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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예수 vs. 아우구스투스 #2: 신의 아들 - 데우스와 디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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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10-12-22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예수 vs. 아우구스투스 #2: 신의 아들 - 데우스와 디부스

순서
  1. 신의 아들
  2. 라틴어: 데우스와 디부스
  3. 그리스어 및 동방에서의 적용: 테오스

§ 신의 아들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예수보다 한 세대 전 쯤 인물이자 로마의 공식적인 초대 황제, 즉 아우구스투스인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인들에 의해 '신의 아들'로 불렸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고 불린 것과 같은 맥락의 것일까?


Octavianus. 36 BC. AR Denarius (3.70 gm). IMP. CAESAR. DIVI. F. III. VIR. ITER. R. P. C., bearded head right / COS. ITER. ET. TER. DESIG, tetrastyle temple of Divus Julius, containing his statue, DIVO IVL inscribed on architrave, star in pediment, lighted altar to left. (출처: Wikimedia Commons)

가령, AD 2세기의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의 전기 속에서 그가 '아폴론의 아들'로 여겨진 사연을 이렇게 적는다.


94....I find in the theological books of Asclepiades the Mendesian, that Atia, upon attending at midnight a religious solemnity in honour of Apollo, when the rest of the matrons retired home, fell asleep on her couch in the temple, and that a serpent immediately crept to her, and soon after withdrew.  She awaking upon it, purified herself, as usual after the embraces of her husband; and instantly there appeared upon her body a mark in the form of a serpent, which she never after could efface, and which obliged her, during the subsequent part of her life, to decline the use of the public baths. Augustus, it was added, was born in the tenth month after, and for that reason was thought to be the son of Apollo. The same Atia, before her delivery, dreamed that her bowels stretched to the stars, and expanded through the whole circuit of heaven and earth. His father Octavius, likewise, dreamt that a sun-beam issued from his wife's womb.  --- Suetonius (c.69-after 122 CE): {De Vita Caesarum: Divus Augustus}, https://archive.org/details/suetonius01suet

정리해보자.

옥타비아누스의 생모인 아티아가 아폴로 신전에서 깜빡 잠이 들었을때, 꿈 속에서 한마리의 뱀이 그녀를 향해 슬금슬금 기어오다 사라졌고 아티아는 잠에서 깨어났다. 목욕 후 (여느 때처럼) 남편과 동침하자 곧 몸에 뱀모양의 흔적이 나타났으며, 그로부터 10개월 후 옥타비아누스를 낳았다는 일화다. 이 흔적은 아티아 몸에 평생 남아있었다고 한다. 수에토니우스는 이 일화를 통해 아우구스투스가 "아폴로의 아들"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로마인들이 아우구스투스를 공식적으로 "신의 아들 DIVI FILIVS"이라 부를 때의 용례는 수에토니우스가 전하는 이 일화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그가 로마제국에서 공식적으로 "신의 아들"로 불릴 때의 그 "신"은, "아폴로"가 아니라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 라틴어

BC 42년, 로마 원로원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신"으로 선포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라틴어가 아닌 다른 언어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적용된 "신"이란 용어가 담은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라틴어에서 "신"은 두가지 단어로 표현된다.

우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으로서의 데우스 DEUS가 있다. 그리고 대체로 죽은 후에 위인에게 추서되는 형태로서의 디부스 DIVUS가 있다. 로마의 문법학자 세르비우스 Servius는 데우스와 디부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즉, 데우스는 영속적으로 신인 (deos perpetuos) 반면, 디부스는 사람이 신이 되는 경우 (divos ex hominibus factos)에 해당한다. 물론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종종 데우스와 디부스를 교차사용했다. 따라서 이 두 단어의 용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 "모든 디부스는 또한 (신이 되었다는 점에서) 데우스라고도 불릴 수 있지만, 모든 데우스가 디부스인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 '디부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적용된 것으로, 원로원은 그를 '디부스 율리우스 DIVUS IVLIVS'로 호칭하게 된다. 한 사람이 신의 지위에 올랐다는 것을 국가기관이 선포하는 것인데, 이는 로마의 황제숭배의 핵심요소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로마의 종교에서 이 '디부스'의 개념은 다소 모호한데, 디부스가 신들의 세계에서 무엇을 하는지 분명히 묘사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원로원이 디부스를 선포하는 행위는 로마카톨릭과 정교회 등이 성인들을 시성하는 것과 다소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

