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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도마 복음서} 114절에 대한 페미니즘적 윤색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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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20-12-20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모든 글과 번역문 들에 대해 (1) 복제-배포, (2)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 (3) 화면캡처를 금하며, (4) 인용 시 글의 URL 주소 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 최광민] {도마 복음서} 114절에 대한 페미니즘적 윤색 문제

순서
  1. 막달라 마리아
  2. {도마 복음서} 로기아 #114: "남자" vs. "온전한 인간"
  3. "너" vs. "너희들, 남자"
  4. 맺음말


나그 함마디 사본, (일명) {토마스 복음서} 


# 막달라 마리아

한겨레 신문에 연재되는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이란 시리즈물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12월 12일자 {창녀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의 질투가 만든 오명}이란 글을 읽고 몇가지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약간 촛점이 다르긴 해도) 나도 2004년에 관련된 글을 하나 쓴 적이 있었다.



# {도마/토마스 복음서} 어록 #114: "남자" vs "온전한 인간"

이 글에 보면, 이유리 작가는 교회사학자이자 여성신학자/목사인 감리교신학대학 하희정 (외래)교수란 분이 2019년 출판한 책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에서 인용된 듯한 위경{도마/토마스 복음서}의 마지막  (예수)어록 (로기아)인 #114을 아래와 같이 옮긴다. 이 어록이 정말 예수의 어록 (로기아)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내가 붉은 색으로 하이라이트한 부분이 어록 #114에 해당한다. 

"....신학자 하희정의 책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에 따르면 1945년 12월 이집트 나그함마디 사막에서 문서 뭉치가 하나 발견된다......<나그함마디 문서> 중 토마스의 복음서 114장은 이렇게 전한다. "시몬 베드로가 여자는 구원에 맞지 않으니 마리아를 내보내자고 하자, 예수가 답하길 나는 그녀를 인도해 온전한 사람(안드로포스 Anthropos)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너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숨결이 될 것이로되 온전한 사람이 된 여자는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 ---- 이유진, {‘창녀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의 질투가 만든 오명}

내가 아는 위경 {도마 복음서}의 구절과 사뭇 달라 그 부분만 검색을 해보니 카톨릭 진보매체인 [지금 여기] 2012년 4월 17일 자 기사인 {부활을 알리는 첫 사도, 막달라 마리아}에도 역시 동일한 인용문이 등장한다. 
 

원문: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06

<토마스 복음서>를 보면 여성에 대해 혐오적이었던 베드로가 여자인 마리아를 제자로 삼지말자고 예수님께 말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여성관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평등선언을 하신다. “내가 그녀를 ‘안드로포스’ 즉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 것이다”라고 하신다. 베드로의 모습에서 여자를 불완전한 인간으로 생각했던 당시의 상황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를 성의 구분 없이 당신의 제자로 받아들이고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기회를 주고자 하신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 {부활을 알리는 첫 사도, 막달라 마리아}


이 기사에는 "하희정"이란 이름은 등장하지 않지만, 이 기사가 나오기 몇 달전인 2012년 1월 {기독교 사상}에 하희정 교수가 기고한 {막달라 마리아와 사라진 그녀들}이란 글에 바로 이 내용이 등장한다. 따라서 2019년에 출판된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이란 책에 나온 (+ 이유진 작가가 인용한) 해당 구절의 원 출처는 아마도 바로 이 {기독교 사상}에 실린 하희정 교수가 직접 인용한  어록 #114 인 듯 하다. 

"시몬 베드로가 여자는 구원에 맞지 않으니 마리아를 내보내자고 하자, 예수가 답하길, 나는 그녀를 인도해 온전한 사람 (안드로포스)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너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숨결이 될것이로되 온전한 사람이 된 여자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114장)  --- 하희정, {기독교 사상} 2012년 1월호, {막달라 마리아와 사라진 '그녀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예전에 {도마 복음서}를 여러 종의 다른 번역과 원문대조로 읽어본 나로서는 "남자/남성"이란 단어가 와야 할 자리에 왜 "온전한 사람/안드로포스"을 사용했는지 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당 어록 #114의 꼽트어 원문과 직역은 이렇다.



