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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10: 종교개혁 측의 "오직 성서 (솔라 스크립투라)"와 "오직 믿음 (솔라 피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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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19-11-13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로마카톨릭 (+ 정교회) vs. 프로테스탄트 #05: 포럼 (xo8gh8, qorcks200) 질문들에 대한 답변

목차

종교개혁 측의 "오직 성서 (솔라 스크립투라)"와 "오직 믿음 (솔라 피데)"에 대해

  1.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서번역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내용은 사실인가?
  2. 외경문서를 정경에서 제외한 마르틴 루터의 결정은 잘못인가?
  3. 칭의교리에 관한 정교회, 오리엔탈정교회, 앗시리아동방교회의 견해는?
  4. 1-2세기 기독교도들의 칭의관은 무엇이었을까?
  5. 서유럽 중세시대 일반 민중들의 모국어 문자 문해율은?
  6. 로마카톨릭교회는 일반인의 성서독서를 금지했는가?
  7. 민중들의 문해율이 낮았다면, 왜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은 라틴어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하려고 한 것인가?
  8. 툴루즈 주교회의의 포고령 이외에 일반인의 성서독서를 금하는 로마카톨릭 측의 포고령이 있는가?
  9. 루터 이전의 독일어 번역이 있었다면, 왜 루터의 비텐베르트 성서의 파급력은 그렇게 컸던 것인가?
  10. 1-3세기 기독교도들은 성서를 어떻게 보유했으며, 그들의 예배형식은 어떤 것이었나?
  11. 중세 로마카톨릭 교회에서는 라틴어 미사 후 모국어로 그 내용을 설명해 주었나?
  12. 전통주의카톨릭 신자의 글에 대한 논평
  13. 정교회의 성서해석권은 어떤 것인가? 교회는 언제부터 성서해석을 독점했는가?
  14. 로마카톨릭의 성서독서
  15. 성서무오, 축자영감, 유기적 영감설?
  16. 원죄는 연좌죄인가?


Ferdinand Pauwels - {95개조}를 게시하는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의 "오직 성서 (솔라 스크립투라)" 및 "오직 믿음 (솔라 피데)"에 대해

[질문] 중세 시대에 일반 민중들의 자기나라 모국어 문자에 대한 문해율이 어느정도였는지가 궁금합니다.

[답변]

정확한 자료가 있을지나 모르겠지만 극히 낮지 않을까요? 서로마제국 황제로 대관한 프랑크족 카롤루스/샤를마뉴 자체가 이미 문맹이었는데요. 

비교적 문명화된 시기 로마시대 도시 인구 중에서 최대 2%만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을 (바트 어만이던가?) 책에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알파벳을 더듬거리고 읽는 수준으로만 본다면 그보다는 더 높았을거라 봅니다. (보통 읽기가 쓰기보다 훨씬 쉽습니다).

 / 최광민


[질문] 중세 가톨릭교회는 일반 민중의 성서구독을 금지했나요? 어느 가톨릭 신자의 말에 따르면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내놓기 이전에 이미 1466년에 스트라스부르의 요한 멘델에 의해 독일어 성경이 번역되었고, 존 위클리프 이전에도 8세기에 애드헬름과 구틀락, 에그버트가 영어 번역 성경을 내놓았고 1150년에 오름이 쉽게 풀이한 번역 성경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는 성경 번역을 금지하지도 않았으며, 애당초 당시는 인쇄술이 없었기에 성경을 모두에게 공급할수도 없었고 문맹률도 굉장히 높았기에 사제가 읽어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일반인의 성서독서를 금하"는 로마카톨릭교회의 포교령은 대표적인 것으로는 1231년 툴루즈 회의와 1234년 타라고나 회의의 포고령에서 보듯 실제로 있습니다만, 그 의도는 각 시대상황에 대한 여러가지 문맥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교회가 "교리해석을 독점"하기 위한 조치인 경우로 보시면 대략 정확합니다. 즉, 허가받지 않은 일반신자는 읽고 듣고 묵상할 수는 있어도 직접 그 교리적 뜻을 해석하면 안되는 것이죠.

당시 일반인들에게 설교 등을 통해 노출되는 성서 텍스트는 사실 묵상집 수준의 아주 극히 적은 분량 뿐이었습니다. 사실 중세 때는, 특별히 흑사병 유행 이후엔 사제들도 문맹률이 높아서 미사경문 정도를 ("미사를 부른다"란 표현처럼) 라틴어로 외워서 끝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성서를 일반인들이 읽어 발생하는 "이단발호"의 문제가 도저히 감당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중세 말 이원론적인 통칭 카타리파 이단 등이 일반신자들의 성서독서/연구를 장려합니다).

사실 일반신자들에게 성서의 텍스트가 공개된 후인 종교개혁 이후 "성서 텍스트에 바탕한 이단"들이 급증한 것을 보면, 중세 로마카톨릭의 입장이 아주 수긍못할 것도 없겠죠.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이 "공개 후 교육"이라면 로마카톨릭의 입장은 "봉쇄 및 사전예방"이었다고나 할까요.

