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12-07-21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 최광민] 솔로몬 vs. 붓다: 솔로몬의 명판결 이야기는 {자타카}의 표절일까?
순서
© 최광민, Kwangmin Choi, 20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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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솔로몬 vs. 붓다: 솔로몬의 명판결 이야기는 {자타카}의 표절일까?
순서
- 어떤 주장: 민희식, {성서의 뿌리}
- {열왕기} 상편제 3장: 솔로몬
- {마하-움마가 자타카}: 마호사다 (고타마 붓다의 전생)
- 티벳의 비사카
- 중국의 포청천
- 맺음말
§ 어떤 주장
누군가로부터 아래와 같은 글을 한번 반박해 보라는 쪽지를 받았다.
그 내용은 {법화경과 신약성서} 등의 저작을 통해 "예수=불제자론"을 전파해 온 불문학자이자 불교저술가인 민희식씨의 {성서의 뿌리}란 책의 제 15장 [히브리 왕국의 번영]에 등장하는 제 8번째 단락인 [[고대 인도 왕의 재판 이야기가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의 원전 p.314]]에 등장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민희식, {성서의 뿌리}, 블루리본
"고대 인도 왕의 재판"이란 검색어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을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다. 민희식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고대 인도 왕의 재판" 이야기는 다음의 시퀀스를 따른다고 한다.
- 고대 인도의 달레르란 곳에 경건한 군주가 있었다.
- 브라흐마 신은 그 군주의 경건함에 감동해 지혜를 선물로 주었다.
- 여인 둘이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며 판결을 받기 위해 법정에 왔다.
- 재판관은 왕의 지혜를 빌려 판결하고자 한다.
- 왕은 두 여인 사이에 선을 긋도 서로 잡아당겨서 빼앗는 여자에게 아기를 주기로 한다.
- 아기의 진짜 엄마는 아이가 고통으로 우는 것을 보고 아기를 포기하고 울었다.
- 왕은 무정한 여인이 가짜엄마임을 같파하고 친모에게 아이를 돌려주고 가짜엄마에게 벌을 주었다.
나는 솔직히 민희식씨가 말하고 있는 "인도의 달레르"가 어디를 혹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달레르의 인도 왕"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달레르의 고대전승"이란 것이 정확히 어떤 문건인지, 그리고 도대체 언제 작성되어 어떻게 전승되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누가 그 출처부분을 자세히 알려준다면 감사드리겠다)
솔직히 민희식씨가 그동안 출판한 책들의 자료출처와 관련된 문제를 고려한다면, 그런 '전승'이 있는지조차 개인적으론 확신하기 힘들다.
2012년 7월 구글 검색 결과
사실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제 3대 왕인 솔로몬의 현명한 판결 이야기와 인도의 이야기가 유사하다는 주장은 19세기 말 - 20세기 초반에 종교학과 인도학계에서 많이 연구된 것이다. 그러나 이 학술적인 논의에 한결같이 등장했던 설화는 민희식씨의 책에 등장하는 소위 "인도 달레르의 어떤 인도 왕"이 등장하는 "달레르 고대전승"이 아니라, 테라바다 (=상좌부/소승) 불교에 전해지는 고타마 싯달타 (이하, '붓다')의 전생담이 집결된 {자타카}의 제 546번째 일화인 {마하-움마가 자타카, MAHĀ-UMMAGGA-JĀTAKA} 였다.
고타마 붓다의 전생으로 설명되는 현자 마호사다가 주인공인 이 {마하-움마가 자타카}에는 '달레르', '경건한 왕', '그 왕에게 지혜를 준 브라흐마', '재판관', '가짜엄마에게 준 벌'에 대한 것은 등장하지 않지만, 나머지 모든 모티프는 민희식씨가 소개하는 소위 '달레르의 고대전승'과 정확히 같다. 민희식씨가 저 '달레르의 고대전승'을 언급할 때, 민희식씨가 이 {마하-움마가 자타카}를 염두에 두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책 {법화경과 신약성서}에서 기독교 {복음서}가 많은 {자타카}를 표절/차용했다고 주장하면서 {자타카}를 강조하던 민희식씨가, 막상 이 건에 있어서는 {자타카}를 명시하지 않은 점은 다소 의아한 일이다. 학술적인 논쟁을 언급하고자 했다면 이 {자타카}는 반드시 언급되었어야 할 것이다.
자, 그럼 히브리 성서 {열왕기 상편} 제 3장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현명한 재판"이야기가 {마하-움마가 자타카}를 원전으로 한 것인지에 대해서, 직접 두 문서를 비교해 보고 판단해 보자. 아울러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티벳과 중국의 설화 둘도 함께 언급해 보겠다.
