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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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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예수 vs. 오르페오스 #1: 오르페오스 바키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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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8-07-01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예수 vs. 오르페오스 #1: 오르페오스 바키코스

요약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의 {예수는 신화다, Jesus Mysteries}의 표지에 사용되어 유명세를 탔던 "오르페오스 바키코스" 유물의 역사와 전문가들의 감정을 검토한 후, 프리크와 갠디의 출판 이전 이미 오래 전에 왜 이 유물이 전문가들에 의해 위조로 감정된 것인지를 설명한다.

순서
  1. 티모시 프리크 "박사"?
  2. 오르페오스-바키코스 유물의 위조품 논란
  3. 오르페오스 바키코스/ΟΡΦΕΟΣ ΒΑΚΚΙΚΟΣ = 오르페오스 - 바키코스?
  4. 상동과 상사의 혼란?

§ 티모시 프리크 "박사"?

SBS 다큐멘터리 {신의 길, 인간의 길}이 상당부분 비중을 두고 있는 Timothy Freke와 Peter Gandy의 책 {예수는 신화다, Jesus Mysteries}.


Freke/Gandy, {The Jesus Mysteries}

방송에서는 티모시 프리크를 "티모시 프리크 박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Random House 출판사가 공개한 그의 최종학위는 "Honors Degree in Philosophy", 즉 영국과 몇몇 영연방국가들에서는 철학"학사" 우등졸업을 뜻한다. 혹시 "Honors" Degree in Philosophy를 "Honorary" Doctor in Philosophy (명예철학박사)로 오해한 것일까? 아니면, 최근에 정말 박사학위를 받은 것일까? 잘 모르겠다.

공저자 피터 갠디는 석사학위 소지자이다. 두 사람 다 학사와 석사 학위를 어디서 받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프리크는 원래는 노자와 도교 쪽 글을 쓰다가 차츰 영지주의/그노시스로 전향한 신비주의 영성운동가 혹은 자칭, stand-up philosopher다.

물론 작가들의 최종학위가 어떤 저작물의 가치를 더하거나 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의 적시"이기 때문이다.


그럼 "사실의 적시" 부분을 확인해 보자.




§ 오르페오스-바키코스 유물의 위조품 논란


7개의 별과 달 아래 십자가에 달린 인물과 그리스 문자로 새겨진 "오르페오스 바키코스/ΟΡΦΕΟΣ ΒΑΚΚΙΚΟΣ). 독일 베를린의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 (Kaiser Friedrich Museum) 소장품 가운데 하나다. 이 유물은 세계대전 중 소실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것은 사진자료 뿐이다.


Leclercq 1907–53, 12.2754 (9249) s.v. “Orphée”, 6.840 (177) s.v. “Gemmes”. Cf. Dölger 1910, 1.324.

SBS 다큐멘터리 {신의 길, 인간의 길}에서는, 프리크/갠디의 공저 {예수는 신화다, Jesus Mysteries}에 사용된 저 표지사진을 프리크의 직접소개로 방송했다. 예수의 이야기는 오르페오스/디오니소스 신화 등등의 변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티모시 프리크는 저 도상이 없이도 자신들의 가설이 성립한다고 말하지만, 대중적으로 그의 저작을 유명하게 만든 모티프는 바로 저 도상이다.

물론 저 도상은 프리크/갠디가 처음 발굴한 것은 아니다. 프리크/갠디는 세간에 알려진 저 유물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정확한 원래 출처를 달지 않았다. 그는 책 속에서 저 도상이 AD 3세기의 유물이라고 말하지만, 이 연대추정은 역시 추론일 뿐이며 논란은 아직 식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위조된 오컬트 계열의 유물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군의 전문가들은 이 유물을 19세기의 위조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진품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프리크/갠디는 이런 팽팽한 논란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의 책에는 한쪽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적었다.



유물의 역사를 정리해 보자.

