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13-05-23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 최광민] 히브리 vs. 근동 설화 #2: 아브라함-사라의 이야기는 우가리트 설화의 표절일까?
요약
{창세기}의 아브라함-사라와 관련된 두 일화가 우가리트 설화인 {아카트 서사시} 및 {케레트 서사시}의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X-Bible, 바이블의 진실} (이상훈)과 {성서의 뿌리} (민희식)란 두 문건에 등장하는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우가리트 설화의 원전을 직접 확인한 후 두 저자의 주장이 {아카트 서사시}와 {케레트 서사시} 원문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 내용에 바탕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임을 설명한다.
순서
© 최광민, Kwangmin Choi, 2013-05-23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 최광민] 히브리 vs. 근동 설화 #2: 아브라함-사라의 이야기는 우가리트 설화의 표절일까?
요약
{창세기}의 아브라함-사라와 관련된 두 일화가 우가리트 설화인 {아카트 서사시} 및 {케레트 서사시}의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X-Bible, 바이블의 진실} (이상훈)과 {성서의 뿌리} (민희식)란 두 문건에 등장하는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우가리트 설화의 원전을 직접 확인한 후 두 저자의 주장이 {아카트 서사시}와 {케레트 서사시} 원문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 내용에 바탕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임을 설명한다.
순서
- 어떤 주장
- 이상훈 편저, {X-Bible, 바이블의 진실}
- 민희식, {성서의 뿌리}
- {아카트 서사시} 원전의 진술
- {케레트 서사시} 원전의 진술
- 맺음말: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 어떤 주장
며칠 전 누군가로부터 아래와 같은 글을 한번 반박해 보라는 쪽지를 받았다.
#1
해당문건은 반기련 등 반-기독교 단체에서 반-기독교 자료로 활용 중인 {X-Bible, 바이블의 진실} (이상훈 편저)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문서는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 한 자유로운 배포가 허용된다 ( http://xbible.glad.to)
해당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아브라함과 사라 이야기의 원형 - 아카드서사시와 케레트서사시
1929년 셰프로를 단장으로 한 프랑스의 고고학자들이 우가리트에서 발굴한 점토판에서 아카드와 케레트의 서사시가 나왔다. 아카드서사시에는 다니엘과 그의 처 사이에는 딸만 하나 있고 아들이 없다. 다니엘은 시녀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그후 부인 사이에 아들을 낳으면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신에게 약속하고 아들을 얻는다. 이것은 구약성서의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이삭의 이야기의 원형이다. 케레트 서사시는 왕비 프로티를 다른 왕에게 빼앗긴 케레트왕이 그녀를 되찾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도 아브라함 이야기와 같다. 구약성서가 만들어진 것이 기원전 7세기이며 우가리트 문서가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1400년이다. --- 이상훈 편저, {X-Bible 바이블의 진실}, 제 3부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제 1장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중 발췌
이 문건은 소위 "고고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두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선, 고대 카나안 선주민의 우가리트 설화들 가운데 하나인 {아카트 서사시}에 등장하는 다니엘 (보다 정확히는 "다넬")은 (자식이 없던 {창세기}의 히브리 족장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 사이에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처럼) 시녀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고, 이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처럼)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넬이 그 아들을 신에게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다는 부분에서는 마치 야훼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상속자인 이삭을바치라고 하는 {창세기}의 한 장면과 동일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갔을 때 사라를 그의 여동생으로 생각한 파라오가 사라를 데려간 일화가 {창세기}에 기술되어 있는데, 이 내용이 {창세기}보다 더 오래된 카나안의 {케레트 서사시}의 표절이라는 주장이다.