우선 솔로몬의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 {열왕기} 상편 3: 솔로몬
"솔로몬의 현명한 재판" 이야기가 등장하는 {열왕기 상편} 제 3장은 솔로몬이 야훼에게 일천번제를 바친 후 솔로몬의 소원을 물은 야훼에게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자, 이를 기특히 여긴 야훼가 지혜에 아울러 부귀와 명예도 함께 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솔로몬의 현명한 재판"은 바로 이 사건 직후에 솔로몬이 처음으로 자신의 '지혜'를 이용한 일화다.
읽어보자.
야훼께서 그 날 밤 기브온에 와 있던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는 저의 아버지인 당신의 종 다윗에게 한결같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제 아버지가 당신의 면전에서 성실하고 올바르게, 또 당신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살았다고 하여 당신께서는 그에게 한결같은 은혜를 베푸셨고 또 오늘 그에게 주신 이 아들로 하여금 그의 왕좌에 앉게 하셨습니다. 나의 하느님 야훼여, 당신께서는 소인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으로 삼으셨습니다만 저는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으므로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소인은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당신의 백성 가운데서 살고 있는 몸입니다. 그러하오니 소인에게 명석한 머리를 주시어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고 흑백을 잘 가려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감히 그 누가 당신의 이 큰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솔로몬의 청이 야훼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장수나 부귀나 원수 갚는 것을 청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옳은 것을 가려내는 머리를 달라고 하니 자, 내가 네 말대로 해주리라. 이제 너는 슬기롭고 명석하게 되었다. 너 같은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지 않은 것, 부귀와 명예도 주리라. 네 평생에 너와 비교될 만한 왕을 보지 못할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이 내 길을 따라 살았듯이 내 길을 따라 살아 내 법도와 내 계명을 지킨다면 네 수명도 길게 해주리라."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야훼의 계약궤 앞에 나아가 서서 번제와 친교제를 드리고 또 모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그런데 창녀 둘이 왕에게 나와 섰다. 그 가운데 한 여자가 말을 꺼냈다. "임금님, 이 여자와 저는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을 때에 이 여자도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해산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이 여자도 아이를 낳았습니다. 집에는 우리 둘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이 여자는 자기의 아들을 깔아 뭉개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여자는 한밤중에 일어나 이 계집종이 잠자는 사이에 제 곁에 있던 제 아들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제 아들을 가져다 자기 품에 두고 죽은 자기 아들을 제 품에 놓고 간 것입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 젖을 먹이려다 보니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서야 그 아이가 제 몸에서 난 아이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느냐? 산 아이는 내 아이이고 죽은 아이가 네 아이야." 하고 우겼다. 첫 번째 여자도 "천만에! 죽은 아이가 네 아이이고 산 아이는 내 아이야." 하고 우겼다. 그렇게 그들은 왕 앞에서 말싸움을 벌였다.
그 때 왕이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은 '산 이 아이가 내 아들이고 네 아들은 죽었다.' 하고 또 한 사람은 '아니다. 네 아들은 죽었고 내 아들이 산 아이다.' 하는구나." 그러면서 왕은 칼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왕 앞으로 칼을 내오자 왕은 명령을 내렸다. "그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그러자 산 아이의 어머니는 제 자식을 생각하여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임금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아이를 죽이지만은 마십시오." 그러나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네 아이도 아니니 나누어갖자." 하였다. 그러자 왕의 분부가 떨어졌다. "산 아이를 죽이지 말고 처음 여자에게 내주어라. 그가 참 어머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의 이 판결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왕에게 하느님의 슬기가 있어 정의를 베푼다는 것을 알고는 모두들 왕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한국어 공동번역 {열왕기상} 3장 발췌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여기서 눈여겨서 봐둘 모티프는,
- 사흘 전에 동시에 아들을 낳은 두 '창녀'
- (고의 혹은 사고로) 아들을 압사시킨 한 창녀
- 한 아기를 두고 벌어진 두 창녀의 다툼
- 아기를 칼로 쪼개어 나눠주라는 왕의 판결
이다.
§ {마하-움마가 자타카}: 마호사다
그럼 이제 {마하-움마가 자타카}를 읽어보고, 솔로몬의 일화와 비교해 보자. 아래의 책과 논문을 참고하겠다.
- Moncure D. Conway, {The Judgement of Solomon}
- Paul G. Brewster, {Solomon's Judgement, Mahosadha, and the Hoei-Kan-Li}
- Naomi Appleton, {Jataka Stories in Theravada Buddhism: Narrating the Bodhisatta Path}
- Moriz Winternitz , {A History of Indian Literature: Buddhist literature and Jaina literature||
테라바다 (=상좌부/소승) 불교의 팔리어 정경인 {트리피타카 Tripitaka} (=삼장)의 첫 부분으로 고타마 붓다 및 관련 인물의 가르침을 다루는 {숫타 피타카 Sutta Pitaka} 가운데 10권으로 구성된 {쿠다카 니카야 Khuddaka Nikaya}는 붓다의 전생담을 다루는 문건들이다. 원래 정경 {자타카}들은 모두 운문으로만 되어 있으나, 산문으로 된 주석도 같이 혹은 독자적으로 구전을 통해 전승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산문주석들은 {자타카타카타 Jātakatthakathā}로 후대에 편입되었다.
