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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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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나는 믿는다} 발췌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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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10-12-24, 2010-12-31, 2011-01-03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I Believe} 발췌번역

순서
  1. 줄리언 헉슬리
  2. J. B. S. 홀데인
  3. 알버트 아인쉬타인

§ 책

아는 출판사 사장님께서 {I Believe: The Personal Philosophies of 23 Eminent Men and Wonen of Our Time, 나는 믿는다: 우리 시대 저명인사 23인의 개인철학}이란 책을 새로 번역해서 출판하고 싶다면서, 책 전체 내용에 관한 리뷰와 일단 몇 장의 초벌번역을 요청해 오셨다. 결국 책은 출판하지 않기로 결정났지만, 그 덕분에 책도 공짜로 구하고 독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받은 중고책은 1940년 초판본이다.



초판은 1940년 런던. 즉, 이 책이 말하는 '우리 시대'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유럽의 상황을 말한다. 이 책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좌파 성향 리버럴에 속하는 23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 흐르는 사상은 대략,

  1. 정치적으로는 반제국주의 + 반전체주의
  2.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 + 수정자본주의
  3. 철학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 + 무신론 + 사회진화론
  4. 과학적으로는 다윈의 진화론

에 크게 경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1차세계대전이 가져온 서구사회의 종교적 절망을 반영하는듯 반종교적이며,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을 통한 인류의 진보, 인간이성에 대한 낙관을 아주 강하게 담고 있다. 여기서 반종교적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 뿐 아니라 불교나 모든 종교적 사유체계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는 모든 형태의 종교에 대한 비판이며, 윤리학 역시 무척이나 실제적이고 상대적이다.

진화, 유물론, 과학, 기술, 이성 등이 이 주제에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개념들이며, 무엇보다도 '과학'에 바탕한 인류 지성의 가없는 '진보'에 대한 투철한 믿음을, 수록된 23편의 거의 모든 에세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19세기에 몰아닥친 과학-기술혁명과 구체제에 대한 반발이 그들의 사상을 결정했으리라. 사실 읽고 있기에 불편할 정도로, 그들의 과학에 대한 믿음은 (그들의 글에 종종 등장하는 것처럼) 종교를 대신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혁명, 진보, 해방 등이 빈번히 등장하는것은그런 이유라 생각된다.

아마도 내가 살았고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지성들이라면 책에 수록된 저자들의 이런 철학을 가차없이 비판했을 것이니, 나는 여기서 문득 깨닫는다. 제 아무리 독창적이라며 흠모해 마지않는 우리의 기라성 같은 사상들도 세월이 흘러 평가해보면, 그들이 살던 시대를 반영한 '시대의 아들들'로 밝혀질 것임을. 그러므로 솔로몬의 선언처럼 해는 내일도 떠오르고, 해 아래 새것은 아무것도 없는 지도 모른다.

이 책 속의 기라성 같은 저자들이 굳게 믿고 있는 '진보'와 '과학'과 '이성'에 대한 믿음은, 이제 곧 들어닥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저자 중 일부는 수 년후, 과학과 인류의 진보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수정하게 될 것이다.



§ 줄리언 헉슬리 (번역: 최광민)

pp. 130

줄리언 헉슬리 (Julian Huxley) : 토마스 헨리 헉슬리의 손자이자 앨더스 헉슬리의 형제인 쥴리언 헉슬리는 그들에 이어 명성을 남겼다. 랜슬럿 혹번처럼 줄리언 헉슬리는 새세대 역국과학자의 미래지향적 관점을 반영한다. 그는 연구자로 유명할 뿐 아니라, 동시에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 선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고차원적인 주제를 매우 쉽고 장중한 문체로 표현하고는 한다. 일반독자들은 특별히 헉슬리의 {생물학 에세이, Essay of Biologist}에 매력을 느낄 것이며, 그가 H.G. 웰즈 및 G.P. 웰즈와 함께 저술한 기념비적이고 매력적인 다른 저술 {생명의 과학, Sciences of Life>에도 빠져들 것이다. 그의 저술의 영향력은 라디오 프로그램, 강연 등을 통해 더 큰 파급력을 가졌다. 줄리언 헉슬리는 1887년 출생이고, 이튼스쿨과 옥스포드에서 교육받았다. 그후 옥스포드, 텍사스 휴스턴의 라이스대학, 런던의 킹스칼리지에서 가르쳤고, 로열인스티튜션에서는 생리학과의 풀리언 교수직을 염임했다. 또한 {브리태니아 백과사전} 14판의 생물학 항목 편집인을 맡기도 했다. 1935년 이래로는 런던 동물학회의 회장의 퐁무를 맡고있다. 위에 언급된 저술 이외에도 그의 주요저술 가운데는 {생명의 흐름, The Stream of Life (9126)}, J.B.S. 홀데인과 함께 저술한 {동물학, Animal Biology (1926)}, {아프리카를 보는 관점, Africa View (1931)}, {문제점들, Problems of (1934)}, A.C.Haddon과 함께 저술한 {우리 유럽인, We Europeans (1935)}, 그리고 {진화Evolution: The Modern Synthesis (1940)} 등이 있다. (책의 머릿글에서)

