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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예수 vs. 예수 #09: 산헤드린 : 예수와 야고보의 처형에 관련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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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5-10-05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산헤드린 : 예수와 야고보의 처형에 관련된 경우  

순서
  1. 대-산헤드린
  2. 게루시아: 정치적 산헤드린
  3. 베트-딘: 종교적 산헤드린
  4. 예수의 경우
  5. 야고보의 경우

산헤드린 (Wikimedia Commons)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복음서}을 보면 산헤드린이 예수를 기소한 후 로마 측에 넘겨 죽인 것으로 묘사된 반면, 요세푸스의 기록에 나오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죽음에 개입한 산헤드린은 로마의 개입없이 직접 야고보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이 불일치는 {복음서}의 결정적 오류가 아닌가?

타당한 질문이다. 그럼 이제 이 질문에 대해 답해보자.

이 글의 주요 근거자료는 {The Jewish Encyclopedia}와 산헤드린을 다루는 종교자료 중 하나인 {바빌로니아 탈무드/미쉬나} 중 "산헤드린"편으로, 후자의 영어번역 전문은 아래서 열람할 수 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 미쉬나}, "산헤드린"
https://www.archive.org/stream/TheBabylonianTalmudcompleteSoncinoEnglishTranslation/The-Babylonian-Talmud-Complete-Soncino-English-Translation
http://www.come-and-hear.com/sanhedrin/sanhedrin_0.html

아울러, AD 1세기의 유대아의 시대상을 가장 세부적으로 알려주는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을 함께 인용하겠다.




1. 대-산헤드린

먼저 산헤드린(요세푸스의 그리스어 표기 συνέδριον)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xiv. 5, § 4 항목에 따르면, 산헤드린은 BC 57년 시리아 총독 가비니우스가 이전 유다왕국을 해체시키고, 유대아 지역을 5조각으로 분할하면서, 각 지역의 최고의회기관으로 설립한 것이 시초다. 흔히 생각되는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은 원래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에 초점을 맞춰보자.

우선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산헤드린"편에 등장하는 "산헤드린 게돌라 아요세베트 베-리쉬캇 하-가지트/Sanhedrin Gedolah hayoshebet be-lishkat ha-gazit" 가 있다. 보통 대-산헤드린으로 번역되는데, 직역하면 "거칠게 다듬은 돌로 만든 홀에서 모이는 대-산헤드린"이란 뜻이다. (Sifra, Wayiḳra, ed. Weiss, 19a). 이 산헤드린은 주로 종교엘리트귀족인 제사장과 사두개/사두가이파들이 장악한 조직이었고, 주로 성전의 제사와 성전 관련 율법에 대한 회의와 의결이 이뤄졌다. (Sanh. xi. 2-4)


2. 정치적 산헤드린: 게루시아

한편, "게돌라"없이 그냥 산헤드린으로만 불리는 조직도 등장하는데 " (Yer. Sanh. i. 19c), 이 조직은 주로 정치적 판단과 관계있고, 중범처벌 같은 사법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조직은 훨씬 선대인 마카비 시대의 조직인 게루시아(γερουσία; "Ant." xii. 3, § 3)와 연관이 있으며 일종의 상원과 같은 의미다. 이 게루시아는 산헤드린(συνέδριον) 혹은 의회를 뜻하는 βουλή 와 혼용해 쓰였다. 대-산헤드린과 마찬가지로 70 혹은 71인의 의원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10인 위원회 (οὶ δέκα πρῶτο)가 최종권위를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귀족과 종교엘리트로 구성된 이 산헤드린에서 대체로 바리새파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보통 대제사장이 "나시"라 불리는 대표를 맡았다. 이 산헤드린은 로마와 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이며,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소집과 운용에 있어 로마총독(Procurator)의 통제를 받았다.


3. 종교적 산헤드린 : 베트-딘

요세푸스에 따르면, 사제왕인 요한 힐카누스 ("Ant." xvi. 11, § 1)는 사두개인 만으로 배타적으로 구성된 산헤드린/베트-딘을 구성했다 (Sanh. 52b). 그러나 BC 1세기 전반 부 알렉산드로스 얀네우스 통치 하에서, 시므온 쉐타는 베트-딘에서 사두개파를 몰아내고 바리새파로만 구성된 새로운 베트-딘을 성립시켰다 (Sanh. i. 5; Sheb. ii. 2). 랍비 힐렐 이후, 위원장은 힐렐의 후손에게 대체로 이어졌다. 이 산헤드린에서는 일반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율법에 대한 해석문제 (Sanh. 88b) 및 비정통적인 율법해석을 퍼트리는 율법사에 대한 판결을 주로 담당했다 (Sanh. xi. 2-4; see Elder, Rebellious).




4. 예수의 경우

요세푸스의 자료와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기록만 보았을 때, 예수와 (아마도 훗날) 바울을 취조한 기관의 성격은 "정치적 산헤드린"에 해당한다. 예수의 경우, (1) 이 산헤드린은 대제사장의 주도 하에 있었고, (2) 바리새파가 일부 참석했기 때문이다. 또 취조 중에 대제사장이 속한 종교엘리트 및 귀족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두 가지 기소사항이 주로 다뤄졌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1) "성전파괴"에 대한 예수의 발언이고, 다른 하나는 (2) "유대인의 왕" 혹은 "신의 아들"을 참칭했는가의 문제였다. {복음서}을 보면 예수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대제사장이 "예수가 죽어줌으로써 민족이 살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데, 이것은 정치적 산헤드린이 로마정부와 맺고 있는 관계를 암시할 수 있다.

