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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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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예수 vs. 호루스 #6: 호루스도 예수처럼 12세 때 신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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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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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예수 vs. 호루스 #6: 호루스도 예수처럼 12세 때 신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쳤을까?

순서
  1. 어떤 주장
  2. 호루스는 12살 때 신전에서 가르쳤다?
    1. "12세의 소년신관" 임호텝? 
    2. 임호텝 = 호루스?
  3. 정리

    § 어떤 주장

    영상물 {시대정신}은 이렇게 선언한다.

    We don't want to be unkind,
    but we want to be factual.
    We don't want to cause hurt feelings,
    but we want to be academically correct, in what we understand and know to be true.

    불쾌감을 주려하는게 아닙니다.
    사실에 근거하려는 겁니다.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이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정확하길 원합니다.

    과연 "학문적으로 정확 academically correct"한지를 지금부터 원전을 통해 검토해 보자.


    주장#: 예수와 호루스는 모두 어린 시절 신전에서 가르쳤다!!!

    아래는 {시대정신/Zeitgeist the movie}에 등장하는 예수=호루스 카피캣 이론의 한 예로, 영상물의 나레이션에 따르면 "호루스는 12세때 (신전에서) 가르쳤다"고 진술하고 있다.

    해당 나레이션을 옮기겠다.



    Broadly speaking, the story of Horus is as follows:
    1. Horus was born on December 25th of the virgin Isis-Meri. 
    2. His birth was accompanied by a star in the east, which in turn, three kings followed to locate and adorn the new-born savior
    3. At the age of 12, he was a prodigal child teacher, and
    4. at the age of 30 he was baptized by a figure known as Anup and thus began his ministry.
    5. Horus had 12 disciples he traveled about with, performing miracles such as healing the sick and walking on water.
    6. Horus was known by many gestural names such as The Truth, The Light, God's Annointed Son, The Good Shepherd, The Lamb of God, and many others.
    7. After being betrayed by Typhon, Horus was crucified, buried for 3 days, and thus, resurrected.

    위에 언급된 모든 주장은 19세기의 시인이자 아마츄어 신화학자였던 Gerald Massey (이하, 메이시)의 주장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옮긴 것이다. 아래는 메이시의 대표적 저작물로서 "호루스=예수" 계열 카피캣 이론의 주요 출처가 된다.


    Gerald Massey, {Ancient Egypt: The Light of the World}
    https://archive.org/details/AncientEgyptTheLightOfTheWorldvolume1

    현대에는 카피캣 이론가 아차리아 S (본명 D. M. 머독)이 {Chirist in Egypt}란 책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했고, 다시 이를 영상물 {시대정신, Zeitgeist: the Movie}이 그대로 받아서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아차리아 S는 이 영상물의 자문을 맡았고, 또 인터넷 상에서의 이 영상물의 인기에 힘입어 컴페니언 북까지 출판했다.


    Acharya S / DM Murdock, {The Christ Conspiracy}


    Acharya S / DM Murdock, {Suns of God}


    Acharya S / DM Murdock, {Christ in Egypt}

    주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과는 별도로 꽤 흥미로운 책들이다.  먼저 이들의 주장을 정리해 보자.

    메이시에 따르면 예수가 호루스의 이야기 중 하나를 베꼈다고 주장되는 내용 가운데 하나는 {루가/누가의 복음서} (공동번역) 제 2장에 등장한다.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아들이 일행 중에 끼여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으므로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메이시 (그리고 아차리아 S와 {시대정신})은 여기에서 예수가 (호루스처럼) "12살 때" 신전에서 "가르쳤다"는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 호루스도 과연 "12살 때" 신전에서 "가르쳤"는지를 이집트 원전을 찾아 확인해 보겠다.




    § 호루스는 12살 때 신전에서 가르쳤다?

    {시대정신}에 호루스와 예수의 "일생"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을 보면, 마치 두 인물이 "신화적 삶"의 궤적을 정확히 공유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위 "호루스가 12살 때 (신전에서) 봉직했다/가르쳤다"는 메이시와 아차리아 S와 {시대정신}이 주장하는 "호루스가 12살에 신전에서 가르쳤다"라는 진술의 고고학적 근거는 사실 전혀없다. 그런 진술을 담은 부조나 파피루스 유물, 혹은 어떤 고대의 기록이 현재까지 전무하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이시의 이 주장은 꽤 복잡한 트릭을 거쳐 "유도"된 추론이다. 사실 그나마도 매우 정확하지 않다.

