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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st. Husband. Daddy. --- TOLLE. 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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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예수 vs. 이사 #1: 예수는 무함마드의 도래를 예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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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3-06-27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예수 vs. 이사 #1: 예수는 무함마드의 도래를 예언했을까?

순서
  1. 아함메드의 질문: {코란}
  2. 파라클레토스 / παρακλητονς
  3. 페리클뤼토스 (> 파라클레토스) = 아함마드 = 무함마드: 이슬람 주석가들
  4. 그리스어 사본: 파라클레토스
  5. 시리아/아람어 {페쉬타}: 파라클레(이)타 (> 파라클레토스)
  6. 이븐 이샥: 무나헤마나 = 무함마드 = 파라클레토스?
  7. 알-타바리: 수비학적 증명?

1. 아함메드의 질문

룸메이트 모함메드와 함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경제학도 아함메드가 모스크에 다녀온 뒤 , 알라의 예언자 이사(예수)가 기독교 성서 속에서 예언자 아함마드/무함마드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점을 내가 알고 있는가를 물어왔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 따르면, 아함메드/아함마드(Ahmed)는 이슬람교의 교조인 모하메드/무함마드(Mohammed)의 다른 이름이다.

아함메드는 일단 {코란}을 펴서 두 절을 짚어주었다.(Yusuf Ali의 영역)


{Qur'an}영역본 https://archive.org/details/QuranEnglishTranslation

"…토라와 인질이 언급한 글 모르는 사도, 예언자(무함마드)를 따르는 자들…" [Al A'raf 7:157]


"….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말했다. “오, 이스라엘의 자녀들아! 나는 내 앞에 보내졌던 토라를 증언하고, 나 다음에 올 '아함마드'란 이름의 사도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알라가 너희에게 보낸 사도다…." [Al Saff 61:6]

이 친구들의 요지는 기독교의 {인질/Injil}에 예수가 아함마드/무함마드가 자기 뒤에 올 것이란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라/타우라}는 유대교/기독교의 구약성서, {인질}은 무슬림들이 기독교의 {신약성서}의 일부, 특별히 {복음서}의 일부를 이슬람교에서 부르는 말이다.

원전을 통해 검토해 보자.




2. 파라클레토스 / παρακλητονς

{코란} 주석가들이 즐겨 인용하는 이 논증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그의 전기를 쓴 이븐 이샥(Ibn Ishaq)이 서기 768년에 제시한 논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메디나 출신의 이븐 이샥은 할아버지 대까지는 기독교도 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논증에 대해서는 뒤에 아람어/시리아어 성서인 {페쉬타}에 대해 논하면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신약성서}의 네번째 복음서인 {요한 복음서} 14장-16장 사이에서, 수난을 앞둔 예수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아주 긴 가르침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예수는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이 내용의 핵심에는 흔히 '보혜사/위로자/조력자'로 번역되는 그리스 단어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νς)” (영어로 Paraclete 혹은 Comforter)가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이 그리스어 단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에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하는 중학시절 여호와의 증인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내 반론을 지지할 근거자료로서 이 단어의 효용성에 주목하게 되었을 때였다.

무슬림들은 교조 모함메드에게 '파라클레토스'라는 {요한복음}의 단어를 적용시킬때 약간 갈팡질팡하는 입장을 취하는데, 한 그룹에서는 {요한 복음서}의 그 단어가 실은 "페리클뤼토스"라는 다른 그리스 단어에서 변형된 것일 뿐 (즉, 예수가 무함마드의 "이름"을 직접 언급했다는) 입장을 취하는가 하면, 다른 그룹은 {요한 복음서}의 그 단어를 그냥 수용하되 '파라클레토스'의 역할을 무함마드와 일치시키려고 한다.

사실 "교조"와 "파라클레토스"를 동일시하는 이런 자리매김은 이슬람교 보다 4세기 앞선 AD 3세기에 페르시아에서 발생한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AD 3세기에 아프리카에서 중/근동을 거쳐 중앙아시아와 중국까지 교세를 펼쳤던 마니교의 주창자 마니는 자신이야말로 예수가 예언한 '파라클레토스'이며 자신에게서 모든 예언자들의 가르침이 완결된다 ("예언자의 봉인")고 가르쳤었다. (마니는 '붓다”라고도 불렸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모든 "예언자들의 봉인"이다. 마니교의 창시자인 서기 3세기의 마니와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AD 7세기의 모함메드가 자신들을 예수가 자기가 제자들을 떠난 후 올 것이라고 예언한 '파라클레토스'로 선언했다는 것은, 즉 자신들을 예수의 연속선 상에 놓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율법과 예언자의 봉인"이다.

한편 기독교는 이 '파라클레토스'를 예수가 승천한 직후인 오순절에 그의 제자들에게 내려온 (그리고 구원받은 신자들 안에 머무는) '성령'으로 이해한다. {신약성서} 속에서 이 단어 '파라클레토스'는 요한이 남긴 복음서와 서신들에만 등장한다. 이 단어는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흔히 전통적인 신학용어로 '보혜사', 보다 현대적 용어로 '위로자', '조력자'로도 번역되는데, 일반적인 용례로는 재판정에서 피고를 중재하는 중재자를 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Philo of Alexandria)는 그의 저작 {De Vita Mosis, 모세의 삶} 속에서 역시 이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필론은 그 생애에서 결코 기독교도였던 적이 없었다는 점을 잠시 접어두고 아래의 인용을 읽어보도록 하자.

{De Vita Mosis/ The Life of Moses}

http://www.earlyjewishwritings.com/text/philo/book24.html
http://www.earlyjewishwritings.com/text/philo/book25.html

"....XXVI.