로마원로원이 '위인'을 '디부스'로 선포하는 행위에 대해 AD 2세기 말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교부 테트룰리아누스는 그의 {변론}에서 다소 조롱조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예수가 처형 당한 당시의 황제 티베리우스는 예수의 처형에 관한 전모를 빌라도로부터 보고 받고 사안을 원로원에 보내 (예수를 신으로 간주할 것인지를) 심의시켰으나, 인간을 "신", 즉 "디부스"로 선포하는 권한을 가진 원로원이 이를 기각하였다고 기록한다. 

.....Pilate, who in his conscience was a Christian, sent Tiberius Caesar an account of all these proceedings relating to Christ; and the Caesars had been Christians too, could the ages have borne it, if either such Caesars had not been necessary and unavoidable in such times, or could Christians have come to be Caesars......  ---  Tertulian, {The Apology of Tertulian} CH.21, tr. WM. REEVE

...(내심) 기독교도였던 필라투스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모든 내막을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적어 보냈다....  --- 테르툴리아누스 {변론} 제 21장 / 번역: 최광민

......BUT to see the rashness and injustice of the laws against us, let us cast an eye back upon their riginal, and we shall find an old decree,1 whereby the emperor himself was disabled from consecrating a new god, without the approbation of the senate. M. Aemilius learnt this with a witness, in the case of his god Alburnus.1 And this makes not a little for the honour of Christianity, to see the heathens in consult about making gods; and if the god is not such a deity as they like, he is like to be no God for them. Strange ! That the god is first to pray the man to be propitious, before the man will allow of his godship. By virtue of this old decree it was that Tiberius,2 in whose reign Christianity came into the world, having received intelligence from Judea about the miracles of Christ, proposed it to the senate, and used his prerogative for getting Him enrolled among the number of their gods. The senate, indeed, refused the proposal, as having not maturely weighed His qualifications for a deity; but Caesar stood to his  resolution, and issued out severe penalties against all who should accuse the worshippers of Christ. Consult your annals,3 and there you will find Nero4 the first emperor who dyed his sword in Christian blood, when our religion was but just arising at Rome ..... --- Tertulian, {The Apology of Tertulian} CH.4, tr. WM. REEVE

....[전략]....이상한 일이다.  (원로원이 신으로 선포해야 신으로 인정받는 / 최광민 주) 인간으로부터 신으로 인정받으려면, 그 신은 이에 앞서 우선 인간에게 잘 보이도록 애걸해야하니 말이다. 기독교가 시작되던 때 권좌에 있던 티베리우스 황제는 그리스도가 베푼 기적들에 관한 보고를 받고나서 그의 특권으로 원로원이 그리스도를 신들 가운데 하나로 선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원로원은 그리스도가 신으로 선포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이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황제는 결정에 맞서, 기독교도를 기소하는 자들을 중죄로 다스리겠다고 선언했다. 당신들 (로마인)의 연감을 찾아보면,  (티베리우스가 아닌) 네로가 우리 종교가 로마에 막 성장하던 때 그의 칼을 기독교도들의 피로 물들였던 첫번째 황제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 테르툴리아누스, {변론} 제 4장 / 번역: 최광민