인생 속의 고통, 추함, 잔혹, 불행, 죽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생이란 살 만한 가치를 가졌다고 믿는다. 물론 모든 사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러하다는 것이다. 나는 또 믿기를,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든, 혹은 집단으로서의 '인류'이든지 간에, 만족스런 실존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좌절, 목표상실, 얄팍함, 권태, 나태,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나의 믿음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목표가 우주 안에 유전되거나 혹은 우리의 존재 안에 유전된다거나, 혹은 그런 목표가 발견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나는 단순한 신체의 안락 같은 낮은 수준의 가치로부터 사랑, 미학적 즐거움, 지성, 창조성, 미덕 같은 지고의 가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치는 그 수준과 위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이 절대적이라고, 혹은 외부의 어떤 힘이나 신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그런 형태로서의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것들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내가 믿기에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본성과 외부의 세계가 상호작용한 결과일 뿐이다. 나는 모든 가치있는 경험들을 납득할 만한 순서로 점수매길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며, 이것은 마치 "딱정벌레가 오징어나 정어리보다 더 고등생물이다"란 주장을 내가 믿지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분명히 생물계에는 일반적인 어떤 등급이 실재한다고 나는 생각하며, 이 경우 딱정벌레는 해면보다는 물론 고등하며, 인간은 개구리보다 고등하며, 또 모든 문명사회가 공유하는 어떤 일반적인 상식에 준해 볼때 단테의 {신곡}이 유행가보다 더 고상하고, 뉴톤이나 다윈의 과학적 업적이 낱말맞추기 퍼즐보다 더 고등하며, 성적쾌락보다는 숭고한 사랑이 더 고등한 가치를 가졌고, 자아의 인식이 자아에 대한 개념없음보다 나은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각각은 그 자체의 가치를 지닌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어떤 외부적인 힘과 존재로부터 흘로나와 우리의 내재적 기준으로 부여된 절대적 진리, 아름다움, 윤리, 혹은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사람들이 쿨하다고 생각하는 결론, 즉 진리와 미와 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안에는 어떤 구속력이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식의 괴상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질문들이 있으며, 그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결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을 질문하는 것 자체가 무용지물이라고 믿는다, 탈진, 걱정, 혹은 불행을 제외한다면,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철학자들과 신학자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떠올려 본다. 철학자와 신학자가 어떤 논쟁에 빠져들었고, 이때 신학자는 철학자들은 어두운 방에서 "거기 있지도 않은" 검은고양이를 찾으려고 하는 눈먼소경과 닮았다는 오래된 논증을 끌여들였다. 그러자 철학자는 이를 반박한다: "아마도 그럴 지도 몰라. 그러나 너희 신학자들은 "있지도 않은" 검은고양이를 찾아내겠지?"라고.

