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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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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모세 vs. 디오니소스 #1: 마누 = 미노스 = 미시스 = 디오니소스 =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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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10-05-07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모세 vs. 디오니소스 #1: 마누 = 미노스 = 미시스 = 디오니소스 = 모세?

순서
  1. 어떤 카피캣 이론: 네 명의 입법자?
  2. 마누 = 모세?
  3. 미노스 = 모세?
  4. 디오니소스 = 미시스 = 모세?
  5. 바빌로니아의 네모?
  6. 시리아/이집트의 미시스?
  7. 여호와/야훼 닛시 = 디오스 + 니소스?
  8. (디오니소스 = 하르사페스), (오사르시프 = 모세) ?
  9. 미세/미사 = 디오니소스 = 모세
  10. 트릭: 연결의 미학
    1. 첫번째 트릭: 디오니스소스 = 미시스
    2. 두번째 트릭: 모세 = 미시스
    3. 세번째 트릭 = (디오니소스 = 미시스) = 모세
  11. 맺음말


    § 어떤 카피캣 이론: 네 명의 입법자?

    {시대정신/Zeitgeist: the Movie} 영상물 1부에서 제작자는 한가지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Zeitgeist: the Movie} 화면

    Moses is known as the Law Giver, the giver of the Ten Commandments, the Mosaic Law. However, the idea of a Law being passed from God to a prophet on a mountain is also a very old motif. Moses is just a law giver in a long line of law givers in mythological history. In India, Manou was the great law giver. In Crete, Minos ascended Mount Dicta, where Zeus gave him the sacred laws. While in Egypt there was Mises, who carried stone tablets and upon them the laws of god were written.

    모세는 ''십계명' - 모세율법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산 위에서 신의 계시를 받아 제정된 법'의 개념은 아주 오래된 모티브입니다. 모세는 단지 신화 속 역사의 수많은 입법자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인도에는 위대한 입법자인 '마누'가 있고 크레타에는 '미노스'가 '딕타' 산에 내려와서 '제우스'로부터 '신성한 법전'을 전수받는다는 설화가 있고 이집트에는 '미시스'가 '신의 법전이 새겨진 석판'을 지녔다고 합니다. --- # 번역: 최광민

    그리고나서, 다음 네 명의 이름이 호명된다.

    마누, 미노스, 미시스, 모세

    이 부분에서 {시대정신} 영상물이 말하고자 하는 주장은 분명하다. 모세, 특별히 입법자로서의 그의 역할은 "인도의 마누", "크레타의 미노스", 그리고 "이집트의 미시스" 등의 인물들이 공유하고 있는 고대설화의 모티프로부터 나온 것이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그 설화들로부터 표절된 것이라는 것이다.

    일부 카피캣 이론가들은 이 네 명의 이름이 심지어 '음운학'적으로도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굳이 말하면, 마누와 미노스는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누/미노스와 미시스/모세는 전혀 다르다. 굳이 같다면 첫 자음인 "M"정도? 그러니까 굳이 말한다면, 음운학적으로는 (마누 = 미노스 ) ≠ (미시스 = 모세)로 나누어야 할 듯 싶다. 물론, 귀에 비슷하게 들린다고 해서, 이 네 명의 인물들이 "같다" 혹은 "베낀 것이다"라는 섵부른 주장을 하기에도 아직 이르다. .

    문제는 {시대정신}이 이 네 명이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 지에 대한 근거와 자세한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 영상물이 카피캣 이론가인 (필명) 아차리아 S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책으로 나온 버전에서도 아차리아 S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할 것이라 생각된다.

    나의 기본적인 그리고 근본적인 질문은 아래와 같다.

    1. 마누와 모세는 어떤 모티프에서 동등한가?
    2. 마누와 미노스는 어떤 모티프에서 동등한가?
    3. 미노스와 모세는 어떤 모티프에서 동등한가?
    4. 도대체 "이집트의 미시스"는 누구인가?

    나중에도 언급하겠지만, {시대정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이 정체불명의 "이집트의 미시스"에 있다. 일단 마누부터 시작해 보겠다.




    § 마누 = 모세 ?

    히브리인의 지도자 모세와 인도 홍수설화의 주인공이자 입법자인 마누를 연결짓는 최초의 시도는 아마도 프랑스의 인도 식민관리 출신 Luis Jacolliot가 서기 1876년에 발표한 {Les législateurs religieux. Manou, Moïse, Mahomet}일 것이다.


    Louis Jacolliot, {Les législateurs religieux: Manou, Moïse, Mahomet}
    https://archive.org/details/leslgislateursr00jacogoog

    본인 스스로는 열정적인 연구자이자 저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정확한 자료인용과 부적절한 논리도약으로 당대에도 이미 학계로부터 무시당하던 자콜리오의 저작들은, 아리안과 인도문명을 아틀란티스와 연관된 인류문명의 본류로 간주하는 신지학의 창시자 헬레나 블라브트스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인도와 관련된 거의 모든 카피캣 이론의 1차자료가 되었고, {시대정신} 1부의 감수자인 현대의 카피캣 이론가 아차리아 S 역시 자콜리오를 이 방면의 선구자로 지적하고 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콜리오의 저작들을 진지한 학문적 성과로 잘못 간주한 나머지, 자콜리오가 잘못 기술한 고대 인도의 사상과 {마누법전}을 바탕으로 그의 "초인철학"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은, 당시 서구문명에 염증을 느끼고 동양에서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했던 서구 일부 지식인들에게 자콜리오의 저작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책들을 출판한 자콜리오의 거의 모든 저작물에 대해, 역사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이 그 저작물들이 학문적으로 부정확한 것으로 판정한 지 이미 오래다.

    자콜리오 류의 주장들에 들어가기 앞서 인도신화 속의 마누설화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고대의 어느 날, 의인 마누는 임박한 대홍수를 알리는 작은 물고기를 만나게 된다. 사실 이 물고기는 비쉬누(혹은 브라흐마)의 아바타였다. 마누는 배를 만들어서 홍수에서 살아남았고, 마침내 히말라야의 한 봉우리에 내리게 된다. 신은 마누에게 아내를 보내주었고, 이로써 마누는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힌두교의 브라흐마의 시간체계 (kalpa)에 따르면, 매 칼파마다 14번의 대홍수가 있으며 각각 14명의 마누가 존재한다. 현재 우리의 시간은 7번째 칼파에 해당한다. 힌두교 전승의 {마누법전}은 대체로 이번 칼파의 첫번째 마누의 것으로 간주된다. 이 마누가 실존인물인지의 여부를 떠나, 인도신화에서 마누가 입법자라는 점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럼 {시대정신}류의 주장들이 말하는 마누와 모세의 연관성은? 굳이 말한다면 대체로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번째는 둘 다 "물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마누는 "대홍수"로부터 구원받았고, 모세는 "강물에서 건져져" 이집트 공주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산에서 신의 계시를 받은 입법자"라는 점이다. 마누라면 홍수 후 표류하다 정박하게 된 히말라야산이겠고, 모세라면 호렙산일 것이다.

    첫번째의 주장부터 간략하게 검토해 보자. 마누에 대응하는 고대 홍수설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세가 아니라 우투나피슈팀 (수메르), 노아 (히브리), 데우칼리온(그리스) 등으로 보아야 하며, {시대정신}류의 주장에서와 같이 마누와 모세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물"이라는 모티프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두번째 주장은? 마누와 모세가 공유하는 "입법자"로서는 지위는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산"이란 모티프는 잘못 적용된 것 같다. 일단, 마누가 "히말라야 산정에서 신의 법을 전수받았다"는 인도 고대문헌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누가 대홍수 중 히말라야에 "표류해" 법을 받은 것과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 법을 받은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히브리 성서에서 노아도 대홍수 후 표류를 마치고 아라랏 산에 내렸을 때 신으로부터 일종의 지시를 받는다: (1) 생육하고 번성할 것 (2) 육식허용, 단 피는 먹지 말 것. 사실상 마누에 대응하는 노아가 받은 이 간략한 명령은, 모세의 율법이나 {마누법전}에 담긴 수준의 내용과 거리가 멀다.




    § 미노스 = 모세 ?

    그리스 신화에는 두 명의 미노스가 등장한다. 둘 다 크레테의 왕이다. 첫번째 미노스는 제우스와 유로파 사이의 아들로서 데우칼리온과 아드리아네의 아버지이다. 죽어서는 저승에 있는 세 명의 재판관 중 하나가 된다. 두번째 미노스는 이 미노스의 손자로서 리카스토스(Lycastus)와 이다(Ida)의 아들이다.

    미노스 설화에 따르면, 미노스는 매 9년 마다 (혹은 왕이된 지 9년 후) 제우스가 탄생했다는 크레테 이다(Ida)산의 동굴, 혹은 제우스가 양육된 딕테/Dikte 동굴로 가서 아버지 제우스의 법을 받아 크레테인에게 전수한다.

