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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야훼 vs. 아후라마즈다 #3: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는 유일신을 섬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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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草人 최광민 201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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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야훼 vs. 아후라마즈다 #3: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는 유일신을 섬겼을까?

요약

제2성전기 유대교의 초기역사와 겹치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국가종교 조로아스터교가 절대적 유일신으로 아후라마즈다를 신앙했던 것인지,  또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제2성전 유대교가 민족신 야훼의 개념을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유일신 야훼로 진화시킨 것인지 검토해 보자.

순서
  1. 제2성전기 유대교와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의 조로아스터교
  2. 역사적 재구성의 한계
  3. "어느 시대"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일까?: 아케메네스 vs. 사산
  4. 짜라투스트라는 도대체 언제적 사람인가?
  5. 아케메네스 왕조 조로아스터교는 유일신교 였을까?
  6. 아케메네스 군주들과 조로아스터교의 관계
    1. 키루스: 마르둑, 나부, 야훼
    2. 다리우스 1세: (왕가의) 신(=바가)들?
    3. 크세르크세스 1세: 신 (=바가)들과 다이바들?
    4. 아르타크세르세스: 신(=바가)들?
    5. 아르타크레스세스 2세: 아나히타와 미트라?
  7. 유일신 vs. 최고신

조로아스터교의 상징 Faravahar, 페르세폴리스


# 제2성전기 유대교와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의 조로아스터교

혹자는 "제1성전기 유대교"는 "(1) 오직 야훼 만을 유일한 신이자 창조주로 믿는 "절대적" 일신교/유일신교가 아니라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되 야훼를 주신으로 섬기는 방식의 "선택적" 일신교 혹은 단일신교 (henotheism) 였을 뿐이며, (2) 바빌론 유수기와 그 직후 제2성전기 유대교 시절에 접한 조로아스터교가 아후라 마즈다를 '우주적 유일신'으로 섬기는데서 자극받아 절대적 일신교로 발전된 것" 이라 주장한다.

매우 매력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그 답이 어떤 사료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 얼마나 확정적인 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원전 자료를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정황 상 그러하겠지만 사료적으로 충분한 근거는 (아직) 없다"이다. 그리고 이 애매한 입장이 학문적으로는 가장 정직한 해답이다. 

이 문제는 여러 각도에서 따져봐야 한다. (1) 소위 "제1성전기 유대교" 시기의 종교적 지형이 어땠는지, 그리고 (2)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가 정말 '절대적 유일신교'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이미 설명했으니, 이 글에서는 제2성전기 유대교의 초기에 해당하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시절의 조로아스터교의 신관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 역사적 재구성의 한계

그럼 정말 제2성전기의 유대교는 (1) 제1성전기 유대교에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종교적 모티프들을 조로아스터교에서 차용했고, (2) 그 결과 제1성전기와 제2성전기 유대교 사이에 큰 차이가 등장하게 된 것일까? 

일반인들은 쉽게 접하는 저작물이나 혹은 백과사전 등에 등장하는 위의 진술들을 확정적 "사실"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문적인 결론부터 정직하게 답한다면, 이 사안은 학자들 간에 여전히 정답이 없으며  앞으로도 정답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 간의 "역사적" 상호영향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능한 연대표들을 상호비교 해야만 얻을 수 있다. 문제는 BC 8세기에서 AD 1세기의 연대표를 놓고 볼 때, 유대교 쪽과 기독교 쪽의 연대표는 꽤 확정적이지만 이 시기 조로아스터교 쪽 연대표와 사료가 불분명하다는데 있다. (물론 사료가 없다는 점을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사실 "제2성전기 유대교에 대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에 대해서는 크게 세가지 주장이 가능할 듯 싶다.

  • 제2성전기 유대교가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차용했다
  •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의 종교적 모티프를 차용했다
  •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는 독자적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세 주장 모두 그 근거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조로아스터교 차용설"과 관련된 주장 혹은 그 반대 주장들 ("유대교 차용설", "독립발전설")들을 입증할 - 다시 말해 (1) "제 1성전기 유대교"의 성격을 정확히 재구성해 줄 문건이나 (2) 혹은 "제2성전기 유대교"에 영향을 줬다는 그 당시 "조로아스터교"를 분명히 재구성해 줄 문건이나 고고학적 근거가 현재로선 상당히 빈약하다는 뜻이다.

위의 주장이나 혹은 그 반대주장이나 양쪽 모두 사실은 사료적-고고학적 증거물이 매우 빈약하고, 고고학적 혹은 문헌적 자료가 빈약한 탓에, 이 분야의 많은 주장들은 사실 대부분 (1) "어떤 전제에 바탕한" (2) 정황적 "추론"이다. 바로 이 지점이 학자들과 일반독자들 간의 괴리가 발생하는 지점인데, 일반인들은 종종 현재 "학문적 추론"에 바탕한 "현재 주류설"을 "역사적 사실"로 종종 착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학자들이 두 종교의 비교에 활용할 수 있는 문헌자료는 (1) 제 1성전기에 작성되었더라도 제 2성전기에 초/중반에 정리/편집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히브리 정경}문서와 (2)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작성되었더라도 AD 3세기 이후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서 정리/편집되어 전승된 조로아스터교 경전군인 {아베스타} 및 기타 종교문서, 그리고 (3) 당시 페르시아 측의 유물, (4) 당시 그리스 측 문헌  등으로 제한되어 있다.



# "어느 시대"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인가?: 아케메네스 vs. 사산

앞에 말한 바와 같이 "아케메네스 왕조"시절의 조로아스터교는 "제2성전기" 유대교 초기 시절과 같은 시대에 놓인다.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

"제1성전기와 제2성전기 유대교 간에 큰 차이는 제2성전기 유대교가 조로아스터교의 결정적 영향을 받아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측에 종종 놓치는, 혹은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는데, 사실은 조로아스터교 역시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의 조로아스터교와  "사산 왕조 시절"의 조로아스터 간에 무려 600년에 이르는 길고 깊은 단절이 있다는 사실이다. 

BC 330년 마케도니아 침공으로 아케메네스 왕조가 멸망하고 페르시아가 지배했던 방대한 지역에 헬레니즘이 이식되면서 왕실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 역시 심각한 변형과 퇴조를 격었고 많은 종교문서들이 소실되었다. 또한 사산 왕조 시절까지의 조로아스터교는 기본적으로 문서가 아닌 구전으로 교리를 전수했다고 알려져 있다. 구전과정에서 어떤 변형이 있었는지를 밝히기도 그리 쉽지 않다.

사실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과 사산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 사이에 불연속성이 있었다는 점은 사산 왕조 시절인 후대의 조로아스터교 측 문서에도 명시적으로 등장한다.

빠르면 사산 왕조 후기, 늦으면 AD 9-10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조로아스터교 측 문서 {아르다 비라프의 서}에서 발췌한다.

http://www.avesta.org/pahlavi/viraf.html

They say that, once upon a time, the pious Zartosht made the religion, which he had received, current in the world; (2) and till the completion of 300 years, the religion was in purity, and men were without doubts. But afterward, the accursed evil spirit, the wicked one, in order to made men doubtful of this religion, (4) instigated the accursed Alexander, the Roman, who was dwelling in Egypt, so that he came to the country of Iran with severe cruelty and war and devastation; (5) he also slew the ruler of Iran, (6) and destroyed the metropolis and empire, and made them desolate.