자, 이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디부스'가 되었으니, 논리적으로 그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는 '디부스의 아들'이 된다. 따라서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를 "DIVI IVLI FILIVS"로 부르게 된다. 이것을 라틴어의 뉘앙스를 고려하지 않고 번역하면 '신의 아들'이 되지만, 이 호칭의 정확한 뉘앙스는 '디부스가 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아들"이란 뜻으로 새겨 읽어야 한다. 즉, (1) 여기서의 '신'은 옥타비아누스의 양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이고, (2) 따라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를 DIVUS IVLI FILIUS로 부르는 것은 다만 그의 양부가 '디부스'라는 것을 뜻할 뿐, 옥타비아누스에게까지 자동적으로 '신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중간의 '율리우스'를 빼고 줄여서 DIVI FILIVS, 즉, '디부스의 아들'로 표기하기도했다. 이것이 아우구스투스에게 적용된 "신의 아들"이다.

율리우스의 "디부스" 추서 후 15 년 후인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의 지위에 오르는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부여한 '디부스'의 지위 및 이로부터 자동적으로 유도되어지는 '디부스의 아들'이란 자신의 지위를 정치적 프로파겐다에 십분 활용했고, 특별히 자신이 발행하는 주화들에 새겨넣었다. 이렇게 디부스의 개념을 이용한 호칭은 대체로 "현직황제 DIVI F (DIVI 선임황제)"의 기본구조를 갖는다. 그것은 초기의 로마황제들은 대체로 전임이 후계자로 "양자"를 지명해 이어졌기 때문이다. 로마 5현제의 권력이양구도는 바로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아우구스투스가 사용한 자신의 호칭들은 다양하다. 널리 사용된 형태로는 , "[현직] DIVI [선임] F" 형식이 있다. 이것이 표준이며 후대의 아우구스투스를 포함한 로마황제에게 붙여지는 거의 모든 부조물에 등장한다. 유사하지만 "[현직] DIVI F DIVI [선임]"의 형식은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아우구스투스의 경우 IMP CAE DIVI F DIVI IVLI 을 간혹 사용했는데 , "디부스의 아들" 앞에 자신이 "임페라토르"이며 "카이사르"임을 강조했다. 이 형태는 기원전 32년 경부터 등장한다. 이제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디부스를 적용시키고 있다. 즉, "디부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디부스인 아들" 이란 뉘앙스가 된다. 아우구스투스가 디부스의 지위에 올랐기 때문에, 서기 2세기의 로마황제들은 "IMP CAESAR DIVI IVLI F AVGVSTVS" 의 형식을 사용하게 된다.

"DIVI F AVG"와 "DIVI AVG F"는 언뜻봐서는 유사하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전자는 "디부스의 아들, 아우구스투스"가 되고, 후자는 디부스인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 된다. 이 호칭이 사용된 황제들의 사례들을 몇개만 들어보겠다.

  • TI CAESARI DIVI AVG F DIVI IVLI NEPOTI AVGVSTO IMP PONT MAXVMO TRIBVN POTEST XXVI COS IIII
  • DRVSO CAESARI TI AVG F DIVI AVG N DIVI IVLI PRON COS PONTIFICI 
  • IMP CAES DIVI HADRIANI F DIVI TRAIANI PARTHIC NEP DIVI NERVAE PRON T AELIVS HADRIANVS ANTONINVS AVG PIVS PONT MAX TR POT XXI IMP II COS IV PP
  • IMP CAESARI DIVI TRAIANI PARTHICI F DIVI NERVAE NEPOTI TRAIANO HADRIANO AVG

디부스를 사용하는 로마황제 네로의 칭호는 아래와 같다. 클라우디우스 (Tiberius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황제를 계승한 네로는, 클라우디우스의 네번째 처인 아그리피나가 데려온 양자였다. 클라디우스가 죽자 원로원은 그를 디부스로 만들었다 (DIVVS CLAVDIVS AVGVSTVS).