    아래는 이다 산의 동굴.


    출처: Wikimedia Commons

    미노스의 이 일화를 다루고 있는 플라톤의 대화편 {법/Laws}를 읽어보도록 하자. 플라톤은 "미노스가 제우스로부터 법을 받아왔다"는 크레테인의 주장을 호메로스까지 소급하고 있다. (http://www.gutenberg.org/files/1750/1750-h/1750-h.htm)

    플라톤의 이 대화편 속에서 한 아테네인과 크레테인 클리니아스는 동굴 근처의 제우스 신전을 향해 함께 걸어가며 크레테 법률의 기원에 대해 담소한다.

    Athenian: To whom do you ascribe the authorship of your legal arrangements, Strangers? To a god or to some man?

    Clinias: To a god, Stranger, most rightfully to a god. We Cretans call Zeus our lawgiver; while in Lacedaemon, where our friend here has his home, I believe they claim Apollo as theirs. Is not that so, Megillus?

    Megillus: Yes.

    Athenian: Do you then, like Homer, say that Minos used to go every ninth year to hold converse with his father Zeus, and that he was guided by his divine oracles in laying down the laws for your cities

    Clinias: So our people say. And they say also that his brother Rhadamanthys,—no doubt you have heard the name,—was exceedingly just. And certainly we Cretans would maintain that he won this title owing to his righteous administration of justice in those days.

    Athenian: Yes, his renown is indeed glorious and well befitting a son of Zeus. And, since you and our friend Megillus were both brought up in legal institutions of so noble a kind, you would, I imagine, have no aversion to our occupying ourselves as we go along in discussion on the subject of government and laws. Certainly, as I am told, the road from Cnosus to the cave1 and temple of Zeus is a long one, and we are sure to find, in this sultry weather, shady resting-places among the high trees along the road: in them we can rest ofttimes, as befits our age, beguiling the time with discourse, and thus complete our journey in comfort.

    Clinias: True, Stranger; and as one proceeds further one finds in the groves cypress-trees of wonderful height and beauty, and meadows too, where we may rest ourselves and talk.

    ----- Plato. Plato in Twelve Volumes, Vols. 10-11 translated by R.G. Bur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67 & 1968.

    그럼 여기서 플라톤이 이 설화의 출처로 언급하고 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인용해 보자.

    .....There is a land called Crete, in the midst of the wine-dark sea, a fair, rich land, begirt with water, and therein are many men, past counting, and ninety cities. [175] They have not all the same speech, but their tongues are mixed. There dwell Achaeans, there great-hearted native Cretans, there Cydonians, and Dorians of waving plumes, and goodly Pelasgians. Among their cities is the great city Cnosus, where Minos reigned when nine years old, he that held converse with great Zeus, and was father of my father, great-hearted Deucalion. [book 19 170-179] --- Homer. The Odyssey with an English Translation by A.T. Murray, PH.D. in two volume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Ltd. 1919.

    이 경우, 모세와 미노스는 두가지는 유사하다. 하나는 법을 받으러 '산'으로 가는 모티프, 두번째는 '신이 직접 전수한 법'이다. 이 둘 이외에 모세와 미노스의 유사성은 그다지 찾기 힘들다. 그럼 미노스와 마누는? 역시 '산'과 '법' 이외에는 유사하지 않으며, 이 '산'의 모티프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다. 그럼 마누 = 미노스 = 모세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 디오니소스 = 미시스 = 모세 ?

    이집트의 이 "미시스"와 히브리인의 "모세". 이름만 들어서는 매우 유사하다. 게다가 둘다 입법자라니 더욱 흥미만점이다. {시대정신}은 (아니, 사실은 아차리아 S는) 아주 복잡한 논리를 구사해서 미시스(Mises)와 모세를 억지로 연결시키려고 하고있다. 이 논리는 사실 꽤 산만한데, 그런 이유로 {시대정신}이나 혹은 이 영상물이 바탕하고 있는 아차리아 S의 책(들)을 읽어보면서도 도대체 무슨 근거로 둘을 연결시켰는지 즉각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결국은 원전을 확인해 보아야만 했다.

    질문해 보자.

    1. "이집트의 미시스"란 도대체 누굴 말하는가?
    2. 이 미시스는 "입법자"인가?

    우선, 아차리아 S (본명 D. M. Murdock) 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아차리아 S의 {Christ Conspiracy} 속 {Moses, the Exodus, the Ten Commandments} 소챕터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아차리아 S는 모세라는 캐릭터는 지중해로부터 인도에 이르는 지역에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들이 얼마나 상호유사한 지를 말한다. 가령, 앞서 언급한 인도의 마누(Manou), 신의 산에서 "신의 법이 적힌 판을 가지고 내려왔다"는 바빌로니아의 네모(Nemo), 신생아 때 갈대배에 실려 강에 버려졌다가 살아났고 "신의 법이 적힌 석판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왔으며" 요술지팡이로 "물을 가르는 등의 기적을 행했다는 시리아의 미시스(Mises), 이집트의 첫번째 파라오인 마네스(Manes)/메네스(Menes), 그리고 크레테의 입법자 미노스(Minos) 등이다.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처음 읽으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피면 이상한 점이 속속 드러난다.


    § 바빌로니아의 네모?

    도대체 어떤 인물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출처를 알 수가 없다. 웹 검색엔진에서 "Nemo the lawgiver"라는 검색어를 쳐보면 검색된 거의 모든 싸이트는 아차리아 S 의 책 혹은 {시대정신}이 이 정체불명의 "입법자 네모"에 대해 적어놓은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가 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아차리아 S가 무슨 근거로 이 주장을 펼치는 지도 모른 채로 그녀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고 또 확산시키고 있다.

    그럼 바빌론 측 기록에서조차 등장하지 않는 이 "네모"에 대한 정보를 아차리아 S는 어디에서 끌어온 것일까?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보면 아예 검색이 되지 않는다. 아카리아 S의 저작에는 이 부분에 대한 출처가 나와있지 않으니, 나는 일단 세가지를 의심해 본다.

    첫째, 혹시 바빌로니아/앗시리아의 학문과 지식의 신 나부/네보를 오기한 것인가? 그렇다고해도 이 나부/네보가 "신의 산에서 법이 적힌 판을 가지고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수메르/바빌론/앗시리아 관련 학술지를 뒤져봐도 도무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둘째, "네모"라는 명사가 등장하는 유일한 기록은 기독교 교부 히에로니무스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옮긴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의 {요한복음} 7장 19절에 등장한다. 이 구절에는 "모세"도 나오고 "율법"도 언급되고, 또 정체불명의 "네모"도 나온다.

    라틴어로 된 문장을 살펴보자.

    "Nonne Moses dedit vobis legem et nemo ex vobis facit legem"

    자, 드디어 "네모"가 등장했다. 그럼 이 라틴어 문장을 번역해 보자.

    "모세/Moses가 너희에게 율법/legem을 주지 않았느냐? 너희 가운데 아무도/nemo 그 율법/legem을 지키는 사람이 없지 않느냐?"

    그런데 여기서 라틴어 "Nemo"는 인물이 아니라 "아무도" 즉, "노바디"를 뜻한다. 이 문장을 둘로 쪼갠 후, 전반부 문장의 주어를 "모세"로 하고 후반부 문장의 주어를 (뜬금없이) 라틴어 "Nemo"로 하고나서 "네모 또한 율법을 전했다"는 식으로 오독하면, 그것이 바로 아차리아 S가 주장하고 있는 바가 된다. 즉, "입법자 모세"와 "입법자 네모"가 탄생하는 것이다. 두가지 오류가 동시에 발생했다. 일단 라틴어 단어를 잘못 해독한 것이고, 두번째는 문장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설마 학부 때 고전학을 전공했다고 밝힌 아차리아 S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을까? 잘 모르겠다.

    세번째로 내가 의심하는 것은 모세가 죽은 여리고 근방의 산인 "네보"가 언급된 어떤 문장을 오독해서 이런 이상한 주장을 이끌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모세 5경의 하나인 {신명기} 34장은 모세가 죽음에 앞서 마지막으로 여리고/예리고가 보이는 맞은 편 느보산 정상에 올라 카나안을 바라보는 장면을 기록한다. 모세는 카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고 죽었다.

    인용한다.
    ....모세가 모압 광야에서 예리고 맞은편에 있는 느보산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자, 야훼께서 그에게 온 땅을 보여주셨다. 단에 이르는 길르앗 지방,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나쎄 지방, 서쪽 바다에 이르는 온 유다 지방,  네겝과 종려 도시 예리고 골짜기의 분지를 소알에 이르기까지 보이시며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한 땅이다. 이렇게 너의 눈으로 보게는 해준다마는, 너는 저리로 건너가지 못한다." 야훼의 종 모세는 그 곳 모압 땅에서 야훼의 말씀대로 죽어.... --- # 한국어 {공동번역} {{신명기}} 34장

    자, 그럼 자료를 보자.