그 옛날 경건한 짜라투스트라가 계시를 받아 현재 세상이 믿는 종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300년을 채우도록 그 종교는 순수함을 유지했고 사람들은 이 종교에 의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저주받은 알령 - 그 사악한 자는 사람들이 이 종교를 의심하게 만들기 위해, 이집트에 살던 로마인 (=그리스인) 알렉산드로스를 충동해 이 나라에 참혹과 전쟁과 파괴를 가져왔다. 그는 페르시아의 군주를 죽이고 그 수도와 제국을 파괴해 황폐하게 만들었다. -- 번역: 최광민

7. And this religion, namely, all the Avesta and Zand, written upon prepared cow-skins, and with gold ink, was deposited in the archives, in Stakhar Papakan, (8) and the hostility of the evil-destined, wicked Ashemok, the evil-doer, brought onward Alexander, the Roman, who was dwelling in Egypt, and he burned them up. (9) And he killed several Dasturs and judges and Herbads and Mobads and upholders of the religion, and the competent and wise of the country of Iran. (10) And he cast hatred and strife, one with the other, amongst the nobles and householders of the country of Iran; (11) and self-destroyed, he fled to hell.

다듬은 암소가죽에 금색잉크로 적은 이 종교의 경전 {아베스타}와 {잔드}는 스타카르 파파칸에 있던 문서고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악한 운명을 타고난 사악한 아쉐목이 이집트에 살던 그리스인 알렉산드로스에게 가져갔고, 알렉산드로스는 그걸 불태워 버렸다. 그는 다스투르와 판관들과 헤르바드와 모바드 몇몇과 그 종교의 신봉자들, 그리고 페르시아의 유능하고 지혜로운 자들을 살해했다. 그는 증오를 퍼트려 사람들끼리 - 그 나라의 귀족들과 백성들 끼리 - 서로 분쟁하게 만들었고, 이후 자멸해서 지옥에 떨어졌다. -- 번역: 최광민

12. And after that, there were confusion and contention among the people of the country of Iran, one with the other. (13) And so they had no lord, nor ruler, nor chieftain, nor Dastur who was acquainted with the religion, (14) and they were doubtful in regard to God; (15) and religions of many kinds, and different fashions of belief, and skepticism, and various codes of law were promulgated in the world; (16) until the time when the blessed and immortal Ataropad-i Marspendan was born; on whose breast, in the tale which is in the Denkard, melted brass was poured. (17) And much law and justice were administered according to different religions and different creeds; (18) and the people of this religion deposited in Shaspigan were in doubt.

이후 페르시아인들은 혼란과 서로 간 분쟁에 빠져들었다. 군주도 통치자도 추장도 그 종교를 아는 다스투르도 더이상 없었다. 그들은 신을 의심하기에 이르렀고, 여러 종류의 종교들과 다른 형태의 신앙들 그리고 회의주의와 여러 다른 형태의 율법들이 세상에 퍼져 나갔다. 이 상황은 축복받은 불멸의 아타로파디 마르스텐탄이 태어날 때까지 이어졌다. {덴카르드}에 수록된 이야기에 보면, 그의 가슴에 녹인 황동이 부어졌다고 한다. 다른 종교들과 신앙들에 따라 다양한 율법이 시행되었고, 샤스피간에 잔존해 있던 이 종교의 신봉자들은 의심에 빠져들었다. -- 번역: 최광민

19. And afterward, there were other magi and Dasturs of the religion; (20) and some of their number were loyal and apprehensive. (21) And an assembly of them was summoned in the residence of the victorious Frobag fire; (22) and there were speeches and good ideas, of many kinds, on this subject: (23) that "it is necessary for us to seek a means, (24) so that some one of us may go, and bring intelligence from the spirits; (25) that the people who exist in this age shall know (26) whether these Yazishn and Dron and Afrinagan ceremonies, and Nirang prayers, and ablution and purifications which we bring into operation, attain unto God, or unto the demons. (27) and come to the relief of our souls, or not."

이후 이 종교의 다른 마기들과 다스투르들이 등장했는데, (이 종교)에 충실했던 그들 중 일부는 (이 상황이) 염려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들은 영광스런 프로바그 성화가 모셔진 곳에 모여 회합을 열고 이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토론을 벌이고 좋은 견해을 나누면서, "영들로 부터 받은 이 지식을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이 시대 사람들에 알려 야지쉰과 드론과 아프리나간 의례과 니랑 기도문, 우리가 수행하는 세례 및 정화의식과 신과 악마들에 관해 전하여야, 우리 영혼이 안식을 찾든 말든 할 수 있겠다"라 말했다. -- 번역: 최광민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

보통 사람들이 "제2성전기 유대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할 때의 그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들은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의 조로아스터교라기 보다는 그보다 6세기 정도 후인 AD 3세기 이후부터 AD 10세기에 이르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이후 이슬람 점령 후 편찬된 조로아스터교 문서에서야 대개 명시적으로 등장한다. 

물론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의 교리가 7세기 후 사산 왕조 시절까지 변함없이 지속된 것도 많을 것이다. 다만 이를 후대의 문서로 확증하긴 한계가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소실되어 가던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인 {아베스타}가 문서화된 것이 바로 사산 왕조 시절에나 가서였다. 물론 {아베스타}의 모든 문서가 AD 3세기 이후  작성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짜라투스트라가 쓴 찬송이라고 여겨지는 {가타} 문서들은 언어학적으로 훨씬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상위범주인 {야스나}의 일부는 종교의례과 기도이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의 종교의례가 아케네메스 왕조 시절부터 끊이지 않고 전수되어 왔다면, 반복적인 구전으로도 꽤 잘 전수되어 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BC 30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괴멸된 후 구 페르시아 지역은 수백년 간 다양한 그리스계 지방정권과 파르티아를 거치며 다양한 종교적 흐름이 있었고, 이때 한번 크게 붕괴된 조로아스터교가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형태의 조로아스터교로 부활한 것은 AD 3세기 사산 왕조 시절이다. 따라서 아케메네스 왕조시절과 사산 왕조 시설의 조로아스터교가 동일했다고 여길 이유는 사실 많지 않다.



# 도대체 짜라투스트라는 언제적 사람인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창건한 키루스가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것은 BC 539년이다. 따라서 바빌론 유수를 겪던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세력을 직접 접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가 된다. 그래서 아마도 당시 키루스 혹은 페르시아인들이 조로아스터교를 유력종교로 믿고 있었다면, 조로아스터교에 직접 노출되는 것도 이 시기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특별히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짜라투스트라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짜라투스트라의 활동시기를 어디로 잡는가에 따라 (1) 유대교 (그리고 후대의 기독교)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2)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혹은 (3) 두 종교적 흐름이 독립적으로 수렵된 것인지로 결론이 다르게 나기 때문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언제 활동했으며 조로아스터교는 도대체 언제 시작되었을까? 만약 짜라투스투라의 활동시점이나 조로아스터교의 역사가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유대인들은 BC 6세기 보다 더 이른 시절에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조로아스터교의 교조 짜라투스트라가 언제적 사람인지를 놓고 BC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 이래로 현대까지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오죽하면  그동안 주장되어 온 짜라투스트라의 활동시기들 간의 오차는 수 천년을 오르내린다.

당장 위에 언급한 사산 왕조 시대 조로아스터교는 짜라투스트라가 조로아스터교를 개창한 해가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정복 (BC 330)으로부터 300년 전이라고 했다. 즉, BC 630년이다. 이때는 남 유다왕국의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며,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은 BC 587년이다. 

AD 4-7세기의 조로아스터교 측 저술 {분다히스니}에 따르면 BC 588년 경이 짜라투스트라의 활동시기다. 이것이 그의 사망년도라면 역시 후대 전설 ({사나메흐})에 의거해 77세가 사망 나이이기 때문에 그의 탄생년도는 BC 665년이 된다.