#2
민희식, {성서의 뿌리}, 블루리본
그런가하면, 불문학자이자 불교저술가인 민희식씨의 {성서의 뿌리}란 책의 제 8장 [아브라함의 시대-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의 네번째 단락 [[케레트 서사시가 아브라함과 사라 이야기의 원전이다 p134]] 역시 이 {케레트 서사시]를 아브라함-사라 이야기의 "원전"으로 지목하는 동시에, 7번째 단락 [[아크하트 서사시가 이삭 인신공희 이야기의 원전이다 p146]]에서는 {아카트 서사시}에서 아브라함이 야훼의 명령으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던 장면의 원형이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3
위 내용을 읽고서 잠시 당황했는데, 해당 우가리트 문건 전체를 비교적 직역에 가깝게 번역한 영어번역 전문을 예전에 꽤 자세히 읽어본 적 있지만 저런 내용을 두 우가리트 설화에서 읽은 기억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몇가지 다른 영어번역본을 대출받아서 다시 읽어봐도 마찬가지다.
결론부터 이야기 한다면, 고대 카나안의 설화를 담은 {아카트 서사시}와 {케레트 서사시}에는 저런 내용이 없다. 저런 내용이 없으니 저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표절"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도대체 이 저자들이 사용하는 "원전"이란 단어의 정의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자신들이 언급하고 있는 두개의 우가리트 텍스트 ({아카트 서사시}와 {케레트 서사시}의 원전을 읽어보긴 한 것일까? 아니면 엉터리로 번역 혹은 정리 혹은 짜깁기된 내용을 어딘가에서 가져다가 쓴 것일까?
왜 그런지를 이제부터 원전을 통해 설명하겠다. 해당 우가리트 텍스트 원문을 직역한 영역본 서넛을 참고했다. 고대 우가리트 시가 원문은 내용이 꽤 길고 반복구가 많으므로 쉬운 이해를 위해 산문체로 바꿔 정리하겠다.
Michael D. Coogan, Mark S. Smith, {Stories from Ancient Canaan, Second Edition}
James Bennett Pritchard, Daniel E. Fleming, {The Ancient Near East: An Anthology of Texts and Pictures}
https://www.headroyce.org/uploaded/faculty/denelow/Genesis/SCAN0159_000.pdf.
Bill T. Arnold, Bryan E. Beyer, {Readings from the Ancient Near East: Primary Sources for Old Testament Study}
Johannes C. de Moor, {An Anthology of Religious Texts from Ugarit}
특별히
- {아카트 서사시}에
- "다니엘은 시녀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고 되어 있는지
- "그후 부인 사이에 아들을 낳으면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신에게 약속하고 아들을 얻는다"고 되어 있는지
- {케레트 서사시}에
- " 왕비 프로티를 다른 왕에게 빼앗긴 케레트왕이 그녀를 되찾는"다고 되어 있는지
에 초점을 맞춰서 원전을 정리해 보겠다.
§ {아카트 서사시, The Epic of Aqhat} 원전의 진술
1920년대 말 북부 시리아의 우가리트 (현, 라스 샴라 (Ras Shamra)에서 발굴된 세 점토판에는 고대 카나안의 인물인 다넬 (Danel)과 그의 아들 아카트 (Aqhat)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문건의 원래 제목은 {아카트의 소유물 Belongs to Aqhat} 이며, 실제 주인공도 다넬이 아니라 그 아들 아카트이다 (아카트는 편의상의 발음일 뿐 정확한 음가는 미정이다.) 다넬은 도시 성문에서 여러가지 송사를 판결하던 판관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고대 사회의 장로나 족장 혹은 군장들이 맡아하던 직임이기 때문에 다넬을 군장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X-Bible, 바이블의 진실} (이상훈 편저)의 주장을 염두에 두면서, 그럼 한번 {아카트 서사시} 원전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James Bennett Pritchard가 편집한 {The Ancient Near East: An Anthology of Texts and Pictures}에 포함된 H. L. Ginsberg의 번역으로 {The Tale of Aqhat}를 읽고 정리해 보겠다.
