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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흑인 헤라클레스, 흑인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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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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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5-02-24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 최광민] 흑인 헤라클레스, 흑인 소크라테스
순서
- 헤로도토스의 역사기술 관점
- 어떤 헤라클레스인가
- 테베
- 제우스
- 이집트의 헤라클레스
- 헤라클레스/헤뤼사프 (이집트) vs 헤라클레스/멜카르 (페니키아) ?
- 포세이돈
- 흑인 소크라테스
마틴 버널, {블랙 아테나}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 "흑인"문명에 상당히 빚을 지고 있다고 주장한, 코넬대학교 근동사 연구자 마틴 버널의 논란 많은 (유사)역사학 저서인 {블랙 아테나}.
이 책을 읽고 나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해당부분을 읽어보았다.
내 생각에는 헤로도토스가 그리스-이집트 문명에서 병렬적인 신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가를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이 논쟁의 핵심을 계속 비껴가게 될 것 같다.
- + 통합적인 접근 : http://www.isidore-of-seville.com/herodotus/index.html
- + 구텐베르트 프로젝트 : http://www2.cddc.vt.edu/gutenberg/etext00/agypt10.txt
- + Perseus e-library : http://www.perseus.tufts.edu/cgi-bin/ptext?doc=Perseus%3Atext%3A1999.01.0126;layout=;query=toc;loc=1.1.0
버널이 {블랙아테나}에 적은 아래의 3개 명제는 의외로 쉽게 깨어질 수 있다.
- 헤라클레스의 부모인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나가 이집트 태생임
- (의문) 물론 둘은 테베 출신이다. 그러나 어느 테베인가? 그리스의 도시국가 테베? 혹은 上이집트의 군사/정치/종교도시 테베?
- 이집트인들은 포세이돈과 디오스쿠리의 이름을 부인함. 만약 이집트인들이 그리스인들로부터 어느 신의 이름을 가져왔다면 적어도 위의 두 신 이름은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임
- (의문) 만약 두 신화체계가 원래 다른 체계에서 기원했으나 습합된 것이라면, 이집트인들에게 포세이돈과 디오스쿠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기억에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아울러 그리스의 신들이 이집트에서 수입된 것이라면, 왜 그들의 이름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일치하지 않는가?
- 이집트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의 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려 만 7천년이나 지났다고 한다.
- (의문) 이집트인은 "헤라클레스"란 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헤로도토스가 염두에 두는 그 신은 우사하게 들리는 "헤뤼사프"가 아닌가?
# 헤로도토스의 역사기술 관점
헤로도토스는 484 BC - c. 425 BC에 살았던 사람이고 이 무렵은 그리스인들이 활발히 지중해 식민사업에 뛰어들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내 생각에....헤로도토스의 글은 반드시 '절충주의(eclectism)' 과 '병렬주의(parallelism)' 신화관 모두의 문맥으로 비교해가면서 읽어야 안전하고, 또 정확한 의미를 추출해 낼 수 있다. 헤로도토스는 다른 그리스 역사가 중에서도 특히 현지답사와 인터뷰를 통해 사료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지중해 일대를 여행하면서 무엇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바로 '신격들의 유사성에서 오는 신들의 정체성 혼란'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지적을 먼저 하고자 한다. 헤로도토스가 그의 책에서 하고 있는 일은 '역사를 쓰고 있는 것' 뿐 아니라 '신들을 연결하고 있기'도 하다는 점이다.
# 어떤 헤라클레스인가?
헤로도토스는 두 헤라클레스를 말하고 있지만, 이집트인들이 자기들의 헤라클레스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 지는 적지 않는다. 먼저 분명히 할 점은 그가 여기서 말하는 '이집트'는 테베에 중심을 둔 '나일강 상류 이집트'란 점이다. '나일강 하류 이집트'가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럼 헤로도토스는 도대체 이집트의 어떤 신을 그리스인들의 '헤라클레스'와 같다고 하는 것인가? 헤로도토스는 이 이집트의 '헤라클레스'가 수 천년 전부터 이집트에 존재한 신이라고 현지인의 말을 빌어 말하고 있다. 이 신은 무엇인가? 헤로도토스의 책에는 등장하고 있지 않지만, 헤로도토스가 생각하고 있는 이집트의 그 신은 '헤뤼사프(Heryshaf)'일 것이다. 이 신의 그리스어화 된 이름은 '하르사페스(Harsaphes)' 였다. (이것은 그리스화한 이집트에서 그리스계 주민들의 해석이기도 했다.)
이 신은 숫양으로 상징되었던 신이고, 그 중심지?이집트의 헤라클레오폴리스(이건 후대의 그리스어화된 지명이다. 이집트 원명은 헤넨-네수트)였다. 이 신은 이집트 신화에서 종종 '라'나 '오시리스'와 동일시 되었고, 이 이집트어는 '호수 위에 있는 자'란 의미다. 이 헤뤼사프는 생식을 관장하는 신이었고, 수양의 머리를 가진 인간 모양의 신, 혹은 숫양으로 묘사되었다. 이 문맥을 알아야만 헤로도토스가 아래서 이집트 테베인의 관습을 묘사한 것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을 읽어본다.
...Now all who have a temple set up to the Theban Zeus or who are of the district of Thebes, these, I say, all sacrifice goats and abstain from sheep: for not all the Egyptians equally reverence the same gods, except only Isis and Osiris (who they say is Dionysos), these they all reverence alike: but they who have a temple of Mendes or belong to the Mendesian district, these abstain from goats and sacrifice sheep. Now the men of Thebes and those who after their example abstain from sheep, say that this custom was established among them for the cause which follows....
자, 그럼 헤로도토스를 따라 이번에는 현재 레바논에 있는 고대 페니키아인의 무역도시 투르(Tyre/구약성서의 '두로')로 가본다. 투르와 시돈은 후대에 블레셋인이라고 불리게 될 페니키아인들의 주요 상업거점이었다. 그는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신전을 가보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페니키아인들은 '헤라클레스'나 '헤뤼사프'라고 불린 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아마도 헤로도토스가 본 그 신전은 그리스인의 '헤라클레스'의 신전도, 이집트인의 '헤뤼사프'의 신전도 아닌 다른 이름의 신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두개의 신전을 방문한 후에, 둘 다 '헤라클레스의 신전'이라고 말했다. 그럼 도대체 그가 본 신전은 누구의, 혹은 어떤 이름을 가진 신의 신전인가?
다음을 읽어본다.