심지어 과학의 경우에도 우리는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법을 학습해야 한다. "부모의 경험이 유전되는 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요구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자체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유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대문이다. 계몽시대의 많은 화학자들은 "연소의 과정에는 어떤 물질이 관련되어 있는가?" 대해 수 없이 질문했고, 결국 '플로기스톤 이론'과 같은 괴상한 결론에 이르렀다. 그들은 연소과정에 관련된 어떤 특수한 물질(플로기스톤)에 대해 찾아보기에 앞서, "연소란 어떤 화학반응인가?"를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연소란 어떤 특별하고 새로운 반응이 아니라 다만 화학결합의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루게 될때, 잘못된 질문들을 던질 확률은 더 높아진다.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는, 만약 사람이 죽으면 "누가 이 사람을 죽였고, 무슨 마법을 사용했는가?"가 죽음에 대한 거의 유일한 질문이다. 자연적인 죽음에 대한 관념은 이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덜 문명화된 세계의 반에서는 아직도 잘못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있는 경우가 종종있다. "행운과 불행을 결정하는 마력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런 힘들을 피해가거나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같은 질문들 말이다.

나는 신이나 초자연적 존재들을 믿지 않는다. 비록 신에 관한 개념이 많은 경험에 근거해 구축되었다하더라도, 내게는 "세계를 통제하고 있는 어떤 일종의 인격적 존재가 있다"라고 하는 타당하지 못한 추론에 기반한 잘못된 관념이로 보인다. 우리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어떤 힘, 이해할 수 없는 재난들, 죽음들과 대치하고 있다. 황홀경, 아울러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우리 보통의 자아보다 훨씬 위대한 어떤 존재와의 신비적 연합을 통한 황홀경, 죄책감, 죄책감을 덜어야 한다는 강박과도 대치하고 있다. 이신론적 종교에서, 이 모든 실제적 경험들의 요소들은 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원론보다는 믿음과 실천의 통합으로 짜여들어가진다.

이런 원론들이란 결국은 "누가 혹은 무엇이 우주를 지배하는가?"라는 잘못된 질문에서 유래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보는 바대로, 우주는 우주 자체가 지배한다, 따라서 '국가-국가의 지배자'의 관계를 여기에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비론 신이 진실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우주 이면에 존재하고 있다고 한들, 우리는 그런 존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역사적 종교에 등장하는 실제적인 신들은 다만 자연의 비인격적 개념들, 혹은 우리 자신의 개념들이 인격화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비록 우리는 "실제적인 종교에 있어 신들은 어떤 것인가?"고 질문할 수는 있어도, 우리는 결국은 그 신들을 속성별로 나누고 그들의 신성이란 결국은 인간의 상상력, 가멍, 그리고 이성의 파편이란 점만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신의 본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답할 수 없다. 그것은 그런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우리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불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인식능력을 가지고는 우리가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사후의 삶이 어떤 모습일 것인지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우리가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체계적인 답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런 연유로 내세에 구원을 얻을 것인가의 질문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는 것은 그래서 그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구원이란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은 마치 신이란 인간의 실제경험 위에 바탕한다고 믿는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우리가 구원을 이 세계의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서로 다른 본성과의 조화, 혹은 우리자신과 우리 외부의 세계 – 자연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의 만족스런 관계정립 등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래서 '구원에 이름'이란 관념을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있고, 실제로 그것을 목표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마치 내가 통상적인 우리 개인의 자아보다 더 큰 존재들과의 연합 (신이 아닌 우리 자신의 좁은 자아가 아닌 외부적 경험과 우리가 보통 그리지 못하는 내적본성의 직관) 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만약 신과 불멸성을 거부한다면, 남아있을 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무신론자의 머릿 속에서 늘 떠나지 못하는 질문이다. 정통적인 종교인들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정통적인 (그들의) 종교적 관념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일 뿐이다. 오히려 사실상 많은 것이 남는다. 일단 생각될 수 있는 것으로는, 신이나 불멸에 대한 개념을 가지지 않고도 많은 남녀가 보다 더 활동적이고, 보다 더 자기희생적이며, 가치있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원래의 형태를 잃기 전의 불교는 그런 신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아울러 위대한 19세의 불가지론자들이나, 러시아의 정통파 공산주의자들, 스토아 철학자들 역시 그러했다. 물론 비신자들은 종종 이기심이나 악행들로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많은 경우, 이것은 아주 핵심적인 요점이 아니다. 핵심은 이런 믿음 없이도 많은 사람들이 충만하고 목적을 가진 삶을 영위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신심깊은 신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들은 그들의 존재 역시 가치있다는 강한 인식을 가졌다....(후략)

번역 : 최광민




§ J. B. S. 홀데인 (번역: 최광민)