/ 최광민




[질문]  중세 당시의 일반 민중들의 문해율이 그렇게 낮았다면 왜 존 위클리프나 피터 발도같은 사람들은 라틴어 성경을 자기나라 모국어로 번역하려 한 건가요? 어차피 라틴어로 쓰든 모국어로 쓰든 일반 민중들이 못 읽는 것은 매한가지 일텐데 말입니다.

[답변]

바울이 {로마서} 10장에 적은 구절을 기억하시나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현대인들은 "읽"는데 익숙하다보니, 고대-중세인들이 주요 지식습득 방식이 "듣"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잊습니다. 중세대학의 수업도 주로 강독을 듣는 것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라틴어를 모르면 성서를 사제가 아무리 라틴어 성서를 읽어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국어로 번역되면, 설령 개인적으로 "읽"지 못해도 공공장소에서 강독될 때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설교에 등장하는 해석이 아니라, 설령 번역되었더라도 "원문"을 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지식인이 아닌 일반 민중에겐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사실 대중설교가 유행한 중세 말 로마카톨릭 사제나 수도사들도 가급적 무학의 민중들에게 자국어로 된 설교 가운데 성서의 구절을 많이 넣으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듣더라도) 직접 성서원문을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 최광민


[질문] Kwangmin님의 답변 중에서 성서 구독을 금지하는 포교령이 있었다고 말하셨는데, 그 포교령이 혹시 툴루즈 주교 회의에서 정해진 성서구독 금지조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툴루즈 주교 회의에서의 성서 구독 금지령은 십자군이 카타리파의 성서를 판별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내려진 조치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인가요? 또 이 툴루즈 주교 회의 말고도 가톨릭이 성서 구독을 금지하는 포교령이 또 내려진 적이 있었나요? 

[답변]

성서읽기에 대한 논점은, 사제가 아닌 이들이 성서텍스트를 "읽었는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그걸 읽고 개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가가 포인트입니다. 가끔 이 주제와 로마카톨릭 측의 변론을 보면, 약간 논점을 이탈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중세에도 일반인들이 (라틴어든 다른 언어든) 성서를 읽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아예 읽는 것도 금지한 조치는 반-카톨릭 이단을 차단하기 위해  "해석"은 물론이고 아예 "읽지조차 못하게 한" 일종의 "이중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던 거죠.

 / 최광민




[질문] 위에서 언급했던 스트라우스의 요한 멘델과 같은 자들이 번역했던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라틴어 외의 독일어 성서가 이미 있었다면 왜 유독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비텐베르크 성서의 파급력은 신성 로마 제국 전역에 퍼질 정도로 파급력이 컸던 것인가요?

[답변]

집과 교회와 대학과 공공장소에서 대중이 읽고, 또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읽혀졌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의 예전 등에서 라틴어 불가타 성서를 대체했기 때문인 것이죠. 중세 중반부터 종교개혁 전까지 서방에서 이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제외하고 또 로마서의 3장 28절의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는 구절에서 믿음의 자리 앞에 "오직"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추가하거나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는 구절에서 "말"과 "능력"의 자리를 서로 뒤바꾸는 등 이 밖에도 1400여 개의 부정확하고 고의적으로 왜곡된 부분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이는 사실인가요?

[답변]

이신칭의 교리를 강력하게 지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고대로부터 저자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문건들인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계시록은 정경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고 루터의 독일어 성경 마지막에 재배치되었습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동방에서는 꽤 늦게 정경으로 인준되었습니다).

번역오류에 대해선, 루터의 독일어 "번역"을 영감받은 "정경"이라고 여기는 프로테스탄트는 없다는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의 독일어 번역본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은 그리스어 {70인역}, 라틴어 {불가타}, 혹은 영어 {킹 제임스 번역}을 "영감받은 정경"으로 생각하는 각각 정교도, (일부) 로마카톨릭, 그리고 KJV-only주의자들의 그것과 다릅니다.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 히브리어 성서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여 마카베오서 등의 외경은 정경 66권과 동등한 가치가 없다고 제외했지만, 후에 이스라엘에서 이 외경의 히브리어 사해문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아는데, 이는 외경들을 제외한 마르틴 루터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뜻하는 것인가요?

[답변]

사해문서에는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과 비슷한 사본도 있지만, 맛소라 사본이 아닌 (외경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과 같은 원전 텍스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유사한 텍스트도 발견되고, 또 "외경"문서 뿐 아니라 "위경"문서도 발견됩니다. 그러니까 사해문서에서 일부 외경이 발견된 사례로 해당 문서의 외/위경의 정경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리한 비약입니다. 그럼 위경들도 정경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가 생기니까요.

사실 외경의 정경성 문제는 루터가 아니라 서기 1세기까지 소급되는 문제로, 유대인으로서는 그리스어 70인역을 잘 알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이나 예루살렘 출신 제사장/역사가 요세푸스가 외경에 대해 침묵하거나 정경성을 부인하고 있고, 기독교 교부로서는 2세기의 오리게네스나 테르툴리아누스가 정경 외 문서 (외경)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라틴어 불가타를 번역하면서 외경이 배제된 히브리 정경을 선호했던 히에로니무스는 외경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외경문서들을 따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놓았습니다. 원래 외경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에서 라틴어로 번역을 하려다가, 이후 생각을 바꿔서 히브리어 (+아람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게 된 것이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불가타} 번역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문에 없는 그리스어 외경을 따로 묶은 것입니다.