...I moreover, desiring to know something certain of these matters so far as might be, made a voyage also to Tyre of Phenicia, hearing that in that place there was a holy temple of Heracles; and I saw that it was richly furnished with many votive offerings besides, and especially there were in it two pillars, the one of pure gold and the other of an emerald stone of such size as to shine by night: and having come to speech with the priests of the god, I asked them how long a time it was since their temple had been set up: and these also I found to be at variance with the Hellenes, for they said that at the same time when Tyre was founded, the temple of the god also had been set up, and that it was a period of two thousand three hundred years since their people began to dwell at Tyre.'
페니키아인들이 각별한 신앙을 바쳤던 신은 신들의 수장이자 숫양으로 묘사되던 바알 하몬(Ba'al Khammon)과 그 바알의 아들인 멜카르(Melqar) 였다. 그럼 이 신전은 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가 두번째로 방문한 것으로 되어있는 '타소스 섬의 신전'이란 고고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바로 이 멜카르의 신전이기 때문이다.
다음을 읽어본다.
"...I saw also at Tyre another temple of Heracles, with the surname Thasian; and I came to Thasos also and there I found a temple of Heracles set up by the Phenicians, who had sailed out to seek for Europa and had colonised Thasos; and these things happened full five generations of men before Heracles the son of Amphitryon was born in Hellas. So then my inquiries show clearly that Heracles is an ancient god, and those of the Hellenes seem to me to act most rightly who have two temples of Heracles set up, and who sacrifice to the one as an immortal god and with the title Olympian, and make offerings of the dead to the other as a hero. Moreover, besides many other stories which the Hellenes tell without due consideration, this tale is especially foolish which they tell about Heracles, namely that when he came to Egypt, the Egyptians put on him wreaths and led him forth in procession to sacrifice him to Zeus; and he for some time kept quiet, but when they were beginning the sacrifice of him at the altar, he betook himself to prowess and slew them all....'
그리스인들이 지브롤터 해협의 두 기둥을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부르기 전에, 페니키아인들은 그 기둥을 '멜카르의 기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페니키아의 멜카르와 그리스의 헤라클레스 사이의 연관성은 헤로도토스 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역시 인정했다.
그런데 그럼 숫양으로 묘사되는 이집트의 헤뤼사프가 어떻게 또 투르/티루스의 멜카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페니키아인들이 숫양의 모습을 가진 것으로 묘사한 신은 멜카르가 아니라 멜카르의 아버지인 바알-하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알-하몬의 '하몬'은 이집트의 '아문'과 관계있다. 근데 이 아문은 숫양의 모습을 가지지는 않지만 두개의 나선형 뿔을 가지고는 있는 것으로 종종 불려졌다. 헤로도토스는 테베인의 '제우스' 에 대해서 논하면서, 테베인들은 그 신을 '아문'이라 부른다고 적었다. 혼란스럽지 않은가?
# 테베
이집트의 '헤뤼사프'는 부모가 없다. 그는 고대에 물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인의 '헤라클레스'는 그 생부가 '제우스'긴 하지만,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네의 아들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이 두 사람이 이집트 출신이라고 적은 헤로도토스의 증거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는 단정적으로 그들이 이집트 '출신'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름만 본다면,
- Amphitryon은 그리스어로 'harassing either side'
- Alcmene는 그리스어 뜻은 'might of the moon'
둘 다 그리스어다. 헤라클레스 역시 'glory of Hera'란 그리스어 뜻이 있다. 그리고 암피트리온은 테베의 장군이었고, 그리스 남단 펠로폰네소스 반도 근방 출신이라고 그리스 신화는 말한다. 알크메네 역시 미케네 문명권이던 남부 그리스 출신이라도 되어있다.
잠깐 여기서 혼동해서는 않된다.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네는 '그리스' 테베 출신이지, '이집트' 테베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헤로도토스는 (혹은 헤로도토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준 이집트 테베의 이집트인은) 이 두 다른 테베를 혼동한 것이 아닐까?
# 제우스
헤로도토스의 논리적 추론을 따르게 되면, 이집트의 아문과 페니키아의 바알-하몬은 그리스의 제우스다. 그리고 나서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의 신화를 빌어 그리스의 헤라클레스가 후대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의 추론이다. 개념과 이름은 유사할 수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이 세 신이 과연 정말로 수출/수입된 관계인지는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세 신이 사실 서로 다른 존재였지만 습합된 것이라면, 이 세 제우스 (그리스의 제우스, 이집트/테베의 아문, 카나안의 바알-하몬 )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제우스-헤라클레스의 관계도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가령 헤로도토스가 적은 아래 글을 보자.
...Heracles (they say) had an earnest desire to see Zeus, and Zeus did not desire to be seen of him; and at last when Heracles was urgent in entreaty Zeus contrived this device, that is to say, he flayed a ram and held in front of him the head of the ram which he had cut off, and he put on over him the fleece and then showed himself to him....
이 이야기는 사실상 헤라클레스-제우스 간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이집트 헤뤼사프와 아문 간의 이야기다. 다음을 읽어본다.
...Now to me it seems that such a story proves the Greeks to be utterly igorant of the character and customs of the people. The Egyptians do not think it allowable even to sacrifice cattle, excepting sheep, and the male kine and calves, provided they be pure, and also geese. How, then, can it be believed that they would sacrifice men? And again, how would it have been possible for Heracles alone, and, as they confess, a mere mortal, to destroy so many thousands? In saying this much concerning these matters, may I incur no displeasure either of god or hero!...
위의 이야기는 그리스인들의 헤라클레스 신화에는 있지만, 이집트 헤뤼사프 신화에는 없는 이야기인 듯하다. 그런데 그것을 근거로 그리스인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헤라클레스와 헤뤼사프가 다른 신격이었지만 나중에 습합된 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 헤라클레스와 이집트
헤라클레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이집트에 가게 되는데, 그때 이집트의 왕은 Busiris 2세였고, 낯선 침입자를 죽이고는 했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그의 곤봉으로 그들을 때려죽였다. 이것은 유리스테오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명령한 12과제 가운데 11번째 일어난 일이다 (the Apples of the Hesperides) 피타고라 스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시로스의 페레키데스(540 BC경)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집트 왕인 부시리스는 이어진 9년간의 가뭄에 시달리던 중, 키프로스에서 건너온 현자 프라시오스가 외국인을 한 해에 한 명씩 제우스에게 바칠때까지는 가뭄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신탁을 전했다는 고사를 전한다. 나름대로 그도 고민이 있는 사정이었던 듯. 그 희생의 제 1호는 그 신탁을 전해준 프라시오스였다. 다음은 당시에 일어난 사건을 정리한 것.
