는 그 세 명은 모두 천사였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 둘은 소돔을 멸망시키기 위해 보내졌고,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의 처 / 필자 주)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란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내졌고 그 일을 마친 후 그 곳을 떠났습니다. / 번역: 최광민
"How then," said I, "does the one of the three, who was in the tent, and who said, `I shall return to thee hereafter, and Sarah shall have a son, ' [Genesis 18:10] appear to have returned when Sarah had begotten a son, and to be there declared, by the prophetic word, God? But that you may clearly discern what I say, listen to the words expressly employed by Moses; they are these: `And Sarah saw the son of Hagar the Egyptian bond-woman, whom she bore to Abraham, sporting with Isaac her son, and said to Abraham, Cast out this bond-woman and her son; for the son of this bond-woman shall not share the inheritance of my son Isaac. And the matter seemed very grievous in Abraham's sight, because of his son. But God said to Abraham, Let it not be grievous in thy sight because of the son, and because of the bond-woman. In all that Sarah hath said unto thee, hearken to her voice; for in Isaac shall thy seed be called.' [Genesis 21:9-12] Have you perceived, then, that He who said under the oak that He would return, since He knew it would be necessary to advise Abraham to do what Sarah wished him, came back as it is written; and is God, as the words declare, when they so speak: `God said to Abraham, Let it not be grievous in thy sight because of the son, and because of the bond-woman? '" I inquired.
[[유스티노스]] 그렇다면. 그 셋 가운데 천막 안에서 "이후 내(=야훼)가 너 (=아브라함)에게로 돌아올 것이고, 사라는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창세기 18:10)"라고 말했던 그 한 명은 도대체 어떻게 사라가 아들을 낳을 때 돌아온 것이며, 또 예언의 말로 "신"이라 불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요? 그러나 제 말을 잘 이해한다면 모세의 표현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그 구절들은 이렇습니다; ....[중략] / 번역: 최광민
And Trypho said, "Certainly; but you have not proved from this that there is another God besides Him who appeared to Abraham, and who also appeared to the other patriarchs and prophets. You have proved, however, that we were wrong in believing that the three who were in the tent with Abraham were all angels."
[[트리폰]] 그렇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구절로부터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그 신 이외에 다른 신이 있다는 논점을 아직 증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이 현재까지 입증한 것은 '아브라함과 함께 천막에 있던 그 세 명이 모두 천사였다'라는 우리 (=유대인 / 필자 주)의 믿음이 틀렸다는 것 뿐입니다. / 번역: 최광민
I replied again, "If I could not have proved to you from the Scriptures that one of those three is God, and is called Angel, because, as I already said, He brings messages to those to whom God the Maker of all things wishes [messages to be brought], then in regard to Him who appeared to Abraham on earth in human form in like manner as the two angels who came with Him, and who was God even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it were reasonable for you to entertain the same belief as is entertained by the whole of your nation."
[[유스티노스]] 제가 성서로부터 이 세 명 가운에 한 분이 신이었고, 또 제가 이미 설명드렸다시피 그 분은 다만 만물의 창조자인 신으로부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기에 '천사 (= 앙겔로스 /전령)'이라 불렸을 뿐이란 점을 당신께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탓에, 당신도 그 분과 동행한 다른 두 천사들 처럼 사람의 형상으로 땅에 오셔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분이시자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신이셨던 그 분 (=성자/예수)에 대해 선생의 민족 (=유대인) 전체가 믿어온 것과 같이 믿고 있다고 봐야 하겠죠? / 번역: 최광민
"Assuredly," he said, "for up to this moment this has been our belief."
[[트리폰]] 그렇습니다. 그것이 현재까지의 우리의 믿음입니다.
Then I replied, "Reverting to the Scriptures, I shall endeavour to persuade you, that He who is said to have appeared to Abraham, and to Jacob, and to Moses, and who is called God, is distinct from Him who made all things,-numerically, I mean, not [distinct] in will. For I affirm that He has never at any time done anything which He who made the world-above whom there is no other God-has not wished Him both to do and to engage Himself with."
[[유스티노스]] 그럼 성서로 돌아가서 당신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그리고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분이자 신으로 불린 그 분은 모든 만물을 만드신 분과 숫자 상으로는 다르지만, 그 의지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성서로 돌아가서 선생을 납득시켜 보겠습니다. / 번역: 최광민
And Trypho said, "Prove now that this is the case, that we also may agree with you. For we do not understand you to affirm that He has done or said anything contrary to the will of the Maker of all things."
[[트리폰]] 그럼 당신의 이 설명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 한번 입증해 보이시지요. 우리는 그 분이 만물의 창조자의 의지에 반해 무엇을 하거나 말했다는 점을 당신이 입증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 번역: 최광민
Then I said, "The Scripture just quoted by me will make this plain to you. It is thus: `The sun was risen on the earth, and Lot entered into Segor (Zoar); and the Lord [Jehovah] rained on Sodom sulphur and fire from the Lord [Jehovah] out of heaven, and overthrew these cities and all the neighbourhood.'" [Genesis 19:24-25]
[[유스티노스]] 제가 인용할 성서의 구절을 들으시면 분명할 것입니다. '해가 떠오를 때 롯은 세고르 (소알)에 도착했다. 주님 (=야훼)는 소돔에 유황과 불을 하늘의 주님 (=야훼)께로부터 내리셨고 이 도시들과 주변지역을 쓸어버리셨다." / 번역: 최광민
Then the fourth of those who had remained with Trypho said, "It must therefore necessarily be said that one of the two angels who went to Sodom, and is named by Moses in the Scripture Lord, is different from Him who also is God and appeared to Abraham."
[[트리폰과 배석한 인물 #4]] 그러니까 소돔으로 갔던 두 천사 중 하나가 모세의 의해 성서에 "주님"이라고 불려졌고, 또 이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신과는 다른 존재임에 틀림없군요. / 번역: 최광민
"It is not on this ground solely," I said, "that it must be admitted absolutely that some other one is called Lord by the Holy Spirit besides Him who is considered Maker of all things; not solely [for what is said] by Moses, but also [for what is said] by David. For there is written by him: `The Lord [Jehovah] says to my Lord [Adonai], Sit on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 [Psalm 110:1] as I have already quoted. And again, in other words: `Thy throne, O God, is for ever and ever. A sceptre of equity is the sceptre of Thy kingdom: Thou hast loved righteousness and hated iniquity: therefore God, even Thy God, hath anointed Thee with the oil of gladness above Thy fellows.' [Psalm 45:6,7] If, therefore, you assert that the Holy Spirit calls some other one God and Lord, besides the Father of all things and His Christ, answer me; for I undertake to prove to you from Scriptures themselves, that He whom the Scripture calls Lord is not one of the two angels that went to Sodom, but He who was with them, and is called God, that appeared to Abraham."
[[유스티노스]] 여기 뿐만이 아닙니다. 성서의 다른 부분 역시 성서에서 만물의 창조자 (=성부)와 별도로 "주님/야훼"라 불린 존재에 대해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 뿐 아니라 다윗도 역시 그렇습니다. 제가 앞서 인용했듯, 그의 기록 (=시편)에 따르면, "주님 (야훼)께서 내 주님 (아도나이)에게 말씀하셨다.내가 네 적들은 네 발등상으로 만들 때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라 진술합니다. 또 다른 곳에선 "오, 신이여, 당신의 왕좌는 영원하며, 당신의 공평의 왕홀은 당신의 왕국의 왕홀이로다. 당신이 정의를 사랑하고 부정을 미워하였으니, 신 - 곧 당신의 신이 당신을 기쁨의 기름을 부어 당신의 동류들 위에 성별하였습니다'라고도 진술합니다. 그래서 만약 성령이 바로 여기서 만물의 아버지와 그의 그리스도 이외에 또 다른 한 신과 주님을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게 답해 보십시오. 저는 성서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소돔으로 간 이 두 천사 중 한 명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었고 또 신으로 불린 분이란 점, 그리고 그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분이란 점을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 번역: 최광민
And Trypho said, "Prove this; for, as you see, the day advances, and we are not prepared for such perilous replies; since never yet have we heard any man investigating, or searching into, or proving these matters; nor would we have tolerated your conversation, had you not referred everything to the Scriptures: for you are very zealous in adducing proofs from them; and you are of opinion that there is no God above the Maker of all things."
[[트리폰]] 그럼 이걸 한번 증명해 보세요. 당신도 아다시피 시간이 좀 지났고, 우리도 그런 위태로운 즉답을 드리기엔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진 어느 누구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고 증명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또 우리도 당신의 설명을 다 용인하고 싶지도 않고, 당신도 성서 상 모든 근거를 다 제시한 것은 아니니까요. 당신은 성서로부터 증명을 유도해내는데 정열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당신도 만물의 창조자 위에 어떤 다른 신도 없다는 입장이니까요. / 번역: 최광민
Then I replied, "You are aware, then, that the Scripture says, `And the Lord [Jehovah] said to Abraham, Why did Sarah laugh, saying, Shall I truly conceive? for I am old. Is anything impossible with God? At the time appointed shall I return to thee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and Sarah shall have a son.' [Genesis 18:13-14] And after a little interval: `And the men rose up from thence, and looked towards Sodom and Gomorrah; and Abraham went with them, to bring them on the way. And the Lord [Jehovah] said, I will not conceal from Abraham, my servant, what I do.' [Genesis 18:16-17] And again, after a little, it thus says: `The Lord [Jehovah] said, The cry of Sodom and Gomorrah is great, and their sins are very grievous. I will go down now, and see whether they have done altogether according to their cry which has come unto me; and if not, that I may know. And the men turned away thence, and went to Sodom. But Abraham was standing before the Lord [Jehovah]; and Abraham drew near, and said, Wilt Thou destroy the righteous with the wicked? '" [Genesis 18:20-23] (and so on, for I do not think fit to write over again the same words, having written them all before, but shall of necessity give those by which I established the proof to Trypho and his companions. Then I proceeded to what follows, in which these words are recorded: )
[[유스티노스]] 당신도 아다시피 성서는 '주님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왜 사라는 이렇게 늙은 내가 내가 과연 임신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하며 웃느냐? 신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느냐? 정해진 때 내가 네게로 돌아올 때 사라가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라고 진술합니다. 그리고 조금 뒤에서는 '그들이 일어나 소돔과 고모라 쪽을 향하여 보았다. 아브라함도 배웅하러그들과 함께 따라 나왔다. 주님 (=야훼)께서 말씀하시길, 내 종 아브라함에게 내가 할 일을 숨기지 않겠다'라고 진술합니다. 또 그 뒤에는 '주님 (=야훼)께서 말씀하시길,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리는 아우성이 크고 그 죄가 막중하니, 내가 지금 내려가서 내게 들려오는 그 아우성들처럼 그들이 행하고 있는지를 보리라 . 아브라함이 주님 (=야훼) 앞에 서 있다가 엎드려서 말하길, 주님 의로운 자들을 악한 자들과 함께 멸망시키시렵니까? 라고 물었다. (예전에 이미 언급한 것들을 같은 말을 반복해 말하는 것이 적절치 않지만, 트리폰과 배석자들에게는 이미 증거로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기록된 내용으로 넘어갔다.) / 번역: 최광민
"`And the Lord [Jehovah] went His way as soon as He had left communing with Abraham; and [Abraham] went to his place. And there came two angels to Sodom at even. And Lot sat in the gate of Sodom; ' [Genesis 18:33-19:1] and what follows until, `But the men put forth their hands, and pulled Lot into the house to them, and shut to the door of the house; ' [Genesis 19:10] and what follows till, `And the angels laid hold on his hand, and on the hand of his wife, and on the hands of his daughters, the Lord [Jehovah] being merciful to him.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had brought them forth abroad, that they said, Save, save thy life. Look not behind thee, nor stay in all the neighbourhood; escape to the mountain, lest thou be taken along with [them]. And Lot said to them, I beseech [Thee], O Lord [Adonai], since Thy servant hath found grace in Thy sight, and Thou hast magnified Thy righteousness, which Thou showest towards me in saving my life; but I cannot escape to the mountain, lest evil overtake me, and I die. Behold, this city is near to flee unto, and it is small: there I shall be safe, since it is small; and any soul shall live. And He said to him, Behold, I have accepted thee also in this matter, so as not to destroy the city for which thou hast spoken. Make haste to save thyself there; for I shall not do anything till thou be come thither. Therefore he called the name of the city Segor (Zoar). The sun was risen upon the earth; and Lot entered into Segor (Zoar). And the Lord [Jehovah] rained on Sodom and Gomorrah sulphur and fire from the Lord [Jehovah] out of heaven; and He overthrew these cities, and all the neighbourhood.' " [Genesis 19:16-25]
[[유스티노스]] '아브라함과의 만남 후, 즉시 주님 (=야훼)은 자신의 길을 갔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저녁 때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렀다. 롯이 소돔 입구에 앉아 있다가...'란 구절부터 이 다음의 '그러나 그들 (천사들)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 들이고 문을 닫았다'란 구절, 그리고 '그 천사들이 롯과 그의 처와 딸들의 손을 붙들었다. 롯에게 자비로운 주님 (=야훼)이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그 후 천사들이 롯의 가족을 밖으로 끌어내어 말하길, 구하거라 네 생명을 구하거라고 말했다. 뒤 돌아보지 말고 인근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쳐라. 그리고 롯이 천사들에게 말했다. 오 주여 (아도나이)여, 당신의 종에게 자비를 베푸셨으니 ...[중략]....신은 세고르 (소알)로 가라고 하셨다. 해가 땅 위로 떠 오를 때 롯은 소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님 (야훼)는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비를 주님 (야훼)로부터 하늘에서 내리셨다. 그는 이 두 도시들과 인근지역을 쓸어버리셨다. / 번역: 최광민
21 ἰδοὺ ἡ πόλις αὕτη ἐγγὺς τοῦ καταφυγεῖν ἐστιν ἐκεῖ μικρά· ἐκεῖ σωθήσομαι, ὡς μικρά ἐστι, καὶ ζήσεται ἡ ψυχή μου. καὶ εἶπεν αὐτῷ· Ἰδοὺ ἐθαύμασά σου τὸ πρόσωπον καὶ ἐπὶ τῷ ῥήματι τούτῳ τοῦ μὴ καταστρέψαι τὴν πόλιν περὶ ἧς ἐλάλησας. σπεῦσον τοῦ σωθῆναι ἐκεῖ· οὐ γὰρ δυνήσομαι ποιῆσαι πρᾶγμα ἕως τοῦ εἰσελθεῖν σε ἐκεῖ. διὰ τοῦτο ἐκάλεσε τὸ ὄνομα τῆς πόλεως Σηγώρ. ὁ ἥλιος ἐξῆλθεν ἐπὶ τὴν γῆν, καὶ Λὼτ εἰσῆλθεν εἰς Σηγώρ. καὶ ὁ κύριος ἔβρεξεν εἰς Σόδομα καὶ Γόμορρα θεῖον καὶ πῦρ παρὰ κυρίου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καὶ κατέστρεψε τὰς πόλεις ταύτας καὶ πᾶσαν τὴν περίοικον. 22 Καὶ πάλιν παυσάμενος ἐπέφερον· Καὶ νῦν οὐ νενοήκατε, φίλοι, ὅτι ὁ εἷς τῶν τριῶν, ὁ καὶ θεὸς καὶ κύριος τῷ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ὑπηρετῶν, κύριος τῶν δύο ἀγγέλων; προσελθόντων γὰρ αὐτῶν εἰς Σόδομα, αὐτὸς ὑπολειφθεὶς προσωμίλει τῷ Ἀβραὰμ τὰ ἀναγεγραμμένα ὑπὸ Μωυσέως· οὗ καὶ αὐτοῦ ἀπελθόντος μετὰ τὰς ὁμιλίας, ὁ Ἀβραὰμ ὑπέστρεψεν εἰς τὸν τόπον αὐτοῦ. 23 οὗ ἐλθόντος, οὐκέτι δύο ἄγγελοι ὁμιλοῦσι τῷ Λὼτ ἀλλ' αὐτός, ὡς ὁ λόγος δηλοῖ, καὶ κύριός ἐστι, παρὰ κυρίου τοῦ ἐν τῷ οὐρανῷ, τοῦτ' ἔστι τοῦ ποιητοῦ τῶν ὅλων, λαβὼν τὸ ταῦτα ἐπενεγκεῖν Σοδόμοις καὶ Γομόρροις ἅπερ ὁ λόγος καταριθμεῖ, οὕτως εἰπών· Κύριος ἔβρεξεν ἐπὶ Σόδομα καὶ Γόμορρα θεῖον καὶ πῦρ παρὰ κυρίου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And after another pause I added: "And now have you not perceived, my friends, that one of the three, who is both God and Lord, and ministers to Him who is in the heavens, is Lord of the two angels? For when[the angels] proceeded to Sodom, He remained behind, and communed with Abraham in the words recorded by Moses; and when He departed after the conversation, Abraham went back to his place. And when he came[to Sodom], the two angels no longer conversed with Lot, but Himself, as the Scripture makes evident; and He is the Lord who received commission from the Lord who[remains] in the heavens, i.e.,the Maker of all things, to inflict upon Sodom and Gomorrah the[judgments] which the Scripture describes in these terms:'The Lord rained down upon Sodom and Gomorrah sulphur and fire from the Lord out of heaven..." --- {Dialogue of Justin, Philosopher and Martyr, with Trypho, a Jew}.CHAP. LVI.
.... 잠깐 멈춘 후,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여러분 (=유대인 트리폰과 배석자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그 세 명 가운데 한 명, 즉 신이자 주님이신 분이 하늘에 있는 분의 전권을 대리하는 분이며, 이 두 천사의 주인이 아닙니까? 천사들이 소돔으로 갈때, 이 분은 뒤에 남아 모세가 기록한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이야기를 나눴지요? 그 분이 대화를 마치고 떠날 때 아브라함은 자기 처소로 돌아갔고, 다시 이 분이 소돔에 이르렀을 때, 롯은 두 천사와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고 그 분과 이야기 한 것입니다. 성서가 이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분 (=성자)은 하늘에 있는 만물의 창조자 주님 (=야훼/성부)으로부터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할 권한을 받은 분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이렇게 적습니다: [그리스어 번역본에서] "주님 (=야훼/성자)께서, 소돔과 고모라 위로 유황과 불을, 주님 (=야훼/성부)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리셨다.." --- 유스티노스, {트리폰과의 대화}, 56장 / 번역: 최광민
AD 2세기 초반, 폴리카포스와 함께 예수의 제자 요한의 제자였던 시리아 안티오키아 주교 이그나티오스가 쓴 것으로 여겨진 (그러나 현재는 저자 미상으로 간주하는) 안티오키아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For Moses, the faithful servant of God, when he said, "The Lord thy God is one Lord," and thus proclaimed that there was only one God, did yet forthwith confess also our Lord [Jesus] when he said, "The Lord rained upon Sodom and Gomorrah fire and brimstone from the Lord." And again [he confessed a second time our Lord Jesus by saying],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after our image: and so God made man, after the image of God made He him. --- Ignatius, {The Epistle of Ignatius to the Antiochians}, Chapter II.—The True Doctrine Respecting God and Christ.
" 주 너희 하느님은 한 분 주님이시다"라고 말함으로써 세상에는 오직 한 신만 존재한다고 선언했던 신의 신실한 종인 모세는, 또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 필자 주)에 대해서 이 구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성자)은 소돔과 고모라 위에 불과 유황을 주님 (=성부)으로부터 내리셨다" .... --- 안티오키아 주교 이그나티오스, {안티오키아인들에게 보내는 서신} 제 2장 / 번역: 최광민
AD 2세기 말의 교부이자 예수의 제자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카포스를 청문했던 리그두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Therefore neither would the Lord, nor the Holy Spirit, nor the apostles, have ever named as God, definitely and absolutely, him who was not God, unless he were truly God; nor would they have named any one in his own person Lord, except God the Father ruling over all, and His Son who has received dominion from His Father over all creation, as this passage has it: "The LORD said unto my Lord, Sit Thou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Here the [Scripture] represents to us the Father addressing the Son; He who gave Him the inheritance of the heathen, and subjected to Him all His enemies. Since, therefore, the Father is truly Lord, and the Son truly Lord, the Holy Spirit has fitly designated them by the title of Lord. And again, referring to the destruction of the Sodomites, the Scripture says, "Then the LORD rained upon Sodom and upon Gomorrah fire and brimstone from the LORD out of heaven." For it here points out that the Son, who had also been talking with Abraham, had received power to judge the Sodomites for their wickedness. And this [text following] does declare the same truth: "Thy throne, O God; is for ever and ever; the scepter of Thy kingdom is a right scepter. Thou hast loved righteousness, and hated iniquity: therefore God, Thy God, hath anointed Thee." For the Spirit designates both [of them] by the name, of God — both Him who is anointed as Son, and Him who does anoint, that is, the Father. --- Irenaeus, {Against Heresies} Book 3, ch 6
...그래서 성서는 적절하게 성부는 진실로 주님이며, 성자도 진실로 주님이며, 성령도 주님이란 호칭을 사용한다. 아울러, 소돔인들을 멸망시킬 때의 이야기를 언급하자면, 성서는 "그리고 '주님'은 소돔과 고모라 위에 불과 유황을 하늘의 '주님'께로부터 내리셨다"라고 적는다. 여기 적힌대로, (바로 전 장면에서 / 필자 주) 아브라함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성자는 소돔인들의 악행을 심판할 권한을 (성부로부터 / 필자 주) 받으신 것이다..... --- 리그두눔 주교 이레네우스, {이단을 반박하며} 제 3권 6장 / 번역: 최광민
AD 2세기 말과 3세기 초의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프락세아스 반박}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이 글은 이단자 프락세아스를 반박하는 것으로, 테르툴리아누스가 풀이하는 "경세적" 삼위일체의 개념이 드러나는 글이다.
That is a still grander statement which you will find expressly made in the Gospel: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There was One "who was," and there was another "with whom" He was. But I find in Scripture the name Lord also applied to them Both: "The Lord said unto my Lord, Sit Thou on my right hand." And Isaiah says this: "Lord, who hath believed our report, and to whom is the arm of the Lord revealed? " Now he would most certainly have said Thine Arm, if he had not wished us to understand that the Father is Lord, and the Son also is Lord. A much more ancient testimony [of Christ's deity] we have also in Genesis: "Then the Lord rained upon Sodom and upon Gomorrah brimstone and fire from the Lord out of heaven." Now, either deny that this is Scripture; or else (let me ask) what sort of man you are, that you do not think words ought to be taken and understood in the sense in which they are written, especially when they are not expressed in allegories and parables, but in determinate and simple declarations?" ---- Tertullian, {Against Praxeas}, Chapter XIII.—The Force of Sundry Passages of Scripture Illustrated in Relation to the Plurality of Persons and Unity of Substance. There is No Polytheism Here, Since the Unity is Insisted on as a Remedy Against Polytheism.)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 필자 주) 훨씬 오래된 증언으로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그리고 주님은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을 하늘의 주님으로부터 내리셨다"란 구절이 있다. 자, 이제 이것이 성서의 구절이 아니라고 한번 부정해 보라. 부정할 수 없다면, 알레고리 (풍유)나 비유로 표현되지 않고 분명하고 단순하게 선언된 이 문장을, 그 문장이 씌여진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 카르타고 교부 테르툴리아누스, {프락세아스 반박} 제 3장 / 번역: 최광민
AD 3세기 전반부에 북 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키프리아누스는 {유대인 반박}에서 구약/신약성서에서 '심판자'는 바로 성자, 즉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며, 이것은 역시 {창세기}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주체는 성부의 위임을 받아 지상에 온 성자였다고 풀이한다.
"I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The Father judgeth nothing, but hath given all judgment unto the Son, that all may honour the Son as they honour the Father. He who honoureth not the Son, honoureth not the Father who hath sent Him." Also in the seventy-first Psalm: "O God, give the king Thy judgment, and Thy righteousness to the king's son, to judge Thy people in righteousness." Also in Genesis: "And the Lord rained upon Sodom and Gomorrah sulphur, and fire from heaven from the Lord."" --- Cyprian of Carthage, {The Treatises of Cyprian, Treatise XII. Three Books of Testimonies Against the Jews}. Third Book., Testimonies., 33. That the Father judgeth nothing, but the Son; and that the Father is not glorified by him by whom the Son is not glorified.
요한의 복음서에는 "아버지 (성부)는 판단치 않으시나, 판단하는 권세를 아들 (성자)에게 주었다. 아버지를 높이는 자는 아들도 높일 것이다. 아들을 높이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를 높이지 않는 것이다"......[중략]....."라고 했다. {창세기}에서는 "주님은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하늘의 주님께로부터 내리셨다"라고 적는다.... --- 카르타고 주교 키프리아누스, {유대인 반박} 제 3권 33장 / 번역: 최광민
AD 3세기 전반부에 활동한 로마 사제이자 신학자인 노바티아누스는 {삼위일체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Therefore the Lord overturned Sodom, that is, God overturned Sodom; but in the overturning of Sodom, the Lord rained fire from the Lord. And this Lord was the God seen by Abraham; and this God was the guest of Abraham, certainly seen because He was also touched. But although the Father, being invisible, was assuredly not at that time seen, He who was accustomed to be touched and seen was seen and received to hospitality. But this the Son of God, "The Lord rained from the Lord upon Sodom and Gomorrha brimstone and fire." And this is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Go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this is Christ. It was not the Father, then, who was a guest with Abraham, but Christ. Nor was it the Father who was seen then, but the Son; and Christ was seen. Rightly, therefore, Christ is both Lord and God, who was not otherwise seen by Abraham, except that as God the Word He was begotten of God the Father before Abraham himself." --- Novatian, {A Treatise of Novatian Concerning the Trinity}, Chapter XVIII. Argument.—Moreover Also, from the Fact that He Who Was Seen of Abraham is Called God; Which Cannot Be Understood of the Father, Whom No Man Hath Seen at Any Time; But of the Son in the Likeness of an Angel.)