언제부터 그리스어 70인역에 이들 외경문서가 합본된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 중입니다.

 / 최광민




[질문] 성서무오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축자영감설이나 유기적 영감설 같은 것들에 대한 견해도 궁금합니다.

[답변]

현재까지 전해지는 길고 짧은 수만 개의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시리아어 및 기타 언어의 사본 가운데 무엇이 원본인지, 혹은 어떤 사본이 원본을 가장 잘 반영하는지 분명히 알 수 없는 한,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성서 텍스트는 이들 사본들 간의 불일치를 나름대로 교정한 "편집사본"입니다. 따라서 사본전승 과정으로만 본다면 이들 사본들 간에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게 아니라 확실히 많은 필사오류와 교정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본전승에서의 오류가 교리에 영향을 준 경우는 미미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본전승상의 오류는 인정하나, 원본의 교리상 통일성은 믿는다" 정도가 제 입장입니다. 다만 성서 텍스트가 오랜 세월을 거쳐 수집된 문서이기 때문에, 단어/문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는 그 원래 의미를 찾기위해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축자영감설이나 유기적 영감설에 대해선, 오직 하나의 "설"로 성서의 모든 책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예언서는 야훼의 지시를 "받아 적었"다고 되어 있는 반면, 3번째 복음서는 저자 (루가/누가)가 예수의 배경에 대해 (그 이전의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고 집필했다고 적었으니까요.

/ 최광민




[질문] 동방 정교회에서는 평신도의 성경 해석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나요? 동방 정교회도 성경 해석 권한은 교회 지도자들만이 가지나요? 또 1~3세기 시대의 기독교인들도 교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도 성경을 자유로이 해석할 수 있었나요?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 해석의 권한을 독점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답변]

정교회는 주교의 권한이 매우 강하며, 교리와 관련된 주제는 각 정교회 별로 총주교 관할 하에 주교회의를 통해 정합니다. 정교회 입장에서 로마카톨릭교회는 각 지역의 독립정교회 총주교 각각과 동등한 형제 "로마"주교가 관할하는 로마교회일 뿐입니다. "교리와 관련된 성서해석"의 최종권위 역시 주교회의가 가집니다.

성서해석을 "교회가 독점"했다는 표현은 좀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원래 보편교회는 1세기 말부터 3세기까지 보편교회가 배제한 다양한 이단들과 정통성을 놓고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누가/ 왜 정통성을 보유했는가"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야 했습니다. 가령, 신성의 파편을 가지고 깨달은 자가 구원에 이르는 "지식/그노시스" 갖는다는 기본개념을 가진 다양한 바실리데스파, 발렌티누스파, 마니교 등의 영지주의 이단들, 기독교에서 구약성서와 유대교적인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자 한 마르시온파,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를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믿던 은사주의자들인 몬타누스파 등은 자신들의 교리를 직간접으로 "성서"에서 끌어왔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7.html

결과적으로 보편교회가 이들의 "이단적 성서해석"과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보편교회가 사도와 주교/감독들을 통해 단절되지 않게 동일한 교리를 이어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레네우스가 "보편교회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한번 읽어보시고요.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2.html

"성서를 읽는다" 혹은 "묵상하는 것" 혹은 성서구절의 일반적 "해석"을 교회가 금지한 것이 아닙니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어보시면, 그는 세례도 받기 전인 세례입문자 신분인데도 이미 복음서나 서신서를 읽으면서 기독교를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3/01/blog-post_20.html

게다가 교회사를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나중에 성인으로 시성된 교부들끼리도 성서구절을 두고 서로 해석이 달라 티격태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보편교회가 주교들의 합의된 직권으로 성서해석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핵심교리와 관련된 논쟁"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입니다.

"교리해석에 대한" 어떤 준거점은 사실 프로테스탄트 제 교단들도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최광민