BUSIRIS, in a Greek legend preserved in a fragment of Pherecydes, an Egyptian king, son of Poseidon and Lyssianassa. After Egypt has been afflicted for nine years with famine, Phrasius, a seer of Cyprus, arrived in Egypt and announced that the cessation of the famine would not take place until a foreigner was yearly sacrificed to Zeus or Jupiter. Busiris commenced by sacrificing the prophet, and continued the custom by offering a foreigner on the altar of the god. It is here that Busiris enters into the circle of the myths and parerga of Heracles, who had arrived in Egypt from Libya, and was seized and bound ready to be killed and offered at the altar of Zeus in Memphis. Heracles burst the bonds which bound him, and, seizing his club, slew Busiris with his son Amphidamas and his herald Chalbes.
This exploit is often represented on vase paintings from the 6th century B.C. and onwards, the Egyptian monarch and his companions being represented as negroes, and the legend is referred to by Herodotus and later writers. Although some of the Greek writers made Busiris an Egyptian king and a successor of Menes, about the sixtieth of the series, and the builder of Thebes, those better informed by the Egyptians rejected him altogether. Various esoterical explanations were given of the myth, and the name not found as a king was recognized as that of the tomb of Osiris. Busiris is here probably an earlier and less accurate Graecism than Osiris for the name of the Egyptian god Usiri, like Bubastis, Buto, for the goddesses Ubasti and Uto. Busiris, Bubastis, Buto, more strictly represent Pusiri, Pubasti, Puto, cities sacred to these divinities. All three were situated in the Delta, and would be amongst the first known. to the Greeks. All shrines of Osiris were called P-usiri , but the principal city of the name was in the centre of the Delta, capital of the 9th (Busirite) nome of Lower Egypt; another one near Memphis (now Abusir) may have helped the formation of the legend in. that quarter. The name Busiris in this legend may have been caught up merely at random by the early Greeks, or they may have vaguely connected their legend with the Egyptian myth of the slaying of Osiris (as king of Egypt) by his mighty brother Seth, who was in certain aspects a patron of foreigners. Phrasius, Chalbes and Epaphus (for the grandfather of Busiris) are all explicable as Graecized Egyptian names, but other names in the legend are purely Greek. The sacrifice of foreign prisoners before a god, a regular scene on temple walls, is perhaps only symbolical, at any rate for the later days of Egyptian history, but foreign intruders must often have suffered rude treatment at the hands of the Egyptians, in. spite of the generally mild character of the latter.
그럼 헤로도토스가 이 사건을 어떻게 적고 있는가 살펴보자.
"...Heracles then stopped in Egypt, where King Busiris decided to make Heracles the yearly sacrifice. Heracles burst out of his chains and finally made his way to the Garden of the Hesperides. Heracles tricked Atlas into retrieving some of the golden apples for him by offering to hold the heavens for a little while. Upon his return with the apples, Atlas decided not to take the heavens back from Heracles. Heracles tricked him again by agreeing to take his place if he would only take the sky again for a few minutes so Heracles could rearrange his cloak as padding on his shoulders. Atlas agreed and Heracles left him..."
# 헤라클레스/헤뤼사프 (이집트) vs 헤라클레스/멜카르 (페니키아) ?
+ http://www.touregypt.net/featurestories/heryshef.htm
+ http://phoenicia.org/pagan.html
+ http://en.wikipedia.org/wiki/Melqart
그리스인들이 헤뤼사프와 헤라클레스를 일치시킨 것은 확실하다. 심지어 원래 헤뤼사프가 숭배되던 중부 이집트의 한 도시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 헤라클레오폴리스라고 개명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시리아와 페니키아 일대에서 숭배되던 멜카르와 헤라클레스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그리스의 몇몇 작가의 글에 기록되어 남아있다.
"헤라클레스"와 "멜카르"는 발음에서 그다지 유사한 점이 없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리스인이 이 두 신을 동일시하게 된 동기는 어쩌면 그들의 이름을 읽는 방식에 그 단서가 있을 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없이 물끄러미 글자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떠오른 생각) "좌에서 우"로 쓴 "그리스어" 헤라클레스(아래)와 "우에서 좌"로 쓴 "페니키아어" 멜카르 (위)의 글자모습이 유사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시길. 어쩌면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인들의 "멜카르"를 좌에서 우가 아닌 그리스 식대로 우에서 좌로 읽어 (게다가 약간의 오독을 한 후) "헤라클레스"를 추출해 내었을 가능성도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페니키아 문자로 "헤라클레스"와 :멜카르" 사이에는 딱 한 글자의 차이만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래 페니키아 알파벳표를 참고해서 명각을 읽어보자.
+ http://en.wikipedia.org/wiki/Herakles
+ http://homepage.mac.com/cparada/GML/Heracles1.html
위 링크를 보면 마지막 부분에 실제로 헤라클레스라고 불리는 그리스 신화 속 7명의 인물을 언급한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헤라클레스는 "헤라클레스-1"이라고 명명되고 있으며, 페니키아 티로스/투르/두로에서 신앙되던 헤라클레스는 헤라클레스-6"에 해당한다. 이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와 타이탄의 딸 아스테리아-1과의 아들로 여겨졌다고 하며 , 님프인 카르타고 (이것은 페니키아의 식민지명이기도 하다)의 아버지였다. 즉, 이 헤라클레스는 우리가 통상적인 그리스 신화에서 만나는 그 헤라클레스가 아니다. 즉, 페니키아인들이 멜카르라고 부르던 신을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레스-6이라고 여긴 듯. 그럴 경우, 아스테리아는 아스타르테(카나안)/아쉬타롯(헤브루)/이슈타르(메소포타미아)에 상응하며, 그러므로 실제로 그리스인들이 동일인으로 생각하던 헤라클레스는 실제로는 여러 명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집트의 헤뤼사프-헤라클레스와 페니키아의 멜카르-헤라클레스는 서로 다른 인물에 대한 기억에서 나온신화일 가능성이 높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헤라클레스를 매개로 헤뤼사프와 멜카르를 직접 연결하기 힘든 (헤뤼사프-헤라클레스-멜카르처럼) 이유일 듯 싶다. 즉, 두 헤라클레스가 원래부터 다르기 때문.
이종문명에 등장하는 신들을 동일시하는 과정은 보통 두가지에 의해 성립한다.
- 1. 어원적/음운학적 동등성
- 2. 속성상 동등성
헤로도토스의 기술이 무엇을 더 강조하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속성을 연결하는 방식은 신화학적으로는 통용될 수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적 증거와 맞닿아 있지않으면 가상의 사실을 만들어 낼 수있다. 이 위험은 어원을 함부로 추정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헤로도토스가 이 두 관점 사이에서 약간 우왕좌왕 한다는 느낌이다. 포세이돈이란 신이 리비아 계통에서 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면서, 막상 헤라클레스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름이 비슷해 보이지 않는 Heryshaf와 연결시키기 때문. 만약 헤로도토스가 염두에 둔 그 이집트의 신이 Heryshaf가 아닌 Shu라면 더 이상하게 들리는데, 이번에는 그가 어원적 동등성을 버리고 속성상 동등성을 취하려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근데 속성상 얼마나 동등한지도 잘 모르겠음.)