    메이시의 이 주장은 기본적으로는 대영박물관의 이집트학 학자였던 Samuel Birch와 E.A.W Budge 등이 번역 소개한 고고학적 유물과 자료에 바탕을 두고있다. 물론 현대의 이집트학 연구자들은 이들 초기 이집트 연구자들이 종종 번역과 유추에 있어서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버치와 벗지가 제시한 고고학적 자료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고고학 자료를 가지고 메이시가 자신의 이야기를 조합하면서 구사한 논리적 도약에 있다. 메이시가 벗지의 학술적 진술에다 자신의 근거없는 주장들을 약간씩 섞어가면서 그의 주장을 재창조해내고 있다는 점을 눈이 예리하지 못한 일반독자들은 잘 구별해내지 못한다. 원전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원전과 메이시의 주장 (즉, {시대정신}의 주장)을 비교해 가면서 이 트릭을 설명해 보겠다.

    자, 그럼 메이시가 "12살때 신전에서 가르친" "호루스"라고 주장하고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사실 그가 주장하는 "호루스"는 흔히 말하는 "오시리스-이시스의 아들" 호루스가 아니다.  이 인물은 "호루스"가 아니라 "이-엠-헤테프 (I-em-hetep)"라는 멤피스의 신이다. 보다 잘 알려진 형태론 "임호텝"이다 (이하, "임호텝"). 메이시는 자신의 글에서는 유-엠-헤테프 / Iu-em-hetep 로 적고있다. 벗지가 "이-"라고 읽은 단어를 메이시가 왜 굳이 "유-"라고 적고 있는 이유는 메이시가 "예수"란 이름이 이집트어 단어 "유-사"에서 왔다는 상당히 무리한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독립된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임호텝으로 돌아가 보자.


    I-em-hetep (=임호텝), {The gods of the Egyptians} - Sir E. A. W. Budege 에서

    임호텝은 BC 2300년 경에 살았던 실존인물로, 혈통적 귀족이었던 그는 이집트 제 3왕조 시절 파라오 Djoser의 자문관이자 의사, 왕궁의 관리자, 온(그리스명 헬리오폴리스)의 대신관, 목공 총책임자, 석공 총책임자, 도자기제조 총책임자, 상-이집트의 제 2인자 등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는 파라오 조제르의 피라밋의 건축을 담당한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이집트 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파라오가 아닌 인물이 신으로 추증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바로 이 임호텝이 대표적인 예외사례에 속한다. 그는 점차적으로 신으로 승격되었고,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이집트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멤피스의 주신 중 하나로 여겨졌다.

    우선 메이시의 논리를 정리해 보자.

    1. 한 버전의 이집트 신화에서 아툼-호루스는 종종 프타의 아들로 불린다.
    2. 신격화된 임호텝은 멤피스에서 프타의 아들로 불렸다.
    3. 피라밋 문서의 염습과정에 보면, 죽은 이는 임호텝과 하나가 된다.
      1. 따라서 임호텝은 호루스다.
    4. 임호텝은 파피루스를 들고 의자에 앉은 12살짜리 아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5. 임호텝은 온/헬리오폴리스의 대신관이었다.
      1. (그러니까) 임호텝은 12살 때부터 신전에서 가르쳤다.
    6. 그런데 임호텝은 호루스다.
    7. 그러니까, "호루스"는 "12살때" "신전"에서 "가르쳤다"

    어디까지가 근거있는 진술이고, 어디까지가 근거없는 메이시의 추측일까? 메이시가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벗지의 책을 통해 이 주장이 얼마나 논리적 도약을 거쳐야 가능한 것인지 밝혀보도록 하자.




    §§ "12세의 소년신관" 임호텝?

    "호루스가 12살 때...."를 운운하는 메이시의 주장이 구사하는 첫번째 트릭은, 임호텝이 "소년 신관"이었으며 특별히 그가 "12살 때 신전에서 가르쳤다"는 주장을 유도하는데 있다.