그럼 한번 고대 기록들을 몇 개만 검토해 보자.

BC 5세기 무렵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유력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얼핏 알고 있던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조로아스트레스 Ζωροάστρης'라고 표기했던 짜라투스트라의 활동시기를 BC 10,000 무렵까지 상정하기도 했다.

우선 AD 1세기 로마 저술가 (대)플리니우스가 그의 {박물지 Naturalis historia}제 30권에 인용한 BC 4/5세기 그리스 철학자 유독소스와 헤르니포스가 남긴 기록이다.

II. Without doubt magic arose in Persia with Zoroaster. On this our authorities are agreed, but whether he was the only one of that name, or whether there was also another afterwards, is not clear.

의심할 여지없이 마법은 페르시아의 짜라투스트라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 측 권위자들이 인정하는 바이긴 하지만, 이 짜라투스트라가 한 명인지 혹은 이후에 동명이인이 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 (대) 플리니우스, {박물지} 30권 2장 / 번역: 최광민

Eudoxus, who wished magic to be acknowledged as the noblest and most useful of the schools of philosophy, declared that this Zoroaster lived six thousand years before Plato's death, and Aristotle agrees with him. Hermippus, a most studious writer about every aspect of magic, and an exponent of two million verses composed by Zoroaster, added summaries too to his rolls, and gave Agonaces as the teacher by whom he said that he had been instructed, assigning to the man himself a date five thousand years before the Trojan War.

마법을 철학의 유파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유용한 것으로 인정하고자 했던 유독소스는, 짜라투스트라가 플라톤의 사망시점에서 6천 년 전에 살았다고 선언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견해에 동의했다. 마법의 여러 측면에 대해 가장 충실히 저술했고 또 짜라투스트라가 지은 2백만 편의 구절을 주석하고 몇몇 저작을 요약한 헤르니포스는, 짜라투스트라의 교리는 트로이 전쟁보타 5천년 전에 살았던 아고나케스란 스승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적었다. -- (대) 플리니우스, {박물지} 30권 2장 / 번역: 최광민

...... There is yet another branch of magic, derived from Moses, Jannes [an Egyptian magician], Lotapes [Iotape = Yahweh], and the Jews, but living many thousand years after Zoroaster....

마법의 다른 유파로는 모세, 얀네스 (이집트 마술사), 로타페스 (~ 야훼?), 유대인들의 것이 있지만, 짜라투스트라보다는 수천 년 뒤의 것이다.... -- (대) 플리니우스, {박물지} 30권 2장 / 번역: 최광민

AD 1세기 그리스 작가인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 이시스와 오시리스}에서 인용한다.

καὶ δοκεῖ τοῦτο τοῖς πλείστοις καὶ σοφωτάτοις. νομίζουσι γὰρ οἱ μὲν θεοὺς εἶναι δύο καθάπερ ἀντιτέχνους, τὸν μὲν ἀγαθῶν, τὸν δὲ φαύλων δημιουργόν. οἱ δὲ τὸν μὲν 1 ἀμείνονα θεόν, τὸν δὲ ἕτερον δαίμονα καλοῦσιν: ὥσπερ Ζωροάστρης 2 ὁ μάγος, ὃν πεντακισχιλίοις ἔτεσι τῶν Τρωικῶν γεγονέναι πρεσβύτερον ἱστοροῦσιν. οὗτος οὖν ἐκάλει τὸν μὲν Ὡρομάζην, τὸν δ᾽ Ἀρειμάνιον καὶ προσαπεφαίνετο τὸν μὲν ἐοικέναι φωτὶ μάλιστα τῶν αἰσθητῶν, τὸν δ᾽ ἔμπαλιν σκότῳ καὶ ἀγνοίᾳ, μέσον δ᾽ ἀμφοῖν τὸν Μίθρην εἶναι: διὸ καὶ Μίθρην Πέρσαι τὸν μεσίτην ὀνομάζουσιν.

The great majority and the wisest of men hold this opinion : they believe that there are two gods, rivals as it were, the one the Artificer of good and the other of evil. There are also those who call the better one a god and the other a daemon, as,
for example, Zoroaster the sage, who, they record, lived five thousand years before the time of the Trojan War. He called the one Oromazes and the other Areimanius; and he further declared that among all the things perceptible to the senses, Oromazes may best be compared to light, and Areimanius, conversely, to darkness and ignorance, and midway between the two is Mithras ; for this reason the Persians give to Mithras the name, of ‘Mediator.’ -- Plutarch, {On Isis and Osiris} 46-7,

지식인들 중 많은 이들이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경쟁하는 두 신이 있다고 믿는데, 각각은 선과 악을 만든 존재들이다. 전자를 '신'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악마'라 부르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그들 기록으론 트로이 전쟁 이전 5천 년 전에 살았다는 현자 조로아스터 처럼 선한 자를 '신'이라 부르고 후자를 '악'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조로아스터는 전자를 '오로마즈제스', 후자를 '아레이마니오스'라 부른다. 더 나아가 그는 감관을 인지되는 모든 것 가운데서 오로마제스는 '빛'에 가장 잘 대응하고, 아레이마니오스는 반면 '어둠'과 '무지'에 대응한다고 선언했다. 이 둘 사이에는 '미트라스'가 있다. 그런 이유로 페르시아인들은 미트라스를 '중재/중간자'란 호칭을 주었다 --- 플루타르코스, {모랄리아: 이시스와 오시리스} 46장

AD 3세기 그리스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제1권 서문에서 옮긴다. 이 책에서 라에르티오스는 짜라투스트라의 생몰 시기를 무려 BC 6,500 - 15,000년으로 추정한 BC 5세기 역사가 크산토스와 BC 4세기 수학자 헤르모도로스의 주장을 인용한다. 

Ἀπὸ δὲ τῶν Μάγων, ὧν ἄρξαι Ζωροάστρην τὸν Πέρσην, Ἑρμόδωρος μὲν ὁ Πλατωνικὸς ἐν τῷ Περὶ μαθημάτων φησὶν εἰς τὴν Τροίας ἅλωσιν ἔτη γεγονέναι πεντακισχίλια: Ξάνθος δὲ ὁ Λυδὸς εἰς τὴν Ξέρξου διάβασιν ἀπὸ τοῦ Ζωροάστρου ἑξακισχίλιά φησι, καὶ μετ᾽ αὐτὸν γεγονέναι πολλούς τινας Μάγους κατὰ διαδοχήν, Ὀστάνας καὶ Ἀστραμψύχους καὶ Γωβρύας καὶ Παζάτας, μέχρι τῆς τῶν Περσῶν ὑπ᾽ Ἀλεξάνδρου καταλύσεως.

The date of the Magians, beginning with Zoroaster the Persian, was 5000 years before the fall of Troy, as given by Hermodorus the Platonist in his work on mathematics; but Xanthus the Lydian reckons 6000 years from Zoroaster to the expedition of Xerxes
, and after that event he places a long line of Magians in succession, bearing the names of Ostanas, Astrampsychos, Gobryas, and Pazatas, down to the conquest of Persia by Alexander. --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페르시아의 짜라투스트라 (조로아스터) 때 시작된 마기들의 연대는 트로이의 함락으로부터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플라톤 철학자인 헤르모도로스가 그의 수학 저서에서 제시했다. 그러나 리디아의 크산토스는 짜라투스트라의 연대를 크세르세스의 (그리스) 원정으로부터 6000년 전으로 잡고, 그 이후로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를 정복할 때까지 이어지는 오스타나스, 아스트람쉬코스, 고브리아스, 마자타스 같은 마기들의 긴 계승 리스트를 제시했다. / 번역: 최광민

AD 4세기 이후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문서 {아르다 비라프의 서}에 따르면 짜라투스트라의 활동시기는 BC 630년 무렵이 된다.

