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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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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예수 vs. 아티스 #1: {시대정신}, {예수는 신화다} 속의 오류들

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9-11-05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예수 vs. 아티스 #1: {시대정신}, {예수는 신화다} 속의 오류들

순서

  1. 어떤 주장
  2. 아티스는 12월 25일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3. 아티스는 인류를 위해 죽은 구세주다?
  4. 아티스의 신관들은 "천국을 위한 고자들"이었다?
  5. 아티스의 몸 (빵과 포도주)를 먹는 성찬의식을 아티스교 신자들은 거행했다?
  6. 아티스는 성부이자 성자였다?
  7. 아티스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 피로 인류를 구원했다?
  8. 아티스는 죽어 음부로 내려갔다가, 3일 후인 춘분에 부활했다?

§ 어떤 주장

우선, {시대정신/Zeitgeist} 1부에 삽입된 장면 하나를 인용한다.


{시대정신/Zeitgeist}

프리기아의 (생식의) 신 아티스와 예수를 연결시키는 시도는, 카피캣 이론 가운데서도 가장 무리수에 속한다. 일부 카피캣 이론가들은 아래와 같은 주장을 펼친다.

  • 아티스는 12월 25일에 성처녀 나나에게서 태어났다.
  • 아티스는 인류를 위해 죽임을 당한 구세주다.
  • 상징적으로 그의 몸을 먹는 성찬식을 아티스 신자들은 거행했다.
  • 아티스의 신관은 "천국을 위한 고자"들이었다.
  • 아티스는 성부이자 성자였다.
  • 아티스는 금요일에 나무에 달려 십자가형을 당했고, 그가 흘린 피는 인류의 죄를 속죄했다.
  • 아티스는 죽어 음부로 내려갔고, 3일 후인 3월 25일에 부활하여 "지극히 높은 신"으로 받들여졌다.

과연 그럴까?


Attis, Museo Archeologico Nazionale di Sarsina (출처: Wikipedia Commons)

이런 류의 주장을 담고 있는 {시대정신}, {예수는 신화다} 등이 그 주장의 출처로 인용하고 있는 아래의 저작물을 통해 확인해 보도록 하자.

  • Fear, A. T. "Cybele and Christ." in Cybele, Attis and Related Cults, Eugene Lane, ed., Brll, 1996.
  • Frazer, James G. Adonis, Attis, Osiris. University Books, 1967.
  • https://archive.org/details/adonisattisosiri00frazuoft
  • Gasparro, Sfameni. Soteriology: Mystic Aspects in the Cult of Cybele and Attis. Brill, 1995.
  • Vermaseren, M. J. Cybele and Attis: The Myth and the Cult. Thames and Hudson: 1977.
  • Vermaseren, M. J. The Legend of Attis in Greek and Roman Art. Brill, 1966.
  • Cybele, Attis and related cults: essays in memory of M.J. Vermaseren By Maarten Jozef Vermaseren, Eugene Lane




§ 아티스는 12월 25일에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12월 25일이 아티스의 탄생일로 기록된 자료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이 날짜는 일부 아마추어 신화학자들의 근거 빈약한 추론이다.

아티스의 탄생설화는 좀 긴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그럼 기독교가 지중해 일대로 퍼져가던 중이던 AD 1-2세기에 유행하던 형식의 아티스 신화를 기록한 AD 2세기의 그리스 지리학자 포사니아스를 인용해 보겠다.


Pausanias, {Description of Greece} https://archive.org/details/pausaniasdescri00shilgoog

But the current view about Attis is different, the local legend about him being this. Zeus, it is said, let fall in his sleep seed upon the ground, which in course of time sent up a demon, with two sexual organs, male and female. They call the daimon Agdistis [Kybele]. But the gods, fearing Agdistis, cut off the male organ. There grew up from it an almond-tree with its fruit ripe, and a daughter of the river Sangarios, they say, took of the fruit and laid it in her bosom, when it at once disappeared, but she was with child. A boy was born, and exposed, but was tended by a he-goat. As he grew up his beauty was more than human, and Agdㅇistis [Kybele] fell in love with him. When he had grown up, Attis was sent by his relatives to Pessinos, that he might wed the king's daughter. The marriage-song was being sung, when Agdistis appeared, and Attis went mad and cut off his genitals, as also did he who was giving him his daughter in marriage. But Agdistis repented of what he had done to Attis, and persuaded Zeus to grant that the body of Attis should neither rot at all nor decay. These are the most popular forms of the legend of Attis." - Pausanias, Guide to Greece 7.19.9-12