마르크시즘에 경도되었던 실천적 지식인 홀데인의 에세이. 그런데 그의 열정적 믿음과 달리 왠일인지 홀데인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pp. 109

J.B.S 홀데인 교수는 영국의 과학자 가운데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선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실험실에만 묶이지 않고, 과학자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과 실천을 탐구한 사회주의 활동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이 관점은 그의 최근 저술인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과학 / The Marxist Philosophy and the Sciences>에 잘 정리되어 있다. 스페인 내전 중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을 열정적으로 지지했던 그는 1936년 스페인 정부를 방문해서 기술자문을 맡기도 했다. 최근 수 년간 그는 좌파 정치무대에 자주 등장했다.1892년 출생하여 이톤스쿨과 옥스포드에서 수학했고, 1914년부터 1919년까지 프랑스와 이라크 정부를 위해 일했다. 옥스포드대학의 뉴칼리지의 펠로우로 1919년에서 1922년까지 재직했고, 캠브리지대학의 생화학과의 강사, 로열 인스티튜트 생리학과의 풀리언 교수직을, 런던대학 유전학과 교수직을 맡았다. 그는 현재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생물통계학 교수를 맡고 있다. 그의 가장 저명한 저술 가운데는, <가능한 세계들 / Possible Worlds (1927)>, 과학과 윤리학 / Sciences and Ethics (1928), 진화의 이유/ Causes of Evolution (1933)>, <유전과 정치학 / Heredities and Plolitics (1937)>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과학 / The Marxist Philosophy and the Sciences (1938)> 이 있다.

내 철학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철학이자, 레닌과 스탈린의 철학이다. 이 철학은 정말로 살아있는 철학이다. 수 백만의 남녀가 이 철학을 위해 살고, 필요하다면 이 철학을 위해 죽는다. 지적인 수준으로 본다면, 이 철학은 생명을 지니고 있고 또 발전하고 있다. 비록 이론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이 철학은 그 실천을 우선시 한다. 어느 누구도 마르크스주의자로 행동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배울 수 있지만, 그 반대로 다만 그 철학이론에 대한 지식을 가진다하여 마르크스주의자로 행동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변화"에 대한 철학이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이 철학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를 여기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듯 싶다. 과학자로서 나는 물질을 연구한다. 심지어 나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하며, 나 자신을 물리학적, 화학적 법칙을 따르는 물질계로서 간주한다. 만약 병 안의 화학물질들에 적용되 듯이 이 법칙들이 내 신체에도 적용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나 자살이라도 했을 것이다. 사실상 나는 유물론이 참이라는데 내 인생 전체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유물론을 믿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읽어왔던 모든 유물론에 관한 설명들은 나 자신을 하나의 기계로 환원시켜버리거나, 혹은 단순한 행동패턴을 가진 그 어떤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단순히 "행동"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안다. 나는 느끼고, 인식하며, 의지하고, 계획한다. 그리고나서 엥겔스의 <포이에르바흐>와 <反-뒤링론>을 읽었을때, 나는 이 속에서 물질과 정신의 간극을 연결하는 새로운 유물론, 즉 그 둘 어느 것의 실재성을 부정하지 않는 새로운 철학을 발견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 그러나 나는 이 변증법적 유물론이 사회에 적용될 때, 이 철학은 우리의 현재 경제체계가 끝날 것이란 점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과 지배계급의 철저한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변화는 오직 노동계급의 혁명투쟁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예언도 발견했다. 나는 이 이론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필요하다면 점진적인 국유화, 가령 철도, 광산, 토지, 은행 등의 국유화를 통해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전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과학자로서의 내 직업을 계속할 수 있기를 원했고, 투표라든지 가끔있는 연설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정치로부터 멀리하려고 했다. 나는 다른 학자들이 지금도 종종 그러한 것처럼, 약간의 흥미와 약간의 경멸을 가지고 정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나서 도널드 덕이 스크린에서 걸어나와서는 내 턱을 후려쳤다. 히틀러는 그들이 유태인, 카톨릭, 프로테스탄트,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혹은 단순히 솔직하단 이유로 독일에 있는 내 동료학자들을 해고했다. 나는 그들 몇명을 위해서 일자리를 알아봐 주어야만 했다. 내가 반-히틀러 선전물을 제작하기 시작할 무렵, 문득 내가 모든 종류의 공산주의자들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그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가장 내 주의를 끌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영국의 부패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런 인식이 내 과학연구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또한 영국정부가 조직적으로 국제연맹 규약과 같은 조약이나 다른 국제적 약속들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바로 이런 것들이 히틀러나 뭇솔리니를 돕고 있었던 것이다.1936년 12월, 나는 스페인으로 가서 공화파에게 기술자문을 주었다. 그때 영국정부의 소극적 정책 때문에 영국출신 자원자들이 19세기에나 사용되던 캐나다제 소총으로 무장하고 최신예 독일 전차부대를 상대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스페인 반란군의 항구는 독일의 군항으로 접수되었고, 내가 약소국들의 권리와 세계 민주주의의 안전을 위해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싸웠던 모든 것들이 모두 독일 군국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을 보게되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모든 것들이 납득되었다. 그래서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측면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국가는 계급투쟁의 결과이며, 특정 최상위 계급을 유지시키기 위해 모든 것이 종속되어 있다는 이론을 포함했다. 이것은 왜 대영제국이 그 계급구조의 변화를 감수하지 못하고, 지금 그러한 것처럼 자멸로 나아가게 될 것인가를 설명한다. 스페인과 도처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남녀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었지만, 그 핵심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우리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이 상황에 대한 그들의 이해력으로나 자기희생에 관한 한 모범이 된다는 점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이론으로나 실천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던 것이며, 그 후 수백만의 다른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걷게되었다.