사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간 산헤드린 의원들은 "우리에게는 사람을 사형에 처할 권한이 없다"라고 말하며, 빌라도에게 처형을 일임한다. 이 부분은 묘연하다. {복음서}에 보면 일반 유대인들은 간음한 여인을 (아마도 지역의 율법사의 판단에 따라) 즉결심판할 수 있었다. 그럼 평민도 아닌 귀족들인 산헤드린 의원에게 사형집행권이 없는지가 분명히 설명되지 않는다. 혹자는 {복음서}의 오류라고 주장하지만, 혹자는 예수의 사형을 결정한 것이 "산헤드린의 의결"인 한 로마총독에게 최종결정권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것이다.

산헤드린 소집 시 빌라도의 허가가 있었는지는 {복음서}나 요세푸스의 기록에 기술된 내용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매우 타당한 정황이다.




5. 야고보의 경우

예수의 형제 야고보에 대한 산헤드린의 사법살인을 다룬 요세푸스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이 사건은 예수가 처형된 것으로 여겨지는 AD 33년으부터 30년 가량이 지난 AD 62년에 일어났다.


Flavius Josephus, {Antiquities of Jews} Book 20: chapter 9
https://www.archive.org/stream/worksofflaviusjo1873jose

1. AND now Caesar, upon hearing the death of Festus, sent Albinus into Judea, as procurator. But the king deprived Joseph of the high priesthood, and bestowed the succession to that dignity on the son of Ananus, who was also himself called Ananus. Now the report goes that this eldest Ananus proved a most fortunate man; for he had five sons who had all performed the office of a high priest to God, and who had himself enjoyed that dignity a long time formerly, which had never happened to any other of our high priests. But this younger Ananus, who, as we have told you already, took the high priesthood, was a bold man in his temper, and very insolent; he was also of the sect of the Sadducees, who are very rigid in judging offenders, above all the rest of the Jews, as we have already observed; when, therefore, Ananus was of this disposition, he thought he had now a proper opportunity [to exercise his authority]. Festus was now dead, and Albinus was but upon the road; so he assembled the sanhedrin of judges, and brought before them the brother of Jesus, who was called Christ, whose name was James, and some others, [or, some of his companions]; and when he had formed an accusation against them as breakers of the law, he delivered them to be stoned: but as for those who seemed the most equitable of the citizens, and such as were the most uneasy at the breach of the laws, they disliked what was done; they also sent to the king [Agrippa], desiring him to send to Ananus that he should act so no more, for that what he had already done was not to be justified; nay, some of them went also to meet Albinus, as he was upon his journey from Alexandria, and informed him that it was not lawful for Ananus to assemble a sanhedrin without his consent. (24) Whereupon Albinus complied with what they said, and wrote in anger to Ananus, and threatened that he would bring him to punishment for what he had done; on which king Agrippa took the high priesthood from him, when he had ruled but three months, and made Jesus, the son of Damneus, high priest.

요세푸스의 이 기록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 사건이 벌어진 시점이다. 사건의 전말을 요약정리하면 이렇다.

  1. AD 62년, 때는 로마총독(Procurator)였던 페스투스가 사망하자 로마황제 네로가 그 후임으로 알비누스를 유대아에 파견했지만 이집트에서 아직 예루살렘에 도착하지 않은 시점이다.
  2. 아버지와 형제들에 이어 대제사장직을 독식하게된 신임 대제사장 안나누스는 이 정치적 공백기를 십분활용해 산헤드린 (synhedion kriton)을 소집하고, 야고보와 관련자를 율법파괴행위로 기소해 돌로 쳐죽였다.
  3. 이 재판절차가 공정하지 않다고 여긴 유대인들은 아그리파왕과 안나누스를 만나 항의했고, 일부는 알렉산드리아로부터 부임해오는 중인 신임총독 알비누스를 만나 총독의 동의없이 소집된 산헤드린이 불법 임을 주지시켰다.
  4. 분개한 알비누스는 아그리파왕을 통해 안나누스를 해임시키고 대신 담네우스의 아들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임명시켰다.

요세푸스의 진술대로, 안나누스가 야고보를 죽이기 위해 소집한 "그 산헤드린"을 소집하려면 로마총독의 허가가 필요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예수의 처형을 결정한 산헤드린의 소집이 빌라도의 재가를 받은 것인지에 대한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아울러 이 "산헤드린의 소집을 위해 총독의 재가가 필요하다"는 규정이 예수의 처형 당시인 AD 33년 무렵과 야고보가 죽은 AD 62년 무렵에 똑같이 적용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사료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그럴 확률은 매우 높다.

만약 안나누스가 합법적으로 산헤드린을 소집해서 야고보의 사형을 결정했다면, 빌라도와 마찬가지로 그 최종승인은 신임총독 알비누스에게 넘어갔을까? 사료가 없으니 분명치는 않지만 소집과 운용에 있어서도 로마의 통제를 받았던 이 형태의 산헤드린이, 그들이 결정한 사안에 대해 로마총독의 인준을 필요로 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결론일 것이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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