하지만 아티스에 관한 오늘날의 신화는 (헤르메니아낙스가 BC 3세기에 설명한 -- 필자 주) 다르다. 오늘날의 지역전설은 이렇게 설명한다: 제우스는 언젠가 땅에 정액을 흘렸는데, 시간이 흘러 거기서 암수 두개의 성기를 가진 자웅동체의 요괴 (다이몬)가 태어났다.  그들은 그 다이몬을 악디스티스 (~ 키벨레)라고 불렀다. 악디스티스를 두려워한 신들은 남성성기를 잘라버렸고, 잘린 성기에서 아몬드 나무가 자라나서 열매가 맺었다. 산가리오스 강의 신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 나무에서 아몬드를 따서 가슴에 놓아두자 아몬드가 (몸 속으로)) 사라지더니 임신을 하게 되었다. 사내아기가 태어나 버려졌고 숫염소에 의해 키워졌다. 아이가 자라나자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운 남자가 되었는데, 악디스티스 (~ 키벨레)가 곧 사랑에 빠졌다. 아티스가 성인이 되자 친척들은 그를 페시노스로 보냈고, 거기서 아티스는 공주와 결혼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축가가 불려질때 악디스티스가 등장했다. 그때 아티스는 정신이 돌아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잘랐고, 장인이 될 왕도 자신의 성기를 잘랐다.  그러나 악디스티스는 자신이 아티스에게 저지른 일을 후회했고, 죽은 아티스의 몸이 썩지도 부패하지도 않게 해달라고 제우스에게 빌었다. 이것이 현재 가장 널리퍼진 형태의 아티스 신화이다 ---- 포사니아스, {그리스 기행} 7.19.9-12 / 번역: 최광민 



다른 고대 기록들을 참고해 살을 붙이면 이렇게 된다. 특별히 가장 생생한 기록을 남긴 북아프리카 누미디아 (현, 알제리-튀니지)의 수사학자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아르노비우스 (? - AD 330)의 {이교도 반박}에 따르면 아티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용을 인용하고 요점만 간추리겠다.


Arnobius, {The seven books of Arnobius Adversus gentes}, 아르노비우스, {이교도 반박}, 제 4권 5-7장, https://archive.org/details/thesevenbooksofa00arnouoft

5. In Timotheus, who was no mean mythologist, and also in others equally well informed, the birth of the Great Mother of the gods, and the origin of her rites, are thus detailed, being derived (as he himself writes and suggests) from learned books of antiquities, and from [his acquaintance with] the most secret mysteries : — Within the confines of Phrygia, he says, there is a rock of unheard-of wildness in every respect, the name of which is Agdus, so named by the natives of that district. Stones taken from it, as Themis by her oracle 2 had enjoined, Deucalion and Pyrrha threw upon the earth, at that time emptied of men ; from which this Great Mother, too, as she is called, was fashioned along with the others, and animated by the Deity. Her, given over to rest and sleep on the very summit of the rock, Jupiter assailed with lewdest 3 desires. But when, after long strife, he could not accomplish what he had proposed to himself, he, baffled, spent his lust on the stone. This the rock received, and with many groanings Acdestis 4 is born in the tenth month, being named from his mother rock. In him there had been resistless might, and a fierceness of disposition beyond control, a lust made furious, and [derived] from botli sexes. 1 He violently plundered and laid waste ; he scattered destruction wherever the ferocity of his disposition had led him ; he regarded not gods or men, nor did he think anything more powerful than himself ; he contemned earth, heaven, and the stars.

6. Now, when it had been often considered in the councils of the gods, by what means it might be possible either to weaken or to curb his audacity, Liber, the rest hanging back, takes upon himself this task. With the trongest wine he drugs a spring much resorted to by Acdestis, 2 where he had been wont to assuage the heat and burning thirst 3 roused [m him] by sport and hunting. Hither runs Acdestis to drink when he felt the need ; 4 he gulps down the draught too greedily into his gaping veins. Overcome by what he is quite unaccustomed to, he is in consequence sent fast asleep. Liber is near the snare [which he had set] ; over his foot he throws one end of a halter 5 formed of hairs, woven together very skilfully ; with the other end he lays hold of his privy members. When the fumes of the wine passed off, Acdestis starts up furiously, and his foot dragging the noose, by his own strength he robs himself of his 6 sex; with the tearing asunder of [these] parts there is an immense flow of blood ; both 7 are carried off and wallowed up by the earth ; from them there suddenly springs up, covered with fruit, a pomegranate tree, seeing the beauty of which, with admiration, Nana, 8 daughter of the king or river Sangarius, gathers and places in her bosom [some of the fruit]. By this she becomes pregnant ; her father shuts her up, supposing that she had been 1 debauched, and seeks to have her starved to death; she is kept alive by the mother of the gods with apples, and other food, 2 [and] brings forth a child, but Sangarius 3 orders it to be exposed. One Phorbas having found the child, takes it home, 4 brings it up on goats' milk ; and as handsome fellows are so named in Lydia, or because the Phrygians in their own way of speaking call their goats attagi, it appened in consequence that [the boy] obtained the name Attis. Him the mother of the gods loved exceedingly, because he was of most surpassing beauty; and Acdestis, [who was] his companion, as he grew up fondling im, and bound [to him] by wicked compliance with his lust in the only way now possible, leading him through the wooded glades, and presenting him with the spoils of many wild beasts, which the boy Attis at first said boastfully ere won by his own toil and labour. Afterwards, under the influence of wine, he admits that he is both loved by Acdestis, and honoured by him with the gifts brought from the forest ; whence it is unlawful for those polluted by [drinking] wine to enter into his sanctuary, because it discovered his secret. 6