    가령, 아래에 인용된 책은 1878년에 출판된 {The Fourth Books of Reading Lessons}라는 일종의 학생용 독서교본이다. 여기에 {The Journeying of the Israelites}란 장에 보면, 히브리인이 이집트를 나와 카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가 요약되어 있다.

     

    다음 문장을 읽어보자.

    ...From the top of Mount Abarim, or Nebo, the lawgiver, whose eyes were not dimmed, and who had suffered none of the infirmities of age, might survey a large tract of country.

    위의 문장에서 "Nebo, the lawgiver"의 쉼표를 빼면, 마치 "Nebo the lawgiver"처럼 보이게 된다. 이제 Nebo를 어떤 이유로 Nemo로만 바꾸면 "Nemo the lowgiver"가 탄생한다. 물론 원래 문장에서 lawgiver는 모세를 뜻한다.

    이 산 이름 "느보/네보"가 바빌론/앗시리아의 신 "네보"에서 왔다는 설 (그런데 왜 요르단 지역에?)도 있고, 혹은 "고지대"를 뜻하는 셈어에서 왔다는 설도 있는데, 전자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 간혹 모세가 사실은 "네보"신을 섬기던 신관이었다느니 하는 류의 학문적으로 신뢰도 낮은 주장들을 펼치기는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거의 무시되는 주장이다. 아무튼 아차리아 S는 주장의 근거를 대지 않고 있다.




    § (앗)시리아의 미시스?

    아차리아 S는 "정체가 모호한" 인물인 로이드 그레이엄 (Lloyd Graham)이 1975년에 출간한 {Deceptions and Myths of the Bible}를 이 주장의 근거로 드는 듯 하다. (카피캣 이론가들은 종종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책을 출간한다. 아차리아 S 역시 공식적으로 제대로 알려진 정보가 없다.) 물론 이 책이 이런 류의 주장을 처음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그 역사는 17세기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겠다.


    L. M. Graham, {Deceptions and Myths of the Bible}

    일단 그레이엄의 주장부터 옮기겠다. {Deceptions and Myths of the Bible} 147 페이지에 따르면 그레이엄의 주장은 이렇게 정리된다:

    1. 아라비아-앗시리아(?)-페니키아 일대에서 미시스(Mises)라 불리던 인물은 "신으로 부터 받은 법을 적은 석판 두 개"를 전수했고,
    2. 물을 가르거나,지팡이를 뱀으로 만드는 등의 기적들을 행했으며,
    3. 게다가 "바쿠스에게 바쳐진 오르페오스교의 찬가에 따르면", 이 미시스는 갈대로 엮인 상자 속에서 강물을 떠다니다가 구조되었으며, 그래서 "미시스"로 불리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리아의" 미시스가 모세의 직접적이며 정확한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차리아 S가 말하는 "이집트의 미시스"는 또 어디서 나온 소리일까?)

    그레이엄의 주장만 보면, 이 정체불명의 "미시스"는 모세이거나 혹은 모세라는 인물이 이 "미시스"로부터 표절된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도대체 이 "시리아의 미시스"는 누구인가? "이집트의 미시스"는 또 누구인가? 도대체 이 미시스는 어디서 어떤 신으로부터 어떤 법을 받아서 인간에게 전수했다는 걸까? 사실 앞서말한 마누-미노스 코넥션은 양념에 불과하다. 바로 이 "미시스"란 인물이 모세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는 심각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하나씩 풀어서 설명하겠다.

    그레이엄이 "아라비아/앗시리아/페니키아의 미시스"라고 언급한 그 인물을, {시대정신}에서는 "이집트의 미시스"라고 언급했고, {시대정신}을 감수한 아차리아 S는 자기 책에서 "이집트의 미시스"라고도 하고 "시리아의 미시스"라고도 한다. 그럼, 이 정체불명의 미시스는 아라비아 + 지중해 서안 + 이집트에서 모두 발견되는 존재라고 봐야 할 것인가? 유감스럽게 이집트에는 그런 이름의 인물 혹은 신이 없다.

    이런 연결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주 복잡한 트릭을 구사해야 한다.

    우선 아차리아 S가 {Gospel according to Acharya S}에 이에 대해 적은 제 73 페이지를 정리해 보겠다.


    Acharya S / D. M. Murdock, {Gospel according to Acharya S}

    아차리아 S는 우선 프랑스 근세의 작가인 볼테르 (Voltaire)를 언급한다. (이 부분은 뒤에 자세히 다루겠다.). 이어 미시건 대학의 교수이자 동성애 이론/운동가인 David M. Halperin의 글을 인용하는데, 이 글에 언급된 구약성서 인명사전인 Alfred Jones의 {Jones Dictionary of Old Testament Proper Name}의 한 내용이 등장한다. 그리고 각주에는 알프레드 존스의 이 책 속에 재인용 되어있는 AD 17세기 영국 인문학자/성서학자이자 영국국교회 주교인 Simon/Symon Patrick (1626-1707)의 구약성서 주석을 부분인용한다.

    여기 등장하는 17세기의 저명한 학자 사이먼 패트릭의 진술을 읽어보면, 그의 주장은 상당부분 17세기 초/중반의 프랑스 프로테스탄트 성서학자인 Samuel Bochart (1599 -1667)가 1646년에 발간한 두 권짜리 {Geographia Sacra seu Phaleg et Canaan}에 기반한 것인데, 보카르트의 이 책은 17세기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성서해석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지대한 영향"이란 옳는 방향을 뜻할 수도 있고 틀린 방향을 뜻할 수도 있는데, 지금 다루는 주제에 관해서는 후자에 해당한다. 여기서 바쿠스가 언급된 부분에서 알프레드 존스는 사이먼 패트릭을 각주에 언급한다.


    알프레드 존스의 {Jones Dictionary of Old Testament Proper Name}

    우선, 알프레드 존스의 {Jones Dictionary of Old Testament Proper Name}의 189페이지를 읽어보자. 그는 "야훼/여호와 닛시"라는 히브리 단어를 설명하면서 사이먼 패트릭의 주석을 인용했다. 패트릭은 (정확히는Bochart와 당시의 또 다른 인문/성서학자 Huetiu는, (현대 카피캣 이론가들의 주장과 정반대로) "이집트과 그리스 신화의 모티브가 히브리 성서의 모티프를 베낀 것"이라는 주장을 전개했다.

    존스의 설명을 인용한다.

    ....Bishop Patrick says here, From this inscription Bochartus thinks came the name Dionysus among the Greeks; who, from this word Nissi, called him Nissaus, or Nysaus; and, adding the name of their own Jupiter to it, called him Διόνυσος/Dyonysos. For Bacchus is said to have been a great warror, and to have made mighty conquests; and, as Huetius observes, is called Arsaphes, which is the very name given to Moses by the Egyptians, who called him Osarsiph. Nay, in Orpheus's hymns, Bachhus is called Mises, which seems to be the same with Moses; out of whose story all that the Greeks and others say of Bacchus seems to have been framed....

    정리하자면,

    1. Bochart는 "디오니소스"란 단어의 어원을 "디오스 (=제우스)" 와 (디오니소스가 양육된) "니소스"가 합성된 단어로 보았는데, 이 단어는 원래 "야훼는 나의 깃발"이란 뜻의 "야훼 닛시" 란 히브리어가 그리스어로 변형된 것이다. 즉,"야훼 닛시"에서 "야훼"를 신이란 일반명사로 바꾸고 이 "신"을 그리스의 "제우스"로 바꾸면 '디오니소스"처럼 변형된다는 주장이다.
    2. Huetius의 진술에 따르면, (프톨레마이오스조의) 이집트인들은 디오니소스를 "하/아르사페스", 모세를 "오사르시프"라 불렀다. 그러니까 "디오니소스 = 아르사페스 = 오사르시프 = 모세"다. Huetius의 의도는 (오늘날 카피캣 이론가들과는 정반대로) 모세로부터 디오니소스란 인물이 유도되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있다.
    3. {오르페오스 찬가} 속에서 바쿠스는 "미시스" (정확히는 미세/미사) 라고 불리는데 이 인물은 아마도 "모세"라는 이름에서 온 것 같다. 그리스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디오니소스/바쿠스에 대해 언급한 이야기들은 미시스/모세의 이야기에서 짜깁기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 여기 사용된 "Nay"란 단어의 17세기 용례는 "No"가 아니라 "심지어/더 나아가/moreover"의 의미를 지닌다.)
    4. 따라서 그리스인과 이집트인은 히브리인의 모세를 짝깁기해 그들의 신화를 조작해냈다.

    실로 정말 엄청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너무 놀라지는 말자. 학자들이란 원래 그런 것을 업으로 하는사람들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모든 주장은 오늘날 모두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부정된다. 사실은 그냥 원전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17세기 "대학자"들이 얼마나 무모한 "추론"을 제기한 것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 야훼닛시 = 디오니소스?