...Simon Peter said to them: “Let Mary go forth from among us, for women are not worthy of the life. “ Jesus said: “Behold, I shall lead her, that I may make her male, in order that she also may become a living spirit like you males. For every woman who makes herself male shall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tr. Michael W. Grondin

…시몬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에게) 말했다.“여자는 영생을 누릴 자격이 없으니, (막달라 마리아를) 우리 가운데서 내보내자.”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보아라, 그녀 또한 너희 남자들처럼 살아있는 영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막달라) 마리아를 이끌어 그를 남성으로 만들것이다. 자신을 남성으로 만드는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남성/남자'에 해당하는 꼽트어는 ϩⲟⲟⲩⲧ (호우트)다. "남자/남성" 혹은 "남편"을 말하는 단어다. 원문에는 남성/여성이 아닌 중성적인 "온전한 인간" 혹은 "온전한" 같은 의미의 단어나 구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희정 교수가 사용한 '온전한 인간'에서 '인간 human'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ἄνθρωπος (안트로포스)에 대응하는 꼽트어는 ⲣⲱⲙⲉ (로메)인데 이 {도마 복음서} 어록 #114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혹시 꼽트어 {도마 복음서}가 아닌 그리스어 사본 파편에 '온전한 인간/안트로포스'가 등장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해당 어록 #114은 오직 사히딕 꼽트어 사본에만 보존되어 있다. 따라서 저 자리에 그리스어 "안트로포스"가 올리는 없다. 그냥 '남자/남성 ϩⲟⲟⲩⲧ' 이다. 

그럼 왜 원문의 "남자/남성"이 하희정 교수의 글에서는 "온전한 인간 (안드로포스)"이란 말로 치환된 것일까? 

'안트로포스'는 보편교회의 {복음서}에서는 "사람"에 대한 통칭, 혹은 예수가 자신을 "사람 (=ἀνθρώπου)의 아들"이라 호칭할 때 사용된 그리스어 "ὁ υἱὸς τοὺ ἀνθρώπου"에 사용되다시피 "사람"이다.  그러나 그노시스들은 이 단어에 신비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첫번째 인간" 혹은 "원형적 인간"이란 의미로 사용했다 (이럴 경우, 예수가 자신을 "안트로포스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복음서}에서의 의미와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노시스들은 이런 '안트로포스'를 아담에 빗대서 '아다마스' 혹은 '게르다마스'라고도 불렀다.

사실 하희정 교수의 단어치환은 매우 의도적이다. 

1980년대 이후, 특별히 {다빈치 코드} 등장 전후로 '소위 정통파 기독교 보다는 그노시스적 기독교가 원래 예수의 가르침에 더 가깝다'는 식의 주장이 우후죽순 유행을 타던 시절 (가령, 도올 김용옥), 페미니즘에 강조점을 둔 여성신학/종교학자들도 "그노시스 전통에서 초대 기독교 이후 억압/소멸된 여성주의 전통을 복원" 해내는 작업이 또한 유행이었는데 (가령, 일레인 페이절스) 이때 이 {도마 복음서}의 마지막 구절인 어록 #114가 큰 걸림돌이 되었다.

원문 상에서 보면 "하늘나라에 여자가 들어가"기 위해 그 여자들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매우 "마초적"인 예수의 발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구원을 위한 성변화' 패턴은 다른 여러 그노시스 문건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친-그노시스 페미니스트들이 그노시스 문건들에서 자신들이 생각한 페미니즘을 유도하기가 곤란해진 것이다. 사실 현대 페미니즘 관점에서 본다면 어록 #114의 예수는 "페미니스트"이긴 커녕 어쩌면 (마빈 메이어의 진술처럼) "여성혐오자 misogynist"로 불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쉬운 우회법은, 캐런 킹 등이 하던 방식으로 이 어록 #114 및 이와 유사한 그노시스 문서들의 언어들은 남성우월주의가 승리한 후대의 삽입이라고 보는 트릭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학계에서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한다.  

"그노시스적 기독교가 참 기독교였다"는 명제를 주장하기 위해 1970년대 부터 {도마 복음서}를 매우 애용했던 일레인 페이절스 (Elaine Pagels)의 책 {The Gnostic Gospels 그노시스 복음서들}을 읽어보면 #114의 딜레마를 우회하기 위한 페이절스의 당혹감이 여기저기 묻어난다.