[전략]...프리기아에 악두스라는 바위(산)가 있다. 대홍수 후에 새로운 인류를 만들기 위해 데우칼리온과 퓌라가 던진 돌이 이 생명력을 지닌 바위로부터 왔다. 대모신이 종종 거기 앉아 휴식을 취하였는데 어느날 그 정상에 누워 자고 있다가 성욕이 발동한 제우스/유피테르의 공격을 받게 된다. 여신을 덮치는데 실패한 제우스는 바위 위에 자신의 정액을 흘렸고 그 자리에서 자웅동체의 생명체인 악디스티스가 탄생했다. 이 생명체를 마땅찮게 생각했던 많은 신들 중 특히 리베르(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를 먹여 악디스티스를 잠들게 한 후 밧줄로 악디스티스의 남성성기와 나무를 묶고는 잠든 악디스티스를 깜짝 놀라게 했다. 놀란 잠에서 깬 악디스티스의 성기가 뽑혀 실질적으로 거세를 당했다. 이때 성기에서 흘러나온 피가 땅에 스며들어 그 자리에서 석류 혹은 아몬드 나무가 자라나왔다.

한편, '산가리우스'라는 강/왕으로부터 후에 나나라는 님프가 태어났다. 한 전설에서 나나는 우연히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가슴 혹은 허벅지에 놓아두었는데, 그 열매가 갑자기 사라져버렸고 나나는 자신이 아티스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딸이 간음한 것으로 여긴 산가리우스는 딸을 가두어 굶어죽게 했지만, 신들의 어머니가 사과와 다른 음식을 주어 나나를 살려주었다. 태어난 아티스는 산가리우스의 명령에 의해 버려졌고, 포르바스에 의해 우연히 구조된 아기는 염소젖으로 키워졌다.  [후략] --- 번역/정리: 최광민

이런 아티스의 탄생담으로부터 예수의 탄생담에 등장하는 소위 "동정녀 탄생"이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아티스는 인류를 위해 죽은 구세주다?

아티스 종교를 기록해 남긴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나 로마의 오비디우스는 이런 기록을 남긴 적 없다. 이런 주장은 무려 서기 6세기에 가서나 다마스키우스 (480-550 AD)란 이교도 작가에게서 처음 발견된다. 그는 꿈 속에서 본 아티스 제전 ("힐라리아")을 하데스로부터의 구원을 기념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 경우 아티스는 헤로도토스 버전의 아티스와 조금 다르다. 이 아티스는 아마도 오비디우스 버전의 아티스와 유사한데, 이 경우 아티스의 어머니는 나나가 아니라 키벨레가 된다. 키벨레-아티스가 한 쌍이 되어, 아티스는 무덤의 수호자 혹은 망자의 위로자 같은 지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역시, 아티스가 인류를 위해 죽임을 당한 구세주라는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지중해 종교에 인류의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한 구세주 개념이 없다는 것은, 2세기 초반의 유스티노스가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카피캣 이론가들은 유스티노스의 다른 서술들은 즐겨 인용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한다.) 아울러 아티스는 사후의 구원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AD 2세기 활동한 그리스 지리학자이자 작가인 포사니아스 AD 110-180)의 진술을 하나 인용해 본다. 그는 여기서 BC 3/4세기의 그리스 비극시인 헤르메시아낙스가 자신의 시 속에 담은 아티스 이야기를 정리한다.


Pausanias, {Description of Greece} https://archive.org/details/pausaniasdescri00shilgoog

"The people of Dyme [in Akhaia] ... have as well a sanctuary built for the Dindymenian mother [Rhea-Kybele] and Attis. As to Attis, I could learn no secret about him, but Hermesianax, the elegiac poet, says in a poem that he was the son of Galaos the Phrygian, and that he was a eunuch from birth. The account of Hermesianax goes on to say that, on growing up, Attis migrated to Lydia and celebrated for the Lydians the orgies of the Mother; that he rose to such honor with her that Zeus, being wroth at it, sent a boar to destroy the tillage of the Lydians. Then certain Lydians, with Attis himself, were killed by the boar, and it is consistent with this that the Gauls who inhabit Pessinos abstain from pork. --- Pausanias, Guide to Greece 7.19.9-12

....Dyme의 사람들은 지모신 (=레아-키벨레)과 아티스에게 바쳐진 신전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티스에 관한 어떤 비밀스런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 러나 비극시인 헤르메시아낙스는 그의 시 속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아티스는 프리기아인 갈라오스의 아들이었고, 태어날 때부터 고자였다. 성장하면서 아티스는 리디아로 가서 지모신 축제를 리디아인들에게 소개했다. 아티스가 지모신과 함께 지극한 숭배의 대상이 되자 이에 분개한 제우스는 멧돼지를 보내 리디아인들의 마을을 파괴했는데, 아티스는 리디아인 몇몇과 함께 멧돼지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이 내용은 페시노스에 거주하는 골 사람들이 돼지를 먹지않는사실과도 일치한다---- 포사니아스, {그리스 기행} 7.19.9-12 / 번역: 최광민

아티스가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가? 아니면 아티스의 인기를 시기한 제우스가보낸 멧돼지에 깔려 죽는가? 물론 후자가 정답이다. 아무튼 이것은 BC 3세기에 유행하던 형식의 아티스 일화를 반영한다.