    우선, "야훼/여호와 닛시"에 관한 일화가 등장하는 {출애급기} 17장의 내용을 읽어보자.

    ... 아말렉 사람들이 몰려와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움을 벌였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다. "장정을 뽑아서 내일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시오. 나는 하느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서 있겠소." 여호수아는 모세가 지시하는 대로 아말렉과 싸우러 나갔다. 모세와 아론과 후르는 언덕 위에 올라가 있었다. 모세가 팔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모세의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갖다 놓고 모세를 그 위에 앉히고 아론과 후르는 모세의 팔을 좌우에서 각각 붙들어 떠받치니 해가 질 때까지 그의 팔은 처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그 백성을 칼로 쳐 이겼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 일을 책에 기록하여 후세에 남겨두어라. 그리고 내가, 아무도 아말렉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늘 아래에서 전멸시키겠다고 여호수아에게 똑똑히 일러주어라." 모세는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야훼 니씨라고 이름을 붙이고 "야훼의 사령기를 향해 손을 들자. 야훼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워주시리라." 하고 외쳤다. ..--- {출애굽기} 17장, 공동번역

    "디오니소스"란 이름의 기원은 사실 현재에도 약간 모호하다. 디오니소스라는 신 자체가 그리스 토착신이 아닌 이유가 크다. BC 12/13세기 미케네 유물에서 "디-워-누-소스"란 형태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인물이 "디오니소스"라면 그 무렵까지 기원을 소급할 수 있다. 현대 언어학과 고고학은 AD 17세기의 그것에 비해 보다 정확한 어원추적을 가능하게 해 주었는데,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설"들은 대체로 아래와 같다.

    1. 디오니소스 = 디오스 (그리스어, 제우스의) + 니소 (γυός 트리키아-프리기아 방언, 아들) = 제우스의 아들 --- H. J. Rose. A Handbook of Greek Mythology. (New York: E. P. Dutton & Co., 1959), 149.
    2. 디오니소스 = 디오스 + 니사 (디오니소스의 양육지, 혹은 양육한 님페들의 이름) 
    3. 디오니소스 = 디오스 + 누사 (고대 그리스어, 나무): 그 기원을 (무화과)나무의 신으로 볼때

    어느 것이나 "야훼 닛시 = 디오니소스" 이론보다는 타당하게 보인다.

    아차리아 S의 책에 인용된 사이먼 패트릭의 {사무엘} 상편 6:19절의 주석도 정말 놀라운 논리의 도약을 보여준다.

    .....Out of this story, as Bochartus ingeniously conjectures, the Greeks forged the fable of Bacchus ; who was very angry with the Athenians, because they did not receive his mysteries with pomp, when they were brought out of Bceotia into Attica ; and smote them with a sore disease in their secret parts....

    ....이 이야기로부터, 보카르투스가 추론한 바대로 그리스인들은 바쿠스(디오니소스, 필자 주) 이야기를 짜맞췄다. 바쿠스는 그가 보에티아에서 아테네로 가져온 그의 미스테리아 종교를 아테네인들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테네인들에게 매우 분노하여, 그들의 은밀한 신체부분에 욕창을 일으켜 징벌했다...  --- # 번역: 최광민

    보더 더 긴 인용을 찾아 원전을 확인해 보자. 사이먼 패트릭은 구약성서 {사무엘} 상편 6장 19절에 대한 주석에서 이렇게 적었다.


    Simon Patrick, {A Critical Commentary and Paraphrase on the Old and New Testament} Volume 2
    https://books.google.com/books?id=mwlMAAAAYAAJ&printsec=frontcover&source=gbs_ge_summary_r&cad=0#v=onepage&q&f=false

    He smote the men of Beth-shemesh, because they had looked into t/ie ark] Which God had forbidden, not only to the common people, but to the sons of Levi also (Numb. iv. 20). But their curiosity made them forget their duty: being desirous either to see whether the Philistines had taken out the tables of the covenant; or that they might have a view of such an ancient sacred monument, written by God's own hand. Out of this story, as Bochartus ingeniously conjectures, the Greeks forged the fable of Bacchus; who was very angry with the Athenians, because they did not receive his mysteries with pomp, when they werebrought out of Boeotia into Attica; and smote them with a sore disease in their secret parts. In his Canaan, lib. i. cap. 18, in the latter end.

    그는 여기서 구약성서의 한 일화와 디오니소스 설화의 한 일화를 나란히 비교하고 있다.

    그럼 원래의 구약성서를 살펴보자. {사무엘} 상편 5-6장 전문이다 (한국어 공동번역)

    [사무엘 상편 5장] 불레셋 군은 빼앗은 하느님의 궤를 에벤에젤에서 아스돗으로 옮겼다. 불레셋 군은 그 하느님의 궤를 다곤 신전으로 옮겨다가 다곤 바로 곁에 두었다. ....이렇게 되자 아스돗 사람들은 겁에 질려 "이스라엘 신의 궤를 여기에 두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의 신 다곤과 우리에게 마구 행패를 부린다." 하면서 사람을 보내어 불레셋 추장들을 불러모아 놓고,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의논한 끝에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갓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갓으로 옮겼다. 그런데 그것을 그리로 옮기자 야훼께서 손으로 그 성도 호되게 치시는 바람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온 성에 종기가 돌아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모조리 종기가 났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궤를 다시 에크론으로 보냈다......  [6장] 야훼의 궤가 불레셋 지방에 머물러 있은 지 칠 개월이 지났다. 불레셋 사람들은 사제들과 점쟁이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야훼의 궤를 어떻게 하면 좋겠소? 본래 있던 대로 돌려보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 보시오." 그들이 대답하였다. "이스라엘 신의 궤를 돌려보낼 때 그냥 보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면죄제물을 얹어서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병이 나을 것입니다. 그가 왜 당신들에게서 손을 떼지 않으시는지 그 까닭을 알게도 될 것입니다." ...마침 벳세메스 사람들은 골짜기에서 밀을 거두어들이다가 고개를 들어 궤를 보고는 기뻐하며 나가 맞았다. 수레는 벳세메스에 있는 여호수아의 밭에 와 멎었는데, 거기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수레를 부수어 암소를 야훼께 번제로 드렸다. 레위 사람들이 야훼의 궤와 금예물이 든 상자를 그 큰 바위 위에 내려놓자 그 날로 벳세메스 사람들이 야훼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런데 야훼께서는 벳세메스 사람들이 야훼의 궤를 보았다고 해서 그들을 치시어 그 중에서 칠십 명이나 죽이셨다. 그 곳 사람들은 야훼께서 호되게 치시자 슬피 울었다. 벳세메스 사람들은 "이 거룩하신 하느님 야훼 앞에는 아무도 나설 수 없으니 어디로 보낼까?" 하다가  키럇여아림 주민들에게 전갈을 보내어 "불레셋 사람들이 야훼의 궤를 돌려보냈소. 내려와 모시고 올라가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사무엘 패트릭이 주석하는 내용은 이스라엘 측이 블레셋인들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성궤를 빼앗긴 후 후환을 두려워한 블레셋인들이 성궤를 돌려주는 일화를 담고 있다. 이때 처음 성궤를 블레셋인들로부터 인계받은 벳세메스인들의 일부가 성궤 안을 들여다보았다가 다수의 주민이 신의 징벌을 받아 죽었다는 일화다.

    그렇다면 디오니소스가 아테네인들을 징벌한 일화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상당히 많은 기록이 전해지는데, 한번 정리해 보겠다:

    디오니소스가 남부 그리스의 이타카에 도착했을때, 아테네인 이카리오스는 그를 환대했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이카리오스에게 포도재배법과 포도주 제조법을 전수해 준다. 이카리오스는 제조한 포도주를 목동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포도주에 취한 그들은 이카리오스가 자신들을 독살하려한다고 생각하고 이카리오스를 죽였다가, 술이 깬 후 암매장했다. 이카리오스의 딸인 처녀 에리고네는 개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나서는데 결국 아버지가 암매장 되어있는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이에 디오니소스 (혹 제우스)는 이들 부녀와 개를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고, 아테네인들에게는 질병을 보내고 또 처녀들은 이유도 없이 에리고네처럼 목을 매고 자살하게 만드는 징벌을 내렸다. / 정리: 최광민

    (위)-아폴로도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비블로테카}에서 인용한다.

    Pseudo-Apollodorus, Bibliotheca 2. 191 - 192 (trans. Aldrich) (Greek mythographer C2nd A.D.) :

    "Pandion became king [of Athens]. It was during his reign that Demeter and Dionysos came to Attika. Keleus welcomed Demeter to Eleusis, and Ikarios received Dionysos, who gave him a vine-cutting and taught him the art of making wine. Ikarios was eager to share the god’s kindness with mankind, so he went to some shepherds, who, when they had tasted the drink and then delightedly and recklessly gulped it down undiluted, thought they had been poisoned and slew Ikarios. But in the daylight they regained their senses and buried him. As his daughter was looking for him, a dog named Maira, who had been Ikarios’ faithful companion, unearthed the corpse; and Erigone, in the act of mourning her father, hanged herself."