[질문] 옛 토론방에서 질문해온 로마 가톨릭과 성경 독서의 연장선상 격의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일반 평신도의 성경 독서와 그리고 그 해석에 대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과 주장을 각각 정리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사실 이 문제를 그렇게 딱 둘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일반적인 대전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누구"나 성경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구절"에 합치한다는 것입니다. 퀘이커들은 더 나아가서 인간 개개의 영혼을 비추는 "신의 빛"을 따라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신의 뜻을 직접 이해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로마카톨릭의 입장은 신을 지상에서 대리하는 교회가 교회의 교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전수하기 위해 (종종 "무오한") 해석/감독권을 쥔다는 입장입니다. 사실 로마카톨릭에서도 누군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가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 정말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지 누가 보증하는가? 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공통의 텍스트를 믿는다고 하면서 서로 간에 해석을 달리한다면, 이들은 그 "텍스트"를 믿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텍스트에 대한 특정한 "해석법" 혹은 "독법"을 믿는 것일까요? 성서라는 공통의 텍스트를 두고 현실 속에선 교파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의 잣대를 들고 동일 텍스트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성서를 신앙의 최종권위로 인정하는 프로테스탄트들 역시, 같은 성서를 보면서도 다른 해석을 내립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해석의 지침들이 등장하게 되나요? 로마카톨릭 교회라면 교황청의 표준해석안이 절대적 표준일 것이고, 정교회라면 주교들의 공회의를 포함한 교회의 전통이 강력한 권위로 작용할 것입니다. 적어도 해석의 지침에 있어서는 프로테스탄트들 역시 로마카톨릭보다는 비중이 덜하다 하더라도 다소 간의 교회전통에 따르고 있는데, 가령, 루터교회라면 마르틴 루터, 칼뱅주의 개혁교회라면 장 칼뱅, 감리교회라면 존 웨슬리 등이 될 것입니다. 해석자 개인에 따라 이런 표준적인 지침에서 약간씩 달리 해석할 수는 있더라도, 결국은 어떤 해석의 틀에 준거점을 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듯 권위(적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툴, 혹은 교단신학은 "전통"이란 옷을 입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솔라 스크립투라 / 오직 성경" 원리는 "성서로 성서를 해석한다 Scriptura sui interpr"는 해석원리를 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해석원리가 꼭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 구절의 해석을 위해 다른 구절을 도입할 때 각각 구절에 대한 복수의 해석이 가능하다면 전체 해석의 복잡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으니까요.

가령, 신의 "예정"을 암시하는 성경의 구절들을 읽은 "칼뱅주의" 교단의 신자가 "웨슬리"식으로 해석하면, "칼뱅주의" 측에서는 그 신자가 (1)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 "아니란" 식, 혹은 (2) 성서에 모순된다고 이해하겠죠?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이를 프로테스탄트 측의 딜레마라고 해야할까요? 모든 해석을 인정하자니 성령이 여럿이 되고, 하나만 고수하자니 분파주의가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로마카톨릭의 입장과 현실적인 적용 면에선 큰 차이가 없게 됩니다. 비록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무오"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각 교단의 어떤 핵심적 신조들은 "무오"란 말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사실상은 손댈 수 없습니다.

/ 최광민




[질문] 그러면 가톨릭은 사실상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반 평신도는 성경을 독서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해석할 권한은 전혀 없으며 철저히 사제의 해석에 의존해야한다고 가르치는 건가요? 그러면 가톨릭에서 성서 독서라는 행위 자체는 애당초 의미가 없는 행동 아닌가요?

[답변]

그래서 사실 20세기 중반까지 로마카톨릭에서는 평신도들에게 성서독서가 별로 권장되지 않았고 신자들도 굳이 찾아서 읽지 않았습니다. 로마카톨릭에서 평신도 성서독서가 권장되는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이며, 따라서 꽤 최근의 현상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프로테스탄트는 그 시작부터 신자의 성서독서와 연구/묵상이 신자의 핵심적인 삶이었지만, 로마카톨릭에게 있어서 성서독서는 신자에게 권장될 수있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울러 로마카톨릭에서는 성서독서 자체가 아니라 "교리적 부분"에 대한 평신도의 해석이 제한되는 것입니다.

/최광민




[질문] 동방정교회나 오리엔탈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 각각 종파들의 구원에 이르는 칭의관은 어떤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답변]

"원죄"나 "칭의"나 "대속"에 대한 고민은 길게 보면 북아프리카 히포 주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관에서 전개된 특별히 라틴교회 신학의 특징에 해당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비록 로마카톨릭-정교회 공히 교회박사 중 하나이지만, 그는 동방에서는 그다지 인기있는 교부가 아니었고, 따라서 정교회나 이미 5세기에 분리된 기타 동방의 단성파/양성파 교단은 원죄나 칭의 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로마카톨릭교회나 프로테스탄트처럼 그 주제에 천착하지도 않습니다. "대속"에 대한 교리가 중세 이후 서방에서만 두드러지게 등장한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정교회의 견해는 이것보다는, 신자가 어떻게 악에서 승리한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와 신에게 가까와 질 수 있는가 ("신화 theosis")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신화"란 "인간이 신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신의 성품과 의지에 일치되어 간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 최광민




[질문] 1~2세기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마르틴 루터가 말했던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얻는다는 동일한 칭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답변]

위에 간략히 답변했고, 예전에 방문자 한 분과 그와 관련하여 아래 게시판에서 이야기 나눈 바 있습니다. 내용을 옮기겠습니다.

질문 (sejeong-na):

톰라이트는 만나고 오셨나요?

답변 (최광민):

한 30미터 거리에서 "만나고" 왔습니다. 저희 동네 침례교회에서 있었던 강의 영상입니다.

https://vimeo.com/214610631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의미}가 제목이었는데, 전 바울 등을 인용하며 그의 브랜드네임인 "칭의론"을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한 "속죄론"에 대한 담론이 주제엿습니다. 마지막 50분 이후부터 고대로부터의 서방신학이 "속죄론"/"대속론"을 어떻게 왜곡시켰는가를 가지고 그의 이론을 정리합니다.

