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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외부자료의 인용에 있어 대한민국 저작권법(28조)과 U.S. Copyright Act (17 USC. §107)에 정의된 "저작권물의 공정한 이용원칙 | the U.S. fair use doctrine" 을 따릅니다.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모든 글과 번역문들에 대해 (1) 복제-배포, (2) 임의수정 및 자의적 본문 발췌, (3) 무단배포를 위한 화면캡처를 금하며, (4) 인용 시 URL 주소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후원 | 운영] [대문으로] [방명록] [옛 방명록] [티스토리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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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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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광규가 쓴 것은 아니지만, 그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 독일 레지스탕스 기념관 헌사로부터 시작해 보자.

Ihr trugt die Schande nicht.
Ihr wehrtet euch.
Ihr gabt das große ewig wache Zeichen der Umkehr,
opfernd Euer heißes Leben für Freiheit, Recht, und Eh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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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3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그때는

--- 김광규

누가 모르겠는가
누구나 느끼고
누구나 겪은
그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모두가 알면서도 그때는
모르는 체 헸었다.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아무도 쓰지 못한
그것을 이렇게
우리 말로 이야기하고
우리 글로 써서
남겼다.

그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이제 와서 쉽게 말하지 말고
생각해 보라 당신은 그때
무엇을 했는가


나의 자식들에게

-- 김광규

위험한 곳에는 아예 가지 말고
의심받을 짓은 안하는 것이 좋다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대로 집에만 있으면
양지바른 툇마루의 고양이처럼
나는 언제나 귀여운 자식이었다.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사람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인생이 힘들 것 무엇이랴 싶었지만
그렇게 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수양이 부족한 탓일까
태풍이 부는 날은
집안에 들어앉아
때묻은 책을 골라내고
옛날 일기장을 불태우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자꾸 찢어 버린다.
이래도 무엇인가 남을까
어느날 갑자기 이 짓을 못하게 되어도
누군가 나를 기억할까
어쩌면 그러기 전에 낯선 전화가
울려 올지도 모른다.
지진이 일어나는 날은
집에만 있는 것도 위험하고
아무 짓을 안해도 의심받는다.
조용히 사는 죄악을 피해
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평온하게 살지 마라
무슨 짓인가 해라.
아무리 부끄러운 흔적이라도
무엇인가 남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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