    우선 정규 이집트학 학자들의 설명을 정리해 보겠다. 메이시가 주장의 주요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대영박물관의 이집트학 학자 벗지는 {The gods of the Egyptians, or, Studies in Egyptian mythology (Vol 1)}에서 임호텝에 관해 한 항목을 할애하고 있다.

    전문을 읽어보자. 필요한 부분은 한국어로 번역하겠다.


    https://archive.org/details/godsofegyptianso00budg

    The Egyptian texts prove that besides Nefer-Tem another son of Ptah called I-em-hetep was regarded as the third member of the great triad of Memphis ; he was called '"IixovOti^ by the Greeks, and possessed many attributes in common with their god Aesculapius. The name of I-em-hetep means, " He who cometh in peace," and is appropriate to the god who brought the art of healing to mankind.

    벗지는 멤피스 종교의 세 주신인 프타-세케메트-네페르템을 소개하면서, "프타의 아들"인 네페르-템에 이어 또 다른 "프타의 아들"인 "이-엠-헤테프/임호텝"을 소개한다. 

    임호텝과 호루스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멤피스 종교의 3대 신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멤피스의 종교에서 프타 (Ptah) - 세케트 (Sekhet) - 네페르템 (Nefertem)은 아버지-어머니-아들의 관계로 묶여 3대 주신을 구성한다.

    아래의 BC 12세기의 파피루스에서 왼쪽부터 각각 네페르템-세케트-프타 그리고 파라오 람세스 3세가 묘사되어 있다.


    Ramses III (right) and the three gods from Memphis. (출처: wikimedia commons)

    앞서 말한대로, 그리스인들이 이집트를 침공해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초기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에 이들 그리스인들은 임호텝을 그리스의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동일시 했다. 임호텝은 "평화 속에 오는 자"란 뜻으로 질병을 고치는 그의 역할을 잘 반영한다. 임호텝은 원래 그의 의술로 고대에 잘 알려진 실존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병을 낫게 하거나 불임여성에게 자식을 낳게 해주는 등의 신으로 종종 표상된다.그리고 그 무렵을 전후해서 임호텝은 멤피스 3대 주신 가운데서 네페르템을 대체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임호텝이 정말 네페르템을 대체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논란이 되고있다. 임호텝은 여전히 "프타와 세케트의 아들"로 불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벗지의 설명이다. 여기서 벗지는 임호텝이 프롵레마이오스 왕조 시절의 이집트 종교에서 어떻게 표상되어졌는지를 설명한다.

    Under the Ptolemies a small temple was built in honour of I-em-hetep on the Island of Philae ; the hieroglyphic inscriptions are those of Ptolemy IV., Philopator, but the Greek text over the door was placed there by the command of Ptolemy V., Epiphanes. From one of the former we learn that the god was entitled,
    "Great one, son of Ptah, the creative god, made by Thenen, begotten by him and beloved by him, the god of divine forms in the temples, who giveth life to all men, the mighty one of wonders, the maker of times (?), who cometh unto him that calleth upon him wheresoever he may be, who giveth sons to the childless, the chief l-her-heh ( /T\ %, i.e., the wisest and most learned one), the image and likeness of Thoth the Wise.,
    I-em-hetep was the god who sent sleep to those who were  suffering and in pain, and those who were afflicted with any kind of disease formed his special charge ; he was the good physician both of gods and men, and he healed the bodies of mortals during life, and superintended the arrangements for the preservation of the same after death. If we could trace his history to its beginning we should find probably that he was originally a very highly skilled " medicine man " who had introduced some elementary knowledge of medicine amongst the Egyptians, and who was connected with the practice of the art of preserving the bodies of the dead by means of drugs, and spices, and linen bandages.