라이트는 서구신학의 오류를 세가지로 정리합니다. (예전에 물으신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네요).

[1] 서구 신학은 종말론을 (중기)플라톤화하여, "새로운 신의 나라"를 피안의 세계로 왜곡시켜 버렸다.

[2] 그 결과 서구 신학은 현실적인 새창조의 영역, 즉 "인간론"의 영역을 개인수준의 "윤리"로 축소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윤리"는 새로운 피조물의 가지게 될 속성이지, 그 자체의 목표는 아니기 때문

[3] 서구 신학은 형벌대속 (penal substitution)이론에 지나치게 강조하여 "구원론"을 이교화하는 우를 범했다. 대신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악의 세력을 무장해제했다"라고 보는 (보다 동방교회의 전통이자 AD 2-3세기 교부들의 시각인) 승리자 Christus Victor 이론이 보다 성서 (특별히 복음서)에 부합한다.

질문 (sejeong-na):

실제로 근거가 있나요?

답변 (최광민):

라이트가 말하는 "속죄론"에 대한 근거를 말하는 건가요?

물론 있습니다. 라이트가 이야기하는 속죄론의 형태가 그가 새롭게 창안한 것도 아닙니다. 아마 아실지도 모르지만 "속죄", 혹은 "왜 예수가 죽어야만 했는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둔 역사적으로 다양한 "이론"들이 있습니다. 이론들은 언뜻 보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달리 보면 상호배타적이라기 보다는 상보적이기도 합니다. 주로 서방의 신학이 '속죄론'에 많은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원죄"에 대한 개념은 아무래도 동방보다는 서방에서 많이 강조되고 사유된 것이니까요.

역사적인 관점에서 크게 본다면,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포함한 주로 서방의 신학은 전통적으로 예수의 "죽음" 자체의 의미를 강조해 왔고, 동방은 "부활/승리"를 더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의 미사가 "희생제"라면, 정교회의 성찬식은 "감사제"의 성격을 갖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두 관점은 사실은 상보적입니다. 다만 전자를 강조하면 "구원의 원리"가, 후자를 강조하면 큰 틀에서의 "구원의 결과"가 강조되게 됩니다. 두 강조점에 따른 적용은 라이트 말처럼 사뭇 달라질 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 '개인'이, 후자의 경우 현실 속에 구현된 '새로운 창조', '신의 나라'가 강조될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신과 나 사이의 관계회복"이 강조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새로와진 세상에서의 신의 통치/지배"가 강조되는 것이니까요.

라이트의 강의는 그런 취지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라이트가 속죄론을 약화시키고 펠라기우스적 입장을 취한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꽤 많죠. 대체로 바울의 서신은 전자가, 복음서의 관점은 후자가 강조된다는 것이 라이트의 견해이고, 그동안 서방신학의 속죄론은 복음서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주로 서신서에만 기초해서 속죄-부활의 큰 프레임을 왜곡시켰다는 것이 그의 겨견해라고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전 다소 "황희정승파"라서, 대체로 신학자들의 설명들에 대해 "당신 말도 옳고, 또 당신 말도 옳다"는 입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의 작업이 개념의 "선명성"을 강조하다보니 그들의 설명들이 서로 배타/이질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가령, 믿음이냐, 행위냐? 등등) 사실 크게 보거나 혹은 실제적인 적용에선 상보적인 면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 최광민





[질문] 1~3세기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어떻게 보유했었나요? 각 교회의 장로들이 소유했었나요? 또 그들의 예배방식은 어떠한 형태였나요?

[답변]

성서는 보통 성물로 간주되어 교회에서 사제/장로가 보관했고, 유스티노스의 대화편에 나오는 유대인 랍비 트리폰의 진술을 보면 기독교도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사본으로 제작되어 유통되기도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박해 시, 교회가 보관 중인 성서를 당국에 넘겨준 사제들은 분향하지 않았더라도 그 자체로 배교로 간주되었습니다.

예배형식은 아주 오래된 기록은 {디다케}나 유스티노스의 {변증}에 등장하는 대로, 일요일에 기립 찬양 (시편)-독서 (구약 예언서 /신약 복음서 및 서신서) - 속죄기도/사면 - 교제의 키스 -성찬 의 순서를 따른 것으로 여겨집니다.

 / 최광민




[질문]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자신들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지 않고 로마 가톨릭에 남아있는 신도들의 구원 가능성 여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나요?

중기 이후 루터와 그 무렵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이 종말론적 시각에서 로마교회와 교황으로 대표되는 성직자단을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바벨론의 음녀"로 여겼으므로, 대개의 신자들은 그 바벨론과 음녀에 의해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참 교황"이 아닌 "바벨론의 음녀"를 맹종하지 않는 한, 참된 믿음을 가진 한, 그들을 구출대상이자 구원받을 가능성 있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95개조에서 루터가 "참 교황"을 언급한 점을 기억하시면 될 것입니다.)

물론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의 알을) 낳고, 루터가 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종교개혁의 분위기를 조성했던 에라스무스지만, 자유의지 문제를 두고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 측으로 넘어오지 않고 로마카톨릭에 남은 채로 1536년에 죽었을 때, 루터는 그의 유명한 독설화법으로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유명한 에라스무스가 (임종을 지킬) 사제도 기도도 없이 바젤에서 죽었다. 지옥갈 준비 끝!" 