그래서 주님은 소돔을 멸망시켰다, 즉 신께서 소돔을 멸망시킨 것이다. 그러나 소돔을 멸망시킬때, 주님은 주님으로부터 불비를 내리셨다. (후자의 / 필자 주) 이 주님은 아브라함이 보았던 그 신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맞이했던 신은 볼 수 있었고 만질 수 있었다. 성부는 볼 수도 없는 존재이기에 그때도 분명 그러했다. 만져지고 볼 수 있었던 그 주님은 아브라함의 환대를 받았다. 이 분은 신의 아들 (성자)였다. "주님은 주님으로부터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내리셨다"란 구절의 그 분이다. 이 분은 신의 말씀이었다. 신의 말씀이 육체를 입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될 분, 바로 그리스도시다..... --- 로마 사제 노바티아누스, {삼위일체에 관하여}
AD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의결된 '성부-성자 동일본질' 교리를 수용하긴 하지만, 회의 전까지만 해도 루키아노스 계열의 양자론에 다소 기울어 있던 (그래서 같은 루키아노스 문하의 아리우스에게 우호적이던)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니케아 회의 직전 무렵에 저술한 그의 유명한 {교회사}에도 역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입장은 성부-성자의 동일본질을 지지한 니케아파, 혹은 정통파 혹은 (분리 이전의) 카톨릭파의 공식입장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8. For if it is unreasonable to suppose that the unbegotten and immutable essence of the almighty God was changed into the form of man or that it deceived the eyes of the beholders with the appearance of some created thing, and if it is unreasonable to suppose, on the other hand, that the Scripture should falsely invent such things, when the God and Lord who judges all the earth and executes judgment is seen in the form of a man, who else can be called, if it be not lawful to call him the first cause of all things, than his only pre-existent Word? Concerning whom it is said in the Psalms, He sent his Word and healed them, and delivered them from their destructions.
9. Moses most clearly proclaims him second Lord after the Father, when he says, The Lord rained upon Sodom and Gomorrha brimstone and fire from the Lord. Genesis 19:24 The divine Scripture also calls him God, when he appeared again to Jacob in the form of a man, and said to Jacob, Your name shall be called no more Jacob, but Israel shall be your name, because you have prevailed with God. Genesis 32:28 Wherefore also Jacob called the name of that place Vision of God, saying, For I have seen God face to face, and my life is preserved. Genesis 32:30
모세는 성부에 이은 이 두번째 주님에 대해 "주님께서 하늘에 있는 주님께로부터 유황과 불비를 소돔과 고모라 위에 내리셨다"라고 선언한다. 성서는 또한 그 (=성자)가 인간의 모습으로 야곱 앞에 나타나 야곱에게 "네 이름은 더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네가 신과 겨루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때, 그 (=성자)를 신으로 부르고 있다. 야곱이 그 장소를 '신의 얼굴 (프니엘)'이라 불렀는데, 그것은 "내가 신을 대면하였으나 살아남았다"라고 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 번역: 최광민
10. Nor is it admissible to suppose that the theophanies recorded were appearances of subordinate angels and ministers of God, for whenever any of these appeared to men, the Scripture does not conceal the fact, but calls them by name not God nor Lord, but angels, as it is easy to prove by numberless testimonies. -- Eusebius, {Church History} Book I, Source. Translated by Arthur Cushman McGiffert. From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Vol. 1. Edited by Philip Schaff and Henry Wace. (Buffalo, NY: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90.)
그럼 이번에는 범-아리우스파들의 입장을 한번 살펴보자.
AD 351년 시르미움에서 아리우스파 주교들이 발표한 신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당시, 땅에 있던 "야훼"인 성자가 하늘에 있던 "야훼"인 성부로부터 불비를 내린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유스티노스 뿐 아니라 니케아 회의 이전의 다른 정통파 교부들의 해석과 일치한다.
(17.) Whosoever shall explain, “The Lord rained fire from the Lord” (Gen 24:24), not of the Father and the Son, and says that He rained from Himself, be he anathema. For the Son, being Lord, rained from the Father Who is Lord..." --- {Sixth Arian Confession aka First Sirmium (Sirmium, 351 AD)}
[제 17조] 누구든지 성부와 성자가 아닌 "주님 (= 천상의 성부 / 필자 주)이 불비를 내리셨다"라고 하거나, " 주님 자신 (= 즉, 땅에 있던 성자)이 불비를 내리셨다라고 하는 자는 파문당할 것이다. 주님(=야훼)이신 성자가, 또한 주님(=야훼)이신 성부로부터 불비를 내리신 것이기 때문이다. --- AD 351년 시르미움 1차회의 / 제 6차 아리우스 계열 신앙고백 / 번역: 최광민
현대어 번역본들은 첫번째와 두번째 야훼를 구분하는 전통적 독법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령, 현대 한국어 번역들은 아래와 같다. {개역개정}과 {공동번역}/{새번역}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감지해 보자.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 한국어 {개역개정}
야훼께서 손수 하늘에서 유황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퍼부으시어 거기에 있는 도시들과 사람과 땅에 돋아난 푸성귀까지 모조리 태워버리셨다. --- 한국어 {공동번역}
주님께서 하늘 곧 주님께서 계신 곳으로부터,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소나기처럼 퍼 부으셨다. 주님께서는 그 두 성과, 성 안에 사는 모든 사람과, 넓은 들과, 땅에 심은 채소를 다 엎어 멸하셨다. --- 한국어 {새번역}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초기 교부들은 {창세기} 19장의 "두" 야훼를 "한" 야훼로 해석하는 독법에 대해 여러차례 파문한 바 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두 야훼"로 읽는 독법은 삼위일체파 (=정통파) 뿐 아니라 심지어 AD 325년 니케아 회의 후에도 막강한 세력을 과시한 범-아리우스파의 입장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즉, AD 4세기의 아리우스 논쟁을 보면, 삼위일체파 (더 정확히는 "(삼위)동일본질"파) 뿐 아니라 범-아리우스파 역시 이 전자의 '야훼'를 인간이 되기 전의 예수라고 여기고 있었다.
기독교 교부들의 해석과 다른 현대의 해석 경향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시기에 스위스 개혁교회를 이끌던 장 칼뱅의 영향이 큰데,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그는 이 고대 교부들의 해석에 대해 판단보류를 선언한다.
칼뱅의 {창세기} 주석을 직접 읽어보자.
24. Et Jehova pluit super Sedom et super Hamorah sulphur et ignem a Jehova e coelis.
[라틴어] 여호와는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을 하늘의 여호와에게서 내리셨다
24. Then the Lord rained . Moses here succinctly relates in very unostentatious language,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of the other cities. The atrocity of the case might well demand a much more copious narration, expressed in tragic terms; but Moses, according to his manner, simply recites the judgment of God, which no words would be sufficiently vehement to describe, and then leaves the subject to the meditation of his readers. It is therefore our duty to concentrate all our thoughts on that terrible vengeance, the bare mention of which, as it did not take place without so mighty concussion of heaven and earth, ought justly to make us tremble; and therefore it is so frequently mentioned in the Scriptures. And it was not the will of God that those cities should be simply swallowed up by an earthquake; but in order to render the example of his judgment the more conspicuous, he hurled fire and brimstone upon them out of heaven. To this point belongs what Moses says, that the Lord rained fire from the Lord. The repetition is emphatical, because the Lord did not then cause it to rain, in the ordinary course of nature; but, as if with a stretched out hand, he openly fulminated in a manner to which he was not accustomed, for the purpose of making it sufficiently plain, that this rain of fire and brimstone was produced by no natural causes. It is indeed true, that the air is never agitated by chance; and that God is to be acknowledged as the Author of even the least shower of rain; and it is impossible to excuse the profane subtlety of Aristotle, who, when he disputes so acutely concerning second causes, in his Book on Meteors, buries God himself in profound silence. Moses, however, here expressly commends to us the extraordinary work of God; in order that we may know that Sodom was not destroyed without a manifest miracle. The proof which the ancients have endeavored to derive, from this testimony, for the Deity of Christ, is by no means conclusive: and they are angry, in my judgment, without cause, who severely censure the Jews, because they do not admit this kind of evidence. I confess, indeed, that God always acts by the hand of his Son, and have no doubt that the Son presided over an example of vengeance so memorable; but I say, they reason inconclusively, who hence elicit a plurality of Persons, whereas the design of Moses was to raise the minds of the readers to a more lively contemplation of the hand of God. And as it is often asked, from this passage, ‘What had infants done, to deserve to be swallowed up in the same destruction with their parents?’ the solution of the question is easy; namely, that the human race is in the hand of God, so that he may devote whom he will to destruction, and may follow whom he will with his mercy. Again, whatever we are not able to comprehend by the limited measure of our understanding, ought to be submitted to his secret judgment. Lastly, the whole of that seed was accursed and execrable so that God could not justly have spared, even the least. --- Calvin's Commentaries, Vol. 1: Genesis, Part I, tr. by John King, [1847-50]
.....이 진술로부터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유도해 낸 고대인들의 증명은 결코 확정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 필자 주) 분명하다고 생각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던 유대인들에게 분노한 그들 (교부들)은, 내 판단으론 그래서 이유없이 유대인들을 격렬히 비난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신이 (성부) 늘 성자의 손을 통해 활동한다고 고백하며, 성자가 그처럼 기억에 남을 만한 심판의 경우를 관장했을 것이라고 의심없이 믿는다. 다만 복수의 위격을 풀어낸 교부들의 사유는 여전히 확정적이지 않다고 말하고자 한다. 반면, 모세의 (진술)방식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 신의 손 (역사)를 대해 생생하게 떠올리도록 의도된 것이다 --- 장 칼뱅, {창세기 주석} / John King 영역 / 번역: 최광민
칼뱅도 진술하고 있다시피,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인간이 되기 전의 예수/성자가 "또 다른 야훼"라고 믿었다. 비록 칼뱅이 {창세기}의 그 구절을 "두 야훼/주님", 즉 "성부와 성자"에 대한 진술로 이해한 고대 교부들의 해석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뱅은 그의 {기독교 강요,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에서 "여호와/야훼"란 호칭을 성부 뿐 아니라 성자와 성령에게도 적용시켜서 이해했다. 즉, "여호와/야훼"란 호칭은 삼위일체 전체에 적용되는 호칭이라고 본 것이다.
읽어보자.
Isaiah prophesies, that “the Lord of Hosts” shall be “for a stone of stumbling, and for a rock of offence,” (Isa. 8:14). Paul asserts that this prophecy was fulfilled in Christ (Rom. 9:33), and, therefore, declares that Christ is that Lord of Hosts. In like manner, he says in another passage, “We shall all stand before the Judgment-seat of Christ. For it is written, As I live, saith the Lord, every knee shall bow to me, and every tongue shall confess to God.” Since in Isaiah God predicts this of himself (Isa. 45:23), and Christ exhibits the reality fulfilled in himself, it follows that he is the very God, whose glory cannot be given to another. (3.14.11)
이사야는 "만군의 주/여호와/야훼"께서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사야 8:14). 바울은 이 예언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고 진술하면서 (로마서 9:33)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 "만군의 주/여호와/야훼"라고 선언하였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구절에서는, "우리 모두 그리스도가 앉으신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기록된 바 "주/여호와/야훼가 말한다: 모든 자가 내 앞에 무릎을 꿇겠고, 모든 혀가 내게 맹세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사야의 글에서 신은 이것을 그 자신을 두고 예언하였다 (이사야 45:23), 그리고 그리스도는 이그 자신에게 이 예언을 성취하셨는데, 이로서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영광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바로 그 신이심이 귀결된다.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3.14.11 / 번역: 최광민
For the Prophet Joel says,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whosoever shall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Jehovah) shall be delivered” (Joel 2:32). And another says, “The name of the Lord (Jehovah) is a strong tower; the righteous runneth into it and is safe,” (Prov. 18:10). But the name of Christ is invoked for salvation, and therefore it follows that he is Jehovah. (3.14.13)
예언자 요엘은 말하길, "누구든 주(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되리라 (요엘 2:32)"라고 말했고, 다른 이는 "주(여호와/야훼)의 이름은 견고한 탑이요, 그 안에 숨는 의인을 안전하리라 (잠언 18:10)"이라 하였다. 그런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려지며, 그런 즉 그리스도가 여호와/야훼인 것이다.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3.14.13 / 번역: 최광민
And when Isaiah had introduced the Lord of Hosts as speaking, Paul says, it was the Holy Spirit that spoke (Acts 28:25, 26). Nay, words uniformly said by the prophets to have been spoken by the Lord of Hosts, are by Christ and his apostles ascribed to the Holy Spirit. Hence it follows that the Spirit is the true Jehovah who dictated the prophecies. (3.14.15)
이사야가 만군의 주(여호와/야훼)가 말씀하시는 것으로 언급할 때, 바울은 이를 두고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도행전 28:25-26). 예언자들이 만군의 주(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는 구절들을 두고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은 모두 이를 성령이 말씀하신 것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성령이 또한 진실로 예언의 말씀을 내리신 여호와/야훼이심이 귀결되는 것이다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3.14.15/ 번역: 최광민
사실 이 견해는 16세기 칼뱅의 견해가 아니라 고대 교부들의 거의 모두 동의했던 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 교부들의 관점에서 볼 때 천사를 포함한 이 피조세계가 존재하기 이전에 성부와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한 성자를 "위대한 인간" 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들의 견해로 그리스도는 신이며 또한 "여호와/야훼"라 불릴 수 있다.
각설하고,
이와 같이 성자의 선재성에 대한 설명은 '동일본질파'이든 '아리우스파'이든 상관없이 동일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양파 간 갈등의 핵심은 성자의 '선재성'이 아니라 '성부 및 성자 간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AD 170년 경, 유스티노스의 제자였던 (앗)시리아인 타티아노스는 그의 저작 {그리스인들에게 고함 Address to the Greeks}에서 예수를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신"으로 부른다.
We do not act as fools, O Greeks, nor utter idle tales, when we announce that God was born in the form of a man. I call on you who reproach us to compare your mythical accounts with our narrations. Athené;, as they say, took the form of Deïphobus for the sake of Hector, and the unshorn Phoœbus for the sake ofAdmetus fed the trailing-footed oxen, and the spouse us came as an old woman to Semele. But, while you treat seriously such things, how can you deride us? Your Asclepios died, and he who ravished fifty virginsin one night at Thespiæ lost his life by delivering himself to the devouring flame. Prometheus, fastened toCaucasus, suffered punishment for his good deeds to men. According to you, Zeus is envious, and hides the dream from men, wishing their destruction. Wherefore, looking at your own memorials, vouchsafe us your approval, though it were only as dealing in legends similar to your own. We, however, do not deal in folly, but your legends are only idle tales. If you speak of the origin of the gods, you also declare them to be mortal. For what reason is Hera now never pregnant? Has she grown old? Or is there no one to give you information? Believe me now, O Greeks, and do not resolve your myths and gods into allegory. If you attempt to do this, the divine nature as held by you is overthrown by your own selves; for, if the demonswith you are such as they are said to be, they are worthless as to character; or, if regarded as symbols of the powers of nature, they are not what they are called. But I cannot be persuaded to pay religioushomage to the natural elements, nor can I undertake to persuade my neighbour. And Metrodorus ofLampsacus, in his treatise concerning Homer, has argued very foolishly, turning everything into allegory. For he says that neither Hera, nor Athené;, nor Zeus are what those persons suppose who consecrate to them sacred enclosures and groves, but parts of nature and certain arrangements of the elements. Hectoralso, and Achilles, and Agamemnon, and all the Greeks in general, and the Barbarians with Helen andParis, being of the same nature, you will of course say are introduced merely for the sake of themachinery of the poem, not one of these personages having really existed. But these things we have put forth only for argument's sake; for it is not allowable even to compare our notion of God with those who are wallowing in matter and mud. --- Tatian the Syrian, {Address to the Greeks} 21 Translated by J.E. Ryland. From Ante-Nicene Fathers, Vol. 2. Edited by Alexander Roberts, James Donaldson, and A. Cleveland Coxe. (Buffalo, NY: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85.)
...그리스인들이여, 우리가 '신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바보짓을 하거나 혹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 (앗)시리아인 타티아노스, {그리스인들에게 고함} 제 21장 / 번역: 최광민
AD 160-170년 경, 사르디스 주교 멜리톤은 아래와 같이 진술한다. 그는 태생으로는 유대인이었다.
.....It is no way necessary in dealing with persons of intelligence to adduce the actions of Christ after his baptism as proof that his soul and his body, his human nature, were like ours, real and not phantasmal. The activities of Christ after his baptism, and especially his miracles, gave indication and assurance to the world of the deity hidden in his flesh. Being God and likewise perfect man, he gave positive indications of his two natures: of his deity, by the miracles during the three years following after his baptism, of his humanity, in the thirty years which came before his baptism, during which, by reason of his condition according to the flesh, he concealed the signs of his deity, although he was the true God existing before the ages ... --- Melito of Sardis, {Fragment in Anastasius of Sinai's The Guide 13}.
...(완전한) 신이자, 또한 그처럼 완전한 인간으로서, 그 (=예수)는 그의 두 본성을 분명히 내보이셨다. 그의 세례 후 3년 동안의 행적에서 보내는 기적으로는 그의 신성을, 세례 받으시기 30년 동안의 삶에서는 그의 인성을 드러내셨는데, 이 기간 동안 인간의 몸을 가지셨기에, 모든 시간 이전에 이미 존재하신 참 신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신성의 표식들을 숨기셨다 ..... / 시나이의 아나타시우스의 {지침} 속 단편 / 번역: 최광민
또한 {유월절에 대하여}란 설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당시 소아시아의 관례에 따라 유월절인 니산월 14일을 부활절 축일로 지켰다.) 예수는 세상을 창조한 자이자, 곧 신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신을 죽인" 것이다.
73. Why, O Israel did you do this strange injustice? You dishonored the one who had honored you. You held in contempt the one who held you in esteem. You denied the one who publicly acknowledged you. You renounced the one who proclaimed you his own. You killed the one who made you to live. Why did you do this, O Israel?
74. Hast it not been written for your benefit: "Do not shed innocent blood lest you die a terrible death"? Nevertheless, Israel admits, I killed the Lord! Why? Because it was necessary for him to die. You have deceived yourself, O Israel, rationalizing thus about the death of the Lord. 75. It was necessary for him to suffer, yes, but not by you; it was necessary for him to be dishonored, but not by you; it was necessary for him to be judged, but not by you; it was necessary for him to be crucified, but not by you, nor by your right hand.
그렇다. 그가 고난을 당하신 것은 (구원을 위해 / 필자 주)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희가 (=유대인)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가 모욕을 당하신 것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희가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가 판결을 받는 일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희가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것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희가, 너희 손으로 그럴 필요는 없었다. / 번역: 최광민
76. O Israel! You ought to have cried aloud to God with this voice: "O Lord, if it was necessary for your Son to suffer, and if this was your will, let him suffer indeed, but not at my hands. Let him suffer at the hands of strangers. Let him be judged by the uncircumcised. Let him be crucified by the tyrannical right hand, but not by mine."
오, 이스라엘이여! 너희는 신께 이렇게 간구해야 했다: "주여, 만약 당신의 아들이 고난을 당해야 한다면,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당신의 아들이 고난받게 하소서. 그러나 저희의 손으로는 마소서. 이방인의 손으로 그가 고난 당하게 하소서.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 그를 심판하게 하소서. 우리 손이 아닌 압제자의 손으로 그가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소서" / 번역: 최광민
77. But you, O Israel, did not cry out to God with this voice, nor did you absolve yourself of guilt before the Lord, nor were you persuaded by his works.
[중략]
95. And thus he was lifted up upon the tree, and an inscription was affixed identifying the one who had been murdered. Who was he? It is painful to tell, but it is more dreadful not to tell. Therefore, hear and tremble because of him for whom the earth trembled.
그리하여 그 (=예수)는 나무에 달렸고, 사형수를 알리는 명패가 붙여졌다. 그는 누구였던가? 말하긴 고통스럽지만,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끔찍할 것이다. 땅도 떨었던 그에 대해 듣고 떨어라 / 번역: 최광민
96. The one who hung the earth in space, is himself hanged; the one who fixed the heavens in place, is himself impaled; the one who firmly fixed all things, is himself firmly fixed to the tree. The Lord is insulted, God has been murdered, the King of Israel has been destroyed by the right hand of Israel. ---Melito of Sardis, {Peri Pascha}
땅을 궁창에 다신 분, 그 분이 나무에 달렸다. 하늘을 고정하신 분, 그 분이 십자가에 못박혔다. 만물을 굳게 붙드신 분, 그 분이 나무에 박히셨다. 주님은 모욕을 당하시고, 신은 죽임을 당하셨다. 이스라엘의 왕이 바로 이스라엘의 손에 죽임을 당하셨다 / 번역: 최광민
AD 177년 경, 플라톤 철학자이다가 기독교로 개종했던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는 그의 {기독교도들을 위한 청원}에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논한다. 읽어보자.
...The Son of God is the Word of the Father in thought and actuality. By him and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the Father and the Son being one. Since the Son is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the Son by the unity and power of the Spirit, the Mind and Word of the Father is the Son of God. And if, in your exceedingly great wisdom, it occurs to you to inquire what is meant by `the Son,' I will tell you briefly: He is the first- begotten of the Father, not as having been produced, for from the beginning God had the Word in himself, God being eternal mind and eternally rational, but as coming forth to be the model and energizing force of all material things.... -- Athenagoras, {Plea for the Christians} 10:2-4.
....신의 아들은 그 의식과 실제에 있어 성부의 말씀/로고스이다. 그 (=성자)에 의해서, 또 그를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었는데, 성부와 성자는 하나이다. 성자는 성부 안에, 성부는 성자 안에 성령의 하나됨과 권능에 의해 계시기 때문에, 성부의 정신과 말씀이 곧 신의 아들이다. 당신의 탁월한 지혜를 통해 만약 이 "성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면, 나는 이렇게 간략히 답하겠다: 성자는 성부의 독생자이며 피조물이 아니다. 태초로부터 신은 자신 안에 말씀/로고스를 품으셨기 때문이다. 영원한 정신과 영원한 이성이신 신은 부..... / 아테나고라스, {기독교도들을 위한 청원} 10:2-4 / 번역: 최광민
AD 2세기 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스(=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인 성자 예수를 성부와 본질상 동등하며, 인간의 형체를 입은 신이자, 신인 로고스/말씀이자, 신의 형상을 가진 신으로 가르친다.
Following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and in accordance with it, this Epistle also contains the spiritual principle. What therefore he says, "from the beginning", the Presbyter explained to this effect, that the beginning of generation is not separated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or. For when he says, "That which was from the beginning", he touches upon the generation without beginning of the Son, who is co-existent with the Father. There was; then, a Word importing an unbeginning eternity; as also the Word itself, that is, the Son of God, who being, by equality of substance, one with the Father, is eternal and uncreate. That He was always the Word, is signified by saying,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But by the expression, we have seen with our eyes, he signifies the Lord's presence in the flesh, and our hands have handled, he says, of the Word of life. He means not only His flesh, but the virtues of the Son, like the sunbeam which penetrates to the lowest places—this sunbeam coming in the flesh became palpable to the disciples. It is accordingly related in traditions, that John, touching the outward body itself, sent his hand deep down into it, and that the solidity of the flesh offered no obstacle, but gave way to the hand of the disciple. --- Clement of Alexandria, {COMMENTS ON THE FIRST EPISTLE OF JOHN}
{요한 복음서}에 이어지는 이 서신 ({요한 1서})은, {요한 복음서}와 일치점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영적원리들을 담고 있다. 요한이 "태초로부터"라고 말할 때, 그 장로 (=요한)은 이 세상의 태초가 창조자의 태초와 분리되지 않음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가 "태초로부터 있던"이라고 말할 때, 그는 성부와 함께 존재하셨던 성자의 기원이 없는 태어남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그렇게 기원이 없는 존재로서의 말씀/로고스가 있었다. 로고스 자신 - 다시 말해 신의 아들은 본질에 있어 성부와 동등한 존재였으며, 영원하고 피조되지 않은 존재였다. 그가 늘 로고스였기에 "태초에 말씀/로고스가 계셨다"라고 언표된다...[후략]...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요한 1서 주석 단편} / 번역: 최광민
Now, O you, my children, our Instructor is like His Father God, whose son He is, sinless, blameless, and with a soul devoid of passion; God in the form of man, stainless, the minister of His Father's will, the Word who is God, who is in the Father, who is at the Father's right hand, and with the form of God is God. He is to us a spotless image; to Him we are to try with all our might to assimilate our souls. He is wholly free from human passions; wherefore also He alone is judge, because He alone is sinless. As far, however, as we can, let us try to sin as little as possible. For nothing is so urgent in the first place as deliverance from passions and disorders, and then the checking of our liability to fall into sins that have become habitual. It is best, therefore, not to sin at all in any way, which we assert to be the prerogative of God alone; next to keep clear of voluntary transgressions, which is characteristic of the wise man; thirdly, not to fall into many involuntary offences, which is peculiar to those who have been excellently trained. Not to continue long in sins, let that be ranked last. But this also is salutary to those who are called back to repentance, to renew the contest. --- Clement of Alexandria, {PAEDAGOGUS}, Chapter 2
...나의 자녀들아, 우리의 교사는 그의 아버지인 신과 마찬가지로 죄와 흠이 없으시고 흔들림 없는 영을 가지신 분이다. 그는 사람의 모습을 가진 신이며, 흠없는 분이며, 성부의 뜻을 이루는 분이며, 신이신 말씀/로고스이며, 성부 안에 계신 분이며, 성부의 오른 편에 계시고, 신의 형상을 가진 신이시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우리의) 교사} 1권 2장 / 번역: 최광민
The Lord ministers all good and all help, both as man and as God: as God, forgiving our sins; and as man, training us not to sin. Man is therefore justly dear to God, since he is His workmanship. The other works of creation He made by the word of command alone, but man He framed by Himself, by His own hand, and breathed into him what was peculiar to Himself. What, then, was fashioned by Him, and after He likeness, either was created by God Himself as being desirable on its own account, or was formed as being desirable on account of something else. 'If, then, man is an object desirable for itself, then He who is good loved what is good, and the love-charm is within even in man, and is that very thing which is called the inspiration [or breath of God; but if man was a desirable object on account of something else, God had no other reason for creating him, than that unless he came into being, it was not possible for God to be a good Creator, or for man to arrive at the knowledge of God. For God would not have accomplished that on account of which man was created otherwise than by the creation of man; and what hidden power in willing God possessed, He carried fully out by the forth-putting of His might externally in the act of creating, receiving from man what He made man; and whom He had He saw, and what He wished that came to pass; and there is nothing which God cannot do. Man, then, whom God made, is desirable for himself, and that which is desirable on his account is allied to him to whom it is desirable on his account; and this, too, is acceptable and liked. --- Clement of Alexandria, {PAEDAGOGUS}, Book I, Chapter 2
.... 사람이자 신인 주님은 모든 선한 것들을 행하시고 모든 도움을 베푸신다. 신으로서 그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람으로서 그는 우리가 죄 짓지 않도록 우리를 단련시키신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우리의) 교사} 1권 3장 / 번역: 최광민
AD 180년대까지 활동했던 안티오키아 주교 테오필로스는 '삼위일체'란 말의 어원이 될 트리아스 τριας를 성부-성자-성령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첫 인물로 알려져 있다.