(131) Such then are the figurative meanings which he desires to indicate by the sacred vestments of the high priest; and instead of a diadem he represents a cidaris on the head, because he thinks it right that the man who is consecrated to God, as his high priest, should, during the time of his exercising his office be superior to all men, not only to all private individuals, but even to all kings;

(132) and above this cidaris is a golden leaf, on which an engraving of four letters was impressed; by which letters they say that the name of the living God is indicated, since it is not possible that anything that it in existence, should exist without God being invoked; for it is his goodness and his power combined with mercy that is the harmony and uniter of all things.

(133) The high priest, then, being equipped in this way, is properly prepared for the performance of all sacred ceremonies, that, whenever he enters the temple to offer up the prayers and sacrifices in use among his nation, all the world may likewise enter in with him, by means of the imitations of it which he bears about him, the garment reaching to his feet, being the imitation of the air, the pomegranate of the water, the flowery hem of the earth, and the scarlet dye of his robe being the emblem of fire; also, the mantle over his shoulders being a representation of heaven itself; the two hemispheres being further indicated by the round emeralds on the shoulder-blades, on each of which were engraved six characters equivalent to six signs of the zodiac; the twelve stones arranged on the breast in four rows of three stones each, namely the logeum, being also an emblem of that reason which holds together and regulates the universe.

(134) For it was indispensable that the man who was consecrated to the Father of the world, should have as a paraclete, his son, the being most perfect in all virtue, to procure forgiveness of sins, and a supply of unlimited blessings;

(135) perhaps, also, he is thus giving a previous warning to the servant of God, even if he is unable to make himself worthy of the Creator, of the world, at least to labour incessantly to make himself worthy of the world itself; the image of which he is clothed in, in a manner that binds him from the time that he puts it on, to bear about the pattern of it in his mind, so that he shall be in a manner changed from the nature of a man into the nature of the world, and, if one may say so (and one may by all means and at all times speak the plain truth in sincerity), become a little world himself..."

필론은 이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를 '로고스', 그러나 아카데미아 학파 혹은 스토아 학파가 이해하던 원리로서의 '비인격적' 로고스와는 꽤 다른 '인격적' 로고스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 역할이란 바로 대제사장이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를 하는 것과 같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를 의미한다.

한편, 신약성서 {요한복음}은 첫 장부터 태초로부터 신과 함께 한 신의 말씀(로고스)에 대해 말하면서 이 로고스를 예수와 일치시켰다. 그리고 이 {요한복음} 속에서 예수는 그 스스로를 또한 '파라클레토스'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의 제 14장 16-17절은 이렇게 적고 있다.

16 κἀγὼ ἐρωτήσω τὸν πατέρα καὶ ἄλλον παράκλητον δώσει ὑμῖν ἵνα μεθ᾽ ὑμῶν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ᾖ, 17 τὸ πνεῦμα τῆς ἀληθείας, ὃ ὁ κόσμος οὐ δύναται λαβεῖν, ὅτι οὐ θεωρεῖ αὐτὸ οὐδὲ γινώσκει· ὑμεῖς γινώσκετε αὐτό, ὅτι παρ᾽ ὑμῖν μένει καὶ ἐν ὑμῖν ἔσται. --- 그리스어 GNT

16 et ego rogabo Patrem, et alium Paraclitum dabit vobis, ut maneat vobiscum in æternum, 17 Spiritum veritatis, quem mundus non potest accipere, quia non videt eum, nec scit eum: vos autem cognoscetis eum, quia apud vos manebit, et in vobis erit. --- 라틴어 {Vulgata}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분을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그것은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 한국어 {표준새번역}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 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 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 한국어 {공동번역}

"And I will pray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Comforter , to be with you for ever, even the Spirit of Truth, whom the world cannot receive, because it neither sees him nor knows him; you know him, for he dwells with you, and will be in you". --- 영어 {KJV}

앞서 말한대로, 여기서 예수는 이 '파라클레토스'를 일컬어 allon parakleton (αλλον παρακλητον) 라고 언급했다. 우선 ‘파라클레토스’를 수식하는 형용사 ‘알로스(allos)’ 에 주목해 보자. 그리스어에는 '다름'을 뜻하는 두 단어가 있다. 이 가운데 '알로스(allos)'는 동질의 대상간 양태적 차이를, '헤테로스(heteros)'는 이질적 대상 사이의 차이를 말한다. 이 두 단어는 신약성서 속에서 때로는 구분되어 사용되고, 때로는 혼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요한복음} 속의 예수가 말하고 있는 "알론 파라클레톤(allon parakleton)"이라는 말의 그 '알로스'가 '동질 간 양태적 차이'를 말하는 것이라면, 예수는 즉 그 스스로도 한 '파라클레토스'로 인지하고 있음을 암시하게 된다.




3. 페리클뤼토스 (> 파라클레토스) = 아함마드 = 무함마드?

이슬람교 측 자료에 따르면 이 단어의 {요한복음서} 속에서의 용례에 대한 {코란} 주석가들의 설명은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다. 물론 이것은 "주장"이며 입증된 것은 아니다.

일단 살펴보자.

  1. {요한 복음서}은 원래 아람어/시리아어로 씌여졌는데 아람어에는 모음표기가 없었다. 
  2. 해당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는 원래 아람어/시리아어였다.
  3. 원래 "원래의" 이 아람어 단어에 대응하는 그리스어는 Periklytos였다.
  4. 그런데 나중에 기독교도들이 모음을 잘못 필사했거나 의도적으로 본문을 왜곡하여 Parakletos로 변했다.
  5. 아람어로 이 단어는 "칭송받을 자 the Praised One"를 뜻했고, 이는 아랍어 "아함마드"에 해당한다. 
  6. 그런데 "아함마드"는 곧 "무함마드"다.