19세기 말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인도학자인 E. B. Cowell는 그가 수행한 {자타카} 전문번역에서 아마도 BC 380년 경을 결집/작성시점으로 보았지만, 불교학자들은 자료부족으로 이 {자타카}들이 언제부터 현재 전승되는 형식과 내용으로 확정되었는지에 대한 정답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약 500여개의 {자타카}들이 AD 1세기 무렵까지 유통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 정확한 내용까지는 확정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E. B. Cowell의 번역으로 {마하-움마가 자타카}를 읽어보기로 하자. 이야기는 고타마 싯달타의 전생으로 등장하는 마호사다가 태어난 미틸라의 왕 베다하의 꿈 이야기로 시작된다.
The Jataka, Vol. VI, tr. by E. B. Cowell and W. H. D. Rouse, [1907]
No. 546. THE MAHĀ-UMMAGGA-JĀTAKA
https://archive.org/details/jatakaorstorieso06cowe
In days gone by, a king named Vedeha ruled in Mithilā, and he had four sages who instructed him in the law, named Senaka, Pukkusa, Kāvinda, and Devinda. Now when the Bodhisatta was conceived in his mother's womb the king saw at dawn the following dream: four columns of fire blazed up in the four corners of the royal court as high as the great wall, and in the midst of them rose a flame of the size of a fire-fly, and at that moment it suddenly exceeded the four columns of fire and rose up as high as the Brahma world and illumined the whole world; even a grain of mustard-seed lying on the ground is distinctly seen. The world of men with the world of gods worshipped it with garlands and incense; a vast multitude passed through this flame but not even a hair of their skin was singed. The king when he saw this vision started up in terror and sat pondering what was going to happen, and waited for the dawn.
옛날에 미틸라를 다스리던 베데하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네 명의 현자를 자문관으로 거느리고 있으면서 법을 지도받았는데, 그 네 현자들은 각각 네나카, 푸쿠사, 카빈다, 그리고 데빈다였다. 보디삿타 (=보살, 전생의 붓다)가 그 모친의 태에 잉태되었을 때, 왕은 새벽에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는 네개의 불기둥이 왕궁의 네 구석에서 불타오르며 마치 큰 벽처럼 솓아있었고,그 가운데 반디불이 만한 불길이 나타나더니 삽시간에 다른 네 불기둥을 압도하더니 브라흐마의 세상에 이를 정도로 솓구쳐 온 세상에 빛을 비추었다. 땅 바닥의 겨자씨가다 보일 정도였다. 온 세상의 사람들과 신들이 화환과 향으로 경배를 바치고 있었다. 군중들이 불길을 통과해도 털 하나 그을리지 않았다. 왕은 이 환상을 보고 두려움에 일어나 무슨 일인가 고민하면서 새벽을 지샜다. / 번역: 최광민
이야기를 전해들은 네 현자는 이 꿈이 자신들을 능가할 새로운 5번째 현자가 도래하는 것이라 해몽해 준다. 바로 그날 미틸라의 동부 상가지구에 사는 시리바다카와 수마나데비 사이에 아들이 수태되는데, 전생의 붓다가 33천에서 내려와 수태가 되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어보자. 이제 막 7살이 된 붓다의 전생 마호사다가 등장한다.
Now at that time, when seven years had expired, King Vedeha remembered how the four sages had said that a fifth sage should be born who would surpass them in wisdom, and he said to himself, "Where is he now?" and he sent out his four councillors by the four gates of the city, bidding them to find out where he was. When they went out by the other three gates they saw no sign of the Great Being, but when they went out by the eastern gate they saw the hall and its various buildings and they felt sure at once that only a wise man could have built this palace or caused it to be built, [334] and they asked the people, "What architect built this hall?" They replied, "This palace was not built by any architect by his own power, but by the direction of Mahosadha Pandit, the son of the merchant Sirivaḍḍha." "How old is he?" "He has just completed his seventh year."