In like manner also the three days which were before the luminaries, are types of the Trinity [triados] of God, and His Word, and His wisdom (Theophilus, To Autolycus, 2.15).
또한 이런 방식으로 (창조로부터 / 필자 주) 광채가 있기 전 3일은 세 분, 즉 신과 신의 말씀/로고스과 그의 지혜/소피아의 모형이다. --- 테오필로스, {아우토리코스에게} 2.15 / 번역: 최광민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카포스를 청문했던 루그두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는 AD 2세기 말에 이렇게 적었다.
I have shown from the Scriptures that none of the sons of Adam are, absolutely and as to everything, called God, or named Lord, But Jesus is Himself in His own right, beyond all men who ever lived, God, Lord, King Eternal, and the Incarnate Word… Irenaeus, {Against Heresies} (1:449).
[예수를 제외한 / 필자 주] 아담의 자손 (인류) 중 어느 누구도 신이라 불리거나 주님으로 불린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성서를 통해 설명했다. 그러나 예수는 원래 이전에 살았던 모든 인간을 뛰어넘는 분이며, 신이며, 주님이며, 영원한 왕이며, 육화된 말씀이었다. / 번역: 최광민
Thus He indicates in clear terms that He is God, and that His advent was in Bethlehem… God, then, was made man, and the Lord Himself save us (1:451).
그래서 그(=예수/성자)가 신이며, 베들레헴으로 오실 것...을 분명한 용어로 지적하고 있다. 신은 인간이 되셨고, 주님 자신이 우리를 구원하신다. / 번역: 최광민
He is God for the name Emmanuel indicates this ...
......그 (필자 주: 그리스도)는 신이다. '임마누엘/신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말이 이것을 말하고 있다...(1:452). / 번역: 최광민
Christ Himself, therefore, together with the Father, is the God of the living, who spoke to Moses, and who was also manifested to the fathers (1:467).
He was man, and He was God. This was so that since as man He suffered for us, so as God He might have compassion on us (1:545).
그리스도는 인간이며 또한 신이다. 그는 인간으로서는 우리를 위해 고통을 받았고, 신으로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 번역: 최광민
이레네우스가 그의 저작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제 1권 10장 1절에 요약한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인용해 보자. 이 교리들은 당시까지의 모든 '보편교회 (=카톨리케 에클레시아)'가 근본교리로 공히 믿고있던 교리들이다.
그 "보편교리"를 읽어보도록 하자. 이레네우스의 기록이다.
https://www.archive.org/stream/irenaeus00irenuoft
1. The Church, though dispersed through our the whole world, even to the ends of the earth, has received from the apostles and their disciples this faith:
(현재) 교회는 세상 끝까지 널리 퍼져나가 있지만, (예수의) 사도들과 그의 제자들로부터 다음의 신조를 이어받았다:
[She believes]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the sea, and all things that are in them; and in one Christ Jesus, the Son of God, who became incarnate for our salvation; and in the Holy Spirit, who proclaimed through the prophets the dispensations(6) of God, and the advents, and the birth from a virgin, and the passion, and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and the ascension into heaven in the flesh of the beloved Christ Jesus, our Lord, and His [future] manifestation from heaven in the glory of the Father "to gather all things in one,"(7) and to raise up anew all flesh of the whole human race, in order that to Christ Jesus, our Lord, and God, and Saviour, and King,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invisible Father, "every knee should bow, of things in heaven,, and things in earth, and things under the earth, and that every tongue should confess"(8) to Him, and that He should execute just judgment towards all; that He may send "spiritual wickednesses,"(9) and the angels who transgressed and became apostates, together with the ungodly, and unrighteous, and wicked, and profane among men, into everlasting fire; but may, in the exercise of His grace, confer immortality on the righteous, and holy, and those who have kept His commandments, and have persevered in His love, some from the beginning [of their Christian course], and others from [the date of] their repentance, and may surround them with everlasting glory.
교회는 한 분의 신, 즉 전능한 성부이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을 믿는다. 또한 교회는 한 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 그는 신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체를 입으신 분이다. 교회는 또한 한 성령을 믿으며 성령이 신(=성부)의 섭리와, 사랑하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도래와, 성자가 처녀에게서 태어나심과, 그의 수난과, 죽음에서의 부활과, 육체로서 승천하심과, 장차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고 모든 인류를 새로운 육체 가운데 부활시키기 위해 성부의 영광 가운데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것을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하셨음을 믿는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성부의 뜻에 따라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무릎 꿇고 그를 경배하며, 모든 자들이 그 입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 주님이자 신이며, 구원자이자 왕으로 고백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가 모두를 공정하게 심판할 것과, 악마들과 죄로 타락한 천사들과 거룩하지 않고 불의하며 사악하고 속된 인간들을 모두 함께 영원한 불 가운데 던지실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의 은혜 가운데 살며 정의롭고 거룩하며 신의 계명을 지키고 그의 사랑 안에서 인내한 자에게는 영생을 주실 것과, 또한 처음부터 믿었거나 혹은 참회한 후부터 믿은 신자들을 영원한 영광으로 감싸실 것을 교회는 믿는다. / 번역: 최광민
2. As I have already observed, the Church, having received this preaching and this faith, although scattered throughout the whole world, yet, as if occupying but one house, carefully preserves it. She also believes these points [of doctrine] just as if she had but one soul, and one and the same heart, and she proclaims them, and teaches them, and hands them down, with perfect harmony, as if she possessed only one mouth. For, although the languages of the world are dissimilar, yet the import of the tradition is one and the same. For the Churches which have been planted in Germany do not believe or hand down anything different, nor do those in Spain, nor those in Gaul, nor those in the East, nor those in Egypt, nor those in Libya, nor those which have been established in the central regions(1) of the world. But as the sun, that creature of God, is one and the same throughout the whole world, so also the preaching of the truth shineth everywhere, and enlightens all men that are willing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Nor will any one of the rulers in the Churches, however highly gifted he may be in point of eloquence, teach doctrines different from these (for no one is greater than the Master); nor, on the other hand, will he who is deficient in power of expression inflict injury on the tradition. For the faith being ever one and the same, neither does one who is able at great length to discourse regarding it, make any addition to it, nor does one, who can say but little diminish it.
내가 이미 관찰한 바와 같이, 교회는 비록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지만 이 가르침과 이 믿음을 받아 마치 한 집에서처럼 이를 주의깊게 보존해 왔다. 또한 교회는 이 신조들을 마치 하나의 영혼을 가진 양, 마치 하나의 동일한 심장을 가진 양 보존하고 있으며, 이 신조들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또 마치 단 하나의 입을 가진 것처럼 완벽한 조화 가운데 후대에 전수한다. 세상의 언어가 모두 다르지만 교회의 전승은 하나이며 동일하다. 게르마니아에 설립된 교회에서 믿는 것은 히스파니아나 갈리아나 동방이나 이집트나 혹은 리비아나 혹은 세상 한 가운데 설립된 교회들이 믿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신의 피조물인 한 태양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것처럼, 전파된 진리는 세상을 비추고 있으며 진리를 알기 원하는 사람들을 깨닫게 하고 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지식이 유창한 자들도 이와 다른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주님보다 더 클 순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교회의 전승을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믿음은 늘 하나요 동일한 것으로, 그것을 길고 장황하게 논쟁하거나, 거기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번역: 최광민
--- 이레네우스,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제 1권 10장 / 번역: 최광민
AD 200년 경, 이레네우스의 제자로 전해지는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Refutations of All Heresies}에서 이렇게 적는다.
Having been made man, He is still God for ever. For to this effect, John also had sai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the Almighty.' And he has appropriately called Christ the 'Almighty' (5:225)
인간이 된 후에도 그리스도는 여전히 영원히 신이시다. 이것에 대해 요한(계시록)은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 --- 곧 전능자"라고 말한다. 요한은 적절히도 그리스도를 '전능자'로 불렀다. / 번역: 최광민
They killed the Son of their Benefactor, for He is co-eternal with the Father ....
그리스도는 성부와 함께 영원하다....(5:220) / 번역: 최광민
For, as the Only-Begotten Word of God, being God of God, He emptied Himself, according to the Scriptures… (5:167)
유일하게 낳아진 신의 말씀으로서, 또한 진실한 신으로서, 그리스도는 성서에 따라 자신을 비우셨다...../ 번역: 최광민
The Logos alone of this One is from God Himself. For that reason also, He is God. Being of the substance of God. In contrast, the world was made from nothing. Therefore, it is not God (5:151)
오직 로고스/말씀 만이 신 자신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런 이유로, 로고스는 신이며, 신의 본질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세상은 무로부터 왔고, 따라서 신적이지 않다. / 번역: 최광민
Therefore, a man . . . is compelled to acknowledge God the Father Almighty, and Christ Jesus the Son of God--who, being God, became man, to whom also the Father made all things subject (Himself excepted)--and the Holy Spirit; and that these are three [Persons] (5:226).
"Go and teach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By this, He showed that whoever omits any one of these three, fails in glorifying God perfectly. For it is through this Trinity that the Father is glorified. For the Father willed, the Son did, and the Spirit manifested....." (5:228)
가서 모든 나라를 가르쳐 그들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라는 말을 통해, 그(필자 주: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 가운데 하나라도 빼놓는 자들은 신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신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 필자 주) (이 삼위일체(의 표현)을 통해서인데, 이는 성부는 의지하셨고, 성자는 실행했으며, 성령은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5:228) / 번역: 최광민
아울러 소아시아에서 양태론을 주창했던 스미르나 사제 노에투스의 그리스도론을 반박하면서 {노에투스 반박}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히폴리투스에 따르면 이 양태론은 노에투스에게서 비롯되어 그의 추종자에 의해 로마에 도입된 후 히폴리투스 시대의 로마 주교였던 제피리누스 (199 - 217년 사이에 로마 주교)와 칼리스투스 (217 - 222년 사이에 로마 주교)가 이를 옹호하다 히폴리투스의 반박으로 마지못해 이를 철회한 것으로 되어 있다. 노에투스 발 이 양태론에 대한 설명은 거의 동시대인인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설명과 유사해서, 테르툴리아누스의 프락세아스를 노에투스와 동일인 혹은 추종자로 보기도 한다.
8. Many other passages, or rather all of them, attest the truth. A man, therefore, even though he will it not, is compelled to acknowledge God the Father Almighty, and Christ Jesus the Son of God, who, being God, became man, to whom also the Father made all things subject, Himself excepted, and the Holy Spirit; and that these, therefore, are three. But if he desires to learn how it is shown still that there is one God, let him know that His power is one. As far as regards the power, therefore, God is one. But as far as regards the economy there is a threefold manifestation, as shall be proved afterwards when we give account of the true doctrine. In these things, however, which are thus set forth by us, we are at one. For there is one God in whom we must believe, but unoriginated, impassible, immortal, doing all things as He wills, in the way He wills, and when He wills. What, then, will this Noetus, who knows nothing of the truth, dare to say to these things? And now, as Noetus has been confuted, let us turn to the exhibition of the truth itself, that we may establish the truth, against which all these mighty heresies have arisen without being able to state anything to the purpose.
8. 성서의 다른 구절들, 사실은 모든 구절들이 진리를 입증한다. 그래서 어느 누구나 전능한 성부와, 신으로서 인간이 되셨고 성부께서 성부 자신을 제외하면 모든 만물을 복종시키신 성자인 그리스도 예수와, 또한 성령이란 이 세 존재를 싫더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세 분이 어떻게 한 신으로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 그가 알고싶어 한다면, 신의 능력은 하나라는 점을 그에게 주지시키자. 능력에 관한 한, 그래서 신은 한 분이다. 그러나 경세에 관한 한 그는 우리의 참된 교리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세 존재로 드러내신다 ....[후략]
9. There is, brethren, one God, the knowledge of whom we gain from the Holy Scriptures, and from no other source. For just as a man, if he wishes to be skilled in the wisdom of this world, will find himself unable to get at it in any other way than by mastering the dogmas of philosophers, so all of us who wish to practise piety will be unable to learn its practice from any other quarter than the oracles of God. Whatever things, then, the Holy Scriptures declare, at these let us took; and whatsoever things they teach, these let us learn; and as the Father wills our belief to be, let us believe; and as He wills the Son to be glorified, let us glorify Him; and as He wills the Holy Spirit to be bestowed, let us receive Him. Not according to our own will, nor according to our own mind, nor yet as using violently those things which are given by God, but even as He has chosen to teach them by the Holy Scriptures, so let us discern them.
9. 형제들이여, 오직 한 신만 계신다. 우리는 이 지식을 성서로 부터 얻었고, 다른 어디서 얻지 않았다. 세상의 지식에 통달하고자 하는 이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통달하는 것 이 외에 그 지식을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건을 훈련하길 원하는 우리 모두 역시 신의 계시 이외의 것에서 이것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이다. 성서가 선언하는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도록 하자. 성서가 가르치는 무엇이나 배우도록 하자. 성부께서 원하시는 믿음대로 믿도록 하자. 성부께서 성자를 영광스럽게 하시길 원하셨다면 우리도 성자께 영광을 돌리자. 성부께서 성령을 우리게게 주셨다면 성령을 받아들이자. 우리 자신의 의지로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가 아니라,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것들을 오용하지 말고 성부께서 성서로서 그것들을 가르치고자 하셨다면 그것을 인정하도록 하자. / 번역: 최광민
10. God, subsisting alone, and having nothing contemporaneous with Himself, determined to create the world. And conceiving the world in mind, and willing and uttering the word, He made it; and straightway it appeared, formed as it had pleased Him. For us, then, it is sufficient simply to know that there was nothing contemporaneous with God. Beside Him there was nothing; but He, while existing alone, yet existed in plurality. For He was neither without reason, nor wisdom, nor power, nor counsel And all things were in Him, and He was the All. When He willed, and as He willed, He manifested His word in the times determined by Him, and by Him He made all things. When He wills, He does; and when He thinks, He executes; and when He speaks, He manifests; when He fashions, He contrives in wisdom. For all things that are made He forms by reason and wisdom— creating them in reason, and arranging them in wisdom. He made them, then, as He pleased, for He was God. And as the Author, and fellow-Counsellor, and Framer of the things that are in formation, He begot the Word; and as He bears this Word in Himself, and that, too, as (yet) invisible to the world which is created, He makes Him visible; (and) uttering the voice first, and begetting Him as Light of Light, He set Him forth to the world as its Lord, (and) His own mind; and whereas He was visible formerly to Himself alone, and invisible to the world which is made, He makes Him visible in order that the world might see Him in His manifestation, and be capable of being saved. --- Translated by J.H. MacMahon. From Ante-Nicene Fathers, Vol. 5. Edited by Alexander Roberts, James Donaldson, and A. Cleveland Coxe. (Buffalo, NY: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86.)
홀로 존재하시며 그 어느 것도 그와 함께 존재하지 않았을 때, 신은 세상을 창조하시기로 정하셨다. 그리고 신은 세상을 마음과 의지 속에 구상하시고 로고스/말씀을 발출하심으로써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가 원하시는 대로 세상은 즉시 모습을 갖추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저 (그때) 신과 함께한 존재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신 이외에 다른 것은 없었지만, 홀로 존재하실 때도 신은 복수성 가운데 계셨다. 그에게 이성, 지혜, 권능, 혹은 충고하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가 그 안에 있었고, 또 신 자신이 만유였다. 신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이 정한 때에 그의 로고스를 드러내셨고, 그 (=로고스)를 통하여 만물을 만드셨다. 신이 원할 때 로고스는 그 의지를 실행에 옮겼다. 그가 생각할 때 로고스는 그 생각을 실현시켰다. 신이 말하실 때 로고스는 그것을 드러냈으며, 신이 어떤 것을 만들고자 했을때 로고스는 그것을 지혜 가운데서 고안해냈다. 만물은 신의 이성과 지혜로 만들어졌는데, 즉 이성을 통해서 만드시고 지혜 가운데서 그것들을 적절히 배치하신 것이다. 그 (=로고스)는 신이기에 만물을 그가 원하시는 대로 만들었다. 신은 세상의 창조자이자 충고자이자 형상을 가진 만물을 계획할 자로서 로고스를 낳으셨다. 이 로고스는 신 자신 안에 존재했었고, 또 신 자신은 피조된 세계에게는 불가지한 존재이기에, 신은 로고스를 가지적인 존재가 되게 하였고, 우선 말씀하시고 그를 빛 중의 빛으로 낳으셨다. 또 그를 세상으로 보내어 세상의 주인이자 신 자신의 정신으로 삼으셨다. 그 이전에 신은 그 자신 만이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고 피조된 세상을 그를 인식할 수 없었다. 이제 신은(로고스를 통하여) 세상이 그의 현전 가운데서 그를 보고 구원받을 수 있게 하셨다..... ---- 히폴리투스, {노에투스 반박} / 번역: 최광민
AD 3세기로 넘어와, 북 아프리카 라틴교회의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성부=성자=성령이 실체적으로도 완전히 동일하며 따라서 십자가에서 수난 당한 것은 또한 성부이기도 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간 양태론자 프락세아스를 비판하면서, 신의 본질상 단일성을 방어하는 동시에 성부/성자/성령의 구분을 강조한다. 이로써 그는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하고 (= 존재론적 (=ontological) 삼위일체) 역할에 있어서는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분리되는 경세적 (economic / οἰκονομία)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최초의 라틴교부로 여겨진다.
CAP.2. [1] Itaque post tempus pater natus et pater passus, ipse deus dominus omnipotens, Iesus Christus praedicatur. nos vero et semper, et nunc magis ut instructiores per paracletum, deductorem 15 scilicet omnis veritatis, unicum quidem deum credimus, sub hac tamen dispensatione, quam oi0konomi/an dicimus, ut unici dei sit et filius, sermo ipsius qui ex ipso processerit, per quem omnia facta sunt et sine quo factum est nihil: hunc missum a patre in virginem et ex ea natum hominem et deum, filium hominis et 20 filium dei, et cognominatum Iesum Christum : hunc passum, hunc mortuum et sepultum secundum scripturas, et resuscitatum a patre et in caelo resumptum sedere ad dexteram patris venturum iudicare vivos et mortuos : qui exinde miserit, secundum promissionem suam, a patre spiritum sanctum paracletum, sanctificatorem fidei eorum qui credunt in patrem et filium et spiritum sanctum. [2] hanc regulam ab initio evangelii decucurrisse, etiam ante priores quosque haereticos nedum ante Praxean hesternum, probabit tam ipsa posteritas omnium haereticorum quam ipsa novellitas Praxeae hesterni. quo peraeque adversus universas 30 haereses iam hinc praeiudicatum sit id esse, verum quodcunque primum, id esse adulterum quodcunque posterius. [3] sed salva ista praescriptione ubique tamen propter instructionem et munitionem quorundam dandus est etiam retractatibus locus, vel ne videatur unaquaeque perversitas non examinata sed praeiudicata damnari, 35 maxime haec quae se existimat meram veritatem possidere dum unicum deum non alias putat credendum quam si ipsum eundemque et patrem et filium et spiritum sanctum dicat: [4] quasi non sic quoque unus sit omnia dum ex uno omnia, per substantiae scilicet unitatem, et nihilo minus custodiatur oi0konomi/aj sacramentum quae unitatem in trinitatem disponit, tres dirigens patrem et filium et spiritum, tres autem non statu sed gradu, nec substantia sed forma, nec potestate sed specie, unius autem substantiae et unius status et unius potestatis, quia 5 unus deus ex quo et gradus isti et formae et species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deputantur. quomodo numerum sine divisione patiuntur procedentes tractatus demonstrabunt.
Chapter II.—The Catholic Doctrine of the Trinity and Unity, Sometimes Called the Divine Economy, or Dispensation of the Personal Relations of the Godhead: In the course of time, then, the Father forsooth was born, and the Father suffered, God Himself, the Lord Almighty, whom in their preaching they declare to be Jesus Christ. We, however, as we indeed always have done (and more especially since we have been better instructed by the Paraclete, who leads men indeed into all truth), believe that there is one only God, but under the following dispensation, or οἰκονομία , as it is called, that this one only God has also a Son, His Word, who proceeded7779 from Himself,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and without whom nothing was made. Him we believe to have been sent by the Father into the Virgin, and to have been born of her—being both Man and God, the Son of Man and the Son of God, and to have been called by the name of Jesus Christ; we believe Him to have suffered, died, and been buried,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after He had been raised again by the Father and taken back to heaven, to be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that He wi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who sent also from heaven from the Father, according to His own promise, the Holy Ghost, the Paraclete,7780 the sanctifier of the faith of those who believe in the Father, and in the Son, and in the Holy Ghost. That this rule of faith has come down to us from the beginning of the gospel, even before any of the older heretics, much more before Praxeas, a pretender of yesterday, will be apparent both from the lateness of date7781 which marks all heresies, and also from the absolutely novel character of our new-fangled Praxeas. In this principle also we must henceforth find a presumption of equal force against all heresies whatsoever—that whatever is first is true, whereas that is spurious which is later in date.7782 But keeping this prescriptive rule inviolate, still some opportunity must be given for reviewing (the statements of heretics), with a view to the instruction and protection of divers persons; were it only that it may not seem that each perversion of the truth is condemned without examination, and simply prejudged; especially in the case of this heresy, which supposes itself to possess the pure truth, in thinking that one cannot believe in One Only God in any other way than by saying that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Ghost are the very selfsame Person. As if in this way also one were not All, in that All are of One, by unity (that is) of substance; while the mystery of the dispensation is still guarded, which distributes the Unity into a Trinity, placing in their order the three Persons—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Ghost: three, however, not in condition, but in degree; not in substance, but in form; not in power, but in aspect; yet of one substance, and of one condition, and of one power, inasmuch as He is one God, from whom these degrees and forms and aspects are reckoned, under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7789 How they are susceptible of number without division, will be shown as our treatise procee. --- Tertullian, {Against Praxeas}, 2, in ANF, vol. 3).
....단일성이 성부/성자/성령의 셋으로 구분되는 이 신비는 여전히 보존되는데, 이 구분은 조건/상태가 아닌 정도에 관한 것이며, 본질이 아닌 형태에 관한 것이며, 권능이 아닌 측면에 관한 것이다. 세 분 (=성부+성자+성령)은 하나의 본질과 하나의 상태와 하나의 권능을 가진다. 한 분의 신이란 점을 고려할 때, 성부와 성자의 성령의 이름으로 그로부터 유래하는 이 정도와 형태와 측면들이 헤아려질 수 있을 것이다.... 테르툴리아누스, {프락세아스 반박} / 번역: 최광민
더 읽어보도록 하자.
The simple, indeed, (I will not call them unwise and unlearned) who always constitute the majority of believers, are startled at the dispensation (of the Three in One), on the ground that their very rule of faith withdraws them from the world’s plurality of gods to the one only true God; not understanding that, although He is the one only God, He must yet be believed in with His own oikonomia [economy]. The numerical order and distribution of the Trinity they assume to be a division of the Unity. --- Tertullian, {Against Praxeas}, 3, in ANF, vol. 3).
진실로, 신자들 가운데 늘 다수를 차지하는 이 단순한 사람들 (=양태론자)은 (나는 그들을 멍청하다거나 무지한 자들이라고 부르진 않겠지만), 한 분 안에 셋이 있다는 이 경세에 깜짝 놀라는데, 그것은 그들이 세상의 다신교를 버리고 오직 한 분의 진정한 신을 믿는 것을 가장 근본적인 신조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이 바로 그 유일한 신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경세 안에서 믿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삼위일체의 순서와 수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이것이 단일한 신을 나누게 된다고 생각한다. --- 테르툴리아누스, {프락세아스 반박} / 번역: 최광민
For the Father is the whole substance, while the Son is an outflow and assignment of the whole, as he himself professes, Because my Father is greater than I (John 14:28); and by him, it is sung in the psalm, he has also been made less, a little on this side of the angels (Psalm 8:6). So also the Father is other than the Son as being greater than the Son, as he who begets is other than he who is begotten, as he who sends is other than he who is sent, as he who makes is other than he through whom a thing is made. (Against Praxeas 9)
성부는 온전한 존재이나 성자는 그 온전이 흘러나와 드러난 존재인데, 성자 (=예수) 본인이 스스로 "나의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 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성자에 관해서는 {시편}에서도 그가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성부가 성자보다 크다는 점에서, 낳은 자 (=성부)가 낳아진 자(=성자)와 구별된다는 점에서, 보낸 자(=성부)가 보내진 자(=성자)와 구별된다는 점에서, 세상을 만든 이(=성부)와 그를 통하여 만물이 만들어 지게 된 이 (=성자)가 구별된다는 점에서, 성부와 성자는 서로 구별되는 존재이다. --- 테르툴리아누스, {프락세아스 반박} / 번역: 최광민
AD 1세기 문건으로 간주되는 교회법령 {디다케}의 연장선 상에 있는 {디다스칼리아}는 AD 230년 이렇게 말한다.