정리한다면, 이 단어의 변천과정은 [Ahmed = Periklytos -> Parakletos] 인 셈이다. 그래서 {코란} 주석가들은 예수가 [요한복음]에서 7세기 후 아함메드, 즉 무함마드의 도래를 “이름까지 들어” 예언했다는 결론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4. 그리스어 사본: 파라클레토스

우선 {신약성서}의 그리스어 사본들을 찾아보았다. 이슬람교가 시작된 것은 서기 7세기, 이븐 이샥이 위의 논증을 펼친 것은 서기 8세기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사본은 비록 파편화된 것이기는 해도 최고 서기 2세기까지 올라가며, 많이 인용되는 최고의 사본인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서기 3-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아래는 {알렉산드리아 사본}과 {비잔틴 다수사본}에서 "파라클레토스"가 표기된 부분들의 일부이다.

우선 {요한복음} 14장 16절을 찾아본다. http://www.greeknewtestament.com/B43C014.htm#V16

{알렉산드리아 사본} (서기 2-3세기): καγω ερωτησω τον πατερα και αλλον παρακλητον δωσει υμιν ινα μεθ υμων εις τον αιωνα η

{비잔틴 다수사본} 및 {Stephens Textus Receptus 사본} (서기 1550년): και εγω ερωτησω τον πατερα και αλλον παρακλητον δωσει υμιν ινα μενη μεθ υμων εις τον αιωνα

{Westcott-Hort text} from 1881, combined with the NA26/27 variants 

한국어 {공동번역}: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 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의 제 14장 26절을 참조해 본다. http://www.greeknewtestament.com/B43C015.htm#V26

{알렉산드리아 사본}: ο δε παρακλητος το πνευμα το αγιον ο πεμψει ο πατηρ εν τω ονοματι μου εκεινος υμας διδαξει παντα και υπομνησει υμας παντα α ειπον υμιν [εγω]

{비잔틴 다수본} 및 {Stephens Textus Receptus 사본}: ο δε παρακλητος το πνευμα το αγιον ο πεμψει ο πατηρ εν τω ονοματι μου εκεινος υμας διδαξει παντα και υπομνησει υμας παντα α ειπον υμιν

{Westcott-Hort text} from 1881, combined with the NA26/27 variants

한국어 {표준새번역}: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내려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어떤 사본이든 periklytos가 아닌 prakletos 를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혹시 {요한복음서}의 저자 혹은 필사자는 복음서를 그리스어로 기록/전승하는 과정에서 '위로자/조력자'라는 의미를 가졌던 어떤 아람어 단어를 그리스어로 음사한 것 뿐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그리스어 parakletos를 염두에 둔 것이었을까?


5. 파라클레(이)타 (> 파라클레토스): 시리아어 {페쉬타}

AD 4-5세기에 편집된 아람어/시리아어 성서인 {페쉬타}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 {페쉬타}는 시리아에서 인도 및 중국까지 한때 확산되었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경교) (및 다른 시리아 계통 교회) 채택한 성서였다. 아람어는 예수가 사용한 일상언어였으므로, 아람어/시리아어에 나타나는 발음을 확인해 보면 이 단어의 정확한 발음과 어원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람어 페쉬타 : http://www.peshitta.org/
요한복음 (Yukhanan)

페쉬타 요한복음서/유하난} 14장 16절을 보면, 아람어-영어 대역에서 Redeemer로 되어 있는 단어가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에 해당한다. 이 단어는 시리아 문자로 페(Pe)-레쉬(Resh)-코프(Qop)-라마드(Ramadh)-테이트(Teith)-알라프(Alap), 즉 로마자 PRQL+A (파라클레(이)타)로 기록되어 있다. 아람어는 우에서 좌로 쓰므로 실제로는 A+LQRP로 {페쉬타}에 기록되어 있다. +는 장음 T를 뜻한다. 그 발음은 "Paraq Qlayta"에 해당한다.

이를 바탕으로 로마자로 PaRaKLeToS, PeRiKLyToS, PRQL+A를 배치해 보면 이렇다. 세 단어 모두 공통으로 P, R, K/Q, L, T/+를 가진다.

P a R a K L e T o S (그리스어)
P e R i K L y T o S (그리스어)
P _ R _Q L _ + A_ (아람어/시리아어)

어떤 경우이든, 이 단어의 자음에서는 "아함마드"라는 발음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함마드= 페리클리토스 > 파라클레토스)라는 무슬림들의 주장은 일단 힘을 잃는다.

한편, {페쉬타}를 사용해 온 시리아 교회의 전통은 그리스어 parakletos가 원래는 그리스어 단어가 아닌 아람어 PRQL+A (Paraqlit / Paraq+Qlayta)의 음차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리아 교회의 주장에 따르면, 이 단어는 2가지 아람어 어원을 가진다고 한다.

즉,
  1. PLQ (=PaLaQ)는 끝내다, 종결하다, 구원하다 (To end, To finish, To save, To deliver, To rescue, To depart),
  2. L+A (QLayTa)는 저주( the Curse)
  3. 따라서 PRQL+A (Paraqlit) 의 의미는 "구원자", "저주를 끝내는자", "저주에서 구원하는자" 등을 의미한다

는 것이다. 만약 이 그리스 단어 parakletos가 아람어 PRQL+A에 모음을 첨가한 그리스어 음사라면 서방교회가 이해하던 식의 “위로자”라는 의미보다는 "저주에서 건지는 자, 혹은 구원자(Redeemer)" 를 의미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요한복음}은 원래 코이네 그리스어로 작성되었고 {페쉬타}가 여기서 아람어로 번역했다고 여겨지지만, {페쉬타}는 시리아 지역교회의 전통을 상당부분 참고해 번역되었으므로 여러가지 다른 언어의 이종 사본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있는 분석이라 보인다.

