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4-12-31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예수 vs. 예수 #1: 소설 {다빈치 코드} 속 자료인용의 문제점
요약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여러 음모론과 또한 책 속에 인용되는 여러 종류의 그노시스 위경의 원전을 살펴보고, 이 소설이 주장하는 내용이 원전과 일치하는지 살펴본다.
순서
© 최광민, Kwangmin Choi, 2004-12-31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예수 vs. 예수 #1: 소설 {다빈치 코드} 속 자료인용의 문제점
요약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여러 음모론과 또한 책 속에 인용되는 여러 종류의 그노시스 위경의 원전을 살펴보고, 이 소설이 주장하는 내용이 원전과 일치하는지 살펴본다.
순서
- 머릿글 : 팩션 (Faction)
-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역할
- Q문서의 역사성?
-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
- 메로비의 탄생설화
- 그노시스 문서들 속의 막달라 마리아
- {도마 복음서}: 예수는 페미니스트였을까?
- {마리아 복음서}: 예수의 수제자?
- {필립(포스) 복음서}: 주님의 짝?
- “입맞춤”에 대한 문헌적 이해
- "짝"
- 맺음말
§ 머릿글 : 팩션 (Faction)
댄 브라운 (Dan Brown)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는 2003년 말부터 미디어를 통해 심심치 않게 읽을 수 있었지만, 이와 유사한 소설이나 논픽션을 그동안 많이 읽어온 탓에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이 내게는 그다지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지 않았고, 또 이와 유사한 소설 가운데 수 년전 출판계의 극찬을 받으며 소개된 프랑스 작가 엘리엣 아베카시스의 소설 {쿰란}의 매우 허술한 문체와 치밀하지 못한 내용에 크게 실망했던 경험 탓인지 선뜻 이 책을 들춰보기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대화가 많이 들어간 소설을 싫어하는 개인적 취향도 이 책에 선뜻 손을 뻗지 못하는 이유의 한가지로 지적될 수 있겠다.
그러다가 어제밤 한국어판 {다빈치 코드}를 구해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독파할 수 있었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학생 시절에 읽었던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로부터 시작해 이와 유사한 류의 소설과 논픽션에 등장하는 모티프들이 대부분 {다빈치코드} 속에도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이 다루는 내용은 기대했던 것보다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았고, 사실 서스펜스 소설로 읽기에도 약간 지루했다.
Dan Brown, {The Da Vinci Code}
Eliette Abécassis, {The Qumran Mystery}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책 역시 {쿰란}에 못지않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술사적 분석에 대해서는 큰 흥미가 없으니 특별히 언급할 것은 없지만, 제 1권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이 소설이 기반을 두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역사적/문헌학적 자료들을 군데군데서 작가가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별히 한국어판의 1권 후반부터 들어가면서 기독교의 초기역사 및 성배전설에 관한 전문가로 등장하는 ‘티빙’이란 인물의 역사인용은 역사적 사실과 상당히 동떨어져있다. 야사에 속한 것이야 작가의 상상의 영역이라 치지만, 정사에 등장한 부분조차 잘못 인용되고 있다는 것은 이 ‘팩션(faction) ’이 가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다빈치 코드}와 같은 소위 ‘팩션’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어렵고 따분한 역사책을 읽지않는 일반 독자들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는 교육적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팩션'의 장점으로 불릴 만 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친다면, 비전문가인 독자들의 기억 속에는 아마도 작가에 의해 취사선택된 역사해석의 한 관점만이 남아 이를 역사적 해석의 전부로 여기게 될 위험도 있다. 보통 이런 종류의 팩션들은 정사를 뒤틀어 봄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제 1목표로 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기억 속에 편중된 역사해석 관점이 자리잡게 될 위험은 더 커진다. 원전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한, 독자는 작가의 관점에 계속 끌려다니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원전을 읽고, 원전을 사고하고, 역사적 맥락을 원전의 이해에 도입하는 것 이외에는, 한 텍스트 상에 녹아있는 팩트를 올바로 판단할 방법이 없다.
충분한 자료를 검토한 뒤,
당신의 권위 하에서,
당신 “스스로” 판단하라.
§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역할
이 소설 속 제55장에서 티빙은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 여든 개 이상의 복음서들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 하지만 오직 몇 개만이 신약성서 안에 포함되도록 뽑혔다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등이 거기에 속하지…아하! 그게 기독교의 기본적인 아니러니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이교도였던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짜맞춘 것이거든.” --- 한국어판 {다빈치 코드}
그러나 문헌학자들이 이 진술을 들으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기 4세기의 인물이지만, 오늘날 신약성서의 '정경(canon)' 목록에 들어있는 4개의 복음서 및 다른 문서들은 이미 서기 2세기와 3세기의 문헌에 신약성서의 정경목록으로 그 리스트가 등장하고 있었고, 비록 많은 기독교 교부들이 저마다 자기의 "정경" 리스트를 제공하기는 했기는 하지만 그 폭은 그렇게 크지 않고 대체로 현재의 신약성서 리스트에 일치하고 있었다. 가령, 서기 2세기 말에 기록된 무라토리 정경 목록은 현재의 리스트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무라토리 단편}은 현재까지 알려진 문서 가운데 신약성서 목록을 리스트로 제공하는 가장 오래된 문서로 , AD 170년 경이 작성시점으로 여겨진다. AD 157년에 사망한 로마주교 피우스 1세의 시절을 "아주 최근"으로 언급하기 때문이다.이 문서는 부도비코 안토니오 무라토리에 의해 밀라노 암브로시우스 도서관 장서 가운데서 발견되어 1740년 발표되었다. 제호 부분과 앞부분이 사라져있기 때문에 "단편"으로 분류된다. 암브로시우스 도서관의 사본은 AD 7 세기의 것으로 간주되는데 상당히 많은 문법적인 오류와 어색한 문체를 보이기 때문에, 아마도 그리스어로 된 원문에서 어설프게 라틴어로 옮겨졌거나 혹은 라틴어에 익숙하지 않은 (혹은 문맹인) 필사자에 의해 필사된 것으로 여겨진다.
수정/개정되지 않은 라틴어 원문과 한국어 중역을 옮긴다. Bruce Metzger가 라틴어 복원/개정본에서 영어로 번역한 것 (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Oxford: Clarendon Press, 1987}, pp. 191-201 )을 바탕으로 다른 번역본을 고려해서 한국어로 옮겨보았다. 줄 번호는 라틴어 사본의 줄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겠다.
{무라토리 단편}, --- 라틴어/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이전 소실]
1. ...quibus tamen interfuit et ita posuit
....그 (마르코/마가?)는 이런 내용들을 ....적어 넣었다.....
2. tertio evangelii librum secundo lucan
세번째 복음서는 루가/누가에 의한 것이다.
3. lucas iste medicus post ascensum XPi
의사였던 루가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4. cum eo paulus quasi ut juris studiosum
5. secundum adsumsisset numeni suo
율법에 열성있는 제자로 바울이 데리고 다닐 때
6. ex opinione conscripset dnm tamen nec ipse
자기 (=루가) 이름으로 복음서를 썼다고 믿겨지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7. vidit in carne et ide prout asequi potuit
주님을 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사건들을 확인하여
8. ita et ad nativitate iohannis incipet dicere.
자신의 복음서를 (세례자) 요한의 탄생부터 진술했다.
9. quarti evangeliorum iohannis ex decipolis.
네번째 복음서는 사도였던 요한이 쓴 것이다.
10. cohortantibus condescipulis et eps suis
요한은 그에게 복음서를 쓰도록 권고했던 다른 사도들과 주교/감독들에게
11. dixit conieiunate mihi odie triduo et quid
말하길, "오늘부터 3일 간 나와 함께 금식하고
12. cuique fuerit revelatum alterutrum
각자에게 무슨 계시가 주어지는지
13. nobis ennarremus eadem nocte reve
우리 서로 나누도록 합시다"라고 말했고, 그날 밤 계시가
14. latum andreae ex apostolis ut recognis
사도 가운데 하나인 안드레에게 주어졌는데,
15. centibus cuntis iohannis suo nomine
16. cuncta describeret et ideo licet varia sin
그 내용은 요한이 모든 일어난 일들을 요한의 이름 하에 기록하고, 모든 사람들 이 그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다양한
17. culis evangeliorum libris principia
요소들이 네 권의 {복음서}각 권들을 통해 가르쳐질 수 있긴 하지만,
18. doceantur nihil tamen differt creden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양함이 신자들의 믿음에 어떤 차이점을 만들지는 않는데,
19. tium fidei cum uno ac principali spu de
그것은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한 성령이
20. clarata sint in omnibus omnia de nativi
네 권 {복음서}들이 선언하는 내용들, 즉 그리스도의 탄생과
21. tate de passione de resurrectione
수난과 부활과
22. de conversatione cum decipulis suis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대화와
23. ac de gemino eius adventu
그의 두번의 오심(=초림과 재림), 즉
24. primo in humilitate dispectus quod fo
처음에는 사람들의 모욕을 당하게끔 낮게 오셨지만
25. it secundum potestate regali ... pre
26. clarum quod foturum est quid ergo
장차 두번째 오실 때는 왕의 권능으로 영광스럽게 오실 것임을 [한 성령이 / 필자 주] 선언했기 때문이다.
27. mirum si iohannes tam constanter
놀라운 점은 요한이 매우 일관되게
28. sincula etia in epistulis suis proferam
그의 서신들 속에서 이런 내용들을 언급하면서
29. dicens in semeipsu quae vidimus oculis
그 자신에 관해 말하길, "우리가 우리 눈으로 보았고,
30. nostris et auribus audivimus et manus
31. nostrae palpaverunt haec scripsimus vobis
또한 우리의 귀로 듣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것을 우리가 그대들에게 적어 보낸다"고 말한 것이다.
32. sic enim non solum visurem sed et auditorem
33. sed et scriptore omnium mirabiliu dni per ordi
이런 방식으로 요한은 이 내용들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고 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요청/권고에 따라 주님의 모든 놀라운 행적들을 기록한 사람이 요한 자신임을 말하고 있다.
34. nem proftetur acta aute omniu apostolorum
나아가, 모든 사도들의 행적들은 (={사도행전})은
35. sub uno libro scribta sunt lucas obtime theofi
한 권의 책으로 씌여졌다. "고매한 테오필로스"를 위해 루가/누가는
36. le comprindit quia sub praesentia eius sincula
그가 목도했던 개별적인 사건들을 모아 적었는데,
37. gerebantur sicuti et semote passione petri
이 사실은 (= 즉, 이 내용들이 그의 목격담이란 것은), 그의 기록에 베드로의 순교내용이 빠져있다는 점과
38. evidenter declarat sed et profectione pauli ab ur
39. be ad spania proficiscentis epistulae autem
바울이 로마에서 (에)스파니아로 여행한 내용이 빠져있다는 점으로 알 수 있다.
40. pauli quae a quo loco vel qua ex causa directe
41. sint volentibus intellegere ipse declarant
바울의 편지들은 누가 수신자이며, 어디에서 씌여졌으며, 무슨 목적으로 씌여졌는지를 이해하기 분명하다.
42. primu omnium corintheis scysmae heresis in
다른 무엇보다도, 코린트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그들의 이단적 분열을 금하고 있고,
43. terdicens deinceps b callaetis circumcisione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할례에 대한 반대를 담았고,
44. romanis aute ordine scripturarum sed et
45. principium earum ... esse XPm intimans
46. prolexius scripsit de quibus sincolis neces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구약)성서의 계획과 그리스도가 성서의 주요주제였음을 길게 설명했다
47. se est ad nobis disputari cum ipse beatus
우리가 이 편지들을 하나씩 논하는 것은 중요한데, 이는 복된
48. apostolus paulus sequens prodecessoris sui
사도 바울 본인이 그의 선임자인
49. iohannis ordine non nisi nominati sempte
50. ecclesiis scribat ordine tali a corenthios
요한의 전례에 따라 자신의 이름으로 다음의 순서를 따르는 단 일곱교회들에게만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그 순서는 코린트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51. prima ad efesius seconda ad philippinses ter
에페소스, 필리피,
52. tia ad colosensis quarta ad calatas quin
콜로사이, 갈라티아,
53. ta ad tensaolenecinsis sexta ad romanos
테살로니카, 마지막으로 로마교회에게 보낸 편지가
54. septima verum corintheis et thesaolecen
55. sibus licet pro correbtione iteretur una
7번째이다. 바울은 코린트인들과 테살로니카인들에게 두번째 훈계의 편지를 썼다.