But if a man sin and know not the Scriptures, and is not aware of the patience and mercy of God, and knows not the limit of forgiveness and repentance: by this very thing, that he is ignorant, he perishes. Do thou therefore as a compassionate shepherd, full of love and mercy and careful of his flock, visit and count thy flock, and seek that which is gone astray; as said the Lord God, Jesus Christ our good Teacher and Saviour: 'Leave the ninety and nine upon the mountains, and go seek that one which is gone astray. And when thou hast found it, bear it upon thy shoulders, rejoicing because thou hast found that which was gone astray; and bring it and let it mix with the flock. --- {Didascalia} 7장
한 사람이 죄를 짓고도 성서를 모른다면, 신의 오랜 인내와 자비를 모른다면, 용서와 참회의 한계를 모른다면, 그는 바로 이것으로 인해 멸망받을 것이다.. 그대는 연민을 지닌 목자로서, 또 자신의 양떼에 대한 사랑과 자비가 가득하고 신중한 목자로서, 양떼를 찾아 그 수를 세어보고 잃어버린 양이 있는지 살필 것이다. 우리 주님이자 신이신 우리의 좋은 스승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후략] --- {디다스칼리아} 제 7장 / 번역: 최광민
....For He the Lord God, Jesus Christ our Teacher, sent us the Twelve to instruct the People and the Gentiles;... (Didascalia 15 [A.D. 225]).
....주님이자 신이신 우리의 스승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과 이방인들에게 우리 12사도를 보내실 때....[후략] / {디사칼리아} 3:6 / tr. R. Hugh Connolly / 번역: 최광민
성자를 성부에 종속시키는 경향을 보이는 신학의 태두라고도 볼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오리게네스 역시 "성자"를 "신"으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AD 225년 경의 기록이다.
...No one should be offended that the Savior is also God.. -- Origen, {De Principiis} I.2
...구세주가 또한 신이심을 기이하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 Origen, {De Principiis} I.2 / 번역: 최광민
박해 중 배교했던 자들에 대한 사면권을 두고 로마 주교와 대립하여 로마 교회와 분리노선을 걸었던 로마 교회 사제 노바티아누스도 AD 235년 경 같은 견해를 피력한다. 그는 인간으로 성육신한 성자 (예수)는 인간이 될때 스스로를 '비워 (케노시스)' '신으로서의 권능' 일부를 자발적이고 한시적으로 포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신이었다는 것이다.
....For Scripture as much announces Christ as also God, as it announces God Himself as man. It has as much described Jesus Christ to be man, as moreover it has also described Christ the Lord to be God. Because it does not set forth Him to be the Son of God only, but also the Son of man; nor does it only say, the Son of man, but it has also been accustomed to speak of Him as the Son of God. So that being of both, He is both, lest if He should be one only, He could not be the other. For as nature itself has prescribed that he must be believed to be a man who is of man, so the same nature prescribes also that He must be believed to be God who is of God . . . Let them, therefore, who read that Jesus Christ the Son of man is man, read also that this same Jesus is called also God and the Son of God" --- Novatian, {Treatise on the Trinity} 11 [A.D. 235])
....성서는 그리스도가 또한 신이며, 또한 신 자신이 인간이 되었다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시며, 나아가 우리 주 그리스도가 신이라고 묘사된다. 성서는 그리스도를 "신의 아들" 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아들로 설정한다. 그는 사람의 아들일 뿐 아니라 종종 신의 아들로 불린다. 따라서 그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이 둘 다가 되시며 배타적으로 하나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본성에 있어 그는 사람에서 온 사람으로 믿어져야 한다. 또한 동일한 본성에 있어, 그는 신이신 신으로 믿겨져야 한다....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읽을 때, 동일한 예수가 또한 신이시며 동시에 신의 아들로 불리는 것을 읽을 수 있도록 하자..... --- 노바티아누스, {삼위일체에 대한 논고} AD 235년 / 번역: 최광민
북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있던 주교 가운데 하나인 키프리아누스 역시 AD 250년 경 이렇게 말한다.
5. Therefore, dearest brother, endeavour that the undisciplined should not be consumed and perish, that as much as you can, by your salutary counsels, you should rule the brotherhood, and take counsel of each onewith a view to his salvation. Strait and narrow is the way through which we enter into life, but excellent and great is the reward when we enter into glory. Let those who have once made themselves eunuchs for the kingdom of heaven[3] please God in all things, and not offend God's priests nor the Lord's Church by the scandal of their wickedness. And if, for the present, certain of our brethren seem to be made sorry by us, let us nevertheless remain in our wholesome persuasion, knowing that an apostle also has said, "Am I therefore become your enemy because I tell you the truth?"[4] But if they shall obey us, we have gained our brethren, and have formed them as well to salvation as to dignity by our address. But if some of the perverse persons refuse to obey, let us follow the same apostle, who says, "If I please men, I should not be the servant of Christ."[5] If we cannot please some, so as to make them please Christ, let us assuredly, as far as we can, please Christ our Lord and God, by observing His precepts. I bid you, brother beloved and much longed−for. heartily farewell in the Lord.[6] ---- Cyprian, {Epistle LXI: TO POMPONIUS}
..... 우리 주님이자 신이신 그리스도 .....
14 There is then no reason, dearest brother, for any one to think that the custom of certain persons is to be followed, who have thought in time past that water alone should be offered in the cup of the Lord. For we must inquire whom they themselves have followed. For if in the sacrifice which Christ offered none is to be followed but Christ, assuredly it behoves us to obey and do that which Christ did, and what He commanded to be done, since He Himself says in the Gospel, “If ye do whatsoever I command you, henceforth I call you not servants, but friends.” And that Christ alone ought to be heard, the Father also testifies from heaven, saying, “This is my well-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hear ye Him.” Wherefore, if Christ alone must be heard, we ought not to give heed to what another before us may have thought was to be done, but what Christ, who is before all, first did. Neither is it becoming to follow the practice of man, but the truth of God; since God speaks by Isaiah the prophet, and says, “In vain do they worship me, teaching the commandments and doctrines of men.” And again the Lord in the Gospel repeats this same saying, and says, “Ye reject the commandment of God, that ye may keep your own tradition.” Moreover, in another place He establishes it, saying, “Whosoever shall break one of these least commandments, and shall teach men so, he shall be called the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But if we may not break even the least of the Lord’s commandments, how much rather is it forbidden to infringe such important ones, so great, so pertaining to the very sacrament of our Lord’s passion and our own redemption, or to change it by human tradition into anything else than what was divinely appointed! For if Jesus Christ, our Lord and God, is Himself the chief priest of God the Father, and has first offered Himself a sacrifice to the Father, and has commanded this to be done in commemoration of Himself, certainly that priest truly discharges the office of Christ, who imitates that which Christ did; and he then offers a true and full sacrifice in the Church to God the Father, when he proceeds to offer it according to what he sees Christ Himself to have offered. --- Cyprian, {Epistle LXII: TO CAECILIUS}
.... 우리 주님이자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부의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자신을 성부께 드리는 희생제물로 바치셨고, 그의 희생을 기념할 것을 명령.... / 번역: 최광민
다음은 늦어도 AD 3세기 중반부터는 팔레스티나-시리아 지역에서 입문/세례자의 신앙고백으로 사용되었던 {팔레스티나-카이사리아 신조}이다. 이 신조는 AD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아리우스파와 반-아리우스파 사이의 중재안으로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이 신조에서도 인간 예수로 오기 전의 성자는 참된 신이며 "이 세상의 창조자"이다.
'We believe in one God, Father Almighty, the Maker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Word of God, God of God, Light of Light, Life of Life, Only-begotten Son, First-born of every creature, begotten of the Father before all worlds;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Who for our salvation was incarnate, and lived among men. He suffered and rose again the third day, and ascended to the Father; and He will come again in glory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We also believe in one Holy Ghost. We believe in the being and continual existence of each of these; that the Father is in truth the Father; the Son in truth the Son; the Holy Ghost in truth the Holy Ghost; as our Lord, when sending out His disciples to preach the Gospel, said, ' Go forth and teach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to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 ' We positively affirm that we hold this faith, that we have always held it, and that we adhere to it even unto death, condemning all ungodly heresy. We testify, as before God the Almighty and our Lord Jesus Christ, that we have thought thus from the heart, and from the soul, ever since we have known ourselves; and we have the means of showing, and, indeed, of convincing you, that we have always during the past thus believed and preached.' --- Epistle of Eusebius, Bishop of Cæsarea, which he wrote from Nicæa when the great Council was assembled.
[카이사리아-팔레스티나 신조] "우리는 전능한 아버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신 유일한 신을 믿는다. 우리는 신의 말씀/로고스이시며, 신 중의 신, 빛 중의 빛, 생명 중의 생명, 성부에게서 나신 유일한 아들, 모든 피조물에 앞선 분,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성부가 낳으신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 분을 통해 세상이 창조되었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 분은 세상에 오셔서 사람 가운데 사셨다. 그는 고난을 당하시고 세째날 부활하여 성부께로 승천하셨고, 영광 가운데 돌아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령을 믿는다. 우리는 성부는 진실로 성부로, 성자는 진실로 성자로, 성령은 진실로 성령으로 각각 계시며 또한 영존하신다고 믿는다. ...(후략) --- 번역: 최광민
니케아 회의가 열리기 몇 달 전인 AD 325년 1월, 로마제국의 제 3대 도시인 시리아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사망하자 안티오키아 주교의 치리권 아래 있던 팔레스티나, 아라비아, 시리아, 페니키아, 킬리기아, 카파도키아 등지의 주교들이 차기 주교선출을 위해 도시를 방문한다. 이때 아리우스의 가르침이 도시를 휩쓸고 있는 것을 목도한 그들은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방문 중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특사 코르도바 주교 호시우스의 주재 하에 거의 만장일치로 (53:3) 아리우스의 교리를 정죄하고 잠정적으로 그를 파문했다. 세 명의 주교는 이때 반대표를 던졌는데, 이 세 명 중의 한 명이 바로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였고, 이 회의는 그를 아리우스 동조자로 비난했다.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와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 그리고 아리우스 모두 루키아노스의 신학을 계승한 동문수학 지간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부단한 수양과 노력으로 완전하게 된 인간 예수 위에 (성부-성자-성령으로 분리되지 않는) 한 신의 로고스가 작용해 그 인간 예수가 신의 의지가 일치했다고 주장하는 형식의 '양자론'의 선구로 여겨지는 3세기의 (이단) 사모사타 출신의 안티오키아 (파문)주교 파울로스가 바로 이 루키아노스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루키아노스가 어디까지 파울로스의 주장에 공조했는지에 대해서는 과거로부터 논란의 많았다. 다만 그가 AD 312년 박해 때 순교했기 때문에 이런 이단의혹에도 불구하고 정통파 교회에서는 루키아노스가 보편교회와 화해했다고 여기고 성인으로 추대했다. (핍박이 잦던 시기에는 신학적인 문제보다는 순교 여부가 성인시성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었다.)
이 회의의 의결사항은 회의의 정황을 둘러싼 정황설명과 함께 의결내용을 신조의 형태로 정리해 각 주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내졌다. 그리스어 원본은 소실되었으나, 시리아어 사본은 남아있다. (Cod. Par. Syr. 62; Vatican Cod. Syr. 148; Mingana Syr. 8) E. Schwartz, “Zur Geschichte des Athanasius.” Nachrichten von der Königlichen Gesellschaft der Wissenschaften zu Göttingen, Philologisch-Historische Klasse (Gottingen: Luder Horstmann, Jahre 1905) pp. 271-79 에 그리스어와 시리아어로 소개된 내용의 영문번역을 (http://www.fourthcentury.com/index.php/urkunde-18)을 다시 한국어로 중역하겠다.
우리가 믿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 분의 신, 성부이자 전능하시며 불가해하시며, 불변하시며, 변성되지 않는 만물의 주재자이자 지배자를 믿는다. 그는 공정하고 선하며,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만물을 만드셨으며, 율법서와 예언서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주님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한 분 주님으로 믿는다. 그는 독생자로서 무가 아니라 성부로부터 낳아진 분이다. 피조된 것이 아니라, 참 아들로 낳아진 것이다. 그의 출생은 표현되거나 설명되기에 불가능한데, 오직 그를 낳은 성부와 낳아진 성자 만이 그 출생에 대해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들 이외에는 아버지 (성부)를 알 수 없고, 아버지 (성부) 외에 아들을 알 자가 없다"는 말과 같다. 성자는 늘 존재했으며,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이것은 우리가 성서를 통해 성자 만이 신의 유일한 형상이라고 배워온 것과 같다. 성자는 낳아진 존재인데, 이는 분명히 그가 (성서에서) 성부로부터 낳아졌기 때문이다. 이 (낳아진 성자로서의) 지위가 그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불경한 모독죄에 해당한다. 오히려 성서는 말하길, 성자는 실재했으며 진실로 낳아진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자 역시 불변하며 변성되지 않는 분으로 믿는다. 성자는 단지 성부의 뜻에 의해서 낳아져 존재하게 되었거나 혹은 이 지위가 그에게 부여되어 무로부터 출현하게 된 것이 아니다.....[중략]......성자는 성부의 실재/본질 (~휘포스타시스)가 아닌 다른 것이나 다른 의지의 형상이 아니다. 이 분, 성자이자 산의 로고스는 또한 신을 낳은 마리아에 의해 육신을 입고 인간으로 태어났다. 고난받고 죽은 후, 그는 죽은 자 중에서 부활해 하늘로 승천하셔서 가장 높으신 신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있다. 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성서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우리 주님을 믿으며, 역시 성서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우리는 한 성령과 한 보편교회와 죽은 자의 부활과, 그가 인간으로 있을 때 한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해 보응받을 심판을 믿는다.
신의 아들이 피조물 (ktisma)이라고 하거나, (전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다고 하거나 (genētos), 생성되어졌다고 (poiētos) 하거나, 혹은 진짜로 낳아진 존재가 아니라고 하거나, 그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선언하는 자들을 파문한다. (우리는 성자가 빛이었고 또 빛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자가 (그의 본질/본성상)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의지로 변성되지 않을 뿐이라고 (즉, 가변적일 수 있다 / 필자 주) 말하는 자, 또 성자가 낳아지기 전에는 본재하지 않았고, 성부가 본성 상 불변하는 것과 발리 성자는 본성 상 가변적이라고 하는 자들을 파문한다. 성자는 모든 면에서 성부의 형상으로 선포되어졌으며, 특별히 이 점에서 보면 성자는 불변하는 존재이다.---- AD 325년 초, 안티오키아 회의 결의사항 / 번역: 최광민
이 회의의 좌장이었던 코르도바 주교 호시우스가 니코메디아로 복귀한 후 콘스탄티누스는 아리우스 논쟁에 개입을 결정한다. AD 325년 봄, 그는 로마 제국 뿐 아니라 제국의 영내 밖의 가급적 많은 주교들을 황제의 여름 휴양지가 있는 니케아로 초청하고 그들의 여행경비를 대신 지불한다. 대다수 주교들은 사제들이나 혹은 부제들과 동반했기 때문에, 니케아 회의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고 또 신학적으로나 전통적으로 가장 고르게 주교들이 참석한 회의란 점에서 제 1차 에큐메니컬 회의라 불린다. 총 300여 명의 주교들이 이 회의에 참석했는데 다수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그리스 지역에서 왔고, 이집트, 팔레스티나, 시리아, 소아시아, 코카서스, 일리리아, 인도, 페르시아 등지에서도 왔다. 갈리아, 아프리카, 히스파나나에서는 각각 한 명의 주교가 왔다. 연로한 로마주교는 대신 두 사제를 대표로 보냈다. 이 역사적 회의는 니케아의 여름황궁에서 율리우스력 AD 325년 5월 20일에 개최되었다.
설명했다시피 "성자/예수는 성부의 본질을 가진 신이며, 성부는 그를 통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명제는 이미 최소한 200여 년간 그노시스를 배제한 정통파 교회가 수용하고 있던 교리였고, 따라서 아리우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니케아에 모일 모든 주교들"은 예수/성자를 "신"이라고 부르는데 이미 아무런 교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다만 예수가 "어떤" 신이며 성부와 비교했을 때 그의 "속성"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보다 정교히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니케아 회의의 결과는 박빙의 승부로 끝나지 않았다. 초반에는 약 20여 명의 주교들이 (특별히 아리우스의 추종자에 대한 파문규정에 대해) 완강히 거부했지만, 결과적으론 단 두 명의 주교만이 최종적으로 아리우스의 주장을 지지했다. 게다가 이 두 주교들은 아리우스의 출신지인 북 아프리카 리비아의 주교들이었다. 아울러 이 과정은 투표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완성된 {니케아 신조}에 각자 서명하는 형식이었다.
니케아 회의의 진행과정과 여파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할 것.
§ 아리우스파와 준-아리우스파의 신조들
§§ 아리우스 본인의 주장
역사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볼때, 그럼 아리우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도대체 무얼 다르게 믿고 있었던 것일까? 아리우스에게 예수(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의 인간일 '뿐'도 아니었다. 인간 예수가 되기 전의 성자는 성부와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였던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예수는 단지 인간일 뿐이다"라는 진술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아리우스파에게 있어 "성자"는 "성부"를 "신"이라고 부를 때와 같은 의미로서의 그 "신"은 아니지만, 이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성부가 의도해서 태어난 특별한 존재이자 입양된 아들이기 때문에 "명목상" "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즉, 성자는 신과 피조세계 사이에 위치한 존재이며, 이것이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정말로 믿고 있던 것이다. 성자는 따라서 이 피조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성자는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영적 존재인 천사도 아니다. 왜냐하면 천사 역시 피조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자가 성부의 뜻에 따라 피조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왔다는 점에서, 즉, 성부에 의해 "보내졌다"는 점에서 '앙겔로스 (= 사절 , 사자)'라고도 불릴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의 '앙겔로스'는 일반적 의미의 천사로서의 그 '앙겔로스'가 아니다.
예수가 "명목상 신"이라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는 아타나시우스의 글에서 인용한다.
아리우스의 주장이다.
...'though He is called God, yet He is not very God,' but 'by participation of grace, He, as others, is God only in name. --- Athanasius, Ar. I, Chapter2:6,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Vol. 4
'... 비록 (예수가) 신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는 참 신 (=본질적 신은 아니고, 은총 속에 신성에 참여함으로써 명목상 "신"이라 불린다... ---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 아타나시우스의 재인용에서 / 번역: 최광민
아하! 역시 아리우스는 '예수는 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일까? 이 진술 속에 등장하는 "참 신" 혹은 더 정확히는 "본질적 신"의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니케아 회의가 열리기 전인 AD 319년, 아리우스가 자신의 후원자인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발췌한다.
But we say and believe, and have taught, and do teach, that the Son is not unbegotten; and that He does not derive his subsistence from any matter; but that by His own will and counsel He has subsisted before time, and before ages, as perfect God, only begotten and unchangeable, and that before He was begotten, or created, or purposed, or established, He was not. For He was not unbegotten. We are persecuted, because we say that the Son has a beginning, but that God is without beginning. ---Arius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믿고, 배워왔고, 또 가르칩니다: 성자는 (필자 주: 성부로부터) 태어났으며 그의 본질은 어떤 기존의 물질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태초, 즉 모든 시간 이전에 완전한 신으로 존재했으며, 신의 유일한 독생자이자 불변하는 존재였습니다. (필자 주: 성부에게서) 태어나기 전, 혹은 디자인되기 전, 혹은 창조되기 전, 성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자는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필자 주: 아리우스 파)는 성자에게는 시작이 있고, 신 (필자 주: 성부)에게는 시작이 없다고 가르친다하여 핍박을 받습니다 ---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 {유세비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 번역: 최광민
만약 도올이 AD 4세기로 돌아가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며 아리우스와 그를 지지하는 주교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면, AD 325년 니케아 회의 당시의,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아리우스 추종자들은, AD 351년 시르미움에서 열린 준-아리우스파의 회합에서 결의한 신조의 제 9항에 분명히 진술된 내용에 따라 도올에게 이런 엄중한 선고를 내릴 것이다. 아리우스파에게 있어서도, 성자는 성부와 더불어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Whosoever says that the Son from Mary is man only, be he anathema
누구든 마리아의 아들이 오직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파문에 처한다... / 번역: 최광민
이보다 더 분명할 수는 없다.
도대체 '니케아 회의 전만 해도 '단지 인간에 불과했던 '예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압력이 작용한 니케아 회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신이 되었다' 혹은 짧게는 '아리우스는 예수를 인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라는 대중의 잘못된 상식의 뿌리는 무엇이고, 또 어떤 경로로 확산된 것일까? 아무튼 학식높은 도올 (그는 한때 신학생이기도 했다)이 이런 실수를 범할 진데, {다빈치코드} 같은 대중적인 저작물이 유포한 잘못된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반인들이 어떠할지는 짐작할 수 있다.
{다빈치 코드} 같은 대중적인 저작들은 던져두고, 원전으로 돌아가 본다. 물론 이제부터 언급하는 사료들이 반-아리우스파에 속하는 사람들의 저작 속에 인용되었기 때문에 그 진실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만약 그렇게 주장하려면 사실 아리우스에 대한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아리우스를 반대한 사람들이 아리우스의 주장을 뒤틀어서 인용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리우스 측의 주장은 그 자체로서 아주 명료하기 때문이며, 또한 아리우스파는 니케아 회의 이후에도 한동안 그 세력이 막강하였기에 그들의 주장을 잘못인용 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아리우스 논쟁을 다룬 1차자료에는 다음의 문헌들이 남아 있으며, 아래에서 해당하는 내용들을 발췌하겠다. 이 모든 1차사료들은 현재 인터넷으로 모두 검색 가능하다. 이 자료들은 아리우스 논쟁을 다루는 원전이라 불릴 수 있는 1차사료 전부에 해당한다.
- Eusebius of Caesarea,
- Letter of Eusebius of Cæsarea to the people of his Diocese Account of the Council of Nicea {The Life of the Blessed Emperor Constantine} Book 3, Chapters VI-XXI,
- Eustathius of Antioch,
- Socrates,
- Of the Synod which was held at Nicæa in Bithynia Book 1 Chapter 8 {Ecclesiastical History}, 5th century
- Sozomen,
- Of the Council convened at Nicæa on Account of Arius Book 1 Chapter 17 {Ecclesiastical History}, 5th century
- Theodoret,
- General Council of Nicæa Book 1 Chapter 6 {Ecclesiastical History};
- The Epistle of the Emperor Constantine, concerning the matters transacted at the Council, addressed to those Bishops who were not present, Book 1 Chapter 9 {Ecclesiastical History}, 5th century
- Athanasius of Alexandria,
- Defence of the Nicene Definition; {Ad Afros Epistola Synodica}
신학용어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리우스파의 주장과 원-카톨릭 (로마카톨릭+정교회+꼽트+네스토리우스파로 분리되기 이전)의 주장 사이에 차이점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리우스파와 카톨릭을 구분짓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전술했다시피 '태어남'이라는 용어의 해석에 달린 것이다. 그것을 제외하면, 범범-아리우스파 (유사본질파, 유사파, 이질본질파) 에 의해서 이단으로 지목된 주장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원-카톨릭, 혹은 동일본질파의 입장에서도 이미 이단으로 지목된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자. 특별히 성부-성자-성령을 동일한 존재가 (마치, 얼음-물-증기처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양태론"은 "사벨리우스 주의"로 불리며 엄중하게 정죄되었다.
우선, 니케아 회의가 열리기 6년 전인 AD 319년 경, 아리우스 본인이 자신의 후원자인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AD 5세기의 시리아 퀴로스 주교이자 역사가 테오도레토스의 {교회사}에 인용된 아리우스의 주장이다.
Arius' Letter to Eusebius of Nicomedia, c. 319 CE (from Theodoret, Ecclesiastical History, I, IV. LPNF, ser. 2, vol. 3, 41.
To his very dear lord, the man of God, the faithful and orthodox Eusebius, Arius, unjustly persecuted by Alexander the Pope, on account of that all conquering truth of which you also are a champion, sendeth greeting in the Lord.
Ammonius, my father, being about to depart for Nicomedia, I considered myself bound to salute you by him, and withal to inform that natural affection which you bear towards the brethern for the sake of God and His Christ, that the bishop greatly wastes and persecutes us, and leaves no stone unturned against us. He has driven us out of the city as atheists, because we do not concur in what he publicly preaches, namely, God always, the Son always; as the Father so the Son; the Son co-exists unbegotten with the God; He is everlasting; neither by thought nor by any interval does God precede the Son; always God, always Son; he is begotten of the unbegotten; the Son is of God Himself. Eusebius, your brother bishop of Caesarea, Theodotus, Paulinus, Athanasius, Gregorius, Aetius, and all the bishops of the East, have been condemned because they say that God had an existence prior to that of his Son; except Philogonius, Hellanicus, and Macarius, who are unlearned men, and who have embraced heretical opinions. Some of them say that the Son is an eructation, others that He is a production, others the He is also unbegotten. These are impieties to which we cannot listen, even though heretics threaten us with a thousand deaths.
But we say and believe, and have taught, and do teach, that the Son is not unbegotten; and that He does not derive his subsistence from any matter; but that by His own will and counsel He has subsisted before time, and before ages, as perfect God, only begotten and unchangeable, and that before He was begotten, or created, or purposed, or established, He was not. For He was not unbegotten. We are persecuted, because we say that the Son has a beginning, but that God is without beginning.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믿고, 배워왔고, 또 가르칩니다. 즉, 성자는 태어났으며 그의 본질은 어떤 기존의 물질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태초, 즉 모든 시간 이전에 완전한 신으로 존재했으며, 신의 유일한 독생자이자 불변하는 존재였습니다. (필자 주: 성부에게서) 태어나기 전, 혹은 디자인되기 전, 혹은 창조되기 전, 성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자는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필자 주: 아리우스 파)는 성자에게는 시작이 있고, 신 (필자 주: 성부)에게는 시작이 없다고 가르친다하며 핍박을 받습니다. / 번역: 최광민
This is the cause of our persecution, and likewise, because we say that He is of the non-existent. And this we say, because He is neither part of God, nor of any essential being. For this are we persecuted; the rest you know. I bid thee farewell in the Lord, remembering our afflictions, my fellow-Lucianist, and true Eusebius.