만약 {페쉬타}의 편집자(들)이 그리스어 사본만 가지고 아람어 {페쉬타}를 직접 번역한 것이라면,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를 왜 “위로자 혹은 조력자”라는 뜻에 대응하는 아람어/시리아어 단어 대신, 그리스어의 원뜻과 조금 다른 “저주를 끝내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를 사용해 번역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아마도 고대에는 그리스어의 parakletos와 아람어의 PRQL+A가 지금보다 더 유사한 의미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Friedrich Schulthess (1878-1922)의 팔레스티나-시리아어 사전 (Palestinian Syriac Lexicon) 에 따르면,  "nHem, naHHem" 에는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처럼 역시 "위로하다"는 두번째 뜻이 있다.

아무튼 이븐 이샥의 이 논증은 당시에 무슬림들에겐 큰 영향력이 있었다. 그가 사망하고 얼마되지 않은 AD 781년, 압바스 칼리프조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압바스 칼리프국의 제 3대 칼리프인 마흐디와 이틀 간 논쟁을 벌인 동방 시리아 교회 (네스토리우스파) 총주교 티모테오스 1세는, {요한복음}의 파라클레토스가 바로 무함마드라고 주장하는 칼리프에게 {구/신약성서} 어디에도 무함마드의 도래를 말하는 구절이 전혀 없기 때문에 기독교도들은 무함마드를 신의 예언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선다. 이 기록은 티모테오스 1세 자신이 남긴 편지 속에 보존되어 있다. ({The Apology of Timothy the Patriarch Before the Caliph Mahdi} tr. A. Minagana " Woodbrooke Studies", no.2, in Bulletin of the John Ryland no.1: pp137-298). 동방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대표하는 총주교와 (수니) 이슬람을 대표하는 칼리프는 논쟁에는 날을 세웠지만, 상호 간의 신앙을 존중하는 태도로 토론에 임했다는 점이 인상깊다. 총주교와 칼리프는 각각 {성서}와 {코란}을 텍스트로 해서 논증한다. 티모테오스 1세의 논증은 동방교회가 이슬람의 해당주장에 맞서는 주요 논증패턴으로 이해하면 된다.



해당 부분을 옮긴다.


{Woodbrooke studies; Christian documents in Syriac, Arabic, and Garshuni} by Theodore, Bishop of Mopsuestia, ca. 350-428, https://archive.org/details/woodbrookestudie02theouoft

"Some other times they reveal to us His coming down from heaven in saying, ' I am one like the son of men coming on the clouds of heaven, and they brought Him near before the Ancient of days, and there was given Him dominion, and glory and a kingdom that all peoples of the earth should serve Him and worship Him. His dominion is an everlasting dominion, and His kingdom shall not pass away nor be destroyed.' : "These and scores of other passages of the prophets show us Jesus Christ in a clear mirror and point to Him. So far as Muhammad is concerned I have not received a single testimony either from Jesus Christ or from the Gospel which would refer to his name or to his works "

And our benevolent and gracious King made a sign to mean that he was not convinced, then he repeated twice to me the question : "Have you not received any ? "And I replied to him: "No, God-loving King, I have not received any." And the King asked me: "Who is then the Paraclete ? "And I answered: The Spirit of God." And the King asked: "What is the Spirit of God ?" And I replied : " God, by nature ; and one who proceeds, by attribute ; as Jesus Christ taught about Him." And our glorious King said : " And what did Jesus Christ teach about Him ?"

우리의 관대하고 자애로운 왕 (=칼리프)는 수긍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같은 질문을 내게 두번 던졌다: "이 말들을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가?".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이 답했다: "신을 사랑하는 왕이여, 전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자 왕은 내게 물었다: "그럼 도대체 '파라클레토스'란 누구란 말인가?". 나는 답했다: "그 본성에 있어서는 신이며, 속성에 있어서는 발출되는 분으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그 분 (=파라클레토스 = 성령)에 대해 가르친 바 입니다." 영예로운 우리의 왕은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 대해 무엇을 가르쳤단 말인가?"  / 번역: 최광민

And answered : " He spoke to His disciples as follows : ' When I go away to Heaven, I will send unto you the Spirit- Paraclete who proceedeth from the Father, whom the world cannot receive, who dwelleth with you and is among you, who searcheth all things, even the deep things of God, who will bring to your remembrance all the truth that I have said unto you, and who will take of mine and show unto you.' '

나는 답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내가 하늘로 떠날 때,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발출된) 성령 - 파라클레토스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나 세상은 그를 감히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는 너희와 함께 했던 자이며, 너희와 함께 계시는 자이며, 만물을 두루 살펴 신의 깊은 비밀까지 아는 자이며,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모든 진리를 너희가 기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내 생각을 받아 너희에게 보여줄 분이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 번역: 최광민

And our King said to me : "All these refer to Muhammad." And I replied to him : "If Muhammad were the Paraclete, since the Paraclete is the Spirit of God, Muhammad, would, therefore, be the Spirit of God ; and the Spirit of God being uncircumscribed like God, Muhammad would also be uncircumscribed like God ; and he who is uncircumscribed being invisible, Muhammad would also be invisible and without a human body ; and he who is without a body being uncomposed, Muhammad would also be uncomposed. Indeed he who is a spirit has no body, and he who has no body is also invisible, and he who is invisible is also uncircumscribed ; but he who is circumscribed is not the Spirit of God, and he who is not the Spirit of God is not the Paraclete. It follows from all this that Muhammad is not the Paraclete. The Paraclete is from heaven and of the nature of the Father, and Muhammad is from the earth and of the nature of Adam. Since heaven is not the same thing as earth, nor is God the Father identical with Adam, the Paraclete is not, therefore, Muhammad.