  • AGRIPP AVG DIVI CLAVD NERONIS CAES MATER 
  • NERO CLAVD DIVI CLAVD F CASEAR GERM 
  • NERO CLAVD DIVI CLAVD F CASEAR GERMA 
  • NERO CLAVD DIVI CLAVD F CASEAR GERMAMI 
  • NERO CLAVD DIVI F CAES AVG GERM IMP TR P COS

한편, 기독교도들이 예수에게 적용한 라틴어 호칭은 "DIVI" FILIUS가 아니라 "DEI" FILIUS다. 이것은 일신교 체계를 가진 기독교에서는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라틴어 {불가타} 및 그 이전의 라틴어 번역 가운데 하나인 {Vetus Latina}에서는 INICIUM EVANGELII IHESU CHRISTI FILII DEI" (Codex Gigas), 즉, "데우스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것은 그리스어 ΙΗΣΟΥΣ ΧΡΕΙΣΤΟΣ ΘΕΟΥ ΥΙΟΣ에 대응한다. 예수의 지위는 따라서 "디부스의 아들"이 아니라 "데우스의 아들"이다. 역시 우리 말로는 둘 다 "신의 아들"로 번역되겠지만, 이 두 표현은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 그리스어와 동방에서의 적용

그리스어에는 라틴어의 '디부스'와 '데우스'에 정확히 대응할 만한 단어들이 없어 모두 "테오스/θεός"가 되며, 따라서 "디부스의 아들"과 "데우스의 아들" 역시 동일하게 "테오 휘오스 θεοῦ υἱός"가 된다. 이 모호한 구분 때문인지, 신약성서는 예수에게 (정관사를 붙여) 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ho huios tou theou), 즉, "the" Son of God"을 적용시킨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또 다른 호칭인 "인자 / 사람의 아들" 역시 정관사가 붙는다. 그리스어 "사람의 아들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에 정관사가 붙는 사례 역시 예수에게만 적용되며, 기타 다른 고전 그리스어에는 정관사를 붙이는 사례가 등장하지 않는다.

프리크/갠디의 책 {예수는 신화다, The Jesus Mysteries}에는 호머 스미스의 {Man and His Gods}에서 인용된 부분이 있다.

호머 스미스의 책에서 인용하겠다.

"...In inscription (dating from around 9 B.C.E.), shows the divine status placed upon Augustus' birth: "This day has given earth an entirely new aspect. The world would have gone to destruction had there not streamed forth from him who is now born a common blessing. Rightly does he judge who recognizes in this birthday the beginning of life and of all the powers of life: now is that ended when men pitied themselves for being born. The providence which rules over all has filled this man with such gifts for the salvation of the world as designate him the Savior for us and for the coming generations: of wars he will make an end, and establish all things worthily. By his appearing are the hopes of our forefathers fulfilled; not only has he surpassed the good deeds of men of earlier time, but it is impossible that one greater than he can ever appear. The birthday of God has brought to the world glad tidings that are bound up in him. From his birthday a new era begins." ---  Homer Smith, MAN AND HIS GODS, Grosset & Dunlap, New York, 1952, p 171)."

호머 스미스의 책에는 이 비문에 대한 정확한 출처가 나와있지 않아서 직접 출처를 찾아보았다. 원래의 내용은 소아시아 프리에네 (Priene)에서 발견된 석조달력에 암각된 내용이다 (Inscr. Priene, 105, 40, a calendar inscription, 9 BC, Priene, Asia Minor). 기원전 9년의 것으로 보고 있으며, 아우구스투스의 생일에 대한 기념사를 담고 있다.

원래의 그리스어 원문은 아래와 같다. 아래에 붙인 것은 직역에 가까운 영어번역으로 호머 스미스가 인용하고 프리크/갠디가 재인용한 형태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Εδοξεν τοις επι της Ασιας Ελλησιν, γνωμη του αρχιερεως Απολλωνιου του Μηνοφιλου Αζανιτου· Επειδη η παντα διαταξασα του βιου ημων προνοια σπουδην εισενενκαμενη και φιλοτιμιαν το τεληοτατον τω βιω διεκοσμησεν ενενκαμενη τον Σεβαστον, ον εις ευεργεσιαν ανθρωπων επληρωσεν αρετης, ωσπερ ημειν και τοις μεθ ημας σωτηρα πεμψασα τον παυσοντα μεν πολεμον, κοσμησοντα δε παντα, επιφανεις δε ο Καισαρ τας ελπιδας των προλαβοντων ευανγελια παντων υπερεθηκεν, ου μονον τους προ αυτου γεγονοτας ευεργετας υπερβαλομενος, αλλ ουδ εν τοις εσομενοις ελπιδα υπολιπων υπερβολης, ηρξεν δε τω κοσμω των δι αυτον ευανγελιων η γενεθλιος ημερα του θεου· της δε Ασιας εψηφισμενης εν Σμυρνη.

