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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고불 맹사성과 공당문답 / 公堂問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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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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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3-0303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고불 맹사성과 공당문답 / 公堂問答
순서
- 정승 고불(古佛) 맹사성 (孟思誠)
- 공당문답,公堂問答
고불 맹사성
1. 정승 고불(古佛) 맹사성 (孟思誠)
황희와 맹사성은 고려 우왕부터 조선의 세종까지 네 명의 군주를 섬긴 명 재상들이다. 그들은 백성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맹사성을 기려 팔판동과 가회동 사이의 언덕을 '맹현(孟峴)'이라 부르고 그가 살던 동네를 "맹동네"로 불렀다 한다.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은 그의 온유한 성품에 아울러 유별난 재치와 유머감각 때문이기도 했다.
2. {공당문답,公堂問答}
유명한 {공당문답,公堂問答}에는 바로 맹사성이 출연한다. 이 일화야말로, 맹사성을 600년 후 등장할 통신체의 비조로 받들어 모실 수 있게 할 만한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될 지도 모른다. 여러 문헌에 전해내려오지만 원 출전은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 燃藜室記述} 속 [세종조 상신편/世宗朝 相臣編] 이다.
정승 맹사성(孟思誠)이 온양(溫陽) 본가로부터 상경하는 길에 중로에서 비를 만나 용인(龍仁) 여원(旅院)에 들렸더니, 행차를 성하게 꾸민 어떤 이가 먼저 누상에 앉았으므로 그는 아래층에 앉았었다. 누상에 오른 자는 영남(嶺南)에 사는 사람으로서 의정부 녹사(議政府錄事) 시험에 응하러 가는 자였다.
맹씨는 초조한 행색으로 한 모퉁이에 들어가 앉으니, 그 사람이 심상한 행객으로 알고 청하여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나중에 공(公)짜 당(堂)짜 음(音)으로 문답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나이나 신분의 위-아래를 가늠하기 힘든 경우, 공당체를 사용했다고 배운 듯 하다 / 필자 주)
맹씨 먼저 묻기를 "무슨 일로 상경하난공?"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벼슬을 구하려고 상경한당."
"무슨 벼슬인공."
"녹사취재(錄事取才)당."
"내가 차제(差除)하겠공."
"우습다, 부당부당."
이렇듯 문답은 끝났다. 후일 맹이 정부에 앉았는데 그 사람이 취재하려 뵙는지라
맹이 웃으며 "그 동안에 어떠한공?" 하니
그 사람이 그제야 깨닫고 낭패하여 대답하기를 "죽고 싶도당." 하였다.
온 좌석이 괴이히 여기므로 맹은 그 자초지종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모든 사람이 대소하였다. 드디어 녹사(綠事)를 삼으니, 후인이 말하기를 {공당문답}이라 한다.
맹 고부리(古佛) 영감을 보았을때, 그 영남양반 심장은 얼마나 "公堂公堂" 뛰었을까?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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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고불 맹사성과 공당문답 / 公堂問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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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 고불(古佛) 맹사성 (孟思誠)
- 공당문답,公堂問答
고불 맹사성
1. 정승 고불(古佛) 맹사성 (孟思誠)
황희와 맹사성은 고려 우왕부터 조선의 세종까지 네 명의 군주를 섬긴 명 재상들이다. 그들은 백성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맹사성을 기려 팔판동과 가회동 사이의 언덕을 '맹현(孟峴)'이라 부르고 그가 살던 동네를 "맹동네"로 불렀다 한다.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은 그의 온유한 성품에 아울러 유별난 재치와 유머감각 때문이기도 했다.
2. {공당문답,公堂問答}
유명한 {공당문답,公堂問答}에는 바로 맹사성이 출연한다. 이 일화야말로, 맹사성을 600년 후 등장할 통신체의 비조로 받들어 모실 수 있게 할 만한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될 지도 모른다. 여러 문헌에 전해내려오지만 원 출전은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 燃藜室記述} 속 [세종조 상신편/世宗朝 相臣編] 이다.
정승 맹사성(孟思誠)이 온양(溫陽) 본가로부터 상경하는 길에 중로에서 비를 만나 용인(龍仁) 여원(旅院)에 들렸더니, 행차를 성하게 꾸민 어떤 이가 먼저 누상에 앉았으므로 그는 아래층에 앉았었다. 누상에 오른 자는 영남(嶺南)에 사는 사람으로서 의정부 녹사(議政府錄事) 시험에 응하러 가는 자였다.맹씨는 초조한 행색으로 한 모퉁이에 들어가 앉으니, 그 사람이 심상한 행객으로 알고 청하여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나중에 공(公)짜 당(堂)짜 음(音)으로 문답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나이나 신분의 위-아래를 가늠하기 힘든 경우, 공당체를 사용했다고 배운 듯 하다 / 필자 주)
맹씨 먼저 묻기를 "무슨 일로 상경하난공?"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벼슬을 구하려고 상경한당.""무슨 벼슬인공.""녹사취재(錄事取才)당.""내가 차제(差除)하겠공.""우습다, 부당부당."이렇듯 문답은 끝났다. 후일 맹이 정부에 앉았는데 그 사람이 취재하려 뵙는지라맹이 웃으며 "그 동안에 어떠한공?" 하니그 사람이 그제야 깨닫고 낭패하여 대답하기를 "죽고 싶도당." 하였다.온 좌석이 괴이히 여기므로 맹은 그 자초지종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모든 사람이 대소하였다. 드디어 녹사(綠事)를 삼으니, 후인이 말하기를 {공당문답}이라 한다.
맹 고부리(古佛) 영감을 보았을때, 그 영남양반 심장은 얼마나 "公堂公堂" 뛰었을까?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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