자료를 검색해 보면, 헤뤼사프-헤라클레스의 연관을 설명하는 것이 슈-헤라클레스를 연결하는 것보다 정설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http://pages.prodigy.net/saraswati/webdoc3.htm
이 자료는 {Black Athena}와 그 책이 인용하는 여러 자료들에서 추출한 것이므로, 중립적인 자료라고 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헤뤼사프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 이집트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에 의해 헤라클레스와 동일시되었다는 언급을 찾을수 없다는 것은 이 자료의 편향성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이자료는 주로 속성을 연결하는 방법을 쓴다.
그런데 이런 식의 분석은 약간의 독소조항을가지고 있다. 가령, 위의 인용문을 보면 이집트판 헤라클레스는 콘슈, 헤루, 하로포그라테스, 흐눔(이것이헤뤼사프?), 슈, 곰.....등 자연력의상징으로 표현되었다고 하는데, 다시말하면, 헤라클레스는 그 모든 것을 원형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건 뭐랄까... 많은 것을 설명하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나 다를바 없다.
# 포세이돈
포세이돈이 리비아에서 "그 이름으로" 신앙되던 신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원전13-14세기에 만들어진것으로 보이는 미케네문명의 유물 LinearB 토판에 포세이돈과 제우스가 이미 PO-SE-DA-WO-NE과DI-U-JA라는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할 것 같다.
# 흑인 소크라테스?
천하의 추남자였다고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외모는 크세노폰의 {향연} 속에 등장한다.
제 5장은 좀 유치하면서도 재미있는 풍자로 되어 있는데, 이 장의 내용은 소크라테스와 크리토불로스 두 양반이 서로 누가 더 잘 생겼니 싸움하는 재밌는 대목이다.
Crit. Well, let that pass. To come to our two noses, which is the more handsome, yours or mine?
Soc. Mine, I imagine, if, that is, the gods presented us with noses for the sake of smelling. Your nostrils point to earth; but mine are spread out wide and flat, as if to welcome scents from every quarter.
Crit. But consider, a snubness of the nose, how is that more beautiful than straightness?[7]
[7] Or, 'your straight nose.' Cf. Plat. 'Theaet.' 209 C: Soc. 'Or, if I had further known you not only as having nose and eyes, but as having a snub nose and prominent eyes, should I have any more notion of you than myself and others who resemble me?' Cf. also Aristot. 'Pol.' v. 9, 7: 'A nose which varies from the ideal of straightness to a hook or snub may still be a good shape and agreeable to the eye; but if the excess be very great, all symmetry is lost, and the nose at last ceases to be a nose at all on account of some excess in one direction or defect in the other; and this is true of every other part of the human body. The same law of proportion holds in states.'--Jowett.
Soc. For this good reason, that a snub nose does not discharge the office of a barrier;[8] it allows the orbs of sight free range of vision: whilst your towering nose looks like an insulting wall of partition to shut off the two eyes.[9]
[8] Or, 'the humble snub is not a screen or barricade.'
[9] Cf. 'Love's Labour Lost,' v. 2. 568: Boyet. 'Your nose says no, you are not, for it stands too right'; also 'The Song of Solomon,' vii. 4: 'Thy nose is the tower of Lebanon, which looketh toward Damascus.'
아마도 버널의{흑인아테나}는 위에 인용한 6절 무렵에서, 소크라테스의 그 펑퍼짐하고 납작한코 - 소크라테스가 매우 자랑스럽게 아름답다고 으시대고있는 - 에 착안해서 소크라테스를 흑인으로 추정한 듯하다. 그러나 5장 전체를 읽는다면, 그저 흑인으로 보기에는 의외의 모습도 나타난다.
- 소크라테스는 남들은 앞만 볼 수 있지만, 자기 눈은 툭 튀어나와 있어서 옆도 볼 수 있다고 으시댑다. 백인과 비교하더라도 흑인의 눈이 과연 이 정도일까?
- 소크라테스는 남들 콧구멍은 아래로 뚫려있지만, 자기 코는 넙적해서 시야도 가리지 않고, 또 콧구멍도 넓고 평평하게 뚫려있어서 사방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주목. 전형적인 흑인의 코는 높지 않고 콧구멍이 다소 옆쪽으로 나와있지만, 크세노폰의 진술에 등장하는 이 코는 그냥 납작한 코라기 보다는 들창코(snubness) 형태로 납작하다고 봐야할 듯 하다.
- 그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에서는 입술을 말하고 있는데,소크라테스는 확실히 큰 입에 두꺼운 입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어떤 님프들은 자기같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부분은 다소 흑인을 연상시키기는 한다. 각설하고, 소크라테스가 흑인인지의 논쟁을 접어두고라도, 소크라테스는 내가 생각해 오던 것보다도 더 상당한 몰골이었을 가능성이 농후. (거의 괴물 수준...)
하지만 역시 아테네 사람들은 미적 감각은 있었던 모양이어서 (혹은 반 흑인 정서?), 대화 후 두 꽃미남의 미모를 두고 시민의 표결이 붙여지는데 넘겨지는데, 모든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 아닌 크리토불로스가 잘 생겼다는데에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표를 던져주었다는 사실.
# 정리
우리는 지금 교역이 활발했던 시기 지중해의 종교간 습합에 대해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 종교는 다른 기원을 가지다가 유사하게 습합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집트와 카나안의 많은 신화에서 그런 것을 발견한다. 역할의 습합이 있기도 하고, 이름이 상호교환되기도 한다. 한 신의 성격이 나중에 다르게 변형되기도 한다. 따라서 한 신화체계가 다른 신화체계로 이전되었다고 쉽게 말하는 것보다는 일단 그 신화체계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실제로 존재했었는가, 변형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자, 그리스의 헤라클레스에 해당할 헤뤼사프는 이집트에서는 라나 오시리스와 등치가 된 적이 있는데, 근데 또 헤로도토스는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를 연결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기술은, 뭐랄까, 자기의 문명보다 더 고색창연한 문명을 만났을때 느끼는 압도감에 의해 많이 채색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헤로도토스가 일단 그리스인의 헤라클레스가 이집트의 헤뤼사프나 페니키아의 멜카르라고 인정하고 시작한 초기가정부터가 어긋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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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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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흑인 헤라클레스, 흑인 소크라테스
순서
- 헤로도토스의 역사기술 관점
- 어떤 헤라클레스인가
- 테베
- 제우스
- 이집트의 헤라클레스
- 헤라클레스/헤뤼사프 (이집트) vs 헤라클레스/멜카르 (페니키아) ?