왕은 내게 답했다: "이 모든 것들은 무함마드에 관한 것이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만약 무함마드를 파라클레토스로 보는 경우, 파라클레토스는 신의 영이기에 무함마드도 신의 영이어야 합니다. 신의 영은 또한 신처럼 정의되어질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함마드 역시 신과 같은 자이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으시는 신과 같이 무함마드 역시 인간의 신체가 없는 영적인 존재여야 합니다. 육체를 갖지않는 그 분이 썩지않는 것처럼, 무함마드도 썩지않을 몸을 가졌어야 합니다. 진실로 영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볼 수 있는 몸을 가지지 않습니다. 볼 수 없기에 정의할 수도 없습니다. 정의될 수 있는 존재는 따라서 신의 영이 아니며, 신의 영이 아닌 자는 또한 파라클레토스일 수 없습니다. 이로부터 무함마드가 파라클레토스가 아니란 답이 따라 나오게 됩니다. 파라클레토스는 하늘에서 오며, 성부와 같은 본성을 가진 자입니다. 무함마드는 땅에서 왔고, 아담의 본성을 가집니다. 하늘과 땅은 엄연히 다르기에, 또한 성부와 아담이 다르기에, 파라클레토스도 무함마드와 다른 존재가 됩니다"  / 번역: 최광민

" Further, the Paraclete searches the deep things of God, but Muhammad owns that he does not know what might befall him and those who accept him. 1 He who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ep things of God is not identical with the one who does not know what might happen to him and to those who acknowledge him. Muhammad is therefore not the Paraclete. Again, the Paraclete, as Jesus told His disciples, was with them and among them while He was speaking to them, and since Muhammad was not with them and among them, he cannot, therefore, have been the Paraclete. Finally, the Paraclete descended on the disciples ten days after the ascension of Jesus to heaven, while Muhammad was born more than six hundred years later, and this impedes Muhammad from being the Paraclete. And Jesus taught the disciples that the Paraclete is one God in three persons, and since Muhammad does not believe in the doctrine of three persons in one Godhead, he cannot be the Paraclete. And the Paraclete wrought all sorts of prodigies and miracles through the disciples, and since Muhammad did not work a single miracle through his followers and his disciples, he is not the Paraclete.

' That the Spirit- Paraclete is consubstantial with the Father and the Son is borne out by the fact that He is the maker of the heavenly powers and of everything, and since he who is the maker and creator of everything is God, the Spirit- Paraclete is therefore God ; but the world is not able to receive God, as Jesus Christ said, 2 because God is ncircumscribed. Now if Muhammad were the Paraclete, since this same Paraclete is the Spirit of God, Muhammad would therefore be the Spirit of God. Further, since David said, ' By the Spirit of God all the powers have been created,' 1 celestial and terrestrial, Muhammad would be the creator of the celestial and terrestrial beings. Now since Muhammad is not the creator of heaven and earth, and since he who is not creator is not the Spirit of God, Muhammad is, therefore, not the Spirit of God ; and since the one who is not the Spirit of God is by inference not the Paraclete, Muhammad is not the Paraclete.

"성령-파라클레토스는 성부 및 성자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 자이며, 그가 천상의 권능들과 만물의 창조자란 점에서  이 사실이 따라 나옵니다. 만물의 조성자이자 창조자는 신이시기에, 성령-파라클레토스는 또한 신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한 바대로 이 세상은 그 (=파라클레토스)를 능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신은 불가해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무함마드가 파라클레토스라면, 파라클레토스가 신의 영이기 때문에 무함마드도 신의 영이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다윗은 '신의 영으로 모든 권능들이 창조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함마드가 신의 영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무함마드가 하늘과 땅의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에, 또한 창조자가 아니라면 신의 영일 수도 없기 때문에, 무함마드는 신의 영일 수 없습니다. 신의 영이 아닌 자는 파라클레토스일 수 없기에, 따라서 무함마드는 파라클레토스가 아닙니다." / 번역: 최광민

"If he were mentioned in the Gospel, this mention would have been marked by a distinct portraiture characterising his coming, his name, his mother, and his people as the true portraiture of the coming of Jesus Christ is found in the Torah and in the prophets. Since nothing resembling this is found in the Gospel concerning Muhammad, it is evident that there is no mention of him in it at all, and that is the reason why I have not received a single testimony from the Gospel about him." :

And the God- loving King said to me : " As the Jews behaved towards Jesus whom they did not accept, so the Christians behaved towards Muhammad whom they did not accept." And I replied to his Majesty : " The Jews did not accept Jesus in spite of the fact that the Torah and the prophets were full of testimonies about Him, and this renders them worthy of condemnation. As to us we have not accepted Muhammad because we have not a single testimony about him in our Books." And our King said : " There were many testimonies but the Books have been corrupted, and you have removed them." And I replied to him thus : " Where is it known, O King, that the Books have been corrupted by us, and where is that uncor-rupted Book from which you have learned that the Books which we use have been corrupted ? If there is such a book let it be placed in the middle in order that we may learn from it which is the corrupted Gospel and hold to that which is not corrupted. If there is no such a Gospel, how do you know that the Gospel of which we make use is corrupted ?