첫 점토판은 다넬이 신전에 머물며 잠을 자면서 신탁을 받는 의식 (incubation)이 설명된다. (딸 하나가 있지만) 아들이 없어 매일 매일 신들에게 술과 음식을 바치며 아들을 얻도록 소원을 빌던 중, 제 7일 차에 다넬의 수호신인 바알이 그의 아버지이자 카나안 신들의 왕인 엘에게 다넬의 소원을 대신 청원하게 된다. (뒤의 점토판에 보면, 다넬에게는 푸가트 (Pugat)란 이름의 딸이 하나 있었다.).
엘은 마침내 다넬에게 아들을 주길 (바알을 통해) 약속하고 다넬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동침하고 아들을 잉태한다. 이때 결혼과 출산의 여신인 코타랏 (Kotharat)의 도움으로 다넬과 그의 처인 다나타야 (Danataya)는 아들을 낳게 된다. 이 아들이 아카트 (Aqaht)다. [첫번째 점토판에서 이 내용 뒤의 부분은 파손되어 있어 해독이 불가능하다. / 필자 주]
축제에 온 카나안 장인의 신 코타르-와-하시스 (Kothar-wa-Hasis)가 다넬과 다나타야의 접대에 만족하여 다넬에게 마법의 활과 화살을 선물로 주는데, 다넬은 이 선물을 아들인 아카트에게 다시 주었다. 다넬은 이 활의 명명식에 신들을 초대하는데, 초대받아 온 전쟁과 사냥의 여신인 아낫 (Anat)이 이를 시기하게 된다. 아낫은 이 무기를 갖기 위해 아카트에게 재물과 심지어 영생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아카트는 이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오히려 아낫의 사냥실력을 조롱한다. 마침내 아낫은 엘의 묵인 하에 부하인 야트판 (Yatpan)을 하늘에서 내려보내어, 식사 중이던 아카트의 정수리를 두번, 측면을 세번 가격해 죽인다.
이때 불길한 징조를 보고 다넬은 들판을 돌아보게 되는데, 돌아오는 길에 외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넬은 독수리 뱃 속에서 아직 소화되지 않은 아카트의 지방덩어리나 살점, 뼈 등을 추스려 극진히 장례를 치르면서 아들의 살해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 살해현장 인접 도시 셋을 저주한다. 이후 다넬을 아들을 위해 7년 간 애곡을 하고, 마지막으로 희생제물을 신들에게 바치는데, 이때 외동딸인 푸가트가 아카트의 복수를 결심한다. 푸가트는 망토로 위장한 후 야트만의 천막에 가서 그를 취하게 한 후 아카트를 죽였노라고 술주정하는 야트판을 죽인다...[이하 소실] / 정리: 최광민
자, 이것이 우가리트 문건에 등장하는 아카트의 이야기이다. 그럼 다시 {X-bible, 바이블의 진실}이란 문건으로 돌아가 보자.
...... 아카드서사시에는 다니엘과 그의 처 사이에는 딸만 하나 있고 아들이 없다. 다니엘은 시녀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그후 부인 사이에 아들을 낳으면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신에게 약속하고 아들을 얻는다. 이것은 구약성서의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이삭의 이야기의 원형이다. --- 이상훈 편저, {X-Bible 바이블의 진실}, 제 3부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제 1장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중 발췌
다넬/다니엘이 아들 아카트를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도대체 어떤 신에게 약속했는가? (사실 {창세기} 속 아브라함-사라도 외아들 이삭이 태어나면 야훼에게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한 적 없다.)
혹은 민희식씨의 {성서의 뿌리}에 진술된 대로 "아크하트 서사시가 이삭 인신공희 이야기의 원전"인가? 신의 명령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삼으려던 것 같이, 지금 이 이야기에서도 다넬이 아카트를 죽여 제물로 바치려고 하였던가?
문제가 무엇인지 금방 눈치챌 것이다. 비교/정리해 보겠다.
- "아카드서사시에는 다니엘과 그의 처 사이에는 딸만 하나 있고 아들이 없다?