아리우스의 이 편지는 아리우스가 가르치고 있는 인간 예수로 태어나기 전의 성자/그리스도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 잘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 성부는 세상의 창조 이전에 성자를 낳았다 (혹은 무로부터 창조했다.)
- 성자는 모든 피조물보다 앞서 있으며, 그의 본질은 그가 창조한 피조물과는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그의 본질은 "무"에서 왔다.
- 성부는 시작이 없지만, 성자에게는 시작이 있다. 성자는 성부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 성자 역시 신이다. 다만 성자를 낳은 성부와는 다른 개념의 신이다. 성자의 본질은 "무"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 편지에서 설명했다시피, 아리우스에게도 이미 예수는 '신'이었다. 그것도 '완전한 신 (=perfect God)'이었다. 그러나 성자는 (성부라는) '기원이 있는' 반면, 성부는 '기원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성자는 성부와 본질까지 공유하지는 않으며, 서로 다른 급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니케아에서 벌어진 신학적 논쟁은, 성부로부터 '태어난 (begotten)'이란 신약성서 속의 문장의 해석을 두고 양측 간에 벌어진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리우스는 이 '태어난'(begotten)이란 말을 두고, 이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성자가 성부에 의해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made)된 것을 의미한다고 간주했다. 즉, 이 세상이 피조되기 전에 신에 의해 직접 만들어져 신으로 "입양된" 아주 특별한 피조물인 것이다. 따라서 "성자"는 "성부"와 확연히 구분되는 동시에, 그 본질에 있어 이 세상과도 구분된다. 성자는 이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성부와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한 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리우스파와 격론을 벌인 아타나시우스의 {De Synodis}에 인용된 아리우스의 {탈리아/Thalia}를 인용한다. 그는 여기서 아타나시우스 버전의 (성부/성자/성령이 본질에서 동등한) '삼위일체 (Trinity / Tri-Unity)'가 아닌, 성부가 그 본질에 있어 성자보다 비교될 수 없는 우위에 있는 '삼조일체 (Triad)'를 주장한다. 필요한 부분은 강조하겠다.
아리우스의 주장이다.
God Himself then, in His own nature, is ineffable by all men. Equal or like Himself. He alone has none, or one in glory. And Ingenerate we call Him, because of Him who is generate by nature. We praise Him as without beginning because of Him who has a beginning. And adore Him as everlasting, because of Him who in time has come to be.
신(=성부 / 필자 주) 그 자신은 그 자신의 본성상 인간에게 설명되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와 동일한 자도, 또한 그와 유사한 자도 없다. 신은 그 영광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다. 신으로부터 모든 것이 태어났기에, 우리는 그를 "태어나지 않은 (=기원이 없는) 분"이라고 부른다. 그로인해 모든 것이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그를 "시작이 없는 분"으로 찬양한다. 그로 인해 시간이 존재하게 되었기에, 우리는 그를 "영원하신 분"으로 숭배한다. / 번역: 최광민
The Unbegun made the Son a beginning of things originated; and advanced Him as a Son to Himself by adoption. He has nothing proper to God in proper subsistence. For He is not equal, no, nor one in essence with Him. Wise is God, for He is the teacher of Wisdom. There is full proof that God is invisible to all beings; both to things which are through the Son, and to the Son He is invisible.
"기원이 없는" 분은 아들을 만물의 시작이 되게 하였고, 그를 입양하여 자신의 양자로 삼으셨다. 따라서 그 (=성자 / 필자 주)는 그 본질에 있어 신에게 속한 속성을 갖지 않았고, 따라서 그는 신과 그 본질에 있어 동일하지 않다. 신은 지혜이시다. 그는 지혜를 가르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신이 만물에게 인식될 수 없다는 증거는 가득하다. 신은 성자를 통해 창조된 것들에게나, 혹은 성자 그 자신에게조차 (온전히) 인식될 수 없다. / 번역: 최광민
I will say it expressly, how by the Son is seen the Invisible; by that power by which God sees, and in His own measure, the Son endures to see the Father, as is lawful. Thus there is a Triad, not in equal glories. Not intermingling with each other are their subsistences. One more glorious than the other in their glories unto immensity. Foreign from the Son in essence is the Father, for He is without beginning. Understand that the Monad was; but the Dyad was not, before it was in existence. It follows at once that, though the Son was not, the Father was God. Hence the Son, not being (for He existed at the will of the Father), is God Only-begotten, and He is alien from either.
나는 이제, 어떻게 신의 능력을 통해 성자가 보이지 않으시는 이 (=성부)을 볼 수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성자가 성부를 보는 것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이 어떻게 허용되었는지를 명백히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동일한 영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개의 구별된 영광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의 본질은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 한 (=성부) 영광이 다른 (성자와 성령) 영광들보다 엄청나게 크다. 성자의 본질은 성부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데, 이는 성자에게는 기원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한 분(모나드)이 계셨던 것이지, (성자가 존재하기 전부터) 두 분 (디아드)가 계셨던 것이 아니란 점을 깨달아라. 이는 즉 성자가 아닌 성부가 원래 신이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성자는 성부의 뜻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기에 그는 존재 자체로서 신이 아니라, "신에게서 유일하게 나신 신 (=독생하신 신)" 이다. 성부는 그 어떤 것과도 상관이 없다 (= 태어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의지로 존재하게 된 것도 아니다). / 번역: 최광민
Wisdom existed as Wisdom by the will of the Wise God. Hence He is conceived in numberless conceptions: Spirit, Power, Wisdom, God’s glory, Truth, Image, and Word. Understand that He is conceived to be Radiance and Light. One equal to the Son, the Superior is able to beget; but one more excellent, or superior, or greater, He is not able. At God’s will the Son is what and whatsoever He is. And when and since He was, from that time He has subsisted from God. He, being a strong God, praises in His degree the Superior. To speak in brief, God is ineffable to His Son. For He is to Himself what He is, that is, unspeakable. So that nothing which is called comprehensible does the Son know to speak about; for it is impossible for Him to investigate the Father, who is by Himself. For the Son does not know His own essence, For, being Son, He really existed, at the will of the Father. What argument then allows, that He who is from the Father should know His own parent by comprehension? For it is plain that for that which hath a beginning to conceive how the Unbegun is, or to grasp the idea, is not possible. --- Arius, {Thalia} / Athanasius, {De Synodis}, Part II, Chapter 15
지혜는 지혜로운 신의 의지에 의해 지혜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 (성자)는영, 권능, 지혜, 영광, 진리, 형상, 말씀/로고스 같은 수많은 개념들 가운데 잉태된 것이다. 그가 광채와 빛이 되도록 잉태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자. 보다 월등한 분 (성부)는 성자에 해당하는 존재를 낳으실 수 있었지만, 성자는 그보다 탁월하고, 우월하고, 위대한 존재를 낳을 수 없다. 성자의 모든 것은 신(=성부)의 의지 가운데 있다....(후략) --- 아리우스, {탈리아} / 아타나시우스의 재인용 / 번역: 최광민
또한 파문당한 사제였던 아리우스가 당시 자신의 상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주교 (Pope) 알렉산드로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참고로, 이집트 꼽트교회는 서방교회와 분리되기 이전부터 자신들의 주교를 '교회의 아버지'란 뜻으로 "파파스" (그리스어 πάππας, 영어 Pope)로 호칭해 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라틴 교회인 로마카톨릭 교회의 지도자인 로마 주교 =교황)의 호칭인 라틴어 Papa가 라틴교회인 로마 교회의 지도자인 로마 주교에게 배타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AD 11세기 동서교회의 대분열 이후의 일이다. 꼽트교회는 지금도 자신들의 총주교에게 이 호칭을 부여한다. 여기서는 '교부'로 해석하겠다.
니케아 회의에서 결정된 용어인 '동일본질'이란 뜻의 '호모우시오스 ὁμοούσιος'란 그리스어 단어를 구성하는그리스어 '우시아 οὐσία'와 정의가 꽤 모호한 '휘포스타시스 ὑπόστασις' 의 정확한 의미를 두고 니케아 회의 및 그 이후의 논쟁들이 있다. 특별히 '우시아'나 '휘포스타시스'를 라틴어로 번역하게 될 때, 이 두 언어 사이에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본질/본체 (Substantia)로 해야 하는지 위격 (persona)로 해야 하는지 분명치 않았다가, 점차 '우시아'의 'Substantia 실체/본체/본질'로, '휘포스타시스 위격'의 대응어로는 'persona 개별 위격'가 굳어졌다. 그러나 '휘포스타시스'는 정확히 '프로소논' 혹은 '페르소나'와 동의어가 아니다. '얼굴' 혹은 '가면'이란 뜻의 '프로소폰' 혹은 '페르소나'는 각각의 '휘포스타시스'가 밖으로 드러낸 '형태' 혹은 '형상'이다. 이 용례를 염두에 두고 아래의 진술을 이해해 보자.
To Our Blessed Pope and Bishop, Alexander, the Presbyters and Deacons send health in the Lord: Our faith from our forefathers, which also we have learned from thee, Blessed Pope, is this:—We acknowledge One God, alone Ingenerate, alone Everlasting, alone Unbegun, alone True, alone having Immortality, alone Wise, alone Good, alone Sovereign; Judge, Governor, and Providence of all, unalterable and unchangeable, just and good, God of Law and Prophets and New Testament; who begat an Only-begotten Son before eternal times, through whom He has made both the ages and the universe; and begat Him, not in semblance, but in truth; and that He made Him subsist at His own will, unalterable and unchangeable; perfect creature of God, but not as one of the creatures; offspring, but not as one of things begotten; nor as Valentinus pronounced that the offspring of the Father was an issue; nor as Manichæus taught that the offspring was a portion of the Father, one in essence; or as Sabellius, dividing the Monad, speaks of a Son-and-Father; nor as Hieracas, of one torch from another, or as a lamp divided into two;
사제들과 부제들은 우리의 축복받으신 교부이자 주교이신 알렉산드로스님이 주님 안에서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선조들과 또 축복받은 교부이신 당신께로부터 전수받은 믿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한 분이시며, 홀로 독존하시며, 홀로 영원하시며, 홀로 시작이 없으시며, 홀로 진리이시며, 홀로 불멸하시며, 홀로 지혜로우시며, 홀로 선하시며, 홀로 주권자이신, 재판자, 주권자, 만물의 섭리, 변함없고 불변하시는 분, 공정하고 선하신 분, 율법과 예언자들(=구약성서 / 필자 주)과 신약성서의 신을 인정합니다. 그 분은 영원한 시간 이전에 독생하신 아들을 낳으셨으며, 그 아들을 통하여 시간과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성부가 성자를 낳으신 것은 성부와의 유사함이 아닌 진리란 측면에서 낳아진 것입니다. 성부는 성자를 자신의 의지 가운데 존재하게 하여 변성되지 않고 불변하는 완벽한 신의 피조물 (= ktisma)로 만들었지만, 여타 다른 피조물과는 다른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발렌티누스파 이단의 말처럼 성부로부터 성자가 발출 (= probolē) 된 것도 아니고, 마니교 이단들의 말처럼 성부의 본질상 동일한 부분 (meros homoousion)이 (나뉘어 / 필자 주) 성자가 되었으며 따라서 (성부와 성자가) 한 본질이라는 것도 아니며, 사벨리우스의 주장처럼 한 모나드 (=일자)를 성자-성부 (huiopatora)로 나눠 부른다는 것도 아니며, 또한 히에라카스의 주장처럼 성부로부터 성자가 횃불처럼, 혹은 한 등잔불처럼 둘로 나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 번역: 최광민
nor that He who was before, was afterwards generated or new-created into a Son, as thou too thyself, Blessed Pope, in the midst of the Church and in session hast often condemned; but, as we say, at the will of God, created before times and before ages, and gaining life and being from the Father, who gave subsistence to His glories together with Him. For the Father did not, in giving to Him the inheritance of all things, deprive Himself of what He has ingenerately in Himself; for He is the Fountain of all things.
성자는 존재하지 않던 시점이 있었고, 나중에 생성되어 성자로서 새로이 창조된 것입니다. 축복받은 교부여, 교회 안이나 회의들 가운데서 당신이 종종 정죄했던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처럼, 신의 의지에 따라 성자는 태초의 시간 이전에 창조되었으며 성부로부터 생명을 받아 존재하게 되었으며, 성부가 자신의 영광을 성자에게 나눠준 것입니다. 성부는 만물을 성자에게 상속시키긴 했지만, 자신의 본연의 속성까지 내어준 것은 아닙니다. 성부는 만물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 번역: 최광민
Thus there are Three Subsistences. And God, being the cause of all things, is Unbegun and altogether Sole, but the Son being begotten apart from time by the Father, and being created and founded before ages, was not before His generation, but being begotten apart from time before all things, alone was made to subsist by the Father. For He is not eternal or co-eternal or co-unoriginate with the Father, nor has He His being together with the Father, as some speak of relations, introducing two ingenerate beginnings, but God is before all things as being Monad and Beginning of all.
따라서 세 휘포스타시스 (=성부+성자+성령, hypostaseis)가 있는 것입니다. 신은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시며, (따라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며, 철저하게 홀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시간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낳아졌고, 피조되고 (ktistheis), 드러난 존재입니다. 그래서 낳아지기 전에 그는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만물들이 존재하기 전에 성부에 의해 낳아져서 존재하게 (hypestē)된 것입니다. 성자는 그래서 영원하지도 않고, 성부와 더불어 영원하지도 않으며, 누군가 말하는 것처럼 성부처럼 기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두가지의 태어남 없는 기원을 도입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신은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모나드/일자 (一者)이셨으며, 모든 것의 출발점이였습니다. --- 번역: 최광민
Wherefore also He is before the Son; as we have learned also from thy preaching in the midst of the Church. So far then as from God He has being, and glories, and life, and all things are delivered unto Him, in such sense is God His origin. For He is above Him, as being His God and before Him. But if the terms ‘from Him,’ and ‘from the womb,’ and ‘I came forth from the Father, and I am come’ (Rom. xi. 36; Ps. cx. 3; John xvi. 28), be understood by some to mean as if a part of Him, one in essence or as an issue, then the Father is according to them compounded and divisible and alterable and material, and, as far as their belief goes, has the circumstances of a body, Who is the Incorporeal God. --- Athanasius, De Synodis, Part II, Chapter 16
그러나 아리우스와 반대입장에 선 사람들은 같은 문장을 '성부로부터 났으나, 만들어지지 않은 (begotten, but not made)' 의 뜻으로 이해했다. 이 경우, 성부와 성자는 창조자의 피조물의 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그것은 성자가 성부와 같은 본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또한 성자가 성부로부터 낳아지기는 하지만, 아리우스의 이해처럼 "성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 있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우선 (1) 성자는 성부와 같은 본질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가 완전히 새롭게 피조된 새 '본질'에서 오지않은 한 '태어남'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또 (2) 시간은 태초에 창조된 피조세계의 속성이므로 "태초 이전"을 상정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 주교였던 알렉산드로스가 콘스탄티노플 주교 알렉산드로스에게 보낸 편지는 이 점을 잘 설명한다.
6. Now that it is an insane thing to think that the Son was made from things which are not, and was in being in time, the expression, "from things which are not," itself shows, although these stupid men understand not the insanity of their own words. For the expression, "was not," ought either to be reckoned in time, or in some place of an age. But if it be true that "all things were made by Him," it is established that both every age and time and all space, and that "when" in which the "was not" is found, was made by Him. And is it not absurd that He who fashioned the times and the ages and the seasons, in which that "was not" is mixed up, to say of Him, that He at some time was not? For it is devoid of sense, and a mark of great ignorance, to affirm that He who is the cause of everything is posterior to the origin of that thing. For according to them, the space of time in which they say that the Son had not yet been made by the Father, preceded the wisdom of God that fashioned all things, and the Scripture speaks falsely according to them, which calls Him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 Conformable to which, that which the majestically-speaking Paul says of Him: "Whom He has appointed heir of all things. By whom also He made the worlds. But by Him also were all things created that are in heaven, and that are i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whether they be thrones or dominions, or principalities, or powers; all things were created by Him, and for Him; and He is before all things." Colossians 1:16-17 --- {To Alexander, Bishop of the City of Constantinople}
....;존재하지 않았다'란 표현은 시간 혹은 공간 속에서 인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물이 그 (=성자/예수)에 의해 창조되었다"라고 할 때, 이것은 즉, 모든 시대와 시공간, 그리고 '존재하지 않음'을 상정할 '때' 역시 그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던 시간과 시대와 때를 만드신 그 분에게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까요..... / 번역: 최광민
고대인의 사유, 특별히 플라톤의 철학에서 "만든다"는 행위는 질료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성부가 성자를 '낳은' 것이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면, 그 행위에는 질료가 역시 필요하다. 그런데 성부가 성자를 낳은 시점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창조되기 이전의 시점, 혹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창조에 사용된 질료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리우스파는 성자의 기원을 '무'에서 창조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정통파가 되는 '동일본질'파의 입장에서 성자는 '성부로부터 태어났'으나 만들어지지는 않은 것이기에 성자를 무로부터 피조된 존재로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양측의 주장은 훈련되지 않은 눈으로 언뜻 보기에는 그저 단순한 문구의 차이 같지만, 사실은 엄청한 신학적 차이를 담고 있는 것이다.
논쟁이 가열되자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는 중재에 나서서, 자신의 교구인 카이사리아 일대에서 세례받는 신자들의 신앙고백을 위해 적어도 AD 3세기 말 부터는 널리 사용되어지고 있던 {카이사리아 신조}를 니케아 회의의 공식적인 신조로 채택할 것을 제안한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금방 알겠지만, 이 신조는 아리우스를 정죄하는 것으로 결의한 {니케아 신조}와 거의 차이가 없다.
{카이사리아 신조}를 읽어보자.
"We believe in one God, Father Almighty (, the Maker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Word of God, God of God, Light of Light, Life of Life, Only-begotten Son, First-born of every creature, begotten of the Father before all worlds;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Who for our salvation was incarnate, and lived among men. He suffered and rose again the third day, and ascended to the Father; and He will come again in glory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We also believe in one Holy Ghost." We believe in the being and continual existence of each of these; that the Father is in truth the Father; the Son in truth the Son; the Holy Ghost in truth the Holy Ghost; as our Lord, when sending out His disciples to preach the Gospel, said, ‘Go forth and teach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to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 We positively affirm that we hold this faith, that we have always held it, and that we adhere to it even unto death, condemning all ungodly heresy. We testify, as before God the Almighty and our Lord Jesus Christ, that we have thought thus from the heart, and from the soul, ever since we have known ourselves; and we have the means of showing, and, indeed, of convincing you, that we have always during the past thus believed and preached."
[카이사리아-팔레스티나 신조] "우리는 전능한 아버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신 유일한 신을 믿는다. 우리는 신의 말씀/로고스이시며, 신 중의 신, 빛 중의 빛, 생명 중의 생명, 성부에게서 나신 유일한 아들, 모든 피조물에 앞선 분,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성부가 낳으신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 분을 통해 세상이 창조되었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 분은 세상에 오셔서 사람 가운데 사셨다. 그는 고난을 당하시고 세째날 부활하여 성부께로 승천하셨고, 영광 가운데 돌아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령을 믿는다. 우리는 성부는 진실로 성부로, 성자는 진실로 성자로, 성령은 진실로 성령으로 각각 계시며 또한 영존하신다고 믿는다. ...(후략) --- 번역: 최광민
카이사리아의 주교 유세비우스가 이 신조를 제안했을때, 이미 아리우스파는 이 신조를 그대로 수용하는데 이의가 없었다. 그럼 이 신조 도대체 어디에 "예수는 그저 인간"이라는 언급이 있을까? 전혀 없다. 이미 이 신조에서조차 예수는 "진정한 신(=God of God/the very God)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아-팔레스타인 신조}를 역시 수용하던 (아타나시우스로 대표되는) 반-아리우스 진영에서는, 일단 이 신조에 동의하면서도 이 신조의 몇 구절을 보다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하는 구절은 아래와 같다. 이 구절 자체는 신약성서에서 그대로 인용된 것이지만, 반-아리우스 진영에서는 보다 더 정밀한 정의를 요구했던 듯 싶다.
...Only-begotten Son, First-born of every creature, begotten of the Father before all worlds...
....독생자, 만물에 앞서 나신 이, 세상에 앞서 성부가 낳으신....
이들의 요구가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를 포함한 주교들의 오랜 검토 끝에 관철되었을 때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는 결정과정에 있어 황제가 강제력을 발휘했다는 어떤 암시도 하지 않는다), 비로소 {니케아 신조}의 기초가 잡힌다. 이 수정된 초안에서 강조된 부분은 아래와 같다.
“‘We believe in one God, Father Almighty, Maker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Son of God, begotten of the Father; only-begotten, that is, of the substance of the Father, God of God, Light of Light, Very God of very God, begotten not made, being of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both in heaven and on earth: Who for us men, and for our salvation, came down from heaven, and was incarnate, and was made man; He suffered, and rose gain the third day;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coming to judge both quick and dead. And we believe in the Holy Ghost. Th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anathematizes all who say that there was a time when the Son of God was not; that before He was begotten He was not; that He was made out of the non-existent; or that He is of a different essence and of a different substance from the Father; and that He is susceptible of variation or change.’
한편, 니케아 회의가 끝난 후인 AD 327년에 아리우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역시 5세기의 역사가였던 소조메노스의 기록이다. 아리우스가 끝까지 '성부로부터 났으나 창조되지는 않은 '이라는 {니케아 신조}의 공식에서 '창조되지는 않은'이란 조항을 끝까지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자(예수)가 '만물의 창조자'란 점은 아리우스의 주장에서 흔들림없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 편지에서 아리우스는 성자인 예수에 대해 '진실한 신'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읽어보자.
Arius' Letter to the Emperor Constantine, 327 CE
(from Sozomen, Ecclesiastical History, 2, 27. LPNF, ser. 2, vol. 2, 277.
Arius and Euzoius, presbyters, to Constantine, our most pious emperor and most beloved of God. According as your piety, beloved of God, commanded, O sovereign emperor, we here furnish a written statement of our own faith, and we protest before God that we, and all those who are with us, believe what is here set forth.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and in His Son the Lord Jesus Christ, who was begoten from Him before all ages, God the Word,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whether things in heaven or on earth; He came and took upon Him flesh, suffered and rose again, and ascended into heaven, whence He will again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We believe in the Holy Ghost, in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in the life to come, in the kingdom of heaven, and in one Catholic Church of God, established throughout the earth. We have received this faith from the Holy Gospels, in which the Lord says to his disciples, "Go forth and teach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 If we do not so believe this, and if we do not truly receive the doctrines concerning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Ghost, as they are taught by the whole Catholic Church and by the sacred Scriptures, as we believe in every point, let God be our judge, both now and in the day which is to come. Wherefore we appeal to your piety, O our emperor most beloved of God, that, as we are enrolled among the members of the clergy, and as we hold the faith and thought of the Church and of the sacred Scriptures, we may be openly reconciled to our mother, the Church, through your peacemaking and pious piety; so that useless questions and disputes may be cast aside, and that we and the Church may dwell together in peace, and we all in common may offer the customary prayer for your peaceful and pious empire and for your entire family.
[전략].....우리는 전능한 성부인 한 신을 믿고, 성부로부터 이 세상 이전에 나신 그의 아들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말씀/로고스인 신으로서, 그는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수난당하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분이며,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후략] --- 아리우스, {콘스탄티누스에게 보낸 편지}, 소조메노스의 재인용 / 번역: 최광민
예수는 "그저 인간"이라고 아리우스가 믿었던가?
§§ 범-아리우스 계열 신조들
이것도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성부와 성자의 본질문제에 있어 아리우스와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졌으나 대체로 아리우스에게 동정적이던 준-아리우스파 (semi-arian) 주교들이 AD 341년부터 361년 사이 {니케아 신조}에 반발해 연달아 발표한 11개의 신조를 참고해 보자.범
AD 335년에 튀로스와 예루살렘에서 열린 주교회의에서는 그동안 파문조치되어 교회로부터 성찬을 받을 수 없었던 아리우스와 그의 동조자들이 다시 교회와 성만찬을 공유할 수 있도록 결의했다. 이때 이 회의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바로 아리우스의 동문지간인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와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였다. 이 결의에 대해 전임자 알렉산드로스에 이어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된 (아리우스의 숙적) 아타나시우스가 콘스탄티누스에게 불평하자, 황제는 튀로스 회의에 참가했던 주교들에게 해당 문제를 자신 앞에서 재토론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몇몇 주교는 고향으로 도망쳤지만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 등 몇몇은 직접 황제를 만나 소명했다. 원래부터 아타나시우스를 못마땅해하던 황제는 오히려 다음 해에 아타나시우스를 트리에르로 귀양보냈고, 이어 니케아 회의의 결의사항인 "동일본질"를 지지하는 안키라 주교 마르켈루스에 대한 강등과 추방이 이어졌다. 마침내 AD 336년, 콘스탄티누스는 아리우스를 다시 사제로 복권시키는 조치를 취하지만, 아리우스는 복권을 알리는 공식의식이 있던 전날 밤 돌연히 사망했다. 사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마도 암살이었을 가능성을 대체로 높게 고려한다.
콘스탄티누스가 AD 337년 5월 22일 니코메디아에서 사망할 무렵, 그는 과거 아리우스의 후원자였었고 니케아 회의 결과 일보 후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리우스의 주장에 상당히 동조했던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추도사는 (니케아 회의 전에는 아리우스에게 기울었으나) 니케아 회의에서 "동일본질"에 동의했던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작성했고, 이듬 해인 AD 338년에는 (니케아 회의 이전과 이후에 계속해서 '동일본질 교리'에 대해 여러 수준으로 동의하지 않았던)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주교가 되었다. 이 "두 유세비우스"가 종교권력의 핵심이 된 의미는 즉, 제국의 심장부가 범-아리우스계, 특별히 준-아리우스파로 장악되었다는 뜻이다.