그럼 기독교가 지중해 일대로 퍼져가던 중이던 AD 1-2세기에 유행하던 형식의 아티스 종교에서는 아티스의 일대기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포사니아스는 바로 그가 살던 시대에 가장 유행하던 형태의 아티스 신화를 위의 진술에 이어 설명한다.

But the current view about Attis is different, the local legend about him being this. Zeus, it is said, let fall in his sleep seed upon the ground, which in course of time sent up a demon, with two sexual organs, male and female. They call the daimon Agdistis [Kybele]. But the gods, fearing Agdistis, cut off the male organ. There grew up from it an almond-tree with its fruit ripe, and a daughter of the river Sangarios, they say, took of the fruit and laid it in her bosom, when it at once disappeared, but she was with child. A boy was born, and exposed, but was tended by a he-goat. As he grew up his beauty was more than human, and Agdㅇistis [Kybele] fell in love with him. When he had grown up, Attis was sent by his relatives to Pessinos, that he might wed the king's daughter. The marriage-song was being sung, when Agdistis appeared, and Attis went mad and cut off his genitals, as also did he who was giving him his daughter in marriage. But Agdistis repented of what he had done to Attis, and persuaded Zeus to grant that the body of Attis should neither rot at all nor decay. These are the most popular forms of the legend of Attis." - Pausanias, Guide to Greece 7.19.9-12

하지만 아티스에 관한 오늘날의 신화는 (헤르메니아낙스가 BC 3세기에 설명한 -- 필자 주)다르다. 오늘날의 지역전설은 이렇게 설명한다: 제우스는 언젠가 땅에 정액을 흘렸는데, 시간이 흘러 거기서 암수 두개의 성기를 가진 자웅동체의 요괴 (다이몬)가 태어났다.  그들은 그 다이몬을 악디스티스라고 불렀다. 악디스티스를 두려워한 신들은 남성성기를 잘라버고, 잘린 성기에서 아몬드 나무가 자라나서 열매가 맺었다. 산가리오스 강의 신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 나무에서 아몬드를 따서 가슴에 놓아두었더니 아몬드가 (몸 속으로)) 사라지면서 임신을 하게 되었다. 사내아기는 태어난 후 버려져 숫염소에 의해 키워졌다. 아이가 자라나자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운 남자가 되었는데, 악디스티스가 그와 곧 사랑에 빠졌다. 아티스가 성인이 되자 친척들은 그를 페시노스로 보냈고, 거기서 아티스는 공주와 결혼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축가가 불려지는 중 악디스티스가 등장했다. 그때 아티스는 미쳐서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잘랐고, 장인이 될 왕도 자신의 성기를 잘랐다.  그러나 악디스티스는 자신이 아티스에게 저지른 일을 후회했고, 죽은 아티스의 몸이 썩지도 부패하지도 않게 해달라고 제우스에게 빌었다. 이것이 현재 가장 널리퍼진 형태의 아티스 신화이다 ---- 포사니아스, {그리스 기행} 7.19.9-12 / 번역: 최광민 

남근이 거세된 자웅동체의 악디스티스는 거세된 자신의 남근을 통해 태어난 아티스의 "어머니"가 된다. 이 버전의 신화는 왜 남근이 거세된 악디스티스, 즉 지모신 키벨레의 신화에서 키벨레가 아티스와 근신상간적인 관계에 놓이는가에 대한 단서가 된다.

아티스가 인간을 위해 구세주로서 죽임당했다는 낭설은 도대체 고대 기록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 아티스의 몸 (빵과 포도주)을 먹는 성찬의식을 아티스 신자들은 거행했다?

카피캣 이론가인 프리크와 갠디는, 아티스 종교의 입문자들이 모종의 성만찬 ("had some form of communion")을 거행했으며 그를이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거의 확실히 빵과 포도주일 것이라 ("What they ate and drank from these sacred instruments is not recorded, but most likely it was bread and wine.")고 적는다.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예수는 신화다, The Jesus Mysteries}

거의 확실한가? 글쎄?

이 주장의 출처로 프리크와 갠디는 다른 카피캣 이론가인 Godwin을 들고 있지만, 막상 Jocselyn Godwin의 출전 {Mystery religions in the ancient world}에 보면 그 음식이 빵과 포도주일 것이라는 "증거"를 댄 적이 전혀없다. 그저 "추측"했을 뿐이다.

오히려 미트라스의 초기 연구자이다가 아티스 쪽으로 연구방향을 돌려 이 분야의 좌장으로 활약한 Vermaseren은 {Cybele and Attis: The Myth and the Cult}에서 그 음료가 포도주가 아니라 우유일 것이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포도주와 빵은 아티스 제전에서 금지된 식품 리스트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왜? 양성으로 태어났다가 악디스티스가 디오니소스에 의해 남성성기가 거세당할때 디오니소스는 악디스티스에게 포도주를 먹여 취하게 했기 때문이다. 또한 (할머니 뻘인 지모신) 키벨레와 (아버지 뻘인) 악디스티스 사이의 연적관계로 성장한 미소년 아티스는, 어느날 그를 사랑하는 악디스티스의 도움으로 사냥에서 많은 동물을 잡게 된다. 포도주에 취한 아티스는 미다스 왕에게 악디스티스가 자기를 사랑해서 이런 일을 있게 했다고 떠벌인다. 미다스 왕은 아티스를 악디스티스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아티스와 자신의 딸 이아를 결혼시키게 되는데, 이 결혼식장에 악디스티스와 키벨레가 출동해 난장판을 만들고, 정신이 돈 아티스는 스스로 거세하고 죽는다. 미다스도 따라서 거세하고 죽었으며, 그 딸인 이아도 자살했다. 따라서 아티스 종교에서는 그 신전에 포도주를 반입하거나 마신 자가 신전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오염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아테네의 기록에 따르면, 봄철에 있었던 키벨레/아티스 제전에는 황소를 희생물로 바치는 의식과 함께 "갈락시아/Galaxia", 즉 "젖의 제전"이 있었다.