/최광민




[질문] 중세 당시에 라틴어 성서로 미사가 이루어졌다면 당시 사제가 라틴어 성서 구절을 읽은 뒤 신도들에게 이 구절이 어떠한 내용인지 모국어로 설명해주었나요?

[답변]

예수의 시절의 유대교에서도 시나고그 예배에서 우선 히브리어로 성서를 낭독한 후, 히브리어를 모르는 일반인을 위해 메투르게만이 아람어로 그 내용을 번역하고 뜻을 풀어주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4.html

동서방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전통적인 기독교 예배의 형식에는 예언서(구약)/시편/복음서-서신서의 내용을 발췌해서 낭독하는 순서가 들어있습니다. 중세의 라틴전례에서는 이 부분을 공식적으로는 모두 라틴어로 했습니다. (물론 모국어로 풀이해주는 사제들도 있기는 했겠죠).

게다가 사실 고대 말부터 초기 중세로 이어지는 시기부터, 라틴교회의 설교는 대체로 교회의 주요 축일에만 주교가 도맡아 했습니다. 이후 중세 말기에는 모국어로 대중을 대상으로 한 순회설교하는 수도사들이 엄청나게 대중의 인기를 끌었고, 일부 순회설교사들의 인기는 아이돌 급이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의 전체원문을 접하는 것과 설교내용에 맞춰 발췌된 내용과 그 해설을 접하는 것은 사뭇 다른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 최광민




[질문] 사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인정을 하지 않는 전통 가톨릭교도가 쓴 글들을 예전에 접해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저의 개신교 신앙에 대해 한 동안 혼란을 겪었고, 사실 Kwangmin님에게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해왔던 것도 이 혼란을 조금이라도 수습하기 위한 저의 동기에서 나온 것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외람된 부탁입니다만 그 가톨릭 교도가 쓴 글을 몇 개 읽어보시고 소감을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https://blog.naver.com/jmjfp/220782616294
https://blog.naver.com/jmjfp/220771895955
https://blog.naver.com/jmjfp/221319265765
https://blog.naver.com/jmjfp/221299184422


[답변]

2004년 멜 깁슨 감독의 {The Passion of Christ} 영화가 나왔을 때, 위에 언급하신 카톨릭전통주의자 -- 특별히 "성 비오 10세회"의 입장에 대해 개인적으로 꽤 자세히 연구했던 적이 있습니다. 멜 깁슨이 바로 이 카톨릭전통주의자이고, 그 영화가 그런 관점에서 채색되어 있거든요.

http://kwangmin.blogspot.com/2011/08/blog-post_5636.html

그럼 같이 읽어보고 비평하도록 하겠습니다. / 최광민

[1]

"어느 기독교(개신교)신자와의 대화 (2016년 8월7일 일요일)" 에 대해선....https://blog.naver.com/jmjfp/220782616294

위에 글 쓰신 분이 천주교 신학교를 다니셨던 듯 한데 (사제? 수도자?), 글을 짦고 쉽게 쓰시려다 그러셨겠지만 약간 사실관계를 틀어서 말씀하시네요.

(인용) "....사실 불가타역만이 완전한 성서입니다. 이 당시에는 그리스어 성경과,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셨던 언어이며 마태복음의 원어인 아람어 성경 등이 다수 존재했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현재는 이러한 성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신교 학자들이 원전에서 번역했다는 것은 허위 주장입니다. 그들의 사본은 원전이 아닙니다. 필사되고 또 필사되어 완전하지 못한 사본입니다. 성서는 필사될수록 필사가의 의견이 어휘 선택에 반영되고, 실수 등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현재는 이러한 성경이 존재하지 않다"니요. 

이 주장은 성서사본학의 기본만 알아도 배척되는 주장입니다. 우선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70인역과 그리스어 신약성서의 사본은 정교회를 통해 전수되어 온 것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라틴어 불가타를 만든 히에로니무스는 원래 (당시에 오리게네스 등에 의해 수집 정리된 다양한) 그리스어 70인역 판본들과 구 라틴어 번역을 바탕으로 중역을 시도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가 입수한 히브리어 사본과 일부 외경의 아람어 및 그리스어 버전, 구-라틴어 버전을 바탕으로 구약성서를 새로 번역 혹은 보완합니다. 즉, 불가타에 사용된 사본들은 (물론 현재 남아있진 않습니다) 그가 선정한 일종의 "비평/편집사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원본을 가장 잘 반영한 사본인가를 두고 말한다면, 솔직히 정답이 없습니다.