신을 경외하는 왕은 내게 말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던 것처럼, 기독교도들도 무함마드에 대해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왕께 답했다: "유대인들은 토라와 예언서들이 예수에 대해 완벽히 증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바로 이것 때문에 그들은 정죄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기독교도들이 무함마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무함마드나 그의 책 (={코란})에 관한 단 한 건의 증언조차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왕은 말했다: "원래 많은 증언들이 있었으나, 성서가 훼손되었고 너희들이 그런 문구를 삭제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왕이여, 도대체 저희희가 성서를 훼손했다는 말을 어디서 들으신 건가요? 우리의 성서가 변개된 것임을 증명할 수 있을 그 변개되지 않는 성서는 도대체 어디에 있던가요? 만약 그런 책이 있다면 우리가 그 책을 통해 어떤 부분이 변개되었는지를 살피고, 변개되지 않은 부분을 취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내놓아 주십시오. 만약 그런 복음서가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사용하는 복음서가 훼손되었다는 것을 확신하시는 것인가요?"  / 번역: 최광민

' What possible gain could we have gathered from corrupting the Gospel ? Even if there was mention of Muhammad made in the Gospel, we would not have deleted his name from it ; we would have simply said that Muhammad has not come yet, and that he was not the one whom you follow, and that he was going to come in the future. Take the example of the Jews : they cannot delete the name of Jesus from the Torah and the Prophets, they only contend against Him in saying openly that He was going to come in the future, and that He has not come yet into the world. They resemble a blind man 1 with-out eyes who stands in plain daylight and contends that the sun has not yet risen. We also would have done likewise ; we would not have dared to remove the name of Muhammad from our Book if it were found anywhere in it ; we would have simply quibbled concerning his right name and person like the Jews do in the case of Jesus.To tell the truth, if I had found in the Gospel a prophecy concerning the coming of Muhammad, I would have left the Gospel for the Kur'an, as I have left the Torah and the Prophets for the Gospel."

"우리가 (=기독교도)  복음서를 변개한들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인가요? 복음서 안에 설령 무함마드에 대한 언급이 있다치더라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삭제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파라클레토스가 무함마드라고 해도) 그저 우리는 무함마드가 아직 도래하지도 않았고, 그는 당신들이 따르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며,  미래에 올 존재였다며 대응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들은 토라와 예언서에서 예수의 이름을 삭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그 (=메시아)는 미래에 올 것이며, 아직 세상에 오지 않았다고 말하며 예수를 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소경과 같아서, 대낮에 서서는 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들과 같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무함마드의 이름이 설령 우리의 성서에서 발견된다해도, 우리 역시 감히 우리의 성서에서 무함마드의 이름을 삭제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다만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해서 그러듯 우리도 무함마드의 이름과 존재에 대해 논쟁하려 들겠죠.  사실 제가 복음서에서 무함마드의 도래에 대한 예언들 발견했다면, 마치 제가 {복음서}를 따르기 위해 토라와 예언서를 떠났던 것처럼,{복음서}를 대신 {코란}을 따랐을 것입니다. /   번역: 최광민

이슬람 정복 후 시리아 교회와 이슬람과 갈등 역사는 {Syrian Christians under Islam: the first thousand years} (David Richard Thomas)에 잘 기술되어 있다.


David Richard Thoma (ed.), {Syrian Christians under Islam: the first thousand years}

일독을 권한다.




6. 이븐 이샥: 무나헤마나 = 무함마드 = 파라클레토스?

여기서 무슬림의 주장의 근거가 되었던 아라비아 반도 메디나 출신의 이븐 이샥의 논증으로 돌아가 보자. 그가 쓴 무함마드의 일대기 속에서 이븐 이샥은 실제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Alfred Guillaume 영역)


{Ibn Ishaq's Sirat Rasul Allah - The Life of Muhammad} Translated by A. Guillaume, https://archive.org/details/TheLifeOfMohammedGuillaume

…Among the things which have reached me about what Jesus the Son of Mary stated in the Gospel which he received from God for the followers of the Gospel, in applying a term to describe the apostle of God, is the following. It is extracted from what John [Yuhannis] the apostle set down for them when he wrote the Gospel for them from the Testamant of Jesus Son of Mary: ‘He that hateth me hateth the Lord. And if I had not done in their presence works which none other before me did, they had not had sin: but from now they are puffed up with pride and think that they will overcome me and also the Lord. But the word that is in the Law must be fulfilled, 'They hated me without a cause' (ie. without reason). But when the Comforter [Munahhemana] has come whom God will send to you from the Lord's presence, and the spirit of truth [ruhu`l-qist] which will have gone forth from the Lord's presence he (shall bear) witness of me and ye also, because ye have been with me from the beginning. I have spoken unto you about this that you should not be in doubt. The Munahhemana (God bless and preserve him!) in Syriac is Muhammad; in Greek he is the Paraclete [Albaraqlitis ]…."  ---- Ibn Ishaq, [The Life of Muhammad / Sirat Rasul Allah], tr. Guillaume, pp. 103-104

우선, 이븐 이샥은 (이후 다른 무슬림 주석가들이 하듯) {요한복음서}의 해당부분을 거짓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인다. (무슬림들은 {복음서}, 즉 {인질}의 일부 구문만을 인정하며 전체 복음서를 인정하지 않는다. 문서가 후대에 변조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그는 시리아어(아람어)에서 "죽은 자를 살리는 자", 혹은 "생명의 부여자"를 뜻하는 "무나헤마나/메나헤마나"가 아랍어 "무함마드"와 같다고 논증한 다음, 여기서 다시 "무함마드는 그리스어로는 (페뤼클리토스가 아닌 / 필자 주) 파라클레토스 [알-바라클리티스]"라고 적고 있다.

이것은 내가 앞서 다른 무슬림들에게 들었던 (즉, 현대 이슬람 주석가들의) 논증과 차이가 난다. 일단, 이븐 이샥은 "아함마드"를 언급하지 않았다. 아울러 이븐 이샥은 아랍어 "아함마드"에서 직접 그리스어 "페뤼클리토스"를 유추한 것이 아니라, 아랍어 "무함마드"에서 시리아어 "메나헤마나"를 유출한 다음, 여기서 다시 Parakletos 를 유추해낸 것이다. 즉, 이븐 이샥은 {요한복음} 속의 이 단어가 Periklytos 가 아닌 Parakletos란 점을 인정한 셈이다.