56. tamen per omnem orbem terrae ecclesia
57. deffusa esse denoscitur et iohannis eni in a
하나의 교회가 세상 끝까지 퍼져나간 점을 명백히 해야 한다. 요한은 또한
58. pocalebsy licet septe eccleseis scribat
{요한의 계시록}에서 비록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하는 것이긴 하지만,
59. tamen omnibus dicit veru ad filemonem una
60. et at titu una et ad tymotheu duas pro affec
사실은 모든 교회에게 말하고 있다. 바울을 또한 필레몬/빌레몬에게 편지 한 편, 티투스/디도에게 편지 한 편, 그리고 티모데오/디모데에게 두 편의 편지를 보냈고,
61. to et dilectione in honore tamen eclesiae ca
62. tholice in ordinatione eclesiastice
63. discepline scificate sunt fertur etiam ad
이것들은 보편교회의 높은 평가 속에 신자의 훈련/교육을 위해 성스러운 문서로 간주되고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문서 중에
64. laudecenses alia ad alexandrinos pauli no
65. mine fincte ad heresem marcionis et alia plu
{라오디케아인에게 보내는 편지}나 {알렉산드리아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바울의 이름을 빌린 마르키온 이단자들의 위조문서이며, 이와 비슷한 다른 문서들은
66. ra quae in catholicam eclesiam recepi non
보편교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67. potest fel enim cum melle misceri non con
그것은 (쓴 / 필자 주) 담즙이 꿀과 섞일 수 없는 것과 같다.
68. cruit epistola sane iude et superscrictio
69. iohannis duas in catholica habentur et sapi
나아가 [예수의 형제 / 필자 주] 유다의 편지를 비롯해서 위에 언급된 두 권의 요한의 편지를 보편교회는 성서로 받아들인다.
70. entia ab amicis salomonis in honore ipsius
솔로몬의 친구 (= 아마도 "필론"의 라틴어 오역인듯)의 {지혜서}를 성서로 간주한다.
71. scripta apocalapse etiam iohanis et pe
우리는 {요한의 계시록}과 {베드로의 계시록}을 받아들이지만,
72. tri tantum recipimus quam quidam ex nos
우리 가운데는 {베드로의 계시록}이 교회에서 읽히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73. tris legi in eclesia nolunt pastorem vero
74. nuperrim e temporibus nostris in urbe
헤르마스는 이 도시 (=로마)에서 아주 최근에 {목자서}를 썼는데
75. roma herma conscripsit sedente cathe
76. tra urbis romae aecclesiae pio eps fratre
그의 형제인 피우스가 로마교회의 주교로 있을 때의 일이다.
77. eius et ideo legi eum quide oportet se pu
진실로 이 {목자서}는 교회에서 권장되어야 하겠지만,
78. blicare vero in eclesia populo neque inter
79. profetas completum numero neque inter
80. apostolos in fine temporum potest
이 책은 그 숫자가 확정된 {예언서}들이나 사도들의 저작들과 함께 공공집회에서 신자들에게 읽혀져서는 안된다.
81. arsinoi autem seu valentini vel mitiadis [?]
82. nihil in totum recipemus qui etiam novu
83. psalmorum librum marcioni conscripse
우리는 아르시누스나 발렌티누스의 어떤 저작이나, 마르키온을 위해 새로운 시편을 쓴 밀티아데스의 어떤 저작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84. runt una cum basilide assianom catafry
85. cum constitutorem ...
아울러 우리는 카타프리기아 이단을 아시아에 창시한 바실리데스의 저작 역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하 소실] --- 번역: 최광민
"보편/카톨릭"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이 문건은, 현재 27권의 신약성서 문서 가운데 22권을 담고 있으며, {히브리서}, {베드로의 첫째/둘째 편지들}, {야고보서}, {요한의 세째 편지}가 빠져있는 대신 {솔로몬의 지혜}가 정경목록에 들어있다. {베드로 계시록}과 {헤르마스의 목자서}는 논쟁적인 문서로 설명되고 있다.
게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무렵, 즉 니케아 공회의(서기 325년) 이전의 교회사를 기록한 주교이자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그의 책 {교회사} 속에 서기 1세기에서 4세기까지의 정경의 확립과정에 대해 이미 아주 자세히 적고 있기 때문에, 정경의 확립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개입하기에 훨씬 앞서 그 당시 교회 내부에서 이미 상당한 정도의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
가령, AD 4세기의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 속에서 AD 2세기 프랑스 리옹의 주교 이레네우스(AD 130?-201)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교회전승과 기록에 따르면 이레네우스는 예수의 사도인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폴리카포스의 제자로서 사도 전통 2세대 안의 사람이며, {명상록}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탄압 무렵에 순교한 리옹의 1대 주교 폰티누스의 뒤를 이어 주교가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레네우스는 그노시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 {Adversus Haereses, 이단을 반박하며} 등의 저술을 남겼고 바로 이 저작 속에서 오늘날의 신약성서 속에 포함된 오직 '4개의 복음서'만을 이미 서기 2세기에 언급하고 있었다. 이레네우스의 저작 속에 등장하는 이단들은 대부분 다른 '정경' 목록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교회가 인정하는 같은 정경의 '다른 버전', 혹은 전체 정경의 일부를 누락시키고 있었다.
이레네우스가 정말로 요한의 제자 폴리카포스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아마도 이레네우스는 그의 스승 폴리카포스의 (그리고 폴리카포스의 스승인 요한의) 전승을 계승했을 것이라고 말할 충분한 근거가 있으므로, 신약성서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는 {다빈치코드}에서 말하는 것처럼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의 사도였던 요한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레네우스가 그의 {이단을 반박하며}의 한 장에서 그 ‘주님의 품안에 안겼던 제자’, 즉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를 예수의 제자 요한이라고 못밖았기 때문이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발췌인용된 이레네우스의 글의 일부를 읽어본다.
….since Irenaeus was one of them, we will now give his words and, first, what he says of the sacred Gospels: "Matthew published his Gospel among the Hebrews in their own language, while Peter and Paul were preaching and founding the church in Rome. After their departure Mark, the disciple and interpreter of Peter, also transmitted to us in writing those things which Peter had preached; and Luke, the attendant of Paul, recorded in a book the Gospel which Paul had declared. Afterwards John, the disciple of the Lord, who also reclined on his bosom, published his Gospel, while staying at Ephesus in Asia." He states these things in the third book of his above-mentioned work. In the fifth book he speaks as follows concerning the Apocalypse of John, and the number of the name of Antichrist: --- http://www.ccel.org/fathers2/NPNF2-01/Npnf2-01-10.htm#P2729_1313445
…이레네우스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말, 우선 그가 거룩한 복음서에 대해 한 언급을 여기 옮겨보겠다. : ”마태/마태오는 히브리인들과 살면서 히브리어로 복음서를 남겼고, 베드로와 바울은 로마에 가서 설교하고 교회를 설립했다. 그들이 (로마로) 떠난 후 베드로의 제자이자 통역이었던 마가/마르코는 베드로가 설교한 내용을 적어 우리에게 남겼다. 바울의 조수였던 누가/루가는 바울이 가르친 내용을 적은 복음서를 남겼다. 그 후, ‘주님의 가슴에 기대었던 그 제자’였던 요한은 소아시아 에페소스에서 머무는 동안 복음서를 적었다” 이레네우스의 이 언급은 위에 말한 그의 세번째 저작에 나온다. 그의 다섯번째 저작에서 이레네우스는 요한의 계시록에 대한 것과 적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카이사리아 주교 유세비우스, {교회사} 제 5권 8장 / 번역: 최광민
이레네우스의 {이단을 반박하며} 제 3권 1장의 내용이다. 유세비우스가 인용한 것과 정확히 같은 내용이다.
Tr. A. Roberts and W. H. Rambaut, {The Writings of Irenaeus}
https://www.archive.org/stream/irenaeus00irenuoft
[1]. WE have learned from none others the plan of our salvation, than from those through whom the Gospel has come down to us, which they did at one time proclaim in public, and, at a later period, by the will of God, handed down to us in the Scriptures, to be the ground and pillar of our faith.(2) For it is unlawful to assert that they preached before they possessed "perfect knowledge," as some do even venture to say, boasting themselves as improvers of the apostles. For, after our Lord rose from the dead, [the apostles] were invested with power from on high when the Holy Spirit came down [upon them], were filled from all [His gifts], and had perfect knowledge: they departed to the ends of the earth, preaching the glad tidings of the good things [sent] from God to us, and proclaiming the peace of heaven to men, who indeed do all equally and individually possess the Gospel of God. Matthew also issued a written Gospel among the Hebrews(3) in their own dialect, while Peter and Paul were preaching at Rome, and laying the foundations of the Church. After their departure, Mark, the disciple and interpreter of Peter, did also hand down to us in writing what had been preached by Peter. Luke also, the companion of Paul, recorded in a book the Gospel preached by him. Afterwards, John, the disciple of the Lord, who also had leaned upon His breast, did himself publish a Gospel during his residence at Ephesus in Asia. [2]. These have all declared to us that there is one God, Creator of heaven and earth, announced by the law and the prophets; and one Christ the Son of God. If any one do not agree to these truths, he despises the companions of the Lord; nay more, he despises Christ Himself the Lord; yea, he despises the Father also, and stands self-condemned, resisting and opposing his own salvation, as is the case with all heretics.
우리는 우리에게 복음(서)를 전수한 이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리의 구원에 대한 신의 계획에 대해 배운 바 없다. 이것은 원래 모든 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포되어졌고, 또 이후에는 우리 신앙의 기둥이 되게 하려는 신의 뜻에 따라 성서에 포함되어 우리에게 전수되어 온 것이다. ...[중략]......마태(오)는 유대인의 언어로 복음서를 썼다. 베드로와 바울은 로마에서 전도했고 로마교회의 기초를 닦았다. 그들이 떠난 후, 베드로의 제자이자 통역이었던 마르코(=마가)가 베드로가 전한 내용을 (복음서로) 적은 것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후 (최후의 만찬에서 / 필자 주) 주님의 가슴에 기대였던 주님의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 에페소스에 머물던 때에 직접 복음서를 저술했다...[후략]... ---- 이레네우스, {모든 이단을 반박하며} 3:1 / 번역: 최광민
그러므로 이미 콘스탄티누스 대제 “훨씬” 이전인 AD 2세기 부터, 교회는 소설 속에서 티빙이 계속 인용하게 될 여러 그노시스 계열의 ‘위경’ 문서들을 정경목록에서 배제시키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정경목록이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끼워맞춰진 것이란 주장은 '설(說)' 이상의 신뢰성을 가지고 있기 힘들다. 물론 정경목록은 같으나 일부 내용이 변개되었다고 주장한다면 다소간 이 설이 주목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신약성서의 파피루스 사본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이 조작은 콘스탄티누스 당시보다 2세기 무렵 이전에 진행되었어야 한다.
교회의 교부들과 변증가들이 소위 '여든 개 이상의 복음서', 즉 그노시스 복음서를 정경목록에서 배제시킨 이유는 그 가르침이 교회의 “사도적 전승”에 위배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계열의 문서의 일부는 1945년 상(上)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되어 세상에 빛을 보았고, 일부 문서는 이 문서들을 반박한 기독교 교부들의 글 속에 그 제목과 간략한 내용만이 파편적으로만 남아있다. 이들 문서는 초기 그노시스들의 다양한 그룹들에서 사용된 것 같으며, 특별히 나그 함마디 문서는 바실리데스, 발렌티누스, 마르시온, 세트-오피트(Sethian-Ophite)의 그룹에서 사용된 문서들을 반영했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서들 가운데서 예수의 삶 혹은 그 말을 기록한 복음서 계열에 속하는 문서들은 아래와 같다.이 문서들의 대표적인 예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으며, 추측되는 작성시기를 병기했다.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
- 도마복음서, 50-140년 경,
- 베드로복음서, 70-160년 경,
- 마가의 비밀복음서, 70-160년 경,
- 이집트복음서, 80-150년 경,
- 히브리복음서, 80-150년 경,
- 에비온복음서, 100-160년 경,
- 마르시온복음서, 130-140년 경,
- 유다복음서, 130-170년 경,
- 나자렌복음서, 100-160년 경,
- 마리아복음서, 120-180년 경,
- 구원자의 말씀, 120-180년 경,
- 야고보의 유아복음서, 140-180년 경,
- 도마의 유아복음서, 140-170년 경,
- 진리의 복음서, 140-180년 경,
- 필립복음서, 180-250년 경.