“Strange as it sounds, this simply states what religious rhetoric assumes: that the men form the legitimate body of the community, while women are allowed to participate only when they assimilate themselves to men.......Other gnostic sources reflect the assumption that the status of a man is superior to that of a woman…. Some gnostics, reasoning that as man surpasses woman in ordinary existence, so the divine surpasses the human, transform the terms into metaphor. The puzzling saying attributed to Jesus in the Gospel of Thomas…may be taken symbolically: what is merely human (therefore female) must be transformed into what is divine (the “living spirit” the male).  --- Elaine Pagels, {The Gnostic Gospels}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는  남성들은 공동체의 합법적 구성원을 이루고 여성들은 남성들에 순응할 때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여진다는 종교적 수사법을 단순히 취한다...(중략)...다른 그노시스 자료를 보면 남성의 지위가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설정이 반영되어 있고....(중략)... 어떤 그노시스주의자들은 존재적 질서에 있어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방식으로 신이 인간보다 상위에 있다고 사유한다. {도마 복음서}에서 예수의 말로 등장하는 그 수수께끼 같은 말 (로기아 #114 / 최광민 주)도 아마 '단순한 인간스러움' (그래서 '여성적')은 '신적인 것' (살아있는 영인 '남성')으로 변모되어야 한다는 식의 상징적인 말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일레인 페이절스, {그노시스 복음서들} / 번역: 최광민

이런 접근법은 #114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을 '남자'와 '여자'란 본래적 의미가 아니라, 그저 '우월'과 '열등'을 상징하는 '상징적 수사법'이란 식으로 해석함으로써 문제를 우회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페이절스의 설명 역시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도마 복음서}의 예수 역시 남성과 여성을 위계적 순서로 보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를 뿐이므로, 이 {도마 복음서}의 예수에게서 어떤 (현대적) 페미니스트적인 혁명적 면모를 짚어내기는 곤란하다. 

또 다른 그노시스 전문가인 마빈 메이어는 이런 '상징주의'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Further, within gnostic texts this theme of gender transformation, with the female becoming male, occurs quite frequently…. In these texts the female is typically depreciated—a better word may be demonized—and comes to symbolize perishability, corporeality, and all that characterizes this mortal world, while the male typically is glorified and comes to symbolize imperishability, incorporeality, and all that characterizes God and God’s world. Mary becomes male, the female becomes male, we all become male symbolically when what is physical and earthly is transformed into what is spiritual and heavenly. This use of gender categories may be offensive to our modern sensibilities, but what is intended in the Gospel of Thomas, in my interpretation, is a message of liberation. .... This statement of transformation, put in strikingly misogynist terms, most likely uses common sexist symbolism from antiquity to depict what is heavenly and imperishable as male and what is earthly and perishable as female ---  Marvin Meyer, “Gospel of Thomas Saying 114 Revisited,” in Secret Gospels: Essays on Thomas and the Secret Gospel of Mark (Harrisburg, P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3), 97.

더 나아가, 그노시스 문서들 중 여성성의 남성화 같은 성변화의 주제는 매우 종종 발견된다....이 문서들에서 여성은 전형적으로 '평가절하' 되고 (아마도 더 나은 단어는 '악마화'), 부질없고, 육적이며, 이 죽을 세계의 모든 특징들을 상징한다. 반면 남성은 전형적으로 영광스럽고, 불멸성, 초월성, 그리고 신과 신의 세계를 반영하는 특징들을 상징한다. 물질적이고 속적인 것이 영적이고 성스런 것으로 변모할 때, (막달라) 마리아와 여성성, 그리고 우리 모두 상징적으로 '남성'으로 변모한다.  이런 성적인 범주의 사용은 현대적 감성에서는 거슬릴 수 있지만, 내 해석에 따르자면 {도마 복음서}가 의도한 바는 해방의 메시지이다. ....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 필자 주) 변모에 대한 이 진술은 충격적인 여성혐오적 용어를 취하며, 남성성은 성스럽고 불멸이지만 여성성은 속적이고 유한하다는 식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흔한 성차별주의적 상징을 거의 확실히 사용한다. --- 마빈 메이어, {도마 복음서 어록 #114 재고찰" / 번역: 최광민