    벗지는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테로스와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 시절에  Philae에 건립된 작은 신전에 새겨진 명문 속에 등장하는 임호텝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1. 위대한 자
    2. 창조자 프타의 아들
    3. 신성한 형체를 가진 자
    4.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자
    5. 시간의 창조자
    6. 도움을 청하는 자를 돕는 자
    7. 자식없는 이에게 자식을 주는 자
    8. 가장 지혜로운 존재
    9. 지혜의 신 토트와 흡사한 자



    벗지의 다음 진술로 넘어가 보자.  이 진술 속에서 벗지는 임호텝이 도상 혹은 조각 속에서 표상된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The god is represented like Ptah, with a bald head, and he is depicted in a seated position with a roll of papyrus open upon his knees ; he was a god of study and learning in general, but he owed his great power to the knowledge of medicine which he possessed. As a god of learning he partook of some of the attributes of Thoth, and he was supposed to take the place of this god in the performance of funeral ceremonies, and in superintending the embalming of the dead ; in later times he absorbed the duties of Thoth as "scribe of the gods," and the authorship of the words of power which protected the dead from enemies of every kind in the Underworld was ascribed to him.

    사람의 형상을 가진 프타처럼 임호텝도 사람의 형상으로 표현된다.  그는 머리를 밀고 신관의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아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무릎 위에 얹어넣은 자세로 종종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가 학문과 의술의 신이란 점을 설명한다. 그가 학문의 신인 까닭에, 또 다른 학문의 신인 토트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이집트 장례의전 중 하나인 시신을 미라화하는 작업을 관장하고 죽은 이를 보호한다는 점에서도 토트와 유사하다. 아래는 벗지가 설명하고 있는 임호텝의 조상이다.


    루브루 박물관의 임호텝 조상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런데 이 조상에 대해 메이시는 {Ancient Egypt: the Light of the World}에서 이렇게 적는다.

    Iu-em-hetep is portrayed as the youthful sage and precocious teacher. He is the "heir of the temple", depicted as the teacher in the temple; the boy of twelve years who wears the skull-cap of wisdom, and sits in the seat of learning. He holds a papyrus on his knee and is in the act of unrolling it for his discourse.

    유-엠-헤테프은 "젊은 현자"이자 "조숙한" 교사로 그려진다. 그는 "신전을 물려받은 자"이자 신전에서 가르치는 자로 묘사된다. 머리에 딱 붙는 지혜를 상징하는 모자를 쓴 12살의 소년으로 학습용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파피루스는 놓고, 가르침을 베풀기 위해 파피루스를 펼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번역: 최광민)

    12살 소년 임호텝?

    막상 이 조각상 속에는 임호텝의 나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신관가문 출신의 임호텝이 어려서부터 신관에서 수습신관으로 교육받았을 것이며, 12살 무렵에 그가 신전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임호텝이 신전에서 "가르칠때" 나이가 "12세 소년"이라는 근거는 벗지가 번역한 어떤 고대 이집트 문건에도 등장하지 않으며. 이후의 어떤 고대 이집트 문건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메이시 본인이 그 근거를 댄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그렇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러니 "12세 소년 신관" 운운하는 주장은 사실은 그저 해프닝일 뿐이다.

    이 임호텝이 12살이 아니라면 메이시가 공들인 임호텝=예수 연결고리도 즉시 끊어질 뿐더러, 임호텝과 예수를 12살이라는 연결고리로 묶은 후, 여기에서 다시 (임호텝=예수)를 호루스로 연결지으려는 메이시의 논리는 여기서 그냥 기각되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이런 트릭이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모른다. 원전을 안 읽기 때문이다. 사실 원전은 안 읽는 것은 크게 탓할 일이 아니다. 정말 탓할 일은 그들이 종종 "잘못된 권위"의 "왜곡된 (혹은 날조된)" 주장을 검증없이 덥썩 물어버린다는데 있다.




    §§ 임호텝 = 호루스?

    임호텝이 "12살 때 신전에서 가르친 소년신관이었다"고 근거없는 주장을 펼친 뒤 메이시가 취하는 두번째 트릭은, 이 임호텝을 거쳐 예수와 호루스와 또 연결하는 것이다. 메이시는 이 근거를 벗지에게서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럼 한번 벗지의 글과 메이시의 글을 대조해 보자.

    우선, 다시 벗지의 글을 인용한다. 이 글 속에서 벗지는 임호텝이 오랜 세월을 거쳐 신격화된 과정을 일부 설명하면서, 임호텝과 유사한 고대의 현자인 헤루-타타-프와 아멘-헤테프에 대해서 잠깐 소개한다.

    벗지의 진술이다.