이 문서들은 '부분적으로는' 정경으로 공인된 4개의 복음서와 일치하고, '부분적으로는' 중립적이며, '부분적으로는' 정경 속에 등장하지 않는 일화들을 다루고 있고, '부분적으로는' 많이 벗어나기도 한다. 주의할 점은 이 문서가 기존의 복음서의 내용 속에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이 문서를 모두 '틀렸다'고도 할 수 없고, 또 기존의 복음서 속의 내용과 상반된다고 해서 이들 그노시스 문서가 '옳고' 기존의 네 복음서가 '틀렸다'라고 할 논리가 유도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정경으로 공인된 오늘날의 4개 복음서가 고대 카톨릭 교회의 시각을 대변한다는 이유로 그노시스 문서의 진실성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이들 그노시스 문서 역시 이 문서를 작성한 이들이 속한 그룹의 시각을 대변한 것일 수 있을 가능성을 외면해서는 않된다. 심지어 많은 그노시스 문서들은 그 기록한 사람에 대한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이 문서가 발굴된 곳은 마니교 계열의 수도원 폐허 근방이었고, 그 매장시기는 서기 350년 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서 역시 그노시스의 교리에 따라 첨삭된 문서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런 식의 논증패턴은 계속 순환되며, 따라서 공허하다.
그럼 이제 콘스탄티누스 대제 본인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자.
“글쎄 콘스탄티누스는 평생동안 이교도였지. 그러다가 자기가 죽은 침대에서 세례를 받았어. 너무 허약해서 저항할 힘도 없었을 때 말이야…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 로마의 공식종교는 태양숭배였네…콘스탄티누스는 우두머리 사제였어…” --- 한국어판 {다빈치 코드}
물론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죽기 전까지 당시 제국종교의 수석사제, 즉.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 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주의할 점이 하나있다. 이 직함은 꼭 태양신 솔 인빅투스의 최고신관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때,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로마를 대표해서 로마의 국가수호신에게 제례를 지내는 '공공직함'이었으며 '오늘날의 의미로서의' 종교적 사제나 제사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한다.
로마공화정 시절의 국가종교를 이끄는 사제들은 콜레기움 폰티피쿰 (Collegium Pontificum)이란 일종의 국가공무원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조직은 대표격인 폰티펙스 막시무스, 한 명의 렉스 사크로룸, 그리고 15인의 플라멘, 그리고 베스탈레스 (성처녀)로 구성되어 전통적인 로마 16신과 관련된 공식적인 제례를 담당했다.
로마가 제국으로 탈바꿈하는 시절인 BC 12년 초대황제인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에게 폰티펙스 막시무스의 지위가 주어졌고, 이후 자동적으로 그를 이은 황제들에게 이 칭호가 주어졌다. 로마제정 초기에는 국가제례의 대상이 유피테르를 포함한 전통적인 로마 판테온의 신들이었지만, 후대로 가면 동방에서 유래한 태양신 ‘솔 인빅투스’에 대한 신앙이 로마의 신들과 혼용된 점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 이외에 이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용어의 적용이 달라진 것은 없다.
이런 관례는 로마가 기독교를 종교로서 허용한 AD 313년의 밀라노 칙령 이후 두 세대 후인 AD 376년까지 이어져,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이 호칭을 유지한 마지막 기독교도 황제였고, 콘스탄티누스 1세 이후의 기독교도 황제들 가운데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직위를 거부한 첫번째 인물은 AD 392년 경 기독교를 배타적으로 국교화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다. AD 440년 경부터 이 호칭은 로마주교, 즉 교황의 호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 호칭을 사용한 첫 로마주교는 레오 1세였다. 따라서 어떤 "기독교도 황제"가 "폰티펙스 막시무스"란 호칭을 자동으로 보유하고 있었다고 해서 그가 "솔 인빅투스"를 포함한 로마종교를 믿었다고 자동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AD 313년 무렵 기독교를 허용한 이후에도 (혹은 개종한 이후에도), 이 직함을 계속 유지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두고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일단 콘스탄티누스가 서기 313년에 했던 조치가 기독교의 “로마 국교화”가 아니라 “공인”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제국의 황제로서 비-기독교도를 아우를 필요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에도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지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한때 솔 인빅투스, 즉 미트라교의 신자였던 콘스탄티누스의 종교적 정체성이 기독교 공인 후에도 갈팡질팡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한 추론이다. 하지만 잠시후 설명하겠지만 그의 종교적 성향은 미트라스교-기독교 간에서 벌인 진폭보다는 카톨릭-아리우스파 사이에서 벌인 진폭이 더 컸다.
콘스탄티누스는 원래 자신의 수호신을 마르스로 모셨지만, 황제가 된 무렵에는 솔 인빅투스로 갈아탔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AD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한 직후까지 발행된 그의 동전에는 솔 인빅투스/미트라스가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AD 315년 경부터 발행되는 그의 동전에는 솔 인빅투스 대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카이-로(☧)"등 기독교식 문양이나 비종교적 문양이 등장하고 있다. 그는 AD 337년에 죽었다. 이런 변화는 그의 치세가 최고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 일이다.
게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임종 시에나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곧 그가 그 전에는 기독교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세례를 “받은 후” 다시 죄를 짓는다면 영원히 신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믿는 관습이 퍼져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콘스탄티누스가 세례를 임종 직전까지 미뤘던 한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 또 한가지 이유는 그가 고대카톨릭과 아리우스파 사이에서 벌인 저울질이 그 한 이유 일 수 있다. 그는 임종 직전 무렵에 종교적이나 정치적으로 무력하지 않았고 끝까지 저울질 했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 설명하겠다.
“.. 기독교와 이교도는 전쟁을 시작했고, 그 투쟁이 격화되어 로마를 둘로 가르자는 위협적인 발언까지 나왔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만 했어. 325년 그는 단일 종교하에 로마를 통합한다는 결정을 내렸지. 바로 기독교였다네..." --- 한국어판 {다빈치 코드}
이것은 아주 틀린 진술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이던 디오클레티아누스 시절부터 로마는 이미 동서에 각각 한 명씩의 정제 (=아우구스투스)와 부제(=카이사르)를 두는 이원적 통치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강력한 국국주의 정책으로 영토를 다시 확장한 로마가, 늘어난 영토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입한 행정제도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전 세대에 서방의 정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버지이기도 한 콘스탄티우스 1세였고, 동방정제는 갈레리우스였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방에서 정제를 “참칭”한 막센티우스를 동방의 정제 리키니우스와 연합해 공동으로 격파하고 AD 313년 서방의 정제가 되었다. 그가 기독교를 공인한 AD 313년 이후에도 로마제국은, 서방의 정제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정제 리키니우스라는 이원화된 통치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즉, 이미 로마는 형식상 동서로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서방의 정제를 선포한 직후부터 동방정제 리키니우스에게 기독교 탄압을 중지라고 촉구하는 등 친기독교 정책을 펴기 시작했는데, 콘스탄티누스의 누이인 콘스탄티아가 리키니우스의 아내였던 만큼 정치/군사적으로는 AD 313년 이후에도 계속 둘 간의 알력과 크고 작은 군사충돌이 있긴 했지만 표면적으로는 아슬아슬하게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둘 사이의 평화가 최종적을 결렬된 계기는 AD 318년부터 리키니우스가 사르마티아에서 벌인 군사활동에 있다. AD 321년 리키니우스의 군대를 피해 다뉴브 강을 건너 콘스탄티누스의 관할지로 넘어와 있던 사르마티아인들이 약탈을 벌이자 그들을 추격해서 다뉴브 강을 도하해 리키니우스의 관할지를 침범한 것이다. 그 다음으론 남하한 고트족이 트라키아 일대를 약탈하자 콘스탄티누스는 다시 거병하여 리키니우스의 영내에서 군사활동을 벌였다. 리키니우스는 이를 평화협정 위반으로 선언하고 두 측간의 협정을 폐기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지체하지 않고 AD 323년부터 리키니우스와의 전쟁에 돌입하여 AD 325년 리키니우스를 제거하고 단독황제가 된 것이다. 이를 {다빈치 코드}가 말하는 것처럼 기독교-이교도간 전쟁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사실상 공인 이후의 기독교는 내부분열의 와중에서 대-이교도 전쟁보다는 내부적인 교리투쟁을 벌이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훨씬 부합한다.
{다빈치 코드}에 묘사된 정도에 해당하는기독교로의 ‘국교화’ 혹은 단일종교인 기독교로의 ‘통합’은 이보다 후인 AD 392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단행한 것이며 테오도시우스는 이어지는 조치로 제국 내 기독교를 제외한 이교숭배를 금지시켰다. 아울러 그리스 아테네에서 플라톤주의 학원이던 아카데미아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학교를 강제폐교 시킨 사람은 그보다도 훨씬 나중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였고 그 시기는 AD 529년 이었다.
.. 그래서 니케아 공회의라고 알려진 교파를 초월한 회의를 소집했던 거라오…이 회의에서 기독교의 많은 부분들이 토론되고 투표에 붙여졌소….물론 예수의 신성까지…그때까지 역사에서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그저 한 사람의 예언자일 뿐이었다오…결국 인간이었지…그래요, 신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위상 수립은 니케아 공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되고 투표에 부쳐진 것이었다오… --- 한국어판 {다빈치 코드}
AD 325년의 니케아 회의 이전까지는 예수가 “그저 한 사람의 예언자”로 신앙되었다는 이 진술 또한 넌센스다. 물론 그렇게 믿던 초기 그룹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독교 교부들의 기록 속에 보고되어 있다. 에비온주의자, 나자렌,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의 가족이 한때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엘카사이 등이 그런 그룹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 그룹은 한번도 다수적 지지를 받은 적 없는 국지적 그룹이었다.
니케아 공회의의 주제는 ‘삼위일체’ 문제를 놓고 아타나시우스파와 아리우스파가 벌인 신학논제와 '부활절 산정방식'을 놓고 소아시아의 교회들이 제기한 문제 둘로 압축될 수 있다. 그때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아타나시우스파 (이를 보통 '카톨릭'이라 칭한다. 이 '카톨릭'은 삼위일체 신조를 받아들인 정통파 교회가 라틴교회, 그리스교회, 꼽트교회,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로 분리되기 이전의 정통적 교회를 말한다.)와 그것을 거부하는 아리우스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절충적 입장을 가지던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가 니케아에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아리우스파에게 있어서 조차도 예수는 그저 '위대한 인간'이 아닌 이미 역시 일종의 '신'이었다. 신이되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있어서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하는 주교들이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을 주장한 반면, 아리우스를 지지하는 주교들은 신플라톤주의적 이해에 따라 성자를 성부 아래 종속된, 즉 나아가 성자를 성부에 의해 '창조'된, 그래서 성부보다 열등한 두번째 지위의 '신'으로 이해한 차이가 있었다. 정리한다면 이미 니케아 공회의에 참가한 모든 그룹들 사이에 '예수는 신의 아들'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전혀 이견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 본인이 주재한 니케아 공회의가 '삼위일체'를 공식교리로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누스는 점점 아리우스파에게 기울었고 결국은 아타나시우스 주교와 그의 지지자들을 수차례 추방/투옥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말년에 아리우스파에게 완전히 기울었고 친-아리우스주의자였던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주교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결국 그는 다소간 아리우스주의자로 죽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임종 직전까지 추진하던 일이 니케아 공회의 이후 면직/파문된 사제 아리우스를 콘스탄티노플로 불러 복권시키는 일이었듯이, 콘스타티누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교회에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한편, 아리우스는 사면을 받으러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던 중 객사했다. 아리우스파는 콘스탄티누스 사후에 다시 동서로 이원화된 로마제국의 서쪽과 게르만족 사이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했고 (게르만 가운데 프랑크족을 제외한 모든 게르만족은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했다.), 심지어 로마에서 통치하던 서방정제들과 다수의 로마주교(교황)은 친-아리우스 노선을 상당기간 동안 유지했다.
§ Q 문서의 역사성?
티빙은 소설 속에서 소위 {Q문서}를 언급하며, 이 문서 속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어떤 행적, 특별히 “인간적인 행적”이 적혀있기 때문에 바티칸이 은폐하려고 하는 문서인듯 기술하고 있다.
… 상그리엘 문서들은…콘스탄티누스 이전의 기록이지. 그리고 예수를 인간적인 스승과 예언자로 존경한 초기 추종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오. 게다가 보물의 일부는 전설적인 Q문서란 소문이 있어요. 이 문서는 바티칸조차 실제로 존재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원고요. 예수 자신이 직접 썼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가르침을 담은 책이오… --- 한국어판 {다빈치 코드}
그러나 {Q문서}란 “가상”의 문서이며 역사상 어느 사료도 이 문서의 존재를 언급한 적이 없다. 이 문서는 19세기 고등문헌비평가들이 신약성서의 네 복음서를 대조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공관복음’이라 불리는 앞의 세 복음서에서 공통되는 부분들을 정리해 본 끝에, 아마도 이 세 복음서 이전에 존재했었을, 즉 세 복음서가 기초했었을 어떤 공통의 전승을 ‘상정’하고 이를 독일어로 Quelle, 즉 ‘자료’란 단어의 앞머리를 따서 붙인 ‘가상’의 전승을 지칭할 뿐이다. 물론 이 가상의 Q문서가 역사상 실재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이 지금의 복음서와 판이했을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Q문서 이론을 제창했던 어느 고등문헌비평가들도 이 문서가 예수 자신에 의해 직접 씌여진 문서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문서의 실제 존재여부를 바티칸이 인정하든 말든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 속 티빙의 말은 꽤 생뚱맞다.