반면, #114를 보다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해당 내용을 역사적 맥락에서 정직하게 해석하는게 옳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To be sure, the saying itself makes its point [about the acceptance of women in the group] in a way that assumes the androcentric bias of its day. Women may be part of this group only if they negate what is female and “unworthy” and “make themselves male.” -- Stephen J. Patterson, The Gospel of Thomas and Jesus, Foundations and Facets (Sonoma, CA: Polebridge Press, 1993)

확실히, 이 어록은 그 자체로 그 시대의 남성중심적으로 편향된 방식으로 여성이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마도 여성들은 여성적이고 '무가치한 것'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남성으로 변모시킨다'는 조건으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 --- 스티븐 패터슨 , {도마 복음서}와 예수} / 번역: 최광민

결국 {도마 복음서}에서 추출할 수 있는 소위 '여성주의'란 사실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페미니즘'도 아니거니와, 더 나아가 페미니스트들 의해 가부장주의라고 비난 받아온 (실제 예수는 별도로 하더라도) '정통파 기독교'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it must be emphasized that in logion 114 the goal is not achieved by the removal of gender differentiation but by the transformation of female into male. Thus, in logion 114 salvation is defined by employing the patriarchal language patterns of the contemporary culture.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it is not only Peter’s statement which displays this attitude but also Jesus’ response. Although advocating Mary’s and all women’s right to attain salvation in terms equal to their male colleagues within the circle of disciples and the kingdom, Jesus does so by using language which devalues women. -- Antti Marjanen, “Women Disciples in the Gospel of Thomas,” in Thomas at the Crossroads: Essays on the Gospel of Thomas, ed. Risto Uro, Studies of the New Testament and Its World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1998), 102 (89-106). 

#114의 의도는 성별 간 차이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을 남성으로 변화시키는데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록 #114에서의 '구원'은 당대의 문화의 가부장적 언어패턴을 사용해서 정의된다. 이런 입장이 다만 베드로의 진술 뿐 아니라 예수의 반응에서도 등장한다는 점이 증요하다. 제자와 왕국의 일원으로서 비록 마리아와 여인들이 구원받을 권리가 남성들과 동등하다고 예수가 말하지만,  그는 여성을 비하하는 언어를 사용해 그렇게 말한다. --- 안티 마르자넨, {도마복음서 속 여성 제자들} / 번역: 최광민 

위에 언급한 그노시스 연구자들의 입장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원문에 등장하는 "남성"을 다른 단어로 바꾸려고 시도한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남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하희정 교수의 '인용'에서는 아무런 맥락 설명 없이 '남성'을 페이절스나 메이어의 "상징주의 관점"으로 의역하여 "온전한 인간 (안드로포스)"이란 단어로 치환해 버린 것이다. 




# "너" vs. "너희들, 남자" 

하희정 교수가 써온 글들을 종합해 볼때, 특별히 '온전한 인간'이란 표현을 해당 문맥에서 선호하는 듯 싶다. 

그럼 도대체 "온전한 인간 (안드로포스)"란 표현은 어디서 왔을까?

가령,  하희정 교수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위경{도마 복음서}에서는 '남성/남자'를 '온전한 사람(안드로포스)'로 바꿨고,

"<도마복음서>에서 베드로는 예수 앞에서 노골적으로 마리아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시몬 베드로가 여자는 구원에 맞지 않으니 마리아를 내보내자고 하자, 예수가 답하길 나는 그녀를 인도해 온전한 사람(안드로포스)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너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숨결이 될것이로되 온전한 사람이 된 여자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114장) --- 하희정, {기독교 사상} 2012년 1월호, {막달라 마리아와 사라진 '그녀들'}

하희정 교수가 유학 시절 처음 접해 읽으며 크게 감명 받은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 위경 {마리아 복음서}에 '온전한 인간 (안드로포스)'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마리아가 눈물을 훔치며 그의 말에 답하길, 베드로 형제여 무슨 생각을 하나요? 제 혼자 상상해서 환상을 지어내는 거란 말인가요? 어찌 주를 두고 거짓을 말한단 말입니까? 그때 레위가 가로되 베드로 형제, 성격이 불 같더니 우리 원수를 닮아 여자를 거부하고자 함인가요? 주께서 그녀를 귀히 여기셨다면 거부해선 안 됩니다. 그녀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사 그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속죄하고 온전한 인간(안드로포스)으로 태어나 주를 우리 안에 온전히 거하게 합시다. 명하신 대로 성숙한 자세로 나아가 널리 복음을 전파합시다. 그 분이 증거하신 이상의 율법을 만들지 맙시다. 레위가 말을 마치자 사도들이 일제히 일어나 복음을 전파하러 나섰다.(18-19쪽) --- 하희정, {기독교 사상} 2012년 1월호, {막달라 마리아와 사라진 '그녀들'}

