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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8: 성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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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신화/종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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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19-11-13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5: 성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목차
- 로마카톨릭, 정교회, 프로테스탄트의 성체 이해에 대해
- 정교회의 성체 이해
-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 실체변화 설명
- 루터, 쯔빙글리, 칼뱅의 이해
Wikimedia Commons
#로마카톨릭, 정교회, 프로테스탄트의 성체 이해에 대해
[질문] 제가 성체파트를 보다가 하는 질문입니다. 정교회는 영적임재보다는 실채변환에 가까운거 아니었나요 교리문답을 봐도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다만 서방신학같은 사변적 설명을 거부하는걸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 qorcks200)
[답변]
이 글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12/vs-1_11.html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정교회는 원래 이 문제에 대해 다소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왔으며 라틴교회와 같은 식의 정교한 교리화를 대체로 피해왔다. 따라서 로마카톨릭교회의 '실체변화 transsubstantiatio'와 유사한 식의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6세기부터인데, 정교회 측에서 그에 대응하는 여러가지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중 가장 가까운 것은 라틴어 'transsubstantiatio'의 직역에 가까운 메타우스오시스 (μετουσίωσις)일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 용어로 본질을 말하는 우시아 (οὐσία)와 라틴어에서의 수브스탄티아 (subtantia)가 정확히 같은 의미에 대응되는지에 대한 큰 혼란은 삼위일체론의 정립되어 가던 AD 4세기에도 있었다.
사실 정교회에서는 8-9세기 성상파괴논쟁시 성상파괴론자들이 오직 성체만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이콘"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성화상옹호론자들은 성체는 '이콘'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주장했다. 얼핏보면 마치 로마카톨릭의 '실체변화'를 말하는 것 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성화상옹호론자 중 가장 영향력 컷던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가를 논하면서, 마치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 마리아를 통해 몸을 입은 것과 같이,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 역시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풀이하면서, 그렇게 이해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즉, 성자가 예수로 성육신 할때 그의 신성이 인간의 피와 살과 연합했듯, 성찬에서도 예수는 성령을 통해 사람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와 연합함으로써 빵/포도주가 예수의 참 몸/피가 되는 것이라 이해한 것이다.
"It is truly that Body, united with Godhead, which had its origin from the Holy Virgin; not as though that Body which ascended came down from heaven, but because the bread and wine themselves are changed into the Body and Blood of God. But if thou seekest after the manner how this is, let it suffice thee to be told that it is by the Holy Ghost; in like manner as, by the same Holy Ghost, the Lord formed flesh to himself, and in himself, from the Mother of God; nor know I aught more than this, that the Word of God is true, powerful, and almighty, but its manner of operation unsearchable.” --- (J. Damasc. Theol. lib. iv. cap. 13, § 7.) --- 다마스쿠스의 요한
후대 종교개혁가인 칼뱅도 어떻게 보면 이 견해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듯 보인다. 화체설과 공재설에서 그리스도의 실제 몸은 직접적으로 빵과 포도주의 실체를 바꾸거나 혹은 빵과 포도주와 함께 임재한다. 그러나 칼뱅의 이해에 따르면 신자들과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직접적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이 세상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효력적으로 임재한다.
Even though it seems unbelievable that Christ’s flesh, separated from us by such a great distance, penetrates to us, so that it becomes our food, let us remember how far the secret power of the Holy Spirit towers above all our senses . . . What, then, our mind does not comprehend, let faith conceive: that the Spirit truly unites things separated in space. . . . [T]he Lord bestows this benefit upon us through his Spirit, so that we may be made one in body, spirit, and soul with him. The bond of this connection is therefore the Spirit of Christ, with whom we are joined in unity, and is like the channel through which all that Christ himself is and has is conveyed to us. --- 장 칼뱅
/ 최광민
[질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변환 설명에서 질료/형상변화 없는 우유적 실재로 알고있습니다그런데 우유에 관해 설명하신 부분은 오히려 형상에 관한 설명 같습니다 우유는 사건과(우연/필연) 관련된걸로 알고있습니다.
[답변]
역시 같은 글에서 인용하겠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12/vs-1_11.html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상을 조성을 양, 질, 관계, 시간, 공간 등등의 9가지 우유(accident)와 하나의 실체(substance)로 나누었는데, '우유'는 외적인 모습/속성의 전달체로서 실체에 덧붙이거나 변화시키거나 실체로부터 분리해내더라도 실체에는 변화를 일으키지 않은 어떤 것 혹은 속성을 말한다. 따라서 사물의 비본질적인 속성이다. 반면 '실체' 그 본질/존재/속성 정도에 해당하는 중세철학 용어이다. 하나의 실체는 질료와 형상으로 이뤄지는데, 이때 '형상'이란 '외적으로 감지되는 형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퀴나스는 예수가 "이것은 나의 몸이고 나의 피다"라고 선언했던 빵과 포도주는 그 외형(우유)는 변화가 없는 대신, 빵의 본질적 실체는 "예수의 실체적인 살과 피"로 변하여야 한다고 이해한다. 즉, 실체 (substance)가 변화하므로, 이것을 성체의 실체변화/화체설 (trans-substantiation) 이라고 부른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성체의 축성 후 빵에 일어나는 변화, 즉 우유는 그대로이나 빵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그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해당단락을 읽어보자.