이 유물은 19세기 이탈리아에서 발견되어 E. Gerhard 에게 구매되어 나중에는 베를린의 Kaiser Friedrich Museum 에 소장되었다. 여기서 독일의 도상학자 오토 케른 (Otto Kern)의 감정을 받았고, 그는 1922년에 오르페오스교 관련 유물 컬렉션에 이것을 포함시켰다. 그의 책을 보고 영국의 종교역사학자인 W.K.C. Guthrie 은 이것을 오토 케른이 진품으로 감정한 것으로 생각해서 그의 1935년도 판 {Orpheus and Greek Religion}에서 진품으로 소개했다. 오토 케른 본인이 이 책을 리뷰하고 그 내용을 {Gnomon}이란 독일 학술잡지에 같은 해 기고했는데 이렇게 적었다.

독일어 원문은 아래와 같다.

...Wenn ich hier die Freude habe, ein neues Denkmal an die Spitze aller Orpheusdarstellungen zu setzen, muß ich ein anderes, das mir fast als das jüngste aller monumentalen Zeugnisse für die orphische Bewegung erschien, streichen und bekennen, daß ich allein daran die Schuld trage, daß es nach der Publikation in den Orphicor. fragm. S. 46 test. 150 von R. Eisler und anderen jetzt auch von Guthrie, ohne Bedenken als glaubwürdiges Dokument gewertet wird. Diesem ist es offenbar entgangen, daß das Amulett mit dem Bilde des Crucifixus und der Inschrift ΟΡΦΕΟΣ ΒΑΚΚΙΚΟΣ im Kaiser Friedrich-Museum zu Berlin höchst wahrscheinlich eine Fälschung ist. Solchen hervorragenden Kennern dieser Materia wie Joh. Reil und Rob. Zahn, die dies im Ἄγγελος 2, 1926, 62ff. ausgesprochen haben, muß man Glauben schenken, und es ist daran kein Anstoß zu nehmen, daß auch dieser italienische Fälscher wie soviele -- das Amulett stammt aus Italien, kam aus E. Gerhards Nachlaß in das Berliner Museum -- gelehrte Kentnisse hatte und von der Beziehung des Orpheus zu Bakchos wußte.

이 논문을 통해 오르페우스 관련된 도상들의 정점에 새로운 기념비를 세우는 기쁨을 누리기 앞서, 오르페우스 종교에 관련된 모든 기념비적 증거들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으로 생각되는 어떤 것을 철회해야만 하며, 나 역시 {Orphicor. fragm.} S. 46 test. 150의 출판 이후 이 오류를 계속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겠다. R. Eisler 다른 전문가들을 이를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고, 또 Gutherie 역시 이를 믿을만한 문서로 여기는 실정이다. Gutherie는 베를린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 소장의 "오르페오스 바키코스"란 인각이 새겨진 십자가상의 부적이 거의 확실히 위조품이란 점을 명백히 놓쳤다. 이 부적이 위조라는 것을 {앙겔로스} 1926도 62ff 에서 지적한 Johaan Reil과 Robert Zahn과 같은 탁월한 감정가를 신뢰해야 할 것이며, 다른 수많은 이탈리아 위조범들과 마찬가지로 (이 위조품 역시 이탈리아에서 온 것이며, E. 게르하르트의 소장물에서 베를린의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 유물의 위조범 역시 오르페우스-바쿠스의 연관성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 놀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번역: 최광민



그는 이 유물이 "거의 확실히 가짜"인 것으로 판정했다. 위에서 오토 케른이 지적했다시피, 이미 1926년에 {앙겔로스}란 학술지를 통해 Reil과 Zahn은 이 유물이 가짜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그 근거는 아래와 같다.

  • 십자도상이 T형이나 그리스 정방십자가 아니라 라틴십자이다. 라틴 십자는 AD 500년 전에 등장하지 않았다.
  • 고대 유물 가운데 지켜보는 사람이 같이 묘사되지 않고 혼자 십자가에 달린 모습은 보다 후대의 것이다.
  • 도상 속 다리자세는 고대 말기가 아니라 중세 초기에서나 나타나는 자세다.