- 이 내용은 {아카트 서사시}에 등장한다. 다넬의 딸은 푸가트다.
-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는 딸이 없다.
- "다니엘은 시녀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 아브라함은 사라의 동의/권유 하에 사라의 몸종인 하갈과의 사이에서 서자 이스마엘을 얻었다. 사라가 죽은 후 들인 후첩인 케투라와의 사이에서는 6명의 아들을 더 얻었다
- 하지만 다넬/다니엘이 어떤 시녀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아카트 서사시} 원전에 전혀 없다
- "그후 부인 사이에 아들을 낳으면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신에게 약속하고 아들을 얻는다"?
- (1) 다넬 부부 스스로 아들을 바치겠다고 서원하거나, 혹은 (2) 아들을 희생물로 바칠 것을 신(들)이 요구한다는 내용은 {아카트 서사시} 원전에 전혀 없다
- 다넬이 신들에게 바친 것은 "아들"이 아니라 "음식과 술"이다.
- 게다가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약하고 나서 이삭을 얻은 것이 아니다.
- "이것은 구약성서의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이삭의 이야기의 원형이다."?
- 우가리트 원전 자체에 그런 내용이 없기에 {창세기}의 원형 조차 될 수 없다
{아카트 서사시}의 전문이 담긴 점토판은 20세기 초반에 발굴된 후 추가발견된 것은 없다. 이후 현재까지 난해구절에 대한 다양한 독법들이 시도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X-Bible, 바이블의 진실}과 {성서의 뿌리}의 저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원전에도 없는 내용들을 가져온 것일까? 혹시라도 이들이 소실된 점토판들을 북-시리아에서 직접 발굴해서 해독했을 가능성은 물론 전혀 없다.
§ {케레트 서사시} 원전의 진술
1930년대 초 역시 북부 시리아의 우가리트 (현, 라스 샴라 (Ras Shamra)에서 발굴된 점토판에서 발견된 {케레트 서사시}는 BC 1500-1200년을 배경으로 하는 후부르의 왕 케레트 (키라트)의 설화를 담고 있다.
{X-Bible, 바이블의 진실} (이상훈 편저)의 주장을 다시 인용해 보자.
....케레트 서사시는 왕비 프로티를 다른 왕에게 빼앗긴 케레트왕이 그녀를 되찾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도 아브라함 이야기와 같다. 구약성서가 만들어진 것이 기원전 7세기이며 우가리트 문서가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1400년이다. --- 이상훈 편저, {X-Bible 바이블의 진실}, 제 3부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제 1장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중 발췌
이 문건에서 {창세기}가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이주할 때의 일화로, 이때 아브라함은 미모의 아내 때문에 자신이 죽을까 염려하여 자신의 아내 사라를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가까운 인척이므로 반드시 거짓말은 아니었겠지만) 사람들을 속였는데, 그 탓에 아내를 이집트 파라오에게 빼았겼다가 자초지종을 알게 된 파라오가 사라를 돌려준 일화를 말한다.
그럼 정말 미타니의 군장 케레트 (키르투)의 이야기와 {창세기}의 그 일화가 비슷하기라도 한 것인지 원전을 통해 살펴보자. 역시 해당 우가리트 텍스트 원문을 직역한 영역본 서넛을 바탕으로 내용을 정리해 보겠다.
- Michael D. Coogan, Mark S. Smith, {Stories from Ancient Canaan, Second Edition},
- Bill T. Arnold, Bryan E. Beyer, {Readings from the Ancient Near East: Primary Sources for Old Testament Study}
- Johannes C. de Moor, {An Anthology of Religious Texts from Ugarit}
{X-Bible, 바이블의 진실} (이상훈 편저)과 {성서의 뿌리} (민희식) 의 주장을 염두에 두면서 {케레트 서사시} 원전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후부루의 왕인 케레트 (키루트)는 위대한 신 엘의 아들로서 명망은 높았지만 많은 불운을 말년에 겪었다. 7명의 처를 두었지만 불성실한 아내였던 몇 명은 도망갔고 나머지는 질병과 사고로 죽거나 출산 중 죽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비록 8명의 아들을 두긴 했지만, 케레트 자신만 그 중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이었고, 그의 가문 전체도 후계자가 없었다.