http://www.newadvent.org/summa/4075.htm#article5
우선 아퀴나스는 성체의 축성 후 빵의 우유가 그대로 남아 있음에 대해 먼저 이렇게 주장하며, 이에 대한 반박을 하나씩 논한다.
I answer that, It is evident to sense that all the accidents of the bread and wine remain after the consecration. And this is reasonably done by Divine providence. First of all, because it is not customary, but horrible, for men to eat human flesh, and to drink blood. And therefore Christ's flesh and blood are set before us to be partaken of under the species of those things which are the more commonly used by men, namely, bread and wine. Secondly, lest this sacrament might be derided by unbelievers, if we were to eat our Lord under His own species. Thirdly, that while we receive our Lord's body and blood invisibly, this may redound to the merit of faith.
실체의 변화에 대해서, 아퀴나스는 만약 빵의 실체적 형상이 남아있다면 빵의 질료 이외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없는 셈이기에 빵의 실체적 형상은 반드시 변해야 하며, 따라서 빵의 실체적 형상은 남아있지 않게된다고 설명한다.
I answer that, Some have contended that after the consecration not only do the accidents of the bread remain, but also its substantial form. But this cannot be. First of all, because if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were to remain, nothing of the bread would be changed into the body of Christ, excepting the matter; and so it would follow that it would be changed, not into the whole body of Christ, but into its matter, which is repugnant to the form of the sacrament, wherein it is said: "This is My body."
Secondly, because if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were to remain, it would remain either in matter, or separated from matter. The first cannot be, for if it were to remain in the matter of the bread, then the whole substance of the bread would remain, which is against what was said above (Article 2). Nor could it remain in any other matter, because the proper form exists only in its proper matter. But if it were to remain separate from matter, it would then be an actually intelligible form, and also an intelligence; for all forms separated from matter are such.
Thirdly, it would be unbefitting this sacrament: because the accidents of the bread remain in this sacrament, in order that the body of Christ may be seen under them, and not under its proper species, as stated above (Article 5). And therefore it must be said that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does not remain.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반동한 로마카톨릭 측의 개혁작업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정식채택된 설명은, 형상과 질료로 구성된 실체에서 변화가 일어나되 우유는 변화되지 않는 채 남으며, 따라서 이 적극적 행위에 의하여 하나의 현실적인 존재가 소멸됨이 없이 다른 현실적인 존재로 전체 실체가 변화한다고 풀이한다..."
/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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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신화/종교,
역사
© 최광민 (Kwangmin Choi). 2019-11-13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5: 성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목차
- 로마카톨릭, 정교회, 프로테스탄트의 성체 이해에 대해
- 정교회의 성체 이해
-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 실체변화 설명
- 루터, 쯔빙글리, 칼뱅의 이해
#로마카톨릭, 정교회, 프로테스탄트의 성체 이해에 대해
[질문] 제가 성체파트를 보다가 하는 질문입니다. 정교회는 영적임재보다는 실채변환에 가까운거 아니었나요 교리문답을 봐도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다만 서방신학같은 사변적 설명을 거부하는걸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 qorcks200)
[답변]
이 글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12/vs-1_11.html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사실 정교회에서는 8-9세기 성상파괴논쟁시 성상파괴론자들이 오직 성체만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이콘"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성화상옹호론자들은 성체는 '이콘'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주장했다. 얼핏보면 마치 로마카톨릭의 '실체변화'를 말하는 것 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성화상옹호론자 중 가장 영향력 컷던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가를 논하면서, 마치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 마리아를 통해 몸을 입은 것과 같이,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 역시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풀이하면서, 그렇게 이해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즉, 성자가 예수로 성육신 할때 그의 신성이 인간의 피와 살과 연합했듯, 성찬에서도 예수는 성령을 통해 사람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와 연합함으로써 빵/포도주가 예수의 참 몸/피가 되는 것이라 이해한 것이다.
후대 종교개혁가인 칼뱅도 어떻게 보면 이 견해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듯 보인다. 화체설과 공재설에서 그리스도의 실제 몸은 직접적으로 빵과 포도주의 실체를 바꾸거나 혹은 빵과 포도주와 함께 임재한다. 그러나 칼뱅의 이해에 따르면 신자들과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직접적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이 세상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효력적으로 임재한다.