많은 초기 교부들도 히브리어 사본과 70인역, 그리고 다른 번역본과 사본 간의 차이가 발견된 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런 사본들을 대조해 놓은 것이 바로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 란 문건입니다. 히에로니무스도 사본 전승 간의 불일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번역에 선택한 히브리어 본문이 과연 "오류없는 원전"이라고 할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물론 그가 당시에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본"을 선택했다는 것을 특별히 의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당시 많은 교부들 (가령, 북아프리카 히포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전승인 그리스어 구약성서 70인역을 버리는 점, 구-라틴어 번역이 있는데 히브리어 사본에 기반한 새 라틴어 번역을 만든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거나 단어선택을 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보통 히브리어 원문으로 가장 잘 보존된 것으로 간주하는 맛소라 사본과 불가타 원문은 여러 군데 차이가 있고, 맛소라와 70인역 간에 꽤 차이가 있듯 역시 불가타와 70인역 간에도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아람어/시리아어 성서는 AD 5세기에 시리아 교회에서 이미 번역되어 지금도 사용하는 {페쉬타}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이미 학술적으로 검증된 사안들입니다. / 최광민


[2]

"마틴 루터의 비화" https://blog.naver.com/jmjfp/220771895955 란 글에 대해선.....

루터가 결혼을, 그것도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하는 것을 두고 사실 그의 측근 중에도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사제독신제도가 비성서적이란 것을 보란 듯이 비판하기 위해 감행했습니다.

루터는 이 결혼을 후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특유한 화법으로 유쾌하게 답합니다: "(이 결혼으로) 아버지는 기뻐하고, 교황은 화내며, 천사는 웃고, 악마는 울것이다."

또 유쾌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Ich würde meine Käthe nicht gegen Frankreich oder Venedig eintauschen. Zum ersten deshalb, weil Gott sie mir geschenkt hat und mich ihr geben hat. Zweitens erfahre ich oft, dass andere Frauen größere Mängel haben, als meine Käthe sie hat. Obwohl sie auch schon etliche hat, hat sie dagegen doch auch zahlreiche große Qualitäten.

나는 케테 (=카타리나)를 프랑스나 베네치아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께서 그녀를 내게 주셨고 또 나를 그녀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나는 때때로 다른 여자들이 케테보다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비록 그녀가 이미 몇몇 문제를 이미 가지곤 있지만, 역시 많은 미덕도 가지고 있다.  / 번역: 최광민



루터 본인이 크게 후회한 건은 필립의 중혼을 허가한 건이었습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루터는 어짜피 필립이 결국 그럴 거라서 자기가 총대를 맨 것처럼 변명하긴 했지만, 두고 두고 그의 아킬레스 건이 되었습니다.

"오직"의 삽입과 관련한 "성서개작" 건에 대해서는 블로그 저자께서 좀 과도한 주장을 하신다고 생각됩니다. "일점일획"이란 표현은 그렇게 적용/해석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경화 역사과정을 본다면, 단어 한두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현행 신구약성서에 포함된 ~20여권의 채택여부를 두고 초기교회 내에 논란이 있었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가톨릭 교회가 단 한 건이라도 오류를 허용한 사례가 있다면 이는 참 교회가 아니며, 가톨릭 교회가 참 교회가 아니라면 1500년 간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되므로 “너는 베드로라. 나 이 반석 위에 내 성교회를 세울 것이매, 지옥문이 쳐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이 거짓일 수는 없으므로, 가톨릭 교회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라고도 하시는데, 이 주장은 "가톨릭"교회가 "로마카톨릭교회"가 "무오"하다는 가정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겠죠?

우선, "카톨릭"이란 단어는 "로마카톨릭"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가령, 정교회는 1-7차 세계공회의에 기반한 자신들이야 말로 "카톨릭(보편)"이자 "정통"이라고 주장합니다. 정교회가 스스로를 일컫는 공식명칭인 "Ορθόδοξη (정통) Καθολική (보편/카톨릭) Εκκλησία (교회)"는 바로 이점을 명시합니다. 



4세기에 분리된 단성파 꼽트교회 교황/총주교는 자신들 단성파가 정통신조를 보유한 카톨릭이라고 여깁니다. 아리우스 논쟁 때 아리우스파는 자신들이 "카톨릭교회"라고 주장했습니다. 시리아 안티오키아 정교회 및 단성파 교단의 제 1대 주교는 바로 사도 베드로 입니다. 만약, 로마교회가 자신을 "유일한 카톨릭"이라고 부르는 근거가 자신들의 권위가 "1대주교"인 사도 베드로에게서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안티오키아 교회 역시 동일한 주장을 펼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원조들입니다).

그리고 로마교회가 오류를 허용한 사례는 단 한건이 아니라 여럿 있습니다. 이런 주장의 트릭은 상당히 동어반복적인데,  "참 교회"를 "오류를 가질 수 없는 존재"로 우선 정의해 버린 후, 따라서 오류를 보인 교회는 "원래부터" "참교회가 아니었다"라고 선언해 버리는 식이죠. 이와 동일한 논리구조를 따르는 것이 로마카톨릭교회의 "교황무오론"입니다. 가령, 로마교회 주교들 중에 아리우스파 옹호자 등 이단도 있었다는 것을 교회사를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로마 주교 (교황) 호노리우스 1세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인성이라는 두 위격을 갖고 있지만 오직 하나의 단일한 의지는 갖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의 모든 행위는 한 단 하나의 신적의지에 따른다는 '단일의지론'을 옹호했고, 비잔틴 황제 헤라클리오스는 이에 동조해 638년 칙령을 발표했지만, 그의 사후 40년 정도 후에 열린 AD 680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서 파문당했습니다. 이런 경우, 해당 인물들이 (1) 오해를 받았다고 변론하거나, 혹은 (2) "참 주교"가 아니라 "참칭한 것"이란 식으로 "무오" 문제를 피해가는 것이죠.