It was seeming to the Greeks in Asia, in the opinion of the high priest Apollonius of Menophilus Azanitus: Since providence, which has ordered all things of our life and is very much interested in our life, has ordered things in sending Augustus, whom she filled with virtue for the benefit of men, sending him as a savior both for us and for those after us, him who would end war and order all things, and since Caesar by his appearance surpassed the hopes of all those who received the good tidings, not only those who were benefactors before him, but even the hope among those who will be left afterward, and the birthday of the god was for the world the beginning of the good tidings through him; and Asia resolved it in Smyrna.

대신관 메노필로스 아잔토스의 아폴로니우스에 따르자면, 이는 아시아에 거주하는 그리스인들에게 좋은 일이다. 만물의 질서를 잡고 우리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섭리는 우리에게 아우구스투스를 줌으로써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셨다. 섭리는 인류를 이롭게 할 덕목으로 아우구스투를 채우고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의 구원자로 그를 보내어 전쟁을 종식시키시고 만물의 질서를 잡게 하였다. 그의 출현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그는 이전에 있던 어떤 시혜자를 뛰어넘고, 앞으로도 그의 치적을 뛰어넘는 이가 없을 것이다. 신 (=아우구스투스)의 탄신일은 그를 통해 주어진 기쁜 소식 (=복음)의 시작이었다. 온 아시아는 스미르나에서 이를 결의한다. / --- 번역: 최광민

프리크/갠디의 {예수는 신화다} 한국어 번역에서는 위에 하이라이트한 두 단어 The Providence와 God를 모두 "하나님"으로 번역했는데, 이는 명백히 오역이다. 전자는 "섭리" 후자는 "신"으로 번역해야 옳다. 전자와 후자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프로노이아(스) ΠΡΟΝΟΙΑΣ는 라틴어 프로비덴티아 Providentia에 대응한다. "프로비덴티아"는 아우구스투스 무렵에는 "섭리"란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그 이전부터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관용적으로) 여신의 신격을 부여받아가는 중이었다.

여기서도 보이지만, 로마가 아닌 그리스 지역과 이집트에서는 거추장스럽게 "디부스의 아들"이니 하는 표현 대신, 자기들의 방식으로 황제를 그냥 "신/테오스"으로 종종 부른다. 그리스인들은 로마인들보다 신화 (神化 apotheosis)에 대한 오래된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로마인들은 "인간이 신이 된다"라는 개념에 대해 그리스인들보다 보다 보수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캇시우스 디오의 {로마사} 66.1에는 쾌활했던 베스파니아누스 황제 (b.9-d.79 AD)가 임종을 맞으며 했다는 조크가 실려있다. 그의 유명한 "대머리" 자학조크에 이은 조크는 아래와 같다.