슬픔에 잠긴 케레트는 탄식하다가 잠이 드는데, 꿈 속에서 엘이 나타나고 케레트는 대를 이을 아들을 간청한다. 엘은 이때 신들에게 음식과 술을 제물로 바칠 것을 지시하면서, 아들을 가질 묘책을 알려준다. 즉, 이웃나라인 우둠 ( Udum) 을 공격한 후, 화친공물로 금은 대신 우둠의 왕 파발라의 딸 (손녀?)을 요구하여 아내로 삼으란 것이었다.
엘의 지시에 따라 대군을 이끌고 우둠을 향하던 길에 바다의 여신인 아티랏 (Athirat) 여신의 사당에 들르는데, 거기서 만약 이 일을 성사시키면 금은을 바치겠노라고 서약한다. 이것이 훗날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된다.
케레트는 우둠을 포위하고 푸발라 왕을 압박해 결국 딸/손녀인 하리야 ( Hariya)와의 결혼을 이끌어 낸다. 결혼 후 하리야는 두 아들과 여섯 딸을 낳았다. 하지만 케레는 아티랏 여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하 소실]
이후 케레트의 자녀들이 장성한 후, 아티랏은 분노하여 케레트에게 질병과 재앙을 벌로 내린다. 그의 막내 아들인 엘후 (Elhu) 가 신의 아들이란 케레트가 앓아 눟은 것을 두고 빈정거린다. 그래서 케레트는 딸 타트마낫 (Tatmanat)더러 자신을 위해 신들에게 빌어달라고 부탁한다. 딸의 기도가 하늘에 닿자 매마른 땅에 비로소 비가 내렸다.
하지만 신들은 아직 케레트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고 논쟁을 벌였다. 케레트가 아티랏과의 약속을 어긴 것을 알았지만, 엘은 여전히 케레트의 편을 들고 케레트의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엘은 신들에게 케레트를 고쳐줄 것을 요구하지만 어느 신도 엘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엘은 마법을 써서 샤틱투 ( Shatiqtu)라 불리는 날개달린 정령을 만들어 보내어 케레트를 치료했다. 케레트는 이틀 후 병에서 낳아 왕위에 복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케레트의 장남인 야슙( Yassub)이 케레트가 무능하며 따라서 왕위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도전해 왔다. 화가 난 케레트는 야숩을 저주하며 악마의 우두머리인 호로누 (Horonu)의 힘을 빌어 야숩의 머리를 때려 죽인다.
[이하 소실] / 정리: 최광민
이 이야기의 결말은 점토판이 소실되어 알 수 없다. 다만 아마 이런 식으로 하나씩 자식을 모두 잃고 결국 케레트는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것으로 추정해 볼 수는 있다.
그나저나, 어떤 왕에게 빼앗긴 아내를 되찾아 왔다는 케레트의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 케레트의 전처 7명은 차례로 도망가거나, 불륜을 저질렀거나, 출산 중 죽거나, 병으로 죽거나, (질병의 신) 라슈푸 (Rahpu)가 데려갔거나 (즉, 병사), (바다와 질병의 신) 얌무 (Yammu)가 데려갔거나 (즉, 병사 혹은 익사), 혹은 (저승의 강의 신) 샬루 (Shalhu)가 데려갔다.
- 즉, 전처들은 제 발로 떠나거나 모두 죽은 것이다. 어떤 왕이 "빼앗아 간게 아니란 말이다.
- 설령, 라슈푸, 얌무, 샬루를 '어떤 왕'이라 억지로 해석하더라도, 케레트의 8번째 아내는 이들로부터 되찾아 온 어떤 여인이 아니다. 케레트는 전처 중 하나를 그들로부터 "되찾아 온"게 아니라, 전혀 다른 여인을 이웃국가에서 "빼앗아" 온 것이다.