여기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인 철학이 있다. '실재'란 '발생하는 어떤 것'이다. 어떤 것으로도 그 자체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지금 알고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실들이 있을지라도 자연을 넘어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초자연적 존재도, 형이상학적 존재도 없다. 우리의 정신은 실재하나 이 정신 이전에 물질이 있다.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감정과 사고는 비록 불완전하다 하더라도 실재를 반영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절대진리를 향해 나아가지만 결코 모든 것을 얻은 것은 아니다.

실재는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지구가 정지해있다고 말하든 혹은 움직인다고 말하든, 위의 두 진술은 다른 관점에서 모두 진리를 말하고 있으며 모두 실재에 대응한다. 수지가 고체이자 액체이듯, 인간도 선이자 악이다.

변화는 연속적일 수도 급격할 수도 있다. 어떤 임계점을 향해 변화되어 나가다가 한 순간에 갑자기 변화한다. 물은 섭씨 100도가 되어서야 끓는다. 어느 순간 낙타 등의 짐에 지푸라기가 하나라도 더 얹어질때 낙타 등은 부러진다. 인간은 좋은 옷을 걸친다고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역경과 유혹과 싸울때 선해지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갈등과 모순은 내재적인 것이며 가장 중요한 변화 역시 내부에서 온다.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생산수단이다. 자본주의는 만약 자본주의자들이 땅과 노동자들의 도구를 독점하지 못했고, 만약 자본주의가 봉건주의보다 효율적이지 못했다면 생겨날 수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단순히 사회주의보다 덜 효율적이라서 소멸될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자멸할 것이다. 현 단계로서 자본주의는 나무줄기가 흔들리는 것처럼 이어지는 경제위기 가운데 점차적으로 교란을 겪고 있다.모든 경제 시스템은 그 자체의 사고, 법, 윤리, 정치체계를 발전시킨다. 오늘날 우리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코 중세인처럼 사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경제나 혹은 다른 어떤 운명적 조건들의 노예가 아니다. 자유는 필요의 인식이다. 이것은 역설이지만 동시에 진리이기도 하다. 자기 집이 단층대에 위치한다는 것과 지진과의 연관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곳을 떠나거나 내진설계된 집에서 살 겠지만, 운을 믿는 사람이라면 지진이 당할때 속수무책일 것이다.

만약 충분한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볼 수 있다면,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하는 철학을 공부하고 함께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고 이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만약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우리가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저 자본주의의 붕괴를 속수무책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는 두가지 옵션 중 하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하나는 파시즘이며, 이것은 계속적인 국제분쟁을 초래하고 세계의 문화, 경제수준을 파괴해가면서 결국 최종적으로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다른 옵션은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같은 지속적인 내전상태다. 나는 낙관론자다. 나는 세상에는 제 3의 이성적인 길을 선택할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구체계에서의 장점을 새로운 경제 시스템으로 이식시킬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분명한 철학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것이며, 이를 위해 빠른 결단을 내려야만 할 것이다.