    Aelian, On Animals 7. 28 (trans. Scholfield) (Greek natural history C2nd to 3rd A.D.) :

    "When Ikarios was slain by the relatives of those who, after drinking wine for the first time, fell asleep (for as yet they did not know that what had happened was not death but a drunken stupor), the people of Attika suffered from disease, Dionysos thereby (as I think) avenging the first and the most elderly man who cultivated his plants. At any rate the Pythian oracle declared that if they wanted to be restored to health they must offer sacrifice to Ikarios and to Erigone his daughter and to her hound which was celebrated for having in its excessive love for its mistress declined to outlive her."

    Pseudo-Hyginus, Fabulae 130 (trans. Grant) (Roman mythographer C2nd A.D.) :

    "When Father Liber [Dionysos] went out to visit men in order to demonstrate the sweetness and pleasantness of his fruit, he came to the generous hospitality of Icarius and Erigone. To them he gave a skin full of wine as a gift and bade them spread the use of it in all the other lands. Loading a wagon, Icarius with his daughter Erigone and a dog Maera came to shepherds in the land of Attica, and showed them the kind of sweetness wine had. The shepherds, made drunk by drinking immoderately, collapsed, and thinking that Icarius had given them some bad medicine, killed him with clubs. The dog Maera, howling over the body of the slain Icarius, showed Erigone where her father lay unburied. When she came there, she killed herself by hanging in a tree over the body of her father. Because of this, Father Liber [Dionysos] afflicted the daughters of the Athenians with alike punishment. They asked an oracular response from Apollo concerning this, and he told them they had neglected he deaths of Icarius and Erigone. At this reply they exacted punishment from the shepherds, and in honour of Erigone instituted a festival day of swinging because of the affliction, decreeing that through the grape-harvest they should pour libations to Icarius and Erigone. By the will of the gods they were put among the stars. Erigone is the sign Virgo whom we call Justice; Icarius is called Arcturus among the stars, and the dog Maera is Canicula."

    율법으로 금지된 행위 (성궤를 들여다보는 것)를 하여 신의 징벌을 받았다는 {사무엘} 상편 6장의 이야기와, 디오니소스가 자신이 추종자를 죽였다는 이유로 아테네인들을 응징한 이야기는, 과연 17세기의 석학 사이먼 패트릭이 (정확히는 보카르트가) 주장한 것처럼 동일 선상에 놓고 볼 "유사한" 일화들인 것일까?




    § (디오니소스 = 하르사페스), (오사르시프 = 모세) ?


    하르사페스, (출처: Wikimedia Commons)

    여기서는 보다 더 복잡한 트릭이 필요하다. 고대 이집트의 신 중에 헤뤼사프라는 양머리를 한 신이 있다. 여러 신의 속성이 교차되는 이집트 종교의 특성 상, 이 신은 "양 머리"라는 모티프를 통해 "라"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또 라와 동일시된 오시리스를 통해 오시리스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리스 왕조인 프틀레마이오스 왕조에서 이 헤뤼사프는 헤라클레스와 동일시되어 하르사페스/Ἁρσαφής 바 불렸고, 전통적인 헤뤼사프의 숭배도시는 헤라클레이폴리스로 개명되었다.

    그럼 하르사페스와 디오니소스는 어떻게 연결할까? 헤로도토스 등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원래 형태의 다소 그로테스크한 디오니소스교에 거부감을 가졌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집트 오시리스교의 여러 신비주의 상징을 도입해 새로운 버전의 디오니소스교를 그리스에 재도입했다. 그런 방식으로 오시리스를 매개로 디오니소스가 헤뤼사프/하르사페스와 연결된다. 게다가 디오니소스는 헤라클레스처럼 세상을 떠돌며 편력한 영웅이기도 하다!!! - 이런 식으로 느슨하게 연결하는 것은 엄정하지 않은 비교신화/종교 작가들의 한가지 특징이다.

    그럼 "이집트의 오사르시프"는 또 누구인가? 이 내용은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의 이집트 역사가 마네토의 책 {Aegyptiaca} 에 나오는 어떤 내용을 서기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아피온 반박}에 인용하고 반박한 내용에서 온 것이다. 마네토의 원작은 소실되었지만, 요세푸스가 매우 자세하게 원문을 인용하기 때문에 내용을 파악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살펴보자.

    (주장의 근거가 현재 전해지지는 않지만) 마네토는 여기서 이집트에서 힉소스(족)가 추방되던 무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네토는 힉소스가 이집트에서 추방된 후 카나안/유대아 지역으로 들어가 정착해 예루살렘을 건립했다고 진술한다. 이 진술을 바탕으로, 요세푸스는 마네토가 언급한 힉소스는 바로 모세의 지도 하에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마네토는 이집트에서 축출된 힉소스가 예루살렘에 정주하게 되었다고는 했지만, 이들이 히브리인이라고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어서 마네토는 그로부터 200년 후에 이집트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파라오 아메노피스는 이집트를 정화하고자 나병환자와 천민 8만 여명을 본토에서 몰아내 아바리스 지역의 채석장에서 노역하게 했다. 이 가운데는 이집트의 신관들도 포함되었다. 이 아바리스는 이 전에 힉소스가 도읍했던 동부 삼각주 지역었는데, 이들은 (역시 그들과 같이 축출된) 헬리오폴리스 출신의 오시리스 신관이었던 오사리시프를 지도자로 세웠고, 이 오사리시프는 전통적인 이집트 신들에 대한 숭배를 중단하고 이집트 종교에서 금기시된 동물을 먹는 등 이집트 전통과 상반되는 여러가지 "율법을 제정하여" 시행했다. 아울러 오사리시프는 쫓겨난 힉소스를 다시 이집트로 끌어와 아메노피스와 그의 아들 람세스를 권좌에서 축출하고 누비아로 쫓아보낸 후 13년 간 힉소스와 이집트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오사리시프의 통치기간 동안 이집트의 신전을 파괴되고 신성한 동물들은 먹이가 되었다. 이후 아메노피스와 람세스는 다시 권력을 빼앗고 오사리시프와 그의 추종자 및 힉소스를 몰아낸 후 이집트 종교를 회복한다. 이후 오사리시프는 그 이름을 "모세"로 개명했다는 것이 주요골자다.

    이 오사리시프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몇가지 설이 분분한데, 대체로 힉소스 지배에 대한 기억 + 아케나텐 통치시절에 대한 기억 + 반-유대인적 해석이 합쳐진 실존인물 혹은 가공의 전설적 인물로 보는 것이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관점이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거리는 오사리시프가 모세로 개명했다는 부분인데, 사실 마네토는 히브리인에 대해서는 특정해서 말하는게 없으므로 이 모세가 히브리인을 이끌었던 그 모세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요세푸스는 오사리시프가 등장하기 200년 전에 히브리인/힉소스가 이집트를 떠나 유대아에 정착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이 오사리시프를 모세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요세푸스가 마네토의 진술을 직접인용한 부분만 추려봤다.