역사를 진영의 입장에서 보지말고 가급적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3]

루터의 명제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다” 가 오류인 이유
https://blog.naver.com/jmjfp/221319265765

오직성경설이 예수님의 가르침인가요?
https://blog.naver.com/jmjfp/221299184422


위 두 글은 논점은 "성서확립이 교회보다 나중인데 어떻게 "오직 성경"이란 명제가 성립하는가?" 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이 문제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측의 입장을 약간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 논점에 대한 로마카톨릭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단성파 및 양성파 교단)의 입장은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서 정경목록은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신약성서 목록의 최종확립만 본다면 이건 확실히 단계적이었으니까요. 오리게네스를 포함해 고대의 교부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없던 목록을 보편교회의 공회의가 갑자기 인준한 것은 아닙니다. 지역교회들 간에 "보편"적으로 인준되던 책들을 최종리스트로 "봉인"한 것이니까요. 그나마도 주체는 보편교회의 공회의지 로마카톨릭의 "교황"이 나서서 한 것도 아닙니다.

아래 글에서 유스티노스와 {무라토리} 단편의 내용도 참고해 보세요. 위의 유스티노스 직후, 히폴리투스가 활동하던 무렵 로마교회가 수용하던 신약성서 문건들이 {무라토리} 단편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무라토리 목록 전문 :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03.html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은,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이 교회를 이루었고, 이 가르침을 교회가 전수했으며, 이 가르침의 "핵심"은 성서에 진실되게 반영되어 있고, 바로 이 가르침이 성서의 최종리스트가 공회의에서 "봉인"되기 전에도 교회의 표준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성서보다 우위의 권위로) 성서를 확립했다"가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설립된 교회와 그 가르침이 기록된 성서는 유기적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며, 또 성서를 신앙의 최종권위로 삼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서의 텍스트에 근거하지 않는 교리는 수용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초기교부들의 글에 나오는 "거룩한 전통/전승"은 많은 경우 오늘날의 의미라기 보다는,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의미인 경우가 많습니다. 2세기 말, 로마 사제이자 "성인"인 히폴리투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그는 성서를 신앙의 표준으로 강조합니다.

"....9. 형제들이여, 오직 한 신만 계신다. 우리는 이 지식을 성서로 부터 얻었고, 다른 어디서 얻지 않았다. 세상의 지식에 통달하고자 하는 이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통달하는 것 이 외에 그 지식을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건을 훈련하길 원하는 우리 모두 역시 신의 계시 이외의 것에서 이것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이다. 성서가 선언하는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도록 하자. 성서가 가르치는 무엇이나 배우도록 하자. 성부께서 원하시는 믿음대로 믿도록 하자. 성부께서 성자를 영광스럽게 하시길 원하셨다면 우리도 성자께 영광을 돌리자. 성부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성령을 받아들이자. 우리 자신의 의지로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가 아니라,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것들을 오용하지 말고 성부께서 성서로서 그것들을 가르치고자 하셨다면 그것을 인정하도록 하자...." ---- 히폴리투스, {노에투스 반박} / 번역: 최광민



사실 "교회의 전통"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측의 견해는 두가지 지류가 있습니다. 가령, 루터교단이나 성공회 등은 "성서가 금지하지 않으면, 허용한다"는 입장을 대체로 취합니다. 칼뱅의 전통을 잇는 개혁주의에서는 원래 "성서가 허용하지 않으면, 금지한다"는 미니멀리스트의 입장을 취합니다. 그런데 로마카톨릭이나 정교회 측에서 말하는 (성서 밖의) "거룩한 전통"을 긴 시간축에서 보면 서로 상충하는 "전통"들이 많이 발견되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의 "전통"은 사실 경합에서 "살아남은" 전통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그럼 또 "신이 교회의 일을 주관하신다면, 올바른 교리와 전통 만이 살아남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도 주장하겠죠? 그런데 그 순간 순환논법이 되어버립니다.

AD 2세기 초/중반 소아시아를 거쳐 로마에서 활동한 유스티노스의 진술에 따르면, 고대교회의 일요일 예배는 찬양 (시편)과 구약성서와 복음서 (및 서신서)의 본문을 회중들에게 "길게" 읽어주어 강독하고, 이후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즉, 회중들이 설령 문맹이었다 하더라도, "해설되지 않은 원문"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략) 우리는 만물의 창조자이신 분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기린다. 일요일이라 불리는 날, 도시나 시골에 사는 모두가 한 곳에 모여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사도들의 회상록들이나 예언자/선지자들의 글들을 오래 읽으며, 독서를 마친 후에 집례자가 가르침을 말로 전하여 이 모든 좋은 일들을 닮도록 우리에게 권고한다...." --- 유스티노스, {첫번째 변증}, 번역: 최광민 

/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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