§ 알버트 아인쉬타인 (번역 : 최광민)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에세이. 첫 부분은 제2차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후기는 전후에 작성되었다.

노벨상 수상자인 알버트 아인쉬타인은 "상대성이론"의 발표했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의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독일 출신의 유대인이지만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독일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영구이주했다. 1879년 태생으로, 베를린 소재 카이저 빌헬름 물리학 연구소(Kaiser Wilhelm Institute für Physik) 소장과 프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물리학 교수를 역임했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1925년에는 영국왕립학회로부터 코플리 메달을 수여받았다. 현대과학에 미친 그의 막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가 남긴 저술은 많지 않다. <상대성/Relativity>은 1920년 영어로 번역출간되었고, 1929년에는 <통일장이론/Ein Einheitlichen Feldtheorie>을 발표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1933년에 <왜 전쟁인가? / Why War?>를 George Allen & Unwin Ltd.를 통해 영어로 번역발표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상황은 분명치 않다. 우리는 이유는 모르지만 언뜻 신비한 목적을 지닌 듯 보이는 짧은 여정을 이 지구상에서 보낼 뿐이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와서 본다면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도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 특별히 우리의 행복과 복리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서로 운명적으로 연결된 이름모를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산다는 점이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번씩 우리의 안팎의 삶이 현재 살아있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노력에 얼마나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가를 깨닫고, 내가 그들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해 얼마나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까를 생각하고는 한다.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내 잔잔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는 무엇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인간은 꼭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 뿐 아니라 내재적인 요청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 사람은 자기가 뜻하는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 지는 스스로 정할 수는 없다." 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젊은 날 내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내가 인생의 쓴맛을 목격하거나 스스로 겪을 때마다 큰 위안을 주었다. 이런 생각을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삶을 견디어낼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심각하게 생각하는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자세는 유머감각을 가져다 준다고나 할까.

일반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도, 자신의 존재이유 혹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끝없이 지나친 철학적 고찰이란 방향을 잃은 어리석은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그들 자신의 꿈이나 목표로 이끌어주는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다. 내 앞에 늘상 떠오르고 내 삶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는 그런 관념들로는 선, 아름다움, 진리 같은 것들이 있다. 개인적 평정이나 개인만의 행복의 추구와 같은 목표들은 내게는 무의미하다. 이런데 바탕을 두는 철학이란 고작해야 동물들의 삶의 목표로서나 충분할 것이다.

예술이나 과학 가운데 남은 미궁의 과제들을 풀어가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내 삶은 공허했을 것이다. 어린시절 이래로 나는 일반인들의 야망이 가진 흔해빠진 한계들을 조소해왔다. 재산, 드러난 성공,명성, 사치품들…내게 이런 것들은 다만 한심하게 보일 뿐이었다. 소박하고 주제에 맞는 삶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삶이며. 또한 우리의 몸이나 정신을 위해서도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정의,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내 뜨거운 관심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남자나 여자들과의 직접적인 인간관계에 별반 관심이 없는 내 성격에 상반되어 보인다. 나는 한가지 일만 혼자서 열심히 하는 타입이지 남과 협력하거나 팀웍에 맞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국가, 혹은 내 친구들, 혹은 심지어 내 가족에게조차 전적으로 헌신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오히려 이런 관계들로부터 늘 거리를 두고 있었고, 나 자신으로의 침잠은 해를 거듭할 수록 더 강해졌다. 그런 고립이 때때로 씁쓸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받거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로인해 내가 확실히 잃은 것도 있으리라.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사회의 관습, 타인의 견해, 편견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런데 맞추기위해 내 자신의 평정를 잃을 일은 없었다.