콘스탄티누스 사후 로마제국은 그의 세 아들들에 의해 나뉘어졌고, 콘스탄티우스는 동방을, 콘스탄티누스 2세는 브리타니아와 갈리아를, 콘스탄스는 이탈리아와 일리리쿰을 차지했다. 즉위 후 콘스탄티우스는 추방당했던 아타나시우스를 다시 알렉산드리아로 복귀시켰지만, AD 338년 두 유세비우스의 영향권 아래 있던 안티오키아에서 열린 주교회의는 다시 아타나시우스를 강등시킨 후 알렉산드리아에서 두번째로 추방시켰고, 대신 카파도키아에서 온 그레고리우스를 알렉산드리아 주교로 임명했다.
AD 340년 콘스탄티누스 2세가 죽고, 니케아 신조 (즉, 성부와 성자의 (+성령의) 동일본질)를 지지하는 콘스탄스가 서방의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당시 로마 주교인 율리우스 1세는 추방된 마르켈루스와 아타나시우스를 로마로 받아주기 된다. 한편, 동방의 아우구스투스인 콘스탄티우스는 니케아 신조를 거부하는 준-아리우스파를 지지하게 된다.
성부와 성자를 동일본질 (homoousios)로 설명한 니케아 회의의 결정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런 일이었기 때문에,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된 (전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를 중심축으로 한 그룹들은 '동일본질'이란 핵심용어 혹은 그 뉘앙스를 바꾸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니케아 신조에 대응한다.
그 첫번째 그룹은 니코메디아 (이제 콘스탄티노플) 주교 유세비우스 측의 입장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은 성부와 성자의 유사본질 (homoiousios)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정죄된 아리우스의 교리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즉, (1) 성자는 무에서 창조되었다라거나 (2) 성자의 본질은 성부와 완전히 다르다라는 내용은 니케아 회의에서처럼 거부되었고, 대신 성부와 성자와 성부 삼위일체의 각 위격을 인정하며 또한 그 셋이 영원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이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준-아리우스파 (Semi-Arian)들이다. 다만 성부-성자의 "본질"이 있어 "동일"하다기보다는 "유사"하다고 설명하였으며, 성부-성자-성령의 위엄적 지위를 성부 > 성자 > 성령의 순으로 대체로 간주했다.
두번째 그룹 역시 아리우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고 우회적으로 니케아 신조를 공격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의 경우 "성자는 성부와 유사 (homoios)하다"는 표현을 통해 "본질"에 대한 논쟁을 우회했다. 즉, '본질'이란 용어를 삭제해 버린 것이다. 이 그룹 역시 준-아리우스파로 분류되지만, 첫번째 그룹의 준-아리우스파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세번째 그룹은 AD 4세기 중반에 부활한 원조-아리우스파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준-아리우스파와는 달리 "성자와 성부는 모든 면에서 같지 않다/다르다 (anomoios)"라는 아리우스의 원래 교리를 부활시켰다.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에서 다시 아리우스의 원조교리로 되돌아가려는 시도었는데, 큰 지류는 Aetius 및 Eunomius 계열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과 변증법을 무기로 삼았고, 그동안 친-아리우스계를 주도해 오던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인 homoiousios, 즉 "성부와 성자의 유사본질" 입장과 결별해 원래의 아리우스의 입장으로 돌아갔다. 즉, 정통파 교회가 주장하는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 (homoiousios)" 과 완전한 대척점인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 차이 (anomoios)를 고수하게 된다. 이들은 주창자의 이름을 따서 Aetians, Eunomians로 불리거나 혹은 그들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Anomoeans로 불린다. 이들은 AD 361년 안티오키아에서 가진 11번째 친-아리우스계 회합에서 주도권을 잡고 "성자는 모든 면에서 성부와 다르며, 그 본질에 있어서도 역시 다르다 / the Son is in all things unlike (kata panta anomoios) the Father, as well in will as in substance"라는 선언을 한다. 물론 이들 역시 예수를 "오직 인간"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다. 아리우스와 마찬가지도 그들에게도 성자는 성부보다는 아래지만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과는 비할 나위없이 높은 "신적" 존재인 (성부와 함께) 만물의 창조자였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의 아들인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자신의 종교자문이었던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의 영향에 따라 첫번째와 두번째의 준-아리우스파들을 번갈아 지원했지만, 이 세번째의 정통 아리우스파는 핍박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후 그의 자식들끼리 벌어진 분쟁으로 결국 모두가 죽은 후, 어부지리로 AD 361년 황제가 되는 "이교도 황제" 율리아누스는, 기독교를 내부분란을 이용해 약화시킬 목적으로 동일본질파 (= 원-카톨릭), 아리우스파 (원조 이질본질파), 준-아리우스파 (유사본질파 및 유사파)를 포함한 모든 분파를 허용시켰으며, 그를 이은 발렌스 황제는 준-아리우스파였던 콘스탄티누스의 정책에 따라 "유사본질"을 가르치는 주교들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동일본질파를 탄압했다. (율리아누스의 노골적인 기독교 약화정책은 결과적으로는 동일본질파와 온건한 형태의 유사본질파의 연대를 가져오게 된다.)
우선적으로는 준-아리우스주의자들의 AD 344년 안티오키아 회합과 351년 시르미움 회합에서 결정된 6번째 신조 내용을 주의깊게 읽어보자. 아리우스파의 관점에서 이단인 입장을 조목별로 열거하고 있다. 유사본질을 주장한 준-아리우스파의 교리는 상당부분 동일본질파와 일치하기 때문에 주의깊게 읽어야 한다.
그럼 범-아리우스 계열이 그들의 주교회의를 통해 발표한 일련의 신조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필요한 부분은 번역하겠다.
우선, AD 341년의 상황을 보자. 이 해에 안티오키아에서는 범-아리우스 그룹에 의해 두번의 회의가 열렸다. 처음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착공되었던 교회건물의 봉헌에 맞춰 97명의 주교들이 모여 열린 것이었는데, (니케아 회의를 강력하게 지지하던) 서방에서는 주교들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여기 모인 주교들은 거의 모두 반-아리우스 진영의 선봉장이던 아타나시우스에게 적대적인 인물들이었는데, 이 회합은 범-아리우스 진영이 자신들의 공식적인 신조들을 문서화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회의에서 세 종류의 신조가 차례로 작성되었다. 또한 이 해 두번째 열린 회합에서는 4번째 신조가 범-아리우스 진영에서 발표된다. 물론 모든 동방의 주교들이 아리우스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주교인 우리들이 어떻게 사제를 따를 수 있단 말인가?"라며 시니컬하게 반응했다. 아리우스는 니케아 회의 전에 사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해 겨울에는 범-아리우스 진영의 좌장 격인 콘스탄티노플 (전임지,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사망했다.
아타나시우스의 서신에 인용된 내용들이다. 중요한 구절은 붉게 강조처리 했다.
First Arian Confession (Antioch, 341 AD) 인용 : (Athanasius, De Synodis, 22. LPNF, ser. 2, vol. 4, 461).
For we have been taught from the first, to believe in one God, the God of the Universe, the Framer and Preserver of all things both intellectual and sensible. And in One Son of God, Only-begotten, who existed before all ages, and was with the Father who had begotten Him,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both visible and invisible, who in the last days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Father came down; and has taken flesh of the Virgin, and jointly fulfilled all His Father’s will, and suffered and risen again, and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cometh again to judge quick and dead, and remaineth King and God unto all ages. And we believe also in the Holy Ghost; and if it be necessary to add, we believe concerning the resurrection of the flesh, and the life everlasting.
....그리고 또한 신의 아들이자, 세상 이전부터 존재하셨고, 성부가 낳으신 외아들이자, 보이는 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만물을 만드신 분을 믿는다.... / 번역: 최광민
이들 범-아리우스파는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믿었는가?
두번째 준-아리우스계 공회의의 결의문을 읽어보자. 이 결의문은 성부, 성자, 성령을 독립적 위격으로 고백하면서, 이 셋이 각각의 독특한 (~성부의 본질과 유사한) 본질과 지위와 영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는 세가지 본질을 가지고 있으되 하나로서 일치된다고 진술한다.
The Second Arian Confession (Antioch, 341 AD) 인용 : (Athanasius, De Synodis, 23. LPNF, ser. 2, vol. 4, 461)
We believe, conformably to the evangelical and apostolical tradition,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the Framer, and Maker, and Provider of the Universe, from whom are all things.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His Son, Only-begotten God (John 1:18), by whom are all things, who was begotten before all ages from the Father, God from God, whole from whole, sole from sole, perfect from perfect, King from King, Lord from Lord, Living Word, Living Wisdom, true Light, Way, Truth, Resurrection, Shepherd, Door, both unalterable and unchangeable; exact Image of the Godhead, Essence, Will, Power and Glory of the Father; the first born of every creature, who was in the beginning with God, God the Word, as it is written in the Gospel, and the Word was God (John 1:1);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and in whom all things consist; who in the last days descended from above, and was born of a Virgin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was made Man, Mediator between God and man, and Apostle of our faith, and Prince of life, as He says, “I came down from heaven, not to do Mine own will, but the will of Him that sent Me” (John 6:38); who suffered for us and rose again on the third day, and ascended into heaven, and sat down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is coming again with glory and power, to judge quick and dead.
우리는 또 한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성부의 아들이자, 독생하신 (=유일하게 낳아지신) 신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고, 성부로부터 이 세상 이전에 낳아지신 분이자, 신으로부터 오신 신이며, 완전으로부터 오신 완전하신 분이며, 유일한 이로부터 오신 유일한 분이며,......[후략] / 번역: 최광민
And in the Holy Ghost, who is given to those who believe for comfort, and sanctification, and initiation, as also our Lord Jesus Christ enjoined His disciples, saying, “Go ye, teach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Ghost” (Matt 28: 19); namely of a Father who is truly Father, and a Son who is truly Son, and of the Holy Ghost who is truly Holy Ghost, the names not being given without meaning or effect, but denoting accurately the peculiar subsistence, rank, and glory of each that is named, so that they are three in subsistence, and in agreement one.
우리는 또한 성령을 믿는다. 그는 믿는 자들을 위로하고, 거룩하게 하고, 신앙에 입문하게 하기 위해 보내주신 분으로.... [후략] / 번역: 최광민
Holding then this faith, and holding it in the presence of God and Christ, from beginning to end, we anathematize every heretical heterodoxy. And if any teaches, beside the sound and right faith of the Scriptures, that time, or season, or age, either is or has been before the generation of the Son, be he anathema. Or if any one says, that the Son is a creature as one of the creatures, or an offspring as one of the offsprings, or a work as one of the works, and not the aforesaid articles one after another, as the divine Scriptures have delivered, or if he teaches or preaches beside what we received, be he anathema. For all that has been delivered in the divine Scriptures, whether by Prophets or Apostles, do we truly and reverentially both believe and follow.
....또는 성자가 피조물 중 하나라고 하거나, 혹은 파생물 가운데 하나라고 하거나, 혹은 신의 피조물 중 하나라고 하거나......파문에 처한다..... / 번역: 최광민
아리우스파는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믿었는가?
다음은 세번째 준-아리우스계 회의가 발표한 의결문이다.
Third Arian Confession (Antioch, 341 AD) 인용 : (Athanasius, De Synodis, 24. LPNF, ser. 2, vol. 4, 461-462).
God knows, whom I call as a witness upon my soul, that so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the Creator and Maker of the Universe, from whom are all things. And in His Only-begotten Son, Word, Power, and Wisdom,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are all things; who has been begotten from the Father before the ages, perfect God from perfect God, and was with God in subsistence, and in the last days descended, and was born of the Virgin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was made man, and suffered, and rose again from the dead, and ascended into the heavens, and sat down on the right hand of His Father, and cometh again with glory and power to judge quick and dead, and remaineth for ever: And in the Holy Ghost, the Paraclete, the Spirit of truth (John 15:26), which also God promised by His Prophet to pour out (Joel 2:28) upon His servants, and the Lord promised to send to His disciples: which also He sent, as the Acts of the Apostles witness. But if any one teaches, or holds in his mind, aught beside this faith, be he anathema; or with Marcellus of Ancyra, or Sabellius, or Paul of Samosata, be he anathemas both himself and those who communicate with him.
나는.......성부의 독생자, 말씀, 능력, 지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만물을 만드신 자이며, 세상 이전에 성부로부터 나신 분이며, 완전한 신 중의 완전한 신이며, 본질에 있어서 신(=성부)와 함께 하시며, 이 마지막 때에 강림하며 성서에 기록된 대로 처녀에게서 태어나셨고..... / 번역: 최광민
아리우스파는 예수를 그저 인간으로 여겼던가?
네번째 준-아리우스계열 주교회의의 의결문이다. 여기서 준-아리우스파는 (1) 성자는 무로부터 창조되었다거나, (2) 성부로부터가 아닌 다른 본질을 가졌다거나 (3) 성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 있었다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다.
Fourth Arian Confession aka The Creed of Dedication (Antioch, 341 AD) 인용 : (Athanasius, De Synodis, 25. LPNF, ser. 2, vol. 4, 462).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Creator and Maker of all things; from whom all fatherhood in heaven and on earth is named. (Eph 3:15). And in this Only-begotten Son, our Lord Jesus Christ, who before all ages was begotten from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visible and invisible, being Word, and Wisdom, and Power, and Life, and True Light; who in the last days was made man for us, and was born of the Holy Virgin; who was crucified, and dead, and buried, and rose again from the dead the third day, and was taken up into heaven, and sat down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is coming at the consummation of the age, to judge quick and dead, and to render to every one according to his works; whose Kingdom endures indissolubly into the infinite ages; for He shall be seated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not only in this age but in that which is to come. And in the Holy Ghost, that is, the Paraclete; which, having promised to the Apostles, He sent forth after His ascension into heaven, to teach them and to remind of all things; through whom also shall be sanctified the souls of those who sincerely believe in Him. But those who say, that the Son was from nothing, or from other subsistence and not from God, and, there was time when He was not, the Catholic Church regards as aliens.
AD 342년 혹은 이듬해에 '동일본질'파를 지지해 온 서방의 아우구스투스 콘스탄스가 교회의 일치를 재조정하기 위해 사르디카에서 주교회의를 소집한다. 이 회의는 난장판이 되었는데, 서방의 주교들과 동방의 주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서로 비난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서방의 주교들은 아리우스파를 격렬히 비난했고, 대체로 범-아리우스 진영인 동방의 주교들은 필리포폴리스로 물러간 후 거기서 반-아리우스 진영의 선봉장인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안키라 주교 마르켈루스, 그리고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한 로마 주교 율리우스 1세 등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는 범-아리우스 진영의 네번째 신조와 함께 마르켈루스를 파문조치하는 내용을 담았다.
동일본질파의 입장에서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타나시우스와 함께 아리우스파를 강력하게 비난했던 안키라 주교 마르켈루스는, 훗날 이 논쟁의 진행과정에서 또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 니케아 회의 몇 년 후, 그는 아리우스파인 아스테리우스를 반박하는 글을 통해, 원래 신은 일자로서 하나의 존재였으며, 아직 성자로 태어나지 않은 로고스는 그 일자인 신에 내재되어 있었으나, 세상의 창조 때 로고스가 신으로부터 나와 성자로 나타나 세상의 창조자로 등장하게 되면서 성부-성자로서 (여전히 하나의 신이지만) 이중적 존재로 드러났고, 또 성령이 성부로부터 나와 성자로부터 임무를 받음으로써 그때부터 비로소 성부-성자-성령의 존재방식을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로고스/성자는 후에 그리스도가 되었는데, 성자와 성령은 종국에는 다시 성부에게로 돌아가 다시 신은 하나의 일자로 돌아가게 될 것이란 주장을 펼치게 된다. 마르켈루스의 이 주장은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타나시우스나 등의 동일본질파에 의해서도 '변형 사벨라리아누스 주의' 및 AD 260년 대에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사모사타의 파울로스이 주창한 '양자설'이단의 변형으로 여겨져 배척되었다.
그는 이 주장으로 인해 AD 336년에는 준-아리우스파의 좌장이었던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가 주도한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이단으로 탄핵되어 주교직을 박탈당했고, 이 회의는 준-아리우스파 사제였던 안키라의 바실레이오스를 새 주교로 임명했다. 사실 이 바실레이오스의 인생도 파란만장하다. AD 336년에 안키라 주교가 된 바실레이오스는 AD 343년에 개최된 사르디카 주교회의에서 주교직을 박탈 당했다가, 다시 AD 350년에는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다시 안키라 주교로 복권되었다. 그후 라오디케이아의 게오르기오스와 함께 준-아리우스파의 좌장으로 활동하면서 AD 359년 준-아리우스파를 지원해 온 콘스탄티우스 2세가 소집한 셀류키아 회의에서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 다음 해인 AD 360년 원조 아리우스파인 카이사리아 주교 아카키오스의 탄핵을 받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일리리아로 추방되었다. 이때 동일본질파인 예루살렘 주교 키릴로스 등도 함께 탄핵되었다. 이후 바실레이오스는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에서 니케아 신조를 지지하는 동일본질파로 기울었는데, AD 361년 콘스탄티우스 2세가 죽고 어부지리로 황제가 된 '배교자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율리아누스 황제에게 맞서다가 체포되어 고문받고 처형되었다.
니케아 회의 당시에도 제기되었다시피, '우시아'나 '휘포스타시스' 같은 그리스 철학용어로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는데 반감을 가진 주교들이 많았다. 이들은 최종적으로는 신학적인 결론에 따라 '동일본질"이란 용어를 규정한 {니케아 신조}에 서명하긴 했지만, 대체로 이 용어의 실제적인 사용에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던 듯 하다. 마르켈루스 역시 '우시아'나 '휘포스타시스' 같은 용어사용에는 대체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 또 성서에 표현된 단어와 숙어 이외의 용어로 성부, 성자, 성령을 표현하는 것도 피했다. 이 입장에 따르면,"태어나기 전의 성자"는 (성서에 명시된 용례에 따라) 그저 "로고스"라 불러야 하며, 성자는 로고스가 신으로부터 탄생한 후에 적용되어야 적절한 용어가 된다. 또한 '로고스'가 '성자'로서 출생하기 전에 홀로 존재하던 모나드(일자)로서의 신은 '성부'라 부르면 안되고 (아직 '아버지'가 아니므로), 그저 신으로 불러야 옳게 되는 셈이다.
전해지는 단편들 가운데 (저자가 정말 마르켈루스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거룩한 교회에 관하여}를 발췌해 읽어보자. 읽기에 앞서, 우선 '삼위일체'에 대한, 특별히 '삼위', '세 휘포스타시스'에 관한한 마르켈루스의 입장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한 분의 신과 한 분의 신의 아들과, 한 분의 성령이 있기에, 한 인류와 한 세상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의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와 하나의 세례 만이 세상에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바울이 "한 신, 한 믿음, 한 세례"라고 말한 것과 같다....[중략].....3. 그러나 이단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사도나 제자들에게서나 혹은 그들의 후임자들인 주교들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며, 그 집단들이 널리 퍼진 것이 아니라 국지적으로 산재하고 있으며, 거기서 악마는 그들을 속여 헛된 야망에 빠지게 있으며, 악마의 일을 심부름하는 지도자로 만들었다. 이것이 왜 그들의 교회가 보편교회가 아닌가의 이유이다. 4. 유대교의 사두가이파는....6 시몬 (마구스 )의 추종자들로 그노시스....[중략]....라 불리는 자들도 서로가 서로를 베껴 새로운 교리를 만들며.....[중략]......7 이 모든 이단들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토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이 오류를 가져온 것이다. 8 신의 교회를 타락시키는 아리우스파 이단...[중략]...은 또 세 위격 (hypostasies)을 가르치는데, 이것은 바로 {세 본성에 관하여}란 저작 속에서 이단의 괴수 발렌티누스가 처음 고안한 것이다. 그는 이 (=발렌티누스파 그노시스) 이단의 지도자인 발렌티누스는 그의 {세 본성에 관하여 Peri ton trion physeon}란 저작에서 세 존재 (위)의 개념을 처음 고안한 자다. 그는 세 휘포스타시스 (ὑπόστασις)와 세 프로소폰 (πρόσωπον / 복수 πρόσωπα)으로 존재하는 - 성부, 성자, 성령'이란 개념을 헤르메스와 플라톤으로부터 가져와 만들어 냈다. 10 또한 이것이 왜 그들이 성부에 의해 태초의 만물 이전에 존재하게 된 두번째 신이란 개념을 만들게 된 계기다. 그들이 선택한 지도자인 아스테리우스는 트리스메기토스라고도 불리는 헤르메스의 가르침을 따르기도 했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토스는 / 필자 주) 의사인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말하길 "들어라, 아스클레피오스. 우리 관례로 신이라 부르는 주님이자 만물의 창조자는 이후 가시적이고 감지될 있는 두번째 신을 만들었다"라고 했다. 이 두번째 신의 개념으로부터 아스테리우스는 요한이 진술한 "독생한 아들"이 아닌 "독생한 신"의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중략] ... 플라톤은 {고르기아스}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고있다: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필수적인 것들로서, 이 가장 아름답고 최선의 것을 만드신 창조자는 이것들을 취해 가변적인 것들을 만들었다. 이때 그는 자충적적이고 완벽한 아들을 낳았다". 또 같은 방식으로 아스테리우스는 말한다: "이 경우에 있어, 우리는 오직 하나의 불변하며, 태어나지 않았으며, 파괴될 수 없는 오직 한 형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이 존재는 그 본질을 다른 것에서 받지 않았음을과, 스스로 다른 형상들로 변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존재는 불가시적이고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나, 이성적 사유자 (~로고스, 누스)는 그를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의 존재는 (~로고스, 누스)는 태어난 존재이며, 가시적이며, 변화되는 존재이다.....[중략]..., 또한 아리우스파는 성령을 경배/공경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성령을 거스려 모독하고 있다. 그들은 성령을 종이자 사환이라 부르며, 이런 불경스런 가르침을 (사마리아인 시몬 마구스의 스승)인 사두개 이단의 수괴인 도시테우스로부터 전수받아 무신론의 구덩이 속으로 삼켜졌다. ---- 안키라 주교 마르켈루스, {거룩한 교회에 관하여 De Sancta Ecclesia}, A.H.B. Logan, “Marcellus of Ancyra (Pseudo-Anthimus), On the Holy Church: Text, Translation and Commentary. Verses 8–9.”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NS, 51.1, April 2000:95 영어번역 전문에서 한국어로 중역 / 최광민
잠깐, 그럼 마르켈루스는 '삼위일체'의 개념이 초창기 그노시스 이단자인 발렌티누스가 헤르메스와 플라톤으로부터 가져온 개념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렇게 속단하기엔 좀 이르다. 문맥을 고려하여 읽어보면 알겠지만, 마르켈루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일본질파가 설명하는 식의 '삼위'가 아닌) 아리우스파가 설명하는 식"으로서의 '삼위'가 바로 플라톤 및 헬레니즘 철학에서 유래했단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본질을 지지한 마르켈루스가 이 글을 "아리우스파에 대한 반박"으로 저술했다는 것이 그의 신론을 이해하는 첫 단서다. 따라서 여기서의 '세 위격 (hypostasis ~ persona)'이란 즉, 아리우스파 계열이 정의하던 그 '위격'이란 점을 우선 기억하자. 그들은 '동일본질파'와 달리 성부-성자-성령의 '완전히 다르거나, 유사하지만 다른' '세 위'에 대해 가르쳤다. 각각의 위가 서로 다르기에 아리우스는 사실상 (성자와 성령이 성부에게 종속되긴 하지만) 삼신론과 유사한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것은 즉, 성자와 성령은 성부의 본질과 동일하지 않은 열등한 존재란 뜻이며, 따라서 아리우스파가 말하는 "세 휘포스타시스", 즉 "세 위"는 사실은 완전히 독립적인 세 존재, 즉 "등급이 다른 세 신"이란 뜻이다. 물론 아리우스파라도 "명시적으로" "세 신"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동일본질파에게 있어서는, 성부-성자-성령이 한 본질/본체/실체 (우시아)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 "세 위"를 "세 신"이라 부를 수 없다. 즉, 성부-성자-성령은 "한 신"으로서의 "한 우시아 / 본질" 안에 "세 휘포스타시스 / 위"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켈루스가 '아리우스파 아스테리우스의 주장'으로 소개한 이 아리우스의 신관, 즉 독립된 세 실체와 독립한 세 위 (즉, 세 우시아와 세 하이포스타시스)는 사실상의 '삼신론'이다. ' 따라서 마르켈루스는 바로 이런 아리우스파의 교리가 (신비주의 비교문서의 전설적 저자로 불려졌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토스와 플라톤 ({고르기아스})에서 유래한 것이라 강변하는 것이다. 아울러 발렌티누스가 썼다는 {세 본성에 관하여}는 소실된 작품이며, 발렌티누스가 그런 책을 썼다는 다른 기록은 없다. (그런데 사실 아리우스 본인은 "성부로부터 성자가 발출되었다"는 발렌티누스의 주장에 반대한다고 적었다.)
AD 344년에 안티오키아에서 발표된 다섯번째 신조는 범-아리우스 진영이 사르디카에서 발표한 성명서에다 서방 주교들의 신학을 추가로 비판하는 8개 조항을 담았다. 아래의 다섯번째 신조에서는 (준-)아리우스파들의 입장에서 이단인 주장들을 항목별로 정리해 놓고 있다. 먼저 파문대상이 나열되고, 이어서 자세한 입장이 설명된다. 이 설명들의 대부분은 동일본질파 혹은 원-카톨릭의 신학과 동일하다.