    He was certainly the god of physicians and of all those who were occupied with the mingled science of medicine and magic, and when we remember that several of the first kings of the Early Empire are declared by Manetho, whose statements have been supported by the evidence of the papyri, to have written, i.e., caused to be edited, works on medicine, it is clear that the adoration of the god of medicine was in Memphis as old as the archaic period. In the songs which were sung in the temple of Antuf, the writer says,
    I have heard the words of I-em-hetep and of Heru-tata-f, (^^ 3 tl^ mA , which are repeated over and over again, but where are their places this day? Their walls are overthrown, their seats (or places) have no longer any being, and they are as if they had never existed. No man cometh to declare unto us what manner of beings they were, and none telleth us of their possessions," etc.
    Heru-tata-f, as we know from later texts, was a very learned man, even though his speech could only with difficulty be understood, and we also know the prominent part which he took as a recognized man of letters in bringing to the court of his father, Khufu, the magician Tetteta, and how his name is associated with the " finding " of certain Chapters of the Book of the Dead. Of the sage I-em-hetep, who is mentioned in connexion with him, it is difficult not to think that he was famous as a skilled physician whose acts and deeds were worthy of being classed Avith the words of Heru-tata-f.

    From the manner in which these great and wise men are referred to it is clear that they, who were the chosen representatives of the ablest and most learned among men, had become, even at the time when the Songs of Antuf were composed, mythical beings in whole or in part, and there is no good reason why I-em-hetep, the third member of the triad of Memphis, should not be a deified form of a distinguished physician who was attached to the priesthood of Ra, and who flourished before the end of the rule of the kings of the Ilird Dynasty. The pictures and figures of the god suggest that he was of human and of strictly local origin, but it is not evident how he came to usurp the place of Nefer-Tem at Memphis, especially as he was not the son of Ptah by Sekhet, or Bast, or any form of these goddesses.

    The worship of I-em-hetep was commoner in the Sai'te and Ptolemaic periods than in the Early and Middle Empires, and all the bronze figures of the god belong to a period subsequent to the XXIInd Dynasty. The titles given to him in the inscriptions at Philae may, it is true, represent ancient beliefs, but it is improbable, and as he does not appear in the Theban Recension of the Booh of the Dead it is tolerably certain that his worship was as popular and fashionable at Memphis immediately before and during the Ptolemaic period as that of Amen-hetep, the son of Hapu, the famous sage who had seen and conversed with the gods, was at Thebes about the same time.

    이 진술 속에서 벗지는 임호텝이 정말 프타-세케트-네페르템의 멤피스 3대 주신 구도를 프타-세케트-임호텝의 구도로 바꾼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진술한다. 그 이유는 임호텝이 비록 "프타의 아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프타와 세케트의 아들"로 불린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다음 진술이 아마도 메이시의 주요 논거가 될 것이다. 왜 그런지는 메이시의 진술과 비교해 가면서 설명하겠다.

    메이시의 진술이다.

    In certain aspects the god had a funeral character which somewhat resembled that of Ptah-Seker-Asar, although he is not mentioned in the Theban Recension of the Booh of the Dead. In the " Ritual of Embalmment"^ it is said to the deceased,
    "Thy soul uniteth itself to I-em-hetep whilst thou art in the funeral valley, and thy heart rejoiceth because thou dost not go into the dwelling of Sebek, and because thou art like a son in the house of his father, and doest what pleaseth thee in the city of Uast (Thebes)."
    The oldest shrine of the god was situated close to the city of Memphis, and was called " the Temple of I-em-hetep, the son of Ptah," f fi , to which the Greeks gave the name, TO 'AcrK\y]TneLov ; ^ it stood well outside the city, and lay quite near the Serapeum, on the edge of that portion of the desert which formed the necropolis of the city.

    메이시가 자신의 글의 곳곳에서 당대의 유명 이집트학 연구자들의 주장을 언급하는 사이 사이에 자신의 (근거가 약한) 추론을 마치 학계의 확립된 주장인 양 삽입해 놓았다는 점을 염두해 두고 메이시의 주장을 정교하게 분해해 보도록 하자

    메이시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신격화된 임호텝은 멤피스의 한 신전에서 "프타의 아들"로 불리기도 했고, 호루스 역시 종종 "프타의 아들"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신들의 속성과 역할이 상호습합되는 일이 빈번한 이집트 종교에서 한 신이 "프타의 아들"로 불리는 것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꼭 이 호루스가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일 필요도 없다. 심지어 이시스가 '프타의 딸"로 불리기도 한다.