7년이 흘러 베데하 왕은 예전에 네 현자들이 자신들의 지혜를 능가할 다섯번째 현자가 태어날 것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왕은 네 자문관을 도시의 네 문으로 보내어 그 현자를 찾도록 시켰다. 그들은 세 문 방향에서는 그 현자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동문으로 간 자문관은 한 궁궐과 그 부속건물들을 보고 오직 현자만이 이런 궁을 짓거나 혹은 짓도록 시킬 수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사람들에게 "어떤 건축가가 이 건물을 지었는가?"라고 묻자, 사람들은 "이 궁은 건축가 본인의 능력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상인인 시리바다의 아들인 마호사다 현자의 지시에 따라 지은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몇 살인가?"라고 묻자 "그 분은 얼마 전 만 7살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 번역: 최광민
The councillor reckoned up all the events from the day on which the king saw the dream and he said to himself, "This being fulfils the king's dream," and he sent a messenger with this message to the king: "Mahosadha, the son of the merchant Sirivaḍḍha in the East market town, who is now seven years old, has caused such a hall and tank and park to be made,—shall I bring him into thy presence or not?"
이 현자는 왕이 꿈에서 본 날 이후로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는 왕의 꿈이 이뤄지고 있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 "동부 저자거리에 사는 상인 시리바다의 아들인 마호사다가 현재 7살이고 저 건물과 물저수지와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전하 앞에 그를 데리고 갈까요 말까요?"라고 알렸다. / 번역: 최광민
When the king heard this he was highly delighted and sent for Senaka, and after relating the account he asked him whether he should send for this sage. But he, being envious of the title, replied, "O king, a man is not to be called a sage merely because he has caused halls and such things to be made; anyone can cause these things to be made, this is but a little matter." When the king heard his words he said to himself, "There must be some secret reason for all this," and was silent. Then he sent back the messenger with a command that the councillor should remain for a time in the place and carefully examine the sage. The councillor remained there and carefully investigated the sage's actions, and this is the series of the tests or cases of examination
왕이 몹시 기뻐하며 (자문관) 세나카에게 소식을 전하며 마호사다를 데려와야 할지를 묻자, 그는 시샘이 들어 "전하, 그거 건물을 짓거나 그런 것들을 만든다고 해서 현자라 불리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그런 것을 할 수 있씁니다. 이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혼자 생각하기를 "그렇다면 여기엔 뭔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전령을 보내어 자문관더러 한동안 그곳에 머물며 주의깊게 마호사다를 지켜볼 것을 명했다. 자문관은 그곳에 남아 주의깊게 그 현자의 행동을 관찰했는데,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례들을 조사하였다. / 번역: 최광민
이어서 이 7살짜리 마호사다가 현자로서의 자질을 증명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설명된다. "솔로몬의 현명한 재판"과 흡사한 내용은 그 5번째 사건에 해당한다. 읽어보자.
5. "The son." A certain woman took her son and went down to the sage's tank to wash her face. After she had bathed her son she laid him in her dress and having washed her own face went to bathe. At that moment a female goblin saw the child and wished to eat it, so she took hold of the dress and said, "My friend, this is a fine child, is he your son?" Then she asked if she might give him suck, and on obtaining the mother's consent, she took him and played with him for a while and then tried to run off with him. The other ran after her and seized hold of her, shouting, "Whither are you carrying my child?" The goblin replied, "Why do you touch the child? he is mine."
As they wrangled they passed by the door of the hall, and the sage, hearing the noise, sent for them and asked what was the matter. When he heard the story, [337] although he knew at once by her red unwinking eyes that one of them was a goblin, he asked them whether they would abide by his decision. On their promising to do so, he drew a line and laid the child in the middle of the line and bade the goblin seize the child by the hands and the mother by the feet. Then he said to them, "Lay hold of it and pull; the child is hers who can pull it over." They both pulled, and the child, being pained while it was pulled, uttered a loud cry. Then the mother, with a heart which seemed ready to burst, let the child go and stood weeping. The sage asked the multitude, "Is it the heart of the mother which is tender towards the child or the heart of her who is not the mother?" They answered, "The mother's heart." "Is she the mother who kept hold of the child or she who let it go?" They replied, "She who let it go." "Do you know who she is who stole the child?" "We do not know, O sage." "She is a goblin,—she seized it in order to eat it." When they asked how he knew that he replied, "I knew her by her unwinking and red eyes and by her casting no shadow and by her fearlessness and want of mercy."
Then he asked her what she was, and she confessed that she was a goblin. "Why did you seize the child?" "To eat it." "You blind fool," he said, "you committed sin in old time and so were born as a goblin; and now you still go on committing sin, blind fool that you are." Then he exhorted her and established her in the five precepts and sent her away; and the mother blessed him, and saying, "May’st thou live long, my lord," took her son and went her way
[다섯번째 시험: "아들"] 한 여인이 아들을 데리고 (마호사다) 현자가 만든 물웅덩이에 얼굴을 씻으러 왔다. 여인은 아들을 목욕시킨 후 옷 위에 아들을 눞히고 자신도 얼굴을 씻고 목욕을 하러 갔다. 잠시 후 여자요괴가 나타나 아기를 보고 군침을 삼키고는 옷을 갖춰입고 "참 예쁜 아이군요. 당신 아들인가요?"라고 묻고는, 자신이 아기에게 젖을 물려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승락을 받자마자 요괴는 아이와 잠시 놀더니 아기를 데리고 도망쳤다. 여인이 쫒아가 요괴를 잡고는 "우리 아기를 어디로 데려가느냐"고 소리를 쳤다. 요괴는 "왜 내 아기에게 손을 대는 거야? 이 아기는 내 아들이야"라고 응수했다.