§ 아티스의 신관은 "천국을 위한 고자"들이었다?

아티스 전설에서 아티스는 슬픔 속에서 스스로 거세를 했고, 이를 모방해 아티스의 신관들 역시 거세를 했다. 이것은 신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아티스를 모방하는 행위다. 아울러 아티스의 신관은 아티스 제전 중 여자의 옷을 입고 격렬한 춤을 추는 등의 의식을 거행했다.

한편 BC 1세기에 활동한 로마시인 오비디우스 (43 BC – AD 17/18) 버전에서는 아티스의 죽음이 아래와 같이 기술된다.

"What causes the impulse [of the devotees of Kybele] to self-castrate?’ I was silent. The Pierid [Mousa] began: ‘A woodland Phrygian boy, the gorgeous Attis, conquered the towered goddess with pure love. She wanted to keep him as her shrine’s guardian, and said, ‘Desire to be a boy always.’ He promised what was asked and declared, ‘If I lie, let the Venus [Aphrodite] I cheat with be my last.’ He cheats, and in the Nympha Sagaritis stops being what he was: the goddess’ wrath punished him. She slashes the tree and cuts the Naiad down. The Naiad dies: her fate was the tree’s. He goes mad, and imagines that the bedroom roof is falling and bolts to Dindymus’ heights. He cries, ‘Away torches!’, ‘Away whips!’, and often swears the Palestine goddesses have him. He even hacked his body with a jagged stone, and dragged his long hair in squalid dirt, shouting, ‘I deserved it; my blood is the penalty. Ah, death to the parts which have ruined me!’ ‘Ah, death to them!’ he said, and cropped his groin’s weight. Suddenly no signs of manhood remained. His madness became a model: soft-skinned acolytes toss their hair and cut their worthless organs." - Ovid, Fasti 4.222

"[키벨레 신자들이] 정열적으로 스스로 거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피에리데 (Πιερίδες)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산림지대의 아름다운 프리기아 소년인 아티스는 드높은 여신을 순수한 사랑으로 사로잡았다. 여신은 아티스에게 자신의 신전지기로 붙잡아 두길 원했고, "네가 소년으로 영원하길 원하노라"라고 말했다. 아티스는 여신이 워나는 바를 약속하면서 "제가 바람을 피우면 베누스 (아프로디테)가 그 상대를 제 마지막 여자가 되게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아티스는 사가리티스 님페와 바람을 피워 아티스의 약속을 깼다. 여신은 분노하여 그에게 징벌을 내렸다. 여신은 그녀의 나무를 쓰려뜨리고 그 나이아드 (사가리티스)를 토막내 죽였다. 그녀의 운명은 나무의 운명과 같이했다. 아티스는 정신이 나가서 침실의 지붕이 떨어지고 딘디몬 산에 벼락이 떨어진다고 착각했다. 아티스는 "횃불! 채찍! 이라고 외치면서 자신이 여신의 소유였음을 욕했다. 그는 심지어 날카로운 돌을 들어 몸을 내리쳤고, 긴 머리를 더러운 진창에 끌면서 "내가 이 꼴을 당해도 싸다. 내 피가 내 벌이다. 아, 나를 파멸하게 한 내 몸뚱이에 죽음을! 아, 그 몸에 죽음을!"이라고 외치며, 그의 허벅지를 도려냈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그의 성기가 잘려나갔다. 그의 광기가 모델이 되어, 피부가 여린 미동들이 그의 머리를 풀어던지고 그들의 무가치한 성기를 잘라버리게 된 것이다"...... 오비디우스, {파스티} 4.222 / 번역: 최광민

여신의 질투로 연인을 잃고 미쳐버린 아티스가 스스로를 거세하는 자해행위를 본따 프리기아의 키벨레/아티스 신관들이 스스로 거세를 한 행위와, 훨씬 후대에 정착된 "서방"기독교의 독신성직자 제도가 같은 신화적 모티프를 따른다고 봐야할 것인가?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아티스 신관들의 자해행위를 혐오하고 조롱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독교에서 자발적 거세는 교회법상 범죄로 간주되었다.




§ 아티스는 성부이자 성자였다?

아티스의 신격을 제공하는 제우스는 굳이 말하면 할아버지 뻘이므로, 아티스에게는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호칭이 따라붙지 않았다.

아티스가 "아버지"로 불렸다는 주장은 신화학자 프레이저의 주장이었다. 그는 '아티스'란 이름이 "아마도" '아버지를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마도 대모지신인 어머니 키벨레와 근친상간적인 한 쌍인 경우, 그렇게 불렸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이후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다.