서기 4세기 중반의 보석 음각, (출처: London, British Museum: carnelia)


서기 4세기 중반의 보석 음각, (출처: Rome, Nott Collection)


서기 430년 경, Crucifixion from the portal of Santa Sabina, Rome: wooden plate. 432 (approx.).


British Museum, London: ivory plaque. 420–430년 경


Miniature from the 9th-century Chludov Psalter with scene of iconoclasm. Iconoclasts John Grammaticus and Anthony I of Constantinople. (출처: Wikimedia Commons)


Triumph of the Cross. Apsis mosaic from Basilica San Clemente in Rome, 12th century (출처: Wikimedia Commons)


Plaque de reliure en ivoire. Crucifixion et médaillons. Italie du Nord (Venise), fin du XIe - début du XIIe s. (출처: Wikimedia Commons) 

AD 2-3세기로 추정되는 아래의 이집트 유물은 마법에 사용된 듯한 유물이다. 이 도상의 경우는 손에 못이 박힌 것이 아니라 밧줄로 묶여 매달려 있고, 다리도 못으로 고정되지 않고 벌리고 있다. 첫 부분에는 문법적인 오류를 보이는 그리스어로 Yie Pater Iesou Christe / 아들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라고 새겨져 있다.


AD 2-3세기, 이집트 가자, Yie Pater Iesou Christe,  

반면 다리를 비틀고 있는 도상은 중세 중반 (기원후 11세기 이후)에 비로소 등장한다.


Paolo Veneziano, ca. 1340 (출처: Wikimedia Commons)



또 AD 2세기의 유스티노스가 첫 {변증, First Apology} 55장에서 '처형당한 구세주'의 개념은 이교도 사이에 전혀 없다고 지적한 점도 이 유물의 도상학적 구도를 의심할 수 있는 진술이다. 유스티노스는 이교도와 기독교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점들을 나열했지만 (그는 미트라를 포함한 많은 지중해 종교를 언급했다)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구세주'란 개념 만큼은 유사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수와 유사하게 보여지는 "제우스의 아들들"에게서 십자가형/처형이란 모티프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은 이교도들은 "메시아의 희생을 통한 인류의 구원"이란 개념이 상징 속에 숨어있었기에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최소한 유스티노스의 시대 (AD 1-2세기)의 이들 종교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유스티노스는 이렇게 적었다.

...But in no instance, not even in any of those called sons of Jupiter, did they imitate the being crucified; for it was not understood by them, all the things said of it having been put symbolically. And this, as the prophet foretold, is the greatest symbol of His power and role; as is also proved by the things which fall under our observation.

그러나 그 누구도, 심지어 앞서 말한 제우스의 아들들 조차도 , 자신들이 십자가에 달리는 것까지 모방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이것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이해하기 못한 것은, 십자가형에 대한 언급들이 상징들로 처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의 예언처럼 이것은 성자의 능력과 역할에 대한 가장 위대한 상징이며, 우리의 관찰을 통해 그러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 번역: 최광민

For consider all the things in the world, whether without this form they could be administered or have any community. For the sea is not traversed except that trophy which is called a sail abide safe in the ship; and the earth is not ploughed without it: diggers and mechanics do not their work, except with tools which have this shape. And the human form differs from that of the irrational animals in nothing else than in its being erect and having the hands extended, and having on the face extending from the forehead what is called the nose, through which there is respiration for the living creature; and this shows no other form than that of the cross. And so it was said by the prophet, ‘The breath before our face is the Lord Christ’.[1] And the power of this form is shown by your own symbols on what are called ‘vexilla’ [banners] and trophies, with which all your state possessions are made, using these as the insignia of your power and government, even though you do so unwittingly.[1] And with this form you consecrate the images of your emperors when they die, and you name them gods by inscriptions. Since, therefore, we have urged you both by reason and by an evident form, and to the utmost of our ability, we know that now we are blameless even though you disbelieve; for our part is done and finished...

그런데 프리크/갠디는 자신들의 책 {Jesus Mysteries/예수는 신화다}에서 Gutherie의 1952년도 판을 문헌적 근거로서 각주에 제시하면서, 이 유물의 위조 가능성에 대한 다른 전문가의 주장을 언급하지 않고 막바로 진품으로 단정지었다.