They say that, once upon a time, the pious Zartosht made the religion, which he had received, current in the world; (2) and till the completion of 300 years, the religion was in purity, and men were without doubts. But afterward, the accursed evil spirit, the wicked one, in order to made men doubtful of this religion, (4) instigated the accursed Alexander, the Roman, who was dwelling in Egypt, so that he came to the country of Iran with severe cruelty and war and devastation; (5) he also slew the ruler of Iran, (6) and destroyed the metropolis and empire, and made them desolate. --- {Book of Arda Viraf}

그 옛날 경건한 짜라투스트라가 계시를 받아 현재 세상이 믿는 종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300년을 채우도록 그 종교는 순수함을 유지했고 사람들은 이 종교에 의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저주받은 알령 - 그 사악한 자는 사람들이 이 종교를 의심하게 만들기 위해, 이집트에 살던 로마인 (=그리스인) 알렉산드로스를 충동해 이 나라에 참혹과 전쟁과 파괴를 가져왔다. 그는 페르시아의 군주를 죽이고 그 수도와 제국을 파괴해 황폐하게 만들었다. -- 번역: 최광민

도대체 짜라투스트라는 언제적 사람인가?

후대 조로아스터교 측 주장에 따라 BC 7세기를 그의 활동시기로 잡는다면, 그리고 그가 개창한 종교가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초반에 페르시아인들의 유력종교가 되었다면, 바빌론 유수 중의 유대인 공동체가 페르시아의 침공을 경험한 BC 538년 이후부터 고향에 돌아간 후인 제2성전기 유대교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또 문제가 있다.



# 아케메네스 왕조 조로아스터교는 유일신교 였을까?

히브리 성서인 {에즈라}와 {느헤미아}에 따르면 키루스의 승인으로 예루살렘의 야훼성전 재건이 시작되었지만, 여러 난관 끝에 다리우스 6년인 BC 516년에 가서야 제 2성전이 완공되었다.

혹자는 "유일신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했던 키루스나 다리우스가 유사하게 유일신적인 신관을 가진 유대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야훼신전의 재건을 도왔거나, 혹은 유대교에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교" 사상을 불어넣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이런 주장은 사실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를 입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케메네스 왕조시절 조로아스터교의 일면을 보여주는 인각 등 유적/유물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 교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아베스타}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아닌 AD 4세기 사산조 페르시아 시절인 AD 350년에 "편찬"되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베스타} 사본은 AD 13세기의 것이다. 아울러 {아베스타}보다 풍부한 전설적 내용을 담은 조로아스터교의 주석집 등은 AD 9-10세기에 등장했다.

AD 3-7세기에 해당하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절에 등장한 "조로아스터교 측 증언"에 따르면, BC 330년 알렉산드로스의 그리스 원정군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후 조로아스터교는 궤멸상태에 빠졌고, 중간기인 파르티아 왕국 시절을 거쳐 AD 3세기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조로아스터교가 국교로 다시 위상을 재정립할 때까지의 600년 이상 조로아스터교는 교리적으로도 상당한 변화를 겪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이 아닌 대체로 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절 새로 개창된 혹은 개혁된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반영한다. 결국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와 사산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의 차이는 약 70년의 간극을 둔 제1성전기 유대교와 제2성전기 유대교의 차이보다 더 크면 더 크지 더 작지는 않았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물론 역사적 사료 문제만 본다면 유대교 쪽도 상황은 비슷한데, 제1성전기 유대교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는 사실 매우 빈약하다. 한편, 서지학적 자료라 할 수 있는 {히브리성서} 즉 {구약성서}에 바빌론 유수기나 제2성전기 초창기를 엿볼 수 있는 정보가 등장하긴 하고 또 {히브리 성서}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 ({70인역, LXX})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이 BC 3세기 중반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주요 경전군이 "문서적으로도 이미" 편찬되어 있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현대 주류학자들은 현재 전해오는 이들 종교문서가 바빌론 유수 시절을 전후해서 "편집", "증보", "개정" 되었다는 설명을 일반적으로 취한다. 이 주장을 받게 되면, 역시 제 1성전기 유대교에 대한 정확한 재구성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이럴 경우 제 1성전기 유대교에 대한 {히브리 성서}의 묘사는 기껏해야 제 1/2성전기 유대교를 후대에 "윤색"한 자료일 뿐이기 때문이다.


# 아케메네스 군주들과 조로아스터교의 관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군주들의 종교적 성향은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 간이 상호영향을 추론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이 시기 페르시아 제국의 종교정책이 국가적으로 조로아스터교를 '우호적'인 방식으로 '전파'하고 '장려'하는 것이었다면, 아무래도 바빌론 유수 기간 후반부에 페르시아의 점령지에 살았고 또 페르시아의 군주들에게서 '해방'이라는 시혜를 얻은 유대인들이 이들로 부터 종교적 영향을 받았을 정황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선,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건한 키루스부터 알렉산드로스에게 패망한 다리우스 3세까지 군주들을 재위 순서로 나열해 본다. 

  • 559–530 BC Cyrus the Great
  • 530–522 BC Cambyses II
  • 522 BC Bardiya / Smerdis
  • 522–486 BC Darius I
  • 486–465 BC Xerxes I
  • 465–424 BC Artaxerxes I
  • 424–424 BC Xerxes II
  • 424–423 BC Sogdianus
  • 423–405 BC Darius II
  • 405–358 BC Artaxerxes II
  • 358–338 BC Artaxerxes III
  • 338–336 BC Arses
  • 336–330 BC Darius III

{에즈라} 4장에 따르면 키루스 - 아하수에로스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 다리우스 로 왕의 계보가 이어지는데, 만약 {에즈라}의 다리우스를 다리우스 1세로 보면  위의 페르시아 군주 재위기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리우스 2세로 볼 수도 없는데 너무 후대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시 페르시아 군주들이 여러 이름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  {에스라}의 아하수에로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각각 캄비세스 2세와 바르디야/스메르디스를 말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 키루스: 마르둑, 나부, 야훼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건하고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직후 유대인을 해방시켜 "메시아"로 불린 키루스는 아후라마즈다를 유일신으로 섬기던 조로아스터교도였을까? 그래서 그의 종교적 영향력이 제2성전기 유대교에 스며들었을까?

정답은 키루스의 종교는 "아무도 모른다"이다. 키루스와 관련된 유적과 유물엔 "아후라마즈다"가 등장하지도, 특별히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라 불릴 만한 종교적 표현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키루스가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는 강한 암시만이 고대 기록 속에 남아 있다. 

우선, 키루스가 유대인들을 해방시키면서 내렸던 칙령을 읽어보자.