- 포세이돈
- 흑인 소크라테스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 "흑인"문명에 상당히 빚을 지고 있다고 주장한, 코넬대학교 근동사 연구자 마틴 버널의 논란 많은 (유사)역사학 저서인 {블랙 아테나}.
이 책을 읽고 나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해당부분을 읽어보았다.
- + 통합적인 접근 : http://www.isidore-of-seville.com/herodotus/index.html
- + 구텐베르트 프로젝트 : http://www2.cddc.vt.edu/gutenberg/etext00/agypt10.txt
- + Perseus e-library : http://www.perseus.tufts.edu/cgi-bin/ptext?doc=Perseus%3Atext%3A1999.01.0126;layout=;query=toc;loc=1.1.0
버널이 {블랙아테나}에 적은 아래의 3개 명제는 의외로 쉽게 깨어질 수 있다.
- 헤라클레스의 부모인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나가 이집트 태생임
- (의문) 물론 둘은 테베 출신이다. 그러나 어느 테베인가? 그리스의 도시국가 테베? 혹은 上이집트의 군사/정치/종교도시 테베?
- 이집트인들은 포세이돈과 디오스쿠리의 이름을 부인함. 만약 이집트인들이 그리스인들로부터 어느 신의 이름을 가져왔다면 적어도 위의 두 신 이름은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임
- (의문) 만약 두 신화체계가 원래 다른 체계에서 기원했으나 습합된 것이라면, 이집트인들에게 포세이돈과 디오스쿠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기억에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아울러 그리스의 신들이 이집트에서 수입된 것이라면, 왜 그들의 이름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일치하지 않는가?
- 이집트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의 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려 만 7천년이나 지났다고 한다.
- (의문) 이집트인은 "헤라클레스"란 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헤로도토스가 염두에 두는 그 신은 우사하게 들리는 "헤뤼사프"가 아닌가?
# 헤로도토스의 역사기술 관점
헤로도토스는 484 BC - c. 425 BC에 살았던 사람이고 이 무렵은 그리스인들이 활발히 지중해 식민사업에 뛰어들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내 생각에....헤로도토스의 글은 반드시 '절충주의(eclectism)' 과 '병렬주의(parallelism)' 신화관 모두의 문맥으로 비교해가면서 읽어야 안전하고, 또 정확한 의미를 추출해 낼 수 있다. 헤로도토스는 다른 그리스 역사가 중에서도 특히 현지답사와 인터뷰를 통해 사료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지중해 일대를 여행하면서 무엇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바로 '신격들의 유사성에서 오는 신들의 정체성 혼란'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지적을 먼저 하고자 한다. 헤로도토스가 그의 책에서 하고 있는 일은 '역사를 쓰고 있는 것' 뿐 아니라 '신들을 연결하고 있기'도 하다는 점이다.
# 어떤 헤라클레스인가?
헤로도토스는 두 헤라클레스를 말하고 있지만, 이집트인들이 자기들의 헤라클레스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 지는 적지 않는다. 먼저 분명히 할 점은 그가 여기서 말하는 '이집트'는 테베에 중심을 둔 '나일강 상류 이집트'란 점이다. '나일강 하류 이집트'가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럼 헤로도토스는 도대체 이집트의 어떤 신을 그리스인들의 '헤라클레스'와 같다고 하는 것인가? 헤로도토스는 이 이집트의 '헤라클레스'가 수 천년 전부터 이집트에 존재한 신이라고 현지인의 말을 빌어 말하고 있다. 이 신은 무엇인가? 헤로도토스의 책에는 등장하고 있지 않지만, 헤로도토스가 생각하고 있는 이집트의 그 신은 '헤뤼사프(Heryshaf)'일 것이다. 이 신의 그리스어화 된 이름은 '하르사페스(Harsaphes)' 였다. (이것은 그리스화한 이집트에서 그리스계 주민들의 해석이기도 했다.)
이 신은 숫양으로 상징되었던 신이고, 그 중심지?이집트의 헤라클레오폴리스(이건 후대의 그리스어화된 지명이다. 이집트 원명은 헤넨-네수트)였다. 이 신은 이집트 신화에서 종종 '라'나 '오시리스'와 동일시 되었고, 이 이집트어는 '호수 위에 있는 자'란 의미다. 이 헤뤼사프는 생식을 관장하는 신이었고, 수양의 머리를 가진 인간 모양의 신, 혹은 숫양으로 묘사되었다. 이 문맥을 알아야만 헤로도토스가 아래서 이집트 테베인의 관습을 묘사한 것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을 읽어본다.
...Now all who have a temple set up to the Theban Zeus or who are of the district of Thebes, these, I say, all sacrifice goats and abstain from sheep: for not all the Egyptians equally reverence the same gods, except only Isis and Osiris (who they say is Dionysos), these they all reverence alike: but they who have a temple of Mendes or belong to the Mendesian district, these abstain from goats and sacrifice sheep. Now the men of Thebes and those who after their example abstain from sheep, say that this custom was established among them for the cause which follows....
자, 그럼 헤로도토스를 따라 이번에는 현재 레바논에 있는 고대 페니키아인의 무역도시 투르(Tyre/구약성서의 '두로')로 가본다. 투르와 시돈은 후대에 블레셋인이라고 불리게 될 페니키아인들의 주요 상업거점이었다. 그는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신전을 가보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페니키아인들은 '헤라클레스'나 '헤뤼사프'라고 불린 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아마도 헤로도토스가 본 그 신전은 그리스인의 '헤라클레스'의 신전도, 이집트인의 '헤뤼사프'의 신전도 아닌 다른 이름의 신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두개의 신전을 방문한 후에, 둘 다 '헤라클레스의 신전'이라고 말했다. 그럼 도대체 그가 본 신전은 누구의, 혹은 어떤 이름을 가진 신의 신전인가?
다음을 읽어본다.
...I moreover, desiring to know something certain of these matters so far as might be, made a voyage also to Tyre of Phenicia, hearing that in that place there was a holy temple of Heracles; and I saw that it was richly furnished with many votive offerings besides, and especially there were in it two pillars, the one of pure gold and the other of an emerald stone of such size as to shine by night: and having come to speech with the priests of the god, I asked them how long a time it was since their temple had been set up: and these also I found to be at variance with the Hellenes, for they said that at the same time when Tyre was founded, the temple of the god also had been set up, and that it was a period of two thousand three hundred years since their people began to dwell at Tyre.'