Θεός ήδη γίνομαι

이 말은 종종 라틴어로는 "Væ, puto deus fio! (오! 거의 신이 되어가나 보네 !)" 로 번역되는데, 여기서도 테오스-데우스의 대응을 볼 수 있다. 베스파니아누스가 이 조크를 원래 그리스어로 한 것인지, 혹은 캇시우스 디오가 그리스어로 번역해 기록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EPITOME OF BOOK LXVl

.....When his physicians eluded him for continuing his usual course of living during his illness and attending to all the duties that belonged to his office, he answered : "The emperor ought to die on his feet." To those who said anything to him about the comet he said : " This is an omen, not for me, but for the Parthian king ; for he has long hair, whereas I am bald." When at last he was convinced that he was going to die, he said : "I am already becoming a god." He had lived sixty-nine years and eight months, and had reigned ten years lacking six days......---Cassius Dio, {Roman History} Book LXVI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를 담당한 의사들이 황제가 병석에 있는 동안 일상적인 생활방식과 황제의 업무를 피하도록 했을때, 그는 말했다: "황제는 서서 죽어야겠구만!". 누군가 그에게 혜성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건 불길한 징조로구만. 그런데 내가 아니라 파르티아 왕에게 그렇단거지. 그는 머리가 길지만 난 대머리가 아닌가!". 마침내 그가 죽을 것이란 걸 확신한 순간 그는 또 말했다: "어, 벌써 신이 되어가나 보네!" . 그는 69세 8개월을 살았고 10년에서 6일 모자라는 기간 동안 집권했다. ---- 캇시우스 디오, {로마사}, 제 66권 / 번역: 최광민, https://archive.org/details/diosromanhistory08cassuoft

에페소스에서 발견된 한 인각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현신한 신 θεὸν ἐπιφανῆ"이자 "인류의 공동구원자  κοινὸν τοῦ ἀνθρωπίνου βίου σωτῆρα"로 부르고 있다.

IEph 251

αἱ πόλεις αἱ ἐν τῆι Ἀσίαι καὶ οἱ [δῆμοι] καὶ τὰ ἔθνη Γάϊον Ἰούλιον Γαΐο[υ υἱ]ὸν Καίσαρα, τὸν ἀρχιερέα καὶ αὐτοκράτορα καὶ τὸ δεύτερον ὕπατον, τὸν ἀπὸ Ἄρεως καὶ Ἀφροδε[ί]της θεὸν ἐπιφανῆ καὶ κοινὸν τοῦ ἀνθρωπίνου βίου σωτῆρα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가이우스의 아들이자, 대사제이시자, 절대군주이시자, 공동집정관(콘술)이시자,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시자, 현신하신 신이자, 인류의 공동구원자께 (소)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인민들이....

--- Ephesos 948. Honorary inscription for Gaius Iulius Caesar by poleis, [demoi], and ethne (of Hellenes) in Asia; 48 BC; found at Ephesos: {Corpus Inscriptionum Graecarum 2957 [48/47])} 2957; LW 142; Syll3 760; Tuchelt, Frühe Denkm. 141; *IEph 251.  PHI database

여기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라고 불릴 때, 이 말은 고대인들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레스-아프로디테 사이의 아들"이란 뜻으로 그런 것이 아니다.

우선 여기서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된 로마의 여신은 "베누스 게네트릭스 Venus Genetrix"로 이 여신은 율리우스 가문의 조상신이자, 트로이 전쟁 후 로마로 와서 로마를 개국한 아에네아스의 어머니이다. 또한 그리스 전쟁신 "아레스"와 동일시된 로마의 남신은 "마르스 울토르 Mars Ultor"이며, 그는 성처녀 레아 실비아 (Rhea Silvia)와의 사이에서 로마 건국국부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낳았다. 로물루스는 로마의 도시를 기초하고 성벽을 쌓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마르스 울토르와 베누스 게네트릭스는 "로마 건국"의 부모와 같은 관계가 된다. 물론 두가지 전혀 다른 두가지 전설을 다소 억지로 합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의 마르스-아프로디테 관계와 달리 마르스와 베누스는 전혀 배우자 관계가 아니다.(베누스의 남편은 "불칸"이다.) 그들은 "상징적"으로 "로마의 부모"인 것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권력을 잡은 양자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에 마르스 울토르 신전을 봉헌하면서 이 마르스와 베누스를 배우자 관계로 설정하였다.