인터넷 상에서 피터 갠디는 아래와 같은 반박문을 게시했다. 요점은, "만약 (오토) 케른이 저 유물을 가짜라고 밝혔다면, 왜 Eisler나 Guthrie는 그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는가?" 라는 것이다.

공저자 피터 갠디의 반박이다. (http://archive.today/Zmd3c)

...Our reaction to the second charge of calculated dishonesty is one of indignation. This is not only the lowest form of ad hominem attack, it is also libellous. Neither of our sources mentions any doubts about the authenticity of the amulet, nor do they refer to any other scholar who had expressed such a view. Both Eisler and Guthrie clearly accept the object as genuine as they advance theories about its meaning and significance. This would be absurd if either had any doubts about its authenticity. The fact that neither professor expresses such doubts, or refers to doubts that may have been expressed by any other scholars, undermines the charge that the object ‘has long been suspected of being a fake.’

우리가 의도적으로 부정직했다는 두번째 비판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가장 저열한 인신공격일 뿐만 아니라 괴상한 주장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참고한 자료 가운데 어느 것도 이 부적의 진위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없었고, 또한 이 자료들 가운데 그런 의심을 제기한 학자들을 언급한 내용은 없었다. Eisler와 Guthrie 모두 이 유물이 진품이라고 명백히 인정했고, 이 유물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이론을 전개했다. 따라서 이들 중 하나라도 유물의 진위를 의심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두 교수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런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고, 또 다른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을지도 모르는 의혹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유물이 오랬동안 위조품으로 의심되어져 왔다"라는 주장에 반하는 것이다.  ---- 번역: 최광민

If Kern had pronounced the object a fake then why do neither Eisler and Guthrie refer to this? We can only conclude that they were either unfamiliar with his work, or that they found his evidence unconvincing and not worth repeating

만약 Kern이 그 유물을 위조라고 천명했다면, 왜 Eisler나 Guthrie는 그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가?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그들은 Kern의 저작을 알지 못했거나, Kern의 논증이 확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Kern의 주장을 또 옮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란 점이다
. .... --- 번역: 최광민



그래?

그런데 갠디의 반박이 무색하게도, Guthrie는 오토 케른의 비평을 수용하고 그 사실을 바로 프리크/갠디가 자신들의 책에 인용한 바로 그 "1952년 판"에 적시했다.

1952년도 판 미주에 딸린 부록의 내용이다.

본문 : "To this part of the inquiry belongs a mention of the curious and much-discussed seal or amulet in Berlin. The design on this seal [figure right] which is dated in the third or fourth centuries A.D., shows a crucified man. Above the cross are a crescent moon and seven stars, and across and below it is the legend [Orpheus Bacchus]. This has usually been supposed to be the work of some Gnostic sect exhibiting a syncretism of Orphic and Christian ideas. Just as Christ is to be seen in Christian monuments with the attributes of Orpheus, so here, by a tribute from the other side, Orpheus is represented in the attitude of Christ." (W.K.C. Guthrie, Orpheus and Greek Religion, page 265)

Supplement: "In his review of this book in Gnomon, 1935, 476, Kern [German collector of the amulet] recants and expresses himself convinced by the expert opinion of J. Reil and R. Zahn [journal named in Greek] that the [Orpheus Bacchus] gem is a forgery."  --- Guthrie, page 278

부록:1935년 (학술지) {Gnomon} 제 476호에 실린 리뷰에서, 이 유물을 수집한 독일인 수집가인 Kern은 J. Reil 및 R. Zahn의 전문가적 견해를 받아들여, 입장을 철회하고 대신 이 유물이 위조품이란 입장을 밝혔다 --- Guthrie / 번역: 최광민

결국 프리크/갠디는 책을 쓰면서 "자신들이 인용했다"는 1952년도 판을 자세히 혹은 "직접" 읽지 않았다는 것을 자백한 셈이다.