이 부분의 위경 {마리아 복음서} 꼽트어 원문은 이렇다. 

http://gospel-thomas.net/MaryInterlinear.pdf

"…But if the Savior made her worthy, who are you indeed to reject her? Surely the Savior knows her very well. That is why He loved her more than us. Rather let us be ashamed and put on the perfect Man, and separate as He commanded us and preach the gospel, not laying down any other rule or other law beyond what the Savior said…" -- tr. Gnostic Society Library

…만약 주님이 그녀를 자격있는 존재로 만드신거라면 그녀를 거부하는 (베드로)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 주님은 그녀를 분명 잘 아실거네. 그게 주님이 그녀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신 이유겠지. 오히려 우리는 이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 이제 완전한 사람을 덧입어 주님이 명령하신 것처럼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이 정하지 않은 어떤 규칙이냐 율법도 강제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여기서 사람 (human) 에 대응된 꼽트어 단어는 ⲣⲱⲙⲉ (로메)며, 여기 대응하는 그리스어 단어가 ἄνθρωπος (안트로포스)다. 그리고 "온/완전한" (perfect)에 상응하는 꼽트어는 ⲧⲉⲗⲓⲟⲥ (테리오스)다. 그리스어로 하면 τέλειος άνθρωπος (테레이오스 안트로포스) 에 해당할 것이다 (꼽트어에는 그리스어 차용어가 많다). 

따라서 내 판단으론 {도마 복음서} #114의 "남성"을 이 {마리아 복음서}에 등장하는 꼽트어 표현인 "완/온전한 사람"으로 치환한 것이다. 얼핏보면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장구조를 비교해 보면, (페이절스나 메이어가 제시한 추론에 따라) "남성"을 "온전한 인간"과 동일하게 보려는 그런 시도는 타당하지 않다.

왜 그럴까?



위경 {도마 복음서} 어록 #114 의 원문을 다시 보자. 



...Simon Peter said to them: “Let Mary go forth from among us, for women are not worthy of the life. “ Jesus said: “Behold, I shall lead her, that I may make her male, in order that she also may become a living spirit like you males. For every woman who makes herself male shall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tr. Michael W. Grondin

…시몬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에게) 말했다.“여자는 영생을 누릴 자격이 없으니, (막달라 마리아를) 우리 가운데서 내보내자.”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보아라, 그녀 또한 너희들 남자처럼 살아있는 영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막달라) 마리아를 이끌어 그를 남성으로 만들것이다. 자신을 남성으로 만드는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여기서 예수가 말하는 대상은 꼽트어 원문에서 "너희들, 남자"에 해당하는 단어인 "ⲙⲙⲫⲧⲛ (너희들) ⲛϩⲟⲟⲩⲧ`(남자)"이며, "너희들"에 해당하는 단어에서 "ⲧⲛ"은 복수를 뜻한다. 즉, 예수는 베드로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있던 모든 남자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따라서 "남자"로서 이미 "생령 / 살아있는 영"이며, 앞선 구절의 베드로의 말을 보면, 바로 이 '남자'들만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

게다가 하희정 교수는 #114 에서 예수의 표현을 그냥 "너와 마찬가지로"라고 "단수"로 적으면서 원문의 "남자(들)"을 아울러 생략했다. 왜 "남자(들)"에 해당하는 단어는 생략한 것인가?

하희정 교수 식으로 "남자 = 온전한 인간"으로 받으면, 예수의 남자 제자들은 이미 "온전한 인간들"이 되는 동시에 해석 상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걸 하희정 교수가 알았기 때문일걸까? (몰랐다면 더 큰 문제다)

왜? 다시 하희정 교수의 독법을 보자.