    • "This king was desirous to become a spectator of the gods, as had Orus, one of his predecessors in that kingdom, desired the same before him; he also communicated that his desire to his namesake Amenophis, who was the son of Papis, and one that seemed to partake of a divine nature, both as to wisdom and the knowledge of futurities." 
    • "how this namesake of his told him that he might see the gods, if he would clear the whole country of the lepers and of the other impure people; that the king was pleased with this injunction, and got together all that had any defect in their bodies out of Egypt; and that their number was eighty thousand; whom he sent to those quarries which are on the east side of the Nile, that they might work in them, and might be separated from the rest of the Egyptians." 
    • "there were some of the learned priests that were polluted with the leprosy; but that still this Amenophis, the wise man and the prophet, was afraid that the gods would be angry at him and at the king, if there should appear to have been violence offered them; who also added this further, [out of his sagacity about futurities,] that certain people would come to the assistance of these polluted wretches, and would conquer Egypt, and keep it in their possession thirteen years; that, however, he durst not tell the king of these things, but that he left a writing behind him about all those matters, and then slew himself, which made the king disconsolate." 
    • "After those that were sent to work in the quarries had continued in that miserable state for a long while, the king was desired that he would set apart the city Avaris, which was then left desolate of the shepherds, for their habitation and protection; which desire he granted them. Now this city, according to the ancient theology, was Typho's city. But when these men were gotten into it, and found the place fit for a revolt, they appointed themselves a ruler out of the priests of Hellopolis, whose name was Osarsiph, and they took their oaths that they would be obedient to him in all things. He then, in the first place, made this law for them, That they should neither worship the Egyptian gods, nor should abstain from any one of those sacred animals which they have in the highest esteem, but kill and destroy them all; that they should join themselves to nobody but to those that were of this confederacy. When he had made such laws as these, and many more such as were mainly opposite to the customs of the Egyptians, (23) he gave order that they should use the multitude of the hands they had in building walls about their City, and make themselves ready for a war with king Amenophis, while he did himself take into his friendship the other priests, and those that were polluted with them, and sent ambassadors to those shepherds who had been driven out of the land by Tefilmosis to the city called Jerusalem; whereby he informed them of his own affairs, and of the state of those others that had been treated after such an ignominious manner, and desired that they would come with one consent to his assistance in this war against Egypt. He also promised that he would, in the first place, bring them back to their ancient city and country Avaris, and provide a plentiful maintenance for their multitude; that he would protect them and fight for them as occasion should require, and would easily reduce the country under their dominion. These shepherds were all very glad of this message, and came away with alacrity all together, being in number two hundred thousand men; and in a little time they came to Avaris. And now Amenophis the king of Egypt, upon his being informed of their invasion, was in great confusion, as calling to mind what Amenophis, the son of Papis, had foretold him; and, in the first place, he assembled the multitude of the Egyptians, and took counsel with their leaders, and sent for their sacred animals to him, especially for those that were principally worshipped in their temples, and gave a particular charge to the priests distinctly, that they should hide the images of their gods with the utmost care he also sent his son Sethos, who was also named Ramesses, from his father Rhampses, being but five years old, to a friend of his. He then passed on with the rest of the Egyptians, being three hundred thousand of the most warlike of them, against the enemy, who met them. Yet did he not join battle with them; but thinking that would be to fight against the gods, he returned back and came to Memphis, where he took Apis and the other sacred animals which he had sent for to him, and presently marched into Ethiopia, together with his whole army and multitude of Egyptians; for the king of Ethiopia was under an obligation to him, on which account he received him, and took care of all the multitude that was with him, while the country supplied all that was necessary for the food of the men. He also allotted cities and villages for this exile, that was to be from its beginning during those fatally determined thirteen years. Moreover, he pitched a camp for his Ethiopian army, as a guard to king Amenophis, upon the borders of Egypt. And this was the state of things in Ethiopia. But for the people of Jerusalem, when they came down together with the polluted Egyptians, they treated the men in such a barbarous manner, that those who saw how they subdued the forementioned country, and the horrid wickedness they were guilty of, thought it a most dreadful thing; for they did not only set the cities and villages on fire but were not satisfied till they had been guilty of sacrilege, and destroyed the images of the gods, and used them in roasting those sacred animals that used to be worshipped, and forced the priests and prophets to be the executioners and murderers of those animals, and then ejected them naked out of the country. It was also reported that the priest, who ordained their polity and their laws, was by birth of Hellopolls, and his name Osarsiph, from Osyris, who was the god of Hellopolls; but that when he was gone over to these people, his name was changed, and he was called Moses."
    • "he then, upon their request, gave them that city to inhabit, which had formerly belonged to the shepherds, and was called Avaris; whither when they were gone in crowds,"
    • "they chose one that had formerly been priest of Hellopolls; and that this priest first ordained that they should neither worship the gods, nor abstain from those animals that were worshipped by the Egyptians, but should kill and eat them all, and should associate with nobody but those that had conspired with them; and that he bound the multitude by oaths to be sure to continue in those laws; and that when he had built a wall about Avaris, he made war against the king." 
    • "this priest sent to Jerusalem to invite that people to come to his assistance, and promised to give them Avaris; for that it had belonged to the forefathers of those that were coming from Jerusalem, and that when they were come, they made a war immediately against the king, and got possession of all Egypt." He says also that "the Egyptians came with an army of two hundred thousand men, and that Amenophis, the king of Egypt, not thinking that he ought to fight against the gods, ran away presently into Ethiopia, and committed Apis and certain other of their sacred animals to the priests, and commanded them to take care of preserving them." 
    • "the people of Jerusalem came accordingly upon the Egyptians, and overthrew their cities, and burnt their temples, and slew their horsemen, and, in short, abstained from no sort of wickedness nor barbarity; and for that priest who settled their polity and their laws," he says," he was by birth of Hellopolis, and his name was Osarsiph, from Osyris the god of Hellopolis, but that he changed his name, and called himself Moses.
    • "on the thirteenth year afterward, Amenophis, according to the fatal time of the duration of his misfortunes, came upon them out of Ethiopia with a great army, and joining battle with the shepherds and with the polluted people, overcame them in battle, and slew a great many of them, and pursued them as far as the bounds of Syria."

    각설하고, 그럼 설령 오사리시프가 모세라고 치더라도, 이 오사리시프/모세를 디오니소스/하르사페스와 어떻게 연결지을 것인가? 오사리시프가 오시리스의 신관이었다는 점을 들어서? 사실 이 둘의 연결고리는 매우 불분명하다. 오사리시프가 히브리인의 모세가 아니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 미세/미사 = 디오니소스 = 모세 ?

    아차리아 S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일련의 주장의 근거가 된 핵심열쇠는 오르페오스교의 찬가 41번 (번역본에 따라서는 42번이 되기도 한다)가 쥐고 있다. 이 찬가는 그리스어로 "미세" (영어표기로 Mises 와 같다) 혹은 "미사"로 불리는 어떤 혼합적인 성격의 (여)신에게 바쳐진다.

    전문을 인용한다. http://www.theoi.com/Text/OrphicHymns2.html

    #41: To Mises (Misa)

    The Fumigation from Storax.
    Call Thesmophorus, spermatic God [Dionysos], of various names, who bears the leafy rod:
    Mises [Misa], ineffable, pure, sacred queen, two-fold Iacchus, male and female seen:
    Illustr'ous, whether to rejoice is thine in incense offer'd, in the fane divine;
    Or if in Phrygia most thy soul delights, performing with thy mother sacred rites;
    Or if the land of Cyprus is thy care, well pleas'd to dwell with Cytherea [Kythereia] fair;
    Or if exulting in the fertile plains with thy dark mother Isis, where she reigns,
    With nurses pure attended, near the flood of sacred Egypt, thy divine abode:
    Wherever resident, blest pow'r attend, and with benignant mind these labours end.

    위에 언급된 그레이엄은 이 찬가 속에 시리아의 미시스란 '인물'이 갈대상자에서 구원받았다는 모티프가 등장한다고 했지만, 사실 이 모티프는 미세/미사 찬가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찬가 속의 미세/미사라는 신의 성격을 두고 여러가지 논란이 있다. 이 찬가집 속에서 여러 신들은 디오니소스와 일치된다 (그래서 학자들은 찬가 #41은 사실상은 바쿠스/디오니소스에 대한 찬가로 보고있다.) 이 동일화 과정은 다소 복잡하다. 즉, 디오니소스는 여신 미세/미사이며, 자웅동체적인 야코스인 동시에, 프리기아에서는 그 어머니가 키벨레이고, 이집트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이시스라 불린다 (이것은 약간 이상하긴 하다. 디오니소스는 일반적으로 오시리스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찬가는 특정종교의 신자들이 디오니소스를 표상하는 방식을 담고 있을 뿐이다.)

    또 이번에는 아차리아 S가 이 '미세'에 대한 다른 레퍼런스로 제시하는 그리스 시인 헤론다스의 희곡작품 {Mimes} 1.56을 또 인용해 보겠다. 사실 이 작품은 오르페오스 찬가와는 달리 종교적 작품은 아니며 다만 미세/미사의 축제(Decent of Mise/Misa, Kathodos 축제)에 대한 언급이 등장할 뿐이다. 이 작품에서 미세/미사는 여신 코레와 동일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 미세/미사는 그저 여신으로 간주된다.


    Herondas, {The Mimes of Herodas} 1.56 : http://www.archive.org/details/mimesherodas01herogoog


    Herondas, {The Mimes and fragments}, https://archive.org/details/mimesfragments00hero


    위의 두 고대 작품은 미세/미사/미시스라는 이 여신에 대해 흥미로운 정보를 준다. 원래, 이 미세/미사/미시스는 소아시아의 비밀종교에서 섬겨지던 저승의 여신으로, 엘레우스시스 비밀종교의 데메테르 및 코레, 프리기아의 키벨레, 키프로스의 아프로디테, 이집트의 이시스 등과 동일시되거나 연관되었다. 명목 상 미세/미사/미시스에게 바쳐지는 오르페오스 찬가 #41은 사실은 앞서 말한대로 디오니소스에게 바쳐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계열의 종교에서 디오니소스는 명부에 가서 세멜레를 데리고 오는 일화를 통해 또한 '명부의 신'으로도 연결된다.




    § 연결의 트릭

    모든 재료가 준비되었으니 아차리아 S 처럼 이들을 한번 연결시켜 보도록 하자.