내 정치적 이상은 민주주의로서, 모든 사람은 하나의 개인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어느 누구도 우상화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에게 기대치 못한 분에 넘치는 찬사와 평판이 쏟아지는 이 상황은 내 운명의 아이러니라고나할까. 아마도 이런 찬사들은 내가 내 미미한 힘으로 이룬 몇가지 성취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어떤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 지도자의 깊은 고민과 지휘와 책임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휘를 받는 사람이 꼭 리더에게 끌려다닐 필요는 없고, 그들 역시 그들의 리더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회적 계급'을 분명히 나누는 것 역시 잘못이라고 생각하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계급이란 힘에 의한 나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건데, 폭력은 필연적으로 윤리적으로 열등한 자들의 관심을 끌 뿐이므로, 모든 폭력적인 전제주의적 체제들은 퇴행적이이다. 걸출한 전제군주 뒤를 악당들이 줄줄이 계승한다는 점은 이미 역사가 입증한 바다.

그 래서 나는 늘 오늘날 러시아,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그런 체제들을 적극적으로 비판해왔다. 유럽식 민주주의가 안은 불명예의 원인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이념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미 없는 정당들의 제휴와 이합집산 속의 비인격적 성격과 정치지도자들의 불안정성에 그 원인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 난리법석스런 우리의 삶 가운데 진정 가치있는 일은, 국가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인상적인 개성과 인격을 가진 개인들이라고 말해야만 하겠다. 이들은 고귀하고 숭고한 가치를 창출하며 일반대중들은 깨이지 못한 사고와 감정 가운데 여전히 놓여있다. 이런 주제를 두고 생각할 때마다, 나는 불쾌하기 그지없는 군중심리의 자식, 군대를 떠올리게 된다. 행진곡에 맞춰 오와 열을 맞춰 행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나는 경멸조차 하기 싫다. 이런 자들은 실수로 그 큰 두뇌를 가지고 있는 것일 뿐, 그들에게 신경은 척추신경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이런 강요된 영웅주의, 말도 안되는 폭력들, 지긋지긋하게 과장된 애국심 – 아, 나는 이것들을 얼마나 경멸하는지! 전쟁은 가장 저급한 그런 것으로 취급받아 경멸받아야 하며, 그런 일에 동조하느니 나는 차라리 맞아죽는 편을 택하련다. 인류의 이런 치부는 당장 지체없이 사라져야 한다. 아주 오래 전에 사라져야했을 인류보편의 생각들이 국가의 상식이 되지 못한 것은,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학교나 언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조직적으로 주입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비야말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신비는 모든 참된 예술과 과학의 근원이기도 하다. 신비의 감정에 낯선 사람, 호기심과 경외심에 사로잡혀 정신을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의 눈은 감겨있으니 그는 이미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삶의 신비에 대한 직관, 때로는 신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종교는 태어났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실재한다는 점을 아는 것, 우리의 현자들이라도 고작 맛배기만 볼 수 있는 그런 드높은 지혜나 찬란한 아름다움처럼 스스로 드러나는 이 신비에 대한 지식과 느낌이야말로 모든 진실한 종교성의 핵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나에게 진정으로 신실한 종교인의 지위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는 그의 창조물에게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리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 다시말해 그런 신은 우리 자신을 모델링 한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약점을 반영한 신일 뿐이다. 나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철저한 공포나 우스꽝스런 이기주의 때문에 그런 믿음을 가진다쳐도, 결코 죽음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나에겐 그 자체로 영원한 가지적인 삶의 신비를 관조하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우주의 놀라운 구조를 사색하고, 자연 속에 모습을 드러낸 아주 작은 지성의 조각들을 겸손히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후기 (2차대전 후)

꽤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나는 두가지 상반된 인상을 받게 되었다. 내가 써놓은 글은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는 옳아보인다. 그러나 왠지 이상스러울만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세상이 그동안 엄청나게 변해버린 것일까? 또는 그 사이 내가 조금 더 나이를 먹어 모든 것을 이제 다른 시각에서, 그것도 조금 더 어둡게 보게 된 것일까? 인류 역사상 최근 몇 년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이 짧은 시간에 비한다면, 인류의 삶을 결정해왔던 모든 힘들은 늘 동일했다고 존재해왔다고 여기면 안되는 걸까? 내 비판적 이성이란 것이 이리도 나약한 것이어서, 그 사이의 육체의 변화가 삶에 대한 내 관점을 이리도 크게 변화시킨 것일까? 적어도 내게 분명한 것 하나는, 삶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들에 대한 감성적 접근방법의 변화에 대한 이런 사유들이 내게 어떤 해답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 변화의 이유들을 나 자신 외부에 있는 환경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외부환경이란 내 사고와 감성에서는 그저 종속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아주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러나 뭔가 크게 변한 것이 분명하다. 이 몇 년 사이, 인간사회의 안정감에 관한 자신감과 인류의 존립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인식의 상당부분이 소실되어 버렸다. 인류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위협 뿐 아니라,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지켜야할 것들이 저급한 가치들과 바꿔치기 되어버렸다.