    아래는 메이시의 진술이다.

    Until the time of Ptah, the Totemic types prevailed in the Egyptian astronomical mythology. There was only the Great Mother, in several characters, with her children, the same as in Totemism. But when the fatherhood was founded in Ptah his predecessors were designated his children. We learn from a hieroglyphic inscription on the temple of Iu-em-hetep at Phila that he was called "the great one, son of Ptah, the creative god, made by Tanen (a title of Ptah), begotten by him, the god of divine forms, who giveth life to all men." On one line of development he became the father-god as Atum-Ra at Heliopolis; on the other he (=호루스 / 필자 주) was God the son as Atum-Horus or Iu-em-hetep, he who comes with peace or rest.  --- pp. 752



    여기에 매우 중요한 메이시의 트릭이 숨어있다. 메이시의 논리는 이렇게 전개된다.

    위의 진술을 정리해 보자.

    • "그는" 프타의 아들로 묘사된다. 
      • he was called "the great one, son of Ptah, 
    • "그"는 헬리오폴리스에서는 아버지신인 아툼-라로 묘사된다.
      •  he became the father-god as Atum-Ra at Heliopolis
    • "그"는 또 다른 경우에 아툼-호루스로 혹은 임호텝이다.
      •  he was God the son as Atum-Horus or Iu-em-hetep

        대명사 그/he에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마치 [임호텝 = 아툼-라 = 아툼-호루스 = 호루스]의 공식이 완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세 진술에 등장하는 그/he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첫번째 "그"는 "임호텝"이다.

        두번째의 "그"는 "임호텝"이 아니다. 여기서의 "그"는 "호루스"다. 그러나 메이시의 설명과는 달리, 이 경우 "호루스"는 막바로 "아툼-라"와 직접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호루스는 "라-호라크티"란 이름/속성을 통해 "라"와 연결되고, 이를 다시 "아툼-라"와 연결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런 의미가 아니다. 라는 헬리오포리스에서는 아툼-라 였고, 멤피스에서는 라-호라크티였고, 멤피스에서는 아멘/아문-라였다.비록 아툼, 라, 호루스가 모두 태양신의 속성을 가지기는 하지만, 메이시의 두번째 진술을 정확하지 않은 진술이다.

        세번째의 "그" 역시 "호루스"다. 그럼 "호루스는 임호텝"이라는 공식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이 부분이 입증되지 않으면 메이시의 논리는 붕괴된다.

        메이시의 주장을 보자. 그의 주장은 두가지 논거 위에 서있다. 첫번째 논거를 읽어보자. 메이시는 벗지의 진술을 인용하고 있다.

        Iu-em-hetep was pre-eminently the divine healer, the medicine-man amongst the Egyptian gods. He was the good physician of souls as well as the healer of bodily disease. He was the caster-out of evil demons, the giver of sleep and rest to sufferers in pain. J^sculapius was a Greek version of Iu-em-hetep, "the great son of Ptah." The Greeks called his temple near the city of Memphis "The ^Esculapion." "Under the Ptolemies a small temple was built in honour of Iu-em-hetep on the island of Philse"; and a Greek version of the hieroglyphic inscription was placed over the door by the command of Ptolemy V (Budge, Gods of Eg., vol. i, p. 23). Iu-em-hetep is not mentioned by name in the "Book of the Dead," but it is said to the deceased in "the Ritual of Embalmment" "thy soul uniteth itself to Iu-em-hetep, whilst thou art in the funeral valley", where he takes the name of Horus as lord of the resurrection.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읊어지는 주문에는 죽은 이에게 "그대의 영혼은 장례 골짜기에서 임호텝과 연합될" 거이고, 거기서 그는 부활의 신으로 호루스명이 부여된다고 되어있다. 메이시는 이렇게 죽은 자가 "임호텝"과 연합되는 것이 "호루스와 연합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죽은 이가 호루스와 연합되는 장면이 아니다.