실제로 [무함마드(아랍어) = 무나헤마나(시리아어) = 파라클레토스(그리스어)] 란 이븐 이샥의 공식이 [무함마드 = 아함마드 = 페리클뤼토스] 라는 오늘날의 대중적인 공식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것은 이븐 이샥 이후이며, 그것은 파라클레토스 (그리스어)-파라클레(이)타 (시리아어)를  아랍어 {성서}에서 Faraqlit로 표기하면서 생긴 무슬림 측의 혼동인것 같다. 

아울러 이븐 이샥의 논증 자체도 문제를 가지고 있다.그는 '무함마드'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시리아어가 '무나헤마나 ~ 메나헤마나' 라고 했는데, 왜 이븐 이샥은 이 단어를 다시 다른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단어 '파라클레토스'와 같다고 본 것일까? 이븐 이샥의 시대에 중동일대에서 사용되던 성서는 아람어 {페쉬타} 였고, 위에 적은 바처럼 {페쉬타}는 이슬람교가 등장하는 서기 7세기보다 수 세기 전부터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에 대한 시리아어 대응어로 '메나헤나마'가 아닌 '파라클레(이)타'를 사용해 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시리아어 무나헤마나와 뜻이 다른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가 같다고 본 것일까? 그는 시리아어 무나헤마나에서 (유사한 의미를 가진) 시리아어 파라클레(이)타를 일치시킨 후에 여기서 다시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와 연결지은 것일까? 일단 이븐 이샥의 논증에는 {페쉬타}의 파라클레(이)타가 언급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이 점은 분명치 않다.

이븐 이샥이 언급한 "무나헤마나"란 단어는 시리아어 {페쉬타}를 비롯하여 시리아어로 된 시리아 교부들의 문서에 등장하지 않았다. 아울러 그가 사도 "요한"의 이름을 말할 때도 {페쉬타}를 비롯하여 시리아 교부들의 공인 시리아 사본들이 사용하는 "유하난"이라고 쓰는 대신 그리스어 식으로 "유하니스"라고 적었다.

그래서 책을 번역한 Alfred Guillaume은, 이븐 이샥이 (그리고 아랍어를 구사한 이슬람 교도들이) 참조한 시리아어 문서는 AD 2/3세기의 성서 번역인 {구-시리아어 번역}, 혹은 AD 4-5세기의 공식 시리아어 성서인 {페쉬타}가 아닌 , AD 6/7세기 무렵의 후대 팔레스티나-시리아어로 된 성구 발췌모음집인  {The Palestinian Syriac Lectionary}일 것으로 확신한다. 이 성구집에서 "무나헤마나"는 성령이 아니라, 나사로(라자로스)를 살리는 장면에서 "생명을 주는 자 (= 무나헤마나)", 즉 "부활시키는 자"인 예수 본인에게 적용되어 있다. 앞서 말한대로 시리아어 "nHem, naHHem"에는 "위로하다"란 2차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성구집의 시리아어 번역자들은 "위로자/중보자"란 뜻의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를 "위로하다"란 어근을 역시 품은 "무나헤마나 / 생명을 주는 자"란 시리아 단어로 치환시킨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The Palestinian Syriac lectionary of the Gospels; re-edited from two Sinai MSS. and from P. de Lagarde's edition of the "Evangeliarium Hierosolymitanum." (1899), https://archive.org/details/palestiniansyria00lagauoft


아울러 이븐 이샥은 {요한복음}에서 성령을 뜻하는 "진리의 영 (spriritus Veritatis)"을 "ruhu (=영) `l-qist (=진리)"가 아닌 "ruhu `l-quds (=정의)"로 번역했다. 따라서 의미가 사뭇 달라지게 되는데, 바로 이 후자의 형태 역시 앞에서 말한 {팔레스티나-시리아어 성구집}에 등장한다.

아래는 이에 대한 Guillaume의 설명

It will be apparent to the reader that Ibn Ishaq is quoting from some Semitic version of the Gospels, otherwise the significant word munahhemana could not have found a place there. This word is not to be found in the Peshitta version [Syriac version of the Bible], and in the Eastern patristic literature…it is applied to our Lord Himself. Furthermore the Peshitta, Old Syriac, and Philoxenian versions all write the name of John in the form Yuhanan, not in the Greek form Yuhannis found in the Arabic text. Accordingly to find a text of the Gospels from which Ibn Ishaq could have drawn his quotation we must look for a version which differs from all others in displaying these characteristics. Such a text is the Palestinian Syriac Lectionary of the Gospels [ [24] Guillaume`s note : Evangeliarum Hierosolymitanum ed. Count F.M.Erizzo,Verona, 1861, p.347, and The Palestinian Syriac Lectionary of the Gospels re-edited from two Sinai MSS and from P.de Lagarde`s edition of the Evangeliarum Hierosolymitanum by Agnes Smith Lewis and Magaret Dunlop Gibson, London, 1899, p.187.] which will conclusively prove that the Arabic writer had a Syriac text before him which he, or his informant, skilfully manipulated to provide the reading we have in the Sira.