    §§ 첫번째 트릭 : 디오니소스 = 미시스

    이렇게 여신 미세/미사를 남신 디오니스소와 연결시킨 후 (디오니소스 = 미세/미사), 이제 아예 디오니스스를 '미세/미사'라고 불러보자. 이것이 첫번째 트릭이다.


    §§ 두번째 트릭 : 모세 = 미시스

    두번째 트릭은, "모세"를 음가가 유사한 "미시스'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의 미시스는 위에서 말한 미세/미사/미시스와 같을 필요는 없다. 그냥 음가만 유사하게 만들면 된다. 사실 미세/미사/미시스와 모세는 M/S란 두 음가 덕분에 매우 유사하게 들린다.

    {출애굽기}는 모세라는 이름의 어원을 설명하면서, 모세를 강물에서 "건져내었다"는 의미로 이집트 공주가 히브리어 어원 "מָשָׁה 마샤"를 바탕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설명을 붙인다. 이 주장을 "히브리어 기원설"이라 부를 수 있다.

    "...그 아이가 다 자란 다음에, 그 여인이 그 아이를 바로/파라오의 딸에게 데려다 주니, 공주는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 공주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하면서, 그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다..." --- # 한국어 표준새번역, {출애굽기} 2:10

    또 한가지 다른 설명은 20세기에 등장한 가설로서, 모세라는 이름의 원형을 동시대에 사용되던 이집트 파라오들의 이름들, 가령 프타-모세, 투트-모세나 람세스 등에서 찾는 것이다. 즉, "이집트어 기원설"이라 볼 수 있다. 이 경우, mses/msis는 "~부터 태어난" 혹은 "~의 아들"이 되며, 흔히 그 앞에는 신의 이름이 붙는다. 가령, 프타-모세, 투트-모세, 라-므시스/람세스는 각각 "프타의 아들", "토트의 아들", 그리고 "라의 아들"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럼 "모세"를 (라-)"므시스"의 어미형과 동일하다고 보고 이 "므시스"를 "미시스"와 연결지으면, 이번에는 모세 = 미시스를 유도해 낼 수 있다. 이것이 두번째 트릭이다. 물론 이 이집트의 모세/미시스/미세스와 오르페오스 찬가 #41의 미세/미사/미시스는 음가를 제외하고는 전혀 같지 않다.


    §§ 세번째 트릭 : 디오니소스/미시스 = 모세

    앞의 두개의 논리를 합쳐서 "미시스"를 중간매개로 하면 디오니소스 = 미시스 = 모세 이론이 완성될 듯 싶다. 그런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집트에는 어떤 "미시스"란 신도 인물도 없다. (이집트의 입법자는 '마네스'다). 그리고 유사한 이름의 어떤 인물이 신의 법이 적힌 돌판을 인간에게 전수했다거나, 바다를 갈랐다는 설화도 없다. 그럼 그레이엄이나 아차리아 S, 그리고 {시대정신} 등이 주장하고 있는 "모세와 행적조차 동일한 미시스"는 도대체 어디에서 등장한 것일까?

    이 세번째 트릭은 18세기 프랑스의 저명한 문필가였던 볼테르에 의해 "명쾌하게" 제시된다. 그의 설명은 앞서 언급된 17세기에 인문학자/성서학자들의 "과감한" 주장들을 매끄럽게 이어붙인 것이다.

    볼테르의 {철학사전}의 '바쿠스' 항목을 인용한다.


    BACCHUS. - Voltaire, The Works of Voltaire, Vol. III (Philosophical Dictionary Part 1) [1764], https://archive.org/details/worksofvoltairec03volt

    Of all the true or fabulous personages of profane antiquity Bacchus is to us the most important. I do not mean for the fine invention which is attributed to him by all the world except the Jews, but for the prodigious resemblance of his fabulous history to the true adventures of Moses.

    The ancient poets have placed the birth of Bacchus in Egypt; he is exposed on the Nile and it is from that event that he is named Mises by the first Orpheus, which, in Egyptian, signifies “saved from the waters,” according to those who pretend to understand the ancient Egyptian tongue, which is no longer known. He is brought up near a mountain of Arabia called Nisa, which is believed to be Mount Sinai. It is pretended that a goddess ordered him to go and destroy a barbarous nation and that he passed through the Red Sea on foot, with a multitude of men, women, and children. Another time the river Orontes suspended its waters right and left to let him pass, and the Hydaspes did the same. He commanded the sun to stand still; two luminous rays proceeded from his head. He made a fountain of wine spout up by striking the ground with his thyrsis, and engraved his laws on two tables of marble. He wanted only to have afflicted Egypt with ten plagues, to be the perfect copy of Moses.

    Vossius is, I think, the first who has extended this parallel. The bishop of Avranches, Huet, has pushed it quite as far, but he adds, in his “Evangelical Demonstrations,” that Moses is not only Bacchus, but that he is also Osiris and Typhon. He does not halt in this fine path. Moses, according to him, is Æsculapius, Amphion, Apollo, Adonis, and even Priapus. It is pleasant enough that Huet founds his proof that Moses is Adonis in their both keeping sheep: “Et formosus oves, ad flumina pavit Adonis.”

    He contends that he is Priapus because Priapus is sometimes painted with an ass, and the Jews were supposed, among the Gentiles, to adore an ass. He gives another proof, not very canonical, which is that the rod of Moses might be compared to the sceptre of Priapus. “Sceptrum tribuitur Priapo, virga Mosi.” Neither is this demonstration in the manner of Euclid.

    We will not here speak of the more modern Bacchuses, such as he who lived two hundred years before the Trojan war, and whom the Greeks celebrated as a son of Jupiter, shut up in his thigh. We will pause at him who was supposed to be born on the confines of Egypt and to have performed so many prodigies. Our respect for the sacred Jewish books will not permit us to doubt that the Egyptians, the Arabs, and even the Greeks, have imitated the history of Moses. The difficulty consists solely in not knowing how they could be instructed in this incontrovertible history. With respect to the Egyptians, it is very likely that they never recorded these miracles of Moses, which would have covered them with shame. If they had said a word of it the historians, Josephus and Philo, would not have failed to have taken advantage of it. Josephus, in his answer to Appion, made a point of citing all the Egyptian authors who have mentioned Moses, and he finds none who relate one of these miracles. No Jew has ever quoted any Egyptian author who has said a word of the ten plagues of Egypt, of the miraculous passage through the Red Sea, etc. It could not be among the Egyptians, therefore, that this scandalous parallel was formed between the divine Moses and the profane Bacchus.

    It is very clear that if a single Egyptian author had said a word of the great miracles of Moses all the synagogue of Alexandria, all the disputatious church of that famous town would have quoted such word, and have triumphed at it, every one after his manner. Athenagorus, Clement, Origen, who have said so many useless things, would have related this important passage a thousand times and it would have been the strongest argument of all the fathers. The whole have kept a profound silence; they had, therefore, nothing to say. But how was it possible for any Egyptian to speak of the exploits of a man who caused all the first born of the families of Egypt to be killed; who turned the Nile to blood, and who drowned in the Red Sea their king and all his army? ........

    볼테르의 논리 역시 오르페오스 찬가 #41에서 시작한다.

    우선, 볼테르는 디오니소스의 신화 속의 출생지인 니사산(山) (Nysa, Nisa 등등) 의 후보지인 리비아, 이집트, 이디오피아, 아라비아, 바빌로니아, 홍해, 트라키아, 시실리, 인도, 마케도니아, 낙소스, 시리아 등등 가운데 아라비아를 디오니소스의 탄생지인 니사(산)이 있는 곳으로 특정하고,이 산이 "시나이산"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가정을 근거로, 볼테르는 오르페오스 찬가 #41의 미세/미사/미시스라는 이름이 이집트어로 "물에서 구출되다"란 어원에서 왔다고 단정짓는다 (이것은 두번째 트릭과 같다.). 그러므로 볼테르가 보기엔 디오니소스의 속성이 소아시아의 여신 미세/미사/미시스로 투사된 것이 아니라, 아예 디오니소스가 미세/미사/미시스고 미세/미사/미시스가 디오니소스인 것이다.

    볼테르는 미시스 = 디오니소스를 일단 연결시킨 다음에, 무려 "서기 5세기"의 그리스 작가 노누스(Nonnus)가 디오니소스의 행적을 노래한 {Dionvsiaca} 중에서 모세의 활약과 비슷한 디오니소스 (= 미시스)의 행적을 찾아내서 이것을 "이집트에서의 미시스의 행적"이라고 가져다 붙인다. 노누스의 이 작품은 르네상스 무렵에 처음 유럽에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즉, 볼테르가 보기에 미시스가 모세이고, 모세가 미시스이며 동시에 디오니소스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차리아 S가 (그리고 {시대정신}이) 말하는 "이집트인 미시스"란 존재를 고대문헌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이 주장에 따르면 또 공허할 수 밖에 없다. 볼테르에 따르면 {시대정신}이 말한 입법자 네 명 중에서 미시스와 모세는 아예 동일인물이다. 즉, 이집트인 "미시스"와 히브리인 "모세"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둘이 아예 같은 사람이란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볼테르가 인용한 디오니소스의 행적은 이집트가 아니라 인도정벌과 관계되어 있는 내용이며 일부 내용은 출처불명이다. 가령, 디오니소스/미시스가 "물을 갈랐다"고 말하는 대목의 {Dionysiaca}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여기서 신으로 묘사된 오론테스와 히다페스는 각각 시리아 안티오키아 근방과 서북 인도에 있는 강들의 이름이다. (사실 그는 강을 가른 것이 아니다.)