{X-Bible, 바이블의 진실} (이상훈 편저)의 주장은 근거가 무엇일까? 게다가 "왕비 프로티"는 또 누구인가?
....케레트 서사시는 왕비 프로티를 다른 왕에게 빼앗긴 케레트왕이 그녀를 되찾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도 아브라함 이야기와 같다. 구약성서가 만들어진 것이 기원전 7세기이며 우가리트 문서가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1400년이다. --- 이상훈 편저, {X-Bible 바이블의 진실}, 제 3부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제 1장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중 발췌
혹은 민희식씨의 주장처럼 "케레트 서사시가 아브라함과 사라 이야기의 원전"일까? 어떤 점에서 케레트의 이야기와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유사한가? 아들을 달라고 신(들)에게 호소한 점? 이걸 두고 {케레스 서사시}가 아브라함 이야기의 "원전"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 맺음말: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X-Bible, 바이블의 진실}의 저자는 그 마지막 단락에서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 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의 에덴동산, 선악과, 노아의 홍수 등 많은 내용이 다른 민족의 신화의 내용을 차용하여 주인공만 여호와신과 유대인으로 바꾸어 편집한 허구의 신화이다. 즉 유대인들은 이집트 노예시절, 바빌론 포로시절을 거치며 민족 단결의 필요성을 느꼈고 민족을 결집시키기 위하여 자기 민족만이 선택받은 민족으로 만들기 위하여 주변의 페르시아신화, 이집트신화, 수메르신화 등을 편집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가공해 낸 신화를 기반으로 한 원죄론 등의 교리는 허구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이상훈 편저, {X-Bible 바이블의 진실}, 제 3부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제 1장 [[구약성서는 창작인가? 표절인가?]] 중 발췌
이를 두고 적반하장이라고나 해야 할까? {창세기}가 가공된 허구인지는 일단 제쳐두고라도, 사실은 이 문건의 저자 본인이야말로 해당단락을 기술하면서 "가공해 낸 신화를 기반으로" 자신의 주장을 "허구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비형식적 논리오류 (logical fallacy) 가운데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strawman)"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상대를 논리로 제압한다면서 상대의 주장을 왜곡하거나 과장하거나 혹은 상대가 주장하지도 않은 내용을 만들어 그 허상을 상대의 주장인 양 반박하면서 논박하는 태도를 말하는데, 이 오류가 성공하려면 논쟁을 듣는 제 3자가 해당 주장의 근거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야 한다. 두 저작물이 시도한 것이 바로 이 종류의 오류에 해당하는데, 일반인들 가운데 '우가리트 설화'의 원문을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그 효과는 만점일 것이다.
사실은 이 두 저자가 일으킨 오류는 더 심각할 수도 있다. 두 저자는 자신들이 논박한다는 {창세기}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가령, "그후 부인 사이에 아들을 낳으면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신에게 약속하고 아들을 얻는다. 이것은 구약성서의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이삭의 이야기의 원형이다")를 언급할 뿐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아카트 서사시}나 {케레트 서사시}에 존재하지도 않는 내용들 (가령, "케레트 서사시는 왕비 프로티를 다른 왕에게 빼앗긴 케레트왕이 그녀를 되찾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도 아브라함 이야기와 같다") 을 어디선가 가져다가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식의 작업은 어떤 "허구" (여기서는 {창세기})를 깨겠다면서, 또 다른 "허구"를 제조 (혹은 착각)하여 이 "허구"를 바탕으로 앞의 "허구"를 깨겠다는 시도나 다를 바 없다. 즉, 그냥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정도가 아니라 "허수아비로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이 해프닝은 결국 원전을 확인하지 않고 상상과 추론으로만 주장을 펼치는 위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그저 자리에 앉아
원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종종 논증은 충분하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