그리스 지역에서 발견된 제단에는 네로가 "인간세상의 구원자 σωτήρ της οικουμένης / soter tes oikoumenes' (IG XII. 5.557)로 불리며, 조금 더 후대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세상의 구원자 σωτήρ του κόσμου"로 불린다.

로마황제들은 죽어서야 '디부스'가 되는 (그래서 살아서는 기껏해야 디부스의 "아들"로 지내야하는) 본토 로마보다는, 그리스-소아시아-이집트에서 보다 더 대우를 받은 셈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칼리귤라와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아직 죽기도 전에 "스스로" 공식적인 디부스의 지위에 올랐다.

고대 그리스의 神化 (apotheosis / theosis) 사상에 대해서 다음의 글을 참고할 것.





§ 예수의 경우

예수 본인이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부르긴 한 것일까? 기록에 따르면 물론 그렇다. 예수가 "신의 아들"로 불리는 복음서의 장면을 우선 살펴보자.

38 τότε σταυροῦνται σὺν αὐτῶ δύο λῃσταί, εἷς ἐκ δεξιῶν καὶ εἷς ἐξ εὐωνύμων. 39 οἱ δὲ παραπορευόμενοι ἐβλασφήμουν αὐτὸν κινοῦντες τὰς κεφαλὰς αὐτῶν 40 καὶ λέγοντες, ὁ καταλύων τὸν ναὸν καὶ ἐν τρισὶν ἡμέραις οἰκοδομῶν, σῶσον σεαυτόν, εἰ υἱὸς εἶ τοῦ θεοῦ, [καὶ] κατάβηθι ἀπὸ τοῦ σταυροῦ.

38 그 때에 강도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하나는 그의 왼쪽에 달렸다.3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여 40 말하였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나 구원하여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41 ὁμοίως καὶ οἱ ἀρχιερεῖς ἐμπαίζοντες μετὰ τῶν γραμματέων καὶ πρεσβυτέρων ἔλεγον, 42 ἄλλους ἔσωσεν, ἑαυτὸν οὐ δύναται σῶσαι· βασιλεὺς ἰσραήλ ἐστιν, καταβάτω νῦν ἀπὸ τοῦ σταυροῦ καὶ πιστεύσομεν ἐπ᾽ αὐτόν. 43 πέποιθεν ἐπὶ τὸν θεόν, ῥυσάσθω νῦν εἰ θέλει αὐτόν· εἶπεν γὰρ ὅτι θεοῦ εἰμι υἱός.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가 보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 43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시라지. 그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다."

54 ὁ δὲ ἑκατόνταρχος καὶ οἱ μετ᾽ αὐτοῦ τηροῦντες τὸν ἰησοῦν ἰδόντες τὸν σεισμὸν καὶ τὰ γενόμενα ἐφοβήθησαν σφόδρα, λέγοντες, ἀληθῶς θεοῦ υἱὸς ἦν οὖτος.

54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는 사람들이, 지진과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였다.

--- 한국어 새번역, {마태복음} 27장

특별히 대제사장들과 율법사들이 "(왜냐하면) 그가 말하기를, εἶπεν γὰρ"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예수가 자신의 '신의 아들'로 공공연히 자칭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확실히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호칭했지만 동시에 '신의 아들'로도 자처했던 것이다.



그럼 예수가 "신의 아들"로 불린 것은 그저 '신의 뜻을 실천하는 자', '정의로운 자' 등에 상응하는 레토릭이었을 뿐인가?

필립피의 신자들을 수신인으로 하는 (추정)작성시점 AD 55-62년의 {필립보서}는 "바울과 디모데"가 발신인으로 되어있고, 바울의 진본편지로 거의 여겨지고 있다. 19세기 F. C. Bauer 이래로 이 문서를 바울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증명하려는 시도가 있어왔지만, 현재 소수의 학자들만 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읽어보자.