§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
이 소설의 뿌리에 해당하는 이론, 즉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가 결혼했고 그 아들이 메로빙 왕조의 조상이라는 전설은 뿌리가 다른 두가지 이질적 전설이 어설프게 결합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메로빙 왕조의 '건국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중동에서 유입되어 발전된 '성배전설'이다. {다빈치 코드}가 다루는 이론에 관한 내 의견을 묻는다면, 각종 (그노시스) 복음서와 프랑크족 탄생설화의 조잡한 결합이라고 보고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무시하겠다. 보통 이런 식의 저술들은 전형적인 자기인용(self-reference) 형식을 취한다. A를 B가 인용하고, 그 B를 다시 C가 인용하고....이런 식의 자기인용은 아무리 많은 인용리스트를 제시한다고 해도, 결국은 A를 말할 뿐인 것이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비교분석이 없는 자기인용은 전체 논리에 심각한 헛점을 남길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상누각 혹은 소리만 나는 빈수레가 될 위험을 늘 가진다
§ 메로비의 탄생설화
우선 살펴볼 것은 AD 7세기 프랑크 왕국의 연대기인 {Fredegar 연대기}에 등장하는 프랑크 왕국의 초대왕조 메로빙 왕조의 전설적인 조상인 메로비(Merovee)의 탄생설화다. 이 전설에서 메로비의 어머니가 되는 프랑크족의 왕 클로디오의 아내를 공격한 '먼 바다에서 온 바다괴물(Quinotaur - 다섯 뿔 달린 (바다)황소 / bestea Neptuni Quinotauri similis")'이 등장하는데, 이 생물이 여왕을 임신시켜서 난 메로비가 메로빙 왕가를 열었다는 것이 이 탄생설화의 핵심이다. 이 전설에서 '먼 바다에서 온 바다괴물'을 물고기 혹은 초기 기독교의 상징이었던 '물고기' 문양, 즉 '이크튜스'로, 나아가 '그리스도'로 치환시키고, '여왕'을 '막달라 마리아'로 치환시키면 앞의 전승과 대충 얼버무릴 수 있다. 아울러 프랑스 남부해안과 지중해 일대에는 이와 유사한 전설들, 즉 '처녀를 임신시킨 돌고래'와 관련된 설화들이 남아있다.
메로빙 가문의 귀족들이 이후 유럽의 왕들이 보통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는 유대식 이름들을 애용한 건 사실이지만,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들을 예수의 직계라고 부를 근거는 없다. 게다가 막달라 마리아가 이주했다는 전설은 프랑스 말고 다른 지역에도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사실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는 히브리어로는 믹달, 마리아는 히브리어로 미리암, 아람어로 마리암이 된다.)가 프로방스로 갔다는 전설과, 예수가 부활시킨 베다니의 나자로가 박해를 피해 갈리아 지방, 즉 오늘날의 프랑스 지방 마르세이유로 건너가 그것의 초대주교가 되었다는 전설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후자의 전설에서 나자로는 자신의 여동생 (마르타와 마리아) 및 막달라 마리아와 건너간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은 아리마대 요셉이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A.D. 63년에 골지방으로 (나중에는 브리타니아로) 건너갔다는 류의 전설은 문헌상으로만 본다면 서기 12세기 이전에는 서유럽의 기록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위의 프로방스 전설과는 전혀 달리, 비잔틴 즉 동로마 교회의 전승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초기 기독교 교회의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팔레스티나와 소아시아 지방에서 죽었고 나중에 그들의 유해가 콘스탄티노플로 이장되었다고 전하고 있다는 점을 역시 지적해야 겠다. 가령,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소아시아 지방 에페소스로 가서 거기서 죽었고 그녀의 유해는 서기 888년에 콘스탄티노플로 이장되었다고 적고 있다.
중세기 내내 프랑스의 하층민중들은 프랑스 왕의 혈통에 신성한 피가 흐른다고 줄기차게 믿을 뿐 아니라 프랑스 왕에게는 병을 고치는 초능력이 있다고 믿었는데 프랑스 왕들은 정기적으로 지역을 순회하면서 환자 몸에 안수하는 의식을 거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물론 이들 대중들이 프랑스 왕가가 예수의 후손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미신은 메로빙 왕조와 상관없는 카롤링, 카페, 부르봉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사실 프랑스 국왕이 이런 미신을 은근히 방관/조장한 것은, 신성로마제국과 대립하면서 독자적 정치세력을 유지해온 프랑스의 전략적 음모가 아니었다 싶다. 프랑스의 수도사 앗소(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앗소는 이 앗소를 암시한 것이다.)는 종말론이 고조되던 서기 999년 무렵,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닌) 프랑스의 국왕이 자신의 왕홀을 예루살렘에 봉헌하게 될때 세상에 종말이 오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남긴 바 있다. 중세질서상 한단계 위인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프랑스 '국왕'이 한방 먹인 셈이다.
그런가하면, 영국인들은 프랑스처럼 대담하게는 말 안했지만, 자기네들이 유다부족의 후예, 다윗왕의 후예라고 믿기도 했었다. (그건 전통적인 영국왕가의 상징이 '사자'이기도 하고, 또 여기에도 메로빙 왕조와의 혈연을 끌어다 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자'를 왕가와 부족의 상징으로 취하는 것이 비단 영국 뿐이던가?) 이것을 소위 ‘브리티쉬-이스라엘리즘’이라고 부른다. 이 브리티쉬-이스라엘리즘은 영국 제국주의 이념적 배경의 한 축을 구성하기도 했다 (유사종교화 되어 지금도 남아있다.)
§ 그노시스 문서 속의 막달라 마리아
역사적/교리적 근연성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노시스’는 결코 단일 교단이 아니다. 그 안에는 보다 기독교에 유사한 '정교' 그노시스와 보다 이교에 가까운 '이교' 그노시스가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정교 그노시스라고 하더라고 이들을 당시의 정통파 기독교로 불리던 고대 카톨릭 교회 (이 당시는 교회 분리 이전이므로 모두 고대 카톨릭 교회라 칭한다.)와 교리적으로 얼마나 가까왔는 지는 묘연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이들이 카톨릭 교회와 다른 정경목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경전이 다른 두 그룹을 같은 그룹으로 묶기는 매우 곤란하다는 말이다. 초기 기독교 교회는 아주 다양한 그노시스 그룹으로부터 파상공세에 대응했고, 그 대응기록은 AD 1세기 말부터 교부들의 기록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신약성서의 서신서 가운데는 그 당대에 등장하고 있던 몇몇 그노시스 계열의 출현에 대한 경고가 이미 등장하고 있다. 이 그룹들은 일반적으로 예수의 육체성을 부정하고, 그의 육체적 죽음 또한 부정했다. 그래서 사실 티빙의 말과는 달리, 그노시스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적 예수”를 신봉하지 않았다.
20세기 전까지 이들의 가르침은 AD 2세기의 이레네우스를 비롯한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다양한 반박문 속의 인용구들을 통해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다가 1945년 이집트의 나일강 상류 나그 함마디에서 파피루스에 씌여진 이들의 문서들이 대량 출토됨에 따라 이들의 가르침에 대한 연구가 비로소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이 사본들은 당시 이집트의 민중어였던 꼽트어로 거의 기록되어 있으며, 언어학적 증거를 고려해 볼때 이들 사본들은 원래는 그리스어로 씌여졌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주 다양한 그노시스 그룹들의 온상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당시에 헬레니즘 문화를 재생산/보급하던 전초기지와 같았고, 그곳의 학문 및 일상용어는 그리스어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된 이들 꼽트어 사본들은 알렉산드리아에 기반을 둔 바실리데스 혹 발렌티누스파의 계열에서 작성했을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된 모든 코덱스의 영문번역은 아래 싸이트에서 모두 열람할 수 있다. http://www.gnosis.org/naghamm/
최근 들어서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스승과 제자 이상의 관계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런 가설들은 주로 AD 2-3세기에 작성된 그노시스 계열 몇몇 위경 복음서 속 암시 (가령, 필립복음서, 원초복음서, 도마복음서)와, 공인된 신약성서 복음서에 등장하는 몇몇 불명확한 문장으로부터 도출 된 것이다.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든 첫 기적을 보여준 카나의 결혼식이 바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식이었다라든지, 막달라 마리아가 복음서에서 부활한 예수를 들어 '랍오니 ‘'라고 부를 때의 그 아람어 단어가 종종 '남편'에게도 적용되었던 단어였다든지, 복음서 내용 중 최후의 만찬장에 예수 곁에 앉았던 "사랑하는 제자"가 요한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였을 것이라든지 하는 해석이 바로 그런 것이다. 게다가 이런 해석은 (마치 {다빈치코드} 속의 티빙의 단언처럼) 예수를 “페미니스트”로 해석함으로써 페미니즘에 호의적이고 친-그노시스적 (주로 여성) 신학자나 작가들의 지지를 받는다. 예수와 마리아의 결혼 이야기의 배후에 깔린 소위 “페미니즘” 신학은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의 아내로 “설정”함으로써 결국 여성의 지위를 격상시키려는 성정치적 편향의 이념을 담고 있다.
최근들어서 막달라 마리아가 교회 역사에서 오랫동안 무시된 것이 남성 위주의 교회 내 여성 억압에세 기인했다는 주장들이 강력하게 등장하고는 있지만, 나는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서기 6세기 말의 한 설교에서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마리아를 단 한 명으로 보는 해석을 내었고, 그 결과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 귀신들렸던 마리아, 그리고 간음했던 여인 등을 모두 한 사람 ‘막달라 마리아’로 보는 해석이 20세기까지 로마 카톨릭의 공식적 해석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1969년 로마교황청이 이 해석을 번복/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간음한 창부로 해석하려는 전통은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다.
하지만 최근 {뉴스위크}등에 게재되어 인기를 끈 이론, 즉 "남성위주"의 교회가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서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에서 '창녀'로 깍아내렸다는 현대적 주장이 무색할 정도로, 원래는 '막달라 마리아'를 지혜의 투사인 '소피아'의 지상에서의 화신으로 간주했던 일부 그노시스들이야 말로, 소피아의 입을 빌어 소피아에게 "성녀이자 창녀"라는 이중성을 부여한 선구자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일부 그노시스들에게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의 몸을 빈 소피아의 현신으로 투사되기도 했던 것이다. 가령, 현존하는 그노시스 문헌 단편 가운데 {천둥 : 완전한 정신}이라 이름된 문서는 지혜를 상징하는 (여성형) “소피아”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문서 역시 1945년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되었다. 그노시스들에게 소피아의 이중성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이해하는데는 이 문서보다 더 분명한 것이 없다. 아래는 Geoge W. McRae가 꼽트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The Thunder : Perfect Mind (발췌) (1987, 1990),
George W. McRae 번역 http://www.gnosis.org/naghamm/thunder.html
…(전략)
For I am the first and the last.
I am the honored one and the scorned one.
I am the whore and the holy one.
나는 창녀이자, 또한 성녀이다.
I am the wife and the virgin.
I am the mother and the daughter.
I am the members of my mother.
I am the barren one and many are her sons.
I am she whose wedding is great, and I have not taken a husband.
I am the midwife and she who does not bear.
I am the solace of my labor pains.
I am the bride and the bridegroom, and it is my husband who begot me.
I am the mother of my father and the sister of my husband and he is my offspring.
I am the slave of him who prepared me.
I am the ruler of my offspring.
But he is the one who begot me before the time on a birthday.
And he is my offspring in (due) time, and my power is from him.
I am the staff of his power in his youth, and he is the rod of my old age.
And whatever he wills happens to me.
I am the silence that is incomprehensible and the idea whose remembrance is frequent.
I am the voice whose sound is manifold and the word whose appearance is multiple.
I am the utterance of my name.