/ 최광민
[질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변환 설명에서 질료/형상변화 없는 우유적 실재로 알고있습니다그런데 우유에 관해 설명하신 부분은 오히려 형상에 관한 설명 같습니다 우유는 사건과(우연/필연) 관련된걸로 알고있습니다.
[답변]
역시 같은 글에서 인용하겠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12/vs-1_11.html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상을 조성을 양, 질, 관계, 시간, 공간 등등의 9가지 우유(accident)와 하나의 실체(substance)로 나누었는데, '우유'는 외적인 모습/속성의 전달체로서 실체에 덧붙이거나 변화시키거나 실체로부터 분리해내더라도 실체에는 변화를 일으키지 않은 어떤 것 혹은 속성을 말한다. 따라서 사물의 비본질적인 속성이다. 반면 '실체' 그 본질/존재/속성 정도에 해당하는 중세철학 용어이다. 하나의 실체는 질료와 형상으로 이뤄지는데, 이때 '형상'이란 '외적으로 감지되는 형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반동한 로마카톨릭 측의 개혁작업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정식채택된 설명은, 형상과 질료로 구성된 실체에서 변화가 일어나되 우유는 변화되지 않는 채 남으며, 따라서 이 적극적 행위에 의하여 하나의 현실적인 존재가 소멸됨이 없이 다른 현실적인 존재로 전체 실체가 변화한다고 풀이한다..."
/ 최광민
[질문] 제가 성체파트를 보다가 하는 질문입니다. 정교회는 영적임재보다는 실채변환에 가까운거 아니었나요 교리문답을 봐도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다만 서방신학같은 사변적 설명을 거부하는걸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 qorcks200)
이 글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12/vs-1_11.html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정교회는 원래 이 문제에 대해 다소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왔으며 라틴교회와 같은 식의 정교한 교리화를 대체로 피해왔다. 따라서 로마카톨릭교회의 '실체변화 transsubstantiatio'와 유사한 식의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6세기부터인데, 정교회 측에서 그에 대응하는 여러가지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중 가장 가까운 것은 라틴어 'transsubstantiatio'의 직역에 가까운 메타우스오시스 (μετουσίωσις)일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 용어로 본질을 말하는 우시아 (οὐσία)와 라틴어에서의 수브스탄티아 (subtantia)가 정확히 같은 의미에 대응되는지에 대한 큰 혼란은 삼위일체론의 정립되어 가던 AD 4세기에도 있었다.
사실 정교회에서는 8-9세기 성상파괴논쟁시 성상파괴론자들이 오직 성체만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이콘"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성화상옹호론자들은 성체는 '이콘'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주장했다. 얼핏보면 마치 로마카톨릭의 '실체변화'를 말하는 것 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성화상옹호론자 중 가장 영향력 컷던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가를 논하면서, 마치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 마리아를 통해 몸을 입은 것과 같이,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 역시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풀이하면서, 그렇게 이해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즉, 성자가 예수로 성육신 할때 그의 신성이 인간의 피와 살과 연합했듯, 성찬에서도 예수는 성령을 통해 사람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와 연합함으로써 빵/포도주가 예수의 참 몸/피가 되는 것이라 이해한 것이다.
"It is truly that Body, united with Godhead, which had its origin from the Holy Virgin; not as though that Body which ascended came down from heaven, but because the bread and wine themselves are changed into the Body and Blood of God. But if thou seekest after the manner how this is, let it suffice thee to be told that it is by the Holy Ghost; in like manner as, by the same Holy Ghost, the Lord formed flesh to himself, and in himself, from the Mother of God; nor know I aught more than this, that the Word of God is true, powerful, and almighty, but its manner of operation unsearchable.” --- (J. Damasc. Theol. lib. iv. cap. 13, § 7.) --- 다마스쿠스의 요한
후대 종교개혁가인 칼뱅도 어떻게 보면 이 견해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듯 보인다. 화체설과 공재설에서 그리스도의 실제 몸은 직접적으로 빵과 포도주의 실체를 바꾸거나 혹은 빵과 포도주와 함께 임재한다. 그러나 칼뱅의 이해에 따르면 신자들과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직접적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이 세상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효력적으로 임재한다.
Even though it seems unbelievable that Christ’s flesh, separated from us by such a great distance, penetrates to us, so that it becomes our food, let us remember how far the secret power of the Holy Spirit towers above all our senses . . . What, then, our mind does not comprehend, let faith conceive: that the Spirit truly unites things separated in space. . . . [T]he Lord bestows this benefit upon us through his Spirit, so that we may be made one in body, spirit, and soul with him. The bond of this connection is therefore the Spirit of Christ, with whom we are joined in unity, and is like the channel through which all that Christ himself is and has is conveyed to us. --- 장 칼뱅
/ 최광민
[질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변환 설명에서 질료/형상변화 없는 우유적 실재로 알고있습니다그런데 우유에 관해 설명하신 부분은 오히려 형상에 관한 설명 같습니다 우유는 사건과(우연/필연) 관련된걸로 알고있습니다.