{에즈라} 1장에 인용된 칙령의 내용이다.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 제일년이었다. 야훼께서는 일찍이 예레미야를 시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래서 고레스는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리고 그것을 적은 칙서를 전국에 돌렸다.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칙령이다. 하늘을 내신 하느님 야훼께서는 세상 모든 나라를 나에게 맡기셨다. 그리고 유다 나라 예루살렘에 당신의 성전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지워주셨다. 나는 그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든 백성과 함께 계시기를 비는 바이다. 그 하느님은 유다 나라 예루살렘에 계시는 분이시니, 유다인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성전을 짓도록 하여주어라. 원주민들은, 여기저기 몸붙여 살다가 아직 살아 남은 유다인이 있거든 예루살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에 가져다 바치도록 자원예물도 들려 보내고 금과 은과 세간과 가축도 주어서 보내어라."  --- 한국어 공동번역, {에즈라} 1장

동일한 내용이 {역대기} 하편 36장의 내용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바빌론 왕을 끌어들이시니, 바빌론 왕은 성소에서 장정들을 칼로 쳐죽였다. 그는 장정, 처녀, 늙은이, 약자 할 것 없이 모조리 쳐죽였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그의 손에 부치셨던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성전 그릇들을 크건 작건 간에 모두 쓸어가고 야훼의 성전 창고와 왕궁 창고를 털어갔으며 대신들도 바빌론으로 모두 붙잡아 갔다. 하느님의 성전을 불살랐고 예루살렘 성을 허물었으며 궁궐들을 불살라 버리고 거기에 있던 값진 것을 모조리 부수어버렸다. 느부갓네살은 칼에 맞아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자들을 바빌론으로 붙잡아다가 페르시아 시대가 되기까지 대대로 종으로 부렸다. 이리하여 이 땅은 긴 세월 동안 황폐되어, 밀렸던 안식을 다 찾아 누리며 칠십 년을 채우리라고, 야훼께서 예레미야를 시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 제일년이었다. 야훼께서는 일찍이 예레미야를 시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래서 고레스는 아래와 같은 칙령을 내리고 그것을 적은 칙서를 전국에 돌렸다.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의 칙령이다. 하늘을 내신 하느님 야훼께서는 세상 모든 나라를 나에게 맡기셨다. 그리고 유다 나라 예루살렘에 당신의 성전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지워주셨다. 그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든 백성과 함께 하시기를 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돌아가라."  --- 한국어 공동번역,  {역대기} 하편 36장

키루스가 '아후라마즈다'를 유일신으로 믿는 조로아스터 교도였다면, 혹시 그런 이유로 비슷한 '유일신관'을 가진 유대교에 호의적이라서 이런 해방령을 내린걸까?

아니 아예 키루스는 그의 아후라마즈다와 유대인의 야훼를 동일시한 것일까?

키루스의 포고에서 "하늘(과 땅을)을 내신 (신)께서는 세상 모든 나라를 나에게 맡기셨다"란 표현은 사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들이 남긴 인각들에 자주 등장하는 공식표현이다. 다만 아케메네스 군주들은 저 표현에서 "신"의 자리에 "아후라마즈다"를 넣는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키루스는 여기서 야훼를 아후라마즈다와 동일시 한게 아니라 야훼를 "유다 나라 예루살렘에 계시는 분"이며 또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든 백성과 함께 있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즉, 키루스에게 있어 야훼는 "예루살렘에 성전을 둔 이스라엘인의 신"이다. 

그럼 키루스는 혹시 '아후라마즈다' 이외의 다른 신들도 인정한 것인가?

많은 기독교도들이 믿는 것처럼,  아니 혹시 키루스는 야훼 신앙으로 귀의한 것일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유대인 해방이 있기 직전인 BC 539년, 키루스는 신-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으로 진군해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다 (유대인 해방은 그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는 이 정복을 정당화하고 현지민을 지지을 얻고자 자신의 정복철학을 담은 '키루스 실린더'를 제작해 현지민에게 열람시켰다.

그는 이 텍스트 상에서 마르둑과 나부 같은 바빌로니아 종교의 대표 신들을 나열하면서, 본인이 마르둑의 예배에 매일 참석하고 있으며, 심지어 마르둑을 숭배한다고까지 적어놨다. 

해당 부분을 읽어보자

키루스 실린더, BC 539년 경

I am Cyrus, king of the world, the great king, the powerful king, king of Babylon, king of Sumer and Akkad, king of the four quarters of the world, son of Cambyses, the great king, king of the city of Anshan, grandson of Cyrus, the great king, king of the city of Anshan; great-grandson of Teispes, the great king, king of the city of Anshan; eternal seed of royalty whose rule Bel and Nabu love, in whose administration they rejoice in their heart. 

[전략] 나는, 세상의 왕 - 위대한 왕 - 권능의 왕 - 바빌론의 왕 -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 세계 사방의 왕이며, 대왕이자 - 안샨의 왕인 캄비세스의 아들이자며,  대왕이자 안샨의 왕인 키루스의 손자이며, 또 대왕이자 안샨의 왕인 테이스페스의 증손이며, 벨 (=마르둑)과 나부께서 내 지배를 사랑해 주고 마음 깊이 내 통치를 즐거워 해주시는 영원히 고귀한 씨로다. / 번역: 최광민

When I made my triumphal entrance into Babylon, I took up my lordly residence in the royal palace with joy and rejoicing; Marduk, the great lord, moved the noble heart of the residents of Babylon to me, while I gave daily attention to his worship. My numerous troops marched peacefully into Babylon. In all Sumer and Akkad I permitted no enemy to enter. The needs of Babylon and of all its cities I gladly attended to. The people of Babylon [and . . . ], and the shameful yoke was removed from them. Their dwellings which had fallen, I restored. I cleared out their ruins. Marduk, the great lord, rejoiced in my pious deeds, and graciously blessed me, Cyrus, the king who worships him, and Cambyses, my own son, and all my troops,  ---- Cyrus Cylinder

승전하여 바빌론에 입성할 때, 나는 기쁜 마음으로 왕궁에 내 거처를 잡았다. 위대한 주님 마르둑은 바빌론 사람들의 마음을 내게 이끌어 주셨고, 나는 그의 예배에 매일 참석하였다. 나의 수많은 병사들은 바빌론으로 평화롭게 입성하였다. 수메르와 아카드 전역에서, 나는 어떤 적들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바빌론과 모든 도시에 필요한 것들을 기쁘게 공급하였다. 바빌론 사람들... 수치스런 멍에를 그들에게서 벗겨주었다. 무너진 그들의 처소를 복구해 주고, 폐허를 치워주었다. 위대한 주님 마르둑은 나의 경건한 행실에 기뻐하시며 은혜롭게도 그를 숭배하는 나와 내 아들 캄비세스와 내 모든 병사들의 복을 빌어주셨다 / 번역: 최광민

[중략] I collected together all of their people and returned them to their settlements, and the gods of the land of Sumer and Akkad which Nabonidus – to the fury of the lord of the gods – had brought into Shuanna, at the command of Marduk, the great lord, I returned them unharmed to their cells, in the sanctuaries that make them happy. May all the gods that I returned to their sanctuaries, every day before Marduk and Nabu, ask for a long life for me, and mention my good deeds, and say to Marduk, my lord, this: “Cyrus, the king who fears you, and Cambyses his son, may their … […] […….].” The population of Babylon call blessings on my kingship, and I have enabled all the lands to live in peace. Every day I copiously supplied [… ge]ese, two ducks and ten pigeons more than the geese, ducks and pigeons […]. I sought out to strengthen the guard on the wall Imgur-Enlil, the great wall of Babylon, and […] the quay of baked brick on the bank of the moat which an earlier king had bu[ilt but not com]pleted, [I …] its work. [… which did not surround the city] outside, which no earlier king had built, his troops, the levee from his land, in/to Shuanna. […] with bitumen and baked brick I built anew, and completed its work. […] great [doors of cedarwood] with copper cladding. I installed all their doors, threshold slabs and door fittings with copper parts. […] I saw within it an inscription of Ashurbanipal, a king who preceded me, […] … […] … [… for] ever.