5 τοῦτο φρονεῖτε ἐν ὑμῖν ὃ καὶ ἐν χριστῶ ἰησοῦ, 6 ὃς ἐν μορφῇ θεοῦ ὑπάρχων οὐχ ἁρπαγμὸν ἡγήσατο τὸ εἶναι ἴσα θεῶ, 7 ἀλλὰ ἑαυτὸν ἐκένωσεν μορφὴν δούλου λαβών, ἐν ὁμοιώματι ἀνθρώπων γενόμενος· καὶ σχήματι εὑρεθεὶς ὡς ἄνθρωπος 8 ἐταπείνωσεν ἑαυτὸν γενόμενος ὑπήκοος μέχρι θανάτου, θανάτου δὲ σταυροῦ. 9 διὸ καὶ ὁ θεὸς αὐτὸν ὑπερύψωσεν καὶ ἐχαρίσατο αὐτῶ τὸ ὄνομα τὸ ὑπὲρ πᾶν ὄνομα, 10 ἵνα ἐν τῶ ὀνόματι ἰησοῦ πᾶν γόνυ κάμψῃ ἐπουρανίων καὶ ἐπιγείων καὶ καταχθονίων, 11 καὶ πᾶσα γλῶσσα ἐξομολογήσηται ὅτι κύριος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εἰς δόξαν θεοῦ πατρός.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한국어 개역개정, {필립보/필립피 2:5}

또 다른 "바울과 디모데"의 편지는 {골로새서}인데, 이 편지가 바울의 친서라면 이 편지 속에 등장하는 예수 역시 AD 67년 이전에 이미 기독교도들이 고백한 예수일 것이다. 이 편지가 바울의 진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본학자들의 경우라도 이 편지의 작성시점을 AD 80년 경으로 잡는다.

15 ὅς ἐστιν 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 τοῦ ἀοράτου, πρωτότοκος πάσης κτίσεως, 16 ὅτι ἐν αὐτῶ ἐκτίσθη τὰ πάντα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καὶ ἐπὶ τῆς γῆς, τὰ ὁρατὰ καὶ τὰ ἀόρατα, εἴτε θρόνοι εἴτε κυριότητες εἴτε ἀρχαὶ εἴτε ἐξουσίαι· τὰ πάντα δι᾽ αὐτοῦ καὶ εἰς αὐτὸν ἔκτισται, 17 καὶ αὐτός ἐστιν πρὸ πάντων καὶ τὰ πάντα ἐν αὐτῶ συνέστηκεν.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존속합니다…”  --- 한국어 표준새번역, {골로새서 1장} 15-17

{히브리서}는 저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고대로부터 교부들 간에도 저자에 대한 논쟁이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AD 1세기 중/후반이 작성시기로 여겨진다.

2 ἐπ᾽ ἐσχάτου τῶν ἡμερῶν τούτων ἐλάλησεν ἡμῖν ἐν υἱῶ, ὃν ἔθηκεν κληρονόμον πάντων, δι᾽ οὖ καὶ ἐποίησεν τοὺς αἰῶνας· 3 ὃς ὢν ἀπαύγασμα τῆς δόξης καὶ χαρακτὴρ τῆς ὑποστάσεως αὐτοῦ, φέρων τε τὰ πάντα τῶ ῥήματι τῆς δυνάμεως αὐτοῦ, καθαρισμὸν τῶν ἁμαρτιῶν ποιησάμενος ἐκάθισεν ἐν δεξιᾷ τῆς μεγαλωσύνης ἐν ὑψηλοῖς,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온 세상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하나님의 본체대로의 모습이십니다. 그는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서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한국어 새번역, {히브리서} 1장 2-3절

이들 문서들은 기독교가 시작된 AD 33년 경으로부터 한두 세대 안에 작성되고 열람된 것들이다. 초기 기독교도들이 정의한 이 '신의 아들'이 로마황제에게 부여된 그 '신의 아들'과 같은 용례의 것이라고 볼 사람은 없다. 이 '신의 아들'은 세상의 창조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의 용례와 그보다 한 세대 후 기독교도들의 용례 사이에 어떤 도약이 있었다고 설정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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