…. (후략)
“나는 창녀이며 또한 성녀이다”라는 소피아의 진술은 이 문서에 등장하는 “여성적” 화자인 소피아/지혜의 속성을 아주 극명하게 짚고 있다. 또한 “나는 불임이지만, 또한 나는 자식이 많다” 라는 진술은 이 문서와 장차 언급할 {필립복음서}의 내용과의 연결고리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후 설명하도록 하겠다. 여신이 없는 기독교에 처음으로 여성화된 신격을 결합시키기 시작한 것은 그노시스였는데, 이들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궁극적 지혜”의 여성화된 신격인 소피아를 투사했고, 소피아에게 상호배타적 두 속성, 즉 성녀와 창녀 두가지 속성을 부여한 것도 사실은 이들 그노시스들이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기독교 이단인) 그노시그 문헌과 중세전설에서 때로는 성녀로, 때로는 창녀로, 때로는 소피아의 화신으로 끊임없이 재등장할 것이다. (소설 속의 여주인공의 이름인 '소피'라는 이름 자체가 그노시스에 대한 레퍼런스, 즉 '소피아'를 상기시킬 의도로 선택된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노시스가 정통 기독교보다 더 근본적인 기독교였다는 논리를 펴는 경향을 보인다. 즉, 보다 비교적이고 여성적 기독교가 본래적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노시스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문서 가운데 하나인 {도마복음서}에 따르면, 그들의 설명과는 약간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이번에는 {도마 복음서}를 살펴보자.
§§ {도마 복음서}: 예수는 페미니스트였을까?
http://www.gospelthomas.com/gospelthomas114.html
소설 속에서 티빙은 예수가 “페미니스트”였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럼 과연 그노시스 복음서 속에서 예수가 어떤 의미의 페미니스트였는지 살펴보자.
우선 이집트 나그 함마디에서 출토된 꼽트어 {도마 복음서}의 마지막 장을 한번 읽어보자. 빠르면 서기 1세기 말 혹은 2세기 중반 경에 작성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는 {도마 복음서}는 원래 그리스어로 씌여지고 나중에 꼽트어로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서는 초기 기독교의 구전전승의 연구에 아주 중요한 위치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어에서 한국어로의 중역은 내가 했다.
위경 {도마 복음서} 제 114절 : 나그함마디 출토 꼽트어 사본
Michael W. Grondin 번역
- http://www.gospelthomas.com/gospelthomas114.html
- http://www.geocities.com/Athens/9068/gtbypage_112702.pdf
...Simon Peter said to them: “Let Mary go forth from among us, for women are not worthy of the life. “ Jesus said: “Behold, I shall lead her, that I may make her male, in order that she also may become a living spirit like you males. For every woman who makes herself male shall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시몬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에게) 말했다.“여자는 영생을 누릴 자격이 없으니, (막달라 마리아를) 우리 가운데서 내보내자.”그러자 예수가 말했다.“보아라, 그녀 또한 너희 남자들처럼 살아있는 영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막달라) 마리아를 이끌어 그를 남성으로 만들것이다. 자신을 남성으로 만드는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 번역: 최광민
페미니즘 신학자들에게는 유감이지만, 그노시스 문헌 가운데 이들에게 가장 찬사받는 {도마복음서}의 가장 마지막 문단은 막달라 마리아를 ‘남성’으로 변화시켜 구원시킬 것이라는 너무도 ‘남성중심적인’ 예수의 선언으로 끝나고 있다는 점을 이들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마 복음서}가 페미니즘적 기독교를 가르치고 있다는 친-그노시스적 작가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위의 주장을 하는 그룹들은 의도적으로 {도마 복음서}의 이 마지막 문단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심지어 {도마 복음서}라고 한들 (현대적 의미의) 페미니즘이 끼어들어갈 구석은 별로 없다.
여담이긴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이 그노시스 {도마 복음서}와 대승 정토불교의 주경전인 정토삼부경의 하나인 {아미타경}과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세 종교적 흐름은 거의 동시대에 이루어졌고, 당시 인도북부에서 이집트까지의 대상로는 이미 활발하게 뚫려있었다. 기원 후에 문서로 작성된 {아미타경}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서쪽 끝 서방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바' 혹은 '아미타유스'라는 이름의 붓다에 대한 것이다. 이 서방정토에는 오직 "남자"만 들어갈 수 있다. 혹은 오직 남자만이 태어난다."아미타"는 "무한", "아비타바"는 "빛", "아미타유스"는 "수명/생명"을 각각 뜻한다. 그래서 "아비타바 붓다"는 "빛의 붓다" 즉, "광명불"이자 또 "무량수불"이며 "광명(光明)"이란 용어는 특별히 당나라 이래로 중국의 마니교도들에 의해 애용된 단어이기도 하다. 보통, 종교의 습합이 일어나는 경우 한 종교적 모티프가 다른 종교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 지를 밝힌다는 것은 매우 불분명하다. 하지만 {아미타경}과 많은 대승불교 경전의 모티프는 인도 고유의 것이라고 보기는 확실히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미타는 아마도 인도의 서쪽에 위치한 페르시아의 국가종교 조로아스터교에서 태양으로 표상된 미트라를 의미하는 것이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다지 확정적이진 않다.
§§ {마리아 복음서}: 예수의 수제자?
http://www.gnosis.org/library/marygosp.htm
위경 {마리아 복음서}는 AD 5세기에 제작된 파피루스 코덱스 형태로 1896년 발견되었고 (따라서 1945년에 발견된 '나그 함마디 문서군'에 속하지는 않는다) 꼽트어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AD 3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어로 된 파편이 이집트에서 발견된 점으로 볼 때, 아마도 AD 2세기 중/후반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를 보면 확실히 막달라 마리아를 다른 남성 사도들보다 위에 두고 있는 듯 보인다. 부분적 내용만 전하는 이 문서는 예수가 승천한 다음 남성사도들과 마리아가 스승의 가르침을 나누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다. 이 문서 속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에게서 전수받은 가르침을 다른 사도들에게 전하는데, 이때 안드레와 베드로가 막달라 마리아의 신빙성을 의심하자 막달라 마리아는 울며 자신을 변호하고, 레위(마태)는 마리아를 두둔한다. 이야기는 모든 사도가 레위의 말에 수긍하고 복음을 전파하기로 결의한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여기서 레위의 진술은 아마도 위의 {도마복음서}의 예수의 진술과 연관되는 듯 하다. 즉, {마리아복음서} 속에서 레위는 베드로로부터 막달라 마리아를 두둔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꼽트어 원문과 직역을 첨부한다.
http://gospel-thomas.net/MaryInterlinear.pdf
"…But if the Savior made her worthy, who are you indeed to reject her? Surely the Savior knows her very well. That is why He loved her more than us. Rather let us be ashamed and put on the perfect Man, and separate as He commanded us and preach the gospel, not laying down any other rule or other law beyond what the Savior said…" -- tr. Gnostic Society Library
…만약 주님이 그녀를 자격있는 존재로 만드신거라면 그녀를 거부하는 (베드로)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 주님은 그녀를 분명 잘 아실거네. 그게 주님이 그녀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신 이유겠지. 오히려 우리는 이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 이제 완전한 사람을 덧입어, 주님이 명령하신 것처럼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이 정하지 않은 어떤 규칙이냐 율법도 강제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남성 사도들과의 이런 긴장관계는 다른 그노시스 문헌들 {이집트 복음서}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gospelegyptians.html {피스티스 소피아}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pistis.html 에도 등장한다. 그럼 도대체 왜 이들 그노시스 복음서들에서는 다른 사도들이 막달라 마리아를 질투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그 답은 {필립포스 복음서} 속에 이미 들어있는 듯하다.
그럼 이번에는 {필립포스 복음서}로 들어가보자.
§§ {필립포스 복음서}: 주님의 짝?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gospelphilip.html
서기 180-250년 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위경 {필립포스 복음서}는, 소설 {다빈치 코드} 속의 티빙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배우자였다는 근거를 증명하는 좋은 출발점"이라고 단언하고 있는 문서이다. 그럼 꼽트어에서 번역된 이 문서의 두가지 영어번역을 살펴보자. 이 문서 역시 원전은 그리스어로 작성되었을 것으로 알려져있다.
1963년 독일 베를린에서 출판된 Walter Till의 {Das Evangelium nach Philippos / 필립포스 복음서}에 따라 꼽트어와 영어의 대역을 함께 실었다. (source: http://www.metalog.org/files/till.html)
우선 제 36절을 읽어보자.
‘주님의 짝’? 그 다음 진술은 더 흥미롭게 들린다.
소설 {다빈치 코드} 속에서 티빙은 이 속에서 (1)입맞춤 과 (2) 짝이라는 두 단어를 지적한다.
그럼 이 두 단어의 {필립포스 복음서} 상의 용례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 “입맞춤”에 대한 문헌적 이해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키스를 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노시스들의 이 기록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가 일반적인 스승-제자의 관계가 아닌 아주 특별한 관계, 즉 연인관계였다는 암시일까?
그런데 {필립포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여기서 말하는 “입맞춤”은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 간의 입맞춤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왜?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 뿐 아니라 다른 "남자" 제자들과도 입맞춤을 하기 때문이다. 가령, 아래 문단에서 예수는 제자 야고보와 입맞춤을 한다. 그럼 예수는 남자와 여자 제자 모두에게 "구애"한 양성애자라도 된단 말인가?
그럼 이번에는 {필립포스 복음서}로 들어가보자.
§§ {필립포스 복음서}: 주님의 짝?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gospelphilip.html
서기 180-250년 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위경 {필립포스 복음서}는, 소설 {다빈치 코드} 속의 티빙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배우자였다는 근거를 증명하는 좋은 출발점"이라고 단언하고 있는 문서이다. 그럼 꼽트어에서 번역된 이 문서의 두가지 영어번역을 살펴보자. 이 문서 역시 원전은 그리스어로 작성되었을 것으로 알려져있다.
1963년 독일 베를린에서 출판된 Walter Till의 {Das Evangelium nach Philippos / 필립포스 복음서}에 따라 꼽트어와 영어의 대역을 함께 실었다. (source: http://www.metalog.org/files/till.html)
우선 제 36절을 읽어보자.
36. There were three who always walked with the Lord: Mary, his mother, and her sister, and Magdalene, the one who was called his companion. His sister and his mother and his companion were each a Mary (Wesley W. Isenberg 번역)
36. There were three Mariams who walked with the Lord at all times: his mother and {his} sister and (the) Magdalene°— this one who is called his mate. Thus his (true) Mother and Sister and Mate¹ is (also called) ‘Mariam’ (Peterson Brown 번역)
…늘 주님과 함께 한 세 명의 마리아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 그의 누이, 그리고 '주님의 짝'이라 불리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이 세 사람이 모두 마리아였다… --- 번역: 최광민
‘주님의 짝’? 그 다음 진술은 더 흥미롭게 들린다.
Wesley W. Isenberg 번역
59. …And the companion of the {...} Mary Magdalene. {...} loved her more than all the disciples, and used to kiss her often on her mouth. The rest of the disciples {...}. They said to him "Why do you love her more than all of us?"
Peterson Brown 번역
59. … And the Mate of the {Christ} is Mariam the Magdalene. The {Lord loved} Mariam more than {all the (other)} Disciples, {and he} kissed her often on her {mouth.} The other {women} saw his loving Mariam, they say to him: Why do thou love {her} more than all of us? The Savior° replied,he says to them: Why do I not love you as (I do) her?
… 막달라 마리아는 {…}의 짝이었다. {…}는 다른 제자들보다 그녀를 사랑하셨고, 종종 그녀 {…}에 입을 맞추시곤 했다. 제자들은 예수에게 말했다. “왜 그녀를 우리 모두보다 더 사랑하십니까?”… --- 번역: 최광민
소설 {다빈치 코드} 속에서 티빙은 이 속에서 (1)입맞춤 과 (2) 짝이라는 두 단어를 지적한다.
그럼 이 두 단어의 {필립포스 복음서} 상의 용례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 “입맞춤”에 대한 문헌적 이해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키스를 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노시스들의 이 기록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가 일반적인 스승-제자의 관계가 아닌 아주 특별한 관계, 즉 연인관계였다는 암시일까?
그런데 {필립포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여기서 말하는 “입맞춤”은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 간의 입맞춤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왜?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 뿐 아니라 다른 "남자" 제자들과도 입맞춤을 하기 때문이다. 가령, 아래 문단에서 예수는 제자 야고보와 입맞춤을 한다. 그럼 예수는 남자와 여자 제자 모두에게 "구애"한 양성애자라도 된단 말인가?
And Jesus kissed my mouth. He took hold of me saying: 'My beloved! Behold, I shall reveal to you those things that the heavens nor the angels have known. Behold, I shall reveal to you everything, my beloved. Behold, I shall reveal to you what is hidden. But now, stretch out your hand. Now, take hold of me'.예수는 나 (=야고보)에게 입을 맞추셨다. 그는 이 말씀을 하셨다. "내 사랑하는 자여 보라, 이제 내가 네게 하늘들도 천사들도 모르는 것을 알려주겠다. 보라, 나는 네게 모든 것을 드러내 보여주겠다, 내 사랑하는 자여. 보라, 나는 네게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리라. 그러나 지금은 네 손을 펴고 나를 불들아라. --- 위경 {필립포스 복음서} / 번역: 최광민
위에 인용된 제 59절에서의 “입맞춤”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위해 제 35절을 읽어보자. (이후 직역에 보다 가까운 Peterson Brown의 번역을 전용하겠다.)