(번역: 최광민)
Fifth Arian Confession aka Macrostitch (Antioch, 344 AD) 인용 : (Athanasius, De Synodis, 26. LPNF, ser. 2, vol. 4, 462-464).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the Creator and Maker of all things, from whom all fatherhood in heaven and on earth is named. And in His Only-begotten Son our Lord Jesus Christ, who before all ages was begotten from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in heaven and on the earth, visible and invisible, being Word and Wisdom and Power and Life and True Light, who in the last days was made man for us, and was born of the Holy Virgin, crucified and dead and buried, and rose again from the dead the third day, and was taken up into heaven, and sat down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is coming at the consummation of the age to judge quick and dead, and to render to every one according to his works, whose Kingdom endures unceasingly unto the infinite ages; for He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not only in this age, but also in that which is to come. And we believe in the Holy Ghost, that is, the Paraclete, which, having promised to the Apostles, He sent forth after the ascension into heaven, to teach them and to remind of all things: through whom also shall be sanctified the souls of those who sincerely believe in Him.
[파문대상]
But those who say,
Likewise those who say, that
- that the Son was from nothing, or from other subsistence and not from God;
- 성자가 무로부터 왔거나 성부가 아닌데서 그 본질을 받았다고 말하는 자.
- and that there was a time or age when He was not, the Catholic and Holy Church regards as aliens.
- 성자가 존재하지 않던 시점이 있었다고 말하는 자
- there are three Gods:
- 세 신이 있다고 말하는 자
- or that Christ is not God;
- 그리스도는 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
- or that before the ages He was neither Christ nor Son of God;
- 이 세상 이전에 성자는 그리스도도 신의 아들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자
- or that Father and Son, or Holy Ghost, are the same;
- 성부, 성자, 성령이 동일하다고 말하는 자
- or that the Son is Ingenerate; or that the Father begat the Son, not by choice or will;
- 성자가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거나, 성부가 결정/의도하여 성자를 낳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
the Holy and Catholic Church anathematizes.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는 파문한다.
- For neither is safe to say that the Son is from nothing, (since this is no where spoken of Him in divinely inspired Scripture,) nor again of any other subsistence before existing beside the Father, but from God alone do we define Him genuinely to be generated. For the divine Word teaches that the Ingenerate and Un-begun, the Father of Christ, is One.
- Nor may we, adopting the hazardous position, “There was once when He was not,” from unscriptural sources, imagine any interval of time before Him, but only the God who has generated Him apart from time; for through Him both times and ages came to be. Yet we must not consider the Son to be co-unbegun and co-ingenerate with the Father; for no one can be properly called Father or Son of one who is co-unbegun and co- ingenerate with Him. But we acknowledge that the Father who alone is Unbegun and Ingenerate, hath generated inconceivably and incomprehensibly to all: and that the Son hath been generated before ages, and in no wise to be ingenerate Himself like the Father, but to have the Father who generated Him as His beginning; for “the Head of Christ is God.” (1 Cor. 11:3)
- "성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점이 있었다"란 위험한 주장을 우리는 수용하지 않는다. 이 주장은 성서에 근거하지 않았으며, 또한 성자가 존재하기 전의 어떤 기간의 시간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자를 낳으신 성부는 시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분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그를 통하여 생겨났기 때문이다....(후략)
- Nor again, in confessing three realities and three Persons, of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Ghost according to the Scriptures, do we therefore make Gods three; since we acknowledge the Self-complete and Ingenerate and Unbegun and Invisible God to be one only (1), the God and Father (Joh. 20:17) of the Only-begotten, who alone hath being from Himself, and alone vouchsafes this to all others bountifully.
- 삼위일체 세 위격인 성부, 성자, 성령의 실재를 성서에 따라 고백하는 우리는 세 분의 신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족적이고 기원이 없으며 태어나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신은 독생한 성자의 아버지인 신 오직 한 분이며, 이 분 홀로 스스로 존재하며 다른 존재에게 자신을 풍성히 드러내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 Nor again, in saying that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is one only God, the only Ingenerate, do we therefore deny that Christ also is God before ages: as the disciples of Paul of Samosata, who say that after the incarnation He was by advance made God, from being made by nature a mere man. For we acknowledge, that though He be subordinate to His Father and God, yet, being before ages begotten of God, He is God perfect according to nature and true, and not first man and then God, but first God and then becoming man for us, and never having been deprived of being.
- We abhor besides, and anathematize those who make a pretence of saying that He is but the mere word of God and unexisting, having His being in another,--now as if pronounced, as some speak, now as mental,--holding that He was not Christ or Son of God or mediator or image of God before ages; but that He first became Christ and Son of God, when He took our flesh from the Virgin, not quite four hundred years since. For they will have it that then Christ began His Kingdom, and that it will have an end after the consummation of all and the judgment. Such are the disciples of Marcellus and Scotinus of Galatian Ancyra, who, equally with Jews, negative Christ’s existence before ages, and His Godhead, and unending Kingdom, upon pretence of supporting the divine Monarchy. We, on the contrary, regard Him not as simply God’s pronounced word or mental, but as Living God and Word, existing in Himself, and Son of God and Christ; being and abiding with His Father before ages, and that not in foreknowledge only, and ministering to Him for the whole framing whether of things visible or invisible. For He it is, to whom the Father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s,” (Gen 1:26), who also was seen in His own Person by the patriarchs, gave the law, spoke by the prophets, and at last, became man, and manifested His own Father to all men, and reigns to never-ending ages. For Christ has taken no recent dignity, but we have believed Him to be perfect from the first, and like in all things to the Father.
- And those who say that the Father and Son and Holy Ghost are the same, and irreligiously take the Three Names of one and the same Reality and Person, we justly proscribe from the Church, because they suppose the illimitable and impassable Father to be limitable withal and passable through His becoming man: for such are they whom Romans call Patripassians, and we Sabellians. For we acknowledge that the Father who sent, remained in the peculiar state of His unchangeable Godhead, and that Christ who was sent fulfilled the economy of the Incarnation.
- And at the same time those who irreverently say that the Son has been generated not by choice or will, thus encompassing God with a necessity which excludes choice and purpose, so that He begat the Son unwillingly, we account as most irreligious and alien to the Church; in that they have dared to define such things concerning God, beside the common notions concerning Him, nay, beside the purport of divinely inspired Scripture. For we, knowing that God is absolute and sovereign over Himself, have a religious judgment that He generated the Son voluntarily and freely; yet, as we bare a reverent belief in the Son’s words concerning Himself (Prov 8:22), “The Lord created me a beginning of His ways for His works, we do not understand Him to have been originated like the creatures or works which through Him came to be. For it is irreligious and alien to the ecclesiastical faith, to compare the Creator with handy -works created by Him, and to think that He has the same manner of origination with the rest. For divine Scripture teaches us really and truly that the Only-begotten Son was generated sole and solely”. Yet, in saying that the Son is in Himself, and both lives and exists like the Father, we do not on that account separate Him from the Father, imagining place and interval between their union in the way of bodies. For we believe that they are united with each other without mediation or distance, and that they exist inseparable; all the Father embosoming the Son, and all the Son hanging and adhering to the Father, and alone resting on the Father’s breast continually. Believing then in the All-perfect Triad, the most Holy, that is, in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Ghost, and calling the Father God, and the Son God, yet we confess in them, not two Gods, but one dignity of Godhead, and one exact harmony of dominion the Father alone being Head over the whole universe wholly, and over the Son Himself, and the Son subordinated to the Father; but, excepting Him, ruling over all things after Him which through Himself have come to be, and granting the grace of the Holy Ghost an-sparingly to the saints at the Father’s will. For that such is the account of the Divine Monarchy towards Christ, the sacred oracles have delivered to us.
Thus much, in addition to the faith before published in epitome, we have been compelled to draw forth at length, not in any officious display, but to clear away all unjust suspicion concerning our opinions, among those who are ignorant of our affairs: and that all in the West may know, both the audacity of the slanders of the heterodox, and as to the Orientals, their ecclesiastical mind in the Lord, to which the divinely inspired Scriptures bear witness without violence, where men are not perverse.
AD 345년은 반-아리우스 진영에게 다소 힘이 실리는 해가 된다. 우선 서방의 주교들은 밀라노에서 모여 범-아리우스 진영의 다섯번째 신조를 읽고 전의를 다지는데, 마침 아타나시우스를 밀어내고 알렉산드리아 주교를 맡고있던 카파도키아의 그레고리우스가 죽고 아타나시우스가 이듬 해인 AD 346년 알렉산드리아 주교로 복귀하게 된다.
그런데 AD 350년 반-아리우스 진영에 힘을 실어주던 서방 아우구스투스 콘스탄스가 반란군인 마그네티우스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듬해인 AD 351년에는 안키라 주교 바실레이오스의 주도 하에 AD 341년 신조를 증보한 통산 6번째 준-아리우스계 신조가 발표된다.
여기 등장하는 이단들은 물론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에서의 이단들이다. 역시 아리우스의 몇몇 교리를 정죄한다. 비록 이 선언이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을 정리한 것이지만, 여전히 상당히 많은 부분은 원-카톨릭 교회 (로마카톨릭, 정교회, 단성파 꼽트교회, 양성파 네스토리우스교회 분리 전),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신조와 동일하다.따라서 성자 (아울러 성령)의 본질과 성부의 본질 간의 차이를 이들이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이 신조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번역: 최광민)
Sixth Arian Confession aka First Sirmium (Sirmium, 351 AD) 인용 : (Athanasius, De Synodis, 27. LPNF, ser. 2, vol. 4, 464-465)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the Creator and Maker of all things, from whom all fatherhood in heaven and earth is named; And in His Only-begotten Son, our Lord Jesus the Christ, who before all the ages was begotten from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in heaven and on the earth, visible and invisible, being Word and Wisdom and True Light and Life, who in the last of days was made man for us, and was born of the Holy Virgin, and crucified and dead and buried, and rose again from the dead the third day, and was taken up into heaven, and sat down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is coming at the consummation of the age, to judge quick and dead, and to render to every one according to his works; whose Kingdom being unceasing endures unto the infinite ages; for He shall sit on the fight hand of the Father, not only in this age, but also in that which is to come. And in the Holy Ghost, that is, the Paraclete; which, having promised to the Apostles to send forth after His ascension into heaven, to teach and to remind them of all things, He did send; through whom also are sanctified the souls of those who sincerely believe in Him.
- But those who say that the Son was from nothing or from other subsistence and not from God, and that there was time or age when He was not, the Holy and Catholic Church regards as aliens.
- 성자가 무로부터 왔거나, 혹은 그의 본질이 성부로부터가 아닌 다른 데서 왔다고 하거나, 혹은 성자가 존재하지 않던 시점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를,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는 배척한다.
- Again we say, Whosoever says that the Father and the Son are two Gods, be he anathema.
- 성부와 성자가 두 명의 신이라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And whosoever, saying that Christ is God, before ages Son of God, does not confess that He has sub-served the Father for the framing of the universe, be he anathema.
- 성자가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신이며 신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성자가 세상의 창조에 있어 성부와 함께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presumes to say that the Ingenerate, or a part of Him, was born of Mary, be he anathema.
- '태어나지 않은 자 (=즉, 성부)' 혹은 그의 부분이 마리아를 통해 태어났다고 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ays that according to foreknowledge the Son is before Mary and not that, generated from the Father before ages, He was with God, and that through Him all things were originated, be he anathema.
- 성자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1) 태초 이전에 성부로부터 낳아졌고, (2) 신과 함께 있었으며, (3) 그를 통해서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hall pretend that the essence of God is dilated or contracted, be he anathema.
- 누구든 신의 본질이 희석되었거나 감소되었다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hall say that the essence of God being dilated made the Son, or shall name the dilation of His essence Son, be he anathema.
- 누구든 신의 본질이 희석되어 성자가 되었다고 말하거나, 혹은 성부의 본질이 희석된 것을 성자로 부르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calls the Son of God the mental or pronounced Word, be he anathema.
- 누구든 성자를 '정신'이라고 부르거나 '내뱉어진 말씀/로고스'라고 부르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ays that the Son from Mary is man only, be he anathema.
- 누구는 마리아로부터 태어난 성자를 오직 인간이라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peaking of Him who is from Mary God and man, thereby means God the Ingenerate, be he anathema.
- 누구든 마리아로부터 태어난 신이자 인간이신 이를 '태어나지 않은 신 (=성부)'라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hall explain “I God the First and I the Last, and besides Me there is no God,” (Is. 44:6), which is said for the denial of idols and of gods that are not, to the denial of the Only-begotten, before ages God, as Jews do, be he anathema.
- Whosoever hearing “The Word was made flesh,” (John 1:14), shall consider that the Word has changed into flesh, or shall say that He has undergone alteration by taking flesh, be he anathema.
- '말씀/로고스이 육신이 되었다'라는 구절에서, 이를 "말씀이 육체로 변화되었다"라거나, 혹은 "성자가 육체를 입는 과정에서 변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hearing the Only-begotten Son of God to have been crucified, shall say that His Godhead has undergone corruption, or passion. or alteration, or diminution, or destruction, be he anathema.
- “Whosoever shall say that Let Us make man” (Gen 1:26), was not said by the Father to the Son, but by God to Himself, be he anathema.
-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는 구절을, 성부가 성자에게 한 말이 아니라 성부 자신에게 한 말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hall say that Abraham saw, not the Son, but the Ingenerate God or part of Him, be he anathema.
- 아브라함이 본 이가 성자가 아니라 성부이거나 혹은 그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hall say that with Jacob, not the Son as man, but the Ingenerate God or part of Him, has wrestled, be anathema.
- 야곱과 씨름한 이가 성자가 아니라 성부 혹은 그의 부분이라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hall explain, “The Lord rained fire from the Lord” (Gen 24:24), not of the Father and the Son, and says that He rained from Himself, be he anathema. For the Son, being Lord, rained from the Father Who is Lord.
- 누구든 (창세기 24:24에서) "주님이 주님으로부터 불비를 내리셨다"라는 구절을 "성부와 성자"가 아닌 성부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그리한 것으로 설명하려는 자는 파문한다. 주님(=야훼)되시는 성자가 또한 주님(=야훼)되시는 성부로부터 불비를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 Whosoever, hearing that the Father is Lord and the Son Lord and the Father and Son Lord, for there is Lord from Lord, says there are two Gods, be he anathema. For we do not place the Son in the Father’s Order, but as subordinate to the Father; for He did not descend upon Sodom without the Father’s will, nor did He rain from Himself, but from the Lord, that is, the Father authorising it. Nor is He of Himself set down on the fight hand, but He hears the Father saying, “Sit Thou on My right hand” (Psalm 110:1).
- 주님으로부터 나온 주님이 계시기에 성부는 주님이며, 성자도 주님이며, 성부와 성자가 함께 주님이다라는 말을 듣고, 이를 두 신이 있다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자를 성부의 지위에 두지 않으며, 아버지에 종속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성자는 성부가 의지했기에 소돔에 오신 것이며, 불비를 내린 것도 성부의 주관하에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성자는 그 스스로 싸우러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성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신다: "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 Whosoever says that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Ghost are one Person, be he anathema.
- 누구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명이라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peaking of the Holy Ghost as Paraclete, shall mean the Ingenerate God, be he anathema.
- 누구든 성령이 태어나지 않은 성부라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hall deny, what the Lord taught us, that the Paraclete is other than the Son, for He hath said, “And another Paraclete shall the Father send to you, whom I will ask,” (John 14:16) be he anathema.
- Whosoever shall say that the Holy Ghost is part of the Father or of the Soul be he anathema.
- 누구든 성령을 성부의 부분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영의 부분이라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hall say that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Ghost are three Gods, be he anathema.
- 성부, 성자, 성령을 세 신으로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hall say that the Son of God at the will of God has come to be, as one of the works, be he anathema.
- 누구든 성부의 뜻에 의해 성자가 나타나게 된 것을 창조의 작업으로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 Whosoever shall say that the Son has been generated, the Father not wishing it, be he anathema. For not by compulsion, led by physical necessity, did the Father, as He wished not, generate the Son, but He at once willed, and, after generating Him from Himself apart from time and passion, manifested Him.
- 성자가 낳아질때 이를 성부가 뜻한 것이 아닌 (자연적인 필요에 의해 의지와 상관없이)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후략)
- Whosoever shall say that the Son is without beginning and ingenerate, as if speaking of two un-begun and two ingenerate, and making two Gods, be he anathema. For the Son is the Head, namely the beginning of all: and God is the Head, namely the beginning of Christ; for thus to one unbegun beginning of the universe do we religiously refer all things through the Son.
- 누구든 성자가 시작도 없고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자는 파문한다. 이는 두 분의 태어나지 않은 신을 상정하여 두 신을 만드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성자는 머리로서 모든 만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신은 머리로서 그리스도의 머리가 되신다. 따라서 성자를 통해 생겨난 우주에는 단 하나의 기원이 없는 시작이 있을 뿐이다.
And in accurate delineation of the idea of Christianity we say this again;
- Whosoever shall not say that Christ is God, Son of God, as being before ages, and having subserved the Father in the framing of the Universe, but that from the time that He was born of Mary, from thence He was called Christ and Son, and took an origin of being God, be he anathema.
AD 353년 마그네티우스의 반란을 진압한 콘스탄티우스가 전 제국의 단독 아우구스투스/황제로 집권한다. 콘스탄티우스는 범-아리우스 진영을 계속 지지해 왔다. 힘이 실린 범-아리우스 진영은 이 해 가을 아를르에서 열린 주교회의를 통해 아타나시우스를 정죄하고, 이어 열린 AD 355년의 밀라노 회의에서도 재차 정죄한다. 그 결과 AD 356년 2월 8일,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타나시우스는 주교직에서 해임되어 3번째 추방을 당하게 된다. 대신 게오르기오스가 알렉산드리아 주교로 임명된다. 이 게오르기오스는 성자는 모든 면에서 성부과 "같지 않다 / anomoios",란 입장을 천명하여 아리우스의 원래 주장을 복원한 아에티우스의 영향을 받았다. 이듬해인 AD 357년에는 역시 아에티우스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유독시우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되었다.
다음은 AD 357년 시르미움에서는 통산 세번째로 개최된 준-아리우스파에 의해 가결된 일곱번째 범-아리우스 진영의 신조다. 특별히 참석한 서방의 주교들이 범-아리우스 진영과 절충하고자 한 시도가 두드러지며, 그 결과 이 신조에서는 동일본질 (homoousios)와 유사본질 (homoiousios) 두 용어 모두 비성서적으로 간주되어 둘 다 삭제되었고, 성자가 성부에 종속되어 있다는 종속설을 재확인했다.
Seventh Arian Confession aka Second Sirmium (Sirmium, 357 AD). 인용 : (Athanasius, De Synodis, 28. LPNF, ser. 2, vol. 4, 466).
Whereas it seemed good that there should be some discussion concerning faith, all points were carefully investigated and discussed at Sirmium in the presence of Valens, and Ursacius, and Germinius, and the rest. It is held for certain that there is one God, the Father Almighty, as also is preached in all the world. And His One Only-begotten Son, our Lord Jesus Christ, generated from Him before the ages; and that we may not speak of two Gods, since the Lord Himself has said, “I go to My Father and your Father, and My God and your God” (John 20:17). On this account He is God of all, as also the Apostle taught: “Is He God of the Jews only, is He not also of the Gentiles? yea of the Gentiles also: since there is one God who shall justify the circumcision from faith, and the uncircumcision through faith” (Rom 3:29-30); and every thing else agrees, and has no ambiguity.
But since many persons are disturbed by questions concerning what is called in Latin “Substantia,” but in Greek “Usia,” that is, to make it understood more exactly, as to “Coessential,” or what is called, “Like- in-Essence,” there ought to be no mention of any of these at all, nor exposition of them in the Church, for this reason and for this consideration, that in divine Scripture nothing is written about them, and that they are above men’s knowledge and above men’s understanding; and because no one can declare the Son’s generation, as it is written, “Who shall declare His generation? for it is plain that the Father only knows how He generated the Son, and again the Son how He has been generated by the Father.
라틴어로 '수브스탄티아 / 본체 / 존재', 그리스어로는 '우시아 / 존재 / 본질'란 단어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동일일본질'나 '유사본질' 같은 용어 역시 교회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전혀 언급하거나 표현되어서는 않될 것이다. 이런 용어들은 성서에 전혀 언급되어 이지 않으며, 또 인간의 지식과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 / 번역: 최광민
And to none can it be a question that the Father is greater for no one can doubt that the Father is greater in honour and dignity and Godhead, and in the very name of Father, the Son Himself testifying, The Father that sent Me is greater than I” (John 10:29, Ib. 14:28).
And no one is ignorant, that it is Catholic doctrine, that there are two Persons of Father and Son, and that the Father is greater, and the Son subordinated to the Father together with all things which the Father has subordinated to Him, and that the Father has no beginning, and is invisible, and immortal, and impassibly; but that the Son has been generated from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and that His origin, as aforesaid, no one knows, but the Father only.
성부와 성자란 두 위/신격이 있으며, 성부가 (성자보다) 더 위대하며, 성자는 성부가 자신에게 종속시킨 만물들과 함께 성부에게 종속되어 있음과, 성부에게는 시원이 없고 불가지적이며 불멸하며 무변하는 존재임을 믿는 것과, 성자는 성부로부터 유해했으며, 신으로부터 오신 신이자, 빛으로부터 오신 빛이란 것과,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성자의 기원은 알 수 없고, 오직 성부만이 아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보편적 신조임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한다. / 번역: 최광민
And that the Son Himself and our Lord and God, took flesh, that is, a body, that is, man, from Mary the Virgin, as the Angel preached beforehand; and as all the Scriptures teach, and especially the Apostle himself, the doctor of the Gentiles, Christ took man of Mary the Virgin, through which He has suffered. And the whole faith is summed up, and secured in this, that a Trinity should ever be preserved, as we read in the Gospel, “Go ye and baptize all the nations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 (Matt. xxviii. 19). And entire and perfect is the number of the Trinity; but the Paraclete, the Holy Ghost, sent forth through the Son, came according to the promise, that He might teach and sanctify the Apostles and all believers.
AD 358년에는 안키라 주교 바실레이오스의 주재 하에 성명서가 발표되는데, 이 성명서는 다시 "유사본질 / homoiousios"란 단어를 사용해서 성부-성자의 관계를 정의하고자 했고, 그런 이유로 그와 같은 노선에 있는 주교들은 준-아리우스파로 불린다.
AD 359년, 시르미움에서 통산 네번째, 전체로는 8번째 범-아리우스파 신조가 작성된다. 이 회의는 까다로운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기 보다는, 양 측의 입장을 최대한 조화시키는데 목표를 두었다.
같은 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들인 콘스탄티우스는 니케아 회의가 촉발시킨 논쟁을 종결하고자 통일된 신조를 만들기 위해 두 주교회의를 소집시킨다. 하나는 아리미눔 (리미니)의 주교회의로 400여 명의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방에서 열렸다. 두번째 회합인 셀류키아 회의는 160명의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동방에서 열렸다.
이 회합에서 작성된 통산 9번째 범-아리우스계, 특별히 준-아리우스계 신조는 성자를 성부와 "유사한 존재"로 정의하여 "본질"에 대한 논쟁을 피하면서 "동일본질"을 선언한 니케아 신조를 우회했고, 동시에 성부-성자간 완전한 "이질본질"을 주장하며 부활한 원조-아리우스파 (Anomoeans)를 동시에 비난했다. 이 신조는 성부와 성자가 어떻게 유사한가는 설명하지 않았다.
Eighth Arian Confession aka Fourth Sirmium (Sirmium, 22nd May 359 AD). 인용 : Athan. Hist. Arian. 35–41; Epistles of Liberius, M. P. L. 8; Hil. Fragm. iv.–vi.; Theodoret, H. E. ii. 17; Ruf. i. 22; Philost. iv. 3; Soc. ii. 37; Sulp. Sev. H. S. ii. 39.
Ninth Arian Confession (Seleucia, 359 AD) 인용 : (Athanasius, De Synodis, 29. LPNF, ser. 2, vol. 4, 466).
We decline not to bring forward the authentic faith published at the Dedication at Antioch ; though certainly our fathers at the time met together for a particular subject under investigation. But since “Coessential” and “Like-in-essence,” have troubled many persons in times past and up to this day, and since moreover some are said recently to have devised the Son’s “Unlikeness” to the Father, on their account we reject “Coessential” and “Like-in-essence,” as alien to the Scriptures, but “Unlike” we anathematise, and account all who profess it as aliens from the Church. And we distinctly confess the “Likeness” of the Son to the Father, according to the Apostle, who says of the Son, “Who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 Col 1:15).
우리는 안티오키아에서 있었던 봉헌식에서 발표된 신조를 공식신조로 내세우길 거부한다. 비록 우리 교부들이 그 당시에 조사 중이던 특정 주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가진 것은 사실이더라도 말이다. "동일본질"이나 "유사본질"이란 용어가 과거 뿐 아니라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문제를 일으켜왔고, 더 나아가 요새는 성자가 성부와 (본질상) "다르다"고도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서가 언급하고 있지않는 "동일본질"이나 "유사본질" 같은 용어를 거부하며, 성자의 "이질본질"이란 입장은 정죄/파문하고 이를 주장을 펼치는 자들은 교회에서 거부한다. 우리는 성자가 "보이지 않는 신의 형상 (골로새서 1:15)"이라고 말한 사도 (=바울 / 필자 주)의 말에 따라, 성자가 성부와 "유사하다"고 분명히 고백한다. / 번역: 최광민
And we confess and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we believe also in our Lord Jesus Christ, His Son, generated from Him impassibly before all the ages, God the Word, God from God, Only- begotten, light, life, truth, wisdom, power, through whom all things were made,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whether visible or invisible. He, as we believe, at the end of the world, for the abolishment of sin, took flesh of the Holy Virgin, and was made man, and suffered for our sins, and rose again, and was taken up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is coming again in glory, to judge quick and dead. We believe also in the Holy Ghost, which our Saviour and Lord named Paraclete, having promised to send Him to the disciples after His own departure, as He did send; through whom He sanctifieth those in the Church who believe, a범nd are baptized in the Name of Father and Son and Holy Ghost. But those who preach aught beside this faith the Catholic Church regards as aliens. And that to this faith that is equivalent which was published lately at Sirmium, under sanction of his religiousness the Emperor, is plain to all who read it.
