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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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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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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4-02-14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한 소설의 제목으로도 유명한 존 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는 사실 그가 1623년에 쓴 꽤 긴 수필 {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 XVII}에서 발췌된 글이다. 이 수필은 고통의 본질을 바라보는 존 던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으며, 시처럼 발췌된 부분 만으로는 그 내용을 이해하기 충분치 않다.

번역해 보았다.

{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 XVII}
-- 번역: 최광민

Nunc Lento Sonitu Dicunt, Morieris :
"Now, this bell tolling softly for another, says to me: Thou must die."

지금 다른 이를 향해 조용히 울리는 이 종소리는 사실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너 또한 죽어야 하리라."

PERCHANCE he for whom this bell tolls may be so ill, as that he knows not it tolls for him; and perchance I may think myself so much better than I am, as that they who are about me, and see my state, may have caused it to toll for me, and I know not that.

종소리가 어떤 아픈 사람을 향해 울리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종이 자신을 향해 울리고 있음을 알지 못할 수 있다. 내 주변에서 내 상태를 지켜보는 이들이 내게 경종을 울리고 있음에도, 정작 나 자신을 내 상태를 실제보다 과대평가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The church is Catholic, universal, so are all her actions; all that she does belongs to all. When she baptizes a child, that action concerns me; for that child is thereby connected to that body which is my head too, and ingrafted into that body whereof I am a member. And when she buries a man, that action concerns me: all mankind is of one author, and is one volume; when one man dies, one chapter is not torn out of the book, but translated into a better language; and every chapter must be so translated; God employs several translators; some pieces are translated by age, some by sickness, some by war, some by justice; but God's hand is in every translation, and his hand shall bind up all our scattered leaves again for that library where every book shall lie open to one another.

교회는 보편적이며 세계적이며, 따라서 교회의 행위들도 그러하다. 교회가 행하는 모든 일은 만인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교회가 한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때 그 행위는 나와 상관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내 머리이기도 한 한 몸에 연결되어, 내가 한 지체를 이루는 한 몸에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한 사람을 땅에 묻을 때 그 행위는 나와 상관있다. 모든 인류는 한 분의 저자에 의해 씌여진 한 권의 책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책의 한 장(章)이 찢겨 나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더 나은 언어로 번역되어지는 것이며, 그리고 사실 모든 장(章)은 그처럼 새로이 번역되어야만 한다. 신은 여러 명의 번역자들을 거느린다. 어떤 작품은 나이에 의해, 혹은 질병에 의해, 혹은 전쟁에 의해, 혹은 정의에 의해서 번역된다. 하지만 신의 손은 모든 번역과정 속에 작용하며, 그의 손은 모든 이가 볼 수 있는 장서를 만들기 위해 흩어진 낱장들을 다시금 묶어 매실 것이다.

As therefore the bell that rings to a sermon calls not upon the preacher only, but upon the congregation to come, so this bell calls us all; but how much more me, who am brought so near the door by this sickness. There was a contention as far as a suit (in which both piety and dignity, religion and estimation, were mingled), which of the religious orders should ring to prayers first in the morning; and it was determined, that they should ring first that rose earliest. If we understand aright the dignity of this bell that tolls for our evening prayer, we would be glad to make it ours by rising early, in that application, that it might be ours as well as his, whose indeed it is. The bell doth toll for him that thinks it doth; and though it intermit again, yet from that minute that this occasion wrought upon him, he is united to God.

그러므로 설교시간을 알리는 종은 설교자만 부르는 것이 아니고 회중들도 부르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를 부르는 것이다. 병으로 인해 이렇게 문턱에 가까이 온 나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옛날, 거의 송사거리가 된 논쟁이 하나 있었다. (그 논쟁은 경건과 위엄, 신앙심과 존중이 뒤섞인 성격의 것이었다). 내요인 즉슨, 어느 종단이 아침에 먼저 기도 종을 울려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는데, 결국 가장 일찍 기상하는 종단이 먼저 종을 울리기로 결정되었다. 기도를 알리는 이 종소리의 위엄을 우리가 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일찍 기상함으로써 실제로는 다른 사람을 향한 종소리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 할 것이다. 종은 종소리가 자기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울린다. 이렇게 될때, 종이 잠시 멈춘다해도 그는 이미 신과 합일된 것이다.

Who casts not up his eye to the sun when it rises?
but who takes off his eye from a comet when that breaks out?
Who bends not his ear to any bell which upon any occasion rings?
but who can remove it from that bell which is passing a piece of himself out of this world?

그 누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지 않겠는가?
그 누가 갑작스런 혜성으로부터 시선을 거둘수 있겠는가?
그 누가 종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겠는가?
그 누가 자신의 한 부분을 세상에서 떠나보내는 종소리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분.
한 줌의 흙덩이가 바다에 씻겨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지며
모래톱이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러해도 마찬가지.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니, 나는 인류의 한 부분이기 때문.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나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

Neither can we call this a begging of misery, or a borrowing of misery, as though we were not miserable enough of ourselves, but must fetch in more from the next house, in taking upon us the misery of our neighbours. Truly it were an excusable covetousness if we did, for affliction is a treasure, and scarce any man hath enough of it. No man hath affliction enough that is not matured and ripened by it, and made fit for God by that affliction.

이것을, 마치 우리가 스스로 충분히 불행하지 않아서 불행을 구걸하는 것이나 불행을 차용하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우리들은 옆 집에서 우리 이웃들의 불행을 가져와 우리 위에 짊어지고 더 많이 가져와야만 한다. 고통은 보물이며, 만약 우리 그렇게 한다면 진정 그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탐욕이리라. 사람들은 거의 고통을 충분히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 어느 누구도 고통에 의해 성숙되고 원숙하게 되고 그 고통에 의해 신에게 합당하게 될 만큼 충분한 고통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If a man carry treasure in bullion, or in a wedge of gold, and have none coined into current money, his treasure will not defray him as he travels. Tribulation is treasure in the nature of it, but it is not current money in the use of it, except we get nearer and nearer our home, heaven, by it. Another man may be sick too, and sick to death, and this affliction may lie in his bowels, as gold in a mine, and be of no use to him; but this bell, that tells me of his affliction, digs out and applies that gold to me: if by this consideration of another's danger I take mine own into contemplation, and so secure myself, by making my recourse to my God, who is our only security.

만일 어떤 사람이 화폐의 형태로 주조된 것이 아닌 금 덩어리나 금 쪼가리 형태로 재물을 가지고 다닌다면 여행시에 그것들은 사용되지 못할 것이다. 고난은 그 본성상 보물이지만, 그로인해 우리의 집,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점만 빼면 현실적인 통화는 아니다. 다른 사람이 아플 수 있다. 죽음에 이를 만큼 아플 수 있다. 그리고 이 고통은 육체적인 것일 수도 있다. 광산에 묻혀 있는 금처럼. 그래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고통을 나에게 전해주는 종소리는 내가 그 금을 파내어서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사람들의 위험을 살펴서 나 자신의 위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며, 또한 유일한 보호처이신 신에게 의지하여 나 자신을 지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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