[답변]
역시 같은 글에서 인용하겠습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5/12/vs-1_11.html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상을 조성을 양, 질, 관계, 시간, 공간 등등의 9가지 우유(accident)와 하나의 실체(substance)로 나누었는데, '우유'는 외적인 모습/속성의 전달체로서 실체에 덧붙이거나 변화시키거나 실체로부터 분리해내더라도 실체에는 변화를 일으키지 않은 어떤 것 혹은 속성을 말한다. 따라서 사물의 비본질적인 속성이다. 반면 '실체' 그 본질/존재/속성 정도에 해당하는 중세철학 용어이다. 하나의 실체는 질료와 형상으로 이뤄지는데, 이때 '형상'이란 '외적으로 감지되는 형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퀴나스는 예수가 "이것은 나의 몸이고 나의 피다"라고 선언했던 빵과 포도주는 그 외형(우유)는 변화가 없는 대신, 빵의 본질적 실체는 "예수의 실체적인 살과 피"로 변하여야 한다고 이해한다. 즉, 실체 (substance)가 변화하므로, 이것을 성체의 실체변화/화체설 (trans-substantiation) 이라고 부른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성체의 축성 후 빵에 일어나는 변화, 즉 우유는 그대로이나 빵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그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해당단락을 읽어보자.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성체의 축성 후 빵에 일어나는 변화, 즉 우유는 그대로이나 빵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그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해당단락을 읽어보자.
http://www.newadvent.org/summa/4075.htm#article5
우선 아퀴나스는 성체의 축성 후 빵의 우유가 그대로 남아 있음에 대해 먼저 이렇게 주장하며, 이에 대한 반박을 하나씩 논한다.
실체의 변화에 대해서, 아퀴나스는 만약 빵의 실체적 형상이 남아있다면 빵의 질료 이외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없는 셈이기에 빵의 실체적 형상은 반드시 변해야 하며, 따라서 빵의 실체적 형상은 남아있지 않게된다고 설명한다.
우선 아퀴나스는 성체의 축성 후 빵의 우유가 그대로 남아 있음에 대해 먼저 이렇게 주장하며, 이에 대한 반박을 하나씩 논한다.
I answer that, It is evident to sense that all the accidents of the bread and wine remain after the consecration. And this is reasonably done by Divine providence. First of all, because it is not customary, but horrible, for men to eat human flesh, and to drink blood. And therefore Christ's flesh and blood are set before us to be partaken of under the species of those things which are the more commonly used by men, namely, bread and wine. Secondly, lest this sacrament might be derided by unbelievers, if we were to eat our Lord under His own species. Thirdly, that while we receive our Lord's body and blood invisibly, this may redound to the merit of faith.
실체의 변화에 대해서, 아퀴나스는 만약 빵의 실체적 형상이 남아있다면 빵의 질료 이외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없는 셈이기에 빵의 실체적 형상은 반드시 변해야 하며, 따라서 빵의 실체적 형상은 남아있지 않게된다고 설명한다.
I answer that, Some have contended that after the consecration not only do the accidents of the bread remain, but also its substantial form. But this cannot be. First of all, because if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were to remain, nothing of the bread would be changed into the body of Christ, excepting the matter; and so it would follow that it would be changed, not into the whole body of Christ, but into its matter, which is repugnant to the form of the sacrament, wherein it is said: "This is My body."
Secondly, because if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were to remain, it would remain either in matter, or separated from matter. The first cannot be, for if it were to remain in the matter of the bread, then the whole substance of the bread would remain, which is against what was said above (Article 2). Nor could it remain in any other matter, because the proper form exists only in its proper matter. But if it were to remain separate from matter, it would then be an actually intelligible form, and also an intelligence; for all forms separated from matter are such.
Thirdly, it would be unbefitting this sacrament: because the accidents of the bread remain in this sacrament, in order that the body of Christ may be seen under them, and not under its proper species, as stated above (Article 5). And therefore it must be said that the substantial form of the bread does not remain.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반동한 로마카톨릭 측의 개혁작업인 트렌트 공회의에서 정식채택된 설명은, 형상과 질료로 구성된 실체에서 변화가 일어나되 우유는 변화되지 않는 채 남으며, 따라서 이 적극적 행위에 의하여 하나의 현실적인 존재가 소멸됨이 없이 다른 현실적인 존재로 전체 실체가 변화한다고 풀이한다..."
/ 최광민
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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