페니키아인들이 각별한 신앙을 바쳤던 신은 신들의 수장이자 숫양으로 묘사되던 바알 하몬(Ba'al Khammon)과 그 바알의 아들인 멜카르(Melqar) 였다. 그럼 이 신전은 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가 두번째로 방문한 것으로 되어있는 '타소스 섬의 신전'이란 고고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바로 이 멜카르의 신전이기 때문이다.
다음을 읽어본다.
"...I saw also at Tyre another temple of Heracles, with the surname Thasian; and I came to Thasos also and there I found a temple of Heracles set up by the Phenicians, who had sailed out to seek for Europa and had colonised Thasos; and these things happened full five generations of men before Heracles the son of Amphitryon was born in Hellas. So then my inquiries show clearly that Heracles is an ancient god, and those of the Hellenes seem to me to act most rightly who have two temples of Heracles set up, and who sacrifice to the one as an immortal god and with the title Olympian, and make offerings of the dead to the other as a hero. Moreover, besides many other stories which the Hellenes tell without due consideration, this tale is especially foolish which they tell about Heracles, namely that when he came to Egypt, the Egyptians put on him wreaths and led him forth in procession to sacrifice him to Zeus; and he for some time kept quiet, but when they were beginning the sacrifice of him at the altar, he betook himself to prowess and slew them all....'
그리스인들이 지브롤터 해협의 두 기둥을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부르기 전에, 페니키아인들은 그 기둥을 '멜카르의 기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페니키아의 멜카르와 그리스의 헤라클레스 사이의 연관성은 헤로도토스 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역시 인정했다.
그런데 그럼 숫양으로 묘사되는 이집트의 헤뤼사프가 어떻게 또 투르/티루스의 멜카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페니키아인들이 숫양의 모습을 가진 것으로 묘사한 신은 멜카르가 아니라 멜카르의 아버지인 바알-하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알-하몬의 '하몬'은 이집트의 '아문'과 관계있다. 근데 이 아문은 숫양의 모습을 가지지는 않지만 두개의 나선형 뿔을 가지고는 있는 것으로 종종 불려졌다. 헤로도토스는 테베인의 '제우스' 에 대해서 논하면서, 테베인들은 그 신을 '아문'이라 부른다고 적었다. 혼란스럽지 않은가?
# 테베
이집트의 '헤뤼사프'는 부모가 없다. 그는 고대에 물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인의 '헤라클레스'는 그 생부가 '제우스'긴 하지만,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네의 아들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이 두 사람이 이집트 출신이라고 적은 헤로도토스의 증거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는 단정적으로 그들이 이집트 '출신'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름만 본다면,
- Amphitryon은 그리스어로 'harassing either side'
- Alcmene는 그리스어 뜻은 'might of the moon'
둘 다 그리스어다. 헤라클레스 역시 'glory of Hera'란 그리스어 뜻이 있다. 그리고 암피트리온은 테베의 장군이었고, 그리스 남단 펠로폰네소스 반도 근방 출신이라고 그리스 신화는 말한다. 알크메네 역시 미케네 문명권이던 남부 그리스 출신이라도 되어있다.
잠깐 여기서 혼동해서는 않된다. 암피트리온과 알크메네는 '그리스' 테베 출신이지, '이집트' 테베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헤로도토스는 (혹은 헤로도토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준 이집트 테베의 이집트인은) 이 두 다른 테베를 혼동한 것이 아닐까?
# 제우스
헤로도토스의 논리적 추론을 따르게 되면, 이집트의 아문과 페니키아의 바알-하몬은 그리스의 제우스다. 그리고 나서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의 신화를 빌어 그리스의 헤라클레스가 후대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의 추론이다. 개념과 이름은 유사할 수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이 세 신이 과연 정말로 수출/수입된 관계인지는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세 신이 사실 서로 다른 존재였지만 습합된 것이라면, 이 세 제우스 (그리스의 제우스, 이집트/테베의 아문, 카나안의 바알-하몬 )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제우스-헤라클레스의 관계도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가령 헤로도토스가 적은 아래 글을 보자.
...Heracles (they say) had an earnest desire to see Zeus, and Zeus did not desire to be seen of him; and at last when Heracles was urgent in entreaty Zeus contrived this device, that is to say, he flayed a ram and held in front of him the head of the ram which he had cut off, and he put on over him the fleece and then showed himself to him....
이 이야기는 사실상 헤라클레스-제우스 간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이집트 헤뤼사프와 아문 간의 이야기다. 다음을 읽어본다.
...Now to me it seems that such a story proves the Greeks to be utterly igorant of the character and customs of the people. The Egyptians do not think it allowable even to sacrifice cattle, excepting sheep, and the male kine and calves, provided they be pure, and also geese. How, then, can it be believed that they would sacrifice men? And again, how would it have been possible for Heracles alone, and, as they confess, a mere mortal, to destroy so many thousands? In saying this much concerning these matters, may I incur no displeasure either of god or hero!...
위의 이야기는 그리스인들의 헤라클레스 신화에는 있지만, 이집트 헤뤼사프 신화에는 없는 이야기인 듯하다. 그런데 그것을 근거로 그리스인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헤라클레스와 헤뤼사프가 다른 신격이었지만 나중에 습합된 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 헤라클레스와 이집트
BUSIRIS, in a Greek legend preserved in a fragment of Pherecydes, an Egyptian king, son of Poseidon and Lyssianassa. After Egypt has been afflicted for nine years with famine, Phrasius, a seer of Cyprus, arrived in Egypt and announced that the cessation of the famine would not take place until a foreigner was yearly sacrificed to Zeus or Jupiter. Busiris commenced by sacrificing the prophet, and continued the custom by offering a foreigner on the altar of the god. It is here that Busiris enters into the circle of the myths and parerga of Heracles, who had arrived in Egypt from Libya, and was seized and bound ready to be killed and offered at the altar of Zeus in Memphis. Heracles burst the bonds which bound him, and, seizing his club, slew Busiris with his son Amphidamas and his herald Chalbes.