여기서 입맞춤은 ‘구애’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수단이다. 이것이 물리적 입맞춤을 수반한 어떤 영성적 행위의 메타포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 의미는 분명 종교적 상징을 가지고 있다.
아래의 인용구는 그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필립포스 복음서} 속의 ‘입맞춤’이라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일단 이 40절은 위에 언급한 또 다른 그노시스 문서 {천둥:완전한 정신}과 직접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의미는 꽤 불투명하다. “소금에게 (혹은 소금 안에서) 입을 맞추는 행위”는 아마도 ‘진리로 귀의한다’는 의미인 듯 하다. 여기서 우리는 {필립포스 복음서} 속의 입맞춤은 연인 간의 입맞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금은 맥락을 잘 알 수 없는, 이 그노시스 교단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던 어떤 종교적 상징행위를 말하는 듯하다.
사실상 이 ‘입맞춤’은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던 관습, 즉 신약성서 속에서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하던 ‘형제/자매 간의 거룩한 입맞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의미가 단순한 ‘인사’ 정도로 희석되었지만,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이 ‘거룩한 입맞춤’은 단순한 인사 이상의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가진 신비적 상징 행위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심지어 기독교도들 조차도 종종 잊는다.
AD 112년, 기독교를 탄압했던 로마황제 트라야누스의 친구이자 정치가, 문필가였던 少 플리니우스는 경제난을 겪고 있던 비시니아(Bythynia) 의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그 지역의 기독교도들을 취조하게 되었다. 처음에 자기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도들을 사형에 처하던 플리니우스는 점차 흥미가 생겨서 기독교도들이 기소된 내용들을 조사해보게 되었고, 기독교도들을 어떻게 다루는 방법에 대해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조언한 편지 기록이 현대에 남아있다.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text/pliny.html
당시 기독교도들은 세가지 항목의 기소를 받고 있었다. 그것은 각각 (1) 무신론 (2) 식인행위 (3) 근친상간이다 처음 기소내용은 기독교도들이 유일신을 섬기는데서 생긴 오해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는 것은 그래서 로마인들에게는 무신론과 같았다.). 두번째 기소항목인 식인행위는 성찬식 중 “이것은 내 몸과 피”라는 예수의 말에 대한 오해였다. 그리고 마지막 근친상간은 바로 이 형제/자매 간의 ‘입맞춤’ 행위에 대한 오해였다.
가령, 라틴 변증가인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펠릭스는 그의 {옥타비우스}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AD121 - AD180) 의 교사였던 프론토 (Fronto)가 현란한 화술로 로마인들에게 퍼트린 "~카더라" 혹은 "~아님 말고" 식의 주장을 아래와 같이 옮긴다.
‘입맞춤’은 초기 기독교 내에서 무척 비중있게 다뤄지던 종교적 행위였다. 초기 기독교 안에서 모든 참석자는 성찬을 받기 전에 성의 다름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입맞춤’의 의식을 가졌는데, 그럼 왜 로마인들은 이 ‘입맞춤’ 행위로부터 ‘근친상간’을 떠올렸을까? 그것이 이 ‘입맞춤’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럼 우선 초기 기독교 교부들과 변증가들이 이 ‘거룩한 입맞춤’에 대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AD 2세기의 교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 - 220 AD)는 그의 저술 {Paedogogas} 3장 17절 속에서 이 ‘거룩한 입맞춤’의 잘못된 사용을 이렇게 경고한다.
클레멘스는 이 ‘교회 안의 입맞춤’은 거룩하고 신비스런 상징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사용에 각별한 주의를 달고 있다. 한편 아테나고라스는 만약 그 ‘입맞춤’에 음란한 마음이 끼어드는 경우를 들어서 경고까지 하고 있다. 그 경고는 매우 엄중하다. 신자는 영생을 잃을 수도 있다!
현대에 와서 이 ‘거룩한 입맞춤’은 일요일 마다 교회에서 하는 ‘안부인사’ 정도로 그 상징적 의미가 희석되어 포옹이나 악수로 대체되거나 혹은 사라졌지만, 초기 기독교에서의 이 ‘입맞춤’은 성사적 효력을 가지는 상징적 행위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Stephen Benko의 {Pagan Rome and the Early Christians (Indiana University Press, 1986)}은 이 “거룩한 입맞춤”에 대해서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위의 클레멘트의 글에서도 나오지만, 초기 기독교도들의 ‘거룩한 키스’는 뺨이 아닌 다른 이의 입에 하는 (mouth-to-mouth) 키스였다. 그런데 이 키스는 신약성서 {요한복음} 20장에 나타나는 (부활한) 예수의 행동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럼 이제 그리스어 원문에서 이 입맞춤이 어떤 맥락 하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자.
그런데 이 “숨을 내쉬었다”라는 말에 해당하는 단어 ενεφυσησεν는 그리스어에서 두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바람을 내분다 (blow)’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을 ~에 불어넣는다 (breathe upon)’란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기원전에 번역된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70인역}에서 단 한번 {창세기}에서 사용되었고 그 의미는 두번째 뜻이다. 즉, 이 행동은 {창세기}에서 신이 아담을 창조하고 그에게 영을 불어넣는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되고 있다.
위의 히브리어 성서에서 사용된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콧구멍”을 의미하지만 구약성서 여러부분에서 제유적 표현으로 문맥에 따라 “얼굴”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관점은 그리스어 {셉튜아긴트}에도 반영되고 있다. 즉, 이 그리스어 번역에서 신은 아담의 콧구멍이 아닌 얼굴 위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고 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입과 입으로 전하는 ‘거룩한 입맞춤’과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성령을 주고받는 상징적 행위로서의 ‘거룩한 입맞춤’의 상징은 또한 그노시스 계열의 그룹에서도 계승되었다고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그노시스들이 그 행위에 보다 더 많은 비교적 상징을 추가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필립포스 복음서} 상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막달라 마리아를 시기한 이유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연인관계여서가 아니라, 자신들과는 막달라 마리아 만큼 종종 ‘입맞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입맞춤’이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것은 아마 ‘특별한 가르침의 전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많은 그노시스 문헌들에서는 예수의 다른 사도들이 막달라 마리가를 시기한 이유를 예수가 사도들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떤 특별한 비전을 전수했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럼 다음으로는 {필립포스 복음서}에 등장하는 “충격적인” 단어, “주님의 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 주님의 짝?
소설 속의 티빙은 (예수의 일상어였을) 아람어로 ‘짝’에 해당하는 말이 “부부”라는 의미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필립포스 복음서}는 원래 그리스어로 씌여지고나서 이집트 꼽트어로 번역된 것으로 언어학자들은 보고있다. 그러므로 ‘짝’에 해당하는 꼽트어의 그리스 대응어는 ‘코이노노스’ 이다 (꼽트어상 발음도 그리스어와 같다.). 이 단어는 물론 배우자를 의미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배우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친밀한 우정과 친교를 나누는 동료를 의미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만으로는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를 부부나 연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 단어 "코이노노스 / κοινωνὸς (단수)" 혹 "코이노노이 / κοινωνοὶ (복수)"는 {신약성서} 속에도 몇번 등장한다. 이 단어는 보통 사도들의 "동역자"를 뜻할 때 사용되었다. {루가/누가복음서} 5장 10절에서 그 한 사례를 살펴보자. 인용하겠다.
물론 예수의 사도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시몬 베드로와 "부부관계"가 아니었음은 당연하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이는 동역자, 동업자, 의기투합한 자 등을 뜻한다.
{필립포스 복음서} 속에서 이 ‘짝짓다’라는 단어 역시 유사한 용례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영어로 번역된 unite와 mate는 모두 위와 같은 용례에 상응한다. 제 120절을 읽어보자.
말할 필요없이 여기서 ‘로고스’는 ‘예수’다. 그래서 이 제 120절의 의미 속에서 ‘코이노노스’는 반드시 배우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필립포스 복음서} 속의 그 ‘짝’에 대한 ‘사랑’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것은 성적결합으로서의 ‘코이노노스’가 아니라 영적연합 혹 합일로서의 혹은 동역자와 동지로서의 ‘코이노노스’다.
이와 거의 동일한 문맥은 바울이 코린트 교회에 보낸 첫번째 편지에 이미 등장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합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한 몸 (σῶμα, 소마)가 되고, 또 한 영(πνεῦμα, 프뉴마)가 된다.
그렇다면 {필립포스 복음서} 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예수의 ‘짝’은 바로 ‘영적 의미를 지닌 존재’를 말한다. 따라서 나는 {필립포스 복음서}, {마리아 복음서}, {도마 복음서}가 막달라 마리아에 관해 실제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노시스 복음서에 등장하는 이 세가지 진술은 사실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필립포스 복음서}를 비롯한 그노시스 계열의 복음서들에 등장하는 ‘짝’이라는 말은 다만 막달라 마리아가 다른 사도들보다 예수에게 더 ‘완전한/의미있는/가치있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뜻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럴 경우, ‘짝’과 ‘입맞춤’이란 두 단어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연인이었다는 결론을 엮어낼 수가 있을까? 물론 없다. 그래서 그노시스 계열의 복음서에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떤 “종교적” 편애를 보였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근거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배우자 혹 연인이었다고는 말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막달라 마리아가 실제로 예수의 배우자였다면, 그리고 초기 교회의 주요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다면, 그리고 그노시스 계열의 그룹들이 실제로 정통적 기독교였다면, 왜 많은 그노시스 복음서들은 그 사실에 대해 보다 명백하게 적시하지 않고 사실상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두고 고대 카톨릭 교회의 탄압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는 궁색하다. 왜냐하면 이들 그노시스 계열의 복음서는 이미 서기 2세기부터 등장하고 있었고, 로마제국 영내에서 공인된 서기 313년 이전의 기독교는 국가권력을 동원해 그노시스들을 억압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맺음말
'소피'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 프랑스 암호담당 형사는 의외로 매우 어리버리해 보인다. 2002년경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아니 이 똑똑한 주인공이 {푸코의 추}를 한번도 안읽어봤단 말인가? 꼭 {푸코의 추}가 아니더라도 프랑스에는 이 성배전설, 성당기사단,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에 대한 책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이 명민한 여자형사가 그런 것들에 대해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듯이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서스펜스 소설이라면 나름대로 점수를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아주 재미있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평론가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말하는 만큼) 탄탄한 근거 위에서 씌여져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예전에 읽은 (이 또한 구미 비평가들의 찬사를 아낌없이 받았던 ) 소설 {쿰란}보다는 상대적으로 조금 나았다. 물론 서스펜스 전개란 측면에서만 그러하다는 것이다. 같은 부류의 소설이라면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가 훨씬 지적이고, 정교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게다가 {다빈치 코드}는 그노시스의 교리가 갖추었을 신비주의적 깊이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댄 브라운 현상은 지나친 거품이다.
뭐라고나 할까, {다빈치 코드}는 (적어도 내게는) 마치 성난파도처럼 몰려오다가는, 결국 해변가에서 힘없이 부서지는 파도거품 같은 책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구약성서 {욥기}의 한 구절은 아마도 이 책에 대한 내 평가로도 적절할 것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 최광민, Kwangmin Choi, 200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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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Grace comes} forth to (the human) from the mouth, the place the Logos came forth; he was to be nourished from the mouth to become perfect. The perfect are conceived thru a kiss and they are born. Therefore we also shall kiss one another— to receive conception from within our mutual grace.
… {은혜는} 입으로부터 사람에게 오며, 입은 로고스(말씀)가 나오는 곳이다. 사람은 완전케 되기 위해 입으로부터 영양을 받는다. 완전한 자들은 입맞춤을 통해 잉태되고 또 태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입맞춤을 해야한다. 우리가 서로 은혜 안에서 잉태되기 위하여….
여기서 입맞춤은 ‘구애’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수단이다. 이것이 물리적 입맞춤을 수반한 어떤 영성적 행위의 메타포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 의미는 분명 종교적 상징을 가지고 있다.
아래의 인용구는 그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필립포스 복음서} 속의 ‘입맞춤’이라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Peterson Brown 번역
40. Yet wisdom is barren {without} Son(s)— hence {she} is called {the Mother}. They kiss in salt, the place where they shall {be as they had been}— they themselves being found by the Holy Spirit, {... who} multiplies her Sons
Wesley W. Isenberg 번역
40 But Sophia is barren, without child. For this reason, she is called "a trace of salt". Wherever they will {...} in their own way, the Holy Spirit {...}, and her children are many.