§ 아티스는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의 피로 인류를 구원했다?

아티스는 나무 "밑"에서 죽었지, 나무에 "달려"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았다. 아울러 아티스가 금요일에 죽었다는 어떤 문헌적 근거도 없다. 그가 자신의 성기를 자르고 과다출혈로 죽을 때 뿜어나온 피로 그 주위에서 제비꽃이 피어났다. 이를 두고 인류의 죄를 대신한 속죄행위라고 불러야 할까?

앞서 말한대로 아티스의 죽음에 대해서는 몇가지 다른 전설이 있다. 다양한 버전의 전설을 정리하자면 대략 두 종류의 버전으로 수렴된다.

한 전설에서, 아티스의 결혼식에 (아티스의 아버지 뻘인) 악디스티스가 나타나서는 디오니소스의 명부책에서 한 페이지를 뜯어가는데, 그 결과 아티스의 신부가 죽어버렸다. 신부의 죽음에 절망한 아티스는 소나무 아래에 몸을 던져 스스로 거세해 버렸고 과다출혈로 죽는다. 이를 본 악디스티스가 제우스를 찾아가 아티스를 되살려 줄 것을 청원하는데, 제우스가 아티스를 되살리기는 하는데 좀 괴이한 방식으로 그리한다. 즉, 아티스의 죽은 몸은 썩지않고 머리도 계속 자라지만, 몸이 다 살아난 것이 아니라 새끼 손가락만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아티스와 아티스의 어머니 키벨레는 근친상간적 관계에 놓인다. 정확히는 키벨레가 아티스를 일방적으로 좋아한 것이다. 사실 아티스는 사랑하는 님프가 있었는데, 질투심에 불타 키벨레는 그 님프를 죽인다. 이에 절망한 아티스는 소나무 아래서 스스로 거세하고 죽는데, 그때 그 피에서는 제비꽃이 피어나고 그의 몸은 소나무로 변한다. BC 1세기 - AD 1세기에 활동한 로마시인 오비디우스는 소나무로 변한 아티스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적었다.

"Pines, high-girdled, in a leafy crest, the favourite of the Gods’ Great Mother (Grata Deum Matri), since in this tree Attis Cybeleius doffed his human shape and stiffened in its trunk." - Ovid, Metamorphoses 10.103



이것이 아티스의 "죽음과 부활"을 말하고 있을까? 이런 식의 주장은 프레이저로부터 유래한다. 프레이저는 아폴론과 피리경연에 나섰다가 진 어떤 프리지아 시인이 그 벌로 나무에 묶여 사지가 절단된 설화로부터, 이 프리지아 시인이 키벨레의 연인이므로 이 시인을 아마도 아티스와 연결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이 주장은 무리수라고 인정할 것이다


§ 아티스는 죽어 음부로 내려갔고, 3일 후인 3월 25일에 부활하여 "지극히 높은 신"으로 받들여졌다?

아티스가 부활했다는 고대 기록이 있던가?

7. Then Midas, king of Pessinus, wishing to withdraw the youth from so disgraceful an intimacy, resolves to give him his own daughter in marriage, and caused the [gates of the] town to be closed, that no one of evil omen might disturb their marriage joys. But the mother of the gods, knowing the fate of the youth, and that he would live among men in safety [only] so long as he was free from the ties of marriage, that no disaster might occur, enters the closed city, raising its walls with her head, which began to be crowned with towers in consequence. Acdestis, bursting with rage because of the boy's being torn from himself, and brought to seek a wife, fills all the guests with frenzied madness : * the Phrygians shriek aloud, panic-stricken at the appearance of the gods ; 2a dauirhter of adulterous 3 Gallus cuts off her breasts ; Attis snatciies the pipe borne by him who was goading them to frenzy ; and he, too, now filled with furious passion, raving franticly [and] tossed about, throws himself down at last, and under a pine tree mutilates himself, saying, Take these* Acdestis, for which you have stirred up so great and terribly perilous commotions. 5 With the streaming blood his life flies ; but the Great Mother of the gods gathers the parts which had been cut off, and throws earth on them, having first covered them, and wrapped 6 them in the garment of the dead. From the blood which had flowed springs a flower, the violet, and with 7 this the tree 8 is girt. Thence the custom began and arose, whereby you even now veil and wreath with flowers the sacred pine. The virgin who had been the bride (whose name, as Valerius 9 the pontifex relates, w r as la) veils the breast of the lifeless [youth] with soft wool, sheds tears with Acdestis, and slays herself. After her death her blood is changed into purple violets. The mother of the gods shed tears also, 1 from which springs an almond tree, signifying the bitterness of death. 2 Then she bears away to her cave the pine tree, beneath which Attis had unmanned himself ; and Acdestis joining in her wailings, she beats and wounds her breast, [pacing] round the trunk of the tree now at rest. 3 Jupiter is begged by Acdestis that Attis may be restored to life : he does not permit it. What, however, fate allowed, 4 he readily grants, that his body should not decay, that his hairs should always grow, that the least of his fingers should live, and should be kept ever in motion ; content with which favours, [it is said] that Acdestis consecrated the body in Pessinus, [and] honoured it with yearly rites and priestly services.