그들이 싸우는 중에 건물에 있던 현자가 소음을 듣고 무슨 일인가를 알아보도록 했다. 물론 현자는 깜빡이지 않는 빨간 눈을 가진 쪽이 요괴라는 것을 당장 알아챘지만, 둘에게 자신의 결정을 따르겠느냐고 물었다.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듣자, 현자는 땅에 선을 긋고 선 가운데에 아이를 놓았다. 그리고는 요괴는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친모더러는 두 발을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말하길, "잘 잡고 당기세요, 끌려가는 쪽이 아이를 갖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두 여인이 당기기 시작하지 아기는 고통에 울음을 터트렸다. 친모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아기를 요괴에게 내주고 서서 울기 시작했다. 현자는 사람들에게, "아기를 놓아준 여인이 친모일까요? 친모가 아닐까요?" 라고 묻자, 군중들은 "아이를 놓아준 쪽이 친모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럼 아이를 유괴하려던 자가 무엇인지 아시겠나요?"라고 묻자, 사람들은 "현자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현자는 "그 여자는 요괴입니다. 그 요괴는 잡아먹으려고 아이를 빼앗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현자에게 묻자, 현자는 "붉은 눈을 깜빡이지 않고, 그림자도 없는데다가, 무모하고 자비심이 없는 것을 보고 요괴인 줄 알아차렸습니다"라고 답했다. / 번역: 최광민
현자가 요괴의 정체를 묻자, 요괴는 자신이 요괴임을 고백했다. "너는 왜 아이를 유괴했느냐?"라고 현자가 묻자, 요괴는 "잡아먹으려고 그랬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눈먼 불쌍한 것아, 너는 전생에 죄를 지어 요괴로 태어났거늘 계속해서 죄를 짓는게냐, 이 불쌍한 것아"라고 말했다. 현자는 요괴를 훈계하고 오계를 지키도록 한 후 보내주었다. 친모는 현자를 칭송하여 만수무강을 빌며 아들을 데리고 떠났다 / 번역: 최광민
이 {마하-움마가 자타카}는 확실히 솔로몬의 일화와 유사하다. 가령, 여기 등장하는 (1) 아이를 두고 싸우는 두 여인, (2) 아기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차라리 아기를 포기하는 친모, (3) 현명한 판결과 해피엔딩 이란 점에서 그렇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굳이 비교해 본다면,
- 솔로몬의 일화 속 두 여인은 3일 전 동시에 아들을 낳은 두 창녀
- 마호사다의 일화 속 두 여인은 인간과 요괴. 아이를 낳은 것은 인간 여인 뿐이다.
- 솔로몬의 일화에서 솔로몬은 아기를 칼로 둘로 쪼개 (즉, 죽여) 두 창녀에게 나눠주라고 명한다.
- 마호사다의 일화에서 마호사다는 땅에 선을 긋고 두 여인더러 아기를 양쪽에서 잡아당겨 이기는 쪽에게 아기를 주겠다고 한다.
이 차이는 무시할 만한 차이일 수도 있고, 어쩌면 결정적인 차이일 수도 있다. 잠시 뒤에서 이와 유사한 티벳과 중국의 설화를 예로 들면서 왜 결정적일 수 있는지를 설명하겠다.
일단, 그럼 솔로몬과 마호사다의 일화가 유사하다고 일단 가정해 볼때, 그럼 과연 이 {자타카}가 "역사적"으로 {열왕기 상편} 제 3장의 "원전"이 될 수 있을까? 우선, 두 문서들의 작성시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원래는 한 권의 책인 {열왕기 상/하편}은 다른 구약성서의 역사서들과 마찬가지로 그 저자와 집필연대를 확정하기 어렵다. 유대교 랍비들은 전통적으로 바빌로니아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을 경험한 예레미아를 그 저자로 간주해 왔지만, 현재는 BC 8세기 히스키아 왕 시대의 자료, BC 7세기 요시아 왕 시대의 자료 등에 바탕한 BC 6세기 중반의 최종본이 등장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주류학설이다. 참고로, {열왕기}에서 다루는 마지막 군주는 유대왕국의 마지막 왕인 여호야긴인데,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 이후 북부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의 유다 왕국으로 분열된 후, 북부 이스라엘 왕국이 BC 722년에 앗시리아 제국에 의하여 멸망 당하고, 남부 유다왕국은 BC. 586년에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느부갓네살)에게 멸망 당했으며, 유대인들은 BC 538년 페르시아의 키루스의 칙령으로 본토귀환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대체로 {열왕기 상/하편}이 작성된 시점은 늦어도 BC 6세기, 즉 유대인들이 본토로 귀환한 시점 무렵까지로 볼 수 있다.