소피아(지혜)는 불임이며 자식이 없다. 그들은 소금 속에서 입맞춤하는데 이는 그들이 있어왔고, 또 있게될 곳이다. 그들은 성령에 의해 발견되 지혜의 자녀가 된다./ 번역: 최광민
일단 이 40절은 위에 언급한 또 다른 그노시스 문서 {천둥:완전한 정신}과 직접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의미는 꽤 불투명하다. “소금에게 (혹은 소금 안에서) 입을 맞추는 행위”는 아마도 ‘진리로 귀의한다’는 의미인 듯 하다. 여기서 우리는 {필립포스 복음서} 속의 입맞춤은 연인 간의 입맞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금은 맥락을 잘 알 수 없는, 이 그노시스 교단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던 어떤 종교적 상징행위를 말하는 듯하다.
사실상 이 ‘입맞춤’은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던 관습, 즉 신약성서 속에서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하던 ‘형제/자매 간의 거룩한 입맞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의미가 단순한 ‘인사’ 정도로 희석되었지만,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이 ‘거룩한 입맞춤’은 단순한 인사 이상의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가진 신비적 상징 행위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심지어 기독교도들 조차도 종종 잊는다.
AD 112년, 기독교를 탄압했던 로마황제 트라야누스의 친구이자 정치가, 문필가였던 少 플리니우스는 경제난을 겪고 있던 비시니아(Bythynia) 의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그 지역의 기독교도들을 취조하게 되었다. 처음에 자기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도들을 사형에 처하던 플리니우스는 점차 흥미가 생겨서 기독교도들이 기소된 내용들을 조사해보게 되었고, 기독교도들을 어떻게 다루는 방법에 대해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조언한 편지 기록이 현대에 남아있다.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text/pliny.html
당시 기독교도들은 세가지 항목의 기소를 받고 있었다. 그것은 각각 (1) 무신론 (2) 식인행위 (3) 근친상간이다 처음 기소내용은 기독교도들이 유일신을 섬기는데서 생긴 오해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는 것은 그래서 로마인들에게는 무신론과 같았다.). 두번째 기소항목인 식인행위는 성찬식 중 “이것은 내 몸과 피”라는 예수의 말에 대한 오해였다. 그리고 마지막 근친상간은 바로 이 형제/자매 간의 ‘입맞춤’ 행위에 대한 오해였다.
가령, 라틴 변증가인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펠릭스는 그의 {옥타비우스}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AD121 - AD180) 의 교사였던 프론토 (Fronto)가 현란한 화술로 로마인들에게 퍼트린 "~카더라" 혹은 "~아님 말고" 식의 주장을 아래와 같이 옮긴다.
CHAP. IX.-- "And now, as wickeder things advance more fruitfully, and abandoned manners creep on day by day, those abominable shrines of an impious assembly are maturing themselves throughout the whole world. Assuredly this confederacy ought to be rooted out and execrated. They know one another by secret marks and insignia, and they love one another almost before they know one another. Everywhere also there is mingled among them a certain religion of lust, and they call one another promiscuously brothers and sisters, that even a not unusual debauchery may by the intervention of that sacred name become incestuous: it is thus that their vain and senseless superstition glories in crimes. Nor, concerning these things, would intelligent report speak of things so great and various, and requiring to be prefaced by an apology, unless truth were at the bottom of it. I hear that they adore the head of an ass, that basest of creatures, consecrated by I know not what silly persuasion,--a worthy and appropriate religion for such manners. Some say that they worship the virilia of their pontiff and priest, and adore the nature, as it were, of their common parent. I know not whether these things are false; certainly suspicion is applicable to secret and nocturnal rites; and he who explains their ceremonies by reference to a man punished by extreme suffering for his wickedness, and to the deadly wood of the cross, appropriates fitting altars for reprobate and wicked men, that they may worship what they deserve.
[전략]....어떤 사람들은 그들(=기독교도)이 그들 최고사제와 사제들의 성기를 숭배하고, 자연을 자신들의 부모처럼 숭배한다고도 한다. 나는 이런 말들이 거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들의 비밀스런 심야의 의식은 의심할 만하다.
Now the story about the initiation of young novices is as much to be detested as it is well known. An infant covered over with meal, that it may deceive the unwary, is placed before him who is to be stained with their rites: this infant is slain by the young pupil, who has been urged on as if to harmless blows on the surface of the meal, with dark and secret wounds. Thirstily--O horror!--they lick up its blood; eagerly they divide its limbs. By this victim they are pledged together; with this consciousness of wickedness they are covenanted to mutual silence. Such sacred rites as these are more foul than any sacrileges. And of their banqueting it is well known all men speak of it everywhere; even the speech of our Cirtensian testifies to it. On a solemn day they assemble at the feast, with all their children, sisters, mothers, people of every sex and of every age. There, after much feasting, when the fellowship has grown warm, and the fervour of incestuous lust has grown hot with drunkenness, a dog that has been tied to the chandelier is provoked, by throwing a small piece of offal beyond the length of a line by which he is bound, to rush and spring; and thus the conscious light being overturned and extinguished in the shameless darkness, the connections of abominable lust involve them in the uncertainty of fate. Although not all in fact, yet in consciousness all are alike incestuous, since by the desire of all of them everything is sought for which can happen in the act of each individual. --- Marcus Minucius Felix, {Octavius} IX (tr. Roberts-Donaldson)
새신자의 입문의식에 관한 이야기는 잘 알려진 바대로 혐오스럽다. 밀가루를 몸에 바른 아기를 알아채지 못하게 입문의식에 참가하는 사람 앞에 놓아둔다. 입문자는 그것을 내리치란 명령을 받는다. 발라진 밀가루 때문에 큰 문제가 없게 느껴진다. 이렇게 아기를 살해하고나면, 그들은 아기의 피를 핥고 아기의 팔다리를 찢는다..[중략].. (그들의) 거룩한 날 (=일요일)에 그들(=기독교도)들은 아이들, 여자들, 어머니들, 즉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함께 모여 잔치를 벌인다. 잔치가 끝나고나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음란한 욕정이 술기운 가운데 고조되기 시작하면, 그들은 횃불기둥에 묶어둔 개의 목줄이 닿는 거리 너머로 음식을 던지고, 개가 이것을 쫓아 나가면서 불이 꺼지면 부끄러운줄 모르는 어둠 속에서 그들은 아무하고나 성행위를 벌인다.....[후략] / 번역: 최광민
CHAP. XXXI.--"And of the incestuous banqueting, the plotting of demons has falsely devised an enormous fable against us, to stain the glory of our modesty, by the loathing excited by an outrageous infamy, that before inquiring into the truth it might turn men away from us by the terror of an abominable charge. It was thus your own Fronto acted in this respect: he did not produce testimony, as one who alleged a charge, but he scattered reproaches as a rhetorician. For these things have rather originated from your own nations. Among the Persians, a promiscuous association between sons and mothers is allowed. Marriages with sisters are legitimate among the Egyptians and in Athens. Your records and your tragedies, which you both read and hear with pleasure, glory in incests: thus also you worship incestuous gods, who have intercourse with mothers, with daughters, with sisters. With reason, therefore, is incest frequently detected among you, and is continually permitted. Miserable men, you may even, without knowing it, rush into what is unlawful: since you scatter your lusts promiscuously, since you everywhere beget children, since you frequently expose even those who are born at home to the mercy of others, it is inevitable that you must come back to your own children, and stray to your own offspring. Thus you continue the story of incest, even although you have no consciousness of your crime. But we maintain our modesty not in appearance, but in our heart we gladly abide by the bond of a single marriage; in the desire of procreating, we know either one wife, or none at all. We practise sharing in banquets, which are not only modest, but also sober: for we do not indulge in entertainments nor prolong our feasts with wine; but we temper our joyousness with gravity, with chaste discourse, and with body even more chaste (divers of us unviolated) enjoy rather than make a boast of a perpetual virginity of a body. So far, in fact, are they from indulging in incestuous desire, that with some even the (idea of modest intercourse of the sexes causes a blush. Neither do we at once stand on the level of the lowest of the people, if we refuse your honours and purple robes; and we are not fastidious, if we all have a discernment of one good, but are assembled together with the same quietness with which we live as individuals; and we are not garrulous in corners, although you either blush or are afraid to hear us in public. And that day by day the number of us is increased, is not a ground for a charge of error, but is a testimony which claims praise; for, in a fair mode of life, our actual number both continues and abides undiminished, and strangers increase it. Thus, in short, we do not distinguish our people by some small bodily mark, as you suppose, but easily enough by the sign of innocency and modesty. Thus we love one another, to your regret, with a mutual love, because we do not know how to hate. Thus we call one another, to your envy, brethren: as being men born of one God and Parent, and companions in faith, and as fellow-heirs in hope. You, however, do not recognise one another, and you are cruel in your mutual hatreds; nor do you acknowledge one another as brethren, unless indeed for the purpose of fratricide.--- Marcus Minucius Felix, {Octavius} XXXI (tr. Roberts-Donaldson)
[전략]..이것들이 바로 당신 (=로마인)들의 프론토가 말한 것들이다. 그는 우리에 대한 모함을직접 지어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수사학자'로서 이 모함들을 널리 퍼트렸다....[중략]... 당신들 로마인들은 근친상간이 죄라는 의식없이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겉모습 뿐 아니라 그 마음에서 절제를 지키며 한 사람과의 결혼 만을 기쁘게 지킨다. 자식을 갖기 위해 우리는 한 아내 만을 필요로하거나, 혹은 아예 결혼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만찬에서 나눔의 의식을 가지며, 이 만찬은 절제된 것일 뿐 아니라 검소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유희에 탐닉하지도 않고, 성만찬 중에 술에 취하지도 않는다....[중략]....당신들에겐 유감이겠지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 우리는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형제라 부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아버지인 신에게 태어났고, 믿음에 있어서는 동반자들이며, 또한 소망을 함께 상속받을 자들이기 때문이다. / 번역: 최광민
‘입맞춤’은 초기 기독교 내에서 무척 비중있게 다뤄지던 종교적 행위였다. 초기 기독교 안에서 모든 참석자는 성찬을 받기 전에 성의 다름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입맞춤’의 의식을 가졌는데, 그럼 왜 로마인들은 이 ‘입맞춤’ 행위로부터 ‘근친상간’을 떠올렸을까? 그것이 이 ‘입맞춤’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럼 우선 초기 기독교 교부들과 변증가들이 이 ‘거룩한 입맞춤’에 대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When we have ceased from prayer, we salute one another with a kiss. There is then brought to the President, bread and a cup of wine… - Justin Martyr (100 - 165 AD)
….기도를 마친 후, 우리는 서로 키스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집전자에게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간다. – 그리스 변증가 유스티노스 (서기 100-165) / 번역: 최광민
…therefore the kiss, or rather the salutation, should be given with the utmost care, since if there be mixed with it the least defilement of thought, it excludes us from eternal life …Athenagoras (2nd Century AD)
…그래서 입맞춤, 혹은 인사는 매우 주의깊게 행해져야 한다. 부패한 생각이 끼어든다면, (그 입맞춤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서 탈락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변증가 아테나고라스 (서기 133-190) / 번역: 최광민
…What prayer is complete from which the holy kiss is divorced?...Tertullian (160 - 230 AD)
…어떤 기도가 거룩한 입맞춤없이 완성될 수 있는가? … 라틴 변증가 테르툴리아누스 (서기 160?-230?) / 번역: 최광민
Then the Deacon cries aloud, "Receive ye one another; and let us kiss one another." Think not that this kiss is of the same character with those given in public by common friends. It is not such: but this kiss blends souls one with another, and courts entire forgiveness for them. The kiss therefore is the sign that our souls are mingled together, and banish all remembrance of wrongs… - St Cyril of Jerusalem (315 -386 AD)
그리고 집사는 크게 외친다. “서로 받아들이고, 입맞춤하자.” 이 입맞춤이 일반적인 친구들 사이에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는 생각지 말자. 이 입맞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입맞움은 서로와 서로의 영혼을 섞는 것이며, 전적인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입맞춤은 우리의 영혼이 함께 어우러져있으며 모든 잘못된 기억을 잊는다는 증표이다… - 예루살렘의 주교 키릴 (서기 315 – 386) / 번역: 최광민
무엇보다도 AD 2세기의 교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 - 220 AD)는 그의 저술 {Paedogogas} 3장 17절 속에서 이 ‘거룩한 입맞춤’의 잘못된 사용을 이렇게 경고한다.