This exploit is often represented on vase paintings from the 6th century B.C. and onwards, the Egyptian monarch and his companions being represented as negroes, and the legend is referred to by Herodotus and later writers. Although some of the Greek writers made Busiris an Egyptian king and a successor of Menes, about the sixtieth of the series, and the builder of Thebes, those better informed by the Egyptians rejected him altogether. Various esoterical explanations were given of the myth, and the name not found as a king was recognized as that of the tomb of Osiris. Busiris is here probably an earlier and less accurate Graecism than Osiris for the name of the Egyptian god Usiri, like Bubastis, Buto, for the goddesses Ubasti and Uto. Busiris, Bubastis, Buto, more strictly represent Pusiri, Pubasti, Puto, cities sacred to these divinities. All three were situated in the Delta, and would be amongst the first known. to the Greeks. All shrines of Osiris were called P-usiri , but the principal city of the name was in the centre of the Delta, capital of the 9th (Busirite) nome of Lower Egypt; another one near Memphis (now Abusir) may have helped the formation of the legend in. that quarter. The name Busiris in this legend may have been caught up merely at random by the early Greeks, or they may have vaguely connected their legend with the Egyptian myth of the slaying of Osiris (as king of Egypt) by his mighty brother Seth, who was in certain aspects a patron of foreigners. Phrasius, Chalbes and Epaphus (for the grandfather of Busiris) are all explicable as Graecized Egyptian names, but other names in the legend are purely Greek. The sacrifice of foreign prisoners before a god, a regular scene on temple walls, is perhaps only symbolical, at any rate for the later days of Egyptian history, but foreign intruders must often have suffered rude treatment at the hands of the Egyptians, in. spite of the generally mild character of the latter.
그럼 헤로도토스가 이 사건을 어떻게 적고 있는가 살펴보자.
"...Heracles then stopped in Egypt, where King Busiris decided to make Heracles the yearly sacrifice. Heracles burst out of his chains and finally made his way to the Garden of the Hesperides. Heracles tricked Atlas into retrieving some of the golden apples for him by offering to hold the heavens for a little while. Upon his return with the apples, Atlas decided not to take the heavens back from Heracles. Heracles tricked him again by agreeing to take his place if he would only take the sky again for a few minutes so Heracles could rearrange his cloak as padding on his shoulders. Atlas agreed and Heracles left him..."
# 헤라클레스/헤뤼사프 (이집트) vs 헤라클레스/멜카르 (페니키아) ?
+ http://www.touregypt.net/featurestories/heryshef.htm
+ http://phoenicia.org/pagan.html
+ http://en.wikipedia.org/wiki/Melqart
그리스인들이 헤뤼사프와 헤라클레스를 일치시킨 것은 확실하다. 심지어 원래 헤뤼사프가 숭배되던 중부 이집트의 한 도시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 헤라클레오폴리스라고 개명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시리아와 페니키아 일대에서 숭배되던 멜카르와 헤라클레스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그리스의 몇몇 작가의 글에 기록되어 남아있다.
"헤라클레스"와 "멜카르"는 발음에서 그다지 유사한 점이 없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리스인이 이 두 신을 동일시하게 된 동기는 어쩌면 그들의 이름을 읽는 방식에 그 단서가 있을 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없이 물끄러미 글자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떠오른 생각) "좌에서 우"로 쓴 "그리스어" 헤라클레스(아래)와 "우에서 좌"로 쓴 "페니키아어" 멜카르 (위)의 글자모습이 유사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시길. 어쩌면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인들의 "멜카르"를 좌에서 우가 아닌 그리스 식대로 우에서 좌로 읽어 (게다가 약간의 오독을 한 후) "헤라클레스"를 추출해 내었을 가능성도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페니키아 문자로 "헤라클레스"와 :멜카르" 사이에는 딱 한 글자의 차이만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래 페니키아 알파벳표를 참고해서 명각을 읽어보자.
+ http://en.wikipedia.org/wiki/Herakles
+ http://homepage.mac.com/cparada/GML/Heracles1.html
위 링크를 보면 마지막 부분에 실제로 헤라클레스라고 불리는 그리스 신화 속 7명의 인물을 언급한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헤라클레스는 "헤라클레스-1"이라고 명명되고 있으며, 페니키아 티로스/투르/두로에서 신앙되던 헤라클레스는 헤라클레스-6"에 해당한다. 이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와 타이탄의 딸 아스테리아-1과의 아들로 여겨졌다고 하며 , 님프인 카르타고 (이것은 페니키아의 식민지명이기도 하다)의 아버지였다. 즉, 이 헤라클레스는 우리가 통상적인 그리스 신화에서 만나는 그 헤라클레스가 아니다. 즉, 페니키아인들이 멜카르라고 부르던 신을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레스-6이라고 여긴 듯. 그럴 경우, 아스테리아는 아스타르테(카나안)/아쉬타롯(헤브루)/이슈타르(메소포타미아)에 상응하며, 그러므로 실제로 그리스인들이 동일인으로 생각하던 헤라클레스는 실제로는 여러 명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집트의 헤뤼사프-헤라클레스와 페니키아의 멜카르-헤라클레스는 서로 다른 인물에 대한 기억에서 나온신화일 가능성이 높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헤라클레스를 매개로 헤뤼사프와 멜카르를 직접 연결하기 힘든 (헤뤼사프-헤라클레스-멜카르처럼) 이유일 듯 싶다. 즉, 두 헤라클레스가 원래부터 다르기 때문.
이종문명에 등장하는 신들을 동일시하는 과정은 보통 두가지에 의해 성립한다.
- 1. 어원적/음운학적 동등성
- 2. 속성상 동등성
헤로도토스의 기술이 무엇을 더 강조하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속성을 연결하는 방식은 신화학적으로는 통용될 수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적 증거와 맞닿아 있지않으면 가상의 사실을 만들어 낼 수있다. 이 위험은 어원을 함부로 추정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헤로도토스가 이 두 관점 사이에서 약간 우왕좌왕 한다는 느낌이다. 포세이돈이란 신이 리비아 계통에서 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면서, 막상 헤라클레스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름이 비슷해 보이지 않는 Heryshaf와 연결시키기 때문. 만약 헤로도토스가 염두에 둔 그 이집트의 신이 Heryshaf가 아닌 Shu라면 더 이상하게 들리는데, 이번에는 그가 어원적 동등성을 버리고 속성상 동등성을 취하려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근데 속성상 얼마나 동등한지도 잘 모르겠음.)
자료를 검색해 보면, 헤뤼사프-헤라클레스의 연관을 설명하는 것이 슈-헤라클레스를 연결하는 것보다 정설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http://pages.prodigy.net/saraswati/webdoc3.htm
이 자료는 {Black Athena}와 그 책이 인용하는 여러 자료들에서 추출한 것이므로, 중립적인 자료라고 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헤뤼사프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 이집트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에 의해 헤라클레스와 동일시되었다는 언급을 찾을수 없다는 것은 이 자료의 편향성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이자료는 주로 속성을 연결하는 방법을 쓴다.
그런데 이런 식의 분석은 약간의 독소조항을가지고 있다. 가령, 위의 인용문을 보면 이집트판 헤라클레스는 콘슈, 헤루, 하로포그라테스, 흐눔(이것이헤뤼사프?), 슈, 곰.....등 자연력의상징으로 표현되었다고 하는데, 다시말하면, 헤라클레스는 그 모든 것을 원형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건 뭐랄까... 많은 것을 설명하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나 다를바 없다.