그럼 {자타카}는? 앞서 말한 옥스포드 대학의 E. B. Cowell이 BC 380년 경을 {자타카}들의 결집시점으로 본 이유는 불교의 경전결집 일화에서 비롯된다. 불교에서는 크게 세번의 결집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1차결집은 붓다 사후 (BC 480년 혹은 BC 400년 경) 그의 제자들인 500인의 비구들이 모여 붓다의 가르침을 정리했고, 2차결집은 붓다 사후 100년 후 상좌부-대중부의 분열에서 비롯되는데, 보수적인 상좌부는 베살리에서 700인의 상좌부 장로가 율장 중심으로 결집하였다고 하며, 이에 맞서 친-대중부 비구도 1만 명을 소집해 독자적 결집을 시행했다고 한다. 즉, Cowell의 견해는 붓다의 입멸 시점을 BC 480년 경으로 보고 그로부터 100년 후 상좌부-대중부 분열이 발생한 제 2차 결집 시점 (대략 BC 380년 경)을 {자타카}의 결집 시점으로 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추정일 뿐 아무도 그 시점을 확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여기서 말하는 '결집'이란 구전결집을 말하는 것이며 불설이 '문서화'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초기불교는 불설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을 꺼리거나 혹은 금지했다.
{열왕기}와 {자타카}의 내용이 최초 작성시점으로부터 얼마나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단지 학자들이 추정한 문서 작성시점만 본다면, 거의 확실히 {열왕기}가 {자타카}보다 앞선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맞다면, 해당 {자타카}가 솔로몬의 일화의 "원전"이 되기엔 시간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그럼 솔로몬 이야기가 해당 {자타카}의 "원전"일까? 그렇게 보기도 힘들다. 그 이유는 두 일화의 유사점을 일단 제쳐두고, 그 상이점을 들여다보면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차용된 설화가 원전과 조금 다른 것이 대수냐며 대수롭지않게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설화가 차용되는 경우 대개 그 핵심 모티프는 잘 변하지 않는다. 해당 {자타카}와 유사한 티벳과 중국의 이야기를 하나씩 보면서 설명하겠다.
§ 티벳의 비사카 (Visakha)
티벳의 설화에도 이와 유사한 {비사카 설화}가 있다.
코살라의 왕을 보좌하는 총리의 7번째 아들인 비사카의 신부감을 찾아 나선 한 브라만이 총명하고 지혜로운 처녀를 하나 발견해서 코살라로 데려오는데, 이 처녀의 이름도 역시 비사카였다. 이 처녀의 총명을 드러낸 사례 중 하나로 한 아이를 두고 누가 진짜 엄마인지를 두고 다투는 두 여인 사이의 시비를 가리게 된 사건이 있었다.
읽어보자.
{Tibetan tales, derived from Indian sources} by Schiefner, Anton, 1817-1879; Ralston, William Ralston Shedden, 1828-1889
https://archive.org/details/tibetantalesderi00schirich
There was a householder in a hill-village who, after he had married in his own rank, remained without either son or daughter. As he longed earnestly for a child, he took unto himself a concubine. Thereupon his wife, who was of a jealous disposition, had recourse to a spell for the purpose of rendering that woman barren. But as that woman was quite pure, she became with child, and at the end of nine months bare a son.
산마을에 한 가장이 있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신분의 여자와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었다. 아이를 갖고 싶었던 그는 첩을 하나 얻었다. 이를 질투한 아내는 그 여인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저주를 걸어 두었다. 그러나 순수한 그 여인은 결국은 아이를 갖게 되고 마침내 아홉달이 지나 아들을 낳았다. / 번역: 최광민
Then she reflected thus : "As the worst of all enmities is the enmity between a wife and a concubine, and the stepmother will be sure to seek for a means of killing the child, what ought my husband, what ought I to do ? As I shall not be able to keep it alive, I had better give it to her/'
"불화 가운데 제일 나쁜 것이 본처와 첩 사이의 불화이므로, 아마 그 여자가 내 아들을 반드시 죽이려고 수를 쓸 것이다. 남편이나 내가 뭘 해야 하나? 내가 아들을 살릴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여자에게 줘버리는 게 낫겠다."라고 첩은 생각했다./ 번역: 최광민
After taking counsel with her husband, who agreed with her in the matter, she said to the wife, " sister, I give you my son; take him." The wife thought, " As she who has a son ranks as the mistress of the house, I will bring him up."