AD 360년, 아리미눔과 셀레우키아에서 발표된 신조를 검토하기 위해 1월에 주교회의가 다시 열려 통산 10번째 범-아리우스계 신조가 발표된다. 아래의 10번째 신조 역시 준-아리우스파의 관점인 '성부와 성자 간의 유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동일"본질"이든, 유사"본질"이든, 이질"본질"이든, "본질"이란 용어 자체가 성서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폐기하고, 그저 성부는 성자와 "유사"하다고만 말하자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들의 입장에 따르자면, 성자의 본질이 성부와 "같다"고도 말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그 본질이 어디선가는 왔어야 하기 때문에 성자의 기원을 오직 성부 만이 아는 신비로 간주하게 된다.
Tenth Arian Confession (Nike, 359 AD; Constantinople, 360 AD).
We believe in One God, Father Almighty, from whom are all things; And in the Only-begotten Son of God, begotten from God before all ages and before every beginning,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visible and invisible, and begotten as only-begotten, only from the Father only, God from God, like to the Father that begat Him according to the Scriptures; whose origin no one knows, except the Father alone who begat Him.
우리는 한 분의 신, 전능하신 성부이자 모든 만물의 기원이신 분을 믿는다. 그리고 또한 이 세상 이전에, 태초 이전에 신이 낳으신 유일한 독생자이시자, 보이는 것과보이지 않는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오직 성부로부터만 유일하게 낳아지셨고, 신으로부터 오신 신이자, 성서에 따라 그를 낳으신 성부와 닮은 분 (=성자)을 믿는다. 그의 기원은 아무도 모르며, 다만 그를 낳으신 성부만 아실 뿐이다. / 번역: 최광민
He as we acknowledge, the Only-begotten Son of God, the Father sending Him, came hither from the heavens, as it is written, for the undoing of sin and death, and was born of the Holy Ghost, of Mary the Virgin according to the flesh, as it is written, and convened with the disciples, and having fulfilled the whole Economy according to the Father’s will, was crucified and dead and buried and descended to the parts below the earth; at whom Hades itself shuddered: who also rose from the dead on the third day, and abode with the disciples, and, forty days being fulfilled, was taken up into the heavens,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to come in the last day of the resurrection in the Father’s glory, that He may render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works. And in the Holy Ghost, whom the Only-begotten Son of God Himself, Christ, our Lord and God, promised to send to the race of man, as Paraclete, as it is written, “the Spirit of truth” (Joh. xvi. 13), which He sent unto them when He had ascended into the heavens.
But the name of “Essence,” which was set down by the Fathers in simplicity, and, being unknown by the people, caused offence, because the Scriptures contain it not, it has seemed good to abolish, and for the future to make no mention of it at all; since the divine Scriptures have made no mention of the Essence of Father and Son. For neither ought Subsistence to be named concerning Father, Son, and Holy Ghost But, we say that the Son is Like the Father, as the divine Scriptures say and teach; and all the heresies, both those which have been afore condemned already, and whatever are of modern date, being contrary to this published statement, be they anathema.
그러나 교부들에 의해 간략히 정의된 이 "본질"이란 말은 사람들에겐 생소한 것이었고 또한 문제를 야기시켜 왔는데, 이는 성서에 그 용어가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용어를 폐기하는 것이 나아 보이며, 앞으로도 그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성서에는 성부와 성자의 "본질"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존재/본질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불려서는 않될 것이므로, 우리는 성서가 말하고 가르치는 대로 성자가 성부와 "유사"하다고만 말할 것이다. 이전에 이미 정죄된 모든 이단들과 마찬가지로 이 공식적인 선언에 반하는 현재의 모든 이단들은 파문될 것이다. / 번역: 최광민
같은 해, 준-아리우스파를 지원해 오던 콘스탄티우스가 패전하고, 갈리아 주둔 군단은 콘스탄티우스를 버리고 사촌인 율리아누스를 아우구스투스로 옹립한다. 기독교를 버리고 다시 이교로 돌아간 철학자 율리아누스는, 기독교를 밀어내고 전통종교를 부흥시킬 목표로 동일본질파, 유사본질파, 이질본질파를 비롯해 모든 기독교 분파를 허용함으로써 기독교를 내부분쟁으로 약화시키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준-아리우스파 진영을 이끌었던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사제로 임명된 후 성서를 고트어로 번역하는 등 명실상부한 고트족의 사도였던 (준-)아리우스파 주교 울필라스의 신조를 보자. 울필라스의 제자이자 양자인 두로스토룸의 옥센티누스가 전하는 그의 신조에서 성자(=예수)는 신이며, (성령이 성자에게 종속되어 있듯)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되어 있다. 울필라스가 생애 마지막까지 이런 형태의 (준-)아리우스주의를 고수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재 전해지는 울필라스의 신조는 AD 5세기 아리우스파 신학자인 막시미누스가 필사한 옥센티우스의 편지다.) 이 신조 자체는 원-카톨릭 교회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이단이다.
I, Ulfila, bishop and confessor, have always so believed, and in this, the one true faith, I make the journey to my Lord; I believe that there is only one God the Father, alone unbegotten and invisible, and in His only-begotten Son, our Lord and God, creator and maker of all things, not having any like unto Him. Therefore there is one God of all, who is also God of our God, And I believe in one Holy Spirit, an enlightening and sanctifying power. As Christ says after the resurrection to his Apostles: "Behold I send the promise of my Father upon you; but tarry ye in the city of Jerusalem until ye be clothed with power from on high." (Luke 24.49) And again: "And ye shall receive power coming upon you by the Holy Spirit." (Acts 1.8) Neither God nor Lord, but the faithful minister of Christ; not equal, but subject and obedient in all things to the Son. And I believe the Son to be subject and obedient in all things to God the Father.
주교이자 (박해받았으나 순교를 피해 살아남은 / 필자 주) 신앙고백자인 나 울필라스는, 항상 다음과 같은 유일한 참 신앙을 믿어왔고, 이제 나의 주님께로 간다: 나는 오직 한 분의 성부, 곧 태어나지 않으시고 보이지 않으시는 신을 믿으며, 어느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그의 독생자이자 우리의 주님이자 신이자 만물의 창조자이자 조성자이신 분을 믿는다. 그래서 성부가 모든 것 가운데 유일한 분이며, 그 이가 또한 우리의 신이시다. 나는 우리를 일깨우고 거룩하게 하는 능력인 한 성령을 믿는다....[중략]....(성령은) 신(=성부)도 주님(=성자)도 아니며, 그리스도의 충실한 사역자이다. 그리스도와 동일하지 않으며 모든 면에서 성자에게 종속되어 있고 또 복종한다. 또한 나는 성자가 모든 면에서 성부에게 종속되어있고 또 복종한다고 믿는다... / 번역: 최광민
자, 그럼 아리우스의 본인의 설명, 혹은 그의 추종자들이 남긴 신조들 도대체 어디에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는 주장이 암시라도 되어 있다는 말일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최종적으로는 아리우스주의자이자 앞서 인용한 편지의 수신자였던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임종 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콘스탄티누스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회의가 마친지 5년을 넘긴 시점인 AD 330년 경에 들어서면서 범-아리우스파의 좌장 격이었던 니코메디아 주교 유세비우스를 콘스탄티노플로 불러 이단판정을 받았던 아리우스를 사면하려고 하고 있었고 실제로 사면령을 내렸다. 유세비우스를 자문으로 두었던 그와 파우스타 사이의 아들인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아예 준-아리우스파 신도였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가 한 AD 380년 무렵의 설교는 로마제국을 니케아 신조에 따른 동일본질파 (즉, 원-카톨릭)으로 강제로 국교화하게되는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절까지 제국의 수도에서 아리우스파가 얼마나 막강한 세력을 과시했는지를 전해주는 대표적인 일화로 꼽힌다. 그는 제국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심지어 저자거리의 상인들조차 성자가 무에서 만들어졌고 (ex nihilo) 따라서 성자는 성부보다 열등하다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일상적으로 말하고들 있다며 비꼬면서 말한다.
If in this city you ask a shopkeeper for change, he will argue with you whether the Son was begotten or unbegotten; if you inquire about the quality of the bread, the baker will answer 'the Father is greater, the Son is less.' And if you ask the attendant to draw you a hot bath, he will tell you the Son was created out of nothing."
당신이 물건을 바꾸러 콘스탄티노플의 한 상점에 찾으면, 상점주인은 "성자가 태어난 존재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쟁하려 들 것이다. 빵의 품질에 대해 물으려 할때도, 빵집주인은 "성부는 성자보다 위대하고, 성자는 성부보다 열등하오!"라고 답할 것이다. 목욕탕 보조원에게 탕에 온수 좀 넣어달라고 부탁하면, 그는 "성자는 무로부터 창조되었소!"라고 답할 것이다. ---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 번역: 최광민
삼위일체에서의 성령의 지위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 준-아리우스파의 입장에 대해 닛사 주교 그레고리오스는 성령에 대한 설교 31.5에서 동일본질설을 정리한 니케아 회의에 따른 정통파의 입장에서 이단으로 간주되는 설명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성령은 신이다"란 표현 자체는 성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포함하는 삼위일체의 최종적 정의를 놓고 니케아 회의 이후 거의 2세대 동안 혼란스러웠던 상황에 대해 닛사 주교 그레고리오스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V. Or rather, let me reason with you about Him from a somewhat earlier point, for we have already discussed the Trinity. The Sadducees altogether denied the existence of the Holy Spirit, just as they did that of Angels and the Resurrection; rejecting, I know not upon what ground, the important testimonies concerning Him in the Old Testament. And of the Greeks those who are more inclined to speak of God, and who approach nearest to us, have formed some conception of Him, as it seems to me, though they have differed as to His Name, and have addressed Him as the Mind of the World, or the External Mind, and the like. But of the wise men amongst ourselves, some have conceived of him as an Activity, some as a Creature, some as God; and some have been uncertain which to call Him, out of reverence for Scripture, they say, as though it did not make the matter clear either way. And therefore they neither worship Him nor treat Him with dishonour, but take up a neutral position, or rather a very miserable one, with respect to Him. And of those who consider Him to be God, some are orthodox in mind only, while others venture to be so with the lips also. And I have heard of some who are even more clever, and measure Deity; and these agree with us that there are Three Conceptions; but they have separated these from one another so completely as to make one of them infinite both in essence and power, and the second in power but not in essence, and the third circumscribed in both; thus imitating in another way those who call them the Creator, the Co-operator, and the Minister, and consider that the same order and dignity which belongs to these names is also a sequence in the facts. --- Gregory of Nyssa, {The Fifth Theological Oration. On the Holy Spirit}, Oration #31.
...우리가 이미 삼위일체에 대해서 논했기 때문에, 이전의 논점을 통해 그 분(성령 / 필자 주)에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사두개파들은 성령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하는데, 그 뿐 아니라 그들은 또한 천사나 부활에 대해서도 부정하면서 구약성서에서 그 분에 대한 근거나 중요한 증언을 본 적 없다며 말한다. 그들보다는 보다 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래서 우리 (기독교도)에게 보다 근접한 그리스인들의 경우, 내가 보기엔 그들이 그(=성령)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긴 했지만 그에 관한 모종의 개념을 생각해 내기는 했고, 성령을 '세계혼'이나 혹은 '영원한 정신' 등으로 불렀다. 우리 (=기독교 계열, 이질본질파 (원조 아리우스), 유사본질파 (준-아리우스파), 동일본질파 (니케아, 정통파) / 필자 주) 측의 학식있는 사람들의 경우, 혹자는 그를 (신의 / 필자 주) '활동력'이라고 생각하고, 혹자는 피조물이라고 생각하고, 혹자는 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성서에 바탕할 때 성령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어느 쪽 설명으로도 이 문제가 분명하지 않다고 말하며, 따라서 성령을 경배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으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혹은 그에 대해 난처해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성령을 신으로 간주하는 이들 가운데서 일부는 생각만 정통이지만, 또 어떤 이들은 입술로도 담대히 그렇게 주장한다. 나는 신성의 경중을 재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비록 그들이 세 개념 (성부, 성자, 성령)이 있다는 점에서는 우리에게 동의하지만, 그들은 이 셋을 서로 분리하여 그 중 한 분은 (= 성부)는 그 본질과 권능에 있어서 무한하다고 보고, 두번째 분(=성자)은 본질이 아닌 권능에 있어서만, 그리고 세번째 분(=성령)은 (본질과 권능) 둘 다 제한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 셋을 모두 창조주, 동역자, (우주의) 관리자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을 흉내내기는 하지만, 실재에 있어 그들의 위계와 위엄은 이 순서를 따른다고 여긴다..... --- 닛사 주교 그레고리오스, {성령에 관하여} 강론 #31 / 번역: 최광민
이들 카파도키아 3총사가 활동하던 AD300년대 중/후반 시절은, 성부와 성자를 완전히 분리시키고, 또 성령을 성부와 성자의 조수 정도로 격하시키던 경향을 가진 원조 아리우스파의 세가 한풀 꺾이던 중이자, 성부-성자-성령의 신적지위를 인정하되 셋 간의 위계적/위엄적 지위를 그 순서대로 간주하던 준-아리우스파가 보다 동일본질파 쪽으로 동화되던 시기였다.
그레고리오스의 친구이기도 했던 카이사리아 주교 바실레이오스는 AD 375년 경 이들을 겨냥하여 삼위의 동등을 분명히 강조한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한 {성령에 대하여}를 발표한다. 당시 그는 공공예배에서 영광송 (Doxology)을 부르면서 "성부께 영광을, (영광을 / 필자 주) 성자와 함께 (with), 또 성령과 함께 (with)"란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원래의 전통적인 표현은 "성부께 영광을, 성자를 통해 (through), 성령 안에서 (in)"였다.
이 전통적 용어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바실레이오스는 그 당시 준-아리우스파 주교 마케도니오스의 교리를 주장하던 한 일파인 (폄칭) 프뉴마토마코이 (=성령의 대적자)들이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고, 성령을 성자의 피조물이자 성부/성자의 사환으로 간주하던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들은 그리스 철학,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 따라 삼위의 세 존재를 확실히 구별하면서, 이를 "문법적"으로도 정당화 했는데, 가령, "~로부터 from"은 성부에게, "~를 통해 through"는 성자에게, "~안에"는 성령에게 적용되는데, 이는 이 단어들이 각 존재의 속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즉, 성부는 "기원", 성자는 "활동", 성령은 성자의 활동이 이뤄지는 "시간과 장소"에 대응된다고 본 것이다. 이 셋의 속성이 다르므로, 단어 또한 달리 써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의 핵심이었다.
바실레이오스는 이들의 수사학적이고 철학적 설명이 이교적이며, 또한 "성령과 함께"와 "성령 안에서"는 교회의 전통과 성서에서 모두 존재하며, 다만 전자는 "삼위 간"의 관계를, 후자는 "성령과 인간" 간의 관계란 문맥에서 모두 가능하다고 변호했다.
바실레이오스의 {성령에 대하여}에서 인용한다.
Truth is always a quarry hard to hunt, and therefore we must look everywhere for its tracks
The superior remoteness of the Father is really inconceivable, in that thought and intelligence are wholly impotent to go beyond the generation of the Lord; and St. John has admirably confined the conception within circumscribed boundaries by two words,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For thought cannot travel outside “was,” nor imagination beyond “beginning.” Let your thought travel ever so far backward, you cannot get beyond the “was,” and however you may strain and strive to see what is beyond the Son, you will find it impossible to get further than the “beginning.” True religion, therefore, thus teaches us to think of the Son together with the Father.
We must not, however, regard the economy through the Son as a compulsory and subordinate ministration resulting from the low estate of a slave, but rather the voluntary solicitude working effectually for His own creation in goodness and in pity,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the Father.
When then He says, “I have not spoken of myself,” and again, “As the Father said unto me, so I speak,”6 and “The word which ye hear is not mine, but [the Father’s] which sent me,” and in another place, “As the Father gave me commandment, even so I do,”8 it is not because He lacks deliberate purpose or power of initiation, nor yet because He has to wait for the preconcerted key-note, that he employs language of this kind. His object is to make it plain that His own will is connected in indissoluble union with the Father. Do not then let us understand by what is called a “commandment” a peremptory mandate delivered by organs of speech, and giving orders to the Son, as to a subordinate, concerning what He ought to do. Let us rather, in a sense befitting the Godhead, perceive a transmission of will, like the reflexion of an object in a mirror, passing without note of time from Father to Son
Its proper and peculiar title is “Holy Spirit;” which is a name specially appropriate to everything that is incorporeal, purely immaterial, and indivisible.
Just as when a sunbeam falls on bright and transparent bodies, they themselves become brilliant too, and shed forth a fresh brightness from themselves, so souls wherein the Spirit dwells, illuminated by the Spirit, themselves become spiritual, and send forth their grace to others. Hence comes foreknowledge of the future, understanding of mysteries, apprehension of what is hidden, distribution of good gifts, the heavenly citizenship, a place in the chorus of angels, joy without end, abiding in God, the being made like to God, and, highest of all, the being made God.
For if our Lord, when enjoining the baptism of salvation, charged His disciples to baptize all nations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 not disdaining fellowship with Him, and these men allege that we must not rank Him with the Father and the Son, is it not clear that they openly withstand the commandment of God? But the greatest proof of the conjunction of the Spirit with the Father and the Son is that He is said to have the same relation to God which the spirit in us has to each of us. “For what man” it is said, “knoweth the things of a man, save the spirit of man which is in him? even so the things of God knoweth no man but the Spirit of God.” (1 Cor 2:11). --- Basil the Great, {On Holy Spirit}
우리 주님이 구원을 위한 세례를 가르치시며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실때, 그 (성령)과의 관계를 간과하지 않으셨고, 그들도 우리가 성령을 성부와 성자에 따라 서열을 세우지 말아야 함을 보였다면, 그들이 신의 계명을 공개적으로 지켰다는 점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맺는 관계에 대한 가장 큰 증거는 성령과 신의 관계는 우리의 영과 우리의 관계과 같은 것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사람 속의 일을 그 영 이외에 누가 알겠는가? 신의 일도 신의 영 이외엔 누구도 모르는 법이다"라고 기록되었으니 말이다. (코린트 1서 2:11) ---- 카이사리아 마자카 주교 바실레이오스, {성령에 대하여} / 번역: 최광민
신약성서의 기록과 초기교부들의 모든 기록에 따르면, 성부에 대한 지식은 피조세계에 감추어져 있고, 성부를 알고 성부를 피조세계에 알리는 것은 성자이며, 또한 그를 통해서만 성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바울이 코린트의 기독교도들에게 보낸 첫번째 편지에 따르면 바울은 (마치 한 인간 개인의 영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듯) 성령 역시 성부의 경륜까지 살피고 그 생각을 헤아린다고 적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을 받은 기독교도들은 또한 그리스도의 마음 (νοῦν χριστοῦ) 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성부의 뜻을 이제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피조된 세계를 초월하는 존재를 이해하려면 성자와 성령 또한 피조된 세계를 초월한 존재들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는 무엇이겠는가?
9 ἀλλὰ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ἃ ὀφθαλμὸς οὐκ εἶδεν καὶ οὗς οὐκ ἤκουσεν καὶ ἐπὶ καρδίαν ἀνθρώπου οὐκ ἀνέβη, ἃ ἡτοίμασεν ὁ θεὸς τοῖς ἀγαπῶσιν αὐτόν. 10 ἡμῖν δὲ ἀπεκάλυψεν ὁ θεὸς διὰ τοῦ πνεύματος· τὸ γὰρ πνεῦμα πάντα ἐραυνᾷ, καὶ τὰ βάθη τοῦ θεοῦ. 11 τίς γὰρ οἶδεν ἀνθρώπων τὰ τοῦ ἀνθρώπου εἰ μὴ τὸ πνεῦμα τοῦ ἀνθρώπου τὸ ἐν αὐτῶ; οὕτως καὶ τὰ τοῦ θεοῦ οὐδεὶς ἔγνωκεν εἰ μὴ τὸ πνεῦμα τοῦ θεοῦ. 12 ἡμεῖς δὲ οὐ τὸ πνεῦμα τοῦ κόσμου ἐλάβομεν ἀλλὰ τὸ πνεῦμα τὸ ἐκ τοῦ θεοῦ, ἵνα εἰδῶμεν τὰ ὑπὸ τοῦ θεοῦ χαρισθέντα ἡμῖν· 13 ἃ καὶ λαλοῦμεν οὐκ ἐν διδακτοῖς ἀνθρωπίνης σοφίας λόγοις ἀλλ᾽ ἐν διδακτοῖς πνεύματος, πνευματικοῖς πνευματικὰ συγκρίνοντες. 14 ψυχικὸς δὲ ἄνθρωπος οὐ δέχεται τὰ τοῦ πνεύματος τοῦ θεοῦ, μωρία γὰρ αὐτῶ ἐστιν, καὶ οὐ δύναται γνῶναι, ὅτι πνευματικῶς ἀνακρίνεται·15 ὁ δὲ πνευματικὸς ἀνακρίνει [τὰ] πάντα, αὐτὸς δὲ ὑπ᾽ οὐδενὸς ἀνακρίνεται.16 τίς γὰρ ἔγνω νοῦν κυρίου, ὃς συμβιβάσει αὐτόν; ἡμεῖς δὲ νοῦν χριστοῦ ἔχομεν. -- 그리스어
9 Sed sicut scriptum est: Quod oculus non vidit, nec auris audivit, nec in cor hominis ascendit, quæ præparavit Deus iis qui diligunt illum: 10 nobis autem revelavit Deus per Spiritum suum: Spiritus enim omnia scrutatur, etiam profunda Dei.11 Quis enim hominum scit quæ sunt hominis, nisi spiritus hominis, qui in ipso est? ita et quæ Dei sunt, nemo cognovit, nisi Spiritus Dei. 12 Nos autem non spiritum hujus mundi accepimus, sed Spiritum qui ex Deo est, ut sciamus quæ a Deo donata sunt nobis: 13 quæ et loquimur non in doctis humanæ sapientiæ verbis, sed in doctrina Spiritus, spiritualibus spiritualia comparantes. 14 Animalis autem homo non percipit ea quæ sunt Spiritus Dei: stultitia enim est illi, et non potest intelligere: quia spiritualiter examinatur.15 Spiritualis autem judicat omnia: et ipse a nemine judicatur. 16 Quis enim cognovit sensum Domini, qui instruat eum? nos autem sensum Christi habemus. --- 라틴어 불가타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분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한국어 새번역 {고린도전서} 2:9-16
이들 카파도키아 교부 3인이 정교히 정의한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이 보강된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AD 381년의 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서 AD 325 년 니케아 공회의의 신조를 증보해 발표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 강력히 반영되어 이후 기독교의 정통신조로 고정되었다.
§ 맺음말
로마카톨릭계 평화방송이 3월 14일에 박홍 신부와 가졌다는 인터뷰에 보면 이런 말도 나온다.
진행자 : 그럼 예수를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한 아리우스를 이단자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입니까?
박홍 신부 : ....근데 아리우스, 3세기 또 4세기 이 사람들은, 이 파들은 예수님이 인간이다 말이지. 하느님이 아니다.....
이것을 두고 '바보들의 합창'이라고나 해야할까? 잘못 '인용'된 주장을 의심없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인 후에, 또 그걸 바탕으로 도올, 한기총, 박홍, 댓글장이들이 인터넷에서 서로 설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라니. 그냥 원전 한 번 읽어보면 '단 한 문장'으로 가라앉을 문제를 두고 왜들 저러시는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도올이 "예수는 그저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그 아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을 우회적으로 지지한 준-아리우스파 주교들의 AD 351년 신조를 옮긴다.
"....Whosoever says that the Son from Mary is man only, be he anathema
누구든 마리아의 아들이 오직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파문에 처한다..." --- AD 351년 제 6차 범-아리우스파 신조 / 번역: 최광민
결론을 다시 정리하자면, 성부-성자-성령의 '본질이 동일하다 ὁμοούσιος / homoousios '라고 한 동일본질파나,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다르다 ετερούσιος / heteroousios" 혹은 "본질이 유사하지 않다 ἄνὅμοιος / anomoios"고 주장한 아리우스 및 원조 아리우스파나,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유사하다 ὁμοιούσιος / homoiousios"고 주장한 준-아리우스파나, 혹은 성부와 성자가 그저 "유사하다 ὅμοιος / homoios"고 말한 절충파 준-아리우스파 모두, 단 한번도 예수를 "그저 인간"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예수/성자의 기원과 "본질"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들 범-아리우스파들에게조차 이미 예수/성자는 "성부와 함께" 태초 "이전"에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였기 때문이며, 바로 그 성자 '본인'이 인간 예수로 성육신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창조주로서의 이 성자 본인이 인간 예수로 성육신한 것이 아니라, 인간 예수의 인간적 정신이 유지된 상태에서 성자가 다만 인간 예수 위에 로고스와 정신으로만 강림한 것으로 믿는다면, 그것은 동일본질파 뿐 아니라 범-아리우스파 역시 이단으로 간주했던 AD 3세기 중반의 안티오키아 (파문)주교 사모사타의 파울로스가 주장한 잘 알려진 이단설이 된다. 이 경우라야 예수는 (비록 신적 로고스와 연합했다하더라도) 온전한 인간의 몸과 정신을 가진 '그저 인간일 뿐'이 되는 것이다.
다만, 범-아리우스파가 이해하기론 예수/성자는 천사와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과는 "전혀" 다르고, 성부와는 "매우 흡사한" 정체가 모호한 "그 어떤" 존재였던 것이다. 예수/성자의 "본질"이 성부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고 가정할 경우, 그들은 예수/성자의 본질을 설명할 방법이 도무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소위 '아리우스 논쟁'의 핵심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