"시몬 베드로가 여자는 구원에 맞지 않으니 마리아를 내보내자고 하자, 예수가 답하길, 나는 그녀를 인도해 온전한 사람 (안드로포스)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너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숨결이 될것이로되 온전한 사람이 된 여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114장)  --- 하희정, {기독교 사상} 2012년 1월호, {막달라 마리아와 사라진 '그녀들'}

여기서의 "너와 마찬가지로"란 하희정 교수의 독법을 꼽트어 원문대로 "너희들, 남자"로 복원한 해 보자.

"시몬 베드로가 여자는 구원에 맞지 않으니 마리아를 내보내자고 하자, 예수가 답하길, 나는 그녀를 인도해 온전한 사람 (안드로포스)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너희들 남자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숨결이 될것이로되 온전한 사람이 된 여자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114장)  

마지막 하희정 교수가 한 식으로 꼽트어 "남자/남성"를 "온전한 인간 (안드로포스)"로 치환하게 되면 {도마 복음서} 어록 #114는 하희정 교수 식으론 바로 이렇게 읽혀져야 한다.

"시몬 베드로가 여자는 구원에 맞지 않으니 마리아를 내보내자고 하자, 예수가 답하길, 나는 그녀를 인도해 온전한 사람 (안드로포스)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너희들 온전한 사람 (안드로포스)들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숨결이 될것이로되 온전한 사람이 된 여자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114장)  



그런데 이렇게 읽게 되면, 막달라 마리아의 영적상태는 예수의 남자 제자들의 현재 상태보다 열등하다는 점을 예수 본인이 확인하는 셈이 될 뿐더러 (사실 원문 자체가 이미 그렇게 말한다.), 이 남자 제자들은 그냥 '생령 / 살아있는 영' 정도가 아니라 이미 '온전한 인간'들이다. 

아마도 이건 하희정 교수가 원했던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 사용된 두번의 "남자" 중 앞의 남자를 생략한 것은 두  자신의 주장/이해에 맞추기 위한 의도적 생략으로 보인다. 

이런 모순을 피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해법은, {도마 복음서}의 이 두 "남자/남성"이란 표현을 "온전한 인간 (안드로포스)"가 아닌 그냥 "남자/남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럼 맥락 상 충돌이 사라진다. 

반면, 위경 {마리아 복음서}에서 레위/마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게 주님이 그녀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신 이유겠지. 오히려 우리는 이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 이제 완전한 사람을 덧입어....

이 장면 바로 앞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승화된 인간에 대한 예수의 심오한 가르침을 다른 남자 제자들보다도 더 깊이 이해하고 있었는데 베드로가 화가 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맥락에서는 오히려 막달라 마리아가 '완/온전한 인간'이고 이하 남자 제자들은 아직 '완/온전한 인간'이 아닌 셈이다. 그러기에 레위/마태는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모든 남자 제자 (=우리)더러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자"고 권하는 것이다. 이게 맥락이다.

이렇게 {도마 복음서} 속의 남자 제자들과 {마리아 복음서} 속의 남자 제자들의 영적 상태는 서로 상이하기 때문에, 따라서 {마리아 복음서}에 등장한 '완전한 사람'이란 용어를 {도마 복음서}의 '남성'과 모순 없이는 하희정 교수가 한 식으로 치환할 수 없다. 

예수의 남자 제자들과 막달라 마리아. 혹은 남자와 여자를 보는 두 문서의 컨텍스트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마 복음서}와 {마리아 복음서}는 이런 식으로 짜깁기 되어서는 않된다.




# 맺음말

나는 하희정 교수가 하고 싶었던 말을 충분히 이해하며 문제의식도 상당부분 공유한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이런 의도적 단어치환이 하희정 교수 자신이 취한 한가지 (상징주의적) 해석에 바탕해 독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없이 임의적으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변형된 문구가 마치 '원문인용'의 형식인 듯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실수로 그랬다면 "정확"하지 못했던 것이고, 의도적으로 그랬다면 "정직"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런 맥락을 모른 채, 하희정 교수의 글이나 책, 혹은 거기에 바탕을 둔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하희정 교수가 "인용"한 {도마 복음서}의 꼽트어 원문이 원래부터 저럴 것으로 착각할 것이 분명하며 그런 식으로 계속 유포될 것이다. 

사실 {한겨레 신문}이나 {지금 여기}에 해당 인용문을 인용해 기사들을 쓴 필자들 역시 그 책/글을 그렇게 읽고 이해한 독자들이 아니었던가.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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