# 포세이돈
포세이돈이 리비아에서 "그 이름으로" 신앙되던 신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원전13-14세기에 만들어진것으로 보이는 미케네문명의 유물 LinearB 토판에 포세이돈과 제우스가 이미 PO-SE-DA-WO-NE과DI-U-JA라는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할 것 같다.
# 흑인 소크라테스?
천하의 추남자였다고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외모는 크세노폰의 {향연} 속에 등장한다.
제 5장은 좀 유치하면서도 재미있는 풍자로 되어 있는데, 이 장의 내용은 소크라테스와 크리토불로스 두 양반이 서로 누가 더 잘 생겼니 싸움하는 재밌는 대목이다.
아마도 버널의{흑인아테나}는 위에 인용한 6절 무렵에서, 소크라테스의 그 펑퍼짐하고 납작한코 - 소크라테스가 매우 자랑스럽게 아름답다고 으시대고있는 - 에 착안해서 소크라테스를 흑인으로 추정한 듯하다. 그러나 5장 전체를 읽는다면, 그저 흑인으로 보기에는 의외의 모습도 나타난다.
하지만 역시 아테네 사람들은 미적 감각은 있었던 모양이어서 (혹은 반 흑인 정서?), 대화 후 두 꽃미남의 미모를 두고 시민의 표결이 붙여지는데 넘겨지는데, 모든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 아닌 크리토불로스가 잘 생겼다는데에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표를 던져주었다는 사실.
# 정리
우리는 지금 교역이 활발했던 시기 지중해의 종교간 습합에 대해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 종교는 다른 기원을 가지다가 유사하게 습합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집트와 카나안의 많은 신화에서 그런 것을 발견한다. 역할의 습합이 있기도 하고, 이름이 상호교환되기도 한다. 한 신의 성격이 나중에 다르게 변형되기도 한다. 따라서 한 신화체계가 다른 신화체계로 이전되었다고 쉽게 말하는 것보다는 일단 그 신화체계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실제로 존재했었는가, 변형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자, 그리스의 헤라클레스에 해당할 헤뤼사프는 이집트에서는 라나 오시리스와 등치가 된 적이 있는데, 근데 또 헤로도토스는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를 연결시키고 있지 않은가?)
Crit. Well, let that pass. To come to our two noses, which is the more handsome, yours or mine?
Soc. Mine, I imagine, if, that is, the gods presented us with noses for the sake of smelling. Your nostrils point to earth; but mine are spread out wide and flat, as if to welcome scents from every quarter.
Crit. But consider, a snubness of the nose, how is that more beautiful than straightness?[7]
[7] Or, 'your straight nose.' Cf. Plat. 'Theaet.' 209 C: Soc. 'Or, if I had further known you not only as having nose and eyes, but as having a snub nose and prominent eyes, should I have any more notion of you than myself and others who resemble me?' Cf. also Aristot. 'Pol.' v. 9, 7: 'A nose which varies from the ideal of straightness to a hook or snub may still be a good shape and agreeable to the eye; but if the excess be very great, all symmetry is lost, and the nose at last ceases to be a nose at all on account of some excess in one direction or defect in the other; and this is true of every other part of the human body. The same law of proportion holds in states.'--Jowett.
Soc. For this good reason, that a snub nose does not discharge the office of a barrier;[8] it allows the orbs of sight free range of vision: whilst your towering nose looks like an insulting wall of partition to shut off the two eyes.[9]
[8] Or, 'the humble snub is not a screen or barricade.'
[9] Cf. 'Love's Labour Lost,' v. 2. 568: Boyet. 'Your nose says no, you are not, for it stands too right'; also 'The Song of Solomon,' vii. 4: 'Thy nose is the tower of Lebanon, which looketh toward Damascus.'
아마도 버널의{흑인아테나}는 위에 인용한 6절 무렵에서, 소크라테스의 그 펑퍼짐하고 납작한코 - 소크라테스가 매우 자랑스럽게 아름답다고 으시대고있는 - 에 착안해서 소크라테스를 흑인으로 추정한 듯하다. 그러나 5장 전체를 읽는다면, 그저 흑인으로 보기에는 의외의 모습도 나타난다.
- 소크라테스는 남들은 앞만 볼 수 있지만, 자기 눈은 툭 튀어나와 있어서 옆도 볼 수 있다고 으시댑다. 백인과 비교하더라도 흑인의 눈이 과연 이 정도일까?
- 소크라테스는 남들 콧구멍은 아래로 뚫려있지만, 자기 코는 넙적해서 시야도 가리지 않고, 또 콧구멍도 넓고 평평하게 뚫려있어서 사방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주목. 전형적인 흑인의 코는 높지 않고 콧구멍이 다소 옆쪽으로 나와있지만, 크세노폰의 진술에 등장하는 이 코는 그냥 납작한 코라기 보다는 들창코(snubness) 형태로 납작하다고 봐야할 듯 하다.
- 그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에서는 입술을 말하고 있는데,소크라테스는 확실히 큰 입에 두꺼운 입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어떤 님프들은 자기같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부분은 다소 흑인을 연상시키기는 한다. 각설하고, 소크라테스가 흑인인지의 논쟁을 접어두고라도, 소크라테스는 내가 생각해 오던 것보다도 더 상당한 몰골이었을 가능성이 농후. (거의 괴물 수준...)
하지만 역시 아테네 사람들은 미적 감각은 있었던 모양이어서 (혹은 반 흑인 정서?), 대화 후 두 꽃미남의 미모를 두고 시민의 표결이 붙여지는데 넘겨지는데, 모든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 아닌 크리토불로스가 잘 생겼다는데에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표를 던져주었다는 사실.
# 정리
우리는 지금 교역이 활발했던 시기 지중해의 종교간 습합에 대해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 종교는 다른 기원을 가지다가 유사하게 습합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집트와 카나안의 많은 신화에서 그런 것을 발견한다. 역할의 습합이 있기도 하고, 이름이 상호교환되기도 한다. 한 신의 성격이 나중에 다르게 변형되기도 한다. 따라서 한 신화체계가 다른 신화체계로 이전되었다고 쉽게 말하는 것보다는 일단 그 신화체계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실제로 존재했었는가, 변형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자, 그리스의 헤라클레스에 해당할 헤뤼사프는 이집트에서는 라나 오시리스와 등치가 된 적이 있는데, 근데 또 헤로도토스는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를 연결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기술은, 뭐랄까, 자기의 문명보다 더 고색창연한 문명을 만났을때 느끼는 압도감에 의해 많이 채색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헤로도토스가 일단 그리스인의 헤라클레스가 이집트의 헤뤼사프나 페니키아의 멜카르라고 인정하고 시작한 초기가정부터가 어긋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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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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