    노누스의 {디오니시아카}에서 일부 인용한다. (https://topostext.org/work.php?work_id=529#17.215).

    우선 오론테스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하는 제 17권에서는 디오니소스가 오론테스 강을 "가르고 건넜다"는 대목은 없다. 디오니소스는 자신과 군대에 싸움을 걸어온 오론테스를 죽이고 그 시체를 강에 수장시킨 후 그 강을 "오론테스"로 명명했다는 내용 뿐이다.

    그 다음은 히다스페스 도하와 관련된 내용이다. {디오니시아카} 제 22권에서 디오니소스 (=바코스)가 이끄는 군대가 하다스페스강에 도착하고 거기서 잠복하던 인도인들과 전투를 벌여 거의 다 수장시킨다.  헤라는 강의 신인 하다스페스를 충동하여 디오니소스의 군대가 도하할 때 익사시키려 하지만, 디오니소스의 군대는 피와 시체로 찬 강을 간단한 땟목 등으로 쉽게 도하한다. 그래서 홍수를 일으켜 익사시키려 하지만, 히다스페스가 흘려보낸 홍수는 디오니소스의 불어내는 강풍에 부딫껴 하늘로 솟구친다. 그리고 디오니소스는 강과 연관된 생물들과 님페들의 생존을 위협하기 위해 강에 불을 던져 넣는데, 결국 히다스페스는 항복한다. 이 장면이 모세와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건넌 이야기와 같다고 보는가?

    Tell me, why was my river made a highway? Why does the Naiad in the watery depths of my flood hear whinnying, why does the horse's hoof crush the fish's back? I am ashamed to mingle with other rivers, when women cross me with unwetted shoes. Never have Indians been so bold as to scrape my § 23.190 streams with towering chariots, never has Deriades scored his father's water with his huge equipage, seated on the nape of highcrested elephants! As he spoke, he curved his own stream, and leapt upon Bacchos with a volley of foaming surf. A storm of watery trumpets bellowed from the battling waves; the river moaned as it raised the water high, battling against the Satyrs. Amid the roaring tumult, the Bassarid in her rich garb shook the cymbals out of her hands, swung her feet round, shook off the yellow trusses of the stitched shoes from her paddling foot, while the windswept waves rose to the head of the swimming Bacchant and drenched her curling hair. Another overwhelmed threw off her soaking robes, and gave her fawnskins to the swelling water, as the mass of the curving stream rolled over her chest, black against the rosy nipple. A Satyr paddling the flood with his hands waggled his wet tail straight out through the water. Maron carried swiftly along by the rushing water, paddled the drunken feet of his old legs, and left in the waves his leather bottle full of delicious wine. The syrinx of Pan was floating on the surface and rolling of itself on the waves, tossed about beside the double pipes; the hair of shaggy Seilenosflowed over his neck and jumped about in rivalry. 

    The river moaned, dragging the mud in its rush and pouring its alien water yellow over the land, a challenge to watery war for Dionysos. The tumultuous flood, met by a counterblast of wind, piled up high as the clouds and soaked the air, as it leapt down upon Dionysos with foaming surf. Not so § 23.221 furiously roared the war-mad water of Simoeis, not so defiantly rushed Camandros to overwhelm Achilles with rolling flood, as then Hydaspes pursued the army of Bacchos. Then Dionysos shouted to the river in rage: Why do you drive against the son of Zeus, you whose waters are fed by Zeus? If it be my pleasure, Rainy Zeus my father will dry up your flood. You, sprung from the clouds of Cronides my father, persecute the offspring of Cloudgatherer Zeus! Beware the stroke of my father's thunderbolt of delivery, beware lest he raise against you the lightning which gave Bromios birth! Take care that you be not dubbed Heavyknee, like Asopos! Quiet your flood while I yet control my wrath. Your waters rise against fires, and you cannot endure one spark of the blazing thunderbolt. And if it is Asterie your wife that makes you so proud, because she has the blood of Hyperion's heavenly kin, my father burnt with fire the bold son of Helios the fiery charioteer, when he drove the team through heaven; Hyperion dispenser of fire had to mourn his own son dead: he did not make war on my father for Phaethon's sake, he did not lift fire against fire even if he is lord of fire. If your Oceanos makes you so haughty, consider Eridanos struck by the bolt of Zeus, your brother burnt with fire: a cruel sorrow it was for your watery ancestor, who is girdled by the world's rim, who pours all those mighty streams of water to possess the earth, when he saw his own son burnt up and made no war on Olympos, nor contended with his flood against the § 23.250 firebarbed thunderbolt. Pray spare your waters awhile, or I may see you, Hydaspes, burnt up in fiery flames like Eridanos

    아울러 볼테르는 ({오르페오스 찬가} 따르면) "디오니소스가 두 개의 석판에 율법을 새겼다"라고 주장하는데, 이 내용은 사실 출처불명으로(정확히는 볼테르 당시에 위조된 주장을 그가 잘못 인용한 것으로 밝혀져 현재 기각된 주장이다. 이 사실을 모른채 여전히 볼테르의 주장을 옮기는 작가들이 있다.

    혹자는 디오니소스의 율법을 담은 "두 석판"이 유리피데스의 희곡에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유리피데스의 {이온} 1125-1126에서 인용한다.

    [1125] Xuthus then went where the flame of Bacchus leaps, so that he might drench both rocks of Dionysos with the slaughter, as a thank-offering for the sight of his son, and he said: “You, my child, stay here and raise a tent, fitted on both sides, by the toil of carpenters. [1130] If I should remain a long time in my sacrifice to the gods of birth, set up the banquet for the friends who are there.” --- Euripides. The Complete Greek Drama, edited by Whitney J. Oates and Eugene O'Neill, Jr. in two volumes. 1. Ion, translated by Robert Potter. New York. Random House. 1938.

    여기서 Xuthos는 아들 이온의 탄생을 감사하기 위해 성스런 불이 모셔진 디오니소스의 신전에 가서 두 개의 바위에 희생제물을 피를 뿌리는 의식을 한다. 이 행위와 "디오니소스가 두 개의 돌판에 율법을 새겼다"는 주장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무튼 이것이 세번째 트릭이다. 사실 위에서 장황하게 말한 그레이엄, 아차리아 S, 그리고 {시대정신}의 모든 주장과 논리가 바로 볼테르로부터 왔다. 물론 볼테르가 그렇게 독창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볼테르는 이 주장의 선구자로 네델란드의 신학자 Gerhard Johann Voss (1577-1649)와 프랑스 Avranches의 주교 Pierre Daniel Huet (1630-1721)을 들었다.

    물론 이 전의 인물들과 볼테르의 입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볼테르 이전의 인물들이 모세=미세/미사=디오니소스가 동일하다고 주장할 때의 목적은 "후자들이 모세를 베낀 것이다"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독교를 조롱했던 볼테르의 경우는 정확히 그 반대의 목표, 즉 "모세가 후자들을 베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이들을 동일시 했다. 카피캣 이론가들은 당연히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




    § 맺음말

    볼테르가 "당대 최고의 문필가"라는 이유로 그의 엉성한 논리를 받아들일 이유는 조금도 없다. 사실 볼테르 뿐 아니라 (정반대 주장을 펼친) 그보다 앞선 시기의 신학계 석학들이었던 인문학자/성서학자/신학자 보카르트나 패트릭 주교 등의 과감한 논리적 비약 역시 가히 재난 수준이다.

    그(들)의 과도한 동일화가 낳은 결론은 20세기 초반의 카피캣 저술가들과 그레이엄과 아차리아 S를 거쳐 {시대정신}에 버젓이 "팩트인 양 등장하여, 수 백만의 사람들이 그 동영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또 수 십만이 그 책을 구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대정신}과 함께 발매된 아차리아 S의 책들도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상당수 팔렸다.)

    이는 내가 소위 위대한 학자들을 맹신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학자의 위대한 성과가 그의 모든 오류를 덮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문헌적 증거가 늘 부족하여 문자적/고고학적 증거보다는 연구자들의 직관과 창의력과 상상력에 많이 의존하는 비교신화학 분야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참신하고 놀라운 "직관"에 늘 주의해야 한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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