나는 그들의 백성들을 모두 모아 그들이 살던 곳으로 보내주었고, 나보니두스가 불경스럽게도 슈아나로 가져온 수메르와 아카드의 신들을, 위대한 주님 마르둑의 명령에 따라 손상없이 그들이 원래 있던 성소의 방으로 보내 그들을 기쁘게 했다. 부디 내가 원래의 성소로 돌려보낸 모든 신들께서, 매일 마르둑과 나부 앞에서 나의 장수를 빌어주시고, 나의 선행을 언급하여 내 주님 마르둑에게, "당신을 두려워 하는 왕 키루스와 그의 아들 캄비세스는 ...." [후략]   / 번역: 최광민
 
여기엔 "아후라 마즈다 유일신 사상"은 커녕, 전형적인 다신교의 패턴이 보일 뿐이다. 어찌보면, 바로 이 '다신교'적 맥락에서 키루스가 유대인들을 해방한 것인지도 모른다.

키루스에게 '유일신 아후라마즈다'가 없다면, 그럼 '조로아스터교'는 어디론 간 것일까?

아마도 키루스는 아후라마즈다와 유사한 신을 숭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아후라마즈다는 '짜라투스트라가 가르친 그 아후라마즈다'는 확실히 아니었을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유대교 정경과 문서들, 그리고 그리스 작가들의 글에 여러번 등장하는 키루스는, 정작 조로아스터교 측 문서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종교적 성향이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 다리우스 1세: (왕가의) 신(=바가)들?

다리우스 1세는 키루스의 자손은 아니지만, 키루스의 아버지 대에서 같은 조상을 가진다. 그는 원래 키루스의 아들이자 2대 국왕인 캄비세스 2세의 근위대 출신으로, 캄비세스가 BC 522년에 의문사한 후 캄비세스의 동생 바르디야를 사칭한 인물이 권력을 찬탈하자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제거하고 왕좌에 올랐다.

히브리 성서에는 두명의 다리우스가 나오는데 {에즈라}와 {느헤미야}에서 키루스의 포고령을 확인하여 제2성전의 건축을 재허가한 인물이 바로 다리우스 1세다. 이 성전은 다리우스 1세의 치세 6년인 BC 516년에 완공되었다.

한편, {다니엘}에 등장하는 "메디아/메대 사람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우스"는 정체가 묘하다. 그는 62세에 통치를 시작하고 지방에 120인의 태수를 파견한 것으로 등장하는데, 남겨진 사료 상 이런 다리우스를 특정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대신 히브리어 '아하수에로스'에서 단서를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이 이름에 대응하는 페르시아어 '크샤얄사 (Xšaya-ṛšā)' 는 칼데아/바빌로니아어에서는 '악시얄수'가 되었다가 히브리어 음차로 '아하수에로스'가 되었고, 그리스인들은 이를 잘 알려진 '크세르세스'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우스'는 '크세르세스의 아들 다리우스'가 된다. 물론 어떤 '크세르세스'인지는 여전히 불명이다.

각설하고,

'아후라마즈다'는 다리우스 1세 치세에 조성된 베히스툰 암벽인각문에 등장한다. 

[1.5] Says Darius the king: By the grace of Auramazda I am king; Auramazda gave me the kingdom. --- The Behistun Text, tr. Herbert Cushing Tolman

국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아후라마즈다의 가호로 나는 왕위에 있으며, 아후라마즈다는 나에게 왕국을 주었다. --- 베히스툰 인각,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여기 아후라마즈다 홀로 언급되어 있으니, 그럼 다리우스 1세는 아후라마즈다를 유일신으로 섬겼던 것일까?

다리우스가 건설한, 그러나 그 용도가 신비에 싸인 도시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견된 인각 DPd 에서도 아후라마즈다가 그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A great god is Ahuramazda, the greatest of the gods, who created king Darius and gave him his kingdom. By the favor of Ahuramazda, Darius is king.

아후라마즈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위대하시다 - 그는 다리우스왕을 만드셨고 그에게 왕국을 주셨다. 아후라마즈다의 가호로 다리우스는 왕이 되었다.

King Darius: This country Persia which 
Ahuramazda gave to me is a good country, full of good horses, full of good men. By the favor of Ahuramazda and of me, king Darius, this country fears no other country.

국왕 다리우스가 말한다: 아후라마즈다가 내게 주신 이 나라 페르시아는 훌륭한 나라다. 훌륭한 말과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후라마즈다와 나로 인해,  이 나라는 다른 나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King Darius says: May 
Ahuramazda and the gods of the royal house come to my aid. May Ahuramazda protect this country from invaders, from famine, and from the Lie! May there never be upon this country an army, famine, or the Lie! This I pray as a favor from Ahuramazda and the gods of the royal house. May Ahuramazda and the gods of the royal house do me this favor! --- Persepolis, DPd

국왕 다리우스는 말한다: 
아후라마즈다와 왕가의 신들이 나를 도우시길. 아후라마즈다가 이 나라를 침략자와 기근과 거짓/죄에서 지켜주시길! 이 나라가 전쟁과 기근과 거짓에 휘둘리지 않기를! 이렇게 나는 아후라마즈다와 왕가의 신들의 가호를 기원한다. 부디 아후라마즈다와 왕가의 신들이 나에게 가호를 베푸시길! / 번역: 최광민

여기 사용된 아후라마즈다의 호칭은 "마씨스타 바가남 maθišta bagānām", 즉 "신 (=바가)들 중 가장 위대하신 분 / "이다. '바가남'은 '바가'의 복수다.  또 다리우스는 "아후라마즈다와 "왕가의 신(=바가)들"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바가"는 도대체 어떤 신들을 말하는 걸까?


## 크세르세스 1세: 신(=바가)들과 다이바

다리우스 1세의 아들인 크세르세스 1세가 남긴 인각에도 역시 아후라마즈다가 우선 순위에 놓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들"이 등장한다.

Persepolis, Apadana, North Stairs, Inscription XPb

A great god is Ahuramazda, who created this earth, who created yonder sky, who created man, who created happiness for man, who made Xerxes king, one king of all kings, one commander for all commanders.

이 땅과 저 멀리 하늘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인간의 행복을 창조하시고, 크세르크세스를 왕으로, 왕들의 왕으로, 통치자들의 통치자로 삼으신 아후라마즈다는 위대한 신이시다.

I am Xerxes, the great king, the king of kings, the king of all countries, having all kinds of human beings, king in this earth far and wide, the son of king Darius, the Achaemenid.  

The great king Xerxes says: What was done by me here, and was done by me farther off, I did by the grace of Ahuramazda. May Ahuramazda and the gods protect me, my kingdom, and what I did. --  Persepolis, Inscription Xpb

위대한 왕 크세스세스가 말한다: 내가 지금과 과거에 이룬 것들은 아후라마즈다의 가호로 한 일들이다. 아후라마즈다와 신들이 나와 내 왕국과 내가 이룬 일들을 지켜주시기를. / 번역: 최광민

그런데 크세르세스는 선왕 다리우스 1세보다는 보다 더 적극적인 아후라마즈다 신앙을 가졌던 것 같다. 소위 {다이바 인각문}에서 인용한다.

4. King Xerxes says: when I became king, there was among these countries one that was in rebellion. Ahuramazda bore me aid. By the grace of Ahuramazda I smote that country and put it down in its place.

국왕 크세르세스는 말한다: 내가 왕이 되었을때, 이 제국 가운데 반란을 일으킨 나라가 있었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도우셨다. 아후라마즈다의 은혜로, 나는 그 나라를 응징하고 그곳을 진압했다.