티모시 프리크는 SBS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 바 대로 저 유물이 위조품일 가능성이 높음을 이야기해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알고 있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저 유물 하나가 준 임팩트는 그의 책 전체가 던진 화두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피상적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대중들은 "시각적 이미지"에만 만족할 뿐 텍스트를 정독하려고 않는다.



예수가 다리를 뒤틀고 있는 도상의 형태를 "Christus Patiens"라고 하는데, 그럼 정말로 이런 류의 도상은 고대가 아닌 중세가 되어서야 나타난 것일까? 하나의 예외가 있다.

브리티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아래의 유물은 확실히 그리스도의 조상이며 (그렇게 적혀있다), 처음에는 그노시스의 한 파인 바실레이데스 추종자의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제작연대를 기원후 2세기로 상정했으나 나중에 기원후 4/5세기로 늦추었다. 아래는 브리티쉬 박물관의 서지사항이다.


Leclercq 1907–53, 3.3049, fig. 3356


출처: D'apres le Bull, de la Soc. des antiq, de France, 1868, p.111

..Description intaglio Magical gem; intaglio; red jasper with yellow-grey stripes; oval; bevelled edge; engraved on obverse: Christ being crucified; kneeling figure to right of crucifixion; inscribed above Christ and on reverse. Inscription inscription in: Greek language: on: obverse Translation: Jesus M(essias) inscription in: Greek language: on: reverse Note: Three lines of characters. inscription in: Greek language: on: bevelled edge Transliteration: IIOO- Associations Representation of Jesus Christ Production Made in Mediterranean, Eastern Mediterranean Dates 4th/5thC Acquisition Purchased from Rev Greville John Chester Acquired by the British Museum in :1867 Bibliography Michel, Simone 'Die Magischen Gemmen im Britischen Museum' 2001 (458) ID Numbers Registration Number: OA.9717 PRN: MCB979 Additional Numbers: 56231 (Egyptian Big Number) G231 (Burns Gnostic Gem Number) 1867,0915.78 (Egyptian reg.no) Photo Numbers Contact sheet 0076, Row 3 Copy Negative (Front view with crucifixion scene) Contact sheet 0051, Row3 Copy Negative (reverse with inscription) PS342392 Ektachrome (group shot) Dimensions Height 22.00 mm Width 17.00 mm Thickness 5.00 mm.."

여기서 몇가지를 말할 수 있다.

  1. 이 유물의 제작연대를 4-5세기로 소급할 수 있다면, 이 유물은 Christus patiens를 묘사한 현재까지의 최고유물이다. 
  2. 그러나 소위 "오르페오스-바키코스 부적"과는 달리 이 도상은 여전히 고대와 중세의 모티프, 즉 십자가를 지켜서고 있는 좌우의 사람(들)을 빼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 고대-중세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3. 이 유물이든 (만약 진품이라면) 오르페오스-바키코스 유물이든 기독교의 출발인 서기 33년 경보다 훨씬 이후의 유물들이다. 혹자는 비잔틴 중반의 유물로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 오르페오스 바키코스 ΟΡΦΕΟΣ ΒΑΚΚΙΚΟΣ

프리크/갠디는 이 명각을 "오르페오스가 바쿠스(디오니소스)가 되었다"로 서술형으로 읽는다. 이 해석이 타당할까? 정확한 독법은 "Bacchic Orpheus" 즉, "바쿠스로서의 오르페우스" 쯤 된다. 모든 고대기록을 통해 보면, 트라키아 일대로부터 고대 그리스로 침투한 원-디오니소스교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의식으로 그리스인들의 반감을 샀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앙을 도입하면서 리모델링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BC 2세기의 아폴로도로스 (Apollodorus)는 오르페오스와 밀교로 발전된 형태의 디오니소스교의 관계를 이렇게 기술한다.