이 건에 동의한 남편과 상의한 후 첩은 본처에게 "내 아들을 드리겠으니 받아주세요"라고 말했고, 본처는 "아들을 낳은 네가 계속 첩실로만 남아있겠다면, 내가 아이를 맡아 기르마"라고 말했다. / 번역: 최광민
After she had taken charge of the boy the father died. A dispute arose between the two women as to the possession of the house, each of them asserting that it belonged to her. They had recourse to the king. He ordered his ministers to go to the house and to make inquiries as to the ownership of the son. They investigated the matter, but the day came to an end before they had brought it to a satisfactory conclusion. In the evening they returned to their homes.
본처가 아이를 맡은 후 남편이 죽었다. 두 여인 사이에 집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졌고, 각자는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둘은 왕의 도움을 청했다. 왕은 신하들에게 그 집에 가서 조사를 한 후 아이가 누구의 아들인지를 알아내라고 명했다. 그러나 신하들이 이 문제를 조사해 보았지만 하루가 다 차도록 만족스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저녁이 오자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 번역: 최광민
Visakha again questioned Mrgadhara, who told her everything. Visakha said, " What need is there of investigation ? Speak to the two women thus : ' As we do not know to which of you two the boy belongs, let her who is the strongest take the boy.' "When each of them has taken hold of one of the boy's hands, and he begins to cry out on account of the pain, the real motherwill let go, being full of compassion for him, and knowing that if her child remains alive she will be able to see it again; but the other, who has no compassion for him, will not let go. Then beat her with a switch, and she will thereupon confess the truth as to the whole matter. That is the proper test."
비사카가 마르가다라에게 사건에 대해 다시 물으니, 그는 비사카에게 자초지종을 다 말해 주었다. 비사카는 이렇게 말했다: "조사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이 사내아이가 누구 자식인지 도무지 모르겠으니, 더 힘쎈 여자에게 아이를 주겠다'. 그리한 후 각자 그 아이의 손을 하나씩 잡아 당기라고 하십시오. 아이가 아파서 우기 시작하면, 친모는 자식을 불쌍히 여겨 손을 놓을 것입니다. 아이가 살아있는 한 다시 아이를 볼 수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친모가 아니라면 아이를 가엽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고 손을 놓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 여자를 막대기로 매우 치시면 죄를 자백하고 자초지종을 털어놓을 것입니다. 이렇게 여자들을 시험 하시면 됩니다" ---- Schiefner and Ralston, {Kah-Gyur} / 번역: 최광민
마호사다와 거의 동일한 방식의 시험법이다. 특별히 두 여인이 직접 아기의 팔을 당기게 한 점을 기억해 두자. (솔로몬은 부하에게 아기의 몸을 칼로 찢으라고 한다.)
그럼 티벳의 이 문건은 언제 등장했을까? AD 9세기에 티벳에서는 한 군주에 의해 한동안 불교의 박해시기가 있었는데 이때 불교사원과 불화와 불경들이 파괴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 군주의 손자는 다시 불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서 8곳의 불교사원을 건립하여 불교의 중홍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AD 971년 경에 박해를 피해 인도로 피신했던 티벳승려들이 티벳으로 돌아왔고, AD 1041년에 인도의 승려 판디타 아티샤 (Pandita Atisha)와 그의 제자가 티벳에 와서 칼라 차크라 혹은 탄트라 불교를 티벳에 소개하였고, 당시 불교가 소멸해 가던 인도로부터 많은 산스크리트어 불교문서들을 티벳으로 옮겨왔다고 전한다. 아마도 이때가 위의 이야기가 담긴 {Kan-gyur}가 작성된 시점으로 여겨진다. 티벳 불전에서 {Kan-gyur}는 붓다 본인의 어록을 모은 것으로, 팔리어가 아닌 후대의 산스크리트어 텍스트를 원전으로 한다.
이번에는 AD 14세기 중국으로 가보자.
§ 중국의 포청천(包青天)
중국 원나라 (1259–1368) 시절의 극작가 李潛夫가 쓴 4막짜리 극본인 {灰闌記}의 줄거리는 이렇다. 이 이야기는 '포청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다.