....아티스가 죽은 후 악데스티스는 아티스를 살려달라고 제우스에게 간청하는데, 제우스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제우스는 아테스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게 해주겠다고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래서 아티스의 머리카락은 계속 자랐고, 손가락도 살아 있어서 계속해서 까딱거리면서 움직였다. 이 조치에 만족한 악데스티느는 아티스의 시체를 페시누스에 안치하여 의식과 제의를 통해서 해마다 그를 기렸다....  ---- 아르노비우스, {이교도 반박} 제 4권 7장 / 번역: 최광민

이것이 아티스의 '부활'인가? 아티스는 '부활한 것이 아니라', 그 시체가 썩지 않게 된 것이다. 동일한 내용은 그리스 지리학자인 AD 2세기의 포사니아스의 글에도 등장한다.



AD 1세기 말의 그리스 태생의 로마작가 아리아노스 (AD 86-160)는 당시 로마에서 점점 더 인기를 끌게 된 동방에서 유래한 키벨레-아티스 종교의 핵심축제인 "Hilaria" 묘사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4] ὡς οἰκείους σέβουσιν. τὰ γοῦν ἐπ᾽ αὐτοῖς δρώμενα ἐς τοῦτο ἔτι τὰ μὲν Ἀχαιῶν νόμῳ δρᾶσθαι λέγεται, τὰ δὲ κοινῷ Ἑλλήνων. δρᾶται δὲ ἔστιν ἃ καὶ Φρύγια: καὶ γὰρ ἡ Ῥέα αὐτοῖς ἡ Φρυγία τιμᾶται ἐκ Πεσσινοῦντος ἐλθοῦσα, καὶ τὸ πένθος τὸ ἀμφὶ τῷ Ἄττῃ Φρύγιον ὂν ἐν Ῥώμῃ πενθεῖται, καὶ τὸ λουτρὸν δ᾽ ἡ Ῥέα, ἀφ᾽ οὗ τοῦ πένθους λήγει, Φρυγῶν νόμῳ λοῦται. --- Arrian, Tactica 33.4

... 죽은 아티스를 상징하게 위해 소나무가 들어서면 이틀 동안 놀랄만한 장례축제가 벌어지는데, 이 축제는 키벨레의 신상을 (로마 근교의 강 / 필자 주) 알모에서 씻기는 것으로 마친다....  --- 니코메디아의 아리아노스, {탁티카} 33.4 (ed. A. G. Roos, “The Cannophori and the March Festival of Magna Mater,” by Duncan Fishwick. Transactions and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logical Association, Vol. 97. (1966), pp. 193-202) 에서 중역: 최광민

{AD 354년 달력/연감}에는 아티스 제전과 관련된 6개의 날짜가 등장한다. 소나무 아래서 죽었던 아티스를 기념하기 위해 소나무를 베는 날은 4월 칼렌드 (=첫날)로부터 11일 전인 "ARBOR INTRAT." ( 나무가 들어오는 날, 3월 22일), 이틀 후는 "SANGUEM." (3월 24일), 그리고 다음날은 "HILARIA" (3월 25일) 축제로 표기되어 있다. 로마식의 날짜셈법은 해당일을 포함한다.

  • 3월 22일인 "Arbor intrat"은 아티스가 소나무 아래서 죽은 날을 기념한다. 이 날, 덴드로포레스 (=나무를 지는 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소나무를 베어내고 거기에 아티스의 상을 부착시켜서 애곡하면서 신전으로 옮긴다. 왜? 로마시인 오비디우스가 전하는 버전의 아티스는 죽어서 그 몸이 "소나무로 변했"기 때문이다.
  • 3월 24일은 "Sanguem (=피)" 혹은 "Dies Sanguinis ("피의 날")로 불리는데, 이날 아티스를 위해 애곡하면서 신자들, 특별히 아티스 신관들은 자신의 몸을 채찍질하여 제단과 아티스의 신상을 피투성이가 되게 하는 한편, 일부 신관들은 스스로 거세한다.
  • 3월 25일은 로마달력에서는 춘분날이며 키벨레-아티스 종교에서는 "Hilaria" ("기쁨")축제일이다. 이 날 아티스는 재생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어지는 3월 26일은 휴식일 ("REQVETIO")이며 
  • 마지막으로 3월 27일은 "LAVATIO" (=씻김)으로 티베르강의 지류인 알모에서 키벨레의 돌/석상을 씻는다.



AD 6세기의 비잔틴 작가인 리디아의 요한 (Ἰωάννης Λαυρέντιος ὁ Λυδός, John the Lydian)은 1세기 중반의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가 3월 22일을 아티스 제전의 날로 정했다고 적는데, 앞서 말한 대로, 이 날은 아티스가 소나무 아래서 죽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소나무를 베어내고 그 나무에 아티스 목상을 고정시켜 행진하는 날이다. 이것은 "아티스가 소나무에 달려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소나무 밑에서 죽은 후 소나무가 되었다"는 신화적 모티프를 가질 뿐이다.