        벗지가 이 부분에 대해 진술한 원래 자료를 읽어보자.

        In certain aspects the god had a funeral character which somewhat resembled that of Ptah-Seker-Asar, although he is not mentioned in the Theban Recension of the Booh of the Dead. In the " Ritual of Embalmment"^ it is said to the deceased,
        "Thy soul uniteth itself to I-em-hetep whilst thou art in the funeral valley, and thy heart rejoiceth because thou dost not go into the dwelling of Sebek, and because thou art like a son in the house of his father, and doest what pleaseth thee in the city of Uast (Thebes)."

        테베의 장례문서에 따르면 죽은 이의 영혼은 장례골짜기에서 임호텝과 연합하는데, 벗지는 그래서 임호텝이 세 신이 합쳐져서 하나의 새로운 신으로 탄생한 프타-세케르(소카르)-아사르(오시리스)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벗지는 그래서 이 문맥에서 임호텝을 호루스와 동일시한 것이 아니라 프타-세케르(소카르)-아사르(오시리스)와 "어느 정도" 연결된다고 진술하고 있다. 융합된 세 신 가운데 세케르/소카르만이 호루스와 연계점이 있다.

        이 신은 아래처럼 세 명의 신으로 분리해 따로따로 (그러나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아차리아 S는 이 세 신의 모습이 "예수를 찾아온 동방박사 이야기의 원형"이란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물론 엄정한 학자들은 그런 주장을 일축할 것이지만.)


        J.G. Wilkinson, {A second series of the Manners and customs of the ancient Egyptia} (supplement)

        메이시의 두번째 논거는 아래와 같다.

        The cult of Iu-em-hetep was eclipsed or much obscured by the Osirian religion. In fact Iu-em-hetep was but a title of him who was the bringer of peace and good luck, and who was Atum-Horus as the son of Ptah; hence Iu-em-hetep is far better known as Horus the son of Osiris. Nevertheless, this cult of Iusa the child, the little hero sayer and healer, had a remarkable recrudescence and a considerable increase in Saitic and Greek times. We find that a temple was erected for his worship at Sakkara between the Serapeum and the village of Abusir. This is near enough in time to help in establishing a link betwixt the Egyptian Iusa and the Jesus of the Gospels, who was brought on from Memphis as Iu the Sa or son of Ptah, to Annu as Iu the ever-coming sa or son of Atum-Ra, thence to Alexandria as Iu-em-hetep, and to Greece as Imuthes, or /Esculapius, the god of healing there as he had been in Egypt, and to Rome as Jesus the Egypto-gnostic Christ.

        앞부분을 요약하자면,

        1. 아툼-호루스는 프타의 아들이다.
        2. 임호텝은 프타의 아들이다.
        3. 따라서 임호텝은 오시리스/이시스의 아들 호루스(로 여겨졌)다.

        이 결론을 유도한 메이시의 논리는 사실 매우 절망적이다.

        • 우선, 프타는 많은 신들의 아버지로 묘사된다. 따라서 아툼-호루스와 임호텝이 모두 프타의 아들로 묘사된다고 해서 아툼-호루스와 임호텝을 동일인물로 간주할 수는 없다.
        • 두번째, 아툼-호루스는 오시리스/이시스의 아들과 원래 별개의 존재다. 따라서 이 아툼-호루스를 매개로 해서 임호텝과 오시리스/이시스의 아들 호루스를 동일인물로 엮을 수는 없다.
        • 세번째, 결과적으로 메이시는 "임호텝이 12살 소년신관이었다", "임호텝은 호루스와 동일하다"라는 잘못된 유추를 바탕으로 "예수가 12살때 신전에서 율법사들을 가르쳤다", "호루스가 예수의 원형이다"라는 결론을 유도한 것이다. 

        원전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은 메이시가 제시하는 소위 "증거들"에 압도되다보니, 그가 만든 매우 정교한 (그러나 사실은 매우 허술한) 장치의 헛점을 미쳐보지 못하고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 정리

        메이시의 주장과 이를 받아 쓴 아차리아 S의 주장을 다시 받아 만들어진 {시대정신, Zeitgeist: the Movie}의 주장처럼, 여전히 "호루스"가 "12세 소년신관"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가?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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