영어번역: http://www.yorku.ca/inpar/Chalk_Circle_van_der_Veer.pdf
아름다운 16세 소녀인 하이탕은 아버지가 죽은 후 가난 탓에 사창가에 팔렸다. 거기서 하이탕은 부유하지만 자식이 없던 세금징수관리인 마춘싱을 알게 되어 그의 첩으로 들어갔다. 하이탕은 마춘싱의 아들인 쇼울랑을 낳는데, 이로인해 마춘싱의 처인 아슈의 미움을 받게 된다. 아슈는 하이탕을 불륜으로 고발하고, 남편에게 독을 먹이고는 하이탕을 독살범으로 고발한 후, 쇼울랑은 하이탕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남편의 재산을 자신이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이탕은 체포되어 고문 당한다. 하이탕의 사형이 집행되려는 중, 명판관 바오젱 (包拯, 즉, 포청천 包青天)이 등장하여 두 여자 사이에 원을 그리고 쇼울랑을 그 안에 둔 후, 두 여자더러 아이를 잡아당기라고 한다. 하이탕은 아기가 다칠 것을 두려워해 포기하게 되고, 이에 따라 하이탕이 아기의 친모로 선언된다. /정리: 최광민
몽골족이 지배하던 원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종교는 티벳에서 전래된 라마불교였다. 따라서 {자타카}에서 다소 각색된 이 티벳 버전의 이야기가 원대의 연극인 {{灰闌記}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다. 특별이 두 여인이 {자타카} 버전에서는 인간-요괴였다면, 티벳의 비사카 설화와 중국의 포청천 이야기에서는 본처-첩의 갈등이란 점을 보면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 그럼, 여기서 솔로몬과 마호사다와 비사카와 포청천 설화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1) 두 여인과 (2) 모정을 이용한 판결법 이란 점에서 유사하다. 그럼 티벳과 중국의 이 두 이야기는 {마하-움마가 자타카}와는 어떤 면에서 유사하가? (1) 두 여인과, (2) 모정을 이용한 판결법에 아울러 (3) 땅에 선을 긋고 두 여인이 아기를 양쪽에서 잡아 당기에 한 점에서도 유사하다.
네 이야기의 초기 설정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마호사다와 비사카와 포청천은 정확히 동일한 "시험법"을 적용했다. 생각해 보자. 대승불교 계열인 라마불교를 국교로 하는 티벳과 역시 대승불교에 익숙했던 송/원대의 두 이야기가 인도불교에서 유래한 상기 {자타카} 이야기와 유사한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마호사다와 비사카, 마호사다와 포청천 사이에 이미 1000년 이상의 간극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점이다. 불교의 여러 이야기는 이미 티벳과 중국에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작가는 이를 조금 다르게 표현해야 할 압박을 받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 이야기는 정확히 같은 시험법을 사용한다.
그에 비해서 (일각에서 마호사다를 표절했다는) 솔로몬의 시험법은 마호사다-비사카-포청천의 그것과 꽤 다르다. 솔로몬의 방식은 아이를 여인 둘이 당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칼로 반으로 나누어 그 시신을 여인 각각에게 주겠다는 시험법이다. 이것 역시 모정을 이용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 적용법에서 마호사다나 비사카나 포청천의 방식과 전혀 다르다. 아울러 솔로몬의 경우, 두 창녀 각각 아들을 낳았고 이 중 하나가 죽었다고 되어 있는 반면, 마호사다-비사카-포청천의 경우는 한 여인 만이 아이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비사카-포청천의 경우는 두 여인의 관계가 처첩으로 재설정되어 있다.
§ 맺음말
세가지를 논점을 정리해 보고 마쳐보자.
1.
학자들의 표준가설에서 볼때, {열왕기}는 대체로 {자타카}보다 먼저 작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간 상 {자타카}는 솔로몬 이야기의 "원전"일 수 없다.
2.
표준가설에 따라 {열왕기}와 {마하-움마가 자타카}가 약 150년 안쪽에서 공존한 문서라면, 왜 마호사다 ~ 솔로몬 간의 차이가 그 열배의 시간 차를 가지는 마호사다 ~ 비사카, 마호사다 ~ 포청천 간의 차이보다 큰 지 설명하기 애매하다. 일반화 시켜 본다면, 만약 B가 A를 원전으로 한 문서인 경우, B는 A를 원전으로 삼지는 않지만 A와 내용상 유사한 문서 C보다 설령 더 시간이 흘렀다하더라도 A와 핵심 모티프에서 유사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왜 솔로몬의 이야기가 마호사다-비사카-포청천의 이야기와 꽤 다른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상식적인 선에서 판단하더라도 {마하-움마가 자타카}가 {열왕기 상편} 3장의 "원전"이라고 단언하기엔 그 근거가 매우 미흡하다. 유사성을 말하는 것과 '원전~차용'관계를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수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하다면, 민희식씨가 솔로몬 이야기의 원전이라고 주장한 정체불명의 "인도 달레르의 어떤 왕에 관한 전승"이 솔로몬 이야기의 "원전"일 가능성은 아마도 이보다도 한없이 작을 것이다.
4
아마도 솔로몬과 마호사다와 비사카와 포청천 이야기에서 정말 말할 수 있는 것은 '솔로몬은 마호사다의 표절이다' 혹은 '마호사다가 솔로몬의 원전이다' 같은 근거희박한 단정이 아니라, 그저 "지혜는 그 본성상 보편적이다"란 명제일지도 모른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