http://www.archive.org/stream/apollodoruslibra01apol

...Now Calliope bore to Oeagrus or, nominally, to Apollo, a son Linus,1 whom Hercules slew; and another son, Orpheus,2 who practised minstrelsy and by his songs moved stones and trees. And when his wife Eurydice died, bitten by a snake, he went down to Hades, being fain to bring her up,3 and hepersuaded Pluto to send her up. The god promised to do so, if on the way Orpheus would not turn round until he should be come to his own house. But he disobeyed and turning round beheld his wife; so she turned back. Orpheus also invented the mysteries of Dionysus,4 and having been torn in pieces by the Maenads5 he is buried in Pieria...{Apollodorus 1.3.1}

아울러서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에서 밀교로 리모델링된 디오니소스교는 오르페오스가 이집트의 오시리스교를 베낀 것이란 주장을 남겼다(Plutarch, Didot 1.23). 그러므로, 고대기록들이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는 같다" 혹은 "오시리스는 디오니소스가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을지 언정, "오르페오스가 디오니소스가 되었다"라고는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오르페오스는 디오니소스교를 떠나 아폴론신만을 섬기는 (아마도 동성애적) 새로운 형태의 종교를 전파하다가,디오니소스교 여성 추종자 (=마이나데스)들에 의해 찢겨져 죽었던 것을 상기해 보자.

설령, 저 유물이 AD 3세기의 것이라 하더라도, 밀교/미스테리아 종교의 습합적인 성격을 고려한다면, 저 형태의 미스테리아 종교에서 기독교로 저 도상의 모티프가 이전되었을 가능성과 그 반대방향으로의 전이 가능성 가운데서 어떤 것이 더 높은 가능성을 보일까?

우연히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는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다 (링크). 아마도 다른 곳에서 자료를 가져온 곳으로 보이는 이 블로그는 "예수설화가 디오니소스설화에서 복사/증보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프리크/갠디의 "결정적" 증거들을 정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리크/갠디의 책에 등장하지 않는 내용과 도상들이 상당부분 섞여있다.) 이 블로그의 자료는 인터넷 여기저기에 널리 퍼져있는데 (혹은 출처가 불분명한 그런 자료를 인용하고 있는데), "오르페오스 바키코스" 도상에 이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이 자료는 "오르페오스 바키코스" 도상에 대한 다음의 설명을 달고 있다.

인용한다. (링크).

세계에 널리 유포되어 유명해진 수난받아 십자가에서죽고 부활하는 신인 디오니소스 석고 작품 (AD 300년 경 발견). 디오니소스 신인이 십자가에 매달려있고, 알파와 오메가라고 고대 헬라어로 씌여있다. 예수가 디오니소스의 유대교화라는 명백한 증거다 (링크).

앞서 설명한대로, 유감스럽지만 이 도상은 "AD 300년 경에 발견"된 것도 아니고, 거기에 "알파와 오메가"라고 씌여있지도 않다. 이 인장의 뒷면 사진도판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저 인장에 있다는 글자는 앞면에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인각된 글자는 아래가 전부다.

ΟΡΦΕΟΣ ΒΑΚΚΙΚΟΣ  (오르페오스 바키코스)

도대체 어디에 "알파와 오메가"라고 적혀 있을까? 그리스 알파벳에서 알파는 "바키코스"의 첫 음절에 하나 등장하고, 그나마 오메가는 저 인각된 글자 가운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한편,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알파와 오메가"로서의 예수를 표현할 때는 흔히 아래의 형식을 따른다. 이 도상은 네개의 그리스 알파벳으로 구성된다. 카이-로(XP), 즉 "크리"스토스의 두 머릿글자와 알파와 오메가 이다. 이 의미는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리스도"란 뜻이다.



Modern restoration of the fresco containing the Christian symbol of the Chi Rho from the Roman Villa at Lullingstone, now at the British Museum, London (출처: Wikimedia Commons)




§ 상동과 상사의 혼동?

프리크와 갠디는 상동과 상사, 상관관계과 인과관계를 넘나들면서 혼동하고 있는게 아닐까?




피상적 연관관계로부터 인과관계를 직접 유도해내는 이런 류의 오류(cum hoc ergo propter hoc)는, 아마추어 비교종교/신화 작가 뿐 아니라 종종 전문적인 학자들도 빠지기 쉬운 유혹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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