And among these countries there was a place where previously demons (daiva) were worshipped. Afterwards, by the grace of Ahuramazda I destroyed that sanctuary of demons, and I proclaimed: 'The demons shall not be worshipped!' Where previously the demons were worshipped, there I worshipped Ahuramazda at the proper time and in the proper manner. And there was other business that had been done ill. That I made good. That which I did, all I did by the grace of Ahuramazda. Ahuramazda bore me aid until I completed the work.

이 나라들 가운데 예전에 다이바 (= 악마?)들을 섬기던 곳이 있었다. 이후, 아후라마즈다의 은혜로, 나는 다이바들의 신전을 파괴한 후 이렇게 선언했다: "다이바들이 숭배되어서는 않된다!". 이전에 다이바가 섬겨지던 곳에서, 나는 올바른 때 올바른 방법으로 아후라마즈다에게 경배를 드렸다. 그곳에 또 다른 문제들이 있었지만, 나는 모두 바로 잡았다. 내가 한 일들은 모두 아후라마즈다의 가호로 한 것이었다. 아후라마즈다는 내가 이 작업을 완수할 때까지 나를 도우셨다.

You who may live hereafter, if you should think 'Happy may I be when living, and when dead may I be blessed,' have respect for that law which
Ahuramazda has established. Worship Ahuramazda at the proper time and in the proper manner. The man who has respect for that law that Ahuramazda has established and worships Ahuramazda at the proper time and in the proper manner, he both becomes happy while alive and becomes blessed when dead.

너희가 "행복하게 살고, 죽을 때는 축복받"기를 생각한다면, 아후라마즈다께서 세운 율법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적절한 때와 방식으로 아후라마즈다를 경배하라. 아후라마즈다가 제정한 율법을 지키고 아후라마즈다를 적절한 때와 방식으로 경배하는 자, 그는 이생에서는 행복할 것이고 죽어서는 축복을 받게 되리라

5. King Xerxes says: May
Ahuramazda protect me from harm, and my house, and this land. This I ask of Ahuramazda. This may Ahuramazda give to me -- XPh ("Daiva inscription")

국왕 크세르세스는 말한다: 아후라마즈다께서 해악으로부터 나와 내 가문과 이 땅을 보호하시기를 나는 아후라마즈다깨 간구한다. 아후라마즈다께서 그리해 주시길!  / 번역: 최광민

여기서 "다이바"는 무엇을 뜻할까? 사교의 신들? 조로아스터교의 범주를 벗어난 이교의 모든 신들?



## 아르타크세르세스 1세: 신들

페르세폴리스의 왕궁 H에 남겨진 인각에도 다리우스 1세의 손자이자 크세르세스의 아들인 아르타크세르세스 1세는 아후라마즈다와 "다른 신들"을 언급한다.



Who made Artaxerxes king, one king of many, one lord of many. I am Artaxerxes,, son of Xerxes the King, grandson of Darius, an Achaemenian. Artaxerxes the Great King says:

누가 아르타크세르세스를 왕으로, 많은 자들의 왕이자 주인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아르타크세르세스 - 크세르세스의 아들이자 아케메네스 가문 다리우스의 손자다. 대왕 아르타크세르세스는 말한다:

By the favor of Ahuramazda, this palace Xerxes the King, my father, previously (began to build), afterwards I built (to completion)’

아후라마즈다의 가호로, 내 아버지 크세르세스 대왕이 짓기 시작한 이 궁궐을 내가 완공하였다. / 번역: 최광민

역시 "아후라마즈다와 신들"이란 표현이 다시 등장한다.

A great god is Ahuramazda, who created this earth, who created that heaven, who created man, who created happines for man, who made Artaxerxes king, one king for many, one leader for all.

I am Artaxerxes, the great king, the king of kings, the king of countries with all kinds of men, the king in this earth far and wide, the son of king Xerxes, the grandson of Darius, the Achaemenid.

Artaxerxes the great king says:
by the grace of Ahuramazda, my father, king Xerxes, built this palace. After that, I built [it]. May Ahuramazda and the gods preserve me, my kingdom, and what I have built. -- A1Pa

아르탁세스세스 대왕은 말한다: 아후라마즈다의 가호로, 부왕 크세르세스는 이 궁전을 지으셨고 이어서 나도 지었다. 아후라마즈다와 신들이 나와 내 왕국과 내가 지은 것들을 보전해 주시길! / 번역: 최광민




## 아르타크세르세스 2세: 아나히타와 미트라

그런데 다음 대 아르타크세르세스 2세가 남긴 수사의 인각에는 아후라마즈다와 함께 언급되던 "신들", "다른 신들" 혹은 "왕가의 신들" 자리에 아나히타와 미트라가 "그 이름"으로 등장한다. 


수사 인각 A2Sa

Artaxerxes, the great king, the king of kings, the king of all nations, the king of this world, the son of king Darius [II Nothus], Darius the son of king Artaxerxes [I Makrocheir], Artaxerxes the son of king Xerxes, Xerxes the son of king Darius, Darius the son of Hystaspes, the Achaemenid, says:

아르타크세르세스[2세] -  위대한 왕이며, 왕중왕이며, 온 나라들의 왕이며, 이 세계의 왕이며, 아케메네스 가문의 히스타스페스의 아들인 다리우스의 아들인 크세르세스의 아들인 아르타크세르세스[1세]의 아들인 다리우스[2세]의 아들이  말한다

My ancestor Darius [I the Great] made this audience hall [apadana], but during the reign of my grandfather Artaxerxes, it was burnt down; but, by the grace of Ahuramazda, Anahita, and Mithra, I reconstructed this audience hall. May Ahuramazda, Anahita, and Mithra protect me against all evil, and may they never destroy nor damage what I have built.

나의 선조 다리우스[1세]는 이 전당을 건설하셨으나, 내 조부 아르타크세르세스 시절에 화재로 불타 버렸다. 그러나 아후라마즈다와 아나히타와 미트라의 가호로 나는 이 전당을 재건했다. 아후라마즈다, 아나히타, 미트라께서 모든 악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내가 건설한 이것을 파괴하시거나 해를 가하지 않으시길 기원한다. / 번역: 최광민

이와 관련되어 BC 5세기의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역사} 1.131-2 에 재미있는 정보를 실어놓았다. 인용한다.

Πέρσας δὲ οἶδα νόμοισι τοιοῖσιδε χρεωμένους, ἀγάλματα μὲν καὶ νηοὺς καὶ βωμοὺς οὐκ ἐν νόμῳ ποιευμένους ἱδρύεσθαι, ἀλλὰ καὶ τοῖσι ποιεῦσι μωρίην ἐπιφέρουσι, ὡς μὲν ἐμοὶ δοκέειν, ὅτι οὐκ ἀνθρωποφυέας ἐνόμισαν τοὺς θεοὺς κατά περ οἱ Ἕλληνες εἶναι: [2] οἳ δὲ νομίζουσι Διὶ μὲν ἐπὶ τὰ ὑψηλότατα τῶν ὀρέων ἀναβαίνοντες θυσίας ἔρδειν, τὸν κύκλον πάντα τοῦ οὐρανοῦ Δία καλέοντες: θύουσι δὲ ἡλίῳ τε καὶ σελήνῃ καὶ γῇ καὶ πυρὶ καὶ ὕδατι καὶ ἀνέμοισι. [3] τούτοισι μὲν δὴ θύουσι μούνοισι ἀρχῆθεν, ἐπιμεμαθήκασι δὲ καὶ τῇ Οὐρανίῃ θύειν, παρά τε Ἀσσυρίων μαθόντες καὶ Ἀραβίων. καλέουσι δὲ Ἀσσύριοι τὴν Ἀφροδίτην Μύλιττα, Ἀράβιοι δὲ Ἀλιλάτ, Πέρσαι δὲ Μίτραν.