... Apart from the spelling of the name Johannes …the renderings of Paracletus and Spiritus veritatis are crucial. It has long been recognized that the Palestinian Syriac Lectionary has been strongly influenced by Jewish Aramaic and nowhere is this more perceptible than in their rendering of Paraclete which the Syriac Versions and the Vulgate simply transliterate, preserving the original Greek term as the English Bible in some places. The word Paraclete has been 'naturalized' in Talmudic Literature and therefore it is strange that the Syriac translators of the Lectionary should have gone out of their way to introduce an entirely new rendering, which given its Hebrew meaning has, by a strange coincidence, the meaning 'Comforter' of the English Bible ….But in ordinary Syriac no such meaning is known. There menahhemana means ‘life-giver’ and especially one who raises from the dead, while nuhama stands for resurrection in John XI.24, 25. Obviously this cannot be the meaning of our Lord’s words in the passage before us. What is meant is one who consoles and comforts people for the loss of one dear to them, their advocate and strengthener, a meaning attested by numerous citations in Talmudic and Targumic dictionaries.

Secondly for spiritus veritatis the best MSS of Ibn Ishaq have ruhu `l-qist, which later writers have gratuitously altered to ruhu `l-quds. But qist is not truth, but rather 'equity' or 'justice'. Whence, then, came the word? There is no authority for it in the Old Syriac or Peshitta which read correctly sherara. Again the answer is to be found in the Lectionary which has ruh d`qushta, the correct meaning in Jewish Aramaic. --- [25] A.Guillaume. {The Version of the Gospels Used in Medina Circa 700 A.D.} Al-Andalus , 15 (1950) pp.292-293

[23] A.Guillaume.The Version of the Gospels Used in Medina Circa 700 A.D. Al-Andalus , 15 (1950) pp.289-296.

그리스어 사본을 통해 보든, 시리아어 {페쉬타}를 통해 보든, 그리스어 parakletos나 아람어 PRQL+A 안에는 “아함마드”라는 발음이 들어있지 않고, 또 아함마드(칭송받을 자)라는 이름의 그리스 대응어인 periklytos와 아람어 PRQL+A와의 병렬관계도 사라짐을 알 수 있다. 즉, PRQL+A는 그 의미, 발음, 어원상 아함메드/아함마드를 의미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가진다

아울러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 (나는 아버지에게 청할 것이고, 그는 너희에게 또 다른 위로자를 보낼 것이다.) 그는 진리의 영으로 너희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며, 이 세상은 그를 능히 받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를 보지도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너희 안에 거하고 있고, 또 너희 안에 있게될 것이므로 너희는 그를 알고 있다. ..."

여기서 예수는 그 파라클레토스가 이미 예수의 제자들 안에 "있고" 또 "있게 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파라클레토스는 예수 당시부터 600년 후에 도래할 존재라고 부를 수는 문맥상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AD 7세기의 {코란} 주석가 이븐 이샥이 {코란}의 구절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요한복음서}의 해당구절을 사용하는 것은 전후문맥을 고려치 않은 결과라고 판단된다.




7. 알-타바리: 수비학적 증명?

한편, 서기 9세기에 활동한 무함마드 이븐 자릴 알-타바리의 시대에는 새로운 논증이 등장한다. 그의 책 {종교과 제국} 제 28장은 역시 {요한복음}의 해당 구절을 예언자 무함마드의 도래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가 이해한 방식은 이븐 이샥의 그것과 또 다르다.

우선, 알 타바리는 (1) 예언자 무함마드는 (시리아) 기독교도들이 말하는 "파라클레(이)타"과 "같은 이름/호칭"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무함마드는 여러 이름/호칭을 가지고 있다. 아함마드는 그 중 하나). 알 타바리의 주장은 "아함마드/페리클뤼토스"를 염두에 둔 것인가? 아니면 이븐 이샥의 "무나헤마나"를 염두에 둔 것인가? 분명치 않다.

알 타비리의 두번째 논증은 (2) 예언자 무함마드를 부르는 "몇몇 호칭"들과 "파라클레(이)타"의 "글자"를 파자한 후 숫자로 치환하면 그 총합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1:1로 매치하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알 타바리는 약간의 트릭을 구사한다. 이런 아랍어 호칭으로는 "무함마드 이븐 압달라 안-나비율-하디 (=압달라의 아들 무함마드, 바르게 인도된 예언자)"와 "라술룬 하비분 다위분 (= 무함마드는 사랑받고 선한 사도다)가 거론된다.

인용한다.


{The book of religion and empire, a semi-official defence and exposition of Islam} by Ali ibn Rabban, al Tabari, d. ca. 864; Mingana, Alphonse, 1881-1937, https://archive.org/details/bookofreligionem00aliiuoft

.....The interpretation of the saying "He will send in my name," is this : as the Christ was called Paraclet, and Muhammad also was called by the same name/ it was not strange on the part of Christ to have said " He will send in my name," that is to say He will be "my name- sake " (or : " my equal," sami). Indeed, it seldom happens that the Christ — peace be with Him— is mentioned in a chapter of the Books of the prophets — peace be with them — without a simultaneous mention of the Prophet — may God bless and save him — as adhering to Him and making one pair with Him, because he came after Him.

When I examined carefully the word " Paraclet," and searched deeply for the meaning of the saying of the Christ, I found another wonderful mystery in it; it is that if somebody counts the total of the numerical value of its letters, it will be equivalent to the same total as that of the letters of the words : Muhammad bin Abdallah an-N abbiyul-Hadi. If somebody says that one number is missing, because the word is Paracleta. we will answer that the letter Alif is a paragogical addition to the Syriac nouns. The words which would exactly be equivalent to the numerical value of the word, without any addition and diminution, are Muhammad Rasulun Habtbun Tayytbun.* If someone says that the same number is obtainable from other names, this will not be possible for him until he brings forth, from a scriptural evidence, the man who would answer to the description given by the Christ in His saying : " The Paraclet whom He will send, the Spirit of truth whom my Father will send in my name, He shall teach you everything ; " and he will not be able to find a way for that.

이븐 이샥이나 알-타바리 등의 주장이 그 논리와 근거에 있어 타당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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