의식이 깨인 인간은 언제나 "인생이란 모험"이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인지하고 있었고, 또한 영원히 우리의 삶이란 죽음으로부터 간신히 유지되는 것이란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위협은 부분적으로는 외적이다. 우리는 계단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질 수도 있고, 본인의 잘못없이도 생명을 잃을 수 있으며, 무고하게 비난받을 수도, 중상모략을 당할 수도 있다. 인간사회에서의 삶이란 즉 모든 종류의 위험을 뜻했다. 그러나 이 위험들은 본질상 혼돈스럽고 우연적인 것들이었고, 사회란 전체적으로 볼때는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적으로만 본다면, 인간사회는 확실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고만 피할 수 있다면, 혹자는 이 사회에서 집처럼 안락함을 느낄 수도 있고, 비교적 안전하게 갈아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사회의 이런 내재적 속성을 마치 숨쉬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했다. 덕, 꿈, 그리고 실생활에 적용되는 진리의 기준은 범할 수 없는 유산인 것으로, 즉 모든 문명화된 인류의 공통유산인 것으로 당연시 되었다.

분명히 세계대전은 이런 안정감을 뒤흔들어놓았다. 삶의 거룩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제 개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도 못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지못하는 상태로 전락했다. 기만술은 정치적 도구의 지위로 등극했다. 그러나 전쟁은 외적사건으로, 즉 인간의 의식적인 심사숙고의 결과로서가 아닌 예기치못한 외적 사건으로 여겨졌다. 전쟁은 마치 외부로부터 인간의 보통 삶 속에 침투해 들어온 불행이요 악이라 여겨졌다. 인간의 목표와 가치에 대한 안정감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동요되지 않고 남아있었다.

이런 계속적인 발전과정은, 중요하지도 않고 사회심리학적 배경을 쉽게 알아채기 힘든 정치적 사건들에 의해 날카롭게 상처를 입었다. 윌슨의 위대한 제안을 통한 국제연맹의 창설이 특징지운 한 단계 전진과 그리고 집단안보체계가 그러했다. 그리고나서 이어지는 협정들의 파기와 인류와 약소국에 대한 명백한 폭력에 수반되어 명백한 파시스트 국가들이 등장한다. 집단안보체제는 카드로 만든 집처럼 쉽게 붕괴되어 버렸고, 이 붕괴가 초래한 끔찍한 결과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영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이것은 파시스트 국가 지도자들의 파탄적 인격과 결여된 책임감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데,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 민주주의 내부의 근시안적 이기주의로 인해 파시스트에 대한 적극적인 역공이 부재했던 것이다.

사태는 침울한 예언 속의 가장 비관적인 예언보다도 점점 더 악화되어나갔다. 유럽의 라인강 동쪽에는 더이상 자유로운 지성을 단련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권력을 장악한 악당들은 사람들은 공포로 몰아가고, 젊은이들은 조직적인 기만에 중독되어 갔다. 정치적 모험주의자들의 이런 기만적 성공은 다른 나머지 세계를 경악시켰다. 이제 도처에서 분명해진 사실은, 우리 세대는 이전 세대들이 쓰라린 투쟁과 엄청난 희생을 지불하고 정치적이고 개인적 자유를 쟁취했던 그 힘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 간 이런 생각이 내 사고를 잠식하지 않았건만, 이제 이런 사태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내 위에 우울한 그림자가 매 순간 드리워지는 듯하다. 내가 과거에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그토록 강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보편적 개념은 다른 시대에는 다르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리고 현재의 추세가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을 가져다주고는 있지만, 그러나 나는 결국 인류는 거의 바뀌지 않고 남을 것임을 안다. 역사책은 모든 과거를 기록해 남기지 않는다. 미래의 세대들에게 선대들의 어리석음을 설명할 짧고 유감스런 몇 페이지 밖에는.

(번역: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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