As to the customs of the Persians, I know them to be these. It is not their custom to make and set up statues and temples and altars, but those who do such things they think foolish, because, I suppose, they have never believed the gods to be like men, as the Greeks do; [2] but they call the whole circuit of heaven Zeus, and to him they sacrifice on the highest peaks of the mountains; they sacrifice also to the sun and moon and earth and fire and water and winds. [3] From the beginning, these are the only gods to whom they have ever sacrificed; they learned later to sacrifice to the “heavenly” Aphrodite from the Assyrians and Arabians. She is called by the Assyrians Mylitta, by the Arabians Alilat, by the Persians Mitra.

페르시아인들에 관습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이렇다. 그들은 신상이나 신전이나 제단을 세우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하는 걸 어리석다고 여기는데, 내 생각엔 그리스인들과 달리 그들은 신들을 사람처럼 표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하늘 전체를 '제우스'라 칭하며 산 정상에서 그에게 희생제물을 바친다. 그들은 또 태양과 달과 땅과 불과 물과 바람에게 제물을 바친다. 그들이 신으로서 제물을 바친 건 태초로부터 이것들 밖에 없다. 그들은 후에 앗시리아와 아라비아에서 온 하늘의 아프로디테에게 제물을 바치는 걸 배우게 되었다. 이 여신을 앗시리아인들은 '밀리타', 아라비아인들은 '알릴랏', 그리고 페르시아인들은 '미트라'라 부른다. / 번역: 최광민

여기서 헤로도토스는 '미트라'를 여신인 것으로 착각했는데, 사실 이 자리엔 인도/이란계 민족의 전통신인 '물의 여신' '아나히타'가 들어갔으면 정확했을 것이다. 

몇 세기 뒤의 기록이긴 하지만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보의 {지리}  15.3.13-15,에도 비슷한 기록이 등장한다.

Πέρσαι τοίνυν ἀγάλματα μὲν καὶ βωμοὺς οὐχ ἱδρύονται, θύουσι δ᾽ ἐν ὑψηλῷ τόπῳ τὸν οὐρανὸν ἡγούμενοι Δία:  τιμῶσι δὲ καὶ ἥλιον, ὃν καλοῦσι Μίθρην, καὶ σελήνην καὶ Ἀφροδίτην καὶ πῦρ καὶ γῆν καὶ ἀνέμους καὶ ὕδωρ: θύουσι δ᾽ ἐν καθαρῷ τόπῳ κατευξάμενοι παραστησάμενοι τὸ ἱερεῖον ἐστεμμένον:  μελίσαντος δὲ τοῦ Μάγου τὰ κρέα τοῦ ὑφηγουμένου τὴν ἱερουργίαν ἀπίασι διελόμενοι, τοῖς θεοῖς οὐδὲν ἀπονείμαντες μέρος:  τῆς γὰρ ψυχῆς φασι τοῦ ἱερείου δεῖσθαι τὸν θεόν, ἄλλου δὲ οὐδενός: ὅμως δὲ τοῦ ἐπίπλου τι μικρὸν τιθέασιν, ὡς λέγουσί τινες, ἐπὶ τὸ πῦρ.

The Persians do not erect statues nor altars, but, considering the heaven as Jupiter, sacrifice on a high place. They worship the sun also, whom they call Mithras, the moon, Venus, fire, earth, winds, and water. They sacrifice, having offered up prayers, in a place free from impurities, and present the victim crowned. After the Magus, who directs the sacrifice, has divided the flesh, each goes away with his share, without setting apart any portion to the gods; for the god, they say, requires the soul of the victim, and nothing more. Nevertheless, according to some writers, they lay a small piece of the caul upon the fire.

페르시아인들은 신상이나 제단을 세우지 않고
하늘을 제우스 (= 아후라마즈다 / 필자 주) 로 간주해 높은 곳에서 제물을 마친다. 그들은 '미트라'라 부르는 태양과 달과 금성과 불과 땅과 바람과 물을 숭배한다. 그들은 부정타지 않은 곳을 골라 기도와 함께 제물을 바치며 제물에게 관을 씌운다. 희생의식을 관장하는 마기들이 제물을 몸을 토막내면 각자가 자기 몫을 가져가지만 신들의 몫으로 따로 떼어놓지는 않는데, 신에겐 희생물의 영혼만 필요할 뿐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작가들에 따르면, 대망막(大網膜) 을 조금 떼어내어 불에 태운다고도 한다. / 번역: 최광민

여기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다리우스 1세 때부터 아후라마즈다와 함께 등장하는 "(왕가의) 신들 / 바가남"이란, 조로아스터교 이전부터 인도/이란계 민족들 가운데서 숭상되던 아나히타, 미트라, 아팜 나파트 같은 신격들, 혹은 조로아스터교 체제 안으로 들어온 이교의 선한 영 (신)들을 포함한다. 조로아스터교에 흡수되어 재정의된 후대 {아베스타}식 표현으론 "야자타 Yazata" 를 뜻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유일신 vs. 최고신

이 구도에서 보면, 아후라마즈다는 자신에게서 직접 유출된 화신이랄 수 있는 일곱 영 (~대천사)인  '아메샤 스펜타' 나, 피조된 일종의 중/하급신 ~ 천사에 해당할 '야자타'를 거느린 신들의 세계의 최정점에 있는 "최고신"이지 "유일신"이라고 보기엔 약간의 무리가 있다. 

"피조물인 천사들을 거느린 야훼"나 "아메샤 스펜타와 야자타를 거느린 아후라마즈다"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정적 차이는 우선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첫번째,

"야훼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란 십계명과 "나는 야훼다. 이것이 내 이름이다. 내가 받을 영광을 뉘게 돌리랴? 내가 받을 찬양을 어떤 우상에게 돌리랴?"는 야훼의 선언으로 인해, "야훼와 xxx신의 가호"라든지, "야훼와 미카엘의 가호"라든지, "야훼와 케루빔의 가호" 같은 표현은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불가능하다. 하지만 위에서 보다시피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두번째,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천사숭배는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저주 대상이다. 천사에겐 "신격"이 절대 부여되지 않는다. 천사는 인간과 같은 피조물이자 신의 사환일 뿐이며, 심지어 기독교에서는 구원받은 인간의 '신의 양자'가 되기 때문에 원리적으론 천사보다 지위가 높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로아스터교에서 일곱 아메샤 스펜타와 여러 야자타들은 숭배의 대상으로 인정된다. '야자티'란 단어 자체가 "숭배받는 자"란 뜻이다. 다만 아후라마즈다에게 종속되어 있을 뿐이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유물에서 아후라마즈다는 형상으로 묘사되지 않고, 대신 군주들이 대동한 백마가 끄는 빈 전차로 표상되었다. 군주의 정복에 함께 한다는 의미다.  BC 5세기 부터 제국 서부에 아후라마즈다의 형상이 등장했고, 아르타크세르세스 2세 시절인 BC 365년엔 리디아 태수가 아후라마즈다의 상을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후라마즈다가 본격적으로 인간의 형태로 묘사되기 시작하는 것은 파르티아 왕국 (BC 247 - 224) 시절이고, AD 3세기 이후 사산 왕조 시절이 되면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석상이 제작되게 된다.

유대교에서는 설령 숭배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야훼의 도상은 제작이 금지되어 있다. 유일하게 형상으로 제작이 허용된 것은 지성소 성궤를 지키는 케루빔의 형상이었다 (+ 모세의 구리뱀).

제 4장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의 "신관"을 유대교의 "신관" 및 "세계관"과 직접 비교해 보겠다.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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