...And if we are called to the kingdom of God, let us walk worthy of the kingdom, loving God and our neighbour. But love is not proved by a kiss, but by kindly feeling. But there are those, that do nothing but make the churches resound with a kiss, not having love itself within. For this very thing, the shameless use of a kiss, which ought to be mystic, occasions foul suspicions and evil reports. The apostle calls the kiss holy. When the kingdom is worthily tested, we dispense the affection of the soul by a chaste and closed mouth, by which chiefly gentle manners are expressed. But there is another unholy kiss, full of poison, counterfeiting sanctity. Do you not know that spiders, merely by touching the mouth, afflict men with pain? And often kisses inject the poison of licentiousness. It is then very manifest to us, that a kiss is not love. For the love meant is the love of God. "And this is the love of God," says John, "that we keep His commandments;" not that we stroke each other on the mouth. "And His commandments are not grievous." But salutations of beloved ones in the ways, full as they are of foolish boldness, are characteristic of those who wish to be conspicuous to those without, and have not the least particle of grace.
...그러나 사랑은 입맞춤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온화한 마음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그 안에 사랑이 들어있지도 않으면서 입맞추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신비스러워야할 입맞춤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부끄러운줄 모르는 입맞춤으로 인해 종종 공공연한 의혹과 비행이 보고된다. --- 번역: 최광민
클레멘스는 이 ‘교회 안의 입맞춤’은 거룩하고 신비스런 상징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사용에 각별한 주의를 달고 있다. 한편 아테나고라스는 만약 그 ‘입맞춤’에 음란한 마음이 끼어드는 경우를 들어서 경고까지 하고 있다. 그 경고는 매우 엄중하다. 신자는 영생을 잃을 수도 있다!
현대에 와서 이 ‘거룩한 입맞춤’은 일요일 마다 교회에서 하는 ‘안부인사’ 정도로 그 상징적 의미가 희석되어 포옹이나 악수로 대체되거나 혹은 사라졌지만, 초기 기독교에서의 이 ‘입맞춤’은 성사적 효력을 가지는 상징적 행위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Stephen Benko의 {Pagan Rome and the Early Christians (Indiana University Press, 1986)}은 이 “거룩한 입맞춤”에 대해서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위의 클레멘트의 글에서도 나오지만, 초기 기독교도들의 ‘거룩한 키스’는 뺨이 아닌 다른 이의 입에 하는 (mouth-to-mouth) 키스였다. 그런데 이 키스는 신약성서 {요한복음} 20장에 나타나는 (부활한) 예수의 행동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럼 이제 그리스어 원문에서 이 입맞춤이 어떤 맥락 하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자.
21 εἶπεν οὗν αὐτοῖς [ὁ ἰησοῦς] πάλιν, εἰρήνη ὑμῖν· καθὼς ἀπέσταλκέν με ὁ πατήρ, κἀγὼ πέμπω ὑμᾶς. 22 καὶ τοῦτο εἰπὼν ἐνεφύσησεν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λάβετε πνεῦμα ἅγιον·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표준새번역 {요한복음} 20장 21-22절
그런데 이 “숨을 내쉬었다”라는 말에 해당하는 단어 ενεφυσησεν는 그리스어에서 두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바람을 내분다 (blow)’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을 ~에 불어넣는다 (breathe upon)’란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기원전에 번역된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70인역}에서 단 한번 {창세기}에서 사용되었고 그 의미는 두번째 뜻이다. 즉, 이 행동은 {창세기}에서 신이 아담을 창조하고 그에게 영을 불어넣는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되고 있다.
직역 {창세기} 2장 7절 : 야훼 엘로힘이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니, 사람이 살아있는 영이 되었다.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
그리스어 {70인역}
7 καὶ ἔπλασεν ὁ θεὸς τὸν ἄνθρωπον χοῦν ἀπὸ τῆς γῆς καὶ ἐνεφύσησεν εἰς τὸ πρόσωπον αὐτοῦ πνοὴν ζωῆς καὶ ἐγένετο ὁ ἄνθρωπος εἰς ψυχὴν ζῶσαν
위의 히브리어 성서에서 사용된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콧구멍”을 의미하지만 구약성서 여러부분에서 제유적 표현으로 문맥에 따라 “얼굴”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관점은 그리스어 {셉튜아긴트}에도 반영되고 있다. 즉, 이 그리스어 번역에서 신은 아담의 콧구멍이 아닌 얼굴 위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고 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입과 입으로 전하는 ‘거룩한 입맞춤’과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성령을 주고받는 상징적 행위로서의 ‘거룩한 입맞춤’의 상징은 또한 그노시스 계열의 그룹에서도 계승되었다고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그노시스들이 그 행위에 보다 더 많은 비교적 상징을 추가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필립포스 복음서} 상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막달라 마리아를 시기한 이유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연인관계여서가 아니라, 자신들과는 막달라 마리아 만큼 종종 ‘입맞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입맞춤’이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것은 아마 ‘특별한 가르침의 전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많은 그노시스 문헌들에서는 예수의 다른 사도들이 막달라 마리가를 시기한 이유를 예수가 사도들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떤 특별한 비전을 전수했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럼 다음으로는 {필립포스 복음서}에 등장하는 “충격적인” 단어, “주님의 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 주님의 짝?
소설 속의 티빙은 (예수의 일상어였을) 아람어로 ‘짝’에 해당하는 말이 “부부”라는 의미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필립포스 복음서}는 원래 그리스어로 씌여지고나서 이집트 꼽트어로 번역된 것으로 언어학자들은 보고있다. 그러므로 ‘짝’에 해당하는 꼽트어의 그리스 대응어는 ‘코이노노스’ 이다 (꼽트어상 발음도 그리스어와 같다.). 이 단어는 물론 배우자를 의미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배우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친밀한 우정과 친교를 나누는 동료를 의미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만으로는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를 부부나 연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 단어 "코이노노스 / κοινωνὸς (단수)" 혹 "코이노노이 / κοινωνοὶ (복수)"는 {신약성서} 속에도 몇번 등장한다. 이 단어는 보통 사도들의 "동역자"를 뜻할 때 사용되었다. {루가/누가복음서} 5장 10절에서 그 한 사례를 살펴보자. 인용하겠다.
ὁμοίως δὲ καὶ ἰάκωβον καὶ ἰωάννην υἱοὺς ζεβεδαίου, οἳ ἦσαν κοινωνοὶ τῶ σίμωνι. καὶ εἶπεν πρὸς τὸν σίμωνα ὁ ἰησοῦς, μὴ φοβοῦ· ἀπὸ τοῦ νῦν ἀνθρώπους ἔσῃ ζωγρῶν.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 한국어 공동번역
물론 예수의 사도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시몬 베드로와 "부부관계"가 아니었음은 당연하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이는 동역자, 동업자, 의기투합한 자 등을 뜻한다.
{필립포스 복음서} 속에서 이 ‘짝짓다’라는 단어 역시 유사한 용례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영어로 번역된 unite와 mate는 모두 위와 같은 용례에 상응한다. 제 120절을 읽어보자.
120. The human unites with the human, the horse unites with the horse, the donkey unites with the donkey. The species unite with their like-species. Thus in this manner the Spirit unites with the Spirit, the Logos mates with the Logos, and the Light mates {with the Light}. If thou become human then {mankind will} love thee, if thou become {spiritual} then the Spirit will mate with thee, if thou become meaningful then the Logos will unite with thee, if thou become enlightened then the Light will mate with thee, if thou transcend then the Transcendental will repose upon thee. But if thou become like a horse or a donkey or a calf or a dog or a sheep or any other animal outside and inferior, then neither mankind nor the Spirit nor the Logos nor the Light nor those above nor those within will be able to love thee. They will be unable to repose in thy heart and they will not be thy heritage.
사람은 사람과, 말은 말과, 나귀는 나귀와 짝을 맺는다. 한 종은 같은 종끼리만 짝을 맺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영도 영과 짝을 맺고, 로고스는 로고스와 짝을 맺고, 빛은 빛과 짝을 맺는다. 만약 네가 사람이 된다면 사람은 너를 사랑할 것이다. 네가 영이 된다면, 영은 너와 짝을 맺을 것이다. 네가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면 로고스는 너와 쨕을 맺을 것이다. 네가 깨닫는다면 빛은 너와 짝을 맺을 것이다… --- 번역: 최광민
말할 필요없이 여기서 ‘로고스’는 ‘예수’다. 그래서 이 제 120절의 의미 속에서 ‘코이노노스’는 반드시 배우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필립포스 복음서} 속의 그 ‘짝’에 대한 ‘사랑’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것은 성적결합으로서의 ‘코이노노스’가 아니라 영적연합 혹 합일로서의 혹은 동역자와 동지로서의 ‘코이노노스’다.
이와 거의 동일한 문맥은 바울이 코린트 교회에 보낸 첫번째 편지에 이미 등장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합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한 몸 (σῶμα, 소마)가 되고, 또 한 영(πνεῦμα, 프뉴마)가 된다.
15 οὐκ οἴδατε ὅτι τὰ σώματα ὑμῶν μέλη χριστοῦ ἐστιν; ἄρας οὗν τὰ μέλη τοῦ χριστοῦ ποιήσω πόρνης μέλη; μὴ γένοιτο.16 [ἢ] οὐκ οἴδατε ὅτι ὁ κολλώμενος τῇ πόρνῃ ἓν σῶμά ἐστιν; ἔσονται γάρ, φησίν, οἱ δύο εἰς σάρκα μίαν.17 ὁ δὲ κολλώμενος τῶ κυρίῳ ἓν πνεῦμά ἐστιν.
[15]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7]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 한국어 새번역, {고린도 전서} 6:17
그렇다면 {필립포스 복음서} 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예수의 ‘짝’은 바로 ‘영적 의미를 지닌 존재’를 말한다. 따라서 나는 {필립포스 복음서}, {마리아 복음서}, {도마 복음서}가 막달라 마리아에 관해 실제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위경 {필립포스 복음서} :
- 로고스에게 의미있는 존재…the Logos mates with the Logos… if thou become meaningful then the Logos will unite with thee…
- 위경 {마리아 복음서} :
- 가치있는 존재….But if the Savior made her worthy…
- 위경 {도마 복음서}:
- 남성 …that I may make her male, in order that she also may become a living spirit like you males…
그노시스 복음서에 등장하는 이 세가지 진술은 사실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필립포스 복음서}를 비롯한 그노시스 계열의 복음서들에 등장하는 ‘짝’이라는 말은 다만 막달라 마리아가 다른 사도들보다 예수에게 더 ‘완전한/의미있는/가치있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뜻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럴 경우, ‘짝’과 ‘입맞춤’이란 두 단어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연인이었다는 결론을 엮어낼 수가 있을까? 물론 없다. 그래서 그노시스 계열의 복음서에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어떤 “종교적” 편애를 보였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근거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배우자 혹 연인이었다고는 말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막달라 마리아가 실제로 예수의 배우자였다면, 그리고 초기 교회의 주요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다면, 그리고 그노시스 계열의 그룹들이 실제로 정통적 기독교였다면, 왜 많은 그노시스 복음서들은 그 사실에 대해 보다 명백하게 적시하지 않고 사실상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두고 고대 카톨릭 교회의 탄압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는 궁색하다. 왜냐하면 이들 그노시스 계열의 복음서는 이미 서기 2세기부터 등장하고 있었고, 로마제국 영내에서 공인된 서기 313년 이전의 기독교는 국가권력을 동원해 그노시스들을 억압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맺음말
'소피'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 프랑스 암호담당 형사는 의외로 매우 어리버리해 보인다. 2002년경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아니 이 똑똑한 주인공이 {푸코의 추}를 한번도 안읽어봤단 말인가? 꼭 {푸코의 추}가 아니더라도 프랑스에는 이 성배전설, 성당기사단,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에 대한 책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이 명민한 여자형사가 그런 것들에 대해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듯이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서스펜스 소설이라면 나름대로 점수를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아주 재미있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평론가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말하는 만큼) 탄탄한 근거 위에서 씌여져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예전에 읽은 (이 또한 구미 비평가들의 찬사를 아낌없이 받았던 ) 소설 {쿰란}보다는 상대적으로 조금 나았다. 물론 서스펜스 전개란 측면에서만 그러하다는 것이다. 같은 부류의 소설이라면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가 훨씬 지적이고, 정교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게다가 {다빈치 코드}는 그노시스의 교리가 갖추었을 신비주의적 깊이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댄 브라운 현상은 지나친 거품이다.
뭐라고나 할까, {다빈치 코드}는 (적어도 내게는) 마치 성난파도처럼 몰려오다가는, 결국 해변가에서 힘없이 부서지는 파도거품 같은 책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구약성서 {욥기}의 한 구절은 아마도 이 책에 대한 내 평가로도 적절할 것이다.
Et dixi usque huc venies et non procedes amplius
여기까지는 와도 좋지만, 더는 오지 말아라. --- 구약성서 {욥기} 38장 11절 (라틴 불가타)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 최광민, Kwangmin Choi, 200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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