On day 11, the kalends of April, a pine tree is carried into the Palatine by the tree-bearers. But the emperor Claudius instituted these these ferias, a man of such justice in judgement that… --- John the Lydian, {De Mensibus} IV. 41

4월 칼렌드 (=첫날)로부터 11일 전, 소나무는 콜리스 팔라티움 (Collis Palatium)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 리디아의 요한, {De Mesibus} 

아티스의 "재생/부활"에 대해 기록한 기독교측 저술가는 AD 350년 Firmicus Maternus가 최초이다. 그 이전에 아티스의 부활에 대해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아티스 연구의 좌장 격인 Vermaseren는 오히려 아티스 종교의 의식과 배경철학이 다른 종교와의 교류 속에서 계속해서 변해갔음을 보여주었다.

  • "The Pergameni took Ankyra and Pessinos which lies under Mount Agdistis, where they say that Attis lies buried." - Pausanias, Guide to Greece 1.4.5
    • 페르가모 사람들은 악디스티스 산 아래에 위치한 아키라와 페시노스를 차지했는데, 거기에 아티스가 묻혔다고 그들은 말한다. -- 포사니아스, {그리스 기행},  / 번역: 최광민
  • "On the way to the lower city [of Patrai, Akhaia] there is a sanctuary of the Mother Dindymene [Kybele], and in it Attis too is worshipped. Of him they have no image to show; that of the Mother is of stone." - Pausanias, Guide to Greece 7.20.3
    • 아카이아의 파트라이의 저지대로 가는 길에 대모신 딘디메네 (~키벨레)에게 바쳐진 사당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아티스도 함께 숭배된다. 아티스의 신상은 전시되어 있지 않으며, 대모신은 돌로 표상되어 묘사되어 있다--- 포사니아스, {그리스 기행} 7.20.3  / 번역: 최광민
  • "The hollow caves of Phrygian Synnas Attis bedewed with the bright drops of his own blood [from which the red-coloured stone was quarried]." - Statius, Silvae 1.5.37
    • 프리기아의 신나스의 동굴은 아티스 본인의 붉은 피가 적셔진 곳이다. [그곳에서 붉은 색이 도는 석재가 채굴된다] --- 스타티우스, {숲} 1.5.37
  • "While Bakkhos was thus despondent [after five years laying siege to the Indian City], came a messenger in hast through the Skythian mountains from divine Rheia, sterile Attis in his trailing robe, whipping up the travelling team of lions. He once had stained with a knife the creative stalk of marriage-consecrating youth, and threw away the burden of the plowshare without love or wedlock, the man’s harvest-offering; so he showered upon his two thighs the bloody generative drops, and made womanish his warm body with the shearing steel. This was the messenger who came driving the car of goddess Kybele, to comfort discouraged Lyaios. Seeing him Dionysos sprang up, thinking perchance he might have brought the allconquering Rheia to the Indian War. Attis checked the wild team, and hung the reins on the handrail, and disclosing the smooth surface of his rosy cheeks, called out a flood of loud words to Bakkhos - ‘Dionysos of the vine, son of Zeus, offspring of Rheia! Answer me: when will you destroy the woollyheaded nation of Indians and come back to the Lydian land? Not yet has Rheia seen your blackskin captives; not yet has she wiped off the sweat from your Mygdonian lions after the war, beside the highland manger, where the rich river of Paktolos runs; but without a sound you roll out the conflict through circuits of everlasting years! Not yet have you brought a herd of eastern lions from India as a token of victory for the breeder of beasts, the mother of the gods! Very well, accept from Hephaistos and your immortal Rheia this armour which the Lemnian anvil made; you will see upon it earth and sea, the sky and the company of stars!’ Before he had finished, Bakkhos called out angrily -‘Hard are the gods and jealous … Hera keeps me back from victory … ‘ Lydian Attis answered these words of Dionysos: ‘If you carry this starry shield of the sky inviolate, my friend, you need not tremble before the wrath of Ares, or the jealousy of Hera, or all the company of the Blessed, while Allmother Rheia is with you; you need fear no army with bended bows, lest they cast their spears and strike Helios or wound Selene! Who could blunt the sword of Orion with a knife, or shoot the Waggoner with earthly arrows? Perhaps you will name the nor strong father of Deriades: but what could Hydaspes do to you, when you can bring in Okeanos? ‘Be of good courage: to the battle again! For my Rheia has prophesied victory for you at last. The war shall not end until the four Seasons complete he sixth year. So much the eye of Zeus and the threads of the unturning Mora have granted to the will of Hera; in the seventh lichtgang which follows, you shall destroy the Indian city.’ With these words he handed the shield to Bromios; then he tasted the feast, and cheered his heart with umixed cups of nomorepain wine. When he had satisfied his appetite at table, once more he touched up the flanks of his lions with the whip, and guided the hillranging car on the road back to Phrygia. He drove along the heights above the Kaukasian valleys, the Assyrian peaks and the dangerous Baktrian mountains, the summits of Libanos and the crests of Tauros, until he passed into the Maionian land. There he entered the divine precinct selfbuilt of Rheia, mother of mighty sons. He freed his ravening lions from the yokestraps, and haltered them at the manger which he filled with ambrosial fodder." - Nonnus, Dionysiaca 25.310

여전히 예수가 아티스의 카피캣으로 여겨지는가?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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