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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도서관의 기억 #1: The Loeb Classical Library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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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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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기억: The Loeb Classical Library 시리즈
나는 하드커버로 된 전집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전집에 포함되는 책을 선정한 편집인의 취향을 따라야 한다는데 대한 약간의 심리적 반발감, 일사불란한 책 표지의 통일감에서 느껴지는 미학적 거부감, 마지막으로는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그래서 페이퍼백 단행본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전집류이면서도 단행본처럼 기획되어 나오는 책들은 좋아한다. 중학교때 열심히 읽던 삼중당 문고나 일본 고단사의 {블루백스} 시리즈가 그런 책이었다.
병역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보니, 중앙도서관이 폐가식에서 개가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전처럼 책에 대한 사전정보를 미리 알고 색인카드를 한참 뒤적이고 나서야 대출이 가능하던 것이 아니라, 이제 서가를 거닐며 무작위로 책을 검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2층에는 주로 인문서적, 3층에는 주로 이공계 서적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나는 대개 2층을 선호했다. 이공계생이 인문학 서고에 앉아 있으니 왠지 고상한 기분이 들었던 걸까?
이러한 무작위 검색은 첨단 전산검색으로는 불가능한 몇가지 장점을 가진다. 전산검색이 키워드를 정확히 알고 접근해야 하고, 또 우연한 발견 (serendipity)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 반면, 책장 사이를 걸으며 다리 품을 파는 무작위 검색을 통해서 나는 오래되고 칙칙한 서고에 숨어있는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레이저의 원본/무삭제 {The Golden Bough} 전집이라든지, {도마복음서}류의 그노시스 위경을 담은 나그함마디 문서들이 그런 류에 속한다. 심지어 대학도서관에서 발견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던 {너울벗은 이시스}, {샴발라}, {에머랄드 태블릿} 같은 신지학 계열 문서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했다.
{The Loeb Classical Library} - Wikimedia Commons
그런 보물들 하나에 {The Loeb Classical Library} 란 시리즈명으로 출판되어 온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 시리즈가 있었다. 이 시리즈는 1900년대 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하바드 대학 출판부를 통해 출판되고 있다. 책들의 디자인은 무척 단순하며, 그리스어 고전은 녹색, 라틴어 고전은 붉은 색의 단순한 표지를 가졌을 뿐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같은 잘 알려진 (그리고 번역도 일부된) 사람들의 작품 뿐 아니라, 데모스테네스, 데모크리토스,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고전 그리스 사상가, 필론, 플로티노스, 오리게네스, 클레멘스 같은 헬레니즘 시대의 (종교)사상가들, 세네카, 플리니우스, 타키투스 등의 로마 문필가들의 작품들이 가감없이 원작 그대로 번역되어 있다. 책의 왼쪽 페이지는 그리스어 혹은 라틴어, 그리로 오른쪽 페이지는 원문에서 번역된 영어다.
이 작품들 대부분은 한국어로 전혀 번역되어 있지 않거나, 혹 번역되었더라도 발췌번역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특히 제목만 알고 있던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아리아노스의 {알렉산드로스대왕 원정기 및 인도의 역사}, 플로티노스의 {에네아드}, 스트라보의 {지리학},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타키투스의 {역사}, 아피아누스의 {로마사},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의 {아르고나우티카},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같은 고대의 원전문헌들을 직접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경이로왔다. 만약 내가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유창하게 읽을 수만 있다면 더욱 값진 보물일 텐데 그 점은 매우 아쉽다. 이런 원전들이 무려 300권 정도 있다.
Loeb Classical Library at Harvard : http://www.hup.harvard.edu/loeb/author.html
자연과학을 전공한 내게 이런 인문학으로의 일탈은 전공공부에 지친 머리를 식히는데는 그만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지금 앉아있는 이곳 도서관의 내 자리 바로 뒤에도 이 전집들이 꽂혀있다. 이 전집을 알게 된지가 거의 10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이 전집이 보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날 한 줌의 전문가를 제외하면 원전을 읽는 사람은 드믈다. (물론 여기서 "원전"이란 꼭 "원서"를 뜻하지는 않는다.) 몇가지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외국어에 대한 한계, 해석의 난해성, 그리고 원전문서를 쉽게 구할 수가 없다는 것도 한 이유겠다. 그래서 발췌와 전문가들의 친절한 (그러나 해설자의 주관적인) 해설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원전 만이 주는 감동과 재미가 있다. 갈레노스의 {의학}이나 스트라보의 {지리학}을 읽으며 유치한 발상에 깔깔거릴 수도 있다. 요세푸스, 유스티노스, 클레멘트, 오리게네스, 테르툴리아누스, 유세비오스 등을 읽으며 AD 1-5세기까지의 기독교 초기 역사를 재구성해볼 수도 있다. 원전 없이는 불가능한 재미일 뿐 아니라, 역사, 신화. 종교, 인류학에 등장하는 '발췌된' 고대문헌의 전체 문맥을 올바로 파악하게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장담하지만, 대부분의 역사물에 등장하는 자료들은 대부분 저자들이 원전까지 확인하지 않고 2차자료들에서 옮긴 내용을 담고 있다. 원전을 확인해보면 전혀 다른 맥락인 경우가 허다하다.
아주 소수를 제외하면 우리는 천재가 아니기에, 다른 사람의 사고를 덧입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원전을 읽고, 스스로 해석해 봄으로써 우리는 전문가에게 100% 기대지 않고도 원전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소위 전문가들의 친절한 해석은 잠시 옆으로 치워두자. 전문가들의 해석이란 결국 그들 자신들의 해석일 뿐이며, 게다가 그 해석이란 것도 종종 불일치 한다. 그러니 누가 감히 2500년 전에 파르메니데스나 헤라클레이토스가 정말로 뭘 생각하고 말했는지 오늘날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장담할 것인가?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그들이 남긴 문자일 뿐, 그들의 머릿 속은 아니기 때문이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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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기억: The Loeb Classical Library 시리즈
{The Loeb Classical Library} - Wikimedia Commons
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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